부안항쟁, 절대공동체와 사회적 주체성의 출현 고길섶 문화비평가 예고 없이 찾아 온 불청객 부안사태는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었다. 2003년 2월부터 시작된 울진, 영덕, 영광, 고창(정부 후보부지 선정지역) 등지의 지역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집회가 잠잠해지고 정부가 지자체의 자율유치 방안을 발표하자 5월 13일 부안군의 위도주민들이 군의회에 유치 청원을 함으로써 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다. 부안읍내에서도 반대운동이 태동되었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핵폐기장 반대 대규모 군민집회가 시작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공권력의 폭력진압에 의한 부안사태가 속출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부안 군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하였다. 대규모 궐기대회, 촛불집회, 상경투쟁, 해상시위, 서해안고속도로 점거, 등교거부 등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내소사에서의 군수 응징사태마저 발생하였다. 이후 정부와의 대화기구가 마련되면서 부안 군민들은 핵폐기장 부안 백지화 쟁취를 기대했으나 이마저 무산되어 마침내 11월 19일 민란사태로 번졌고 11월 20일에는 부안지역에 경찰계엄이 발동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부안 군민들은 오히려 좀 더 평화적인 방식으로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하였으며, 2월 14일에는 주민 독자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강력한 반대의사를 수치(72% 투표율에 92% 반대)로 정확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신규공모 절차를 준비하는 한편 부안군의 공식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밀어붙이려 했으나, 정부가 2004년 9월 15일 마감으로 고시한 지자체장 예비신청이 단 한군데서도 접수되지 않아 결국 정부와 유치예비신청을 하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주민투표 일정 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부안 군민들은 2·14 주민투표 이후 투쟁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고 더군다나 4·15 총선 때 반핵부안대책위가 정확히 대응을 하지 못함에 따라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나마 투쟁동력이 이어진 것은 2·14 주민투표 이후 매주 갖는 촛불집회와 매일 아침마다 군청 앞에서의 군수퇴진 1인 시위, 그리고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연속된 ‘게릴라전’/‘국지전’ 등 때문이었다. 부안군민들은 정부의 주민투표 일정이 무산됨에 따라 부안의 백지화가 공식화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정부는 여전히 또 다른 전략과 일정을 꿈꾸고 있다. 11월 들어 부안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감사원의 유치과정 감사계획이 보도되는 등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모든 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안 군민들은 쓰라린 기억으로 11·20 경찰계엄 1년을 맞이했다. 투쟁의 역동성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은 반핵투쟁이자 민주주의 투쟁으로 요약된다. 부안은 분명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이라는 거대독점 전력자본 및 전력권력과, 그리고 그에 동맹하는 군정독재 및 노무현 정권에 대항해왔다. 부안 주민들의 집단적 분노와 저항의 기원은 군수의 독단적 유치신청 행위에 있으며, 그 분노와 저항은 필연적으로 예고된 군수의 군정독재 및 국가권력의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투쟁으로 성장되었고, 투쟁의 ‘절대공동체’를 형성하면서 군정권력에 대응하는 ‘주민권력’이 생성되었다. 부안항쟁은 군대책위라는 조직화된 투쟁체를 통해 준비되었다. 하지만 부안 군민들은 이미 군대책위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화되면서 분노의 감정구조에 따른 자발적인 투쟁공동체로 연대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공권력과 맞서는 격렬한 투쟁양상들로 표현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촛불집회를 통한 문화투쟁으로 결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안 주민들은 사회적 주체성으로 새롭게 출현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주체성은 주체형태로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다중적 주체성이자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민중적 주체성이라는 이중적 형태로 나타났고 그 내용으로는 ‘생명-민주효과’로 생산되는 주체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체성은 투쟁하는 절대공동체의 힘의 원천이 되었다. 절대공동체의 부안적 구성은 장기화된 과정 속에서 역동적인 주체성의 학습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2·14 독자적 주민투표 형태로 ‘자치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창발을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부안반핵민주항쟁은 매우 풍부하게, 역동적으로 이어져 왔다. 공동체의 새로운 구성 부안의 투쟁하는 절대공동체는 첫째, 부안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하는 사회적 주체로 출현하도록 하였으며, 둘째, 그 사회적 주체는 생명-민주효과로 구성하는 새로운 주체성의 담지자이며, 셋째, 그 새로운 주체성은 다중이자 민중으로서의 집합적 행위주체로 표현되었다. 넷째, 그 집합적 행위주체들은 성별이나 연령이나 위치에 따르는 수직적 종속관계로서가 아니라 수평적 동지관계로 결속되었다. 그리고 다섯째, 부안 사람들은 핵마피아 집단 및 찬핵집단에 대한 적대성으로 대치해왔다. 마지막으로, 그러면서도 절대공동체 내 ‘동지’들은 형식화된 지역-행정적 공동체를 해체하고 연대하는 지역-문화적 공동체로 이끌어 왔다. 부안지역은 핵폐기장 문제 이전에는 지역-행정적으로 규정되는 형식적 공동체의 성격이 강했다면, 반핵투쟁 이후로는 투쟁공동체의 운명 속에서 교통하고 연대하는 문화적 공동체로 진화되었다. 사람들은 집회장에 모여들어 공론장을 형성하면서 정보와 의견의 교환, 감정구조의 교감 등을 통해 낯선 사람들에서 낯익은 동지로 소통하고 연대해왔다. 이것은 동어반복되는 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워져 왔다 부안 사람들은 일반적 지역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대개 개별화된 개인으로서 존재해왔으나 핵폐기장 사태를 맞이하여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사회적 주체로 급부상하면서, 적어도 행동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무관심했던 사회적 이슈들에게까지 폭넓은 수용성을 가지면서 세계-내-존재로서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핵폐기장 반대투쟁의 명분을 지역이기주의에서 찾지 않고 ‘핵없는 세상’에서 찾은, 투쟁의 초기화조건을 세계 보편적 문제로서의 반핵투쟁으로 배치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위도주민들이 유치청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로 인접지역인 고창에서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하는 상황에서도 부안 사람들은 핵폐기장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부안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문제로 불어 닥치자 지역적 존재로서의 위기를 느끼면서 세계-내-존재로서 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사안 자체가 가져다준 자발적 생명-민주효과이기도 하며 대책위에서 촛불집회와 교육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해준 의식적 교육-학습효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도 반대할 수 있게 되었고, 찬성이 대세였던 새만금 사업 문제도 서서히 반대하는 쪽으로 기류가 형성되어 왔다. 진정한 승리를 위해 아직도 부안 주민들은 계속 투쟁 중이다. 일개 군수의 독선적 행위로 촉발된 부안주민항쟁은 핵마피아 집단이 구축하려는 핵산업-위험사회와 맞서 싸우는 전쟁기계가 되어 왔다. 작은 지역에 갇혀 고립된 싸움을 하면서도 부안 사람들은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면서 한국 사회운동사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할 텍스트들을 생산해왔고,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주민저항방식을 창출해왔다.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안 주민들의 반핵민주항쟁은 다름 아니라 정치적 투쟁과 결속된 문화투쟁이다. 부안항쟁은 매우 풍부하게 투쟁의 대서사시를 기록해왔다. 그러므로 부안항쟁은 간단히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되며,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의미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안항쟁은 정부가 백지화 선언한다고 해서 종결되는 게 아니다. 아픔과 후유증과 희생을 치유하면서 항쟁의 성과를 이어 대안사회로의 이행을 전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과 장치들을 강구해야 하고 지역적 연대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곧 부안항쟁의 진정한 승리를 향한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한다. PSSP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호 성 희 | 여성국장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있다. 눈이 맑은 아이들은 기소장을 쓰면, ‘싸우지 않을게요’란 다짐을 한다. 무고한 죽음들과 삶의 터전의 파괴. 이것만으로도 전쟁을 반대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총성을 멈추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여성'이라는 집단적 주체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이 가리고 있는, 혹은 전쟁이 그것 자체로 합리화하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려 하는 것이다. 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한다 전시강간은 고대의 전쟁부터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국지전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끔찍한 공통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전쟁의 우발적 결과가 아님을 말해준다. 전시강간은 적의 남성을 무력화하는 방법이었고, 전쟁에서 여성은 전쟁의 포획물이거나 지켜야할 사유재산처럼 취급되어 왔다. 우리가 새로운 전쟁이라 부르는 냉전 이후의 국지전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상징들은 군사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이라크 전쟁에서 아부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 고문이 그러한 예이다. 남성들의 전투 참여는 적의 여성화와 강간의 상징을 통해 지배를 상징화한다. 심리학적으로 그들은 남성성을 지배적인 위치와 연결짓고 여성성을 열등한 적과 동일화한다. 이와 같이 적을 여성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현실의 불평등한 남녀관계를 반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한 조직(OWFI)'의 성명서에 따르면, “팔루자에서 2004년 10월 20일에 열린 무자헤딘 회의에서 이슬람주의 범죄자 압둘라 알 자나비와 팔루자의 슈라 위원회는 무자헤딘 전사들은 열 살 정도의 소녀들이 미군들에게 강간당하기 전에 그녀들을 먼저 강간해야만 한다는 율령을 발표했다. 수십 명의 대학을 다니는 소녀들은 청바지를 입었다는 혹은 히잡(베일)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종 심하게) 맞았다. 미용실에 가는 여성들은 종종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서, 수치의 대상이 되어 공개적으로 머리카락을 잘린다. 수천 개의 유인물이 매일같이 전국에 배포되는데, 내용은 베일을 쓰지 않은 채 나온, 혹은 화장을 한, 혹은 손을 흔들거나 남성들과 함께 다니는 여성들에 대한 경고이다. 1000명 이상의 여대생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었다.”이러한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저항'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또한 상징적 폭력들은 상품화되기도 한다. 얼마 전 부시가 바지를 벗은 채 들어올린 엉덩이가 연필꽂이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피해가 생생히 드러나진 않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도덕적 타격을 주었던 아브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 고문 사건 뒤편에는 여성포로가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명예살인은 이슬람 율법이 아니라, 악습 중에 악습이다. 전쟁에서 여성이 당한 피해는 사회적으로 치유되고 복구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명예살인과 같은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들은 다시 부활하고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재건을 돕는다는 이유로 3600여명을 파병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라크는 전쟁 중이며, 미국의 종전 선언 이후 더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전쟁은 파괴 그 자체이다. 현재 이라크 실업률은 50%를 넘고 있으며, 사회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시스템 자체도 파괴되었다.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폭력 중에 하나는 바로 빈곤의 확산이다. 이것은 민간인 학살의 다른 이름이다. 91년 걸프전부터 지금까지 좀더 천천히 오래 지속되어 왔을 뿐이다. 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라크 여성들은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이라크 현지를 다녀온 활동가들은 지난해 5월부터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녀들은 어렵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고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지만 폭격이 멈춘 뒤에 그녀들은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쟁반대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것과 분리한다면 말이다.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집단적 주체로서 여성이 전쟁범죄를 고발한다는 것은, 전쟁이 여성의 이름으로 새롭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여성이 전쟁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한국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은 50여 년이나 긴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전쟁은 남성이 당사자이고, 남성만이 기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는 것은 다시 더 심하게 곪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전운동은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새로운 대안적 전망을 가지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이 무엇을 끝장내야하는지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PSSP
* 2004년 11월 19일-20일 개최된 평화활동가 워크샵 자료입니다. * 주로 시민운동쪽에서 준비를 한 행사이고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 파병반대 운동, 평가와 전망 - ‘2005년 해방 60년, 분단 60년’ 전망과 대응 - 한미동맹의 성격 변환과 주한미군 기지재배치에 대한 대응방안 모색 : 이경아 - 원폭 60년과 비핵평화 - 북한인권의 쟁점과 시민사회 대응방향 - 2004 평화통일운동 행동과제 미국 대선 이후의 한반도 평화전략(정욱식)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동맹 전환과 한반도 평화 그리고 우리의 과제(김종일) 2005년도 평화운동 진영내 공동 사업 제안
역사적 죄악 학살파병 연장을 거부하고 철군과 평화를 위해 전진하자 1. 자이툰 부대 파병시한을 1시간 30분 남겨두고 무능과 반민주로 점철된 국회에서 파병연장 동의안이 야합처리 되었다. 모든 것에서 대립하던 우리당-한나라당이 파병연장에 대해서는 야합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무장한 세계화와 전쟁참여에 있어 지배세력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스스로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결국 국회에서 그들의 제1의 과제는 파병연장이었고, 그들이 민중의 생존과 평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총칼로 평화와 재건을 말하고 민중의 목숨을 댓가로 국익을 운운하는 저 노무현정권과 정치권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그 피에 물든 손으로 의사봉을 두드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2. 미국의 학살전쟁,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파병을 연장하는 것은 역사와 민중에 대한 죄악이다. 10만여명의 이라크인들이 학살당한 살육의 현장, 오무전기노동자 김만수, 곽경해씨가 피살당하고 김선일씨가 죽어간 그곳에서 자이툰부대는 그 학살을 정당화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씻기 힘든 죄 아닌가. 더욱이 파병연장으로 인해 자이툰부대가 이라크 민중에게 총부리를 겨누거나 무장세력으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정권과 지배세력은 그 죄악과 재앙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3.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의 바램을 짓밟고, 소위 국익과 한미동맹을 위한답시고 파병하더니 부시에게 추가파병을 선물로 안겨주고 이제는 ‘묻지마’ 파병연장까지 강행하는 노무현정권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이미 파탄났고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그들은 한손에는 자본의 이해를, 다른 한손에는 총을 들고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난도질할 뿐이다. 오직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만이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이다. 4. 2004년 한해 반전평화 운동은 연초 추가파병 반대 투쟁, 김선일씨 죽음을 계기로 한 파병철회 투쟁, 범국민 단식투쟁, 출국 저지투쟁, 파병연장 반대투쟁을 이어왔다. 또한 풀뿌리 반전운동은 전범민중재판 운동을 전개하여 민중의 이름으로 전쟁범죄를 심판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파병연장을 앞두고 실질적인 광범위한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여 반전평화, 파병반대의 민중적인 의지를 모아내지 못하였다. 깊이 평가하고 새로운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다. 이제 2005년은 이라크에서 미군의 학살과 점령을 끝내는 것, 파병을 중단하고 자이툰부대를 완전 철수시키는 것, 이를 위해 아래로부터 반전평화 운동을 더욱 심화 확장시키는 막중한 과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민중의 힘으로 만드는 철군과 평화를 위해 전진하자. 2004. 12. 31
* 미국 대선 관련 글들(번역)입니다. - 미국의 진정한 분열 (ANSWER) - 워싱턴 시에서 1월 20일 취임반대 시위를 조직하자 (ANSWER) - 케리 패배 이후의 존 스위니 :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 반전운동의 투쟁은 똑같이 남아있다 - 10월 17일 백만노동자행진 선언과 향후 방향 - 선거 이후 : 다음은 무엇인가? (노동당)
'이동화씨와의 대화'를 되새기며 나는 이제껏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갈기갈기 찢겨져나가는 이라크 민중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모습과 절규 소리가 안 들리고 안 보인다는 이유로 짐짓 저편의 전쟁을 모른 척 해왔다. 적어도 남한의 국회가 파병결정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러나 부시 형님의 똘마니인 남한 정부는 전쟁 놀이에서도 철저한 오른손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파병을 결행하고 말았다. 이에 우리는 우리 모두의 뜻과 무관하게 어느새 전쟁범죄 국가의 국민이 되고 말았고, 이 나라의 정부는 우리 모두를 침략자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국제인권법과 헌법을 위반하면서 전쟁범죄를 행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파병을 심판하고 단죄하여 우리의 힘을 모아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민중재판에 세우기 위한 기소인 운동이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한창 진행중이다. 이러한 때에 나는 이라크 반전 평화팀의 일원으로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이라크에서 직접 활동하고 오신 '이동화씨와 대화 시간'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10월 21일 늦은 7시 사회진보연대 회의실에서 갖게 된 이동화씨와의 대화는 마침 중간고사기간이었으나 시험이 없어 놀고있던 나의 삶에 경각심을 일깨어주는 소중한 시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반전의 목소리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진보넷 참세상에서 만든 이라크 파병저지 운동을 담은 ‘반전의 목소리들’이라는 영상을 봤다. 김선일씨의 울부짖는 음성, 한국정부의 파병결정 취소를 촉구하고 노무현에게 '파병은 당신의 실수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자막과 함께 흐르자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 불현듯 떠오른 듯한 기분을 느꼈다. 더군다나 비 오는 날 이루어진 파병반대 집회에서 이라크에서 사망한 오무전기 노동자의 어린 딸이 비와함께,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파병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어쩌다가 저런 어린애가 비까지 맞으면서 많은 사람 앞에서 저렇게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어둠을 틈타 흐르는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저 학교생활을 하면서 날씨가 좋으면 소풍이나 가고 날씨가 나쁠 때면 술 한 잔 할 때에도 끊임없이 파병저지 운동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몸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씨가 더워도, 비가 와도 변함 없는 자세로 '파병저지'라는 목표를 향해 힘들게, 그리고 힘차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던 장면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다양한 색깔이지만 반전을 향해 모인 한 목소리들. 전경과 한 덩어리가 되어 경계선도 보이지 않게 밀착해 싸우는 사람들. 오직 파병만은 안 된다는 신념 아래. 파병이 불러올 뻔한 결과에서 눈 감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당한 저항에 몸과 정신을 불사르는 모습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인간 띠 잇기, 전경차 탈환, 몸싸움, 그 사이로 퍼지는 파병반대 반전평화의 목소리들, 아우성, 저항의 그것들. 그러나 그 곳에 그 어떤 대꾸도 메아리도 없었다. 결국 정부는 새벽에 몰래 도둑 파병을 강행했고, 반전평화 운동가들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지만 반전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동화씨를 통해 들은 이라크 상황 한국의 활동가들이 이런 활동을 통해 반전의 의지를 표출했다면, 이동화씨는 이라크에서 직접 활동하였다. 셀림(이라크말로 돌쇠)이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하는 그는 '평화바닥'(예전의 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올해 6월부터 이라크 현지인이 운영하는 CWB(Children Without Border)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 이라크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해오다가 지난 9월말 이라크 사정이 악화되어 현재는 한국에서 반전평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상영이 끝난 후 한참 동안 이동화씨는 특유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 샤프의 똑딱이를 수도 없이 똑딱이는 것이다. 머리를 감싸 안고 눈을 깜빡이며 떠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무언가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그가 느꼈음을 확신했고 그의 태도 하나 하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김선일씨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며 고 김선일씨의 목소리를 다시 듣지 않길 바랬다고 그는 한참을 또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래도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마음을 채 추스리지 못한 채 아픈 기억을 떠듬떠듬 펼쳐 보이는 그의 이야기는 슬픔이었다. 저항세력을 토벌하겠다는 미국의 미치광이 같은 대응전략으로 이라크의 거의 모든 마을은 실상 봉쇄됐다고 한다. 이 봉쇄 지역에는 여자와 10살 이하의 어린이만이 출입할 수 있는데, 밤이 되면 미군은 갑자기 공습을 내리친다. 특히 팔루자는 거의 공동묘지로 변하였고 저항세력이 땅바닥을 기면서 총이나 폭탄으로 싸워댈 때 미군은 머리 위에서 폭격기를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총알을 뿌리고 간다하니 흡사 반일투쟁 당시 농민군이 삽과 도끼로 싸울 때 일본군이 총기를 든 것이 현대로 옮겨온 양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겁에 질린 미군은 휙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눈에 보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약 1분간은 총을 긁어댄다는 이야기나 마을을 검문하기 전에 한번 큰 폭탄을 서너 개 터뜨리고 순식간에 모든 집에 총알을 쏟아부은 후 다시 마을에 폭탄을 터뜨려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이야기. 자신의 눈 앞에서 폭탄이 터져서 살덩이가 이리저리 튀겨나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 등은 그게 현실이 아니라 차라리 끔찍한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라크의 실업률은 50%가 넘는데도, 미군 앞잡이인 임시정부는 하는 일도 없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겠다고 이라크 민중의 목숨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하룻밤 한마을에 23명이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고 올해 4월 팔루자에서는 약 1000여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숫자를 들먹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의례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는다. 혹은 대형사고가 나면 사람이 죽는다'라고 생각하는데 10명 이하면 얼마 크지도 않은 사건으로 치부해 버리고 몇 천 명쯤 죽어야 대단히 심각한 사건으로 간주하면서 정확한 명수를 따져보는데 정신이 팔리는 건 아닌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전쟁이 발생했고 아무 죄도 없는데 사람이 죽었다! '일개' 한 명이 죽었대도 그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고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책임을 져버리고 방관한 죄가 있는 것이다. 이라크 내에서도 테러리스트와 저항세력의 구분은 분명하며 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에 대해 부도덕성을 지탄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크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중의 마음 속에서 점점 테러리스트의 부도덕성을 지탄하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점점 미쳐가면서 민간인, 여성 할 것 없이 사방에 총알을 뿌려대는 미국에 대한 증오가 더욱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점유율이 높은 언론에 의해 알려지는 몇몇의 사건은 그야말로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일 뿐인데, 그들을 처단하기만 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 다 해결될 듯이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지금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통해 일부 표출되고 있는 분노와 적개심 또한 이라크 민중의 것이다. 대화 중에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의 이야기가 나왔다. 바로 이라크 여성의 문제이다.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이라크에서는 코란에 명시되어 있듯 강간이나 매춘은 가장 큰 죄이다. 하지만 미군이 들어간 그 곳도 역시 성역이 될 수 없다는 것. 미군 주둔지를 따라 매춘이 자리잡고 강간은 말할 것도 없으며 길거리 어디서나 대낮에도 일어나는 그런 일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눈에도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은 원래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믿고 따르며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동화씨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신성해질 정도라고 까지 한다.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코리아 예스'를 외쳐대며 안기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이야기. 손님이 찾아가면 융숭히 대접하는 그들의 문화로 인해 이라크인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배가 빵빵해져 돌아왔다면서 마치 행복한 고통이라는 듯 짓는 그의 표정. 그러나 그렇게 행복한 모습의 어린이들 그리고 이라크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제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에는 익숙해져 놀라지도 않으며 축구가 좋아 축구를 하면서 마치 총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그곳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라크 어린이들. 민중들. 예전의 이라크를 나는 물론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이라크의 모습이 절대 행복하지 않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미국이 말하는 전쟁이, 예전엔 미국의 원조로 친목을 다졌으나 이제는 악마가 되어버린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인들을 해방시켜주고 그래서 이라크 민중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나는 분명히 안다. 초창기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들은 진정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을 위해 들어왔노라’ 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어느 바보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미군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정부의 명분이 거짓임을 그 곳에서 직접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동들을 통해 깨달았다. 민중들을 짓밟고야 알게된 의식의 빠른 성장에 박수를 쳐야할지.... 노무현을 전범재판대에 세우자 현재 미군의 숫자만 약 14만 명. 영국, 포르투갈 그리고 한국군이 합쳐서 약 2만명정도 된다고 한다. "14 만 더하기 2만= 16만. 무기 소유량= 무한대" 이렇게 숫자상만으로도 엄청난 군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테러리즘에 벌벌 떨며 한국에서는 지하철 쓰레기통을 없애야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미군의 힘이 적어서! 그래서 우리나라도 힘을 보태주어야만 그래야만 하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는 속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비단 '테러리스트'로 불리 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 민중 전체의 분노, 원망, 저항적인 힘의 합이다. 미군들이 미쳐가고 눈빛이 바뀌어가면서 눈앞에 꿈쩍거리는 것만 봐도 쏘아버리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할 때 이라크 민중의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미국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증오의 감정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 대상은 바로 한국이다! 미국의 기만적 침략을 뒷받침해주는 한국의 무력하고 비겁한 파병 원조는 충분히 그들의 분노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하든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테러 표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국민의 의사를 저버리고 한줌 밖에 안 되는 국회의원것들이 결정내버린 파병결정에 의해 우리는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내몰려져 버렸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우리의 힘과 의지로 요구할 것이다. 노무현을 포함해 부시와 블레어를 전쟁범죄자로 전범 민중재판에 세우기 위해 우리 모두가 기소인이 되어 민중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PSSP
전쟁범죄의 연장, 파병연장안 국회통과 반대한다. 1. 자이툰부대 이라크 파병을 1년 더 연장하여 2005년 12월 31일까지 주둔하게 하는 파병연장안이 12월 8일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이런 수순이라면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예상된다. 우리는 이러한 파병연장을 엄중히 비판하는 바이며, 전쟁범죄의 연장에 다름아니라고 규탄하는 바이다. 2.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은 국보법 폐지를 비롯한 소위 4대 개혁입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파병연장에 대해서는 한통속이 되어 밀어붙이고 있다. 제대로된 토론이나 공청회, 파병에 대한 평가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를 깜짝 방문하여 무슨 고뇌에 찬 결단인 양 파병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개혁이나 수구진영이나 '학살파병', '전쟁범죄'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소리 높여 외치듯이 파병은 이라크 민중 학살의 공범이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사활적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패권전략에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3. 학살과 점령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이라크 전범 민중법정의 증언을 위해 방한한 이라크인 살람과 하이셈은 이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라크 민중들이 10만에서 20만명까지 학살당했으며 이라크 전역이 피로 물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 민중들은 점령군을 반대하고 저항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파병연장은 이라크 민중의 염원을 배반하고 미국 중심의 침략군을 도와주는 역할을 더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4. 심지어 파병한 나라들도 속속 철군하거나 철군을 결정하고 있다. 한국군이 쿠르드 지역에 있어서 비교적 안전하다고 정부는 얘기하지만 가까운 모술은 이미 전쟁터가 되어 있으며 그 갈등이 언제 번질지 모를 일이다. 내년 1월로 예정되 이라크 총선이 그 뇌관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인들에게 총을 쏘거나 자이툰부대가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얘기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 뻔히 예견되는데 왜 파병을 연장하려 한단 말인가. 5. 이라크 민중들의 삶과 권리를 위해서, 정부가 말하는 이라크 재건과 평화를 위해서도 미군을 비롯한 모든 점령군은 철수해야 한다. 전쟁범죄자,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국회는 당연히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 파병연장은 더 깊은 수렁, 더 큰 재앙의 지름길을 뿐이다.
12월 11일, 전범민중재판에서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심판하자! 뻔한 수순, 파병연장동의안 12월 7일 상임위에 상정되었던 파병연장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정기국회 만료일은 12월 9일. 내일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파병규모 3위에 빛나는 한국군의 병력규모는 3600여명, 이들은 올 12월 31일부로 법적 주둔시한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파병 때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소리 소문 없이 연장동의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그간 정치권과 언론은 온통 소위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여야다툼으로 도배가 되었고, 연장동의안은 주요 민생현안과 더불어 일말의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자이툰 부대 파병 당시, 추가파병은 '신중하게, 충분한 고려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영국 방문 시, '파병연장은 통과될 것'이라는 BBC와의 인터뷰 발언을 통해서도 공수표임이 확인되었다. 결국, 3600여명의 젊은 목숨들은 여전히 사지에 머무르게 될 것인가? 이미 뻔한 수순이었다. 작년 3월 20일,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바로 그 다음날 정부는 임시국무회의서 한국군 파병동의안을 의결하였다. 당시 정부는 이라크 평화재건 사업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파병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려 하였으나, 서희 · 제마 부대 파병 이후 전투병 파병은 뻔하게 예상되던 바였다. 아니나 다를까 2003년 5월 1일,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지전 양상 확대라는 사실상의 점령 실패가 확인되면서 미국의 추가파병 요청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지역 담당 독립부대'인 전투부대 자이툰이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한다. 이라크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아르빌의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 3중 보호막을 쳐 놓고, 쿠르드 민병대의 보호를 받으며 태권도 보급, 의료봉사, 차량 수리, 문맹퇴치라는(!) 평화재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이툰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대선 직후, '팔루자 대 공습' 이나 모술 등지에서 미 · 영 연합군의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후비대 역할로서 전쟁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더군다나, 애초 자이툰 부대와 관련된 수송임무 약속을 파기한 미군 덕에 10월 11일, 불법 파병된 공군 제 58 항공 수송단 다이만 부대의 활동까지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쿠웨이트 알리 알-살렘 미군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아르빌을 왕래하는 다이만 부대는 "필요하면 다국적군의 수송작전에도 투입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채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이라크 주둔 미군의 병력과 장비 수송 지원임무에 투입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총선 전략, 잠재된 혼란 제 2의 베트남전으로 불리며 끝 갈데 모르는 이 장기전에서 여러 나라들이 속속들이 파병을 철회하거나, 병력을 감축시키고 있다. 하지만 내년 1월 30일 이라크 총선을 앞두고 저항세력 일대 소탕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신규병력 1500명을 추가파병하고, 주둔기간을 연장하여 전후 최대 15만 명을 이라크에 주둔시켜 총선을 대비한 치안확보에 힘쓸 계획이다. 수만의 이라크 민중들이 다치거나 죽었고, 이라크 전 이후로 11월 현재, 미군 사망자는 1천 251명에 달한다. 미국 내에서는 모병을 위해 26억 달러를 뿌려가며 고등학교 앞에서 진을 쳤으나, 지원 미달사태가 빚어졌다. 미군의 언론통제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대선 직후 이어진 팔루자 공격 3주 동안 이라크 인 4천여 명 이상이 확실히(!) 죽었다고 이라크 증인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더불어 이라크를 시아 · 수니 · 쿠르드를 구분하여 갈등을 조장하는 미국의 3분할 정책도 이 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전쟁 이전 "친구들 사이에서도 시아인지 수니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고 … 결혼도 한다. 전쟁 이후 부각되었다. 미국의 의도적 분열정책이며 효과적인 이라크 통제 · 지배 전략이다"라고 종교/민족 갈등을 설명하는 이 증인들의 말은 제 2의 팔루자라 불리며 지난 11월 말부터 대규모 공습에 들어간 이라크 북부지역 모술의 상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미국은 쿠르드족으로 구성된 이라크 방위군 4개 대대를 모술로 이동시켜 저항세력의 주축으로 파악되는 수니파와의 종족갈등을 부추겼으며, 저항세력은 모술에 위치한 자체군대 약 7만 5천명의 페슈메르가('결사대')와 민병대 포함 13만 명으로 추산되는 병력을 가진 쿠르드계 정당인 쿠르드애국동맹(PUK) 본부 건물을 습격하였다. 더불어 대규모의 시설과 비용, 시간을 들여 훈련시킨 경찰병력 4000여명은 저항세력이 모술을 점령한 48시간만에 3200여명이 줄행랑을 쳤다. 수니 · 시아 · 기독교 · 공산당 · 이라크 투르크멘 전선 등의 다양한 단체 미군의 팔루자 공격 시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수니파는 점령군 하에서의 총선을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시아파(이라크인 60%)는 총선참여를 거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군점령을 원하지 않고 있다. 또한 총선 준비마저 엉망이어서 일반 민중들은 후보, 정당, 선거일정 등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무자헤딘의 공격으로 선거당일 투표소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은 미국과 점령군이 밀어붙이는 총선이 그 이후에도 상당한 여파를 남기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음은 아르빌이다. 하지만, 이 전쟁과 점령으로 인한 혼란은 계속해서 정당화의 구실을 만들고 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졌을 것이라는 의혹은 의혹일 뿐이었고, 또 다른 명분이었던 사담 후세인은 이미 축출되었지만 "이라크 전의 타당성 여부를 논란으로 삼기보다는 향후 이라크의 사회적 안정, 자유와 민주주의 구축 등을 위한 효과적 해법에 치중해야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지원이라는 명분에서 민주주의와 사회 안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명분이든지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된다. 종전 선언 이후, 이라크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치달았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안정과 민주주의 구축이란 저항세력 소탕을 위한 계속적인 전쟁, 친미정권의 수립을 위한 총선에 다름 아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할 수 있는 효과적 해법이란 그것을 위한 '전쟁의 지속', 즉 파병군을 계속 유지하는 것과 위기상황에서 한국군이 참전하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북부 아르빌은 쿠르드족의 집단 거주지역으로서 인근 모술 지역의 참사에 집적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모술 지역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서장이 저항세력의 공격 직후, 아르빌로 도망쳤다가 미군에 의해서 잡힌 것만 보아도 두 도시간의 접근성은 한 눈에 드러나며 이는 저항세력의 이동경로를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미 아르빌은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주변 열강에 의해 억압받던 쿠르드족은 이라크를 연방으로 재구성하여 중앙정부로부터 광범위한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요구로 하고 있으나, 미국은 시아파 지도자 알-시스타니의 요구로 총선 이후 제정될 헌법에 대한 쿠르드족의 거부권을 박탈시켰다. 더불어 과거 정권에 의한 아랍화 정책(특히 아랍인 이주정책)으로 쿠르드 자치지역 안에서의 갈등양상 까지 예상되는 바이다.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안전한 지역"이라면 위험천만한 반어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까지 받아 안으려 하는가! 파병 연장안을 "독자적 결정"이라며 되려 자랑스러운 어투로 이야기하는 대통령에게 인간적 고뇌 운운하는 것은 엄청난 사상자와 앞으로 일어날 참사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반전평화운동, 파병연장동의안 저지투쟁에 나서자! 얼마 전 방한한 미국의 반전 활동가는 열화우라늄탄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참전 군인들의 조사, 통계 리포트를 발표했고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고엽제 후유증은 참전 군인들의 비극을 대변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이 전쟁의 피해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이라크 민중들은 물론이요, 전쟁 범죄국 정권의 강요된 선택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국민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이 비참함을 중단시켜내기 위해 남한 민중들은 전 세계 민중들과 함께 전쟁종식과 파병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난 8월, 자이툰 부대 본진 파병으로 반전운동은 한 번의 고비를 맞이했다. 그렇지만 반전투쟁이 끝나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다. 비록 대규모 거리 집회는 잦아들었지만 이라크 철군, 파병반대 단식에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의 평화유랑단 활동, '풀뿌리 운동'을 표방한 '부시 · 블레어 · 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까지 민중들 삶의 곳곳에서 '철군'과 '전쟁종식' 요구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파병군을 철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연장동의안을 통과시키려하고 있다. 민중의 삶 곳곳에서 보이는 '전쟁반대', '파병군 철군'의 요구는 더 크고, 강한 목소리와 투쟁으로 모아져야한다. 수많은 민중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 상정될 파병연장 동의안을 막아내기 위해 싸우자. 이라크 민중을 고통에 몰아넣고 남한 민중을 전범으로 만들어놓고도 뻔뻔스럽게 '한-미 동맹'과 '평화재건'을 입에 담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자. 민중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이 한 짓을 언제까지나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닐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파병연장 동의안을 막아내는 것, 노무현을 전쟁범죄자로 심판하는 것, 바로 지금 우리가 전쟁을 끝장내고, 파병군을 철군시키기 위해 해야할 절박한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