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를 비판한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민주당 박영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이 9월 28일 최종 타결되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크고 하나된 힘으로 이명박-오세훈 체제를 심판한다’는 취지다. 이제 세 후보는 10월 1-2일 서울시민 1천명 여론조사 30%, 후보들 간의 TV 토론을 심사하는 2천명 배심원 평가 30%, 3일 국민참여경선 3만 선거인단 투표 40%를 합산하여 단일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또 10월 2일까지 2차 정책합의와 공동지방정부 수립을 위한 세부방안도 마련하게 된다. 이날 ‘야권단일후보 협약식’ 합의문에는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도 함께 서명했다. 특히 국민참여경선 승리를 위해 각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선거인단을 조직적으로 모집하게 되는데, ‘국민의 명령’이나 민주노총도 여기에 적극 참가한다는 방침을 수립한 상황이다. [%=사진1%] 이로써 한나라당을 제외한 제 정당 및 이와 관련된 시민사회·민중운동은 야권 단일후보를 공동으로 선출·지지하고,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진보신당 노회찬 전 서울시장 후보조차 얼마 전 ‘작년에 후보단일화가 필요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한 마디로 그 누구도 범야권 단일화를 부정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범야권 후보단일화 경과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사퇴한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총선·대선의 전초전으로 인식되었다. 오세훈 시장 사퇴에 연이어 곽노현 교육감 불법선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국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쳤다. 이 와중에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언론은 ‘안철수 신드롬’의 원인을 여야 간 이전투구에 대한 불신과 안철수라는 개인이 지닌 매력에서 찾았다. 그런데 얼마 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박원순 이사는 순식간에 여론의 과반 지지율을 확보했다. ‘양보의 미덕’이 더해지며, 박원순 이사는 현 정부·여당에 비판적이면서도 민주당·국참당과 같은 기성 정당에 독립적인 시민사회의 대표주자로 추대되었다. 박원순 이사가 반한나라당 후보로 확고한 입지를 점하자 민주당은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기 후보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내부 경선 끝에 박영선 후보를 선출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야권 단일화를 전제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무소속이라는 한계로 인해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박원순 후보도 야권 단일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당 내외곽에서 범야권 통합을 주창해온 ‘혁신과 통합’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반한나라당 주도권을 상실한 민주당으로서는 단일화를 통해 야권 통합과 총대선 승리의 추동력을 이어나가고, 정당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비민주당·시민사회 진영으로서는 당선을 통해 새로운 교두보를 구축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동안 국민참여당과의 정당통합과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적극 추진해온 민주노동당 역시 최규엽 후보 선출 이후 야권 단일화에 즉각 합의했다. 단일화 타결 직후 최규엽 후보 측은 ‘지난해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들이 정책연대와 범야권 단일후보에 적극 나서도록 견인해왔던 것처럼 경선과정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야권 단일화와 정당의 위기 이번 야권 단일화를 주도한 이들은 ‘후보 등록일 전에 단일화 방안에 합의함에 따라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고 감동을 주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내년 총대선에서도 선거연합을 통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과 같은 기존 정당이 대중의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정당에 대한 광범한 불신과 이반이 퍼진 상황에서,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정되는 것이 장차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야권연대의 기본틀로 정형화된 후보 단일화는 이념·노선·정강을 초월하여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고안된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때로 ‘감동의 정치’로 표현되기도 하는 후보 단일화 기법은 사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에 이뤄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국민적 지지와 정치적 흥행을 목적으로 도입된 개방형 예비경선 방식의 후보 선출제도는 특히 정당체계의 위기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사회 제도의 해체 속에서 정당의 위기도 심화한다. 정당의 위기는 정당 일체감의 감소, 당원 수의 감소, 전통적 지지층의 축소, 정당에 대한 신뢰 추락, 투표율의 하락으로 그 증후가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들은 미디어 캠페인과 인물 중심 선거 또는 단기 이슈 중심의 선거를 펼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당들은 당원 중심적 대중정당, 또는 이념 지향적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현안과 민심을 좇는 선거 중심적 정당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처럼 이념이나 당원을 근간으로 하는 정당 구조가 안착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명망가 중심의 정당이 복수로 존재하고 선거 시기에 명망가들 간 합의로 선거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현대 인민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다. 이들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성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다.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이사의 급부상은 이러한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재와 같은 정당의 위기 속에서 인민주의는 고유한 이념이나 정책 대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선호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박원순 이사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같은 정치선동가적 이미지보다는 NGO 출신 정책전문가 이미지가 더 강한 듯하다. 이처럼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형성되는 선거 카르텔은 결국 ‘전문가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보완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그에 참여하는 정당도 그러한 경향성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그에 편승하는 사회운동의 전략 역시 더욱 궁지에 처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공동정부 노선의 문제점 일반적인 정당의 위기에 조응하여 민주노동당도 최근 수년간 ‘집권 전략’으로 상징되는 탈이념화의 길을 걸어왔다. 민주노동당은 핵심 지지층의 결집과 동원보다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선 변화를 시도했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서는 당의 조직적 토대를 이루는 노동자·농민·빈민 대중운동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정당 역시 현실의 선거정치에 치중하면서 정치공학이나 여론조작에 유연하게 적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도입한 데에 이어 올해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강도 높게 추진하였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선거에서 독자 출마하여 완주 패배하기보다는 야권 단일화로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일정한 지분을 갖고 공동지방정부에 참여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비민주당 개혁세력이 당선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를 민주당의 주도권을 무력화하고 향후 선거연합의 협상력을 제고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 최규엽 후보 개인도 ‘질 높은 야권 단일화’를 언급하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동정부가 잘 될 경우 내년 대선에서 연립정부도 구성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상태다. 이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실현된 민주노동당의 후보 단일화와 공동정부 노선이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야권 단일화로 당선된 경상남도, 인천시, 강원도, 서울·경기 기초단체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수준의 공동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상남도에서 민주노동당은 강병기 후보가 김두관 후보와 단일화한 대가로 정무부지사를 맡고 있고 공동지방정부 성격으로 구성된 민주도정협의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유연한 선거·정책연합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여타 지역의 경우 아직 공동정부 구성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지역이 많고 구성된다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공약 실행이 좌지우지되어 선거용으로 그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정부 참여와 견제를 통해 실리를 획득했다는 식의 평가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후보 단일화와 이를 대가로 한 공동정부 지분 참여 보장을 실용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동지방정부는 연립정부의 예시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일 연립정부 구성이 현실화된다면 민주노동당과 그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야권 단일화를 주도하는 민주당·국참당이나 그 외곽에 포진한 ‘혁신과 통합’, 또는 이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시민단체 등 전 집권세력은 정권 탈환을 위해 민중운동을 포섭하려고 시도해왔다. 이들은 평상시 독자적인 정당 체계로 존재하던 세력들을 선거 시기에 정치협상을 통해 선거 카르텔을 형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안하는 ‘빅 텐트론’이나 ‘혁신과 통합’이 제안하는 ‘백지신당론’은 그 속에서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쥘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을 자신의 좌익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형식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선거 카르텔이 반복된다는 것은 범야권이라는 큰 우산을 공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의 후보 단일화 참여에 우려를 표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빈민·청년·학생 등 각급 대중조직이 개별적으로 야권 후보들과 정책협약을 맺을 경우 의제가 분산되고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하여 일단 최규엽 후보를 지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서울지역본부는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5만 이상의 조직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을 수립한 상황이다. 후보 단일화 정책 합의문 중 ‘서울시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안정적인 노정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며, 서울시 등에 노동복지센터를 설립하여 고용안정과 노동복지를 실현한다’는 조항이 그 근거다. 서울본부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여타 후보들에 대해 노동정책 협약을 관철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서울본부는 박원순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 속에, 그와 마찬가지로 무소속 후보가 도지사로 당선된 경상남도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인천시가 공동정부 구성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하고 유관기관 노동조합 해고자를 복직시킨 사례도 참고한 듯하다.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방침은 진보정당 간 통합이 무산되고 또 민주노동당 이외의 진보정당에서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야권 단일화 과정에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 주어진 경선 틀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노동당의 야권 단일화를 추인하는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이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수립된 민주노총 정치방침, 즉 ‘야권 단일화 후보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한다’는 정치방침이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방침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일순간 개혁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로 둔갑시킨다. 특히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박원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노총은 지방정부에 대한 개입과 의존도를 훨씬 높일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점점 더 당면한 실리적 쟁점에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잠시, 미국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보자. 미국노총(AFL-CIO)과 민주당의 제휴가 야기한 가장 심원한 효과는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한다는 것, 또는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정당 정치인에 대한 로비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합원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조합원의 일차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 스스로가 협소한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게 만든다. 민주당 의존적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조합의 성격 그 자체를 협소한 이해관계 집단으로 변모시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국민참여경선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민주노총의 결정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시와 유관기관 노동조합의 해고자 원직 복직 문제가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본 원칙을 후퇴시키면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수의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무관하게 각자의 개별적 이해에 따라 지지 정당 및 후보를 선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인 선거 대응으로 정치방침을 국한하는 것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령을 다잡으며 현장을 교육하고 조직하려는 장기적 안목을 갖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는 중장기적으로 정당 통합에 준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또 민주노총서울본부의 후보 단일화 경선 참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애초 취지를 대폭 후퇴시키는 선택이 될 것이다. 민중운동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초심과 원칙을 지키며 운동의 전진을 위한 방안을 다 같이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9월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 부쳐 민주노동당이 25일 임시당대회를 개최하여 국민참여당을 포함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안을 심의, 의결한다. 지난 9월 4일 진보신당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조직진로에 대한 최종 승인의 건’이 부결됨에 따라, 대신 5월 31일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에 동의한 국참당을 통합 대상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참당도 민주노동당 당대회가 열리는 25일부터 10월 1일까지 ‘민주노동당과의 신설합당’ 여부를 묻는 당원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와 국참당 당원총투표에서 각 안건들이 의결된다면 양당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11월 노동자대회 이전에 건설될 전망이다. [%=사진1%] 민주노동당의 국참당 끌어들이기 그동안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지난 7월 10일 국참당이 5.31 연석회의 최종합의문과 부속합의서에 동의한다는 결정을 내린 직후 민주노동당은 국참당을 진보대통합의 대상으로 공식 승인하였다. 이때 ‘국참당과의 통합은 진보신당과의 통합 문제가 일단락된 후 최종 결정한다’고 유보하였지만, 민주노동당은 ‘국참당의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참여 문제는 당원 및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한다’는 미명 하에 당내외에서 통합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펼쳤다. 일례로 7월 중순경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선 사업계획> 초초안을 발표했는데, 이 문건은 내년 총선 목표를 ‘원내교섭단체 실현’으로 설정하면서 “정당 지지율 10-15% 가량 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9월 안에 건설할 수 있다면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야권연대’를 강력하게 견인하여 ‘원내교섭단체 구성’ 및 ‘진보적 정권교체’의 강력한 거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즉, 올해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내년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노골적인 선거공학적 발상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는 7월 말 ‘진보대통합 관련 민주노동당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민주노동당 당원의 72%가 국참당과의 통합에 대해 찬성하고 2012년 총대선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 국참당, 진보신당 등이 통합하여 진보대통합 정당이 생길 경우 민주당을 앞지를 수 있다’는 여론기관 설문조사 결과를 통합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금속노조 조합원 여론조사 보고서>에서 ‘국참당 등과의 통합에 대해 57.2%가 찬성한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의도가 순탄하게 관철된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민주노총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는 6월 13일과 8월 17일에 각각 “진보정당의 통합을 앞둔 엄중한 시기에 국참당과 관련된 논란은 부적절한 것임을 확인한다”, “국참당과 관련된 논의는 진보양당의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참가단체 중 하나인 진보교수연구자모임도 국참당 합류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8월 하순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당 협상이 국참당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빈민 3단체도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무엇보다 지난 8월 28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국참당을 포함하여 통합 진보정당 건설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수임기관에 위임’하자는 집행부 원안이 부결되고 대신 ‘진보신당과 합의하였을 시’라는 단서 조항을 둔 수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당내에서도 당권파의 전횡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자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재빨리 국참당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6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수임기관전체회의에서는 진보신당(통합파)과 국민참여당 중 누가 우선적인 통합 고려 대상인가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에 격론이 일었다. 하지만 결국 두 안이 애매하게 절충, ‘9월 중 당대회를 개최하여 국참당이 통합 대상인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결정됐다. 다만 당대회 개최 강행에 대한 반론을 의식하여, 이정희 대표, 장원섭 사무총장,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 안동섭 경기도당위원장, 정성희 최고위원의 대표 발의와 대의원 3분의 1 이상(55.64%)의 동의로 당대회 개최를 공지한 상태다. 이에 따라 9월 25일 개최되는 민주노동당 임시대의원대회는 재석 대의원 2/3 이상의 동의로 본안을 의결하게 된다. 국참당 통합의 진정한 쟁점은 수권정당론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수권정당화를 위해서 국참당과 같은 개혁세력이 진보적으로 노선 전환한 경우 진보세력의 일부로 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얼마 전까지 차기 대선 범야권 후보 중 수위를 달리던 유시민 대표 개인의 명망성을 흡수하는 동시에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총선에서 민주당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규모를 만들어 최대한 의석을 확보한 뒤, 대선에서 득표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 민주당과 제휴, 연립정부를 수립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권파는 유시민 대표 외에는 당조직이 취약한 국참당을 민주노동당이 지닌 조직력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권파는 진보신당과의 양당 통합 형식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국참당 그리고 진보신당 일부가 참여하는 통합정당 건설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비당권파는 어떤 입장인가? 비당권파라고 할 때, 이들은 국참당에 비해 진보신당을 우선적 통합 대상으로 고려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국참당과의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단일한 세력으로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이번 진보신당 당대회 이후 진보신당과의 선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단적으로 그동안 국참당과의 통합에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울산지역 대의원들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주요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김성진 최고위원(전 인천시당위원장)도 ‘진보신당과 국참당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번 당대회를 비판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서 국참당 문제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 세력은 당내 좌파를 제외하면 권영길, 강기갑 의원 등이다. 이들은 국참당이 연대의 대상일지언정 조직통합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당내 여론 분포나 권력 지형을 감안할 때 이번 당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 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국참당과의 통합이나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방침은 특정 정파의 아집이라기보다는 최근 수년간 민주노동당이 추구해온 수권정당 노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주류화와 우경화 2009년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2017년 집권을 위하여 - 집권전략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2008년 분당 이후 당권을 장악한 범 민족해방(NL) 계열의 문제의식을 집약하는 이 문건은, 한편으로 NL 계열이 구래의 ‘자주적 민주정부론’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켜 ‘집권’으로 상징되는 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분당 이전부터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2012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수권정당’으로 설정했다. 2007년 대선 패배가 분당으로 귀결된 것도 실은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파괴적으로 드러난 결과, 다시 말해 수권정당 노선에 내재한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동당의 주류화 전략은 양당 구도에서 질식될 수밖에 없는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참당이나 민주당 등과의 계급연합을 적극 추진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한층 우경화된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은 반신자유주의 세력-반제민족주의 세력-민주평화통일 세력의 진보대연합으로 ‘진보적 발전노선’과 ‘사회복지대혁명’을 통해 ‘민중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10년 초 발표된 <민주노동당 창당 10년 평가와 과제>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여기에서 민주노동당의 당면 과제는 △신자유주의 반대, 민족자주, 6·15정신에 입각한 평화통일 실현을 목표로 하는 통일전선에 봉사하면서 △민중운동·녹색운동·시민운동을 아우르는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고 △적극적 선거연합을 성사시키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노선 전환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강령 개정에서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약진할 수 있었던 배경을 민주당과의 ‘반MB 선거연합’에서 찾았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면서 진보신당과는 선거연합을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진보신당과의 선거연합은 진보대통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전략적으로 무의미하고, 또한 당선가능성이 없다면 전술적으로도 무의미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로부터 민주노동당은 ‘제3당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대안권력으로 성장하려면 진보양당을 포함하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까지 포괄하는 진보대통합당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도출한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단순한 선거연합을 넘어 공동정부 구상을 현실화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어서 2011년에는 강령을 전면 개정하여 당의 이념적 지향을 기존의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하였다. 이것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포석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국참당과 야권통합론의 노림수 그렇다면 반대로, 국참당이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라는 정강정책 전문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국참당은 이념·노선적으로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이다. 국참당은 민주당을 지역독점 및 권위주의 정치행태에 찌든 ‘폐쇄적 엘리트정당’로 규정하고 진성당원제와 전국정당화, 지역주의 극복을 표방한다. 그런데 국참당 정강정책은 ‘사회통합을 위해 정당 및 정치세력 간 연합을 옹호하고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을 위해 정치연합을 선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유시민 대표가 지난 3월 당대표로 선출된 자리에서 “다른 정당과 어울리고 뒤섞이는 일에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이를 ‘통합의 정치’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화두라고 일컫는다. 국참당이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독자적인 이념·노선과 조직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야권 통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참당 당 조직세가 취약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친노의 적통’을 자처하며 창당한 국참당은 사실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규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유시민 대표를 제외하고 대중적 명망성을 갖춘 인사들도 없을 뿐더러 국회의원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민주당을 상대로 하는 야권 단일화에 승부수를 던졌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의 취약한 조직세를 보충하기 위해 ‘진보적 민주주의’로 이념적 지향을 대폭 우경화한 민주노동당과 통합함으로써 범야권 내에서 민주당의 대항마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했다. 이는 수권정당화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이해에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국참당은 경남 김해에서 자신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당선될 경우 원내에 최초로 진출함과 동시에 ‘친노 영남벨트’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들이 민주당과의 정치협상에서 막판까지 ‘100%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를 주장, 관철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참당이 ‘당원중심의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선거전문가 정당’ 또는 ‘명망가 정당’에 가까우며,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통합의 정치’가 실제로는 야권의 합종연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최근 문재인 이사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두관 경남지사,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등 전 집권세력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혁신과 통합’이 민주당 내외곽에서 야권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외곽(‘제3지대’)에서 백지신당을 만든 뒤 여기에 기존 정당 및 정당권 안팎의 정치인이 합류하여 신설합당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정파의 정체성 보장제도(정파등록제)를 통해 진보정당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에 대한 광범위한 민심이반을 흡수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도 야권통합을 통해 정권교체의 새로운 동력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중운동에게 파괴적 효과를 불러올 것 이렇듯 현재 민주당·국참당 및 그 외곽에 산재한 전 집권세력은 다가올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반한나라당 야권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민중운동의 일부를 적극 포섭하려 하고 있다. 이념·노선·정파를 초월하여 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면 민생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행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보수-중도개혁-진보 3정립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주체적 환상에 불과하다. 이는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현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에게 지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선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이 최소한 견지하고 있던 운동정당으로서의 성격을 급격히 약화시킬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참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수권정당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여 일상 활동의 무게중심을 선거와 원내 정치로 대거 이동할 것이다. 특히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 및 연립정부 노선을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로(自勞, lib-lab)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의 다수를 점하는 한 정파는 숫제 ‘집권을 위한 노동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민주노총 중앙위에서 통과된 사업계획은 2012년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를 명시하였고 이는 다가올 노동자대회에서 공식 제안될 예정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민주노동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민주노동당과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정을 감안할 때, 국참당과의 통합은 단순한 득표율 및 원내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실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 자신은 물론 민주노동당으로 표상되는 민중운동 주류의 대대적인 노선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는 또한 자유주의 세력과 이념적·조직적으로 분별 정립하려던 진보정당 및 정치세력화 운동이 쇠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진보정당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악순환은 사실 1990년대 이후 일체의 진보정당 운동이 처했던 공통적 경향이었다. 정당의 대중적 토대의 취약성은 당의 우경화를 낳지만, 그러한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의 패배는 자명한 사실이 된다. 선거 패배는 당 역량의 한계로 환원되어 정당 통합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대중운동의 진출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안은 결코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그 결과 ‘진보정당’은 조직적 혹은 개인적으로 기존 정당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침 속에서 정작 정당의 대중적 기초를 형성하려는 공세적 계획은 체계적으로 누락되곤 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참여당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존재하던 여타 진보정당과 다른 점은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 대중조직의 조직적 결의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은 대중조직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대중운동의 우경화를 동반할 우려가 크다. 전농은 국참당 유시민 대표의 ‘한미 FTA 사과’ 발언 당시 그 해석을 둘러싸고 이미 한 차례 논란을 겪은 바 있다. 8월까지 산별대표자회의 결정을 통해 진보정당 간 통합에 좀 더 무게를 실었던 민주노총도 애매한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9월 8일 열린 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5·31 최종합의문>과 <8·27 새통추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문>이 여전히 유효하며 진보대통합운동은 중단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 대표자가 민주노동당이 국참당 문제를 9월 당대회에 상정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것은 진보신당 당대회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참당 논란 유감’ 입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당초 19일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정치방침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회의를 당대회 불과 이틀 전인 23일로 연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집행부가 배타적 지지 관계를 맺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대회에 앞서 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것도 원안과 배치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 주류 세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역행하는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나 노동법 개정 등 핵심 이슈에서 민주당보다도 더 완강하게 참여정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국참당을 정당 통합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민주노총 중집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입장을 일정 부분 후퇴시키거나 분명한 결정을 유보하고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이 통과될 경우,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가 되어 민주노총에 돌아올 것이다. 산별대표자회의와 같은 공식 체계는 물론 수많은 활동가들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중집이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향후에 민주노총은 대단히 심각한 내홍을 겪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계급연합을 상징하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민주노총이 수수방관한다면 이는 자신의 정치적·조직적 기초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민주노총 중집은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 통합을 결정한다면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분명한 의사 표명은 향후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방어하고 조직 내 분란을 방지하는 중요한 조치가 될 것이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진보정당 운동에 비판적인 민주노총 활동가들에게도 호소한다. 민주노동당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더라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하자.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국참당과의 통합 이후에는 정치세력화 본연의 문제의식조차 대거 유실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계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노총이 자유주의 정당과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급진성을 상실하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만에 하나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변경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
2011년 9월 15일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2011년 2월 10일 서울출입국관리소장이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해서 내린 ‘근무처변경허가 취소처분’, ‘체류기간연장허가 취소처분’, ‘출국명령처분’ 및 2011년 3월 17일에 내린 ‘체류기간 연장불허’, ‘출국통보처분’을 모두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는 이주노조를 비롯한 이주노동자운동진영이 그동안 주장하고 호소해 온 정당한 내용이 반영된 판결로 받아들인다. 굳건히 투쟁해 온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과 이주노조 조합원들, 함께해 온 모든 이주운동 단체들과 같이 이 판결을 환영하며 함께 애쓴 분들에게 감사와 수고의 말씀을 전한다. 2010년 3월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이 취업한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소가 허위취업으로 체류비자를 취소한 것에 대해서 재판부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각 허가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즉 사업장은 실재했다는 것이며, 체류허가 취소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이후 구직기간에 대한 체류허가 연장을 출입국관리소가 불허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재판부는 이주노조 위원장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에 대해서 한국 헌법, 세계인권선언, 인종차별철폐국제협약,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에 비추어 노동자의 기본권이 이주노동자에게도 인정된다고 하였다. 또한 이주노조 전 임원들이 강제추방을 당한 것에 비추어 보면 서울출입국관리소가 내세운 “표면상의 이유와 달리 실제로는... 이주노동조합 조합장으로서의 활동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고도 하였다. 즉 재판부는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의 취업이 허위취업이 아니었고 이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으며,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은 헌법과 국제법에 따라 보장된다고 못박은 것이다. 이제 법무부는 법원 판결에 따라 즉각적으로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의 체류 지위를 원상회복하고 이주노조 탄압을 중단해야 하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당한 이주노조 활동을 옹호하며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실현을 위해 끝까지 함께 싸워 나갈 것이다. 2011년 9월 15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공익변호사그룹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다함께, 대학생사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서울시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사회당, 사회진보연대,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성동광진이주노동자인권지킴이, 아시아의창, 연구공간 수유+너머,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노동자의방송(MWTV), 인권단체연석회의, 인천이주운동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진보신당, 천주교의정부교구이주센터엑소더스(경기동부), 천주교인권위원회, 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이주인권센터)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가해자 처벌과 원직복직’을 위한 농성장 침탈을 규탄한다! 사내하청 노동자와 연대단체들이 '성희롱 가해자 처벌과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던 여성가족부 앞 농성장이 강제로 철거당했다. 피해자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면서 관리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왔다. 현대차는 피해자가 성희롱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자 피해자를 14년간 일하던 일터에서 쫓아냈다. 여성가족부에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자, 자신들은 성희롱 예방교육을 할뿐이라며 외면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문제는 현 시기 여성노동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성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일수록 더욱 취약한 상황이다. 온갖 성폭력이 난무해도 일자리를 위협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숨죽이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맞서는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다른 여성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투쟁이다. 농성장을 사수하고 더 많은 연대단위들과 투쟁에 함께 나서자. 저들이 농성장을 눈앞에서 치운다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책임회피와 추악한 행태들이 감춰질 수는 없다. 지금 당장 농성장 철거를 중단하라! 현대차는 피해자를 즉각 원직 복직 시키고 가해자를 처벌하라! 여성가족부는 책임 회피 말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문제해결에 나서라!
때 아닌 사회주의 논쟁과 정세적 역설 사회주의가 논란이다. 진보통합 논쟁 과정에서 녹색사회주의와 반자본주의가 복지국가 사민주의 등과 각축을 벌이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추진 중인 계급현장 좌파 진영은 최근 사회주의 강령논쟁으로 조직 분열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논란이 좌파 운동 진영의 활성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작 민중운동의 다수파격인 민주노동당은 올해 정책당대회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이상 계승” 관련 당 강령을 폐기했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이념 노선으로 채택했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운동의 위기를 빌미로 신자유주의 구집권 세력들과의 선거연합과 공동 집권이라는 정치적 망상에 빠졌고, 좌파 진영은 다양한 사회주의들로 분화하는 양상이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 전략이 관심을 얻게 되었고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위기는 심화되었지만, 위기의 효과는 운동의 전반적 우경화와 좌파의 분열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빠졌지만 새로운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정책과 정치세력들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 생존적인 위기에 빠진 계급 대중운동은 위기 심화의 효과로 분할되고 반복된 패배를 경험하며 쇠퇴 일로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대중운동의 쇠퇴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한 운동 전망은 포기되고, 이른바 “운동의 위기를 정치로 돌파하자!”는 식의 선거정치 전략이 힘을 얻게 되었다. 객관적인 계급투쟁의 조건은 악화되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환상이 정치계급화한 민중운동의 상층을 사로잡았다. 노동자민중진영의 운동역량은 아래로부터 급속히 무너져서 지리멸렬한 상태에 처했지만, 2012년을 앞둔 정치적 기획들은 진보적 집권이라는 장미빛 꿈에 부풀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적 역설은 현재와 같은 자본의 구조적 위기의 시기에 왜 사민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은 개량주의적 정치 전략들이 활개를 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사민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론에 대한 당위적인 비판을 넘어서, 실천적 극복을 위한 대안전략 모색을 위한 출발점 역시 이러한 정세적 역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덧붙여 다음의 기본 관점을 확인하며 논의를 시작해보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과 조직이 해체된 현 시대의 과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과 이념을 재건하는 것이지, 이전 시기에 존재했던 사회주의·공산주의 교리를 방어하는데 머무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또 현 시기에 개량주의를 비판하는 목적이 임박한 혁명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운동 재건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사민주의, 개량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가? 나아가 오늘날의 사민주의,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연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현재와 같은 수세기에는 혹시 그들과의 연합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신자유주의 시대 사민주의, 개량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취했던 사민주의, 개량주의 비판의 운동적 함의는 중간파에 대한 타격과 견인을 통해 지배계급을 고립시키고 압도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계급동맹전략에 있었다. 여기서 논쟁점은 누가 타격 견인해야 할 중간파이고, 해당 시기에는 비판 타격이 우선인가 견인이 우선인가였다. 그에 비교해 볼 때 2010년대를 맞이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 개량주의 비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가장 크게 바뀐 조건은 이전까지 타격, 견인해야 할 대상이었던 자유주의 좌파와 사민주의가 이전 어느 시기보다 불안정하고 동요하면서도, 단순한 중간파가 아니라 주도적인 지배분파가 되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본성상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및 사민주의)의 수렴체이고, 이는 기존의 중도좌파격인 구 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사회 자유주의로) 보수화되고 타락한 결과이다. 정치 공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좌우대립전선에서 상대적으로 중도파적인 위치를 점하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의 일반적이고 계급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은 불안정과 불확실성이다. (전위정당이 해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주체와 이념의 형성 없이 기존의 정치전선 지도 위에 지정학적으로 그려지던 일면적인 좌우 세력구분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은 관념적인 정세인식과 엉뚱한 대응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당이 때때로 한나라당보다 왼쪽에 위치하고, 한나라당의 우익적 공세가 거센 국면에서는 (이전의 방식대로 사고한다면) 민주당과의 연합이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그들의 과거행적으로 인한 상식적인 거부감은 차치하더라도, 극도로 불안정한 남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과 불확실한 정세적 특성상, 그들 신자유주의 구 집권세력들에게 신뢰할만한 정책 이념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러한 전환이 유지되리란 생각은 한낱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민주의 비판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강조점을 가진다. 구조적인 장기 불황이라는 경제적 조건은 장기 구조적인 계급타협의 토대를 허물어버린다. 그러나 강력한 우익적 공세와 노동자 대중의 악화된 생존권적 어려움 속에서 이전 시기에 무너진 계급 타협적 모델에 대한 환상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타협적 시도는 실질적인 타협의 성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으면서, 때때로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위계화와 배제에 기반한 허구적인 형태의 사회적 합의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혁명적 전위당의 이념과 지도를 벗어난) 반혁명적 전망, 개량주의적 노선이라는 규정으로 오늘날의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확한 비판은 아니다. 단순한 혁명 대 개량의 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와 계급타협 모델은 근본적인 혁신을 지체시키고 위기를 봉합하여 심화시키는 시대착오적이고 부적합한 운동양식이라는 점에서 실천적으로 극복되어야한다. 또한 사민주의는 일국 수준의 국민경제적 성장모델을 그 경제적 토대로 성립된 체제라는 점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계급타협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일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거대 법인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하고, 여기에는 노동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국적인 법제도적 보호 장치는 물론이려니와, 각종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거대법인기업이 민간차원에서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연구기술 관련 지원들이 추가된다. 그 과정에서 생산은 사회화하는데 반해 소유는 사적인 형태로 묶여있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 성장을 위한 비용은 사회화하지만 이윤은 사적으로 영유되는 모순으로 심화한다. 이것은 국가의 재정지출을 늘리고, 그것은 인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의 형태로 다시금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자본이 급격하게 초민족화 되고 국민경제(민족경제)적인 성장모델은 금융세계화로 수렴, 재편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일국적인 보호 장치 속에서 유지되어온 사민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는 경제적인 토대를 잃고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때 국가는 기존의 타협에 기초한 복지 지출의 일부를 삭감하고 재정균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재정은 더욱 악화되는데, 경제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해서는 파산한 기업과 금융기관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파괴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기 비용-손실이 사회화하고, 초민족화된 금융자본의 이윤은 사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민주의 체제의 내적인 모순이다. 사민주의가 가지는 두 번째 모순이자 취약점이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운동은 계급적 통합력을 높이기보다는 계급 내부 분배에 치우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계급 내 분할과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고유한 문제점을 가진다. 사민주의적 복지정책은 항상 복지의 수혜자와 부담자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는 계급 내부 분할과 갈등에 매우 취약하다. 정규직-비정규직, 실업자-취업 노동자, 노동빈민-상위계층 노동자 사이에서 수혜계층과 부담계층이 분리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가 생산을 변혁하기보다는 국민경제적 분배를 개선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민주의 복지 정책은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적거나, 그러한 체제의 강화를 동반하는 타협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지배체제가 구조적인 경제위기에 빠질 때마다 사민주의는 동시적인 위기에 빠지면서,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분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민주의에 고유한 계급타협은 지배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약속된 타협의 성과물을 분배해주지 못하게 되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노동자 계급내부의 분할을 확대하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그 때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은 그저 계급 내 분할을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본가 내부의 갈등에 손쉽게 동원되어, 노동-자본-국가가 연합하여 다른 노동계급 집단을 공격하는데 이르기도 한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1950년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수출중심의 금속산업 자본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건설노동자들과 수출기업 소속의 저임금 금속노동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 국면은 나중에는 수출기업 자본가 그룹과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자본 연합을 맺고, 전투적인 건설-고임금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요구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부문 남성 노동자들이 민간부분 사용자협회(SAF) 및 사민당정권과 연합하여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발단은 생산성이 낮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금속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웨덴 총연맹인 LO의 금속노조(Metall)가 민간부문 사용자협회(SAF)-사민당 정권과 손을 잡고 공공부문 노조를 민간부문에 기생하는 집단으로 공격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취약성은 사민주의적인 정치가 사회운동을 기술 관료적으로 접근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향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선거득표를 위한 공약이나 상층 국가 관료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정책론을 사회운동으로 착각하는 태도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운동 풍조는 대중을 대상화하고, 운동주체 스스로 운동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회운동은 사람들이 일상적 의식을 스스로 비판·극복하고 스스로를 자율적인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변형시키는 활동이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분배 몫을 산술적으로 최대화한다고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전략이나 권력 장악으로 변혁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변혁은 노동자들의 자기통치와 통제력을 증대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사회운동과 정치를 사회를 어떻게 통치하고, 대중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는 관점은 '사회운동'과 '정치적인 것'을 '정책'으로, 또 다시 심지어는 '경찰의 통제'로 변질시킨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계승한다”는 강령을 삭제하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이념으로 채택했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전인 2002년경에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논란을 벌인바 있다. 당시에 사회주의 강령 삭제를 추진했던 세력들이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막상 진보적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이념인지는 강령 개정안만으로는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정책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에서 발간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책자 정도가 주요한 참고자료다. 새세상연구소는 이 책자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대안이념 전략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그런데 새세상연구소는 설명도 없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좌편향이고, 자유주의는 우편향이라는 식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론의 이념적 정당성을 강변한다. 그런 뒤에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라는 이름으로 정치, 경제, 복지, 평화통일과 사회적 평등과 관련된 강령적 정책들을 나열한다. 아무리 이 책자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도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뚜렷한 내용이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해마다 열리는 민중대회 때 작성되는 민중요구안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재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 한 가지 특징적으로 언급된 내용이 있다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모델을 진보적 민주주의의 주요 사례로 꼽는 대목이다. 하지만 차베스의 개혁모델을 뭐라고 규정하건 그 핵심은 막대한 석유자원과 차베스 자신의 카리스마적 정치지도력을 기본토대로 삼아,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급진적인 분배, 지원정책을 펼치는 데 있다. 이런 개혁모델을 한국 자본주의의 강령적 대안으로 삼기에는 많은 곤란점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차베스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그만두더라도, 차베스 스스로가 내세운 베네주엘라 개혁의 모토는 '21세기 사회주의'다. 그리고 차베스의 개혁이 나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다고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의 국유화나 독점자본에 대한 통제를 도입한 급진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새세상연구소는 오히려 거꾸로 차베스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나 경제 질서의 기본을 부정하지 않는 민주적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진보적 민주의론은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적 소유구조, 경제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진보 민주정권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유일한 내용이다. 사회주의 강령 구절을 삭제하고, 자유주의 개혁분파들과의 선거연합과 공동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념인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민주의적 후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사민주의라고 평가하기에도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크게 미달하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그 명칭 그대로 진보적인 민주주의다. 애매하게 개량적인 민주주의 정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특히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한국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종속된 후진적 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그럼으로써 당면한 반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성격을 종속성과 후진성의 극복을 위한 민주주의적 과제로 규정한다. 즉 반신자유주의를 민족자주의 과제, 반봉건 (자본주의적)선진화의 과제로 뒤바꿔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반신자유주의는 당면한 과제이고, 반자본주의적 과제는 먼 훗날의 과제로 서로 구분된다. 당면한 민족자주와 민주 개혁적 과제를 추월해서 반자본주의적 과제를 앞세우는 것을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신자유주의는 종속성과 후진성을 의미하는 무엇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1, 2, 3세계의 정책적 차별성이 사라지는 세계적인 보편적 수렴점으로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적 단위를 넘어서, 그 틀을 해체시키는 금융·군사세계화로의 세계적인 통합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인 포섭과 배제는 국민국가, 국민경제 단위의 종속과 등급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 내부를 분할하면서 세계적인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세계1류 삼성과 노동시장에서조차 배제된 반실업 비정규직 노동빈곤층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특징지어 지는 것이지, 그 둘이 대립되는 선후관계가 아니고, 하물며 신자유주의를 종속성과 후진성으로 협소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반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주장되던 반제반봉건적 민족자주의 과제를 다시 반복하는데 불과하다. 당시 논쟁과정에서 반제반자본주의(반봉건) 민족해방혁명론(NLR)은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론(PDR)이 반제국주의적 과제를 외면한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바 있다. 이에 대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 즉 NLPDR론을 제기한 PD진영의 NL 비판의 핵심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 없는 단계론적인 부르주아 혁명론이라는 점이었다. 이와 비교해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은 물론 없으려니와, (1980년대 스스로 주장했던) 부르주아 혁명론도 아닌 진보적 (선거연합) 집권론에 불과하다. 우선은 진보적 민주정부를 만들고, 그 이후에 더 진보적인 개혁과 구조적 변화를 도모하자는 단계론적인 운동론은 주관주의의 극치이고, 우경적인 정치 전략의 사후 정당화론이다. 자본가도 보수정권 지지가 아니고 재벌이 아니라면 민중이라는 기괴한 주장이 버젓이 활자화되어 출판되고, 위장된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비독점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세력들과의 무분별한 연합정치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운동과 과학에 대한 ‘정치우선’과 인민주의적 정치의 위험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중소 부르주아 계급과의 연합과 공동 집권을 주장하면서도, 민중적 진보적 주도권이 관철되는 한 진보적 개혁을 심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내용은 자본주의 생산 지배체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적 개혁이면서, 어떻게 민중적 진보적 개혁을 심화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이 가지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가 집권하면 다르다”는 의지뿐이다. 한편, 진보적 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우선!”이라는 선동적인 구호를 내세우면서 운동정당을 정책정당으로 바꾸고, 복지국가동맹을 새로운 정치노선으로 삼자는 본격적인 사민주의 정치그룹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나 이런 사민주의적 흐름들은 서로 강조하는 바가 약간씩 다르지만, 신자유주의적인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비판보다는 손쉬운 선동적 언사와 주관적인 의지만을 앞세우는 운동방식을 공유한다. 어려워진 사회운동, 노동운동보다는 정치공학적인 선거연합의 기획으로 정치에서 성과를 얻자는 개량주의적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이들의 논리를 생각 없이 듣고 있다 보면, 어떤 투쟁도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집권의 환상적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런 허황된 정치기획은 어찌되었건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세력이 권력을 분점 한다면,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낙관론으로 치장되곤 한다. 물론 친 자본가적인 정치인들이 공직선거에서 많이 당선되고 정권을 잡아서 국가를 자본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 간의 그러한 경험적인 관계의 일부분을 수정한다고 국가와 자본축적의 관계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비자본가 계급출신의 진보적인 국가 관료나 정치지도자들이 설령 집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본과 자본축적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구조적 특성은 바뀌지 않는다. 국가는 친자본가 정치집단이 손에 쥐면 자본주의 국가가 되고, 반자본주의 정치집단이 일시적으로 집권을 하면 비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어느 누구라도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자본축적의 핵심을 컨트롤하는 장치다. 이 국가라는 장치는 한두 번의 선거결과나, 심지어는 집권세력의 일시적인 변화에 의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권세력이 국가장치에 순응해야 한다. 소위 ‘책임 있는 정치세력의 고뇌’로 표현되는 우경화가 필연적으로 강요된다. 근본적인 계급관계,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동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보증이 없는 한 “내가 하면 다를 것”이란 다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질없는 다짐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정치위기를 동반한다. 오늘날의 정치위기는 단순한 정권의 위기, 특정 정치세력의 위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라는 도구에 대한 장악력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구 자체의 모순이 진행 중이라는 게 문제다.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정치자체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은 억압적 국가기구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과 심지어는 피지배계급의 대중운동 및 조직들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가족, 학교, 정당, 노조, 미디어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위기에 빠지면서 대중들은 국가 또는 공동체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노동의 불안정성을 넘어서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창출한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기구의 위기는 대중들 내부에서(국가가 아니라) 폭력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위기를 낳기 때문에 일상적인 물리적·상징적 폭력은 증폭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인식을 결여하거나 거부하는 인민주의적 선동은 그 의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결과적으로는 좌파진영 전체를 보수주의적 공격, 혹은 우파적 인민주의적 공세에 취약하게 몰아넣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그에 맞서는 반체제운동의 동시적인 위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범람하는 인민주의 정치가 보다 극단적인 파시즘적 변종으로 나타났던 역사적 교훈에 대해 진지하게 재평가해보아야 한다. 1930년대 고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의 위기 속에서 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당(나치)의 어느 선동가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국가가 황금의 악마, 세계(개방, 자유)경제, 유물론과 결별하고, 정직한 노동이 정직한 보상을 받는 사회를 재확립하도록 요구합니다. 이 거대한 반자본주의적 열망은 우리가 위대하고 비범한 새 시대의 문턱에 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자유주의가 극복되고 새로운 종류의 경제사상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출현하는 시대 말입니다. 절대 다음과 같이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에 필요한 돈이 있는가?” 오직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질문만이 가능합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돈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서 생산적 신용창조, 즉 적자지출 또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은 완전히 정당한 것입니다. 언뜻 들어보면, 이 연설이 왜 극우 나치당의 연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상황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인 현실이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은 무엇이고, 그 주체는 누구인지였다. 좌파의 대안이 노동자대중이 주체로 서는 자본주의 위기의 혁명적 전환이었다면, 나치의 대안은 세계전쟁이었고, 그 주체는 새로운 민족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재조직화한 국가였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에 관해 사람들이 가장 흔히 오해하는 것은 나치가 민중운동을 탄압하면서 집권했을 거라는 가정이다. 그렇지만 나치가 집권했을 당시에 나치의 집권을 방해할만한 좌파 정치세력이나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은 이미 빈사상태에 처한 지 오래된 뒤였다. 나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평화적인 선거를 통해 조용히 집권했다. 극우테러와 대학살은 그 이후의 일이다. 1919년 독일 혁명부터 1933년 나치 집권 전야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래로부터의 대중주체 형성과 사회변혁에 힘쓰던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하고 평의회 운동을 해체시켰던 장본인은 오히려 바이마르 공화국의 가장 주요한 진보정치세력이었던 집권 사민당이었다. 집권 사민당은 죽어가던 자본주의의 상속자가 되려는 혁명적인 생각을 대중들에게 숨기는데 급급했고, 상속자는커녕 빈사상태의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사노릇에 골몰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치를 우선시했다. 그들의 ‘정치우선’은 사회운동과 과학에 대한 우선이었다. 자기 완결적인 노동 친화적 분배, 복지 헌법체제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통치를 앞세웠던 반면 노동자 평의회의 정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억압했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와 의회가 정치의 모든 것이 되도록 생산현장의 정치, 거리의 정치를 하나하나 제거해버렸다. 그러한 진보적 집권정치, 개혁정치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자본주의를 부활시키지도 못했고 점진적인 사회 개혁의 효과를 보지도 못했다. 진보 공화국의 개혁정치는 계급내부 분할과 경쟁을 심화시킨 결말을 보게 되었다. 대중운동적인 토대를 잃어버린 노동자계급은 경제위기가 닥치자 각 부문별, 계층별로 끊임없이 분열된 것이다. 계급 대중운동과 과학적 이념의 결합이 해체된 이후, 각각의 이익집단화된 계급집단들에게 행정적으로 이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정치를 변질시킨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우선’의 의회정치, 경제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는 탈이념화된 분배(행정) 정치우선을 추구했다. 대중들은 점점 더 정치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위기는 악순환에 빠졌다. 나치는 이런 정치 경제적 토양위에서 등장한 것이다. '경제위기 비판'이니 '변혁'이니 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제거가 완료된 뒤에야, 이제는 돈이 없으면 전쟁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주겠다는 식의 진짜 ‘정치 우선’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과 그것의 생산체계이자 권력기관인 평의회운동이 철저히 조롱받고 제거된 뒤에야, 사회운동에 대한 확실한 우위에 입각한 강한 정치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나치가 독일제국을 장악한 것이다. 과학적인 경제 분석에 대한 정치 우선, 사회운동에 대한 국가(정당) 정치 우선론이 나치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다만 부족했던 것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고, 국가 관료주의를 대신할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의 지도력이었을 따름이다. 어짜피 이런 투쟁도 저런 투쟁도 어려운 형편이니 별다른 수가 없다면,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완고한 원칙을 조금만 버리면 정치공학적인 편법으로 진보적 정치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둥, 운동의 위기를 정치로 돌파하자는 둥, 어쨌든 진보적 집권은 민중의 삶에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소박한 호소는 자기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선동에 불과하다. 대안 좌파전략의 모색 우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노동자민중운동의 우경화, 쇠퇴가 동시에 진행되는 역설적인 정세를 맞닥뜨리고 있다. 당면한 민중운동 재편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급격한 우경화를 막고 좌파운동의 자기 파괴적인 분열을 제어해야 할 과제가 시급하다. 시대착오적인 사민주의나 진보적 민주주의론과 같은 우경적 이념을 비판하고, 무원칙한 신자유주의 선거연합을 저지해야할 과제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정체성이 달린 일이다. 하지만 변화한 시대적 조건에서 사민주의나 우경적 개량주의는 단순한 혁명 배신이라는 규정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게 변화했다. 지배체제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될수록 별다른 성과가 없는데도 수그러들지 않는 허구적인 코포러티즘, 독자화하는 정치계급의 단기적인 선거 정치공학이 민중운동 재편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 중인 정치의 위기와 인민주의적 위험의 증대 등과 같은 정세적 조건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들을 수행해야한다. 결국 근본적인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 변혁이념과 운동의 해체를 갈음할 이념의 재건과 대안좌파의 형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날 대안좌파가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과 가상의 정치지도 위에 그려진 지정학적인 기준만으로 손쉽게 형성되지는 않는다. 유일한 기준은 전쟁에 대한 발본적 반대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총체적 기각이고, 그 성패는 반전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의 대중적 실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판가름 날 따름이다. 또한 대안좌파의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세우는 일은 곧 금융세계화와 심화하는 세계 경제위기의 특수한 결과인 정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차원의 과제이다. 지배계급의 무능과 통치 불가능성, 초민족적 자본의 정치적 사보타주에 맞서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요구된다. 노동자 대중운동을 재활성화 함으로써 정치를 재건하는 것만이 대안좌파 형성의 기본 토대다. 새로운 노동자 대중운동이 없는 정치는 어떤 진보적인 정책 공약으로 치장을 한다하더라도, 뿌리를 잃고 끊임없이 부르주아 정치로 흡입될 뿐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집단적 실천을 통해 유효한 성과들을 얻어 주체화하는 변혁적인 자기해방의 프로세스를 되살리는 것이 그 첫출발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의 집단적 행동을 다시금 유효하게 만들어, 정치자체를 부활시키는 새로운 비전을 밝힐 수 있다. 셋째, 대중운동이 나날이 우경화하는 조건에서, 좌파는 단순한 분리만으로는 소수파적인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원칙 있는 비판과 독자세력화의 포지셔닝이 강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대중운동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되 현실적으로 우리는 상당기간동안 우경화된 대중운동과 무리하게 분립하여 고립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유지 확대하면서, 좌익적인 활동가들의 교육훈련 구조를 강화하는 방식의 활동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좌익적인 활동가들은 대중운동의 재활성화에 힘쓰는 한편, 노동자 사회운동 재건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질적인 투자(자원 배분의 우선성), (강령적인 개방성을 유지하되) 인민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적 원칙을 조직적으로 고수해야 한다. 넷째,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동맹전략이나 무원칙한 계급타협 전략은 위로부터의 정책개혁을 정치의 모든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현재와 같은 구조적 위기시기에 그러한 개량주의적 장미빛 청사진들은 잘해야 계급내 분배에 골몰하여 계급적 단결을 해치거나, 자본에 의한 계급분할에 편승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경화된 운동 이념 전략에 대한 현 시기 실천적인 비판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반면 우리에게 필요한 최대강령이나 이행강령은 통치정당의 집권정책이 아니다. 사회운동의 목표와 원칙은 대안사회라는 건물의 도면을 그린 청사진 같은 것이 아니다. 만약 사회운동에게 새로운 이행강령이 필요하다면 (혹은 굳이 이행강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변혁적인 이행전략을 지속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면) 그것은 해당시기 사회운동의 근본적 난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념적 대안과 정세적 실천을 결합시키는 핵심 고리를 찾고, 그것에 적합한 실천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시기 좌파의 대안전략은 실업과 취업, 복지와 임금의 분할과 갈등, 취업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통합시키고 새로운 노동계급의 단결을 형성시키는 데 전략적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컨대 연대임금 전략과 같은 실천전략을 중장기적으로 실행해가면서, 계급적 단결의 재형성을 노동자운동의 핵심 목표로 세우고 전략적으로 실천해가는 것이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파업 투쟁을 마무리하며 유성기업 투쟁이 한 고비를 넘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난 8월 16일 법원이 제시한 ‘8월 31일까지 전원 복귀’하는 조정안에 합의했다. 유성지회는 사측의 직장폐쇄로 인해 타의로 석 달 간 파업 투쟁을 진행하며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했다. 많은 조합원들이 사측의 탄압과 회유로 개별 복귀했으며 어용 복수노조가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수차례 반복된 금속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유성에서도 예외 없이 벌어졌다. 하지만 민주노조는 쓰러지지 않았다. 현대차가 사전 사후 노조 파괴 공작을 총괄 지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까지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본을 거들고 공권력을 투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지회는 건재하다. 이것이 유성기업 투쟁의 중간 결과이다. 정권과 자본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유성기업지회와의 싸움에서만은 결론이 어긋났다. 민주노조를 깨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5월 18일, 유성지회가 단체협약에 명시된 2시간 총회를 진행하고 난 뒤 사측은 갑자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조합원들은 의아해하며 아산공장으로 모였다. 다음 날 새벽, 공장 앞에 모여 있던 조합원들에게 용역깡패의 차량이 돌진했다. 13명 부상. 이렇게 용역깡패의 대포차 테러사건으로 유성기업지회는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측은 당황한 나머지 용역업체의 우발적인 실수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어지는 자본의 폭력을 예고하는 것에 불과했다. [표 ] 유성지회 투쟁 경과 2009 2011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합의 2010 11차례 교섭 중 사측 제시안 없음 2011.5.13 조정중지 5.17 쟁의행위 찬반 투표. 78%가결 5.18 직장폐쇄, 용역깡패 대포차 테러 5.24 공권력 투입 5.27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등 구속 6.22 이구영 영동지회장과 엄기한 아산부지회장 조계사 농성 돌입 8.5 직장폐쇄 1차심리 8.12 직장폐쇄 2차심리 8.16 직장폐쇄 3차심리. 조정안 수용 8.22 현장복귀 시작 8.31 현장복귀 완료 예정일 8월 3일 열린 ‘직장폐쇄 폭력행위 증언대회’에 따르면 5·18 직장폐쇄는 사전에 철저히 기획된 일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조합원은 19일 새벽 벌어진 용역경비의 대포차 뺑소니 사건은 ‘테러’였다고 증언했다. “차가 지나가면서 아수라장이 되고 처참했어요. 만약 경찰이 이야기 하는 대로 그것이 운전자의 실수였으면 차가 그 자리에서 섰어야 하는데··· 그걸 누가 실수라고 보겠어요.” 또 다른 조합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사측의 수상한 행동들은 직장폐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직장폐쇄 전에 회사가 관리직원들에게 여행용 가방을 나눠줬는데, 그 안에는 런닝 5장, 팬티 5장, 세면도구 등이 들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측이 직장폐쇄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였죠.” 무엇보다도 공장 안에 있던 현대자동차 총괄이사의 차량 안에서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담긴 대외비 문건이 발견된 점, 현대차 직원이 유성기업에 상주한 점, 노무관리 지원부서가 깔고 잘 스티로폼이 미리 준비되었던 점 등을 볼 때, 상급단체(?)와 농성을 먼저 예비한 것은 사측이었다.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불사하는 사측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용역경비업체 CJ씨큐리티, 노무관리업체 창조컨설팅, 그들을 비호하기 위해 신속히 투입된 공권력 등 사측은 노동조합을 궁지에 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사측의 지시로 생산물품까지 사용하며 폭력을 휘두른 용역은 물론, “연봉 7천만 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벌이는” 운운하며 유성기업지회 탄압을 진두지휘한 이명박 대통령은 조합원들의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켰다. 자본과 정권은 언제나처럼 공고한 연대를 자랑했다. 연대 대오에 대한 경찰의 도를 넘는 수사, 조사도 우리를 위축시키려는 시도였다. 태풍을 뚫고 연대가 도착하다 날씨만 궂은 것은 아니었다. 건설기계 충남지부의 강력한 연대투쟁 이후 검경은 혈안이 되었다. 수배와 영장이 남발되었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를 끊으려는 시도도 날로 거세졌다. 하지만 궂은 날씨도, 거센 탄압도 연대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 유성기업 공장으로 들어가는 굴다리 아래에는 올빼미들의 둥지가 꾸려졌다. 올빼미 둥지란 연대 대오의 투쟁 거점을 뜻한다. 아산공장 앞 비닐하우스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같은 금속노조 소속 투쟁 사업장들이 찾아와 조언과 힘을 더했다. 연대 온 동지들은 굴다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대학생들이 찾아오고 문화 예술인들이 방문했다. 농성장은 힘든 와중에서도 외로운 적은 없었다. 누군가 복귀하지 않고 하루를 더 농성할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이었다. ‘물심양면으로 이 투쟁을 지지한다’는 표현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노동자든 자본가든 서로의 실력을 뻔히 알고 있는 단위 사업장에서 사측이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연대의 힘이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매 주말의 집회를 주관했다. 충북 지역의 노동조합들은 모두 유성기업지회의 연대투쟁에 참여하고 기억하고 있다. 일례로 수 천만원이 모금되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달되었고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유성기업지회는 건재하다!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문서의 마지막에 ‘발레오 사례를 맹신하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전의 금속노조 탄압 사례와는 다르게 유성기업지회는 조직력을 상당부분 유지하며 현장으로 복귀했다. 법원 조정안 수용 이후 수련회를 거치고 현장에 돌아갈 채비도 단단히 하고 있다. 조합원들 스스로 사측의 탄압을 예상하고 대응하는 계획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조합원들이 예상했던 일들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조합원들은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100일 가까이 공장 밖에서 버틴 240명의 조합원들이 있다. 어떤 민중가요 가사처럼 단련된 강철 같은 동지들이다. 유성기업지회 선배 조합원들은 90년의 파업투쟁과 공권력 투입을 경험한 세대다. 그 뒤를 이어 이번 투쟁을 거치며 새로운 세대들이 생겨났다. 실제 유성기업지회는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조를 굳건히 이끌고 나갈 수많은 활동가들을 단련시켰다. 평소의 평가가 무색하게 누군가는 개별 복귀하였지만 묵묵하게 비닐하우스를 지킨 동지들이 이제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우뚝 서게 되었다. 요구와 대응 투쟁 진행 과정에서 많은 쟁점들이 제기되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야간노동 철폐, 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의 위법성, 용역 폭력, 원청의 하청 노무관리, 사측이 개입한 어용 복수노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주간연속 2교대제 요구와 공격적 직장폐쇄 규제는 금속노조의 2011년 중앙교섭과 대정부 요구안에 포함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연대를 조직하고 투쟁을 배치하였는지는 검토해볼 문제다. 금속노조 주최 집회의 횟수나 기조 등 여러 가지 지점을 돌아볼 때, 금속노조의 투쟁의지에 대해 조합원들이 불만과 불신을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전 금속노조 탄압 사례와도 비교해 볼 지점들이 있다. 정치권의 개입을 촉구한 뒤 그것을 매개로 중재안을 받아들이고 복귀한 사업장들과 이번 유성기업지회 투쟁을 과정과 결과 측면에서 비교,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별 전술은 시기와 역량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나 그동안 소위 정치권의 중재로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조합들은 요구안에서 후퇴할뿐더러 현장에서 받는 탄압이 거세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정치권의 개입 문제도 투쟁을 지속해 나갔을 때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여러 사례들이 증명하는 잘못된 길을 굳이 다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조합원들은 속속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치졸한 대응들로 민주노조를 지속적으로 탄압하려 하고 있다. 원직에 배치하지 않으려는 시도, 합의되지 않은 교육을 진행하려는 시도 등등. 모두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예상됐던 부분들이다. 이런 사측의 탄압에 절대 굴할 수 없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의연한 대응을 해내리라 믿는다. 또 복수노조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160여 명이라는 만만찮은 숫자이지만 유성기업지회가 금속노조 파괴시나리오에 굴하지 않은 것처럼 복수노조 대응에서도 훌륭한 선례를 남기는 투쟁을 진행할 것을 기대해본다. 앞으로도 사측의 상시적 탄압과 우발적 폭력 유발 등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갖은 시도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100여 일간 배운 그대로, 노동자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으로 뭉칠 때에만 노동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힘찬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바야흐로 금속노조 선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에서 배운 것들을 기억하고 이어나가야 하는 시기이다. 유성기업지회 투쟁 이후 조합원들은 일상적 연대투쟁과 단단한 현장통제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우리가 단절해야 할 것은 경제위기를 틈탄 협조주의나 실리주의지 손가락이 아니다. 언제든 틈만 보이면 치고 들어올 자본의 공격에 대비해 탄탄한 대비를 하자.
간병 요양 노동의 실태와 조직화 방향 저출산 고령사회에 접어들며 정부는 중고령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환자와 노인에 대한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간병과 요양 등 사회서비스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간병과 요양 분야의 정부 지원과 혜택이 전무했던 한국에서 정부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민간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값싼 일자리를 찍어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때문에 정부의 사회서비스 제도는 보편적 제도로 기능하지 못함은 물론 간병, 요양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정부의 화려한 수사 뒤에 가려진 간병, 요양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살펴보고, 이들이 노동의 주체가 되기 위한 조직화 방향을 제언으로 담고자 한다. 간병 요양 노동의 등장과 제도화 간병이란 환자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수발, 식사영양, 이동 지원, 가사지원 등 기본적인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을 가리킨다. 간병은 가족 간병과 유료 간병노동이 있는데, 여기서 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직업으로서 제공되는 유료 간병에 대한 노동이다. 보수를 받고 환자나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이 언제 등장했고 언제부터 이 명칭이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80년 ‘간병인복지회’가 창설되면서 ‘간병인’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고, 간병인이라는 직종이 등장한 것으로 본다. 당시 간병인은 ‘대한적십자’ 등 비영리 단체와 유·무료 소개소들을 통해 활동했고 신분 보장이나 역할, 임무가 법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1998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각 시,구청 부녀복지과, 여성복지과)가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력개발의 일환으로 간병교육을 실시하여 유·무료 간병인 사업을 실시·알선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들어 제도 밖의 비공식부문으로 머물러 있던 간병노동을 사회서비스로 제도화하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나아가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간병, 요양 등의 돌봄 서비스가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08년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다. ‘이제 국가가 효도하겠다’며 시작한 이 제도는 극소수의 서비스 이용대상(전체 국민의 1% 미만, 노인인구의 3%만이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과 협소한 급여 범위의 한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들 또한 본인부담금을 추가로 지출해야 하고,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민간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건강보험료, 서비스이용료, 민간보험료까지 삼중의 부담을 떠안기는 제도로서 보편적인 건강권의 확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2009년에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 △2010년부터 병원 내 간병서비스를 비급여 대상에 포함시켜 공식적 서비스로 전환 △2011년 이후 건강보험 급여화 검토 등의 내용을 담은 ‘간병서비스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업무 보고에서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법상 비급여 서비스는 모두 고시 형태로 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간병서비스는 비급여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현재의 법 체계 내에서 병원이 주체가 되어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청구하면 불법이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은 형식적으로 간병 서비스에 개입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하고, 간병서비스 제공자와 환자 및 보호자와의 일대일 계약관계에 의한 사적 형태로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실제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서비스이지만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간병 서비스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던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간병서비스를 건강보험 급여항목이 아닌 비급여대상에 포함하고 재원을 민간에서 끌어오겠다는 계획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간병서비스 제도화 방안은 현재 재검토 중에 있다. 국가가 돌봄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한 역사가 없는 한국에서 돌봄 노동을 사회서비스로 제도화하는 방안이 급물살을 타는 이유는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전략에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속화된 불안정 노동의 일반화, 빈곤 심화 속에서 가족의 해체와 사회 불안정이 야기되자 국가는 이를 관리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 개입의 방향은 보편적 권리와 복지의 실질적 확대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은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여 그 비용을 민중들에게 전가하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확산하는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간병노동의 실태 “우리 간병사들은 거의 다가 가정이 잘못 되었거나 가정을 책임져야 하거나 자식들 교육에 의해서 꼭 벌어야하는 사람들이 참 많단 말이에요. 아빠들보다도 우리 한국사람들이 모성애가 참 강하기 때문에 엄마들이 취해야하는 이런 태도는 감히 다른 분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짜 눈물 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뭔 일을 할까..애들은 다 컸고 교회 가서 식당에 봉사 좀 할까.. 근데 그거는 드러내야 되잖아 막 오만 사람들 다 보고 쳐다보고... 그런게 싫어 가지고.. 근데 그 교회 권사님이 이걸 하신데요. 그래서 전화를 해서 이걸 시작했어요. 난 그래서 참 감사하드라고 참 이런 일이 있다는게 감사하드라고. 그런데 지금은... 보수관계도 얘기해두 돼요? (연구원이 답한다 “네 얘기..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항상 우리 그게 불만이 뭐냐 하면은 첨에는 5만원 했잖아요? (중략)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이라는게 있는데 24시간하면서 6만원이잖아요 지금.” - 김미정(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돌봄 노동과 간병 노동자의 현황」,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 자료집(주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간병, 요양 노동은 사회를 재생산해내는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가정이 그 책임과 비용을 지고 주로 가족 내 여성이 무급으로 수행해온 노동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지속되며 여성들이 가계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하고, 가족이 환자를 부양하거나 간병할 수 있는 여력이 축소되면서 간병·요양 서비스에 대한 필요가 증가했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인력활용이 경제성장의 주요한 동력으로 인식되면서 여성 일자리 창출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사회서비스 분야가 여성 유휴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일자리로 주목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1차적 역할은 가사노동이라는 인식과 함께 돌봄 노동이 집안일의 연장에 있는 미숙련 노동으로 평가받으면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양산되었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다시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을 하면서도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까지 수행해야 하는 이삼중의 부담을 다시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간병 노동자의 현황부터 살펴보면 다수는 병원(급성기 병원, 요양병원)이나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이 외 재가 근무 형태도 있다. 간병 서비스는 공식화,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 추정이 어려우나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급성기병원 1일 평균유료활동 간병인수는 27,842명, 요양병원 간병인수는 17,831명으로 추산되고, 공공노조 의료연대에서는 전체 간병노동자 규모를 약 24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일 노동시간은 매우 긴데, 전체 간병인의 68.8%가 24시간 상주 간병을 하고 있고, 26.8%는 12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고용형태는 특수고용(환자와의 일대일 간병),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과 직접 고용으로 나뉜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은 직접고용한 곳이 없고, 종합병원 11개소 간병인 7,997명 중 1.7%, 병원 간병인 15,300명 중 1.8%만이 직접 고용되어 있으며, 간병인의 70% 이상은 간병소개업체의 알선으로 간병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시간 근무를 하고 토요일 날 나와서 하루 쉬어요. 제 얘기는 토요일 날 나왔으면 월요일 날 아침에 들어가야 되는데 왜 주일날 3시에 들어가냐 이 얘기예요 그것 좀 고쳐줬으면 좋겠어 다른 직장 대한민국전체를 다 돌아다녀 봐도 토요일 날 오후까지 일하고 월요일 날 출근하지 그 주일날 3시에 들어가는 거 간병인 밖에 없다니까요.” “24시간이 너무 짧아요. 나가서 시장보고 가야 가족들 먹을 것을 해 놓잖아요. 또 내가 먹을 거 뭐 좀 싸가지고 와야 되잖아요, 사먹지 않으려면. 또 우리 유니폼 빨아서 다림질해 가야지 일주일 입어요. 매일 빨아가지고 와야 되요. 일주일 입고. 어떻게 집안 청소는 못하더라도 나가면 너무 피곤해요. 어떤 때는 병원에 있을 때가 더 편해요.” - 김미정(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돌봄 노동과 간병 노동자의 현황」,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 자료집(주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전체 간병노동자의 70% 이상, 사실상 대부분의 간병 노동자는 간병 소개소를 통한 일대일 간병 등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노동자성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간병노동자는 노동3권은 물론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장을 받지 못한다. 법정노동시간, 휴일, 휴가, 퇴직금, 법정 수당(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최저임금 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이는 간병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들은 주 6일, 일일 24시간씩 근무한다. 주당 노동시간은 144시간인데, 이는 간병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에 비해 3배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간병 노동자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가사를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사실 주 7일 쉬지 않고 노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축 쳐져요. 환자를 보면 긴장하구 자야 되요. 여기서 24시간 일하는데 잠자는 시간 한 시간. 2시간, 3시간이면 많이 자거든요. 내가 보니까 잘 수가 없어 길게 못자.” “어느 환자 예를 들면 그분이 의정부 사시는데 105킬로예요 침대사이드에 배가 딱 닿아요. 그러니까 한번 체위변경하려면 올라가서 갖은 애를 다 써야 돼요. 갖은 애를 다 쓰는데 이 양반 사고방식이 어떤 방법이냐면 저녁에 잠을 못 자게 해요. 주위에 앞에 있는 환자 한 분이 보다보다 못해가지고 시옷자를 넣어가면서 맘보를 곱게 써야 병두 낫는 거지 맘보를 그 따우로 써가지고 병이 낫냐고. 환자 둘이 싸워 그러니까 내 돈주고 내가 부리는데 니가 뭔 상관이냐고 아니 일꾼도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워서 일을 시켜야지 잠도 못 자게 하고 밥 먹을 시간도 안주고 너는 돼지가 된다구 그러면서 둘이 붙어 가지구 싸워 아주 별별 희한한 일들이 많습니다. (연구원이 질문한다 “왜 안재우는 거예요”) 내 돈줘서 밤새 그러니까 자기는 자더라도 할 일없으면 다리라도 주물러라 이거예요.” - 김미정(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돌봄 노동과 간병 노동자의 현황」,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 자료집(주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게다가 요양병원의 경우 간병노동자는 1인 평균 9.8명의 환자를 공동간병하고 있고, 많게는 30명까지 간병을 맡고 있다. 이처럼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리다보니 간병인들은 장기적인 수면장애로 인해 안구건조증, 병원성 감염질환, 근골격계질환 등 산재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가장 힘든 거는요. 식사 문제가 힘들어요. 솔직히 그거 밥 일일이해서 한 끼씩 싸서 냉동실에 얼려 가지구 가가지구. 또 병원에서도 냉동실에 쳐박아놨다가. 고것도 끼니 때마다 꺼내서 전자렌지에 덥혀서 반찬 꺼내서 먹어요. 그것도 눈치 봐야지 밥 먹을 장소가 없어요. 배선실이라는데가 있는데요 수간호사들이 못 먹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는 천상 어디 의자가 있는 것두 아니구 식탁이 있는 것두 아니구 서서 먹어요 (창문쪽을 가리키며) 저런 턱에다 놓고서서먹구 그거 자체두 좀 저기하는 간호사들도 있죠.” “밤에 잠을 못 잘때요. 보호자들이 “조금 쉬고 오십시오” 그러면 쉴 공간이 없어요. 저흰 그런 공간이 하나두 없어요. 의자에 좀 앉아서 쉬는 거지 쉴 만한 곳이 하나두 없어.” - 김미정(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돌봄 노동과 간병 노동자의 현황」,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 자료집(주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성기병원의 간병서비스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90%는 간병인 식비보조가 없고, 탈의실과 휴식시간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24시간 내내 주 6일을 병원에서 생활하는 간병노동자에게 탈의 및 휴게 공간은 매우 절실하다. 하지만 간병노동자들은 쉴 때도 환자 옆에서 쉬어야 하고, 옷은 화장실이나 병실 커튼을 쳐놓고 갈아입거나 보호자가 방문하여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경우에는 갈 곳이 없어 배선실이나 병원복도를 배회하며 서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해진 식사 시간도 없기 때문에 환자 상태에 따라 잠깐 시간을 내어 먹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간병 노동자는 환자용 냉동실에 얼려 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배선실 창틀에 놓고 서서 먹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렇게 장시간에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을 하지만 간병 노동자가 받는 간병료(시급)는 식대, 교통비 포함 2,292원~2,708원으로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간병소개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알선 받고 있는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들은 간병소개소에 등록비, 교육이수비용, 월회비를 지불하고 있다. 간병노동자의 70% 이상이 약 10만 원의 등록비와 교육이수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월회비는 6만 원 미만이 61.9%, 6만 원 이상이 37.7%이어서 유료소개소로부터 심각한 중간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노동의 실태 그렇다면 간병 노동자와 거의 같은 일을 하면서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법에 따라 제도화되어 있는 요양보호사들의 노동 조건은 좀 더 나을까. 요양 보호사는 직접고용(정규직과 계약직. 정규직은 전체의 47.3%, 사회공공연구소)과 간접고용(파견)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고용 규모를 살펴보면 2010년 상반기 현재 자격증을 취득한 요양보호사는 948,221명이며,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고서(2010)에 의하면 간병인 중 83.2% 이상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취업한 요양보호사는 233,600명(재가 200,228명, 시설 33,372명)으로 취업한 비중은 26.5%에 불과하다. 정부가 여성을 위한 일자리라며 적극 선전한 결과 ‘100만대군’ 요양보호사를 배출했지만 취업률은 1/4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노동조건을 살펴보면, 재가요양보호사의 61%는 월 60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고 절반 정도는 한 달에 10일 미만으로 일하고 있으며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설 요양보호사는 12시간 맞교대 혹은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거나 심지어 거주형 시설에서 24시간 연속으로 근무하고 있고, 현행 법률기준으로 요양보호사 1인이 입소자 10명을 담당하게 되어 있다. “병원이 치료 해 가지고는 그 분이 치료가 안돼. 다른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환자한테 권리를 주는데, 우리한테는 권리가 없는 거예요. 그면 어떻게 해. 그때 직장 상실이 되는거지. 대상자가 돌아 가셔 버렸어. 그러면 90시간이 없어지는 거야. 나타 날 때까지 대기 하구 있어야 돼. 기한이 없어. 사람이 나와야 되거든요. 또 이 사람이 너무너무 아파서 재가나 병원으로 장기 입원을 가. 우리는 병원을 따라 갈 수가 없어요. 너무 심해서 가족들이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요양원으로 보내. 그럼 우리는 손님이 끊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상자가 없다 보니까 이게 고용불안이 되는 거야” “저는 요양보호사 하기 전에 가사 간병으루 한 1년여 동안 한 댁이 있었어요. 그 부인께서 중풍으루, 뇌졸중으루 5년 정도 와상 환자루 누워 계신 분이었는데, 남편 분이 병간호하셨고 제가 없는 사이에는 하고 계시는 댁인데, 언젠가는 하루는 갔더니 할아버지가 자꾸 주방에서 그 할머니 식사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 등을 막 겹치면서 참 이상하게 신체 접촉 할라는 거 있죠? 황당해 가지고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당황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교육 받으면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는 다급하게 그 자리에서 침을 주라는 거야. 따끔한 일침을 주라는거야.... 할아버님, 저 이렇게 하면 저 여기에 못 옵니다. 그리구 이렇게 행동하실 경우에는 기관에 전화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나름대로 대처 방법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랬더니 그 다음날 갔더니, 할아버지가 조금 순해졌더라구.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저한테는..” “이용자가 무심코 환자 목욕을 시키고 있는데, 빠는 김에 이것도 빨아요. 휙 던져 줄때 기분은 분명 틀리거든요. 그랬을 때 저는 이거는 이런 대우를 받기 위해서 이 분한테 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한번 얘기를 드려야 겠다 생각을 했었어요. 이건 아닙니다. 하고 정중하게 얘기를 드려야 되는데, 기회가 놓쳐졌어요. 그랬을 때는 그러면 일 자체가 힘들어져요. 마음이 힘드니까 일 하는 자체가 의욕이 상실되는 면도 있고.” - 김미정(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돌봄 노동과 간병 노동자의 현황」,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 자료집(주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현재 장기요양기관은 2008년 복지부에서 애초 예상했던 수요의 8배가 넘게 과잉 양산되어 난립해있고, 이로 인해 이용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양기관에서는 과다 경쟁을 하며 불법적 행위들을 자행하고 있다. 민간 요양 시설들은 운영비용을 삭감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인력을 줄여온 반면 5대 보험에는 가입하지 않는 등 요양 보호사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는 요양기관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요양 보호사들은 본래 업무 외 가사지원 등 부당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법정 수당,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하는 등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산재 직업병 및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 비공식 영역의 간병 노동자에 비해 노동 강도, 노동 시간 그리고 노동 조건이 개선되어있다고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될 당시부터 이러한 결과는 예상되어왔다. 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주면서 누구나 쉽게 장기요양기관을 설립하고, 사업량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시설 난립과 과다 경쟁의 원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토대를 형성하고, 민간요양기관을 견인해야 할 공공요양기관은 단 1.5%밖에 되지 않는다. 폐지를 모아 하루를 살아가는 노인들, 부양자 없이 방치된 노인들도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사회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과는 달리 고령화를 새로운 수익 시장으로 파악하여 의료, 사회서비스 영역의 시장화, 금융, 보험 상품 활성화에 주력하면서 시행된 제도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이 속에서 보험재정은 복지재원이 아니라 ‘눈먼 돈’이 되고 있고, 요양 보호사들은 국가인정 자격증을 딴 전문인처럼 등장했으나 여전히 저임금과 산업재해, 근로기준법 위반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시행초기에는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고려하지도 책임지지도 않고 있다. 간병·요양 노동자 노동권 확보를 위한 시도들과 평가 앞서 살펴보았듯 정부의 여성일자리 확충 전략의 일환인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노동권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민중에게 제공되는 보편적인 서비스로서 간병, 요양 노동이 제공되고, 더불어 간병 요양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기 위해 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간병서비스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이지만 국가와 병원이 책임지지 않고 있어 사적 영역으로 방치되고, 모든 책임은 환자와 간병인에게 전가되어 왔다. 또한 간병 인력의 공급과 관리를 직업소개소나 파견업체가 담당하게 되면서 의료서비스의 질과 간병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조건에서 간병 노동자의 경우 간병제도화에 있어서 ‘건강보험 급여화’와 ‘간병노동자 직접 고용’을 핵심 요구로 꼽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2009.12)으로 “병원 내 간병서비스를 비급여 대상에 포함, 사적거래가 아닌 ‘병원을 통한 공식적 서비스’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상은 총체적, 포괄적 간호간병서비스 중 간병서비스만을 따로 떼어 이에 대한 급여만을 민간의료보험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민간의료보험이 보장하는 급여 범위에 혼란과 포괄적 간호간병서비스 제공 체계와의 부조화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으로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면 보험료 부담을 할 수 있는 이들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간병 서비스가 제공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민간의료보험사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 간병서비스 수급자격을 관리하려할 것이고, 간병서비스 제공 기간 등에 엄격한 제한을 둘 가능성이 높아 서비스 수급 장벽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적인 인력은 파견이 허용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간병 서비스의 급여를 민간의료보험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간병서비스만은 파견과 간접 고용을 용인,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미이다. 지금도 병원에서는 인건비 절감과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일상적 교육, 훈련, 지도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직접 고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럴 경우 병원이 직접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보다는 제 3의 인력 파견 업체에 의한 외주 형태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간병서비스 질 하락과 더불어 간병인의 노동권 문제가 더욱 증폭될 것이다. 또한 간병서비스를 비급여로 제도화하여 민간의료보험으로 해결하게 되면 행정 당국의 적절한 개입과 관리가 어렵게 된다. 현재 대부분의 건강보험 비급여 서비스에 대해서 행정당국이 개입할 수단을 가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간병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로 간병서비스 질 관리를 위한 정책적 개입이 어려워질 경우 서비스 질 하락과 간병 노동자의 노동권 후퇴는 더욱더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듯 간병서비스를 건강보험 비급여화로 제도화하는 것은 기존의 병원 서비스 문제점(간호간병 서비스 제공과 관련하여 지도, 감독 체계 부실, 서비스 공급 인력의 질 문제, 총체적, 포괄적 간호·간병서비스 제공 부재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형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병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간병서비스의 질 역시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자나 간병 노동자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공식적 노동으로 간주되고 있는 간병 노동을 제도화하면서 ‘건강보험급여화’와 ‘간병노동자 직접 고용’을 핵심으로 하여 간병 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고, 간병 노동자의 노동권과 서비스의 질 향상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간병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간병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각계에서 여러 활동들이 전개되었다. 한 축은 법률적·제도적 대응이고, 다른 한 축은 간병 노동자 당사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조직해내는 활동이다. 우선 법·제도적 대응 쪽으로는 여성 단체, 간병단체, 노동단체 등이 함께 구성한 돌봄 연대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2010년 5월 구성된 ‘돌봄서비스 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이하 돌봄연대)는 간병인, 가사도우미, 산후관리사, 육아도우미 등을 돌봄 노동 종사자로 보고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돌봄 노동자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시급한 것으로 보고 고용·산재 보험 적용 특례조항을 통해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돌봄연대는 개정법안 마련 외에도 법 개정을 촉구하는 온라인 행동과 캠페인, 언론 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특례조항 요구는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확보에 있어 필요한 부분이지만 가장 시급한 요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장애인활동보조인, 산모신생아도우미, 노인돌보미 등 돌봄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돌봄연대의 활동은 그 방향에 있어 돌봄 노동자 스스로의 조직화와 투쟁이 상대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흐름으로 간병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이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전국 각지에 있는 약 700여 명의 간병인 노동자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가 설립되고, 2003년 서울대병원의 일방적인 간병인무료소개소 폐쇄에 대한 대응투쟁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인 조직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경북대병원 투쟁이 이어졌고 대구, 군산, 익산, 충북, 제주, 강원 지역의 병원 및 시설에서 실태조사, 공청회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인원은 많지 않지만 산재적용과 체불임금 지급 등의 요구를 가지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2011년 현재 따끈따끈 캠페인단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서울대병원 무료소개소 폐지에 맞선 투쟁의 결과, 그 성과는 노동조합에서 직접 무료소개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간병노동자가 무료소개소를 통해 직업 알선을 받으려면 간병 분회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방식이다. 무료소개소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소개소와 같은 중간착취(알선료)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무료소개소를 통해 조합원으로 만난 간병인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상호 교육하는데 있어서도 용이한 이점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중간 소개소라는 구조적 위치에서 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는 ‘직업안정법’을 ‘고용서비스 활성화 등에 관한 법률’로 개악하는 등 중간착취 시장 확대 시도를 하고 있다. 직업 소개뿐만이 아니라 직업 훈련, 파견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는 ‘복합고용서비스 기업’을 도입하여 민간고용서비스 기관의 육성과 대형화를 유도하고, 이를 합법화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이렇게 되면 민간고용서비스 기관들이 대량 양산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소개소가 병원과의 협약을 맺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간기관과의 경쟁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민간기관과의 비용 절감 경쟁은 직업소개를 매개로 한 노동조합의 활동을 난감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한편, 정부는 고용서비스의 공공성을 포기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무마하는 방패막이로서 사회적 기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무료소개소는 비영리단체로서 국가의 사업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활용되기 쉽다. 노동조합에서 직업 알선을 통한 조직화 사업을 할 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하고, 아울러 직업 알선 외에 주체 조직화의 다양한 경로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간병·요양 노동자가 노동과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하여 간병·요양 노동자는 비공식 영역에 속해 있거나 시설 별로 흩어져있어 조직화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물리적 조직화뿐만이 아니라 간병·요양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꿔낼 수 있는 운동주체로 조직되는 것 역시도 어려운 과제이다. 현 시점에서 간병·요양 노동자를 비롯한 돌봄 노동자 조직화 방향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간병·요양 노동자의 조직화는 그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보육, 의료, 교육, 노인부양과 같은 재생산의 책임과 비용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한편 그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시장화의 방식으로 해결함으로써 자본주의와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고자 한다. 위기 비용이 민중에게 전가될수록 개별 가족의 생존 전략은 여성의 이중노동을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성이 제공할 수 있는 무급노동이 무한히 탄력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재생산의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은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저임금 노동과 무급의 재생산 노동의 책임이 집중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정책은 저평가되어 있는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노동시장에 유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성이 집안에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저임금이라도 감사히 받고 일하라는 것이다. 간병·요양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여성인력 활용 전략의 핵심에 놓여있는 주체들이다. 정부와 자본의 전략에 대응하는 간병·요양 노동자 조직화가 여성노동권을 핵심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다. 다음으로, 정부의 불안정 노동 확산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대응이 동반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재생산 위기의 근본적 원인의 하나임에도 정부와 자본은 그에 대한 해법을 또다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유연한 일자리를 창출하는데서 찾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간병·요양 노동자 운동은 중간 착취 시장 확대를 목표로 하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대해 주의 깊게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직업 안정법 개정,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한 제한 예외대상 확대,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 근로시간저축휴가제도 등 간접 고용과 노동 신축화를 전면 확대하기위한 시도를 막아내는 투쟁 역시 간병·요양 노동자의 노동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간병·요양 노동자 스스로의 주체화가 가장 중심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간병·요양 노동자들이 스스로 본인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간병·요양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노동’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임하는 봉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는데 불만은 있지만, 집단적으로 노동권을 주장하거나 노동조합 활동 하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간병·요양 노동이 사회에 필수적인 노동이며 노동의 권리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중고령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저평가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집단으로 주체화되어야 한다. 중고령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다. 이는 나이든 여성이 일하는 것이 소일거리라는 사회적 인식에 기반 한 것이다. 작년 한 해 사회적 이슈가 되며 당당히 노동권을 주장했던 청소노동자 투쟁은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서비스 시장화, 간접 고용과 노동 신축화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 간병·요양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권리와 요구를 제기하고 노동자 간 연대를 강화하며 함께 투쟁해나가는 것이 시급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