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화물연대 총파업 평가와 과제 6월 29일 오전 11시부터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총파업 찬반투표를 끝으로 화물연대의 전국 총파업이 마무리되었다. 주체적 조건, 대외적 조건 모두 최악의 상태에서 진행된 이번 총파업이 이룬 결과는 9.9%의 운임인상과 민주통합당의 화물연대 요구안에 대한 당론 채택뿐이다. 정부는 파업 이후 그 흔한 담화문 한 장 내놓지 않았다.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가 9.9% 인상에 합의했지만 2008년의 예를 보면 이것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이번 투쟁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성과는 성과대로 한계는 한계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이번 파업을 통해 드러난 화물연대의 객관적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혁신해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한다. [%=사진1%] 2012년 6.25 총파업의 배경과 결과 정부는 화물연대가 요구한 제도 개선안에 대해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표준운임제의 경우 화물연대가 요구한 직접 강제(벌금 또는 징역)는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표준운임 준수에 대해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간접규제 방안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004년 1월 이전 등록 차량에 대해 허용했던 개별허가(지입차주에 대한 영업용 번호판 허용)를, 2004년 1월 이후 등록 차량에 대해서도 허용하라는 요구 역시 거부했다. 화물노동자 간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실질 운임을 하락시키는 과적근절 방안 역시 형식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에 그쳤다. 영업용 화물차에 대한 면세유 지급 요구, 노조법 개정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 등에 대해서 역시 아예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이명박 정부의 반노조 정책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 중에서도 화물연대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유별나다. 화물연대가 이명박 정부의 트라우마인 2008년 촛불시위 와중에 총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총파업은 유가 폭등으로 적자운행에 들어선 대부분의 화물노동자들이 참여해 주요 항만만이 아니라 주요 공단과 대기업 물류 센터까지 마비상태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촛불시위에 전전긍긍하던 이명박 정부는 파업 5일차에 사실상 화물연대에 백기를 들었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화물연대 죽이기에 나섰고, 화물연대는 상당한 조직적 피해를 입었다. 이번 총파업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강경 대응을 주문했고, 주무 부서였던 국토해양부는 파업 3일차부터 시작된 교섭에서 예전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에 따라 대정부 교섭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화물연대는 운임 결정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통합물류협회 내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와 이틀 간 교섭했지만, 이들은 한 자릿수 이내 인상이라는 방침을 고집했다. 정부가 파업 직후 가진 이들 업체와의 간담회에서 한 자릿수 인상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해주었기 때문이다. 화주단체연합(화련) 역시 6% 내외의 인상을 고집했다. 화물연대는 2003년 5월 총파업부터 전국단위 중앙교섭을 추진해 왔다. 화주나 운송업체에서 고정적으로 물량을 받는 노동자보다 여러 알선업체를 통해 건당 물량을 받는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시장 전체 운임을 변화시켜야만 화물노동자들이 실질적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5월 총파업에서는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와 벌크시멘트트레일러협회(BCT협회)와 교섭을 진행했고, 2008년 6월에는 CTCA를 포함해서 지역협회 교섭, 지역운송사들과의 지역 집단교섭, 대기업 물류자회사와의 특별교섭 등을 진행했었다. 물론 이러한 교섭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다.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물류 대란이 오고,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운송사들을 교섭 장으로 압박할 때, 일회성 교섭이 이뤄졌다. 다시 말해 파업의 강도만큼 여러 형태의 교섭이 열린다. 이번 파업에서는 2008년 6월과 같은 다양한 집단교섭은 열리지 못했다. 2003년 5월 총파업 이후 총파업 시기마다 이뤄지던 CTCA와의 교섭이 전부였다. 한편, 예전과 같이 이번에도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선 핵심 이유는 유가 폭등이었다. 2003년 5월 총파업이나 2008년 6월 총파업 당시도 유가가 전년대비 20% 넘게 폭등했었다. 다단계 하청 구조의 특성 상 비용이 증가해도 운임이 바로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유가 폭등은 화물노동자들을 곧바로 생존권 위기로 내몬다. 2011년 초부터 계속 오르기 시작한 경유가는 2012년 초 1,700원대를 돌파해 5월 초 1,80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반면 과적 경쟁과 재벌 대기업들의 운임 후려치기로 2011년부터 운임은 계속 하락했다. 5월 초에는 경유가 20~40원만 더 올라도 바로 2008년 6월과 비슷하게 적자운행이 시작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화물연대가 6말 파업을 선언한 5월 중순부터 경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파업을 며칠 앞둔 6월 중순부터 하락세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화물노동자들의 분노가 정점에 있을 때 파업에 돌입한 것이 아니라 기름 값 문제로 인한 대중적 분노가 상당히 사그라지던 시점에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한 셈이다. 화물연대는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유류세 폐지 또는 면세유 지급 요구를 전면에 부각시켰지만, 총파업 돌입 시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그 절박함이 다소 줄어들었다. 또한 유류세 문제는 서민들과 운송업계 모두가 체감하는 문제였다는 점에서 화물연대 파업이 업종을 넘어 크게 지지받을 수 있는 쟁점이었지만 아쉽게도 정세적 조건이 투쟁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쉬운 결과, 하지만 다음 투쟁을 위한 디딤돌은 놓았다 이번 총파업은 투쟁 양상과 결과만 놓고 보면 2006년 12월 총파업과 비슷했다. 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5일 간 파업을 진행한 화물연대는 국회 건교위로부터 다음 해 2월 화물연대가 제출한 화물운송사업자법 개정안을 논의하겠다는 중재안만을 받아낸 채 파업을 종료했었다. 이번 파업에서도 화물연대는 정부 합의안 없이 민주통합당이 화물연대 요구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도 개선과 관련된 이번 파업의 결과는 2008년 6월 노정합의에 비해 강제성은 떨어지지만, 구체성과 사회적 지지도에서는 이전보다 진일보했다. 이번 파업 기간에는 파업 때마다 정부와 자본가단체에 의해 진행되는 악선전 대신, 대부분의 언론에서 화물운송시장의 다단계 하청구조 문제, 화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 강제성 있는 표준운임제의 필요성 등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새누리당마저 정부의 약속 이행과 표준운임제 도입을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은 당론으로 ‘권고가 아닌 화물차주에게 실효성 있는 표준운임제’를 채택했다. 이번 총파업을 통해 화물연대는 당사자만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화물운송시장 제도개선을 의제화한 것이다. 통상 제도개선, 특히나 자본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제도개선은 당사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우 큰 사회적 압력이 동시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화물연대가 표준운임제를 제안한지 10년 만에 이제 표준운임제는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화물연대의 표준운임제 쟁취 투쟁은 더디지만 의미 있는 발전을 해왔다. 2003년 5월 표준운임제 첫 제시, 2005년 정부와 여당이 처음으로 표준운임제를 공식화, 2007년 11월 시범실시 합의, 2008년 6월 표준운임제 법제화 합의, 2010년 10월 표준운임제 시범 실시를 거쳐, 2012년 6월 ‘직접 강제’ 내용을 포함한 표준운임제의 첫 당론(민주통합당) 채택과 사회적 의제화까지 이뤄냈다. 이제 화물연대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2년 8월 임시국회, 9월 정기국회, 2013년 2~5월 임시 국회 등에서 얼마나 빨리 법제화를 이뤄낼 것이냐는 문제만 남았다. 당사자 문제를 넘어선 사회의제로서 표준운임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 압력으로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6.25 총파업은 외부적 성과 이상으로 내부 주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파업이었다. 화물연대는 2008년 6월 총파업 이후 곧바로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며 투쟁의 성과를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그리고 2009년 열사 투쟁 이후 벌어진 대대적인 공안탄압, 2010년 창원, 대산 등에서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에 의해 자행된 화물연대에 대한 표적 탄압, 2010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1년 반 넘게 계속된 조직적 무기력 등은 내부적으로 매우 큰 조직적 위기를 불러왔었다. 조직을 떠나는 간부들이 늘었고, 조합원들의 자신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연대는 2011년 9월 서울역 상경집회, 2012년 2월 총파업 찬반투표, 5월 대규모 부산역 집회를 성사시키며 조직을 재정비했고, 어려운 여건에서 6.25 총파업을 성사시켰다. 비록 성과는 부족하지만 1년 반 넘게 계속된 무기력, 2008년 6월 총파업 이후 3년 넘게 계속된 탄압을 뚫고 다시 화물연대가 제대로 설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근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화물연대 총파업은 노동운동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파업,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총파업과는 거리가 멀다. 한 번 파업이 진행되면 노·정 간의 전면전이 이뤄지고, 정부와 자본은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 조직인 화물연대는 단체행동에 관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화물연대는 조직과 파업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명의 간부들이 파업 전후로 구속, 수배, 계약해지, 손배소, 정부 보조금 중단 등의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스스로를 ‘기름쟁이’라고 부르는 화물노동자들의 노조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투쟁들이다. 화물연대는 노무현 정부 시기 2003년 5월, 8월, 2006년 12월 세 차례 전면 총파업을 벌였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2008년 6월, 2009년 6월, 그리고 2012년 6월 세 차례의 총파업을 치렀다. 2002년 10월에 조직이 건설되었으니, 20개월에 한 번씩 전국을 뒤흔드는 총파업을 한 셈이다. 총파업 강도와 횟수로만 보면 화물연대는 21세기 한국 노동조합 조직 중 으뜸이라 해도 과한 평가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화물노동자들의 자랑스러운 조직이자,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위력적인 파업을 수차례 벌였던 화물연대는 분명 조직 발전의 기로에 서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번 총파업에서 볼 수 있었던 화물연대의 조직력, 지도 집행력, 주요 요구 등은 화물연대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점점 더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역별로 파업 돌입 편차가 컸고, 요구안과 목표, 투쟁의 상에 대한 조직 내 합의수준 역시 예전에 비해 높지 않았다. 주요 항만에서 치열한 파업 투쟁이 펼쳐졌지만 간부들을 엄호할 조합원의 숫자는 예전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화물연대는 체계적 준비와 집행보다는 간부들의 헌신성과 ‘한다면 한다’는 기풍으로 지금까지 여러 투쟁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조직이 나이를 먹어갈 수록 ‘열정’을 보완할 ‘체계’가 없으면 힘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번 총파업은 조직 출범 10년차 화물연대가 예전과 같은 방식의 조직운영과 투쟁만으로 이전의 투쟁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반대로 수차례 화물연대 파업을 겪어 온 정부와 자본은 예전보다 훨씬 더 대응력이 높아졌고, 특히 글로비스, 대한통운 등의 핵심 화물운송업체들은 화물연대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매우 공격적인 대체 운송 작전을 폈다. 또한 경량화 된 화물이 증가함에 따라 화물연대 조직력이 취약한 윙카, 탑차 등이 증가해 파업 효과가 감소했다. 항만 역시 야적장이 넓어지고, 자동화 된 시스템이 증가함에 따라 운송 거부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증가했다. 화물연대의 조직력, 파업능력에 비해 자본의 대응력이 훨씬 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화물연대의 파업은 전통적으로 3천의 열성 조합원이 나머지 9천 조합원을 운송거부에 나서게 하고, 36만 미조직 화물노동자들이 함부로 대체운송에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화물연대 파업에 있어 조직력 보다 파업 돌입 시점의 정세적 조건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2008년 6월 총파업은 대표적으로 운송시장 여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자 자연스레 38만 화물노동자의 운송거부로 이어진 사례다. 하지만 이러하더라도 화물연대 자체의 조직력이 여전히 핵심일 수밖에 없다. 무작정 기름 값이 오르고, 운송료가 낮아지는 날을 기다려 투쟁할 수는 없고, 특히 표준운임제, 표준위수탁계약서, 과적근절, 노동기본권과 같은 제도 개선 과제들은 지속적 투쟁 없이는 쟁취할 수 없다. 2003년 5월 노정합의가 8월 총파업 이후 뒤집히고, 2007년 11월 노정합의가 화물-철도 총파업 불발 이후 뒤집혔으며, 2008년 6월 합의가 2009년 열사 투쟁 이후 무력화된 경험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화물연대의 조직된 힘이 약화될 때마다 정부과 자본은 총파업 시기의 약속을 내팽개쳤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6.25 총파업의 직접적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야 한다. 조직 건설 10년차에 진행된 이번 파업을 통해 화물연대가 향후 10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이번 파업 자체에 대한 시비만을 가리려 한다면 화물연대는 보다 중요한 것들을 놓친 채 또 다시 비슷한 투쟁과 평가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화물연대, 다른 10년을 위한 과제: 지도 집행력의 전면적 혁신과 조직화 사업을 위한 전조직적 집중 6.25 총파업 이후 화물연대가 무엇보다 주력해야 할 것은 조직 체계와 지도 집행력의 쇄신이다. 현재 화물연대는 10년 차 조직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본부, 지역지부, 지회, 분회의 집행력, 논의력이 조직 초기에 비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간부들의 헌신으로 파업을 5일 동안 이끌 수 있었지만 체계적인 간부 교육·훈련, 간부 재생산, 조합원에 대한 교육, 관리 없이는 이런 힘이 유지되기 힘들다. 수그러들기 마련인 조직 초기의 열정과 헌신을 보완하는 것은 바로 체계적인 조직 운영이다. 화물연대가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체계적 운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많은 투쟁 속에서 오랜 생활을 한 간부들은 하나같이 생활고와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다. 젊은 간부들, 새로운 간부들이 충원되고, 이를 통해 조직의 활력을 높여 새로운 혁신을 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조직화다. 전통적으로 파업의 핵심으로 삼았던 컨테이너 거점들만으로 화물연대가 예전과 같은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여러 자동화 장비를 갖춘 부산신항이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갔고, 다른 항만과 경인ICD(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가 점차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또한 이번 파업에서도 드러났듯이 점차 경량화 된 화물들이 늘어나고 있어 윙카, 탑차 등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전자, 식료품 등의 품목들이 항만이 아닌 공항을 점점 더 많이 이용하게 됨에 따라 전통적 항만 봉쇄만으로는 교섭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화물연대 조합원이 거의 없는 글로비스를 선두로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비중이 시장에서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들의 일상적 화물연대 탄압이 거세지고 있고, 파업 시기에도 이들에 의한 파업 파괴 공작이 늘어나고 있다. 주요 공단과 공항에서 운행하는 윙카, 탑차 조직화나 택배 간선, 유통업체 간선 화물차 조직화 등은 사실 어제 오늘의 과제는 아니며, 매년 이에 대한 계획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의미있게 사업이 집행된 적은 없다. 화물연대의 분명한 계획과 집행에 대한 책임 속에 공공운수노조 차원의 전략조직화, 본부와 지부의 자원 투자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조직화 사업은 중장기적 목표와 분명한 책임부위가 있어야 실천으로 이어진다. 화물연대에게 조직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2012년 6월 25일 총파업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끝났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조직 침체를 추스르고 제도 개선 투쟁에서 좀 더 확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징검다리를 확보했다. 화물연대가 제출한 화물운송사업자법 개정안을 가지고 파업을 벌였던 2006년 12월에도 현재와 비슷한 결과로 총파업이 끝났지만 여러 투쟁을 통해 2008년 6월 표준운임제 법제화 약속까지 이끌어 냈었다. 이번 파업 역시 파업 자체의 결과보다도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화물연대가 현재의 상태를 확실하게 쇄신하지 못한다면 매번 비슷한 요구를 들고 더욱 약화된 상태로 파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총파업은 화물연대 전면 혁신을 위한 시작이어야 한다.
○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6월 25일 화물연대 총파업을 앞두고 이번 파업의 원인인 화물노동자(차주)의 생존위기가 화주와 운송업체들의 부당한 과잉착취의 산물임을 고발. 따라서 화물운송업의 부당한 분배구조를 바로잡고 화물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업체는 운임을 인상하고 정부는 표준운임제 등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함.
○ 6말7초 총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기간 정부에 지속적으로 면세유 지급을 요구해 왔음. 전근대적 지입제가 일반화된 화물운송시장에서 유류세는 전적으로 실제 화물운송을 책임지는 화물노동자(지입차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고 있기 때문. 노동자운동연구소가 펴낸 보고서는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 ▷ `12년 1분기 경유가격은 `10년 1분기에 비해 2년 만에 26% 상승. ▷ 컨테이너 화물운송업 7개 상장사의 `12년 1분기 영업이익은 `10년 1분기에 비해 57% 증가. 반면, 화물노동자(지입차주) 순수입은 `12년 1분기 `10년 1분기에 비해 11% 감소. ▷ 화물노동자 순수입이 감소한 이유는 기름 값 폭등에도 운임이 오히려 2.5% 감소했기 때문. 반대로 대기업 화물운송업체의 이익이 급등한 것은 화물운송업체가 화주로부터 받는 운임은 올랐음에도 지입차주에 지불하는 운임은 감소했기 때문. ○ 보고서는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 유류세 역시 일방적으로 화물노동자에게만 부과되어 화물노동자들의 생활고를 더욱 부추기고 있으며, 화물노동자 전체가 화물운송업체들이 지불하는 법인세보다도 6배가 많은 액수라고 분석. ▷ 화물노동자의 기름 관련 세금은 순수입 대비 58%에 달함. ▷ 화물노동자 전체가 지불하는 유류세는 연 2조4천억 원. 유가보조금을 공제해도 연 9천억 원에 달함. 반면 운송업체가 지불하는 법인세는 1천5백억원 규모. ○ 보고서는 결론으로 현재 운임 구조를 실제 화물운송을 하고 있는 화물노동자의 최소 수입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제도 개선 이전까지 화물노동자에게 면세유를 지급할 것을 주장. 그리고 면세유 지급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화물운송업체와 정유사에 특별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요구. ▷ 정부가 `08년 약속한 표준운임제도(지입차주 최저수입보장제도)를 즉각 실시. ▷ 9천억 원의 세수 감소는 정유사 실효세율을 40%, 운송업체 실효세율을 30%로 조정해 해결 가능.
총선 이후 상황의 변화 민주노총은 2012년 정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10대 요구 쟁취를 위한 정치총파업을 공식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경로로 총선을 설정하였다. 즉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거 지원활동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야권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점하게 되면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행한 역할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제반의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강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구상에서 총파업의 위상은 의회 내 입법을 강제하는 압박성 정치파업이었다. 그런데 소위 ‘1-10-100’(한번에 10개 법안을 100일안에 입법)이라고 불렸던 이 계획은 여러 가지 무리수와 변수를 낳았다. 첫째,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이다. 이는 작년 말에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때부터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민주노총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은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를 건설하여 체계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즉 3자 통합이 국민참여당이라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므로 통합된 당을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고 민주노총은 당연히 이 당에 대한 지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선언운동본부에는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민주노총 내 대부분의 좌파세력들이 참여하였고 이후에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둘째, 민주노총 집행부 스스로의 무리수이다. 3자 통합당인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고 외부에서도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조직하지 않았다. 총선방침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비례대표 투표방침에 대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성원부족으로 논의하지 못하게 되자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표결로 통합진보당 투표방침을 관철시켰다. 그것도 조합원 의사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전화여론조사를 하고 그에 응답한 2만 4천여 명 가운데 1만 9천여 명이 통합진보당 지지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례투표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민주노총 내의 분열이 없도록 단결을 실현하는 것이 최대의 정치방침이라던 민주노총 위원장의 공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셋째, 야권연대 중심의 총선운동과 총선패배라는 결과이다. 애초 야권연대는 반MB를 최대의 전략으로 설정한 바, 그 외의 담론은 묻혀버렸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박근혜는 MB와 거리를 두면서 반MB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고 민주당은 선거전략상으로도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으며 이에 편승한 통합진보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 이전에는 야권연대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비전보다 반MB, 민간인사찰 등의 이슈만 앞세운 야권연대는 별다른 쟁점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선거운동에 매달리며 중앙과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운동을 한 것은 민주노총 조합원들로부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과반을 차지하리라 여겼던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권연대에 올인했던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총 내 세력들은 충격에 빠졌다. 넷째, 총선패배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내부 선거부정과 그로 인한 진보진영에 대한 총체적 비난이다. 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공공연히 행해지던 일들이 국민참여당계의 폭로와 미디어의 확대재생산으로 일파만파 퍼졌고, 그에 따른 통합진보당 내의 내분과 폭력사태는 한 달이 넘도록 한국 사회의 모든 쟁점을 압도하였으며 진보진영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을 고조시켰다. 그 와중에 이 문제는 민주노총 내부로도 이어져 각 세력 간에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조합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가중시켰다. 결국 총선을 전후한 이러한 상황은 민주노총 내의 단결을 약화시켰고 투쟁동력이라든지 조합원의 신뢰마저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변화된 상황은 원래 계획을 계속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권이 총선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승리를 전제로 한 1-10-100 계획은 현실성과 추진력을 잃었기 때문에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10개 법안 쟁취 요구를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재개정’이라는 3대 요구로 변경하였다. 소위 ‘묻지마 야권연대’라는 잘못된 전략, 이를 조직 내에서 관철하기 위한 무리한 과정, 야권연대 승리 및 정치적 압박용을 전제로 한 총파업의 상 등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전략적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 하지만 민주노총 집행부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더 이상 나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야권에 기댄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요구를 내걸고 단결을 확대하는 전 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펴보자. 국내 전체 가계부채는 1000조에 달하고, 네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매월 적자 상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시급 5757원(월급 약 120만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는 468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저임금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매월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가 가져가는 소득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도 59.2%로 낮아졌고 이는 OECD 평균 70%에 턱없이 모자란다. 전체 노동자 1천764만7천명의 25.7%(454만1천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소규모 사업장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쉬거나 365일 휴무 없이 운영되는 곳이 태반이다.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업체가 63만4천개(28.3%)에 이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12년 3월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47.8%(833만 명)이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49.7%에 그치고 있다. 총파업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악한 생존권 말살 상황에 노동자들이 놓여 있다. 화물연대의 경우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버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기름값의 폭등도 원인이지만 정부가 스스로 약속한 표준운임제도 실시하지 않는 등 노동배제노동탄압민중생존 외면 정책이 주된 원인이다. 건설노조에서 총파업 투쟁에 나선 이유도 고질적인 임금체불로 인해 건설일용노동자, 건설기계노동자 등의 체불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4대강 공사 등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관급 공사들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은 2011년에 1660억 원에 달한다. 처음으로 교육감을 대상으로 임단협 투쟁에 나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기본급이 똑같은 현실”에 15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놓여있다는 기막힌 상황을 폭로하고 있다. 최근 구로디지털단지 전략조직화사업단인 ‘노동자의 미래’에서는 구로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노동 이제그만’ 집중 캠페인을 벌였는데, 유인물을 뿌리기가 무섭게 받아가는가 하면 노동자들에게서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즉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태와 노동상태가 노동자들이 참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복수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탄압은 자본측이 공공연히 휘두르는 무기가 되었다. 각 지역의 여러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대학청소비정규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측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공작을 하여 어용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탄압하여 노조에서 탈퇴시켜 어용노조에 가입시킨다. 이렇게 어용노조를 다수노조로 만든 후 민주노조의 교섭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노조를 고사시키는 경우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단결하고 연대하여 이러한 탄압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연말 대선을 고려했을 때에도 그러하다. 총선에서 실패한 무조건적 야권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의 정확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 요구로써 노동자 대중을 조직해나가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거의 실종되다시피 한 노동자의 집단적 목소리와 힘을 키우는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총파업, 어떻게? 민주노총은 현재 8월 말 정치총파업을 상정하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 재개정’을 주요 요구로 하고 있다. 8월 총파업의 의의로 민주노총은 노동중심 진보의제와 담론의 주도적 확산, 하반기 이후 주요 의제에 대한 공세적 전선형성을 위한 전환점 마련, 민주노총 발전전망과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추동력 확보의 계기를 들고 있고, 입법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권-양노총 입법 논의기구로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야당-양노총 공동대책위원회(가)’(노동법공대위)를 제안하고 있다. 이 틀에서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 노조법 등에 관한 연속 국회토론회를 열어 이슈화를 꾀하고, 한축으로는 비정규직 철폐 1천만 서명운동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전선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총파업의 목표로는 주요법안 관철, 사내하도급법 등 개악법안 저지, 민주노총의 정치투쟁력 복원과 사회정치적 위상제고 등이 제시되고 있고 파업의 상은 독자적인 정치파업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파업에 이어 6월 28일 경고파업 집회, 7월 금속노조 시기집중파업으로 8월 총파업까지 투쟁의 기세와 동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은 이전의 1-10-100에서 수정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세력에 대한 압박과 협조를 바탕에 깔고 있고 입법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야권은 총선패배로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대선을 앞둔 정치일정상 하반기에는 급격하게 대선 중심으로 국회가 굴러갈 수밖에 없으므로 입법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론 국회에서 입법이 안되면 대선 공약화를 목표로 하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금 대선에서 야권연대에 베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민주통합당 쪽에서도 법안 발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대선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통합진보당의 내홍으로 민주노총이 홍역을 치른 상황에서 대선에서 야권연대 문제는 또다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욱이 총선과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정치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싸늘할 대로 싸늘해진 상황이기에 야권연대 혹은 야권을 매개로 한 전술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야권을 고리로 한 입법 압박 중심의 파업이 아니라 다른 상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처한 내외부의 조건을 고려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과 연대, 민주노조운동의 총력투쟁전선 구축,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및 노동법개정에 대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 확산 등의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들이 함께 뭉쳐 싸울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과 사기를 고양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전북본부에서 이전에 지역차원의 파업투쟁을 성사시키고 가장 큰 성과로 꼽은 것이 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이 간부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조합원들의 신뢰와 지역 연대투쟁을 복구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파업투쟁 조직화의 문제가 있다. 산별임단투 동력에 기대지 않는 정치파업이므로 이에 대한 조합원 조직화가 핵심인데 이것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8월 28일부터 파업에 돌입해서 29일에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31일에 10만 상경투쟁을 한다는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조합원을 교육하고 조직해야 하는 간부들도 이런 흐름보다는 대규모 집회투쟁을 한 번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파업사업장들의 시기를 맞추고 최대한 31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해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을 넘어서려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재개정이라는 핵심의제에 관해 이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을 묶어 세워서 연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희생자 문제 해결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투쟁이 중심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현대차 사내하청 정규직화 문제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수많은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로 인한 민주노조 탄압, 노조 불인정,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인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쟁들이 현안문제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총파업 조직화 과정에 있어서 주요한 요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총파업의 요구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오를 점점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파업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총파업 요구가 투쟁현안과 결합되어 생생히 선동되고 또 투쟁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연대파업의 필요성을 다른 노동자들에게 선전 선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민주노총이 투쟁전선을 구축하려 노력하고 화물-건설 파업을 비롯한 산하 많은 노조의 투쟁을 헌신적으로 지지 엄호하고 연대를 조직해서 투쟁의 기세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북, 대구, 충북 등 지역본부들에서 지역차원의 총파업총궐기를 조직하기 위해 현장선전전, 간부활동가 교육, 간담회, 지역거점 농성 등을 전개하는 노력들도 널리 알려지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재건과 혁신의 길로 이명박 정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4년의 이명박 정권 임기 동안, 민주노총은 총노동전선 구축보다는 야권연대와 선거정치에 더 힘을 쏟아 왔다. 내용은 오른쪽으로 더 이동하고 투쟁은 약화되었다. 내부의 세력 간 분열도 더 커졌다. 그 와중에 정권과 자본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고 무너진 현장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민주노조운동을 재건하고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안고 있다. 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그러한 결의를 모아내는 과정이자 실천하는 과정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들썩이게 하자. 서로가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서 상승시키도록 하자.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강화가 동반되지 않는 정당정치로의 집중은 이미 실패한 미래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는 비단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반의 도덕적, 운동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통합진보당의 출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이후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폭력을 수반한 첨예한 갈등은 두 개의 커다란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등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대대적인 이념, 색깔공세를 야기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에게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혹은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의 절박함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후자는 논의와 모색의 수준을 여전히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 한편 민주노총 중집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 철회’ 입장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총 주류세력 세력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다수 세력들은 혁신비대위, 즉 비당권파들의 혁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렇다면 우리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이번 사태를 정치이념을 둘러싼 당내 분쟁의 문제로 규정한다. 부정선거와 같은 도덕적 문제는 당권경쟁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주파(즉 당권파)와 진보적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비당권파 세력 간의 당권 경쟁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자주파를 제거하기 위한 유시민, 심상정 류의 공작설로 이어진다. 둘째는 비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비당권파가 당권파를 제어하고 통진당을 혁신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바라본다. 셋째는 통합진보당 사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실패를 상징한다는 시각으로, 그 동안 노동자를 돈 내고 표 찍는 동원대상으로 취급해온 정치적 대리주의, 국회의원 당선에만 목매는 선거주의/의회주의 등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누적된 문제가 무리한 자기 정파의 국회의원 확보 경쟁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판단한다. 첫 번째 당권파의 주장은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당권파는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의 무원칙한 통합에 대한 많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세력이다.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위해 자신의 이념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모호한 내용으로 수정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을 저버렸고, 국참당과의 통합을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국참당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이 원칙 있는 운동집단인양 공작설을 제기하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당권파는 지배세력과 제도정당정치 시스템을 얕잡아 보고 운동의 가치와 원칙을 가볍게 여겨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 입장은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대하여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을 일차 부결시켰다가 이후 통합에 찬성했거나, 통합 이후 현실론을 내세워 통진당을 지지한 세력들(비당권파를 포함해 민주노총의 상층부의 다수 세력)의 태도이다. 비당권파들은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국참당 세력과의 공조를 통해 통진당의 이념과 내용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최근 ‘애국가’ 논란이나 통진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보고서의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 철수 입장 재정립, 재벌해체론 재검토 등의 내용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통진당을 더욱 탈운동화, 자유주의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 번째 입장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장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향후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방향과 경로에 대해서는 그 내부에 상당한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파산 선고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 21의 결성과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통령 후보 출마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자. 일단 민주노동당의 출범 과정은, 한국사회의 구조를 변혁하겠다는 이념과 전략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민주노총의 1996-1997년 총파업 과정에서 제기된 노동자 국회의원의 필요성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을 의회주의 정당으로 규정하고, 민주노동당의 출범을 비판하는 일각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보수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양당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정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초기 당직/공직 겸직 금지를 포함하여 당의 의회주의, 선거중심 정당화를 제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지역과 현장의 투쟁에서 각 지역 당 조직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이 축소된 반면 의회주의적 노선은 강화되어 왔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을 계기로 당의 선거주의, 의회주의 문제,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 갈등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되어 왔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채로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세액공제, 득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당의 인력과 재정이 의정지원에 심하게 편중되고,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을 강화해 왔다. 민주노동당은 소위 ‘좋았던 시절’에 신자유주의에 맞선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을 위한 운동 전략을 방기했던 것이다. 특히 2007년 분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로 인해 선거주의, 의회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고, 양당에 대한 노동현장의 비판적 여론 또한 확대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평가 없이 2012년 총대선에서의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한 민주노총의 ‘진보대통합’ 계획은 양당의 갈등만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반MB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와 지원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진당 출범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통진당 내부의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체가 전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번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와 비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미 국참당과의 통합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향후 당권파-비당권파의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구조, 검찰경찰을 동원한 공안탄압, 조중동을 포함한 지배세력의 색깔공세 속에서 통진당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자신의 이념과 노선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당권파는 비당권파가 통진당을 민주당화시킨다고 비판하지만,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말이 좋아 선거연합이지 온 국민의 지탄거리로 전락한 통진당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민주노동당 활동과정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으로 그들을 지지, 묵인해온 것이 현재의 통진당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썩은 살은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개척해야 한다. 민주노총, 철저한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운동이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에서 벗어나 의회주의로 경도된 데에는 민주노총의 책임이 크다. 민주노동당을 탄생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민주노총이 정치사업을 ‘국회의원 배출’과 ‘정당을 통한 입법사업’에만 국한하면서 조합원들을 돈 내고 표 찍는 수단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학습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노조다운 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대중적 투쟁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약해지다 보니, 진보정당들도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벗어나 원내정당으로 변모해가는 데 있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통합진보당 지지에 반대하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우경화된 집권전략으로 경도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지지, 지원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된 노선에 맞춰 반MB 야권연대를 제1의 총선방침으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야당의 하위파트너로 전락시킨 것이다.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정치방침’과 함께 별도의 안건으로 토론하기로 했던 ‘총선방침’ 건에 대해 토론하지 못했고, 김영훈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에서 위임하지 않은 ‘총선방침’ 건을 중집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 직후 개최된 중집에서 반대 입장을 가진 중집위원의 항의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조합원 ARS 여론조사를 통해 ‘비례대표 집중투표 정당’을 결정하는 것으로 표결을 강행했다. 게다가 당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상당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는 참여하지 않은 채, 통진당을 지지하는 ‘조사에 응하고 싶은 산별과 조합원’의 명단을 받아서, 그것도 약 22만 조합원 중 2만 3천여 명이 응답한 결과만으로 조직의 방침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바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 방침을 결정하여 민주노조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411 총선은 민주노총이 제1의 방침으로 삼았던 야권연대의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제는 실종되었고, 전략지역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참혹한 결과가 나왔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과의 선거구 협상으로 13석을 얻었지만, 곧바로 부정선거 논란과 당내 폭력사태 등으로 전국민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 운동을 평가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의식 수준에 대한 진단과 평가나, 이념적 수준에서든 조직적 수준에서든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현 주소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관계(혹은 민주노총의 헤게모니) 수준에서, 그리고 분당(혹은 분열)의 제약에 빠진 진보정당 운동과 법제도의 제약에 빠진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는 수준에서 외형적인 진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노총은 ①새롭게 제기되는 대중정당 운동의 상에 걸맞도록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대안적 상에도 걸맞도록) 임금, 고용 문제는 기업단위 노조에 맡기고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산별노조운동을 재편하며, ②(통합)진보정당에 대한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집단 당원 가입, 현장당원 활동체계 구축, 100억 조성, 지도체계 참여 등을 진행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①의 경우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노동자 계급 내에 분할과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별노조총연맹 차원에서 노조운동에 가장 중요한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투쟁전략, 노동자의 주체형성 전략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②의 경우에도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저버린 진보정당 운동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전략 없이 조합원을 정당의 자원으로 동원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적극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재건을 위한 구상 없는 조합원 동원 방식은 지금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제2의 정치세력화 방침은 현 시기 정당운동의 목표를 ‘집권’(집권시대 노동운동)으로 상정하고, 당의 집권을 위해 산별노조 운동을 개조하자는 본말이 전도된 구상이다. 현재 진보정당의 우경화는 민주노조 운동의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의 취약함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재건 전략이 필요한 것이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마저 포기한 당 운동에 대한 의존을 더욱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는 노동조합 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운동성을 상실한 사이비 진보정당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당권파에 대한 비난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하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철회가 선언되어야 한다. ‘조건부지지 철회’라는 모호한 기대를 접고, 그동안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당면한 총파업 전선 구축과 민주노총의 전면적 혁신에 착수해야 하며, ‘민주노조 답게’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통해 노동자민중의 희망으로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다양한 모색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철회’ 입장이 보여주듯이 민주노총 집행부와 산별노조연맹 대표자 다수는 통합진보당의 혁신비대위가 중앙위 결정사항을 관철시키고 일정하게 당을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선거에서 구 당권파와 손잡은 강병기 후보가 당선되거나 혹은 당선되지는 않더라도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제명되지 않고 일정한 세력을 과시하는 상황이 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신승철 전 사무총장, 정용건 민주노총 부위원장,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이 노동포럼을 결성하여 민주노총의 재편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구 당권파를 비판하면서 통합진보당 내부의 혁신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통합진보당의 개조와 혁신 가능성에 회의적이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통합진보당의 출범에 반대하여 직간접적으로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선언운동본부)에 결합했던 세력들의 경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과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제안하여 결성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제안자모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 그리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전태일 노동대학)이 노동자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주요 세력이다. ‘제안자모임’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작년 12월부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노동운동 내 중앙파로 알려진 ‘공공현장’ 활동가들과 금속의 ‘현장노동자회’(현노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내부의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일부 활동가들, 진보신당 일부 당원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제안자모임’은 진보신당 내 일부 그룹,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진보교연)’ 등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은 향후 노동자정당 건설과정에서 진보신당이 함께 해야 하지만, 진보신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현장이 중심이 되고 진보신당은 이러한 흐름을 지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노위’는 그 동안 추진해온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 직접 조직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좌파 현장 활동가들의 주체적 당 건설 논의와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결정했다. ‘사노위’는 통진당 우경화 이후 좌파 현장 활동가들이 당 건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당노선과 세력범위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사회주의 정당 노선만이 아니라 반통진당 좌파통합정당 입장의 활동가들까지 참가하는 공동의 토론장이 형성되고 현장 활동가들이 노동자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노위’의 현장 재조직화 사업은 ‘노동전선’의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산별 활동가 정치토론 계획과 결합하여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전선’은 당의 노선과 관련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지역과 산업 별 현장정치토론을 진행하고, 이후 9-10월 활동가대회를 개최하여 변혁적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모임을 결의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전선’은 가능한 많은 세력이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노선을 뒤로 하고 세력을 합치자는 식의 ‘좌파통합정당론’을 경계하며 미래지향적이고, 노선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지난 해 부터 “3자 야합당”(통합진보당) 건설에 반대하면서 민주노총 중심의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조해왔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토론 등을 강화해왔다. 지난 6월 1일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사태와 노동자 정치운동의 진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태일 노동대학 김승호 대표는 발제문을 통해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목표로 변혁적 대중정당’(지향하는 이념은 사회주의를 분명하게! 현 단계 변혁의 과제는 낮은 수준의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으로!), ‘민중투쟁 전선체와 함께 투쟁하는 정당, 사회운동적 정당’, 당 건설 경로로서 ‘진보정치세력들의 통합과 외연확대(이른바 재구성)가 아니라 진보정치운동의 급진화’, 산업별/지역별로 현장으로부터 주체형성을 통한 ‘정치적 투쟁정당’ 건설 등을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위의 주요 세력들의 행보와 더불어 정파를 뛰어넘는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 흐름과 각 세력 간 협력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행 기아자동차노조 전 수석부위원장과 김일섭 대우자동차노조 전 위원장, ‘변혁산별’ 및 금속 비정규투쟁본부 활동가 등 금속노조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변혁정치모임)이 제안되어 5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모임을 개최했다. ‘변혁정치모임’은 무너진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현장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초기 금속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참가를 제안했으나, 다른 산별까지 참가자를 확대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에는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와 같이 민주노총의 범좌파 세력 현장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은 지역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활동가들이 현장실천과 정치세력화 운동을 새롭게 모색하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만큼 현장활동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과 정당건설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어, 이후 모임의 전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원심력이 작동할 우려도 큰 것이 현실이다. 또한 위 노동자정당 건설 세력들과 변혁정치모임에 참여하는 개별 인사들 간에 상호 협력을 위한 집담회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집담회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각 세력들의 공동행보, 즉 공동의 기구 건설 등이 제안되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각 조직의 논의수준, 정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의 경우 통진당 사태 이후의 현실적 대안으로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의 기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나, ‘노동전선’의 경우, 당 건설 관련 내부 조직화 미비와 상층 중심의 조직건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 당 노선에 대한 입장 확인의 필요성 등을 근거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의 경우도 당 건설 경로와 관련하여 ‘변혁정치모임’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당 건설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담회는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틀인 ‘변혁정치모임’을 통한 현장 논의 활성화와 이후 공조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주제를 잡고 공동의 토론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른 한편 진보신당 창준위의 경우 전국위원회를 통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창당 법적 시한인 10월 전 창당을 목표로 하며, 여건이 충분치 않을 경우 형식적인 독자 재창당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관련하여 당 내 일각에서는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9월 말로 시한을 정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그 동안의 진보신당 활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부재한 것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정당 추진 흐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진보신당이 일관된 의지를 갖고 지지, 지원해야 한다는 비판적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어디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번 통진당의 부정선거, 당내 폭력사태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그 동안 진행되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해 조만간 불어닥칠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변혁적인 정치세력 결집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세적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운동의 주요 정파들이 대부분이 통진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당 건설을 추진하는 세력들 간의 역사적인 상호 불신, 당의 성격과 노선, 추진 경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뚜렷한 진척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 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는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의 정치적 대리주의, 의회주의와 선거주의에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답게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현장 활동(학습과 투쟁, 정치적 실천)을 소홀히 하고, 노조를 진보정당운동의 동원부대로 전락시킨 것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민주노총이 투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굳건히 하지 않을 때, 진보정당은 노조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당의 우경적 노선전환과 원내 정당화 경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노동자계급이 이념적, 조직적으로 보수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는 분별 정립하여 정치적, 사회적으로 투쟁력과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노동자정당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하고, ‘계급적 단결을 통해 노동해방, 평등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운동’과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계급동맹의 실현을 위한 전선운동’을 포함하는 운동 전략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중운동의 취약한 토대를 강화시키는 계획 없이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으로부터 출발해야 따라서 현재와 같은 노동운동 주요 정파의 정당 건설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민주노조 혁신/재건을 위한 활동의 상대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상반기부터 진행된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 활동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당 건설에 대한 선언운동본부 내부에 이견이 부각되면서,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전국지역 투쟁전선 구축을 위한 공동활동,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각 정파의 주요 관심사가 모두 당 건설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현재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어느 정파도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현장, 지역 활동가들의 공동실천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건설 논의가 중심이 되면서 구체적인 현장, 지역의 공동실천 논의는 상대화되고 있다.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가 당 건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에 대한 이견으로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공동 논의와 실천조차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통진당 사태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의 진보정당, 노동자정당 운동에 대한 실망과 정치적 냉소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견지하는 노동자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교훈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조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노동자정당 건설 사업은 이미 실패한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지역, 현장의 운동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중심으로 역량을 배치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역량은 그 만큼 취약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건설이 민주노총의 활동을 강화시키지 못했듯이 노동자정당 건설이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강화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 세력들이 현재의 지역과 현장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당 건설로 역량을 집중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의 활동력을 더욱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에서의 지속적인 패배,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혁신의 지체,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 복수노조/타임오프를 필두로 한 제도적 개악과 노조 탄압 공세 속에서 현장은 패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대되어 왔다.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1기 권영길권영목 집행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 이후 2기(이갑용고영주 집행부, 2기 보궐 단병호이수호 집행부), 3기(단병호이홍우 집행부)를 제외하면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코포러티즘) 노선이 집행부를 주도해왔다. 이들의 노선은 ‘진보정당을 통한 의회진출과 제도화’, ‘산별노조를 통한 교섭의 제도화’, ‘사회적 교섭과 노사협조주의’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고, 현장의 투쟁력과 역동성을 조직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섭 틀’의 구성과 선거에서의 득표에만 집착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파 혹은 범좌파 세력들 또한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일관된 정치적 실천과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해온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특히 최근 민주노총 다수 정파인 전국회의의 ‘집권시대 노동운동’ 노선은 노동조합을 통합진보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수단으로 사고하며, 2012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부대로 전락시키고 있다. 향후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지지를 둘러싼 갈등, 민주노총 내 정파별 조직화 경쟁, 산별노조의 무기력으로 인한 조직이탈 흐름(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 국민연금지부를 포함한 6개 노조의 통합추진위 결성), 민주노총 직선제 과정에서 예상되는 선거부정 사태 등으로 인해 내부적 갈등의 격화와 정권/자본의 외부적 탄압이 겹쳐져 급격하게 붕괴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심각한 위기국면을 대비하면서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전국회의와 같은 우경화된 노선에 비판적인 민주적변혁적 세력들이 전국적-지역적 차원에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활동과 공동논의, 나아가 전국적인 활동가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 조직 따라서 노동운동 내부의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고민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민주노조의 혁신과 재건을 중심적인 논의과제로 하여 지역과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의 실천을 확대해야 하며,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은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지역과 현장의 공동 실천을 기본으로 하면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의 전략 논의 ▲2012년말 민주노총 선거(직선제 예정) 공동대응 ▲2012년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을 중심으로 공동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재건을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 노선, 활동방향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요 과제에 관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 논의와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진단과 사회변혁을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민주노총-산별노조연맹 투쟁의 혁신, 생존권 보장과 사회변혁을 위한 제도적 요구와 그 실현을 위한 투쟁 전략,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새로운 전략, 현장 활동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민주노조 조직혁신 방안, 노조 민주주의의 강화와 투쟁기풍/조직문화의 혁신, 자주적인 재정확보와 재정 배분의 혁신방안,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평가와 새로운 전략,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조합원 교육/소모임 활동의 강화와 지역, 현장 일상 활동의 복원, 지역, 현장 활동 강화를 위한 활동가조직의 혁신과 소통, 연대의 강화 등. 둘째, 2012년 말 민주노총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가 부정선거 사태로 치달을 경우 민주노총의 심각한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직선제 실시 준비상태 등에 대한 공동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며, 직선제가 실시될 경우 변화된 선거제도를 고려한 구체적인 선거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어떤 세력이 운영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또 다시 진보정당운동(그것도 사이비 진보정당인 통진당)에 종속된 노조운동 노선,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 노선이 민주노총의 집행부를 운영할 경우, 향후 경제위기 정세에서 민주노총은 더욱 무기력해질 것이다. 셋째, 2012년 12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지도부 선거 결과 및 향후 당권 경쟁의 결과 등 일부 변수가 있더라도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선대로라면 대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 노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을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지지부대로 전락시키겠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대선방침은 최소한 이러한 민주노총의 무원칙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을 저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답게 민주노총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조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대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여론화하고 대선 후보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선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대선에서 독자후보 전술 등은 변혁적 정치세력들의 논의와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를 거쳐 가능성을 검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정당 건설은 이러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와 공동실천,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변혁적 정치세력 간의 논의의 성과를 교류하고, 주객관적인 역량을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당 건설 추진경로를 밟아야 한다.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사회운동적인 노동자정당은 노선의 선명함과 주체들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민주노조 운동, 대중운동의 역량과 투쟁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조급하게 노동자정당을 추진한다면 정당으로서의 사회적 영향력이 거의 없거나, 통진당처럼 자유주의화/우경화의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하라 총선이 ‘야권연대’의 패배로 끝났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고통 받은 국민들 눈에 야권연대가 그다지 차별성이 없어 보인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새누리당마저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권연대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보장에 관해 차별성과 진정성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들이 앞다투어 야당들과 수십 개의 정책협약을 체결했지만 정작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는 핵심의제가 되지 못했다. 노동계의 요구를 빌린 정책과 공약은 난무했지만 정작 이러한 요구가 부각된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로 여소야대 정국 창출이 곧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논리가 득세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도시라 하는 울산과 창원에서도 노동자들은 야권연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공약과 실제의 차이를 느끼고 있고, 투쟁의 힘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어느 공약 하나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논평처럼 “더 많은 투표 참여”, “흔들림 없는 야권연대”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의 요구를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은 모두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은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각 정당의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 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각 정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입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1차 추진법안으로 발의했다. 같은 날 민주통합당도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비롯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여야 각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총선 공약으로 비중있게 내놓을 수밖에 없고, 19대 국회에서 우선 다루어야 할 법안으로 발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일하는 사람들의 민생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되는 것들이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은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간접고용을 지금보다 한층 더 확산시키리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자신들이 한사코 반대했었던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포함한 기간제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기간제 고용보다 더 열악한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다. 그리고 두 정당 모두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불법파견과 사용자책임 회피에 면죄부 현행법상 타인의 노무를 활용하는 계약형태는 도급과 파견 두 가지 밖에 없다. 원청이 수급인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해 지배력을 가지면 근로자파견이요 그렇지 않다면 민법상 도급이 되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면 원청이 그에 합당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고, 도급 관계라면 원칙적으로 원청은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내하도급법안은 파견도 도급도 아닌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지대를 설정하고,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경감시켜 주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사내하도급’은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및 「직업안정법」 위반의 불법적 간접고용이라는 사실이 십 수 년간 지적돼 왔다. 그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제조업을 비롯한 청소경비업, 요식숙박업, 유통업, 정보통신업, 금융업, 공공서비스부문의 ‘용역계약’이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을 받았다. 이러한 법적 판단의 정점에 있는 것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이다. 사내하도급법안은 이처럼 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사내하도급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합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안: 간접고용은 허용하되 파견노동자는 보호한다? 김대중정권이 파견법을 제정했고, 노무현정권이 그 파견허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제조항을 직접고용 의무조항으로 사문화시켰다는 사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 공약은 사람장사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현재 ‘지침’으로 되어 있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파견법에 명시하고, 불법파견시 고용의무조항을 고용의제조항으로 회귀시키자는 것이 민주통합당 공약의 골자이다. 문제는 2006년 파견법 개악으로 인해 ‘불법파견’으로 규제할 영역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상 세세분류로 197개의 직업에서는 파견노동자를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2년마다 노동자를 교체할 경우 상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상의 허용업무 이외의 업무에 있어서도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나 ‘일시적간헐적 인력확보의 필요성’이 있으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건설공사현장의 업무, 의료인의 업무 등 소수 금지업무를 제외하고는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을 잘 구분해내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를 하겠다는 공약은 사실 그다지 쓰일 데가 없다. 비유하자면 형법상 범죄의 목록을 대폭 줄여 놓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다. 과거를 돌아보기: 2004~2006년 기간제법 제정파견법 개악 국면 2004년 이전까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90년대 말 이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 과정에서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입법 대안’으로서 교육선전의 차원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면의 전환은 2004년 9월 정부가 기간제단시간 고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시점에 일어났다. 2000년 이래 매년 예고되었던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이 드디어 가시화되었고,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이하 전비연)는 즉시 열린우리당 항의점거농성을 조직하여 정부 법안의 본질을 고발하였다.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선도 투쟁에 화답하여 민주노총이 2004년 하반기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중심 투쟁 요구가 되었다. 그런데 투쟁 국면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와 동시에 내부에 잠복되어 있던 쟁점들도 드러나게 되었다. 파견법 철폐는 여전히 민주노총의 공식적 입장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제기되지 않았다. 대신 현행 파견법 유지냐 개악이냐가 실제적인 공방의 지점이 되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지도 못했다. 2005년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동요는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2005년 4월에 열린 노사정대표자교섭에서 양 노총이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부터 동요는 본격화되었다.(표1 참고) 기간제 고용에서 사유제한원칙을 사실상 포기하고, 파견법 철폐가 아닌 현행 파견법 유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노동계 단일안’이 교섭석상에서 제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비연은 민주노총 비정규실장과의 간담회에서 분명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경총의 견해 번복 및 정부의 강경한 입장으로 말미암아 4월 교섭 자체가 파탄나면서 이 문제는 내부적으로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표 1] 2005. 4. 30 민주노총 비정규실과 간담회시 비정규실에서 제출한 노사정 교섭자료 해결되지 못한 쟁점은 2005년 11월 노사대표자교섭이 재개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민주노총이 이른바 ‘4월 교섭내용’에 기초하여 교섭할 것을 주장하면서부터다. 4월 교섭당시 제기하였다가 교섭결렬로 사라졌다던 양 노총 수정안이 노동계의 공식요구로 재등장하였던 것이다. 전비연과 국회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단위들이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민주노총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분명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11월 교섭이 파국에 이르고 한국노총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 최종안을 발표하면서야 비로소 민주노총은 원래의 권리입법요구가 민주노총의 입장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미 논의구도는 기울어졌고 이목희 의원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2005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가 진행되면서 단병호 의원이 기간제 사용사유를 대폭 확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비정규직 주체들을 중심으로 수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2월 8일 법안심사소위 논의까지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법안은 ‘몇 가지 쟁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통과되었다. 이어진 2006년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법사위 통과, 본회의 통과는 그 때마다 운동진영에 비상동원령을 내리게 했지만 이미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2008년 개원한 18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은 파견법 폐지안 발의조차 하지 않았다. 2000년 이래 민주노총의 공식적 요구는 계속 ‘파견법 폐지간접고용 철폐’였으나 이는 한 번도 공세적으로 제기된 바 없다. “지금시기 파견법 철폐는 불가하다”는 노동운동 진영의 자기검열 속에 처음부터 ‘현행 파견법 유지’가 주장되었고, “지금 특수고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섭틀을 깨자는 것”이라는 주장 속에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는 교섭의 의제로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와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 문제에서조차도 양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양보안을 제출하였다. 이처럼 운동진영 스스로가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던 권리입법요구에 대해 정부가 무시하고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적극적 개입이나 공동의 투쟁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현재와 같은 조건이라면 올해의 상황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임금과 해고의 자유에 있다. 그런데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대해서는 항상 노동자들의 저항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을 통해 일정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획득한 것이 ‘정규직’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조직화와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법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들어 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자본이 활용한 것이 비정규직 고용형태이다. 비정규직은 단결하고 저항하기 어렵기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되고, 현행 노동법은 비정규직의 이러한 무권리 상태를 묵인해 왔다. 1998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적으로 진행되면서, 저임금고용불안차별 등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 못지않게 전면에 떠올랐던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였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자행되는 계약해지폐업 등 사용자의 탄압에 맞서 단결을 유지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1996~97 총파업 및 1999년 합법화로 일정한 제도적 발언력을 확보해가고 있었던 민주노총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도 노동조합 때문에 해고 또는 폐업을 당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큼 비동시대적 요구로 보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노동조합 인정’ 혹은 ‘노동기본권 보장’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의 문제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자본의 전략의 핵심적 지점과 충돌하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된 데에는,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탄력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요구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정규직을 통해 노동자의 내부 분할을 확대하고 단결을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이 깔려 있었다. 특히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집중되어 있는 공기업 및 대기업의 경우 조직노동자를 고립시키고 소수화시키려 했던 사용자의 태도가 비정규직 확산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비정규직 조직화가 시작된 곳도 특수고용 부문을 제외하면, 이미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곳부터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기존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소외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을 지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은 실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실질 사용자(원청)에게 요구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실질 사용자는 이들의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상 책임을 거의 완벽히 피해갈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포기하도록 갖은 탄압을 하고도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면하고, 단체교섭 요구에도 ‘합법적으로’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이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업무방해죄손해배상 등으로 도리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실질 사용자를 상대로 싸워 왔기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승계 내지 직접고용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올해만 따져도 인천공항 세관 노동자들이,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이, 베스킨라빈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리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합의서를 통해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고 있다.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법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병가라도 쓸 수 있었던 것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단체협약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노조로 단결했기 때문이고,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표준운임제를 시범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화물연대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공통적으로 비정규직 활용은 허용하면서 차별을 줄이겠다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단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어떠한 차별해소책도 실효성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미 1989년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이 최악인 사회이다. 여성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7%만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요구: “노동자에게 권리를! 사용자에게 책임을!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모두 다 필요하지만, 핵심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고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건설기계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건설노조의 예를 들어 보자. 건설현장에서 8시간 노동을 안착시키는 것도,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것도 오직 노조의 힘이다. 덤프 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지만 건설노조의 투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대료(임금) 지급을 원청 및 발주처가 보장하도록 하는 조례를 확산시키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런 투쟁을 바탕으로 조직을 굴삭기, 펌프카, 크롤라크레인 등 다른 건설기계직종으로 확대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륭분회,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인천공항 세관분회, 서울일반노조 한일병원분회 등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이 원청과의 교섭으로 요구를 쟁취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역시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할 때 정부와 자본이 활용하는 무기는 이들은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활동을 할 수도 없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며, 설사 단체협약이 체결되더라도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바지사장’을 제치고 실제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투쟁할 때 이들은 역시 “원청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을 통해 이런 주장들을 격파해 왔는데, 이제는 입법화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할 시점이다. 이 두 가지의 요구는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범위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자는 요구로 집약된다. 여야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의 노동3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노조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올해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과 산재보험 동등적용을 핵심요구로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 홍익대, 전주대 등 용역노동자를 조직한 노조들이 투쟁 중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조직을 정비하고 다시금 정규직화 투쟁을 준비 중이고, 조선업 하청노동자들도 임금삭감산재은폐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렇게 각각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을 지지엄호하면서 또한 결집시키기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요구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노총 소속의 특수고용간접고용 노조를 위시한 비정규직 노조단위가 결집하여,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조직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