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회진보연대는 「월간 사회진보연대」7․8월 호에서 비아캄패시나를 비롯한 세계의 농민운동에 대한 글을 다룬 적있다. 9월호에서는 칸쿤에서 열릴 반세계화 시위의 지구별 모임으로 지난 8월 24일에서 27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비아 캄패시나 아시아 회의 후 발표된 공동 선언을 번역해 실었다. 우리는 남한 서울에 모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영세․소농이다. 우리는 각 지역의 농민과 소농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이 회의는 인도네시아와 한국, 태국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대표로 참가했다. 우리는 WTO가 신자유주의의 도구로서 농촌사회의 위기와 우리의 삶의 조건들을 악화시켰다고 선언한다. 굶주림과 실업,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자연자원의 고갈은 농촌 지역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다. WTO체제 하에서 자유무역주의는 악영향을 보여줘 왔다. WTO에 찬성하는 국가들은 한편에서 자유주의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통상 농업정책들과(CAP: common agriculture policy) 미국 농업 교서 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은 그들 국가들에서 초국적 기업을 보호해왔다. 그들은 자국의 농민들에게 미화 1900억에 이르는 장려금을 주어 농업 상품을 제3세계로 수출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초국적 기업은 정부에게 지원을 받아 시장과 통화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증가시킨다. 정부는 농업부문의 수출을 장려하고 농산물을 비용보다 낮게 농산물을 판매하도록 장려한다. 그 결과 식량주권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농민은 농촌을 떠나 도시나 해외로 이주하도록 강제받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FAO, UN인권위 (Human Right Comission), 유니세프와 유네스코와 같은 유엔 기구들을 약화시키고 IMF와 세계은행(World Bank) 그리고 다른 국제 금융기구들에 부채가 있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그리고 남한과 같은 국가들의 공공서비스와 농업자원들을 민영화할 수 있도록 IMF와 세계은행(World Bank) 그리고 다른 국제 금융기구들의 역할을 강화했다. 신자유주의는 나프타(NAFTA)와 아프타(AFTA) 그리고 에이펙(APEC)과 같은 자유무역협정과 한․칠레 자유주역협정등과 같은 양자간 무역협정을 증대시키도록 했다. 우리는 이 지구의 생명을 지키는 영세농민과 소농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농업과 식량정책들을 규정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합당한 식량 보급을 위해 자국의 시장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농업과 식량 생산을 규제할 권리가 있다. 수출에 대해 지역과 지구적 생산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헐값의 수입품들로부터의 보호를 승인하는 것과 내수용 농산품을 만드는 농민들에게 공적 원조를 하는 것 그리고 생산을 조절하는 국제적 협정으로 국제적 수준에서 농업 가격들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각국의 정부가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즉각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1. 현재 진행중인 WTO협정을 중단하고 새로운 이슈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라. 2. 농업 협정에 근거한 농업 무역의 더 큰 자유화를 위한 협상을 중단하라 3. 수입품에게 5%에 이르는 최소 내수 시장접근 특권을 제거하고 시장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허용하는 모든 조치들을 제거하라 4. 모든 종류의 생물에 대한 특허를 금지하라 5. 진정한 농업개혁을 채택하고 토지와 종자 그리고 물 등과 같은 중대한 자원들에 대한 농업 생산자의 권리를 보장하라. 6. 농민의 권리와 식량주권을 보호하라. 우리는 한국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투쟁을 지지한다. 한국 농민들의 조직은 올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중단을 요구하면서 덤핑에 대항하는 보호와 식량생산에 대한 높은 투자를 통해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활발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농민과 영세농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범죄화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과 다른 나라들의 감옥에 있는 모든 농민 지도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을 정의의 법정에 세울 것을 요구한다. WTO와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맞서 모두 투쟁하자 우리는 모든 사회단체들과 운동들이 그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행동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각료회의가 열리는 2003년 9월 9일에서 14일까지 칸쿤과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의 국제적 행진에서 우리와 만나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정부에 WTO의 제안과 구상을 거부하고 칸쿤에서 식량주권의 원칙을 수호하도록 요구한다.PSSP 투쟁이 세계화 되기를! 희망이 세계화 되기를! 회의 참가단체 1. 인도네시아 농민 연합 -FSPI (인도네시아) 2. 빈민회의 (타이) 3. PANGGAU (말레이시아) 4. 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 5.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한국)
완전 감시 * Ignacio Ramon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 8 ------------ 「과거에는 어떠한 정부도 시민을 끊임없는 감시 아래에 둘 힘을 갖지 않 았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모든 시민이 경찰 당국에 의한 하루 24시간 제의 감시 아래에 놓여져 있다」 조지·오웰(George Orwell)의『1984년 』에서 이 여름에 미국에 갈 예정인 사람은 다음의 것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게다. 유럽위원회와 미 연방 당국과의 협정에 의하여,어떤 종류의 개인 정보가 본인의 동의 없이,이용할 예정인 항공 회사로부터 미국의 출입국 관리소 에 전달된다.미국 당국은 도항자(渡航者)가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그의 성명,연령,주소,여권 번호,신용카드 번호,건강 상태,(종교의 판별 과 연결되는)식사의 기호,도항(渡航) 경력 따위를 파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는 의심스러운 인물을 발견한다는 목적으로 CAPPS(승객을 사전 에 식별하는 컴퓨터 시스템)라고 불리는 조회(照會) 시스템에 보내진다.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여,경찰이나 국무부,사법부,은 행의 정보와 조회함으로써 판정된 위험도에 따라 색깔별로 코드를 할당한 다.녹색은 무해(無害),노랑색은 요주의,적색이라고 판정되면 탑승할 수 없다.도항자가 이슬람교도 혹은 중동 출신자라면,자동적으로 주의 요 망의 황색이 된다.그리고 국경 보안의 일환으로 입국 심사관은 이 인물 을 사진 촬영하고 지문을 채취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도 주목되고 있다.6,500만 명의 멕시코 사람,3,100 만 명의 콜롬비아 사람 및 1,800만 명의 중미(中美) 여러 나라의 사람들 에 관하여,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 정부가 개인정보를 모으고 있음이 발각되었다.각각의 정보 파일에는 생년월일,출생지,성별,양친의 신 원,신체적 특징,혼인 상황,여권 번호,신고된 직업이 기재되어 있다. 많은 경우 자택 주소,전화번호,은행의 계좌 번호,자동차의 등록 번호, 지문과 같은 내밀한 정보까지도 기록되어 있다.이렇게 조금씩,모든 라 틴 아메리카 사람이 미국 정부에 의하여 딱지 붙여 있다. "목적은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인간의 위험도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Choice Point사 임원인 제임스· 리는 이렇게 단언한다(주1).이 기업은,미국 정부가 작성한 개인정보 파 일을 사들여 파는 사업을 한다. 미국의 법률은,개인 정보의 보존을 금지 하고 있다.그러나 정부가 그것을 민간기업에 발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 지 않다.애틀란타 근교에 본사를 둔 Choice Point사는,무명의 기업이 아 니다.2000년의 대통령선거 때,플로리다 주가 유권자 명부의 재편성을 위 탁한 것이,같은 회사의 자회사인 데이터베이스·테크놀로지스이었다. 그 결과 몇 천 명의 주민이 선거권을 박탈당해 투표의 행방이 바뀌어, 불 과 537표차로 부시가 승리하였다.회상하면 부시가 대통령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이 승리의 덕택이었다(주2). 감시강화의 대상은 외국인만이 아니다.미국 국민도 또한 지금의 편집증 (paranoia)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애국자 법(Patriot Act)에 의하여 인 정된 새로운 통제가,사생활(privacy)과 통신의 비밀을 위태롭게 하고 있 다.전화 도청은 이미 허가 받을 필요도 없다.수사관은 수색 영장 없이 시민의 개인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예를 들면 FBI(미국 연방 수사국) 는 각지의 도서관에 대하여,이용자가 열람한 책이나 웹 사이트의 리스트 를 건네달라고 요청하고(주3),개별적인 사람에 대해 "지적 측면에서 본 인물상(人物像)"을 그려내려고 한다. 그러나 불법인 스파이 계획 중 가장 상궤(常軌)를 벗어나고 있는 것은, 미 국방부(펜타곤)가 모든 정보 인지(TIA)라는 명칭으로 준비하고 있는 정 보 완전감시 시스템이다(주4).이 계획은 1980년대에 이란·콘트라(Iran- Contra) 사건의 중심적인 인물로서 유죄판결을 받은 존 포인덱스터(John Poindexter) 대장에게 일임되어 있다.그 내용은 지구상에 지내는 60억 명 의 개인 정보를 평균 40 페이지에 걸쳐 수집하여 그것을 하이퍼 컴퓨터에 의하여 처리한다는 것이다.카드에 의한 지불이나 신문 잡지의 정기 구 독,은행의 입출금,전화의 발신,웹 사이트의 열람,전자 메일,경찰의 기록,보험 관계의 서류,의료 기록,사회보험 기록 등 입수 가능한 모든 개인 데이터를 처리함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완전하게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당국은 스티븐·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영화『Minority Report』처럼하면 범죄 행위가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생 각한다.알링턴(Arlington) 연구소의 존 피터슨(John L. Petersen)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생활은 좁혀지지만 안전은 높아진다.당신에 관 한 모든 정보를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우리들은 미래를 앞당길 수 있게 된 다.장차 우리들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주5)‘Big Brother’는 시대의 지각생이다. * 번역; 김승국 ---------- <각주> (주1) 『La Jornada』Mexico, (2003.4.22) (주2) 『The Guardian』London, (2003.5.5) (주3) 『The Washington Post National Weekly Edition』(2003.4.21-27) (주4) 사생활 보호의 관점에서 항의에 받자 테러정보 인지(TIA)라고 개칭 되었다. Armand Mattelart 지음『Histoire de la societe de l'information』 (La Decouverte, Paris, 신판, 2003년 10월)을 참조할 것. (주5) 『El Pais』마드리드,(2002.7.4) ----------- * 필자는 『Le Monde Diplomatique』의 편집장이다. * 프랑스어 원문= http://www.monde- diplomatique.fr/2003/08/RAMONET/10252
<프레시안> 2003-09-01 오후 5:43:52 아프간도 위험하다 탈레반 공격 본격화ㆍ빈 라덴 건재 이라크에서 치안부재ㆍ통제불능의 늪에 빠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수렁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탈레반 세력이 활동을 강화함에 따라 아프간 곳곳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오사마 빈 라덴도 건재하다는 소 식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점점 미국이 1980년대 소련처럼 ‘제2의 아프 간’에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아프가니스탄 치열한 교전 지속. 지난 주에만 양측 합쳐 90여명 사망 뉴욕타임스는 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등지에서 새로운 자원자들의 합 류로 탈레반 세력이 자신들의 이전 활동무대인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 에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며 아프간 관료와 서구 외교관 및 포로들 말 을 인용해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8월 중순 이래로 자불주(州)를 비롯한 아프간 남동부지역에 서 치열한 교전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교전으로 지난 달 31일 미군 2명이 동부 파크티카주에서 사망한 것을 비롯, 지금까지 미군 35명 이 사망했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또한 아프간 관료에 따르면 지난 8월에도 카불 남부의 와닥주와 로가르주 에서 교전이 벌어져 9명의 경찰관이 사망했다. 이처럼 아프간 정부와 미군 에 협조하고 있는 아프간인들에 대한 공격이 계속돼 지금까지 2명의 경찰 간부와 2명의 친정부 학자 및 30명 이상의 경찰관들이 사망했다. 한편 지난주에도 탈레반 세력 및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 사이에 치열한 전 투가 벌어져 양측 희생자가 90명에 이르렀다고 AP 통신 등이 30일(현지시 간) 전했다. 유엔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남동부지역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지역 으로 변했으며 재건움직임과 투자활동이 둔화돼 카불 정부 및 미군지지자 들과 이 지역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파슈툰족은 점차 소원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탈레반 전술 변화 “미군뿐만 아니라 아프간 관료 등에도 공격, 심리전 사용하기도” 탈레반들이 이렇게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탈레반 세력의 전술에도 변화 가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서구 외교관들의 말에 따르면 탈레반 의 공격대상은 이제 미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 정치인과 관 료 및 구호활동단체직원들도 포함되고 있는데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구 호활동단체직원들에 대한 공격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 한 것이다. 또 팻 도노후 연합군 사령관에 따르면 탈레반 세력은 지역에 따라 다른 전술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크티카주 및 파크티아주 지 역에서는 탈레반은 과감하게 미군세력과 직접 교전을 벌이지만 다른 지역 에서는 미군차량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나 폭탄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탈레반들은 이렇게 공세적인 전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심 리전도 사용하고 있다”고 서구 외교관들은 밝혔다. 탈레반세력 지도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 명의의 오디오테잎이 지난 6월 이래 계속 뿌려지고 있는데 이 테잎은 “점령군과의 성전을 강화하기 위해서 10명의 지도위원 회가 꾸려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탈레반 세력은 “미군과 국 제사회는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고 자신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탈레반 세력은 과거와는 달리 유화전술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과는 달리 면도를 했거나 노래를 들으며 다니는 사람들에 게 간단한 설교만 하고는 그냥 보냄으로써 “웃음과 친근함”으로 다가서 고 있다고 비영리 단체인 아프가니스탄 NGO 단체의 닉 다우니 안보담당관 이 밝혔다. 이렇게 점차 탈레반의 전술이 다양해지면서 아프간에서 위험지역이 늘어 남에 따라 남부 최대 도시인 칸다하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호단체들의 수 가 50%까지 줄어들었으며 유엔의 활동지역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12월에나 되어서야 1백20명 정도의 미군을 칸다하르에 새로 파견할 계획으로 있어 유엔 및 서구 외교관들은 앞으로 아프간에서 의 치안에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사마 빈 라덴 건재, 제 2의 9.11 테러 위한 회의 개최” 한편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 대규모 테러 회의를 개최하는 등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고 뉴스위크 최신 호(9월 8일호)가 보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미군의 집중적인 추적에도 불구하고 행적이 묘연했던 “빈 라덴 은 아프간 쿠르나주 산악지대에서 세 아들과 함께 자유롭고 안전하게 머물 러 있다”고 뉴스위크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 빈 라덴이 주최한 테러 회의에는 알-카에단 행동조직 지도자들과 체 첸,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급진 이슬람 단체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회의에서 빈 라덴은 “중대한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 해졌다. 이와 관련 탈레반 고위 소식통은 “빈라덴은 생물 무기 사용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그의 계획은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또 이 소식통에 따르면 “생물무기를 이용한 빈 라덴의 다른 공격계획은 9.11 테러를 기획했던 알-카에다의 핵심지도자인 할리드 샤이크 모하메드 가 지난 3월 체포되는 바람에 연기된 것 뿐”이라고 전했다. 빈 라덴은 또 이 회의에서 심복인 사이프 알-아딜을 알-카에다의 이라크 조직책으로 임명했으며 종교지도자 및 기업인 등에게 가능한 한 알-아딜 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도 작성해 줬다고 뉴스위크는 보도했다. 이라크만으로도 힘겨워하는 부시 정부에 아프간은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 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김한규/기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 WTO의 5차 각료회의에 부쳐 오는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멕시코의 호화 휴양지 칸쿤에서 WTO의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성과로 95년 출범된 WTO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영역을 확장하며 민중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5차 각료회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WTO는 다양한 자태변화를 통해,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유무역 안으로 포괄하고 이를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음으로 대상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이번 WTO 5차 각료회의는 ‘자유무역’이라는 미명 하에 전세계 민중의 제반 권리를 박탈하고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과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계획의 완성판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특히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2001년도에 시작된 도하개발 의제(DDA)라는 새로운 무역제체를 출범시키기 위한 막바지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다자간 투자자유화협정을 핵심목표로 추진하고자 한 밀레니엄 라운드의 실패 이후, 미국중심의 자유무역질서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그런 만큼 이번 각료회의 준비작업도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우선 밀레니엄 라운드 실패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개도국의 불만을 무마하고 끊임없는 ‘자유뮤역’의 환상을 작동시키기 위해 몇 차례의 비공식 각료회의, G8 정상회담의 조율 등을 시도했다. 또 이번 WTO 5차 각료회의가 911테러 2주년을 맞는 시점에 진행되는 탓에 미국정부는 테러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칸쿤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차단하고 단속을 엄격히 하는 등 시애틀 투쟁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전세계 민중들의 투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초국적 자본의 완전자유화를 위한 민중의 권리 박탈협정, 도하개발의제(DDA) WTO는 각 국간의 무역장벽을 없애고 무역 자유화의 틀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을 비롯한 WTO 협상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관세를 낮추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수 공공서비스를 완전히 시장화하여 초국적 자본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한편,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를 차별하는 요소를 없애고 손실의 여지가 없도록 하는 등 투자 자유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조처들을 국제적인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서 IMF와 세계 은행이 주변․반주변 국가들이 처한 외채․외환위기를 매개로 하여 차관을 지급하고 그 대가로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긴축재정 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했다면, WTO 도하개발의제는 이러한 정책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틀을 갖추고 ‘분쟁해결메커니즘’을 두어 이를 강요하는 셈이다. 이번 각료회의의 핵심 쟁점인 도하개발의제에서는 농업협정, 서비스협정을 통하여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유무역의 영역 안으로 포괄하고 이를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실패한 시도로 끝났던 다자간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 내에서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자유무역’을 완성한다는 WTO가 민중의 삶 곳곳을 초국적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만들며 삶의 기반을 파괴하고 불평등한 빈곤을 확산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첫째, 농업협정(AoA)은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수출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한 감축/국내보조의 실질적 감축 등 3대 협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초민족적 식량 기업과 농산물 수출국으로 하여금 과잉 생산된 식량을 생산비 이하의 가격으로 덤핑하여 주변․반주변국의 농촌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식량 생산을 붕괴시키고 전세계 식량 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둘째, 교육, 보건의료, 에너지 공급, 상수도 공급, 통신, 금융서비스, 시청각서비스, 법률서비스, 건설, 유통, 환경 등 모든 형태의 서비스를 협상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협정(GATS)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상업화하고 외국인 지분소유한도를 철폐하도록 하여 초국적 자본이 침투하여 활동할 수 있는 영역으로 탈바꿈시킨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한국정부에 제출한 양허안 요청서에 따르면 각종 공공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요청하고 특히, 한국통신을 직접 지목하면서 해외 개인 투자자의 소유제한을 완전히 철폐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처럼 이 협정이 다룰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는 제한이 없고,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 역시 언제든 가능하다. 때문에 이 협정은 개별 회원국이 특정 회원국을 대상으로 개방 요청을 하고 그 요청에 근거해서 개방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 게다가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대해 특혜를 부여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셋째,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은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지적재산권 협정을 총망라하여 초민족적 자본이 영토의 한계를 넘어 무제한적인 독점적 권리를 향유하도록 보장한다. 특허에 의해 보장되는 배타적/독점적 권리를 강화하고 20년간 연장할 수 있게 하며, 미생물과 식품, 의약품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해, 농민들의 종자에 대한 접근권, 가난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접근권 모두를 박탈하고자 한다. 그런데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진정한 문제점은 세계적인 무역질서 내에서 각 민족국가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거나, 중심부국가 및 초민족적 자본의 상품 판로를 확장하기 위한 것에 있다기보다는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위한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자본 이동의 완전한 자유화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 이슈(싱가포르에서의 2차 각료회의를 통해 제기)를 통해 미국, 일본 등은 OECD 내에서 추진하려다 실패한 “MAI(다자간 투자협정)" 수준의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 내에서 체결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제한 없는 경쟁을 보장하고 국내․외 자본간의 차별을 삭제하며 완전히 자유화된 투자와 금융거래의 틀을 확립하겠다는 의도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WTO 체제와 남한 사회의 위기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전략은 기존의 중화학·수출중심 발전 국가에서 '자본유치형'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은 기업들의 부실을 처리하여 남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부실확대를 막고, 공적자금 조성을 통해 위기에 빠진 재벌, 금융사들을 구제함으로써 경제위기가 폭발하는 것을 막았으며, 금융부문의 규제를 없애고, 금융시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초민족 자본을 다시 유인하는 것이 김대중 정권이 이야기했던 경제위기 극복이고, 경제성장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권에게 남겨진 과제는 분명한데, 계속해서 외국인 투자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자본유치형'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이 계속해서 ‘신흥시장’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저금리, 연기금 주식투자 등의 증시부양 정책과 금융 및 서비스 분야의 개방, 자유화 조치 등이 연달아 추진되는 것이다. 금융부문에 있어서의 자본의 진입 및 이탈에 대한 규제는 이미 상당 수준 자유화되어있는 상황이며, 양자간 투자 및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행의무부과금지’ 와 ‘내국민대우’조항 등의 초가조치와 경제자유구역법의 실시 등이 이루어져왔다.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이러한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의 연장선에서 초민족 기업의 활동영역을 더욱 확대시켜주는 조처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교육, 에너지, 의료 분야를 추가적으로 개방하는 한편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이미 개방된 금융, 통신, 건설, 유통, 환경, 해운 등의 분야를 서비스 협정 양허안에 반영하여 지난 3월 31일 서둘러 제출해 다른 회원국들의 개방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남한 자본주의의 이러한 전략은 기존 산업의 파괴―특히 농업의 포기―를 동반한다. 대신 IT, BT 등 외국자본 유치에 매력적이고, 주식시장 부양책과 연관되어 있는 산업들이 적극 육성된다. 합리화의 명분으로 공공분야의 비효율성, 소비자만족도의 저하를 내세우며 적극적인 시장자유화조치를 취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시장자유화조치는 효율성과 만족도, 경쟁력을 높인다는 담론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이러한 외자유치를 위한 조처들이 초국적 자본에게는 최적의 투자 환경을 만드는 반면 노동권, 환경권, 교육권, 건강권 등 민중의 제반 권리를 해체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존의 위기와 민중들의 권리의 박탈 앞에서 전사회적인 기생성과 투기성을 증가시키고 막대한 부를 해외 기관투자자가와 재벌에게 집중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투쟁이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그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자 WTO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의 노력은 끈질기게 민중들의 삶을 파괴해왔다. 그러나 WTO의 영역의 확장만큼 민중들의 투쟁 역시 성장하고 있다. 1999년 시애틀의 WTO 3차 각료회의에서 기획되었던 새로운 자본의 세기를 위한 뉴라운드의 출범은, 시애틀 거리를 완전히 점거하고 WTO 각료회의장을 포위하면서 강력하게 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의해 저지되었다. 시애틀 투쟁의 성과를 이어 세계사회포럼 구성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대안세계화를 위한 국제행동의 논의가 불붙고 있으며, 지난 2월 15일 전세계적인 반전시위의 기획과도 같은 전지구적 행동 또한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WTO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되는 칸쿤에서도, 농업, 무역과 전쟁, 서비스 사유화, 환경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한 “WTO 대안 마련을 위한 민중포럼“과 부문별포럼, 911과 군사주의 희생자 추모대회, 대규모 시위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AIDS와 각종 질병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과, 죽지 않을 정도의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초과착취지대의 여성의 비참함, 생계인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소규모 농민들의 비애, 수도산업 민영화 이후 전국민의 1%도 안되는 사람만이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는 상황 등이 단지 남반구 혹은 주변국․반주변국 일부에서만 일어날 문제가 아니며 전세계 민중들 모두에게 곧 닥쳐올 미래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현재 남한에서도 FTA․WTO 반대 국민행동(KoPA)와 전국민중연대에 소속된 200여명의 활동가들이 칸쿤 현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9월 1일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투쟁선포식과 기자회견을 비롯, 릴레이 선전전과 9월 6일 WTO 각료회의 저지 범국민대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WTO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사회운동들의 논의와 행동이 언론과 자본에 의해 ‘반세계화’, ‘자유무역 반대’로 표상되면서 그 스스로를 민족국가간․계층간 보호주의와 ‘거울유희’하는 오류도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 예컨대 농민들의 농산물 개방 반대 투쟁이 자유무역론자들의 ‘비교우위론’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공부문의 해외매각․사유화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교육․보건의료 시장 개방에 맞선 투쟁이 ‘자유무역 반대’라는 퇴행적․국수적인 이미지로 매도되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놓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WTO 협상의 본질과 목표가 자유무역을 강화하여 상호보완적인 지구촌 경제체제를 수립하려는 방향이 결코 아니라, 전세계의 단일시장화와 그것을 지배하는 금융의 주도권의 무한확장이라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것이 경제위기와 무한전쟁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질서를 유지․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향후 세계사회운동의 핵심과제가 미국과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군사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7.21 "우리는 왜 반WTO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가?" 워크샵에서 쓰였던 파워포인트 자료입니다. -WTO의 역사와 현재, -도하개발의제의 내용, -우리의 입장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육용 자료집,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각 단위에서 교육용 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대안세계화 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세계화로 인하여 오히려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하고 있는가? ‘반세계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운동이 바로 우리의 관심사다. 반세계화 운동은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관한 국가(․당)들의 무기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민들의 자율적인 운동의 출현을 의미하는가? 나아가 반세계화 운동은 기존의 운동들(동방의 국가들과 서방의 당들의 사회주의를 포함하여)이 제기하거나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무엇이었는가를 사회운동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날 세계사회포럼 내외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토론은 이 문제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다 1. 세계사회포럼의 출발점 세계사회포럼의 출발점은 남미와 유럽의 사회운동, NGO, 지식인 그룹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참가가 대중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포럼의 프로세스가 확대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미에서의 새로운 세대 대중운동의 형성과 유럽의 다양한 정치 분파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남미의 새로운 세대 대중운동은 남미 전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농민(․인디오) 운동의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남미의 농민(․인디오) 운동은 일차적으로 ‘토지(농지)’의 문제로부터 출발했지만, 그것이 사회운동으로 확산되면서 FTAA(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 창설, 외채, 자연자원의 사유화와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정책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복합적인 문제들이 극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남미의 농민․인디오 운동은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인민의 자율적인 운동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유럽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당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새롭게 재건하려는 오랜 기간의 모색이 있었다. 그 중 일부의 경향은 세계화를 비판하는 사회운동들의 활성화에 전략적 가치를 부여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확산에 힘을 쏟았다. ‘반세계화’로 모인 사회운동 경향의 형성이 세계적, 지역적 차원에서 사회적 갈등을 재 활성화함으로써 ‘정치의 부활’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미 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미국식 모델을 무력하게 추종하며 정당성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특히 ‘유권자’들이 부정적․소극적 수동성), 기성 ‘좌파’ 정당과의 ‘공동집권’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의 과제며, 오히려 사회운동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노동자운동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한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반세계화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의 확산의 주축이 되었던 운동, 세력은 기존의 각 지역-국가들의 주류 운동과는 출발점의 위치가 달랐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첫 번째 세계사회포럼부터 주류 노동운동의 참여는 저조했다. 라틴 아메리카 노동운동 조직의 참여가 미진했고,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노동조합총연맹(CGIL)을 제외하곤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1990년대 초반까지 주류의 위치를 차지했던 운동은 어떤 곤경에 처해 있던 것인가? 남미의 상황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자. 2. 1990년대 남미의 정당: 상파울루 포럼 1990년 7월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초청으로 모인 남미 48개의 정당, 전선체의 대표들이 상파울루 포럼(Sao Paulo Forum)을 설립한다.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엘살바도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멕시코 ‘민주혁명당’, 우루과이 ‘확대전선’, 볼리비아 ‘자유볼리바르운동’, 페루 통일좌파, 아이티 라발라스운동, 쿠바 공산당 등 남미의 주요한 정당, 전선체들을 총망라한 것이었다. 특히 상파울루 포럼의 두 날개는 게릴라조직에서 정치정당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는 조직과, 남미의 ‘떠오르는 별’로 각광을 받던 브라질 노동자당이었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 파라분도 마트리 민족해방전선 등은 게릴라 투쟁의 시기를 지나 ‘평화협상’의 단계를 거쳐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의 시기 동안 합법적인 정당으로 전환했고, 브라질 노동자당은 사회운동(전투적 노동조합운동, 기초공동체 운동)의 성장을 기반으로 해 선거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상파울루 포럼의 창립자들은, 포럼의 특별한 의미는 무장투쟁에 개입했던 세력들과 선거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정치적 토론을 교환하고, 서구의 좌파들이 소홀히 다루던 남반부의 고유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당시의 시점은 소련과 동유럽이 사회주의 블록이 동반 붕괴하는 때였고, 이는 상파울루 포럼의 노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참가 조직들의 노선의 대체적인 경향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였다. 먼저, “민주주의 없이 혁명 없다”는 구호에서 드러나듯이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와 특히 조직생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였다. 둘째, 따라서 정치-사회적 다원주의, 선거를 통한 경쟁을 표방했다. 셋째, 무장투쟁 물신주의를 거부했다. 대체로 1980년대 무장투쟁을 전개해온 그룹은 무장투쟁의 역할을 ‘공개영역으로 투쟁의 이전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재조정하였다. 넷째, 이데올로기적 대립보다는 구체적인 정책과 목표의 형성을 과제로 설정했다. 다섯째, 노동자, 농민을 넘어서 민중 다수를 결합하는 다계급적, 민족적 강령을 구성해야한가고 주장했다. 여섯째, 전위주의와 수직주의의 종식을 표방했다, 즉 혁명조직의 역할은 다양한 부문들과 세력들의 활동이 접합되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 노동자당은 노동조합을 포함한 모든 사회운동의 자율성이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채택했고, 엘살바도르 파라분도 마트리 민족해방전선은 “새로운 다원주의적 상황에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운동들에 의해 공유되는 광범위한 지도 부위라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는 일종의 집합 전위 또는 공동 전위(collective or shared vanguard)를 의미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포럼의 노선은 1990년대 초반 선거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보였고, 브라질, 우루과이, 엘살바도르는 그 주역으로 여겨졌다. 우루과이의 확대전선은 1990년 몬테비데오의 시장직을 획득했고, 1989년 파라과이는 "만인을 위한 아순시온" 연합이 수도의 시정부를 장악했다. 1990년 아이티에서는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특히 브라질의 노동자당의 성공 사례가 돋보였다. 이처럼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1993-96년 사이 각 나라의 주요 선거 일정이 다가오면서, 포럼의 활동은 대안 강령 특히 경제부문 강령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논의가 처음 제안될 당시의 대안강령의 대략적 윤곽을 보면, ‘혼합경제’와 ‘라틴아메리카 경제통합’이었다. 즉 생산수단의 국유화 대신에 소유와 부의 민주화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는데, 국유, 사유, 혼합소유, 협동조합 소유 등 연합적 생산형태와 생산자들의 연대를 실현하고, 국가는 투자, 축적, 분배의 조절을 돕고 농업개혁을 포함하여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중소기업의 장려를 통해 국내시장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나라에서 이러한 강령이 성공을 거두는 게 라틴 아메리카의 협력과 통합을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진행될수록 상파울루 포럼은 점차 두 개의 주요 경향으로 나누어졌다. 한편으로는 ‘현실주의적’ 활동을 주장하면서 세계화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을 개혁의 수준에 제한하는 경향(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수용, 세계은행과의 지원 협상)과 제도정치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지향과 계급적 자주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었다. 따라서 포럼은 합의에 기반 하여 결의문을 통과시키는 게 점점 어려워졌고, 거대 정당들로 구성된 작업반에서 다듬어진 문건들은 매우 추상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국부에 대한 사회화와 통제, 외국인 투자, 거시경제 안정성, 각국 통화 및 경제 균형의 강화와 같은 문제에 관한 정책에 관한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 따라서 포럼의 활기는 감소하고, 공동의 "대안강령"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의 수렴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미 정당들의 신자유주의로의 수렴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안강령의 형성이 실패한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대중운동으로부터 독자화(분리)된 ‘정치계급’의 운동이 실패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정치정당과 대중적 토대의 부적응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정치계급’은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권력의 보전과 사회경제적 ‘현상유지’를 위한 실용적 방편을 찾는 방향으로 쉽게 경도된다. 그들은 자신이 ‘혁명적’인 정당이며 따라서 안전판이 될 수 있다고 부당하게 전제하면서, 국제금융기구와 초민족 자본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하는 것을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또한 대안강령의 실패는 사회변혁에 관한 경험주의적 접근, 즉 사회모델의 이론적 구성과 적용이라는 기존의 접근 방식을 되풀이한 결과일 수 있다. 정당의 엘리트들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모델은 ‘사회운동의 자율적 요구와 상호조정’을 참조하기보다는, 선거승리를 위한 캠페인 기술과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정치계급의 독자화와 사회변화에 관한 경험주의적 접근은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강화될수록 정치정당과 사회운동의 결합은 더욱 곤란해졌다. 정당의 정치적 활동은 감소하고 제도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당 활동가들의 활동도 선거일로 좁혀져서, 선거홍보를 위한 여러 사소한 행동으로 축소된다. 정당이 선거에 관해 부르주아와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고(심지어 ‘개인숭배’를 자극), 당의 재정과 활동이 정부기구, 의회, 지방정부, 선거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간부에게 의존하면서 활동가들의 역할이 모호해진다. 둘째, 정치정당은 새로운 사회 주체의 잠재력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폐쇄적인 이념적 틀을 고수하고, 사회운동에 대해 권위주의적 스타일로 접근한다. 그러나 사회운동들은 ‘지도를 받는 것’을 어색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화제에 민감하다. 사회운동들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어야하며, 또한 한정된 다수가 소수에게 의지를 관철시키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회운동이 요구하는 방식은 대개 좌파운동 조직과 당들을 괴롭혀온 비참한 내부적 분열을 막고 중대한 오류를 피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적 차원의 구조적 조건이 어느 곳에서도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파울루 포럼을 구성했던 정당, 전선체들이 생각했던 운동의 노선은 각 민족국가들의 발전과 주권의 재건, 그것의 합으로서 라틴아메리카의 변화였다. 그러나 이미 상파울루 포럼이 창설된 시점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와 함께, 세계자본주의 체계로부터 민족적 ‘이탈’(분리) 전략은 그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진 때였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운동에 대한 선차적 폭력(예컨대 미국의 ‘저강도전쟁’의 압력)은 항상 실존을 위협하는 요인이었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상파울루 포럼은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내적이며 외적인 요인을 동시에 전진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현상유지와 방어를 위해 10 여 년 간의 시간을 단지 ‘인내’한 것이었다. 3. ‘반세계화운동’(대안세계화운동)과 세계사회포럼 1990년대 세계화의 제도적 실행은 ‘워싱턴 컨센서스’와 IMF와 세계은행, WTO와 같은 국제 금융, 무역기구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1980년대 이후 세계 각 지역에서 외채․금융위기가 발생했지만, 이는 더욱 정교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프로그램을 낳았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고, 금융위기는 세계 각 지역으로 감염되거나, 재발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의 성장기(곧 민족국가간 체계의 성립기)와는 극히 이질적인 현상이었다. IMF/세계은행이 주도하는 ‘외채위기 관리’(즉 경제구조조정)와 WTO와 자유무역지대의 출범이 재촉한 ‘무역, 투자의 자유화’는 세계의 운동들이 직면한 중대한 이슈의 출현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주변부 지역은 ‘투자자유화’와 ‘자본도피’라는 양날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초민족 기업은 활동 범위가 확대되면서 ‘지식에 대한 소유권’, ‘생명,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확대, 보장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주변부 인민의 빈곤과 무권리 상태와 날카롭게 대비되었다. 또한 구조조정의 효과가 여성에게 집중되고(빈곤) 이에 수반하는 성의 상품화(성매매)는 확산되었다. 시민권의 제한, 노동권의 축소, (교육․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는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사회운동이 양자가 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화에 대한 양자의 입장이 처음으로 표출된 계기는 1999년 WTO 3차 각료회의가 열린 시애틀에서 벌어진 투쟁에서였다. 시애틀 투쟁은 실제로 회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이후 그와 유사하게 신자유주의 의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제금융기관의 회의나 선진국 정상회의 등 정부간 회의에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시위들이 계속 벌어졌다. 바로 이 시위에 ‘반세계화’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투쟁이 막 벌어질 때만 하더라도, WTO에 반대한다는 측면에서 운동들이 서로 비슷해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이유는 각자 틀렸다. 주변부 국가는 ‘미국화’(Americanization)로부터 자기 민족에게 고유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담론이었다면, 미국에서는 (특히 노동운동은) ‘보호주의’(protectionist)의 목소리가 매우 컸다. 단적으로 "멕시코나 중국이 일자리를 훔쳐가고, 환경기준을 하락시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시애틀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미국노총(AFL-CIO)에게는 중국의 WTO 가입 반대가 중대한 동기였다. 미국노총이 내세운 주장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면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제공을 통해 중국의 엘리트들이 대중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중국의 WTO 가입을 반대하는(곧 배제하려는) 담론은 사실상 국수주의-보호무역주의(그리고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인식의 차이가 유지된다면, 공동의 운동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시애틀투쟁 이후 벌어진 일련의 ‘반세계화’ 시위와 회의들은, 그 과정에서 제기된 이슈와 대안들을 토론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을 낳았다. 하지만 세계사회포럼은 참여자들의 구성, 조직화 방식과 형태, 주요 이슈라는 모든 측면에서 그 이전의 유사한 국제적 조직들과는 다른 특징을 포함하였다. 구성을 보면, 그 이전시기에 출현했던 모든 유형의 운동들이 참여했고, 지방-지역-민족-초민족적 형태로 조직된 집단들도 포함되었다. 형태상 특이한 점은 총괄적인 상부구조를 만들지 않고, 활동을 전개해 나가려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과 북의 운동이 사회포럼을 통해 결합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이다. 반세계화 시위에 참여한 운동들과 그들이 제시한 이슈의 다양성만큼 포럼이 다루는 주제는 광범위하였다. 첫 번째 세계사회포럼(2001년)을 준비하였던 조직위원회가 제시한 주제는 ①부의 생산과 사회의 재생산, ②부에 대한 접근과 지속성, ③시민사회와 공적 영역, ④새로운 사회의 정치권력 윤리 등이었다. 하지만 세계사회포럼의 주요 화제는 무엇보다도 WTO, 외채지불, 금융통제와 같이 반세계화운동과 함께 제기된 문제와 ‘토지개혁’, ‘FTAA 가입’ 등 남미의 현안 이슈였다. 세계사회포럼에서 주요한 화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포럼을 주도했던 일부 단체들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던 <호소문>을 살펴보는 게 유용하다. ▪ 세계사회운동국제총회(네트워크)의 호소문 첫 번째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수많은 단체들 중 MST, CUT, CGIL, ATTAC, 세계여성행진, 포커스 온 글로벌 사우스(Focus on Global South), 쥬빌리2000 등 7개 단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기본 입장과 활동 목록을 마련하고자 <동원을 위한 호소문>(Call for Mobilization)을 작성하고, 그 초안을 검토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조직했다. 7개 단체 외에 세계 여러 단체들이 모인 총회는 두 번째 사회포럼에서도 2차 호소문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3차 호소문과 함께 ‘세계사회운동네크워크’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이 발효한 호소문은 운동의 일반적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포럼 참여자들의 거대한 다양성, 즉 참여자들 사이에 여성과 남성, 청년과 성인, 원주민과 농촌인과 도시인, 노동자와 실업자, 노숙자, 퇴직자, 학생, 이민자, 상이한 신조․피부색, 성적 지향의 차이가 있지만, 이 다양성이 운동의 힘이며 통일성의 토대다. 세계화가 강화하는 여성 차별적 가부장제, 인종차별, 종족학살, 생태파괴와 인민의 건강․생활조건 악화를 반대한다. 외채 ‘탕감’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사회-생태적 착취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금융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금융거래세를 도입하고, 조세피난처를 폐지해야한다. 자원과 공공재의 사유화, 노동기본권의 박탈, 자유무역과 FTAA 의한 농민-노동자-지방기업의 주변화를 반대하고, 민주적 토지개혁의 이루어져야 하며, 생명에 대한 특허권이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군비경쟁과 무기거래, 국내문제에 관한 외국의 군사개입을 반대한다 등등. 사회운동 총회의 호소문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조건 속에서 사회운동들이 ‘모든 인민들의 권리’(즉 인권이자 시민권)에 대한 요구들의 목록을 재 작성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가 ①상호배제적인 권리가 아니라 상호증식적/상호확장적 권리며, ②따라서 “보편화”(확장)될 수 있으며, ③인민들의 자율적인 운동을 통해 쟁취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사회운동의 (자율적이며, 보편적이며, 상호증식적인) 접합을 모색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구조나 제도의 변혁은 여전히 남는 문제이며, 그러한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과 토론은 자연스럽게 요청될 수밖에 없다. ▪ 경제적 제도적 변화를 위한 제안들 따라서 2002년 사회포럼에서는 여러 단체들이 경제․제도적 변화를 위한 그 이전보다 구체화된 제안들을 제출하였다. 반세계화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 주요한 견해들을 살펴보자. 1) 국제금융․무역기구의 전화: 적극적이거나 수동적인 방법들을 통해 WTO나 IMF/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를 a) 해체하거나 b) 중립화하거나(예를 들어 IMF를 자본 유입과 환율변화를 모니터링 하는 단순한 연구기관으로 전환), c)그들의 권력을 근본적으로 축소하고 국제기구나 합의, 지역적 그룹들이 감독하는 다른 행위자들의 결합으로 전환하자는 제안. 그 대안으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국제노동기구(ILO), 경제블록(메르코수르, SADCC, ASEAN 등)을 강화하고, 새로운 세계적-지역적 기구들을 창설할 것을 주장한다. 2) 금융거래과세: 민족적 정책수단, 국제적 회계 수단을 통해 민족국가로의 자본유입에 관한 통제를 회복하고 증진하자는 제안. 금융거래 기간에 반비례하는 과세율 부과하여 투기를 억제하며, 해외직접투자에 다양하게 과세하며, 초민족적 기업의 이윤에 과세하고, 모든 금융시장에 특정한 통제를 강화하고, “세금피난처”를 제거하고, 은행해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금융위기에 책임이 있는 사적인 행위자가 그 결과를 책임지게 하며, 국제금융기관(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3) 제3세계 외채탕감: 이는 제3세계 국가의 경제 구조의 형성을 위해 불가결한 요소라는 제안.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중단하고, 부분적으로 자기충족적인 탄탄한 내부적 경제적 기초의 구축하고(이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통합된 지역의 창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는 내생적 발전모델을 낳으며, 내부시장을 강화하고, 지역금융을 위한 지역의 저축기금을 창설할 수 있으며,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조세를 비롯한 장치를 마련할 수 있으며, 소농을 위한 토지개혁과 주택을 위한 도시개혁을 도입할 수 있다), 이에 기반한 무역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4) 농업개혁의 전환: 토지에 관한 권리는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누가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제안. 집단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 사이의 관계를 수정하고, 사회적인 토지관리 메커니즘을 개발할 것, 빈농/소농의 조직이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 지역적 능력을 발전시킬 것, 핵심 작물에 대한 관세보호를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5) 물의 상품화와 사유화에 대한 반대 (댐에 대한 반대) 6) 초민족기업에 대한 감시: <기업책임성에 관한 기본협정> 창설을 통해 초민족 기업에 관한 통제를 제안한다. 대안적이며, 소규모-지방적 기업의 연합을 통한 상품과 서비스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것을 주장한다. 물론 세계사회포럼에서의 이러한 제안들은 아직 추상적인 구호와 아이디어를 다소 구체화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들은 그것을 ‘어떻게’ 즉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나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남기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복합적인 논점을 낳고 있다. 4. 대안세계화운동의 쟁점 ▪ 혁명이냐 개량이냐? 방금 지적한 바와 같이, ‘반세계화’(대안세계화)를 위한 요구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그 방식의 문제를 두고 세계사회포럼의 참가 그룹들이 ‘개량주의’와 ‘급진주의’가 양극화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포럼의 한 축인 개량주의자들은 ‘세계화의 인간화’라는 약속을 보증 받기 위해 세계은행이나 다른 국제금융기관에 대한 로비나 협상에 주력하고 있고, 다른 한 축인 급진주의자들은 ‘개량’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국주의나 그 ‘보호국’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지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경제․제도적 변화를 위한 제안들 자체를 기존의 “개량주의”라는 잣대로 판별할 수 있느냐는 점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제안들이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려면, 역으로 무엇이 혁명적인가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제안들의 특징은 ‘민족적 이탈’ 전략과도 분명히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다. 오히려 제안들은 세계적 수준의 전략과 지방적 전략, 그리고 지역적 전략의 요소들을 포괄하여 세계자본주의 체계의 외부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의 사회 변혁의 계기들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주의 국가, 당들의 전략―민족적 이탈, 사회모델의 적용, 정당과 정치혁명 등 혁명에 관한 통념을 형성했던―과 차별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요구를 그 기준으로 “개량주의인가 아닌가”라는 기준으로 쉽게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개량주의’라는 비판에서 제대로 읽어야 할 대목은 있는데, 그 요구를 펼치는 운동이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 가라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즉 그러한 운동이 국제적․국가별 코포라티즘적인 운동 노선에 의존하고 있는 가라는 문제다. 대중운동은 종종 자기 방어적인 운동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개량주의/혁명주의라는 잣대로 일반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운동이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에 집착하는가 또는 보편적 인민의 사회적 요구에 입각한 것인가 따라서 “계급 형성적인 운동인가”라는 평가는 항상 가능한데, 이는 코포라티즘의 문제인 것이다. ▪ 정당(정파성)인가 사회운동인가? 또 한편으로는 세계사회포럼을 NGO가 주도하면서 포럼이 배제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들은 “시민사회”를 강조하며, 세계사회포럼에 정당과 정부의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활동을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국한하면서, 국가에 대해서는 고작 자유주의 틀 내의 비판에 머물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NGO들은 국가, 정부, 의회, 정당에 대해서는 ‘거부’의 태도를 보이면서도, 세계은행이나 초민족 기업과는 협력관계를 맺거나 경제지원을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주로 수행함으로써 사실은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처럼 NGO 운동이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한 위기관리체계의 일원으로 기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이 가능한 문제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정당에 대해 자율성을 형성하는 문제는 별도의 문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오늘날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정당의 분열’을 반영하여 대립하는 상황이 오히려 운동의 공동의 지반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선거정치를 매개로 하는 정당들의 대립은 분명한 노선의 차이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종종 이데올로기적 선전의 수사나 이미지에 기댄 것이며, 또한 선거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운동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분할’하려는 경향을 낳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은 사회운동의 주도성을 강화하면서, 운동의 전진을 위한 공동의 지반을 창설하는 게 적합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 새로운 국제주의인가? 근대 이후 역사적 운동들에서 국제주의는 항상 존재해왔고 운동의 노선에 스며있던 이념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세계시민’의 형성(코스모폴리탄주의)을 예상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체계는 노동자와 여성의 시민권을 배제하였고, 특히 세계자본주의의 민족적 분할(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은 광대한 시민-이하의 인구를 창조했다. 따라서 국제주의의 이념은 일차적으로는 ‘민족주의’에 관해서 정의되었고(물론 그것의 완전한 ‘거부’인지 완전한 ‘실현’인지는 모호했다), 노동자운동의 국제주의,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가리켰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참여 문제를 놓고 노동자운동의 비극적 분열이 있었고, 이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이 민족국가의 체계에 (분할되어) 포섭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냉전과 양대 진영의 형성은 한편에서는 반공주의․코포라티즘적인 국제 노동운동의 포섭(․분할) 체계를, 다른 한편에서는 볼세비즘의 민주집중제(사실상 중앙집중제)를 모방하는 당의 국제주의와 그 위기(중소분쟁)를 낳았다. 또한 제3세계주의는 양대 진영의 경쟁에서 그 틈새를 찾아보려는 민족적 발전을 위한 대안전략으로 출발하였으나, 양대 진영의 압력 속에서 전망을 소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이후 국제주의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운동들의 출현은 오랜 기간 지체되어 있었던 셈이다. 하기에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동시대적인 조건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출현은 국제주의의 부활, 또는 그 이념과 운동을 다시 정의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가 토론의 쟁점이다. 먼저 세계사회포럼은 사회운동들의 고유성 또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운동들의 윤리(문화)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국가(․당)의 국제주의가 아니라 자율적인 사회운동들의 수평적 교통으로서의 국제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20세기의 여러 국제주의의 ‘변용’들과의 차별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국제주의 지향이 공동의 투쟁 속에서 우애를 고양하고, 공통의 이념을 발견하려는 과정 속에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주의의 형성 과정은 곧 인민들의 사회운동들의 공통의 이념과 윤리 양자 모두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대안세계화운동과 포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쟁점 외에도 수많은 토론의 과제가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구조와 형식, 주제를 어떻게 개선하여 사회운동의 이념과 활동계획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증진할 것인가의 문제는 최우선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포럼의 프로세스에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국제주의에 대한 일반적 지향 속에서도, 지역(예를 들어 아랍, 남미, 남아프리타, 동아시아, 유럽과 같이) 차원에서 그 지역의 고유한 사회적․문화적 문제들과 결부된 사회운동의 지향과 가치, 공동의 운동 노선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것 인가도 구체적으로 접근해야할 중대한 과제다.PSSP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쟁, 인종주의, 신분차별, 빈곤, 가부장제 그리고 모든 형태의 경제적, 종족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성/젠더 차별과 배제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회운동들이다. 우리는 사회정의, 시민권, 참여 민주주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싸우며, 인민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위해 싸운다... 우리는 사회적이며 가부장적인 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여성들과 연대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가부장제에 반대하여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평등을 위해 싸우는 3․8 세계여성의 날에 함께 하고자 한다.” - 사회운동국제총회, <세계사회포럼 3차 호소문> 중에서 “포르투알레그레에서 끝난 3차 세계사회포럼은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여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우선시하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여 평화를 건설하는 저항과 대안을 일상 속에서 창조하려는 우리의 결의를 강화한다. 또한 우리는 포르투알레그레에 참가한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신한다. 이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은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이 네트워크가 평등을 위한 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사회운동들 전체가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고, ‘또 다른 세계’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함―이는 새로운 종류의 행동을 발명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이 소멸하는 발본적 유토피아를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세계여성행진, <2003 세계사회포럼: 여성의 관점에서 본 평가> 중에서 인용한 세계사회포럼의 호소문과 세계여성행진의 평가서는 오늘날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사회운동의 흐름과 여성운동, 페미니즘 양자가 상호존중하며 함께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수많은 조직들이 함께 검토하는 호소문은 운동의 일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호소문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착취에 맞서 투쟁하고 연대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사회운동들이 여성의 해방을 향한 길이 자신들의 방향성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계여성행진의 평가서는 여성운동이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전반적인 사회운동들과 함께 가는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여성행진은 세계사회포럼을 그 출발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결합해왔으며, 이제 새롭게 형성된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에도 기꺼이 참가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이 새로운 네트워크가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회운동 전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양자의 결합과 상호존중, 상호확장이 양자 모두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따라서 양자 모두가 개조되고 전화될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들은 아직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향후 전망이 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선 여성운동이 스스로 결집하여,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세계여성행진은 단일한 이념과 전략을 가진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는 여성들이 결집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집은 아직은 정식화되지 않았으나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성이 겪는 빈곤과 성적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성의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운동과 결합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의미는 이들이 여타의 사회운동들과의 연대와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떤 운동들보다 적극적으로 반세계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1차 세계사회포럼에서 <동원을 위한 호소문(Call for Mobilization)>을 작성하기 위해 모였던 최초의 7개의 조직들 중 하나는 세계여성행진이었다. 이후 3차까지 발표된 호소문은 계속해서 다양한 운동들이 함께 나아가야 하는 운동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지시하고 있다. 여성들의 운동은 이 속에 여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의미를 포함시키고, 자신들의 투쟁에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모색하는 전반적인 전망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의 의미는 세계여성행진으로 표상되는 여성들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쟁점을 제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운동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던가를 드러내줄 수 있다. ‘계급의 문제가 먼저냐, 여성의 문제가 우선이냐’라는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양자에게 결국은 불가능한 구도를 넘어서 진정 또 다른 세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여성행진 세계여성행진의 출발은 95년 UN의 북경여성대회에서 퀘백여성연맹이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국제적인 여성행진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제안은 1998년 <여성의 세계적 요구들을 위한 지침서(이하 지침서)>라는 요구 강령을 작성하는 과정을 거쳐 2000년 세계여성행진을 조직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퀘백여성연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세계여성행진이 조직되는 과정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생존의 위협이라는 정세적인 조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즉, 1980년대 외채위기 이후 더욱 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들의 투쟁과 운동의 존재라는 조건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또한 기존의 통념에서 주류라고 볼 수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현실의 여성운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지침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요구강령에 레즈비언의 권리를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조건을 잘 보여준다. 많은 여성운동 조직들이 이 강령이 아메리카와 유럽 이외 지역의 여성 조직들의 참여를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 우려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명확히 여성들의 의제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접근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세계여성행진은 전 세계 여성운동들이 보편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 요구 강령을 작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세계여성행진에는 161개의 국가와 지역의 6000개 이상의 조직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의 요구 강령은 자본의 위기극복 전략인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로서 여성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시에 제기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여성의 의제 : 빈곤, 성적 폭력, 전쟁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크게는 두 가지 과제를 내세웠다.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것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제가 실현되기 위해서 17가지의 요구안을 내고 있다. 이 과제와 요구는 여성들만의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인 것이고, 여성들 내부의 다양한 편차와 분할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가지고 세계의 사회운동과 연대하려는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가 따로 분리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뿌리깊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여성의 문제로서 빈곤과 폭력의 설정은 결국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의 투쟁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문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고민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빈곤 여성들은 지표에서도 현실에서도 남성들보다 가난하다. 물론 대다수의 민중들은 언제나 빈곤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여성들은 빈곤의 최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루에 고작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야 하는 전세계 45억 인구의 70%가 여성과 아동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전 세계의 토지 중 단 1%만, 세계전체 소득의 10%만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의 이등 시민이라는 지위 때문이다. 그녀들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실제 아직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은 토지를 소유할 권리와 재산을 소유할 어떤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노동은 비가시적이다. 실제 여성들은 세계 공식 노동의 1/3을 차지하고, 비공식 부문의 4/5에 달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국가의 부를 계산하는 어떤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고, 무임으로 여성에게 의존한다.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가사노동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저임금을 할당하는 논리가 된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약 10억의 세계 문맹 인구 중 2/3이 여성인데, 이것은 여성이 자신의 생계나 발전을 위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런 여성들이 겪는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세계화가 촉진하는 자유무역지대,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것들은 민중들의 삶에 가혹하다. 노동권은 무시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횡행한다. 남반구에 들어선 수많은 자유무역지대는 원주민의 터전을 빼앗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했으며, 환경을 파괴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에게 특히 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은 여성에게 더욱 불리했다. 민영화, 탈규제화 조치는 여성에게 더욱 커다란 재생산 노동의 부담을 지웠다. 교육과 의료 등 각종 사회적 재생산 영역들이 사유화되면서 가난한 민중들의 재생산 노동은 가족 내로 집중되고 이것은 여성의 일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게다가 민중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고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했다. 빈곤은 여성들에게 특히 더 고통스럽다. 이중의 부담과 빈곤으로 인한 성매매로의 유입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빈곤하다는 말은 이제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빈곤의 여성화란 말이 말해주듯이 여성이 처한 빈곤의 현실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의 빈곤 자체를 제거해나가기 위한 투쟁과 그 속에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위협받는 것에 대한 투쟁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여성이 가족과 여러 공동체 내에서 겪게되는 육체적․성적․심리적 폭력을 말한다. 가정폭력(아내구타, 성적 학대, 여아에 대한 차별적인 관행 등)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 강간을 비롯한 다양한 성폭력, 공적인 작업장에서의 성희롱, 성매매, 전쟁에서의 여성 살해, 집단 강간 등이 포함된다. 사실 이런 폭력에 대한 수치는 점점 더 비극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 하에서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남녀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위치에서 기인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금융세계화에서 자금회전이 빠르고 손쉽고, 단기에 이익을 낼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런 서비스 산업의 중심적인 부분은 성산업이다. 현재 성산업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시대 고소득을 낼 수 있다는 문화산업의 경우 여성들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훼손당한다. 그리고 빈곤의 문제와 더불어 성의 상품화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비롯한 자신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를 통한 경제활동에 유입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빈곤의 문제와는 약간 다르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요구들에 대해서는 세계여성행진 내부의 단체들 간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레즈비언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도 그렇고,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도 그렇다. 지금 당장 성매매를 폐지시키자는 의견과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조건 속에서 성매매를 탈범죄화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투쟁이 여성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임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재생산에 대한 권리,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권리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체 사회와 어떠한 관계 속에 위치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 전쟁 여성에 대한 폭력 중 특수하고도 극단적인 형태 중의 하나는 전쟁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이다. 그렇지만 전쟁은 더 이상 이례적인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국지전이나 내전의 형태로. 그리고 9.11 테러 이후 확산된 예방전쟁의 개념은 전쟁의 위험성을 더욱 일상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전쟁들은 종종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무기로 그리고 전략으로 행사한다. 특히 금융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드러나는 다양한 갈등과 불만을 관리하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은 종종 한 인종(혹은 민족)의 배제와 절멸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 여성학살은 인종의 절멸의 핵심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여성학살의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강간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쟁의 목적이자 수단이 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이러한 폭력은 여성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인식하고,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평화라는 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제거하고, 해방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여성의 의제가 된다. 세계여성행진은 전쟁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반대해야 함을 역설하며 여성운동이 반전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결의하는 <반전선언문>을 발표했다. 여성운동과 반전투쟁의 매개고리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안세계화 운동과 여성운동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며, 그들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서, 실업자이자 여성으로서, 농민이자 여성으로서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미 여성들의 투쟁과 여성들의 문제는 반세계화 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사실 1980년대 이래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온 인민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원주민으로서, 실업자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그것이 여성들의 운동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성운동의 성공이 없이 대안세계화 운동이 성공할 수 없고, 대안세계화 운동의 성공 없이 여성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고. 양자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는 양자 모두가 상호작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양자 모두가 고려해야 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 우선 여성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문제가 세계사회포럼의 장기적인 전망 속에 결합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물론 세계사회포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략이나 강령을 만들어가려는 단위가 아니고, 다양성의 존중을 무엇보다 우선시 한다. 그렇지만 <호소문>과 같이 일반적인 방향성을 지시하려는 시도가 포럼에 참가한 많은 단체들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의 의제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고, 참여한 단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소통하고 확장해야 한다. 단지 정치적인 용인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패널토론과 같이 조직위원회가 준비하는 행사에 남녀동수 패널의 원칙을 고수하자와 같은 토론과 논의의 원칙을 수립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여성행진이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심으로 여성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된 여성의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통해 여성운동들 사이의 연대와 결집, 그리고 여타의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확장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세계여성행진의 활동과 그 방향성은 이에 부합되었다. 여러 지역과 국가로 분포되어있는 여성운동의 그룹과 조직들과의 논의와 소통을 더욱 활발히 하고, 그에 기반을 둔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는 일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운동네트워크, 세계사회포럼에서의 역할과 발언을 더욱 높여가야 하는 과제도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2005년 10월, 거대한 세계 여성들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이 위의 두 과제가 달성되고 실현되는 과정과 맞물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여성헌장>이 세계사회운동들의 헌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여성들을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주체로 인식하고, 대안세계화 운동 자체가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인식할 수 있는 전화의 과정과 맞물릴 때 가능해질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