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침략 1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3월 20일 행진'이 개최되었다. 대략 60여 나라 600여 도시에서 200만명 이상이 국제 공동행동에 참여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라크 점령 중단, 한국군 파병 철회 3.20 전세계 반전행동' 집회가 서울을 비롯한 8개 도시에서 열렸다. 당일 시위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나 아메리카에 이르렀다. 주요 국가와 도시의 시위 인원을 최대치로 잡아 보면, 미국이 뉴욕 10만, 샌프란시스코 5만, LA 2만, 시애틀 1만5천, 시카고 1만 등 300여개 도시에서 20만명이 넘게 참가하였고 캐나다 5만, 중남미 3만, 영국 10만, 로마 1백만,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2십만, 마드리드 십만, 발렌시아 2만, 프랑스 파리 2만, 벨기에 브뤼셀 1만, 그리스 아테네 1만 등 유럽 1백 5십만, 호주 지역 1만 5천, 아프리카 4천, 아시아에서 일본 13만, 한국 1만 등 15만명 등이다. 주류언론에서는 1500만 명이 참가한 작년 2월 15일 국제 공동행동보다 훨씬 부드러워졌고 규모도 작아졌다고 평했다. 그러나 올해 참여국가와 도시는 더 늘어났으며 특히 미국과 아시아에서 그 특징은 두드러졌다. 베트남이나 동티모르, 이라크에서도 연대집회가 개최되었는데, 동티모르에서는 "우리는 미국이 말하는 '해방'을 알고 있다. 미국은 수하르토의 침략과 24년 동안의 불법 점령, 20만 명의 학살과 실종을 지원했다. 우리는 같은 운명으로 고통받는 이라크의 친구들을 본다"라는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이라크에서는 정치조직, 쉬아와 수니 이슬람, 기독교, 투르크멘, 앗시리아인, 노조 등이 공동성명을 통해 "이라크인들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재앙과 고통이지만,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체코 그리고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연대의 의지를 천명하였다. 뻔뻔스러운 전쟁광들의 자화자찬 조지 부시는 20일 이라크 전쟁 1주년을 기념하는 라디오 주례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은 유엔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를 독재자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수행됐다", "이라크엔 해방의 날, 중동에는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자유를 위한 귀중한 진전이었다", "이라크전은 세계를 위해 현명한 처사였다. 사담 후세인 축출로 중동지역에서 침략의 뿌리가 제거됐으며 이 지역 국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전세계적인 반전의 물결을 외면하면서 침략과 학살, 점령을 정당화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럼스펠드는 한술 더 떠 "50년 전 미군이 피를 흘린 결과 한국은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됐다"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도 한국에서처럼 매우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각양 각색의 시위물결, '점령반대, 군대철수' 한 목소리 3월 20일 시위는 북구부터 호주와 남미까지 아시아에서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 모든 인종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풀뿌리조직에서 정당조직까지, 평화단체나 NGO와 공산주의나 아나키 조직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조직들과 대중들이 참여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각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많은 슬로건과 구호들이 터져나왔다. 스페인의 경우 3월 11일에 발생한 열차테러로 숨진 200여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부시의 충실한 동맹자인 아스나르 총리를 쫓아낸 기쁨이 공존했다. 마드리드에서는 3월 12일에 수만 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일주일이 넘도록 이 흐름은 지속되었다. 20일에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사라고사, 빌바오 등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이라크점령 중단과 스페인군 철수, 주권과 자치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플랭카드에는 "전쟁 반대" "아스나르 없는 스페인 만세" "우파의 장례식"이라고 씌어져있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호세 사라마고는 마드리드를 '유럽의 도덕적 수도'라고 묘사했다. 미국에서는 300여 도시에서 열린 반전집회에서 "세계는 여전히 전쟁반대를 외친다", "부시,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다",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라" 등이 요구되었다. 부시의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포드 반전집회에서는 "부시 탄핵" 주장이 나왔고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전쟁비용을 학교, 보건, 실업에 써야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신시내티에서 어떤 참가자는 생화학전용 복장을 하고 나와 벤치 밑이나 쓰레기통을 뒤지며 대량살상무기를 찾기도 했다. 75개 도시에서 몰려든 10만 명이 참가한 영국 런던의 집회에서는 "부시는 세계 제일의 테러리스트", "부시와 블레어 지명수배", "전쟁중단, 거짓말중단" 등의 플랭카드와 포스터가 물결을 이뤘다. 그린피스 2명은 유명한 빅벤 시계탑에 올라가 '진실을 말할 때'라며 블레어를 비난했다. 로마에는 1백만명이나 되는 가장 많은 사람이 결집하였다. 시위대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부시, 블레어를 향해 "당신들의 전쟁이 우리들의 죽음"이라며 전쟁중단을 촉구하였다. 노벨상 수상작가 다리오 포는 무지개빛 평화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을 '거대한 시위'라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6000여명의 시위대가 '점령중단', '군대철수'를 외치며 반전 집회를 벌였다. 70여개 도시에서 수천여명이 시위에 참가한 독일에서는 람슈타인 미공군기지 앞에 '학살자 생일축하'라는 플랭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만여명이 '부시, 샤론, 아스나르, 블레어: 학살자'라고 쓴 플랭카드를 들고 행진하였다. 일본에서는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하여 일본 전역에서 약 13만명이 반전시위에 나서 점령 중단과 자위대 철수를 요구했다. 51개 단체가 주최한 도쿄 히비야공원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무력으로는 해결할 것은 없으므로 철수해야 한다", "이라크 침공이후 1만 명이 넘게 숨졌고 자위대 파견으로 일본도 위험에 노출됐다"라고 성토했고 육상자위대 본대가 있는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등에서도 시위가 벌여졌다. 제3세계: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반대로! 서구와 1세계에서 주로 점령중단과 파병철수, 정부수반의 거짓말에 초점을 맞추어 시위가 진행되었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에서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 등이 결합되었고 행동도 더 급진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2000여명의 시위자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미국 정부를 규탄했고 "대량살상무기를 찾지도 못한 채 이라크 민간인만 2만 명 숨졌다"면서 "우리의 피와 영혼을 바쳐 이라크를 되찾겠다"고 성토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500명의 시위대가 경찰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까지 진격하면서 경찰의 물대포와 곤봉에 맞서 싸웠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는 8개 조직에 의해 시위가 조직되었는데, 주로 미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요구를 내세웠다. 터키에서는 12개 도시에서 시위가 개최되었다. 이스탄불에 3000여명이 모인 것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참가하여 "점령중단",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라" 등을 외쳤고, 특히 6월 26일에서 29일에 이스탄불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 대비하여 부시 방문 반대 투쟁을 펼쳤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3000여명이 만디하우스에서 아메리카센터까지 행진했다. 공산주의 정당, 노동조합, 학생단체, 여성조직들이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시민들' 깃발아래 행진하였고 미군과 동맹군 철수, 제국주의 세계화 중단을 요구하였다. 뭄바이에서는 무슬림 1만여명을 포함하여 여러곳에서 시위가 개최되었고 그 외 방갈로르, 체네, 럭나우, 캘커타 등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니카라과에서는 미국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개최되었는데 수천여명이 전쟁의 폭력뿐만 아니라 기업의 착취에 대해서도 규탄하였다. 또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산과 산업의 적"이라고 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분명히 하였다. 칠레, 산티아고 등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비슷한 시위가 이어졌다. 예외적으로 한국에서는 탄핵국면이 검열기제로 작동해서인지 그 수많은 연사들 가운데 누구도 전쟁참여를 결정하고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정권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이렇다할 비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탄핵반대 집회시간에 맞추기 위해 쫓기듯이 집회와 행진이 진행되었고 그 많은 반전피켓은 촛불집회 앞에서 내려졌다. 한편, 이라크에서는 폭력과 점령에 반대하여 수니파와 쉬아파 이슬람교도 3000여명이 바그다드에 모여 "후세인도 미국도 반대한다. 미국은 이라크 땅에서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들간의 단결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는데 쉬아파는 카다미야에서 행진을 시작하였고 수니파는 아다미야에서 행진을 하였다. 두 시위대는 중간 지점의 다리 부근에서 만났고 분위기가 고양되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는 광장으로 행진해서 점령중단과 모든 이라크인들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이날도 미군 2명이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바그다드의 연합군 주둔지역인 '그린존'에도 로켓포 공격이 가해지는 등 저항세력의 공격이 이어졌다. 침략 2년 집회를 맞이하지는 말자 세계 반전운동은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수백만에 이르는 대규모 국제 공동행동을 조직함으로써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장한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지구적 운동의 힘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스로 해방전쟁이라 부른 이라크 전쟁이 1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세계가 더욱 불안해짐으로써 부시는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부시가 취임 직후부터 이라크 공격에 집착했다는 오닐 전 재무장관의 주장에 이어 9ㆍ11 이전 알 카에다의 위협을 긴급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클라크 전 백악관 보좌관의 증언은 부시에게 타격을 입혔다. 더욱이 전쟁과 점령의 강력한 동맹자였던 스페인의 아스나르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점령중단과 파병군 철수를 공언하는 좌파 사파테로가 집권한 것과 더불어 각국에서 철군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민중들의 더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반드시 점령군을 철수시키자. 침략 2년 집회는 맞이하지 말자.PSSP ※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웹사이트와 각종 내외신을 참조하였습니다. www.indymedia.org www.unitedforpeace.org www.internationalanswer.org www.focusweb.org www.stopwar.org.uk www.occupationwatch.org www.zmag.org <박스기사> 한국의 파병지역 논란 - 미군철수, 파병철회만이 대안이다 3월 11일 국방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맡기로 했던 키르쿠크 지역 일부에 미군이 잔류하겠다고 통보해서 미국과 이 문제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미국은 한국에게 전투헬기와 탱크를 보강하도록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그 지역의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공세작전"이 불가피하며, 한국군의 전술통제 하에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려는 미국의 구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런 의사를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이라크를 방문했던 정부대표단에게도 이미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귀국 직후 황의돈 파병부대 사단장은 "책임지역에 대해 원만히 협의했다"고만 말했다. 결국 국방부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파병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19일 "키르쿠크의 치안 악화 때문에 파병지역 변경이 불가피하며, 이라크 전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지역으로는 6월말 스페인이 철군하는 남부 나자프 지역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한승주 주미대사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군의 독자주둔이 원칙이지만, 이라크 반군활동에 미군이 대응하지 않으면 반군이 그 지역으로 몰려 우리에게 안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요구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파병을 반대해온 여론은 키루쿠크 지역에 대한 말이 나올 때부터 그곳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쿠르드, 아랍, 투르크멘 사이의 종족갈등이 내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으며, 이라크 전역에서 외국 주둔군에 대한 적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가서 전투할 곳이 없으며 전투할 상대도 없다"고 말했고, 국방부는 아무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거짓말을 다시 반복하려는데 있다. 주둔 지역을 "안전한" 나자프 지역으로 옮긴다는 게 똑같은 식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나파즈가 그렇게 안전한 지역이고, 파병이 아무런 문제도 낳지 않을 것이라면 왜 스페인은 서둘러 나자프에서 철군을 하려하는가? 이미 1300여명의 스페인군은 지난해 8월 나자프에 주둔한 이후 정보요원 7명을 포함해서 11명의 스페인군을 잃지 않았는가? 나자프 시내에는 "임시헌법에 서명한 이라크 지도자들은 미국의 하수인이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고, "미군은 알라바바다"라는 시민들의 주장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한승주 대사가 은연중에 "시인"한 것처럼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동참하는 점령군에게 안전한 지역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거짓말을 거듭하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이 아무런 정당성도 없고 오히려 이라크의 불안과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어떤 포장을 달던 '점령군'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그 자체가 갈등 요인이다. 한국군 파병을 전면적으로 철회하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론과 사회운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제 노점상 서울대회 참가기 StreetNet International Congress 2004 2004년 3월 16일~3월 19일 국제 노점상 서울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02년 11월 발족한 'StreetNet International(국제 노점상 연합)'의 첫 정식 총회다. 지금까지 임시대표체계로 운영해오던 국제 노점상 연합이 정식 지도부를 선출하고, 전 세계 노점상들이 국경을 넘어선 단결과 연대로 싸워나갈 것을 선포하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10개국에서 15단체 30여명이 모였는데, 준비과정에서 한국대사관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방글라데시, 말라비의 회원들은 참가하지 못하였다. 또한 15일 전노련 이필두 공동의장이 갑작스럽게 연행돼 한국조직위는 준비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 노점상대회는 많은 성과를 남기며 성사됐다. 전 세계 노점상들의 단결과 연대의 장 전 세계 노점상들은 불법으로 매도되어 정부과 경찰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각 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각 국 정부에 맞서 국제노점상 연합에서 공동 대응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노점상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가내노동자, 이주 노동자, 폐지 수집 노동자 등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선포했다. 16일 국제 노점상 연합 개막식 각 국 대표들과 전노련의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성사됐다. 한국의 사회단체 및 조직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17일 국제노점상 연합 총회 국제 노점상 연합 초대의장으로 전노련 김흥현 의장선출 향후 3년 간 국제 노점상 운동을 이끌 공식 지도부로 한국의 전국노점상연합 김흥현 의장이 선출되었고 규약개정안과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아직 안정적인 조직운영이 어려운 조건에 있는 나라들이 많은 가운데, 한국의 청계천투쟁을 비롯한 투쟁사례는 각 국 대표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제출되었다. 또한 그들은 현재 국제 노점상연합이 포드의 지원을 받는 등 재정자립이 어려운 데 비해 한국의 전노련이 회원들의 회비 등을 통해 재정 독립을 이루어 운영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전노련은 국제노점상연합이 장기적인 전망아래 재정자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기했고, 국제노점상연합은 한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노력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전노련과 전노총련이 통합해 하나의 조직으로 거듭난 것도 좋은 평가를 낳았다. 이 외에 대륙별 운영위원 배치, 코디네이트 조항을 삭제하고 사무총장으로 통합할 것 등을 대의원 안건으로 제출하려 했으나 사전 5개월 전 안건 심사문제로 제출되지 못하였다. 18일 노점상 정책 토론회 / 사회진보연대-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의 간담회 19일 국제노점상연합 페스티벌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국제노점상연합 페스티벌이 열렸다. 풍물시장은 청계청 노점상들이 쫓겨난 후 전노련의 투쟁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터다. 풍물시장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문화제를 했다. 전노련 회원들이 함께 참여해 집회를 하고, 한국음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흘 간의 일정은 다음과 같은 총회결의문으로 외화되었다. 총회 결의문 1>비공식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동권와 복지를 요구하면서 투쟁할 것이다. 또한 자기 지역과 나라, 더 나아가 전 세계 발전을 위해 노동조합운동 다른 활동가들과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결의한다. 2>외국인과 이주 노점상들 : 외국인 비공식 상인들이 당국의 탄압을 받으며, 뇌물을 요구받고 쫓겨가기 쉬운 처지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우리는 각 국의 노점상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무역을 하고 그러한 무역이 노점상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적절한 조건들을 개발할 것으로 결의했다. 또, 2004년 6월 국제노동대회(ILO의 International Labour Conference)에서 외국인 노점상들이 당면한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알려낼 것을 결의했다. 3>아동노동: 우리는 ILO의 최소연령협약 제138호와 최악의 형태의 아동노동에 관한 협약 제 182호를 지지한다. 우리는 모든 아동이 학교에 다닐 권리를 지지하며, 소녀들의 동등한 권리를 증진할 것이다. 아동들이 어른-가족을 위해 일해야 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성인 노점상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노점상들의 근무지에서 가까운 곳에 저렴한 탁아시설 설치를 추진할 것을 결의한다. 4>정부의 탄압과 단속에 대한 투쟁: 우리 회원들 중 다수가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단속을 당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이 저해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 노점상들에 대한 모든 형태의 탄압에 맞서 부단히 싸울 것이다. 여성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빈곤한 노점상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데, 여성들이 당하는 성폭력을 비롯한 노점상들이 겪는 문제들을 널리 알려낼 것이다. 정부 당국이 노점상들, 선출된 노점상 대표자들과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로 결의했다. 비공식 부문 간담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함께 국제 노점상 대회에 참가한 단위 중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인도의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남아프리카공화국의 SEWU(Self-Employed Womens Union), WIEGO(Women in Informal Economy Globalizing and Organizing)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공식적인 대회가 끝나고 조촐하게 모인 자리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각 단위들의 간략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인도의 SEWA는 1972년에 창립된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인도 전체 노동자 중 단지 8%만이 공식부문에 종사하고 92%에 달하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가내노동/건설 일용직/노점상/폐품 수집 등의 비공식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는 것이 인도 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SEWA 부위원장이 말하였다. SEWA는 활동의 주요 목표로 완전고용을 내세운다. 완전 고용은 충분한 소득, 육아/주거/보건 등의 사회적 보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고용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SEWA는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지역에 기반한 소규모 회의들을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집행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 SEWA의 협동조합은 100여개이며, 예술가, 가축업, 농업, 서비스 조합 등이 있다. 신용협동조합은 1974년에 설립되었으며 여성만이 가입하여 예금, 대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1995년에 SEWA가 주축이 되어 노점상 부문 국제회의를 소집하여 노점상 합법화 쟁취를 의제로 내걸고 회의를 진행하였고 이후 노점상 국제연맹 Street net이 창설되었다. SEWA의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 조직화 운동은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SEWU, 예멘의 WEEA, 터키에서 동일한 문제 의식을 가진 조직들이 생겨나면서 확산되고 있다. SEWU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가고용여성노동자협의회라고 한다. SEWU는 가사 노동과 노점 등의 생계를 병행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여성들이 직면하는 폭력에 대항해서 싸운다. 여성 능력 고양을 위한 교육/훈련으로 여성 그룹을 형성해서 문맹 퇴치, 글 배우기, 기술 훈련, 컴퓨터 교육 등을 하고, 여성들의 활동력을 배가하기 위해 워크샵을 개최하고 노동자 대학도 운영한다. SEWU는 시당국에서 노점상 정책을 채택하는데 개입하여 시당국과 협상력을 높이면서 노점상들의 권리를 위해 여러 정책적 돌파구를 만드는데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한다. SEWU는 비공식 영역과 관련된 이슈와 활동에 있어 SEWA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다. 앞서 SEWA와 SEWU 활동가들이 모두 여성이었는데 한 남성 간담회 참석자는 자신을 위고 활동가라고 소개하였다. 위고는 미국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비공식 부문 노조를 지원하고자 연구 조사 작업을 수행하는 단체라고 한다. 조직화/도시 정책/통계의 3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진행된 간담회 자리라 시간도 적고 여러 한계가 있었던지라 그리고 각 단체들에 대한 사전지식 및 간담회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간담회는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점과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여성의 빈곤과 노동의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SEWA나 SEWU의 이러한 시도들은 주목할 만하다. 간략한 간담회를 보충하고자 SEWA에 대한 소개를 담은 글을 참고자료로 덧붙이고자 한다. 빈곤에 맞서는 여성들의 자기조직화: SEWA(Self-Employed Wonen's Association) "빈곤과 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 사회진보연대여성위(준), 진보평론 2003년 여름호 중에서 발췌 SEWA는 인도의 빈민, 자가고용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이다. 이는 1920년에 설립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섬유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섬유노동자연합(TLA)로 부터 출발했다. 이 노동조합은 마하트마 간디가 이끌었던 1917년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에 그 기원을 갖는다. 1954년에는 이 노동조합에 페미니즘적인 맹아를 제공한 아나수야 사라파이에 의해 여성분파가 조직되었다. 이 여성분파는 가내 제분 노동자들의 부인들을 지원하고 훈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68년까지는 제분노동자들의 부인과 딸들을 위해 봉제, 편물, 자수, 방적, 인쇄, 타이핑 및 속기 수업을 개설했다. 1970년 초반에는 여성 봉제노동자들의 불만과 감독관에 의한 착취의 양상을 조사하면서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조사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수많은 착취의 사례들이 드러났고, 이러한 상황이 정부의 정책에는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다. 그러던 중, 의류 판매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고충사항을 가지고 여성분과를 방문하게 되었고, 100여명의 여성ㅇ들이 참석하는 공식 회의가 조직되었다. 공원에서 이 회의가 열리는 동안, 군중속의 한 여성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으로 1971년에 자가고용노동자 연합인 SEWA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여성들은 SEWA가 노동조합으로 설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가고용 노동자들이 조직된 역사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SEWA의 첫 번째 투쟁은 노동조합 설립허가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노동부는 SEWA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상대해서 싸울 고용주가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SEWA는 노동조합은 고용주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단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했고, 마침내 1972년에 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다. SEWA의 구성원들은 고정된 고용주-피고용인의 관계하에 놓여 있지 않은 행상, 노점상(야채, 과일, 생선, 달걀등의 식료품 및 가재도구, 옷 등을 판매), 혹은 가내수공업, 가사도우미 여성들이다. 인도 GDP의 64%가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기여로 형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조직된 노동자들처럼 안정적인 소득과 복지 혜택을 비롯해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SEWA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 소득, 식량에 있어서 안정성과 거주지, 보건의료,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보장을 쟁취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의사결정에 있어서 자율성과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SEWA는 크게 두 가지의 전략을 취한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성들에게 부과된 억압과 제약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하는 독자적인 대안적 경제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이다. SEWA는 협동조합, 농촌 빈곤 감축 프로그램, 사회적 서비스 제공자들의 조직, 저축 및 신용 프로그램 등을 독자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스스로 고용을 창출하고, 여성들에게 육아 등의 재생산 노동이 사회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조직하며, 빈곤한 여성들을 지원한다. SEWA 내에는 유제품 생산, 장인, 서비스-노동, 농업, 판매 분야의 약 84개의 협동조합이 있으며, 11, 610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의 재산에 대한 지분을 가지며, 동시에 일자리를 제공받는다. 한 명이 한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소속되는 것이 가능하며, 각각의 협동조합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노동자 실행위원회를 통해 운영된다. '농촌지역 여성과 아동의 발전(DWCRA)'은 정부가 지원하는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그룹이다. 각 그룹은 15-20명의 빈곤선 이하의 농촌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SEWA내에는 이러한 그룹이 181개 있고, 2,981명이 이러한 그룹에 속해있다. 각 그룹은 25,000루피를 제공받아 스스로를 부양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의 종자돈으로 사용한다. 또한 SEWA내에는 '사회적 서비스 제공자들의 조직이 있다' 보건의료 혹은 육아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6개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육아를 비롯한 보살핌 서비스를 제공해줌과 동시에, 스스로는 일자리를 얻는다. 또한, 농촌지역에서 여성들은 스스로의 저축 그룹을 형성하여, 집합적 자본을 스스로 운용한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그룹을 통해서 여성들은 자신의 명의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 SEWA는 빈민 여성들이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얻게 되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건강을 보장받고, 육아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 일정한 거주지를 갖게 될 때 여성들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건을 보장받기 위해 '완전한 고용'과 '독립'을 목표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목표의 달성 정도와 SEWA 활동의 진척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질문을 척도로 활용하고 있다. ① 일자리가 더욱 확대되었나? ② 여성들의 소득이 늘었는가? ③ 여성들은 식량과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고 있는가? ④ 건강상태는 양호한가? ⑤ 육아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가? ⑥ 거주지가 있는가? ⑦ 자산이 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자기 명의로 된 저축, 토지, 집, 작업장, 작업도구, 자격증, 신분증, 협동조합에서의 지분 등) ? ⑧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증대되고 있는가? ⑨ 노동자들의 지도력은 늘어나고 있는가? ⑩ 집단적인, 개인적인 독립을 성취했는가? SEWA의 이러한 시도는 여성들 스스로가 운동을 통해 힘을 얻고,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기여를 가시화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요하는 여성들의 빈곤과 불평등의 상황을 뛰어 넘는 대안적인 사회적, 경제적 질서를 운동을 통해서 형성해 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PSSP
- 미국의 북한자유법안,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북한 인권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3월 15일부터 4월 23일까지 열리는 제 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규탄결의안’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59차 대회에서도 다루어진 적 있는 북한인권규탄결의안은 이 번에는 더욱 강력한 조치로, 인권위 산하에 ‘북한인권 특별 보고관’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매년 한 번씩은 거들먹거리는 북한인권문제이지만, 올해에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유엔인권위에서의 결의안이 결국 미국의 2003년 11월에 입안되어 현재 하원에 상정된 북한자유법안(North Korea Freedom Act of 2003, 이하 NK자유법안) 통과의 도덕적 명분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NK자유법안은 “탈북자 및 북한 강제수용소에 대한 CIA 비밀 보고서 작성, 북한주민에 대한 우선난민지위인정, 대량살상무기정보센터 설립, 탈북지원단체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 대북방송 강화, 대북협상에서의 인권문제 명시화, 대북경제제재의 지속, 미국원조의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들 내용 대부분은 기존의 국제법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공연히 북한 체제 붕괴 및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인권 문제 쟁점화 전략에 따라 한국에서도 북한인권 문제가 다시금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유엔인권위원회 투표에서 기권 할 방침인데, 이를 두고 보수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눈치만 본다며 햇볕정책의 기만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고, 자유주의적 단체들 역시 인권 문제는 정치적 사항과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한다며 북한인권개선에 한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과연 어떠한 맥락에서 북한인권문제가 제기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북한 인권문제의 이슈화는 ‘인권’의 쟁점이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무리 그래도 ‘북한의 인권 상황이 참혹하다면 이를 당장 제기함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 문제를 앞세운 1998년의 미국의 이라크해방법이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 중 하나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3월 2일 있었던 『북한자유법안의 문제점과 시민사회의 대응』토론회의 유정애씨의 발제문에 따르면, NK자유법안은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가 배후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NED는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하에서 CIA가 수십 년 동안 하던 역할을 비영리 NGO의 이름을 빌어 공공연히 진행한 단체로,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 또는 반미 정부를 교체하기 위해 칠레, 나카라과, 코스타리카, 몽골리아에 수백만 달라를 지원하는가하면, 근래에는 쿠데타 시도를 했던 베네주엘라 반정부그룹과 노동조합에 수십만 달라를 제공하였다. NED의 목표는 사회주의적 혹은 민주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는 운동들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NED는 한국의 북한 인권단체들과 관계가 깊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경남대 극동연구소,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NED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특히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경우 매년 NED의 재정지원 아래 북한 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주도적으로 주최함으로서 NED의 국제회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의의 참가자들이 NK자유법안의 입안을 주도한 북한자유연합, 북한인권미국위원회 결성의 주축이 되었다, 물론 이들 단체의 중심 멤버들이 워싱턴의 매파들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NK자유법안은 매년 1억 4천만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은 탈북지원, 대북방송, 북한인권단체 들에게 지원될 예정이다. 즉 NED가 지원하던 재정을 좀 더 확대하고, 인권을 명분으로 한 대북 봉쇄 강화, 북한 정권 붕괴라는 NED의 전략이 미 정부의 대북전략의 일반원칙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과 비젼을 공유하는 NED의 NK자유법안 식의 대북전략은 점차 그 세를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법안 역시 약간의 수정을 거치겠지만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NK자유법안을 추진한 단체들, 그리고 법안이 목표로 하는 바를 보더라도 이 법안이 미국 네오콘의 대북전략의 하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북한인권과 관련한 결의안 역시 미국의 이러한 전략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당장 유엔인권위의 논의에서 북한인권 악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미국의 장기간에 걸친 경제봉쇄에 대한 논의를 제외한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제국주의의 인권 향상 방법은 ‘미국식 정부’, ‘미국에 순종하는 정부’를 세워내는 것이다. NED가 목표로 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천이 결국, 반미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작이었듯이 말이다. 우리는 현재 북한인권을 제국의 논리에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민중의 논리, 한반도 인권과 평화의 논리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반도의 인권은 북한에 대한 봉쇄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질서 재편을 거부하고, 한반도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민중들에 의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갈 때 향상 가능할 것이다.PSSP
3.20 세계 곳곳의 반전행동 사진들 모음(2)
3.20 세계 곳곳의 반전행동 사진모음
지난 2월 27일 오후 3시 민주노동당 회의실에서 열린 자유무역협정 WTO 반 대 국민행동 토론회 '운동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자료집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4차 세계사회포럼 활동 보고 및 평가 토론회 1부 발제문: 4차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평가 - 다른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 제4차 세계사회포럼을 다녀와서 (유영 주, 노동자의힘) - 제4차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이 남기고 간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쟁점 과 전망' (박준규, 아래로부터세계화) - 제4회 세계사회포럼과 인권운동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 제4회 세계사회포럼 평가 (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토론회 2부 발제문: 운동으로서 세계사회포럼,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 운동으로서 세계사회포럼, 우리 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종회, 자유 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 대안세계화운동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메모(이창근, 민주노총) ➡ 참고자료 - 사회운동 및 대중조직의 투쟁호소문 - 뭄바이 제4차 세계 사회 포럼(WSF Mumbai): 다른 (미디어) 세상을 향한 국제주의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 - 세계사회포럼 영화제 참관기 (이진영, 인권운동사랑방) - 세계사회포럼 민주노총 참가단 활동 보고 - 세계사회포럼 공무원 노조 참가단 총평
사회진보연대 3월호에 실린 '이라크는 지금'이라는 제목의 이라크 현지상황 정리 글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승리할 것이다. 7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오늘로 24일(3월10일 현재)차 단식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감옥보다 더한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곳 화성 외국인보호소, 여수출입국관리소 내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그리고 명동성당 천막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왜 머나먼 이국땅에서 극한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가.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노예인가? 고용허가제의 반노동자성에 대하여 한국정부는 2003년 7월 31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허가제)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실제로는 이미 40만을 넘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통제를 위해 새로운 이주노동자 인력관리제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2004년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한국에서 노예제도라 불리어 온 '산업연수생제'와 함께 실시된다. (산업연수생제도의 실패를 인정하며 제정된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제도와 병행 실시된다는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산업연수생제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노예법이다. 그 첫 번째 문제는 '사업장 이동 자유의 제한'에 있다. 사업장 이동은 휴업 및 폐업 그 밖에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제25조 2항)에만 허용되며 그마저 최대 4회까지만 가능하다.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변경을 신청한 날부터 2월 이내에, 근로계약이 종결된 후에는 1월내에 사업장 변경신청을 하지 않으면 역시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가 된다. 사실상 고용주의 해고는 자유롭지만, 이주노동자 스스로는 다른 업체로의 이전 및 변경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 열악한 노동조건, 성폭력의 위험에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노예처럼 참고 일해야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고, 그 시기가 3년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제9조 및 제18조)이다. 이것은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상태로 고정시킨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재계약을 조건으로 한 임금 및 노동조건의 하락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브로커)비용이 1,000만원 수준이다 보니 이것을 갚기에 3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따라서 한국에 체류해야 하는 기간이 어쩔 수 없이 늘어난다. 우리를 헌 기계처럼 버리려는가? 고용허가제 정착의 가장 주요한 문제인, 미등록노동자 문제에 대한 조처로 정부는 체류기간에 따른 선별합법화 조치를 취하였다. 한국 체류 4년 이상자는 무조건 한국을 떠나야 하며, 3년 이상 4년 이하는 출국 후 재입국, 3년 이하자에게는 등록절차를 통해 합법체류를 보장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2003년 11월 16일부터 매달 10일간 대대적인 합동단속, 강제추방을 통해 불법 체류자 문제를 해소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국 정부는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월말까지 총 3차례의 합동단속을 실시하여 약 3,000명의 이주노동자를 강제추방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자진 출국자들을 포함해서 10,000명이 조금 넘는 이주노동자들만이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합법체류를 보장받은 이주노동자들 조차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유린의 문제로 계속 불법 체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현재(3월 2일) 법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은 13만6,000여명이다. 자진출국과 강제추방,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1월 17일, 합동단속이 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자 한국정부는 자진출국 시한을 2월까지 연장하고 고용허가제로 다시 들어올 수 있게 해준다는 소위 '합법화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다시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길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자진출국을 선택할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야 하는 모험을 선택할 수는 없다. 정부의 기만적인 자진출국 유도 정책에 맞서 '강제추방저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이하 농성투쟁단)은 자진출국 거부 서명운동을 선언(2월10일)하고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조직했다. 2월 21일 법무부는 다시 강력한 '단속추방'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자진출국 기간을 연장했음에도 오히려, 기한 연장 이전 출국자수(일 평균 90명)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183명(일 평균 42명)만이 한국 땅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농성투쟁단의 발의로 진행되고 있는 자진출국거부선언운동을 직접 언급하며, '자진출국전면거부운동을 방치할 경우 국가공권력 실추는 물론, 금년 8월부터 시행 예정인 고용허가제 도입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고, 따라서 '정부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거나 '불법집회나 시위에 참가하는 불법체류외국인은 전원 검거하여 강제퇴거'시킨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지난 세 차례 합동단속이 실패했고, 마지막으로 내 놓았던 '자진출국 후 고용허가제로의 재입국'안 또한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외국인보호소 내 인권 유린과 이주노동자 운동 탄압 1월 7일 (12월 26일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연행된) 비두와 자말의 강제추방에 항의하며 진행된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 집회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농성단 대오를 침탈하였다. 사람들을 몽둥이로 내려치고 가스총까지 쏘며 깨비(네팔)와 헉(방글라데시)을 강제 연행하여 출입국 관리소에서의 심사과정을 생략한 채 화성외국인 보호소로 이송해갔다. 그리고 2월 15일, 농성단 대표 샤말 타파(네팔)가 자진출국 거부 선언운동을 제안하기 위해 혜화로에서 필리핀 공동체를 만나고 있던 도중 5명의 괴한에 의해 납치되었다. 자진출국 거부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미행을 통한 표적단속이었다. 샤말은 곧바로 화성이 아닌 여수출입국 관리소 내 외국인 보호시설로 이송되었다. 농성투쟁단은 곧바로 2월 17일 출입국 관리사무소 앞 표적단속 규탄, 이주노동자 단식 투쟁 선포 대회를 진행했다. 수도권 일대에서 총출동한 80여명의 출일국 관리소 직원들이 전경의 비호를 받으며 또다시 집회 대오를 침탈하여 농성단의 굽타(네팔)를 연행해 갔다. 2월 17일 총 9명(여수보호소 1명, 화성 외국인 보호소 4명, 명동성당 농성단 4명)의 이주노동자들 강제추방 중단, 강제연행된 이주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그리고 2월 23일 화성 외국인 보호소 내 단식 투쟁이 빠르게 확산되어, 화성보호소에서만 총 17명의 이주노동자가 단식투쟁을 벌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단식투쟁이 확산되자 외국인 보호소 내에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극에 달했다. 6명의 이주노동자를 독방에 감금하고, 면회를 통해 전달한 단식에 필요한 약품들을 7일째 지급하지 않고, 환자들 대해 의사진료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3월 3~4일 이틀간 단식에 동참한 11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여권, 여행자 증명 등 아무런 신분증명서도 없는 상황에서 불법적으로, 건강상태(각혈과 하혈)조차 고려하지 않으며 강제 출국시켰다. 한국 정부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농성투쟁단을 전원 검거해 강제추방 시키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농성투쟁단이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안산, 김포, 수원, 의정부, 성수 등의 지역에서 강력한 표적단속을 실시해 이주노동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분명 농성투쟁단과 외부 이주노동자간의 단결을 막고, 농성투쟁단의 투쟁을 고립시키려는 의도이다. 이주노동자가 주체인 이주노동자 운동, 그 희망찬 미래를 위해 어느새 들머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을 훌쩍 넘어섰다. 강제추방 저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기치로 연수제도 폐지,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쟁취, 사업장 이동의 자유 확보, 강제 연행된 이주노동자 전원 석방을 요구로 우리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으며 투쟁은 더욱 확산되고 있고, 지지받고 있다. 농성단의 대표를 연행하고 표적단속을 자행하고 보호소 내에서 인권유린을 자행해도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 분쇄와 전면합법화를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22일 백일기념 집회에서 '사회단체와 연계해 집회 참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연행'하겠다는 정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약 7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3월2일 4차 합동단속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결코 13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으로 내쫓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섰다. '우리는 쓰다가 버리면 되는 헌 기계가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 노동자다' 외치며, 아무런 대책 없이 기계가 버려지듯 나라로 쫓겨 나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더욱 양산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이미 이주노동운동의 주체는 이주노동자이다. 현재의 농성투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리되더라도 투쟁은 승리할 것이며, 미약할지라도 이주노동자의 노조로서 전국조직화를 위한 흐름이 시작될 것이다. 많은 어려움들이 존재한다. 나라별 조직화의 문제, 센터 중심으로 구축된 이주노동자의 문화를 변화시켜나가는 문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의 관계문제, 필요한 지원과 지지 등. 화성외국인 보호소에서 들불처럼 조직된 단식투쟁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시작이 이주노동자운동을 한국노동운동의 주체로 만들어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