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장갑차 중학생 사망사건 1주기를 맞이하여 월드컵의 광풍이 전국을 휩쓸던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의해 중학생 두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있으되 책임질 자는 없었고, 살인자는 있으되 처벌할 수 없는 모순이 드러났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미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두 중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촛불시위는, 따라서 살인자 처벌과 부시의 공개 사과를, 불평등한 SOFA 개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광범위한 반미시위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죽음과 죽음의 원인을 분리하고자 하는 불순한 음모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지배세력은 촛불시위와 반미를 분리시키고 촛불시위를 '비정치적 추도집회'로 변질시키려 했다. 또 촛불시위와 반전투쟁에서 드러난 남한 내에서의 반미 여론을 '등미(等美)'로 조작했다. 그리고 '종속적 한미 군사동맹 반대'를 '한미동맹의 현대화'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력증강'으로 둔갑시켰다. 햇볕정책의 모순과 한계, 그리고 '촛불탄압' 노무현은 작년 대선 후보 시절, 현 단계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경우 그것에 대한 대응책은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는 순서밖에 남지 않는다며 햇볕정책의 유지, 계승을 주장하였다. 민주당의 당론 역시 경제적 압박보다는 신뢰 우선주의, 대화와 설득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특히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남쪽이 기존 대북 경협 등과 북한 핵 문제를 연계할 경우 북한이 대화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남북대화와 경제협력를 바탕으로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미 동북아 내에서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강화를 전제함으로써 북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할 여지를 가졌던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될 수 없었다. 햇볕정책이 모태로 삼고 있는 '페리 프로세스'는 미국의 유일한 관심사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제거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재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동북아 내에서 미국의 군사력 증강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철저히 종속된 채,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킬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하지 않고 현대 등 재벌을 앞세워 대북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햇볕정책을 유지,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노무현이 '반미주의자'라는 것은 애시당초 어불성설이었다. '반미시위'에 대한 미국과 보수진영의 우려를 인식한 노무현은 당선 직후 '촛불시위' 자제를 호소하며 촛불시위와 반미·주한미군 철수라는 쟁점을 의도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며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를 표방했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우방국인 미국의 체면을 봐서라도 촛불시위가 과도한 반미시위로 번지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그 결과 한반도 위기가 조장되고 있음이 너무나 자명한 상황 속에서 새정부는 촛불시위가 반미는 아니라며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반미시위 자제를 호소하며 다른 한편으로 햇볕정책의 유지, 계승을 주장하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자임한 노무현의 자가당착은 이내 드러났다. 이른바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 송금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은 이 균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현대 상선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계기로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 하에 대북 지원의 투명성을 주장하는 여론에 떠밀려 대북 현금지원이 밑바탕이 된 남북교류사업은 일대 위기를 맞게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동조하며 한반도 평화를 구걸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방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미명 하에 부시 행정부의 신군사전략에 조응하고 말았다. 그리고 미국과 초민족자본에게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동북아 역내에서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분단의 안정화를 통해 동북아중심국가로 웅비한다는 구상을 내포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북핵'이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공통 목표로 수렴되었다. 방미에서 드러난 평화번영정책의 실체 여기에 북한과의 협상을 일체 거부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인식이 투영된 것은 물론이다.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반테러 전쟁'을 경과하며 사실상 페리 프로세스의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직후,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사문(死文)으로 간주한다는 단언을 했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의 발발은 사실 '자기실현적 예언'의 성격을 띠는 일이었다. 또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한 다음인 2002년 1월 워싱턴은 예방적 전쟁 전략을 위한 미국의 억제정책을 포기하면서 "악의 축"이라는 것을 고안해 내었다. 노무현은 방미 과정에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한다'는 말과 달리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할 것임을 명시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군사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동시에 노무현은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이 북핵문제의 전개상황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연계정책'에 따라 남북교류협력 방향의 변화가능성을 시사하였다. 한술 더 떠 노무현은 정상회담 직후 5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북한이 하자는대로 따라해선 안 된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대북 제재의 물꼬를 틔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즉 "미국의 동맹국들[남한과 일본]이나 중국은 미국이 핵문제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스스로의 우려를 노무현 자신이 앞장서서 불식시켜준 것이다. 그 결과 대북 제재를 향한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미국은 동북아 내에서 무소불위의 전횡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개최된 일련의 외교 드라이브에서 재확인되고 있다.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결국 ①한미동맹의 현대화·공고화 속에서 ②북핵문제를 해결하고 ③그 성과로 동북아중심국가 방안으로 상징되는 남한 자본주의의 발전전망을 미국 및 초민족적 자본으로부터 승인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1990년대 말 콘돌리자 라이스, 폴 크루그먼 등이 포함된 미국 국익위원회는 '세계화의 옹호가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미 군대가 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평화번영정책이 이러한 미국의 대외전략에 철저히 종속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망 속에서 노무현이 표방한 대미자주외교란 냉전적 보수세력과 자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리하기 위한 수사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고, 방미 외교는 노무현 정권의 평화번영정책의 한계와 모순을 단적으로 드러낸 계기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북간의 본질적인 화해,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한미동맹 대 북한의 대결국면이 첨예화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장관급 회담(4월 27∼29일)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5월 19∼23일)가 예정대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일견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당초의 기조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안위할 수도 있으나 이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가 한반도 위기의 원인을 '북한의 핵개발'로 인식하는 한, 그 해결책 역시 한미(일) 동맹의 강화 속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을 동반하는 셈이며 무엇보다 군사적 해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 정상이 합의한 동맹 현대화란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와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자주국방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군의 전반적인 전략 및 전력개편, 군비확충과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구나 동맹 현대화는 한반도에서의 남한군의 역할 증대를 넘어 미국의 더욱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남한군의 '자주국방 비전'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지역의 불안정성의 심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주의와 동북아 역내에 점증하는 군사적 경쟁 이 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노골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국방비 예산 증액 및 벙커버스터 등 소형핵무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또 동북아에서 주한, 주일 미군의 재배치와 전력증강을 꾀하고 있으며 미사일방어망(MD)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는 냉전체제 종식과 함께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새롭게 출몰하는 '비대칭적 위협'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 본토 및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군전력의 첨단화·경량화·유연화 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주의가 연일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동북아 역내의 군사적 긴장도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역내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긴장관계라는 기본 구도 하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최근 일본 내 보수화 흐름과 맞물리며 '보통국가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5월 23일부터 벌어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추후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를 취하고, 향후 북한과의 회담은 남한-일본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일 경우에만 재개하며, 미국이 추진중인 미사일방어망에 적극 동참키로 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 미일 정상회담을 전후로 미국의 MD 계획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일본의 MD 구축은 외형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는 듯 보이면서,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최대 잠재적으로 설정돼 있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동북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게 확실하다. 남한 역시 현재 국방부가 북핵위기 발발후 당초 구입할 계획을 세워놓았던 3척의 이지스함과 300여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조기에 구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 여기서 미국의 의도는 결국 한반도 주변 3국에 MD를 실전 배치시킴으로써, 군사력의 증강을 기도하고, 그 결과 '악의 축'으로 지명된 북한에 대한 고립, 압박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이의 부수적 효과로서 거대 미 군수자본을 살찌우려 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경우 동북아 내에서 미일동맹과 가시적인 충돌 없이 전략적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고 또 미국이 한미일 동맹과 연계해 미군을 남한에 주둔시키는 목적이 자체 지역 전략에 따라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 한반도를 끌어들이는 데 있기 때문에 중국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국 역시 MD 등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염두에 둔 듯 최근 최첨단 이지스함을 건조하여, 미-일 등에 이어 대양해군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이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군비 경쟁을 조장하여 동북아 전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셈이다. 반미-반전-평화군축 투쟁으로 나아가자! 중학생의 죽음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평화를 향한 보편적 요구와 마주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로 거듭나기도 했다. 반면 지배계급의 집요한 방해 책동 속에 '주한미군 철수'와 '반미'에 대해 동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인미군 처벌'과 '부시 사과' 그리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이라는 요구와 '주한미군 철수'와 '반미'는 본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죽음의 직접적 원인 자체를 제거하지 않는 한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는 언제든 나올 것이며 살인미군은 처벌되지 않고, 미국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력증강만을 꾀하며 한반도에 대한 전쟁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학생사망 1주기를 맞이하여 광범위하게 조직된 촛불시위는 미국의 군사주의와 한반도 위기에 맞서 더욱 강력한 반미반전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 미국과 초민족자본이 주도하는 금융 세계화와 이를 보호, 유지하기 위한 군사 세계화 양자가 양산하는 폭력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보편화되어야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민중의 투쟁은 전쟁의 원인으로서 세계화와 미국에 대한 비판과 결합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자. 미군의 군사력 증강이 한반도를 더욱 위기에 빠뜨린다는 점을 적극 폭로하고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의 현대화와 동아시아 미군 재배치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자.이는 또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편승하여 역내의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미일 삼각 공조 체제에 대한 반대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화' 시도에 반대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동조, 한반도와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남한의 '자주국방 비전'과 국방 예산 증액에 대해서 철저히 비판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한의 민중운동은 군사화된 정치, 군사주의적 체계에 대해 반대하는 평화군축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두 중학생의 죽음을 기리는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 '플랜 콜롬비아'의 지정학(地政學) : 2001.4 : : 제임스 페트라스 : : 번역: 임필수(정책기획부장, 한반도위원회) : : 들어가며 : 플랜 콜럼비아와 급진 삼국(Radical Triangle) : 워싱턴에 대한 도전의 지리학 : 신비감의 유지 : 공허한 말과 구체적 현실 : 워싱턴의 멀티트랙 정책 : 미국의 군사적 개입의 단계적 확대의 결과 : 워싱턴의 진단: 약점들과 사실들 : "잘못된 분석"의 결과와 전망 : 결론: 미국으로의 역류
부시 행정부는 5월 20일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한 국가정책'을 발표했 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워싱턴타임즈의 빌 거츠 기자가 원문을 입수해 미 국과학자협회(FAS)를 통해 공개했는데, 공식적으로 발표된 문서에는 삭제 되어 있는 몇몇 민감한 구절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중에는 MD체제의 구축의 명분으로 유일하게 '북한'을 언급하고 있는 부 분도 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국에서의 MD체제의 구축에 대한 논의 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리는 부분일 것입니다. 관련해서, FAS에서 공개한 원문과 이에 대한 정욱식씨의 입장글을 첨부하 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원문 중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분이 실제 발표에서는 삭제된 부분입니다.
한-미 정상이 구상하는 한-미동맹의 미래 5월 1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비롯하여 한미동맹의 새로운 방향 설정이 이루어졌다.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는 커다란 방향아래 "주한미군을 주요 축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계속 증대"할 것을 천명했다. 한편, 논란이 되었던 미2사단의 한강 이남으로의 배치는 일단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기로 결정되었고, 용산 기지의 경우 조속한 시일 내에 재배치하기로 합의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미 2사단의 후방배치를 유보한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커다란 성과라고 주장한다. 미 2사단이 후방배치 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은 지난 2월 노무현 대통령 특사의 방미 과정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 이는 지난 4월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협의에서 본격적으로 양국 간의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자 청와대, 정부, 국회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 2사단의 후방배치로 인한 전력의 손실과 '인계철선((trip-wire)'의 상실은 대북 억지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반대의 주된 근거였다. 더구나 작년 남한의 촛불시위에 대응하여 미국 정치권 일각이 주장하였던 '주한미군 철수론'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되었다. 이런 풍경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해방 이후 주한미군의 철수, 감축은 그동안 5차례 있었다. 이러한 주한미군 재편 계획은 모두 미국의 국가전략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고 그 때마다 한국 쪽은 북한의 위협을 부각시키거나 '인계철선'의 유지 등을 언급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주한미군이 없는 한반도'는 남한에서는 바로 북한의 남침과 멸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이에 따라 감축 혹은 재배치의 이야기만 나와도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미국은 언제나 변화된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 왔지만 남한은 언제나 '주한미군' 하나 만을 부여잡고 그렇게 버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미2사단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한국 정부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합당한 것인가? 미2사단의 후방배치를 유보시킨 것을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로 볼 수 있는가? 나아가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한-미 동맹의 새로운 미래는 한반도 민중의 미래일 수 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재편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동북아시아 군사전략 구상과 이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덧붙여 북한의 핵문제와 촛불시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 등이 결합되며 형성된 지난 몇 달 동안의 정세와 이 속에서 미국의 주한미군 재배치라는 카드가 어떤 효과를 낳았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군사전략의 변화와 군사혁신 최근 미국은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전반에 대한 재배치를 계획, 실행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올해 10월까지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 계획이 완성될 것이며, 주한미군 역시 실질적으로 감축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는,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변화라는 맥락과 이에 조응하는 미군의 군사혁신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경우 동아시아 및 한반도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맥락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미국의 전략, 그리고 주한미군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의 군사체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1) 미국의 새로운 안보·군사 전략 9·11테러를 거치며 분명하게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군사·안보 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촉진하고 이 과정에서 분출되고 있는 새로운 비대칭적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냉전시대의 보복적 핵 무력에만 의존하는 전략태세로는 21세기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데 적절치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은 어떠한 무력공세도 저지할 수 있는 일정 범위의 핵/비핵 옵션을 갖출 것이다, 그리고 불특정 대상으로부터의 불특정 수단에 의한 비대칭적 위협이 증가한 현 상황에서, 기존의 소극적 억지를 넘어 사전에 위협을 제거한다는 적극적 반확산 전략 및 '선제공격 독트린'을 천명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이 현재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각국의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전략적 배경이다. 이러한 전략에 조응하여 미군의 군사전략과 체계에 대한 재편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냉전 시절 미국은 옛 소련과 그들의 동맹국을 상대하기 위해, 유럽과 동북아시아를 중무장하고 강력한 화력을 가진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는 한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핵무기로 대표되는 삼중점(Triad) 시스템을 통해 상대방의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여 왔다. 그런데 비대칭적 위협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이루어지므로 중무장한 무거운 병력은 이런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체계 역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되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추진되어 온 군사분야혁명(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의 흐름과 맞물리며 구체화되고 있다. 2) 군사분야혁명(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과 럼스펠드 독트린 소위 군사분야혁명(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으로 불려지는, 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광범위한 군사구조 개혁은 향후 미국의 세계전략의 군사기술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현재 미국의 RMA 인식의 확산을 주도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앤드류 마샬(Andrew Marshall)은 제2의 마샬 플랜으로도 불리는 미 전력구조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미래전략은 기본적으로 가까운 장래에 미국이 현재 세계 각지에 보유하고 있는 전진배치 기지에 대한 접근이 제약될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비대칭적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항공모함과 중보병 위주의 전력구조에서 원거리 함선과 잠수함, 그리고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와 정밀병기가 더욱 중요해지리라고 본다. 이에 따라 정보수집, 감시 및 정찰, 고도의 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및 정보처리(C4I) 원거리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정밀유도무기가 이후 미군의 군사력 혁신의 핵심 분야로 제시되고 있다. 즉 뛰어난 정보수집 및 정찰능력으로 적의 움직임을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고, 첨단 통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을 이용해 파악된 정보를 신속하게 분석한 뒤 거의 동시에 정밀유도무기로 먼 거리에서 공격(특히 지휘부 및 통신시설)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이라크 침략전쟁의 과정에서 '럼스펠드 독트린'으로 현실화되었다. 럼스펠드 독트린은 가벼운 군사장비로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정밀타격으로 속전속결 전투를 벌이는 군사전략을 말한다. 이는 병력의 기동성을 병력의 규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이번 전쟁은 불과(?) 25만의 미군으로 개전 26일만에 지역적 강국 이라크를 점령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제창한 '속전속결론'을 보란듯이 입증하였다. 군대의 경량화·유연화·첨단화로 대표되는 럼스펠드의 구상은 적은 병력과 첨단 무기·특수부대로 미군의 큰 피해 없이 동시에 몇 개의 세력을 손볼 수 있다는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군 내부의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럼스펠드는 자신의 구상을 관철시켰는데, 이러한 신군사전략의 승리는 이후 미군 전체의 재편에서 '럼스펠드 독트린'이 더욱 힘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 3) 미국의 신 전략과 동아시아, 한·미동맹에 대한 새로운 구상 부시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 주력 군사력 배치의 중심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옮기는 동시에 동북아 중심의 전력배치 구조를 동남아로 확대할 것을 주장해왔다. 그 근거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신흥시장으로서 미국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아시아는 대규모 군사적 경쟁과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할 세력, 즉 중국의 부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군비경쟁이 진행되고 있고, 일부 국가는 전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 내 미군 기지 및 기반 시설에 대한 접근도가 다른 주요 지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이 지역에 대한 접근성 제고, 기반시설 확보, 원거리 작전을 지속할 수 있는 역내 시스템 우선적인 개발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태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축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춘 전략을 모색해왔다. 이러한 새로운 안보·군사전략의 변화와 군사전략과 체계의 재편은 한·미 동맹 및 주한미군, 한국군과 한·미 연합군 전력의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한·미 동맹을 동아시아 지역의 지역동맹으로 확대하고 미국의 새로운 안보·군사전략의 목표에 입각한 새로운 비전과 목표로 현대화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역할은 동아시아로 확장하되 한국군이 한반도 안보에서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전반적인 군사체계도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른 보다 효율적인 체제로 개편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동남아시아로의 남진은 기존의 동북아에서의 한-미-일 3각 동맹의 공고화와 이 지역에서의 안정성의 확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핵-미사일 등 북한의 위협이 제거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의 동아시아 군사력의 재조정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동맹관계나 군사체계의 급격한 재편은 북한의 불안정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로 미루어져 왔다. 주한미군 재배치를 통한 한반도 전력 강화와 대북 압박 그런데, 올해 2월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은 '미 2사단의 후방배치'와 '용산기지의 이전'을 언급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주한미군의 전반적인 재편에 대한 미 정부의 구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밝혀진 미군 측의 구상은, 전국의 미군 기지를 오산·평택권과 부산·대구권 등 2개 중심기지로 묶고 지상군 병력을 줄이는 대신 정밀유도무기를 강화하고 유사시 부산·대구권 기지를 증원군을 파견할 수 있는 통로로 확보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평택 캠프 험프리 주변의 400여만평에 미8군사령부와 2사단을 배치하고, 오산 공군기지 주변의 100여만평에는 주한미군사령부 관련 시설을 옮기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해외주둔 미군을 이전처럼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고착, 방어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 위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는 것을 중심으로 배치하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주한미군의 주축인 미2사단은 대규모 기계화 사단인데 이는 북한이라는 고정된 대상을 상대하기에는 적절하지만 다른 위협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오히려 5월 22일 포항으로 신속전개 훈련을 수행했던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와 같은 형태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르게 북한의 핵문제로 인하여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재배치를 미군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배경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뉴욕타임스>는 5월 12일 미 국방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지난 걸프전 때보다 훨씬 적은 병력으로 이번 이라크 전을 치렀듯이 군사기술의 진보는 더 적은 미군 병력으로 더 큰 억지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테러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군사전략과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이 힘을 얻으면서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한반도 주면의 미군의 동향은 단순히 억지력의 확보 차원을 넘어 서고 있다. 미군은 몇 달사이 스텔스 전폭기의 남한 배치, B-1, B-52 폭격기의 괌 배치, 핵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호의 일본 배치 등 한반도 주변의 병력을 계속해서 증강시켜 왔으며, 최근에는 이라크 전에 사용된 1개 중무장 여단의 장비를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북한에 대한 대북 공격 능력을 강화하고 북한에 대해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과 연관되어 있는 미2사단의 후방배치는 군재편의 차원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으로까지 보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미군의 선제공격은 휴전선 근처에 전진배치되어 있는 북한군의 야포에 의한 즉각적인 보복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미2사단을 야포의 사정거리 밖에 둠으로써 보복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응: 한국군의 군비증강과 지역 군대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에 따라 한반도 방위에 있어서 한국군의 역할이 증대됨으로써 전반적인 군사전략 및 전력개편, 확충이 불가피해졌다. 한국 정부의 구상은 5월 6일 국방부 장관이 보고한 '중장기 자주국방 계획'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미래 전략환경과 전쟁양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방정책 목표를 '자주적 선진국방 구현'으로 설정하고, 완벽한 국방태세 확립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구축 지속적인 국방체제 개혁 장병복지, 병영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고 국방 업무를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국방비의 증액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최근 주한미군 재편ㆍ감축 움직임에 맞춰 용산기지 이전비용 3400억원을 포함해 내년도 국방비를 올해보다 5조5000억원 늘린 23조원 규모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총생산(GDP)의 3.4%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며, 올해 예산안에서 31.4% 증가한 것으로 난 80년 46.2% 증가율을 기록한 이래 최고 수준이다. 물론 현재 한국 경제의 여건이나 정부의 재정 규모상 국방비를 5조5000억원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방예산 증액 문제와 국가경제가 상호보완되는 방향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라며 이러한 난점을 해결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미2사단이 후방으로 배치되고 이러한 공백을 한국군으로 대체하는 비용만 해도, 통상 한국군 1개 보병사단을 유지하는 연간 예산은 1000억원, 기계화 사단은 보병사단의 2~3배로 잡고 있는 만큼 연간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 첨단정보·과학군 육성과 관련된 전력증강 사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방부는 자주적 방위역량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GDP의 3% 이상인 적정 군사비가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때 '군사비를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며 국방예산을 GDP 대비 2.7% 수준에서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방비의 증대와 한국군의 역량 확충은 남북 간의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고 북한을 자극시킬 가능성이 있다. 군 당국은 한국군의 전략지수가 북한의 70~80% 수준이고 따라서 주한미군의 후방배치와 역할변경이 이루어질 경우 한국군의 전력확충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국방부가 <국방백서>를 통해 공개하는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병력·무기의 질, 지휘능력, 정보능력, 사기, 신기술 등이 반영되지 않아 북한의 군사력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비판이 민간 연구자 사이에서는 공통적이다. 더구나 지금 제기되고 있는 '자주국방 비전'이 한반도에서의 한국군의 역할 증대를 넘어 미국의 더욱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한국군의 현대화는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이번 이라크 침략전쟁과 같은 일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벌일 때 한국군 역시 함께 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지역의 불안정성의 심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에서의 반미-평화군축 투쟁으로 나아가자. 주한미군 재배치는 촛불시위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확산되고 있던 반미반전운동을 제어하고 대중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이기도 했다. 미국 측에서는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를 북한의 핵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여 오히려 남한 정부와 대중운동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였다.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균형 잡힌 성숙한 동맹 관계를 구체화하겠다" 며, 미군 재배치와 감축 카드로써 한국을 오히려 압박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그들의 예상처럼 '주한미군 재배치를 유보'하는 대가로 한·미 동맹의 현대화와 주한미군의 재편 및 이에 따른 한국군의 재편을 쉽게 합의하고 말았다. 나아가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접근방식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데도 이러한 '협박'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의 증강이며, 미국의 군사적 행동의 폭을 훨씬 넓게 열어 준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다른 대응 방식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셀리그 해리슨은 오히려 주한미군의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접근자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렛대'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한국과 대북정책 조율을 거부한다면 한국은 미군의 철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협박 수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잣대를 미국 월스트리트의 초민족적 자본과 금융투자자들의 투자 전망으로 측정하는 노무현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질서에 대한 거부는 이러한 질서를 지지하는 자본의 이탈을 불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질서와 이에 조응하는 미국의 군사세계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지렛대는 예방전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고 있는 미국과, 이러한 흐름에 적극 조응해 들어가며 한반도 민중의 평화와 생존을 지켜 낼 의지도 능력도 없는 노무현 정권, 또한 미국의 '패권주의'를 '군사주의'로 맞서 보려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서 찾을 수 없다. 오로지 반미반전평화를 주장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있다. 북한을 겨냥하는 한반도 주변의 전력 증강에 반대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남한 민중들의 투쟁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지금 미국의 군사력은 지역적 한계를 넘어 주요 거점들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운동을 통해서 제어가 가능하다. 미군의 군사력 증강이 한반도를 더욱 위기에 빠뜨림을 폭로하고 미군의 군사적 압박을 중단시킴으로써 미국이 북한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의 현대화, 예방전쟁을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기 위한 전력의 증강에 다름 아닌 주한미군/동아시아 미군 재배치에 대한 반대 투쟁, 한국군의 국방비 증가와 전력 강화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한반도 뿐 아니라 지역 전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남한의 '자주국방 비전'과 '국방 예산 증액'에 대해서 철저히 비판하고 투쟁하도록 하자.
지난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노무현의 방미를 놓고 정치권은 극도로 치닫는 정신분열양상을 보여주었는데, 또다시 여야가 자리를 바꿔 앉은 것이다. 평소 노무현의 대미 인식에 대한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아예 "노 대통령이 방미외교에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전략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줏대 있는 대북포용정책과 전통적인 한미동맹 복원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상찬한 반면, 민주당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는 하지만 씁쓸한 얼굴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재야출신 의원들은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던 대북 포용정책에 상당한 후퇴를 가져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라크 파병결정 이후 노무현 행정부의 대미정책은 대통령 선거 당시의 사람들의 바람 즉, 미래지향적인-동등한 대미관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에 의혹의 눈총을 던지는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외교란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변했고, 동네 부랑아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한신의 과거'를 빌어가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이런 노력에도 대미굴욕외교에 대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이런 노여움은 노무현 대통령의 5 18 망월동 묘역 정문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광주지방법원은 이런 시민들의 노여움을 '망발'이라는 말로 응징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마저 법적으로 기각하였다. 정말로 대통령 못 할 짓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상황이다. 노무현의 극단적인 지지자들은 노무현이 수구보수언론의 압력에 못 이겨 굴복하기 시작한 듯하다며 우려 섞인(그러나 동정어린) 시선을 던지는가 하면,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의 입지를 이해해야 한다며 이럴 때 우리가 올바로 서야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선다는 상황론을 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무현의 이 같은 행동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노무현 행정부의 한반도위기 인식이 대단히 불명료하고, '평화번영정책'에서 엿볼 수 있듯 그 해법 역시 낙관적이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명확한 정치세력까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불확실한 정치 전망의 딜레마에 휩싸인 노무현이 지극히 위험스러운 방향으로 나갈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강화한 한미 정상 공동 성명 : 한미 정상 공동 성명의 모호한 수사(修辭)? 노무현 방미 태스크포스팀이 이번 방미의 최대 성과로 꼽았던 것이 한미 정상 공동 성명(이하 공동성명)이었고, '성숙하고 완전한 동맹관계의 형성,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미 경제협력 강화가 포함될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었던 것인 만큼, 한미정상의 공동성명을 자세히 살펴보자. 언젠가부터 '동등한' 한미관계가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관계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는데, 공동성명을 살피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늘날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관계가 무엇인지, 이 탈바꿈의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공동성명의 요지는 '2003년이 한 미 상호방위조약 50주년임에 유의하면서 양 정상은 양 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의 가치 증진과 한반도 및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데 공동 노력키로 다짐'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제로써 오늘날 한미동맹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두 정상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군을 변혁하고 새로이 대두하는 위협에 대한 대처능력을 드높임으로써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기로 합의하고는 이어 곧, '동맹 현대화 맥락에서 주한미국을 핵심 축으로 통합하는 계획'을 마련하기로 하고, 이른 시일 내에 용산 기지를 재배치하기로 하였다는 말로 뒷받침한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듯)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관계란 주한미군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동맹의 강화를 확인하는 것인데, (과거와 다르게) 그 인식의 저변에는 '새로이 대두하는 위협에 맞서기 위한 대처능력의 향상'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한미군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군사동맹이란,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것의 절대 우위를 전제하는 군사동맹임을 확인해두자. 공동 성명의 두 번째 내용은 (새로이 대두하는 위협의 하나로써) 북한 핵개발에 대한 입장이다. 두 정상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며, 검증가능 한 그리고 비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해 나간다는 강력한 의지를 다시금 천명'하였다. 이는 한반도에서 핵 프로그램의 주체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대한 일체의 손상 없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비가역적인 제거(irreversible elimination)'라는 표현을 빌림으로써 최근 북한이 베이징 회담에서 제시한 대담한 해법을 우회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특히 주목해야 할 것으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한다'는 말과 달리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것을 명시했다는 사실인데, 이는 경제 봉쇄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군사적 수단조차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미국의 선제공격을 합리화 해주는 '예방전쟁'이 한반도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뜻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있을 수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짐이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의 선제공격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이중수사는 남북협력에 대한 언급에서도 드러나는데, 두 정상이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상황 전개와 무관하게 이루어 질 것'임을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은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이 북핵문제의 전개상황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하였다. 이는 남북교류협력이 '연계정책' 아래에 있음을 또한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북핵문제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환영하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국가들 사이의 다자간 협상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인데, (협상) 비용의 분담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의 개요를 설명하였고, 이에 대해 부시행정부는 남북화해과정을 지지한다면서 '남한의 남북화해과정은 북핵 문제 해결 촉구에 사용되어야 함'을 분명히 지적하였으며, 이 사실도 역시 공동선언에 명기하였다. 공동 성명의 세 번째 내용은 경제관계다. 양 정상은 '한국 경제 기초 여건이 견실하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한국의 무역, 투자, 성장의 지속적인 증가 전망에 대해 강하게 확신'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환영하고 지지'함으로써, 미국에 집중되어 있는 투자자본에게 한국의 투자 전망도 괜찮다는 부시의 전언을 전달하였다. 동시에 공동성명은 양국간 경제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 사실도 확인해두도록 하자. 마지막 내용은 노무현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완전한 동반자 관계 형성에 대한 천명이다. '당선이후 빈번한 전화통화를 통해 양 정상은 상호 신뢰와 존경의 기반을 형성하였으며, 한 미간 공조가 강화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그리하여 부시행정부가 제기한 여러 우려가 해소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공동성명이 상반된 내용을 동시적이며 미묘하게 언급하고 있는 듯해서 수사(修辭)로만 보면 모호할지 모르지만 사실, 정치적 의미는 명백하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핵심으로 하는 한 미 동맹의 강화며, 북핵문제의 해결은 모든 수단(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는)을 사용해서라도 완전히 '제거'해야하는 최종 목표며, 동시에 평화번영정책 즉, 남북화해협력은 이 모든 과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 중심 국가 모델의 핵심은 바로, 현 단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 목표 즉, 무역개방, 투자, 투명성 제고에 있으며 이것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수사의 모호함, 애매한 표현이라는 말로 공동성명을 평가하고는 이번 한미 공동 성명의 예외성을 부각시키고 한미정상 공동성명의 정치적 의미를 가리려 하지만, 차이란 수사(修辭)에서만 드러날 뿐, 정치적으로는 노무현 행정부의 한반도 위기 인식과 해법이 부시 행정부의 그것과 사실상 일치하고 있음이 이번 공동성명에서 드러난 것 아닌가? '평화주의자' 노무현의 한반도 위기 인식·해법과 그 정치적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과거 YS, DJ 때보다도 빨리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부시독트린으로 수렴하는 평화번영정책, 그 자기 모순 누차 강조해왔듯 1990년대 미국의 대북 정책 초점은 핵, 미사일로 상징하는 대량 살상 무기의 '완전한 제거'에 있다. 이를 위해 (페리보고서에서 확인되듯) 북에 대한 포괄적 접근(engagement)을 시도하는데, 바로 '협상'과 '군사력의 증강'이라는 두개의 경로에 대한 동시적 추진이다. 과거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노벨상으로 빛나는 그 화려한 말잔치와 달리) 이것의 축소판 혹은 하위 파트너에 지나지 않으며, 남북관계는 늘 북미관계에 종속되어 있었고 따라서, 햇볕 정책은 바로 여기서 한계가 드러났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문제는 또 다른 점에서 문제를 드러내는데, '협상'이 '군사력 증강'과 별개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 증강'을 전제하거나 그것에 종속되어 전개된다는 점이다.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물론이거니와 그 지지자들도 이점을 정확히 비판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결국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해 대단히 무기력한 대응을 낳고 만다.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역시 이점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는데, 평화번영정책의 전제가 '북핵 해결'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 점과 '북한을 위시한 불특정 위협 및 비군사적 위협 동시대비전력 우선 보강'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이 같은 모순과 긴장은 미국의 군사적 수단 사용에 대해 부시 앞에서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는, 되레 그것을 승인하는 공동성명의 채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구나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바탕'으로 동북아의 물류, 관광, 무역, 산업의 중심 및 해양과 대륙을 잇는 '경제의 관문'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이를 뒤집어 놓고 본다면 동북아 허브 중심 국가 구상을 방해하는 것이 평화롭지 못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은 한국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투자가 어려운 핵심요인으로서 '북핵' 더 나아가 '북한체제'라는 상징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한반도 평화의 위협요인이 '북핵', '북한체제'라는 위협요인으로 뒤바뀌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지배세력에게 한반도 평화란 초국적 자본의 투자를 위한 안정성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위협을 통해서라도 북을 압박해야 평화로운 상황이 가능하다는 매우 위험한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평화번영정책에서 평화란 전쟁위험의 항구적인 제거라기보다는, (예외적으로 전쟁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경제의 불안, 투자의 불안 요인의 제거에 더 가깝다. 따라서 이같은 정책은 불필요한 전쟁 위협이 한반도 경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를 앞세울 수도 하지만, 자본 투자의 불안 요인-위협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예방전쟁' 선제공격 전쟁을 지지하는 역설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위기를 더욱 증폭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과 '부시 독트린'이 수렴하는 것은 그리하여 오늘 이렇게 공동성명으로 드러난 것은 결코 예외가 아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결국 노무현 행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그 화려한 수사와 달리 가시적인 적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하는 전쟁-군사력의 현대화를 전제하고 그것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또 전쟁의 내부화를 통한 자본주의 수탈체제의 재구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항구적인 평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민중의 위기, 한반도 위기를 가속하는 반민중적 정책으로 드러날 뿐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안도하기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상황이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남한의 경제위기와 한반도위기가 서로를 가속하는 중첩된 상황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배세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갖가지 정책들이 끝내는 한반도 위기를 가중하고,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관철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결국은 남한의 경제위기를 가속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평화가 아니다. 이에 대한 비판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비판을 두 가지 축으로 전개해야 하는데, 초민족적 자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름으로 노동자, 농민, 여성을 상대로 착취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불가능한 지속임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 그 한 축이고, 한반도에서 군사력의 완전한 우위를 통해,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제거라는 이름을 빌어 북한 체제의 완전한 전복을 꾀하려 드는 항상적인 전쟁 위기, 즉 미국의 선제공격 시도들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영원히 불가능함을 비판해야 한다는 점이 또 다른 한 축이다. 바로, '동북아 중심국가의 구상'과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한 비판으로 말이다. 이를 수행할 주체가 반세계화 투쟁과 반미반전 투쟁, 제한 없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주체임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PSSP
위험전가 군사주의, 소규모 학살과 전쟁의 역사적 합법성 요약 '테러리즘과의 전쟁' 초기의 성공에 대한 인식은 서구 세계에서 지난 20년 동안 점점 가속화되어온 전쟁의 일반적 재합법화(relegitimation)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의 가장 최근의 예로 간주하며, 그 전쟁의 희생자를 이전의 걸프만과 코소보 전쟁과 비교한다. 그것은 '위험-전가 전쟁(risk-transfer war)'이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동정(同定)할 수 있으며, 중심적 특징은 '소규모 학살의 군사주의'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유형은, 초기의 '타락한(degenerate) 전쟁'에서 민간인을 체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것이 초래한 전쟁의 합법성에 관한 문제에 대해 단지 부분적인 해답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정당한(just) 전쟁'의 기준에 관한 근사치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군인과 전쟁 지역의 민간인 사이의 위험의 불평등성은 새로운 형태로 전쟁의 합법성의 문제를 되살린다. 이 글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민간인 사상자에 관한 관심사에서, 역사적으로 면제되어온 전쟁의 기준에 관해 검토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의 모순은 전쟁의 합법성 문제에 관한 '역사적 평화주의자'의 입지(position)를 강화한다. 전쟁의 르네상스는 21세기 초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전쟁은 국제적 범죄자의 특권이 아니라 정의의 첫 번째 수단인 것처럼 보인다. 2001년 911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광범위하게 믿고 있으며, 정말로 미국은 힘이 정의를 강요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다. 영국의 저명한 자유주의 논평가인 폴리 토인비는 이를 '폭격이 작동한다(bombing works)'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확신은, 특히 미국에서, 지난 한 세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서구 민주주의에서 대체로 우세했던 평화주의적 감성의 현저한 역전을 수반한다. 그것은 실제로 전쟁의 재합법화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전쟁이 포괄적으로 탈-합법화(delegitimised) 명백히 최종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더라도―되었기 때문이다. 1914-18년 플랑드르 참호에서의 경험은 '무감각한 살육'이라는 패러다임을 주었고, 이는 지난 세기 동안 영향력을 남긴 전쟁에 관한 '감정의 구조'의 틀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그래서 서구 민주주의에서 1939-45년의 새로운 전쟁은 더욱 침울한 것이었고, 애국주의를 덜 동반했으며, 민족주의만큼이나 반(反)파시즘에 호소했다. 그래서 사실 그 전쟁은 많은 사람에서 선한 전쟁(good war)처럼 보였고, 홀로코스트를 멈추기 위한 십자군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더 정말 예외적인 것으로 보였다. 핵 절멸의 위협은 20세기 후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모든 비용을 들여서라도 큰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반드시 미리 막아야 한다는 압도적인 인식을 창조했다. 베트남 전쟁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일종의 제한 전쟁조차 무감각한 살육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반전이라는 감정의 구조를 강화했다. 이러한 경험의 중요성은, 가장 강력한 서방 국가인 미국에게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이며, (아마도 영국을 논외로 한다면) 미국은 1939-45년의 공포에 의해 전쟁의 활용이 이미 탈-합법화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의 재합법화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 하나의 요소는 2차 세계대전을 '선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것에서 유래한다. 즉 전쟁 또는 최소한 조직적인 군대의 역할이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과 폭력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긍정성'은 1980년대 핵무기에 대항한 투쟁인 유럽의 대규모 평화운동이 벌어졌던 바로 그 시대에 이미 출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선한 전쟁의 사례는 (캄보디아의) 베트남, (우간다의) 탄자니아와 같은 3세계로부터 유래했다. 물론 더 최근에는 이를 '인도주의적 개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서방이 지원하는 군사행동의 공공연한 목적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서방의 의지 중 항상 단지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마가렛 대처는 20년 전 포클랜드에서 전쟁의 다른 양식을 개척했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 역시 다시금 성공적으로 진짜 전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부시 대통령은 1991년 이라크 전쟁에서 '베트남 신드롬을 걷어찼고', 나토(NATO)는 1999년 코소보에서 벌어진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따라서 조지 W. 부시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발표하기 위한 배경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최근까지 지난 세기 평화의 교훈이 남긴 유산은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성공과 함께, 그러한 경향은 매우 다른 길로 바뀌고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가 힘들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동원한 군사력 활용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련의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전쟁에 강력한 새로운 추동력을 가할 것이다. 바로 이 때, 이러한 전개의 모순에 관해서는 누구도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그것이 앞으로의 10년 동안 세계 사회에 끼칠 결과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 글은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의 가장 최근의 예로 간주하며, 그 전쟁의 사상자를 이전의 걸프만과 코소보의 전투와 비교한다. 나는 그것을 '위험-전가 전쟁'(risk-transfer war)이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동정할 것이며, 중심적 특징은 '소규모 학살의 군사주의'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이, 초기의 '타락한 전쟁'에서 민간인을 체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것이 초래하는 전쟁의 합법성 문제에 관해 단지 부분적인 해답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정당한 전쟁'의 기준에 대한 가까운 근사치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군인과 전쟁 지역의 민간인 사이의 위험의 불평등성은 새로운 형태로 전쟁의 합법성의 문제를 되살린다. 이 글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민간인 사상자에 관한 관심사에서, 역사적으로 면제되어온 전쟁의 기준에 관해 검토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의 모순은 전쟁의 합법성 문제에 관한 '역사적 평화주의'의 태도를 강화한다. Ⅰ.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망자 수 칼 코네타(Carl Conetta)는 2002년 1월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영구적 자유(Enduring Freedom)' 작전으로 인한 직접적인 민간인 사상자수를 분석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망자 추정치가 1000-1300명의 범위 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폭격으로 죽거나 다친 모든 탈레반 정부와 아프간 피난민의 수를 액면 그대로 셈한다면, 5천명 이상이 죽고 1만명 이상이 다쳤을 것이다... 실제 사상자의 수는 액면 그대로 셈한 것의 1/4 이하일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그 차이가 매우 크지만,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9·11 공격의 사망자의 수를 공식적으로 처음 추정할 때의 수치는 현재와 비교할 때 두 배 이상이었다. 그 수치가 아래쪽으로 조정되는 데에는 한 달 이상이 걸려고, 현재의 공식 추정치에 근접해지는 데에는 두 달 이상이 걸렸다. 최종적인 사망자 수는 9·11 공격 이후 첫 달 동안 우세했던 추정치의 아마도 50% 이하일 것이다." 그렇지만, (공동 조사의 결과로) 코네타는 이러한 민간인 사망자의 수에 "폭격의 충격, 피난민에 대한 공격, 기근의 위기에 기인하는 최소한 3천명의 민간인 사망자의 수를 추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보고서는 "전쟁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지속된 기아, 폭발, 연관 질병, 상해로 인해 발생한 9월 중반부터 1월 중반까지의 아프간인 사망자 수를 8000-18000명으로 추정한 수치"를 사용했다. "총계치 중의 최소한 40%의 사망자(3200명 이상)는 위기와 전쟁의 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범주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원인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코네타는 그것을 미국의 전쟁 탓으로 돌렸다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명백하게도 이러한 절차는 방법론적인 어려움이 따르지만, 우리가 미국의 폭격으로 발생하는 사망자의 수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 코네타는 "전쟁 후 보복적 나포와 포로에 대한 잘못된 관리에 따른 8백명 이상의 군인 사망자"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일단 사로잡힌 탈레반-알카에다 전사는 더 이상 전투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 수치를 포함하는 것은 정당하다). 따라서 그가 신중하게 고려한 추정치를 사용하면, 그 보고서의 결론은 2001년 1월까지 미국의 군사전투의 결과로 인한 전체 비(非)전투원 사망자의 수가 5천명 또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수치는 뉴욕과 워싱턴에서의 민간인 사망자 수의 거의 최종적 수치인 약 3000명보다 더 높다). 물론 이러한 추정치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사(戰士)의 사망자 수를 다루지 않았다. 미국은 민간인 사상자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2001년 말기부터 2002년까지 지속적으로 뚜렷이 강화된 무시무시한 폭격으로 적의 전사들을 살해할 것을 실제 의도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따라서 살해된 전투원의 숫자는 직접적인 민간인 사상자의 수를 상당히 넘어설 것으로 여겨진다(물론 모든 간접적인 민간인 사상자의 수를 덧붙인다면, 여전히 그것을 넘어설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전투원 사망자에 관해서는 그 수치를 전혀 모른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군에 의한 민간인과 전투원 사망자 추정치에 견주어, 미국과 동맹국의 사망자 수를 고찰해야 하며, 적(탈레반-알카에다)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를 고찰해야 한다. 코네타가 다루었던 기간 동안 적에 의해 살해된 미국인 무관은 단지 한 명이었고(한 명의 CIA 요원이 마자르-샤리프 감옥에서 일어난 폭동에 의해 살해되었다), 몇 명이 챠량과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했다. 지역 동맹군 즉 북부동맹/연합전선(Nothern Alliance/United Front)은 이 시기 동안 미국인들 보다 훨씬 더 많이, 그렇지만 탈레반-알카에다 보다는 훨씬 덜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역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전쟁 시기 동안 탈레반-알카에다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의 수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이 지배했던 시기와 내전의 초기 시기와는 반대로, 매우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최근 분쟁의 간접적인 민간인 사상자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세계화 시대의 다른 두 개의 서방의 전쟁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 전쟁들을 살펴볼 때, 지금까지 검토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표-1>이 제시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수치는 더욱 신중하게 추산된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수치는 논쟁적이다.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의 행동에 의한 1만 2천명의 사망자는 나토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의 2천명의 사망자 추산과 나토의 폭격이 끝난 직후의, 널리 주장되는 1만명의 사망자 추산을 포함한 것이다. 그렇지만 약 2천 5백명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뿐이라는 나토의 비판은 이러한 수치가 사실 크게 과장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에 코소보 프리슈티나에 위치한 <인권과 자유 위원회(Council of Human Right and Freedom)>는 3천명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밀한 수치에 도달하는 게 중요하지만, 이 글은 서로 다른 전투원들 사이에서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에 관한 상대적으로 넓은 격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글의 주장은 여러 관점들이 제시하는 수치 조정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사망자 수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를 더 파고들지는 않을 것이다. <표-1> 주1. '전투에 참여한 적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는 즉각적인 분쟁을 일으킨 침략행위 동안 발생한 사망자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초기 전투(예컨대 사담 후세인의 집단 학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의 공격, 아프간 내전과 탈레반의 억압) 또는 그 다음에 벌어진 전쟁(예컨대 걸프전 이후 이라크 내전, 마쉬 아랍인[서부 이라크의 티그리스와 유프라데강의 사이 지역의 쉬아파 무슬림]의 제거 등)에 의한 장기적인 관점의 사망자를 포함하지 않는다. 주 2. '서방의 공격에 의한 간접적인 민간인 사망자'는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예컨대 이라크에서 미국의 인프라 파괴로 인한 민간인 사망, 아프가니스탄에서 최근 폭격으로 인한 유사한 결과)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 추정치를 말한다. 그것은 전쟁의 영향에 따른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사망자(즉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한 사망자 또는 아프간 전쟁의 결과로 인한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사망자)를 포함하지 않는다. 주 3. 2002년 3월까지 아프간에서 죽은 전체 미군의 수는 40명이다. 그러나 이중에서 '단지 8명이 적군의 공격에 의한 희생자이며, 그 외의 대부분은 다른 추락이나 충돌, 사고에 의한 것이다'(가디언, 2002.3.30).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전쟁은 지지자들에게는 '적확한' 폭력(targeted violence)'으로 보였고, 반대자들에게는 '무차별적' 살육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양자가 주장하는 논점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분명하게도 폭격은 매우 성공적으로 적확하였다. 걸프전과 (덜 두르러지지만) 코소보에서 살해된 적 전투원의 수는 그와 유사한 원인에 따라 살해된 민간인의 수에 비해 훨씬 더 많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살해된 민간인의 절대 수치는, 그 이전 두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역사적인 전쟁(즉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그리고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매우 적다. 이 정도라면, '무차별적인' 민간인 살해에 대한 비난은 부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표적이 되지는 않았지만 살해된 모든 사례는 차별적인 공격의 분명한 한계를 보여준다. 강력한 장거리 무기를 사용한다면, 악명 높게도 '부차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부르는 이러한 종류의 살인이 완전히 회피될 수 없으며, 역사적 패턴에 비할 때 그 규모가 작아졌을지라도 고유하게도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표-1>의 자료는 매우 다른 전망을 제시한다. 코네타가 설명한 것처럼, 코소보에 비해 아프간 전쟁에서의 직접적인 민간인 사상자의 증가는 단지 아프간 전쟁의 특유한 군사적 목적과 수단들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세 개의 전쟁을 가로지르는 일반적인 패턴은 매우 흥미롭다. 이중에서 걸프전에서 서방 군대의 사상자가 비교적 매우 적다는 점 다음으로 가장 두드러진 사실은, 서방이 가장 최근의 두 전쟁에서 사상자 발생을 실제로 제거하도록 잘 관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방 군대의 매우 적은 수의 사상자와 비교할 때, 직·간접적인 민간인 사상자의 수는 지역 동맹군과 (그 보다는 더 많은) 적 전투원 사상자 수와 마찬가지로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Ⅱ. 위험-전가 군사주의: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 민간인 사상자는 으레 사고로 묘사되지만, 이런 결과가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서구의 군사력이 세 가지 층위에서 정비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선택된 결과다: 전략, 군비개발 그리고 미디어 운용(management). 이러한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은 서방 국가로 하여금 자국의 인명을 거의 희생하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베트남전 이후로 TV 화면에 비친, 인명에 대한 위험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 커다란 정치적 위기가 되어왔기 때문에, 이는 또한 서방국가가 정치적 비용(cost)의 현저한 감소 하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으로서는, 아프가니스탄이 절대로 또다른 베트남이 되어서는 안됐고, 또는 20여년 전 같은 나라에서 소련이 경험했던 것을 반복해서도 안됐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걸프와 코소보에서 그것들[베트남전과 소련의 아프간 전쟁]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쟁 방식을 연습(practice)하면서 당연히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의 한 본보기였다. 이러한 '새로운' 전쟁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1920년대이래 영(英)-미(美)의 군사적 사고와 실행에 집중되어온 공군력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창안해 낸 것이다. 그 새로운 양식은 이전보다 훨씬 더 폭격 유인폭격기와 순항미사일 에 의존한다. 그런데 그것은 2차대전 및 베트남전 당시 발생한 적국 민간인의 대규모·광범위한 대량살상을 방지하기 위해 컴퓨터 전자기기가 목표 조준에 기여한 '향상된 정밀성(소위 군사혁명(RMA)이라 불리는)'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실제적인 지상 공격을 수행하기 위한 지역적 동맹(군)을 점점 더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더 많은 수의) 간접적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발생한 '적은' 피해 효과를 완화할 미디어 운용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전쟁 방식은 무차별적인 민간인 조준과 엄청난 숫자의 비전투병 살상으로 드러났던 이전의 폭격이 근본적으로 타락할 것이라는 생각을 뛰어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 방식은 특히 민간인에게 곱절의 위험을 전가함으로써, 새로운 모순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위에서 논증한 '죽음의 분배'로 귀결된다. 서방 군인들과 거리가 먼, 포괄적인 위험의 전가는 새로운 전쟁 방식의 주요한 목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목적의 중요성은 새로운 전투(fighting) 방식이 미디어와 여론의 새로운 조작 방식과 얼마나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서구 사회에서 전쟁의 합법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와 얼마나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전쟁 방식을 단지 위험-전가 전쟁이 아니라 '위험-전가 군사주의'라 부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군사주의의 다섯 가지 주요 요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1. 적군의 사살 (군사적 행위의 직접적 결과로서) 사살된다는 것의 제1의 위험은 실제로 민간인보다는 적의 군사력에 해당된다. 이는 걸프전에서 정확히 사실이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거의 확실히 그랬다. 역사적 의미에서 볼 때, 이는 적국의 민간인으로부터 적국의 민간인으로서 적국의 군인에게 되돌려진 위험의 전가이고, 따라서 최소한 서구의 군사행동에 있어서 이는 민간인 희생을 광범위하게 초래했던 장기 20세기의 경향을 뒤집는 것으로 보이게끔 한다. 이는 확실히 전쟁의 합법성을 주장할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지역의 동맹군이 지상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받아들이다 지상전의 위험은, 서구와 미국 측에서 볼 때, 어디에서든 가능하기만 하다면 (분쟁 지역에 위치한) 지역 동맹군들에게 이전된다. 서구의 공군력과 지역에 존재하는 지상군(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군, 코소보해방군, 북부동맹/연합전선) 사이의 상호의존성이 점증함에 따라 서방 국가는 전투 희생자의 상당 부분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 (이러한 기미는 걸프전 당시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쿠웨이트와 사우디 군이 이런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내 반정부 집단인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미국에 의해, 그 전쟁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버려지고 말았다.) 3. 소규모의 '우연적인' 민간인 학살 소규모 민간인 학살의 반복적인 위험은 서방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암묵적인 특징이다. 소규모 학살은 그것들이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우연적'이다. 그러나 이는 전쟁에 대한 위험 분석 과정에서 동시에 계획된 것이다. 각각의 서방의 전쟁들은, 가장 일반적으로는 '한 움큼의 사람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한번에 50-100명의 민간인이 희생자가 속출하는 가장 큰 단일 사건은 1991년 바그다드에 위치한 아미리아 수용소에 폭격이 가해진 것이었는데, 여기서 400여명이 사망했다 수많은 대량학살로 기록되어 왔다. 서구의 군사계획입안자들은 대량살상의 위험을 인지하고 깨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방 조종사에 제공된 무기는 대량학살이라는 결론을 완벽히 예상가능케 한다. 고공 폭격에 대한 믿음은 공군의 안전을 보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각각의 군사행동마다 수백 수천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목표조준의 실수'를 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직접적인 사망의 위험이 민간인에게 전가되는 것은 계획적일뿐더러 체계적이다. 4. 미디어 운용 어떤 규모든 간에 직접적인 민간인 살상은 [미디어로] 중개된 전쟁의 합법성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 운용은 위험-전가 군사주의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중재와 감독은 총력전 이후 이렇게 정비된 [전쟁] 양식에서 본질적인 것이 되었으나, 그것들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서방 정부들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TV 화면에 직접적인 피해 상황이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걸프전 당시 아미리아 폭격이나 세르비아 열차 폭격 그리고 코소보에서 난민 호송함에 가해진 폭격과 같은 어마어마한 대량학살은 합법성을 위협하고 그것들의 효과를 경감시킬 정도로 강한 '혼란'에 빠트리기 쉽다. 이런 이유로, 서방 정부들은 위협적일 정도로 많은 수의 직접적 희생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 하원 의장 로빈 쿡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시작할 때, 민간인 사망자가 9·11 사망자 총수보다 더 적어야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코네타에 따르면, 현재 직접적인 민간인 사망자 수는, 비록 총 사망자수가 더 많을지라도, 서방 정치인들이 지지할만한 총계의 절반 이하로 추정되고 있다. 5. 간접적인 민간인 사상자 이는 당연히 간접적이고 덜 가시적인 사상자가 직접적인 희생자에 비해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경감하기 위해 중대한 노력을 더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여타 가능한 사망원인 적의 정책, 내전, 기근 등 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책임을 강요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서방은 그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코네타와 같은 전문가가 미국의 행위에 의해 초래된 사망자의 비율에 대해 왜곡된 가정을 함으로써 [사망자] 숫자를 간접적인 폭격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서방 정치인들로서는 간접적인 사망이 야기하는 정치적 위험이 더 적을 것이라는 것을 지시한다. 물론 걸프전 이후 쿠르드 난민의 위험이 매우 높아지자, 서구의 지도자들은 간접적인 희생자조차 나쁜 결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 결과 토니 블레어는 시작부터 '인도적' 차원이라는 말을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삽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서방 전략가들이 인간의 위험과 정치적 위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자각한다면 간접적인 피해를 감소시키기 위한 실제적 노력만큼 정치적 책임감을 많이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유엔 제재와 이라크 정권 정책의 결합을 통해, 장기간에 걸친 이라크 민중의 비참함(immiseration)에 대해 서구가 반응한 노력의 결과였다. Ⅲ. '정당한 전쟁' 이론과 위험-전가 군사주의 이러한 새로운 전쟁 방식의 합법성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해 온 원칙적-도덕적 방법들은 정당한 전쟁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면, 주지하다시피, 목적과 수단이 모두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결코 내 어린 시절부터 미국이 참여해 온 어떤 총쏘는-전쟁(a shooting war)도 지지한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 급진적 국제주의 학자인 리차드 포크(Richard Falk)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종말론적인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진정한 정당한 전쟁의 자격이 있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과 제한적 목표에 대한 합법성은 부적절한 수단과 과도한 목표의 불법성으로 인해 부정될 위험이 있다. 2차 세계대전과 이전의 정당한 전쟁들과는 달리, 이번 전쟁은 오로지 전쟁을 사용하기 위한 수단들에 대한 법적, 도덕적 제약을 지키고 제한적 목적에 충실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의 목적의 정당성(justice)은 이 글의 실제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필수적인 한, 포크가 전쟁을 변호하는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가지고 있는 극단적 정치적 전망은 "종말론적 테러리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는 몇 가지 이유에서 잠재적 화해 혹은 타협의 틀거리 외곽에서 이러한 지속적인 위협을 제기한다: 그것의 대량 학살 의도는 미국과 유대인에 반대하여 인종적으로(generically) 기울게 된다; 그것이 선언한 [정치적] 목적(goal)은 민간인과 군사적 표적(target)을 구분하지 않고, 무제한적인 문명의 전쟁(civilizational war)―서구에 대항하는 이슬람―으로 벌어진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강력하고 충격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고, 그럴 의도가 있다는 점을 과시해 왔고 자신의 지지자들의 자살도 감수하는 헌신에 의지하여 자신의 파괴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술적 정교함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해왔다.' 내가 보기에 이 주장은 대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전쟁이 필요하다는 포크의 결론은 덜 확정적이다. 그는 수단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9·11 공격의 가해자들은 비폭력적 혹은 외교적 수단을 통해서 확실히 무력화 될 수는 없다; 군사적 행동을 포함하는 대응이 반복되는 위협을 줄이고, 징벌을 가하며, 국내외의 안보감(a sense of security)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가해자들이 비(非)-군사적 수단에 의해서 '확실히 무력화될 수 없다'는 점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 그들을 확실히 무력화할 수 있다거나 혹은 그래 왔다는 주장 역시 확실하지 않다. 군사적 행동은 '안보 감을 회복'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안전을 보장할 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징벌을 하는 것'이 군사적 행동의 정당한 이유인가는 분명치 않다; 더구나 이것은 명백히 사법(司法)적 기능이다. 실제로, 문민적인 법적·행정적 기능들을 군사화하는 것의 위험은 '죄수처리'와 같은 사안에 대한 관심의 근거로서 널리 인식되어 왔다. 포크 스스로는 '불가피한 군사적 요소를 비군사적인 차원의 대응에 종속시키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이 결국 패배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쟁 그 자체는 수단, 즉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표현대로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다'. 9·11의 테러리스트를 무력화시키는 '확실한' 수단이 없었다 하더라도, 전쟁은 가능한 수단들 중에서 당연히 하나의 불확정적인 선택이었다. 뉴욕과 워싱턴의 대량학살 이후 어떤 미국 대통령이라도 전쟁을 선택하지 않으리라 상상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법을 초과하여 즉각적으로 전쟁을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빈 라덴 '현상수배: 사살 혹은 생포'와 같은 그의 거친 서부시대적 수사(修辭)는 사법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는 것과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선택을 한 종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접했을 때, 다른 서구 정부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러시아, 중국, 혹은 인도가 그렇게 했을 지는 모르지만. 그러므로, 미국의 대응에 전통적이고 국제적으로 합법화될 수 있는 강력한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전쟁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가 주장했듯이, 국가가 아니라 테러리스트 조직이 끔찍한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이 명백하다 할지라도, 본래의 공격의 특성을 살펴보면, 정치적, 법적 대응이 타당한 대안이었다. 예를 들어, 1995년 스레브레니카(Srebrenica) 대량학살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학살 가해자들은 '前유고슬라비아를 위한 국제형사법정(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Former Yugoslavia)'에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 경우가 전쟁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과 전쟁의 과정에서 채택된 수단들을 정당화하는 것 사이의 연계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포크가 언급했듯이, '그러나 전쟁의 원인과 제한적 목표에 대한 정당성은 부적절한 수단과 과도한 목표의 불법성으로 인해 부정될 위험이 있다'. 우리가 전쟁의 대안이 있다고 여긴다면, 수단의 정당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위험-전가 군사주의를 정당한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해보자.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가 지적한 대로, 적군의 괴멸이 합법화되는 것은 자명하다: '나폴레옹이 언젠가 말한 것처럼 "군인들은 언젠가 죽게 되어 있다. 이것이 전쟁이 지옥인 이유이다."' 초점을 보다 예리하게 맞춘다면 새로운 전쟁 방식 역시 적군을 죽인다는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살상이 적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면, 그것의 적법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행사되는 폭력은 단지 자기편의 목표에 비례할 뿐 아니라, 최초에 가해진 공격의 참혹함에 비례하기도 한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마도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사들에 대한 집중폭격은 이러한 계산서에 적합했을 것이다. 그리고 '데이지-커터' 폭탄과 같은 가공할만한 무기의 사용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폭격이 작동해서' 이러한 적들을 패배시켰다면, 이는 단지 그들을 학살함으로써 그렇게 했을 뿐이다. 이런 희생자들에 대해 고려하는 것은 정당하다. 참호 속에 학살자들이 숨어 있는 동안, 우리는 군인들의 생명에 보다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을 배워 왔다. 한편에서 자국 군인들의 위험을 거의 '0'으로 만들면서, 운 나쁜 군인들을 대공업적으로 살해(industrial killing)하는 것은 도덕적인가? 걸프전의 말미에 징병된 이라크인들을 사막에서 (말 그대로)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장면은 이런 주제의 표상이다. 확실히 우리가 이러한 수단의 불평등에 대해 심사숙고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민간항공기를 이용하여 무기력한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 자신의 살인이 거의 일방적인 것이라면, 탈레반 군사들이 총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알카에다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이에 비해 좀더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적군을 취급하는 것을 둘러싸고 위기-전가 전쟁이 정당한 전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민간인에 대한 고려라는 주제가 [정당한 전쟁의] 전통에 있어서 핵심에 놓여 있다. 왈저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한다. '우리가 [전쟁이] 지옥이라는 관점을 가진다해도, 우리는 여전히 [군인 이외에는]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구별은 전쟁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왈저는 전투원의 범위를, 물론 그들이 실제로 무기를 만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민간인인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확장하는 것을 찬성한다. 그는 또한 '타당한 구별은…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구별은 진보적으로 보자면 세밀하지 못하게 이루어져왔음이 분명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전략입안자들은 독일과 일본의 도시를 폭격하여 무차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민간인을 살상할 때까지 진군했다. 이러한 진군의 종착점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의 투하였으며, [전투원과 민간인의] 구별선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후 4반세기 동안, 핵무기와 핵전략의 발전이 모든 국가들의 '상호' 대량학살에 다다를 정도의 수준에 달했다. 이러한 가공할만한 전쟁의 타락은 지구의 모든 생명은 아닐지라도 인류 사회의 완전한 절멸을 가져 올 수도 있었다. 이런 발전에 있어서, 가장 발전되고 문명화된 국가에 의해 전쟁이 수행되고 준비되었으며, 이는 전쟁과 무차별한 학살 사이의 구별이 무효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의 타락과 의도된 집단학살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많은 측면에서 유사했다. 이러한 타락을 우연적인 지나침이라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20세기의 모든 세 가지 주요한 분쟁(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 과정에서 모든 측면에서 행해진 것이며, 뿌리깊은 역사적 경향의 산물이었다. 기술과 사회적 조직을 동반한 현대 산업 자본주의는 전쟁을 실행함에 있어 대량학살의 동력을 불어넣었다. 국가의 군대는 경제적 힘과 사회적 동원에 의존해야 했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적대 국가의 경제와 사회는 또한 '적'이 되었고, 기술은 폭탄과 미사일 등 대규모 공격 수단을 제공했다. 언제나 국가에 대한 전쟁의 연장(延長)으로서 민간인에 대한 전쟁(나는 이것을 '타락한 전쟁'이라 부른다)과 그 자체로서의 민간인에 대한 전쟁(예를 들면, 집단학살) 사이의 차이는 존재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집단학살은 보통 타락한 전쟁의 맥락으로 대체되었다. 범주상으로는 구별되었지만, 두 현상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절멸주의적'인 동력을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전쟁의 구조적 변형의 맥락에서, 정당한 전쟁을 초현실적인 도덕적 조건 속에서 사고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략'의 개선을 추구하기란 어려웠다. 전쟁이 언제나, 대규모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제안되었던 도덕적·법적 경계를 뛰어 넘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계 자체가 의문시되는 것은 당연했다. 군사적 행위가 일반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을 대량학살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고, 그렇기에 전쟁 그 자체가 문제시되었다. 몇몇은 특히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 병력의 형태로 복귀하는 것 사이에서 선을 그으려 노력했고, 이에 따라 '핵 평화주의'를 받아 들였다. 나는 이러한 시도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타락의 경향은 무기체계의 특정한 타입만이 아니라 현대전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내가 '역사적 평화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적절한 대응이었는데, 이는 전쟁은 타락하는 역사적 경향이 있으므로 정책적으로 불법화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나는 주요 국가들간의 전쟁이 자멸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혁명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군사력이 과잉되는 경향이 이와 평행하여 존재함을 지적했다. 후자는 '군사화 된 혁명'이 난관에 처한 경우에 출현하는데, 중국이나 또 다른 곳에서 그랬듯이, 국가 간 전쟁만큼이나 기형적이고 집단학살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아 왔다. 서방 국가와 관련된 위협적이고 역사적인 전쟁의 과잉은 베트남 전쟁 이후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미국의 세계권력의 쇠퇴가 나타나게 된 것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정부와 군대가 제도적 군사력을 개량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정책적 수단으로 계속해서 여겨왔기 때문에, 도덕 철학자들은 그것의 적절한 의미를 둘러싼 논쟁을 재정의하도록 내몰렸다. 이에 따라 베트남전쟁 이후 정당한 전쟁들에 대한 왈저의 고전적인 텍스트는, 오늘날 새로운 전쟁에 대한 논쟁의 토대를 제공한다. 왈저는 '이중 효과'의 원칙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것과 같은, '사악한 결과를 가져올 행동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하나의 방식을 제공한다고 언급했다. '선한 행위는 악효과를 상쇄할 정도로 충분하게 선해야 한다; 그것은 비례법칙 아래서 합법화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조건이다. 설령 미국이 이에 사과했고 여전히 사과를 계속 한다고 해도 히로시마에 대한 원자 폭탄의 투하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그리고 이라크에서의 민간인의 '우연적'인 살상에 관해서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데, 직접적인 살상자의 숫자가 매우 적어 상상 가능한 악효과를 넘어선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왈저는 이런 사례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이론적 설명을 완성했다. 그는 '이중적 효과는 단지 그것이 이중적 의향의 결과물일 경우에만 옹호될 수 있다: 첫째,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하며; 둘째, 예견 가능한 악한 효과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자는 정확히 서방측이 현재 자신의 모든 군사행동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보다 정밀한' 폭격 이전의 시대에 비해 훨씬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왈저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문제가 있다. '단지 고의로 민간인을 살상하지 않는 것은 너무 쉽다. (…) 우리가 그런 사례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은,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행위를 했냐는 어떤 징표다. 민간인은 더 많은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군인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런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인정된다.' 위험-전가 전쟁에서는, 이것은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반드시 회피하려고 하는 바로 그것이다. 폭격이 군사적, 혹은 비군사적 수단 등 다른 가능한 수단과 비교해서 민간인에 대한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폭격은 이루어진다. 고공에서의 파괴행위는 태생적으로 무차별적인 특성을 지닌다; 적어도 지상에서의 군사행동의 몇몇 형태들은, 특히 무장한 치안유지군의 전선이 그러한데, 보다 분별력이 있으며 상당한 정도로 민간인 희생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놀랍게도, 왈저는 이런 상황에서 서방 전략가들을 위한 방도를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위험에 제한은 있다. 결국 의도하지 않은 죽음과 적법한 군사행위가 있으며,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을 반대하는 절대적인 법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것은 [전쟁의] 지옥 같은 측면의 또 다른 측면이다. 우리는 군인들에게 단지 그들이 가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며 그는 주장한다; '민간인은 "적절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서방 군인들 대다수가 그들 자신의 목숨이 위협을 받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전쟁 상황에서는 이러한 회피 조항은 매우 졸속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예처럼 전쟁 상황에서 이러한 조항이 유지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위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명의 미국군이 적에 의해 사망한 반면, 천 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이 (예상컨대) 미군의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 민간인은 미국 군인에 비해 훨씬 적게 배려되었을 뿐 아니라, 미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민간인에 대한 배려는 침식되었다. 민간인이 처한 위험은 실제로 가능한 한 정도로 감소되지 않았고, 단지 세계적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방송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도의 수준에서 위험이 감소되었을 뿐이다. 민간인의 위험은, 왈저가 상상했던 것처럼, 군인의 위험이 아니라,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방송되는 것으로 인한 정치적 위험에 비례했다. 이에 따라 우리가 군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위험의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걸프 전쟁에서 서방 군대는 이러한 한계의 근처도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의 목표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방식은 충분히 정당하지 못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내가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 왈저의 사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내 주장이 왈저의 정당한 전쟁 전통의 확장을 입증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은 포크가 취한 노선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정당한 전쟁"이라는 교리는 가장 유연하고 적절한 규범틀을 제공한다. 이것은 모든 위대한 세계적 종교의 윤리에 근거를 두고 있고, 군사력의 사용을 결정하는 현대 국제법에 중요한 근거를 두고 있으며, 전쟁의 원인과 수단, 종결에 대해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도 그럴듯하게 주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전투병에 치명적인 위험이 가해지는 전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으며, 그런 위험은 대개 상당수 무고한 민간인들에 가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쟁은 그들이 '이중 효과'와 '비례성'과 같은 사고를 모순적인 지점으로까지 확장하는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이는 더 이상 전쟁의 합법성을 평가하는 가장 적절한 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Ⅳ. 전쟁의 타락과 역사적 평화주의의 사례 나는 포크와 같은 정당한 전쟁 전통에 대한 일관된 옹호자가 이러한 '부조리에 빠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복권하려고 애쓸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핵심을 놓칠 우려가 있다. 서방은 민간인보다는 적의 병사를 직접 죽이는 방식으로 무력을 행사한다; 서방은 실수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적으로 민간인을 조준하지 않는다; 서방의 목표는 '부차적인 피해'와 '우연한' 대량학살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여전히 민간인들이 살해되지만, 역사적으로, 특히 20세기 중반 동안에는 사상자 수가 매우 적었다. 따라서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은, 우리가 다소간의 지나침에 대해 문제삼을지라도, 언뜻 보기에 정당한 전쟁에 대한 역사적 요구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내 논증이 받아들여졌다면, 여기에는 여전히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는 셈이다. 한 명의 미국인에 비해 1000명이 넘는 무고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살해된 것 사이의 불균형은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만일 제안된 정당화(justification)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가 상이한 기준들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는 이 논문의 다른 부분에서 이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들은 어디에서 연유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가 등을 탐구하고자 한다. 대안적 기준들 중에서 분명한 하나의 원천은 인권에 대한 정치적 윤리다. 전쟁은 사회 생활에서 어디서나 적용되는 규범으로부터 도출된 서구의 사고 방식 안에서 오랫동안 비호 받아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이전의 전쟁에게는 면제되었던 기준들을 전쟁에 적용시키려는 중이다. '너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라는 경구는 조금씩 조금씩 예외가 허용되면서 일반적인 규범으로서 강화되어 왔다; 심지어 많은 서방 국가들은 사형제도를 강제하는 것으로 경도된다. 그리고 전쟁은 아직도 거대한 예외로 남아있다. 지금 그 예외가 도전받고 있다고, 살인을 규제하는 강력한 규범이 적법하고 조직된 살인 그 자체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를 시사할만한 몇 가지 증거가 확실히 존재한다. 서방 군인들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는 역사적 변화 그 자체 내에 존재한다: 그것은 베트남에서 미국 여군(GIs)의 죽음에 대한 대중들의 항의를 반영한 것이며, 군인들의 권리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여 '총알받이(cannon fodder)'라는 사고를 반성한 것이다. 군사 사회학이 보여 준대로, (직업적) 병역은 현재 '직업' 이상으로 생각된다; 확실히, 한편에서는 상이한 위험을 수반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위험을 경감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이는 영웅적 전사의 통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일이 잘못 돌아가게 되면, 장교들과 정부는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걸프전 동안, 9명의 영국군이 미군 전투기의 오폭에 의해 전사했다: 이 전쟁 기간 동안 단일 사고로는 영국군의 가장 큰 인명 손실이었다. 그 군인의 가족들은 회피할 수도 있었던 그들 아들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영국 국방부를 찾아가서 미국 조종사를 증인으로 출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공적인 논쟁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그 이전의 전쟁들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다만 대규모의 인명 손실이 매우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의 죽음에 대해 이와 유사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사망자 수가 작은 수치로 경감된다면, 부분적으로는 희생자의 [발생으로 야기되는] 정치적 효과에 대해 우려한 결과, 개인의 생명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의 시대에, 이러한 개인에 대한 관심은 원칙적으로는 개별 시민들에게까지 확장되며, 아마도 적의 병사들까지 적용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불법적인 살인에 대한 관심은 현대 전쟁의 합법성에까지 확대되어 왔다: 코소보에서처럼 인권유린을 중단하도록 그것들이 실제로 선포되지 않은 곳에서, 또 911 이후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살인범을 처벌하기 위해 그것들이 고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전쟁들을 따라 법적 소송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前유고슬라비아를 위한 국제형사법정(ICTY)'의 활동은 코소보 전쟁 기간동안 단계적으로 증가하였고, 최소한 알 카에다 포로 몇몇은 범죄 소송에 회부될 것이다(그리고 관타나모 만의 죄수들을 법정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한 미국의 시도는 명백한 모순과 곤란에 처하게 되었다). 놀랄만한 일도 아닌 것이, ICTY는 세르비아와 코소보에서 발생한 '우연적인' 민간인 대량학살에 대해 나토 자체가 소송에 회부되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ICTY 위원회 보고서는 그 전쟁에서 나토가 저지른 행위를 정식으로 조사할 어떠한 기초도 없다는 사례를 남겼다. 전쟁에 관한 현재의 법조항에 따르면, 그것이 올바른 결과든 아니든 여기서 내 관심사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나토가 민간인 희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의를 추구했던 것은 모든 개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개념과 같은 법적 규범이 아니었다: 중국 대사관에서 세 명이 죽었고, 세르비아 방송국에서 열 여섯명이 죽었고, 철도 교량이 폭파되었을 때 70명이 죽었다. 그리고 등등. 희생자 수로 말하자면 교통 사고와 같은 작은 사고들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국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책임을 추궁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할 수도 있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ainal Court)의 설립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쟁에 대한 법안들은 형사 재판소에서 이런 방식으로 적용된 경우가 없었다. 일반적 경향으로부터 법적 제재를 강화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자각을 향상시키고, 광범한 소송으로 흐름을 몰아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미국 사회로부터 상당한 추동력을 이끌어내는 경향을 띤다. 그러나 범죄화(criminalization)는 다른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규범으로부터 실제로도 법률상으로도 더 이상 배제되지 않는 여타의 인간 활동처럼 전쟁을 취급해야 한다. 전쟁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살인하지 말지어다'라는 경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확실히 전쟁을 실행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전쟁 수단이 일반적으로 가는 참빗(toothcomb)에서 엄선되었다면 법정에서, 신문사에서 그리고 정말로 대학에서, 전쟁의 합법성은 일반적으로 철저히 침식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전쟁의 탈-합법화에 문호가 전면적으로 개방되었다는 결론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서방 정부들이 '테러와의 전쟁' 개시 국면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미디어와 공공 여론을 성공적으로 동원한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서구의 '새로운 전쟁' 방식은 조만간 새롭게 전쟁을 합법화하는 것에 도전하게 될, '새로운 비판'에 취약해지기 쉽다. 위험의 전가에 실패한다면 도리어 서방이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공군력이 적군을 괴멸시키기에 불충분하다면, 지역 동맹군이 지상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또는 그들이 너무 많은 잔혹 행위를 저지른다면 , 또는 변덕스러운 미디어가 그들의 주인-될 이들로부터 달아난다면, 새로운 방식의 전쟁의 위험은 서구로 되돌아올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에 전쟁은 대량 민간인 희생을 양산하는 대규모의 '[핵을 사용하지 않는] 재래식' 전쟁 및 핵전쟁과 동시에 베트남전과 같은 '제한된' 전쟁 경향에 의해 근본적으로 절충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0년대 이후, 서방 정부들과 군대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낸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켜왔다. 내가 본 논문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이에 따라 이러한 새로운 양식이 전쟁을 비판하기 위한 새로운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타락한 전쟁의 유산은 여전히 위험의 불균형으로 정의될 수 있다: 전쟁의 합법성은 심지어 가장 작은 살인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도전받을 수 있다. 역사적 평화주의는, 전쟁의 재창조에 의해 도전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 살인에 대한 검사가 점점 더 엄격해지는 것처럼 재혁신되고 있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