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은 민주화와 신자유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를 폭력적으로 탄압하던 군부독재 정권이 퇴조한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던 과정에서 칠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독재 정권의 파행적인 경제정책 운영이 부작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한 라틴아메리카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여 단기간이나마 경제를 안정시켰고, 이 과정에서 친미적 성향의 경제관료들이 “구국의 영웅”으로서 정치 전면에 등장하였다. 멕시코의 살리나스 고르타리 전 대통령, 아르헨티나의 카바요 경제장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60년대 미주군사학교(SOA) 출신들이 70년대 군부독재의 주역이었다면, 70년대 미국 대학 출신들이 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되어 현재의 라틴아메리카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월에 사임한 볼리비아의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일명 고니)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시카고 대학 출신으로 영어식 억양의 스페인을 구사하기 때문에 ‘미국놈’(gringo)이라고 비아냥을 사기도 했던 산체스 데 로사다는 1985년 경제장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의 신봉자였다. 1985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파스 에스텐소로(Paz Estenssoro) 정권은 24000퍼센트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외환 고갈, 정부 소유 광산의 재정적자로 인해 건국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에 시달렸다. 이때 산체스 데 로사다는 국제통화기금과 손잡고 광산의 민영화, 물가 현실화, 초긴축 재정을 통해 단기간에 볼리비아 경제를 안정시킨 인물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된 산체스 데 로사다는 민영화, 긴축재정, 경제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에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조합과 농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희생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이 결과 1995년에도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작년에 재집권한 이후 전개된 이번 ‘가스 전쟁’에서도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볼리비아 최대 광산업의 소유자인 산체스 데 로사다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른 장밋빛 비전이 소수 기업가를 비롯한 지배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할 뿐, 이것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빈곤선에서 생활하는 대다수 볼리비아 국민들에게는 실업과 빈곤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깨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산체스 데 로사다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차파레(Chapare) 지역의 코카재배 농장을 강제적으로 패쇄하면서도 대체작물을 보급하는 데는 등한시하였고, 농민들의 불신과 원성을 사게 되었다. 미국 측에서 보면 볼리비아는 페루 다음 가는 코카인 원료 생산지이다. 그러나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볼리비아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코카는 전통적인 생활 필수품이며, 유일한 경제 작물인 것이다. 지금도 저 유명한 포토시의 은광산에서 일하는 볼리비아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석회를 뿌린 코카잎을 씹으면서 지하 수천 미터에 달하는 막장에서의 중노동을 견뎌낸다. 더구나 커피와 화초에 대한 미국의 수입 쿼터 폐지와 더불어 이들 상품의 가격마저 폭락한 상황에서 볼리비아 농민들은 코카 재배를 통해서 생계를 영위하였는데, 원활한 외자유치를 위해서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정부가 코카 재배를 금지한다면 농민들로서는 생존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체스 데 로사다가 도입한 신자유주의가 국민들의 목을 죈 것이다. 이러한 예는 지난 2000년 볼리비아 정부가 코차밤바 시의 상수도 사업을 민영화하였을 때도 반복되었다. 이 지역 상수도 사업을 떠맡은 미국 엔지니어링 업체인 벡텔의 자회사,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는 상수도 요금을 대폭 인상한 것이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일방적인 횡포에 맞서 볼리비아 국민들은 총파업과 도로점거 시위로 항거하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또다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으로 폭력으로 진압했으나 결국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굴복해 상수도 사업의 민영화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볼리비아의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대안 세력이 출현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나는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가 중심이 된 ‘사회주의 운동당’(MAS, Movimiento al Socialismo)이고, 다른 하나는 게릴라 출신의 펠리페 키스페(Felipe Quispe)가 중심이 된 파차구티 원주민 운동당(MIP, Movimiento Indigenista Pachacuti)이다. 에보 모랄레스는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20.94%의 지지를 얻어 22.4%의 지지를 획득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와 함께 의회 결선투표에까지 갔던 인물이다. 원주민들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지하고, 분배 우선의 경제 정책, 원주민 소유의 토지 환원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농민들의 코카 재배를 옹호함으로써 볼리비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들과 메스티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에 반해서 펠리페 키스페는 아이마라 원주민 출신으로 1992년에는 게릴라단체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룬 인물이다. 1997년 출감한 펠리페 키스페는 2001년 파차쿠티 원주민 운동당을 창당하여 제도권 정치인으로 변신하였다. 정책으로는 토지 공개념의 전면 도입과 지하자원의 국유화 그리고 백인을 축출하고 고대 잉카제국과 같은 원주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이번 가스 전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남미 대륙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볼리비아는 지난 키로가 정권 시절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서 남미 경제의 전략적 중심축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작년에 집권한 산체스 데 로사다 정권 또한 비록 전정권이 입안한 프로젝트라고 일지라도 과도한 외채와 정부의 재정적자를 만회할 수 있는 천연가스 수출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견해는 달랐다. 영국 가스회사를 비롯하여 다국적 기업의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퍼시픽 LNG’가 총 수입의 82%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볼리비아의 몫은 18%에 지나지 않는데 천연가스 수출은 결국 실속 없는 국부의 유출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은, 주석, 초석, 석유 때문에 노동력 착취와 전쟁을 치룬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천연가스 수출이란 현대적 형태의 자원 수탈인 것이다. 더구나 이 천연가스가 칠레를 통해서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리비아인들에게 미국은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볼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우고 반세르 수아레스(Hugo Banzer Suarez)를 지원한 국가라는 인식이 있고 이는 볼리비아 국민들과 반미 정치세력에게 결코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칠레는 1879년 초석전쟁(일명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태평양 연안의 볼리비아 영토를 점령함으로써 볼리비아를 내륙국가로 만들어버린 비우호적인 국가이다. 그 이후 볼리비아는 티티카카호 호수에 해군 기지를 창설한 한편, 태평양 연안의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칠레를 통한 가스 수출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위였다. 이처럼 볼리비아에서의 신자유주의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해방군 마르코스의 말처럼 “미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퍼뜨리고 국민국가가 구축한 모든 문화를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이번 가스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펠리페 키스페나 에보 모랄레스와 같은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세력과 대다수의 볼리비아 국민들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지난달 사임한 곤살로 데 로사다를 승계한 카를로스 메사(Carlos Mesa) 현 볼리비아 대통령은 취임 일성에서 국제통화기금의 권고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천명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국제통화기금은 안정화 정책을 조금 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힘으로써 신자유정책의 철폐를 요구하는 볼리비아 국민들의 투쟁은 미해결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PSSP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단면들 멕시코 칸쿤 공항 입국심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하얀 뙤약볕과 한국에서 몇 년만에 있을까 말까 하는 후텁지근한 더위가 우릴 맞이할 뿐이었다. WTO(세계무역기구) 회의를 무산시키러 온 시위대를 너무 홀대(?)하는 것은 아닌가? 캐나다 입국 때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우리는 칸쿤에 들어오기 전 비행기 티켓 문제로 캐나다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는데,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들어갈 때 입국 심사대를 거쳐 공항 이민국까지 가서 서너 시간의 혹독한 심문을 받았던 것이다. 당연히도 멕시코 들어가기는 ‘장난이 아닐 것’이라며 이 궁리 저 궁리 머리를 쥐어짜며 회의를 했는데 그 작전회의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려 허망하기까지 했다. 캐나다 입국과정이 그렇게 까다로웠던 것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테러용의자나 반WTO 시위대를 색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캐나다를 통한 미국 밀입국 용의자를 걸러내기 차원이었던 것임을 현지 가이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민국 공무원에 의하면 미국의 압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잘사는 미국 식민지’ 캐나다는 따를 수밖에.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자기네끼리 잘살겠노라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입국을 기를 쓰고 막고, 못사는 나라에서는 누구든 ‘어서옵쇼’ 한다.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소리 높여 외치는 선진제국들은 ‘노동력 이동의 자유화’는 기를 쓰고 막는다. 현재의 WTO 협상의제(‘도하개발 아젠다’) 중 하나인 서비스 협상에서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Mode 4)을 요구하고 있는데 선진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짐을 풀고 WTO 긱료회의가 열리는 호텔지역의 반대편(민중포럼과 시위는 주로 여기에서 진행되었다) 지역의 한 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회운동조직 총회 말미에 참석하여 저번 세계사회포럼에서 안면을 튼 세계 소농조직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의 몇몇 활동가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민중포럼이 잘 조직이 안되고 있다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이후 특별한 일정이 없어 시내구경을 갔다. 시내 곳곳에서는 아메리카 전역에서 온 백인 관광객을 상대로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원색 뜨개질 제품들을 팔고 있는 조그맣고 까무잡잡한 마야 원주민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휴양지 칸쿤의 주인은 멕시코인들이 아니었다. 호텔과 같은 휴양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메리카 전역에서 몰려든 부자 백인들이었다. 백인 남성들은 호텔 안에서나 밖에서나 대개 웃옷을 벗고 벌겋게 태운 상체를 드러내고 다녔다.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로 멕시코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메스티조들은 언제나 근무복을 입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일 뿐이었다. 나프타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는 캐나다 밴쿠버 호텔 한 노동자가 ‘칸쿤은 어글리 아메리카(추한 아메리카)’라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부자 백인들이나 멕시코인들이나 다 길가에 축 늘어진 야자수처럼 생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자 백인들은 무료해 보였고 멕시코 서비스 노동자들은 주눅 들고 지쳐 보였다. 방콕의 관광지와 호텔시설이 태국인의 것이 아닌 것처럼 120개나 되는 세계 유수의 호텔이 밀집해 있는 칸쿤은 멕시코인들의 휴양지는 아니었다. WTO 공식 회의장은 호텔지역 안에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2중 3중의 철제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철제 바리케이드가 회의장 주변 사방을 둘러 쳐진 것은 ‘시애틀투쟁’ 이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미주자유무역협정(ALCA 또는 FTAA) 정상회의 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의장소로 록키 산맥 안이나 카타르 도하 같은 섬 등 시위대의 접근을 차단하기에 용이한 곳으로 선정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누구 말대로 세계의 모든 것을 소유한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들이 2중 3중의 철제 바리케이드와 수만의 경찰력에 의지해서 민중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채 외딴 곳에서 회의를 하는 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회의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 단면인 ‘담장 도시’를 실물로 보여주고 있었다. ‘비아 캄페시나’ 8일부터 ‘비아 캄페시나’ 주최의 농업관련 사전 토론회가 있었다. 우리는 개막식만 참여하였다. 오후에 반전을 주제로 한 사회운동총회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번 칸쿤 투쟁의 주력대오 ‘비아 캄페시나’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올해 초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였다. 운 좋게도 국제 소농 원주민 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 초청을 받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간부 도우미로 부문별 사전대회의 하나인 농민대회부터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포럼기간 동안 우리같이 ‘비아 캄페시나’의 공식 초청을 받은 200여명의 각 국 농민운동 대표자들은 두 수도원에서 지냈고, 브라질의 MST(땅없는 농업노동자들)를 비롯하여 중남미의 5천여 농민들은 커다란 체육관에서 숙식을 하였다. 이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위해 어떤 칠레농민들은 3-4일간 걸려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이들 모두는 불편한 잠자리와 변변치 못한 식사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체육관 등에서 각종 토론회와 문화행사를 풍성하게 개최하였고,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ALCA)와 이라크전쟁 반대시위의 주력대오였다. 이들은 언제나 농업의 상징색인 녹색 모자를 쓰고 녹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최대규모의 조직화된 대오였다. 지금은 정권의 성격이 변질되어 가고 있지만 에콰도르와 브라질에서 이들 소농들에 힘입어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진보정권이 들어섰고, 볼리비아 선거에서는 반미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내건 농민이 직접 출마해 선전했던 터라 사기도 충만해 있었다. 나는 포럼 기간 중에 토지점거에 성공해 그럴듯한 공동체를 건설해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MST 정착촌에 가서 약 1,500여명이나 되는 이들과 함께 춤과 음악이 곁들여진 풍성한 야외 식사를 할 기회를 가졌다. 거기에는 이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자유, 평등, 협동, 우애의 미래사회가 이미 있었다. 포럼이 끝난 뒤에는 토지점거를 준비하고 있는 열악하디 열악한 대규모 비닐 판자촌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는데 이들 역시 토지를 점거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게 될 앞날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이번 칸쿤투쟁의 주력도 ‘비아 캄페시나’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허름한 체육관처럼 보이는 지역 문화회관에서 사전대회를 열었고, 집단 노숙을 하고 공동으로 식사를 해결하였으며, 녹색 모자를 쓰고 녹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세계적인 곡물 메이져와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WTO에 대항하여, 그리고 미국-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동지배에 맞서 토지에 대한 권리, 식량주권, 식품안전성, 유전자조작 반대, 생명특허에 대한 반대 등을 내걸고 싸우고 있었다. 농업협상이 주된 의제였고, 이경해 열사의 죽음이 있었긴 하였지만 농민이 주력인 한국참가단과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소농 원주민이 없었다면 칸쿤투쟁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에서의 ‘비아 캄페시나’의 주도성은 내년 초 인도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비아 캄페시나’ 지도자 중의 하나인 온두라스 농민 대표에 의하면, 인도에는 ‘비아 캄페시나’에 가맹해 있는 한 농민조직이 있는데 그 조직규모가 천만 명에 이른다니까 말이다. 그런데 ‘비아 캄페시나’ 운동은 자본주의가 채 발전하지 않은 나라나 지역의, 아직 소멸하지 않은 소농들의 허망한 몸부림일까? 최소한 멕시코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멕시코의 한 인권변호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르길, 소농 운동이자 원주민 운동인 사파티스타 운동을 ‘우리 멕시코 시민 사회의 90%가 지지하고 있다, 노사협력체제에 길들여진 노조는 부패해 있다, 제도혁명당에서 갈라져 나온 인사들과 구 공산당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혁명당도 가짜 좌파다, 그러나 사파티스타 운동은 전진하고 있다’. 멕시코 운동세력의 주된 구호가 ‘사파타 비베 비베(사파타 만세)’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세계전역을 충분히 자본주의화하지 못한 채 위기에 빠져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요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바야흐로 국제 소농운동 조직 ‘비아 캄페시나’가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이경해 열사의 죽음을 부여안은 한국의 농민운동이 함께 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겠다. 멕시칸 타임 사회운동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황실이 조직위에서 파악한 장소인 ‘엑스 팔랑께’(‘전 유적지’)를 가는데 한참 헤맸다. 이 택시 운전사는 여기라 했는데 가보니 아니었고 저 택시 운전사는 저기라 했는데 가보니 이번에도 아니었다. 누가 제 3의 장소를 알려주었다.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헤맬 수 없다며 한 두 사람만 가서 확실히 확인한 후에 움직이자고 했다. 대표로 뽑혀서 ‘엑스 팔랑께’로 갔더니 허름한 체육관 같은 데인데 인기척이 없었다. 또 잘못 왔구나 하고 허탈해 하고 있는데 벨기에 청년 하나도 그 체육관을 기웃기웃하고 있었다. 그 친구 왈 이곳이 틀림이 없단다. 그리고 4시에 열릴 예정이던 회의가 5시에 열리는 것으로 바뀌었단다. 시계를 보니 5시 20분. 그럼 왜 사람들이 없냐고 하니, 여기 사람들 30분 늦는 것은 보통이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잔다. 과연 약 10분 뒤에 주최측이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에 유적지(엑스 빨랑께)인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란다. 부실한 조직위 같으니라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시간도 늦고 통역도 없고 대중적인 토론회가 아니니 오지 않는 게 좋다고 연락을 했다. 회의가 간단히 끝나 주최측의 한사람으로 보이는 이에게 다가가 왜 이렇게 시간이 안 지켜 지냐고 넌지시 따졌더니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이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민중포럼 전야제격인 ‘칸쿤 참가자들 인사나누기’ 프로그램까지 참가하고 숙소에 들어왔다. 멕시코에서 행사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1시간 가량은 늦어졌다. 사회운동총회가 그랬고 농민행사가 그랬다. 이 멕시코 늑장부리기 문화에 대해 네덜란드 사람하고 같이 죽이 맞아 흉까지 본 적이 있었다. 시간엄수가 사회의 자본주의적 조직화의 한 모습이라고 결론을 짓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에 와서 멕시코 전문가 이성형 선생을 만나서 들은 바에 의하면 멕시코에서 파티나 집 초대에 응할 때는 약 45분 정도 늦게 가야 예의란다. 주최측에 준비 시간을 주어야 한다나.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문화는 미국 등 몇 나라뿐이란다. 그러고 보니 브라질 사회포럼도 비슷했던 것 같다. 민중포럼 9일은 ‘세계화에 대한 포럼’에 월든 벨로, 반다나 쉬바, 마드 벌로 등 한국에도 알려진 유명인사들이 나온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엘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장소를 찾아가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숙소에서 걸어가도 될 정도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열렸는데 호텔 직원, 거리의 칸쿤 시민들이 잘못 알려주어서 반대편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포럼 장소를 알게 되어 다시 되돌아가려는데 학생 시위대가 바리케이드에서 경찰하고 대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약 1시간 동안 빙 둘러서 버스를 타고 갔다. 설상가상인 것은 거의 다 갈 지점에서 교통통제를 한다고 버스를 내려 걸어가란다. 35도가 넘는 더위 속을 약 40분간을 걸었다. 캐나다 마드 벌로 등의 물 사유화에 관한 이야기 등을 듣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중간에 연사 마드 벌로를 인터뷰했고, 가족농 보호운동을 하고 생태 농업을 지향하면서 브라질 MST 등 비아 캄페시나와 연대하는 미국 ‘푸드 퍼스트’(식량 제일주의)의 공동 집행위원장 미탈을 인터뷰하였다. 미탈은 이번 칸쿤회의는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미국과 EU가 보조금 삭감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개도국들이 격앙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탈의 예상은 14일 현실로 드러났다. 11일 오전에는 민주노총이 대거 참가한 ‘남반구노조연대회의’ 주최 노동관련 토론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내가 발제자의 한 사람으로 나선 ‘전쟁과 무역’ 포럼이 있었다. 한국 참가단들은 이경해씨가 돌아가신 10일 이후로는 텐트를 치고 매일 촛불 집회를 하느라고 포럼에 거의 참가를 하지 못했다. 꼭 필요한 곳에만 갔고, 내가 발제한 ‘전쟁과 무역’ 포럼은 나 혼자만 참석하였다. 내 발제는 매우 딱딱하게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발제 전에 이경해 씨에 대한 묵념을 1분간 진행하여 회의장이 숙연해 진 데다, 영어가 신통치 않아 남들이 하듯이 즉석에서 청중과 대화하듯이 발제를 한 게 아니라 준비된 긴 발제문을 죽 읽어가니 회의장 안이 더욱 고요해졌다. ‘무장한 세계화’와 북핵위기를 이론적 역사적으로 접근한 것이어서 다른 발제자들의 발제들과는 달리 내용도 무거웠다. 애초부터 발제를 잘 하기는 힘들었지만 어떻든 좀 실망해서 회의장을 그냥 빠져나오려니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발제문을 달란다. 아휴 고마워라! 그리고 멕시코 반전단체 출신 세 사람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단체에 와서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다. 자신이 없기도 하고 텐트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메일만 교환하고 그냥 돌아왔다. 한국참가자들이 많은 포럼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일부가 포럼에서의 토론들이 원론적이라 평가를 한다. 내 의견도 동일하다. 그래서 세계사회포럼 같은 데를 가보면 토론장보다는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각국에서의 투쟁경험들, 투쟁에서의 쟁점들이 교류되고 논의가 되면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사람들이 토론에 진지하게 임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언어문제도 있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생기는 문제인 통역이 매끄럽게 처리되는 회의가 별로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어적으로 고립된 한국 사람들에겐 통역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이경해씨 그리고 투쟁 10일은 WTO 공식회의 개막에 맞춰 농민시위가 있었다. 한국참가단 모두는 시위에 참가하였다. 농민들은 WTO해체를 상징하는 상여를 메고 갔다. 그리고 바리케이드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이경해 열사의 자결이 있었다. 농민대오를 제외한 참가자들은 이경해씨가 온 줄도 몰랐다가 좀 당황했고 설마 돌아가시기까지 하겠는가 했는데 진짜 돌아가셨다. 이경해씨가 지난 3월 제네바에서 24일간 단식하면서 뿌린 다음과 같은 글이 독립미디어센터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그는 칸쿤투쟁의 중심 인물이 되어갔다. 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나는 56세, 한국에서 온 농민이며, 젊은 시절 희망을 가지고 동료들과 농민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보자 노력하였던, 그러나 결국 실패만을 거듭한 많은 농촌지도자중 하나이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가 끝나고 곧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더 이상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나약하게도 수백년 대대로 살아왔던 우리의 고향 농촌이 큰 파도로 붕괴되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그 큰 파도의 근본과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자 하였다. (․․․) 일찍이 농사짓기를 포기한 농민들은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하였고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고자 끝까지 노력했던 농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로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 운이 좋은 사람들은 더 갈 수 있지만 종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는 하룻밤 새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나버린 친구의 날고 오래된 빈집을 돌아보고 그저 돌아오기만 바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한번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비관,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집에 달려간 적이 있었지만 역시 그 부인의 울부짖음 소리만 들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 나는 지금, 인류는 지금 극소수 강대국과 그 대리인인 세계무역기구(WTO)와 이를 돕는 국제기금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상업적 로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반인류적이고 농민말살적인,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인 세계화의 위험에 빠져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즉시 이를 중단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 허구적인 신자유주위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농업을 말살시킬 것이며, 이로써 모든 인류에게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나는 단호히 말하건대, 우루과이라운드는 몇몇 야망에 찬 정치집단들이 다국적 기업과 외눈박이 학자연하는 자들과 동조하여 자기들의 골치 아픈 농업문제를 다른 나라에 떠넘긴 한 판 사기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10일 병원에서의 촛불추모를 시작으로 매일 촛불집회가 계속되었다. 10일 저녁 ‘비아 캄페시나’가 머물고 있는 체육관에서의 마야 원주민들 주도로 진행된 긴 미사, 11일 집회에서 사회자의 ‘평화를 갈구한다’는 발언에 ‘현재 세계에 평화는 없다’는 인도네시아 농민대표 사라기씨의 일갈, 12일 세찬 비바람 속에서 진행된 촛불 집회, ‘비아 캄페시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온두라스 농민대표 라파엘의 ‘이경해 동지는 WTO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발언, 밤새 내리는 빗 속 텐트에서 들이치는 비를 피해가면서 잔 잠 등이 기억이 남는다. 집회는 공공연맹 김건태 동지의 기타 반주와 한국 참가단의 장중한 투쟁의 노래, ‘삶이 보이는 창’의 송경동 동지의 추모시가 어우러져 작은 문화제 모습을 띠었다. 다음은 집회에서 낭송된 송경동씨의 추모시들 중 하나다. 당신은 야속한 사람 - 이경해 열사를 추모하며(9/12 칸쿤에서) 송경동 당신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칸쿤에 나는 새를 칸쿤에 피는 꽃을 칸쿤에 부는 바람을 칸쿤에 내리는 비를 나무를 기둥 삼아 만든 집 지붕에 떨어진 씨앗이 또 나무가 되어 지붕에 나무를 키우는 자연 속의 집들을 당신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망치와 정으로 콘크리트를 깨고 있는 멕시코의 어린 노동자를 온 몸에 혁대를 걸고 와 하나에 10 페소를 말하며 짠한 미소를 짓는 노점의 여인을 아, 당신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죽고 일제히 빛을 터뜨리는 카메라 후레쉬 불빛을 운전기사도 길 가던 청년도 호객을 하는 사내도 모두 꼬레아를 물으며 엄지손가락을 들고 눈물짓는 것을 아, 당신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그 철책에서 오른 손을 들어 빼어든 칼로 당신의 왼편 가슴을 찌를 때 찌르며 툭 떨어질 때 세계의 모든 양심과 세계의 모든 생명들이 또 다시 한번 치를 떨고 이를 갈고 눈물을 떨구었다는 것을 토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 권력은 민중에게 사랑은 연인에게 자연은 자연에게 되․돌․려․달․라․는 당․신․의․소․망 한국투쟁단은 계속적인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고 한국어는 집회 공식언어가 되었다. 이경해씨가 돌아가신 바리케이드 앞에는 텐트가 설치되어 각 국 활동가들의 집결지(‘캠프 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가 되었다. ‘캠프 리’에는 여기저기서 갖고 온 물과 음식이 넘쳐났다. 이경해씨가 돌아가신 현장에는 촛불과 꽃, 그리고 추모글과 플래카드로 뒤덥혔는데, 그 중에는 환경주의자라 알려진 칸쿤 시장이 보낸 꽃다발과 위로의 말도 있었다. 11일에는 ‘캠프 리’로 언론이 쇄도하였다. 오전에는 통역이 없어서 내가 언론을 상대했는데 10군데도 넘은 것으로 기억한다. 언론은 자결 이유, 한국농민의 처한 상황, 가족 사항 등을 주로 물었는데 서구언론들은 이경해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는 한국참가단이 이경해씨의 계획을 사전에 알았느냐, 또 다른 자살 가능성은 없느냐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질문들도 있었다. 반면 칸쿤투쟁에 참여한 각 국 활동가들은 한국 사람만 보면 위로의 말을 전하고, 눈인사를 하거나 어깨를 쓰다듬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우리 모두는 상주 아닌 상주가 되었다. 13일에는 또다시 커다란 집회가 있었다. 그런데 대중적인 집회말고 또 다른 ‘택’이 있었다. 컨벤션센터 진입투쟁이었는데 나도 여기로 가게 되었다. 애초에 듣기로는 한국투쟁단, ‘비아 캄페시나’, 학생 등 약 50여명이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검문에 걸려 못 들어왔고 ‘비아캄페시나’ 간부 2-3인을 제외하고는 전부 한국투쟁단이었다. 물론 한국투쟁단 일부도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다. 전체 15명 정도. 우리는 컨벤션센타 앞에서 약 5분간 구호를 외치다가 옆 주차장으로 경찰에 의해 떠밀려 그곳에서 약 두어 시간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면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와중에 나는 안경과 모자를 잃어버렸고 어떤 농민 간부는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투쟁은 예상과는 달리 바리케이드 밖에서의 투쟁이 훨씬 역동적이고 아슬아슬했다고 한다. 철제 바리케이드를 여성참가자들이 커터기로 자르고, 전농이 밤을 세워 꼰 두꺼운 동아줄로 바리케이드를 힘을 합쳐 넘어뜨리고, 경찰과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 들어가고... 14일 WTO 각료회의는 아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렬되었고 그 이후 이경해씨는 칸쿤을 떠나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치며 이번 칸쿤 WTO 협상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초민족적 (금융)자본과 거대 곡물메이저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과 EU 등 선진제국들은 자신의 국내시장은 유형, 무형으로 보호하고 개도국의 무역과 투자에 대해서는 자유화를 원하는 중상주의적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거대 농업기업을 가진 일부 개도국은 농업에서의 자유화를 주장한 반면 투자 경쟁정책 등 새로운 이슈에 있어서는 제국주의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보수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최빈개도국들은 무망하게도 ‘개발’라운드라는 허명에 기대 선진제국에게 이러저러한 개발이슈를 제기하였다. 그 결과는 WTO 협상의 결렬이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국가간 일국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각 국 나름의 대응의 결과다. 그러나 협상 결렬이 개도국과, 소농을 비롯한 전세계 민중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보수주의적 반대를 넘어 ‘밑으로부터의 세계화’, ‘대안적 세계화’를 추구해야 할 시점이다.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전 세계에 걸쳐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견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자들은 복종과 냉소주의, 어리석음, 전쟁, 파괴, 그리고 죽음 등을 세계화하려 합니다. 아래 있는 사람들은 저항과 희망, 창조성, 지성, 상상력, 삶, 추억,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의 건설을 세계화하려 합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이경해씨의 죽음을 딛고 ‘저항과 희망을 세계화할’ 책임은 이번 칸쿤 투쟁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선봉으로 떠오른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PSSP
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3차 각료회의는 ‘새로운 무역협상 라운드’를 출범시키는 것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내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세기의 끝자락을 뒤흔든 이 사건은, 4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멕시코 칸쿤에서 재현되었다. 지난 9월 10~14일에 열린 WTO 5차 각료회의 역시 협상이 결렬된 채 종료된 것이다. 5차 각료회의는 2005년 새로운 무역 체제를 출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중간점검하고, 앞으로의 구체적인 협상 일정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농업협상과 비농산물 관세인하에 대한 세부 협상방식의 기본 골격을 채택하고, 이른바 ‘싱가포르 이슈’의 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각료회의에서 개도국들은 ‘G22(농산물수출개도국그룹)’, ‘ACP(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 연안국가들)’과 같은 그룹을 형성하여, 도하개발의제와 이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에게 불만을 강력하게 표출하였다. 2년 전 미국과 유럽연합은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개도국과 최빈국의 관심사항을 대폭 반영하여, 이들 국가도 자유무역의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이 협상라운드의 출범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개도국을 위한 무역협상이라는 도하개발의제에 개도국들이 불만을 터뜨려 결국 협상이 결렬된 상황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드러내주었다. 정작 미국과 유럽연합은 농업협상에서도, 싱가포르 이슈에서도 개도국과 최빈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자세로 일관했다. 식량, 에너지, 의료, 교육과 같이 민중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를 상품화하여 자본의 이윤놀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는 도하개발의제는 애초부터 ‘개발’과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면서 전 세계 민중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해 갈 뿐. 1. 무역 ‘자유화’는 니들만? : 농업협정과 미국․유럽연합의 보조금 1-1. 미국․유럽연합 vs 농산물수출개도국 vs 농산물수입국 무역을 완전히 자유화한다는 도하개발의제의 모순은 농업협상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은 남반구 대다수 국가가 관세를 인하하고 국가보조금을 감축하여 무역장벽을 허물도록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국의 농업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년에 수 천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유지하겠다며 ‘무역 자유화’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초국적 메이저 농기업들이 국가의 보조금을 바탕으로 생산비를 절감, 농산물 가격을 낮추어 덤핑이 가능하도록 하고, 제3세계에는 전폭적인 시장개방을 유도하여 결국 제3세계의 농업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연합의 목표인 것이다. 농업협상에서 유럽연합과 미국은 보조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럽연합의 경우는 수출보조금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올해 마련된 공동농업정책(CAP)을 변경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GNP와 경제활동인구를 구성하는 비율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적음에도, 무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상황, 특히 공화당 지지층과 공화당으로 흘러가는 정치자금이 대부분 농기업에서 형성되는 상황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부시 정부로서는 사활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시애틀 각료회의와는 사뭇 다른 협상 구도가 형성되었다. 3차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농산물 수출국 그룹(미국, 호주 등)은 전면적인 시장 개방을 이끌어왔고, 유럽연합과 일본이 주도하는 NTC그룹(비교역적 관심사항)은 수입국의 입장에서 미국에 맞서왔다. 당시 관세 감축의 폭과 기간을 두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이 마지막까지 조율되지 않아 결국 결렬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번 5차 각료회의를 앞두고, 케언즈 그룹에 속하였던 개도국들은 G22(농산물 수출 개도국)라는 그룹을 형성하여, 미국에 농업보조금을 철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수출보조금과 관련해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유럽연합은 NTC그룹을 떠나 미국과의 공조를 추구하였다. 이제 농업협상에서는 ‘미국과 유럽’, ‘G22’, ‘농산물 수입국(한국, 일본 등)’이라는 더욱 복잡한 구도가 그려진 것이다. 2-2. 농업협정의 쟁점과 협상 경과 농업협정을 둘러싼 대략의 쟁점은 이렇다. 농업협정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이미 설정된 의제라고 하여 도하개발의제가 출범 전부터 협상이 진행되어왔다. 2003년 3월 31일까지 ‘협상세부원칙’을 확정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에 앞선 2월에 제출된 하빈슨 초안(1차안)을 가지고 3월말까지 협상을 했으나, 합의에 실패하였다. 지지부진하던 협상은 뒤이은 7월 말 몬트리올 비공식 각료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논의를 진전하기 위해 합의안을 마련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8월말 카스티요 일반이사회 의장이 2차안을 제출하였다. 2차안은 개도국의 주된 무역 통제 수단인 관세는 대폭적인 인하를 유도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가격보전 직접지불’, ‘최소허용보조’, ‘생산계획하 직접지불’과 같은 국내보조와 수출보조는 미국과 유럽의 합의를 바탕으로 그 감축 비율을 대폭 완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바로 이 2차안을 가지고 협상에 들어갔으나, '농산물 수출개도국'와 수입국그룹이 미국과 유럽의 입장만을 중심으로 작성된 2차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인도, 중국, 브라질, 태국이 속해있는 농산물 수출 개도국 그룹은 생산계획하 직접지불 철폐, 수출보조금 철폐, 미국․유럽연합의 합의안에 제안된 관세인하방식은 선진국에게만 적용하고, 개도국에게는 우루과이라운드방식을 적용할 것, 특별품목 규정 부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수입국 그룹은 관세상한 철폐, 관세할당량 증량 반대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마련된 3차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특별품목 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개도국뿐만이 아니라 선진국에게도 적용되도록 확대되어, 수출개도국 그룹은 반대입장을 제출했다. 보조금과 관련해서는 생산계획 하 직접지불이 일정정도 감축하는 내용만이 포함되어, 여전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수출보조를 인정하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수입국이 요구한 관세상한 철폐와 관세할당량 증량 반대 요구는 포함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과 유럽연합의 국내보조와 수출보조를 폐지하라는 농산물 수출개도국의 요구를 미국과 유럽연합은 수용하지 않았으며, 특히 막후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총력을 쏟아 부었다. 미국은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들을 상대로 비공식 회의를 갖고, 수출개도국 그룹에서 빠져나오면 수입 관세를 인하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수출개도국 그룹은 역시 여전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을 중심으로 작성된 3차안을 반대하였다. 결국 이번 각료회의에서도 농업협상 세부원칙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진행될 협상은 최종 제출된 3차안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2-3. 미국의 면화보조금 한편, 미국의 보조금 문제는 ‘면화’ 문제에서도 불거졌다. 면화수출이 국가 소득의 대부분인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베닌, 차드, 말리 4개국은 미국의 면화 생산자들이 보조금을 바탕으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들은 소득이 1년에 10억 달러나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며, 면화에 대한 보조금 철폐와 이로 인한 손해에 대해 보상 조치를 요구하였다. 또한 이를 5차 각료회의의 공식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 4개국은 환금성 작물인 면화의 생산을 늘리는 조건으로 세계은행의 경제개발 특별 융자를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이 보조금으로 면화수출을 확대하자 면화의 국제가격이 폭락해 국가 경제 붕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말리의 대표는 미국의 면화보조금은 말리의 GDP를 상회하는 연간 30~40억 달러에 달해, 이 금액은 미국이 아프리카에 지원하는 전체금액의 약 3배라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보조금은 2만 5천 호의 대규모 농가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면화생산농가는 약 1천만 호에 이르지만, 대부분 영세하고, 그중 대부분은 1일 1달러 이하의 금액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아프리카 4개국의 요구는 결국 9월 10일 의제로 채택되었고,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 연안 그룹(ACP) 대표들은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 유럽연합, 호주와 같은 농산물 수출국들은 4개국의 문제제기의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조정에 나선 수파차이 WTO 사무총장도 세계은행, 국제구제금융, 세계식량기구와 연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WTO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하겠다는 입장만 밝혀, 개도국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결국, 초국적 메이저 농기업의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에 대해, 농산물 수출 개도국은 보조금을 철폐하여 자국 농산물의 시장접근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수입국은 점진적인 시장개방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최빈국은 역시 자국의 소농을 말살하는 보조금 철폐와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저항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러한 요구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결국 협상 결렬을 이끈 것이다, 3. 싱가포르 이슈 =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 보장, 자본이동의 자유화 3-1 싱가포르 이슈의 개요 ‘투자’, ‘경쟁정책’, ‘무역원활화’, ‘정부조달 투명성’ 네 가지 의제를 의미하는 ‘싱가포르이슈’또한 협상 결렬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이슈의 무역과 연계성에 대한 분석을 개시하자고 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2차 각료회의에서 결정됨에 따라 이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장 문제가 되는 ‘투자’는 지난 98년 OECD내에서 추진하려다 실패한 "MAI(다자간 투자협정)"에 담긴 ‘투자자유화 조치’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단기성 투기자본까지를 투자로 정의하고, 해외자본을 국내자본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한다. 투자 설립단계에서도 이를 위한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외환위기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유권을 철저히 보장받아 이윤을 남기고 손실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 또한 투자할 때 이행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할 수 없다. ‘경쟁’은 독과점, 카르텔 등 경쟁을 가로막는 각 국의 관행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을 의미한다. ‘무역원활화’는 ‘국제무역절차의 간소화와 조화’라고 정의되며, 통관, 수출입허가와 같은 모든 수출입 절차와 운송형식, 대금 지불, 보험과 금융의 요건을 다룬다. ‘정부조달투명성’은 정부조달 분야에 있어서의 비차별, 투명성 등을 다룬다. 그런데, 이 의제들은 소유권, 생산, 소득, 수입, 외환 거래, 지불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의 유출․입과 관련이 있는 정책들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무역 정책, 즉 상품과 서비스의 국가간 교역에 관한 규범과 규제의 내용을 초과한다. 미국과 유럽의 의도는 ‘무역’ 자유화를 초과하는 이러한 내용을 WTO 협상 의제에 포함시켜, 제3세계가 투자를 자유화하고, 초국적자본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면서 투기활동을 벌이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이렇듯 엄밀한 의미의 ‘무역정책’의 범위를 초과하는 이 이슈가 ‘무역’과 관련이 없으며, 선진국이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라며, 협상 개시 자체를 반대해왔다. 3-2. 협상 경과 지난 4차 도하각료회의에서 유럽연합과 일본 등은 싱가포르 이슈협상을 개시할 것을 요구했으나 개도국들이 이에 반대하였고, 이에 따라 각료회의 선언문에는 협상 개시에 대해 ‘분명한 합의를 전제로 5차 각료회의에서 정해지는 방식에 따라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라고 담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슈에 관한 쟁점은 5차 각료회의가 시작되기 전 도하 각료 선언문의 이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시작되었다. 선진국들은 이 문구가 ‘5차 각료회의에서 협상을 개시하되, 그 방식이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반면, 개도국들은 ‘협상 개시 여부도 논의의 대상이다’라고 해석했다. 9월 10일 각료회의 시작과 함께 중국, 인도네시아, 이집트, 방글라데쉬, 필리핀, 탄자니아, 베네수엘라와 자메이카 등 70여 개의 개도국 정부들은 싱가포르이슈 4가지 중 그 어느 것도 협상이 개시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뒤이어 9월 11일과 12일 사이 개최된 싱가포르 이슈 작업반에서는 21개국이 완강한 반대의 입장을, 14개국은 4개 이슈 중 무역원활화와 정부조달투명성만 우선적으로 협상을 개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싱가포르이슈 워킹그룹 의장인 캐나다 무역대표 페티그루는 4개의 의제를 분리 협상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는 13일에 제출된 3차 선언문 초안에 반영이 되었다. 이에 유럽연합은 농업협상에서 개도국들의 양보를 유도하고자, 4개의 이슈 중 반발이 심한 ‘경쟁’과 ‘투자’는 제쳐두고, ‘무역원활화’와 ‘정부조달투명성’에 대해 먼저 협상하자는, 일정정도의 양보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이러한 입장에 더욱 반발하며 13일 밤에 개최된 그린룸 회의(유럽연합, 미국, 멕시코, 브라질, 남아공,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케냐)와 14일 오전 30개국이 참여한 그린룸 회의에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4개 이슈 모두의 협상이 개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결국 그린룸회의가 14일 오후까지 계속되었으나,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여, 데르베스 의장은 결렬을 선언하였다. 농업협상에서 농산물 수출개도국 그룹이 미국과 유럽연합에 강력하게 대항했다면, 싱가포르이슈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연합(AU),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 인근 국가 그룹(ACP)와 최빈개도국(총 61개국) 그룹들이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이다. 4. 5차 각료회의 이후 5차 각료회의에서 개도국과 최빈국들은 ‘G22',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 인근국가 그룹’, ‘최빈개도국그룹’ 아프리카연합(AU)등으로 의견 그룹을 형성하여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협상에 반기를 들었다. 이로써 ‘자유무역의 혜택을 개도국과 최빈국이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났다. 또한 농업협상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자국의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국제 무역 규칙을 부과하는 것을 시도함으로써, 모두가 공평하게 혜택을 누리는 ‘완전한 무역의 자유화’를 이룬다는 것 역시 허구임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제시한 ‘싱가포르 이슈’는 엄밀한 의미의 ‘무역’정책을 초과하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독수리 오형제’가 알고 보니 ‘조류의 탈을 쓴 인간 오남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개도국에게 혜택을 주는 무역 자유화 협상 라운드’는 그 어느 단어도 ‘도하개발의제’를 설명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각료회의 무산 이후, 과연 도하개발의제가 정해진 바대로 2004년 말 타결되어 2005년에 새로운 무역 체제가 출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또한,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다자 협상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점에서 WTO 자체에 대한 유용성도 의심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끌어낸 5차 각료회의의 무산과, 그에 따른 WTO의 위기상황이 곧바로 세계 민중들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관세 철폐, 투자 자유화 등 WTO 도하개발의제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조치들을 지역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시도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역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FTAA(북미자유무역협정)과 함께 ASEAN+3,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등 지역 협정 체결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에 발맞추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얼마 전 APEC 정상회의에서는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여 한미투자협정 체결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한일자유무역협정 등 양자간 자유무역협정과, 중국, 아세안을 포괄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교육기관특별법을 제정하고 경제자유구역 내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도록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하는 등, 의료․교육의 시장화와 개방을 부추기는 여러 가지 법․제도 정비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니, 전 세계 민중들의 삶과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애초에 세계 사회운동 진영은 WTO 도하개발의제가 ‘식량 주권’, ‘토지와 종자에 대한 농민들의 권리’, ‘지식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 ‘의료․교육․에너지․문화 등 필수 서비스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의약품에 대한 권리’ 등을 파괴되고 있음을 비판하였고, 이러한 권리들을 민중들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각료회의 무산으로 인한 협상의 지연’이 이러한 민중들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 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각료회의의 무산을 이끌었던 다양한 개도국 그룹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도 쟁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각료회의 무산에 크게 기여한 G22을 계속 지원해 이들이 농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서비스나 공산품에 대해서도 단결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WTO내 ‘남반구연대’를 구축하도록 하자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농산물 수출 개도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보조금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하긴 했지만, 이들이 주장한 핵심이 ‘농업분야에서의 완전한 자유화를 통한 시장접근의 확대’라는 점을 볼 때, 소농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비아 캄페시나는 농업협정에 대해 소농들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조금과 관세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토지와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가 옹호되기 위해서는 식량을 상품화하여 시장의 논리에 내맡기는 WTO 에서 농업이 제외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WTO 협상 구도 내에서 어떤 세력을 지원할 것인가가 아닌, 전세계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협상을 무산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불평등과 빈곤을 확산하고, 전 세계 민중들의 제반 권리를 박탈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대안적인 세계화’를 이루어내는 것임을 확인하자.PSSP
FTA/TRIPsPlus경향을 반대한다! 의약품 접근권, 곧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맞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바로 의약품이라는 '상품'을 사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더군다나 국가 차원의 의료 보장성이 취약한 아프리카와 같은 남반구 국가라면, 에이즈(HIV/AIDS)가 창궐하고 있는 '저개발' 국가라면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의 문제는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이다. 불행히도 의약품 가격의 문제는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에 있지 않다. 의약품 가격결정의 기준은 오로지 제약자본의 이윤의 크기일 뿐이다. 이것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지적재산권(Intelluctual Property)의 일종인 의약품 특허권이다. 그리고 의약품 특허의 배후에는 지식에 부여되는 독점적 권한을 이용하여 과잉 이윤을 창출하려는 초국적 제약자본과 이를 지지 보족하는 체계인 세계무역기구 산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Agreement, 이하 트립스 협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의 선언, 미완의 시나리오 트립스 협정은 한 국가 내에 국한되었던 지적재산권 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확장해 이를 위반 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무역제제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히 초국적 제약자본의 권리장전이라 불릴 만하다. 뿐만 아니라 트립스 협정은 선진국/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의 경제적 여건, 보건 상태 차이를 무시하고 특허의 존속기간을 최소 20년 이상으로 연장하였다. 초국적 제약자본이 소유하는 의약품 특허로 형성된 독점적 가격은 대다수 제3세계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을 사실상 엄격히 제한한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은 WTO 각료회의로 하여금 ‘트립스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특별 선언문’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주요 내용은 ‘트립스 협정 중 그 어떠한 것도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 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회원국들은 강제실시를 부여할 권리와 부여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도하회의에서 이러한 ‘선언’을 끌어낸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력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선언’ 그 자체는 미국과 WTO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를 우회적으로 수용한 것이며, 몇가지 과제를 남겨두었다. 첫째, 도하선언 6항과 관련된 문제다. 즉, 강제실시는 ‘국내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트립스 협정의 규정에서 의약품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강제실시를 시행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타국에서 강제실시 된 일반약(카피약)을 수입하게 될 때(수입을 위한 강제실시) ‘강제실시의 국내적 사용’이라는 트립스 협정 조항에 어긋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 이렇듯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 국가의 선정과 질병의 범위 문제다. 원래 2002년까지 합의를 도출하기로 하였으나 미국이 질병범위를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몇가지의 질병으로 제한해야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서 기한 내 합의하는데 실패하였다. 올해 칸쿤 각료회의 전까지 제56차 세계보건기구총회를 거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최빈국간의 의견대립으로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봉합된 문제, 8․30결정 그리고 칸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른바 ‘도하 선언 6항’에 대한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결정이 내려졌다. 핵심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짚어볼 수 있는데, 1) 질병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는 않으나 2) 인도적 차원에서 자체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최빈국들에 한해 이를 저가에 공급하는 것, 이 두 가지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질병범위의 제한을 철회함으로써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8월 30일 결정이 많은 제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합의해버린 것이다. 합의문에 의하면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는 인도적 차원에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일 것이며, 산업․상업적 목적으로는 쓰일 수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이란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인도적 차원의 노력은 국제적 원조단체와 각종 기금, 그리고 각국의 원조 차원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 생산능력이 없는 국가의 의약품 공급문제는 인도적 차원의 해결을 넘어 '건강권' 보장을 위한 해법으로써 필요한 의약품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입하여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욱 큰 함정은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다. '산업․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공의 방법으로 일반약(카피약)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강제실시가 적용될 수 있는 일반약을 만들 수 있는 일반약 회사가 국영(내지 공공)제약회사인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최근 글리벡(Gleevec;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제인 항암제)의 복제약인 비낫을 생산한 인도의 낫코사도 민간제약회사였다. 즉,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를 만족시키는 공공제약회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 조항은 일반약을 생산하는 민간제약회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합의문에 따르면, 저렴한 복제약을 원하는 국가가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원활하게 시행할 수 있을 가능성은 몹시 희박해졌다. 9월 10일 열린 제 5차 칸쿤 각료회의에서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트립스와 공중보건’의 문제는 8․30결정으로 인해 별다른 논의 없이 끝을 맺었다. 5차 각료회의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당장 8․30결정이 강제적 효력을 갖진 않지만, 문제는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이 생명력을 잃었다는 데에 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은 트립스 협정이 공중보건과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공중보건에 관한 자국의 권한을 강조함으로써 트립스 협정에 대항하는 데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다. 8․30결정에 대한 저항과 논쟁이 다시 조직되지 않으면 미국은 자국의 제약자본을 비호하는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트립스 협정에서의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에서 트립스-플러스(TRIPs-Plus)경향을 강요하고 실행하고 있다. 트립스 플러스 경향은 트립스 협정보다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는 것, 즉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 철저히 제약산업의 이해가 대변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의 트립스 플러스(TRIPs-Plus) 경향에 반대한다!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윤획득을 추구하는 핵심고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무역기구가 모든 회원국에게 최혜국대우를 보장해 주는 다자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반면, 자유무역협정은 양자 혹은 지역주의적 특혜무역체제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데 최선두에 서 있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이미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을 통해 지역블럭의 경제논리를 거침없이 실현(?)한 바 있다. 미국은 진작에 세계무역기구라는 다자주의를 통한 자국의 이윤 극대화가 어렵다는 점을 간파하고, 양자 혹은 지역주의적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실질적 통상 압력의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냉전 시대의 군수산업보다도, 금융자본 시대의 금융업보다도 높은 이윤을 내고 있었던 제약 산업의 공공연한 이윤의 비밀은 바로 특허라는 특수한 담보가 있었던 것이고, 이 특허는 트립스협정에 의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에게 미국 수준의 (높은) 특허 보호를 강요하였다. 다자무역체제의 출범이 거듭 난항을 겪으면서 자유무역협정에서 트립스 플러스 경향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올해 2월경 미무역대표부가 2005년 1월 출범 예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에 대한 논평에서 2가지 요구안을 냈다. 이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행동'(Essential Action), '국경없는 의사회(MSF)', ‘건강의 전지구적 행동 프로젝트(Health GAP)’, 등은 일제히 논평과 성명서를 통해 미주자유무역지대를 통해 미무역대표부가 미주지역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방해할 강화된 특허 기준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압력을 그만둘 것을 역설했다. 그 중 문제가 되는 조항은 대략 이러하다; 1. 공공 영역과 비상사태에만 강제실시를 제한하는 문제(5.1조 (a)와 (b)) 2. 강제실시된 상품의 수출 금지(5.1조(c)) 3. 특허가 승인된 이후 4년간 강제실시 사용 제재(5.3조) 4. 국가가 적절하게 강제실시를 실시하려고 할 때 중대한 장벽을 강요하면서 매매 승인 데이터(marketing approval data)에 대해 5년간 배타적인 보호 승인을 요구(1.2조 및 1. 4조) 5. 규제적인 지연을 상쇄하기 위해 특허 기간을 확장(8.2조) 이러한 조항은 트립스 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제실시보다 더 엄격한 제제, 그리고 이미 트립스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20년 동안의 특허보호 기간을 더 연장하도록 하는 특허보호조항 신설 강요 등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양자간, 지역간 협정은 트립스 협정보다 특허보호를 강화(트립스 플러스)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심각한 보건위기를 넘어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브라질의 경우,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강화될 경우 브라질에서 이행되었던 에이즈 관련 정책이 위험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브라질 정부는 에이즈 약물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제약회사를 통해 특허 하에 있는 약물들을 일반약으로 생산하여 무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97년 이후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과 새로운 에이즈 감염률을 50%까지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미주자유무역지대의 논리대로 된다면, 미국은 브라질의 일반약 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트립스 플러스로 인해 특허약의 복제약을 ‘강제실시’란 방법으로 만들어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미 남미 최초로 미-칠레 자유무역협정, 아시아 지역 최초로 미-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과 중동지역 최초로 미-요르단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트립스 플러스를 강요하였다. 미국은 요르단, 칠레, 싱가폴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중미5개국, 남아프리카관세동맹, 모로코, 호주, 미주 33개국, 뉴질랜드, 중동,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약간의 관세인하나 기술지원을 해주는 대신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트립스 협정보다 훨씬 강력한 트립스 플러스를 강요함으로써 의약품의 접근을 가로막고, 제약자본의 특허권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미-요르단 자유무역협정이 미-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모델이 되었듯이, 미-싱가폴 자유무역협정은 아세안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의 모델로 사용될 것이며,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국가가 광범위한 만큼 트립스 플러스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립스 플러스는 향후 도하개발협상에서 미국의 주장을 더욱 견고하게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의약품이지만 이는 더 이상 필요에 의해 공급되고 있지 않다.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무기인 ‘특허’, 그리고 특허로 인해 의약품에 매겨질 수 있는 높은 가격,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트립스 협정과 자유무역협정에서 트립스 플러스 경향의 유기적 결합. 특허 앞에 의약품 접근권이 훼손당하고, 이윤 앞에 생명이 농락당하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 이제 반세계화/반WTO, 반FTA/반TRIPs plus 투쟁을 동시에 조직해야 한다.PSSP
민중생존권과 민중교육권 쟁취를 위하여 1. 2003 10월.. 헌법 10조가 무색한 나라.. 한국 대한민국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2003년 10월 들어 정부의 광폭한 노동운동탄압으로 인하여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동지의 죽음에 이어 이해남 세원테크 지회장,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광주지부장의 분신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입시의 부담감으로 인하여 10월 들어 3명의 젊은이들이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했던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죽음으로 밖에 노동현장의 비참함과 입시지옥 현실에서 자신의 참담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들의 울분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아갈 방법을 몰라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보수언론의 말대로 학생들이 단순한 정신질환의 문제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구조의 문제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가 곧 인간 삶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 역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10월 한 달이 채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5-6명이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현실 사회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즉, 죽음을 방기하는 한국 사회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조장하고 있는 한국 사회라고 인식하는 것이 보다 냉철한 판단이다. 교육부와 재경부는 국민소득 2만불 시대 프로젝트에 발맞춰, 그 선제 조건으로 ‘국제자유도시 및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연내에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프로젝트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정책임에도 보수정권 내 조차도 논란이 일정도로 근거 없는 선동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자유구역법은 외국기업에 대한 ‘극단적 특혜와 절대적 자유’를 부여한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외국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월차휴가 폐지, 주휴․생리휴가 무급화, 파견근로제 확대 허용, 단체행동권 제약 등 노동권의 심각한 침해를 낳게 된다. 어디 이뿐이랴, 환경관련 34개 법의 무력화, 무차별적 난개발 허용 등으로 인한 환경권의 침해와 더불어 외국의료기관 허용 등으로 인한 민중건강권 박탈이 뒤따르게 된다. 노무현은 지난 19일 APEC 정상회담에서 경제자유구역과 특구를 통하여 교육과 의료를 개방화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더불어 특구를 전국화하여 교육․의료의 개방을 전국화 하겠노라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시장은 강북 뉴타운건설 프로젝트에서 국내 집 값 안정 대책 프로그램으로 은평․길음․왕십리를 교육특구로 지정하여 외국학교설립, 특수목적고 설립을 추진하겠노라 한다. 다들 나라 걱정, 경제 걱정하시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정신적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으나,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려 강북 교육특구를 지정하겠다는 발상은 강북지역을 또 다른 부동산투기 지역으로 만들려는 너무나 어처구니 발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10월 들어 보수정치권과 보수언론의 합동 공세가 ‘공교육 죽이기’로 나타나면서 어느새 교육특구 지정계획과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한국 교육을 바로잡는 특효약이 되어가고 있다. 2.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의 6하 원칙 누가? : 교육인적자원부, 재정경제부의 실질적 산하 조직되다. 경제자유구역법에 의한 경제자유구역 지정의 모든 권한은 ‘경제자유구역 위원회’에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에 의한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노동, 환경, 교육, 의료, 문화 등 전 영역에 큰 영향과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 사회구조 전반을 아우르게 되는 이처럼 중요한 법률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행정적 과정임에도 경제자유구역지정과 처분을 발령하는 곳이 오로지 경제자유구역위원회에만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 운영을 뜻하게 된다. 그 구성에 있어 경제자유구역법 제25조에 따라 재경부의 유관부처 행정기관, 재정경제부장관이 위촉하는 자로 한정되어 있어 구성의 비민주성의 문제도 심각하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되는 외국교육기관의 설립의 승인은 경제자유구역위원회의 심의․의결을 받아야 된다. WTO 교육개방 1차 양허안 제출 시기에도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이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모든 권한은 재경부와 외통부에 있었으며 주무부처의 결정은 한낱 참고사항 정도로만 국한되었다. WTO 교육개방에서부터 특별법까지의 과정에서 교육부분의 주무부처는 한국 공교육의 골간을 뒤흔들게 될 개방화․시장화에 관해서 재경부와 외통부의 결정에 이러저리 휘둘리고 있다. 언제? : WTO 교육개방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대하여.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10월 2일 교육부에 의하여 처음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이름이 말하듯이 그 역사는 경제자유구역법 성립시기와 WTO 교육개방의 제기가 시작되었던 시점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의 역사 중 ‘WTO 교육개방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로서의 위상을 주목해야 된다. GATS 서비스 협상 부분에는 본격적 서비스 협상 이전에 이른바 ‘자발적 자유화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2001년 3월 확정된 ‘서비스 협상 가이드 라인’에는 ‘더 높은 수준의 자유화(=시장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어떤 서비스 분야도 사전에 제외하지 않으며, 자발적 자유화에 대해서는 credit(크레딧)을 인정’한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credit’이란 WTO 협상에서의 유리한 지위를 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지칭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인센티브의 범위와 실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 실내용과 구체적 범위도 지정되지 않는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따른 credit을 부여받기 위하여 WTO 교육개방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의 일환인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디서? : 귀족학교의 전국화 프로젝트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제주와 경제자유구역에 한정한 법이다. 다시 말해 외국교육기관은 경제자유구역(인천, 부산, 광양)에만 설립된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제한을 국제공항과 국제항만 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경제자유구역은 얼마든지 전국적으로 확산될 여지가 충분하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조건인 국제항만 등은 고려사항이지 필수사항이 아니라는 점과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포괄하는 범위가 불분명하며 재경부에서 밝히듯이 항만지역, 인근지역, 연계지역 등이 언급되어 경제자유구역의 전국적 확대는 무한히 열려있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교육기관 설립이라는 것이 마치 외국교육기관의 전국적 확산을 제한하는 조건인양 떠들어대는 교육부의 입장은 너무나 무사태평, 순진무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며칠 전 서울시에서 발표한 강북(은평, 길음, 왕십리) 교육특구 지정은 외국교육기관의 수도권 진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여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시 귀족형 외국교육기관의 전국적 확산은 2-3년 안에 이루어 질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 총성 없는 전쟁이 평준화 공격으로 시작되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이 발표된 후 보수언론들은 서로 입을 맞추었다는 듯이 앞다투어 평준화 해체 전사로 둔갑하였다. 한국의 고교 평준화가 교육경쟁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는 둥, 교육의 질적 저하를 낳았다는 둥, 심지어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부추긴다는 둥의 갖가지 논거를 펼치며 고교 평준화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보수 언론과 보수정치권의 입장에서는 불평등 교육을 넘어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 평준화는 이제 오히려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주범이 되어줘야만 한다. WTO 교육개방의 그 전제조건은 교육의 시장화이다. 즉, 교육부분의 개방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장화된 교육기관이 존재해야 되며, 이를 더욱 촉진시켜야 한다. 또한, 교육 시장화의 박차를 가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당연히 교육의 공공성 공격에서 시작하며, 구체적으로는 평등교육에 무차별적 공격을 가함으로 이루어진다. 교육 시장화 담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경쟁, 효율, 다양성’을 지향하는 교육으로서의 역할과 그 책임을 다하는 것,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의 다양성과 자유화 보장,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소수 능력 있는 학생의 몰아주기식 지원 등...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자본 논리에 철저히 입각하여 교육을 바꿔내야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두에게 최대한 평등한 기회와 교육받을 권리를 부여하자는 교육 평준화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선택과 집중’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서울 강북지역을 교육특구로 만들어 자립형사립고, 특수목적고를 설립한다면 경쟁교육 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인적자본을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교육특구 추진과정에서는 대다수 민중들의 교육권 박탈에서 비롯되는 총체적 교육불평등은 더이상 고려대상도 아니다. 왜? : 평등․자치․민주 민중교육권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오로지 자본의 뜻대로 하옵소서. 특별법 제3조에서 ‘외국학교법인’이라 함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영리법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정의는 10조(외국교육기관의회계) 1항에서 외국교육기관의 회계는 기업회계의 원칙에 따라 처리, 10조 2항의 외국교육기관의 결산상잉여금의 본국 송금을 허용 등의 조항으로 인하여 특별법 제 3조 외국학교법인의 비영리법인 조항은 사실상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교육기관의 회계를 기업회계의 원칙에 따라 결산상 잉여금을 본국에 송금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기간 WTO 교육개방의 가장 쟁점이 되었던 본국으로의 과실 송금 조항을 말만 바꾸어 허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경제자유구역법내의 외국교육기관은 특별법의 제시되어 있는 온갖 특혜를 거머쥐고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무한한 이윤추구를 할 수 있는 틀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 정부의 WTO 교육개방 전면화 필승 전략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은 무엇을 국내 교육기관에게 영향을 주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제한 없는 내국민 입학 허용, 과실송금 허용, 국내학위 인정 등 : 외국교육기관의 영리행위 합법적인 허용. 2) 평준화 해체 (귀족학교설립 무한 허용) 3) 민중 교육비 폭등 : 국내 외국인학교의 경우 연간 등록금 2000만원 정도, 경제자유구역 및 특구 내의 외국교육기관은 등록금 책정의 자율성 보장 → 필연적으로 2000만원을 훌쩍 넘은 등록금 책정이 될 것. 4) 교육의 질적 하락 : 외국교육기관은 학교의 학기, 수업일수, 학급편성 및 휴업일과 반의 편성․운영 등 자율성 보장 + 외국인교사는 국내 고등교육공무원법에 규제 받지 않음 → 내용적 검증 없는 교과과정 운영, 검증되지 않는 외국인교사 채용 등으로 교육의 질 하락 분명 5) 국내 교육기관 역차별 논란으로 인하여 국내 교육법이 교육의 영리성 추구 인정으로 갈 가능성 높음. 6) 교육노동자의 노동유연화, 비정규직 교사 급증 → 외국교육기관은 외국인교사채용에 있어 국내 규제를 받지 않음, 이는 5)과 같이 결국 국내 학교의 교사들의 사회적 노동의 불안정화, 비정규직 교사 급증으로 이어질 것임. 1)~6) ➡ WTO 교육개방 전면화 ➡ 국내 공교육 붕괴, 교육 서열화 심화, 민중 교육비 폭등, 교육의 불평등 심화 3. 저항과 구성의 걸음... 10월 11일, WTO 교육개방 저지와 교육 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가 출범을 하였다. 10월 2일 교육부에서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발표한 후 범국민교육연대는 발빠른 기자회견과 성명서를 통하여 대응해 들어갔다. 3월 WTO 교육개방 저지 공동투쟁본부의 투쟁이 3월 교육부분 1차 양허안 저지라는 구체 슬로하에 단결을 하였다면, 범국민교육연대는 WTO 공투본의 투쟁정신을 계승하여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저지, 구체적 공교육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저항과 구성의 정치를 실현하는 보다 진일보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하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을 저지하는 대중적 투쟁들을 벌여나가며 동시에 민중이 진정으로 통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교육내용과 교육시스템을 구성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하여 더디 갈 수는 없다. WTO 교육개방 저지와 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는 이름 그대로 WTO 교육개방 저지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WTO 저지 전선 강화의 길로 힘차게 내달려야 할 것이다.PSSP
9.11 이후 미국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하에 세계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난 미국의 구도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이라크 인근 중동 국가들--시리아, 이란,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까지--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계속 관찰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변화된 노선이 냉전 하의 미국의 세계질서의 기획과 다르다는 점에서 이를 ‘제국’적 기획 또는 ‘제국주의적’ 기획이라고 부르는 논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전략을 주도하는 신보수파(neo-conservatist: 약칭 neo-con)들은 세계의 위협세력들을 제거하고 세계를 미국식 자유주의의 틀에 맞추어 변경하려는 ‘사명’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를 ‘제국주의적’이라고 부르기를 꺼리지 않고 있다. 신보수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윌리엄 크리스톨(William Kristol)은 “만일 사람들이 우리를 제국적 권력이라고 부르기를 원한다면, 좋은 일이다”라고 까지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새로운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 ‘새로운 미국적․민주적 제국’이나 ‘제국적 거대전략’, 또는 ‘인권의 제국주의’라는 호칭이 붙기도 하는데,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제국 또는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미국의 정책주도세력에 의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의 한 단면과 역설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은 새로운 변화의 첫 수순이었으며, 미국은 이 전쟁 이전부터 예견되던 수많은 정치․사회․경제적 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다음 수순이 무엇이 될 것이며, 그에 대해 미국인들과 세계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향후의 과정에는 아직도 변화의 여지가 남아있다. ‘제국적 길’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미국에 남겨진 좁은 선택지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길은 새로운 변화만큼이나 많은 모순을 새롭게 발생시킬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파의 쿠데타인가? 우리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전환이 일군의 신보수파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특히 9.11은 이들이 전면에 부각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들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주도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 일군의 신보수파의 핵심 인물은 국방부 부장관인 폴 월포비츠, 전 국방부 국방정책위원장 리차드 펄, 국무부 차관 존 볼튼, 신보수파의 이론적 지주가 되는 잡지 The Weekly Standard를 발간하는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 신보수파의 대부를 자처하는 어빙 크리스톨(윌리엄 크리스톨의 아버지) 등이며, 이들의 사령부는 미국기업연구소(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AEI)라고 할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 같은 공화당의 보수적 싱크탱크 또한 이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나 딕 체니 부통령같은 매파들은 직접적으로 신보수파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정책적 지향에서는 긴밀한 공조를 이루어 행정부 내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신보수파와 강경보수파가 연합한 조직이 1997년 창건된 ‘새로운 미국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New American Century)였으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부시정권 탄생을 위한 정책브레인 역할을 수행했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를 단지 일군의 신보수파의 쿠데타로 간단히 치부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두가지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첫째는 탈냉전 시기 미국의 세계전략이 어떻게 준비되어 왔는가하는 점, 그리고 이와 관련해 부시정권 이후의 연속성과 단절점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며, 두 번째로는 신보수파 중심의 노선이 득세할 수 있도록 해 준 미국 국내정치의 기반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첫 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1991년 1차 이라크 전쟁을 전개한 아버지 부시는 냉전 종식 이후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모색하였다. 냉전 하의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극을 주축으로 한 얄따협정에 기반을 둔 세력균형 체제가 무너지면서 국가간체계에는 새로운 혼란의 요소가 나타났다.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탈냉전 시기에 지역의 맹주로 떠오른 이라크의 부상이 그 상징적 예였는데, 아버지 부시의 노선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세계의 분쟁에 개입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시를 누르고 당선된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 하에서 전체적인 정책기조는 레이건의 군사케인즈주의를 버리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요구를 최우위에 놓는 달러-월스트리트체제였지만, 클린턴 하에서 군사비는 삭감되지 않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었다. 소말리아 개입과 코소보 사태, 그리고 이라크 공습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세르파티는 이런 상황을 놓고 금융세계화에 병행해 진행되는 군안복합체(military-security complex) 중심의 ‘군사적 세계화’라는 테제를 제출 한 바 있는데, 이 테제는 부시의 출현 이전의 상황에서 이미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의 변화의 연속성을 중시하고 있다. 2000년 선거를 둘러싼 쟁점에서도 이런 특징은 잘 관찰된다. 당시 부시와 고어 두 후보 중 세계에 대한 군사개입의 확대를 더 중시한 측은 부시보다는 고어였고, 고어는 클린턴 하에서 나타난 세계의 개입확대의 전략을 더욱 큰 영역으로 전개하려는 의도를 보였으며, 이미 ‘예방’(preventive)전쟁이나 사전개입 정책의 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면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을 전통적인 냉전적 구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단순히 전통적인 공화당 대 민주당이라는 구도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를 적극 지지한 공화당원들의 불만에서도 확인된다. 버크(Burke)적 사상전통에 뿌리를 둔 이들 전통 보수주의자들이 당시 부시를 지지한 이유는 미국이 과도하게 해외문제에 개입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관심을 국내로 돌려 좀 더 고립주의적 노선을 강화하고 세금을 삭감하고 지방정부를 지원하고 중앙정부를 축소할 것을 부시가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 부시는 해외개입 확대, 큰정부, 적자재정, 지방정부에 대한 소홀한 관심, 인권 침해 등 전통보수파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보수파는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가 새로운 전략을 끌어가는 신보수파들 때문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들 신보수파는 자신들과 같은 진정한 보수파가 아니라 단지 ‘우익 급진주의’일 뿐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들에 비해 오히려 민주당 내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적극 지지자를 찾을 수 있는데,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지도자인 조셉 바이든은 이라크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민주당원들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찬성하나 다만 이를 좀더 다자주의적 방식으로 수행하고 이라크의 전후 복구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2차대전후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과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전후 미국의 헤게모니 팽창기에 세계에 대한 전면적 개입전략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감당하기 힘든 정치․경제적 부담을 안겨준 후 1969년의 닉슨 독트린을 계기로 미국의 전략은 주요 지역에 하위제국주의 파트너를 육성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전환한 바 있다. 특히 1970년대 유가인상과 금융세계화의 개시에 따라 넘쳐나는 저리의 자본의 덕에 많은 반주변․주변부 국가들 사이에 급속한 군비확장의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세계적으로 거대한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이 주로 중동과 남아시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이란혁명에 이어 1980년대 들어 냉전체제가 붕괴함에 따라 중간규모의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은 탈냉전 시기 미국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미국은 탈냉전 시기의 각 지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하는 새로운 세계전략의 틀을 짜지 않을 수 없었다. 탈냉전 하에서 유럽의 군사력 부상 의지를 초반에 누르는 동시에 국지적 위협세력의 급증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는데, 군수산업에 도입된 신기술은 미국과 여타 나라들의 군사력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또한 냉전 하에 소련에 맞서기 위한 다자적 동맹의 틀이 이런 구도에 적절히 작동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미국은 다자주의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일방주의를 중심에 놓으면서 상황에 따라 다자주의의 다양한 틀을 동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유엔의 틀 속에서 수행한 미국이 코소보의 경우는 UN의 틀을 벗어나 NATO를 활용한 제한적 다자주의적 길로 가고, 그 다음 단계로는 ‘의지연합’으로 나가게 된 것 또한 아들 부시정권 하에서 사전 변화 없이 처음으로 다자주의에서 일방주의로 급격한 전환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시정권이 클린턴 정권과 단절점을 보이는 측면은 적지 않다. 상대적 정도의 차이라 하더라도 분명 일방주의는 강화되고 있으며, 클린턴의 ‘인권’ 외교의 메타포가 ‘대량살상무기’나 ‘테러’로 전환된 점도 두드러진다. 여기에 ‘예방전쟁’의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근대 국가간체계 하에서 형식적으로 유지되어 온 주권의 경계가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다. 과거에도 주권의 침해는 비일비재했지만, 이것이 먼로 독트린에 입각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수행되어 온 것과 달리 부시 하에서 주권에 대한 미국 일방주의의 우위는 전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과 금융세계화의 관련성이라는 쟁점이라 할 수 있다. 클린턴 정권 하에서 양자의 관계는 정확히 후자의 이해관계를 우위에 두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현재는 양자의 관계에서 전자가 더 우위에 서있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금융자본들이 여러 가지 불만들을 표출된 바도 있다. 이 문제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모순인 자본주의의 초민족적 팽창주의적 경향과 헤게모니의 영토주의적 경향 사이의 모순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헤게모니 하에서 헤게모니의 영토주의적 성격의 팽창, 또는 세계체계의 헤게모니 유지비용의 증가는 미국의 물질적 토대 자체를 침식한 바 있는데,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후과로 발생한 거대한 쌍둥이 적자와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가 그 첫 번째 사례이며, 1980년대 레이건이 주도한 ‘제2차 냉전’의 결과 생겨난 더욱 거대한 쌍둥이 적자가 그 두 번째 사례였다. 두 번 모두 미국의 ‘국제주의적 보수파’라 할 수 있는 세력이 주도한 전략이었는데, 지금의 세 번째 사례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보수파적 전환이 가능한 미국의 국내적 토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기 위해 이들 매파가 미국 내에서 왜 점점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이런 매파의 목소리는 늘 존재해왔고 가끔씩 대통령 선거에도 등장하였지만 소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매파들이 부시를 후보로 만드는 기간에 상호 결집하였고, 특히 9.11 이후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 이들 매파의 주장은 힘을 얻어가고 있고, 심지어 한 때 좌파라 자칭하던 이들 중에도 이들을 지지하는 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탈냉전기 세계질서의 장기적 비전과 관련되는데, 다시 말해 다른 모든 미국의 정치세력--민주당이건 공화당내 현실주의자들이건--은 현상유지에만 급급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종이호랑이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인데 반해, 이들 매파는 비전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글로벌 전략이 이들에게만 있다는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되었건, ‘불량국가’가 되었건 사방에서 미국이 모멸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다가 급기야 자본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상징적 심장부가 테러공격을 받게되도록 “너희는 무엇을 하였는가?” “매파의 논의에 완전히 동의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럼 지금 이들 말고 누가 미국의 쇠퇴를 진정으로 걱정하는가,” 그리고 자기도취에 빠진 미국인의 말투대로 이들 말고 “누가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걱정하고 새질서를 짜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신보수파의 세계인식 신보수파가 내세우는 제국적 거대전략은 새롭게 변화한 냉전 이후의 세계구도에 대한 대응으로 제출되었다. 아이켄베리는 소련과 미국의 양국체제에 기초한 세력균형과 자유주의적 무역질서에 기반을 두고 있던 2차대전 후의 국제질서가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으로 전환되는 맥락과 신보수파의 주장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의 군사비나 군사기술의 신속한 발전을 다른 나라가 따라 갈 수 없는 단극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미국은 열강이나 중간규모 국가 어디도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없도록 이런 군사력 확장을 지속해 가려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전지구적 위협이 달라졌으므로, 그에 대한 공격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주요 위협은 소집단 테러분자이며, 이들은 제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셋째, 냉전 하의 핵억지 개념은 낡았는데, 냉전은 핵억지, 주권, 세력균형이라는 세 가지 동시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탈냉전 시기에 핵억지가 불가능해지면 나머지 둘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일한 대안은 공격인데, 이 공격은 선제공격일 뿐 아니라 심지어 예방적 공격이기도 하다. 넷째, 주권의 제한이 필요한데, 테러분자 뿐 아니라 테러를 억제하지 못하는 국가도 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비우호적, ‘전제적’ 국가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위협이 되기 때문에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은 국가도 미국의 군사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섯째, 국제규칙이나 조약, 안보파트너쉽을 경시하게되는데, 미국은 충분히 크고,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전역에 힘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협을 제거하는 핵심과제를 위해 독자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위협에 대응해 미국은 직접적이고 무제한적 역할을 해야하는데, 이런 변화한 상황을 동맹이나 연합들이 주도적으로 따라오기 힘들기 때문에 임무에 따라 연합을 결정해야지, 연합에 따라 임무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째로, 국제적 안정성 자체가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냉전적인 현실주의적 사고는 세력균형이나 안정 자체를 목적으로 했지만, 북한 문제에서 보듯이 신보수파는 안정을 위한 타협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를 세 가지 점과 관련해 좀 더 부연 설명해 보기로 하자. 먼저 유럽의 역할에 대한 신보수파의 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보수파는 유럽에 대해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들에 따르자면 현재 서방세계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문명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정글의 기준이다. 유럽은 문명의 기준에 따라 포스트-역사적, 포스트-민족적, 평화의 세계, 칸트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에서 미국이 유럽을 권력, 개입, 군사력을 중심으로 하는 홉스적 세계를 통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은 항상 다자적 해결과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나, 이는 본질적으로 약자의 논리, 권력이 없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으로 본다. 유럽은 따라서 일종의 ‘무임승차’를 하게되는 셈인데, 군비를 증강하기보다는 군비증강의 의도를 포기했고,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사이의 군사력 격차는 1990년대에 더욱 벌어졌다. 그렇다고 이들이 유럽의 통합 노력에 부정적인 것은 아닌데, 유럽통합 노력이 유럽 내부의 국가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본다. 미국이 자임하는 역할은 대서양 동맹에 대한 ‘보안관’인데, 이들은 영화 ‘하이눈’의 게리쿠퍼를 자임하면서, 평화시에 주민들은 보안관에 복수하러 찾아온 건달보다 보안관의 존재 때문에 평화가 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평화를 지키는 것은 보안관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의는 약한 유럽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지로 미국이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제공격과 예방공격에 대해서 살펴보자. 선제공격(preemptive war)을 넘어선 예방공격(preventive war)은 사실상 2차대전의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도 중죄로 간주된 것인데, 신보수파 이데올로그인 윌리엄 크리스톨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과 독일을 먼저 공격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면서 이 노선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예방전쟁의 정당화는 이라크 침공을 2차 대전 후 일본과 독일의 전후복구 개입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논지로 이어진다. 세 번째로 일방주의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은 UN을 사실상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길로 나가고 있으면서도 북한문제에서 보듯 다자주의적 틀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런 다자주의적 틀은 반드시 UN을 매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보는 UN 안보리는 소속 국가들의 특수 이익을 반영하는 단순한 이익집단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다자주의와 일방주의의 관계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수립한 세계 질서 내에서 다자주의가 갖는 특수한 성격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전후 미국은 브레튼우즈를 통한 무역과 금융체계와 UN이라는 국가간체계의 구조 양자를 통해 전세계를 다자주의적 방식으로 통합해 냈는데, 이는 영국헤게모니의 시기에 비해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 우위 하에 전세계 국가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틀로서 작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신보수파가 말하듯이 미국 내에 UN 중심의 국제법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는 유럽식의 원칙적 다자주의자란 없다. 대신 미국의 다자주의란 손익계산에 근거한 실용적 다자주의일 뿐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미국에는 사실상 다자주의 대 일방주의라는 논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미국 다자주의자는 핵심에서 일방주의자일 뿐이고, 이들의 말을 빌자면 “다자주의 융단 장갑 속의 일방주의 철권”이다. 우리는 이를 ‘다자적 일방주의’(multilateral unilateral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임무가 연합을 규정한다는 신보수파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다. 북한문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자주의적 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의제를 관철하는 더욱 강력한 메카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다자주의란 위협세력에 압력을 가해 미국의 일방주의를 정당화하는 틀이다. 다자주의 틀 속에서 제기되는 조건과 압력을 상대국가가 수용하지 못할 때, 미국은 다자주의적 틀을 깰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하게 된다. 다자주의는 일방주의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의 틀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 틀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자주의의 균열이 발생함에 따라 일방주의를 통해 이런 다자주의적 틀을 미국 주도적으로 이끌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파 등장의 배경 앞서 전통 보수주의 공화당원의 불만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신보수파는 전통적인 고립주의적 보수주의자들과 노선이 상이하며, 어떤 점에서는 민주당내 보수파와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신보수파가 출현하게 된 배경에서 이런 특이성의 연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신보수파 개인들의 이력과 신보수파의 지지기반이 형성되는 미국 국내 정치적 변화라는 두 가지 구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신보수파 개인의 이력을 살펴보면, 월포비츠나 리차드 펄 등 적지 않은 신보수파는 1960년대의 자유주의자 또는 심지어 중도좌파에서 전향한 우파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UN 같은 자유주의 제도나 소련의 억압정책 등에 실망하고, 민주당의 소극적 세계전략에 실망해 레이건 하에서 공화당원으로 전향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후 적극적인 레이건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복지국가식 서비스의 집중은 반대하지만 하이에크처럼 최소 정부의 지지자는 아니며 전통적 보수파와 달리 강한 정부의 지지자이며, 군사력의 예찬자이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나타나듯이, 이들은 위협세력의 제거와 전쟁 승리 자체보다는 ‘불량국가’들을 무너뜨리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이식해 이로부터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중동과 분쟁지역 전체의 체제를 전환시키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 때문에 조셉 나이는 이들을 ‘우익 윌슨파’(Wilsonians of the Right)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세계적 개입과 강경 군사노선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매파 세력은 ‘잭슨적 일방주의자’(Jacksonian unilateralist)라고 부르는데, 우익 윌슨파가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때까지 미국이 주둔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이들은 이라크로부터 빨리 철수해 다른 위협세력에 대한 공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보이고 있다. 신보수파의 득세는 미국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에 보수주의가 강화되는 계기는 1970년대 초 미국의 경제위기가 나타나고 1973년 낙태가 허용되고 1970년대부터 차별수정조치(Affimative Action)가 도입됨에 따라 이에 대한 저항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영향이 강하던 남부의 보수적 민주당원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여 이탈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선벨트’ 지역이 부상하면서 남부와 서부의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보수화가 강화되었다. 이런 보수주의는 복지혐오와 유색인종혐오, 그리고 기독교근본주의라는 특색을 강하게 띠었으며, 대체로 중산층과 남부공화당원, 그리고 북부의 교외지역 거주자들 사이의 보수 연합이 형성되었다. 또한 금융화의 여파로 각종 규제가 약화됨에 따라 자금 또한 거대하게 보수파들에게 몰렸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20세기 미국의 역사는 노동의 포섭과 테러의 공존이 지속되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와 30년대 급진적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과 결합한 생산성 임금제의 도입(이른바 ‘포드주의’)에 이어 1950년대 냉전 형성기에 동유럽 출신 이주 노동자의 반공주의를 통한 AFL-CIO의 개량주의화와 결합한 매카시즘은 미국의 노동운동의 경제주의적 전통을 수립하였다. 1960년대 말 이러한 노동의 포섭과 테러를 결합한 통제에 균열이 생기고, 이는 중도파를 중심으로 한 사회통제의 기제에도 균열을 발생시킨 바 있다. 9.11 이후 ‘애국입법’ 등을 통해 나타나는 국내테러의 강화는 사회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띠는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고 있다. 제국 기획의 난점 이라크 전쟁 수행을 통해서 드러나는 신보수파 중심의 ‘제국’적 기획은 그 경제적 토대와 관련해 딜레마를 낳게 됨을 지적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은 전지구적 군사적 개입에 따른 비용부담의 급증이라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 비용을 세계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정치적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남한이 끌려 들어가고 있는 군대파견과 파견비용의 자비부담이라는 것이 그 일환일텐데, 미국은 이라크 침공과 재건에 들어가는 비용의 2/3를 동맹국들에게 부담 지우는 한편, 미국의회는 이라크 재건비용의 절반을 원조가 아닌 차관형태로 변경함으로써 자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뻔뻔함까지 드러내고 있다(『중앙일보』 10월 18일). 엠마뉴엘 토드는 미국의 제국적 기획의 난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첫 번째는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강하지만 세계적으로 개입을 펼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군사력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점, 세 번째는 보편주의적 가치가 급속하게 소실되어 가는 미국의 주도력의 약화이다. 지오반니 아리기는 현재의 세계체계가 붕괴한다면 “무엇보다 적응과 조정에 저항한 미국 때문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도 미국이 세계질서를 자신의 구상에 맞게 변화하려는 시도를 당분간 펼쳐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 결과는 전혀 예상되는 방향이 아닌 매우 불확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지역인 유럽과 자신을 연결하는 범대서양의 위계적 공동지배(condominium)를 유지해갈 수 있겠고, 그것이 적어도 중심부 국가간의 전쟁 가능성은 계속해서 억제할 수 있겠지만, 제국의 변경으로부터의 이탈과 탈구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체계 전체가 발생시키는 모순이 제국의 핵심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계속해 이전됨에 따라 제국적 기획의 각 고리에서 수많은 딜레마와 갈등이 분출될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그 모순이 결집되는 고리들에서 폭력이 폭발적 형태로 집약되어 나타날 가능성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중도 자유주의의 기반이 급격히 취약해지면서 나타나는 우파의 근본적 혁신의 위협 또한 더욱 커져가고 있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