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동법 개악, 그 역사와 교훈 야권연대를 통한 노동법 개정이 실현되는가? 2월 27일 민주통합당과 한국노총은 공동으로 28대 노동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3월 6일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은 정책협약식을 개최했다. 그리고 3월 10일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는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을 발표했다. 3월 26일 공개된 민주통합당의 정책공약집은 방대한 범위의 노동법 개정을 약속했다. 물론 일부 심각한 쟁점이 있고 모호하게 표현된 대목도 많지만, 정책공약의 상당수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은 불과 1년 전만해도 노조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에 난색을 표시했다. “특수고용 및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을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게 다루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있다”, 손배가압류 제한에 관해 “정당하지 않은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면 형법과 배치된다”, 산별교섭 제도화는 “법으로 명시할 문제가 아니다”, 단체협약 구속력 확장은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타임오프는 의미 있는 제도이므로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필수유지업무제도는 “제도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제도 자체의 폐지는 과도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어떤 이유로 태도를 돌변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민주당이 갑자기 말을 바꾸었기 때문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집권의 역사는 곧 노동법 개악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전 기간에 걸쳐 고용형태 신축화, 노동시간 신축화, 임금 신축화는 강도 높게, 매우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우리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민주당 집권의 역사를 회고해보면 그들이 지속적인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파괴하고 노사관계로드맵을 통해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거의 모든 수단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역사를 통해 노동조합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을 찾아야 한다. 1998년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도입 (김대중 정부) 김대중 당선자는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제 즉각 도입을 결정했지만 이를 ‘사회적 협의’ 형식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그는 노동계가 정리해고 조기 도입을 수용할 경우 연내에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 공무원·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고용안정 재원 확충을 수용할 뜻을 밝혔다. 그에 따라 정리해고제 즉각 시행, 파견근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노사정위원회 <사회협약>이 체결되었다. 반면 김대중 당선자가 약속했던 사항들은 곧바로 실행되지 않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예를 들어 ‘실업자에 대해 초기업 단위 노조 가입자격을 인정한다’는 약속은 현재까지도 입법화되지 않고 있다. 당시 노사정 합의를 이끌었던 세력은 <사회협약>이 결코 불리한 교환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경우 그 요건과 절차가 세계적 추세에 비추어 볼 때 크게 나쁘지 않고 어차피 정리해고제는 1년만 지나면 시행될 예정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88대 184로 사회협약안을 거부했고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리해고제 법제화 반대로 재교섭을 요구하기로 결정했으나, 노동부 장관은 “민주노총이 부결을 한 것은 내부 문제요, 대타결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민주노총 파업선언에 강경하게 대처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노동조합 운동 탄압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2001년 여성노동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 (김대중 정부) 2000년 4월 김대중 정부는 노동개혁 핵심과제의 하나로 모성보호 제도개선을 선정했다. 이에 호응해 민주노총과 여연 등 8개 단체는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를 구성하여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민주당 한명숙 의원은 산전후 휴가기간 연장뿐만 아니라 여성의 야간·휴일, 시간외 근로 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에 속한 일부 단체는 산전후 휴가가 90일로 늘어나고 고용보험에서 육아휴직급여가 지급되는 것만도 큰 성과라며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개악, 즉 여성의 시간외 근로 제한 완화에 반대하며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를 탈퇴했다. 하지만 2001년 7월 법률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무난하게 통과되었다. 당시 근로기준법 개악을 지지했던 논자는 여성에 대한 보호정책이 오히려 여성의 고용기회를 제한하고 임금수준을 낮추며 승진, 승급, 퇴직, 정년과 같은 여러 조건에서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즉 야간, 휴일근로가 요구되는 업종과 직무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여성에 대해서만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여성 취업의 제한, 고용상의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였다. 노무현 후보의 노동법 개정 약속 노무현 정책선거특별본부가 발간한 <떳떳한 노무현 당당한 대한민국>이 제시한 노동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5대차별(학벌,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을 시정한다는 항목의 하나로 ‘임금과 근로조건을 동일하게 대우하겠다’, ‘근로소득자의 소득 공제 폭을 확대하고 종업원 지주제와 성과분배제도를 정착시켜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지원하겠다’는 언급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노무현 선본 노동위원회가 발간한 <노동자의 친구, 서민의 벗, 노무현>은 몇 가지 추가적인 언급을 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 남용을 막고 균등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관계법을 개정하겠다”, “학습지 교사, 레미콘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2003년 5주일근무제(40시간 노동주)와 변형근로제 확대 김대중 정부는 2000년 5월부터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정위원회 내에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2001~2002년 노사정위원회는 합의 도출에 실패했으나 정부는 독단적으로 입법안을 추진했다. 2002년 10월, 정권 말기라는 상황에서 정부입법안이 무산되었으나 노무현 정부 출범 후 2003년에 다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2003년 8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근로기준법 개악안의 핵심은 주 44시간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어드는 대신에 휴가제도가 변경되고, 특히 변형근로제(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대된다는 것이었다. 휴가제도 변경에 따라 유급 월차휴가가 삭제되고, 가산휴가 기준 연도가 연장되고, 여성 유급 생리휴가가 무급으로 바뀌었다. 또한 연장·야간 근로에 관한 보상휴가제가 도입되고,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가 신설되었다. 그에 따라 노동자가 동일임금을 받으려면 실제 노동시간 단축분이 거의 상쇄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을 유지해야 했다. 특히 휴가제 변경에 따라 장기 근속자와 여성 노동자는 오히려 노동시간을 확대해야 했다. 또한 1996년 변형근로제가 재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변형근로제가 확대됨에 따라 장차 1년 단위 변형근로제 도입을 향한 전기가 마련되었다. 2006년 11월 파견제, 기간제 관련 법 국회통과 (노무현 정부)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특위가 설치된 후 ‘기간제, 파견, 단시간 근로’와 ‘특수형태근로’를 다루는 분과위가 구성되었다. 김대중 정부 집권 시기였던 2002년 5월에 비정규 근로자 대책에 관한 노사정 1차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근로감독 강화, 사회보험 적용 확대였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는 아무 관련성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9월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개악 계획을 발표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경우는 파견허용 업종을 네거티브 방식(몇몇 업종만 제외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도 최장 6개월까지 파견제를 허용한다, 파견 허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 사용사업주는 3년간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3개월 휴지기간만 가지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3년을 초과한 경우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용의무)는 조항이 있었으나 이전에는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용의제)고 규정했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더 후퇴한 것이었다. 또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11월에 최종 통과된 안은 2004년 안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동일했다. 그 차이는 형식적으로 파견허용 업종은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되 확대한다, 파견근로에서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조정한다, 기간제는 2년 초과시 무기근로계약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은 보호라는 미명으로 파견제, 기간제 고용형태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오히려 그것을 확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007년 6월 특수고용 관련 법 발의 (노무현 정부) 한편 노무현 정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추진했다. 요지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개념을 새로 도입해 단체결성권과 교섭권을 주고, ‘간주근로자’ 개념을 도입해 노동3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법안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가 결성한 단체는 노동조합이 아니므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쟁의행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심지어 설립필증을 교부받아 노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도 정부안에 따르면 모조리 해산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었다. 또한 전혀 불필요한 간주근로자라는 새 개념이 도입되면 특수고용 노동자 사이의 분할만 초래할 수 있었다. 결국 정부가 발의한 법률은 ‘특별법’의 형태이기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정부 입법안은 2007년 큰 논란을 겪었지만 결국 17대 국회 종료로 처리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험협회를 비롯해 경제계는 강력한 반발 의사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관련 법안도 본질적으로 노무현 정부 안과 동일했다. 2003년 노사관계로드맵 발표, 2006년 9월 한국노총의 합의, 2006년 12월 국회통과 노무현 정부는 2003년 8월 주5일제를 미명으로 한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과시킨 후 곧바로 2003년 9월 노사관계로드맵을 발표했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워낙 방대한 분야에 걸쳐 노동권 제약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로드맵은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필수업무 유지의무를 부과하며 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한다,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한다, 부당해고 판정시 노동자가 요청하면 복직 대신 금전보상을 허용한다, 정리해고 사전 통보 기간을 해고 인원에 따라 차등 설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외에도 불법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 청구권 보장,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요건 완화, 변경해지제 도입과 같은 내용도 포함되었다. 한편 2004년 5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 경총과 대한상의 회장이 만나 ‘노사정 지도자 회의’(노사정대표자회의)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에서는 사회적 교섭이 심각한 쟁점으로 부상해 급기야 2005년 3월 대의원대회에서는 단상점거와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한다. 결국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한다. 하지만 2006년 9월 11일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기습적 야합을 감행했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도입,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3년간 유예한다는 조건으로 노사관계로드맵의 상당 부분을 합의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대한 연대 중단과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그 결과를 되돌릴 수 없었다. 법안은 2006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의 연속성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기조와 다르다는 것은 억견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의 제일 목표는 고용률 상승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두 가지 축의 정책을 추진했다. 첫째, 비정규직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고용규제를 완화하면서 약간의 비정규직 보호 대책을 수립하고자 했다. 둘째, 장시간 근로를 억제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는 차별시정 제도를 활성화하는 법률안을 제출하고,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을 권장했다. 또한 “주당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에 휴일근로도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사용을 권장하고 그 단위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따라서 비정규직 확대와 약간의 보호수단이 짝을 이루는 고용형태의 신축화, 장시간 노동 억제와 맞바꾼 노동시간 신축화라는 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조를 공유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노동법 개악사,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첫째, 선거 시기에 제시된 공약이 약속한 그대로 실행된 적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노동법 개정은 노동시간 단축, 모성보호, 비정규직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작하여 결국 근로기준법 개악으로 끝났다. 예를 들면, 노사정위에서의 공방 → 노사정위 합의 무산 → 노사정위 공익위원안 형식의 건의 → 정부의 독단적 입법 추진 과정에서 의제의 변질이 발생한다. 또한 국회 상임위원회 논의의 과정에서의 대립, 파행, 절충, 기습통과, 그 후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법안은 그야말로 ‘누더기’가 되곤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본의 요구가 노골적으로 반영되고 노동법 개정 취지와 정반대의 효과가 양산된다. (최근 3월 16일 민주통합당 신두식 정책실장은 “야당이 다수당이 되어도 입법은 여론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며 민주당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발언을 남겼다.) 둘째, 따라서 민주노조 운동은 노동법 개정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무엇인가 스스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법안이 변질되고 누더기가 되는 과정에서조차 노동자운동 내외부에서 이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런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3월 14일 민주노총, 한국노총 주최로 각 정당의 노동정책을 비교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돌 맞을 각오로 말하겠다”면서 “파견근로를 전면 금지하던 시대는 지났고 따라서 파견근로를 원칙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파견근로를 규제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 수용은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유사해 보인다. 당시에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요건과 절차가 세계적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불리하지 않고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다른 약속과 교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당시 지도부는 노동자의 기본적 요구와 원칙을 저버림으로써 결국 지도력 붕괴로 이어졌다. 따라서 노동조합 운동은 향후 노동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벌어질 굴곡을 예상하며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무엇인가 스스로 명확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민주노총은 항상 최악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투쟁 태세를 준비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협상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려 했지만, 정부의 독단 때문이든, 한국노총의 ‘야합’ 때문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든 간에 노동법 개악이 관철되는 과정에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민주노총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의도를 오판하거나 상층 협상에 관성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어쩌면 2012년 총선, 대선을 경과하는 정세는 노동조합 운동이 정세를 오판하기에 최적의 상황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2012-13년에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투쟁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현재 경총은 ‘노조의 정치화’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노동계의 정치집단화를 반대하면서 경영계가 정치 집단화되는 일은 추호도 없을 것”이라며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실제로 민주당이 핵심 법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용형태, 노동시간, 임금의 신축화라는 목표를 향해 집요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과 산하 노동조합의 투쟁이 전개되고 계급 대립이 격화된다면 민주당의 위선과 기만, 또는 내부 모순은 곧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전국공무원노조 설립신고 관련 탄압을 중단하고 즉각 신고증을 발부하라! 전국공무원노조가 지난 3월 26일 고용노동부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과거 고용노동부는 해고자 등을 빌미삼아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두 번이나 반려하면서 공무원노조를 법적인 실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탄압을 가한 바 있다. 그런데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다음 날부터 고용노동부가 “각 지방의 고용노동청을 동원하여 각급 기관에 지부장 소속부서 조직현황, 지부장 근무상황부, 출장내역서, 공무원노조 조직도, 업무분장표, 근무상황 결재공문 등 온갖 자료를 요청하며 방문조사에 협조를 하라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쯤되면 노조설립신고서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노조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용노동부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과 법률이 정한 신고제를 실질적인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지탄을 받아 왔다. 이번에도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잘못된 행태를 고수하면서 노조설립신고서 심사를 넘어서 공무원노조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온갖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반노동조합, 반노동자적 작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고용노동부는 즉각 노조사찰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올해 결성 10년을 맞이하였고, 법적 설립신고에 상관없이 실체를 가진 노조로서 활동해 왔다. 더욱이 그 규모도 14만에 이르렀고 공무원사회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동행정을 관할하는 부처라면 응당 설립신고증을 발급하여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통제와 탄압의 발상으로 꼬투리만 잡으려 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그 결성과 활동 자체가 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뚫고 공무원 노동자의 힘과 제 노동사회운동 진영의 연대로 만들어온 역사이다. 고용노동부가 계속 정당한 설립신고서 발부를 회피하기 위한 빌미를 찾는 비열한 행위에만 골몰한다면 노동자 민중진영의 비판과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12. 3. 30 사회진보연대
전북 버스파업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문 국회에 입성하기 위한 화려한 말들의 성찬 속에서,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는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이 우리가 목도하는 비참한 현실이다. 지난 3월 21일, 예순살의 버스노동자, 고 최대승 동지가 버스 자본가의 불법적인 직장폐쇄로 목숨을 잃었다. 이미 민주버스노조 전북지부장 남상훈 동지는 망루 위에서 12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고, 새만금교통 양이식 분회장 동지 역시 9일째 망루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지금 전라북도는 버스노동자들의 절규로 가득 차있다. 대체 버스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가. 470여일이 넘은 전북고속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146일간의 투쟁이 끝난 지 10개월 만에 재파업에 돌입한 전주시내버스 노동자들의 투쟁,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어버리고 6개월째 투쟁하고 있는 부안새만금교통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라북도는, 이미 노동자의 지옥이다. 그러나 호남의 집권여당은 버스자본가들, 한국노총 어용노조와 함께 버스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146일간의 버스파업을 근거도 없이 불법이라 매도하며 공권력과 대체인력을 투입해 버스노동자들을 장기파업의 고통으로 몰아갔다. 전북도민의 피같은 세금을 버스자본가들에게 아낌없이 보조금으로 퍼주고도 단 한차례도 관리, 감독한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버스자본가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졌고 전주시내버스 5개사 민주노총 조합원은 극심한 탄압에 시달렸으며 전북고속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추방당해 16개월 동안 거리를 헤매고 있다. 부안에서는 버스자본가들의 야합으로 멀쩡한 회사가 하루아침에 폐업처리가 되고 33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북고속 노동자들을 보라! 단지 일자리로 돌아가고자 할 뿐이다. 단지 노동자들의 천부인권인 노동조합을 인정하겠다는 기본합의가 필요할 뿐이고, 오직 그것만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전북고속 노동자들 지난 470여일 동안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아왔다. 전주시내버스 노동자들을 보라! 단지 민주노조의 인정과 단협의 체결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전주시청은 교섭에 성실히 응하지 않는 버스사업주들을 행정적으로 쉽게 강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하루 5천만원의 예산으로 대체버스를 투입하며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이를 통해 투쟁의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 불법적인 대체인력투입과 세금낭비에 전주시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부안군청은 새만금교통 노동자들의 일터를 하루아침에 없애 버렸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결정해도 모자랄 판에 단 사흘 만에 폐업신고를 받아들이면서, 새만금교통 노동자들이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해도 이를 무시하기만 하면서, 부안군민의 발을 부안군청 스스로 묶어두었다. 이것이 호남의 집권여당에 대한 반노동적 진실이다. 이처럼 아무리 절박하게 요구해도 외면하는 전라북도 도청과 시청으로 인해, 우리는 결국 절박한 마음으로 이곳 서울까지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민과 복지’의 탈을 쓴 호남의 집권여당이 자신의 안방과도 같은 전북지역에서 행하는 반노동적 탄압을 이곳 서울에서 만천하에 폭로할 것이다. 호남의 집권여당이 행하는 기만적인 친서민 행보 뒤에 있는 추악한 진실을 모두에게 알려낼 것이다. 우리는 서울 곳곳의 거점에서 전북 버스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을 알려낼 것이다. 서울 지역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투쟁하며, 우리가 이토록 탄압받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호남의 집권여당에게 있음을 알려낼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하며, 470여일이 넘게 인내해온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모든 책임은 그들에게 있음을 명백히 한다. 1.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전북고속 황의종 사장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전북고속 장기파업사태를 해결하라! 2. 고 최대승 동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직장폐쇄로 일관하고 있는 전주시내버스 5개사의 사업주를 처벌하고 성실교섭을 강제하라! 3. 기만적인 폐업에 사죄하고 부안 새만금교통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하라! 이미 우리는 500일이 가까운 시간동안 싸워왔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우리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더욱 큰 투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민주노조 사수하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2012. 3. 26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문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 부쳐 오늘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목표로 출범했던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공식적으로 지지할 것인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집행부는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그 통합진보당이 전면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화한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총선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집행부는 조직 내부 반론과 의결 절차를 무시하고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정치노선을 따라 국민참여당과 민주통합당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민주노총이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총선방침을 바로잡아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되살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오로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의원 동지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집행부의 독단과 전횡을 바로잡자 지난 1월 31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미달로 유회되어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논의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집행부는 여러 지역본부·산별연맹 대표자들의 강력한 반대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투표를 하나의 정당에 집중하는 방안’을 끝내 표결로 안건을 처리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후 상임집행위원회는 전화 여론조사 방식으로 집중 투표 정당을 정하기로 했다. 공식 의결기구인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유회되고 별도의 위임절차도 밟지 못한 안건을 하급 기구인 중집에서 졸속적으로 처리한 것은 민주노조의 회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황당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애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다수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가 제외된 결과,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이 표본으로 취합된 것이다. 여론조사로 조직의 중요한 방침을 정한다는 발상도 상식 이하지만,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측정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표본추출 절차마저 지키지 않은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론조사는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비판을 잠재우려는 집행부의 패권적 발상이었던 셈이다. 오늘의 임시 대의원대회는 이러한 집행부의 독단과 전횡을 제어하고 노조 민주주의의 원칙을 바로잡는 중요한 자리다. 책임있는 논의와 의결로 집행부의 비민주적 행태에 경종을 울리고 의결기구의 권위를 다시 세우자. 민주통합당과의 무원칙한 야권연대를 반대한다 민주노총 총선방침은 ‘진보정당의 약진과 진보민주세력의 집권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정세 인식 하에 의회권력 교체(여소야대)와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총선방침은 민주통합당과의 전면적인 선거연합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 의제 전면화’라는 민주노총의 목표는 오히려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라는 수단에 종속된다. 이는 역으로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희석시키거나 변질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민주통합당은 파견법 폐지 대신 현행 파견법의 부분적 개정을 제시하고 있다. 설령 민주통합당의 공약대로 파견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불법파견으로 인정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3월 10일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합의한 <범야권공동정책합의문>에는 ‘불법파견 금지’라고만 언급되어 있다. 민주노총 요구를 반영하여 파견법 폐지를 당론으로 삼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입장이 야권연대 결과 실제로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의 문제는 제대로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또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체결한 한미 FTA의 시행 반대”로 합의했다. 한미 FTA가 아니라 MB FTA 반대 수준으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 FTA 체결을 주도했고 국회비준을 방조한 뒤 곧이어 등원을 결정한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볼 때, 설령 여소야대와 정권교체가 실현된다한들 이들이 한미 FTA를 폐기할리는 만무하다. ‘좋은 FTA’를 위한 재협상은 이명박 정부도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은 아무런 원칙도 근거도 없는 야권연대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 노동법 전면 재개정,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노동유연화 정책에 반대하는 분명한 기조와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투쟁 전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를 체결하고 비정규직법을 개악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주도한 세력이다. 이들과의 통합을 주도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국민참여당이 과거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성하고 있으므로 통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수적으로도 민주노동당이 다수를 점하므로 국민참여당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국민참여당의 합류로 말미암아 통합진보당의 강령에는 진보정당이라고 할 때 응당 포함되어야 할 반신자유주의 또는 반자본주의적 지향이 대폭 후퇴하거나 제외되었다. 당명에서도 ‘노동’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버렸다. 대신 노동을 복지의 하위 개념으로 배치하고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총선 주요 공약도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이다.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 중심성을 상실하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설 전망을 밝히지 못하는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정당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며칠간 우리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통합진보당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정희 대표 선거캠프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사실, 비례대표 후보 선출 및 순번 배정 과정에서의 부정 시비들, 성폭력 은폐 의혹이 제기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결코 개인의 과오로 치부할 수 없는 행태들이 속속 드러났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 세력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진보의 위선을 고발하는 십자포화를 퍼부으면서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냉소와 환멸을 부추기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성폭력 전력 후보자가 개인적으로 사퇴 의사를 표한 것 외에는 대체로 큰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문자는 당원 200여 명 정도에게 보낸 것이라서 용퇴가 아닌 재경선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대표단도 사태의 본질을 경선불복으로 규정하고, 이정희 대표가 후보를 사퇴하면 오히려 야권연대가 무너져 자신들의 당선 가능성이 작아진다고 판단했다. 당 내에서도 보수세력의 정치공세에 대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으로 이정희 대표를 두둔하는 옹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후보자 개인의 당선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집착한 결과 진보정당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정능력을 상실하였다. 이는 근본적으로 원내교섭단체 실현과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신자유주의 세력과 무원칙한 야권단일화조차 불사하는 통합진보당의 정치노선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다. 민주노총이 이러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이들이 야권연대로 단일화한 민주통합당을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것은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총선방침은 민주노총의 요구 실현에 동의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원칙에 입각해 활동하는 정당 및 정치세력과의 연대와 협력, 지지와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대의원들의 책임있는 논의를 통해 집행부의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총선방침을 바로잡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
쌍용차 살인진압이 우수사례라고? 정신나간 경찰청의 야만적 작태를 규탄한다!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라! 경찰청이 지난 11일 자체적으로 지난 3년간 최고의 사건과 최악의 사건을 각각 10개씩 선정해서 발표했다. 그 가운데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력적으로 짓밟은 것을 ‘쌍용자동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해결’이라며 최고의 사건, 즉 우수 진압사례 5위에 꼽았다. 경찰은 “기능 간 유기적 협조, 체계적인 수사계획 수립 등을 통해 대규모 연행자 사법처리로 공안사건 수사 모범사례”라고 쌍용차 진압 사례가 선정된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생존권을 지키고 노동자들이 함께 살기 위해 77일간이나 공장 안에서 무수한 공권력의 탄압에 맞섰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군사작전 식으로, 무자비한 구타와 폭행으로 잔인하게 진압한 것이 모범사례라는 것이다. 경찰이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을 때려잡는데 물불 가리지 않은 것도 모자라 어찌 이제는 그것을 이리 자화자찬하며 최소한의 양심도 내팽개치고, 아직도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단 말인가? 정신이 나가지 않았으면 이럴수는 없는 것이다. 날마다 헬기로 노동자들을 잠못자게 위협하고 최루액 뿌리고, 무장 경찰을 투입해 테이저건에 고무탄을 쏘며 노동자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고 진압과정에서 몽둥이와 방패로 야만적으로 폭행을 가한 것이 ‘우수 진압’인가? 숱한 부상자를 만들어내고, 진압 이후에도 그 상처와 깊은 트라우마로 인해 스물 한명이나 되는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망한 것이 과연 ‘최고의 사건’이란 말인가? 경찰의 살인적인 강제 진압과 해고 사태로 인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런 몰상식한 발표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오늘 이러한 잘못된 행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며 항의하던 이들을 쌍용차 지부장을 포함해 6명이나 연행해 가는 치졸한 작태를 저질렀다. 우리는 지난 2005년 11월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홍덕표 농민열사가 경찰폭력으로 숨진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경찰의 무수한 강제 폭력 진압도 마찬가지다. 2009년 1월 생존대책을 요구하는 용산 남일당 건물의 철거민을 과잉 폭력진압하면서 철거민 5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대형 사건이 아니라도 경찰은 시시때때로 폭력성을 표출하며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동자, 농민, 시민들을 곤봉과 방패로 구타하고 시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경찰의 폭력성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통제해야 이러한 사태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당장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연행한 이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2012. 3. 13 사회진보연대(www.pssp.org)
2012년, 여성의 미래는 투쟁하는 여성의 힘으로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봉기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쉼 없이 일하고도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달력에 표기될 정도의 보편적인 ‘여성기념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104년 전의 여성들이 투쟁한 역사를 계승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게 꽃 한 송이 건네며 가사노동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 몇몇 정치인들에게 여성의 삶과 미래를 맡기는 것도 아니다. 현재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구조에 맞서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이를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고 ‘복잡한 고용형태’가 일반화되며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일하는 노동자가 다수가 되었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지. 돈도 좀 벌어오고’라는 인식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일하러 나선 여성의 60% 이상에게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때문이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라 불리는 직종들은 그 동안 여성이 집안에서 수행해온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연장에 있는 일이다. 여성이 무급으로, 집에서 쉽게 해 온 일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 게다가 여성노동자에게는 숙련과 전문성 외에 추가로 사랑과 희생, 봉사와 인내가 요구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특수교육보조교사, 전화상담원, 간병인,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는 노동권을 입에 담는 것마저 금기시 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부당한 인격적 대우로 연결된다. 민주노총이 지난 해 실시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비정규직 일수록 더 많이, 더 강도 높은 성희롱을 당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나이와 상관없이 사장이나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사례나 작년 투쟁에서 승리한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여성의 존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주목하자 이러한 현실에 맞서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6개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는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최저임금을 돌파하고자 집단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는 동시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폐해에 맞선 투쟁으로 의미가 있다. 원청인 대학당국과 하청 용역업체는 어용노조를 세운 뒤 개악된 노조법을 활용해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교섭을 회피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3월 한 달 동안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 운동이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계기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통한 자본의 전략을 현장에서부터 깨는 싸움을 확장해야 한다. 보육교사의 투쟁에도 불씨가 붙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아온 보육교사들은 ‘교사의 소명’만으로 참으며 일 해왔다. 하지만 몇 년째 계속된 실질임금 동결,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육교사 임금동결안은 보육교사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보육교사들의 투쟁을 계기로 간병, 요양 등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사회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보수세력 마저 무상보육 정책을 수용하면서 보육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보육노동을 제공하는 당사자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 분야의 여성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 정책이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열악한 여성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청소, 보육노동자 외에도, 매년 봄을 해고와 함께 맞게 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또 장시간 노동 외에도 감정노동을 제공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마트 노동자의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거리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재능학습지 교사들, 노조탄압과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KEC 노동자의 투쟁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 저임금과 해고위협에 맞서, 생계를 위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성적 폭력에 대항하여, 전쟁과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투쟁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역시 1920년대 고무공장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1970년대 민주노조 사수 투쟁으로, 그리고 지금 신자유주의와 빈곤에 맞서는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를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위한 첫 출발임을 기억해야 한다. 2012년 총대선 국면을 여성노동자 투쟁의 시기로 올해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 민심을 다시 얻기 위해 정당 통합, 인적 쇄신 등 선거 이벤트를 추진하면서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다. 일부 운동세력은 유권자 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통합당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도권 정치 안에서 법·제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을 위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세력과 연합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은 노동유연화를, 특히 여성에게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유연근무제의 도입이 오히려 불안정한 파트타임 일자리 양산에 기여했던 점, 사회서비스 확충이 결국 돌봄서비스를 시장화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밀어 넣은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몇 후보에게 실행이 불확실한 약속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연대로 정치인들이 고민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표몰이가 필요한 시즌에서는 사탕발림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가 개선된 것은 정치인들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104년 전부터 투쟁해 온 여성들의 의지와 행동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서로를 조직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하자 민주노총에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전반적으로 낮다.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은 낮다.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에 더 많이 가입하고,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가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노동조합이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모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역할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 과제기도 하다. 1970년대의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사수 투쟁의 주역이었지만, 그녀들은 결혼과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의 주역들 대부분은 현재 노동자운동 내부에 남아있지 않다. 이후 1987년을 전후하여 전국적 투쟁을 만들었던 대공장 남성노동자가 현재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성이 상징이 돼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는 여성노동권에 대한 인식과 지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없다면, 민주노총은 ‘여성권’없는 반쪽짜리 노동권만 외치는 노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또 엄마이자 아내로서 살아가며 겪는 경험을 털어놓으며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결하고 연대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나 마트노동자가 있지만 밤늦게까지 어린이집과 대형마트가 열려있길 원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간병노동자가 있지만 간병비 때문에 버거워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같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안정된 여성일자리와 생활임금 보장, 여성노동자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권 보장 등 공동으로 자본과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내용을 만들 수 있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여성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여성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 여성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 다른 투쟁 사업장이나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특히 필요한 것은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다. 작년과 재작년 서울에서 치러진 여성조합원대회와 같이 여성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공간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통해 여성노동자 공동의 요구를 만들고, 연대의 폭을 넓혀보자. 각 지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여성노동자들이 한 데 모여 우리가 누려야할 권리를 주장하자.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단결과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조직하자.
2012년 2월 1일 밤 9시 반 비행기로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MTU)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이 본국인 필리핀으로 귀국했습니다. 2006년 2월에 입국한 지 6년 만입니다.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은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노동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돈을 벌기 위해 전자제품 엔지니어, 건설노동자, 집 수리공, 학교 직원, 상담교사, 비서, 주유원, 쇼핑몰 점원, 가정부, 베이비시터, 유리창닦이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노조활동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로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처음에 울산에 있는 어느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첫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필리핀 여성노동자가 한국인 동료 직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건을 겪습니다. 그가 술먹고 밤에 기숙사에 와서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를 하는 것을 겨우 뿌리치고 그녀는 미셸 동지와 함께 도망을 쳤습니다. 나중에 신고를 했지만 그 직원은 별다른 처벌 없이 겨우 2주 정직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차별과 폭력적인 행위는 다른 공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성의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서는 휴일도 주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꼴로 쉬었다고 합니다. 쉬지 못하는 달도 있었습니다. 임신한 여성을 해고해서 본국으로 돌려보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미셸 동지는 혼자서 이러한 노동법 위반을 노동부에 고발해서 회사 측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동료의 해고 문제에 대응하다가 이주노조를 알게 되었고 노동조합 활동의 취지에 공감해서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화성 지역에서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엄브렐라’(Umbrella)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여성문제, 성차별 문제 등을 논의하고 교육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주노조 4대 위원장인 토르너 림부 위원장과 압두스 소부르 위원장이 2008년 5월 2일에 동시다발로 출입국에 의해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을 당했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후임 지도부를 선출하지 못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계로 운영되었는데, 2009년에 미셸 동지에게 위원장 제안이 되었습니다. 미셸 동지는 이를 받아들였고 2009년 7월 5일에 임시총회에서 5대 위원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최초의 성소수자 위원장을 뽑았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 뭉클 했던지요. 위원장으로 당선된 이후 미셸 동지는 이주노동자, 특히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는 한편, 각종 인터뷰, 기자회견, 집회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위원장이 되어서도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해야 했기에 낮에는 일을 하고 밤늦게 사무실에 와서 노조 일을 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2009년에 일했던 서울의 봉제공장도 역시 휴게시간 위반, 수당 미지급 등 노동법 위반사항이 많았습니다. 초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업장에서도 미셸 동지는 노동부에 진정을 내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도록 유도했습니다.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검찰경찰출입국관리소에 의한 정부합동 강제단속 추방이 강화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보면서 정부는 단속을 강화했고 이주노조는 7월에 미셸 위원장 주도로 ‘G20을 빌미로 한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에 대한 항의 농성’을 명동 향린교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농성은 8월 말까지 50일 간 계속되었고 그 사이 미셸 위원장은 30일 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식 중에 쓰러져 병원신세까지 지기도 했지만 의지를 꺾지 않고 30일을 채웠습니다. 이 항의농성에 노동운동, 진보운동의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폭넓게 연대를 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한국사회에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2010년 9월에는 민주노총 사상 최초로 이주노동자로서 대의원이 되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참석했습니다. 2011년 2월 이주노조 총회에서 미셸 동지는 위원장으로 재선됩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행동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소는 미셸 위원장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2010년 3월부터 등록되어 일을 하던 회사가 일감이 없어 실질적인 휴업상태에 들어가자 서울출입국관리소는 이를 ‘허위취업’으로 규정했고, 노동부에서는 12월 초 해당 회사에 대한 고용허가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12월 21일에 서울출입국관리소에서는 미셸 위원장을 소환조사 했고 2011년 2월 10일자로 체류비자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이는 이주노동자 운동, 이주노조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면 다 추방하겠다는 인종차별적인 억압입니다. 이에 이주노조에서는 민주노총을 위시한 제 단체와 함께 지속적인 반대투쟁을 했으며 소송을 제기하여 9월 15일 1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노조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출입국 측의 체류비자 취소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1차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출입국 측이 항소하여 현재 2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주노조 미셸 위원장은 이주노동자이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로서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억압과 탄압을 받고 단속추방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고 계속 노조운동을 했습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서도 노동운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주노조, 그 이전의 평등노조 이주지부에서 활동했던 지도부나 활동가들은 모두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도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습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장을 했고 2003-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단 단장을 했던 샤말 타파 동지는 그 따뜻하고 넓은 마음씨로 이주노동자들을 이끌면서도 집회현장에서는 항상 분노와 결의의 연설로 힘을 주었습니다. 2004년 초 과천 법무부 앞에서 집회를 할 때 500여 명의 이주노동자 앞에서 샤말 동지가 모든 이들의 평등한 인권을 역설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2004년 4월에 표적단속되어 네팔로 강제추방 되었지만 돌아가서도 네팔노총(GEFONT)에서 이주사업 담당자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샤말 동지에 이어 농성단장과 이주지부장을 하고 이주노조 초대 위원장이 된 아느와르 후세인 동지는 노조 설립 2주 만에 뚝섬 역에서 새벽 1시에 단속반원들에게 폭행을 당하였고 단속되었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여 구금되어 있으면서 몸도 마음도 상할대로 상했는데도 일시 보호해제된 이후에 위원장 역할을 다시 수행했습니다. 그는 2007년에 방글라데시로 귀국하고 나서도 계속 약을 먹고 치료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자기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구청장 같은 위치에 당선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2007년 지도부였던 까지만 까풍 위원장, 라주 구릉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은 지도부 역할을 하기 전부터 꾸준히 이주노조 간부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으로서 이 동지들은 이주노조의 맨 선두에 서서 활동하였습니다. 단속추방에 맞서 매주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추방을 무릅쓰고 활동하였지요. 급기야 11월에 동시에 표적단속되어 네팔과 방글라데시로 추방되었습니다. 까지만 동지는 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가서 다시 이주 노동을 하고 있고 라주 동지 역시 일본 오사까에서 식당 주방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숨 동지는 방글라데시에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8년 지도부였던 토르너 림부 위원장, 압두스 소부르 부위원장은 선출된 지 한 달 만에 동시에 표적단속 되었습니다. 표적단속이라는 것은 일단 단속대상을 찍고 며칠 동안 미행을 해서 동선을 파악하고 잠복을 통해 특정 시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급습하여 잡아가는 방식입니다. 토르너 위원장은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를 위해 사무실을 나서다 사무실 앞에서, 소부르 부위원장은 집에 있다가 들이닥친 출입국 단속반원들에 의해 잡혔습니다. 토르너 동지는 지금 홍콩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고, 소부르 동지는 방글라데시에서 앞서 말한 단체 활동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탄압에 의해 ‘이주노조 지도부=단속추방’이라는 등식이 작동해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도부 뿐만 아니라 많은 간부, 조합원들이 단속추방을 당했지요.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더욱이 노조라는 운동단체를 만들어 정부비판 활동을 하니 더욱 눈엣가시지요. 그래도 그 많은 동지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자기보다 이후에 한국에 올 후배 이주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위해 단속추방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활동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헌신과 열정, 조직화와 투쟁이 지금까지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사와 성과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한국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동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6월에 네팔 카트만두에서, 본국으로 돌아간 네팔과 방글라데시 활동가들과 이주노조가 모여서 ‘국제 이주노동자연대 네트워크’를 결성하였습니다. 이제 미셸 동지가 필리핀으로 돌아가서 활동을 하게 되면 이 네트워크에 필리핀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전에 평등노조 이주지부 활동을 했던 동지가 한국에서 돌아간 노동자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주 본국에서부터 이주노동자들을 접촉하고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해서 그것이 이주노조 조직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 네트워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활동을 한국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 지원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이주노조로서는 여전히 활동가를 재생산해야 하는 힘든 과제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미셸 동지가 귀국한 이후 이주노조는 위원장이 공석이 되었고, 남아 있는 간부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조합원 숫자는 600명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활동하는 간부들은 줄어든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활동가를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교육과 조직사업, 지역투쟁 등이 이뤄져야 하고 연대와 지원도 더 커져야 할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투쟁하던 당시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일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이고 국적과 피부색, 인종차별이라는 겹겹의 차별 속에서도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인간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씩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2003-2004년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추방 중단과 합법화 쟁취를 위해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하던 당시, 이주노동자 활동가 버즈라 라이 동지가 했던 인상 깊은 말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인간선언’을 하셨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노동자선언’을 하셨으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투쟁선언’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 정신을 이어받아 국경과 민족을 넘어 단결하여 노동해방을 이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