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0월 1일 한미양국은 공산진영의 군사적 도전을 억제하고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북한에 소련과 중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음에도 북한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해방’하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오랫동안 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논리였다. 이는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해서 남한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고, 중국과 소련이 개입된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자유한국’을 방어했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이란 결국 냉전 하 남북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 특히 주한미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매우 특수한 의존과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어와 억지’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출발한 한미 군사동맹은 점차 그 호전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미국은 1957년부터 한반도에 핵무기를 반입, 배치했고 1974년부터는 ‘작전계획 5027’을 수립하면서 주한미군 작전개념을 사실상 북침 시나리오에 다름 아닌 ‘전진적 방어전략’으로 대체했다. 탈냉전 이후에도 미국은 역내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동북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위협론’과 ‘북핵’을 빌미로 한미일 삼국의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시켜왔다. 특히 21세기에 전개될 미래전에 대비,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온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대테러 전쟁 전략’에 따라 한미양국은 최근 ‘동맹의 현대화’를 약속한 상태다. SOFA개폐와 전시작전권반환 문제 등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구축이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묵살한 채, 한반도 위기 국면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한 한미동맹의 현대화 - 그 파장과 의미에 대해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세계화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대외■안보전략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세계화 시대 군사적 개입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 무엇이 국익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 세계화 시대의 국가안보를 재정의하기 위해 다수의 위원회들이 구성되었다. 이중 영향력 있는 하원의원들과 유명한 경제학자들(예컨대 폴 크루그먼) 그리고 콘돌리자 라이스가 포함되어 있는 ‘미국국익위원회’는 ‘중대한 이익, 중요한 이익, 절 중요하거나 부차적인 이익’ 등으로 미국의 국익의 위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권력 행사가 ‘인류전체의 이익’이나 ‘가상적인 국제공동체’와 같은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닌, ‘국익의 확고한 지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구실 아래 세계에 개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또 미국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주체이고 세계화의 주요 수혜국이기 때문에 세계화의 옹호가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미군이 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세계화의 옹호란 ‘상업 및 금융 네트워크, 수송과 에너지, 환경 등 세계의 주요 체계들의 안정과 원활한 작동의 유지’를 의미한다. 즉 세계화에 따라 국가안보 개념은 ‘자국 영토의 불가침권’이라는 전통적 접근으로부터 ‘세계체계들의 생존가능성(원활한 작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1999)에서 채택하도록 만든 계획과 동일한 것이다. 미국은 그 중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수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금융자본가들의 이익에 대해 제기하는 위협을 인지하고 잠재적 요인들에 투쟁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군사전략 역시 개편되기 시작했다. 1997년 미 의회의 국방패널(NDP)은 ‘2개의 주요 전구전쟁 승리전략’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전구전쟁’ 개념이 냉전상황에 근거한 것이며 발생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에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2010-2020년까지 필요한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발전에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방전환」(Transforming Defense).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2개의 주요 전구전쟁 승리전략’이 상정하는 전쟁이 광범위하게 분산된 전력배치와 재래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미래전 대비가 소홀하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적인 중국의 위협 부상, ‘불량국가’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점도 비판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군 투입능력의 향상, 첩보■정찰■감시 능력의 중요성, 군사기술혁신(RMA)을 최대한 활용하는 무기체계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국방전환」은 장래에 개연성이 높은 ‘비대칭적 위협’을 포함한 분쟁의 모든 국면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①미국 본토의 방위, ②동맹강화와 통합전력의 확립, ③군투입능력의 개발, ④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⑤우주와 사이버공간의 활용과 통제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를 거치며 분명하게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안보 전략은 자신들의 사활적인 이익인 ‘자유시장-자유무역’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이러한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선제공격 독트린’을 핵심으로 한다. 미국은 이러한 전략에 발 맞추어 미군의 체계에 대한 적극적인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정보수집 및 정찰능력, 첨단 통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 정밀유도무기 등이 중시되고, 기존의 중무장한 지상군은 가벼운 군사장비로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정밀타격으로 속전속결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재편된다. 한편 과거 해외주둔이 위험한 지역에 대규모로 거주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기동력 있는 군대들이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동북아 주둔 미군의 개편 탈냉전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1990.4)을 통해 극동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두 개의 ‘냉전형 위협’이 남아 있음을 지적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역의 안정 유지’로 정의하였다. 이때 미군주둔의 유지는 ‘역내 미국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익이 증대했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는 전방전개 미군에 대해 한국, 일본, 필리핀으로부터 상당규모의 미 지상군과 일부 공군병력을 3단계에 걸쳐 감축함으로써 냉전 해소에 따른 국방비의 ‘적절한 조정’ 요구를 충족시켰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5년「접촉과 확대의 국가안보전략(A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Engagement and Enlargement)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여러 문제에 개입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세계적으로 확대할 것임을 천명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 일명 「나이(Nye) 보고서」를 통해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에 ‘접촉’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 전략의 분기점을 형성한다. 그런데 부시정권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2002년 7월 발표된 「미중안보 검토보고서」(U.S.-China Security Review)는 부시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중국의 해상수송로 위협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 공군력과 해군력을 전진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미 괌 기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조치들은 중국이 2020년을 목표로 남중국 해역에 항공모함을 배치할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북아에 집중된 미군 전력을 동남아로까지 확산하고 ▴괌을 아시아 중추기지로 활용하여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키나와와 필리핀 베트남에 중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근거지 증설 등을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미일 양국은 중국 위협론을 빌미로 군사동맹을 재정비, 강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양국은 군사협력을 보다 조직화하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부담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1978년 합의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1995년 이후 재검토하기 시작하여 1997년 새로운 지침을 완성했다. 연달아 1998년에는 새로운 미일군사협력강화의지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주변사태법안’으로 불리는 일련의 법안들이 의회에 상정됐다. 또 일본은 2001년 ‘반테러특별조치법’, 2003년 ‘유사법제안’을 각각 통과시킴으로써 동맹국인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표명했다. 이는 아태 지역과 기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미일간의 항구적 동맹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을 공식적으로 조장한 것이다. 또 미국이 MD 체계를 신속히 추진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이른바 ‘북한 위협론’은 한반도 위기와 직결되고 있다. 최근 부시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 유지를 위해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계속될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MD 추진이 안착될 때까지,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할 개연성은 매우 높다. 또한 미국은 MD 관련 무기구입을 일본, 한국, 대만 정부에 종용함으로써,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을 공고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한미동맹의 현대화 따라서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재조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 2002년 12월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안보연례협의회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한국의 이준 국방장관에게 미군의 구조개편작업이 본격화되면 주한미군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동시에 미국의 전략가들은 ‘세계 전역에 보다 신속하고 가깝게 군사력을 전개(배치)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능력 개선은 한반도 방위에 더 적은 미국 군사력만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남한 방위에서 한국군이 미군의 역할을 대체,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한미동맹’의 응축된 문제점들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연이어 불거졌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성이라는 내적 모순은 ‘촛불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광범위한 반미시위를 낳았다. 또 성범죄와 미군기지 등 대규모■장기 주둔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제반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면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해갔다. 그러자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이 경우 미군의 전방 주둔을 비롯한 동맹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고서들은 ①북한위협에 대한 남한의 안보우려 급감, ②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인한 남한의 민족적 자존심 강화, ②냉전의 해소 - 특히 냉전과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 - 가 현재 반미의식의 원천이라고 분석하면서 남한 내에서의 ‘반미감정’을 순치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재확립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형은 미국과 남한의 보수세력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미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주한미군 감축안을 안보논리로 활용하여 ▴남한의 대북제재 동참 ▴방위비 분담 증액 ▴MD 참여 등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동맹’에 대한 다각도의 검증작업도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외교게임’의 논리라기보다는 경제위기와 햇볕정책의 위기라는 객관적 제약 속에서 노무현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선택지가 협소했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다. 2차례에 걸친 파병 요청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는 그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결국 방미 과정에서 분단의 안정화를 통해 동북아중심국가로 웅비한다는 구상을 내포한 노무현 신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북핵’이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공동 목표 속에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동참했다. 이와 함께 일련의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협의’를 통해 꾸준히 추진된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크게 '선제타격능력의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요새화'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기존의 군사력을 기동화, 첨단화, 경량화하고 이를 위해 미군기지를 핵심(Hub) 기지 중심으로 재편하며, MD 체제를 구축하여 보다 공세적인 군사행동으로 인해 되돌아 올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2004년 요구한 예산안의 상당부분이 MD체제의 도입을 위한 무기도입과 한국군의 기동화, 첨단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포함한 주한미군 및 한국군의 전력 개편은 군사력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이며 그것도 더욱 패권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에서의 남한군의 역할 증대를 넘어 미국의 더욱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역내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지역 불안정성의 심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또 미2사단의 후방배치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으로까지 보는 것도 가능하다. 즉각적인 선제공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술적인 선택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압박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의에서 한미양국은 ▴한미 연합전력 강화를 명분으로 주한미군 전력증강에 향후 3년 간 11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하고 ▴한국군 역할 증대에 따른 신무기체계도입을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용산 미군기지 대체부지 선정 및 이주 비용을 한국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남한의 국방비 증액으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4차 회의가 진행된 현재까지 전시작전반환권 문제논의가 유보된 것을 비롯, 한미동맹 관련 주요 협의 사항이 되어야 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 개폐 논의는 아예 상정되지도 않았다. 평화운동의 미래 현재 많은 전략가들은 동북아 역내에서 미군이 사라진다면 아태 전략 구조에 주요한 공백이 생기고, 이 공백은 심각한 군비 경쟁, 한반도 통제와 해양■항공로 통제를 둘러싼 경쟁, 심지어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한미군 주둔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북한이 재래식 전력을 유지할 능력이 소진되자 전략적 중점을 핵과 미사일 쪽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미국 본토를 위한 미사일방어체계와 함께 한국과 일본에 배치된 미군도 전역 미사일방어능력을 향상시키고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비현실적이다. 첫째, 지난 50년 간 한미일 삼각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이미 역내에서 과도한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신화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MD 계획과 북한에 대한 ‘선제핵공격 옵션’은 분명 ‘과잉억지’와 ‘긴장고조’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미군의 동북아 주둔이 안정을 창출한다는 현실주의적 ‘세력균형론’과 힘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대결구도를 창출함으로써 적을 굴복시켜 평화를 달성한다는 군사적 사고를 지양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정책은 북한과의 협상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서 미군사력의 존재는 미국과 한국의 자세를 유연성 없이 만드는 토대로 작용한다. 첨단전쟁능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또는 첨단전쟁능력을 끌어들일 전진기지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편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하며, 따라서 유일한 생존전략으로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유혹’을 조장한다. 셋째, 주한미군의 존재가 남한 군사당국으로 하여금 그릇된 안보의식을 제공함으로써 남북 당사자들에 의한 한반도 군비통제 및 군축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을 둔감하게 만든다. 남한군이 북한군에 비해 전력상 열세에 놓여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의존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미 허구임이 밝혀졌다. 일례로 현재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의 국내총생산을 능가할 정도이며 전력 측면에서도 남한은 80년대를 경과하며 북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미군의 군사력 증강과 동아시아로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이에 따른 남한의 국방비 증가와 전력 강화를 반대하는 평화군축운동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주축으로 하는 반전-반미운동의 흐름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평화군축운동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PSSP
UN, 미국에게 합법적인 점령군의 지위를 승인하다! 지난 5월 22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대 이라크 UN 제재 해제 결의안'(UN 결의안 1483호)을 통과시켰다. 15개 상임이사국 중에서 시리아만 기권했고, 나머지 14개국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골자는 1990년 8월 이후 이라크에 내려진 무기금수를 제외한 모든 무역·금융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전제로서 미국과 영국을 점령군(occupying force)으로 규정하여 그 권한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UN 회원국은 범죄와 잔혹행위에 책임이 있는 이라크 정권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지 않으며 이들을 법에 따라 처벌한다"고 명시하여 이라크 정권을 범죄자로 규정했다. 또한 "미국과 모든 당사자들이 1949년 제네바협약을 비롯해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이라크 정권 인사들을 '인권유린'과 관련된 국제법과 제네바협약 위반으로 처리할 길을 열었다. 반면에 미국은 점령군으로서 제네바협약이 명시한 의무를 준수하는 가운데, 이라크 통치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수입금을 관리,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 받았다. 이라크 중앙은행 하에 신설되는 '이라크 개발기금'이 점령군의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이라크의 석유수입금 중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및 점령에 대한 보상을 위해 UN보상기금에 적립할 5%를 제외한 모든 돈이 개발기금에 위탁된다. 그리고 이 자금이 인도적 요구, 경제 재건, 사회기반시설 복구, 이라크 무장해제, 민간행정 운영에 사용될 때 그 결정권을 점령군이 갖는다. (또한 "이라크의 석유수입금은 2007년 12월 31일까지 원유 유출을 비롯한 생태학적 사고를 제외하곤 모든 법적 절차에서 면제된다"고 명시하여, 모든 채권자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한편 이 결의안을 통해 UN이 획득한 권한은 "이라크 새 정부 출범을 촉진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이 '특사'를 임명해 점령군 당국과 '협의'한다는 것, UN을 포함해 IMF, 세계은행, 사회경제개발아랍기금의 대표들이 이라크개발기금의 국제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금의 회계감사원을 임명하는 것, 12개월 후 결의안 이행을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침략전쟁의 적법성과 그에 따른 피해, 지난 12년에 걸친 장기적인 경제제재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 영국은 점령국의 지위를 UN으로부터 승인 받게 되었고, UN(그리고 '반전국'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은 제한적인 권한을 대가로 침략전쟁의 정당성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 결의안은 논리적 모순과 함께 전쟁 발발 이전부터 우려를 품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애초 UN의 이라크 제재 결의안은 "이라크에 대랑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찰단의 확증이 있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으므로, 제재 해소를 위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UN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복귀가 먼저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하여 결국 미국 뜻대로 이루어졌다. UN 제재의 근거가 되었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이제는 오히려 미국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의안은 점령의 종료시점을 명시하지 않고 단지 "1년 후에 결의 사항을 재평가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한다"는 구절을 삽입하여,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장기 점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라크개발기금의 지불권을 점령군 당국이 쥐게 되므로, 미국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독식하는 방식으로 이라크 석유자원을 착취하는 것도 완전히 정당화되었다. 점령의 위험/잔인한 8월 이처럼 미국은 전승의 위세를 떨치며 정치적 정당성과 이라크 점령의 결정적인 권한들을 확보하면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는 단지 더 큰 문제의 시작일 뿐이었다. 즉 '점령의 위험'(occupational hazard)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위험은 무엇보다도 이라크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저(低)강도 전쟁'이라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위험은 미국이 다른 사회를 점령하여 통치할 수 있는가, 즉 이라크에서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사회를 재건하고 '민족형성'(nation-building)에 성공하여 '통치성'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미국에게 있냐는 것이었다. 미국의 희망과 달리 이라크의 상황이 점령 이전보다 더 악화되고 이라크 내부의 갈등이나 미국에 대한 저항이 수습할 수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면, 그 역풍은 곧바로 주변 중동 지역으로 전이되거나 미국 사회로 역수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시 대통령이 5월 1일 종전을 선언했지만, 5월 27일 팔루자에서 미군 4명이 피격 사망한 것을 비롯해 군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했다. 9월초까지 사망한 미군 285명 중 147명이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군은 6월 9일 '사막의 전갈' 작전이라는 대규모 소탕전을 개시했고, 7월 16일에는 존 아비자이이드 중부군사령관이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진행 중이다"고 공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다수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포를 조성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하거나 마을을 급습하고, 대중들을 검거하는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작전은 민간인 사상과 주민들의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야기했고, 오히려 미국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미국의 게릴라 소탕 작전이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갈등을 더욱 부추기던 와중에, 특히 8월은 미군으로서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기 충분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8월 초 바그다드의 요르단 대사관 밖에서 차량폭탄공격으로 이라크인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비롯해, 두 주 후 19일에는 바그다드 주재 유엔본부에 차량폭탄공격이 발생해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 유엔 특사 등을 포함해 23명이 사망했다. 29일에는 이라크 종전 이후 최악의 참사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자프시의 이맘 알리 회교사원에서 차량폭탄공격으로 126명이 사망하고 쉬아파 최고 지도자이며 과도통치위원회 위원인 아야툴라 모하메드 바키르 알 하킴이 사망하였다. 도대체 누가 적인가? 이러한 사태로 인해 미국 언론은 "민중봉기와 게릴라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제3의 걸프전 위험이 있다", 또는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다"며 점령군이 처한 위협만을 크게 부각하는 선정적인 표제 기사로 문제를 몰아갔다. 하지만 '저강도 전쟁'에 직면하여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가장 심각한 골치 꺼리는 "도대체 누가 적이냐"는 문제였다. 후세인/바트당 충성파, 전후 이라크 민족주의자, 이라크 수니파 그룹, 이라크 외부 아랍 출신 자원병들, 역시 이라크 외부의 조직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그룹(알 카에다와 느슨한 연계를 맺고 있는 그룹을 포함하여)이 다양하게 언급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정체와 경향, 군사적 역량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정보 분석가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음모 이론'을 창조해내고 언론은 그것을 퍼 나르기에 바쁠 뿐이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공격자들을 한결같이 '테러리스트'로 묘사했고, 그들이 9·11 테러나 아프가니스탄과 관련이 있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교묘히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반테러리즘'이라는 가장 간편하고도 인기 있는 구호를 계속 밀고 나갔다. 왜 이라크 내부에 '민족주의'적 기류가 발생하고 있는가, 또한 '민족-형성'을 둘러싸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 "미국 정부는 전후 사태에 대해 충분한 예상과 준비 없이 전쟁에 돌입했으며, 국제적 지원도 결핍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비난의 초점이 부시 정부로 옮겨질 것이다. 나아가 이라크의 상황이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상처로 남아 있는 베트남이나 레바논, 소말리아와 유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에 더 많은 군사력을? 따라서 미국은 국내외에서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서둘러서 이라크 내 점령군의 군사력을 확대한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8월에 이르러 검토된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확대하자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경우 국방예산이 대규모로 확대됨에 따라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미국의 배치 가능한 공군, 해군, 해병대의 40%를 이라크에 집중해야되는 큰 부담이 있었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두 번째 방안은 UN으로 문제를 끌고 가서 UN의 역할을 확대하고 'UN의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UN 군대'의 역할은 평화협정의 이행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실제 '저강도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실제로 군대를 파병할만한 군사적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는지, 그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모든 문제가 불분명하였다. 그리고 파병국이 그에 걸맞는 '정치적 결정 권한'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의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이미 이라크에 파병한 미국 이외의 31개국 군대도 지휘통제나 병참지원, 재정지원 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각종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세 번째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장한 것으로, 이라크인들을 군사력 확대에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이미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이라크 사회의 완전한 '탈(脫)-바트당'을 목표로 이라크군을 해체했고, 40만 명의 군인이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가장 간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최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단지 이라크인들 훈련하는 것과 관련된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인을 내세운 '소탕작전'이 극도로 정치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적절한 훈련과 언어 소통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라크인들이 전장에 투입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부의 정치적 분할과 갈등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점령군의 군사력을 확대하기 위한 어느 방안도 모순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택한 것은 이른바 '미군의 지휘를 받는 다국적군'이라는 방식으로 두 번째 방안을 밀어 부치는 것이었다. 그 대상으로 한국을 비롯해 터키, 인도, 파키스탄 등 10여 개 나라가 물망에 올랐고, 한국 정부에는 9월 초 서울에서 열린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공식 요청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군은 군사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군 파병 시나리오의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근까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이 군대는 미국의 101 공중강습사단이 맡고 있던 북부 산악지대를 맡게 되며, 단순한 보호활동이 아니라 게릴라 군에 대한 소탕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한국군이 그 지역에 주둔하게 될 다른 나라의 주둔 비용을 사전에 부담하고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으로 전쟁비용을 책임져야 할 전망이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종파(宗派)적·종족적 구성 한편 7월 13일 점령군 당국이 임명한 25인으로 구성된 '과도통치위원회'가 취임식과 첫 회의를 열었다. 애초에 브레머 최고행정관은 이 위원회의 역할을 순수한 '자문'으로 한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라크 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조만간 정치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는 제스처를 취해 미군의 점령 현실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저항세력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서둘러 과도통치위원회를 창설한 것이다. 점령군 당국은 과도통치위원회가 새로 수립될 정권의 모태라면서 법적 정통성을 부여했고, 몇 가지 상징적 권한을 제공했다. 장관을 임명하거나 해임하고, 점령당국이 제시한 윤곽 내에서 정책을 세우고, 장차 새로운 헌법을 기초할 역할을 나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점령군 당국의 최고행정관이 최종 결정권과 위원회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브레머 행정관은 위원회를 구성할 때 '7 그룹'이라고 불리는 정치세력들에게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그 구성원들의 배경과 정치적 제휴세력은 실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후세인 정권 때 해외로 망명한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후세인 통치 시절 이라크에 남아 있던 인물들이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봉쇄하고 경쟁자들에 대한 거부권을 강하게 주장했다. 브레머는 미국의 관점에서 종파와 종족을 안배하여 구성하였다. 즉 쉬아파 무슬림 13인, 수니파 무슬림 5명, 쿠르드 5명, 투르크 1인, 아시리아 1인. (9월 3일 과도통치위원회가 임명한 25명의 과도 내각은 통치위원의 구성 비율과 동일하게 맞춰졌다.) 그러나 '7 그룹'을 구성하는 각 세력들은 '연방제' 창설이라는 대강의 공약을 제외하면 정치 비전에서 공통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점령군에 관해 최고혁명위원회의 알 하킴은 최대한 빠른 철수를 요구하지만 찰라비는 해방군으로서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 활동의 투명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문도 널리 제기되었다. 8월 12월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라크 총선 실시를 위한 헌법을 설계할 제헌위원회를 임명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이 누구인지조차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라크의 레바논화? 그러나 과도통치위원회의 권한과 투명성 문제를 넘어서, 미국이 이것을 창설할 때 채택했던 접근방식이야말로 위원회의 미래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정치, 사회를 대해 극히 단순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여, 사회·정치적 정체성의 복합성을 무시하고, 종파나 종족이라는 협소한 프리즘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그들이 후원하는 망명 그룹들은 쉬아, 수니, 쿠르드 주민들의 상대적인 인구수 비율을 반영하여 연방의 대표들을 끌어 모으는 방식의 정치적 틀을 옹호해왔다. 14명의 쉬아 통치위원은 5명은 명백히 종파의 성격이 강하며, 5인의 쿠르드 대표는 종족적 경향이 강하다. 수니는 단지 5명이고 그 종교적 지도자는 위원회에서 배제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미군에 대한 공격이 "수니 삼각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근거를 들어서 수니를 바트당과 동일시하고 나아가 후세인 충성파와 똑같게 취급하는 잘못을 범했다. 이러한 미국의 경향은 수니파 아랍인들에게 장차 이라크 사회에서 주변화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종교적 기초로 재결집하도록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점령 통치 전략은 수니파 아랍인들이 점령군 당국에 대한 저항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게 만들거나, 장차 수니-쉬아-쿠르드 간의 잠재적 긴장을 높여 이라크의 "레바논화(化)"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미래와 미국의 지배 전략 물론 이라크의 미래에 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 사회에는 정체되었거나 퇴행적인 방향으로 흘러 갈 수밖에 없는 고유한 '결함'이 내재되어 있고, 외부의 힘이 그것을 교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피점령국 이라크 사회가 직면한 객관적인 현실과 미국의 점령통치 전략이 낳을 실제적 위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이라크 내부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려는 시도, 특히 종파적·종족적 동일성을 부추겨 이라크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외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래된 지배 전술은 이라크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쿠르드, 수니, 쉬아 등 어느 세력도 (각기 다른 이유로) 완전히 지지하거나 신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종파적·종족적으로 분할하는 것을 주도하거나 조장하면서도, 그 균형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이라크 경제의 재건 과정이 석유산업의 사유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의 양극화를 넘어 사회의 분리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빅뱅을 거치며 이루어진 마피아 유형의 사유화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군사력을 신뢰할수록 이라크 주변 국가의 지역을 포함해 비대칭적(즉 비정규적) 저항의 잠재력은 더욱 커지고 미국이 오히려 장기 주둔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확산되어, 이라크 사회의 장기적인 혼돈의 씨앗을 뿌리게 될 위험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은 바로 오늘도 지속되고 있고, 그 끝이 어디일지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파병선동을 즉각 중단하라! 10월 1일 국군의 날, 노무현정부는 이라크 파병여부의 변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국면조성"이라며, 급작스레 파병가능성을 시사했다. 5년만에 갑자기 등장한 탱크와 무장한 군인들의 시가행진의 그 요상스러움과 함께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조기파병찬성론자들의 망발을 부추기고 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파병이 경제에 도움이된다'며 근거없는 경제지표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미국에 다녀와서는 '파병여부를 빨리 결정해야한다며 파병건의안을 제출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윤영관 장관은 유엔총회에서 콜린파월 미국무장관을 만나고 돌아와 '파병결정을 서두르지 않겠다'던 종전의 입장을 부침개 뒤집듯 단번에 바꿔버리고, 한승주 주미대사는 한술더떠 '조건을 달지말고 파병해야한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파병을 하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낮춰질지도 모른다며 국민을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한 4명의 각료라는 자들이 하나같이 '국익'이니 '실리'니 주장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잇단 압력성 발언과 면담이후에 집중되고 있어 대체 이들이 한국의 장관들인지 미국의 하수인들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들이 그토록 걱정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알수가 없다. 미국의 일방주의 노선과 부시의 선제공격 독트린이 폐기되지 않는한, 파병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은 새빨간 사기일뿐이며, 오히려 이라크의 안정과 평화를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죄악행위인 것이다. 지난 봄 전국민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제마서희부대를 파병하여 얻은 국익은 어디에도 없었다. 파병을 위한 어떠한 명분도 실리도 없어지자 이제는 경제와 국제신용도를 운운하며 파병불가피론을 말하는 그들이 이젠 구차해보이기까지하다. 파병반대는 대세이다. 우리나라 국민 어느누구도 미국의 더러운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무책임한 망언을 남발하며 국민의 뜻을 거스르려거든 당장 맡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망발한 각료들은 즉각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며, 노무현정부는 파병거부의사를 즉각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한겨레21 2003년09월17일 제476호 [아시아의 분쟁] <목차> 9·11이 아시아 분쟁지도 바꿨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인도네시아] “파푸아엔 얼씬도 마세요” 자카르타=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의 10월이여 찬란하라” 마닐라=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 칼럼니스트·필리핀대 언론학과 강사 [버마] 다시 ‘버마’는 잊혀진다 버마-타이 국경=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인터뷰 | 우 틴 옹(U Thin Aung)] 민족민주동맹 해방구(NLD-LA) 의장 버 마] 버마-타이 국경=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 [네팔] ‘히말라야’가 조난당했다 카트만두= 쿤다 딕시트(Kunda Dixit) | <네팔리타임스> 편집인 겸 발행인 [스리랑카] 타밀은 2005년 선거를 기다린다 콜롬보= 수마두 위라와르네(Sumadhu Weerawarne) | <아일랜드> 기자 [카슈미르] 카슈미르, 선택의 시간!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 핵 전문 칼럼니스트 · 전 <타임 스 오브 인디아> 편집장 [아프가니스탄] 대담한 탈레반, 부활하는가 페샤와르= 라히물라 유수프자이(Rahimullah Yusufzai) | <뉴스> 편집이사 [팔레스타인] 진정한 로드맵, 그 길을 찾아라 라말라=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전투병 추가 파병을 공식요청한 것이 15일 확인되었다. 이미 317개 시민사회단체가 반대 성명을 통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파병반대 여론은 벌써부터 들끓고 있다. 조기종전에 만족하며 의기양양하던 미국은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전후복구계획은 커녕 미군정을 반대하는 이라크 민중의 게릴라식 무장공격으로 매일 10명이 넘는 미군사상자를 내고 있다. 매달 40억달러의 주둔비와 10억달러의 전후복구비라는 엄청난 비용을 투여하고 있지만, 민간인을 겨냥한 극악무도한 폭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는 공중보건 시설로 인해 이라크 민중들은 전시와 다름없는 끔찍한 생활을 하고있다. 미국은 침략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이라크를 전후복구사업의 이름으로 약탈과 무질서가 얼룩진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의 증거가 조작된 사기극이었음이 폭로되면서 이라크 전쟁의 도덕적 명분마저 상실한 미국은 이제 더러운 전쟁의 책임을 10여개의 동맹국에게 떠넘기려 하고있다. 그러나 이제 이라크 전쟁에 추가파병요청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이요청을 받아들이는 동맹국들의 파병은 결국 중동과 한반도에서 제2의 이라크를 만들고 말 것이다. 지난 4월, 노무현정권은 6백57명의 서희,제마 부대를 파병하며 이 더러운 전쟁에 동참하여왔다.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고 만족해한 한국정부는 그 댓가로 도대체 어떤 실리를 챙겼단 말인가? 한반도 주변의 미사일 배치, 전시와 다름없는 군사훈련, 지속되는 국방비증강과 무기강매 등 정작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고 있는것은 결국 그 굳건한 한-미 동맹이었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똑똑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가 제2의 이라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병요청을 단호히 거부하고,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점령 구상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 뿐이다. 국민의 대다수는 이미 파병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뜻을 거스를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대중의 저항을 맞딱뜨리게 될 것이다. 지난 봄부터 지속되고 있는 대중적인 반전운동의 열기는 이제 파병문제와 함께 뜨겁게 불붙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한다면, 이 대중들의 요구를 받들어, 파병반대의사를 즉각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 아래 글은 9월 11일 테러 2주년을 맞아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칸쿤에서 진행될 무역과 전쟁 포럼에서 발제할 글입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1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반전투쟁의 성과를 모아내고 또한 9․11테러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군사적 세계화 즉,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반대투쟁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아래글을 칸쿤 현지에서 발제할 계획입니다. 911 사건을 애도하는 적절한 방식 먼저 2년 전 오늘 뉴욕에서의 불행한 사고로 희생을 당한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보냅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시 행정부를 비롯한 세계의 지배세력들이 이들의 희생을 ‘테러와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으면서 세계를 더욱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슬픔을 표하는데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나 군사력의 증강이 아닌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통해서만 그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애도를 표하는 적절한 방식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곳 칸쿤까지 오는 길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지배세력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의 결집을 막아 보려 했습니다. 테러의 위험을 내세워서 자국을 경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는 그들의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평화를 테러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도 우리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였다는 이 작은 승리는 우리의 투쟁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희망은 이라크침략에 반대하여 조직되었던 세계적인 반전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첫 걸음일 뿐입니다. 침략 이후, 이라크 민중들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에 고통을 받고 있고 자기-통치를 위해 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소위 ‘악의 축’이라 불리는 다른 나라-이란, 시리아, 북한-에게로 자신의 목표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부시가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한한 전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그리고 전지구적인 저항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들을 분석하고 반전운동의 공동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전쟁: 무장한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세계화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담론과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에 평화가 아닌 폭력, 파괴 그리고 전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신의 내재적인 한계와 자신에 대한 저항에 직면하여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보다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911 이후의 소위 부시독트린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교리는 이러한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부시독트린은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을 세계화의 보호로 정의하였고 잠재적인 적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본의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관련이 더 밀접해 지는 세계화의 새로운 단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를 ‘무장한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세계를 절멸의 위협으로 빠뜨린 두 차례의 세계전쟁의 원인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식민지의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의 격화였습니다. 이와 비교해서 21세기 초에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속에서 ‘새로운 전쟁’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전운동이 ‘테러와의 전쟁’과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주의화에 대한 반대를 조직해야 하며,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총체적인 반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의 핵의혹 사태의 본질 무장한 세계화의 시대에 나타나는 전쟁위협의 증대와 군사주의의 강화는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강화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장과는 다르게, 미국 정부에게 한반도의 위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시했고 이를 북한이 시인했다고 발표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측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근거 없는 의혹을 제시하여 북한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핵문제의 역사적인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한반도에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을 수립해 왔고 핵무기를 한반도와 그 근방에 배치해 왔습니다. 76년 당시에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 총수는 대략 600-700개로 추산됩니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데탕트의 물결을 타고 한반도비핵화의 문제가 제기가 되었으나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회의적으로 일관하면서 93년 북한의 핵시설의 사찰을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심지어 전쟁 발발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습니다. 1년여의 공방 끝에 94년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북미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수로를 제공하는 내용의 합의가 채택됩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고의로 위반하였습니다.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하나 공사는 의도적으로 지연되었고, 관계정상화의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크게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보장하는 한편 안전을 보장해야 했음에도 군사력 증강과 체제 위협은 계속되었습니다. 클린턴 정부 후반기에 본격화된 북한에 대한 ‘접촉(engagement)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로의 경제적 통합을 목표로 하여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하여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북아 내에서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강화를 전제함으로써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자극할 여지를 가졌기 때문에 모순적 측면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의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더욱 강경하게 변화해 왔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옵션’을 재차 천명했으며 북한의 정권교체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여 제네바합의의 이행을 방기해 온 자신의 책임을 북한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이익을 더욱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부시 정부의 강경책에 북한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과 이에 따른 강경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며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한편으로는 정당한, 하지만 매우 위험한 대응을 계속 해 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한반도의 위기의 일차적인 원인은 제네바합의의 고의적인 위반 이후에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여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위협을 높이고 있는 미국의 태도이며, 이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전쟁위협의 증대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주의의 강화 미국은 북한의 어떤 요구와 행동도 ‘무시’하는 전략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에는 각 국 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북한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조체계를 갖추어 나가며 외교적,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외교적 해결을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적인 협상이 평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6자 회담을 통해서 양측의 대화가 재개된다하더라도 미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회담을 성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중국이 6자 회담 이후에 ‘미국이 걸림돌’이라며 불만을 터뜨린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더구나 6자 회담의 이면에서 미국은 9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봉쇄를 대비한 군사훈련을 계획하는 등 경제제재나 군사봉쇄의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더구나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구실로,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확장과 일본 및 남한의 군사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21세기 안보의 중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지역 내의 미국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고,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는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적합한 체계로 재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군 기지와 미 주둔군의 활동영역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팽창은 한-미-일 3국의 동맹의 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의 목표가 ‘무장한 세계화’에 적합하도록 변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유사시에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유사법제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전쟁포기를 규정한 헌법조항을 개정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확장을 보조하기 위해 군사력 증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국방예산을 무려 20% 이상 증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 3국은 선제공격력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혁신을 위한 선제공격 당한 그룹의 반격을 예방하기 위해 MD를 구축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전운동을 위한 몇 가지 제안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미 제국주의를 제어하는 것에서부터 그 해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미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무장한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각 국의 지배세력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따라서 전쟁과 군사력증강,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남한 민중, 그리고 전 세계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 전쟁을 조장하는 정치, 군사적 체계를 실질적으로 해체,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옵션을 실질적으로 폐기해야 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에서의 군사력 증강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이는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수많은 핵무기의 폐지를 포함하는 한에서만 그렇습니다. 또한 우리의 투쟁은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전쟁반대와 평화군축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고 군사주의의 강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 세계 반전운동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빠르게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오랜 검열을 뚫고 이제 막 반전운동이 조금씩 꿈틀대며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작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의 열기는 이라크 전쟁반대와 한국군 파병반대 운동을 거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대중적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들의 압도적인 무장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이 민중들의 연대 속에 있음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무장한 세계화’의 폭력에 맞선 당신들의 투쟁과 우리 모두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알리고 한반도 전쟁위협과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 및 군사주의의 강화에 반대하여 평화와 군축을 주장하는 운동을 조직하기를 제안합니다. 우리는 이 것이 포럼에서 반전운동의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공동의 행동의 방향을 제안하려 합니다. ∙ 한반도 전쟁위기의 현재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진실을 널리 알립시다. ∙ 북한에 대한 어떠한 제재나 봉쇄에도 반대하고 만약 강행 될 경우 이를 무력화시키는 운동을 조직합시다. ∙ 미국에게 ‘선제공격전략’을 포기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합시다. ∙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는 미 제국주의 및 한국과 일본의 군사주의의 강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합시다. 동아시아에서의 군축과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운동을 건설합시다. 평화는 그것을 염원하는 행위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단지,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과 제도들, 가공할 전쟁도구들을 제어하기 위한 민중의 권력을 형성하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장한 세계화’를 패배시키고 또다른 세계를 위해 나아갑시다.PSSP
6자회담이 끝났다. 한-미의 언론들은 각 국이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과정의 계속 추진을 원했다는 점을 들어 대체로 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이 ‘탁상공론에 불과’했으며 ‘북의 무장해제를 위한 마당으로 되고 말았다’는 비관적인 평가를 제출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북한의 핵계획 포기를 일괄타결 하고자 했던 의도가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 이르기까지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반테러 전쟁’을 경과하며 사실상 페리 프로세스의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이 북한의 ‘핵 공갈과 그에 따른 착취’라는 악순환만 조성했다고 간주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행정부 4년 동안 이루어진 북미 협상의 교훈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미국에 먹혀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지으면서 앞으로 북미 협상에서 절대로 보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미 양자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거부하고 대신 ‘다자적 압력구조’를 활용, ‘북핵문제’를 국제문제화하고 북한을 고립․굴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대북강경론이 득세하면서 북한과는 외교 수단을 통한 핵문제 해결이 난망하기 때문에 봉쇄 정책이 필요하며, 나아가 북한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신빙성을 얻어갔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접촉정책’과 남한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소위 ‘온건파’들의 정책방향이 점차 ‘봉쇄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북한과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되 만일 실패로 돌아갈 경우, 군사적 제재를 포함한 ‘의미심장한 제재’를 취하거나 핵이나 마약 등의 수출을 막기 위해 봉쇄정책을 부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북한의 궁극적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 제재와 같은 비군사적 방법으로 체제교체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북중미 3자회담에서도 미국은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 교체’와 ‘북핵문제 유엔 상정’ 등을 운운하며 대화 거부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오히려 미국은 3자회담 직후 한미, 미일 정상회담 등 국제 외교무대를 적극 활용, 북한에 대한 다자간 압력틀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봉쇄에 돌입했다. 그리고 주한미군 전력 증강을 시도하고 스트라이커 부대를 편성하는 등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력시위를 전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또 미국은 대규모 탈북-기획망명을 유도하는 법안을 기획하고 ‘작전계획 5030’을 발표하는 등 ‘전쟁 없는 체제 교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한 상태다. 남한과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에 적극 호응하면서 각각 ‘자주국방론’과 ‘보통국가화’를 병행 추진했다. 미국의 진심이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핵문제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주변국들이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가운데 특히 중국을 설득시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도록 다자간 협의틀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양자회담을 거부하고 다자회담의 틀로 북을 유도한 것을 외교적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북한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협상이 성사되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향후 외교 무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이 경우 국제적인 대북 제재(특히 경제적 제재)를 유도하기에도 훨씬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광범위한 이슈와 의제들을 함께 제기하며 핵개발을 지렛대 삼아 미국으로부터 직접 체제보장을 받아내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분산시키고자 했다(럼스펠드 미 국무부 장관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확대하라”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으로 한정되지 않는 많은 이슈를 동시에 제기할 것을 주장했다). 예컨대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랜드 연구소의 마이크 모치츠키 등은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개발을 궁극적으로 막는 방법이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관련 5개국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경제위기를 거론한 것은 경제난을 매개로 하여 대북 식량․경제지원 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과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한 책략일 뿐이다(이들은 이를 일컬어 ‘(전쟁 없는) 체제 교체’와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덧붙여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제거에 소요되는 비용(경제협력 및 지원과 인도적 차원의 식량 및 에너지 지원 등)을 주변국들에게 분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다자회담의 부수물이었다. 따라서 6자회담은 한반도 관련 6개국이 ‘대화와 타협’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외피에도 미국이 ‘진심’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는 한,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객관적으로 완화되지 않는 한 사실상 ‘추가적 조치’를 단행하기 위한 단계적 수순에 불과했다. 그러나 회담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도 미국은 보란 듯이 을지포커스렌즈 훈련 등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도발을 지속했고, 심지어 제임스 울시 前 CIA 국장, 존 볼톤 국무부 차관 등 대북강경세력은 최근 북한과의 협상을 일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며 차라리 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결국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일괄타결 제안을 무시하고 북한의 선핵포기를 거듭 요구했고, 그 후 재래식무기, 테러, 인권, 납치, 마약문제 등을 협상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미국은 6자회담 도중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생략하고 북한의 핵관련 발언만을 미 언론에 흘림으로써 회담을 경색국면으로 몰아갔다. 이에 북한이 “기존의 선핵포기 주장보다 더 후퇴한 날강도적인 요구조건”이라고 크게 반발하며 ‘핵억제력’을 불가피한 조처로 제시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북한의 위협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며, 북한은 모든 회담에서 그런 위협을 해왔고 이번에도 그런 말들을 하리라고 예상했었다’라는 조엘 위트 ‘전략 및 국제 연구센터(CSIS)’ 선임연구원의 언급은 결국 이번 6자회담의 ‘결렬’이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미국의 강경 대응과 위기의 심화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핵 포기 전까지는 어떤 대북 지원도 있을 수 없다는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고지를 선점하려 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정치적 강제 없는 합의’로 보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 핵포기의 대가로 대북 체제 서면보장과 경제지원 등을 약속하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했다. 또 미국은 6자회담이 끝나자마자 9월 3, 4일 프랑스에서 11개국이 참가하는 PSI 3차 회의를 열고 이번 달 중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회담 재개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핵이나 마약, 미사일 등을 수출하는 ‘악의 축’ 북한을 봉쇄하기 위해 ‘의심선박’에 대한 해상검색과 나포를 강화하겠다는 PSI는 사실상 준군사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6자회담 문항을 위반한 조처로서, 사실상 후속회담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에 제공키로 한 한국형 경수로가 플루토늄을 ‘몰래’ 재처리하기가 어렵지만, 북한이 ‘드러내 놓고’ 재처리할 경우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빌미로 경수로 사업의 전면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는 현실적으로 군사적 수단과 경제 지원을 ‘채찍과 당근’처럼 활용할 수 있는 한미일 3각 동맹의 역할분담 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경제적 제재를 위해서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는 한편 남한의 대북 현금지원의 불투명성을 문제삼고 일본으로부터의 대북 송금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북한에 뇌물을 주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각종 경제사업이나 식량지원 등에 엄격한 조건을 붙이고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은 자신의 대북 선제공격을 남한 정부가 두려워한 나머지, 대북 압박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을 지극히 염려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한미일 3국이 통일된 입장을 취하지 못했는데, 동맹국이라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며 재차 고삐를 다잡고 있다. 이들은 미일중러 등 주변국들이 공통적인 한반도 정책을 추진함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그 정책에 반대하면서 북한의 호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은근히 협박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미 남한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전략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고 있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따른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와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함께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의미한다. 일본 역시 미국의 MD 계획에 적극 부응하면서 재무장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만일 미국이 대북 봉쇄에 초점을 두고 사실상 북한의 핵을 ‘무시’하는 정책을 취할 경우 이는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설사 북미간의 교착상태가 일시적인 협상국면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그대로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공고화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의 고조를 낳고 이로 인한 군사력의 편중은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변수들 따라서 한반도와 동북아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장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한다면 북한의 핵보유선언과 핵실험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당초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점쳤던 미 의회 산하 싱크탱크 외교관계협의회도 6자회담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국의 봉쇄정책의 성공과 한반도에서의 실제적인 군사 분쟁의 가능성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우선 북에 대한 선제공격을 미국의 단기적 정책 목표로 선언하는 것은 한반도 주변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잃게될 뿐 아니라 남한을 자칫 ‘반대편’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 6자회담을 주선하고 ‘주최국 요약’을 발표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중국의 수석대표 왕이 부부장이 ‘미국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핵위기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며 미국이 대북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또 경제 불황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조작 의혹 등이 겹치면서 부시 행정부가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최근 이라크 재건 과정이 난항을 겪음에 따라 ‘대테러정책’ 등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군사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강경파-온건파, 혹은 국무부-국방부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도 변수다. 가령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미국 편에 설 것인가, 테러리스트 편에 설 것인가’를 중심으로 세계를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녀는 9․11 이후 국방부가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이 이슬람 온건파와 유럽을 소외시켰다며 범대서양 동맹을 회복하고 미국을 정점에 둔 다자주의로 복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부시 독트린’ 등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책실현의 경로와 방법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백악관이 2002년 공개한 ⌈대량살상무기 대응 국가전략(NSCWMD)⌋ 보고서는 ꋲ잠재적인 적들에게 대량살상무기의 부품이 이전되는 것을 막고, ꋲ부품이 조립되기 전에 파괴할 수 있도록 군사력과 비밀병력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실시하며, ꋲ적들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복을 단행한다고 적고 있다. 9․11 이후 정확히 1년 만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은 미국과 그 우방에게 위험스러운 세력에 대해 ‘선제예방’과 ‘방어적 개입’을 선언하고 있는데, 이것이 탈냉전 이후 당파를 초월한 미국의 중장기적 대외전략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합세하면서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 ‘맹동’을 자제할 수는 있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불과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은 당분간 한미일 3국의 군사력 증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대북 봉쇄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다. 동시에 북한이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용’으로 회담을 낭비할 여지를 좁히면서도 북한을 협상국면에 유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에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국과의 파트너쉽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공갈’이 비가역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핵개발을 중단 혹은 포기시키는 선에서 당분간 상황을 유지하고 추후를 도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의 일이다. 모든 문제는 열려 있다 결국 현재 한반도의 위기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제어하기 위한 현실적 힘으로서 국제적 반전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재건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정치적 위험’을 국제적 반전운동이 어떻게 영유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9월에 칸쿤에서 펼쳐질 WTO 반대 투쟁은 반세계화와 반전이 서로의 결합선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남한이 미국의 군사전략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쟁점들 -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과 국방예산 증액 등 - 에 긴밀히 대응하면서 반전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군축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미국의 호전성에 대한 반전평화의 정당성의 우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직, 모든 문제는 열려 있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