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3차 각료회의는 ‘새로운 무역협상 라운드’를 출범시키는 것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내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세기의 끝자락을 뒤흔든 이 사건은, 4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멕시코 칸쿤에서 재현되었다. 지난 9월 10~14일에 열린 WTO 5차 각료회의 역시 협상이 결렬된 채 종료된 것이다. 5차 각료회의는 2005년 새로운 무역 체제를 출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중간점검하고, 앞으로의 구체적인 협상 일정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농업협상과 비농산물 관세인하에 대한 세부 협상방식의 기본 골격을 채택하고, 이른바 ‘싱가포르 이슈’의 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각료회의에서 개도국들은 ‘G22(농산물수출개도국그룹)’, ‘ACP(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 연안국가들)’과 같은 그룹을 형성하여, 도하개발의제와 이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에게 불만을 강력하게 표출하였다. 2년 전 미국과 유럽연합은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개도국과 최빈국의 관심사항을 대폭 반영하여, 이들 국가도 자유무역의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이 협상라운드의 출범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개도국을 위한 무역협상이라는 도하개발의제에 개도국들이 불만을 터뜨려 결국 협상이 결렬된 상황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드러내주었다. 정작 미국과 유럽연합은 농업협상에서도, 싱가포르 이슈에서도 개도국과 최빈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자세로 일관했다. 식량, 에너지, 의료, 교육과 같이 민중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를 상품화하여 자본의 이윤놀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는 도하개발의제는 애초부터 ‘개발’과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면서 전 세계 민중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해 갈 뿐. 1. 무역 ‘자유화’는 니들만? : 농업협정과 미국․유럽연합의 보조금 1-1. 미국․유럽연합 vs 농산물수출개도국 vs 농산물수입국 무역을 완전히 자유화한다는 도하개발의제의 모순은 농업협상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은 남반구 대다수 국가가 관세를 인하하고 국가보조금을 감축하여 무역장벽을 허물도록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국의 농업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년에 수 천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유지하겠다며 ‘무역 자유화’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초국적 메이저 농기업들이 국가의 보조금을 바탕으로 생산비를 절감, 농산물 가격을 낮추어 덤핑이 가능하도록 하고, 제3세계에는 전폭적인 시장개방을 유도하여 결국 제3세계의 농업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연합의 목표인 것이다. 농업협상에서 유럽연합과 미국은 보조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럽연합의 경우는 수출보조금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올해 마련된 공동농업정책(CAP)을 변경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GNP와 경제활동인구를 구성하는 비율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적음에도, 무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상황, 특히 공화당 지지층과 공화당으로 흘러가는 정치자금이 대부분 농기업에서 형성되는 상황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부시 정부로서는 사활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시애틀 각료회의와는 사뭇 다른 협상 구도가 형성되었다. 3차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농산물 수출국 그룹(미국, 호주 등)은 전면적인 시장 개방을 이끌어왔고, 유럽연합과 일본이 주도하는 NTC그룹(비교역적 관심사항)은 수입국의 입장에서 미국에 맞서왔다. 당시 관세 감축의 폭과 기간을 두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이 마지막까지 조율되지 않아 결국 결렬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번 5차 각료회의를 앞두고, 케언즈 그룹에 속하였던 개도국들은 G22(농산물 수출 개도국)라는 그룹을 형성하여, 미국에 농업보조금을 철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수출보조금과 관련해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유럽연합은 NTC그룹을 떠나 미국과의 공조를 추구하였다. 이제 농업협상에서는 ‘미국과 유럽’, ‘G22’, ‘농산물 수입국(한국, 일본 등)’이라는 더욱 복잡한 구도가 그려진 것이다. 2-2. 농업협정의 쟁점과 협상 경과 농업협정을 둘러싼 대략의 쟁점은 이렇다. 농업협정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이미 설정된 의제라고 하여 도하개발의제가 출범 전부터 협상이 진행되어왔다. 2003년 3월 31일까지 ‘협상세부원칙’을 확정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에 앞선 2월에 제출된 하빈슨 초안(1차안)을 가지고 3월말까지 협상을 했으나, 합의에 실패하였다. 지지부진하던 협상은 뒤이은 7월 말 몬트리올 비공식 각료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논의를 진전하기 위해 합의안을 마련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8월말 카스티요 일반이사회 의장이 2차안을 제출하였다. 2차안은 개도국의 주된 무역 통제 수단인 관세는 대폭적인 인하를 유도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가격보전 직접지불’, ‘최소허용보조’, ‘생산계획하 직접지불’과 같은 국내보조와 수출보조는 미국과 유럽의 합의를 바탕으로 그 감축 비율을 대폭 완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바로 이 2차안을 가지고 협상에 들어갔으나, '농산물 수출개도국'와 수입국그룹이 미국과 유럽의 입장만을 중심으로 작성된 2차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인도, 중국, 브라질, 태국이 속해있는 농산물 수출 개도국 그룹은 생산계획하 직접지불 철폐, 수출보조금 철폐, 미국․유럽연합의 합의안에 제안된 관세인하방식은 선진국에게만 적용하고, 개도국에게는 우루과이라운드방식을 적용할 것, 특별품목 규정 부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수입국 그룹은 관세상한 철폐, 관세할당량 증량 반대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마련된 3차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특별품목 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개도국뿐만이 아니라 선진국에게도 적용되도록 확대되어, 수출개도국 그룹은 반대입장을 제출했다. 보조금과 관련해서는 생산계획 하 직접지불이 일정정도 감축하는 내용만이 포함되어, 여전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수출보조를 인정하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수입국이 요구한 관세상한 철폐와 관세할당량 증량 반대 요구는 포함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과 유럽연합의 국내보조와 수출보조를 폐지하라는 농산물 수출개도국의 요구를 미국과 유럽연합은 수용하지 않았으며, 특히 막후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총력을 쏟아 부었다. 미국은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들을 상대로 비공식 회의를 갖고, 수출개도국 그룹에서 빠져나오면 수입 관세를 인하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수출개도국 그룹은 역시 여전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을 중심으로 작성된 3차안을 반대하였다. 결국 이번 각료회의에서도 농업협상 세부원칙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진행될 협상은 최종 제출된 3차안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2-3. 미국의 면화보조금 한편, 미국의 보조금 문제는 ‘면화’ 문제에서도 불거졌다. 면화수출이 국가 소득의 대부분인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베닌, 차드, 말리 4개국은 미국의 면화 생산자들이 보조금을 바탕으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들은 소득이 1년에 10억 달러나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며, 면화에 대한 보조금 철폐와 이로 인한 손해에 대해 보상 조치를 요구하였다. 또한 이를 5차 각료회의의 공식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 4개국은 환금성 작물인 면화의 생산을 늘리는 조건으로 세계은행의 경제개발 특별 융자를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이 보조금으로 면화수출을 확대하자 면화의 국제가격이 폭락해 국가 경제 붕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말리의 대표는 미국의 면화보조금은 말리의 GDP를 상회하는 연간 30~40억 달러에 달해, 이 금액은 미국이 아프리카에 지원하는 전체금액의 약 3배라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보조금은 2만 5천 호의 대규모 농가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면화생산농가는 약 1천만 호에 이르지만, 대부분 영세하고, 그중 대부분은 1일 1달러 이하의 금액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아프리카 4개국의 요구는 결국 9월 10일 의제로 채택되었고,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 연안 그룹(ACP) 대표들은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 유럽연합, 호주와 같은 농산물 수출국들은 4개국의 문제제기의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조정에 나선 수파차이 WTO 사무총장도 세계은행, 국제구제금융, 세계식량기구와 연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WTO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하겠다는 입장만 밝혀, 개도국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결국, 초국적 메이저 농기업의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에 대해, 농산물 수출 개도국은 보조금을 철폐하여 자국 농산물의 시장접근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수입국은 점진적인 시장개방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최빈국은 역시 자국의 소농을 말살하는 보조금 철폐와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저항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러한 요구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결국 협상 결렬을 이끈 것이다, 3. 싱가포르 이슈 =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 보장, 자본이동의 자유화 3-1 싱가포르 이슈의 개요 ‘투자’, ‘경쟁정책’, ‘무역원활화’, ‘정부조달 투명성’ 네 가지 의제를 의미하는 ‘싱가포르이슈’또한 협상 결렬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이슈의 무역과 연계성에 대한 분석을 개시하자고 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2차 각료회의에서 결정됨에 따라 이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장 문제가 되는 ‘투자’는 지난 98년 OECD내에서 추진하려다 실패한 "MAI(다자간 투자협정)"에 담긴 ‘투자자유화 조치’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단기성 투기자본까지를 투자로 정의하고, 해외자본을 국내자본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한다. 투자 설립단계에서도 이를 위한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외환위기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유권을 철저히 보장받아 이윤을 남기고 손실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 또한 투자할 때 이행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할 수 없다. ‘경쟁’은 독과점, 카르텔 등 경쟁을 가로막는 각 국의 관행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을 의미한다. ‘무역원활화’는 ‘국제무역절차의 간소화와 조화’라고 정의되며, 통관, 수출입허가와 같은 모든 수출입 절차와 운송형식, 대금 지불, 보험과 금융의 요건을 다룬다. ‘정부조달투명성’은 정부조달 분야에 있어서의 비차별, 투명성 등을 다룬다. 그런데, 이 의제들은 소유권, 생산, 소득, 수입, 외환 거래, 지불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의 유출․입과 관련이 있는 정책들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무역 정책, 즉 상품과 서비스의 국가간 교역에 관한 규범과 규제의 내용을 초과한다. 미국과 유럽의 의도는 ‘무역’ 자유화를 초과하는 이러한 내용을 WTO 협상 의제에 포함시켜, 제3세계가 투자를 자유화하고, 초국적자본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면서 투기활동을 벌이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이렇듯 엄밀한 의미의 ‘무역정책’의 범위를 초과하는 이 이슈가 ‘무역’과 관련이 없으며, 선진국이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라며, 협상 개시 자체를 반대해왔다. 3-2. 협상 경과 지난 4차 도하각료회의에서 유럽연합과 일본 등은 싱가포르 이슈협상을 개시할 것을 요구했으나 개도국들이 이에 반대하였고, 이에 따라 각료회의 선언문에는 협상 개시에 대해 ‘분명한 합의를 전제로 5차 각료회의에서 정해지는 방식에 따라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라고 담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슈에 관한 쟁점은 5차 각료회의가 시작되기 전 도하 각료 선언문의 이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시작되었다. 선진국들은 이 문구가 ‘5차 각료회의에서 협상을 개시하되, 그 방식이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반면, 개도국들은 ‘협상 개시 여부도 논의의 대상이다’라고 해석했다. 9월 10일 각료회의 시작과 함께 중국, 인도네시아, 이집트, 방글라데쉬, 필리핀, 탄자니아, 베네수엘라와 자메이카 등 70여 개의 개도국 정부들은 싱가포르이슈 4가지 중 그 어느 것도 협상이 개시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뒤이어 9월 11일과 12일 사이 개최된 싱가포르 이슈 작업반에서는 21개국이 완강한 반대의 입장을, 14개국은 4개 이슈 중 무역원활화와 정부조달투명성만 우선적으로 협상을 개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싱가포르이슈 워킹그룹 의장인 캐나다 무역대표 페티그루는 4개의 의제를 분리 협상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는 13일에 제출된 3차 선언문 초안에 반영이 되었다. 이에 유럽연합은 농업협상에서 개도국들의 양보를 유도하고자, 4개의 이슈 중 반발이 심한 ‘경쟁’과 ‘투자’는 제쳐두고, ‘무역원활화’와 ‘정부조달투명성’에 대해 먼저 협상하자는, 일정정도의 양보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이러한 입장에 더욱 반발하며 13일 밤에 개최된 그린룸 회의(유럽연합, 미국, 멕시코, 브라질, 남아공,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케냐)와 14일 오전 30개국이 참여한 그린룸 회의에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4개 이슈 모두의 협상이 개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결국 그린룸회의가 14일 오후까지 계속되었으나,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여, 데르베스 의장은 결렬을 선언하였다. 농업협상에서 농산물 수출개도국 그룹이 미국과 유럽연합에 강력하게 대항했다면, 싱가포르이슈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연합(AU),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 인근 국가 그룹(ACP)와 최빈개도국(총 61개국) 그룹들이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이다. 4. 5차 각료회의 이후 5차 각료회의에서 개도국과 최빈국들은 ‘G22',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 인근국가 그룹’, ‘최빈개도국그룹’ 아프리카연합(AU)등으로 의견 그룹을 형성하여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협상에 반기를 들었다. 이로써 ‘자유무역의 혜택을 개도국과 최빈국이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났다. 또한 농업협상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자국의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국제 무역 규칙을 부과하는 것을 시도함으로써, 모두가 공평하게 혜택을 누리는 ‘완전한 무역의 자유화’를 이룬다는 것 역시 허구임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제시한 ‘싱가포르 이슈’는 엄밀한 의미의 ‘무역’정책을 초과하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독수리 오형제’가 알고 보니 ‘조류의 탈을 쓴 인간 오남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개도국에게 혜택을 주는 무역 자유화 협상 라운드’는 그 어느 단어도 ‘도하개발의제’를 설명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각료회의 무산 이후, 과연 도하개발의제가 정해진 바대로 2004년 말 타결되어 2005년에 새로운 무역 체제가 출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또한,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다자 협상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점에서 WTO 자체에 대한 유용성도 의심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끌어낸 5차 각료회의의 무산과, 그에 따른 WTO의 위기상황이 곧바로 세계 민중들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관세 철폐, 투자 자유화 등 WTO 도하개발의제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조치들을 지역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시도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역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FTAA(북미자유무역협정)과 함께 ASEAN+3,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등 지역 협정 체결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에 발맞추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얼마 전 APEC 정상회의에서는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여 한미투자협정 체결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한일자유무역협정 등 양자간 자유무역협정과, 중국, 아세안을 포괄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교육기관특별법을 제정하고 경제자유구역 내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도록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하는 등, 의료․교육의 시장화와 개방을 부추기는 여러 가지 법․제도 정비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니, 전 세계 민중들의 삶과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애초에 세계 사회운동 진영은 WTO 도하개발의제가 ‘식량 주권’, ‘토지와 종자에 대한 농민들의 권리’, ‘지식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 ‘의료․교육․에너지․문화 등 필수 서비스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의약품에 대한 권리’ 등을 파괴되고 있음을 비판하였고, 이러한 권리들을 민중들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각료회의 무산으로 인한 협상의 지연’이 이러한 민중들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 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각료회의의 무산을 이끌었던 다양한 개도국 그룹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도 쟁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각료회의 무산에 크게 기여한 G22을 계속 지원해 이들이 농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서비스나 공산품에 대해서도 단결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WTO내 ‘남반구연대’를 구축하도록 하자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농산물 수출 개도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보조금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하긴 했지만, 이들이 주장한 핵심이 ‘농업분야에서의 완전한 자유화를 통한 시장접근의 확대’라는 점을 볼 때, 소농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비아 캄페시나는 농업협정에 대해 소농들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조금과 관세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토지와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가 옹호되기 위해서는 식량을 상품화하여 시장의 논리에 내맡기는 WTO 에서 농업이 제외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WTO 협상 구도 내에서 어떤 세력을 지원할 것인가가 아닌, 전세계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협상을 무산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불평등과 빈곤을 확산하고, 전 세계 민중들의 제반 권리를 박탈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대안적인 세계화’를 이루어내는 것임을 확인하자.PSSP
FTA/TRIPsPlus경향을 반대한다! 의약품 접근권, 곧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맞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바로 의약품이라는 '상품'을 사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더군다나 국가 차원의 의료 보장성이 취약한 아프리카와 같은 남반구 국가라면, 에이즈(HIV/AIDS)가 창궐하고 있는 '저개발' 국가라면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의 문제는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이다. 불행히도 의약품 가격의 문제는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에 있지 않다. 의약품 가격결정의 기준은 오로지 제약자본의 이윤의 크기일 뿐이다. 이것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지적재산권(Intelluctual Property)의 일종인 의약품 특허권이다. 그리고 의약품 특허의 배후에는 지식에 부여되는 독점적 권한을 이용하여 과잉 이윤을 창출하려는 초국적 제약자본과 이를 지지 보족하는 체계인 세계무역기구 산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Agreement, 이하 트립스 협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의 선언, 미완의 시나리오 트립스 협정은 한 국가 내에 국한되었던 지적재산권 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확장해 이를 위반 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무역제제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히 초국적 제약자본의 권리장전이라 불릴 만하다. 뿐만 아니라 트립스 협정은 선진국/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의 경제적 여건, 보건 상태 차이를 무시하고 특허의 존속기간을 최소 20년 이상으로 연장하였다. 초국적 제약자본이 소유하는 의약품 특허로 형성된 독점적 가격은 대다수 제3세계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을 사실상 엄격히 제한한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은 WTO 각료회의로 하여금 ‘트립스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특별 선언문’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주요 내용은 ‘트립스 협정 중 그 어떠한 것도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 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회원국들은 강제실시를 부여할 권리와 부여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도하회의에서 이러한 ‘선언’을 끌어낸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력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선언’ 그 자체는 미국과 WTO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를 우회적으로 수용한 것이며, 몇가지 과제를 남겨두었다. 첫째, 도하선언 6항과 관련된 문제다. 즉, 강제실시는 ‘국내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트립스 협정의 규정에서 의약품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강제실시를 시행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타국에서 강제실시 된 일반약(카피약)을 수입하게 될 때(수입을 위한 강제실시) ‘강제실시의 국내적 사용’이라는 트립스 협정 조항에 어긋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 이렇듯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 국가의 선정과 질병의 범위 문제다. 원래 2002년까지 합의를 도출하기로 하였으나 미국이 질병범위를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몇가지의 질병으로 제한해야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서 기한 내 합의하는데 실패하였다. 올해 칸쿤 각료회의 전까지 제56차 세계보건기구총회를 거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최빈국간의 의견대립으로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봉합된 문제, 8․30결정 그리고 칸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른바 ‘도하 선언 6항’에 대한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결정이 내려졌다. 핵심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짚어볼 수 있는데, 1) 질병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는 않으나 2) 인도적 차원에서 자체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최빈국들에 한해 이를 저가에 공급하는 것, 이 두 가지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질병범위의 제한을 철회함으로써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8월 30일 결정이 많은 제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합의해버린 것이다. 합의문에 의하면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는 인도적 차원에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일 것이며, 산업․상업적 목적으로는 쓰일 수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이란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인도적 차원의 노력은 국제적 원조단체와 각종 기금, 그리고 각국의 원조 차원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 생산능력이 없는 국가의 의약품 공급문제는 인도적 차원의 해결을 넘어 '건강권' 보장을 위한 해법으로써 필요한 의약품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입하여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욱 큰 함정은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다. '산업․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공의 방법으로 일반약(카피약)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강제실시가 적용될 수 있는 일반약을 만들 수 있는 일반약 회사가 국영(내지 공공)제약회사인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최근 글리벡(Gleevec;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제인 항암제)의 복제약인 비낫을 생산한 인도의 낫코사도 민간제약회사였다. 즉,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를 만족시키는 공공제약회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 조항은 일반약을 생산하는 민간제약회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합의문에 따르면, 저렴한 복제약을 원하는 국가가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원활하게 시행할 수 있을 가능성은 몹시 희박해졌다. 9월 10일 열린 제 5차 칸쿤 각료회의에서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트립스와 공중보건’의 문제는 8․30결정으로 인해 별다른 논의 없이 끝을 맺었다. 5차 각료회의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당장 8․30결정이 강제적 효력을 갖진 않지만, 문제는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이 생명력을 잃었다는 데에 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은 트립스 협정이 공중보건과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공중보건에 관한 자국의 권한을 강조함으로써 트립스 협정에 대항하는 데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다. 8․30결정에 대한 저항과 논쟁이 다시 조직되지 않으면 미국은 자국의 제약자본을 비호하는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트립스 협정에서의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에서 트립스-플러스(TRIPs-Plus)경향을 강요하고 실행하고 있다. 트립스 플러스 경향은 트립스 협정보다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는 것, 즉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 철저히 제약산업의 이해가 대변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의 트립스 플러스(TRIPs-Plus) 경향에 반대한다!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윤획득을 추구하는 핵심고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무역기구가 모든 회원국에게 최혜국대우를 보장해 주는 다자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반면, 자유무역협정은 양자 혹은 지역주의적 특혜무역체제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데 최선두에 서 있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이미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을 통해 지역블럭의 경제논리를 거침없이 실현(?)한 바 있다. 미국은 진작에 세계무역기구라는 다자주의를 통한 자국의 이윤 극대화가 어렵다는 점을 간파하고, 양자 혹은 지역주의적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실질적 통상 압력의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냉전 시대의 군수산업보다도, 금융자본 시대의 금융업보다도 높은 이윤을 내고 있었던 제약 산업의 공공연한 이윤의 비밀은 바로 특허라는 특수한 담보가 있었던 것이고, 이 특허는 트립스협정에 의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에게 미국 수준의 (높은) 특허 보호를 강요하였다. 다자무역체제의 출범이 거듭 난항을 겪으면서 자유무역협정에서 트립스 플러스 경향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올해 2월경 미무역대표부가 2005년 1월 출범 예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에 대한 논평에서 2가지 요구안을 냈다. 이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행동'(Essential Action), '국경없는 의사회(MSF)', ‘건강의 전지구적 행동 프로젝트(Health GAP)’, 등은 일제히 논평과 성명서를 통해 미주자유무역지대를 통해 미무역대표부가 미주지역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방해할 강화된 특허 기준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압력을 그만둘 것을 역설했다. 그 중 문제가 되는 조항은 대략 이러하다; 1. 공공 영역과 비상사태에만 강제실시를 제한하는 문제(5.1조 (a)와 (b)) 2. 강제실시된 상품의 수출 금지(5.1조(c)) 3. 특허가 승인된 이후 4년간 강제실시 사용 제재(5.3조) 4. 국가가 적절하게 강제실시를 실시하려고 할 때 중대한 장벽을 강요하면서 매매 승인 데이터(marketing approval data)에 대해 5년간 배타적인 보호 승인을 요구(1.2조 및 1. 4조) 5. 규제적인 지연을 상쇄하기 위해 특허 기간을 확장(8.2조) 이러한 조항은 트립스 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제실시보다 더 엄격한 제제, 그리고 이미 트립스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20년 동안의 특허보호 기간을 더 연장하도록 하는 특허보호조항 신설 강요 등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양자간, 지역간 협정은 트립스 협정보다 특허보호를 강화(트립스 플러스)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심각한 보건위기를 넘어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브라질의 경우,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강화될 경우 브라질에서 이행되었던 에이즈 관련 정책이 위험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브라질 정부는 에이즈 약물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제약회사를 통해 특허 하에 있는 약물들을 일반약으로 생산하여 무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97년 이후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과 새로운 에이즈 감염률을 50%까지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미주자유무역지대의 논리대로 된다면, 미국은 브라질의 일반약 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트립스 플러스로 인해 특허약의 복제약을 ‘강제실시’란 방법으로 만들어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미 남미 최초로 미-칠레 자유무역협정, 아시아 지역 최초로 미-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과 중동지역 최초로 미-요르단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트립스 플러스를 강요하였다. 미국은 요르단, 칠레, 싱가폴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중미5개국, 남아프리카관세동맹, 모로코, 호주, 미주 33개국, 뉴질랜드, 중동,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약간의 관세인하나 기술지원을 해주는 대신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트립스 협정보다 훨씬 강력한 트립스 플러스를 강요함으로써 의약품의 접근을 가로막고, 제약자본의 특허권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미-요르단 자유무역협정이 미-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모델이 되었듯이, 미-싱가폴 자유무역협정은 아세안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의 모델로 사용될 것이며,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국가가 광범위한 만큼 트립스 플러스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립스 플러스는 향후 도하개발협상에서 미국의 주장을 더욱 견고하게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의약품이지만 이는 더 이상 필요에 의해 공급되고 있지 않다.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무기인 ‘특허’, 그리고 특허로 인해 의약품에 매겨질 수 있는 높은 가격,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트립스 협정과 자유무역협정에서 트립스 플러스 경향의 유기적 결합. 특허 앞에 의약품 접근권이 훼손당하고, 이윤 앞에 생명이 농락당하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 이제 반세계화/반WTO, 반FTA/반TRIPs plus 투쟁을 동시에 조직해야 한다.PSSP
민중생존권과 민중교육권 쟁취를 위하여 1. 2003 10월.. 헌법 10조가 무색한 나라.. 한국 대한민국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2003년 10월 들어 정부의 광폭한 노동운동탄압으로 인하여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동지의 죽음에 이어 이해남 세원테크 지회장,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광주지부장의 분신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입시의 부담감으로 인하여 10월 들어 3명의 젊은이들이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했던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죽음으로 밖에 노동현장의 비참함과 입시지옥 현실에서 자신의 참담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들의 울분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아갈 방법을 몰라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보수언론의 말대로 학생들이 단순한 정신질환의 문제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구조의 문제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가 곧 인간 삶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 역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10월 한 달이 채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5-6명이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현실 사회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즉, 죽음을 방기하는 한국 사회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조장하고 있는 한국 사회라고 인식하는 것이 보다 냉철한 판단이다. 교육부와 재경부는 국민소득 2만불 시대 프로젝트에 발맞춰, 그 선제 조건으로 ‘국제자유도시 및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연내에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프로젝트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정책임에도 보수정권 내 조차도 논란이 일정도로 근거 없는 선동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자유구역법은 외국기업에 대한 ‘극단적 특혜와 절대적 자유’를 부여한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외국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월차휴가 폐지, 주휴․생리휴가 무급화, 파견근로제 확대 허용, 단체행동권 제약 등 노동권의 심각한 침해를 낳게 된다. 어디 이뿐이랴, 환경관련 34개 법의 무력화, 무차별적 난개발 허용 등으로 인한 환경권의 침해와 더불어 외국의료기관 허용 등으로 인한 민중건강권 박탈이 뒤따르게 된다. 노무현은 지난 19일 APEC 정상회담에서 경제자유구역과 특구를 통하여 교육과 의료를 개방화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더불어 특구를 전국화하여 교육․의료의 개방을 전국화 하겠노라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시장은 강북 뉴타운건설 프로젝트에서 국내 집 값 안정 대책 프로그램으로 은평․길음․왕십리를 교육특구로 지정하여 외국학교설립, 특수목적고 설립을 추진하겠노라 한다. 다들 나라 걱정, 경제 걱정하시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정신적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으나,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려 강북 교육특구를 지정하겠다는 발상은 강북지역을 또 다른 부동산투기 지역으로 만들려는 너무나 어처구니 발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10월 들어 보수정치권과 보수언론의 합동 공세가 ‘공교육 죽이기’로 나타나면서 어느새 교육특구 지정계획과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한국 교육을 바로잡는 특효약이 되어가고 있다. 2.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의 6하 원칙 누가? : 교육인적자원부, 재정경제부의 실질적 산하 조직되다. 경제자유구역법에 의한 경제자유구역 지정의 모든 권한은 ‘경제자유구역 위원회’에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에 의한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노동, 환경, 교육, 의료, 문화 등 전 영역에 큰 영향과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 사회구조 전반을 아우르게 되는 이처럼 중요한 법률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행정적 과정임에도 경제자유구역지정과 처분을 발령하는 곳이 오로지 경제자유구역위원회에만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 운영을 뜻하게 된다. 그 구성에 있어 경제자유구역법 제25조에 따라 재경부의 유관부처 행정기관, 재정경제부장관이 위촉하는 자로 한정되어 있어 구성의 비민주성의 문제도 심각하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되는 외국교육기관의 설립의 승인은 경제자유구역위원회의 심의․의결을 받아야 된다. WTO 교육개방 1차 양허안 제출 시기에도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이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모든 권한은 재경부와 외통부에 있었으며 주무부처의 결정은 한낱 참고사항 정도로만 국한되었다. WTO 교육개방에서부터 특별법까지의 과정에서 교육부분의 주무부처는 한국 공교육의 골간을 뒤흔들게 될 개방화․시장화에 관해서 재경부와 외통부의 결정에 이러저리 휘둘리고 있다. 언제? : WTO 교육개방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대하여.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10월 2일 교육부에 의하여 처음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이름이 말하듯이 그 역사는 경제자유구역법 성립시기와 WTO 교육개방의 제기가 시작되었던 시점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의 역사 중 ‘WTO 교육개방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로서의 위상을 주목해야 된다. GATS 서비스 협상 부분에는 본격적 서비스 협상 이전에 이른바 ‘자발적 자유화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2001년 3월 확정된 ‘서비스 협상 가이드 라인’에는 ‘더 높은 수준의 자유화(=시장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어떤 서비스 분야도 사전에 제외하지 않으며, 자발적 자유화에 대해서는 credit(크레딧)을 인정’한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credit’이란 WTO 협상에서의 유리한 지위를 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지칭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인센티브의 범위와 실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 실내용과 구체적 범위도 지정되지 않는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따른 credit을 부여받기 위하여 WTO 교육개방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의 일환인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디서? : 귀족학교의 전국화 프로젝트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제주와 경제자유구역에 한정한 법이다. 다시 말해 외국교육기관은 경제자유구역(인천, 부산, 광양)에만 설립된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제한을 국제공항과 국제항만 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경제자유구역은 얼마든지 전국적으로 확산될 여지가 충분하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조건인 국제항만 등은 고려사항이지 필수사항이 아니라는 점과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포괄하는 범위가 불분명하며 재경부에서 밝히듯이 항만지역, 인근지역, 연계지역 등이 언급되어 경제자유구역의 전국적 확대는 무한히 열려있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교육기관 설립이라는 것이 마치 외국교육기관의 전국적 확산을 제한하는 조건인양 떠들어대는 교육부의 입장은 너무나 무사태평, 순진무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며칠 전 서울시에서 발표한 강북(은평, 길음, 왕십리) 교육특구 지정은 외국교육기관의 수도권 진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여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시 귀족형 외국교육기관의 전국적 확산은 2-3년 안에 이루어 질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 총성 없는 전쟁이 평준화 공격으로 시작되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이 발표된 후 보수언론들은 서로 입을 맞추었다는 듯이 앞다투어 평준화 해체 전사로 둔갑하였다. 한국의 고교 평준화가 교육경쟁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는 둥, 교육의 질적 저하를 낳았다는 둥, 심지어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부추긴다는 둥의 갖가지 논거를 펼치며 고교 평준화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보수 언론과 보수정치권의 입장에서는 불평등 교육을 넘어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 평준화는 이제 오히려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주범이 되어줘야만 한다. WTO 교육개방의 그 전제조건은 교육의 시장화이다. 즉, 교육부분의 개방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장화된 교육기관이 존재해야 되며, 이를 더욱 촉진시켜야 한다. 또한, 교육 시장화의 박차를 가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당연히 교육의 공공성 공격에서 시작하며, 구체적으로는 평등교육에 무차별적 공격을 가함으로 이루어진다. 교육 시장화 담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경쟁, 효율, 다양성’을 지향하는 교육으로서의 역할과 그 책임을 다하는 것,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의 다양성과 자유화 보장,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소수 능력 있는 학생의 몰아주기식 지원 등...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자본 논리에 철저히 입각하여 교육을 바꿔내야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두에게 최대한 평등한 기회와 교육받을 권리를 부여하자는 교육 평준화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선택과 집중’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서울 강북지역을 교육특구로 만들어 자립형사립고, 특수목적고를 설립한다면 경쟁교육 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인적자본을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교육특구 추진과정에서는 대다수 민중들의 교육권 박탈에서 비롯되는 총체적 교육불평등은 더이상 고려대상도 아니다. 왜? : 평등․자치․민주 민중교육권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오로지 자본의 뜻대로 하옵소서. 특별법 제3조에서 ‘외국학교법인’이라 함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영리법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정의는 10조(외국교육기관의회계) 1항에서 외국교육기관의 회계는 기업회계의 원칙에 따라 처리, 10조 2항의 외국교육기관의 결산상잉여금의 본국 송금을 허용 등의 조항으로 인하여 특별법 제 3조 외국학교법인의 비영리법인 조항은 사실상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교육기관의 회계를 기업회계의 원칙에 따라 결산상 잉여금을 본국에 송금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기간 WTO 교육개방의 가장 쟁점이 되었던 본국으로의 과실 송금 조항을 말만 바꾸어 허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경제자유구역법내의 외국교육기관은 특별법의 제시되어 있는 온갖 특혜를 거머쥐고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무한한 이윤추구를 할 수 있는 틀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 정부의 WTO 교육개방 전면화 필승 전략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무엇을 국내 교육기관에게 영향을 주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제한 없는 내국민 입학 허용, 과실송금 허용, 국내학위 인정 등 : 외국교육기관의 영리행위 합법적인 허용. 2) 평준화 해체 (귀족학교설립 무한 허용) 3) 민중 교육비 폭등 : 국내 외국인학교의 경우 연간 등록금 2000만원 정도, 경제자유구역 및 특구 내의 외국교육기관은 등록금 책정의 자율성 보장 → 필연적으로 2000만원을 훌쩍 넘은 등록금 책정이 될 것. 4) 교육의 질적 하락 : 외국교육기관은 학교의 학기, 수업일수, 학급편성 및 휴업일과 반의 편성․운영 등 자율성 보장 + 외국인교사는 국내 고등교육공무원법에 규제 받지 않음 → 내용적 검증 없는 교과과정 운영, 검증되지 않는 외국인교사 채용 등으로 교육의 질 하락 분명 5) 국내 교육기관 역차별 논란으로 인하여 국내 교육법이 교육의 영리성 추구 인정으로 갈 가능성 높음. 6) 교육노동자의 노동유연화, 비정규직 교사 급증 → 외국교육기관은 외국인교사채용에 있어 국내 규제를 받지 않음, 이는 5)과 같이 결국 국내 학교의 교사들의 사회적 노동의 불안정화, 비정규직 교사 급증으로 이어질 것임. 1)~6) ➡ WTO 교육개방 전면화 ➡ 국내 공교육 붕괴, 교육 서열화 심화, 민중 교육비 폭등, 교육의 불평등 심화 3. 저항과 구성의 걸음... 10월 11일, WTO 교육개방 저지와 교육 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가 출범을 하였다. 10월 2일 교육부에서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발표한 후 범국민교육연대는 발빠른 기자회견과 성명서를 통하여 대응해 들어갔다. 3월 WTO 교육개방 저지 공동투쟁본부의 투쟁이 3월 교육부분 1차 양허안 저지라는 구체 슬로하에 단결을 하였다면, 범국민교육연대는 WTO 공투본의 투쟁정신을 계승하여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저지, 구체적 공교육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저항과 구성의 정치를 실현하는 보다 진일보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하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저지하는 대중적 투쟁들을 벌여나가며 동시에 민중이 진정으로 통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교육내용과 교육시스템을 구성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하여 더디 갈 수는 없다. WTO 교육개방 저지와 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는 이름 그대로 WTO 교육개방 저지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WTO 저지 전선 강화의 길로 힘차게 내달려야 할 것이다.PSSP
9.11 이후 미국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하에 세계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난 미국의 구도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이라크 인근 중동 국가들--시리아, 이란,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까지--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계속 관찰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변화된 노선이 냉전 하의 미국의 세계질서의 기획과 다르다는 점에서 이를 ‘제국’적 기획 또는 ‘제국주의적’ 기획이라고 부르는 논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전략을 주도하는 신보수파(neo-conservatist: 약칭 neo-con)들은 세계의 위협세력들을 제거하고 세계를 미국식 자유주의의 틀에 맞추어 변경하려는 ‘사명’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를 ‘제국주의적’이라고 부르기를 꺼리지 않고 있다. 신보수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윌리엄 크리스톨(William Kristol)은 “만일 사람들이 우리를 제국적 권력이라고 부르기를 원한다면, 좋은 일이다”라고 까지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새로운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 ‘새로운 미국적․민주적 제국’이나 ‘제국적 거대전략’, 또는 ‘인권의 제국주의’라는 호칭이 붙기도 하는데,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제국 또는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미국의 정책주도세력에 의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의 한 단면과 역설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은 새로운 변화의 첫 수순이었으며, 미국은 이 전쟁 이전부터 예견되던 수많은 정치․사회․경제적 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다음 수순이 무엇이 될 것이며, 그에 대해 미국인들과 세계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향후의 과정에는 아직도 변화의 여지가 남아있다. ‘제국적 길’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미국에 남겨진 좁은 선택지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길은 새로운 변화만큼이나 많은 모순을 새롭게 발생시킬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파의 쿠데타인가? 우리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전환이 일군의 신보수파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특히 9.11은 이들이 전면에 부각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들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주도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 일군의 신보수파의 핵심 인물은 국방부 부장관인 폴 월포비츠, 전 국방부 국방정책위원장 리차드 펄, 국무부 차관 존 볼튼, 신보수파의 이론적 지주가 되는 잡지 The Weekly Standard를 발간하는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 신보수파의 대부를 자처하는 어빙 크리스톨(윌리엄 크리스톨의 아버지) 등이며, 이들의 사령부는 미국기업연구소(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AEI)라고 할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 같은 공화당의 보수적 싱크탱크 또한 이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나 딕 체니 부통령같은 매파들은 직접적으로 신보수파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정책적 지향에서는 긴밀한 공조를 이루어 행정부 내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신보수파와 강경보수파가 연합한 조직이 1997년 창건된 ‘새로운 미국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New American Century)였으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부시정권 탄생을 위한 정책브레인 역할을 수행했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를 단지 일군의 신보수파의 쿠데타로 간단히 치부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두가지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첫째는 탈냉전 시기 미국의 세계전략이 어떻게 준비되어 왔는가하는 점, 그리고 이와 관련해 부시정권 이후의 연속성과 단절점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며, 두 번째로는 신보수파 중심의 노선이 득세할 수 있도록 해 준 미국 국내정치의 기반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첫 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1991년 1차 이라크 전쟁을 전개한 아버지 부시는 냉전 종식 이후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모색하였다. 냉전 하의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극을 주축으로 한 얄따협정에 기반을 둔 세력균형 체제가 무너지면서 국가간체계에는 새로운 혼란의 요소가 나타났다.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탈냉전 시기에 지역의 맹주로 떠오른 이라크의 부상이 그 상징적 예였는데, 아버지 부시의 노선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세계의 분쟁에 개입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시를 누르고 당선된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 하에서 전체적인 정책기조는 레이건의 군사케인즈주의를 버리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요구를 최우위에 놓는 달러-월스트리트체제였지만, 클린턴 하에서 군사비는 삭감되지 않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었다. 소말리아 개입과 코소보 사태, 그리고 이라크 공습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세르파티는 이런 상황을 놓고 금융세계화에 병행해 진행되는 군안복합체(military-security complex) 중심의 ‘군사적 세계화’라는 테제를 제출 한 바 있는데, 이 테제는 부시의 출현 이전의 상황에서 이미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의 변화의 연속성을 중시하고 있다. 2000년 선거를 둘러싼 쟁점에서도 이런 특징은 잘 관찰된다. 당시 부시와 고어 두 후보 중 세계에 대한 군사개입의 확대를 더 중시한 측은 부시보다는 고어였고, 고어는 클린턴 하에서 나타난 세계의 개입확대의 전략을 더욱 큰 영역으로 전개하려는 의도를 보였으며, 이미 ‘예방’(preventive)전쟁이나 사전개입 정책의 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면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을 전통적인 냉전적 구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단순히 전통적인 공화당 대 민주당이라는 구도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를 적극 지지한 공화당원들의 불만에서도 확인된다. 버크(Burke)적 사상전통에 뿌리를 둔 이들 전통 보수주의자들이 당시 부시를 지지한 이유는 미국이 과도하게 해외문제에 개입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관심을 국내로 돌려 좀 더 고립주의적 노선을 강화하고 세금을 삭감하고 지방정부를 지원하고 중앙정부를 축소할 것을 부시가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 부시는 해외개입 확대, 큰정부, 적자재정, 지방정부에 대한 소홀한 관심, 인권 침해 등 전통보수파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보수파는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가 새로운 전략을 끌어가는 신보수파들 때문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들 신보수파는 자신들과 같은 진정한 보수파가 아니라 단지 ‘우익 급진주의’일 뿐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들에 비해 오히려 민주당 내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적극 지지자를 찾을 수 있는데,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지도자인 조셉 바이든은 이라크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민주당원들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찬성하나 다만 이를 좀더 다자주의적 방식으로 수행하고 이라크의 전후 복구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2차대전후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과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전후 미국의 헤게모니 팽창기에 세계에 대한 전면적 개입전략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감당하기 힘든 정치․경제적 부담을 안겨준 후 1969년의 닉슨 독트린을 계기로 미국의 전략은 주요 지역에 하위제국주의 파트너를 육성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전환한 바 있다. 특히 1970년대 유가인상과 금융세계화의 개시에 따라 넘쳐나는 저리의 자본의 덕에 많은 반주변․주변부 국가들 사이에 급속한 군비확장의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세계적으로 거대한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이 주로 중동과 남아시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이란혁명에 이어 1980년대 들어 냉전체제가 붕괴함에 따라 중간규모의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은 탈냉전 시기 미국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미국은 탈냉전 시기의 각 지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하는 새로운 세계전략의 틀을 짜지 않을 수 없었다. 탈냉전 하에서 유럽의 군사력 부상 의지를 초반에 누르는 동시에 국지적 위협세력의 급증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는데, 군수산업에 도입된 신기술은 미국과 여타 나라들의 군사력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또한 냉전 하에 소련에 맞서기 위한 다자적 동맹의 틀이 이런 구도에 적절히 작동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미국은 다자주의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일방주의를 중심에 놓으면서 상황에 따라 다자주의의 다양한 틀을 동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유엔의 틀 속에서 수행한 미국이 코소보의 경우는 UN의 틀을 벗어나 NATO를 활용한 제한적 다자주의적 길로 가고, 그 다음 단계로는 ‘의지연합’으로 나가게 된 것 또한 아들 부시정권 하에서 사전 변화 없이 처음으로 다자주의에서 일방주의로 급격한 전환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시정권이 클린턴 정권과 단절점을 보이는 측면은 적지 않다. 상대적 정도의 차이라 하더라도 분명 일방주의는 강화되고 있으며, 클린턴의 ‘인권’ 외교의 메타포가 ‘대량살상무기’나 ‘테러’로 전환된 점도 두드러진다. 여기에 ‘예방전쟁’의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근대 국가간체계 하에서 형식적으로 유지되어 온 주권의 경계가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다. 과거에도 주권의 침해는 비일비재했지만, 이것이 먼로 독트린에 입각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수행되어 온 것과 달리 부시 하에서 주권에 대한 미국 일방주의의 우위는 전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과 금융세계화의 관련성이라는 쟁점이라 할 수 있다. 클린턴 정권 하에서 양자의 관계는 정확히 후자의 이해관계를 우위에 두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현재는 양자의 관계에서 전자가 더 우위에 서있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금융자본들이 여러 가지 불만들을 표출된 바도 있다. 이 문제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모순인 자본주의의 초민족적 팽창주의적 경향과 헤게모니의 영토주의적 경향 사이의 모순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헤게모니 하에서 헤게모니의 영토주의적 성격의 팽창, 또는 세계체계의 헤게모니 유지비용의 증가는 미국의 물질적 토대 자체를 침식한 바 있는데,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후과로 발생한 거대한 쌍둥이 적자와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가 그 첫 번째 사례이며, 1980년대 레이건이 주도한 ‘제2차 냉전’의 결과 생겨난 더욱 거대한 쌍둥이 적자가 그 두 번째 사례였다. 두 번 모두 미국의 ‘국제주의적 보수파’라 할 수 있는 세력이 주도한 전략이었는데, 지금의 세 번째 사례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보수파적 전환이 가능한 미국의 국내적 토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기 위해 이들 매파가 미국 내에서 왜 점점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이런 매파의 목소리는 늘 존재해왔고 가끔씩 대통령 선거에도 등장하였지만 소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매파들이 부시를 후보로 만드는 기간에 상호 결집하였고, 특히 9.11 이후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 이들 매파의 주장은 힘을 얻어가고 있고, 심지어 한 때 좌파라 자칭하던 이들 중에도 이들을 지지하는 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탈냉전기 세계질서의 장기적 비전과 관련되는데, 다시 말해 다른 모든 미국의 정치세력--민주당이건 공화당내 현실주의자들이건--은 현상유지에만 급급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종이호랑이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인데 반해, 이들 매파는 비전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글로벌 전략이 이들에게만 있다는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되었건, ‘불량국가’가 되었건 사방에서 미국이 모멸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다가 급기야 자본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상징적 심장부가 테러공격을 받게되도록 “너희는 무엇을 하였는가?” “매파의 논의에 완전히 동의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럼 지금 이들 말고 누가 미국의 쇠퇴를 진정으로 걱정하는가,” 그리고 자기도취에 빠진 미국인의 말투대로 이들 말고 “누가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걱정하고 새질서를 짜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신보수파의 세계인식 신보수파가 내세우는 제국적 거대전략은 새롭게 변화한 냉전 이후의 세계구도에 대한 대응으로 제출되었다. 아이켄베리는 소련과 미국의 양국체제에 기초한 세력균형과 자유주의적 무역질서에 기반을 두고 있던 2차대전 후의 국제질서가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으로 전환되는 맥락과 신보수파의 주장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의 군사비나 군사기술의 신속한 발전을 다른 나라가 따라 갈 수 없는 단극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미국은 열강이나 중간규모 국가 어디도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없도록 이런 군사력 확장을 지속해 가려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전지구적 위협이 달라졌으므로, 그에 대한 공격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주요 위협은 소집단 테러분자이며, 이들은 제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셋째, 냉전 하의 핵억지 개념은 낡았는데, 냉전은 핵억지, 주권, 세력균형이라는 세 가지 동시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탈냉전 시기에 핵억지가 불가능해지면 나머지 둘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일한 대안은 공격인데, 이 공격은 선제공격일 뿐 아니라 심지어 예방적 공격이기도 하다. 넷째, 주권의 제한이 필요한데, 테러분자 뿐 아니라 테러를 억제하지 못하는 국가도 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비우호적, ‘전제적’ 국가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위협이 되기 때문에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은 국가도 미국의 군사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섯째, 국제규칙이나 조약, 안보파트너쉽을 경시하게되는데, 미국은 충분히 크고,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전역에 힘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협을 제거하는 핵심과제를 위해 독자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위협에 대응해 미국은 직접적이고 무제한적 역할을 해야하는데, 이런 변화한 상황을 동맹이나 연합들이 주도적으로 따라오기 힘들기 때문에 임무에 따라 연합을 결정해야지, 연합에 따라 임무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째로, 국제적 안정성 자체가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냉전적인 현실주의적 사고는 세력균형이나 안정 자체를 목적으로 했지만, 북한 문제에서 보듯이 신보수파는 안정을 위한 타협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를 세 가지 점과 관련해 좀 더 부연 설명해 보기로 하자. 먼저 유럽의 역할에 대한 신보수파의 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보수파는 유럽에 대해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들에 따르자면 현재 서방세계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문명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정글의 기준이다. 유럽은 문명의 기준에 따라 포스트-역사적, 포스트-민족적, 평화의 세계, 칸트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에서 미국이 유럽을 권력, 개입, 군사력을 중심으로 하는 홉스적 세계를 통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은 항상 다자적 해결과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나, 이는 본질적으로 약자의 논리, 권력이 없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으로 본다. 유럽은 따라서 일종의 ‘무임승차’를 하게되는 셈인데, 군비를 증강하기보다는 군비증강의 의도를 포기했고,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사이의 군사력 격차는 1990년대에 더욱 벌어졌다. 그렇다고 이들이 유럽의 통합 노력에 부정적인 것은 아닌데, 유럽통합 노력이 유럽 내부의 국가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본다. 미국이 자임하는 역할은 대서양 동맹에 대한 ‘보안관’인데, 이들은 영화 ‘하이눈’의 게리쿠퍼를 자임하면서, 평화시에 주민들은 보안관에 복수하러 찾아온 건달보다 보안관의 존재 때문에 평화가 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평화를 지키는 것은 보안관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의는 약한 유럽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지로 미국이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제공격과 예방공격에 대해서 살펴보자. 선제공격(preemptive war)을 넘어선 예방공격(preventive war)은 사실상 2차대전의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도 중죄로 간주된 것인데, 신보수파 이데올로그인 윌리엄 크리스톨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과 독일을 먼저 공격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면서 이 노선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예방전쟁의 정당화는 이라크 침공을 2차 대전 후 일본과 독일의 전후복구 개입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논지로 이어진다. 세 번째로 일방주의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은 UN을 사실상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길로 나가고 있으면서도 북한문제에서 보듯 다자주의적 틀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런 다자주의적 틀은 반드시 UN을 매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보는 UN 안보리는 소속 국가들의 특수 이익을 반영하는 단순한 이익집단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다자주의와 일방주의의 관계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수립한 세계 질서 내에서 다자주의가 갖는 특수한 성격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전후 미국은 브레튼우즈를 통한 무역과 금융체계와 UN이라는 국가간체계의 구조 양자를 통해 전세계를 다자주의적 방식으로 통합해 냈는데, 이는 영국헤게모니의 시기에 비해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 우위 하에 전세계 국가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틀로서 작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신보수파가 말하듯이 미국 내에 UN 중심의 국제법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는 유럽식의 원칙적 다자주의자란 없다. 대신 미국의 다자주의란 손익계산에 근거한 실용적 다자주의일 뿐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미국에는 사실상 다자주의 대 일방주의라는 논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미국 다자주의자는 핵심에서 일방주의자일 뿐이고, 이들의 말을 빌자면 “다자주의 융단 장갑 속의 일방주의 철권”이다. 우리는 이를 ‘다자적 일방주의’(multilateral unilateral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임무가 연합을 규정한다는 신보수파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다. 북한문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자주의적 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의제를 관철하는 더욱 강력한 메카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다자주의란 위협세력에 압력을 가해 미국의 일방주의를 정당화하는 틀이다. 다자주의 틀 속에서 제기되는 조건과 압력을 상대국가가 수용하지 못할 때, 미국은 다자주의적 틀을 깰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하게 된다. 다자주의는 일방주의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의 틀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 틀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자주의의 균열이 발생함에 따라 일방주의를 통해 이런 다자주의적 틀을 미국 주도적으로 이끌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파 등장의 배경 앞서 전통 보수주의 공화당원의 불만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신보수파는 전통적인 고립주의적 보수주의자들과 노선이 상이하며, 어떤 점에서는 민주당내 보수파와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신보수파가 출현하게 된 배경에서 이런 특이성의 연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신보수파 개인들의 이력과 신보수파의 지지기반이 형성되는 미국 국내 정치적 변화라는 두 가지 구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신보수파 개인의 이력을 살펴보면, 월포비츠나 리차드 펄 등 적지 않은 신보수파는 1960년대의 자유주의자 또는 심지어 중도좌파에서 전향한 우파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UN 같은 자유주의 제도나 소련의 억압정책 등에 실망하고, 민주당의 소극적 세계전략에 실망해 레이건 하에서 공화당원으로 전향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후 적극적인 레이건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복지국가식 서비스의 집중은 반대하지만 하이에크처럼 최소 정부의 지지자는 아니며 전통적 보수파와 달리 강한 정부의 지지자이며, 군사력의 예찬자이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나타나듯이, 이들은 위협세력의 제거와 전쟁 승리 자체보다는 ‘불량국가’들을 무너뜨리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이식해 이로부터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중동과 분쟁지역 전체의 체제를 전환시키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 때문에 조셉 나이는 이들을 ‘우익 윌슨파’(Wilsonians of the Right)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세계적 개입과 강경 군사노선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매파 세력은 ‘잭슨적 일방주의자’(Jacksonian unilateralist)라고 부르는데, 우익 윌슨파가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때까지 미국이 주둔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이들은 이라크로부터 빨리 철수해 다른 위협세력에 대한 공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보이고 있다. 신보수파의 득세는 미국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에 보수주의가 강화되는 계기는 1970년대 초 미국의 경제위기가 나타나고 1973년 낙태가 허용되고 1970년대부터 차별수정조치(Affimative Action)가 도입됨에 따라 이에 대한 저항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영향이 강하던 남부의 보수적 민주당원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여 이탈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선벨트’ 지역이 부상하면서 남부와 서부의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보수화가 강화되었다. 이런 보수주의는 복지혐오와 유색인종혐오, 그리고 기독교근본주의라는 특색을 강하게 띠었으며, 대체로 중산층과 남부공화당원, 그리고 북부의 교외지역 거주자들 사이의 보수 연합이 형성되었다. 또한 금융화의 여파로 각종 규제가 약화됨에 따라 자금 또한 거대하게 보수파들에게 몰렸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20세기 미국의 역사는 노동의 포섭과 테러의 공존이 지속되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와 30년대 급진적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과 결합한 생산성 임금제의 도입(이른바 ‘포드주의’)에 이어 1950년대 냉전 형성기에 동유럽 출신 이주 노동자의 반공주의를 통한 AFL-CIO의 개량주의화와 결합한 매카시즘은 미국의 노동운동의 경제주의적 전통을 수립하였다. 1960년대 말 이러한 노동의 포섭과 테러를 결합한 통제에 균열이 생기고, 이는 중도파를 중심으로 한 사회통제의 기제에도 균열을 발생시킨 바 있다. 9.11 이후 ‘애국입법’ 등을 통해 나타나는 국내테러의 강화는 사회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띠는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고 있다. 제국 기획의 난점 이라크 전쟁 수행을 통해서 드러나는 신보수파 중심의 ‘제국’적 기획은 그 경제적 토대와 관련해 딜레마를 낳게 됨을 지적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은 전지구적 군사적 개입에 따른 비용부담의 급증이라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 비용을 세계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정치적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남한이 끌려 들어가고 있는 군대파견과 파견비용의 자비부담이라는 것이 그 일환일텐데, 미국은 이라크 침공과 재건에 들어가는 비용의 2/3를 동맹국들에게 부담 지우는 한편, 미국의회는 이라크 재건비용의 절반을 원조가 아닌 차관형태로 변경함으로써 자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뻔뻔함까지 드러내고 있다(『중앙일보』 10월 18일). 엠마뉴엘 토드는 미국의 제국적 기획의 난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첫 번째는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강하지만 세계적으로 개입을 펼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군사력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점, 세 번째는 보편주의적 가치가 급속하게 소실되어 가는 미국의 주도력의 약화이다. 지오반니 아리기는 현재의 세계체계가 붕괴한다면 “무엇보다 적응과 조정에 저항한 미국 때문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도 미국이 세계질서를 자신의 구상에 맞게 변화하려는 시도를 당분간 펼쳐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 결과는 전혀 예상되는 방향이 아닌 매우 불확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지역인 유럽과 자신을 연결하는 범대서양의 위계적 공동지배(condominium)를 유지해갈 수 있겠고, 그것이 적어도 중심부 국가간의 전쟁 가능성은 계속해서 억제할 수 있겠지만, 제국의 변경으로부터의 이탈과 탈구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체계 전체가 발생시키는 모순이 제국의 핵심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계속해 이전됨에 따라 제국적 기획의 각 고리에서 수많은 딜레마와 갈등이 분출될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그 모순이 결집되는 고리들에서 폭력이 폭발적 형태로 집약되어 나타날 가능성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중도 자유주의의 기반이 급격히 취약해지면서 나타나는 우파의 근본적 혁신의 위협 또한 더욱 커져가고 있다.PSSP
번역-이현 | 사회진보연대 회원 독일의 반나치 혁명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패배한 동포를 향하여, 대지에 나뒹구는 철모의 사진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아라 패배한 자들이 썼던 이 철모들을! 그러나 우리의 쓰라린 패배의 순간은 이 모자들이 마지막 벗겨져 내려 대지 위에 나뒹굴었던 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모자들을 고분고분 우리의 머리 위에 썼을 때였다.” (브레히트, 『전쟁교본』중에서) 들어가며 지난 10월28일, 도쿄도(都)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鎭太郞)는 도쿄 도내에서 개최된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망언을 하였다. “우리는 결코 무력으로 [조선에] 침범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당시 조선반도는 분열된 정치상황으로 러시아, 시나(支那), 일본 어느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조선은, 이미 근대화를 눈부시게 달성하고 얼굴색도 비슷한 일본의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이며 이에 따라 합병은 전세계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한합병을 100%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조선인의 감정에서 본다면 분한 것도 있고, 굴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병에는 그들 선조의 책임 또한 있을 뿐 아니라, 비록 이것이 식민주의라 해도 진보적이었으며 인간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인간적, 호전적 망언은 바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도쿄 모임’(회장 타시로 히로츠구(田代博嗣), 자민당 도쿄도의회 의원)이 주최한 ‘동포를 탈환하자! 도쿄도 결의대회’의 이시하라의 강연에서 나온 것이다. 이시하라는 이에 앞선 9월10일, 작년 북일정상회담을 준비한 일본지배계급의 한 분파․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심의관의 자택 앞에 ‘국적토벌대’라는 명의의 정체불명의 극우그룹에 의해 시한폭탄이 설치된 사건에 대해 “다나카 히토시라는 놈, 이번에 집 앞에 폭탄 설치되는 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략) 회담대표로 한 사람이 나가 북한과 논쟁이 될 리가 없다.”(10일, 자민당 총재선거후보, 카메이 이즈카(龜井精香)의 가두지원 연설 중)라고 말할 뿐 아니라, “(폭탄사건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나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일을 맞게 된 것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던 것 아니었는가?”(11일 기자회견 중), “다나카 히토시의 매국행위는 만번 죽어 마땅할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을 했다”(25일, 도의회 발언 중) 등의 폭언을 내뱉었다. 이러한 이시하라의 국수적 망언․폭언은 이번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이른바 ‘삼국인(三國人)’으로 대표되는 그의 망언․폭언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때마다 한국이나, 북한, 중국에서도 이에 대한 정부의 항의성명이나 민중의 규탄이 전달되고 있으나, 일본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라는 기존의 분위기에서 단지 “또 시작인가”라는 분위기로 서서히 변화하여,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도 ‘도쿄도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을 지지하는 모임’이라는 사이트마저 생겨나는 등 현재 이러한 민족주의는 일본 민중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다. 나치의 선전상 괴벨은 “거짓말도 100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에 대량파괴무기가 존재한다”고 반복해서 선전하여 미국 민중을 전쟁광으로 몰아간 것은 네오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시하라의 망언․폭언을 수용하는 광신성의 토대가 일본민중 내에 넓고 깊숙하게 뿌리내리려 하고 있다. 전쟁․개헌에 밀접히 관련된 고이즈미 2차 내각 9월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승한 고이즈미 수상은 22일 자민당 당직자 인사를 단행하고 제2차 내각을 발족시켰다. 새로운 내각의 면모를 보자면 하나같이 호전적이고 위험한 인물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민당 당직자들을 살펴보면, 먼저 자민당의 새로운 간사장으로 발탁된 아베(安倍) 전 내각 관방 부장관은 작년 북일평양선언 발표를 계기로 한 북일국교 정상화의 흐름을 납치사건을 통해 돌려놓은 중심적인 인물로서 뿌리부터 개헌론자라 할 수 있다. 자민당 부총재에 취임한 야마자키(山埼) 전 자민당 간사장은 방위청 장관을 역임한 이른바 ‘국방족’의 유력한 인사로서 지금까지 자민당 간사장으로 당내 헌법 개악안 작성 과정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자민당 정조회장이 된 누카가(額賀)와 간사장 대리인 큐우마(久間) 또한 방위청 장관 경험자로 오늘날 자위대 해외파병의 기초를 닦은 인물들이다. 제2차 고이즈미 내각에 입각한 관료들은, 아소(麻生) 총무대신이 일본우익단체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일본회의(日本會議)’와 제휴한 ‘일본회의-국회의원 간담회’의 회장이며, 노자와(野澤) 법무대신이 입각 전까지 참의원에서 ‘헌법조정회’ 회장으로 활동한 헌법9조 부정론자이다. 나카가와(中川) 경제산업 대신은 [자민당 내] ‘청년 매파’의 대표격으로서 ‘납치구출행동의원연맹’(약칭 ‘납치의련’)의 회장이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국회 내 지원세력인 ‘역사교과서 문제를 생각하는 초당파 모임’의 회장이며 코이케(小池) 환경 대신도 ‘납치의련’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대북한 강경론자이다. 모데키(茂木) 오끼나와․홋카이도․과학기술담당 대신은 전임 외무 부대신 당시부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주장하고 부시의 이라크 침략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와 같이 노골적인 개헌론자들, 더구나 이데올로기적이고 행동적인 청년 매파를 대거 등용한 신내각을 발판으로 고이즈미 수상은 연말로 계획되어 있는 이라크에의 육상자위대 파병, 북한에 대한 6자회담에서 미국 입장 추종 및 한층 강화된 강경책 전개, 내년 정기국회에서 ‘유사관련법’의 남아있는 법안인 국민보호법(‘전시총동원’)의 도입, 교육기본법의 개악, 나아가 2005년 헌법개악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중의원 선거의 계급적 의미 새로운 내각 구성을 마친 고이즈미 수상은 10월 10일 임시국회에서 한시적 입법이었던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기간연장을 참의원에서 통과시키고, 같은 날, 중의원을 해산하였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는 중의원 선거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중의원 선거는 어떠한 계급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 중의원 해산 전인 10월 5일 칸 나오토(管直人)가 이끄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이끄는 제4야당인 자유당을 흡수하는 형태로 통합하였다.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해 소속의원 200명을 넘는 새로운 야당 민주당의 출현에 부르주아 언론들은 일제히 이번 중의원 선거를 여당 자민당 대 야당 민주당의 양대 정당 간의 대결인 것처럼 선동하고 있다. 민주당은 ‘마니페스토’(정권공약)을 발표하고 고이즈미 ‘구조개혁’에 자신들의 ‘개혁’을 대비하면서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민주당은 이름만 ‘민주’일 뿐 일본 독점자본이 세계시장에서 생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저하게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정․관과 재계의 유착구조에 얽혀 있는 자민당 내 저항세력의 존재로 인해 고이즈미 ‘구조개혁’은 실행되기 어려우며, 이러한 관계를 갖지 않은 민주당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세력이라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마니페스토’에서 “논헌(論憲)에서 창헌(創憲)으로” 라는 슬로건 하에 헌법 전문(前文)과 제9조의 개악뿐 아니라, 인민의 생존권에 관한 규정인 제25조를 개악하고 헌법 전체를 신자유주의적으로 개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민주당의 개헌노선은 자민당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민․민주의 양당체제는 일본 독점자본에 있어 매우 구미에 맞는 정당체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체제 하에서] 자본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부르주아 언론의 이데올로기 조작을 동원하여 자본축적 달성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보다 유리한 정권으로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는 결코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권의 지속적인 교체가 가능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계급과 민중에게는 임금은 물론 연금, 의료비 등의 사회보장비와 세금 등을 통한 착취가 더욱 강화되는 체제에 불과하다. 한편 헌법옹호를 주장하는 야당 사회민주당과 일본공산당은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중의원 선거에 소선거구제가 도입된지 9년이 된다. 이러한 소선거구제 도입에 의해 자민당은 일시적으로 야당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연립여당을 구성한 사회당은 오히려 민주, 사민, 신사회당으로 분열, 해체되어 국회는 자민당 중심의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와 같은 상황이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공산당은 의회주의에 순화되어 당원과 당기능을 오로지 득표를 위한 형태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당 규약에 ‘경영지부’의 지역에서의 활동의무를 명시하여 ‘경영지부’의 당원을 선거활동에 동원해온 것을 통해 볼 수 있다. 그 결과 일본공산당은 노동현장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는 전노련(全勞連) 산하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이 형해화되어 결국 현장집회 한번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헌법 옹호를 주장하는 사민당과 공산당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볼 때, 현재 우리는 미래를 전망하지 못하는 매우 난망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10월 17일 방콕의 APEC 정상회담 참석을 위한 일정 중 일본을 방문한 부시에게 고이즈미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과 50억 달러의 이라크 ‘재건원조금’ 지원을 약속했다. 고이즈미 정권은 아프간 전쟁 후 미제에 의한 ‘show the flag(깃발을 선명히)’ 작전에 따라 인도양에 자위대 함정을 파견했고, 이제 또다시 ‘boots on the ground(지상부대의 파견)’ 작전에 따라 육상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단순히 미제의 행동에 꼬리를 흔들며 쫓아가는 ‘바둑이 외교’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 독자적인 계급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 판단해야 한다. 즉 1985년 플라자 합의 이래 다국적 기업화를 극적으로 진전시켜온 일본제국주의는, 오늘과 같은 세계화 상황에서 일본계 다국적기업의 지속적인 권익확보를 위해서는 ‘일미동맹’과 같은 군사적 담보를 필수적인 전제로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 정권은 ‘아미티지 리포트’의 제안에 호응하여 ‘유사법제 3법’을 제정하고 헌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며. 자민당 창당 50주년이 되는 2005년을 계기로 일거에 개헌을 성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티지 리포트’가 그리는 일미관계의 미래상은 아프간 전쟁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공조를 유지한 부시-블레어의 ‘영미동맹’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서쪽으로는 ‘영미동맹’ 그리고 동쪽으로는 ‘일미동맹’을 구축하여 명실상부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성취하겠다는 몽상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한미동맹’의 기치 하에 제2차 이라크 파병이 강행되려 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대미종속 자세가 초미의 현안이 되고 있으나, 단지 이러한 종속적인 태도 자체만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의 과정에서, 85년의 플라자 합의와 같은 양상으로, 한국에서도 87년 루브르 합의를 계기로 사회주의가 붕괴한 동유럽의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한국기업의 다국적화가 진행되었다. 그 후 한국자본은 97년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또다시 자본의 집중을 강행하여 현재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구상의 기치 하에 한국계 다국적 자본의 사활을 걸고 동북아시아에의 진출과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국적화하는 자본을 군사적으로 담보하고자 하는 이해관계를 갖는 것은 한국자본으로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정부의 동향 글의 서두에 언급한 이시하라와 아소 등의 망언이 일본민중에게 일정하게 수용되어 파시즘의 지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판단, 그리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 이지스함을 포함한 자위대 군함이 미․영 함선의 호위와 연료 보급 등의 명목으로 인도양에 출항한 이래 일본이 이미 전시상황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인식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식하에서만 고이즈미 정권 - 이는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인데 -이 추진하고 있는 ‘전쟁국가화 정책’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정부․독점자본은 자본의 세계화가 요청하는 전쟁국가화 상황을 창출하기 위해 작년 9월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의 특수기관 일부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그리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납치문제는 지속적으로 확대․증폭되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들은 연일 납치사건을 마치 ‘일본 민족 전체가 피해를 입은 비극’으로서 연출․선동하여 일종의 ‘피해의식’에 기반을 둔 국론을 형성하고, 북한과 관계된 일은 무엇을 막론하고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위험한 민족 배외주의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이시하라의 발언도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도쿄모임’의 집회에서 나온 것이며, 이러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약칭 구출모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약칭 가족대책위)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납치의련’ 등이 일제히 북일국교 정상화 교섭에 개입하여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내에서는 민족배외주의가 만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공격의 초점이 (총련계) 재일조선인과 그 자녀들에게 향해지고 있다. 각 지방에 있는 총련 회관이나 관련시설에 폭탄이 설치되고, 협박장이 보내질 뿐 아니라 민족학교에 통학하는 총련계 학생들의 치마저고리 교복 등을 찢고 폭언을 퍼붓는 등의 사건이 전국에서 빈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체육복이나 사복을 입고 등교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한사람이라도 더 일본친구들을 사귀지 않으면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말하는 필자의 총련계 조선인 친구는, 80년 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인 자경단이 6000명이상의 한국인을 학살했던 역사를 오늘의 민족배외주의가 만연한 상황을 보며 떠올리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테제가 현재의 일본 노동자․민중에게 다시금 상기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고이즈미 수상은 이러한 위험한 배외주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여하한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이 공격해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배외주의를 확대․재생산하여 유사법(‘전쟁법’) 제정을 강행하고 연내 이라크 파병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이 개최될 예정이지만 북일관계의 교착상황이 타개되지 않는 한, 6자회담이 다른 진전된 상황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6자 회담에서 일본정부는 철저히 미국의 정책기조 하에 따를 것이며, 논의과정에서 납치문제를 재론할 속셈이며, 일본은 회담의 진전에 장애물이 될지언정 결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의 북일관계는 이 6자회담의 진척 이후 논의되게 될 것이다. 전쟁의 위험과 동북아시아의 시장경제화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6자회담의 계급적 성격이다. 부시 독트린은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독자행동주의와 선제공격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유무역과 안정된 국제통화시스템을 이 원칙에 동의하는 모든 국가들에 관철시켜 경제성장과 정치적 개방을 촉진하려는 의도 또한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제국주의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한포위망을 형성하고, 전쟁을 통해서일지 아닐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최종목표로서 북한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전역의 시장경제화를 상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일본 국내에서는 “시장경제가 확대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논조가 신자유주의자들은 물론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떠들썩하게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단지 ‘평화’롭기만 하면 되는 문제인가? 그러한 ‘평화’란 어떠한 상태이며, 그 속에서 노동자․민중들은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바라는 ‘평화’란 단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북한과 중국을 포함하여 동북아시아 전역을 석권하는 것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부의 편재가 국제적으로도, 일국적으로도 현재보다 더욱 심화될 것이다. 현재 아시아 각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와 투자협정(BIT)의 체결교섭은 이를 담보하는 자본축적의 폭력장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침략전쟁과 세계화, 나아가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삼위일체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이에 대한 저항을, 남․북아메리카와 유럽 등 세계의 민중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동아시아 수준에서 구축해가야 한다고 본다. 작년 이래 이어지고 있는 반전투쟁의 국제적 확대와 칸쿤에서 WTO 각료회의 저지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러한 과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내년 1월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될 제4차 세계사회포럼(WSF)을 계기로 이런 과제를 실현해가고자 한다. 나아가 WTO와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에 대한 투쟁이 일국 내의 개별적 대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수준의 포괄적인 대응을 위한 조직적 틀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의 동향이 ASEAN+3 회의와 같이 국내적인 갈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 저항운동을 수행하는데 있어 한일간의 연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11월 중으로 예정되어 있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오키나와, 토쿄와 서울 방문은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에 대한 긴급한 대응이 요구된다. 지난 10월25일 ANSWER의 호소 하에 성사된 국제반전 동시행동에서 한국과 일본의 노동․사회․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에 반대하는 한일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향후 이러한 공동행동을 일과성의 성명발표로 국한하지 않고 ‘이라크 파병반대’, ‘미군의 동아시아 재배치 반대’, ‘주둔 미군의 철거’라는 구체적인 공통의 과제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한일연대운동으로 발전시켜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처럼, 대지 위에 나뒹구는 패잔병의 철모를 일본의 민중이 또다시 고분고분 쓰는 일이 없기 위하여!PSSP *역주 - 일본식 한자어 표현은 한국식 표현에 맞게 수정하였다. : ‘일미’, ‘일한’, ‘조미’, ‘조일‘은 미일’, ‘한일’, ‘북미’, ‘북일’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조선’, ‘조선인’은 ‘북한’, ‘북한인’로 표기하였다. 단 ‘조선인’은 문맥상 ‘(총련계) 재일 조선인’ 등으로 표기하였다. 그 밖에 ‘수뇌회담’, ‘연락회’, ‘체조복’ 등은 ‘정상회담’, ‘대책위원회’, ‘체육복’ 등으로 표기하였다. - 그 밖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역주를 달았다. 2,4,6,9번
노무현 파병정권, 한미 학살동맹을 심판하자 ! 우리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파병문제를 “결코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 이어 불과 하루 전인 17일에는 시민-종교 단체 대표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으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같은 시각에 청와대에서 4당 대표들에게 파병확정을 통고했다고 하니 국민을 우롱하는 이런 기만적인 작태가 어디 있는가. 여론 수렴은커녕, 뻔뻔한 거짓말로 일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에 우리는 다만 기가 차고 열불 터지는 분노를 감출 길 없다. 16일 유엔 안보리 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되기가 무섭게 단 이틀만에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은 유엔 다국적군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파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처사이다. 허나 유엔 결의라는 국제 기구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조차도 미국에 의해 저질러진 침략 전쟁을 사후 승인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관철하는 구실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다국적군 타이틀을 건 파병이 무슨 명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허울좋은 다국적군 파병에 한국이 파병 비용뿐만 아니라 이라크 재건 비용으로만 2억 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비용을 강제로 떠맡아야 하는 상황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부당한 파병압력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학살동맹’으로 응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 과정과 결정 근거 지난 4월 2일 1차 파병을 위한 국회결의안 의결에 앞선 연설에서 노무현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경제 불안 해소’가 파병 결정의 배경임을 주장했다. ‘더불어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 정치 질서를 좌우하고 있음’을 강조하여 오늘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무력이 무엇을 뜻하며 국회가 왜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하는지, 세계정세를 냉정히 읽을 것을 주문했다. 또 지난 9월 9일 언론은 일제히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시아 태평양 부차관의 파병요청을 보도하였고, 이에 대해 황영수 국방부 대변인은 ‘국제정세의 동향과 국민 의견 수렴 등 다각적이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석연휴를 경과하면서 언론은 대단히 모호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UN 결의가 통과될 때 파병찬반이 바로 그것이다. UN이 무엇을 결의하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UN 결의는 곧 선이라는 전제아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한편, 9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한반도 안정에 대해 예측 가능한 무엇이 필요하다’며 파병과 북핵 문제의 연계를 시사했지만, 그 날 파월 국무부 장관은 윤영관 외통부 장관과 벌인 회담에서 ‘북한의 선핵 포기가 모든 것의 전제’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9월 30일 한승주 주미대사는 일체 조건 없는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미국 현지의 시각이 매우 부정적임을 알려왔다. 그리고 최근에야 확인된 바에 따르면,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미국에 친서를 보냈고, 이에 대해 라종일 보좌관은 외교관례상 친서의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정부는 북핵과 파병을 별개사안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점을 미국 측에 통보한 일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친서의 내용이 노무현 정부의 파병방침과 관련된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이는 그동안 정부측의 말과 달리 애초부터 파병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연계되어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 것이기도 하다. 라종일 보좌관이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으며, 친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10월 14일 라이스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계속 지지할 것으로 확신하며 한국과 이라크 파병 문제를 가장 먼저 논의하고 싶다’며, ‘우리에게 한국보다 더 강력한 동맹은 없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동맹이며, 매우 강력한 관계’라고 한국정부를 치켜세웠다. 통상관례를 넘는 수식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5일 한승주 주미대사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급히 귀국해 미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고, APEC과 한미정상회담까지 노무현을 수행하였다. 영/불/러시아를 달래는데 성공한 미국은 10월 16일 별다른 무리 없이 UN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주도의 다국적군을 허용하는 UN 안보리의 결의를 받아낸 것이다. 이튿날인 17일 노무현 대통령은 재향군인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재신임 국면이지만 그와 관계없이 파병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곧이어 이루어진 시민운동 관계자들과의 자리에서는 파병 결정의 우려점을 털어놓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바는 아무 것도 없다. … 내일(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파병 결정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파병결정의 성격 : 대테러 전쟁 참여, 파병은 학살이다!! 결국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에서 말하는 평화란, 전쟁위협의 제거를 뜻하는 본연의 평화라는 의미와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평화번영정책’은 자본 투자의 불안 요인-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예방전쟁’, 선제공격, 침략전쟁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는 전쟁지지 정책이다. 노무현의 2차 파병 결정은 이 같은 그의 속내를 더욱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전투병 파병’이 부담될 수 있는 만큼 ‘안정화군(stabilizing force)’이라는 말로 동맹국에 다국적군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데, 이를 모방하기라도 하듯 노무현 정권도 ‘치안유지군’을 선호했다.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그가 사태를 호도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그 자신이 약속한 대로 ‘파병군대의 성격, 규모’에 대해서만큼은 논의의 여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즉, 비전투병이냐 전투병이냐의 선택),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파병을 보내는 국민적 동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 파병의 목적이 ‘이라크의 치안유지’에 있음을 부각함으로써 어떤 군인을 보내건 파병 자체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겠다는 속셈이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위해 어떤 형태라도 군사적 제재 수단을 갖겠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노무현도 역시 동일하게 파병의 명분을 취하겠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이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입더라도 약간의 희생(!)은 감내하는 범위에서 파병을 지속할 근거를 미리 마련해 놓겠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는 부시가 선제공격옵션을 선택했듯 그가 ‘치안부재’의 상황에서 군사적 선택(비록 파병이라는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즉 무장의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때 우리는 그가 지난 10월 21일 APEC 정상회담에서 미래를 위한 파트너십과 반테러를 주제로 연설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무역 자유화와 원활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투명성 증진과 정보화 촉진이 중요하다’며 역내 국가 사이 금융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는 연이어, APEC내 반테러 협력의 진전을 평가하면서 “경제번영과 안보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APEC에서 반테러를 포함한 안보이슈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 반테러 협력의 이행을 위해 개도국의 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 말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이번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에 기반을 둔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 지원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함께 대테러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 선언은 이 땅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선포와 한 쌍 동시에 우리는 이 같은 노무현 정권의 우향우가 단지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지난 9월 노동부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여, 노동자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칙 삭제, 파업에 대한 손배 가압류 청구권 보장, 파업현장에 대한 경찰력 투입 근거 확대 등 노동 기본권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안의 실현을 예고하였다. NEIS 합의 파기, 4월 철도노조와 맺은 합의 파기, 파업현장에 경찰력/사설무장력 투입, 경제자유구역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축소, 교육/의료/문화 시장개방의 확대들까지… 모든 것들이 다 하나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명목은 모두 하나같이 금융가와 기업가의 투자 여건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제거이다.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선언이 이 땅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선포와 한 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기만적 논점에 놀아나지 말자 뿐 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만적이게도 파병부대 형태, 규모, 시기를 ‘미국 요청과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하겠다는 묘한 사족을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에 전투병 뿐만 아니라 ‘이라크 평화정착과 신속한 전후재건 지원’ 역할에 적합한 의료부대 등 이른바 민사지원부대를 추가 구성하여 다목적부대로 파견하는 것이 낫겠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쪽에선 이라크 민중들을 죽이고 한 쪽에선 그들을 치료로서 달래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종전 이후 아직도 전쟁위험이 도사리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민사지원부대 구성 비율과 관계없이 ‘조금 더’ 또는 ‘조금 덜'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파병이 학살인 한에서 파병을 철회시킬 것이냐 아니냐의 싸움이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논란은 파병방침을 밀어붙이려는 노무현이 쳐놓은 덫이다. 노무현의 이 덫을 치워내는 일로부터 우리의 투쟁은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그 스스로 다짐했던 ‘국민과의 합의’라는 것을 미국의 유엔 결의안 통과를 위한 시간 벌기로 이용하고, 자신의 지지 세력들을 파병방침 결정의 들러리로 세워버린 정치 기술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언제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화와 타협을 운운하면서, 때가 되면 합의를 뒤집고 이전의 그 어느 군사독재정권에 못지 않은 탄압을 가해왔다. 그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합리적 개혁세력이 아니다. 그는 이 땅의 민주주의의 파괴자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피바람 속에서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몇 안 되는 이라크 학살동맹의 우두머리 전범이다. 그는 노동자/농민/여성의 생존권을 벼랑 끝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이들의 최소 저항마저 몰살시키려는 ‘사용자의 대항권’을 키워주려는 폭력사범이다. 그의 파병 결정은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학살선언이며, 이는 이 땅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도발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노무현의 거짓과 만행을 더 이상 두고볼 여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파병 결정을 내린 후 “이제까지 생각했던 여러 가지 기준에 비춰볼 때 지금이 파병을 결정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신임을 둘러싸고 여야가 분열을 거듭하고, 파병 결정이 미뤄지면 ‘인기투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파병 결정과 때를 같이해서 대선 자금 공동고백을 매개로 여야가 극적인 ‘대화와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들의 진정한 정치 참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 상층 지배세력들의 타협과 이합집산만을 낳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규탄한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뻔뻔하게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실패로 인한 장기불황과 이라크 침략전쟁, 한반도 위기에 대한 기만적 대응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연이은 권력형 부정부패가 얼룩진 민생파탄 민주상실의 사회현실을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