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다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한 마디로, 공수처 통과로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소수정당에 나눠주어 잃어버리게 된 국회의원 의석이 아까운 것이다. 준연동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란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정당이 정당명부 투표를 통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바로 이런 거대한 ‘실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4+1 협의체가 가동되어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된 셈이었다.
사실 선거법 개정의 방향으로 제시된 ‘비례성’이라는 쟁점에도 논란이 있었다. 새로운 선거법을 지지하는 세력은 연동형이 국민의 정당 지지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보장하므로 ‘비례성’을 높이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세력은 지역구 투표와 분리하여 시행되는 정당명부 투표의 ‘비례성’이 왜곡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즉 현 상황처럼 특정 정당이 지역구에 많은 의석수를 낼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조금밖에 얻지 못하거나 아예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법을 여야합의가 아닌 다수결로, 그것도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킨 것은 상당한 무리였다. 이는 넓은 의미의 ‘게리맨더링’이기 때문이다. 게리맨더링이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넓은 의미로 쓰면, 의회 내 다수당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시도 전반을 일컫게 된다. 그런데 게리맨더링은 극히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성숙한 의회정치에서는 금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게리맨더링이 관행화되면 매번 여야가 교체될 때마다 여당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이 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정당은 최소한 정당의 ‘밥그릇’이 걸려 있는 선거제도에 관한 한, 여야 합의 없이 개정을 강행하는 것을 피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법의 전면적 개정이란 쉬운 일이 아니고, 일단 한 번 도입되면 바꾸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4+1 협의체는 그러한 의회민주주의의 관습을 무시하고 다수결로 선거법 개정을 강행했다. 이러한 선거법 개정 강행은 당장 4+1에 속한 정당의 의석수를 늘리기 때문에 유리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야당을 배제한 다수당에 의한 선거법 개정이라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어쨌든 그에 따라, 선거법 개정에서 소외된 야당 세력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야당은 선거법이 개정되면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계속 경고했고, 통과되자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야당의 비례정당에 대해 “국민투표권을 무시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이해찬 대표), “국민을 얕잡아보고는 눈속임이다, 유권자의 거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이인영 원내대표)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다가 막상 선거가 가까워오자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그 명분은 무엇인가? ‘야당의 꼼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거나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명분은 얼마나 정당할까?
3. 야당의 꼼수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여당은 야당의 꼼수 때문이라고 하지만, 야당은 4+1의 선거법 개정이야말로 ‘꼼수’라고 주장하며, 비례정당이 그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변호할 것이다. 누가 꼼수를 쓴 것이고 누가 정당방위를 행사한 것인가? 선거법 개정이 이뤄진 전반적 과정을 봤을 때, 현재의 파행은 4+1의 게리맨더링이 낳은 후폭풍일 수밖에 없다. 야권을 배제한 선거법 개정은 어떤 식으로든 진통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결과에 4+1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5인 회동에서 김종민 의원의 발언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비례한국당이 우리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의석수이고, 명분은 만들면 된다, 비례한국당을 명분으로 삼으면 된다는 말이다.
기실, 민주당이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법 개정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2019년 3월 시점의 여야 합의안은 왜 뒤집었겠나? 당시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비례대표를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고, 비례대표에 대해 상한선 없이 50% 연동률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20대 국회에 적용하면 민주당은 123석에서 105석으로 18석이나 감소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9년 3월 19일 《연합뉴스》 기사 ‘여야 4당 합의안 적용시 민주 18석↓ 한국 16석↓ 정의 8석↑’이라는 기사를 보라.) 그렇지만, 결국에 통과된 선거법은 비례대표를 현행대로 47석으로 유지하고, 연동제 적용범위를 상한 30석으로 제한했다.
이를 사후적으로 해석해본다면, 민주당은 처음에는 공수처 도입을 목표로 파격적인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함으로써 제1 야당을 배제하고 소수 정당을 4+1 협의체라는 틀로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에는 선거법 개정안의 파격적인 내용을 조금씩 깎아내고 덜어내면서, 다른 소수정당이 ‘그 정도도 어디냐’라는 식으로, 또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거법 수정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면서 결국 공수처를 통과시켰다. 그러다가, 막상 선거가 다가오자 소수정당으로 돌아갈 표가 아까워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길로 나간 것이다.
4.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
민주당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는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야당이 의회 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미 대통령 탄핵 과정을 두 차례(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겪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듯이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는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 의결에는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선거 판세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탄핵소추 의결은 물론이거니와 발의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당이 탄핵을 마치 정치공세인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미 ‘추 장관의 사법방해와 자연국가로 타락하는 문 정부’(2020. 2. 11.)에서 주장했듯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검찰 수사 방해와 기소장 비공개는 명백한 사법방해이며, 미국과 같은 경우 탄핵사유에 해당한다. 우리는 미국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도청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도청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탄핵 심판에 소추되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청와대나 여당이 탄핵을 막고 싶다면, 탄핵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이, 게다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탄핵을 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탄핵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잘못이 있다면 자복하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빌미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여 소수 정당의 표를 다시 빼앗아 오려고 시도하는 게 사태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지 심히 의문이다.
5. 기어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 흐름은 여러 축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흐름은 ‘정치개혁연합’ 창당 제안이었다. 주권자전국회의라는 단체가 주도했고, 2월 28일 기자회견에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변호사, 배우 문성근 씨도 참석했고 함세웅 신부,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등 40여 명이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범여권 정당의 비례후보를 모으는 ‘선거연합 정당’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이는 정의당과 녹색당이 거부의사를 보이며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3월 1일, “비례민주당이든 연합정당이든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연동형 선거제 개혁의 대의를 훼손하는 거대 특권정당들의 꼼수비례정당”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또한 녹색당도 3월 3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정치전략적 목적의 명분 없는 선거연합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해 사실상 거부의사를 표했다.
기실 정치개혁연합의 제안은 소수정당의 표를 빼앗아 오는 모양새를 피함으로써 민주당으로서는 그나마 ‘명분’ 있는 방안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상호 의원이 “비례연합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에도 맞는 이야기”라고 말했으리라. 그러나 어떤 이유든 간에 정의당과 녹색당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개혁연합 외에 사실상 비례·위성정당으로 간주할 수 있는 흐름은 3월 2일 창당 선언을 한 ‘플랫폼 정당, 시민을 위하여’(공동대표: 최배근, 우희종)나, 2월 29일 정봉주 전 의원이 창당을 선언한 ‘열린민주당’도 있다. 선거법상 4·15 총선에 참여하려는 정당의 창당 마감시한은 3월 16일이다. 후보자 등록 개시일(3월 26일)로부터 10일 전까지 후보자 추천절차를 정한 당헌당규를 선관위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례·위성정당으로 선거에 임하려면 민주당이나 여당 지지 세력은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방침을 결정하여 신속하게 창당을 마무리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창당이 된다면 비례정당이 아니라 위성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즉 민주당도 비례후보를 내되 소극적으로 비례명부를 구성하고, 위성정당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과연 민주당은 기어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만약 위성정당 창당을 강행한다면, 민주당의 후안무치는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날 듯하다.
다음으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결정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은 검찰 이전에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민주 노총 총파업이나, 사업장에서 파업을 할 때, 공권력을 동원해 지도자들을 구속했던 것은 검찰이었나, 아니면 청와대였나? 형식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검찰이었지만, 파업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한 것은 청와대였다. 검찰과 경찰, 심지어 국정원(안기부)까지 모아 공안기관 대책회의를 주재했던 것도 검찰총장이 아니라 청와대 명을 받은 고위 각료들이었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경제 사정 때문에, 사회안정을 해치기 때문에, 정치적 요구이기 때문에 거부했던 것도, 그리하여 노동조합이 파업하고 거리로 나오게 만든 원인도 검찰총장이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을 자신의 정치적 사정에 따라 제한하고, 노동조합에 정치적으로 재해석된 법률을 적용하는 것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권한이 강해질수록 대통령이 초법적 행동으로 노동운동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시행령 정치가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관련법에서 시행령으로 노동자들을 골탕 먹인 사례들, 노조법 시행령으로 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만든 사례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용자의 편법 꼼수를 부추긴 사례들 등등 대통령 멋대로 시행령을 만들고 개정해 노동운동을 곤란하게 만든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행령 정치’는 노동법 영역에서 가장 활발했었다.
정치학자들이 대통령 권력이 얼마나 민주적인지를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시행령의 남발 여부다. 대통령 권력이 확장될 때 나타나는 지표가 바로 헌법과 법률을 우회하는 시행령이 많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시행령 개정이 이전 정부보다도 많았다. 대통령이 권력기관들에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그만큼 이런 시행령 정치도 힘을 더 갖는다. 현재의 검찰수사 방해와 검찰개혁은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
내로남불 정치, 노동존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검찰수사 방해 사태에서도 조국사태와 비슷하게 내로남불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이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는 한 시간만에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 때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국정원이 수년간 불법적이고 조직적인 선거에 개입한 것, 헌정 질서 민주주의 파탄내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총리님, 열심히 하는 검찰총장(채동욱)을 내쫓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수사와 기소를 주장했던 수사책임자(윤석열)도 내쳤지 않습니까?”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의혹이 생겨 진상 조사를 하는 문제지, 누구를 찍어낸다는 측면은 전혀 없”다며 궁색한 변명을 했었다. 그런데 2020년의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 반대로 이렇게 말했다. “인권을 뒷전으로 한 채 마구 찔러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힐책했다.
집권세력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다르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대통령의 인격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이 같아도 결과는 다를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오히려 한국사회를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은 이미 그런 곤경에 처해있다. 스스로 노동존중을 실현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대통령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가 힘을 실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1호 안건은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상쇄하는 탄력적근로시간 확대였다. 자칭 노동존중 대통령은 노동보다 재벌과 더 자주 만난다. 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노무현 정권 시기 ‘좌파 신자유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은 노동자 운동을 시대에 뒤쳐진 기득권 집단이라고 비난했었다. 자신이 개혁이니,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수구 기득권이란 말이었다. 지금 문 정권의 행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로남불 정치의 결론이 항상 이렇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은 역사적으로 내로남불의 최대 피해자였다.
검찰개혁도 중요하나, 제왕적 대통령부터 개혁하는 것이 순리다
물론 정권의 작태를 비판한다고 해서 우리가 검찰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지금껏 보인 반민주적 수사와 기소들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노동자운동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도 검찰의 팽창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비판의 최우선은 문재인 정권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검찰의 권력은 항상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탓에 폭주했고, 노동자운동은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 탓에 고초를 겪었다. 검찰제도가 깃털이라면 현재의 대통령제도가 몸통이다.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제 입맛에 맞는 검찰개혁을 관철하려는 집권세력이 노동자운동에게 장기적으로 더 큰 위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