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캄페시나를 중심으로 오늘날 농민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타결로 농산물 관세 및 농업에 대한 각종 보조금을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농업협상이 WTO내에서 다루어지게 됨에 따라 초국적 농업기업의 전 세계 민중들의 식량에 대한 통제권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현재 세계 농산물 시장 90%을 10개의 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 기업들은 종자나 생명공학 분야, 농약 및 비료 등을 생산하는 농화학 분야, 식품 가공 및 유통분야 등 농업 및 식량과 관련된 모든 분야들을 통제해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종자를 채취하고 보관하는 과정이 농민들의 손을 떠나도록 했으며,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개발하고 여러 세대를 거쳐 보존해 왔던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권리는 '특허'를 통해 초국적 기업으로 이전되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각 국 정부로 하여금 긴축재정 정책을 시행하도록 해, 토지를 수용하는 데 쓰일 예산은 삭감되어 토지개혁이 이행되지 않음에 따라 토지는 농민들과 점점 멀어지고 초국적 기업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식량을 자급자족하던 나라들은 이제 식량을 초국적 기업들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농민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거나, 값싼 임금에 이 기업들에 고용되어 착취당하고 있다. WTO, IMF, 세계은행 등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은 농산물이 거래되는 총 가치가 지난 20년 전에 비해 3배나 증가하고 생산성도 2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식량생산을 담당하는 농민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모순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농민운동은 색다른 투쟁방식과 다양한 의제를 제출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날에 시작된 멕시코 치아빠스 주의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의 무장봉기, 토지개혁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정부에 항의하며 버려진 땅을 점거하여 경작하는 브라질 무토지농민운동(MST), 프랑스 농민 조제 보베의 맥도날드 타격투쟁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을 비롯한 각 국의 농민운동이 제기하는 이슈는 농산물 가격 보장, 혹은 농업보조금 유지와 같은 농업보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토지와 종자 등 자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지식과 기술에 대한 민중들의 통제권, 재생산에 관한 여성들의 권리, 토지개혁, 의료와 교육에 대한 민중들의 접근권, 생명의 종 다양성 보존 등 불평등과 빈곤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원칙과 아이디어들을 제출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의 내용을 풍부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농민운동은 ‘비아 캄페시나’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연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비아 캄페시나는 WTO, IMF 등의 기구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3차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한 ‘세계사회운동 총회’를 조직하고 ‘사회운동 호소문’을 작성하는 과정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비아 캄페시나와 이를 구성하는 각 국의 농민운동의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을 통해 제출되는 대안세계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해 볼 것이다. 비아 캄페시나의 개요 ‘투쟁을 세계화하고 희망을 세계화하자’는 기치를 내건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 캄페시나는 각 국의 중소규모 생산자, 농업노동자, 농촌여성, 원주민공동체 조직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 유럽, 동남․동아시아, 남부아시아, 북미, 중미, 남미의 총 7개 지역에 지역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활동은 이 지역사무국을 거점으로 진행된다. 국제적인 규모의 사업은 국제조정위원회(ICC)를 통해 결정하고 추진되며, 이를 관장하는 사무국을 온두라스에 두고 있다. 현재까지 총 4차의 총회를 개최하여 ‘토지개혁’, ‘식량주권과 무역’, ‘인권’, ‘젠더’, ‘생명다양성과 유전 자원’, ‘대안적 농업 모델’의 6가지 주요 의제를 채택했다. 모든 참가단체들은 지역별 네트워크와는 별도로 각각의 의제에 관한 분석과 행동 계획을 수립하는 의제별 소위원회에 결합해서 활동을 한다. 매년 4월 17일 국제농민의 날이면 지구적 차원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이러한 활동의 성과로, 올 초 3회 세계사회포럼이 열리기 직전 1월 23~25일에는 세계 농민 총회(peasants' World Assembly)를 개최하여 토지개혁, 식량주권, 종다양성과 환경, 유전자조작식품 거부, 물, 전통적인 종자에 관한 농민들의 권리, 농업과 무역 정책 등에 관한 입장을 토론했다. 농민들을 실업과 빈곤의 상태로 내몰고 있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토지, 물, 천연자원 사유화, 원주민과 흑인 가족들에 대한 강제 이주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산물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러한 정책은 군사화와 결합하여, 민중들은 콜롬비아, 팔레스틴, 이라크에서와 같은 ‘마약과 테러와의 싸움’이라는 명분의 전쟁에 노출되어 있고, 미국정부 이러한 테러 행위는 수천의 민중들을 죽음과 무장해제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 및 전쟁에 대한 반대, WTO 협상에서의 농업 제외를 천명하였으며, 각국 정부에 현재 투옥중인 농민운동 활동가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 대륙내 농민운동간의 연계를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뿐만 아니라, 각 국의 활동가들이 각자의 투쟁 경험을 교류하고 서로를 교육, 훈련할 수 있는 국제 학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에서는 비아캄페시나가 주요한 의제들에 관하여 어떠한 형태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지를 다루도록 한다. MST의 토지점거운동과 토지개혁 주변부의 대부분 국가에서 토지개혁이 시행되지 않았고, 여전히 토지를 둘러싼 심각한 문제들이 지속되고 있다. 많은 토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고 이는 착취와 이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경작 가능한 토지를 사들여 별장과 레저시설을 짓는데 이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농촌 거주자들은 빈곤과 불평등,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긴축재정, 국가보조금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토지개혁의 가능성을 더욱 봉쇄하며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비아캄페시나는 각 국 정부에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토지의 사회적 소유라는 원칙에 근거하여, 농민들이 자신의 생존과 사회적 이익을 위해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있으며, 기업들이 대량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토지개혁은 토지의 재분배와 함께, 농산물 가격 유지에 유리하고, 생산수단과 무역에 관한 통제권의 민주화를 보장하는 정책과 동반되어야 하며, 가족농과 협동조합을 활성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토지개혁의 과정은 농민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토지개혁 운동의 주요한 전략으로 꼽히는 것은 브라질 무토지 농민운동(MST)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토지검거 운동이다. 브라질은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경작지의 90%를 독점하고 있고, 최빈층 40%는 경작지의 단 1%만 소유할 정도로 토지에 대한 불평등이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MST는 토지개혁을 무토지 농민 가족들을 시장과 거리가 멀고, 황폐하며 말라리아에 감염의 위험이 높은 국경 지방에 강제 정착시키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카르도수 정권을 약화시키는 투쟁을 전개한 핵심세력이었다. 카르도수 정권의 신자유주의 전략의 핵심적인 요소였던 ‘농업현대화’ 정책은 농기업 혹은 대규모 수출기반 농장을 보조하고 장려하는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다수의 소규모 농업생산자 혹은 농촌 노동자들은 강제로 이주되었다. 이러한 카르도수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서 도시에서는 CUT 등 노동조합과 PT, 브라질 공산당 등의 산발적인 저항만 있었지만, 농촌에서는 대대적인 투쟁이 조직되었다. MST는 소유주는 있으나 경작되지 않고 버려져있는 토지를 점거하고, 이를 정부가 수용하여 점거자들에게 경작할 권리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토지 점거에 들어가기 전 정부 소유임이 확실한 토지에 임시 정착촌을 형성하여 본격적인 점거를 예비하는 교육훈련을 실시한다. 이러한 임시 정착촌과 경작권이 인정된 정착촌에서 이들은 공동 부엌을 조직하고 아이들을 교육할 학교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여 공동체적인 생활을 꾸려나간다. 각자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 중 절반은 공동 부엌 등을 운영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개별 가계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이들은 100만명의 농민들을 정착시켰고 치열한 투지개혁을 브라질의 핵심적인 정치적 의제로 부상시켰다. 농민운동과 여성의 권리 비아 캄페시나는 ‘젠더’에 관한 분석과 여성 농민의 권리 쟁취를 핵심적인 의제로 삼고 있다. 이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재생산과 자연, 인간을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함에 따라 아이를 낳고, 식량을 재배하며 땅을 돌보는 일을 맞고 있는 여성농민들이 몇 배 더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다는 분석에 기반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생명-다양성을 지키고 강화하는 것을 책임져 온 여성들이 농촌 문화의 살아있는 심장이며,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회복을 포함하는 농촌의 진정한 발전은 여성들이 의식적이고 과감하게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 달려있다고 인식한다. 이에 따라 비아 캄페시나는 농민 조직들이 여성들의 참여를 넓히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구조를 갖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투쟁의 요구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 여성 농민의 상황을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토지에 대한 접근권, 종자를 채집하고 보존하는 여성들의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존중,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적․물리적 학대 등의 잔혹 행위 중단, 소녀들의 교육의 기회 확대, 농촌 여성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보장 및 강제 불임수술 반대, 분유 등 유아식의 상품화 반대 등을 투쟁과제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 계획으로, 비아캄페시나의 모든 참가 조직 내에서의 정책 결정이 젠더 평형(parity)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며, 모든 회의의 참석자들 중 50%를 여성으로 조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 밖에 여성 농민들 간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회합, 경험의 교류, 집단적 분석 등의 활동을 지속할 것, 여성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집중적인 훈련을 보장할 것 등을 행동 계획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아캄페시나가 제시하는 이러한 원칙은 산하의 참가 조직의 운영에도 반영이 되고 있다. 인도 남부지역의 카르타카나 주(州)의 농민운동조직인 KRRS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으며, 이에 문화적 차원의 변화도 포함시키고 있다.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고 인도의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를 철폐하는 것을 중요한 단계로 설정하였으며, 농민들이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하도록 하는 사치스러운 결혼제도를 철폐하고 ‘간소하고 자아를 존중하는 결혼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가부장제를 철폐를 강령에 포함시키며, 조직 내에 여성들을 위한 독자적인 구조와 프로그램을 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들은 자신의 요구를 내건 시위를 독자적으로 조직한다. 생태주의와 지식에 대한 권리 비아 캄페시나는 생명의 종 다양성 보존과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권리를 농민들의 권리에 포함시키고 있다. 생명의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민중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안전을 위해 중요하며, WTO가 추구하는 어떤 원칙보다도 식량안전의 권리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에 걸쳐 8억이 넘는 인구가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은 ‘인류의 식량에 대한 필요’라는 애초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식량이 생산되고 공급되는 시스템을 옹호하는 생물 종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한 종자가 그 지역 농민들의 손에 의해 보존될 수 있어야 하며, WTO지적재산권협정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는 ‘단종 종자의 개발’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전자조작식품은 생태와 인류의 건강에 무해하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요구는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와도 맞닿아 있다. 종자의 채집 보관, 식물의 사용(식량, 의학적 용도...)에 관한 민중들의 지식이 ‘특허’를 매개로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고, 그것을 보유한 민중들에 의해 직접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의 KRRS는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화학 및 자본 집약적인 농업을 확산시킨 소위 ‘녹색혁명 기술’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또한 ‘저항’과 ‘대안의 마련’이 따로 떨어져서 일어날 수 없다는 관점에 따라, 화학 농업과 생명공학을 거부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농업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 이들은 기술과 지식 수용 혹은 거부의 여부는 새로운 것인지, 오래된 것인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그것을 소유한 민중들에 의해 직접 작동되고 통제될 수 있는지의 여부, 노동집약적인지, 자본집약적인지, 혹은 그 밖의 정치적 기준에 따라 좌우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카르니카나 남부의 한 지역에 자체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 연구소를 세우고, 전통적인 종자의 다양성 보호센터, 전통 기술 센터, 전통 의약품 센터, 녹색 학교 등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마치며 비아 캄페시나를 중심으로 하는 농민운동은, 현재의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이 언론이 비난하듯이 ‘시대착오적인 쇄국주의’, '대안 없는 반대‘가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분쟁을 낳으며 자본의 위기를 지연시킬 뿐인 신자유주의에 맞서 그 대안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이들의 운동은 이러한 대안을 창출하는 과정에 여성들의 견해를 적극 반영하고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능동적으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 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 하다. <참조> 2003년 국제농민의날 투쟁현황 ․콜롬비아: 4월 6일~8일, 전국 농민 총회와 시위 ․브라질: 4월 10일부터 각 주(州) 수도를 향한 행진 시작, 무토지농민운동(MST)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토지점거 진행중 ․캐나다: 전국농민연맹,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밀 도입 거부 투쟁 진행 중. 17일, 수 천 명 농민이 초국적 농산물 기업인 아처다니엘스키드랜드 본부 앞 시위. ․칠래: “칠레 농촌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라는 구호 아래 4월 28일 대규모 농민투쟁 전개. ․콜롬비아: 4월 6일~8일, 전국 규모의 농민 투쟁 ․에콰도르: 전국소농총연맹, 4월 17일을 기점으로 “식량주권을 위한 전국 캠페인” 시작 ․엘살바도르: 4월 2일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대규모 시위 ․스페인: 4월 17일, 신자유주의 정책, 전쟁, 유전자 조작 식품 등의 사안에 반대하는 각종 시위 스페인 전역에서 벌어짐 ․온두라스: 4월 29일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 북미자유무역지대 및 전쟁 반대,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각종 시위 ․인도: 유전자 조작 식품, WTO 정책, 증가하는 농민부채, 농민들을 희생시키는 각종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시위 ․인도네시아: 4월 10일, 투옥중인 농민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캠페인. 농업악법 제정 저지를 위한 국회 앞 농성. ․이탈리아: WTO 반대, 종자, 농민 건강과 인권보호를 위한 농민총회 ․네덜란드: 농민운동, 소비자운동, 환경운동간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 ․스위스: 3월 중순부터 비아 캄페시나아 스위스 대학생들, 지역 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시위 진행. 3월 말 네슬레 등의 초국적 기업 본부 앞 시위, 3월 29일, WTO 농업위원회가 열리는 WTO 본부 앞에서 1만 여명 규모의 행진 ․미국: 멕시코의 “농촌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캠페인과 연계하여 공동행동 조직 ․레바논: 5천 여명의 시민․사회․농민단체들이 행진을 조직.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농민들에 대한 점령에 국제적으로 저항할 것을 호소, 레바논 정부에 서비스개방 중단, 농민 복지 요구.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세 차례 진행된 세계사회포럼이 이제 포르투알레그레를 떠나게 되었다. 물론 영구적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4차 세계사회포럼이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된 후, 2005년도 5차 포럼은 다시 포르투알레그레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에 어디에서 개최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세계사회포럼이 2004년에 인도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세계사회포럼, 나아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엄청난 확산과 국제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에 따른 진통도 겪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이에 따른 “성장통”은 지난 3차 세계사회포럼에서, 그리고 지난 6월에 개최된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났다. 2003년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미국 마이애미에서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회의가 50여 명의 국제위원회 위원과 주로 미국 활동가들인 50여명의 참관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는 세계사회포럼의 차기 개최지를 결정하고,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확산을 위한 노력과 방향 설정, 세계사회포럼의 전반적 운영 등의 역할을 맡고 있는 기구로, 비아깜페시나, 세계여성행진, 아탁 등 국제 사회운동 조직을 포함해 현재 113개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행동은 국제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졌을 때 가입했지만, 그 동안 참여하지 못했다가 이번 회의에 처음 참가했다. 이번 국제위원회는 정세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역동적인 시기에 개최되었다. 이라크 전쟁과 거센 전지구적 반전 투쟁이 있은 후이자 또 한 번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칸쿤 반WTO 투쟁 전에 열리는 회의였다. 게다가 세계사회포럼이 처음으로 브라질 밖에서 개최되기 전 마지막 회의이자 대륙별로 최소한 한 번씩의 사회포럼이 열리는 등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중에 개최되는 회의이기도 했다. 또한 국제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을 규정하는 내부규약(internal rules)을 제정하기 위한 지난 1년 동안의 노력이 어느 정도 수렴되어 가면서도 여전히 세계사회포럼의 체계와 운영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중에 열리는 회의였다. 반신자유주의․반전반제 투쟁과 세계사회포럼 이번 6월 회의는 최근 정세와 전세계 민중들의 저항, 그리고 그 속에서 세계사회포럼의 역할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되었다. 브라질 MST에서 온 한 활동가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플랜푸에블라파나마와 플랜콜롬비아를 통해 남미 자원에 대한 착취와 군사 지배를 한층 더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브라질 대통령으로 노동자당의 룰라가 당선되었고, 애초 룰라가 당선되는 데 큰 몫을 했던 MST는 룰라에 대한 실망을 나타냈다. 룰라가 자유당 출신 알렌카와 형성한 연합전선 그리고 이후 민족자본 세력을 끌어안으려는 노력 때문에 룰라 정부는 명확한 한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은 정부로부터 독립성과 민중들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그리고 풀뿌리 대중운동의 확산 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반신자유주의와 반제 투쟁에서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여성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세계여성행진의 발제가 있었다. 세계여성행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주의가 가하는 경제적, 물리적 폭력으로 세계 많은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그러나 여전히 투쟁 속에서 여성들과 여성의 의제가 주변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속에서 매우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인도를 비롯한 향후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발언자, 사회자, 관중에 있어서도 여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여성주의적 시각이 모든 주제에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 외 6월 말 미국 사크라멘토에서 열린 반WTO 투쟁과 조제 보베의 구속에 대한 비아깜페시나의 보고, 북핵 문제와 양자간 자유무역/투자협정 등 동아시아 정세와 특히 전쟁을 둘러싼 미국 내 사회운동의 현황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이번 국제위원회를 주관하였던 “정의있는 노동(Jobs with Justice)”은 그 간 진행되었던 반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기반으로 “풀뿌리 지구적 정의”(Grassroots Global Justice)"라는 사회운동 네트워크를 구성하였으며, 이는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를 미국 내에서 확산시키고 2005년에 미국사회포럼을 성사시켜 미국 내에서 반신자유주의, 반제 투쟁을 강화하겠다고 하였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반전반제 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반제 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 사회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로 넘어갔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 반신자유주의 기치와 반전 기치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에도, 그리고 최근 반전 시위에 기존의 반신자유주의 세력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음에도 두 투쟁의 유기적 결합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즉, 한편으로는 군사주의를 중심 의제로 적극 제기하지 못했던 시애틀 이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거대한 반전 투쟁이 진행되었으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은 지난 1-2년 간 상대적으로 미비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두 투쟁의 유기적 결합은 일국적 수준에서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되었고, 지구적 차원에서는 오는 9월에 진행될 칸쿤의 반WTO 투쟁이 핵심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WTO가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를 확대․강화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번 5차 각료회의가 9.11 2주년과 맞물려 개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신자유주의 기치 하에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이지만 최근 군사주의도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인도 세계사회포럼에서 두 운동의 결합과 현 체제에 대한 대안이 중점적으로 토론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공유하였다. 두 번째 문제, 즉 미국 사회운동의 역할이 이런 정세 속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대다수 참가자들이 동의했다. “제국”의 심장부를 타격하기 위해 미국 사회운동의 활성화가 절대적이며, 또한 미국 운동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투쟁 제안이 이루어졌다. 올해 11월 마이애미에서 개최될 FTAA 정상회담 반대 투쟁, 2004년 4월 IMF-세계은행 회의 반대 투쟁, 7월 민주당 전당대회와 8월 공화당 전당대회 때 부시 반대 투쟁을 모두 국제적인 반신자유주의, 反부시 투쟁으로 승화시키자는 제안과 결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속적인 토론과 대안 생산을 위해 미국 내에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를 확산시키자는 결의도 이루어졌다. 프로세스의 확산, 세계사회포럼의 성장 회의의 첫째 날은 정세토론과 운동의 방향에 대한 자유 토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에 대한 보고와 논란이 많은 국제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주목을 받은 사회포럼은 당연하게도 유럽사회포럼이었다. 지난 2002년에 진행되었던 유럽사회포럼은 대규모 반전시위를 조직하는 데 성공했으며, 유럽 전역의 15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조직위원회는 11월 12-16일 파리와 상드니에서 개최될 2003년도 유럽사회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차기 유럽사회포럼의 핵심 주제는 최근 유럽연합이 “자유주의적 유럽”을 만들기 위해 제정하고 있는 헌법에 대한 대응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지역사회포럼은 2003년 1월 5-9일까지 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되었던 아프리카사회포럼이었다. 비록 규모가 크지 않았고 사회운동보다 주로 NGO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아프리카에서 사회포럼이 개최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국제위원회의의 몇 안되는 아프리카 회원 중 하나이자 아프리카사회포럼을 주도하였던 제3세계환경과개발(ENDA)은 아프리카사회포럼을 기반으로 아프리카, 중동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아랍권사회포럼도 준비중이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2004년 4차 세계사회포럼의 기반이 된 2003년도 아시아사회포럼이 있었다. 올해 1월 2일부터 7일까지 인도 히드라바드에서 진행된 아시아사회포럼은 아시아 최초 사회포럼으로 15,000명이 참여했다. 참가자 대다수가 인도인이었으며, 여전히 아시아 기타 지역에서의 참여가 미미했음에도 아시아사회포럼은 프로세스에 “아시아적 의제”를 포함시키고, 세계사회포럼의 “예행연습”이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차기 아시아사회포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앞으로 계획되고 있는 향후 대규모 지역사회포럼으로는 2004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에콰도르 키토에서 13일까지 진행될 미주대륙사회포럼인데, 미주 대륙 사회운동들은 향후 투쟁의 흐름을 올해 9월 멕시코에서 있을 반WTO투쟁에서 11월 마이애미에서 있을 반FTAA투쟁으로, 그리고 그 투쟁을 성과를 내년 미주대륙사회포럼에서 모아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역별 또는 주제별 사회포럼이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 외에, 차기 세계사회포럼 자체가 브라질이 아닌 아시아(인도)에서 개최된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처음 발의되어 지난 3년 간 브라질에서 진행되던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단지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를 통한 프로세스의 비약적 확산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와 확산은 국제연대 투쟁의 정치적 지형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세계사회포럼의 주도권이 브라질에서 일정 정도 떠날 수밖에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좌파 정당과 대규모 풀뿌리 대중운동들이 존재하는 인도 운동의 “국제무대로의 급부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세계사회포럼이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프로세스의 확산, 세계사회포럼의 성장통(成長痛)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확산되는데 핵심적인 계기가 될 인도의 세계사회포럼 개최는 “사회포럼”이라는 공간을 통한 전지구적 반신자유주의․반군사주의 투쟁의 확산(특히 아시아로의)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세계사회포럼이 “공간 이전”을 하면서 국제화되는 이 과도기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권력 이동”은 국제위원회로 하여금 상당한 진통을 겪게 하고 있다. 이런 진통은 국제위원회의 역할과 구성, 그리고 이런 내용을 명시하게 될 내부규약 제정을 둘러싼 논쟁으로 드러나고 있다. 첫째,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는 세계사회포럼 구성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그런 만큼 국제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논쟁 또한 계속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 중심으로 진행되었을 때에는 세계사회포럼 구성에 대한 주요 결정은 대부분 브라질조직위원회(지금은 집행사무국으로 전환하였다)에서 이루어졌다. 국제위원회의 최초 구성단위를 결정할 때에도 사실상 브라질조직위원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3년을 거치면서 “브라질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결국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 밖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은 권력의 축이 브라질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좁게는 국제위원회의 구성과 넓게는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참가자의 구성도 영향을 받게 된다. 세계사회포럼 헌장(Charter of Principles)은 세계사회포럼이 “다원적이고 다양성을 갖고, 정파적이지 않으며”, “젠더, 인종, 문화, 세대와 신체적 능력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포럼”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 헌장을 근거로 세계사회포럼의 구성에 있어 젠더, 지역, 세대 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모든 의사결정 단계와 모든 행사에서 여성이 절반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참가자들은 세계사회포럼이 서구(유럽, 북남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실에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 문제는 국제위원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애초에 국제위원회는 국제 조직으로 국한되었으나, 이런 국제 조직이 과연 누구를 대변하느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성별과 지역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예외”를 두었다가 결국은 국제적, 일국적 조직 모두 국제위원회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있는 중이다. 다만, 향후 국제위원회 신규 가입 단체를 성별, 지역과 인종에 따라 일차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내부규약에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 축으로 있고, 균형을 맞추려면 끝도 한도 없다는 의견도 있어 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논란이 많다. 분명한 것은 성, 지역과 인종 불균형이 심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 참가자 중 여성이 수적으로는 절반 정도였으나 실제 권력은 여전히 남성 활동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참관자인 인도조직위원회를 제외하면 아시아 쪽도 미미하다. 특히 국제위원회에 가입되어 있는 동아시아 단체는 국민행동과 민주노총뿐이다. 아프리카는 더욱 심각하다. 아프리카에서 온 두 참가자 모두 백인에 가까운 중동계였기 때문에 흑인은 미국 또는 카리브해 출신 두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백인(어느 참가자는 심지어 남미에서 온 참가자들조차 유럽계 백인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이었다. 국제위원회 내 몇몇 “핵심 주도자”들도 모두 백인이다. 물론,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확산되어감에 따라, 그리고 차기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개최됨에 따라 국제위원회의 구성원과 세계사회포럼 참가자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별, 지역별, 인종별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역시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회포럼의 구성에 있어 또 한 가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당과 무장단체 참여의 문제이다. 세계사회포럼 헌장에 의하면, 정당과 무장단체는 세계사회포럼에 주체로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 차례 세계사회포럼이 사실상 브라질 노동자당의 “세례” 하에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만인이 아는 바이며, 유럽과 아시아 등 지역사회포럼의 주요 인사들도 상당 부분 좌파 정당 소속이라는 점도 역시 잘 알려진 바이다. 물론,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정당들이 간접적으로나마 프로세스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규모 사회포럼과 시위를 조직하는 데 주요 좌파 정당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조직위원회 또는 국제위원회에 직접 정당의 명의를 걸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간접적 참여를 대다수 참가자들이 눈감아주고 있다. 그러나 정당배제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 헌장과 정당의 간접적인 참여에 눈감아주고 때로는 직접적 참여도 허용되는 실제 상황 사이의 긴장감은 계속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 방콕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이탈리아 측은 유럽사회포럼에 정당을 공식 초청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헌장에 위배된다고 하자 이탈리아 측은 브라질 단체들과 노동자당 간의 관계를 제시하면서 위선적이라 반박했다. 첫 세계사회포럼 때에는 조직위원회에서 무장단체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쿠바정부의 참여를 불허했으나 룰라의 참여는 승인해주었고, 3차 때에는 룰라가 아예 개회식 때 대통령으로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이런 문제가 다시 제기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튼 정당의 직접적 참여는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서로 적당히 눈감아주기”로 문제를 무마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제위원회를 개방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개방한다고 하면서 어떠한 근거로 정당이나 무장단체 배제 원칙을 지킬 것인가? 만약 국제위원회를 개방하여 수천 개 단체가 가입할 경우, 책임과 의사결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완전 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 단체의 선별은 어떠한 기준으로 할 것인가? 둘째,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는 국제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있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에서 개최될 때에는 브라질조직위원회가 핵심 의사결정 기구이자 “권력”이었고, 국제위원회는 애초 설립되었을 때 세계사회포럼의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계사회포럼이 국제화되면서 브라질의 독점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국제위원회가 왜 브라질의 “들러리”가 되어야 하냐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제위원회를 자문기구가 아닌 의사결정 기구로 내부규약에 명시해야 하며, 의사결정을 브라질조직위원회가 아닌 다양한 국가와 인종이 모여 있는 국제위원회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던 성별, 지역과 인종에 대한 문제제기도 한층 거세게 나오는 것이다. 국제위원회가 의사결정 기구가 된다고 했을 때, 그 의사결정을 누가 누구의 이름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하고, 국제위원회로의 “권력 이동”이 국제위원회 내 또 다른 누구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도기적 상황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몇몇, 새롭게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몇몇, 그리고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자 하는 나머지 사이의 갈등과 불신, 오해와 왜곡을 낳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의 민주성, 나아가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세계사회포럼(국제위원회)의 정당성에 대한 공격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이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듯하다. 국제위원회가 의사결정 기구로서 명확히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되어가고 있으며, 의사결정 기구이지만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국제위원회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참가자들이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제위원회의 위상은 결국 집행사무국, 국제위원회와 개최국 조직위원회 사이의 역할분담과 위상을 함께 규정하는 속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다. 이번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집행사무국이 가졌던 의사결정 권한이 국제위원회로 분명하게 넘어오고, 집행사무국은 이제 그야말로 “사무국”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출되었다. 또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확산, 연례행사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 그리고 “국제”위원회로서 재정립은 현재 브라질 단체 8개로 구성된 사무국도 “국제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안정적인 사무국을 유지하기 위해 하던 방식대로 해야 한다(즉, 브라질에서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다국적 사무국이 되든 아니면 사무국이 세계사회포럼을 따라 이동을 하든, 국제화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국제위원회가 세계사회포럼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국제위원회와 개최국 조직위원회 사이의 문제이다. 후자의 경우, 4차 세계사회포럼 준비가 이미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율이 되고 있다. 개최국 조직위원회는 일개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의 내용과 형식을 담당한다면, 국제위원회는 “프로세스”의 큰 틀에 대한 방향 설정을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국제위원회 내 논쟁 지점은 세계사회포럼과 국제위원회의 정체성의 문제이다. 세계사회포럼이 행사로서의 공간이 되거나 과정으로의 프로세스가 될 수 있을망정 그 자체가 통일된 입장을 가진 하나의 조직은 아니라는 점은 헌장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고, 국제위원회 내부규약 초안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모든 관련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체계가 구축되고 분명한 의사결정 기구가 생기면서 사실상 거대한 조직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있다. 물론, 대표도 없고 내부 입장도 통일될 수 없을뿐더러 아무도 특정한 입장을 제출하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의 명의를 사용할 수 없다. 세계사회포럼이 “조직이냐 아니냐” 식의 논쟁이 현재 벌어지고 있지 않고, 조직이냐 아니냐 식 규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만은, 최소한 국제위원회는 특정 사안에 대해 공동 입장 제출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즉, 동의가 되는 사항에 대해 성명서이든 기타 형식의 입장 제출이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전쟁 반대 성명서라던가, 최근에 구속된 조제 보베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 또는 쿠바 참가자의 미국 입국 불허에 대한 미국 정부 규탄 서한 등은 가능하지 않겠느냐이다. 이 문제는 사실상 세계사회포럼이 행위자냐 아니면 공간에 불과하냐의 문제, 그리고 세계사회포럼과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세계사회포럼과 프로세스 자체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자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존재로서 “공간”에 불과하고, 오직 그 안을 채우는 여러 사회운동, NGO들과 활동가들만 행위자인가? 사실상 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바는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야 말로 “운동들의 운동”으로서 행위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사회포럼이 이제는 토론만 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고 창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의견에 동의가 된다는 전제 하에) 최소한 국제위원회는 정치적 입장을 제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자체가 대안 세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행위자가 되어야 하고, 국제위원회 회의는 예를 들어 올해 칸쿤 투쟁을 어떻게 일구어낼 것인가 등 정세 토론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국제위원회 입장이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를 대변하는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위원회의 구성, 위상, 역할과 방향을 규정하는 내부규약에 대한 토론이 며칠동안 이루어졌으나, 결국 최종 합의점을 못 찾아 완성하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났다. 다만, 작업반을 구성해 이번 회의에서 나온 논의를 정리하여 내부규약(안)에 반영시켜 내년에 다시 국제위원회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그나마 확인이 된 부분은 국제위원회를 국제 조직으로 한정시킬 수 없다는 점, 성별, 인종과 지역을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 국제위원회가 그 자체로서 권력체가 되어 세계사회포럼 내 위계를 만들어서는 안되지만 주요한 의사결정은 해야 한다는 점, 각 사회포럼조직위원회는 조직이 아니라 “공간”이기에 국제위원회에 가입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극우와 무장 단체 역시 가입할 수 없다는 것 정도이다. 또한, 이번 회의의 최대 성과는 “기능적” 국제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국제위원회 내 6개 소위원회(commission)를 구성하여 첫 회의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6개 소위원회는 정세분석과 전략을 토론하는 전략소위원회,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뤄져야 할 주제와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및주제소위원회, 프로세스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확장소위원회, 세계사회포럼의 여러 행사를 체계화하는 방법론소위원회, 세계사회포럼 내외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하는 소통소위원회와 세계사회포럼의 안정적 재정 조달 방안을 제시하는 재정소위원회이다. 국제위원회 소속 단체들은 필수적으로 1개 이상의 위원회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 이 소위원회는 의사결정 기구가 아니기에 국제위원회 소속 단체가 아닌 단체들도 참관자로 참여할 수 있으며,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한 안을 만들어 국제위원회에 제출하는 작업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우리는 이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에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 “프로세스”에 있기보다 일년에 한 번 씩 참가하는 행사 정도이다. 그럼에도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있으며, 인도에서의 아시아사회포럼과 세계사회포럼 개최는 이제 아시아 지역에서 “프로세스”에 대한 적극적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국제위원회 가입 단위로 사실상 동아시아에서 프로세스를 확산시킬 책임을 지고 있는 국민행동을 비롯한 한국 민중운동 진영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특히 그러한데, 먼저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이 프로세스에 있어 “공백”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고, 또한 최소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우리 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민중운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국제연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점점 더 폭력적인 형태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시적 정세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국제화와 국제연대 운동의 지각 변동이라는 운동 내 미시적 정세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이며 입장을 무엇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제연대가 반드시 “사회포럼”이라는 형태를 띠어야 할 필요도 없으며, 사회포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절대화하는 경향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세계사회포럼을 행위자로 보든 공간으로 보든, 여러 운동들이 소통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생성할 수 있는 장으로서 갖는 의미는 크며, 국제주의적 실천을 촉진하는 좋은 매개이다. 국제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한국의 운동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며, 이것의 효과는 다시 국내 투쟁에 대한 자극과 강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로세스”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가 아닌,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에 어떻게 개입하고 그것을 어떻게 일구어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PSSP <참고1> 세계사회포럼 헌장 (World Social Forum Charter of Principles) 2001년 1월 25일에서 30일까지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첫 세계사회포럼을 발의하여 개최한 브라질조직위원회는 첫 번째 포럼의 성과를 평가한 결과, 세계사회포럼 이니셔티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헌장이 제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 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들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에 참여하고 새로운 버전의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 의해 지켜져야 하는 한편, 포르투알레그레 포럼을 개최하면서 그것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재확인하고 나아가 이런 의사결정이 확산되고 그 의사결정의 논리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1.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 지배와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그리고 인류 사회 내에서 그리고 인류와 지구(planet)간 풍족한(fruitful)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지구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헌신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집단과 운동들 간 성찰적 사고, 민주적 토론, 제안 형성, 경험의 자유로운 공유, 효과적인 행동을 위한 상호연계를 형성하기 위한 공개된 회합의 장이다. 2. 포르투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개최되었던 행사였다.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선포되었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명제에 대한 확신 속에서, 이제부터, 세계사회포럼은 단지 행사로 국한되지 않는 대안을 모색하고 건설하는 영구적인 과정(프로세스)이 되었다. 3.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인 프로세스이다. 이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모든 회의는 국제적 특성을 갖는다. 4. 세계사회포럼에서 제안된 대안은 대규모 다국적 기업과 그런 기업의 이해에 복무하는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정부의 공모 하에서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의 과정에 대항하는 것이다. 대안은 연대의 세계화가 세계 역사에 있어 새로운 시대로서 자리매김 되도록 고안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연대의 세계화는 보편적 인권을, 여성과 남성 등 모든 시민과 국가와 환경의 권리를 존중하며, 민주적이며, 사회정의, 평등과 민중의 주권에 복무하는 국제 체제와 기구에 기반 해야 한다. 5. 세계사회포럼은 세계 모든 나라의 시민사회 단체와 운동들을 모아내고 상호연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기구를 지향하지 않는다. 6. 세계사회포럼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는 기구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을 대변하면서 개최되지 않는다. 그럼으로, 어떠한 형태의 포럼을 대변하여 그 어느 누구도 모든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입장을 표명할 권리가 없다. 포럼 참가자들은 모든 또는 일부 참가자들이 하나의 기구로서 포럼의 입장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선언 또는 행동 제안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든 갈채 방식으로든 하나의 기구로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포럼은 회의 참가자들이 서로 쟁취해야 할 권력의 중심(locus of power)을 구성하지 않으며, 이것이 참가 단체와 운동들의 상호연계나 행동의 유일한 선택의 여지가 되어서도 안 된다. 7. 그럼에도 포럼 행사에 참여하는 단체 또는 단체들의 집합은 행사에서 그들이 독자적으로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결정한 선언 또는 행동을 수행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세계사회포럼은 가능한 방법을 통해 이런 결정을 공유시켜야 하며, 이 과정에서 그런 결정을 위계화하거나, 검열하거나 제한하지 말아야 하며, 그 결정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그 단체 또는 단체들의 집합에게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8. 세계사회포럼은 다원적이고 다양성을 지향하여, 정파적이지 않고, 비정부적(non-governmental), 비정당적(non-party)이며, 다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일국에서 국제적 수준까지 명확한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와 운동들을 탈중심적인 방식으로 엮어준다. 9. 세계사회포럼은 항상 다원주의에 개방되어 있어야 하며, 여기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단체와 운동들이 참여하는 방식과 활동의 다양성에도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이 헌장에 준수한다는 전제 하에 젠더, 인종, 문화, 세대와 신체적 능력의 다양성을 포괄해야 한다. 정당 대표 또는 군사 조직은 포럼에 참여할 수 없다. 이 헌장을 인정하는 정부 지도자들과 정책고안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포럼에 초청 받을 수 있다. 10. 세계사회포럼은 경제, 발전과 역사에 대한 모든 전체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 시각에 반대하며, 국가의 사회적 통제 수단으로서 폭력이 사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여러 인종, 젠더와 민중 사이에 있어, 평등과 연대의 원칙 하에 인권에 대한 존중,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행, 참여민주주의와 평화적 관계를 지향한다. 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배와 종속을 거부한다. 11. 토론의 장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자본 지배의 역학과 기제에 대해, 그 지배에 저항하고 극복하는 방법과 행동에 대해, 국제적으로 또는 한 국가 내에서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며 환경파괴적인 자본주의적 세계화 과정이 야기한 배제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대안에 관해 성찰을 촉구하는 사고의 흐름이며 그런 성찰의 성과를 투명하게 순환시킨다. 12.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틀(framework)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참여 단체와 운동들 간 이해와 상호인식을 촉구하며, 이들 간 공유에 특별한 가치를 둔다. 세계사회포럼은 특히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민중의 필요에 부합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경제활동과 정치행동을 구축하기 위한 모든 사회적 노력에 특별한 가치를 둔다. 13. 상호연계의 맥락에서, 세계사회포럼은 공공 또는 사적 영역 모두에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인간화 과정과 국가 폭력에 대한 비폭력적 사회 저항을 위한 능력을 배양하고자 단체와 사회 운동들 간 새로운 일국적 그리고 국제적 연계를 강화하고 형성하고자 한다. 또한 이런 운동과 단체들이 복구하고자 하는 인간화 조치를 강화하고자 한다. 14. 세계사회포럼은 참여하는 단체와 운동들이 그들의 지역적 또는 국가적 수준의 행동을 지구적 시민의 의제로서 국제적 맥락에 배치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과정이며, 새로운 세상을 연대 속에서 건설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는 변화 지향적 실천을 지구적 의제로 위치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조직위원회를 구성하는 단체들이 2001년 4월 9일에 이 헌장을 승인하고 채택하였으며,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에서 2001년 6월 10일에 수정하여 승인하였다. <참고2> 2004 세계사회포럼 1) 개요 o 기 간: 2004년 1월 16일-21일 o 장 소: 인도 뭄바이 o 참가예상인원: 75,000명 (국외 참가자 10,000명) o 주요 의제: 제국주의적 세계화 / 가부장제 / 군사주의와 평화 / 종교적 종파주의와 근본주의 / 카스트와 인종차별주의 o 프로그램 형태 (하루에 열릴 행사): - 15,000-20,000명이 참여할 수 있는 총회의(conference) 1개 - 4,000명이 참여할 수 있는 원탁토의(round table) 1개 - 각 4,000명 씩 참여할 수 있는 패널토론(panel discussions) 3개 - 50-200명 씩 참여할 수 있는 세미나(seminar) 및 워크샵(workshop) - 공식 문화 행사 - 행사장 주변 자발적 또는 즉흥적인 문화행사 - 8개 영화 동시상영 - 각종 전시 - 토론과 “동명 형성(alliance building)”을 위한 공간 - “저항의 목소리(voices of resistance)”, “진술(testimony)”: 6-8개 이 중 총회의와 “저항의 목소리”만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하고 나머지는 참가자 자체 개최하고 조직위원회에서는 공간 제공만 할 예정임. 2) 2004 WSF(세계여성행진) 주제와 소주제 군사주의, 전쟁과 평화 미디어, 정보, 지식과 문화 민주주의, 생태적․경제적 안보 지속 가능한 민주적 발전 노동의 세계와 생산․사회적 재생산에서의 노동 공공부문 그리고 사회보장 소외, 차별, 존엄성, 권리와 평등 카스트, 인종과 기타 출신․노동에 의한 배제 종교, 문화 및 정체성 가부장제, 젠더와 섹슈얼리티 3) 청년포럼 o 예상인원: 10,000명 (국외 참가자 2,000명) o 참가대상: 15-35세 사이
나는 전황을 CIA로부터가 아니라, CNN으로부터 더욱 많이 배운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 - 칠흑 같은 새벽, 바그다드를 강타한 미사일이 섬광처럼 퍼져나가는 모습, 이곳저곳에서 부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동하는 군사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잔상들을 기억하고 있다. 전선에 있지 않았지만, 텔레비젼 영상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전쟁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간다. 우리는 바로 그들 미디어 산업을 통해 전쟁을 알아가고 경험한다. 미디어와 전쟁, 그 은밀한 동거 미디어를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정의한다면, 전쟁에는 그것을 알리고 이를 해석하는 미디어가 언제나 존재해왔다. 스파르타와의 전쟁결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뛰었던 그리스 병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근대적인 대중매체의 시작이었던 전신 역시 전쟁과 같은 거대 사건의 속보전달과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 라디오, 텔레비젼, 그리고 인터넷 등의 새로운 매체의 탄생은 언제나 군사적인 목적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를 위한 자본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끊임없이 제공되었다. 전쟁 때마다 당사국들은 다른 나라를 경계하기 위해 다양한 선전을 활용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흑인병사들과 백인병사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실시하였던 독일의 선전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며, 냉전시기 미국은 선전을 위해 각종 위성채널들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단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가 정부의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정치인들의 많은 수가 미국이 베트남 전에서 패배한 원인 중의 하나를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로 보고 있으니, 미디어 그 자체가 전쟁에 대한 여론과 국제적 분쟁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를 생각해 보면, 지금 미디어와 전쟁에 대해 유난스럽게 말하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CNN 효과(?)-정보통신기술과 국제 분쟁의 변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쟁과 미디어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발달은 기존의 시공간 개념을 바꾸었으며, 세계 각지의 소식들은 동시에 전달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제까지 수행되던 전쟁의 양상과 전쟁을 경험하는 방식을 동시에 바꾸었다. 새로운 기술 발달을 통해 지능화되고 군사화 된 공간 체계가 등장하면서 세계의 분쟁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지배가 가능해졌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고, 전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의 위력은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전쟁을 비롯한 국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미디어의 역할과 그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91년 걸프전이다. CNN이 위성통신을 이용하여 전달한 전쟁 이미지는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CNN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CNN 효과(CNN effect), 즉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의 텔레비젼의 보도는 정책결정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전세계의 국가 지도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국제분쟁에 대한 전세계의 여론과 분위기를 읽어가고 정책 결정을 고려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제 분쟁 시 각 국의 정상들은 CNN 등의 글로벌 미디어, 정확히 말하면 텔레비전을 통해 분쟁 당사국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등 다양한 외교행위를 펼친다. 걸프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90-91년, 사담후세인이 평화안을 제기함으로써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에 도전한 것도 CNN을 통해서였다. Baker가 후세인에게 최후통첩을 한 것도 미국 대사가 이라크를 방문해서가 아니라, CNN을 통해서였다. Fitzwater 전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듯이 국제분쟁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도를 가장 빠르게 전달하는 방법은 이제 미디어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속보들 속에서 외무부 관리들은 미디어에 끊임없이 반응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세계의 눈들은 끊임없이 기다린다. 오래 생각할 시간이 정책관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으며, 미디어 보도에 기반을 둔 직관적인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차 커진다. 빠른 속도로 제공되는 미디어 이미지에 의해, 정치가들은 사건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점차 잃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Gilboa 2002). 하지만 Rubin(2002)이 지적하듯이, 이와 같은 미디어의 역할은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정부 전략의 확실성의 정도와 리더쉽의 범위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9․11 이후 이라크 침공까지 애국주의로 일관하였던 미국 미디어의 태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여론을 관리하라-9․11이후의 미 국방부의 정부보도 관리 결론부터 말하면, 아랍권에 대한 대 테러전쟁의 분위기가 확실하였던 9․11 이후, 국제 분쟁에 대한 관리는 미디어의 몫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 관리들이 이를 주도하고 미디어가 동조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센터 폭격 이후 국제분쟁을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무성으로 대변되는 미국 정부의 언론통제와 전략은 점차 증대되고 있다. 9․11 이후 미국을 강타한 애국의의 물결 속에서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정부와 국가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9․11 이후 정부 또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이 모든 행위는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고 미디어가 동행하였던 극단적인 애국주의의 물결 속에서 용인되었다(Magder 2003). 국제정책에 대한 미디어 보도를 통제하는 양상은, 단순하게 정보제공을 줄이고, 정보원을 제한․관리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인식을 조절하는 차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 국방부의 대 언론정책은, 외교 분쟁이 일어날 때 정부의 정보관리와 선전 전략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공습 작전명이었던 ‘shock and awe'는 국방부가 제공한 말로, 저널리즘의 구미에 잘 어울려서 신문기자라면 누구나 알아서 채택할 용어였다. 전쟁 이전 부시의 최종기자회견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 시큰둥 하자, 국방부 관리들은 미디어가 알아서 쉽게 써먹을 만한 용어들을 작성해서 제공하였다(Martin 2003). 이것은 이라크 침공당시 미 정부가 국내외에 대한 선전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2003년 미 국방부는 전쟁관련 보도에 있어서 베트남 전쟁이후 금기시하였던 언론정책을 구사하였다. 즉,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이라크에 파견할 군대를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던 것이다. 지난 이라크 침공 당시 약 3주 동안 700여명의 기자들이 각 소대별로 흩어져서 전쟁에 대해 밀착취재를 할 수 있었다(Smith 2003). 전쟁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와는 달리 종군기자 베테랑들은 과연 기자들이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가지고 기사를 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Nation지의 기자 Hodge가 기술하였듯이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기자들은 음식과 잠자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군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적대적인 분위기로 인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기자들은 그들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군대와 함께 이동하였던 종군기자들이 전쟁의 일부분만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이 같이 생활하는 군대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행위를 이적행위로 인식하는 자기검열의 과정이 기자들에게 지속되었으니 미 정부의 대담한 정보 관리 정책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Hanley가 지적하듯이 미국 국무성이 제안한 게임에 미국 언론들은 일정정도 놀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당시의 종군기자 시스템이 성공을 거둔 것은 미 국방부의 대외 홍보 정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업주의적인 글로벌 미디어의 성격이, 전세계적으로 지지 받지 못한 전쟁에서 여론을 돌리고자 하였던 국방부의 의도와 훌륭하게 맞아떨어진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외교정책에서 미디어가 주목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각 신문사와 방송사의 외신보도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으며, 각 언론사들은 해외지국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 이유는 바로 비용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외신기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의 문제였다. 기술 발달로 외국 뉴스를 생산하는 비용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뉴스에 비해 비용은 많이 들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어당기지 못하였다. 수익을 가장 커다란 가치로 두고 있는 미국 내 각 언론사들이 정규직 외신기자나 사무실을 해외에 두는 것은 수지가 맞지를 않았다. 대신 방송사와 주요 일간지들은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현장으로 기자나 뉴스 앵커를 보내 거의 동시에 보도하는 방식(just-in-time approach)으로 외신보도를 생산했다. 이와 같은 뉴스 생산조건 속에서 삶과 문화를 알지 못하는 기자들은 그냥 사건 현장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 지역의 문화적․정치적․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상황에서 기자의 역할은,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Magder 2003 ). CNN을 비롯한 미국의 방송사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리고 전쟁 직전 전쟁의 근거가 되었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IAEA 보고서의 존재여부를 알지 못했던 것도, 경제원리에 따라서 외신뉴스를 생산하는 관행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전쟁, 스펙터클과 처절함 사이 전쟁시기 미 정부의 정보관리와 상업미디어의 보도는 깔끔하고 별로 잔인하지 않은 전쟁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으로 외신보도는 기자들이 소속된 맥락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된다. 종군기자들은 시청자들이 이 메시지를 소비하는 상황- 즉 전쟁 발발 전날과 마찬가지로 식사하고 운동하고 일하는 - 을 고려하면서 상을 만들어내었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의 뉴스들은 대부분 전쟁을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전쟁의 잔혹함을 나타내는 선혈도, 병사들을 괴롭혔던 사막의 모래바람도 등장하지 않았다. 또한 대량살상무기 보다 더 위협적인 미국의 최첨단 무기는, 너무나도 정밀해서 민간인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려졌다. 이라크 사람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키려고 목숨을 걸고 파병된 미군 병사들을 환영하고 그들이 주는 원조물품을 무척 반가워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보도를 자신의 일상 속에서 접한 미국의 텔레비젼 시청자들은, 미군의 바그다드 진격이 있던 날 대략 2000-3000여명의 이라크 군사들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3주 동안의 이라크 침공이 비교적 깨끗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Martin 2003). 결국 미국 국민들은 일상속에서 자신의 텔레비젼 화면에서 탱크와 미사일 그리고 군인들과 기자들이 등장하는 한편의 스펙터클을 감상했던 것이다.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라크 사람들이 주연이 된 전쟁이 펼쳐졌다. 미국과 영국의 거대한 무기와 미․영연합군에 끊임없이 저항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이라크인들, 폭격 당한 건물, 연기, 그리고 혼란, 폭력으로 부상당한 사람들, 절규하는 이라크 여성들과 아이들, 포로로 잡혀 공포에 떨고 있는 이라크인들.... 공포 속에 사로잡힌 전쟁의 군상들이 아랍권의 방송과 유럽의 신문 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미․영 기자들 중에서 이와 같은 고통을 목격하고 포착한 사람들은 없었다. 고통의 전쟁은 애국주의와 상업주의로 가득 찬 미국과 영국의 기자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Hanley 2003). Hanley(2003)의 표현처럼 미디어에 비춰진 이라크 전쟁은 두 개였다. 하나는 미국 미디어에 보도된, 잔인하지 않은 서방의 민주주의를 증진시킬 인간주의적인 전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아랍권의 방송에 나타난 전쟁 즉 공포스럽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이었다. 이 둘은 공존하고 있었다. 전쟁이 가져다 준 선물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들이 ‘더러움으로 가득 찬 전쟁보도’, ‘객관성과 공평성이 결여된 전쟁보도’, ‘이미지만 존재하고 심층취재는 부족하였던 보도’라고 악평을 퍼부었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 관련 보도는,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그 청중들에게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이라크 침공 당시의 전쟁보도가 현란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사람들에게 생생함을 전달해 주었을 지는 몰라도, 전쟁의 장기적인 결과에 대한 심도 깊은 시각은 제공해주지 못하였다. 그 원인에 대해 Martin은 ‘각 언론사들이 명목상으로는 이와 같은 보도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와 같은 심층 보도가 언론사들이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Martin 2003). 그렇다면 상업적 미디어가 전쟁을 통해 얻은 경제적 이해득실은 무엇인가? 대차대조표상 이들 미디어들은 이라크 침공으로 인하여 오히려 손해를 입었다. Variety지 4월 둘째 주 기사에 의하면, CNN, MSNBC, Fox News등 전쟁 보도를 주도하였던 방송사들은 전쟁 첫 주 동안 100만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종군기자들의 동시다발적 보도는 기자, 앵커, 심지어는 장군들까지 스타로 키웠다. 뿐만 아니라, 전쟁 보도가 있었던 3주 동안의 케이블 방송국의 시청률은 급격하게 증대하여, 즉각적인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브랜드 가치는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바그다드 초기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CNN의 한 종군기자가 뉴욕의 앵커에게 했던 말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건인 전쟁이 미디어에 가져다 준 선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 미디어들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아주 매력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머무르고 있는 소대의 군인들이 ‘후세인에 대한 처형’에 대해서 다른 어떠한 미디어가 아니라 CNN에서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The year in TV, America, pg 18> 이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글로벌 미디어에 있어서 전쟁이란,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인 것-CNN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창구로, CNN이 그들의 상품성을 홍보할 수 있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이라크 지역에서 벌어진 갈등은 해결되지도 않았고, 이라크 군의 저항이 끝나지도 않았으며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철수하지도 않았지만, 이들 미디어들은 더 이상 사막의 풍경에 집중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들 미디어가 스포츠 중계와 드라마 방송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점은 이들에게 전쟁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 속에 사라진 가치와 비극 이라크 침공을 전후한 오보의 속출, 보도 관점의 문제와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의 실종은 국내외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관련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 침공이 발생하기 직전 부시가 관련 자료로 지적하였던 IAEA 보고서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전쟁 직전 미국의 언론사와 기자들은 부시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근거자료로 활용했던 IAEA보고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내 굴지의 언론사 기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외신부의 전반적인 축소에 따라 정부에 대한 적절한 비판을 할 수 없는 조건, 그리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매국적인 행동으로 간주토록 만들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언론사들은 사회의 공론을 형성하는 데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한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은 사라졌으며 고통 받는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돈벌이와 자국의 이익에 눈먼 정부와 상업적 미디어의 합작품인 더러운 이미지와 글들이 오늘도 전쟁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만들어간다. 또한 국가의 정보통제와 전지구적인 전쟁담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PSSP <참고문헌> Gilboa, E.(2002), Global Communication and Foreign Policy, Journal of Communication Vol. 52, Issue 4, Sage Publication Rubin, P.(2003), CNN Effect:The myth of news, foreign policy and intervention,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Magder, T.(2003), Watching what we say: Global communication in a time of fear, Tussu, D. K & Freedman,D. eds, War and Media, Sage Publication 2003. Martin, J. The year in TV, America, New York: June 9-June16 vol 188 iss 19 pg 18 Hanley, D.C.(2003), Two Wars in Iraq: One for U.S. audience, the other for the arabic speaking world. The Washington Report of Middle East Affairs, Washington: May, 2003. Vol.22, Iss.4;pg 6 Smith,T(2003), Hard Lesson, Columbia Journalism Review, New York: May/Jun 2003. vol 42, Iss 1; pg 26.
지난 7월 7일, 미국은 '이라크 과도통치기구'를 2주 내에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연일 지속되는 이라크 내 게릴라식 무장공격과 사회기반시설의 붕괴, 전기와 수도, 식량의 부족 등 이라크 전후 재건이 직면한 곤경은 현재 미국에게 만만치 않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부시행정부와 신보수주의자들의 강경 노선이 미국 내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는 의미를 넘어, 9․11이후 反테러전쟁 속에서 미헤게모니의 위기가 직면한 또 다른 현실을 시사한다. 특히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의 '무능력'은 세계적 반전운동에게 중요한 정치적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미국 지난 5월 1일 부시가 종전을 선언한 지 석 달이 지났다. 그러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이하 WMD)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미국 국민의 50%이상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근거가 거짓이라고 믿는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7월 6일, 뉴욕타임즈에는 부시행정부의 WMD 정보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조지프 윌슨 前 가봉 미대사의 글이 실렸고, 며칠 후 백악관은 이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또 얼마 후,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방장관은 이라크의 WMD 보유를 입증할 새로운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군사공격을 감행했다고 시인했다.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는 부시대통령의 국정연설이 거짓정보에 기인했다는 것, 그리고 이라크 침공의 유일한 근거였던 WMD의 실체가 결국 거짓이었음이 만천하에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예상대로 이 사건의 파장은 미국 내에서든 전세계 어디에서든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이라크전의 조기 승전으로 재선을 확신하고 있었던 부시행정부에게 이는 종전직후에 비해 절반으로 급락한 지지율과 함께 치명적인 악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처한 곤란함은 정보조작 의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 점령군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후세인의 육성 테입이 발견되면서 후세인의 생존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후세인에 대한 현상금은 종전의 20만 달러(약 2억4000만원)에서 100배 이상 껑충 뛰어올라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현상금과 같은 액수가 되었지만 후세인의 종적은 게릴라 무장봉기의 종적으로만 추적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종전 후 이라크 민중의 게릴라식 무장봉기에 의해 사망한 미군의 수는 무려 70명에 육박한다(이는 공식 교전 당시 발생한 미군 측 발표 사망자 수 130여명에 비한다면 매우 놀라운 수치다). 미국의 군정통치에 저항하고 있는 이라크 내의 이 세력은 최근 거의 매일 하루에 2-3명의 미․영군 사상자를 내고 있으며 공격의 강도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송유관과 변전시설 등 사회기반시설이 폭파되고 있으며, 이유 없는 정전사태의 빈도도 늘고 있다. 이라크 전후 복구를 총책임지고 있는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 행정관은 현재 주둔해있는 15만 8천명의 미군주도 병력만으로 이러한 저항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병력 증파를 요청했고,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어려움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며 70여 개 국에 이라크 평화유지군활동을 요청하고 있으나 이것으로 이라크의 현재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9월까지는 이라크 현지인들도 견디기 어렵다는 혹서(酷暑)가 계속되고, 식수와 전력, 통신 등 기초 생활기반이 마비된 이라크에서 군병력의 장기주둔이 힘들다는 영국의 하소연과 함께 미국의 전후 재건사업은 거듭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약탈과 무질서로 얼룩진 미국의 전후구상 미국의 이라크 전후 구상은 아직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는 비밀에 부쳐져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부재했던 것이다. 다만 미국이 전후 유일하게 밝히고 있는 계획은 석유산업 재가동 프로그램뿐이다. 이라크 재건을 위한 비용은 올해만 2백 30억 달러(약 27조 6천억 원)가 소모되고 이후 완전한 복구를 위해서는 매해 150억 달러가 소모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이 엄청난 비용을 석유를 팔아 충당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가 석유수출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은 고작 년 간 140-160억 달러정도이고 2010년까지 기존의 생산량에 도달하려면 여러 해 동안 2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또한 기존 시설의 운영에도 연간 30억 달러가 사용되기 때문에 지금 석유수출로 이라크 재건비용을 충당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미국은 자금조달을 위해 이라크석유 민영화를 조속히 추진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 4월, 이미 미국무부는 '석유․에너지 워킹그룹'을 결성하여 전후이라크 석유정책을 여러 차례 논의하였다. 이 워킹그룹의 참가자는 극비에 붙여졌지만 전(前) 이라크 석유장관인 파드힐 찰라비를 비롯, 반후세인 지도자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라크 석유의 민영화와 동시에 석유회사가 비용을 투자해서 이익을 배분하는 생산물 분배협정 방식으로 외국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도출, 이를 전후 이라크 과도정부에 건의하는 것을 합의했다고 한다. '생산물분배협정(PSAs) 적용'이란 유정이 국유화된 산유국에서 유정을 개발하는 비용을 석유회사가 부담한 후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유정의 소유권은 그대로 산유국이 가진다. 이런 방식은 국가 통제가 심한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에 비할 때 석유회사들에는 매우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구상이 순탄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세계석유시장의 40%를 차지하는 OPEC과 침략 전 이라크에 유정 개발 사업권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재 미국은 무리한 이라크 석유산업 장악 프로젝트 이외에, 13년 동안 경제제재로 마비된 이라크의 경제재건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이라크 경제재건을 통해 2013년까지 미․중동자유무역지대(MEFTA)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6․23 요르단세계경제포럼). 이는 중동 내 모든 국가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고 이를 통해 중동과 북미를 연결하는 단일지역합의체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장미빛 구상의 실현은 이라크의 성공적인 재건여부에 달려있는데, "복구사업 독점-과도정부 인선주도-기간산업 민영화-중동 시장 개척-자유무역지대화"의 시나리오가 예정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는 이라크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미금융계의 이라크 진출을 본격화하는 것으로 우선 실행되고 있다. 미국은 '경제의 중심을 국영기업부문에서 민간기업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상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금융 시스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연일 발표하고 있다. 미 국제개발처(USAID)에서는 월가의 JP 모건, 시티그룹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이라크 진출을 서두르고 있으며 무엇보다 석유수출의 정상화를 통한 재건비용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내 주요 국영기업 100여 개를 내년까지 민영화 할 계획이다. 실제로 지금 이라크는 통제 불가능한 자유무역지대로 급변하고 있다. 미군정은 수입자유화를 위해 수입관세를 6개월 동안 면제하고 이라크 중앙은행과 민간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모아 '무역보증기금'을 설치, 이를 통해 외국자본유치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여파로 낙후된 이라크 국영기업은 모두 붕괴하고 있으며, 국내 상권이 소멸되고 대규모 실업사태가 만성화되어 가고 있다. 결국 국민의 50%가 실업상태인 이라크 경제와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미국의 조치는 전무하며 그 중심에는 거대 석유자본과 금융네트워크의 이익만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4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금융채무의 문제이다. 이는 채권자들의 이익이 고려되는 방향으로 사회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며 이는 곧 이라크 민중의 고혈을 착취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라크의 저항 이에 따라 미군정을 반대하는 이라크 내의 반미감정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이 행동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분열적이어서 아직 단일한 정치적 요구와 전망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 점령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핵심시설을 폭파시키는 게릴라식 무장봉기인데, 이는 조직적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산발적인 흐름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흐름은 처음에는 이라크 중부에서 사담 후세인의 페다인 민병대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현재는 '미국 점령군을 쫓아내기 위한 귀환'이라는 이름이 붙은 반미저항조직에 의해 전국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이 조직은 최초에는 후세인의 수니파 후원세력이었으나 미국의 침략과정에서 자금과 무기, 교통수단, 수신장치, 정보제공자를 갖춘 이라크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성되었으며 수니파 밀집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한편 이는 후세인을 추종하는 시리아 사우디아라바아 예멘 알제리 체첸 출신의 용병들을 합류시키고 있는데, 이로써 이라크 내의 저항은 범이슬람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장공격과 다른 흐름으로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시아파는 정기 주중기도회를 집회형식으로 전환하여 반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는 주로 이라크 남부의 나자프(Najaf)와 카발라(Karbala)와 같은 사원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종전 이후 망명했던 반체제 종교지도자들이 속속 귀향, 각각 과도정부 건설 과정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해 서두르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생존의 나락에 몰려있는 이라크 국민의 불만은 종교적 감정과 반미의식이 혼합되어 고조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전후 통치를 위해 장기간에 걸쳐 이라크 종교․정치세력의 포섭을 시도해왔고, 그 결과로 1992년 이라크민족회의(Iraqi National Congress, INC)가 설립되기도 했다. 또 미국은 이라크 내 중산층을 포괄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을 친미세력으로 규합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약 20년 동안 고착화된 이라크 민족주의의 실체와 그것의 근원인 이슬람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라크 국민의 60%가 신봉하고 있는 이슬람 시아파의 존재와 나자프와 카발라와 같은 사원도시가 가지는 상징은 이라크 내에서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정부 설립을 위한 이슬람 종교지도자 회의에 이슬람 시아파 종교세력은 일제히 불참했고,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I)는 "이라크는 이라크인의 과도정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개입 없는 이라크 민중의 자주적인 정권수립'은 이라크 내 다양한 이슬람 종파들의 최소한의 합의지점이 되고 있다. 이들은 과도정부 수립에서 미국을 배제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으며 "미국반대! 후세인반대!"를 기치로 가두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한편 시아파는 미국 군정 주도의 이라크 새 헌법제정 계획에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 입장을 이라크 내 최고 종교지도자인 알 시스타니의 헌법제정에 반대하는 율법명령(fatwa)발표로 대체하였다. 미국은 조기 총선 시 이들의 집권을 염려하고 있으며, 무력으로 총선을 연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지난 7월 7일, 갑자기 서둘러 '과도통치기구'를 2주 내에 출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폴 브레머 최고행정관이 발표한 '실질적인 행정권'을 갖는 '과도통치위원회' 구상은 당초 미 군정당국에 대한 자문역으로 엄격히 제한하려던 기존의 위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라크 내에서 확산되는 반미감정을 의식하고, 이슬람 종교세력을 적극적으로 순치 해야만 하는 미국의 다급한 사정이 엿보이는 조치이다. 또한 미국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후세인의 계보를 잇는 바아쓰당의 복권에 의존하는 등,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라크 민중의 저항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3년 동안의 경제제재에 이은 이라크 전쟁, 그리고 뒤이은 경제재건프로그램은 더 이상 짜낼 것이 없는 이라크 민중의 고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지배는 범아랍 민족공동체를 위협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종교를 경유한 새로운 정치적 투쟁이 아래로부터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봉착한 새로운 정치적 위험, 반전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전후 통치의 난관을 반영하듯,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 이라크 특별팀은 최근 미국이 이라크 재건 사업의 어려움을 시인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이라크 전후 재건과정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이는 이후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의 명분과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심각한 우려를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전후 재건 프로젝트는 현재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애초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위험 요소를 미연에 제거한다는 목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국가 건설'은 부차적인 고려 요소였다. 이라크 내의 종족․종교적 복잡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 미국의 전후 과도 정부 구상은 실질적인 정치적 공동체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민중의 해방'이라는 '정치적 목적(goal)'과 '후세인의 제거'라는 '군사적 표적(target)'이 괴리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정당한 전쟁'이라는 미국의 명분이 모순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또 단기 승전에도 미국을 위시로 한 세계 경제의 회복은 불투명하다. 이라크 재건 사업을 통한 부의 창출도 일부 초국적 자본에 돌아갈지언정 그 자체로 미국 재정 수입 증가로 귀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악순환은 부시의 정치적 위기로 귀결되고 있다. 이미 확인한 바대로 미국의 이라크 전후 재건 프로젝트는 이라크 국가의 재건과정이 될 수 없다. 애초부터 미국의 反테러전쟁은 명분 없는 ‘나쁜 전쟁’ 그 자체였으며 새로운 전쟁을 통해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를 지연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패배가 예정된 전쟁이다. 세계적인 자본의 위기와 대안적인 헤게모니의 부재는 강력한 군사적 우위와 명분 없는 전쟁으로 복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라크 전후 상황을 통해 바라본 미국의 무능함은 오히려 세계민중운동이 더욱 적극적으로 반세계화-반전 투쟁을 벌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전후 복구과정의 무모함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정치, 경제적 위기를 더욱 증대시키는 것으로 결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욱 용이해진 금융자본의 유입여부와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변수는 중동지역의 정치, 경제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라크 민중의 ‘해방’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애초부터 모순적이었던 ‘이라크 해방작전’의 기만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의 WMD에 대한 정보 조작이나, 침공과정에서의 국제법 위반의 문제를 굳이 폭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날로 확산되고 있는 이라크 민중의 저항을 어떤 관점으로 마주할 것인가? 그리고 침공이후 ‘이라크 해방’을 위한 진정한 해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목도하게 되는 이라크의 상황에서 우리는 엄혹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민중의 힘이 이라크에서도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폭력적이고 반인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현 시기 제국주의의 또 다른 방식의 폭력과 배제의 양태를 인식하고, 이 지역의 저항운동에 대한 모색과 새로운 연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PSSP
전략 및 국제 연구 센터(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가 평가사절단보고서(Assessment Mission Report) 형식으 로 7월 17일자로 제출한 "이라크의 전후 재건(Iraq Post-Conflict Reconstruction)"을 등록합니다. "현지 조사와 권고(A Field Review and Recommendation)"라는 부제처럼 6월 26일부터 7월 7일까지 수명의 연구· 조사원이 이라크 현지로 파견되어 실사·인터뷰·사정한 결과를 보고서로 엮은 자료로서, 폴 브레머 행정관 파견 및 취임과 '이라크 (과도) 통치위 원회(Iraqi Governing Council)'의 재건 사업 현황을 비판적으로 검토, 향 후 정책방향을 건의하기 위해 작성된 문건입니다(이후 12개월이 결정적이 라고 하면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우선 영역에서 정책권고안을 제시합니다. 1)공공안전을 확립할 것, 2)재건 과정에서 이라크인들의 '소유자로서의 자 격'(ownership, 즉 정책결정 과정에의 참여)을 국가적·지방적·지역적 수 준에서 확장할 것, 3)노동 유도와 기초경제 및 사회 서비스의 실시(일례 로 장기적으로는 사유화되어야 하겠지만, 고용을 위해 단기정책 차원에서 국유기업을 작동할 것을 제안합니다), 4)'연립임시당국(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 CPA)'의 핵심 기능을 탈집중화할 것, 5)이라크 국 민의 심리를 '의심에서 신뢰로', '회의주의에서 희망으로' 변화시키기 위 해 언론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것, 6)'새로운 재건 연합'을 위해 UN, G7, 세계은행(WB) 등 국제관계를 동원할 것, 7)CPA에게 자금을 사용할 완 전한 융통성을 부여할 것(예컨대 프로젝트별로 워싱턴의 사업재가를 일일 이 받지 않도록) 등입니다. 최근 이라크 재건(?)의 어려움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현지 실사를 통해 향후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 자료인만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링 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csis.org/isp/pcr/IraqTrip.pdf
* 작전계획 5030에 관해 <Global Security>와 <US News and World Report> 에 실린 기사입니다. OPLAN 5030 --------------------------------------------------------------------- In late May 2003, Secretary of Defense Donald Rumsfeld directed military commanders to develop a new approach for conflict with North Korea, Operations Plan 5030. The fact of the existence of OPLAN 5030 as well as details of this plan were first revealed in the 21 July 2003 edition of US News and World Report, in an article by Bruce B. Auster and Kevin Whitelaw. Critics of the plans provisions claim that it blurs the line between war and peace. Under the draft plan, US Forces Korea would conduct pre-conflict maneuvers to draw down North Korea's limited military resources. This might place such stress on the North's military that it might provoke a military coup against the country's leader, Kim Jong Il. According to Auster and Whitelaw, options available under OPLAN 5030 include flying RC-135 surveillance aircraft closer to North Korean airspace, provoking the DPRK to wear out scrambled interceptor aircraft and burn up jet fuel. Under another gambit, US commanders might stage a surprise or short-notice military exercises, provoking North Korean forces to disperse to [or from] bunkers. This could disclose details of DPRK war plans, and deplete reserse of food, water, and other materiel. The initial draft of 5030 included a variety of operations not included in traditional operational war plans, such as disrupting financial networks and strategic disinformation activities. Indeed, the entire OPLAN 5030 story might be part of such offensive information operations, creating a bewildering wilderness of mirrors for the historically paranoid North. * * * * * Nation & World 7/21/03 Upping the ante for Kim Jong Il Pentagon Plan 5030, a new blueprint for facing down North Korea By Bruce B. Auster and Kevin Whitelaw Within the past two months, Secretary of Defense Donald Rumsfeld has ordered U.S. military commanders to devise a new war plan for a possible conflict with North Korea. Elements of the draft, known as Operations Plan 5030, are so aggressive that they could provoke a war, some senior Bush administration officials tell U.S. News. Adm. Thomas Fargo, head of the U.S. Pacific Command, and senior Pentagon planners are developing the highly classified plan. The administration insiders, who are critical of the plan, say it blurs the line between war and peace. The plan would give commanders in the region authority to conduct maneuvers--before a war has started-- to drain North Korea's limited resources, strain its military, and perhaps sow enough confusion that North Korean generals might turn against the country's leader, Kim Jong Il. "Some of the things [Fargo] is being asked to do," says a senior U.S. official, "are, shall we say, provocative." There are several war plans for Korea--Plans 5026 and 5027, as well as 5030--that outline the different phases of war and the specific provisions for movements of large numbers of troops, aircraft carriers, and other war-fighting requirements. U.S. News has learned details of the prewar phase of the newest version of Plan 5030. Some officials believe the draft plan amounts to a strategy to topple Kim's regime by destabilizing its military forces. The reason: It is being pushed by many of the same administration hard-liners who advocated regime change in Iraq. The Pentagon only recently began offering details of the plan to top officials at the White House, the State Department, and other agencies. It has not yet been approved. A Pentagon spokesman declined comment. One scenario in the draft involves flying RC-135 surveillance flights even closer to North Korean airspace, forcing Pyongyang to scramble aircraft and burn scarce jet fuel. Another option: U.S. commanders might stage a weeks-long surprise military exercise, designed to force North Koreans to head for bunkers and deplete valuable stores of food, water, and other resources. The current draft of 5030 also calls for the Pentagon to pursue a range of tactical operations that are not traditionally included in war plans, such as disrupting financial networks and sowing disinformation. Against the wall. Some administration officials and military experts say they consider these tactics dangerously provocative. What would happen, they ask, if North Korea shot down an RC-135 or lobbed artillery at South Korea? "What the Pentagon is trying to do is balance the risk between ceding the initiative to the enemy or taking steps to influence it," says Andrew Krepinevich of the Center for Strategic and Budgetary Assessments. "But does war become more likely?" America's allies in the region--South Korea and Japan--think so. They, along with China, worry that if the Bush administration puts too much pressure on North Korea, Pyongyang could strike back in unpredictable ways. "Once we push them too hard against the wall," says a Japanese official, "we do not know what kind of reaction Kim Jong Il will have." It is the Pentagon's job to be ready for war--and critics of this war plan admit as much. The Pentagon work on 5030 was triggered by Rumsfeld's desire to reinvent the military in the wake of lessons learned in Afghanistan and Iraq--and that includes the way the nation plans for war. Says one official, "The secretary wants to make how we plan for conflicts responsive to changing situations." But if the Pentagon gives commanders more authority to take aggressive actions in peacetime, as contemplated in Plan 5030, it risks tripping over the president's--and Congress's--authority to commit the nation to war, says a senior official. "Who decides when to go to war?" the official asks. "Good question." With Thomas Omestad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