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반전반미투쟁의 향후 방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민중연대 월례토론회 자료집입니다. □ 발제 1 : 미군의 이라크 점령 구상과 중동정세, 그리고 한반도에 끼칠 영향 임필수 (전국민중연대 정책실장) □ 발제 2 : 반전반미 투쟁에 대한 평가와 민중운동의 투쟁방향 정대연 (전국민중연대 정책위원장) □ 토론 1 : 강상구 (민주노동당 연대사업위원회) □ 토론 2 : 최일붕 (다함께 신문편집자) 위와 같은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월 21일 침공이 시작된 이래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명명된,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맹폭이 이라크에 가해졌다. 지금까지 약 4000여명의 희생자가 속출했고 그 중 상당수는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이라는 소식이 타전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에 의해 대량학살이 자행된 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의 전쟁은 첨단정밀무기체계에 의한 '깨끗한 전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은 잠시 뿐. 500만 명이 거주하는 바그다드에 집중 포격이 가해졌고 이내 거리는 검은 연기와 붉은 피로 뒤덮였다. 바쁘게 오가는 구급차의 경적 소리와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찢어질 듯한 절규는 최첨단 정밀타격 최소파괴무기가 실은 무차별 대량살상무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아비규환... "충격과 공포"마저 일상이 되어 차라리 둔감해진, 이 참혹한 역설이 바로 이라크 민중의 현실이다. 이제 "충격과 공포"로 이라크의 해방을 가져오겠다는 미국의 새빨간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어를 위한 공격',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형용모순적 논리구조를 가진 미국의 안보전략의 진실이 만천하에 폭로되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라크 민중의 참상과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라크에 가해지는 "충격과 공포"에 의해 세계질서가 덩달아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충격과 공포" 작전은 비단 이라크를 겨냥한 순수 군사적전으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지역적 강국'들이나 초강제국으로서 자신의 지위에 도전하는 준(準)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일종의 상징적 공포를 안겨주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지난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편에 설 것인가, 테러국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했듯이 '이번 침략에 동참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세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양분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세계적 통치성(global governability)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 부시의 등장과 함께, 그리고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세계정책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설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냉전 질서의 해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 미국의 패권 전략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동시에 기존의 국가간 체계를 재편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졌다. 유럽연합으로 통합된 (서)유럽 국가들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준제국주의 국가들은 당장 미국의 독보적 지위에 도전할 수준은 아니었을지언정, 잠재적 경쟁자로서 정치적 지역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었으며 특히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노력했다. 유럽연합은 자본축적의 지역화된 형태와 결합된 순수 유럽안보공동체를 추구했으며,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동부유럽에 대한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동아시아로의 경제적 진출에 힘쓴 중국, 일본 등은 동아시아 지역 경제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중동과 극동에 산재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북한 등 '지역적 강국'들은 비록 미국중심의 세계체제로부터 주변화되고 배제된 국가들이었지만 미국의 패권 전략에 언제든 반기를 들고, 심각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은 '불량 국가'들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군사의 세계화를 통해 주변부에 대한 중심부 국가들의 공동지배를 확립하고 배제된 지역 및 국가의 갈등을 무마, 관리하고자 했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관리함에 있어 미국의 특권을 보호하고, 특히 고(高)기술분야에서 미국의 이익를 위협하는 다른 국가들의 행동을 봉쇄했으며, 광범위한 경제적 쟁점들에 걸쳐 있는 미국의 이익을 옹호하고, 개방 및 양보를 강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 배제된 지역의 갈등이나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해결책 ― 동등한 국가간 관계를 강조하는 동시에 유엔(UN, 국제연합)의 지원에 기반하고 국제법에 근거한 접근방식― 보다는 주로 군사적 수단에 의존했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인 정치, 경제의 재조직화와 이로 인한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은 배제된 지역에서의 반미-반세계화투쟁의 가능성을 높였는데, 미국은 그러한 미래의 위험요소들과 투쟁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즉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잠재적 위협요인들과의 전쟁이 미국의 기본적 대외전략의 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국가의 주권성 보장이라는 유엔의 원칙을 약화시키고, 그러한 주권국가들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로서, 기존의 유엔 안보리를 대체하는 중심부 국가들의 권리로서 '제한적 주권 독트린(doctrine of conditional sovereignty)'을 확립하였다. 동시에 위험국가들에 대한 경제봉쇄와 함께 이들 국가 내부의 반란군에 대한 재정적, 행정적 지원과 공중폭격 등을 포함한 '현대적 포위전(modern siege warfare)'이라는 새로운 기법과 수단을 동원했다. 마침 발생한 911은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이라는 불 위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고 알 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과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는 이러한 새로운 원칙이 적용된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의지연합' ― 굴종할 것인가, 배제될 것인가 미국은 이라크 침공 개시 전부터 이미 "의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이라는 신개념을 통해 국제법이나 유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국제질서에 결박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의지에 따라 쟁점별로 '유연하게' 동맹체제를 구축할 것을 천명했다. 1990년대말 부시 정권의 등장 이후 주로 미 군부나 공화당의 두뇌집단(think tank)들이 새로운 동맹체제를 구상하는 맥락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의지연합'이란, 요컨대 미국의 방침에 동조, 지지하는 국가들끼리의 동맹관계라는 뜻이다. 예컨대, 2002년 9월 '국가안전보장전략문서'를 통해 선제공격론을 정식화하며 유엔은 물론 나토 등 종래의 동맹체제를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부시 독트린'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특히 미국 스스로 '국제 테러세력을 지원할 악의 축 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국민을 보호하고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제사회의 승인' 없이 개전할 수 있다는 완강한 외교정책을 고수한 것은 기존 국제질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번 이라크 침공은 911 테러 이후 '앞으로 닥쳐올 위험을 미리 제거한다'는 새로운 안보전략인 부시 독트린 기치 아래 진행되는 첫 번째 전쟁인 셈이다. 물론 현재로서 미국의 일방적 힘과 의지에 의존한 "의지연합"이 기존의 국제질서를 대체, 새로운 국가간 체계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힘들다. 부시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기정사실화한 2002년 10월 경부터 안보리 2차 결의를 최종까지 고수한 최근까지 독자적 행동이냐, 유엔결의냐를 놓고 갈등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미국이 세계 모든 현안을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유엔의 승인 없이는 전쟁수행과 전후복구에 필요한 다른 국가들의 도움을 얻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결국 유엔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사실상 단독 전쟁을 불사하게 된 데에는 안보리 결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 논리 이외에도 기존의 유엔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의심과 회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911이후 체계화된 '예방전쟁' 전략을 십분 감안한다면, '의지연합'이 당분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주요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 징후는 이번 침공을 앞둔 상황에서 공공연히 터져나온 미국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미국무장관 파월은 지난 3월 5일 <전략 및 국제 연구 센터 th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중대한 위협에 처했다고 확신해서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면, 그리고 가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미국의 안전은 물론 지역 및 세계의 안전을 위해, '의지연합'과 함께 행동할 선택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의 이해를 확고히 관철시키는데 기존의 국제질서가 방해물이 된다면 이조차 무시할 수 있다는 일방적 경고인 셈이다. 리처드 펄 미국방자문위원회 위원장은 한술 더 떠 지난 3월 21일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적극 승인하지 않은 유엔 안보리에 맹공을 가한 뒤, "이제 금세기는 새 방식에 의한 새 세계 질서를 희망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이라크 침공은 '의지연합'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발점이다. 미국은 자신의 전쟁을 지지, 지원하는 국가(미국은 이 명단 자체를 '의지연합'이라고 지칭한다)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명확히 구분, 향후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될 국제 질서에서 후자를 배제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의지연합"에 가담할 것인가, 불참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크게 분기하는 중이다. 선택지는 굴종할 것인가, 배제될 것인가라는 오직 두 개의 항뿐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전략과 유엔과 나토의 운명 그렇다면 20세기 내내 미국의 세계패권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유엔과 나토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일단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보기에 지난 90년대 유엔은 르완다, 리베리아, 발칸반도의 사태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제재받지 않은' 침공에 대처하는데 허수아비였다. 유엔이 표방하는 '평화유지활동'이 발생한 분쟁사태의 최종적인 해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분쟁사태를 진정시켜 평화적 해결의 여건을 만드는 간접적인 분쟁해결을 도모하는 소극적인 방식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군사 전문기관인 렉싱턴 연구소의 수석 군사분석가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이는 유엔 구조에 의도적으로 장착된 결함"이라면서 유엔이 '힘의 정치'를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부시 역시 911 1주기에 즈음한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유엔에 이라크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면서 유엔이 국제사회 현안에 무관한 조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쓸모 없는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엄포였다. 이후 전개된 미국의 유엔 외교도 이러한 시각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이라크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원한다거나 유엔의 틀을 존중하고 사찰단에 기회를 주겠다고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보리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데도 이라크 침공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제시한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은닉이나 알 카에다 연계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필요에 따라 국제사회의 이해부족이나 사찰단의 무능만을 탓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 국무부 정책실장도 911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해 밝히면서 "우리는 거역 못할 주장에 대해서는 청취하고 배우며 정책을 수정하겠지만 함께 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함께 가지는 않겠다"고 말해 선택적으로 다자주의를 택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나토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원 포 올, 올 포 원(one-for-all, all-for-one)'이라며 전쟁 발발 시 회원국의 전쟁 지원을 사실상 의무화한 나토 조약 제5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독일-벨기에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시 나토 동맹국인 터키에 대한 방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신유럽' 국가로 불리는 동유럽 국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고, 그 대가로 동유럽은 폴란드의 파병, 불가리아의 미국 지원 등 미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기존 나토의 동맹관계가 와해되고 새로운 동맹관계가 수립될 가능성마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라크 사태 논의 과정에서 심각한 분열을 보였던 나토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꾸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실제로 90년대 들어서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군사블럭과 이에 따르는 군사행동을 모색하며 '평화유지'와 '국제적 공헌'을 명분으로 나토의 외연적 확대(즉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기존의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인과 중부유럽에 대한 '동진정책')를 추진했던 유럽 국가들은 발칸 전쟁을 통해 그 무능함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유럽국가들은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만을 쳐다볼 따름이었고, 미국 역시 이에 대해 어색한 자세를 취했을 뿐, 나토의 존립근거 자체를 위협하는 유럽 한복판에서의 분쟁은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 평화협상안은 '코소보 지역으로부터 세르비아군을 철수시키며 향후 3년간 코소보지역의 자치를 실시하며 이를 감시하기 위해 나토 지상군 2만여명을 주둔시킨다'는 것만을 담고 있을 뿐, 그 미래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보장하지 않았고 보장할 수도 없었다. 즉 군사개입을 통해서건 아니면 '평화적' 수단을 통해서건 (또는 '불개입' 노선을 통해서건) 나토 스스로가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에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주의 매파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리처드 펄 미국 국방정책위원장은 지난 3월 26일 독일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과 한 회견에서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보스니아 분쟁 당시 유엔과 유럽연합이 개입을 거부해 미국이 지도력을 떠맡았다면서 당시 유럽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으나 수 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어야만 했다고 말하면서 전후에 나토와 유엔의 중요성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대규모 비용을 들여가며 유럽 대륙 기지에 거대한 군사조직을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유럽 주둔 미군의 대대적 재편은 옛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미국 정부 안팎에서 줄곧 거론돼 왔고 특히 911 이후 변화한 미국의 안보개념과 재정적자 확대 등이 재편론을 가속화했다. 냉전이 한창일 때 30만 명에 달했던 유럽 주둔 미군 수는 현재 239개 기지, 11만9000명으로 줄었고 3분의 1로 줄어든 병력이 서유럽 외에 발칸반도에서 코소보까지 광대한 지역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유럽 주둔군 규모를 축소 또는 현상 유지하면서 새 '맹방'이 된 동유럽과 남유럽에 미군을 배치하려면 서유럽 주둔 병력을 빼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동구권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우산'에 편입되는 정치적 효과와 함께 그에 상응하는 경제원조와 미군 주둔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듯 2차 세계 대전 이후 출범한 유엔과 나토를 부차화하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상하는 미국의 구상을 일컬어 일각에서는 '미국이 동맹 없는 새 시대로 진입했다(U.S. Enters a New Era of Non-Alliance)'고 논평하기도 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국제기구와 동맹은 "20세기의 갈등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일련의 위협을 다룰 전략이나 정책, 제도가 아닐 수 있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바야흐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이 주축이 되어 창안한 국제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라크전의 전망 ― 세계의 체계적 불안정성의 도래 그러나 미국을 비롯, '의지연합'이 이라크 침공을 통해 의도하는 새로운 국제체계는 장기적으로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신중세적 무질서가 창궐하는 효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우선 당초 미국의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전쟁 양상은 '속전속결'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록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측면이 적지 않지만,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전쟁은 자칫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다. 작전 초기부터 미군은 적지 않은 손실을 경험하고 있다. 정작 전쟁이 발발하면 내전을 일으킬 것이라던, '후세인 독재 체제 하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연합군에 맞서 항거하고 있다. 지난 20년 간 전쟁의 참화가 끊이지 않았던, 따라서 '전쟁이 곧 삶의 일부'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용한 분노'를 쌓아왔던 것이다. 또 장기불황의 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세계경제가 '전시경제'를 통해 회복되리라는 전망 역시 어둡다. 오히려 연간 2백억 달러(약 24조원)씩 최소한 5년 간 총 1000억 달러에 달할 전후 주둔비와 747억 달러에 달하는 전비, 게다가 3천4억 달러 가량의 기록적인 적자와 6조4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 정부의 채무를 고려한다면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호주머니를 폭격할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이 차라리 설득력을 지닌다. 중동지역에 누적된 지정학적 사안 역시 이번 침공을 통해 그 모순이 더욱 첨예해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비록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친미자유정권을 수립한다해도, 그 유지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며 되레 중동 전역에서 이슬람 민족주의 혹은 강경 원리주의 세력의 부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이번 침공은 중동 전역에서 이슬람의 분노를 더 키워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안보에 불안요소를 키울 뿐이며 그나마 존재하던 친미국가 내부의 반정부세력의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무엇보다도 유라시아 전역에서 안보의 불안정성은 증폭될 것이다. 미국의 예방전쟁에 거부감을 느끼는 러시아와 중국·프랑스·독일과 같은 아류 제국들의 반발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며 중동 패권을 둘러싼 지역적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당분간 미국을 좇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을 적과 아로 나누며 무소불위의 군사력으로 패권을 강화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목적하는 자국의 안보와 시민의 안전은 점차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911 이후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과정, 즉 세계질서를 주도하던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 질서를 폐기한 것은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 무엇인지를 의심케 하기 충분했다. 징벌과 폭력이 잠재된 군사적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노선 역시 항시적인 위험과 불안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결국 '의지연합'이 상징하는 오늘날 세계질서는 '체계적 불안정'으로 묘사될 수 있을 따름이다. 2차 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기구들이 자명한 한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지연합"이 주도할 새로운 세계질서가 이전 세기에 비해 평화와 안전을 안겨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도리어 이번 침공은 기존 질서의 균열과 공백을 불러와 세계를 점증하는 불안의 공포로 몰아넣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야만"의 도래와 세계사회운동의 과제 이미 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전후(戰後) 50년간 유지되어온 미국의 세계전략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화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고삐풀린 망아지' 미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일방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무질서와 혼돈을 낳을 이번 전쟁은, 또한 타락한 제국의 질서를 넘어서고자 하는 거대한 희망을 포함한 '판도라의 상자'이기도 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미국이 구상해왔고 지금 현실에 등장시키려 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 한다. 미국과 초국적자본의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즉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적 세계화에 맞선 세계사회운동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만이 지금의 "야만"과 위기를 헤쳐나갈 유일한 길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PSSP
[편집자주] 세르파티의 다음 글은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마르크스주의 저널인 <붉은 스카프>(Carr Rouge)에 실렸다. 세르파티는 최근 <군사세계화: 공포의 불균형>(La mondialisation arme: le dsquilibre de la terreur)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Collection La Discorde, Editions Textuel. }} 저자는 미국이 어떻게 자본의 세계화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군사력을 사용하고 사용하는지 분석하고 있다. * * * 미 의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미 영토 밖의 지역에서 미국 군대의 개입은 1945년에서 1990년까지의 기간에 비해 1990년대에 훨씬 자주 일어났다(미군의 개입은 1945-90년 기간 50회 미만이었지만 1990년대는 대략 60회였다). 가장 최근 기간만 언급하더라도, 예를 들어 1998년 12월에 영국과 함께 이라크를 폭격한 사례와 같이, 미 행정부는 UN의 어떠한 위임결의도 받지 않고 군사작전들을 조직해왔다. 1998년 8월 케냐 나이로비의 대사관이 폭탄 공격을 받은 후,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카르툼의 한 의약품 공장을 폭격할 것을 명령했다―이 공장에서 생화학무기를 제조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해에, 냉담한 어조로 미 행정부는 카르툼의 공장에 대한 공격은 실수였음을 인정했다(<인터내셔날 해럴드 트리뷴> 1999년 10월 28일자 기사 참조). 같은 시기 미국은, 자신이 서명한 것이든 안한 것이든, 관여했던 국제협약들에서 탈퇴했다. 미국 의회가 대인지뢰의 사용을 금지했던 1997년 협약과 핵실험완전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나, 본토 미사일방어(NMD) 프로그램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중요한 사례다. NMD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은 1972년의 ABM 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핵무기 통제시스템의 중심축 중 하나인 ABM 협정은 각 가맹국들이 전략적 공격에 대한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며, 방어미사일의 개발과 배치를 강력하게 제한한다. 전략적 이론의 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1990년대 말, 대여섯 개의 위원회들이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를 재정의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미국 국익위원회>는 2000년 6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The Commission on Americas National Interests, July 2000, Washington, D.C. }} 이 위원회에는 의회의 유력 인사들과 유명한 경제학자들(폴 크루그먼), 이후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콘돌리자 라이스가 참여하였다.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군사 개입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미국의 이익인가, 무엇이 안보에 관해 결정적인가를 정의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안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틀에서, 불안전(insecurity)은 기업들의 사회적 계획들과 실업의 폭력에 직면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내부적 안보는 오직 사적 소유권의 보호를 의미하며, 외부적 안보는 오직 외부의 침입에 대한 영토의 보호를 의미한다. 그 보고서는 미국의 국가이익의 위계를 확립하는 것, 즉 사활적인 것, 매우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 부차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 보고서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지역에 개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떨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위원회는, 그러한 주장이 이끌어 낼 논쟁들을 의식하면서도, (1994년 르완다에서와 같은) 대량학살들을 예방하는 것은 미국의 사활적인 목표를 구성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선언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 행정부는 국무부와 국가안보위원회의 아프리카 전문가들로부터 대량학살이 몇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개월 전부터 계획되고 있다는 경고를 수차 받았던 것이다. 세계화의 방어,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 위원회는 [미국의 이익에서] 사활적인 항목들에 관해 한정된 목록을 작성했다. 그것은 물론 미국과 세계 곳곳에 배치된 미군을 위협하는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와 같은 실제 군사적 위협을 열거했다. 계속해서 그 보고서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이며 미국이 가장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의 방어는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 중에서 반드시 부각되어야 하며, 미군은 그것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점은 상당히 영향력있는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자 <뉴욕타임즈>의 편집인인 토마스 프리드만이 무뚝뚝하게 설명했던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자유 무역에 시장을 개방하도록 강제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자는 바로 엉클 샘[미국]이고, 세계화 시대에 세계 곳곳에 배치된 [미국의] 군대는 시장을 유지하고, 19세기의 세계화 시대에 영국 해군이 그랬던 것처럼, 해양 교통로를 개방한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F-15 전투기를 생산하는 맥도넬 더글라스가 없다면 번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장은 오직 소유의 권리가 보장되고 보호되는 조건에서만 기능하고 번영하며, 시장은 군사력에 의해 엄호되는 정치적 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Harper Collins Publishers, 2000, 특히 381페이지와 464페이지를 참고. }} 의회에 제출된 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화의 방어는 주요한 세계적 시스템들―상업, 금융, 물류 및 에너지 네트워크와 그 환경―의 안정성과 실행가능성의 유지를 의미한다. 다른 보고서들에서, 미국 군부의 최고위 구성원들은 다수의 시스템들(천연자원, 에너지, 자본, 기술, 정보, 지식의 시스템들, 그리고 이 시스템의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하부구조들, 또한 그것들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들)의 세계화는 점점 더 각 국가들에게 결정적이며, 북대서양 민주주의(sic)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세계화는 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국가 안보는 수세기에 걸쳐 국가 영토의 불가침을 의미했지만, 이 결과로 이제는 세계적 시스템들의 실행가능성(적절한 작동)을 의미한다.{{) D.C. Gompert, R.L. Kluger, M.C. Lubicki, Mind the Gap: Promoting a Transatlantic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National Defense University press, Washington, D.C., 1999. }} 대체로, 이 전문가들은 자신의 에너지 네트워크들(석유)의 보호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미국이 항상 실행해왔던 군사적 개입의 권리를, 금융시장의 보호를 포함해서 일반화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것은 NATO를 위해 정의해왔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전쟁의 사유화, 책임의 경감 우리는 위에서 아프리카는 미국 의회가 볼 때 중요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인용했던 전문가들은 아주 분명하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라는 복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 소유권과 부의 독점의 방어를 사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세계화의 불평등성과 불완전성을 인식하는데 있어 어떠한 어려움도 없다.{{) Gompert et al., op. cit., P. 24. }} 그들에게 긴급한 우선 사항은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지역이다. 이 곳에서 NAFTA와 곧 출범할 범-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는 이처럼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과정을 수반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나타날 위협들은 미국의 바로 목전에 와 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그 짐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수단에서 군사 개입의 커다란 실패라는 매우 나쁜 기억들을 남겼던 아프리카가 특히 그 대상이 된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독립은 이전의 식민 권력들이나 또는 투자나 금융투자를 원하는 사적 자본에게 방해물이 아니다. 허약한 국가 장치는 군부에게 포위되어 있거나, 서로 라이벌 관계이면서 무장 집단들의 지지를 받는 주요 분파들에게 분점되어 있으므로, 이전의 식민권력에게 어떠한 장애도 아니다. 국제경제기관의 통제를 받는 이 국가들은 자신의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기업과 이들 과다채무국가의 유가증권을 쥐고 있는 채권 기관의 소유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맺은 계약을 지킬 것을 보장한다. 이는 단지 (어떤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의사(擬似)-국가(quasi-state)라고 부르는) 국가의 지배계급들이 정치적 권위를 유지하고 경제적 자원들을 통제하고 약탈물에서 자신의 몫을 챙기는 데 국제적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분석에 의해 지역 강국인 것처럼 조장되는 나라들은 내부 분쟁들로 인해 침식되고 있다. 식민 상태로부터 형식적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지배 국가는 과거 식민지배 시기에 물어야 했던 식민지 운영비용을 면제받았지만, 식민지에서 얻었던 이윤을 잃지는 않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부들은, 젊은이의 교육과 같이, 생존의 재생산과 유지에 필요한 재정 지출을 부담할 책임을 면제받게 된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유일한 목표는 천연자원에 관한 우선권의 확보이며, 채권자들은 오로지 외채 지불의 흐름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데 몰두한다. 만약 우리가 세계화를 세계적 규모에서 기능하는 하나의 총체로 본다면, 오늘날 자본의 재생산 양식은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매우 선택적인 요구가 있을 뿐이다. 선진국가들은 경제성장의 침체에 직면해 있고, (높은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새로운 생산 기술의 확장에 기초한 새로운 생산성의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선진 국가들에게 아프리카는 더 이상 저임금노동이라는 매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외국자본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 정부들에게 주어진 주권과 합법성은, 자본이 경제적 비용이나 사회적 부자유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이들 나라에서 제공한 이득을 완전히 얻을 수 있게 하였다. 르완다에서 조직된 대량학살은,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이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결코 다국적 기업들이 채굴과 석유생산을 위한 활동을 추진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주민을 절멸시키는 사회적 천형(天刑)들, 특히 식량 결핍, 기아와 전염병(AIDS는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악화된 판본일 뿐이다)은 내부 원인에 의한 산물이 아니다. 탈-식민운동의 틀에서, 이러한 천형은 1960년대 초반 르네 듀몽이 강조한 것처럼 나쁜 출발의 반영일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러한 천형이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관계들의 구조에서 불가역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러한 주민의 인구 수는 너무나 많다. 끌로드 메이야수는 인구학적 수단(출산 제한, 피임 등등)을 통해 착취 받는 인민들의 인구를 통제하는 게 실패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굶주림, 질병 그리고 죽음을 통한 통제 형태는 더욱 효과적이고 잔혹하지만, 현재 경제적 합리성과 구조조정이라는 구실로 확립되었다: 맬서스의 교훈이 너무나 잘 이해되었던 것이다. 메이야수에 따르면, 맬서스의 법칙은 인구성장의 과잉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하는 인구가 반드시 영구적으로 아사 직전의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 Meillassoux, Leconomie de la vie, Demographie du travail, Cahiers Libres, Editions Page Deux, 1997, pp. 108-109. }} 또한 새로운 전쟁은 맬서스의 법칙이 적용되도록 하는 비극적 기능을 하고 있다. 나토, 유럽 부르주아의 종속의 도구 미국에서 논쟁이 고립주의자들과 개입주의자들 간의 분할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면, 논쟁에서의 문제는 국가안보에 관한 이해의 위계이며, 특히 무엇이 미국이 군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는 사활적 이해인가라는 문제다. 분할된 모습을 띠더라도, 소유권의 수호와 결합된 문제들에 다루기 위해서는 어느 곳이든 미군이 개입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 이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인의 인명 피해가 제로여야 한다는 목표가 (얼마간) 우선순위에 남아있으며, 위협들이 점점 더 분산되고 다변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군의 개입은 미국의 과업이며, 또한 심각한 경쟁자들의 부상을 막고 자신의 전략적, 전술적 목표들에서 우선 순위들을 결정하는 것도 그러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책 결정을 책임지는 일부 인사들이 몇몇 특정한 분쟁들(유럽의 분쟁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분쟁까지도)의 관리를 유럽의 군대에게 떠넘길 것을 제안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논쟁의 구조 내에서였다. 오늘날, 자신의 군사력으로 인해 세계적 역할을 지속하겠다는 유럽의 강국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야망은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군사 교리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유럽 정부들은 1990년대의 경제적, 지정학적 전환들에 의해 취해진 기회와 위험들에 대해 동일한 전망을 가진다. 현재 부상중인 유럽의 방어체계는 '범대서양 동맹'(transatlantic alliance)의 구성요소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2000년, 나토 사무총장이었던 하비에르 솔라나는 유럽연합 외교정책 및 공동안보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었다. 몇 개월 후, 니스 정상회담(2000년 12월)에서는 신속대응군의 창설을 결정했다. 유럽 방어의 형성은, 이미 나토 회원국 다수의 사례와 같이, 앞으로 유럽 국가들이 국방예산을 증액하도록 더욱 압박할 것이다. 유럽의 방어 체계가 나토에 종속되는 것은 경제적 수준에서 범대서양 통합의 진전에 동반된다. 경제적 통합은 동-남아시아의 붕괴로 시작되어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로 확산되기 이전인 1997년 위기 이후 강화되었다. 경제위기는 한편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다른 한편으로는 신흥국가들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들과의 경제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미국에 의해 지배되는 범대서양 통합은 미국과 유럽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 간의 금융적, 상업적 결합의 확장이라는 상황이 반영된다.{{) 1997-99년의 기간에 다국적 기업들간의 초국경적 인수-합병의 60%가 미국과 유럽의 산업집단들간에 이루어졌다(UNCTAD, 2000). }} 주주들의 요구에 완전히 기운 기업 경영의 동일한 규칙들이 채택되며(기업지배구조), 양 대륙에서 시행되는 거시경제 정책의 수렴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상호간의 제국주의적 경쟁을 억누르지는 않지만, 오히려 근본적인 공동 이해와 어떤 유럽 국가도 도전할 수 없는 미국의 지배 구조 내부로 경쟁을 제한한다. 범대서양 통합은 특히 군수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의 군사 예산 규모, 이라크와 세르비아와의 전쟁에서 과시한 기술적 진보, 그리고 각 나라의 군사장비를 나토의 작전상 요구에 맞춰야 할 필요성은 산업 차원에서 무기의 연구, 개발과 생산 프로그램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미국 그룹은 그 프로그램을 주도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또한 펜타곤이 남-동 아시아에서 구축해온 방어 구조에 일본이 더욱 적극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몇 개월 전 조지 부시 행정부의 무역 대표로 임명된 로버트 젤릭은 여기에 역사적 변화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그는 일본, 미국, 남한, 호주가 군사관계를 강화하여, 아시아 미군 내부로서 일본 자위대로 대통합되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R.B. Zoellick, A Republican Foreign Policy, Foreign Affairs, vol.79, no. 1, p. 74. }} 세계화가 낳은 위험 계급들이 눈앞에 있다 앞서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언급된 것처럼 미국에게는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는 미국의 경계 부근에서 유력한 적대 권력이나 실패한 국가들이 부상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다.{{) The Commission, op. cit., P. 6. }} 미 전략가들의 용어법에서 실패한 국가라는 개념은 1991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는데, 이는 내전(혹은 국가-이하적인 전쟁)의 영향으로 국가가 해체되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행복한 세계화와 그것의 귀결로서 민족들 간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수렴에 관한 담론은 오직 그것을 신봉하는 자들만을 결속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미 행정부와 전략가들은 (이전에 현존 사회주의라고들 말했던 것처럼) 현존 세계화가 초래하는 해악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전략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저술은 암울한 각본들로 넘쳐 나는데, 그에 따르면 국가의 해체가 세계화와 뒤섞일 때 끔찍한 사회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국 군 당국의 고위 인사들이 세계화의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특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 지도자들 편에서 봤을 때, 세계화는 그들의 안보에 과중한 위협을 부과한다.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세계화가 유발하는 주된 위험 중에는, 막대한 초극화의 구성이 있다. [오늘날의]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19세기 유럽 국가들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이농의 결과 초래된 것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들의 마을에서 내몰린 농민과 장인의 존재 조건이 비록 비극적이긴 하였으나, 이러한 이탈은 산업화를 수반하는 것이어서 자본주의의 팽창이 종국에는 이 인구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오늘날 상황은 전혀 다르다. 발전도상국의 상황은 도시에 살러 온 수천만의 인민들에게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천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들의 숫자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어림컨대 2010년 즈음이 되면 발전도상국 인구의 45%가 소도시와 대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을 근심에 빠뜨리는 것은, 자신의 영토 근처에 위치하거나 미국의 주요한 경제적 이해와 연루된 나라 안에 있는 도시들이 나타내는 위험이다. 멕시코 시티(인구 200만), 상 파울로(인구 260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리오 데 자네이루(각각 인구 100만 이상)는 그것에 맞서 대비할 필요가 있는 위험을 나타낸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 = 19세기의 위험 계급>의 현대적 판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 지도자들이 목격하는 위험은 인민 대중들의 프롤레타리아화로부터 초래되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임금노동의 전망이 어떻게 손써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위험은 인민들이 절망에 휩쓸린 나머지, 미국이 그것의 수립에 일조한 특히 미 대륙에 있는 허약한 국가 장치들을 뒤흔들려 드는 것이다. 또한 미 지도자들은 절망과 극빈 때문에 인민들이 불법적인 행동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 역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베네수엘라, 카리브해 지역과 콜롬비아가 <미국 국익위원회> 보고서에 인용됐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대상은 멕시코다. 보고서는 거리낌없이 말한다.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함으로써 이 나라는, 이전에 암묵적으로 그랬다면, 이제는 명시적으로 미국의 전략 범위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캐나다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The Commission, op. cit., P. 29. }} 보고서는 경제 붕괴와 정치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남-서 국경에 대규모 이주 물결이 밀려 올 경우 미국이 위협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를 언급한다.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할 책무라는, 위에서 정의된 의미에서) 사활적 이해가 연루된다. 한 연구자는, 다소간 동일한 분석을 채택하면서,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멕시코 투자가, 그 대부분이 석유 수출인 1560억 달러 가량의 양자간 교역과 마찬가지로, 위협받을 것임을 지적한다. 장차 벌어질 [멕시코의] [내]전에는, 멕시코에 가족을 둔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가담할 것이고, 미국 내부에서 폭력을 부추길 것이다.{{) S.R. David Saving America from the Coming Wars, Foreign Affairs, vol. 78, no. 1, 199, p.116. }} 위원회 보고서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멕시코의] 사회적 고통의 주된 책임이 미국이 멕시코에 강제한 경제 정책에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 과정을 잘 입증하고 있는 한 책에서 길렘 파브르는, 시장 경제의 범-지구적 팽창, 금융화의 동학, 무수한 역외 금융 센터를 통해 활동하는 자들에게 보장된 익명성, 그리고 (은행과 정치가들의) 부패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 틀 안에서, 국제 기구들과 미국이 멕시코에 강제한 대규모의 사유화 프로그램은, 상업적 거래와 자산 투자와 함께, 마약왕들에게 알짜배기 트로이 목마를 제공했다.{{) G. Fabre, Les prosperites du crime, Editions de LAube, 1999, p. 116. }} 앞으로 살펴볼 것이지만, 미국이 '플랜 콜롬비아'에 착수한 것은 바로 마약 거래에 대한 전투라는 명분에 따른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사활적 이해의 방어를 수행하는 첫 번째 단계임에 분명하다. 미국은 다가올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략 전문가들은 도시가 의미할 수 있는 새로운 전장에 대해 주목해 왔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사 교리는 이러한 개입에 연루되는 것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근년간에 미군은 이런 식의 개입을 배가시켜 왔다. 평화유지 작전을 위한 것이든(소말리아, 라이베리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자신들의 분명한 정치적 필요를 위해서든(파나마에서처럼) 말이다. 지난 10년 간 이런 종류의 군사력 배치의 수는 250 차례를 헤아린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전투에 부합하는 무기를 개발·생산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관련한 요구들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연구 집단 중 하나로서, 공군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랜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 열거되어 있다: 소형 광섬유 미사일, 나토가 세르비아에 개입할 당시 시험적으로 사용되어 비교적 성공을 거둔 유형의 탄약을 발사할 수 있는 무인기(소형 무인 비행기), 소음탄이나 다른 비-살상 무기들을 배치하는 임무를 지닌 소형 로봇 따위들. 냉전이 끝난 이래, 미 행정부는 이런 종류의 무기에 관심을 가져 왔는데, 이는 (문서상의) 정의에 따르자면 군인, 무기, 보급품 또는 설비를 무력화하되, 죽음 내지 심각하거나 영구적인 무력화를 유발하지는 않는 의도를 갖는 무기다. 한 마디로 깨끗한 무기, 마치 대이라크전에서 이른바 정밀폭격이 깨끗한 것으로 가정됐던 것처럼, 혹은 세르비아에서의 열화우라늄 무기의 사용이 그랬던 것처럼. 연구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은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예산을 심의하는 의회에 배분된 감사의 내용은 상세하지 않다). 그렇지만 1994년에 착수된 프로그램인 고주파활성오로라 연구프로그램(HFAARP)은 고주파 전자기 광선으로 자연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세르비아는 아마도 전기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흑연 폭탄의 시험장 노릇을 했을 것이다. 비-살상 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대단한 미래로 향해 있다. 이로 인해 미군 혹은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군대는, 자신들의 이해(심지어 비-사활적인)가 위협받는다고 미국이 판단할 때라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목격할 수 있듯, 이른바 비-살상 무기 프로그램은 분쟁 와중에서 민간인과 전투병 간의 구별을 약화시키는데, 이 구별은 문명상태로의 일보전진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비-살상 무기 프로그램은 또한 불가피하게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사회의 적) 간의 차이를 환원시키는 바, 뤽 맴피는 이런 유형의 무기 생산이 억압의 내부적 무기고를 강화시켜 조만간 사회를 영구적 통제 하에 두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Mampey, L. Les armes non letales. Une nouvelle course aux armaments, Rapports du GRIP, 1/99, p. 8. }} 이것이 말하는 함의는, 비-살상 무기는 그것을 생산하는 선진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내전의 무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업과 빈곤, 수백만 청년들에게 거의 희박한 영구적인 직업이라는 희망의 부재 따위는 발전도상국들에 고유한 현상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재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압력 하에서 사회보호 제도가 해체되는 것과 결합하면서 배제와 주변화의 과정을 창출한다. 게다가, 부유한 나라에서 안전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은 위험 계급이 발전도상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비-살상 무기 프로그램들이 발전하는 것은, 이와 같은 국가-이하적인 전쟁의 특수한 다양성과 대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 대량살상 화학무기 현재 전략적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준비 중에 있는 첨단 우주 기술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인데, 이것의 목적은 미국에 핵 방어막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연원이 되는 레이건의 스타워즈처럼, 이 프로그램은 이중적 목표를 갖고 있다. 대(對)중국 차원에서 목표는 실제로 전략적이다. 미국의 동맹국들 및 동반자들과 연관시켜 보자면, 목표는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지배다. 하지만 이 같은 가시적인 프로그램에 더하여, 다른 것들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동시에, 펜타곤은 생물학무기와 화학무기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착상은 새롭지 않다. 염소와 겨자 가스를 사용하는 화학무기는 1차 세계 대전 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결과는 아주 비참한 것이어서, 화학무기는 1925년 제네바 의정서에 의해 금지되었고, 금지된 이후 널리 사용됐다. 따라서 생물학·유독성 무기에 관한 협약이 1972년에 채택됐다. 화학무기의 개발, 제조, 보관과 사용을 금지하고, 그것들의 폐기를 결정한 또다른 협약이 파리에서 채택됐다(1993년 1월 13일). 협약은 1997에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1999년 말이 되면 129개국이 이를 비준했고 21개국이 거부했다. 거부한 나라에는 이집트, 이스라엘, 북한, 리비아 및 시리아와 함께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포함됐다. 장기간의 토론을 거친 후, 미국은 화학 무기에 대한 협약을 비준했다. [하지만] 생물학무기의 확인-통제 조치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꺼려했다. SIPRI가 지적하듯, 이 의정서의 존재 자체가 서구 국가들의 침묵 때문에 위협받았는데, 만일 생화학 군축 체계가 실제로 적용된다면 이 나라들의 산업이 가장 심대한 위협을 받을 것이었다. 이제, 미국의 의약 산업은 어떤 통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적의를 드러낸다. 클린턴의 상무장관이 이들을 지지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불시의 방문, 정기적 방문은 물론 공개 방문에 대해서도 반대해야한다고 계속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는 미국 산업체에게 그들의 장소로의 불시의 또한 정기적인 방문을 반대한다고 일관되게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다."{{) Quoted in the SIPRI, op. Cit. P. 525. }} 자신의 산업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 행정부는 불시의 방문에 대해서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이 타협안으로 제시한 공개 방문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우리는 미국이 행동하는 방식과 다른 나라들에 강제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를 측정할 수 있다. 이라크 주민에게 10년 동안 부과된 치명적인 조치들은, 사담 후세인이 자신의 인민들을 자유롭게 잔인하게 억압하도록 내버려둠과 동시에, 최강자가 만든 법이 곧 법이고,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기초하는 것은 바로 이 법 위에서라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다. 새로운 전쟁의 훈련장으로서 콜롬비아 불평등한 세계화로부터 초래되는 새로운 전쟁은 또한 지상에서도 대비되어야 한다. 콜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미국의 직접적 개입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약 거래에 맞선 전투를 명분 삼아,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행동 계획을 강화했고, 플랜 콜롬비아를 실행에 옮겼다. '정당한 명분'(Just Cause)라는 이름으로 파나마에서 수행된 작전[1989.12]은, 그 목표가 노리에가를 제거하는 것으로, 미국 미디어가 널리 채택한 것처럼 마약 거래에 대항하며 민주주의를 재건한다는 것을 그 구실로 이미 사용하였다. 확실히 소련이 사라진 이래, 공산주의의 위험을 읊조리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 같은 개입에 대해 국제연합(UN)이 비난하더라도 미국의 전략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 콜롬비아는 1985년과 1998년 사이에 외채가 140억 달러에서 330억 달러로 증가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공세로 인해 인구의 대부분은, 30%에서 35%(보고타(Bogota)에서는 60%)로 증가한 실업률에서 [짐작할 수 있듯], 최근 몇 년동안 더욱 악화되는 극빈 상태에 처해 있다. 공공기업은 사유화되어 외국 그룹에 헐값에 매각되었고, 연금체계는 사적 연기금으로 넘겨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13억 달러에 달하는 플랜 콜롬비아는 그러나 주로 군사적 억압에 연관되어 있다. 어림잡아 250명 가량의 군사자문들이 있는데, 또한 미국의 사적인 안보 대행업체 소속의 군사자문들도 있다. 유럽연합은 파스트라나 대통령의 평화 노력에 대한 지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지만, 동시에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으리라 추측되는] 군대에서 직접 갈라져 나온 준-군사적인 무장세력이 수년간 체계적인 민간인 학살 정책을 수행해 왔을 뿐만 아니라{{) See the investigation by Maurice Lemoine, Cultures illicites, narcotrafic et guerre en Colombie, Le Monde Diplomatique, January 2001. }}, 현재에는 노동조합 활동가가 암살된 사건에도 연루되어 있다. EU가 미 군사 계획에 추가한 이 같은 사회적 부가물은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 볼리비아를 돕기 위해 EU가 채택한 같은 종류의 계획처럼 말이다. 이는 미 행정부의 목표를 감추기 위한 진부한 외피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전쟁을 급속히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콜롬비아에서의 미국의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개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접경국가의 경계를 크게 초과하고, 대륙 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곧 2005년을 목표로 계획된 전미자유무역지대(AFTZ)를 건설하려는 전망과 연관된 요소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알래스카에서 티에라 델 푸에고에 이르는 이 지대는, 자신의 경제 번영과 자유 교역을 보장해 주는 새로운 안보 구조의 창출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마약과의 전쟁은 또한 펜타곤의 계획과 군산복합체 특히 록히드의 요구를 강화해야 하는 바로 그 시점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전에 남부 사령부를 책임졌던 장교 써먼 장군이 말했던 것처럼, 당분간은 마약에 맞선 전쟁이 우려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전쟁이다.{{) The only war we've got. Quoted by NACLA, Reports on the Americas, New York, November-December, 2000, vol 34, no.3. }} 결국, 미국의 개입은 그들의 사활적 이해에 대한 재정의의 구성적 요소인데, 왜냐하면 콜롬비아 농민에 맞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주장 이면에서, 이 계획은 위험 계급에 맞선 전쟁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위험 계급은 농촌에서 발견되지만 도시에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노동조합 조직의 주도로 매우 강력한 저항 운동이 존재하며, 이 운동은 노조원들과 활동가들에 대한 준-군사적 그룹의 체계적 암살로도 중단되지 않았다. 플랜 콜롬비아의 목표는 또한 전 대륙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 대륙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결과에 직면해 있고 그 미래는 이미 몇몇 국가에서 현실화된 것처럼 경제의 달러화다.{{) See R. Acosta, La lutte sociale dans le difficile contexte colombien, In ATTAC, Les peoples entrent en resistance, CADTM, CETIM, Editions Syllepse, Geneva, 2000. }} 콜롬비아에 관한 한, 콜린 파월 같이 미국의 군사 개입이 또 다른 베트남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상무 장관 젤릭은 (게릴라에 맞선) 대항-봉기적 투쟁과 마약 거래에 맞선 투쟁 사이의 구별을 폐기해야 한다고 여긴다.{{) Quoted in Business Week, Bush Worlds, January 29, 2001. }} 내가 여기에서 제공한 성찰의 소재가, 독자로 하여금 논쟁의 와중에서 군사적 간섭을 지지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에 맞설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너무나 자주, 그런 것들은 오직 군사적 개입을 위한 이데올로기적인 겉치장에 불과하다. 그 기본적 목표가 사적 소유 및 그것을 통해 부가 이미 가장 부유한 자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약탈 통로를 보호하는 것일 뿐인 개입 말이다. [끝]
3월 20일, 막상 벌어진 전쟁에 대한 당혹감과 분노를 미처 감지하기에도 일렀던 이날 오후, 보문동에 위치한 노동사목회관에서는 조금은 낯선 주제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 2회 인권활동가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인권운동단체들이 함께 모여 꾸린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의 첫 번째 행사로 3월 인권포럼이 '전쟁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당시 전쟁중단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과 미대사관 앞 집회, 그리고 7시 광화문 반전집회가 다급하게 조직되고 있는 상황,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비하면 이 토론의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것이었다. 애초에 준비했던 토론의 내용들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긴급한 대응들, 특히 소위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는 운동단체들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핵심논의주제로 다루기로 하였다. 평화인권연대에서 준비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정치·군사적 배경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그리고 이러한 전쟁을 반대하고 막아내기 위해 인권운동 혹은 평화운동이 해야할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한 논의가 제안되었다. 하나는 '여성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가 발표하였다. 전쟁이 미치는 극악한 폭력적 상황이 하나의 사회를 파괴시키는 과정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이 존재함, 그것은 사회의 소수자들 즉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 전쟁이 아니어도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된 자들이 전쟁에 의한 극단적인 폭력상황에 의해 이중적인 혹은 최악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는 '억압받는 이들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미국의 명분이 명백히 거짓임을 폭로할 수 있는 반전투쟁의 핵심적인 내용임을 인식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의 발표는 국제민주연대에서 준비하였다. "이라크 전쟁에 맞서 인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인권운동, 평화운동이 전쟁 및 국제분쟁에 대한 대응방식의 한계 등을 지적하며 활발한 국내외의의 연대를 통한 인권(평화)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였다. 또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반전서명운동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미국과 영국을 제소하는 것 등 실천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들로 토론이 진행되었고 논의의 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실천적 대응들과 관련해 별도의 모임을 상정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토론의 시간이 그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에게도, 포럼을 준비한 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도 무척 낯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공동의 대응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소위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는 다소 모호한 운동집단 내에서의 운동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한 내용적인 합의, 혹은 어떤 연대의 근거들이 부재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과제와 공동의 운동방향성을 모색하는 토론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토론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또한 밝혀진 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3월 인권포럼에서 역시 구체적인 공동의 실천과제가 제출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내용이 부족하였고, 급박한 당면 사안들 즉 전쟁중단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공동 성명서 채택, 이라크전 한국군 파병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 대응 등 이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평이한 수준의 공동행동을 계획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만, 토론의 과정에서 짧게 제기된 몇 가지 고민들을 보다 의미있게 기억하고자 한다. 지금 시기 '인권'과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를 화두로 하는 운동들은 정확히 무엇을 위한 투쟁들인가, 또한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의 보편성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투쟁들이 어떠한 연대를 무엇을 위해 도모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들. 정답이 아직 없기에 암묵적으로 숨겨 놓았던 그 고민들이 중요한 논의과제가 되고 있다. 3월 20일 진행된 인권활동가들의 토론은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성과를 남겼다. 인권운동 네트워크, 그 의미는? 작년 11월, 첫 번째로 치뤄진 전국인권활동가대회는 인권운동진영의 공동의 과제를 모색하고 각 시기마다의 인권문제의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틀거리를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전국30여개 단체의 130여명이 모였고, 다양한 영역과 주제의 운동들이 소개되었고 각각의 운동들은 더욱 폭넓은 연대를 제안하였다. 최초로 진행된 이 사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었고 이 행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문제의식들이 비판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평가회의에 거쳐 다시 제안된 제2회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에서는 제2회 대회는 일련의 연대의 흐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보다 내용적으로 풍부한 공동의 과제를 중심으로 기획하기로 결정하였다. 준비모임에서는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간의 일상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 인권운동진영의 현안과 과제, 그리고 중장기적인 운동의 방향성을 밝혀내는 것이 준비과정에서의 과제임을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3월/6월/9월에 포럼을 개최하여 당면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의 경험을 만들어나가고, 공동의 과제를 모색하기로 한 것이며 3월 인권포럼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되었던 것이다. 현재 준비모임의 주요참가단위는 사회진보연대, 국제민주연대,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동성애자연합 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대의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한국사회 특수한 역사적 계기로 인해 형성되어왔던 다양하고 수많은 인권운동들이 지금시기, 그 운동들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해 수많은 쟁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싼 쟁점들, 그리고 '인권운동'의 방식이 시민운동의 정책입안식 운동방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이에 대한 입장차이와 그에 따른 인권단체들의 분별정립들, 또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판단의 차이와 '인권'이라는 화두의 정세적 효과가 시효만료되고 있는 현 시기를 판단하는 것의 차이 등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현존하는 소위 '인권운동' 딱잘라 어떠한 운동이라고 불리기는 모호하나 통상적으로 구분되는 그 운동들이 일종의 '특정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경향은 지금시기 '인권운동의 연대'가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연대틀을 경계하고 지양해야 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쟁점들이 인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토론되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권활동가 대회 준비모임은 활동가 대회를 실무적으로 기획하고 느슨한 네트워크의 수준으로 긴급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을 실천할 수 있는 틀거리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에 결합하고 있는 다양한 운동단위 역시 앞서 분류한 '인권운동진영'으로 자신의 운동이 분류되는 것조차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연대의 흐름들에 유의미성을 찾는다면, 존재해왔던 인권운동들 혹은 이로 분류되는 다양한 운동들이 기간의 운동들을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논쟁의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당면한 정세 속에서 인권운동의 공동의 대응을 꾀하며, 기존에 이러한 운동들이 자임하고 있었던 역할들에 대한,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뒷받침하고 있는 '인권' 또는 '평화'의 담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기하며 서로의 고민을 진척시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 '인권'이라는 화두.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인권운동을 분열시켰고 인권운동의 포섭과 배제 속에 인권을 화두로 하는 기존의 운동의 영역들은 일정정도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며 '인권'을 중심으로 한 운동들은 더 많은 혼란과 동요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인권'이 가지고 있는 그 보편성이 각각의 운동의 정치적 효과들을 배제하고 경계하게 만들면서 지배계급이 허용하는 하는 제도권 내의 요구들로 한정되는 문제이다. 때문에 인권에 대한 요구, 즉 인권운동의 목표들은 민중에 의한 정치를 일구어내는 것과는 분리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지배계급은 '통치'를 위한 다양한 폭력들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계급투쟁과도 분리시킨다. 이렇듯 '인권'의 보편성은 지배계급의 제도적 틀거리를 유지하는 합리적인 대의와 명분으로 '인권'을 도용하는 위험을 허용하기도 한다. 지금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제기하는 운동들은 현실 속에서 '인권'이 정의되는 맥락의 구조적인 모순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권운동진영에게 던져진 복잡한 쟁점들을 풀어가는 것은 악용되고 있는 '인권'이라는 화두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SSP
제 1막: 모하메드 아타(Mohammed Atta) 아타는 이집트의 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재였던 그는 카이로에서 건축학교를 마친 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가서 도시계획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1995년 '이슬람 도시' 카이로를 관광지로 전환하려는 이집트 정부의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를 위해 독일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 받고 다른 두 동료 학생들(독일인)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왔는데, 거기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도시계획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내쫓고, 양파와 마늘 상인들을 근절시키고, 문자 그대로 그들을 대신해서 문화적 풍모를 갖춘 시민을 연기할 배우들을 데려와 거리를 꾸미려 했다. 아타와 그의 동료들은 이에 거부감을 느껴 이집트 정부에 항의했지만 정부 관료들은 이러한 그들의 반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타는 모든 것이 세습되는 족벌주의가 만연한 그곳에서 졸업 후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당시 이집트는 자신의 경제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고학력자를 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로에서 연구를 계속할수록 아타는 정부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 되어갔다. 그는 정부의 계획이 유서 깊은 카이로를 이슬람식 디즈니랜드로 만들려는 것이며 이는 이집트 정부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으려는 데서 생긴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9월 11일, 그는 비행기를 몰고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해 들어간다. 그로 인해 3000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계는 경악했다. 그것은 비극(tragedy)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타가 이집트에 돌아갔을 때 가졌던,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던 경험의 예외적인 성격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지독한 진부함이다. 제 3세계 혹은 '주변'에 속한 국가에서라면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을 만한 흔한 일―정부에 의한 도시빈민촌의 철거, 노점상 탄압, 실업자 양산 등의 문제들―을 겪고 그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나는 그것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문제는 그것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에 있다. 그가 '사회적' 운동과 결합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어나가는 대신 '반-사회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결론만 제외한다면 마치 운동권 청년의 자기 고백을 듣는 듯 귀에 익은 아타의 뒷 이야기에는 따라서 무언가 설명되지 않은 것이 있다. 1952년 군주제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은 낫세르(Gamal Abdel-Nasser)의 지도 하에서 이집트는 진보적인 아랍 민족주의의 유례없는 부흥을 경험했다. 과거 군주제 하에서는 2차 대전 이후 급성장한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무슬림 형제단(50만 회원)―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는데, 낫세르는 집권 후 이들을 주변화시키는 데에 완전히 성공했던 것이다. 낫세르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암살기도가 있은 후 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정을 바꾼 것은 낫세르의 개혁정책이 가졌던 급진성이었다. 1956년 외국에 넘어가 있던 수웨즈 운하 소유권의 회복과 그에 이은 이스라엘-프랑스-영국 삼자 동맹의 이집트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낫세르를 제 3세계 해방 운동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토지를 재분배하고 외국 소유의 산업들을 차례로 되찾아옴으로써 이집트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교육 체계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서 이집트를 진보의 길로 안내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집트 내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약화시켰고, 더 나아가 아랍 및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들을 고무시킬 수 있었다. 한 편 친미적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그 당시 정치·군사적 권력을 쥐고 있던 사우드 왕가와 종교적 권력을 쥐고 있던 와하비족 사이의 뿌리깊은 분쟁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부흥과 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집트-소련의 동맹 형성이 이들의 협력을 강제했다. 이때부터 반민족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와하비족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는다. "아랍 냉전"이라고 불리는 친미-사우디와 친소-이집트 사이의 이러한 대결은 1962년에 절정을 맞이한다. 이집트는 반제국주의적 아랍민족주의와 결합된 "사회주의"를 선언하게 되고, 그 반대편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무슬림 세계연맹(Muslim World League)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던 무슬림 세계연맹의 목표가 민족주의,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반동적 이슬람주의를 선동하는 것에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정적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67년 이스라엘이 거둔 6일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점으로 해서였는데, 이 사건은 아랍권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불을 지름으로써 사우디 아라비아의 입지를 획기적으로 강화시켜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해 주도된 이란 혁명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반공주의적인 사우디의 그것과 구별되는 반서구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세력이 약화된 이집트의 반-제국주의를 우익적으로 전위된 형태 하에서 다시 취하는 것이었다. 이란 혁명과 동시에 발발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지형의 변화를 완전히 굳혀버린 것은 당연했다. 아프간전에서 사우디와 이란은 누가 더 급진적인가라는 근본주의 경쟁에 연루되었고, 이러한 경쟁은 그 양자를 서로 대립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닮아가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적보다 더 급진적이기 위해서는 적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소련을 의식한 미국의 다양한 지원이 있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미국은 반-서구적 이슬람 근본주의의 창궐에 대해 이중적인 책임이 있다.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직접적으로 지원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랍권 내의 좌파적 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을 붕괴시킴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 이외의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대안도 가질 수 없는 상황으로 대중들을 몰아넣었던 것이다. 사회적인 모순과 적대를 해결하지 않고 투쟁하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세력들만을 파괴했을 때, 불만은 전위된 다른 경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며,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왜곡된 병리학적인 형태로 복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쌍한 '아타'가 잔혹한 테러리스트 '아타'로 변하게 된 것도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적인 운동세력의 총체적인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전망을 찾을 길 없는 그의 분노가 반서구적 이슬람 근본주의에 자신을 결합시켰던 것은 거의 자연적인 필연성을 갖는 과정이었다. 제 2막: 크레온 테바이의 궁전 앞으로 이스메네를 불러낸 안티고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방금 왕[크레온]께서 테바이에 선포하셨다고 하는 새로운 포고는 무엇이냐? … 우리 친구들이 우리 원수가 될 운명이라는 것을 너에게는 감추더냐? … [전쟁에서 죽은 두 오빠 가운데] 에테오클레스 오빠는 바르고 법도에 맞는 정당한 의식으로 땅에 묻어 저 세상에서 고인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거야. 그러나 폴류네이케스 오빠의 불쌍한 시체는 거리에 내놓고 매장도 못 하게 하고 조상도 금지한다는 소문이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서두에 나오는 이 몇몇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이미 무한한 테마(혹은 차라리 무한히 다르게 반복될 수 있는 테마)를 만난다. 전쟁, 통일된 삶(united life)의 파괴, 국가와 가족 간 갈등의 출현, 공동체 내부의 소속들의 경합, 즉 '전쟁의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일련의 테마를 말이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의 '진정한' 출발점(현실 역사의 출발점)에 위치시켜 분석했고, 레닌이 그의 눈앞에서 전개되던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자 활용했던 이 테마는 바로 '비극'의 테마였다. 그러나 비극은 '운명의 인과율'을 통해서만 비극이 될 수 있다. 폴류네이케스 오빠의 시신을 땅에 묻으려고 한 안티고네에게서 국가의 "정당한" 권위에 대항한 반-사회적 개인의 이미지만을 본 크레온이 주변의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동굴 속에 산채로 '매장'하려고 했을 때, 그가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은 정확히 안티고네의 존재가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라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아들 하이몬의 약혼녀인 안티고네를 죽이면서 그것이 역으로 자신의 존재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깨끗이 사라져 주리라고 크레온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정당함만을 보게 되는 의식의 맹목성에 지배되는 내란(소속들의 경합)의 상황 속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이몬이 안티고네와 함께 자살하고 이어 자신의 아내 에우류디케가 자살한 것을 전해 들은 크레온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아, 이 죄는 도저히 다른 사람한테 전가할 수 없는 것이구나! 내가, 그렇다, 내가 죽였다." 비극 혹은 운명의 인과율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타자와 동일자의 차이가 언제나 '내적인 차이'라는 점이다. 양자의 존재는 단순하게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동일성이란 과정으로서 차이화(differentiation)가 가져오는 상대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자신과 내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가 곧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타자의 존재가 억압될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파괴될 수는 없으며 다시 돌아와 동일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와 분리 가능하다고 믿었던 타인의 존재('주체'란 이러한 착각을 우리가 이름짓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가 사실은 동일자 자신의 내부를 항상 이미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비극적인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들이 모종의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에 도달함으로써 일방성 없는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우뿐이다. 발리바르는 최근에 쓴 자신의 글 「유럽: 사라지는 중재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극의 교훈 … 그것은 "내전"에 관련된다 … 장기 20세기의 "유럽적 내전"으로부터 하나의 교훈이 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절대적 승리"도 불가능하며, "적(敵)"에 대한 어떠한 최종적 억압이나 중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제든 "최종적"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당신은 더 많은 파괴와 자기-파괴의 조건들을 창출한다. 그러한 상호절멸에는 "끝"이 없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자. 그것은 오직 그 상호절멸의 적법성이 근본적으로 제거될 때, 그리고 제도화된 집단적 대항-권력들이 나타날 때에만 끝날 수 있다고." 제 3막: 어떤 이름 모를 요르단 남자 냉전 이후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헤게모니 국가로 독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오래지 않아 이를 제국적 지배의 야심으로 전환시켰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클린턴 정권 하에서 제출된 1996년 Joint Vision 2010과 1997년 4년차 국방 보고서에 등장한 이러한 변화는 '방어'(defense) 개념을 대신하여 (사실상 지배(domination)의 완곡 어법인) US의 '우세'(dominance) 개념을 자신의 군사전략 목표로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적에 대한 '저지'(deterrence) 개념의 의미 자체가 변하는데, 과거에는 적들의 행동(acting)을 막는 것이 과제였다면, 이제 적들을 반응(reacting)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과제가 된다. 바꿔 말해서, 미국이 자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적들의 저항을 분쇄시키는 방향으로 군사정책이 이동한 것이다. 2001년 9·11 테러공격이 발발한지 며칠 후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에 의해 제출된 4년차 국방 보고서는 이러한 US의 '비대칭적 우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식별된 적들의 실제적인 위협에 기반한 대응전략(threat-based-strategy) 대신 가설적인 적들의 잠재적 군사 역량에 기반한 대응전략(capabilities-based-strategy)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방 전쟁" 및 "선제 공격" 개념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는 이러한 계획은 따라서 (테러리즘과 같은) '비대칭전'에 대한 허점을 커버하기 위해 기존의 군사·외교 정책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강화하는 방향을 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윗의 작은 돌멩이를 걱정한 골리앗은 이제 자신의 미련한 덩치를 보다 더 크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정책 상의 변화는 1999년이래 나타난 기하급수적인 국방비의 증가로 이어진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2002년-2003년 회계연도에 379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책정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강대국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고 EU 및 NATO의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전부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한 마디로 미국은 현재 제국으로 전환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으로의 전환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군사적인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초민족적인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경제적인 수단을 통해 하나의 민족국가가 제국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이러한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으며, 미국은 아프간 침공을 필두로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2003년 3월 20일 마침내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한다. UN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전 세계 시민들의 반전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결국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석유에 눈이 멀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많은 전쟁의 비판가들은 이라크 침략전쟁의 목적이 단지 석유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석유는 탐나는 훌륭한 전리품임에 분명하지만, 미국이 그 모든 국제사회의 법들을 명시적으로 어기고 모든 반대를 무릅쓴 채 침략전쟁을 감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우익적인 인사들은 기만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언제나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있지만, 사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함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도 지배계급 스스로가 믿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익적 인사들도 자신의 올바름을 신실하게 믿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끝까지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들이 그것을 철저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며, 자신의 정당성만을 바라보려는 의식의 맹목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 침공 사흘째가 되던 날 미국의 ABC방송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요르단 남자와 가졌던 인터뷰를 방영했다. 미국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을 뿐 아니라 미국식 생활 방식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나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TV를 통해 9·11 테러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이 그러한 테러리즘을 저지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역사의 행위자들은 종종 너무 늦게 비극의 교훈을 깨닫는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 왕에게 거듭해서 안티고네를 용서해줄 것을 권유하다 마침내 이렇게 말하고 돌아선다. "왕께서는 저의 화를 돋우었기 때문에 노한 나머지 저는 왕의 심장을 겨냥하고 궁수처럼 화살을, 그 아픔을 피할 길 없는 빗나가지 않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크레온은 그제서야 자신의 결심을 바꾸면서, "운명과 공연한 싸움을 벌여서는 안되지"라고 말하고 안티고네가 갇혀 있는 동굴 쪽을 향해 달려간다. 이미 당겨진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 시시각각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오직 자신의 아들의 주검을 발견하기 위해서.
파병결정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최악의 선택 지난 3월 5일 미 백악관은 괌에 추가 배치한 24대의 B1, B52 폭격기는 공격임무를 띠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이 1994년 제네바합의로 동결되었던 영변지역의 핵시설(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폭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으로 큰 파문이 벌어졌다. 또한 3월 4일부터 한 달간 진행된 한미연합훈련이 마무리된 후에도, F-117 스텔스 폭격기와 F-15E 이글 전투기와 육군특별기동대가 잔류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미국은 한반도에서 사실상의 군사적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이런 행동의 목적은 남한에서 막연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미국의 ‘충격과 공포’ 작전은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새로운 방식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식의,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도 공포감을 부추기는 행동이기는 매 한 가지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원해야 된다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은,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국익’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이지만, 결국 막연한 공포감에 기반한 것이다. 노무현이 국회 본회의를 앞둔 연설에서 “대등한 한미관계는 국민의 생존이 안전하게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대등한 한미관계는 국민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의미로서, 노골적으로 국민들을 협박한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사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해야만,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렉산더가 단 칼에 잘라낸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본질은 단순하고 해결책도 존재한다. 단, 이는 한국정부가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거부할 때에만 가능하다. 칼을 들지 않는다면 노무현 정부는 점점 더 부시정부가 끌고 들어간 미로에서 헤맬 것이다. 아니 이미 그 길로 들어섰다. 북한은 과연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했는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가 북한을 다녀간 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농축우라늄에 기반한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시한 증거는 “강석주 부주석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과 북한이 원심분리기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알루미늄을 수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제시한 증거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 관리는 미국 쪽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들이 주장한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제조계획을 부정했다.” “(미국은) 근거라고 한 위성사진도 내놓지 않았다!” 계속해서 북한 외무성 관리는 강석주 부주석의 당시 발언이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미국이 계속 강압적으로 나온다면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의미였다고 덧붙였다(앞서 “강석주 부주석이 그렇게 말했다”라는 미국의 발표는 ‘가지게 되어 있다’는 북한식 표현을 의도적으로 오해한 결과인데, 본래 이는 ‘곧 가지게 된다’가 아니라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알루미늄 수입은 어떤가? 이는 현재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인 이라크의 사례를 살펴보는 게 유용하다. 2002년 9월 미국 <뉴욕타임즈>는 이라크가 우라늄 농축을 목적으로 가스 원심분리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그 증거로 원심분리기의 외장재인 알루미늄 배관을 구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딕 체니 부통령은 미국 방송에 출연하여 “정말로 오직 핵무기 원심분리기에만 적합한 설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미국의 핵과학교육재단에서 발행하는 <핵과학자회보>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라크가 수입하려 한 품목은 재래식 무기나 산업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이며, 무기에 사용될 경우 기껏해야 재래식 로켓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미국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기술개발의 증거로 제시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품목인 코발트 파우더, 고강도 알루미늄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농축우라늄 문제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금창리 지하시설 문제도 이와 유사한 사례였다. 1998년 10월경부터 미국은 위성사진을 근거로 평북 금창리 지역에서 비밀 핵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고, 모든 언론은 연일 떠들썩하게 핵위기론을 제기했다. 온갖 소란이 벌어졌지만 1999년 5월, 미국 조사단은 의혹 시설에 대한 현장 방문 끝에 이는 핵시설과 무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2000년 5월에도 2차 방문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것이 무안했던지, ‘현장방문이 이루어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므로 북한이 사태를 은폐할 시간이 있었다’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뉘앙스로 정리했다. 한편, 북한과 미국의 핵 전문가들이 지난 2월말 베를린에서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9년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 때와 마찬가지로 미 조사단을 현지에 받아들여 핵 계획 포기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고집했다(금창리의 경우에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방문의 대가로 일련의 경제 보상 조치가 있었다. 부시정부가 IAEA 사찰을 주장하는 것은 이를 피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북핵 해법은 무엇이었나? ‘북핵 위기론’이 미국에 의해 조장, 고조되는 가운데 윤영관 외교통상부장관은 미국을 방문,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과 함께 북핵 해법에 대해 협의했다. 그런데 이들이 논의했다던 북핵 해법은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윤영관 장관의 제안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고 파월 장관이 대답했다는 것은 그가 북한 문제에 대해 사실상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아무도 한반도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방식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주장이 그저 “흥미로울” 따름이다(미국의 어느 상원의원은 “우리는 지금 대북정책이 없다”고 말했다. ‘나쁜 정책’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페리보고서가 검토했던 ‘무시’ 전략이 실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대신 前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레이니가 최근 미국의 <외교관계협의회>에 기고한 글을 살펴보면, 한국정부와 클린턴 정부의 ‘접촉정책’(햇볕정책)의 주요 정책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대략 추측할 수 있다(그는 특별보고서 작성팀의 책임자인 모튼 아브라모위츠 등 네 명과 함께 4월 중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핵심은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벌여야 하지만 미국이 ‘직접 보상을 주는’ 형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는 페리보고서와 동일하다). 협상의 1단계는 남한과 북한,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공식적으로 한반도 전체의 안보와 안정을 보장하는 포괄적 합의를 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2단계는 여러 소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IAEA를 통한 사찰을 허용하며, 앞서 6개국이 모은 재정적 보상을 대가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생산■실험을 포기하며, IAEA가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고 판단하면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포괄적 합의가 이루어진 5년 후 시점에서 동북아안보포럼을 결성하는 것이다. 각각의 과정은 서로 분리된 합의나 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일본은 북한과 국교를 맺고 관계정상화를 이루며, KEDO는 애초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상 로드맵은 큰 틀에서 볼 때 페리보고서로 복귀하자는 것인데, 차이점은 일본■중국■러시아를 끌어 들여서 그 비용을 분담시키는 것이다. 페리보고서의 핵심은 미국의 유일한 관심사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제거라는 것이요(북한경제의 개혁은 부차적인 관심사다), 또 동북아에서 미군의 군사력 증강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즉 핵-미사일 프로그램 제거에 소모되는 비용은 주변 국가에게 분담시키고(북한 경제위기의 관리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군사력 증강 프로그램은 협상 의제에 연루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다자주의’를 확대하는 것은 미국이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한반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이상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은 북한 농축우라늄 파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금창리 지하시설 문제의 전례를 충분히 따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결은 기존에 페리보고서가 제시한 협상틀에 준하여 검토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문제가 진전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집권 이후 북한과 그 어떤 공식적인 외교접촉도 시도하지 않는 부시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미국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라크와 이란, 북한이 서로 모종의 관련을 맺는 것처럼 묘사했다. “선제공격을 통한 방어”(preemptive defence)라는 군사 교리를 만들어 미국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방어를 위한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UN의 무기사찰단이 별다른 제지 없이 사찰 활동을 벌이는 와중에, 독자적으로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다. 미국은 뚜렷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제네바합의 파기를 선언했고 중유공급을 중단했다(금창리의 경우, 제네바합의의 틀이 유지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역시 분명한 근거도 없이, 북한이 영변지역 핵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다면서, 그 시설에 폭격을 가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을 세워야 한다고 일부러 언론에 흘리고 다녔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부시 행정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방법 밖에 없다. 북한은 농축우라늄 기술 개발이 미국의 악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한국 정부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이 독단적인 행각을 펼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는 외교적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거부하고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 굴종하여 파병을 선택했고, 이는 현재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일 뿐이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노무현 정부를 누가 구원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