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파병반대운동에서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의 진실과 거짓이 글은 인터넷신문『프레시안』에서 벌어진 시민단체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태도와 파병반대 운동의 현실, 그리고 노무현 ‘퇴진’ 주장의 의미에 대한 일련의 논쟁에 개입한 과정에서 쓴 것이다. 논쟁은 김태경, 「노 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 」,『프레시안』(진보언론인, '메이저 시민단체들' 공개비판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40821100501&s_menu=미디어), → 이태호, 「파병반대운동에 대한 근거 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을 기대한다」 ,『프레시안』(근거 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을 기대한다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40824165814&s_menu=미디어) → 박준도, 「파병반대운동에서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의 진실과 거짓」(, 『프레시안』('노무현 퇴진 논쟁'의 진실을 왜곡 말라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20040830104132&s_menu=사회) → 이태호, 「건강하지 못한 논쟁을 더 이상 하지 말자」,『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40831094923&s_menu=정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 논쟁에 앞서 나는 『월간 사회진보연대』(47호, 2004.7-8) 「노무현도 '엄호'하고, 파병도 '철회'시키겠다? - 불행한 비극? 불가능한 희극!」에서 노무현 탄핵 무효운동의 자장 안에 있는 파병반대운동을 비판하며, 현 시기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을 펼친 바 있는데, 이는 그 글의 연장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글은 미디어 참세상(http://cast.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0916&page=1&category1=3)에도 같은 제목으로 게재되었음을 밝힌다. 김태경 기자의 글을 “Pressian”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난 그가 상황을 상당히 예리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자로서 의문을 품을 만한 것들,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시민단체의 이중적인 태도를 문제삼았고, 이때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글을 끝맺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응이 어떨지 몹시 궁금했었다. 그러던 차에 “Pressian”과 “OhmyNews”에 실려 있는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이하 이태호 실장)의 반박 글을 보았다. 그의 글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너무도 실망했다. 그는 김태경 기자의 논지가 무엇인지,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반박해놓고는 되려 김태경 기자에게 ‘근거 있는 비판’을 요구했다. 그는 회의에 참여할 수 없었던 독자들을 상대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장마저 임의대로 재구성해서 자신의 논거로 삼았다. 뭐가 그의 논거인지 도무지 알 길 없는 이 글에서 유일한 근거라고는 다른 민중운동단체들도 노무현 퇴진 주장에 반대했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비판하려거든 그들도 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론으로 쳐주기에는 한심한데, 김태경 기자는 시민단체를 비판한 것이지 파병반대 국민행동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몇몇 ‘민중운동진영 단체’를 비판하려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김태경 기자가 무엇을 썼는지조차 모르고 반론을 쓴 셈이다. 따라서 ‘근거 있는’ 반론 요구는 내 보기에 오히려 김태경 기자의 몫이고, 글 쓰기를 가르쳐야 할 선생 역시 김태경 기자의 몫이다. 김태경 기자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박 글이 유효하려면, 적어도 다음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이번 파병반대운동에서 자신의 주장이 노무현 비판에 있어서 만큼은 가장 적절하고 핵심적이었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현 시기 노무현 비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논증하는 것, 이 둘 중 하나 말이다. 나는 이태호 실장의 글이 시민단체의 입장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노무현 퇴진’에 대한 모두의 입장을 애매하게 서술하거나 뭉뚱그려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서로 입장차이가 무엇인지, 무엇을 가지고 논쟁을 했는지를 애매하게 만들어놓고 만 것이다.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을 훼손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논쟁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논쟁해야 하는지 서로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나는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소모적이었고 쓸모 없었다는 것, 이것이다. 이태호 실장이 정확히 이 효과를 노리고 썼는지 알 길은 없지만, 나는 파병반대운동에서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의 성과가 이렇게 유실되는 것은 불가하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파병반대운동이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맞서는 유력한 운동으로, 전 세계 민중의 평화를 향한 의지를 스스로 담으려는 운동으로 성장하려거든 이 논쟁의 의미를 정확히 재확인해야 한다. 분명한 논점을 가지고 전개된 논쟁은 운동 자체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민단체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우리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기억나는 대로 상세히 남겨 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노무현 비판이 파병반대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하여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좀더 정확히 주장하고자 한다. 1. 파병반대 국민행동에서 노무현 ‘규탄’을 둘러싼 논쟁 이태호 실장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김태경 기자 말대로 파병반대 국민행동이 ‘대통령 책임’ 기조를 잡는 과정이 절대로 순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고 김선일 사망 직후 추모제를 앞두고 진행된 첫 운영위에서 민중운동의 상당수 단체들이 대중의 분노가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참여연대의 참석자는 ‘추모 기조’를 강조했고, 민언련 참석자는 노무현 지지자들을 참석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예 ‘노무현 비판’을 자제하고 문제의 근원인 ‘미국’에만 비판의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했다. 6월 26일 대회는 ‘이라크파병철회, 피랍상황 은폐 진상규명, 미국 파병압력 규탄’ 요구를 내걸고 추모 기조로 치르기로 했다. 잘 아는 것처럼 이날 집회에 대한 평가는 서로 극단을 달렸다. 한 극단에는 “추모와 읍소로 될 일이 아니다. 노무현이 이 사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그제야 파병을 철회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또 다른 극단에는 “한나라당·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대한 야유는 불공평한 것이며 노무현을 향한 정치적 비판이 너무 극단적이거나 노골적이면 평화적 감수성에도 어긋나고 일부 참석자들의 경우 그 말에 놀라 파병철회 집회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파병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퇴진 당할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한 청소년과 노무현 퇴진을 주장한 인쇄 노동자의 발언을 놓고 “민중운동진영이 사전에 조직한 것 아니냐”며 그 자리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참여연대 관계자였고, 앞서 의견은 운영위 회의에서 여성단체연합의 참석자가 제기한 것이다. 공개된 비상시국회의 자리에서 노무현 퇴진론자로 알려진 한 참석자가 현 시기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정치적 목표에 대해 토론하자고 할 때, “이 자리는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주요 방침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이를 제지한 것도 참여연대 관계자였고, 노무현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언급이 교묘히 빠져있는 ‘대국민 호소문’에 격분한 참가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려 했을 때도, 참여연대 관계자는 “채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여부만을 놓고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물론 이태호 실장은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제안하였지만, 격앙된 상황에서 아무도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 문제없는 훌륭한 호소문”이라는 참여연대 대표의 압박이 있었음에도 끝내 이 호소문은 채택되지 않았다. 당일 열린 운영위에서 민중운동 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은 대중의 분노가 있고, 분노의 대상이 노무현을 향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 기조는 적어도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묻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그에 따라 파병철회. 진상규명, 대통령 사죄(대통령 책임), 미국규탄, 점령반대라는 5개 기조가 확정되었다. 또, 이제까지 집회와 달리 7월 3일 집회만큼은 대중의 분노를 모으고 노무현과 미국을 규탄하는 집회로 진행하자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제출한 기획 안은 예전과 변함 없는 추모대회 안이었다.<<각주- 이 기획 안에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퇴진’ 입장에 가까운 만큼 OOO 신부의 정치발언 섭외는 재론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모양은 ‘추모대회’였지만, 정치적 의도만큼은 분명히 반영된 기획안인 셈이다.>> . 급하게 기조를 바꾸어 보려했지만 시간 제약이 있었다. 이 와중에 장소조차 긴급하게 변경되고 행진 계획마저 재론되는 등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비마저 내려 더더욱 초라해진 7월 3일 집회에서 집회참석자들과 진행자들 사이의 불신과 대립은 극단으로까지 치달았는데, 이에는 전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라고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7월 14일 운영위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는 “집회참석자들이 ‘노무현 퇴진’ 집회에 나왔는지, ‘파병철회’ 집회에 나왔는지 혼란스러워 한다”며 “파병반대운동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파병반대운동의 다수화를 위해서는 파병 철회만을 주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 제기했다. 또 파병반대국민행동의 투쟁 기조 자체를 문제 삼고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이 노무현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미국문제는 부차화되고 있으며, 민중운동의 고착화된 집회 운영이 대중의 집회 참석을 가로막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제 더 이상 광범위한 대중이 운집하는 집회는 곤란할 것이고, 결사투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주장한 뒤, “김선일 피랍 은폐 의혹에 대한 국회 청문회와 국정감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이를 소홀히 하면 국회의원 소환운동(노무현이 아니라 국회의원 소환)을 전개하자”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역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대중들이 폭넓게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노무현의 ‘보복’ 선동 때문이지 반대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파병을 강행한 실질적 주체는 미국도 한나라당도 아니라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라는 주장,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공동전선”이라는 주장들이 반론으로 제기되었다. ‘노무현 퇴진’ 주장이 자꾸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부터는 논쟁은 더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시민단체와 민중단체 사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중운동 단체들 사이에서도 논쟁은 격렬했다. 일체의 ‘퇴진’ 주장은 불가하다는 의견에서 완전히 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이견은 좁혀질 여지가 없었다. 참여연대 회의 참석자는 “퇴진 주장을 외치고 선전 선동하는 사람들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집회가 계속 이렇게 진행될 경우 결국에는 파병반대국민행동 명의의 집회 개최 자체가 제한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이 날 이후 관련 논쟁은 상반기 파병반대투쟁 평가 토론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주고받은 것말고는 더 이상 전개되지 않았다. 나 역시 대통령 사죄와 대통령 책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상에서 보듯 김태경 기자의 글에 인용되어 있는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말대로 ‘대통령 사죄(책임)’, ‘규탄’ 기조를 확정하는 데만도, 그리고 그 기조에 따라 집행을 하는 것도 그다지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논쟁의 대상은 고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노무현’이 져야 한다는 주장 자체였고, 이 목소리를 가장 높인 이들은 ‘퇴진’이라는 구호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하려 했던 이들이었다. 또, 보는 바와 같이 여기에 이러 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이견을 제시했던 그룹은 이른바 ‘이름 있는’ 시민단체였다. 그럼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 혹은 노무현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진실로 어떠했는가? 어떤 맥락에서 진행되었는가? 이를 좀 더 살펴보자. 2.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 노무현 비판에 머뭇거렸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단체는 민언련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민언련은 회의 자리에서 “(전술적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노무현 비판은 자제하고, 모든 것의 원흉인 미국을 규탄함으로써 아예 우회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최민희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고 김선일씨 사망 이후 피랍과정에 대한 의혹이 한참 막 제기되던 시절에 당당히 노무현을 옹호하기도 했다. 집회 발언 취지를 뒷받침하는 인터뷰 <<각주-최민희, 「백만 시민 결집됐을 때 파병철회 가능」,『시민의 신문』, (6.29, 인터넷판 http://211.115.112.3/times/news.html?id=times&no=20987)>> 에서 최민희 사무총장은 “노무현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근거도 없고 몰랐었던 것 같다”며 외교부와 개혁세력의 갈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무현과 개혁 세력도 일부 책임이 있긴 하지만) 도리어 수구친미세력의 무능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AP통신과 미국이 사전에 인지하고도, 동양인이라고 우습게 보았거나 고 김선일씨의 반미발언 때문에 고의로 안 알려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AP통신과 미국 책임론을 강하게 부각했다. 최민희 총장은 또한 자신이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을 많이 비판한 것은 사실 열린우리당이 파병철회나 미국 문제, 국가적 자존심 문제에 무엇인가 노력할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열린우리당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노무현 퇴진 주장이 잘못된 것은 이 주장이 집회에서 터져 나오면 파병철회 집회에 참석하는 다수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상처받게 되고, 노무현 퇴진 이후 ‘로드맵’도 안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발언들은 다 파병철회집회에 200~300만이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파병철회 여론의 다수로 추측되는 노무현 지지자들을 참석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7월16일 운영위에서 여성단체연합 회의 참석자는 “오늘 노무현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노무현 정부 내 우파(특히, 국방외교통상 라인)들의 입김이 강해서 나타난 결과”고, 따라서 “노무현 정부 내 좌파가 주도하는 개혁에 힘을 실으면서 파병반대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참석자 또한 노무현 퇴진 이후 ‘로드맵’을 걱정하였는데, 1987년 당시에는 그래도 진보야당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퇴진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퇴진’ 주장에 강한 의문을 표명했다. 그럼, 참여연대는 어땠을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참여연대가 당당히 내놓는 근거가 있는데, 바로, “정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질 경우, 노무현 정권의 진퇴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참여연대 관계자의 한겨레신문 인터뷰가 그것이다. 이 인터뷰 하나를 갖고 참여연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교적 언변에 능숙한 참여연대가 이 말의 진의를 모를 리 없는데, 이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지면 제아무리 ‘노사모’인들이라 하여도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친 노무현 경향의 언론이라 할지라도 게이트 사건이 터졌다며 난리를 칠 것이고, 지배세력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에게 스스로 하야할 것을 권고할 것이다. 이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점에서 아무 말도 안한 것과 똑같다. 동시에 이 말은 제 국민이 피살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의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김선일의 사망 자체에 대한 노무현의 책임에 면죄부마저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은폐 의혹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고, 김선일을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한 노무현의 가장 핵심적인 과오-피랍사실을 알고도, 파병을 강행하면 그가 죽게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파병을 강행한 방침 자체-를 문제삼으며 진퇴를 거론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선일 사망 직후 참여연대가 제출한 성명서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을 제안한 단체라는 명성에 걸맞는지 의문이 들만큼 점잖게 쓰여졌다. 이 성명서는 김선일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파병을 전면 ‘재검토’하는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했다. ‘파병 철회’도 아니고 ‘파병 재검토’다.<<각주-파병반대 국민행동의 공식입장은 무조건 ‘파병 철회’다. 단, 대 국회사업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재검토’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내의 미묘한 갈등 활용을 강조하며, 당면목표(파병철회) 달성을 위해 상당한 정치 테크닉을 강조하는 단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김선일씨 피랍 직후 상황도 아니고 주검이 되어 돌아오게 된 마당에 대국회 사업에서나 구사해야 할 세련된 언사를 구사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이툰 선발대가 떠난 직후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안국동의 창>이라는 코너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정녕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 도착적 수구세력과 한 패가 되고 말 것이냐며 개탄을 토한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제 국민 안위 하나 못 지키면서도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가정이라곤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역으로 파병을 강행한 대통령이 이회창이라고 가정하자. 참여연대가 개탄의 목소리나 내며 이런 한가로운 소리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있듯 아마 정면으로(!) 비판했을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에 대한 참여연대의 정치적 태도고 이중 잣대다. 이 모든 것을 놓고, 시민단체는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을 비판했으며, 노무현 정부에 대해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견지했다고 강변한다면 한마디만 덧붙이겠다. 비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정면 비판이 있고, 애정 어린 비판이 있다. 자,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은 이 중 무엇인가? 무엇으로 보이는가? “우연의 일치겠지만, 노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데 머뭇거렸다고 알려진 곳은 ‘주류’ 또는 ‘이름 있는’ 시민단체가 많았다”는 김태경 기자의 주장은 여전히 근거 없는 주장인가? 김태경 기자가 가장 문제삼은 대목은 시민단체가 퇴진주장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속에서 드러난 시민단체의 입장이고, 바로 그것은 시민단체가 노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데 머뭇거렸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초점은 이것이다. 3. 노무현 퇴진 주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진실 김선일의 죽음은 이라크 파병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언제든지 전쟁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오늘날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폭력의 연장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 마저 일깨워주었다. 김선일이 억류된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파병강행한 것을 보며, 우리는 노무현이 마지못해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사활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바로 노무현이 우리를 이 참혹한 전쟁터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퇴진 주장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의 배출이건, 선전 슬로에 불과하건, 전술·전략적 주장이건 간에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주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구호 자체, 이런 주장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왜인가? 굉장히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있는 연대체 내에서 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매번 논란이 되는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노무현 ‘퇴진’ 주장 자체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매번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대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대부분이 시민단체 관계자였고, 노무현 비판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들로서는 이런 주장 자체가 집회장에서 오고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 중 몇몇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대한 대중의 즉석 야유를 민주노동당 관계자가 선동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 자유발언대에서 터져 나온 퇴진주장을 보면서 지금 촛불집회 자유발언은 자유발언을 가장한 특정정치집단의 정치발언이라며 (내 보기에 촛불집회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자유발언 자체를 도매 급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대중은 다 안다며 선동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라며 강변하는 이들이 대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파병을 철회해주세요??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중이고,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야유하고, ??몽둥이로 때려 청와대에서 내쫓아 버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는 말뜻인가? 아니면, 대중이 열린우리당에 야유하고 노무현 퇴진과 같은 고강도(?) 정치발언을 할 리가 없다는 뜻인가? 왜 대중과 활동가들을 무 썰듯 확실히 나누려 하는가? 집회 참석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대중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노무현 ‘퇴진’ 주장을 놓고 전개된 논쟁의 축은 다음과 같다. 시민단체는 ‘파병반대운동은 열린 우리당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수화 전략을 위해서 파병철회만을 주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장을 되풀이해서 제기해 왔고,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힘, 다함께,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학생연대회의 등은 ‘파병강행의 모든 정치적 책임은 노무현이 져야 하며, 노무현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이 파병반대운동의 숨통을 틔게 할 것’이라는 내용의 주장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것은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 차이’이기도 하다. 이것이 ‘퇴진’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의 진실이다. 따라서, ‘퇴진’ 주장을 둘러싼 토론의 가장 기본적인 배경은 김태경 기자가 지적한 대로 ??이라크 파병의 이유, 노 정권의 성격, 시민단체와 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시각차??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논의가 격렬했던 것은 바로 이들간의 시각차가 얼마나 큰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논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본대로 ‘퇴진’ 주장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토론을 벌일 때마다 이 주장과 슬로에 대해 시비를 가리자며 논쟁을 제기한 이들은 거의 대부분 시민단체 관계자였다. 여기에 맞서서 ‘노무현 퇴진’ 주장과 이들 목소리를 옹호하려 했던 이들은 (김태경 기자의 표현을 따르면) 이른바 ‘좌파’ 진영이다. 한편, 이 토론이 전개될 때 온전히 퇴진 주장 자체만 토론된 적은 없었는데, ‘지도부 비판’, ‘집회 문화’, ‘연대의 기술과 원칙’, ‘발언/토론과 선전의 자유’, ‘행동의 통일’ 등등이 혼재되면서 진행되었고, 그래서 논의 자체는 쉽게 격렬해졌다. 이러다 보니, ‘구호와 행동의 통일’을 요구하는 한편으로는 ‘노무현 퇴진’ 슬로의 선전/주장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때마다 ‘노무현 퇴진’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들은 단호히 이를 비판해 왔다. 그것이 대중의 발언을 옹호하는 차원이든, 행동의 통일과 토론/선전의 자유를 옹호하는 차원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제기했던 유일한 단체인 사회진보연대가 노무현 퇴진이 공통의 구호가 될 수 없는 조건과 정세에 공감했다”며 사회진보연대가 노무현 퇴진 입장을 철회하거나 파병반대 국민행동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후퇴했다는 듯, 혹은 참여연대와 입장을 같이했다는 듯 기술한 것은 사회진보연대의 의견을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물론이거니와 퇴진 입장에 동의하는 다른 단체들이 ‘퇴진’ 주장을 제지해서는 안 된다며 반복해서 강조해왔음에도 “회의장에서 동의해놓고는 집회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노무현 퇴진 주장을 하는 단체들과 개인이 신의가 없는 정치세력처럼 서술한 것이라든지, 참여연대 스스로 노무현 퇴진 주장에 관한한 늘 논쟁과 견제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면서도 “해프닝성 사건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으로 노무현 퇴진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며 논쟁 자체를 폄하하려 한 것, 그것도 모자라 “이 논쟁은 주로 민중연대 소속단체들 간에 이루어졌다”며 참여연대는 물론이거니와 시민단체를 논쟁의 구도에서 제외해 버린 것, 거기에 더해 ‘그래서 해프닝’이라며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인 것은 맥락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노무현 ‘퇴진’ 주장을 둘러싸고 참여연대와 시민단체들이 취했던 입장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퇴진’ 주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자신과 유사한 입장이건 다른 입장이건 적당히 물타기해서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흐리게 하면 서로 오해만 증폭될 뿐이다. 논쟁을 하건 토론을 하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서로 오해도 없이 정확히 토론을 할 수 있고,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태호 실장의 전언대로 상당수 민중운동 단체들이 ‘퇴진’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긴 했다.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은 내가 결론에서 주장할 ‘지금 파병반대운동에 필요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도부 비판’, ‘집회 문화’, ‘연대의 기술과 원칙’, ‘발언·토론과 선전의 자유’, ‘행동의 통일’ 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제기된 만큼 이에 대한 서술도 필요하겠지만, 이 문제는 이 글이 다루어야 할 범위를 넘기 때문에 다른 기회를 기약하자. 다만, ‘퇴진’ 주장에 반대한 상당수 민중운동 단체들이 이태호 실장에게는 자신의 논지와 관계없이 매번 함께 걸고 넘어갈 만큼 손쉽게 물타기 할 대상으로 밖에 안 보이는지, 이 점 몹시 못마땅했다는 점만큼은 밝혀두고자 한다. 동지에 대한 비판을 냉혹하게 수행할지 언 정, 자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남에게 돌리며 자신도 무마하려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4. 지금 파병반대운동에 필요한 것 참여연대를 위시하여 시민단체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파병반대운동의 다수화 전략 즉,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지지자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다. 상식적인 이야기라도 필요하면 반복해야 한다. 파병을 강행하고 파병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데 총력을 기울인 인물과 정당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다. 김선일 사망 이후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파병을 철회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보복’을 선동한 사람은 노무현이었고, 파병강행을 주장하며 테러방지법을 운운하기 시작한 의원이 속한 정당도 열린우리당이었다. 당내 파병을 철회시켜야겠다는 의견을 관철시키기는커녕 당 지도부 비판에도 소극적이고, 긴급할 때는 파병강행입장으로 바뀌는 국회의원들이 속한 정당도 열린우리당이다.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선일 피살 이후 파병결정과정에서 노무현이 감내해야 했을 ‘고충’을 이해하자는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때, 그들은 파병철회보다는 노무현 지지를 선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들에 기반을 두어야 200~300만의 시위대가 모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수도행정 이전에 대한 반대마저 자신에 대한 퇴진요구라 강변하는 노무현대통령을 두고,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200~300만의 숫자를 헤아리는 거리의 군중이 되어 파병철회를 주장할 것이라고 보는가? 단언컨대 절대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200~300만이 모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중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다. 대중에게 패배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이는 거짓말이고, 불가능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200~300만의 시위대는 노무현 지지자 몇 십만과 민주노동당 지지자 몇 십만이 합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민주노총 조합원 몇 십만과 전농 농민회원 몇 십만이 합해진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대중의 자발적인 대규모 군중 시위는 이 집단과 저 집단을 단순히 더해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각성에 따른 결과다. 열린우리당 지지자인 너도 나오고 민주노동당 지지자인 나도 나와서 200~300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투표를 했건,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했건, 심지어 한나라당에 투표를 했건 아예 관계없이) 너도 각성하고, 나도 각성해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시위 군중 200~300만이 되는 것이다. 너도 정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정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때, 200~300만이 되는 것이다. 200~300만이 벌이는 파병철회 시위를 꿈꾸고자 한다면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철회해줄 것이라는 미련을 떨쳐버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정치의 주인이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에 분노하여 노무현에게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 오직 그 길뿐이다. 노무현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이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민중들의 연대의식과 함께 터져 나와야 그제야 가능하단 뜻이다. 그렇다면, 왜 ‘정치적 각성’인가? 나는 다른 글 <<각주-박준도, 「노무현도 '엄호'하고, 파병도 '철회'시키겠다? - 불행한 비극? 불가능한 희극!」, 『사회진보연대』(47호,2004.7~8) 혹은 『사회화와노동』(230호,2004.7.9)>> 에서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든 강제적인 수준에서든 대중의 명확한 인식과 정치적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파병반대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확장은 … 우리들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이 같은] 장애를 제거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시기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는 무엇인가? 노무현과 그의 행정수반들의 파병/전쟁 참여선동, 정치토론의 장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고 대중의 분노가 폭발되는 것을 막는 경찰의 저지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 더러운 입놀림과 언론의 기만적인 펜대들이 바로 그 장애다. 그밖에도 우리에게 장애는 곳곳에 있다. 정치의 주인으로 단결하고자 하는 노동자·농민·여성을 중산층이라 칭하며 상품의 소비자로서만 살아가게끔 하는 것,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으로 분할하여 성별 분업화된 삶에 안주하도록 하는 것, 국가 행정 관료들과 국회 정치인들에게 의존토록 하는 것, 개별화되어 모든 연대의 손길을 스스로 외면토록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장애다. 이 장애를 물리쳐야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장애를 물리쳤다면, 어제 우리의 삶과 오늘 우리의 삶이 바뀌었을 것이다. 어제는 자기 한 몸 살아남기 바쁘고, 노무현과 정부가 그리고 미국이 한 일인데 어쩌겠냐며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면, 오늘은 거리에서 ‘파병철회’를 외치고, 일상에서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토론하고 조직하며 능동적으로 사는 것, 어제와 오늘의 삶이 조금이라도 다른 것, 이것이 ‘정치적 각성’이다. 정치적 각성은 남이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요, 남이 시켜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대중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스스로 능동적인 대중이 되는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대중의 거리 시위로 이라크 파병을 중단시키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전 세계 민중의 평화 애호 노력을 스스로 대표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서로가 능동적인 대중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노무현 퇴진’ 슬로는 노무현 정권의 성격,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문제를 표현한 것이다. 미제국주의 침략전쟁에 협조하는 정권, 신자유주의 세계화(국익)와 이를 무장한 군사력으로 엄호(한미동맹)하려는 정권-바로 이 노무현 정권에게 우리는 일체 협력할 수 없으며, 민중은 이를 거부한다는 뜻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 ‘노무현 퇴진’ 슬로다. 시민단체들이 예의 그 관행처럼 또다시 노무현정권 행정 관료들 사이의 갈등관계를 활용하는 테크닉이나 구사하며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하는 것에-만(!) 치중하려 든다면, 자신과 연계가 깊은 여러 행정 관료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노무현을 향한 정면(!) 비판을 꺼린다면, 파병철회-만(!)이 목적이라며 자신의 목적 달성에만 급급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다른 여러 운동과 연대하는 것을 외면한다면, 파병반대운동은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자멸한다 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퇴진’ 슬로는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게 한다. 장애를 보았다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물리치고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분명히 계획하고 사고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노무현 퇴진’ 슬로가 가지는 중요성이다.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에서 우리가 남겨야 할 교훈이 있다면, 정치적 입장에 관한 한 광범위한 대중의 토론을 보장하고 조직하는 것이 파병반대운동에 진실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스스로 돕는 것이며, 스스로 자신의 실천을 조직하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토론은 오늘 우리를 참혹한 전쟁터로 밀어 넣는 이가 누구인지, 오늘 우리를 비참한 빈곤으로 내모는 이가 누구인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깨닫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토론은 오늘날 파병반대운동의 오류가 우리의 오류가 무엇인지, 민중의 자기통치, 민중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진실로 깨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어야 튼튼하고 광범위한 대중행동과 거리 시위가 가능하다. 노무현 퇴진주장과 이를 둘러싼 토론을 막으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장애를 만드는 것이다. 노무현 퇴진주장과 이를 둘러싼 토론 그리고 광범위한 의견개진, 이을 충분히 보증하려는 노력은 우리 스스로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하는 길을 도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백만 시민 결집됐을 때 파병철회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냥 한번 해본 말솜씨가 아니고 진실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헤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제까지와 다르게 파병반대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와 행정 관료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우리의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침략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노무현 정권을 냉혹한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 민중이 그 죄상을 엄히 다스리는데 앞장서는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짓눌려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으려는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민중들과 함께 진정으로 평화로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힘껏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연대운동은 합의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치의식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요, 서로의 힘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연대운동은 너와 나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아 너와 나만의 이익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고 나아가 민중의 보편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파병반대운동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PSSP
* 8월 25일 열린 전범 민중재판 운동 간담회 자료입니다. 사회진보연대에서도 참여하고 있는 인권단체 연석회의 평화권모임에서 준 비한 내용입니다.
나자프 -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아니라 부시가 이 반란에 불을 붙였다 밀란 라이 (2004. 8. 13) (원문은 http://www.zmag.org/CrisesCurEvts/Iraq/IraqCrisis.cfm) 참조
"주권이양" 이후 이라크와 중동 이라크 "주권이양" 이후 진실이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저히 친미적이며 이라크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도 철저히 무기력한 임시정부의 현실. 미국은 자신이 "임명"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보호하고자 저항세력 제거를 위한 총공세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임시정부를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설사 앞으로의 정치일정이 어떻게든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저항게릴라 활동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임시정부를 이끄는 시아-수니의 엘리트들은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자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내세우지만, 억압적인 국가기구를 통해 시민적 권리를 제약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모르는 듯하다. 한국군 파병지인 북부 쿠르드 지역은 장차 이라크의 미래가 걸린 그야말로 "화약고"와 같다. 쿠르드가 장차 민족적 반역을 추구한다면 한국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는 아무런 답도 없는 듯하다. "미국의 입장이 곧 정답"이라고 믿을 뿐이다. 이라크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으나, 미국은 그것의 해결방향도 해결능력도 없다. 결국 미국에 의한 "민주주의의 이식"은 잠시 말하기 좋은 단지 허울이었다. 미군, 나자프 저항세력 제거를 위해 총공세에 나서다 8월 12일 오전 7시 미국은 시아파 지도자 알 사드르를 제거하기 위해 남부 나자프와 쿠트 지역에서 총공세를 개시했다. 이번 작전에 미군은 수천명의 병사와 헬기와 탱크, 장갑차를 총동원했다. 현재 나자프 공습작전에 따른 인명피해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쿠트에서만 최소 7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이야드 알라위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임시정부는 "주권이양" 이후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미군 지휘부는 공격이 다국적군과 이라크군의 합동작전임을 강조했고, 저항 게릴라의 근거지인 이맘 알리 공동묘소 진입작전은 "미군이 아니라 이라크 국경수비대가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6월 8일 통과된 UN결의안에 따르면, 미군은 군사작전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이라크 임시정부는 민감한 공격 작전에 대해 거부권이 아닌 미군 지휘부와 "합의"할 수 있는 권한만을 가진다. 이번 작전에서도 알라위 총리는 미군의 공세작전을 승인하면서 저항세력의 부당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했다. 현재 이라크 현지 분위기를 전하는 소식은 "미국이 임명한 정부는 바드다드 지역만을 통제한다, 그리고 거기서도 장관들과 공무원들은 차량폭탄과 암살로 죽는다. 바쿠바, 사마라, 쿠트, 마흐무디야, 힐라, 팔루자, 라마디 등 모든 곳이 정부 통치 밖이다. 총리 알라위는 바그다드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는 임시정부의 통치력 특히 내부의 갈등을 조정할 능력이 극히 취약함을 뜻한다. 임시정부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군의 군사지원 없이 정치일정을 밟아나갈 수 없지만, 미군에 의존하는 태도는 그들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킨다. 저항게릴라 활동의 "초장기화"의 가능성? 주권이양 이후 저항세력의 활동이 줄 것이리라 기대했던 관측자도 애초부터 없었지만, 실제로도 그러하지 않다. 현재 미군 지휘부는 반미 저항세력이 집권 바트당의 잔존세력, 시아파 저항세력, 무자헤딘(이라크 외부 아랍전사) 등 크게 세 갈래며, 올 봄부터 이들이 느슨한 연합을 이뤄 미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군 중부군사령부 지휘관들은 바트당 잔존세력을 중심으로 '수니 삼각지대'(바그다드-팔루자-라마디-티크리트)에서 조직적 저항을 벌이는 세력을 가장 위협적으로 보고 있다. 주축세력이 군인 출신이어서 게릴라 전술에도 능숙하고, 개인화기를 보유한 채 무장세력으로 변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아파 저항세력의 주력은 위에서 언급한 알-사드르를 따르는 5천 명 규모의 마흐디군이다. 알-사드르는 이슬람 신성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으면서, 임시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정당화해주는 도구"라고 주장한다. 이들 세력은 바그다드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동부 빈민지역 사드르 시티를 본거지로 하고 있지만, 바스라-나자프-카르발라에 이르는 중남부에서도 무장활동을 펴왔다. 미군은 올해 4월부터 두 달간 나자프에서 공세를 펼쳤지만 이들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휴전"을 맺어야 했다. (현재 알-사드르 지지세력 가운데 일부는 정당을 결성해 2005년 1월로 예정된 제헌의원 선거에 입후보자를 낼 움직임이다. 그럴 경우 사드르 시티가 이들의 근거지가 될 전망이다.) 한편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외부 출신 무자헤딘의 규모나 성격은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올 초까지 미국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모두 합쳐 수천 명에 불과하고 주축은 외국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봄부터 저항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그 규모가 수만명 이상이고, 절대 다수가 이라크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또한 임시행정처가 미국에 보낸 비밀문서에서는 많은 이라크인들이 저항게릴라 활동에 동조한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하지만 문제는 저항세력의 활동이 향후 정치일정의 진행과정에서 점차 감소될 것인가에 있다. 미국은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해서라도 정치일정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물리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세력들을 사전에 차단하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나 주요계기에서 무력충돌의 강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설사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이들 저항세력이 배제될 게 명백하므로 이후로도 게릴라방식의 저항은 지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게릴라활동의 "초장기화"는 매우 유력한 시나리오로 보인다. 이라크 임시정부의 정통성의 결여와 사회경제적 조건의 악화는 게릴라를 충원하는 원천을 제공할 것이다. 한편, 매우 다양한 저항세력들 중에서 무차별 폭탄테러, 외국인 피랍 등을 감행하는 저항방식을 두고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외국인 저항세력을 이끄는 요르단 출신 테러리스트 알 자르카위를 살해하겠다는 이라크 토착 저항세력의 성명이 7월 첫 주 2개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에 알라위 총리는 토착 저항세력에게 외국인 세력과 연합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일부 저항세력에게 회유의 제스처를 취하고, 외국인 저항세력과의 불화설을 조장하고 있다. 이라크 임시정부, 미국 우산 아래의 "민족주의" 단지 이라크 저항세력의 활동이 이라크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현재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세력의 정치 이념과 목표가 과연 이라크 인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내고 있는가? 현재 시아, 수니 성직자와 세속군대가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통일국가를 재확립하여 경제적 파워를 재획득하고 아랍세계에 군림하는 강국의 위치를 다시금 선언하는 것이다. 그들은 보편적인 시민권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오히려 강력한 "국가"를 원한다. 이는 이라크 민족주의가 정치의 전면에 재부상하는 것을 의미하며, 새로운 형태의 "바트" 국가의 재출현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시아와 수니 엘리트의 공동지배가 작동하며, 세속적인 바트와 달리 이슬람 요소가 정치체제에 강하게 포함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후세인이 재판을 통해 신속히 처리되면서, 이야드 알라위같은 인물이 후세인의 역할을 대체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현재 임시정부가 자신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들 - 당장은 저항 게릴라세력, 결코 머지 않은 미래의 쿠르드 세력, 궁극적으로는 이라크의 구성원 모두 - 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시사한다. (임시정부의 주요구성원들은 처음부터 이라크 내부의 다른 경쟁자를 제거하고 독점적, 배타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미국과 협상했다.) 또한 이는 이라크가 주변지역에서 장차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로 확대된다. 즉 민족주의와 종종 동반되는 강력한 억압적 국가, 시민적 권리에 대한 억압, 호전적 패권주의/팽창주의의 위험이 현재 이라크 정치체제에 내재해 있는가? 키르쿠크, 이라크의 화약고? 현재 이라크의 문제는 미국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양한 저항세력의 투쟁이 주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게 1라운드라면, 쿠르드 연방건설 문제는 이라크를 넘어 주변지역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이라크 내 쿠르드의 주요 정당인 쿠르드애국연합(PUK)와 쿠르드민주당(KDP)은 이라크를 연방으로 재구성하고 쿠르드 연방을 건설해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대폭 확보하는 게 핵심요구다. (한편 터기에 기반한 쿠르드노동당(PKK)은 쿠르드족 전체의 독립 외에는 다른 해결책은 없다는 노선을 지키고 있다.) 두 정당은 1991년 10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에르빌, 도후크, 술래마니에 3개주와 다른 주의 약간의 지역을 준-독립적으로 지배하였다. 그러나 쿠르드가 역사적인 거점으로 여기며 석유가 풍부한 알-타밈 주와 수도 키르쿠크는 과거 정부에 의해 "아랍화"(특히 아랍인 이주정책)가 실행되었고, 쿠르드의 지배는 거부당했다. 쿠르드는 타밈 지역을 포함해 4개주에 걸쳐 통일된 연방구조를 건설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체 군대인 7만 5천명의 페슈메르가("결사대")와 민병대를 합해 13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하지만 쿠르드의 정치적 열망과 시아-수니 엘리트의 지향은 이미 큰 갈등을 겪었다. 지난 3월 결정된 과도행정법(TLA)은 쿠르드의 요구를 반영하여, 앞으로 제정될 새 헌법이 이라크 전체 18개 주중에 3개 주에서 주민 2/3 의견으로 거부될 경우 채택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쿠르드에게 헌법 거부권을 부여한 셈이었다. 그러나 주권이양을 앞두고 미국은 UN안보리결의안에서 TLA를 언급해선 안 된다는 시아파 최고지도자 알-시스타니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들마저 반미로 돌아설 경우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라크 임시정부는 연방에 대한 쿠르드의 요구에 아무런 동정도 없는 듯하다. 쿠르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어떤 정부에 대해서도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쿠르드는 일차대전 이후로 여러 번에 걸친 강대국들의 약속 위반과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정부의 탄압이라는 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 경향이 약한 만큼 전통적인 민족주의 운동의 외양을 지녔다. 쿠르드는 독립을 위해 강력한 동맹자를 원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어떤 행운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미국"이라는 카드를 얻으려고 노력했고, 이라크에서 미국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맹자로서 행동했다. 미국이 1991년 그들의 요구를 배신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쿠르드는 2003년 다시 한번 미국의 동맹자로서 행동했다. 과연 미국은 그들의 전략적 동맹자로 믿을 수 있는 세력인가? 물론 부시정부는 쿠르드를 "지원"하는 제스처를 지속하고 있으며, 어떤 타협책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쿠르드가 알-시스타니보다 덜 중요하고, 만약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알-시스타니를 선택할 것이다. 여기에 어떤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쿠르드는 민족적 반역의 길을 추구할 것인가? 쿠르드, 이스라엘, 이란 쿠르드는 1990년대 미국이 북부지역 "비행금지"로 후세인으로부터 쿠르드를 보호했던 것과 같은 방식을 지속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있다. 이제 쿠르드는 중동에서 아무런 친구가 없는 그룹인 이스라엘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에 기꺼이 응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뉴요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북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특수부대를 훈련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특수부대의 임무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제지하고, 요인암살과 같은 비밀활동을 벌이며, 이란이 이라크 시아파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미국의 점령 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라크 북부에 이란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를 만들 구상을 세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이란은 이스라엘의 의도가 쿠르드 지역에 활주로를 만들어 이란 핵시설 공격을 위한 전폭기 발진기지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이란이 처한 위험은 미국의 직접적인 침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란 핵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중폭격이기 때문이다 (이는 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의 이라크 폭격과 같은 것이다). 이 보도가 얼마나 사실이며 진척 여부가 어떤지 간에 이는 중동의 매우 복합적인 갈등 관계를 드러내준다. 다만 이스라엘이 어디까지 지원을 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기술적 지원과 정치적 관계를 제공할 수 있지만, 쿠르드가 원하는 군대를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내부 문제는 이미 너무나 심각하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며, 샤론의 반-아라파트 정책으로 저항은 더욱 이슬람 분위기 속에서, 더욱 비타협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난 30년 간 이스라엘은 미국의 무제한적인 외교, 경제, 군사적 지원에 의존했다. 미국 정치에서 친-이스라엘 정책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금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될 수 있는가? 반면 세계는 이스라엘의 무법자 행각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있는가? 이라크의 미래는? 미국의 대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 문제에 관한 관심이 점차 뒤로 밀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케리가 당선되면 부도덕한 전쟁과 점령이 막을 내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현실과 전혀 다르다는 점도 아주 명백히 드러났다. 민주당은 이라크 전쟁의 문제는 "전쟁이 서투르게 수행되고 있다"는 데 있으며, 미국은 핵확산이 의심되는 나라에서 자유로운 사찰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이라크에서 미군철수가 아니라 군사력 증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세력과 언론이 어떻게 문제를 가리려 하건 간에, 이라크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더욱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 이후 "민주주의 이식"을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은 친미-엘리트 세력을 육성하며, 계급적-종족적 갈등과 시민적 권리를 첨예하고 악화시키고, 주변국을 포함한 중동지역 전반을 편의대로 들쑤셔 놓음으로써 오히려 문제의 해결 능력과 해결 방향을 오리무중에 빠뜨렸다 - 미국의 개입이 초래하는 아주 전형적인 결과다. 미국이 이라크를 뒤집어엎어 혼돈에 빠뜨릴 때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민중들의 매우 장기간에 걸친 지난한 운동이 투여되어야만 한다. 이는 우리에게 가장 명백하면서도 뼈아픈 교훈이다.
폭발하는 이라크 부시와 블레어는 이 나라가 폭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 로버트 피스크 (인디펜던트 誌, 2004. 8. 3)
[인권하루소식] 2004년 8월 5일 내전으로 얼룩진 수단 … 집단학살, 강간, 피난 국제사회, 전쟁범죄 조사 및 인도적 지원 절실 "전쟁도 부자나라와 해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시선이 온통 이라크전에 쏠려, 내전과 기아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아 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현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에 대해 탤런 트 김혜자 씨가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지난해 2월 시작되어 지금까지 3만 명 이상 '인간'의 생명과 120만 명 이 상 사람들의 소중한 거주지를 앗아간 수단 내전은 이제야 비로소 세상 사 람들의 눈앞에 '존재하기 시작' 했다. 지난달 30일 통과된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은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 지역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아랍 민병 대 잔자위드를 한달 안에 무장해제 시키지 않을 경우, 외교·경제적 제재 를 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단 내전의 복잡한 정치경제학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그 기원을 둔다. 수단 지역을 식민화할 무렵 영국은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북부 의 아랍부족과 남부의 기독교·토착신앙 부족을 하나의 통치령으로 통합 해 분쟁의 싹을 심어 놓았으며, 이후에도 계속된 제국주의적 분리통치를 통해 이 두 집단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심화시켰다. 195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정권을 잡은 북부의 이슬람 정부는 남서 부 흑인들을 차별하여 이들이 사는 지역을 계속 낙후한 상태로 유지시켰 고, 이 지역에서 발견된 석유와 우라늄 등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뿌리깊 은 갈등의 화약고에 던져진 불꽃의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2003년 2월 다르푸르 지역의 반군인 수단해방군(SLA)은 중앙정부의 차별 정책에 반발하여 독립을 주장하며 봉기를 일으켰고, 정부측은 아랍 민병대 잔자위드에게 막강한 화력을 지원해 수단해방군 등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국제앰네스티 등의 보고에 따르면, 정부의 후원을 받은 잔자위드가 다르푸 르 지역에서 저지르고 있는 전쟁범죄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수단 공군의 도움을 받아 이 지역 곳곳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지역주민들 을 한번에 수십, 수백 명씩 집단으로 학살하고 있으며, 강간을 전쟁무기화 해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낙인찍고 비인간화함으로써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 리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5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서 만연한 콜레라와 이 질로 인해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재난 을 피하기 위해 이웃나라인 차드로 피난 중인 주민들 또한 매일 공격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며, 부족한 지원 물품으로 인해 하루하루 살아남 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을 통한 국제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이에 대해 신중론을 펴기도 한 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계 신문 <알 쿠즈 알 아라비>는 "한달 안에 잔자위드를 무장해제 하지 않으면 수단 정부에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하 겠다는 유엔의 결의는 아랍 국가들을 노리고 있는 미국과 서구의 또 다른 노력일 뿐이며, 미국은 이라크를 다뤘던 방식으로 수단을 다루고 있 다"고 주장,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조심볜?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도했 다. 주변 아랍국가들은 아프리카연합(AU) 등의 지역기구를 통한 문제해결 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국제앰네스티의 경우 유엔 결의안을 환영하면서 도 그것이 지금의 끔찍한 인권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하고 본질적 인 조치들을 실현하는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제앰네 스티는 전쟁범죄에 대한 공정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위한 위원회 설립 등 의 추가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여러 인권단체들은 수단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일컬 어 '이 시대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라고 말한다. 이 위기의 해결을 위해 이제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김 유진]
전쟁참여정부, 이제 남은 것은 민중의 심판뿐이다. -8.3 자이툰 파병에 부쳐 자이툰 부대가 결국 이라크로 떠났다. 파병철회를 외쳤던 수많은 이들의 함성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새벽 여명을 뚫고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로 떠났다.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로 떠남과 동시에 노무현 정권도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참여정부는 결국 '전쟁참여정부'였다.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 이라크의 평화를 짓밟는 더러운 전쟁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단지 노무현 개인의 이름을 더럽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은 이라크에 파병된 우리 군인들과 우리 국민 모두를 전범으로 만들었다. 이제 이라크 국민들은 노무현과 우리를 침략자로 기억할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미군과 똑같은 작전을 수행할 수 밖에 없고 미국이 이라크에서 민중학살을 계속 자행하는 한 자이툰 부대 역시 이라크 민중 학살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한 미국의 군사작전에 동원되는 한국군도 침략자가 될 것이고 평화를 애호하는 수많은 민중들과 역사가 부시를 전범으로 기억하는 한 이 더러운 전쟁에 동참하는 노무현도 역시 전범으로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일제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그 침략의 참혹함을 영원히 잊지 않고 있듯 말이다. 이 땅 4천만 민중을 역사의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얻을 수 있는 국익은 한줌도 안되는 지배세력의 번영과 그들만의 안보를 위한 것임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IMF이후 우리에게 번영이란 몇몇 금융투기꾼들과 그에 빌붙어먹는 금리생활자들에 한정되어 있고 수많은 민중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도 자신의 생활을 충분히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아예 일자리도 얻지 못한 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익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안보도 이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민중들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한미동맹이다. 노무현은 이제 오갈 데 없는 전범이 되었다. 역사는 노무현대통령을 침략국의 수장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당사자로 기억할 것이다. 역사는 또한 그를 민중을 기만하고 도탄에 몰아넣으며 민주주의를 배신한 통치자로 기억할 것이다. 역사는 단 한번도 이 같은 통치자를 용납한 적이 없었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에 분노하는 민중들은 더 이상 노무현 정권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 민중들은 오늘 파병된 자이툰 부대를 철수시키는 투쟁과 함께 노무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역사는 노무현을 민중들이 쫓아내버린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위의 글이 상당히 오래된 글이고, 당시와 비교하여 냉전 이후 변화의 양상 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글을 하나 더 번역하였습니 다. (번역에 자신이 없는 대목이 많지만, 앞으로 확실한 번역본이 나온다 는 얘기가 있어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6 월호에 실렸습니다.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 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대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Etienne Balibar, "Outline of a Topography of Cruelty: Citizenship and Civility in Era of Global Violence", in We, the People of Europe? - Reflection on Transnational Citizenship, trans. James Swenson (New Jersey: Prinston University Press, 2004), pp. 115-132. ________________________
공공연맹 산하 293개 사업장(13만여 조합원)중에서 올해 주5일제 실시사업장(정부산하기관 및 1,000인 이상 사업장)은 50여개 사업장이다. 거의 모든 사업장은 주5일제 강제시행일인 7월 1일 이전에 거의 타결이 되었다. 그 중 궤도연대(서울, 인천, 부산, 대구지하철, 도시철도, 철도 등) 소속 사업장이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쟁취,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신규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오는 7월 21일 총파업의 배수진을 치고 투쟁에 들어간다. 연맹에는 장기투쟁사업장도 많다. 7개월 째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예술노조와 광주환경위생노조, 장애인콜택시노조, 민주적 기관운영 쟁취를 위해 싸우는 소아마비정립회관노조, 위장폐업에 맞서고 있는 자동차운전학원노조 등등.... 오랜 시간 질기게 싸우는 노조들도 있지만, 그 외 연맹 산하에 많은 노조들은 회의하고, 간담회하고, 교섭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장황히 우리 연맹 상황을 읊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할 일도 많고, 싸울꺼리가 많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안이 이렇게 많으니,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파병을 철회하라고 절규하며 죽어간 후 연일 광화문이며, 종묘에서 ‘파병철회’를 외치는 정세 속에서 노동조합은 참 할말도, 할 일도 없이 무기력해지는 것에 대한 상대적인 강조일 뿐이다. 변명하자면 그 만큼 본의 아니게 내부사정으로 신경 못 쓰고 있다는 말이다. ‘반전’, ‘평화’,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무기력증.....이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진정한 노동운동의 혁신과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을! 이런 얘기 나오면 사실 좀 답답해진다. 지난 파병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노동자들의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주로 광화문에서 저녁 7시부터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가면 노동자들(공공연맹 조합원)은 촛불을 들고 수동적으로 몇 시간 씩 앉았다가 가는 게 고작이다. 총연맹이 조합원들에게 집회 참가 지침을 내리고 조직하는데도 그나마도 몇 명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집회가 워낙 길어서-보통 3시간 이상이다!!- 끝까지 다 있지도 못한 채 이내 자리를 뜨고 만다. 집회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일어서는 이유를 노동자들이 참을성이 없고, 파병철회에 대한 의지가 적어서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집회 시간이 긴 것도 있지만, 사실 촛불집회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반감이 크게 작용한다. 팔뚝질 한번 안 하고, ‘아침이슬’, ‘광야에서’, ‘솔아솔아’만 연거푸 부르며 내내 쭈구리고 앉아서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주세요~~”라고 외치는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되려 기가 빠져서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번 참석한 사람들은 집회에 다시 잘 오지도 않는다. 어떤 조합원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시간만 아깝다”고 잘라 말한다. 집회 내내 내재되어 있는 교묘한 논점과 정치적 분열지점을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오히려 촛불로 분노를 통제, 조절 당하고 있음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파병’은 반대하지만 노무현은 반대 안 하는 ‘착한 시민’, ‘덜 정치화된 시민’으로 포장됨을 느끼는 순간,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불청객이 된 듯이 두리번거리다 가버리는 것은 투쟁 속에서 단련된 훌륭한 감각 덕분일까? 노동자들을 파병반대 투쟁에 좀 더 힘있게 조직화하려면 역시 ‘노무현 퇴진’과 ‘파병철회’를 나란히 앞세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좀 더 신이 나서 투쟁할 것 같단 말이다. 이제 집회 성격 탓은 그만하겠다. 사실 반전평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독자적 실천이 너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작년 초 파병반대 투쟁을 진행 할 때도 독자적인 투쟁한번 못해보고,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해 놓은 집회에 참석해서 ‘집회가 너무 유하니 뭐니’, 불만만 토로하다가 돌아선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특성을 살리고 노동조합 내에서 순전히 반전평화, 파병반대를 가지고 투쟁 사례도 거의 없다. 하지만 김선일씨가 제국주의와 테러리즘이 양산하는 ‘피의 악순환’ 속에서 무참히 죽어간 뒤, 그나마 올해 노동조합의 반전투쟁은 좀 달라진 듯 한다. 공공연맹 산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등이 속해 있는 항공연대에서 지난 6월 24일 파병군 수송비행 거부선언을 했고, 연맹 산하의 경기도노조는 지난 6월 30일 “정부가 이라크파병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미군부대 안에 있는 쓰레기 수거 거부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모두 노조의 특성을 살린 실천적 투쟁이다. 공공연맹 산하 노동조합 이외에도 화물통합노조(준)도 지난 6월 25일 “이라크로 가는 군수물자를 운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전교조는 6월 28일 ~ 7월 3일을 ‘고 김선일씨 추모기간’으로 정해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계기수업을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일제히 진행했다. 이밖에 금속노조 대구지부는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파병반대 등을 내걸고 대구에 있는 미20지원단 앞에서 이라크 파병철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일천했던 일년 전 노동조합의 파병반대 투쟁과 비교해 보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반전’, ‘평화’,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노조의 무기력증을 환기시켜주는 의제들을 노동조합 내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미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임단협에 매몰되는 경제적인 투쟁으로는 ‘조직율’하락으로 대변되는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사회적 보편적인 과제를 가지고 이른바 ‘대안 세계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은 남한사회 내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노동조합 외부에서 혼란스럽게 마구 흘러 들어오는 ‘테러’, ‘저항폭력’의 개념들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입장 없이 수용할 것이 아니라, 올바로 정립하고 근본적인 비판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야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전쟁 속에서 이라크 노동자민중들의 인권, 노동권, 여성권에 대해 제기해야 한다. 그래서 ‘공장을 뛰어넘는 연대’와 더 나아가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를 경험하자! 이라크에서 희생된 1만 여명의 김선일에 대해 침묵하지 말자! 노동운동, 노동조합 운동이 그토록 열망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적 투쟁과 위기탈출을 위한 몸부림은 오늘날 ‘반전평화’, '파병철회‘ 투쟁과 같은 사회운동의 텃밭에서 그 씨앗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PSSP ※ 이 글은 파병이 되기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하지만 시기적 경과를 감안하더라도 파병철회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유효하기에 이 글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