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존을 위하여 2009년 쌍용차 법정관리와 대량 정리해고 이후 3년 동안 21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숨졌다. 정리해고가 부른 끝없는 비극을 막고자 사람들은 작년 12월부터 쌍용차 앞에 ‘희망텐트촌’을 짓기 시작했다. 희망텐트촌에는 2010년 ‘희망버스’의 사회적 연대와 승리를 평택으로 옮겨오자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소망이 깃들어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다.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희망텐트보다 먼저 텐트를 쳤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사무실 앞에 조그만 텐트를 치고 몇 달 째 거리생활 중이다. 그리고 매월 한 번 사람들이 모여 공장 앞이 미어터지도록 텐트를 치고 밤새 쌍용차를 포위하는 난장을 연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희망텐트’라 부른다. 1차 희망텐트는 ‘와락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12월 23일~24일에, 2차는 1월 13일~14일, 3차는 2월 11일~12일에 진행되었다. 횟수를 더할 때마다 규모가 커져 3차에는 4,000여 명이 모였다. 2010년 희망버스가 등장한 이래 전국 각지에 흩어져 평소에 보기 어려운 사람들을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활동가들, 여러 연대기구에서 함께했던 동지들, 페이스북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생계문제, 건강문제, 가족문제 등으로 투쟁 현장을 떠나있었던 쌍용차 조합원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반갑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그들이 눈 앞에 ‘살아있다’는 것에 큰 안도를 느낀다. 쌍용차 노동자들, 오늘도 무사한가요? 2차 희망텐트에서 거의 반 년 만에 만난 김00씨는 2009년 파업 당시 노동조합 간부였고 파업 후에도 활동을 했다. 77일 내내 전쟁같은 현장을 지켰던 그는 파업이 끝난 직후 경찰조사를 받을 때, ‘노조를 왜 했는가?’라는 질문에 ‘노조를 하면 돈을 아낀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단다. 사람들 입에서 돌고 돈 말이라 얼마나 정확할지 모르지만, 노조 간부가 경찰조사에서 황당한 말을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때는 몰랐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고, 임기응변도 농담도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중에 그가 웃으면서 이야기해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었는지 모른다고, 머리 옆에다 손가락을 뱅글뱅글 돌렸다. 그는 공장을 나온 후에도 계속 헬리콥터 환청에 시달렸고 몇 달 동안 바깥출입도 전혀 못했다. 요즘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해고자들 중에서 잘 이겨내고 있는 편일 것이다. 21명, 그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로 세상을 떠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노동자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점거파업을 시작한 직후 한 노동자가 신경성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 전에 이미 노동자의 아내들이 유산을 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한 터였다. 2009년 파업 당시 실태조사에서 중증도 이상 우울증을 보인 노동자가 54.9%였고, 파업 직후에는 71.1%, 2011년 故 임00 조합원의 죽음 이후 세 번째 조사에서는 80%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러한 후유증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 2월 차 안에서 연탄불 피워 자살한 김00씨. 쌍용차 출신이라는 낙인과 생활고에 끝내 자살한 황00씨. 2011년 1월 이혼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연탄불 피워 자살한 서00씨, 2월과 10월 똑같은 방법으로 돌아가신 조00씨, 고00씨. 10월에 대인기피증과 몇 차례 자살시도 끝에 자기 방에서 목을 맨 35세 김00씨. 11월, 해고되지 않았지만 어쩐 일인지 야산에서 목을 맨 윤00씨.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해고자니 비해고자니, 비정규직이니 무급휴직이니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예 다른 세계를 선택한 사람도 있다. 2010년 7월, 쌍용차 파업에 참여했던 계00씨는 집 안에 물과 비상식량을 잔뜩 쌓아두고, 베란다에는 망원경을 놓고 노트북도 여러 대 설치해 24시간 바깥 상황을 살피는 등 ‘나홀로 파업’을 하다 발견되어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 때문에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정신분열증상이라고 했다. 살고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스트레스성 질환인 심근경색과 뇌출혈이 30-40대 젊은 남자들의 사인이라니. 그들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2009년 파업 당시 엄00씨의 뇌출혈 사망에 이어 관제데모에 동원된 김00씨가 허혈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2010년 5월 분사화 된 회사에서 일하다 심장이 멈춘 000씨. 11월 경제난에 시달리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김00씨. 2011년 2월 회사의 복직약속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무급휴직자 임00씨. 5월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돌연사한 강00씨. 그리고 해고, 비정규직 채용, 계약해지, 정신질환 그 모든 고통을 겪다 2012년 1월 돌연사한 강00씨.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터질듯 한 심장을 움켜쥐고 깨질듯 한 머리를 부여잡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사회적 살인이다. 가족에게로 번지는 죽음의 그림자 쌍용차 노동자들은 가족들이 자기만큼 다치는 모습을 봐야했다. 쌍용차 가족들의 지역공동체는 산산조각 났다. 아내, 부모, 아이들까지 산 자(비해고자)와 죽은 자(해고자) 편으로 나뉘어 싸우거나 서로 외면해야 했고, 파업이 끝난 후엔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가정도 산산조각 났다. 노동자들은 쌍용차 출신이라 재취업이 어렵고, 해고와 강제진압의 지워지지 않는 고통으로 망가져 갔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곱게 보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은 이전에 정규직으로 편하게 잘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그들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가족들은 이혼, 자녀들의 비행, 자살시도 등에 직면했다. 2009년 파업 당시 회사의 협박과 강제진압 소식에 노동조합 간부 이00씨의 아내가 자살했다. 2010년 4월에는 조합원 임00씨의 아내가 아파트 11층에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었다. 2011년 11월에는 차00씨의 아내 오00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 가족은 희망퇴직 후 먼 곳으로 이사했다. 차00씨는 공사장을 전전하며 며칠 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카드회사를 다니던 아내는 폐렴을 앓은 뒤 어느날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수백 번 전화를 걸었지만 아빠의 전화는 고장 나 있었다. 아빠에겐 전화가 고장 나도 문제없을 정도의 인간관계만이 남아있었다. 다른 곳에 전화를 걸 생각도 못할 정도로 당황한 아이들은 엄마의 주검과 함께 며칠을 보냈다. 문제는 죽음에 이른 사람들만이 아니다. TV 인터뷰에서 조합원 신00씨는 어느 날 베란다 문을 열고 있는 아내를 붙잡았다고 했다. 많은 가족들이 ‘아,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날까’하며 문득 목에 넥타이를 묶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번 달만 버텨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이혼해야지’ 매일 생각한다는 아내도 있었다. 2011년 4월 PD수첩에 이런 인터뷰를 한 모든 사람들이 거의 한번쯤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투쟁하는 사람이라고, 노동조합 간부라고, 그들의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더욱 심각해질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빠가 전경버스로 잡혀가는 걸 본 아이는 아직도 버스를 타지 못한다. 아빠를 때리려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칼, 총 같은 장난감을 밤낮 지니고 다니는 아이도 있다. 한 아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나 자살할 거야’라고 외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춘기 아이들은 비행을 일삼기도 하고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조그만 가슴에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고통을 품게 된 아이들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가끔 눈물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힘드니까 자기는 힘들다 말하지 않는다. 2011년 심리치료가 시작되고 희망버스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자기 집과 가족 밖으로 나온 쌍용차 노동자들이 말했다. 2년 넘게 아이에게 용돈 한 번 줘 본적이 없고, 파업 이후 한 번도 가족들과 밖으로 놀러간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탓하고 가두었다. 자기를 때린 자는 너무나 거대했고, 자신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대했던 폭력의 생생한 기억이 그들을 압도했다.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작아지지 않고 증폭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옮아갔다. 이들은 파업 후에도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나와 함께 술 마시고 밥 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밖에 나오고, 심리치료를 받고, 소식을 듣곤 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다. 희망퇴직이든, 무급휴직이든, 정리해고든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 족히 4,000명은 될 그 사람들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2009년의 고통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작년 1월 故 임00씨 죽음을 계기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심리치유를 자청했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정신의학에서는 자살률이 가장 높은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무자비한 폭력을 겪은 이들은 당시의 공포, 불안, 분노, 적개심 등이 시시각각 떠오르기 때문에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자기 분노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길 가다가 번개를 맞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자기는 맞았고 아픈데 정작 자신을 다치게 한 이는 너무나 멀고 거대해 따질 상대를 찾을 수가 없고, 그래서 공동체 내부에서 적을 찾게 되고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 문제가 가시화되기 전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중요한 일로 사람을 불러놓고는 헛걸음을 하게 만든 일, 무언가를 급히 해달라고 부탁해놓고 해 놓으면 쓸모가 없어진 일이 여러 차례였다. 밤새 고생했는데 그럴 때는 정말 나도 미칠 것 같았다. 연대단위에서 같이 회의한 내용도 노조 사람들끼리는 소통이 되지 않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투쟁 계획에 대한 의견은 좀처럼 모이질 않았다. 별 것 아닌 일로 싸우는 건 일상이었다. 필자에게 그들은 극한의 국가폭력에 맞서 77일을 견딘 놀라운 사람들이었고 한편 실의와 고통에 찬 사람들이기도 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하기도 했다. 모든 게 더디고 답답했다. 그들을 ‘자기 공장에만 갇혀 자기들 좋을 대로 살아 온 어쩔 수 없는 정규직노동자’라고 느끼며 분노하는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벼락 맞은 사람’ 이야기를 듣고 내 분노와 의문은 대부분 사그라졌다. 노동조합 간부들이라 해서 그런 충격을 쉬이 극복할 리 없었던 것이다. 나를 바람맞혔던 그 사람이 약을 먹고 자살시도를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TV를 통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을 탓하다가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래서 싸웠을 것이다. 서로 얼굴을 보면 옛 생각이 나고 괴로워서, 함께 있어도 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도 마치 남의 일 보듯 거리두기를 해버리곤 했을 것이다. 그래도 미운 동료들이나마 옆에 있었던 사람들은 나았을 거다. 죽음에 이른 수많은 이들에 비하면. 쌍용차 노동자의 사회적 질환을 치유하는 사회적 위로와 연대를 2011년 1월, 故 임00씨 사망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말 그대로 비극이었다. 그의 부인은 우울증으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먼저 죽음을 택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도 갑자기 심장이 멈춰 버렸다. 아이들이 등굣길에 인사하려는데, 아버지는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아빠의 실업과 엄마의 죽음에 이미 자살시도까지 했던 아이들.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아빠는 끝내 자기 목숨도 지키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해고노동자와 가족에 대한 심리치유가 있었고, 아이들을 지원하는 레몬트리공작단과 시민들이 있었고,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세워졌다. 한편 한진중공업으로 향한 노동자 시민들의 희망버스가 있었다. 한진중공업과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며, 자기 역할을 찾아 나선 쌍용차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희망텐트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쌍용차 앞, 고통의 발원지에 모였다. 다시 쌍용차 평택 공장 정문 앞에 모이는 게 왜 이렇게 더뎠을까 생각했다. 문득 해고된 후에도 계속 싸웠던 노동자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설득하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 같다. 주위에서는 그들을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 여전히 투쟁하는 ‘노동조합 활동가와 주변 사람들’로 인식하고, 그들의 상태-질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본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을 ‘사회적 살인’이라 말했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질병’을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이 심리치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통곡을 하고, 비로소 자기 상처를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변화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난 3년 동안 그들은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막기 위해 버텨왔다. 하지만 어떤 정당한 논리도, 상황 변화도 많은 동료들을 공장 앞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자기 회사 앞에서 싸우는데 나서지 못하고 쭈뼛쭈뼛했다. 그들은 맨 몸으로 자기 고통의 근원과 마주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없이 해고되고 망가져버린 그들에게는 이해와 인정이라는 안전망이, 함께 싸워줄 사람들이라는 안전망이 꼭 필요했다. ‘집단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이해’, 치유와 원상회복을 위한 ‘사회적 장치’다. 희망텐트, 열 번은 더 모이자 2012년 희망텐트에 2011년 희망버스의 승리가 이어질까? 조건은 많이 다르다. 한진중공업에는 김진숙이라는 상징이 있었고, 공장 안에서 민주노조를 지킨 이들이 있었다. 쌍용차는 계속 외국의 먹튀자본에게 활용되고 있으며 전망이 불투명하다. 공장 안 사람들은 밖에 있는 노조가 공장을 망하게 한다고 불안해한다. 그러니 희망버스보다 더 질기고 큰 싸움을 만들어가야 한다. 희망버스가 5번 영도로 향했다면 희망텐트는 열 번은 더 쳐야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공장 앞이 아닌 어디라도 모여서 싸움을 키우고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희망텐트를 이어오면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등 조직된 노동자들이 보인 연대를 지키고 확대하는 것이 투쟁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살인과 그들이 겪고 있는 집단적 정신질환,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분명하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를 테러리스트 진압하듯 짓밟고, 세계를 떠도는 먹튀자본에게 자유를 준 정부와 산업은행, 쌍용차와 상하이차, 마힌드라. 그들이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긴 시간을 돌아왔어도, 뚜렷한 투쟁의 전망보다는 작은 위로로 다시 시작한다 해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날까지 떠나지 말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들을 붙들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3월 투쟁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합원,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동조합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이하 약칭 서경지부)는 홍익대 투쟁으로 알려져 있는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만 가입된 조직은 아니다. 서경지부는 기업과 업종과 사업장을 초월하는 초기업초업종 지역지부의 위상으로 건설되어 있으며, 산하에는 청소 보안 등 시설관리 부문만이 아니라 학교비정규직과 보육교사, 보육노동자를 포함하여 문화예술 시설직 등 다양한 업종이 가입되어 있다. 2012년 2월을 거치면서 서경지부의 거의 전 부문에서 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대학 비정규직 사업장 집단교섭에 따른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포문을 열고 있으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의 칼바람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보육노동자들은 보건복지부의 임금동결 지침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이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을 묶어세우는 ‘생활임금 쟁취! 비정규직 철폐! 공공운수노조 여성비정규직 현장실천단’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이를 지지엄호하기 위한 여성비정규직 공동투쟁연대 역시 건설되었다. 이 실천단은 물론 서경지부의 조합원만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간병노동자를 포함한 공공운수노조 산하 다양한 조직이 포괄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실천단의 주력은 대학 비정규직 사업장 집단교섭을 포함한 서경지부 산하의 사업장들이며, 주된 투쟁의 쟁점 역시도 서경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이 제기하고 있다는 것도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연대의 명칭이 상징하듯이 투쟁하는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모두 여성비정규직 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노동자들이다. 이 글에서는 주되게는 서경지부가 진행하고 있는 2012년 상반기 집단교섭 투쟁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또한 지부 산하의 학교비정규직들의 현재 투쟁과 보육노동자들의 투쟁 역시도 일부 소개하려 한다. 또한 결론에서, 이러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서경지부의 미래의 조직적 전망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대학 비정규직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집단교섭 투쟁 2011년 3월 8일의 기억 2011년 3월 8일, 고려대고려대병원연세대이화여대의 3개 대학, 1개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전면 파업투쟁을 벌였다. 역사적인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여성노동자들이 총파업투쟁을 벌인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들은 최저임금을 돌파한 시급 4,600원을 쟁취하고 공통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이 투쟁의 의미와 성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터다. 2012년 3월의 청소경비노동자들, 지금도 집단교섭 투쟁이 진행 중 지금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산하의 대학 사업장들은 2012년 상반기에도 집단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집단교섭에는 고려대, 고려대병원, 연세대, 이화여대만이 아니라 홍익대와 경희대가 추가되었다. 홍익대는 말할 것 없이 2011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홍대투쟁’의 주인공들이고, 경희대는 2011년 11월에 노조에 가입한 신규 사업장이다. 이번 집단교섭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최저임금은 그만! 생활임금 쟁취하자!>, <어용노조-창구단일화 노조탄압 투쟁으로 돌파하자!>, <진짜 사장 원청과 직거래하자!> 이 세 가지 목표는 현재 대학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전히 자본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최저임금으로 묶어두려고 하고, 악법을 활용하여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현장을 탄압한다. 그리고 이 뒤에 진짜 사장인 대학자본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이 집단교섭은 10차에 걸친 교섭 끝에 결국 최종 결렬된 상황이다. 사측은 노조의 최초 요구안인 시급 5,410원은커녕 임금동결을 주장하다가 결국 시급 100원 인상안을 내놓았고, 최종교섭에서 4,910원까지 내놓았지만 요구안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각 사업장 현안 요구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교섭 과정에서 각 현장마다 노조파괴를 위한 꾸준한 공작과 부당노동행위가 이어졌다. 결국 교섭은 결렬되고 쟁의조정신청이 진행되었고, 더 이상 교섭이 아니라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임금 요구안 시급 5,410원의 의미, 최저임금 투쟁의 선도 포문 핵심 요구인 임금문제를 보자면, 이번의 집단교섭 임금 요구안은 2010년 전체 노동자 월 평균임금의 절반 시급단가였던 5,410원이었다. 이는 민주노총의 2011년 최저임금 투쟁 당시의 요구안이기도 했다. 2011년 상반기 집단교섭에서도 임금요구안은 2010년 최저임금 투쟁 요구안이었던 5,180원이었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결정 틀에 머물지 않고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현장에서부터 쟁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그 의미는 올해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번 요구안은 이제까지 서경지부가 투쟁으로 쟁취해 온 길을 돌이켜 볼 때 쟁취 불가능한 목표만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무엇보다도 작년 덕성여대, 동덕여대의 청소노동자들이 집단교섭을 통해 시급 5,000원을 쟁취했으므로 현실적으로도 해볼 만한 요구였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시급이 저임금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바뀌지 않은 암묵적인 공식이었다. 또한 저임금노동자들은 무조건 최저임금 시급을 적용받는다는 것 역시도 이 사회의 암묵적 공식이다. 아직도 이러한 공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아니라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집단교섭으로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이 결정되는 사례는 중대한 변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최저임금 결정과정과 제도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작년에도 그러한 조건은 동일했고, 당시 쟁취한 시급 4,600원은 최저임금 결정의 기준이 될 만큼의 사회적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집단교섭이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의 노동자들의 통일된 시급과 단체협약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전체 청소경비노동자들, 나아가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사회적 투쟁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 때문에라도 이들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5,000원 이상의 시급을 얻어내는 것을 자본이 쉽게 수용할 리 없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가 전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도 자본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는 그러하기 때문에 이 투쟁에서 반드시 5,000원 이상의 시급을 쟁취해내야 한다. 자본도 우리도 이번 투쟁이 2012년에 펼쳐질 최저임금 투쟁의 시금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노동악법이 강요하는 부당한 현실을 돌파하자! 그러나 2012년 현재 청소경비노동자들은 2011년 교섭과 투쟁 당시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교섭과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7월 1일부터 발효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라는 개악된 노조법을 활용한 어용노조가 건설되었고, 이를 활용한 원하청 자본의 부당노동행위가 계속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고려대와 고려대병원을 제외한 모든 집단교섭 사업장에 사측이 건설한 어용노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창구단일화를 진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말 심각하게 피부로 와 닿는 문제는 창구단일화 악법이 시행되면서 만들어 진 어용노조에 의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과 조직분열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연세대는 조합 탈퇴가 이어지면서 사측 주도의 어용노조가 2개나 건설되었고, 이 어용노조들은 지금도 사측의 지원 속에서 현장에서 서경지부의 활동을 비난하며 활개치고 있다. 연세대 전 조합원 중에서 30%가 넘는 사람들이 이 어용노조들로 떨어져나갔다. 이화여대는 7월 1일 시행 직후에 비조합원 중심으로 어용노조가 건설되었고 이들은 끊임없이 서경지부를 비난하며 자기 조직을 불리려고 노력 중이다. 홍대에서 노조를 탈퇴한 경비노동자들이 건설한 어용노조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자기들이 회사와 합의한 낮은 임금을 우리 측도 수용하라는 어이없는 강요를 하는 등 반노동자적인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과정 자체가 현장 조합원들의 피로를 가중시킨다. 심지어는 우리가 싸워서 얻어내는 더 나은 노동조건, 더 나은 임금이 저 기가 막힌 어용노조 조합원들에게 적용될 생각을 하면 더 힘이 빠진다. 실제로 언제부터인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불만들은 “우리가 뼈 빠지게 싸워서 이기면 뭐하냐. 저 어용노조도 똑같이 적용 받을 텐데” 라는 것이다. 아마도 어용노조를 만든 자들이 가장 크게 노렸던 것이 이런 반응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수노조를 활용한 자본의 노조 파괴 공작을 분쇄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집단교섭 투쟁은 매우 공세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자본의 노조 파괴 공작은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은 어느 정도 잦아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해결된 것은 아니며 어용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은 앞으로도 조금씩 방식을 달리하여 계속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면서 투쟁 전선을 흐릿하게 만들려는 사측의 의도는 더 이상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명확하게 투쟁전선을 치고 조합원들을 이 전선에 결집시키는 것만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책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의 요구를 쟁취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현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민주노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쟁의조정 과정에서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창구단일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조정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게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입장이었다. 우리 서경지부는 이번 집단교섭이 공공운수노조 차원의 산별교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단사별 교섭에 적용하는 창구단일화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노동위원회는 막무가내였다. 이 법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가로 막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법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교섭권 행사 여부를 사측과 정부가 결정하게 만든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노력할 권리마저 박탈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 3권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현재 서경지부와 각 업체들과는 여러 투쟁 과정 끝에 자율교섭을 합의한 상태다. 이는 창구단일화절차를 강요하는 노동위원회와 사측에 맞선 노동조합의 대안이다. 물론 법을 초과하는 쟁점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고 산별교섭으로 인정받은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주적인 교섭권조차도 박탈당하기 일쑤인 현행법 체계 내에서 노동위원회와 사측이 한 발 물러서게 만든 성과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분명히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내년에도 창구단일화라는 과정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이러한 한계에 묶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지금만큼의 자주적인 교섭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조직력을 강화해내고 산별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내야 한다. 만일 이번에 노조 측이 투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 노동위원회는 일방적으로 창구단일화절차를 고지하며 기각해버렸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직을 강화하고, 노동악법을 넘어설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노동악법 철폐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집단교섭 투쟁을 승리하고, 조합원들을 민주노조 운동의 주체로 세우자!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현재 이 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물론 이번 서경지부 집단교섭은 물론 여러 모로 전년도보다는 쉽지 않은 조건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이 여전히 전체 노동자에게 유의미한 투쟁이라는 점은 여러 가지 지점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악조건을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 것인가가 남은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면한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만이 아니다. 투쟁 이후의 전망을 구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 집단교섭 투쟁이 어려워진 가장 큰 요인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통과로 시작된 노동악법을 활용한 자본의 공세였고, 그 과정에서 조직의 분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의 공세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공세가 먹혀들어갈 수 있었던, 우리 내부의 약점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에 대해 분명한 조직적 평가와 대안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그리고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열어가는 운동으로서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굳게 세워야한다. 또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고취하기 위한 부단한 현장 활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으뜸 과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민주노조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학교비정규직보육노동자들의 투쟁 서경지부가 건설되면서 세웠던 초기업 초업종 지역지부의 전망은 여러 과정을 겪으며,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해있다. 서경지부는 초업종 지역지부를 지향한다. 하지만 조직 내외적으로 서경지부는 주로 청소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조, 혹은 시설관리 업종산별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서경지부에 보육교사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등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중소영세사업장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5인 미만 사업장이 다수인데다가, 뚜렷하게 눈에 띄는 투쟁이 많았던 것도 아닌 어려운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중소영세사업장 조직의 강화발전을 위한 조직적인 노력 또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지역에서 일하는 공공부문의 노동자 그 누구라 하더라도 지역지부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러 현실 조건 속에서 그러한 원칙이 올곧게 지켜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경지부가 애초에 지향했던 조직적 전망을 되 새기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정도의 투쟁으로 돌파 가능할 것 같거나 경험이 있는 업종의 사업장 조직에만 열을 올리게 되고, 어려운 투쟁을 회피하려는 관성적인 경향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서경지부는 이러한 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서술할 두 가지 투쟁의 경우 서경지부가 건설되면서 지금껏 책임져왔던 업종의 노동자들의 투쟁이며, 올해 들어서 새롭게 전망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투쟁이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이 생산적으로 건설될 때 또 다른 조직적 전망 역시 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비정규직 독산고 특수보조 해고 투쟁 새학기가 다가오면 초중고등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새학기 시작과 함께 실직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이어진다. 2007년 비정규악법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오히려 무기계약 전환을 시키지 않기 위한 학교 측의 해고를 일상화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가장 큰 피해자들이었다. 이번 2012년에도 수많은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바람을 맞았다. 그 중 서경지부 산하에 학교비정규직분회 조합원 2인이 학교와 교육청에 맞서 계속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독산고등학교 특수보조원 노동자 2인이 그들이다. 이들 중 1인은 무기계약 대상자였지만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고, 1인은 5년 동안 5번의 해고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특수보조는 특수교사와 함께 장애학생을 돌보고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노동자다. 오히려 특수교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생과 보낼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 때문에 장애학생을 받는 학교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장애학생이 전혀 없는 학교라면 특수보조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독산고등학교는 해마다 장애학생의 숫자는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특수보조원 노동자의 인원을 감축하면서 1년 마다 해고시키는 관행에 의거하여 무차별 해고를 자행했다. 이는 장애학생들을 돌보는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해고를 강행한 것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학교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사태는 개별 학교 차원에서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학교는 교육청에서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하청기관에 불과하며,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 자체가 교육청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시도 교육청이라는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떨어지면서 기존의 학교를 상대로 하는 투쟁 방식에서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교육청과 공공운수노조는 면담을 진행한 후 정례협의회를 꾸리기로 한 상황이다. 이번 독산고의 해고 투쟁은 물론 서경지부 차원의 단사 현장 투쟁이기는 하지만, 이제껏 숨죽여 살아왔던 특수보조 비정규노동자들을 대변하는 투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특히 특수보조는 장애아동이 해당 학교에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근무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더욱이 학교 차원에서의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설사 복직한다 하더라도 이는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독산고 투쟁은 현장의 특수보조노동자의 실태를 사회에 고발하는 투쟁임과 동시에, 특수보조를 포함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만성적 고용불안을 교육청이 책임지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투쟁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공공운수노조 산하 전회련 본부 서울지부와 서경지부 학교비정규직분회는 조직 통합을 포함하여, 이후 사업적으로도 통합적 흐름을 가져가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단시일 내에 조직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서경지부 학교비정규직분회의 투쟁과 조직화는 그 동안은 서경지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투쟁이 교육청을 상대로 한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서경지부 역시도 최선을 다해 복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임금동결에 맞서는 보육노동자 투쟁, 조직화로 나아가자! 보건복지부는 2012년 보육교사 임금 동결 지침을 내놓았다. 2009년, 2010년 2년 간 동결했고 2011년에 고작 3% 인상을 했었지만 이는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액수였다. 보육교사는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교사 1인당 20명에 달하는 아이를 볼 수도 있는 초과보육 지침 등에 의해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 눈앞에 시설 비리를 보면서도, 해고되거나 왕따 당할까봐 무서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바른 소리라도 한마디 하면, 아이들을 팔아서 자기 밥그릇이나 채우려고 하는 나쁜 교사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런 마당에 임금수준도 최저임금인지라 보육교사들이 당연히 자신들의 직업에 자존감을 갖기 어려운 처지다. 보건복지부의 임금동결지침은 이런 처지의 보육교사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2월 8일, 보육교사 500여명이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가 개최한 보건복지부 앞의 임금동결저지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이 집회 이후로 보육교사들이 노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는 2월 25일에 2차 집회를 개최했다. 2차 집회에도 만만치 않은 숫자의 보육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처음 나오는 집회인지라 앞자리에 앉기는 부담스러워 했지만 뒤풀이까지 함께 하면서 열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교사들의 모습은 이후의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현재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는 총대선 대응과 맞물려서 이후 조직화 사업까지를 검토하고 있다. 선거와 함께 보육정책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에 보육교사들의 불만을 조직화하고, 정책에도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차원에서도 보육노동자들의 요구를 조직화하기 위한 전망을 제시하고, 지역지부가 이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보육노동자들의 분출 자체가 쉽게 오지 않는 정세라는 점은 누구라도 인식하고 있는 바다. 그리고 이번의 보육노동자 조직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지역지부의 미래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만이 서경지부의 미래일 수는 없다. 보육노동자 조직화의 성공은 그들 스스로만이 아니라 곧 지부 내의 여러 다양한 주체들에게 가능성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공공운수노조 전체의 운동 전망에도 발전적일 것이다. 2012년에 이렇게 분출되고 있는 보육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노동조건의 개선만이 아니라 이후의 조직화를 예비한다는 점에서 보육노동자 스스로에게도 중요하지만, 서경지부가 포함된 지역지부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단일 업종지부를 건설하면서 현 시점에서는 지역지부 건설전망과는 매우 멀어진 측면이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조직난립 사태와 연관이 깊다. 여러 개의 다른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만들어져서 서로 경쟁하고 분열했다. 물론 보육노동자 조직화가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투쟁의 승리를 시작으로 새로운 조직적 전망을 건설해야 여기까지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합원들의 3월 투쟁을 소개했고, 그 투쟁들의 각각의 의미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그 의미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대학 사업장 집단교섭 투쟁은 최저임금 투쟁의 포문을 여는 전국적 투쟁이자 작년의 3.8 총파업 이후 청소노동자들의 조직을 파괴하기 위한 원하청자본의 공세를 돌파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이번 투쟁에 승리한 성과를 바탕으로 청소노동자들의 조직을 안정화하고, 민주노조답게 기풍을 새롭게 정립해나가야 한다. 더군다나 집단교섭이라는 공동투쟁의 힘을 다시 한 번 노동자들에게 각인시키고, 노동자들 스스로 그 힘을 더욱 키우기 위한 조직의 확대강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노동자들이 직접 민주노조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산고등학교 특수보조 노동자 투쟁은 사업장의 해고 투쟁이기도 하지만 매년 초만 되면 해고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변한다. 더군다나 장애학생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 유독 고용이 더욱 불안한 특수보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투쟁인 것이다. 보육교사들의 임금동결저지 투쟁은 올해 총선과 대선을 경유하면서 조직화의 성과를 만들어 가기 위한 첫 포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올해를 기점으로 분출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 투쟁들의 성과는 서경지부의 초업종 초기업 지역지부의 전망을 실질화 시키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제껏 서경지부는 사업장과 업종을 초월한 단결이라는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단 1명의 조합원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한다는 것이 서경지부의 정신” 이라는 것을 조직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는 대학교 미화 사업장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투쟁의 경우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에게 당위적인 주제로 접근될 뿐이었다. 대학교 청소경비 사업장의 경우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집단교섭 투쟁을 성과 있게 마무리 할 경우 조직의 안정화 국면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미조직된 사업장에서도 조직화가 일정 수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전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워나가는 과정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지역에서 더욱 밀착하여 단결할 수 있는 조직적 전망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대학교 청소경비 사업장들은 중심축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반면 보육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올 한해의 정세를 관통하며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두게 될 경우, 서경지부 내에서도 이 분출하는 조직화를 지부에 실질적으로 융합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이제껏 소수의 어려운 노동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당위적 접근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통해 업종 간 융합을 꾀하는 것으로, 지역에서부터 사업장과 업종을 초월한 단결과 연대를 조직하고 미래의 주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제 하나의 투쟁의 승리를 넘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더 많은 주체를 형성해야 할 주요한 길에 서경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이 놓여져 있다. 물론 가시밭길이겠지만, 더 당당하고 힘차게 걸어 나가야 한다. 다시 한 번 여성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승리를 위한 힘찬 진군을 시작하자!
최저임금 노동자로 산다는 것 편집자 주 - 2012년 현재 최저임금은 시급 4,580원이다. 그러나 필자가 202만원을 받았던 지난해 11월에는 시급 4,320원이 최저임금이었다. 지난 2011년 11월 초 어느 날 점심시간에 급여명세서를 받았다. 누구 할 것 없이 부푼 마음으로 명세서를 펼쳐들 보았다. 누가 제일 많이 받았나, 내가 일한 시간이 빠지지 않고 계산되어 나왔나 확인해보고 뿌듯해들 했다. 모두들 그동안 받아본 적 없던 금액의 월급을 받아서 그런지 무척 들뜬 모습이었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휴게실에는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많이 받으면 뭐 하냐, 몸이 부서질 지경인데”, “우리가 공돈 더 받은 거 아니잖아. 이렇게 받을 정도로 무식하게 일했다는 거 아니야”, “이젠 정말 좀 쉬고 싶다”, 이렇게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며 보낸 점심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장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지난 1년 반 동안 받았던 월급 중 최고금액을 받았다. 주간으로만 한 달 31일, 하루 기본 4시간 연장에, 주말까지 빠지지 않고 일해서 받은 202만원. 쉬지 않고 일했던 한 달 반 사이에 내 몸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나는 시급 4,320원 최저임금 노동자 그렇다. 글 제목에서 이미 감지했겠지만 나는 시급 4,320원의 최저임금 노동자다. 최저임금 노동자로 2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지만 최저시급으로 200만 원을 버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 기본 8시간을 일하면 일급 34,560원인데, 평일을 한 달 20일로 계산하면 691,200원이 나온다. 여기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864,000원이고, 더해서 토,일 모두 8시간 일하면 1,382,400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62만 원은? 꼬박 한달 30일에 기본시간 이후 평균 3.2시간을 더 일했다는 의미이다. 식사시간과 휴게시간을 포함하면 실제로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평균 13~14시간정도 되는 셈이다. 내 월급을 계산해보자면 이렇다. ① 한 달 평일기본(월~금 8시간, 20일로 계산) : 4,320원×8시간×20일 = 691,200원 ② 주차(월~금까지 만근했을 때 1주당 기본일급지급, 5주로 계산) : 34,560원(4,320원×8시간)×5주 = 172,800 ③ 특근(토, 일 8시간, 10일로 계산) : 4,320원×1.5배×8시간×10일 = 518,400원 ④ 잔업/특근(월~일 기본8시간이후, 30일로 계산) : 4,320원×1.5배×약3.2시간×30일 ≒ 620,000원 나의 월급 총액 ①+②+③+④ ≒ 2,000,000원 강제적인 잔업, 특근 중요한 것은 이처럼 살인적으로 일한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이 200만 원을 넘게 받았고, 가장 많게는 220만 원까지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일한 것은 더 많은 월급을 받고자 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 사업장에는 엄청난 물량 감소가 있었다. 하청들 사이의 경쟁에서 밀려 계획했던 물량을 뺏겼고, 그 결과 현장에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인원감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전날 저녁잔업까지 같이 했던 많은 동료들이 퇴근 후 해고문자를 받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인원의 반(半)이 줄어 있었다. 첫날에는 170명에서 80명으로, 80명에서 40명으로, 40명에서 30명으로.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 인원감축으로 단 일주일 사이에 170명에서 30명만이 남았다. 인원감축에 대한 소문은 관리자들이 노골적으로 퍼트린 것이었다. “잔업특근 안할 거면 아예 출근하지 마라”, “수량 안 나오는 사람들을 추리고 있다”, “아프면 어떻게 하냐, 평소에 몸 관리 못한 니 탓이다”등등. 실제로 잔업특근을 거부한 사람 중 본보기로 해고된 사람도 여럿이었다. 관리자들은 해고 대상자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의 숨통을 조였다. 이런 상황은 사내하청도 마찬가지였는데 과로로 설사병이 난 노동자가 잔업을 거부하자 “기저귀차고 일하라”고 했다는 소문이 다른 하청까지 퍼질 정도였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 우리가 대부분 200만원 넘는 월급을 받은 이유는 해고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짤려 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매일 밤 문자를 확인하고 아침에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엄청난 노동 강도였다. 해고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동 강도를 강화했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생산기록은 갱신되었다. 6개월 전 시간당 수량은 불과 한두 달 만에 2배가 되어있었다. 무리한 작업으로 목, 어깨, 손목 등에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그저 진통소염제로 대신할 뿐이었다. 최저임금노동자로 산다는 것 최악의 시간이 지나고, 현재 나는 아직도 같은 라인에서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물량이 없던 1, 2월에는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생활을 했고, 2월말이 되면서는 물량도 조금씩 늘어나 다시 한두 명씩 신입도 늘어가고 있다.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말에 있었던 엄청난 사건들은 나에게 많은 상처와 교훈을 남겼다. 예전에는 동료들이 강제적인 잔업과 특근, 엄청난 노동 강도에도 크게 반항하지 않고 일하는 것에 마냥 분노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의 요구와 압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이루어진 생존을 위한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치솟는 물가와 실질임금의 감소,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최저임금노동자들에게 조직된 다수의 싸움이 사업장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공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학습효과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
한미 FTA폐기를 위한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일자가 발표되고, 그동안 줄곧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미 FTA가 총선 최대 쟁점으로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22일 날치기 비준 이후 발효가 개시되는 일은 단순 법절차에 불과한 수순이라고 본다면, 문제는 발효 이후 그동안 <날치기 비준무효 촛불집회>중심의 한미 FTA 투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은 이러한 쟁점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반격과 궁색하기 그지없는 민주당 새누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이 2월 초 미국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대표가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한번 체결된 국제협약을 이런 식으로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물러섰다. 기세를 잡았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2주가 넘도록,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한명숙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과거 행적과 발언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반면 민주당의 대응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형편이다. 이로써 날치기 이후 줄 곳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던 새누리당은 정식 발효를 앞두고 오랜만에 반격에 나서게 되었고, 한미 FTA는 새누리당의 선공에 의해 총선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2010년에 재협상된 MB FTA를 반대할 따름이다. 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맞춘 이익균형을 이명박정부가 깼다는 근거다. 하지만 민주당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10여 개 항목들 중 MB가 추가한 자동차부문의 양보는 큰 비중의 사안이 아니다. 또한 나머지 9개 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4월에 체결한 내용 그대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역진방지 조항(래칫), 주요 농축산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 등 핵심 독소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있던 그대로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야권단일화 정당화 명분으로 이용당하는 한미 FTA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관점과 이념노선의 차이가 없는 보수양당이 앞 다퉈 한미 FTA를 선거 쟁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 짓고 손쉽게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선거 여론조사 기관에서 흔히 말하는 대표적 ‘갈등이슈’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한미 FTA 폐기 서한은 실제로 한미 FTA를 폐기시키겠다는 운동 전략이 아니라, 한미 FTA라는 갈등이슈를 소재로 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 퍼포먼스’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한미 FTA같은 중대한 국가 간 협정을 함부로 다루는 민주당을 성토하고 나서는 모순적인 태도 역시 선거 정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서민경제도 돌보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당과 달리 말을 바꾸지 않는 진정성 있는 보수,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공천기준에는 한미 FTA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천심사위원회 자체가 친 FTA 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내부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카드를 버리지는 않는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어, 자신이 주도하는 반MB-야권연대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보다 강력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린 한미 FTA투쟁과 범국민운동본부 한미 FTA가 이렇게 여야 정당 간 표몰이 쟁점으로 전락하는 사태로 말미암아 정작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왜곡되고 가로막힌다.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한미 FTA 폐기투쟁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잊어가고 있다. 범국본은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지만, 집회내용과 실질적인 사업기조는 이미 반MB-야권연대 총선대응으로 변질되었다. 올 초 범국본 내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진행된 이른바 ‘심판운동’은 야권연대 총선대응 사업기조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최초의 논란은 여야정당의 공천반대인사 명단발표 문제로 불거졌다. 범국본 산하에 구성된 검증지원단은 심판자 명단을 ‘날치기의원 151인, 국회의장, 부의장 2인, 민주당의원 7인’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기준에 따라 협소하게 심판대상자를 선정한 안이었다. 범국본 내 여러 단체 대표자들은 이러한 명단발표를 반대하고, 다른 기준과 질적으로 다른 총선대응방식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첫째, 심판명단 작성의 기준은 한미 FTA 날치기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심판대상은 날치기에 참여한 151인과 7인의 민주당 야합파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날치기151인’과 민주당의 핵심 야합파 의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강조하면 될 일이지, 그들 때문에 나머지 의원들을 심판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논의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검증지원단의 안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쟁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논의는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다수의견 대로 검증지원단의 심판자명단을 발표하되, 심판명단발표 취지에 “한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날치기를 자행한 새누리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범국본의 심판자명단은 2월16일에 1차 발표되었다.) 범국본은 밀실협상을 통해 한미 FTA를 폭력적으로 체결한 노무현 정부에 맞서 결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범국본은 날치기 이전이나 이후나 일관된 한미 FTA 폐기 입장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참여정부 FTA 원안 찬성론이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찬성론 등을 비판해왔다. 그런 범국본이 이제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감안하여 야합파 7명 수준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심판명단을 발표하고, 한미 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 한미 FTA 전면 폐기 기조를 명확히 하고,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한미 FTA는 계급갈등의 광범위한 쟁점들과 분리 불가능한 사안이다. 한미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도 아니고, 양국 간 국익의 균형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협정도 아니다.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핵심이 아니다.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에 걸친 포괄적인 경제제도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일단 한번 체결-발효된 국가간 협정을 폐기하는 일”은 양국 간의 정치, 경제,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전환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다. 가령 한미 FTA 폐기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의 근본적 전환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민주당의 진정성 없는 선거용 퍼포먼스 정치에 활용되고 범국본에 야권연대를 목표로 하는 사업기조가 삽입되면서, 한미 FTA 폐기운동은 더욱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미 FTA 폐기가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새롭게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모색해야할 때이다. 경제제도 전반의 근본적 전환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부분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재벌규제 제도들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노조 투쟁, 철도노조 투쟁으로 이어져온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투쟁은 지난 2000년대 내내 거듭해서 패배하고, 집중력 있는 공동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데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탄압의 선봉인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재벌들과의 투쟁은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추가적으로 민영화하고 한번 개혁된 부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되돌리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 민영화 잔치판에 머리 검은 외국투자자로 재벌이 참여하여 각종 규제와 노동권 관련 제도들을 무력화하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 폐기운동은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운동전선의 재건과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선 총노동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지역-현장의 운동을 중심으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한다. “투쟁 없이 총선승리 없다!”는 현재 범국본 촛불집회의 기조는 야권연대를 압박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대중동원과 명분 쌓기로 기능할 뿐이다. 한미 FTA투쟁은 이러한 정치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익을 위한 재협상이 아니라 전면폐기를 명확한 기조로 다잡아야 하고, 반MB 유권자운동-낙선운동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투쟁과 민영화저지 운동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때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박탈당한 노동3권을 되찾자! :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확정판결에 부쳐 2월 23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이며 따라서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2004년 노동부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정 이후 8년여 만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업주들의 무분별한 사내하도급 활용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사내하도급을 활용하여 고용신축성을 확보하고, 해고의 자유를 얻고자 했던 것은 노동권 침해이며, 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에 부당징계, 부당해고, 그리고 노조탄압으로 일관해왔다.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후에도 그랬거니와 2010년 7월 대법원의 불법파견․정규직화 취지의 파기 환송심 이후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2010년 11월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정규직화 투쟁 이후에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사내하청 업체들이 일괄 징계․해고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에 노조의 손발을 묶어놓을 목적이었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사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확정하는 것도 아니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증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현대차 사용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법원판결은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화 투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드는 실질적 힘은 정규직화를 향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 의지, 회사의 분열책동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력,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금속노조와 전체노동운동의 투쟁력에서 비롯한다. 2010년 울산공장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에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박탈된 노동3권을 되찾기 위한 계기로 삼자.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쟁취하기 위한 초석이 되어야 한다.
학비 공동투쟁을 통한 신뢰 회복과 민주노총의 원칙있는 조직편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노조의 원칙을 심각히 훼손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 결정 2012년 1월 2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전국학교비정규직단일노동조합(이하 전국학비노조) 조직편제건’을 안건으로 상정하여 많은 논란 끝에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①전교조, 대학노조, 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등은 전국교육노조협의회를 2012년 2월 말까지 결성하고 민주노총은 이를 인정한다. ②전국학비노조는 전국교육노조협의회 구성원으로 참가하여 민주노총 구성원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③2013년 민주노총 정기대대 전까지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을 결성한다.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 전까지는 과도조치로 현 중집위원(대학, 전교조, 교수, 비정규교수노조)에 대한 중집위원 역할은 계속 부여한다. ④학비관련 조직은 2013년 민주노총 정기대대 전까지 하나로 통합한다. 민주노총은 통합 시까지 갈등을 최소화하고 원활한 현장 사업이 진행되도록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만약 학비관련 조직이 위 ①, ②, ③항이 이행되었음에도 자율적으로 통합되지 않을 때 민주노총 조직방침에 따라 강제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 결정은 해당 (산별)노조․연맹에서 논의, 공유되지도 않은 조직 건설의 문제를 총연맹에서 일방적, 졸속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산별연맹 결성의 문제는 해당 (산별, 업종, 단위)노조․연맹에서 조직발전 전망 논의를 통해 대의원대회 혹은 조합원 총투표 등을 거쳐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결정해왔다. 민주노총은 상급단체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 차원에서 산별노조 건설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또한 산하 조직 내부에서 조직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여 조직 구획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인 것이다. 또한 이번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전국교육노조협의회’(준) 참가단위들이 전국교육노조협의회(준)의 위상을 교육 관련 노동조합의 공동투쟁 수준으로 합의 것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국교육노조협의회(준)은 2011년 9월 총연맹의 제안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단일노동조합이 참여하여 준비모임을 구성하고 2011년 11월 결성되었으나, 참가단위들이 교육대산별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많아 그 위상을 공동투쟁 수준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중집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전교조 또한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2월 2일 전교조 중집에서 민주노총 중집 결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달았고, “전국교육노조협의회(준)과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관련 건은 사업계획에서 삭제하고 민주노총 중집 보고사항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전교조 집행부는 대의원대회 제출 사업계획안에서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교육노조연맹을 출범시킨다'라는 부분만 삭제하고 사업계획안을 그대로 제출하여 2월 11일 대의원대회에서 커다란 논쟁이 진행되었다. 결국 교육노조연맹 관련 부분 심의보류 동의안이 정족수 미달로 처리되지 못하고 유회되었다. 2월 14일 전교조 중집에서 내부 논의도 없이 민주노조 중집 결정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위원장이 인정하고, “‘전국교육노조협의(준)’은 공동투쟁체 성격 정도이며, 전교조 중집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또한 2월 24일 대의원대회에서 이번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대학노조와 교수노조 또한 최근 개최된 ‘전국교육노조협의회(준)’ 회의에서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공유했다. 민주노총의 조직방침을 위반한 전국학비노조의 결성 과정이 문제의 발단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교육기관에서 급식(영양사/조리사/조리원), 과학, 교무, 사서, 방과 후 수업, 전산, 특수교육, 행정, 운동코치 등 40여 직종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 규모는 전국적으로 약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교과부-교육청의 통합적인 정책이 수립되지 않고 개별 학교장에 의한 주먹구구식 계약이 이루어짐에 따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항시적인 고용불안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일쑤였다. 또한 일한 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을 정도로 임금수준도 매우 열악하다. 이러한 문제를 바꿔나가고자 전국여성노조를 시작으로 공공노조 학교비정규직분과, 전국회계직연합회(이하 전회련), 총연맹 지역본부 산하 일반노조 등이 조직사업과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러다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실질적인 사용자인 진보교육감이 다수 당선되면서 각 지역별로 대대적인 학교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최근 2년간 다수의 노조가 진행한 조직사업을 통해 조직화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3만 여명에 다다르게 되었으며, 미약하나마 노동조건 개선을 이뤄내면서 교육감 직고용을 달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진보교육감 당선 이후 교육감의 지원 아래 손쉬운 조직화가 가능하리라는 판단 하에 학교비정규직 조직화가 진행되면서 ‘조직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편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신규조직은 조직화된 해당 주체가 있는 경우 해당 조직에 우선 편제한다’는 민주노총의 조직방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민주노총 내부에서 학교비정규직 조직화 단위였던 공공노조 학교비정규직분과/지역지부를 부정하고 별도의 조직화가 추진되었다. 서울, 전남, 광주 등 주요 지역에서 지역본부의 지원 아래 일반노조로의 조직화가 진행되었고, 서울의 경우 서울본부/일반노조와 공공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전남, 광주 등에서는 지역본부를 운영하는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커서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았으나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산별노조(특히 공공노조)와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일반노조로의 조직화를 넘어 ‘전국학교비정규직단일노조’(정치적 성향이 같은 지역 일반노조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단일노조로 조합원의 소속을 변경)가 출범하면서 민주노총 내부의 학교비정규직 조직편제 관련 갈등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총연맹의 지원 아래서 전국학비노조 건설이 강행되면서 민주노총의 기존 학비노동자 조직단위인 공공운수노조의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2011년 초에는 민주노총의 제안으로 전국학비노조, 전회련, 여성노조, 공공운수노조 학비분과 간에 통합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민주노총의 조직방침을 무시한 전국학비노조의 일방적인 행보로 인해 통합이 무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관련 노조들의 공동투쟁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다. 전국학비노조의 변칙적 민주노총 가입을 위한 방안, ‘전국교육노조협의회’의 결성 과정 이런 상황에서 전국학비노조는 민주노총의 지원 아래 민주노총에 독자적인 산별연맹으로의 가입을 추진한다. 민주노총 조직방침을 위반하고, 특정 정파의 조직적 기반으로서 결성된 전국학비노조의 민주노총 가맹에 대한 반발이 크자, 2011년 7월 민주노총은 중집에서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가맹 처리 절차를 진행 중인 노조’라는 모호한 위상으로 전국학비노조에게 ‘민주노총 이름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했다. 민주노총 스스로가 원칙과 기준 없이 특정 정파의 이해를 위해 변칙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후 민주노총은 2011년 9월 뜬금없이 전교조, 대학노조, 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등에 교육대산별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을 제안한다. 민주노총의 교육대산별 건설 제안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우선 그 동안 조직 갈등의 당사자였던 공공운수노조 학비분과 및 전회련 본부를 제외한 채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민주노총의 조직발전 전망으로서 일반적인 방침논의를 조직하지 않은 채 유독 교육대산별을 특정하여 건설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전국학비노조를 민주노총에 가입시키기 위한 변칙적인 방안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지난 1월 26일 민주노총 중집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단일노동조합(이하 전국학비노조) 조직편제건’으로 안건을 제출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전국교육노조협의회’ 결성과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을 졸속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전국학비노조에게 ‘민주노총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 것을 통해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전국학비노조의 민주노총 가맹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전국학비노조의 민주노총 가맹에 반대했던 공공운수노조와 중집 위원들이 이러한 변칙적 방안에 합의했다는 것 또한 비판받을 일이다. 민주노총 중집의 졸속적, 파행적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 결정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계약해지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민주노총 내 조직편제를 둘러싼 갈등은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 가입을 희망하는 전국학비노조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 가입을 미뤄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민주노총의 졸속적, 파행적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은 ‘전국교육노조협의회(준)’에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산별)노조 내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학비노조의 민주노총 가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대산별 건설이라는 전혀 다른 사안을 변칙적으로 결합시키다 보니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 중에서 ‘전국학비노조는 전국교육노조협의회 구성원으로 참가하여 민주노총 구성원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이미 전국학비노조로 조직된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가입을 언제까지 막을 수 없고, 민주노총의 조직방침을 위반하여 건설한 전국학비노조를 민주노총의 17번 째 연맹으로 가입시키는 것 또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민주노총 소속임을 확인시켜 주는 수준에서 인정하자는 것이다. 전국학비노조의 조직편제 문제는 민주노총의 조직편제 방침을 위반한 것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재론되어야 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공동투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이후 민주노총 차원의 원칙과 기준을 재정립하여 조직편제를 해야 한다. 현재 전국학비노조의 경우 노조 간 조직화 경쟁 과정에서 공공운수노조에 대한 왜곡된 비방을 통한 조합원 빼가기 등 조직경계를 무시한 공격적인 조직사업을 진행하면서 상호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상호 간에 파괴적인 조직경쟁을 자제하고 공동투쟁을 통한 신뢰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주력해야 할 사업이다. 민주노총은 정파적 이해를 앞세워 원칙과 기준 없이 별도의 조직으로 편제한다면 향후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구획을 둘러싼 갈등이 확대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 결정은 전면 철회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발전 전망에 대한 일반방침에 대한 합의도 없고, 해당 (산별)노조 내의 충분한 토론도 부재한 조건에서 상급조직의 결정으로 조직을 결성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민주성과 자주성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민주노총의 파행적 결정이 산하 (산별)노조의 갈등을 만들고 내부적 단결을 해쳐서는 안 된다. 전교조 또한 조직형식적인 교육대산별 건설로 조직 내부 갈등을 만들어선 안 된다. 교사 업무 경감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 강화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현장 교사들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의 조직 틀로 묶어세우기 위해서는, 현장 교사들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상호 공동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대학 사업장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대학사업장에서 교직원과 교수, 비정규교수로 조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대학 내에서 서로의 다른 존재조건으로 인해 충분한 연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당장의 형식적인 조직건설 논의는 소모적이며 공동투쟁을 통한 신뢰확보와 단결의 확대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가칭)전국교육노조연맹 결성’ 방침을 철회하고, ‘전국교육노조협의회’는 해당 주체들의 의견대로 현안 공동투쟁을 목표로 상식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더 이상 파행적인 교육대산별 조직건설 논의가 내부 갈등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 한편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대산별(제조대산별, 공공대산별, 민간서비스 대산별) 건설 전망이 주장되기는 하였으나,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충분한 합의와 동의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교육대산별 추진이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을 교섭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면, 현재 공공운수노조 또한 교섭대상을 달리하는 공공기관 사업장과 지역지부, 버스본부 등은 조직분리를 해야 하는 것인가? 또한 그 동안 조직형식적인 산별노조 건설로 인한 계급성과 투쟁성의 약화와 같은 부정적 효과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상당히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우선 집중할 일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근거 없이 산하 (산별)노조의 조직편제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전망으로서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운동에 대한 명확한 진단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과 투쟁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직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편제를 둘러싼 내부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는 것이다. 더 이상 민주노총이 정파적 이해를 대변하는 무원칙한 결정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