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의 "평화주의" 세미나를 위해 번역한 자료입니다. 상당히 오래전에 나온 글이지만, 1980년대 초반 유럽의 평화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참고가 될 듯하여 등록합니다. 평화를 향한 대장정 (1982) 에티엔 발리바르 [역주] 196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핵 무장해제에 관한 지식인들의 활발한 토론이 있었고 특히 <Universities and Left Review>와 <The New Reasoner>가 선 구자 역할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 CND(Campain for Nuclear Disarmament)의 활동이 쇠퇴하면서, 영국에서는 거의 20년 동안 핵전쟁의 문제는 대중정치의 의제에서 사라지게 된다. '데탕트'의 시기에 무기경쟁 의 속도는 실로 더욱 빨라졌지만, 1980년대까지 대중운동은 출현하지 않았 다. 하지만 1979년 10월 유럽에 쿠르즈와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NATO의 결정으로 상황이 크게 바뀐다. 특히 영국에서 에드워드 톰슨은 이 문제에 관한 지적인 자극에 큰 기여를 했다. 1980년대 초반 에드워드 톰슨 은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에서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 문명의 최 후 단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톰슨은 이 책의 결론에서 독자들에 게 평화라는 공통의 주장을 위해 마음을 바꾸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 고, 뉴레프트리뷰는 광범위한 토론을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심포지엄이 개 최되었고, 그 결과로 출판된 것이 이 글이 담긴 <절멸주의와 냉전> (Exterminism and the Cold War)(1982)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1980년 봄부터 1981년 겨울까지의 기간 동안 작성되었다. 저자들은 사회주의자이 고 반전운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며, 대개(모두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 를 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편 에티엔 발리바르는 1961년부터 1981년 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구성원이었고, 이주자 문제에 관한 당의 정책에 반 대해 출당 당했다. 그는 <자본을 읽자>(Reading Capital)의 (알튀세르와 함께) 저자이다. ********************************* 프랑스의 공산주의 투사들이 핵무기 경쟁에 대한 현재의 국제적 논의에 개 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임무지만, 긴급하다. 지난 몇 개월 전 북유럽과 남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진 대중 시위는 [핵경쟁] 위험의 단계적 확대 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위험을 몰아내겠다는 결단을 표출하였다. 이 투쟁 은 국가들의 '선의'나 나아가 '전략적 균형'이라는 계산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핵 '절멸주의'(exterminism)의 희생자로 표현된 남성과 여성 의 에너지를 동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상황은 매우 다르 다. <유럽 핵무장해제>(European Nuclear Disarmament)와 연합한 활동가들 이 - 대부분은 지식인들 - 벌인 몇몇 용감한 솔선을 제외하면, 프랑스는 대체로 절박한 문제에 관해 두드러지게 둔감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프랑스 노동운동, 특히 PCF(프랑스공산당)과 CGT(프랑스노동총동맹)은 정 력적으로 평화운동에 헌신했으며,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도 (어떤 모순들이 있었지만) 베트남전쟁과 닉슨의 정책에 대항하는 투쟁에 힘을 기 울였다. 오히려 오늘날 새로운 유럽 평화운동의 이상은 '자주관리'(self- management)[운동]과 행동을 함께 求?프랑스 좌파 분파의 이상과 가까 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명백한 무기력이 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조건에서 해외의 수많은 우리 동료들에게 프 랑스 좌파가 역사적 임무를 '배신'하거나 포기했다는 판결을 받는 것이 다. 게다가,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무기력의 원인은 프랑스에서 가장 특 유한 어떤 정치행동 모형에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력은 우리가 전통적인 지배계급과 정치인들 의 실천에 대한 어떤 대안도 발전시킬 수 없는 무능을 시사한다. 사실 지난 여름 프랑스 공산당은 중성자탄에 반대하고 퍼싱(Pershing) 미 사일의 서유럽 배치를 반대하는 항의 캠페인에 착수했다. 그러나 단명(短 命)한 운동은 당연하게도 그 정치적 배경에 관해 모든 종류의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 공산당은 퍼싱 미사일을 비난했지만, 1977년 극적인 정 책전환에서 뜻밖에 승인해버린 프랑스 핵무장군(force de frappe)에 대해 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1981년 10월 25일 시위의 마지 막 순간에야 나온 슬로건, "퍼싱 반대, SS-20s[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반대"만이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적 불균형을 공식적으로 정정했을 따름이 다. 이 캠페인이 단명했다는 사실은 캠페인의 기능이 단지 책략을 구사하 기 위한 당의 기회를 시험해 보는데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며, 몇 달 후 선 거 패배는 공산당을 사회당의 지지 세력으로 떨어뜨렸다. 아마도 그래서 이 문제가 대통령의 '배타적 특권'(exclusive prerogative)에 속하는 것이 지, 새로운 다수파 정당들의 '경쟁'(emulation)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재빨리 상기되어졌다. 어쨌든, PCF의 지도부는 항의행동에서 '통제권을 상 실할' 위험에 직면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공산당이 여론을 동원하는 관 료제적 수단은 진정 대중 운동을 위한 많은 기회를 남겨두지 않았다. 하지만 공산당은 -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 프랑스에서 이슈를 제 기하는데 최소한 이점이 있었다. 사회당 장관들과 지도부는 이전 우파 정 부의 군사 정책을 따르겠다는 결정을 말과 행동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었 다. 그들은 핵잠수함 건조를 지속할 뿐만 아니라, 전국 군인위원회의 민주 적 요구를 저지했으며, 특히 국방장관 샬르 에르누(Charles Hernu)는 그들 의 단호한 반대자였다. 프랑스 언론의 논조 변화는 더욱 어지러웠다. 거 의 대부분의 언론은 이 문제에 관한 이전의 무관심을 깨고, '소련의 군사 적 위협', 유럽의 '핀란드화(化)'[유럽의 비공산국들이 옛 소련에 대하여 취했던 유화적 외교 정책]의 위험에 대한 강력한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 의 군사적 우세 정책을 가차없이 지지했다. 그 동안 프랑수와 미테랑은 몇 년 내에 전략적 균형이 미국에 불리하게 변할 것이라면서 '위험'을 마 술처럼 불러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언론 캠페인은 폴란드의 군사 쿠데 타를 최대한 이용하였다. 언론은 총부리의 방향을 독일의 평화운동으로 바 꾸었는데, 어느 좌파 일간지는 이를 민족중립주의(Nazionalneutralismus) 라고 딱지를 붙이기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우익 언론은 극좌, 자유지상주 의(Libertarian) 언론과 공동 전선에 합류했고, 똑같은 서명을 양자 모두 에서 볼 수 있었다. 군사주의적 경향이 전통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 질러 뻗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불행히도, 광범위한 반-군사주의 운동이 모든 계급들과 정당들에서 지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다시 새로워진 전쟁의 위험에 저항하는 프랑스 운동의 나약함과 분 할은 어떤 선입견이나 배제도 없는 집단적인 반성과 공적인 토론을 요청한 다. 내가 볼 때, 문제의 근원은 좌파의 정치적 장치나 노동조합 장치의 오 류, 부족, 심지어 경화증이라기보다 더 깊은 데에 유래한다. 사회당이 '여 당'의 위치 때문에 무기력에 빠질 때; 이제 정부에 참여하고 있고 CGT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공산당이 자신의 지지자를 다시 얻기 위해 문 제들을 받아들이려는 유혹과, 소련에게 충성해온 중압감 사이에서 동요할 때; CFDT(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가 자신의 반핵 입장과 범대서양주의 (Atlanticism)[서유럽과 미국의 군사정치경제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하는 입장]로 일정한 복귀를 결합하려는 시도 때문에 움직일 수 없을 때 - 따라 서 이 모든 것은, 프랑스 사회와 노동운동 내부에 깊숙이 작동하는 객관적 인 모순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랑스의 '후진성'은 이로운 부수 효과를 낸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 내가 '우리'라고 말할 때는 이웃 나라의 동료들도 함께 생각하고 있다 - 모순들과 장애들의 현실에 주목하도록 하 기 때문이다. 그 현실은 평화와 무장해제를 위한 운동이 사건들에 실제 영 향을 미치기 위해 전망과 지지를 획득하기 전에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 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모순들의 일부는 프랑스에서 특히 강력하거 나 두드러진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투적인 반전 운동에 헌신하는 것을 우선에 두자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어떻게 운동의 발전이 그 운동 을 깨뜨리고, 봉쇄하고, 약화하는 어떤 모호성을 쫓아 버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전쟁 문제에 대해 제국주의와 국제관계는 단순하거나 자동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 또는 특히, 그 대안이 전부 아니면 전무 (상호생존 또는 절멸)가 되는 '묵시록'을 향한 경쟁 속에서 [제국주의나 국제관계들이] 집중적인 공통점을 발견할지라도; 그리고 이러한 대안의 적 나라한 단순성이 수십만 명, 잠재적으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에 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도록 할지라도 그러하다. 단순한 해답은 없다. 왜냐하면 비록 핵 협박이 지금 여기에서 대중들에게 복종과 죽음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어쨌든 궁극적으로는 파 멸할 것이라고 위협하더라도, 이러한 협박의 희생자들은 문명의 생존을 위 해, 그 뿐만 아니라 또한 독립을 위해, 착취에 맞서, 투쟁들의 복수성 (plurality of struggles)을 얻기 위해 동시에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라고 그 투쟁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또 한 단일하고 널리 알려진 개념 아래로 이러한 투쟁들의 종별성을 침몰시키 는 것도 해답이 아니다 - 제국주의이건 절멸주의이건 간에 그 개념은 모 든 투쟁들이 생겨나게 한 비인간적인 '체계'에 대항하여 그들을 공통의 전 선으로 수렴시킬 것이다. 평화운동이 항구적으로 광범위한 인민 대중을 불 러일으키려면, 모두에게 분명한 위대한 이상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 결 과 그들의 삶과 투쟁의 물질적 조건들 속에 깊은 뿌리를 두어야 한다. 폭 탄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질 수 있지만,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 이 요청한 집단적인 "자기결정 행동'(act of self-determination)은 천상 으로부터 내려올 수 없다. 정말로, 그것이야말로 그런 행동을 발휘하기 위 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창출하는 것에 왜 톰슨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노력도 나누지 않게 되는 이유다. 이러한 조건들은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 람들의 순수한 '의지'나 '전환'의 결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와 계급투쟁의 순수한 '논리'의 결과가 아닐 것이다. 절멸주의에 대항하 는 투쟁은 실제로 남성과 여성과 싸울 것이거나, 또는 조금도 싸우지 않 을 것이다. 그 투쟁은 그들을 '새로운' 인민으로, 서로 거대한 자유와 연 대를 소유한 인민으로 점차 변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럽과 다른 곳에 서 이미 시작된 그 운동의 결정적인 중요성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중요 한 문제들은 드러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부정할 수 없게 존재한다. 위선적이거나 의식하 지 못하는 체계와의 타협과 현실의 모순을 작동시키는 진정한 능력 사이 의 경계선을 미리 밝혀낼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볼 때, 프랑스 핵무장군 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핵의 세계적 저장고에 속하는 것이라거나, 또는 아프리카나 다른 곳에서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그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제국주의적 관계들에 겹쳐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전혀 양보할 수 없다. 반면 우리는 프랑스가(또는 쿠바 또는 소련이) 니카 라과, 앙골라, 또는 모잠비크로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을 까? - 그 나라의 가난에 찌든 인민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 군대에 맞서 하루하루 자신을 방어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렇다면 많은 사회당 당원의 생각 속에 의심할 바 없이 존재하는 선험적인 논거, 즉 그들에 따르면 레이건이 주창한 '전략적 불균형'을 미테랑이 부 분적으로(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게 그가 다른 영역들에서 미국 제국주의 에 맞서는데, 예를 들어 제3세계에서 어떤 해방운동을 지원하는데 자유롭 게 할 것이라는 논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러한 어떤 계산도 - 계산이 존재하더라도 -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으며, 진정한 대안이 존재한 다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대안까지는 여전히 먼 길 이 남아 있다. 비슷하게도, 서방의 평화운동이 '사회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는 동방 의 대중적 투쟁과 '결국'(in the last analysis) 동일한 목적을 갖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상당한 세력들이 양자 를 서로 반대의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써 무기력하게 할 수 있을 때, 양자 가 서로를 지원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폴란드에서 격렬한 계급투쟁이 벌어진지 일 년 반 후 폴란드의 혁명적 과 정은 일단 군사 쿠데타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은 모순을 오히려 날카롭게 한 다. 물론 이는 '얄타의 논리'를 따르는 다른 결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얄타의 논리는 세계를 대항하는 '제국들'로 분할했고 '공포의 균형'을 세 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논리에 대항하는 운동이 폴란드 혁명을 효과 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증명해야 한다. 폴란드 혁명은 레이건과 대처가 휘두르는 제재에서 효과적인 지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인데, 제재의 기능은 단지 .스스로 위기에 빠지며 썩어 들어가고 있는 제국들과 나라들에서 냉 전이라는 공동의 논리를 재건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이것들은 매우 현실적인 모순들이다. 이것들은 체계가 낳은 환상 의 결과도 아니며, 그 방어자들이 지휘한 선전(propaganda)의 결과도 아니 다. 만약 동시에 여러 면에서, 그리고 미리 예정된 이론적 '해답' 없이, 그것을 직접 대면한다면, 마침내 새로운 국제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가능 할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운동의] 힘들이 이미 의미가 없어진 것은 아 니라는 게 나의 확신이다. 프랑스 '사회주의'와 국제적 맥락 영국, 네델란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 출발한, 유럽의 거대한 평화운동의 부활은 - 대체로 놀라운 것이다 -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또 한 이는 프랑스의 우리가 반드시 완전하게 붙잡아야할 기회를 제공한다. 당장의 미래에 모든 장애물에 마주치더라도, 이 운동은 우리를 둘러싼 세 계의 제국주의적 경향에 홀로 도전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세력들의 수렴을 뚜렷하게 보도록 도와주며 강제한다. 만약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그 목적 을 위해 필수적인 새로운 국제주의의 형태를 밝히는 게 사활적인 임무라 면, 그 운동은 우리에게 해답의 한 요소를 줄 것이다. 프랑스 언론이 우리가 무엇을 믿게 하건 간에, 평화운동은 과거 또는 미래 가 없는 우연적인 발전이 아니며 단지 공포에 따른 정신병의 결과가 아니 다. 일례로 크루즈(Cruise)와 퍼싱 미사일이 배치되는 전선 위에 서 있는 독일의 젊은이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거친 진압에 맞설 준비가 되어있으 며, 단지 그들의 평안함이 깨질까 두려워하는 한 무리의 유복한 군중이 결 코 아니다. 그들은 이미 핵무기 투성이 나라들에서, 신뢰할 수 있고 지각 있는 대중적 세력을 대표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수십만명의 시위 운동자들과 함께, 그들은 우리 서방의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우선 을 두고, 필요하다면 일방적인(unilateral) 방식의 군축을 주장한다. 그래 서 그들은 이미 '게임의 법칙'을 뒤엎었고, '평화주의'(pacifism)에 새로 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독을 포함하여 모든 유럽 나라들에 서 실업이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을 때, 동시에 그 운동이 분출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수년 동안 서독에서는 '안보' 이데 올로기에 대해, '강한 국가'의 현실적 의미에 대해, 그리고 더 이상 복지 국가라고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군사-산업 모델에 대한 반역과 반성 이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도, 그 운동은 서독에 세워진 사회 질서에 대해 비판적인 모든 운동(initiative)이 함정에 빠지도록 위협하는 테러리즘과 대항-테러리즘의 그물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결단력과 역량이 있는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프랑스 좌파의 선거 승리를 지배의 '전략적 균형'을 뒤엎도록 돕는 또 다른 요소로 간주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새로운 사회 당 정부가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모두 가 알고 있다. 특히 벽 뒤의 배후세력과 투쟁하고 있는 민족해방운동들에 서, 독립적인 발전을 위해 가장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나라들에서 그러하다. 그들의 희망은 과장되거나 시기 상조일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그 희망에 알맹이와 진실을 주는 것 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의 정치적 자율성이 전제 가 되어야 하며,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주의 실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981년 5-6월 선거의 승리가 단지 '권력 부식'(erosion of power)의 기계적 효과며,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권력 부식은 이곳에서는 '왼쪽으로의 흔들림'을 낳고 다른 곳에서는 '오른쪽으로의 흔 들림'을 낳는다고 종종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진지한 설명이 아닌데, 새로운 프랑스 정부는 대중의 사회적 투쟁에 뿌리를 둔 오랜 과정 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못보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의심할 수 없이, 1968 년 활기의 쇠퇴와 1978년 좌파 연합의 비참한 붕괴 이후, 그것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마지막 (따라서 처음) 기 회를 어떻게 붙잡을지 알았다. 우리가 지금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어떠 한 사회변혁 프로젝트도 활동적인 대중 운동 없이는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결코 그러한 운동은 '자유로운 사회주의'나 '위기에 대한 민족 적 해결책'[과 같은 슬로건]을 밀폐된 곳에서 배양한다고 해서 태어날 수 는 없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 관한 프랑스의 사회주의 실험의 기초를 마련하려 는 일관된 시도는 불가피하게도 제국주의의 논리와의, 특히 미국의 이해와 의 충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모든 프랑스 좌파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 의 상호지원의 축이 동구와 서구 사이의 대치를 최대한 이겨내야 한다고, 최소한 말로는,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만약 프랑스의 노동자 운동이, '우 리의'[프랑스의] 민족적 제국주의에 대한 상대적 취약성과 노동자운동 자 체의 분할, 양자에서 유래한 그릇된 방침들과 역사적 지체를 극복하기 위 해서는,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부 의 '결정'(decision)은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 또는, 오히려, 만약 운동이 충분한 힘과 응집력이 있게 점차 발전할 때에만, 정부의 결정 은 분명한 성격을 띠게 될 것이며, 외부의 압박과 위협을 당하는 이해에 대치하는 불가피한 위험을 감수할 것이며, 그 운동 속에서 사회적 요구들 은 반-제국주의 목표들과 평화와 무장해제를 위한 투쟁과 융합될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주의 프로젝트'(그것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으며, 아직 문건 조차 없다)가 이러저러한 진보적인 이론적 필요물에 해당하는지 추상적으 로 의문을 품는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어떠한 조건들이 그러한 방 향으로 발전하거나 강제할 수 있도록 생겨날 수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 어보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대중운동과 범세계적 인 해방투쟁에 극적으로 개방적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나의 우호적인 조건 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스의 사회주의 실험의 국제적인 맥락에 대해 잠시 곰 곰이 생각해보고 싶다. 이 국제적 맥락에는 유럽적 차원의 중요성이 있 다. 지난 몇 해의 경험은 극히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제안하는 '초-민족 적'[민족-이상적](supra-international) 전망이 단지 신화일 따름이라고 충분히 증명한다. 민족적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는 그 내부에서 여 러 계급들과 사회세력들의 정치적 지향이 실제 결정(結晶)되는 주요한 틀 이며, 그렇게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특유하게도 유럽의 정치 공간 (political space)이 얼마간 햇수 동안 현존하고, 그것은 국가 기구들, 경 제적인 세력 균형, 전통적인 정치 공간으로 단지 축소될 수 없는 계급 전 략들에 의해 구조화되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측면에서의 주도권은 그들의 활동을 경계선을 가로질러 확장하려는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들에게 항상 속해 왔으며, 그래서 지속적으로 노동자운동을 분할하고 약하게 하였다. 사실 "유럽의 건설'(building-Euope)은 - 최소한 겉보기에는 - 정치적 결 정의 장소를 계급투쟁이 닿을 수 없는 너머로 옮기려고 고안된 거대한 측 면 포위 책략으로 항상 소용되어 왔다. 반면 노동조합은 결코 동일한 수준 에서 활동을 조정할 수 없었고, 실업과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유사한 계획 들에 대항하여 대중 투쟁이 동시에 일어날 때에도 그러하였다 (일례로, 1978년 로렌과 루르를 생각해 보라). 유로코뮤니즘은 자신이 떠오르던 단 계에도 어떻게 유럽 노동자운동의 뼈처럼 딱딱해진 분할을 초월할 수 있는 지 알 수 없었거나 알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체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의 상태에서는 더 그러하다. 세계의 경제적 위기와 자본주의 권력들 사의의 더 날카로워진 상쟁이 유 럽 국가들의 이해와 정책들 사이의 깊은 모순을 개방하고 있을 때, 노동 운동은 여전히 이러한 역사적 지체를 극복하지 못했다. 사실은 정반대다. 이는 프랑스나 다른 곳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어떠한 과정에서도 취약성의 굉장한 원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불균형을 정정하도록 돕는 대중 적, 유럽적 성격의 진보적 운동을 주저 없이 환영하고 지원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이상 유럽의 정치적 공간이 단지 NATO, 브뤼셀 위원회, 은행 들과 '공동변동환율제'(currency snake)의 투기장이 아니게 된다 - 그것 은 주요한 노동운동 조직들(또는 그들의 중요한 일부)의 회합과 같은 대중 적 운동을 포함하게 되며, 마찬가지로 청년, 지식인, 여성의 거대한 포부 를 포함하게 된다. 또는, 최소한 그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국제적 맥락 있으며, 그것은 분리할 수 없는 측면이다.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는 또한 본래부터 제국주의 '세계 분할'의 구조적 위 기다. 장-피에르 비지에의 최근 논문은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지배(또 는 미국이 방어하는 독재)에 대한 어떤 조직화된 반대도 강제로 진압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례가 없는 무기 경쟁의 발전 속에서 미국 정부가 정치 적 공세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대외 정책에서 '굴레를 벗은 자유주 의'(unbridled liberalism) 방식을 실현하기로 결정한 미국 정부의 권력 출현이 의미하는 위험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제국주의 대공세는 초과착취 당하고 희생당하는 제3세계의 대중적 저항에 맞서는 싸움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 유래한다 - 이 러한 어려움은 심지어 이란 혁명 이전부터, '인권'[미국의 인권침해]에 대 한 여러 층의 우려를 급속하게 쫓아버리며, 또는 오히려 미국의 진의를 드 러내 준다. 동시에 미국 자본과 미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자본은 일본과 유럽(특히 독일)의 경쟁에 직면하여 근거를 잃고 있다. 따라서, 너무 늦 기 전에 - 다시 말해 미국이 거대한 경제적 우월성을 잃기 전에 - 전세계 를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서, 필요하다면 그 과정을 역전하려는 시도를 하 는 것이다. 비지에는 '우리는 레이건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히틀러 가 실패한 화가가 아니 듯이, 그는 B급 영화의 카우보이가 아니다'라고 정 당하게 주장한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에게 권력을 가져다준 사회 세력의 의미심장한 변이를 오히려 증언한다. 민족주의와 거대 권력의 쇼비니즘의 화염은 1980년대의 새로운 아메리카의 특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는 명백히 서방과 동방의 대치를 첨예하게 하며, 제국 주의 권력 사이의 적대를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로 세계 의 민족-이상적인 체계의 특징인 군사의 단계적 확대라는 '논리'는 제동 이 걸리기는커녕, 거대하게 강화되고 있다. 3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나타 날 수 있는 결과며, 불행하게도 그 전망은 이전 어느 때보다 무시무시하 고 비참할 것이다. 1950-60년대 냉전 시기, 두 블록간의 전체적인 균형이 있었다. 두 블록은 몹시 동등하지 않았고 사회 성격이 전혀 비슷하지 않았 지만, 아직까지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을 완벽히 독점하는 '초강대국'에 의 해 지배를 당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현재 세력관계로 미래를 추정한다면, 세계 종말 의 전망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0년의 시간에서 역 사가 그처럼 직선의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제국주의의 논리 는, '불합리한' 무기 경쟁이 그것의 통합된 일부분이며, 체계의 바로 심장 부에서, 또한 물론 해방투쟁으로부터 저항에 직면한다. 핵 '억 지'(deterrence)의 역할이 무엇이었던 간에 - 우리는 마침내 핵억지 문제 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 베트남 인민의 애국적인(patriotic) 투쟁이 미 국의 인도차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미국 인민의 운동과 결합되지 않았다 면, 베트남 전쟁은 제국주의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운동 이 새로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소비에트 블록의 내적인 발전과 외부 정책이 점점 더 똑같이 제국주의 논리를 본뜨는 한에서는, 사회주의 나라 들 내에서의 민주적 민족적 투쟁들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 또한 그것[제국 주의]에 저항하는 내부의 힘들로 포함되어야만 한다. 세계 경제위기와 상 대적으로 독립적인 기원을 갖는 이러한 다른 위기의 전개가 동시에 그 나 름대로 국제적인 상황을 더더욱 위험하게 할지라도. 최강-제국주의? (super-imperialism?) 대중적 저항의 현실들과 함께, 이러한 모순들은 오늘날 제국주의 체계의 분석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물려받은 제국주의의 이미지 는, 필요하다면, 근본적으로 정정해야할 것이다. '절멸주의' 프로세스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이 체계의 성격을 폭로하며, 그 효과는 생산에서 문화 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삶의 범위로 확대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 한 효과들을 어떻게든 꼭 붙잡기 위해서는, 단지 그 효과들의 지옥과 같 은 논리를 기록하는 것 이상을 해야만 한다. 톰슨이 올바르게 보았던 것처 럼 절멸주의는 기계-생산이나 유럽과 북아메리카 군대의 세계 정복처럼, 하나의 사회적 관계다. 따라서, 그것은 자동적으로 자신을 재생산할 수 없 다. 우리가 절멸주의의 기원뿐만 아니라, - 무엇보다도 - 미래의 방향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재생산의 모든 측면을 조사해야 한다. 오늘날 미 제국주의의 현재 정책이 보여주는 중대한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 도 지나치지 않다. 제3세계의 시각에서, 미국은 물론 여전히 해방투쟁의 주요한 적이며, 자본주의 약탈을 위한 조건을 유지하거나 재건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국제적 노동분할' 내에서 착취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항 상 간섭하고 있다. 현대 기술에 기초한 이러한 새로운 노동분할은, 지구 의 치솟는 인구에 따른 인류 자원의 완전한 활용을 결코 수반하지 않으 며, 부족한 천연자원을 매점(買占)하는데 최고의 관심을 두는 다국적기업 의 이해에 맞는 착취 구역을 창조한다. 그것은 정말로 움직일 수 있는 모 든 것의 물질적인 전멸(annihilation)을 포함할 정도로 매우 체계적인 억 압을 동반할 수 있다 - 매우 중요한 절멸주의의 형태다. 나는 오늘날 전략 무기의 비축량이 수학적으로 '평형' 상태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여하튼 무기경쟁의 단계적 확대에 기름을 붓고 객관적으로 전쟁을 향한 길을 닦 는 공포의 틀 내에서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가장 결정적인 논쟁점 이다. '블록들' 사이의 분쟁의 세계적 형상이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일시 적 또는 지역적 실패를 무시하고 수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추진해온 팽창 과 포위 전략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전쟁 위험의 주요한 양상은 더 이상 고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 투기장에서 사회주의 진영의 상태는 완전한 변형을 겪었다. 사회주의 진영은 시작부터 포위되었고, 내부적 위기로 고통을 당 하면서, 이러한 미국의 전략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투를 벌이려고 시도해왔 다. 이제 사회주의 나라들은 오히려, 정말로 특히 군사적 수준에서 제국주 의들간의 관계의 논리에 붙잡혀 있다. 이는 사회주의 나라들 내의 국가의 생산관계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마찬가지로 민족주의가 가장 분명하게 표시된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따라서, PCF의 지도부가, 다른 이 들보다 특히, '세계 세력균형의 개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고집할 때, 그 러한 태도는 '현존 사회주의'(actually existing socialism)의 고조되는 위기에 대해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가장 최악의 신비화(mystification) 를 고수하려는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중국-베트 남 전쟁에서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으로 (이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으 로 나아갔다), 제국주의적인 국제관계를 향한 경향은 착취와 저발전에 대 한 투쟁을 점점 더 압도해왔다. 실로 이러한 논리는 '사회주의 진영'의 세 력관계의 악화를 표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지배적이게 되었다. 이미 브레이트가 독일-소비에트 조약과 폴란드 침략 당시에 걱정했던 것처 럼,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지난 오랜 기간동안 스스로를 세계의 혁명 적, 반-제국주의적 세력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혁명적 운 동들을 깨우는 것은 그들의 존재나 사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 해방운동에 직면하면서 극적인 딜레마를 겪는다. 서방의 식민주주의 권력 은 '자존'(self-reliance)을 완전히 필요조건으로 만들었지만, 충분조건으 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민족해방운동은 소련과 그 동맹국말고 누구 에게 의지할 것인가? 게다가, 그들은 어떻게 소비에트의 대외정책, 그리 고 초강대국의 무기경쟁이 강요하는 '전략적 계산'의 볼모가 되지 않으며 혁명적 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최초 사회주의의 가능성 을 - 즉 존립할 수 있는 동시에 살기 좋은 - 심각하게 억압하는 새로운 경 제적 정치적 의존으로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앙골라, 모잠비크, 베트남의 인민들은 매일 매일 이러한 모순을 경험한다. 또한 비동맹운동 의 단결과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쿠바의 노력이 소비에트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의해 무력화되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회주 의 나라들을 처음으로 직접적인 식민지 전쟁의 상태에 처하게 하였고, 바 로 그 때에 미국의 정책 결정가들은 '인권'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베트남 과 칠레로 나아간 원칙들을 공개적으로 부활시켰다. 나는 어떻게 이러한 발전을 세계 자본주의 사장으로의 사회주의 나라들의 전진적인 재통합과 분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통합은 대체 로 국가-보증의 장기신용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다국적기업에게 동방-블 록 시장의 거대한 개방을 가져다주며, [다국적자본에게] 특징적인 노동 분 할과 함께 동방-블록의 시장을 축적의 제국주의적 과정에 종속시키는 경향 이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나라들을 서로서로 경쟁을 시켜 득을 보는 게 가능하며, 그들을 제국주의들간의 경쟁에 끼워 넣는다 (일례로, 서유럽보 다 낮은 가격으로 식품, 원자재, 제조품을 제공하는 대신에 완전히 장비 를 갖춘 공장들과 발전된 기술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그들 경제의 일부분 만이 이런 방식으로 통합된다고 하더라도, 그 현상은 사회주의 나라들 사 이의 '노동 분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그것이 최근 동방의 정 치적 위기로 나아간 사회적 모순들을 창조하진 않는다. 그러나 모순들의 전개를 명백히 가속화하며 악화시킨다. (폴란드의 270억 달러의 외채를 생 각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기에레크(Gierek) 정부가 떠오르는 노동자의 요 구로부터 '탈출'하고자 한 결과였다.) 그 때문에, 그것은 이러한 나라들 의 현재 불안정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우리는 그 프로세스가 비가역적 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시계는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적이며 (autarkic), 중앙집중화된 '사회주의 진영'으로 되돌려질 수 없다. 탈출하 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적이건 평화적이건 간에, '현존 사회주의'의 전면 적인 변혁이다. 이러한 지적이 정당하다면, 세계적 규모의 '세력균형'은 동시에 세 측면 을 포함한다; 블록들간의 적대의 고조; 그들 군사전략의 '동형 성'(isomorphism); 모순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거대한 자본주의 강대국 들간의 경쟁과 집약적인 축적의 위급함에 지배당하는 단일 세계시장으로 의 사회주의 경제의 전진적인 재통합. 하지만, 이러한 이질적인 경향은, 톰슨이 시작한 토론에 대한 기여하고자 내가 지금 정식화하려는 하나의 해 석적 가설을 가리킨다. 우리가 고전적인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의심 할 수 없이 사실이며, 어쨌든 제국주의 개념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러 나 우리가,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단일한 다민족 '트러스 트 내부로 민족적 적대의 초월이라고 이해했던 '초-제국주의'(ultra- imperialism)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군사주의의 부활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초 강대국'의 현실성은 분명한 것이므로, 나는 현재의 현상을 최강-제국주의 (super-imperialism)라고 부를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제국주의들 의 '융합'과 그들의 사회적 관계의 균일성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제국 주의가 사회주의의 내부적 모순들을 착취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진로 자체 를 통제하고, 포위하고, 역전시키는 세계체계가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치 적 경제적 구조들의 부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혁명-이 후'(post-revolutionary) 제국주의다. 물론 더 이상 어떤 혁명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명들은 항상 예방적 반-혁명과 국가주의( tatism)와 계획화를 동반하는 '현존 사회주의'를 구실로 한 지배와 착취 관계의 중단 없는 재건 양자에 직면해야만 한다. '서로 다른 사회 체계를 지닌' 나라들 사이에서 두 방식의 국가 형태들의 순환 - 우선, 군사 기술 을 포함한다 - 은 최강-제국주의의 하나의 특징이다. 그 전임자와 마찬가 지로, 최강-제국주의는 완벽한 메커니즘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남 성과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과제는 최강-제국주의의 모순들을 분석 하고, 우리를 속박하는 것을 풀기 위한 대중적 운동에 힘이 될 새로운 형 태의 투쟁(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 때, 폴란드의 사건은 이러한 모든 문제에 냉엄하지만 광명을 주 는 불빛을 던진다. 폴란드 노동자의 혁명적 운동은 연대노조(Solidarity) 로 구현되었고, 그것은 그 뒤로 농민과 지식인을 끌어 들였고, 민주적 민 족적 요구과 불가분 결합되어 있는 계급투쟁의 특히 분명한 형태를 표현한 다는 것은 간단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폴란드의 지배 카스트(caste)가, 그 들의 편에서, 단지 '소비에트' 블록의 이해를 대표하고, 자신의 정치-경제 적 특권을 방어하는 것(이는 '부패'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알려졌다)만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폴란드 노장자의 초과-노동과 서방 금융자본간의 불평등 교환을 관리하였다. 이러한 이중적 의존은 왜 일부 서방의 집단들 조차 폴란드 쿠데타를, 매우 사실과 다르게 단지 '내정' 문제로 묘사하는 지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유럽의 상황은 35년 전 이루어진 합의[얄타]와의 관련성이 이제는 단지 미 미하지만, 프랑수와 미테랑이 폴란드 사건은 얄타에서의 대륙 분할에 의심 을 제기해야할 필요성을 증명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중대한 문제를 건드렸 다 - 물론 이러한 의문은 대륙의 서반구를 자본주의로서 보호하는 것도 공 격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것은 두 블록의 구조에 대항하는 구체 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위한 아주 일반적인 테제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 렇다면 블록들의 적대는 모든 곳에서 사회적 현상유지를 보존하지만, 동시 에 그것은 지배의 국제적 '평형'이 영원히 안정적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결코 보증하지 않는다 - 사실은 정반대다. 어떤 모호성을 없애자 그렇지만, 어떤 천사의 행운 덕분에, 프랑스(또는 다른 나라)의 육체노동 자와 지식노동자들이 완전한 핵 무장해제 캠페인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분 명히 이해하고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실로 이러한 과정이 그들의 장 기적 이해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수십만의 사람들이 무기 산업이 나 그와 관련된 기술적 '스핀-오프'[군수와 산업의 기술교환]에 종사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는 핵 무장군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주 요한 제3세계로의 무기수출국 중 하나다. 사실, 이러한 산업들의 '전 환'은 현재의 산업구조를 변형하고 여러 부문들과 생산물들 사이의 사회 적 노동시간을 재분배하려는 어떤 시도도 직면하는 거대한 어려움이다. 이 러한 문제는, 실업이 고조되고 해외시장의 불안해지는 때에 더욱 날카로워 지고, 잠재적으로 폭발적이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사회주의 전망 내에서만 진정으로 논쟁될 수 있다. 크리스티앙 바드로(Christian Baudelot), 로저 에스타블리(Roger Establet), 자끄 뚜와제(Jacques Toiser)는 최근 작업에서 최대한 명쾌하 게 이에 관해 논했다. '부르주아 지배의 2세기는 활동적인 인구, 조직화 된 생산 장치, 권력에 있는 계급의 요구와 설계에 따라 형성된 도시계획 과 지대라는 구조를 형성했다', 계속해서, '엄격한 구획으로 구성되었다 - 생산과 전달의 전체 네트워크는 현존하는 계급구조에 적응했다. 이처럼, 그것은 대중 계급들의 노력으로 하루밤 사이에 대체될 수 없다'. 특히, 어 떤 의미로는, 대중 계급들이 그러한 장치에 의존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 다. 생산의 성장하는 부문들의 직·간접적인 군사화는 생산 장치 내의 이 질적인 부분(foreign body)이 아니라, 잉여의 생산성과 활용을 물질적으 로 조절하는 '요구와 설계'의 일부분이다. 거꾸로 사회적 생산의 '완전 한' 재조직화는 집단적 소비를 위한 거대한 화폐적, 물질적, 인간적 자원 을 해방하며, 작업량을 합리화, 편리화하며, 발전을 위한 원조를 확대하 고, 해외 무역을 더욱 안전하게 한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은 노동자들을 스스로에 대항하여 분할하도록 위협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지식 인, 정당, 정부, 공공 언론 그룹들의 수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조 합의 수준에서 매우 명백하게 제출하는 게 필요하며, 노동조합만이 이 문 제에 관해 대중적 토론을 시작할 능력이 있다. 그들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방식 대신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 해 위기와 싸우자고 제안한 정부의 선출을 선택했을 때, 프랑스 노동자들 이 매우 정교한 경제적 분석을 한 것은 아마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산 체계의 근본적 변화와 그들의 즉각적인 물질적 요구 사이의 관계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떤 주어진 생산 모형 은 특정한 사회적 소비구조를 포함한다. 현재까지 사회와 관련된 것에서, 무기의 '소비'는 '대중 소비'의 가장 육중한 형태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모호성을 없애버림으로써 아마도 여기서의 토론을 도울 수 있 다. 독자를 놀라게 하거나 거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나는 핵 무기와 핵에너지가 실재적인 또는 잠재적인 파괴를 향한 본질적으로 하나 의 단일한 힘이며, 그것에 대항하는 동일한 형태의 동원을 요구한다는 통 념을 이러한 모호성 중에 포함시킬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문제 사이에 방수구획과 같은 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산업 플랜트가 민간과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동시에, 동일한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전력을 다해서 핵 발전과 핵 잠수함 또는 대륙간 미사일 건설을 추진한다. 크루프(Krupp)나 슈나이더(Schneider)가 기관차 와 터빈 옆에서 탱크와 대포를 만들 때, 또는 보잉(Boeing)과 튜보레프 (Tupolev)가 전략 폭격기와 민간 항공기를 생산할 때, [군산복합체는] 새 로운 질적 양적 수준에 도달하였다. 북유럽의 평화운동이 '다른 종류의 성 장'을 위한 생태적 투쟁의 견고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우연 이 아니며, 어떤 인위적인 결합도 아니다. 이러한 투쟁은 세계적인 전자감 시라는 군사화된 경찰사회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에너지의 '모 두 핵으로 옵션'(all nuclear option)에 의해 일으켜졌다. 전통적인 평화주의나 꾸밈없는 반-군사주의로 단순히 복귀하는 게 민간 핵 산업에 대한 우려를 희미하게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 다. 왜냐하면 이러한 우려는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의 안전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그 이전 어느 것보다도 중앙집중화되고 국가화 된(statified) '고-위험' 기술의 발전은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자유에 대 한 위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이란 단어가 새로운 물신(物 神) - 톰슨은 '물'(a Thing)이라고 말할 것이다 - 즉 대중과 우리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유령이 되어선 안 된다. 정치는, 대중 정치를 포함하 여, 구별을 긋고 그 구별에 대한 인정을 획득하는 기술(art)이다. 그러므 로 나는 그 토론에는 핵무기와 핵에너지 사이의 구별의 조건들, 또는 오히 려 이러한 조건들의 변형을 탐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긴다 고 제안할 것이다. 핵 에너지가, 당장에는, 현재의 생산을 위한 필요물에 대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 동력의 압박, 이득, 위험에 대해 다른 시각 들이 있더라도, 무기경쟁의 지옥과 같은 논리를 깨뜨리기로 단호한 결정 을 내린 모든 세력들은 풍성한 단결에 함께 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는 핵 무기에 대한 투쟁이 이러한 에너지 자원의 '민간용' 사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는 투쟁을 위해 더 나은 조건을 창조하리라 생각할 수 있 다. 확실히 두 투쟁 사이의, 그리고 이러한 운동에 의해 위협받는 이해들 사이의, 연결은 이[에너지 자원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투쟁]를 더욱 가치 있는 내기가 되게 할 것이다. 적극적인 중립주의 (Active Neutralism) 대중 동원을 위해 장벽을 '넘어뜨리자'는 선전에 호소하는 의지주의 (voluntarist) 방법은 지금까지 제기된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핵무기 문제를 더욱 구체적인 틀에 위치시키고, 그 무게를 전혀 최소 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핵무기가 지난 40년 간 존재했고, 그 파괴력 은 극히 거대해졌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위험을 질적으로 바꾸었고, 동시에 피지배자 대중 에 대한 지배계급과 카스트의 권력을, 가능한 한, 증대시켰다. 하지 만, '핵 우산'의 존재가, 묵시론이[묵시론의 현실화 여부가] '핫 라 인'(Hot Line)이라는 가느다란 선에 의해 우리의 우두머리에게 달려있다 고 공표한 이래로, 어떤 인식의 결핍은 - 두말할 나위 없이 어떤 '유 럽'의 위선 - 그 속에서 세계의 대부분이 살아왔고, 또는 오히려 죽어 가 는 전쟁의 풍토병 상태(the endemic state of war)를 이러한[핵] 문제와 분리시켰다. 퍼싱과 크루즈, SS-20s, 프랑스의 핵잠수함과 알비옹 고원 (Plateau of Albion)의 지하 격납고는 베트남의 폭격기, 카불, 벨파스트, 방기의 낙하산부대, 바르샤바와 산티아고의 탱크,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반-게릴라 헬리콥터와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동일한 체계의 부분을 구성한다. 현재의 시기에서 핵무기가 중국, 이스라엘, 인 도, 남아공, 그리고 곧 아르헨티나, 이라크, 파키스탄 등등으로 확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술' 핵무기가 배치되고,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 개발 이 빨라지고, '재래식' 무기와 '핵' 무기 사이의 간격이 항구적으로 좁아 지고 있다. 전체의 파괴 장치는 매우 높은 수준을 넘었으며, 이미 여 러 '전역'(戰域)에서 작동하고 있다. 억지와 선제공격의 시나리오가 갖 는 '불합리한' 성격은 연쇄반응을 폭발시킬 어떠한 무장 충돌도 유발할 수 있다. 동시에, 서방에서 대중적 평화운동이 성장하는 바로 그 때에, 동유럽의 나 라들은 폴란드 인민의 투쟁 속에서 지난 전쟁 이후 가장 강대한 혁명의 물 결에 흔들렸다. 폴란드에서 국가 권력과 대중 세력들 사이의 타협의 가능 성이 붕괴한 이 때에, 어떻게 이러한 두 운동이, 자유에 대한 공통의 포부 가 있는, 서로 서로에게 대항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에 대 해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은 여전히 결정적인 문제다. 나는 거대하 고, 다양하고, 독립적인 유럽의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활 동말고는 그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 유럽의 운동은 전진적인 무장해제와 군사 블록의 해소를 위해 운동을 일으킬 것이다. 프랑스와 영 국 노동자의 투쟁과 그들의 '권위주의적인 헌법 국가'에 대항하는 독일 청 년의 반역은 이러한 운동의 성장을 지원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폴란드 인 민은 이미 그것에 객관적으로 기여해왔다. 마르크스주의와 비-마르크스주 의 노동 조직들, 기독교, 자유지상주의 경향, 사회-민주주의자 ― 모두가 모호하지 않게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의 참여를 볼 수 있을 것이며, 반체제인사들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공산주의자들도, 헝가 리에서와 같이, '제3의 길'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프랑스의 역사적 전통을 여기에서 진지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필 요가 있다는 점을 반드시 말해야 한다 - 특히 드골주의(Gaullism)의 양날 의 유산이 문제인데, 드골주의는 프놈펜의 연설뿐만 아니라 프랑스 핵무장 군을 포함하며, 사회당과 그 후에는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핵무장군으로 모 이고 있다. 이러한 핵무장의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 주'(independence) 정책을 연상시켰지만, 자주 정책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 거나, 또는 점점 더 다른 것으로 변하였고, 제국주의들간의 이해의 충돌 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프랑스는 - '이 행'(transition)으로 충만하며, 그것을 위해 부서지기 쉬우나 귀중한 수많 은 조건들이 일년 또는 그 이상 동안 이미 존재한다 - 종속과 착취에 국 제 체계, 그리고 세계 군사주의 체계 내부에서 여전히 제국주의의 위치를 물려받으며 (아프리카의 사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자본주의의 다른 모든 구조를 물려받는다. 현재 세계의 격변은 프랑스 좌파가 민족 자주의 진정한 내용에 대해 분명 히 사고할 것을 요구하며, 단지 명복상의 NATO로부터의 '철수'가 아니라 NATO의 실제 소멸을 의식적인 목표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바르샤 바 조약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지지를 얻기 위해 어 떻게 설득력 있게 주장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이러한 탈군사화가 동유럽 의 노동자와 인민들을 희생하면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적은 곤란하면서도 동시에 필수적일 것이다; 두 독일의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 라파키 계획(Rapacki Plan) [1957년 폴란드 외상 아담 라파키가 동독, 서독, 폴란드 및 체코를 포함하 는 중부유럽을 핵무기 배치금지 지역으로 만들 것을 제의]을 재활성화하 기 위해, '포르투갈에서 폴란드까지' 비핵지대(nuclear-free zone)를 창조 하기 위해.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평화주의와 중립주의(neutralism)의 통념을 여전 히 괴롭히는 모호성을 점점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뮌헨[1938년 영 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참가한 정상회담에서 독일이 체코슬로바키 아의 수데텐란트 지역을 무혈로 할양 받았다]과 지난 세계대전 이후, 스페 인 내전의 '불간섭'(non-intervention) 이후, '평화주의'라는 용어는 프랑 스에서, 특히 노동자운동에게 당연히 부정적인 함축을 띠었다. 그것은 오 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을 흥미 잃게 한다. 독일에서는 당연하게도 매우 달 랐다! 독일에서는, 30년간의 공식적인 '범대서양주의'에도, 평화주의의 최 근 흐름은 현재 운동의 거대한 도덕적 승리를 얻었다. 게다가, 평화주의 의 이념은 언제나 고정된 자기-충족적인(self-contained) 의미를 지닌 게 아니다. 상황이 그것을 허용하고 요구할 때, 그 이념은 포기되는 게 아니 라, 오히려 - 매우 혁명적인 힘이 되어 - 적극적인 역사적 개입을 하게 된 다. 그 이념 주위에, 노동자와 젊은 지식인이 매우 광범위한 대중적 포부 와 함께 연결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미국 내전 기간 동안 미국과 영국의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온순한 배우가 아니라 독립적인 세력으로 역 사의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다... 주인을 자청하는 자들이 전쟁을 부르짖 는 곳에서 평화를 요구할 수 있었다'고 이미 지적하였다. 그 후, 20세기 초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진로를 채택하는 것의 어려움을 - 심지어 그들의 기층에서 - 치명적으로 과소평가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좌파의 짐머발트와 키엔탈 회의가 1914-18년 대학살의 와중에 개최되었 고, 마르크스가 가리킨 방향에 따라 이 시기를 더욱 분명한 혁명적 전망으 로 - 부분적으로 현실로 나타나는 - 규정하였다. 또한, 우리가 아는 바대 로, 그 결과 공산주의자 정당이 형성되는 하나의 시기였다. 오늘날 투쟁 의 조건들과 잠재하는 기초가 매우 다르지만, 전통적인 의미를 뛰어 넘는 적극적인 중립주의를 위해 싸우는 게 유토피아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 다 -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이미 '퍼싱 반대, SS-20s 반대'라는 슬로건은 우리를 그 길의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절멸주의의 논리'(the logic of exterminism)라는 에세이에서, 에드워드 톰슨은 NATO의 '현대화'와 공포의 '새로운 균형'이라는 프로젝트에 맞서 평화운동이 단결하고 조직하도록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이러한 논리가 정 치를 자동적인 기술적 전략적 메커니즘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 하면서, '"정치적" 옵션이라는 바로 그 통념이 점점 더 신뢰할 수 없게 된 다'고 썼다. 이는 틀림없이 매우 현실적인 위협을 드러낸다. 하지만, 위험 은 단지 전쟁의 새로운 기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또한 평화와 전 쟁, '안보', 무장과 국제정치 등의 문제가 당신과 나와 같은 단순한 개인 들에게는 차단된 특수한 영역의 일부분이 되는 사회적 구조로부터 생긴 다. 왜냐하면, 정의에 따르면 '대중들'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아무 것 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가, 그리고 정치정당의 모든 실천은, 그들이 오직 국익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한에서는, 이런 방 식으로 사태가 일어나도록 굳히는 경향이 있다. 이점에서 PCF는 좋은 사례 다. PCF는 '그들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국제적 세력관계에 대 한 '그들의' 분석을 개정한 후, 어쩔줄 몰라하는 구성원들 위에서 완전히 180도 전향했고, 핵 무장군에 대한 지지를 갑자기 내놓았다. '전문가'의 독점은 끈기 있고 동시에 지속적인 공적 토론을 통해서 깨질 수 있다. '세계적 세력균형'의 대차대조표,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의 현재 적 형세, 그리고 여러 '군사' 문제들을 정당하게 포함할 대중적 정치문화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 사회의 변 혁을 위한 가능성의 영역을 증대시킬 것이다. 프랑스 좌파는 그러한 문화 를 소유할 때에만, 정부의 무감각한 볼모가 되기를 멈출 수 있다. 위로부 터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정부의 '오류'와 '배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 대신에, 그것은 그들의 정치를 전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길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에서만 우리는, 모든 세계의 억압받는 인민들과 굳건히 연 대하는,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의 독립적인 유럽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민주 적 힘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프랑스 '사회주의'는 결 국 자신의 실패, 그리고 15년 또는 그 이상 동안 추구하고 준비해온 그들 의 희망의 좌절을 진압하는 것, 단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할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끝>
미국의 이라크 침략 1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3월 20일 행진'이 개최되었다. 대략 60여 나라 600여 도시에서 200만명 이상이 국제 공동행동에 참여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라크 점령 중단, 한국군 파병 철회 3.20 전세계 반전행동' 집회가 서울을 비롯한 8개 도시에서 열렸다. 당일 시위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나 아메리카에 이르렀다. 주요 국가와 도시의 시위 인원을 최대치로 잡아 보면, 미국이 뉴욕 10만, 샌프란시스코 5만, LA 2만, 시애틀 1만5천, 시카고 1만 등 300여개 도시에서 20만명이 넘게 참가하였고 캐나다 5만, 중남미 3만, 영국 10만, 로마 1백만,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2십만, 마드리드 십만, 발렌시아 2만, 프랑스 파리 2만, 벨기에 브뤼셀 1만, 그리스 아테네 1만 등 유럽 1백 5십만, 호주 지역 1만 5천, 아프리카 4천, 아시아에서 일본 13만, 한국 1만 등 15만명 등이다. 주류언론에서는 1500만 명이 참가한 작년 2월 15일 국제 공동행동보다 훨씬 부드러워졌고 규모도 작아졌다고 평했다. 그러나 올해 참여국가와 도시는 더 늘어났으며 특히 미국과 아시아에서 그 특징은 두드러졌다. 베트남이나 동티모르, 이라크에서도 연대집회가 개최되었는데, 동티모르에서는 "우리는 미국이 말하는 '해방'을 알고 있다. 미국은 수하르토의 침략과 24년 동안의 불법 점령, 20만 명의 학살과 실종을 지원했다. 우리는 같은 운명으로 고통받는 이라크의 친구들을 본다"라는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이라크에서는 정치조직, 쉬아와 수니 이슬람, 기독교, 투르크멘, 앗시리아인, 노조 등이 공동성명을 통해 "이라크인들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재앙과 고통이지만,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체코 그리고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연대의 의지를 천명하였다. 뻔뻔스러운 전쟁광들의 자화자찬 조지 부시는 20일 이라크 전쟁 1주년을 기념하는 라디오 주례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은 유엔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를 독재자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수행됐다", "이라크엔 해방의 날, 중동에는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자유를 위한 귀중한 진전이었다", "이라크전은 세계를 위해 현명한 처사였다. 사담 후세인 축출로 중동지역에서 침략의 뿌리가 제거됐으며 이 지역 국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전세계적인 반전의 물결을 외면하면서 침략과 학살, 점령을 정당화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럼스펠드는 한술 더 떠 "50년 전 미군이 피를 흘린 결과 한국은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됐다"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도 한국에서처럼 매우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각양 각색의 시위물결, '점령반대, 군대철수' 한 목소리 3월 20일 시위는 북구부터 호주와 남미까지 아시아에서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 모든 인종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풀뿌리조직에서 정당조직까지, 평화단체나 NGO와 공산주의나 아나키 조직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조직들과 대중들이 참여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각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많은 슬로건과 구호들이 터져나왔다. 스페인의 경우 3월 11일에 발생한 열차테러로 숨진 200여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부시의 충실한 동맹자인 아스나르 총리를 쫓아낸 기쁨이 공존했다. 마드리드에서는 3월 12일에 수만 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일주일이 넘도록 이 흐름은 지속되었다. 20일에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사라고사, 빌바오 등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이라크점령 중단과 스페인군 철수, 주권과 자치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플랭카드에는 "전쟁 반대" "아스나르 없는 스페인 만세" "우파의 장례식"이라고 씌어져있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호세 사라마고는 마드리드를 '유럽의 도덕적 수도'라고 묘사했다. 미국에서는 300여 도시에서 열린 반전집회에서 "세계는 여전히 전쟁반대를 외친다", "부시,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다",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라" 등이 요구되었다. 부시의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포드 반전집회에서는 "부시 탄핵" 주장이 나왔고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전쟁비용을 학교, 보건, 실업에 써야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신시내티에서 어떤 참가자는 생화학전용 복장을 하고 나와 벤치 밑이나 쓰레기통을 뒤지며 대량살상무기를 찾기도 했다. 75개 도시에서 몰려든 10만 명이 참가한 영국 런던의 집회에서는 "부시는 세계 제일의 테러리스트", "부시와 블레어 지명수배", "전쟁중단, 거짓말중단" 등의 플랭카드와 포스터가 물결을 이뤘다. 그린피스 2명은 유명한 빅벤 시계탑에 올라가 '진실을 말할 때'라며 블레어를 비난했다. 로마에는 1백만명이나 되는 가장 많은 사람이 결집하였다. 시위대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부시, 블레어를 향해 "당신들의 전쟁이 우리들의 죽음"이라며 전쟁중단을 촉구하였다. 노벨상 수상작가 다리오 포는 무지개빛 평화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을 '거대한 시위'라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6000여명의 시위대가 '점령중단', '군대철수'를 외치며 반전 집회를 벌였다. 70여개 도시에서 수천여명이 시위에 참가한 독일에서는 람슈타인 미공군기지 앞에 '학살자 생일축하'라는 플랭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만여명이 '부시, 샤론, 아스나르, 블레어: 학살자'라고 쓴 플랭카드를 들고 행진하였다. 일본에서는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하여 일본 전역에서 약 13만명이 반전시위에 나서 점령 중단과 자위대 철수를 요구했다. 51개 단체가 주최한 도쿄 히비야공원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무력으로는 해결할 것은 없으므로 철수해야 한다", "이라크 침공이후 1만 명이 넘게 숨졌고 자위대 파견으로 일본도 위험에 노출됐다"라고 성토했고 육상자위대 본대가 있는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등에서도 시위가 벌여졌다. 제3세계: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반대로! 서구와 1세계에서 주로 점령중단과 파병철수, 정부수반의 거짓말에 초점을 맞추어 시위가 진행되었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에서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 등이 결합되었고 행동도 더 급진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2000여명의 시위자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미국 정부를 규탄했고 "대량살상무기를 찾지도 못한 채 이라크 민간인만 2만 명 숨졌다"면서 "우리의 피와 영혼을 바쳐 이라크를 되찾겠다"고 성토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500명의 시위대가 경찰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까지 진격하면서 경찰의 물대포와 곤봉에 맞서 싸웠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는 8개 조직에 의해 시위가 조직되었는데, 주로 미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요구를 내세웠다. 터키에서는 12개 도시에서 시위가 개최되었다. 이스탄불에 3000여명이 모인 것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참가하여 "점령중단",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라" 등을 외쳤고, 특히 6월 26일에서 29일에 이스탄불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 대비하여 부시 방문 반대 투쟁을 펼쳤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3000여명이 만디하우스에서 아메리카센터까지 행진했다. 공산주의 정당, 노동조합, 학생단체, 여성조직들이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시민들' 깃발아래 행진하였고 미군과 동맹군 철수, 제국주의 세계화 중단을 요구하였다. 뭄바이에서는 무슬림 1만여명을 포함하여 여러곳에서 시위가 개최되었고 그 외 방갈로르, 체네, 럭나우, 캘커타 등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니카라과에서는 미국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개최되었는데 수천여명이 전쟁의 폭력뿐만 아니라 기업의 착취에 대해서도 규탄하였다. 또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산과 산업의 적"이라고 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분명히 하였다. 칠레, 산티아고 등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비슷한 시위가 이어졌다. 예외적으로 한국에서는 탄핵국면이 검열기제로 작동해서인지 그 수많은 연사들 가운데 누구도 전쟁참여를 결정하고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정권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이렇다할 비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탄핵반대 집회시간에 맞추기 위해 쫓기듯이 집회와 행진이 진행되었고 그 많은 반전피켓은 촛불집회 앞에서 내려졌다. 한편, 이라크에서는 폭력과 점령에 반대하여 수니파와 쉬아파 이슬람교도 3000여명이 바그다드에 모여 "후세인도 미국도 반대한다. 미국은 이라크 땅에서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들간의 단결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는데 쉬아파는 카다미야에서 행진을 시작하였고 수니파는 아다미야에서 행진을 하였다. 두 시위대는 중간 지점의 다리 부근에서 만났고 분위기가 고양되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는 광장으로 행진해서 점령중단과 모든 이라크인들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이날도 미군 2명이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바그다드의 연합군 주둔지역인 '그린존'에도 로켓포 공격이 가해지는 등 저항세력의 공격이 이어졌다. 침략 2년 집회를 맞이하지는 말자 세계 반전운동은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수백만에 이르는 대규모 국제 공동행동을 조직함으로써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장한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지구적 운동의 힘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스로 해방전쟁이라 부른 이라크 전쟁이 1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세계가 더욱 불안해짐으로써 부시는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부시가 취임 직후부터 이라크 공격에 집착했다는 오닐 전 재무장관의 주장에 이어 9ㆍ11 이전 알 카에다의 위협을 긴급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클라크 전 백악관 보좌관의 증언은 부시에게 타격을 입혔다. 더욱이 전쟁과 점령의 강력한 동맹자였던 스페인의 아스나르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점령중단과 파병군 철수를 공언하는 좌파 사파테로가 집권한 것과 더불어 각국에서 철군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민중들의 더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반드시 점령군을 철수시키자. 침략 2년 집회는 맞이하지 말자.PSSP ※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웹사이트와 각종 내외신을 참조하였습니다. www.indymedia.org www.unitedforpeace.org www.internationalanswer.org www.focusweb.org www.stopwar.org.uk www.occupationwatch.org www.zmag.org <박스기사> 한국의 파병지역 논란 - 미군철수, 파병철회만이 대안이다 3월 11일 국방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맡기로 했던 키르쿠크 지역 일부에 미군이 잔류하겠다고 통보해서 미국과 이 문제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미국은 한국에게 전투헬기와 탱크를 보강하도록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그 지역의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공세작전"이 불가피하며, 한국군의 전술통제 하에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려는 미국의 구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런 의사를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이라크를 방문했던 정부대표단에게도 이미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귀국 직후 황의돈 파병부대 사단장은 "책임지역에 대해 원만히 협의했다"고만 말했다. 결국 국방부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파병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19일 "키르쿠크의 치안 악화 때문에 파병지역 변경이 불가피하며, 이라크 전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지역으로는 6월말 스페인이 철군하는 남부 나자프 지역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한승주 주미대사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군의 독자주둔이 원칙이지만, 이라크 반군활동에 미군이 대응하지 않으면 반군이 그 지역으로 몰려 우리에게 안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요구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파병을 반대해온 여론은 키루쿠크 지역에 대한 말이 나올 때부터 그곳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쿠르드, 아랍, 투르크멘 사이의 종족갈등이 내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으며, 이라크 전역에서 외국 주둔군에 대한 적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가서 전투할 곳이 없으며 전투할 상대도 없다"고 말했고, 국방부는 아무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거짓말을 다시 반복하려는데 있다. 주둔 지역을 "안전한" 나자프 지역으로 옮긴다는 게 똑같은 식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나파즈가 그렇게 안전한 지역이고, 파병이 아무런 문제도 낳지 않을 것이라면 왜 스페인은 서둘러 나자프에서 철군을 하려하는가? 이미 1300여명의 스페인군은 지난해 8월 나자프에 주둔한 이후 정보요원 7명을 포함해서 11명의 스페인군을 잃지 않았는가? 나자프 시내에는 "임시헌법에 서명한 이라크 지도자들은 미국의 하수인이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고, "미군은 알라바바다"라는 시민들의 주장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한승주 대사가 은연중에 "시인"한 것처럼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동참하는 점령군에게 안전한 지역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거짓말을 거듭하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이 아무런 정당성도 없고 오히려 이라크의 불안과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어떤 포장을 달던 '점령군'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그 자체가 갈등 요인이다. 한국군 파병을 전면적으로 철회하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론과 사회운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 미국의 북한자유법안,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북한 인권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3월 15일부터 4월 23일까지 열리는 제 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규탄결의안’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59차 대회에서도 다루어진 적 있는 북한인권규탄결의안은 이 번에는 더욱 강력한 조치로, 인권위 산하에 ‘북한인권 특별 보고관’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매년 한 번씩은 거들먹거리는 북한인권문제이지만, 올해에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유엔인권위에서의 결의안이 결국 미국의 2003년 11월에 입안되어 현재 하원에 상정된 북한자유법안(North Korea Freedom Act of 2003, 이하 NK자유법안) 통과의 도덕적 명분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NK자유법안은 “탈북자 및 북한 강제수용소에 대한 CIA 비밀 보고서 작성, 북한주민에 대한 우선난민지위인정, 대량살상무기정보센터 설립, 탈북지원단체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 대북방송 강화, 대북협상에서의 인권문제 명시화, 대북경제제재의 지속, 미국원조의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들 내용 대부분은 기존의 국제법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공연히 북한 체제 붕괴 및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인권 문제 쟁점화 전략에 따라 한국에서도 북한인권 문제가 다시금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유엔인권위원회 투표에서 기권 할 방침인데, 이를 두고 보수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눈치만 본다며 햇볕정책의 기만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고, 자유주의적 단체들 역시 인권 문제는 정치적 사항과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한다며 북한인권개선에 한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과연 어떠한 맥락에서 북한인권문제가 제기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북한 인권문제의 이슈화는 ‘인권’의 쟁점이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무리 그래도 ‘북한의 인권 상황이 참혹하다면 이를 당장 제기함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 문제를 앞세운 1998년의 미국의 이라크해방법이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 중 하나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3월 2일 있었던 『북한자유법안의 문제점과 시민사회의 대응』토론회의 유정애씨의 발제문에 따르면, NK자유법안은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가 배후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NED는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하에서 CIA가 수십 년 동안 하던 역할을 비영리 NGO의 이름을 빌어 공공연히 진행한 단체로,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 또는 반미 정부를 교체하기 위해 칠레, 나카라과, 코스타리카, 몽골리아에 수백만 달라를 지원하는가하면, 근래에는 쿠데타 시도를 했던 베네주엘라 반정부그룹과 노동조합에 수십만 달라를 제공하였다. NED의 목표는 사회주의적 혹은 민주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는 운동들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NED는 한국의 북한 인권단체들과 관계가 깊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경남대 극동연구소,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NED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특히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경우 매년 NED의 재정지원 아래 북한 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주도적으로 주최함으로서 NED의 국제회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의의 참가자들이 NK자유법안의 입안을 주도한 북한자유연합, 북한인권미국위원회 결성의 주축이 되었다, 물론 이들 단체의 중심 멤버들이 워싱턴의 매파들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NK자유법안은 매년 1억 4천만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은 탈북지원, 대북방송, 북한인권단체 들에게 지원될 예정이다. 즉 NED가 지원하던 재정을 좀 더 확대하고, 인권을 명분으로 한 대북 봉쇄 강화, 북한 정권 붕괴라는 NED의 전략이 미 정부의 대북전략의 일반원칙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과 비젼을 공유하는 NED의 NK자유법안 식의 대북전략은 점차 그 세를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법안 역시 약간의 수정을 거치겠지만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NK자유법안을 추진한 단체들, 그리고 법안이 목표로 하는 바를 보더라도 이 법안이 미국 네오콘의 대북전략의 하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북한인권과 관련한 결의안 역시 미국의 이러한 전략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당장 유엔인권위의 논의에서 북한인권 악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미국의 장기간에 걸친 경제봉쇄에 대한 논의를 제외한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제국주의의 인권 향상 방법은 ‘미국식 정부’, ‘미국에 순종하는 정부’를 세워내는 것이다. NED가 목표로 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천이 결국, 반미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작이었듯이 말이다. 우리는 현재 북한인권을 제국의 논리에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민중의 논리, 한반도 인권과 평화의 논리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반도의 인권은 북한에 대한 봉쇄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질서 재편을 거부하고, 한반도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민중들에 의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갈 때 향상 가능할 것이다.PSSP
* 대학학보사 원고요청에 따라 작성한 짧은 글입니다. 최근 이라크 파병 논란에 관해 참조하시라고 등록합니다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없다 - 미군철수, 파병철회만이 대안이다 (2004년 3월 27일 작성) 3월 11일 국방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맡기로 했던 키르쿠크 지역 일부에 미군이 잔류하겠다고 통보해서 미국과 이 문제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한 국에게 전투헬기와 탱크를 보강할 것도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그 지역의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공세작전"이 불가피하며, 한국군의 전술통제 하에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려는 미국의 구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의사를 이미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이라크를 방문했던 정부대표 단에게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귀국 직후 황의돈 파병부대 사 단장은 "책임지역에 대해 원만히 협의했다"고만 말했다. 결국 국방부는 모 든 국민을 상대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파병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모 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19일 "키르쿠크의 치안 악화 때문에 파병지역 변경 이 불가피하며, 이라크 전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다 시 밝히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지역으로는 6월말 스페인이 철군하는 남 부 나자프 지역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한승주 주미대사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군의 독자주 둔이 원칙이지만, 이라크 반군활동에 미군이 대응하지 않으면 반군이 그 지역으로 몰려 우리에게 안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요구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파병을 반대해온 여론은 키루쿠크 지역에 대한 말이 나올 때부터 그 곳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쿠르드, 아랍, 투르크멘 사이의 종족갈등이 내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으며, 이라크 전역 에서 외국 주둔군에 대한 적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명백 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28일 언 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가서 전투할 곳이 없으며 전투할 상대도 없 다"고 말했고, 국방부는 아무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거짓말을 다시 반복 하려는데 있다. 주둔 지역을 "안전한" 나자프 지역으로 옮긴다는 게 똑같 은 식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나파즈가 그렇게 안전한 지역이고, 파 병이 아무런 문제도 낳지 않을 것이라면 왜 스페인은 서둘러 나자프에서 철군을 하려하는가? 이미 스페인군 1300여명이 지난해 8월 나자프에 주둔 한 이후 정보요원 7명을 포함해 11명의 스페인군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 가? 나자프 시내에는 "임시헌법에 서명한 이라크 지도자들은 미국의 하수 인이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고, "미군은 알라바바다"라는 시민들의 주장 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한승주 대사가 은연중에 "시인"한 것처 럼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동참하는 점령군에게 안전한 지역은 애초에 존재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거짓말은 거듭하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이 아무런 정당성도 없고 오히려 이라크의 불안과 갈등을 더 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라크를 전쟁으로 강점하고, 이라크인의 민주적 의사와는 무관하게 과도통 치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충분한 합의 없이 미국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를 종족·종파간으로 배분하면서 이라크의 종족갈등을 더 악화시켰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 재건사업을 미국 기업이 독점하여 이라크의 경제적 부 를 수탈하고, (석유)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는 이라크인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재건하고 경제를 운영할 권리를 원천적 으로 봉쇄하는 것이며, 광범위한 불만과 격렬한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어떤 포장을 달던 '점령군'의 성격 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그 자체가 갈등 요인이다. 한국군 파병을 전면적 으로 철회하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론과 사회 운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끝>
한반도 위기 고조시키는 한미합동군사훈련 즉각 중단하라! 한미 양국은 3월 8일부터 '프리덤 배너 04' 훈련을 평택 항에서 시작한데 이어 22일부터 28일까지 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는 이번 훈련이 "방어를 중심으로 한 연례훈련"이라 주장하고 있지만,우리는 이번 훈련이 기동력과 정밀타격력을 앞세운 미국의 새로운 전쟁전략을 북한을 겨냥한 실전을 예비한 훈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훈련은 무기와 병력의 배치 시간을 극도로 단축시키는 한편, 상륙부대인 오키나와와 하와이의 미 해병대 제3원정군 8,000여명이 참가하고 미 신속기동여단인 스트라이커부대가 동원되는 공격적 훈련이며,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선보인 전격전을 한반도에서도 재현하기 위한 훈련이다. '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연습' 때 미 해병대가 사용할 전투차량을 하역하는 '프리덤 배너훈련'이 예년에는 포항과 진해 등 한반도 남단에서 실시되었으나 올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택에서 실시되고 있다. 이 훈련은 항공을 통한 미 해병대의 전개와 M1A1탱크, 상륙장갑차 등 전투차량의 수송, 하역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함으로써 기동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평택을 대북한 군사작전의 거점으로 삼고 기동력과 선제타격력을 최대화함으로써 북한을 신속하게 제압하려는 군사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며, 이를 근거로 삼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을 확장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또한 한국정부는 이라크 파병결정에 이어 이에 적극 조응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패권의 확장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한미군사동맹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한미군사당국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즉각 중단하고, 훈련에 동원된 병력과 장비를 즉각 철수하라!
3.20 세계 곳곳의 반전행동 사진들 모음(2)
3.20 세계 곳곳의 반전행동 사진모음
사회진보연대 3월호에 실린 '이라크는 지금'이라는 제목의 이라크 현지상황 정리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