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재편의 출발점을 인식하자. 2002년 11월을 기억할 것이다. 10만명의 농민들이 여의도에 모였고, 노동자와 빈민, 그리고 공무원노동자들이 며칠을 사이에 두고 대규모의 투쟁을 벌여내었다.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강하게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대중투쟁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한번의 공세적인 대중투쟁을 벌여낸 후, 각 부문대중조직들은 12월 대선이라는 특수한 정치지형속에서 각 대선후보들에 대한 압박 및 지지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투쟁의 흐름을 대체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02년 하반기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투쟁을 중심으로 형성해왔던 전국적인 민중연대투쟁전선이 소실되고 말았다. 지난 5년동안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해 생존의 벼랑끝에 내몰린 민중의 불만은 폭발적인 분노로 표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분노의 표출은 민중운동진영의 의식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신자유주의 공동투쟁전선 형성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생산과 고용에 대한 파괴적 효과를 민중들은 삶의 극단적 불안감으로 인내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생존의 위협은 실리주의적인 대중운동은 고착화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한편 각급 대중조직들은 분출되는 대중들의 불만을 생존에 대한 요구투쟁 이상으로 조직할 수 없었고, '대중투쟁의 정치적 급진화'라는 과제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만으로 한계지워졌다. 01년 '민족자주·민주주의·민중생존권 쟁취 전국민중연대 준비위원회(이하 전국민중연대(준))은 상설적 공동투쟁체로서 이러한 고립분산적 대중투쟁을 단일한 전선으로 모아내고, 단결과 연대에 기반한 공동투쟁을 통해 각 부문대중운동의 정치성을 복원한 것을 자기과제로 안고 탄생하였다. 2002년 하반기는 전국민중연대(준)이 주체적인 계획들을 수립하고 대중조직으로부터의 결의를 추동하여 전국적인 민중연대 전선을 형성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02년 8월 발족한 "전국민중연대(준)산하 WTO반대, 식량주권사구,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노농특위)"는 30만 농민대회를 준비하는 전농의 요청과 민주노총의 결의로 구성될 수 있었다. 노-농특위는 노동자-농민의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기초단위까지)의 상설적인 민중연대 연대체의 건설을 목표로하는 간담회 조직화와 매달 전국동시다발 공동선전전을 개최, 그리고 기초단위에서의 민중대회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하고, 11월 부문대중들의 총력투쟁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주도하였다. 또한 이와 더불어 시군단위의 민중연대 조직단위를 위한 소식지 배포, 일상적인 지역민중연대와의 소통을 통해 각 지역에서의 공동실천의 계획을 만들어왔으며, 이는 전국민중연대(준)차원에서 각 지역 기층대중운동 지형에 가장 공세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러한 전국민중연대(준)의 계획과 의식적인 실천은 실제로 각 지역에서의 노동자-농민의 연대의 틀거리와 공동실천의 기풍을 만들어왔으며, 이러한 흐름은 11월 30만 농민투쟁에 대한 전국적, 전사회적인 여론을 형성하여 11월 부문투쟁에 대한지지·엄호를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물리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전국민중연대(준)은 2년여동안의 준비위원회 활동을 거쳐 2003년 상반기 본조직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가장 공세적인 활동을 벌여내었던 02년 하반기 전국민중연대 준비위원회에 대한 평가를 보다 면밀히 수행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이를 통해 전국민중연대(준)이 처해있는 현재적 조건과 한계를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본조직 건설에 적극적으로 복무하고자 한다. 전국적·지역적 민중연대전선을 확장해야 한다. 전국민중연대(준)의 노농투쟁은 전국 각지역에서 지역민중연대(상설적인 연대투쟁체)건설의 흐름으로 그 구체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전국적으로 30여 곳의 시·군·구 기초단위지역에서 지역민중연대가 건설되었거나 발족을 앞두고 있으며, 그 이외의 수많은 지역에서 투쟁체의 형태는 아니지만 지역운동에서 최초로 공동의 노-농연대의 실천을 벌여내는 성과를 얻었다. 민중연대 전선의 전국적, 지역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흐름은 보다 적극적으로 옹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상설공투체가 그 자체로 민중연대 전선의 확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은 아직 이르다. 오히려 우리는 현재의 지형과 연대투쟁흐름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통해, 지역연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바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지역연대체 건설의 흐름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전농도연맹이라는 전국적인 대중조직의 중앙적 강제력에 의해, 진보정당의 지구당과 지역청년회조직들과 사회단체들이 함께 논의테이블을 구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지역민중연대는 부문대중의 고립분산적인 생존권투쟁을 정치적으로 급진화시킬 수 있는 유의미한 틀거리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급 대중조직들의 연대투쟁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과 진보정당 및 각 정치세력들이 "지역내 입지굳히기"의 수단으로 지역민중연대를 활용하는 경향이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대중운동을 복구하고 대중조직을 정치적으로 재조직하는 구체적인 경로가 밝혀지지 못하면서, 대중운동의 자기방어적인 실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정치적 지반이 부재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운동을 어떻게 공동투쟁의 전선으로 조직할 것인가?"의 과제는 대중/정치조직 상층간 연대만으로 앙상하게 대체되고 있다. 물론 상층간 연대의 강화 역시 중요할 것이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고착화된 상층연대가 기층의 투쟁현장을 추동해내지 못하는 한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또한 어떤 지역의 경우는 지역민중연대의 활동이 각급 대중운동을 강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민중연대 그 자체를 물신화시키고 대중조직의 의존도를 높이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또한 지역민중연대가 지역 내 대중투쟁의 단위로 위치지워지지 못하고 특정 정파운동의 단위로 표상되면서, 연대의 틀거리가 협소화되고 각 대중/정치조직들 간에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 지역민중연대에 대한 이러한 평가와 한계들은 현존하는 대중운동의 정치적 재조직화의 과정에 삭제된 상층차원의 연대연합전술의 무의미함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건강한 연대투쟁의 기풍은 반드시 재창출되어야 한다. 각 지역민중연대에서는 대중운동을 정치적으로 급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중운동 사안을 발굴하고 주목해야하며, 각 대중조직들은 자신의 정치적 투쟁과제를 명확히 제출한다. 그리고 이를 지역사회운동으로 쟁점화시킬 수 있는 연대사업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민중연대는 건강한 연대투쟁이 가능한 공간, 새로운 대중운동이 창출되는 공간이며, 각급 대중/정치조직들의 대중운동에 대한 정치적 책임감으로 유지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연대운동에 대한 정치적 책임감을 높이는 방식은 의식적인 노력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는 앞으로 건설될 본조직의 의결체계에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각 지역민중연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전선을 지역적으로 명확히 형성할 수 있는 대중투쟁단위로 표상되고 기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국민중연대(준)의 한계는 무엇인가? -민중10대요구 쟁취투쟁에 대한 평가- 작년 대선국면 속에서 전국민중연대(준)은 '민중10대요구 쟁취투쟁'을 기획하게 된다. 그러나 전국민중연대(준)은 이를 통하여 각부문단위의 투쟁의 흐름을 단일하게 모아내어 전국적인 민중연대 전선을 형성시키지 못하였다. 결국 이 기획은 요구안 형식의 10대요구를 취합하여 각 당의 대선후보들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것 이상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 까닭은 무엇이었는가? 11월 부문대중들의 폭발적인 투쟁 이후 이것의 정치적 성과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는 당시 민중운동진영의 최대의 쟁점이었다. 상설적 공투체로서, 그리고 02년 하반기 핵심적인 투쟁을 주도하고 있었던 전국민중연대(준)은 이에 대한 답안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전국민중연대(준)이 대선방침을 수립할 수 없는 조건과 선거시기 스스로 민중운동진영의 고착화된 지형을 변화시킬 수 없는 한계속에 위치하였음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선이라는 특수한 정치공간에서 당-노조(대중조직)의 기계적인 역할분담 속에서 전선(체)운동이 상대화되었다는 점. 즉 민중운동 전체의 결의에 근거한 민중후보를 중심으로 대중투쟁의 공간을 확장해낼 수 있는 운동진영의 대선전술이 부재하게 되면서, 상설적 공투체로서의 전국민중연대(준)조차 그러한 공간으로 기능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전국민중연대(준)에 대한 운동진영내의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40여개의 참가단체들로부터 대선방침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국민중연대(준)의 이러한 객관적인 한계조건을 전제한다고 해도 우리는 '민중10대요구 쟁취투쟁'의 기획과정에서 형성된 '민중연대전선형성'에 대한 '왜곡된 원칙'에 대해 평가해야 할 것이다. 11월 초, 전국민중연대(준) 사무처가 '민중대표단을 통한 노-정교섭'의 형태로 제출한 당시의 문제의식은 각각의 부문투쟁이 고립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요구-공동투쟁-공동교섭-공동타결'의 원칙으로 강력한 물리력을 형성하여 정부/대선후보를 압박한다는 것이었다. 전국민중연대(준)은 이를 위해 공동요구안을 작성하고 대표 협상단을 꾸려 정부/대선후보와 직접 교섭할 것을 제안하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투쟁수위의 과도함에 대한 문제제기에 부딪치고 또한 당시 각 투쟁단위들의 하반기 투쟁의 목표가 불균등하였다는 점, 또한 대선시기, 정치세력화를 위한 각자의 모색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그 현실적 불가능함이 제기되었다. 결국 투쟁의 명칭과 수위를 조절하는 정도의 실용적인 방식으로 정리되었고, 결국 민중10대요구는 각각 투쟁단위의 요구를 취합하는 실무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각 대중운동의 연대성을 확장하는 과정이란 투쟁사안을 나열하거나 시기집중투쟁의 방식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민중연대(준)의 결정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공동투쟁-공동교섭-공동타결'이란 그자체로 단결과 연대의 사상의 최대치의 표현이 결코 아니다. 이는 다만 해당 정세속에서 판단되는 강한 물리력을 동원하는 구체적 전술일 뿐이다. 특히 사그라들어가는 대중투쟁을 상층간의 연대와 상층 정치 협상력으로부터, 그리고 기층으로부터 공동투쟁-공동교섭-공동타결이라는 현실불가능한 원칙만으로 투쟁을 다시 조직할 수 있다는 전국민중연대(준)의 발상은 공동투쟁자체를 물신화시키고 결국 대중운동간의 연대와 투쟁의 정치적 상승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말 것이다. 현재 정작 심각한 문제는 각 대중운동간의 단결과 연대가 지난 5년동안 지속적으로 해체되어왔다는 것이며, 대중조직 역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모색의 시간과 대중운동의 재조직화의 계획이 필요함을 터득할 수 있었다. 때문에 단지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남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시기 연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생략된 전국민중연대(준)의 상층 중심의 단결과 연대의 호소는 앙상한 대의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전국민중연대(준)가 처한 악조건은 기층 대중운동으로 하여금 '민중연대'와 '공동투쟁'에 대한 물신화된 인식을 낳고 있다. 이는 주요 대중조직들이 전국민중연대를 사고하고 결합하는 방식 및 민중운동 진영에서의 민중연대(준)의 위치속에서 확인된다.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운동들의 경우 전국민중연대(준)을 외각(시민운동세력)의 지지·지원부대의 하나로 사고하고 있고, 현재 민중연대(준)의 주요활동은 대표단의 기자회견과 시국선언 등을 개최하여 그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영향력있는 시민운동세력을 조직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이렇듯 현시기 전선형성적 대중운동을 조직하여 민중운동진영의 명실상부한 상설적 공동투쟁체로서 기능해야 할 전국민중연대(준)은 그 스스로의 위상과 역할을 축소시키고 있다. 단지 대중조직의 실용적인 이해와 요구(당과 노조운동의 공백을 절충하는 형태)를 받아안는 것으로 자신의 운동진영 내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공동투쟁 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유보시키며, 현시기 자기중심적이고 실리적인 대중운동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악요인이 될 것이다. 2003년, 전국민중연대 본조직 건설의 의미. 지금, 남한 민중운동은 또다시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곧 등장할 노무현 정권 5년의 방향은 김대중 정권이 행한 생산과 고용의 극단적인 파괴효과를 수습한다는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는 고용확대-빈곤감축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국민통합이데올로기를 형성할 것이다. 결국 민중운동은 노무현 정책개혁에 대해 김대중 정권 초기보다 더욱 엄밀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개혁이 실제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과정에서 대중들의 불만의 존재를 보다 예리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남한사회 어떤 운동진영도 민중의 불만을 변혁운동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대중의 불만을 어떻게 전국적 차원에서 하나의 응집력 있는 질서로 조직해 낼 것인가?" 인 것이다. 물론 전국적 차원의 응집력을 형성시키는 것이 어떤 단일한 조직 건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시기 고립분산적인 대중투쟁을 조정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계급적 요구로 상승시켜내는 일련의 조직적 실천이 현재의 민중운동 질서재편의 핵심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03년 상반기 전국민중연대(준)의 본조직의 출범이 노무현 정권 5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위한 조직적 테세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앞서 평가한 것처럼 현재, 지난 2년여동안의 전국민중연대 준비위원회의 활동의 오류와 한계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운동진영내의 불신과 비관은 실제로 무관심과 반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의 지점을 현재의 민중운동 진영의 객관적인 조건속에서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역시 면밀히 구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인식의 지점이 존재한다. 첫째, 전국민중연대(준)의 본조직 건설은 그 자체로 대중조직의 심도 깊은 결의를 끌어내는 과정임과 동시에 운동진영 내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통합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전국민중연대(준)가 상설공동투쟁체로서 자기 위상을 세워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즉 기층 대중운동과 지역민중연대와 긴밀하게 결합하기 위한 과제, 민중생존권 투쟁을 단일한 정치전선으로 형성하기 위한 민중연대 조직전망을 세우는 것을 합의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003년 상반기, 전국민중연대(준)의 본조직건설관련해 상설적 공투체의 이후 전망을 둘러싼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먼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진보정당과 전선체의 상호보족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그 속에 전선체의 맹아로서 전국민중연대(준)을 사고하는 편향. 이는 민중연대의 역할을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과의 전략적 구도 속에서 파악하고, 선거시기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선거지원을 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것이며, 정치적 과제의 기계적인 역할 분담이 되고 말 우려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보다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노무현 정권 5년하에서 이미 충분히 예상되고 있는 바 사회운동에 대한 지원(특히 사회적 위상 제고)을 민중에 대한 지원으로 '의도적으로' 혼동은 민중운동과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것이다. '연대의 확장'이라는 목표가 자칫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의 형태로 드러나는 경향에 대해, 또한 이러한 과정속에 잠복되어 있는 정권에 대한 입장차에 대해 전국민중연대(준)은 단호한 입장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전제를 확고히 인식하며, 우리는 전국민중연대 본조직으로 나아가기위한 실천적, 조직적 준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주요대중조직의 상층결합을 넘어 지역과 연맹의 결합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및 부문조직의 결합을 강화할 수 있는 의결체계의 확립이 핵심적으로 요구된다.
2003년 복간호 첫 번째 질문. DJ는 몰락했지만 노무현은 어떻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가? 노무현은 대중들의 희망을 특수한 방식으로 동원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정권은 IMF 경제개혁의 불가피성을 거듭 역설했지만 그가 약속한 환란 극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수치상으로는 IMF 이전 상황으로 복귀했지만 민중들이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DJ정권의 부패비리는 민중들의 철저한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노무현-민주당은 '축제의 정치'를 제공하거나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지역 발전이라는 실리적 기대를 자극함으로써 대중들의 희망을 조직해냈다. 두 번째 질문. DJ의 경제개혁을 통해 도대체 무엇이 바뀐 것인가? 남한은 이제 '자본유치형' 국가로 변모했고, 이제는 금융화된 초민족적 법인기업(TNC)와 금융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 남은 일은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동아시아의 무역자유화를 주도하고, 경제자유구역을 설치하는 식으로 오직 DJ가 닦아놓은 길로 달려나가는 것뿐이다. 세 번째 질문. 노무현 정책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동북아 중심지 구상은 중국을 고려한 남한의 전략적 선택이다. 중국경제의 성장을 '기회요인'으로 활용하기 위한 남한경제의 기반 구축이다. 조세감면/토지임대와 같은 방식으로 남한은 이제 더 이상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기술 및 산업의 특화, 교육 경쟁력 강화, 여성인력 활용(인구감소·노령화의 대안), 사회안전망 구축이 정부 재정지출의 중심점이다. 그러나 '특화'는 곧 배제를 의미한다. 경쟁을 강화하고 살아남지 못한 자는 배제된다. 배제된 자의 불만 표출을 막기 위해 하향평준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사회안전망이다. 네 번째 질문. 노무현 정권이 실패한다면 그 대안은 존재하는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실로 답이 없다. 지배세력으로서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외채위기가 재발한 남미의 경우는 국가의 붕괴, 사회의 해체로 이어졌다. 남한에서 경제위기가 재발한다면 이미 경제개방화가 대체로 완료된 상태이므로 그 결말을 예상할 수 없다. TNC와 금융자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안정적인 통치체제의 구축이 중요한데, 사회운동을 정책-로비형 NGO나 서비스형 NGO(사회복지의 중간전달자)으로 재편하여 정치체계 내로 포섭하는게 현 정권의 목표다. 2000년 총선을 어떻게 회고할 수 있나? 회고해 보면 DJ의 당선과 IMF 경제개혁이 시작된 1997말부터 약 2년 반 후 치뤄진 2000년 4·13 총선은 매우 미묘한 시점에 벌어진 판이었다. 1999년 12월 김대중정권은 IMF 조기졸업을 선언했지만, 이후 대우재벌의 소멸로 이어지는 대우사태-증시폭락이 겹쳤다(특히 4월에는 연일 증시폭락이었다). 4월 10일 박지원 문광부장관과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총선시민연대'는 낙천낙선운동이 벌여 부정부패, 선거법위반, 반인권을 기준으로 낡은 정치인을 청산하자는 전국적 캠페인을 벌였고, 김대중정권은 병역·재산(납세)·전과기록 등 후보자 신상공개를 단행했다. 민주당은 DJ의 '지역구도 타파' 선언에서처럼 전국정당화를 내걸었고(특히 영남권 당선자 배출), '젊은 피'를 수도권 요충지에 출마시켰다. 이처럼 2000년 총선은 'IMF 경제개혁'의 현실을 놓고 정권에 대한 신임 여부를 묻는 판이자,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사건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햇볕정책에 대한 판단을 묻는 판이자, 인물교체와 세대교체를 통한 낡은 정치관행의 청산이라는 정치적 이슈를 시험하는 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모호했다. 먼저 투표율은 57%로 사상 최저수치를 기록했다(14대 71.9, 15대 63.9). 이는 유권자 2명 중 1명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거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총선시민연대의 투표참여와 '바꿔' 캠페인이 언론에 집중 보도되었지만 대도시 지역의 투표율이 하락했고, 20-30대가 투표에 대거 불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표 불참 또는 포기·거부가 (물론 야당에 대한 불신을 포함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 야당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는 김대중정권이나 민주당에 대한 불만, 또는 당시 조성된 선거이슈에 대한 선택의 포기·거부로 이해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에 한해서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30여개 지역에서 근소한 시소게임이 벌어졌는데, 그 결과 한나라당은 9석이 증가한 133석, 민주당은 17석이 증가한 115석을 얻었다. 양자 모두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정권출범 이후 이렇다할 활동이 아무 것도 없지만) 국회 제1당의 위치를 수호했다는 점에서 자축했다. 반면 민주당은 지역구 의석 차이를 16석으로 좁혔고 영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비등한 성과를 올렸다고 자축했다. 수도권/호남과 영남에서는 대립이 뚜렷했지만 충청, 강원, 제주 등 다른 지역에서는 자민련의 몰락만 분명했다. 한편 전체 당선자 중 초선의 비율은 41%였으며, 초·재선을 합치면 70.6%였다. '386' 후보는 대부분 지역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쳤고, 절반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은 지방에 비해 수도권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따라서 2000년 총선에서 나타난 남한사회의 갈등선은 매우 복합적이었다. 게다가 최악의 투표율이 문제였다. 이는 남한 사회가 전혀 안정적이지 않으며, 총선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기 어렵다는 지표였다(특히 20-30대 투표율 저조). 이러한 복합적인 갈등은 이번 대선 결과로 드러나게 되었다. 김대중정권의 경제개혁과 새로운 수탈체제의 성립 1997-8년 남한의 외채전략은 IMF 구제금융을 통해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외국 채권은행들과 채무이행연기 협상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IMF가 부과한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서의 경제개혁이었다. 경제개혁의 목표는 과거 남한의 발전노선 즉 중화학 공업화, 수출산업 발전과 같이 '민족적 발전의 길'을 완전히 포기하고, 1980년대 이후 남미의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동일하게 '자본유치형 국가'로 탈바꿈한다는 것이었다("기업하기 좋은 나라", "Buy Korea"). 따라서 남한의 경제개혁에서 핵심은 일차적으로는 ① 기업 퇴출, 인수합병, 해외매각,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기업·금융 부문의 부실을 처리하며, 재벌의 계열분리(특히 상호지급보증 해소)를 통해 남한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5대 재벌의 부실확대를 막고, ② 국채를 발행해서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위기에 빠진 재벌·금융사에게 분배함으로써 '국가의 미래 재정'을 담보로 남한 경제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고, ③ 기업의 재무(금융)부문을 정리하고 직접금융중심으로 전환하여(글로벌 스탠다드), 결국 ④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이미 해외로 도피한 초민족자본을 다시 유인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⑤ 주식시장 부양책을 강구하여(저금리, 연기금 투입) 남한을 '신흥시장'(주식·채권시장)으로 육성하고, ⑥ 지역차원의 무역자유화와 금융·서비스분야 개방을 선도하고 투자협정과 같은 유인책을 통해 초민적자본의 직접투자(FDI)를 끌어들여 경제성장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⑦ 김대중정권은 IMF협약에는 빠져있던 정리해고제 도입을 자발적으로 수용하여 '노동신축화'라는 유인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한 재벌은 계열분리를 이루고 초민족적 법인기업(TNC)으로 변모하고 있다. 또한 워크아웃 제도가 일단락되면서 2001년 김대중정부가 내놓은 '상시개혁시스템'의 골자는 기업구조조정전문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M&A시장을 활성화하며, 정크본드(투기등급채권) 시장을 육성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업퇴출이 '시장기능에 따라 강제적으로' 작동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IMF와 세계은행 주도로 남한에서 이루어진 경제개혁은 남한 경제의 일대전환과 새로운 수탈체제의 형성을 의미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일단 과잉자본의 처리라는 점에서 기존 생산설비와 고용의 지속적인 파괴를 의미했다(기업퇴출, 인수합병, 워크아웃,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특히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 개방, 초민족자본의 진입/이탈에 대한 탈규제, 초민족자본의 금융기법 고도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국부유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로가 형성되었다(M&A, 이자소득, 환차익 등등). 또한 구조조정과 외국인투자(포트폴리오, 직접투자)는 기존 산업의 파괴와 산업특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지역경제의 붕괴 또는 불균등화를 촉진하였다(특히 남한은 '농업포기'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다면적인 갈등과 불안을 심화시켰다 - 역설적이게도 건국이래 처음으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대규모로 해외이민을 떠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대중정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은 기본적으로는 'IMF 위기극복'의 불평등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노동과 불안정화, 수도권/지역의 격차 확대, 여성 빈곤의 심화는 그 주요한 양상이었다. 이는 2000년 총선 결과로 드러났다. 지역주의가 여전히 존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는 지역경제의 위기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젊은 층의 투표율 저조는 IMF위기를 전후한 시점에서의 취업대란, 반(半)실업 등 그 세대의 삶의 불안을 반영한다. 노무현의 등장과 '반창연대' 집권 말기 DJ의 몰락은 매우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2001년 11월 DJ가 총재직을 사퇴하고 2002년 6월 TV생중계로 두아들의 구속에 대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할 때까지 그는 사태를 거의 제어할 수 없었다. 한나라당은 6·13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는 '연전연승'의 기세를 타고 쉽게 정권탈환을 손에 쥘 수 있을 듯 보였다. 노무현조차 국민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DJ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고, 여론의 동향을 추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경선 승리 직후 노무현의 대선 구상 역시 불투명했다. 예컨대 "원칙과 상식", "국민통합" 등 추상적 구호를 내걸거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자"와 같이 정서에 호소할 뿐이었다. 6·13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어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자리 가운데 11곳 장악할 때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민주당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무현의 당선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개혁국민정당 발족을 통해서만 오직 가능했다.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의 진실은 '반창 연대'의 실현 즉 '이회창에게 이길 수 있는 (젊은) 후보의 선택'이라는 게임에 있었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대선승리는 기본적으로 '네가티브' 전략에 기반한 것이며, 게임의 고유한 도박성과 시선집중이 주는 이득을 누린 결과다. 단일화는 '네가티브'와 '도박'이라는 두 다리 위에서 세대교체와 인적 청산, '낡은 정치 청산'을 대중적으로 이슈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드디어 DJ를 정치의 풍경에서 제거하고 '죽은 인물'로 만들었고, 그들 대체할 인물이라는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반면 개혁국민정당은 핵심적 지지층이 될 386세대의 정치적 집결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386세대에게 각인된 민주화운동에 있어서의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의 부정적 역할을 상기시켰고, 또한 기존의 NGO의 '정치중립' 방식을 뛰어 넘는 정치 참여를 고무했다. 결국 노무현의 등장은 이회창-한나라당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이회창-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유포한 수구와 기득권(+엘리트주의)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고, 북한과의 냉전적 대결양상을 '수줍게' 반복했다. 이에 비해 노무현은 세대교체와 인적청산을 통한 기득권과 부패를 해체하며 미국과의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만들며 중도적 개혁을 발전시킬 인물이라는 대립적 이미지를 창출했다(특히 TV토론에서 노무현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양자를 보수주의와 이상주의로 밀어내며 중도적-합리적 개혁이라는 이미지를 쌓고자 했다). 노무현 지지층의 이질성과 갈등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단순히 정치적의 풍경에서 DJ를 제거하고 이회창 대 노무현이라는 일대일 대립구도를 형성한 게 전부가 아니다. 노무현의 선거전략은 복합적이었고, 그에게 표를 던졌던 지지층도 이질적이었다. 노무현의 주요한 지지세력을 거칠게나마 도식화해보자. 첫째, 노무현에 대한 '실리주의적' 지지가 있었다. 남한의 증시부양은 'IT(정보산업)혁명', '벤처창업'이라는 바람을 타고 올라섰고, 벤처기업은 기존 경영조직·관행의 일반적 대안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지식산업',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이라는 김대중정권의 전략에 따라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확대도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벤처-금융업의 확대는 이른바 '386세대'를 일종의 '비즈니스네트워크'로 전환시켰다. 게다가 386세대는 남한에서의 물질적 성장을 경험하였고(삼저호황) 미국식 생활양식-소비문화의 확대를 '진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결집은 '자기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DJ의 정책개혁이 노무현을 통해 보완되는 것을 지지했다. 한편 이 세대의 수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가 기업경영진과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기업 내부의 권위주의적 '지배구조'에 대해 갈등에 처해 있으며, 이는 기득권이나 '고루함'(?)에 대해 강한 적대심을 유발한다. 따라서 경제적 자기 이해, 문화적 동질감에서 다른 집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결속력을 형성했다. 물론 DJ정권의 경제개혁과 노무현을 지지했던 집단 중에는 '개혁적 지식인'도 포함되어야 한다(이들은 노무현이 당선된다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여기에 기술관료적인 NGO들도 포함될 수 있다. 한편 노동운동 내에서 노무현에 대한 공공연한 혹은 잠재된 현실주의적 지지도 존재한다. 노동자 대중의 일부는 대체로 IMF 이전 상황으로 복귀했고, 이는 현상유지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낳았다. 또한 DJ 당시에는 죽어 있었던 공식적인 대화채널을 정상화하고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한다(이는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양자 모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강화할 수 있다). 이처럼 386세대-화이트칼라-개혁적 지식인-노동운동 내 일부 상층은 DJ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역시 핵심적 지지층으로 육성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둘째, 청년층의 도시(룸펜)프롤레타리아(불안정 노동력층)의 일시적 지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전혀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47.8%였고, 지난 대선에 비해 약 15% 하락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의 투표율 하락에 중요한 기여를 한 셈이다. 20대 청년노동자층은 IMF위기 당시 취업대란을 겪었고 신규 '노동시장' 진입에 있어서 크나큰 불안정성을 경험했다. 또한 오늘날 교육정책의 목표는 중심적 노동력과 주변적 노동력를 분화시키는 것이므로, 20대의 대부분은 '다기능화'라는 명목으로 다수 주변적 기능을 습득했다(저임금과 고용의 불안정). 소비확대라는 생활양식을 강요받았으나('10대 시장', '20대 시장') 미래는 극히 불투명했다. 이들은 삶의 조건이 불안정한만큼 사회적·정치적 의식도 불안정하다. 이번 대선에서 강력한 '반창' 정서가 작동했으나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종종 모순적이다(즉 진보/보수의 틀로 쉽게 포섭되지 않는다). 이들이 참여한 월드컵 거리응원이나 촛불시위 참여는 기성세대에게 위력적이었고 선거의 흐름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무규정적 행동에는 쉽게 참여하지만 제도적 행동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노무현의 인기영합주의적인 제스쳐와 함께 이회창에 대한 차악으로서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지역경제의 위기 속에서 '지역감정'에 근거한 잠정적 지지가 있었다. 오늘날 지역감정의 물질적 토대는 구조조정 이후 심화된 지역경제의 위기이며 이것이 지역적 소외감으로 등장했다. 지역감정이 실리추구적인 감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지역감정을 동원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노무현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지역발전이라는 실리적 희망을 조작하여 지역감정을 동원, 장악한 것이다. 노무현은 호남 지역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DJ의 계승자로 제시했고,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스스로가 3김 이후 부산·경남을 대변할 정치지도자로 자임했고, 충청권에 대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희망을 제시했다. 따라서 노무현 당선을 안정적인 지지연합의 구축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질적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서로 갈등적이거나 대립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시적 제휴를 표현하는 방식은 '새롭다', '활기차다' 등등의 정서적 호소를 넘어서지 못한다. 오히려 정책개혁의 전개과정에 따라 (각각 다른 이유로) 대중적 이반을 낳을 요인을 깔고 있다. 노무현의 정책개혁 전망 이제 노무현은 인물대결 구도의 선거전략을 마무리하고 남한에서의 정책개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태세로 돌입했다. 분명히 현재는 DJ처럼 대통령직에 취임하기 전부터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초헌법적인 권한을 휘둘러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노무현은 IMF 경제개혁의 기초적 목표 즉 금융위기 직후 위기관리책를 넘어서, '경제성장-고용확대-빈곤감축'이라는 포괄적 정책목표를 내걸었다. 그리고 개혁적 지식인을 중심으로 인수위를 구성하고 여러 정책검토사항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탐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김대중정권의 정책기조의 유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남한의 경제구조는 이미 완전히 뒤바뀌었고, 이에 조응하여 재계-관료-학계의 태도도 수렴되었다 - 사실 김대중 집권 당시 한나라당의 기본 노선도 DJ 개혁에 대한 '비판적 지지'였다(예컨대 공적자금 오남용 비판, 구조조정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기업을 압박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엄격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남북관계 개선 등). 이제 남는 핵심 문제 중의 하나는 남한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동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이 남한을 '자본유치형 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면 노무현 정권은 실제로 대규모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직면한 문제는 중국과 차별적인 외국인투자유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김대중정권에 이어 노무현이 들고 나온 '동북아 중심지'는 초민족기업의 세계경영전략에 대한 고려를 반영하는 남한의 적응책이다(즉 중국의 성장에 따른 중국진출을 위한 일종의 '관문'으로서 남한의 활용가치를 높이자는 구상). 따라서 노무현정권이 기본 과제는 4대부문 구조조정을 보완하여 (외국인투자자의 감시감독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진척, 초민족기업의 활동범위를 확대시켜주기 위한 무역자유화와 투자협정 체결, 남한의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대형화-겸업화 유도, 협조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노사정합의기구 구성 등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국인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남한의 기술개발과 산업의 특화, 경제 인프라 구축, 평준화 해소와 교육개혁, 여성고급인력 활용 확대를 중심으로 정부 재정지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정책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건의 창출이다. 남한에서의 정책개혁은 DJ의 몰락을 통해 심대한 위기에 처했고, 차기 정권은 이러한 붕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게 사활적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개혁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재결집,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재생산되는 정치-행정-사법구조의 혁신 또는 지배세력의 도덕성 재확립, (보수주의적 온정주의든, 또는 자유주의적 실용주의든 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한 정책적 보완 등이 관건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현실주의적 지지층을 핵심적인 지지기반으로 구축하여 개혁의 불가피성, 지속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고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개혁(특히 정당 개혁과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정치적 안정성을 획득하며 부패방지를 위한 정책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또한 고용확대나 빈곤축소의 외형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한 미봉책을 모색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시도들은 YS-DJ와는 다른 세대의 주류 개혁세력 형성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민중운동의 미래 하지만 문제는 개혁의 진전 과정에서 실제적인 민중들의 삶의 양상이 될 것이다. 과연 남한의 경제구조 개혁과 양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남한 사회는 경제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 대중의 삶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되었고 특히 20대 새로운 세대의 대부분 주변적 노동인력으로 육성되었다(이른바 '청년실업' 문제). 또한 생계의 부담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가사·육아 활동이라는 이중적 부담이 증가하고 빈곤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낳았다. 경제성장의 지속이라는 미명 속에서 산업특화가 이루어지고 배제된 산업(특히 농업)은 정부의 간헐적인 보호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또한 주요 사회보장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의료보험의 중요한 기능이 금융업 부문으로 이전되거나 연금이 증시에 투입되면서 사회보장체계에서 빈자와 부자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평준화의 해체는 공식화할 시기를 노릴 따름이며 교육'시장' 개방화와 함께 실질적인 해체가 예상되고 있다. 또한 극악한 방식의 노동착취에 대한 자본측의 현실적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는 이주노동자 문제에서 일관된 해결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정권은 미래는 무엇보다도 그가 제시하는 각종 사회통합 정책의 실현가능성과 실제적 효과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정권은 DJ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정권이 검토하는 구상은 기본적으로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면서 갈등의 폭발을 지연하거나 조정하기 위한 형식적인 틀을 마련하는데 있다. 그리고 실제로 구사될 정책은 민중들의 삶의 조건을 '하향평준화'하고 상위 20%에게는 안전과 소비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인수위는 정책 아이템으로 입안하기 위한 각종 국가기구를 구성하면서 운동세력과 지식인 그룹을 포섭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국가차별시정위원회, 노사정위원회, 각종 정책자문기구 구성이 그러하다. 또한 '서비스형' NGO를 육성하여(정부·지역사회·민간 네트워크화 구상) 기존의 사회운동 그룹들을 재편성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중운동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방식으로 적응하고(스스로를 정책-로비형 또는 서비스제공형 NGO로 정립), 위기관리체계에 체계적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남한의 진보정당 운동은 정치개혁 흐름과 함께 지배정당을 모방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운동의 성격을 강화하고 전선형성에 기여할 것인가라는 고비를 맞이할 것이다. 오늘날 남한 민중운동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IMF 경제개혁은 일단락되었고 남한의 경제구조는 완전히 변화하였다. 앞으로 다가올 노무현정권 5년이 나갈 방향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무현은 김대중정권 초기와 같은 생산과 고용의 파괴라는 극단적 양상을 회피하고 고용확대-빈곤감축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전 정권과 '다르다'는 혼동을 생산할 것이다. 특히 노무현정권은 사회운동에 대한 지원(특히 사회적 위상 제고)을 민중에 대한 지원으로 '의도적으로' 혼동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결국 민중운동은 노무현의 정책개혁과 방향성과 실제적 효과에 대해 김대중정권 초기보다 더욱 엄밀한 비판해야 할 시점에 섰다. 또한 정책개혁이 실제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양상을 정확히 포착할 때에만 대중적 운동화의 발판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고착화된 운동은 노무현정권 하에서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곧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 논의가 뜨겁습니다. 정치개혁이라는 것이 결국 부르주아지의 체제안정화 방안에 다름아니겠지 만, 비판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참고 자료로 정치개혁 추진 시민사회단체연대 제안서 및 계획을 올립니 다.
Did the Washington Consensus Fail? by John Williamson, Senior Fellow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 Outline of remarks at CSIS November 6, 2002 1980년대 말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책개혁안을 의미하는 '워싱턴 컨센서 스'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존 윌리암슨의 짧은 발언록이네요. 얼마전 국 역되었던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듯합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가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책권고안을 대부분 수용하여 이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아르헨티나는 제외) - 룰라 역시 대부분에 사인 을 하였구요 - 경제성장, 고용 확대, 빈곤 감소 등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며, 따라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실패한 것이냐에 대한 자문자 답 성격의 글입니다. 그러면서 1세대 개혁의 성과를 취하기 위한 2세대 개 혁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세부적인 정책적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 장하네요. * 영문자료입니다. * http://www.iie.com/papers/williamson1102.htm#1
외교안보연구원에서 나온 중장기국제정세전망입니다. 외통부에서 퍼왔습니다.
"Transcending Pessimism: Rekindling Socialist Imagination" (비관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다시 발휘하자) 저자 : Leo Panitch and Sam Gindin 민노당 자료실에서 퍼옴
12월 23일 교수7단체 주최로 열린 대선평가토론회 자료집입니다.
조작된 공포, 역사적 망각이 만들어낸 환상, 노무현 지지론을 비판한다 노무현 지지를 선동하는 선동가들은 보수우익 이회창이 당선되었을 때의 묵시록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회창이 집권하면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이회창의 끝장보기식 노선이 충돌해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군부독재 정권의 적자, 반민주적이며 부패비리의 총체인 보수우익 이회창의 집권을 막기 위해 권영길의 표를 노무현에게로 몰아달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2%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19일 투표를 앞두고 이들의 절박함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한편 노무현 개인에 대한 우상화 역시 마지막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 결국은 이 땅에서 정직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 정치인", "민주당이 없어도 정몽준의 보수노선이 태클을 걸어도 노무현은 개혁할 수 있다. 왜냐? 노무현이니까" 노무현은 어느새, 그 개인의 존재만으로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슈퍼맨이 되어 있다. 2002년 대선의 마지막은 이렇게 공포와 환상의 향연이 장식하고 있는 듯 하다. 19일 투표를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는 누구를 찍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 이전에 이 공포와 환상의 향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주술은 단지 19일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이며, 이 마법사들은 선거 이후의 정당성을 이용하여 시민들을 더욱 가증스럽게 기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에 대한 환상, 이회창에 대한 공포의 기반들 노무현 지지 선동가들의 이회창 공포와 노무현 환상의 제조 방법은 무엇보다 전쟁과 평화, 낡은 정치와 국민이 만들어 준 새로운 정치, 기득권의 대변자와 서민의 대변자 등의 비유를 통한 상징 조작이다. 이것이 왜 조작인지는 대북정책과 노동정책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만약 노무현이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를 원한다면, 그는 무엇보다 한-미-일 공조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한반도 위기 국면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강경 정책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한국이 이에 저항 할 수 없도록 하는 체계가 바로 한-미-일 공조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정권 이후의 한반도 위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회창과 노무현 사이에 대북지원을 둘러싼 차이는 결국 미국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의 각론 수준에서의 자율권을 둘러싼 차이인 것이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노무현은 한-미-일 공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공포도 그가 만들겠다는 평화의 구상도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노동정책의 경우는 아예 양자 사이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장 강화(이회창)와 비정규직 임금 차별 감소(노무현) 사이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든 문제는 일차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불안 조건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기에, 사회보장이나 임금문제를 조금 바꾼다해도 이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양 후보는 비정규직을 이야기하며 노동 불안정화의 법적 핵심이라 할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700만 비정규직을 빼놓고 서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에 다름 아니다. 지역통합의 문제 또한 그러하다. 지역통합은 민주당이 부산에서 표을 얻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의의 문제는 김대중 정권 이후 더욱 심화된 지역적 불균등발전의 문제, 금융 중심지 초국적 자본의 투자유치지 등을 중심으로 발전이 집중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함에도, 양 후보는 이 문제를 후보의 출생지, 후보와 지역의 연관성에서만 찾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 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지지 선동가들도 일정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들에게는 아직 더 강력한 무기가 남아있다. 바로 "노무현" 개인의 문화적 상징과 그의 정치행보가 증명하는 신뢰이다. 분명 노무현 개인의 문화는 386의 그것과 흡사하다. 통기타, 투박한 어법, 소주 등등 기존의 정치인들이 채워줄 수 없었던 386세대의 문화적 코드를 노무현은 현실 정치인으로서 직접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뿐이다. 노무현이 바꾸고자 하는 현실은 노동자 농민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러함에도 노무현이 무엇이던지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만들어진 환상일 것이다. 노무현을 둘러싼 한국 사회 정치 자본 분파들의 이해관계를 살펴보면 왜 이러한 환상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노무현 지지 선동가의 첫 번째 분파는 바로 젊은 기업인의 상징, 벤처 사용주들이 있다. 이들의 이해는 정말로 직접적인데, 이미 이용호 진승현 게이트 등을 통해 드러났듯이 김대중 정권의 벤처 성장 정책이 만든 거대한 정부 벤처 지원 자금, 코스닥, 해외연계 채권 등등으로 이어지는 부패비리의 사슬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전 정권의 부패청산으로 임기를 시작할 이회창은 악몽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두 번째 분파는 금융 자본 분파이다. 이들의 요구는 무엇보다 재벌의 투명성, 재벌 총수에 대한 주주의 힘이며, 이는 집단소송제 금융시장에 대한 재벌규제 등의 정책을 제시한 노무현의 정책 기조이기도 하다. 실재 무디스나 블룸버그 통신 등의 초국적 금융자본의 선동가들조차 친재벌적 이회창보다 김대중 노무현의 경제 정책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세 번째로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김대중 정권의 전폭적 지지 하에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정책적 발언권과 재정지원 모두에 있어 이들을 공식 파트너로 인정하는 노무현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회창 정권은 이들에게 정책적 발언권 재정지원 모두에 있어 혹독한 시련일 것이다. 네 번째로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이끌었던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계획하고 정당성을 부여했던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한 비판을 노무현이라는 환상을 통해 감추고자하고 있다. 이제 왜 노무현이 문화적일 뿐만이 아닌 물질적으로도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분명 이들에게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은 공포일 것이며, 심각한 위협일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환상과 이회창에 대한 공포는 이러한 물질적 이해 관계들을 가지고 있다. 이 선동가들은 노무현을 우상화함으로서 정권 재창출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난 5년처럼 유지하고 싶어한다. 1987년, 그리고 2002년 : 노무현에 대한 신비화를 중단하라! "87년에 실패함으로써 15년을 견뎠지. 부마항쟁부터 치면 한 20년 정도로 참아온 셈인데, 저는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해요." (한겨레 21 대담 중)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그들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신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노무현은 87년 6월 거리가 2002년에 재림한 것일까? 2002년에 다시 재림한 '87년 신비화'는 '역사적 망각이 만들어 놓은 환상'에 다름 아닌 듯 하다. 왜 문민정권은 부패할 수밖에 없었으며, IMF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가? 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동시 발전,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87년의 꿈을 모두 슬로건으로 채택한 김대중 정권은 이다지도 비참하게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잠시만 공포와 환상의 향연을 멈추고 냉정히 생각해 볼 일이다.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 투표에서는 현실 가능한 해결책, 차악의 선택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에 대한 지적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반평 투표소에서의 선택이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중들의 집단적 행동, 집단적 성찰에 기반한 대중운동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19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기에, 작은 한 표를 미래의 대중운동에 대한 큰 구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WTO 반대! 비정규직 철폐! 주한미군 철수!" 2002년 하반기에 치열하게 펼쳐진 민중들의 함성을 다시 떠올려보며, 한 표에 제한되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다시금 떠올리는 19일이기를 바란다. S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