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태 분회장) “투쟁이 끝나고 나서요 … 사실 좀 힘들었습니다.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또 만족스럽게 투쟁을 마무리한다는 게 어렵기도 하고. 스스로 덜어내려고, 내려놓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뜨거웠던 투쟁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일상의 시공간으로 돌아온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법했다. 팔팔 끓었던 물이 다시 식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것처럼.
“우리는 준비가 잘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투쟁을 마무리하는 것도, 신영과 이별하는 것도”
(이희태 분회장) “그래서 그런가, 인터뷰 요청을 받고 사실 좀 막막했어요. 신영 투쟁을 기억하시는 많은 분들은 한창 투쟁을 하던 때를 기억하실 것 같은데. 투쟁할 당시였다면 버튼 누르면 나오듯이 술술 얘기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투쟁이 마무리된 후 그때의 온도를 많이 식히려고 노력을 해서. 독자분들이 원하시는 내용과 간극이 심할까 걱정이 되네요.”
뒤이어 이희태 분회장은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희태 분회장) “사실 사측과 타결을 했을 때(8월 말)만 해도 골프장 앞 투쟁이 길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던 시점이었어요. 사측에 대한 배신감, 사측의 거듭된 말 바꾸기로 인한 분노나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막막함 … 그런 감정들이 우리를 휘감고 있을 때였죠. 저 개인적으로도 그때는 어떻게든 빨리 사측을 협상자리로 끌어내서 합의를 받아내자, 이 생각만 하고 살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극적으로, 예상보다 급작스레 투쟁이 마무리된 거죠. 그러다보니 감정을 가라앉히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두가 꿈꿔온 합의의 순간이었지만 또 그게 어떤 모습으로 언제 찾아올지 예상할 수는 없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회사에 있던 농성장을 접을 때도 너무 급하게 나왔어요. 우리들이 10년 20년 일했던 회사잖아요. 회사 앞, 골목 어귀, 담장에 핀 장미 … 이 모든 게 우리 것이었고 또 추억이 깃든 곳이었는데. 나중에 한 조합원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 사진 한 장도 못 찍고 나왔다고. 이제 들어갈 수도 없는데. 뒤돌아 생각해보니 우리는 준비가 잘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투쟁을 마무리하는 것도, 신영과 이별하는 것도.”
제조업 고용대란,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사회진보연대) “지난 1년 동안 투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건 있었나요?”
(이희태 분회장) “올해 5월 1일 노동절 때 광화문 일자리위원회 앞에서 집회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신영, 성진씨에스, 레이테크 등 서울의 여성노동자들에게 벌어지는 고용참사 문제를 부각하면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고 했죠. 너희가 ‘일자리 정부’면 일자리를 만드는 것만 말고 지금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고 외쳤어요. 그게 일자리위원회의 역할이라고. 그래서 일자리위원회에 면담도 요구하고 시민분들께 선전전도 했죠.”
성진씨에스는 신영의 바로 옆 동네인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자동차 카시트 커버를 만드는 봉제업체다. 이 회사는 그야말로 ‘최저임금 꼼수의 전형’이었다. 덕분에 20년 이상 일해 온 여성노동자들은 언제나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줄 알고 살아왔다. 노조 설립을 신고하니 물량이 줄었다며 폐업 신고를 해버렸다.
한편 레이테크코리아는 폭행과 성희롱으로 얼룩진 대표적인 ‘블랙기업’이다. 문구용 스티커를 포장하던 여성노동자들은 사장으로부터 “시간당 1000원 가치밖에 없는 일” 따위의 폭언을 들어가며 일해야만 했다. 직장갑질을 없애려고 노조를 만들었더니 돌아온 건 문자해고였다.
두 사업장의 사연 역시 신영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대부분이 여성노동자고, 또 제조업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직장에서 쫓겨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2년에서 2017년 사이 비(非)반도체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여성노동자의 숫자는 19,787명에 달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감소한 남성노동자 숫자는 3,821명이다. 이 수치는 통계청 사업체조사에서 재구성하였다.) 제조업 고용위기는 특히 여성노동자에게 더 잔인한 면모를 드러냈다.
(이희태 분회장) “세 회사 합치면 조합원만 100명이 넘는데, 조합에 미처 가입하지 못하고 해고된 분들까지 치면 (일자리를 잃은 분이) 얼마나 더 많겠어요. 그 여성노동자들이 다 같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어요. 그래서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하고 또 광장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우리의 사연을 전달했죠. 조합원분들이 많이들 뿌듯해하셨어요. 저도 참 의미가 깊었던 투쟁이었던 것 같아요. 비록 일자리위원회랑 면담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지만요. (웃음)”
우리들의 장미축제
광화문에서 한바탕 판을 벌인 이야기를 하면서 이희태 분회장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투쟁하면서 즐거웠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희태 분회장) “즐거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원래 회사에서 여름이면 장미축제라는 걸 했어요. 회사 건물 담장에 5~6월 되면 장미가 피어요. 그때 점심시간 이용해서 부서별 운동회도 하고 출장뷔페 불러서 밥도 먹고. 그런 축제를 거의 매년 해왔어요. 올해도 장미가 피기는 피었죠. 그런데 막상 예전 모습은 없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다 떠났고 … 너무 휑한 느낌이 났죠. 누나들도 옛날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 … 하면서 많이 우울해하셨어요. 그러다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끼리 장미축제를 해보자고.
그래서 6월 13일인가, ‘우리들의 장미축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었죠. 막상 하고 보니 기존에 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사실 예전에는 제대로 참여하기도 어려웠거든요. 점심시간에만 딱 잠깐 하는 거라, 운동회고 뭐고 대다수는 현장 가서 일 준비하기 바빴거든요. ‘우리’들의 장미축제를 만들기 위해 모두 한 종목 이상은 꼭 참가하자고 했어요. 제기차기, 훌라후프, 배드민턴, 탁구, 링 던지기 … 다 같이 열심히 준비했어요. 지금까지 연대해주신 분들도 초대해서 같이 즐겼죠. 이번에는 진짜 우리가 주인인 장미축제를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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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취는 단결하고 싸우고 승리하는 모습 자체입니다”
(사회진보연대) “지금까지 지난 투쟁에 대한 소회, 과정에 대한 말씀 잘 들어봤습니다. 그럼 조합원분들은 그 지난 투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요. 함께 평가도 하고 정리도 하셨는지요.”
(이희태 분회장) “그간의 투쟁을 어떻게 정리할지 조합원들과 얘기를 나눠보았어요. 저도 그렇고 조합원들도 그렇고 마음속에 많은 아쉬움, 또 기쁨, 또 속상함 이런 것들이 있죠. 그래도 우리 40~50대 여성노동자들 수십 명이 흔들림 없이 오랜 시간 한데 뭉쳐서 끈끈하게 투쟁해왔다는 거는 다들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오시는 많은 지역의 선배님들이나 동지들이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투쟁이 길어지면 지쳐서 싸우거나 안에서 패가 갈리거나 그럴 법도 한데. 신영분회는 올 때마다 즐겁게 투쟁하고 분임조 별로 탄탄하게 신뢰를 가지고 운영되고, 또 그게 분회 전체가 하나로 뭉쳐서 잘 투쟁하는 것 같다고. 그런 게 참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우리의 성취가 물질적인 돈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진짜 호구처럼 살았잖아요. 회장은 우리가 열심히 일한 돈을 골프장에 쏟아 붓고,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허리띠 졸라매라고 하고. 차별이나 인격모독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어요.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잘 단결하고, 또 싸우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자체가 우리의 성취다, 어디서든 자부심을 가질만한 성취다, 어깨 펴고 당당히 살자, 이런 얘기를 서로 했던 것 같아요.
물론 남은 과제는 여전히 많지만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름 (우리의 투쟁이)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진보연대) “남은 과제라고 하시면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요?”
(이희태 분회장) “무엇보다 앞으로 투쟁의 기억을 가지면서 함께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성투쟁하면서 매일 만나던 우리가 투쟁승리보고대회 후에는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그러다 10월 중순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다 같이 모여서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우리가 왜 투쟁을 했고, 어떻게 투쟁을 했고, 또 우리가 얻은 성취는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에 가든 신영프레시젼 분회로서, 또 함께 싸워온 사람으로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자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투쟁이 끝나고 회사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조합원들이 앞으로도 개별조합원으로 남아 있으려 합니다. 우리 분회가 소속된 남부지역지회에서 우리 인연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투쟁이 중요한 만큼 앞으로 펼쳐질 ‘투쟁 이후의 삶’도 매우 중요할 터. 하지만 이희태 분회장의 고민대로 투쟁 뒤에도 인연을 이어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희태 분회장) “사측에게 받은 일자리기금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기사도 보도되기도 했죠. 그것과 별개로 두 달에 한 번은 꼭 조합원들 ‘다 모이는 날’을 하기로 했어요. 협동조합 참여하지 않는 분들도 포함해서요. 정기적으로 모여서 식사도 하고 서로 살아가는 것도 들어보려고 해요. 마침 10월에는 이런저런 노동조합에서 역사기행을 가거나, 여성조합원대회, 걷기대회 같은 일정이 많아서 모이는 날이 제법 되더라고요. 이런 일정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함께해온 것 잊지 말고 앞으로도 이어가자고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 11월 노동자대회에도 조합원분들과 함께 참가하려고 합니다. 많이 오셨으면 좋겠네요.”
(사회진보연대) “노동조합이 투쟁하고 나서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건 조금 생소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것도 앞으로 조합원분들과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하시게 된 것 같은데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희태 분회장) “40~50대 여성노동자들이 앞으로도 안정적인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 이걸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보자는 문제의식이었어요. 협동조합을 고민하게 된 것이. 그러다보니 굉장히 진지해지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정말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동시에 우리 조합원 분들이 바라는, 스스로가 존중받을 수 있는 일자리여야 하기도하고. 몇 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분이 협동조합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하고 계시고, 저희도 그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투쟁이 끝나면 고용이나 생계 등의 문제가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되고 결국 몇몇 개인 관계로 앙상하게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 조합원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그릇’으로 고민한 겁니다.”
다소 조심스럽게 말을 옮기는 이희태 분회장. 그만큼 지난 투쟁의 기억을 ‘좋았던’ 아니면 ‘힘들었던 한때’로만 남기지 말고 앞으로도 어떻게 다른 활동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기울였을 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다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사회진보연대, 그리고 다른 연대해주신 많은 동지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지 물었다.
(이희태 분회장) “마음 한편에서는 부채감 같은 게 있어요. 우리가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부터 ‘노동자의 미래’를 비롯한 지역의 동지들이 꾸준히 선전전을 해주셨죠. <독산바지락>(‘노동자의 미래’가 배포했던 선전물)에서 신영 문제가 다뤄질 때는 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그랬어요. 노조 결성 뒤에도 지역의 많은 연대단위나 노동조합이 헌신적으로 연대해주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해주셨어요. 그렇기에 저희가 부족하나마 이런 성과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진보연대 동지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희가 준비하는 길이 성공할 수 있을지, 혹여나 위기에 빠지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살피면서 조합원들과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그 과정도 지켜봐 주시고 또 응원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미래를 열어가는 건 다름 아닌 ‘지금부터 하는 행동’이다. 뜨거운 시간을 투쟁으로 보낸 신영프레시젼 분회는 이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즐겁고 또 끈끈한 투쟁을 보여준 그들이라면, 거뜬하게 넘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동근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은 발제문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정세인식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어느 계급도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기적 이해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라 평하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재 정세에 대한 반전의 계기를 모색해야만 하는 엄중한 정세”라고 말했다. 또한 “발제문의 평가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평가이자 운동의 일부인 사회진보연대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짚으면서 엄중한 정세 속에서 함께 대안을 논의해가자는 취지로 발제문을 작성했음을 밝혔다.
발제문은 2008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10년을 평가하는 두 가지 의미를 설명한다. 첫째로 이 시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위기가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시기이다. 1970년대 불황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반작용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의 최종적 결과로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다. 이후 10년간 미국은 비전통적인 수단까지 동원하여 위기를 막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출구전략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 헤게모니 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2008년 이후 10년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흐름 속에서 노동자운동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를 살펴볼 때,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자운동의 독자성과 대안은 사라지고 반보수전선을 매개로 민주당과 긴밀히 결합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내재적 비판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단사차원의 구조조정 투쟁이 정부지원 요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공공부문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중심으로 정부의 공약이행을 촉구하는 부차적인 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총노동전략의 부재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근거로 한 임금극대화전략과 조응한다. 결국 단사별 경제투쟁의 극대화는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과 격차를 심화시켰다.
한편 비정규직 운동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관철되는데, 비정규직 역시 단사별 임금극대화를 통한 정규직 추격을 목표로 하였고 결과적으로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비정규직과 나머지 민간의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화된다. 일반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격차의 구분선으로 두지만 실제로는 대기업·공공부문과 나머지를 경계로 노동자 내부의 격차가 발생한다고 재해석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연대임금-연대고용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발제자는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빠져있는 현재, 연대임금-연대고용은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연대임금-연대고용에 도전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취업자와 경쟁하는 실업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노조운동은 계급적 목표를 지향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런 관점을 견지했다면 발제문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공공부문의 운동이 ‘제대로 된 정규직화’ 일방향의 운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과 민간의 단결과 연대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었는지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이런 평가가 공공부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2000년대 이후 형성된 비정규직 운동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동반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총노동수준의 전략구상과 실현을 위한 조직혁신이 필요하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은 발제문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운동평가’, ‘경제위기 분석’, ‘앞으로의 방향성’ 세 꼭지로 나누어서 토론문을 제출하였다.
민주노총에 대한 발제문의 평가에 대체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토론자 역시 민주노총 내에서 여러 입장이 전혀 조율되지 못하고 있으며 총연맹 차원에서 그저 가맹조직의 현안요구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현실은 총노동수준에서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임을 이야기하면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도 그런 흐름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설사 대안적인 방안이 제시되어도 조합원 간의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아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노동운동에 명확한 좌표가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인데, 이를 혁신하기 위해 조직체계 혁신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그 구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다시 제대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단순히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넘어서서 “총연맹과 산별의 관계정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임”을 주장한다.
토론문은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도 짧게 언급하는데, “대체로 사회진보연대의 분석에 동의하지만, 현재의 국면을 ‘최종적’위기라고 명명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의문이다. 붕괴라고 하면 남미국가들의 붕괴양상을 떠올릴 수 있는데 한국은 그와는 다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라고 쟁점을 제기하였다. 이에 발제자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위기가 장기간 관리될 수 있을지는 주류 경제학자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진보가 어려워지고 헤게모니 교체도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윤율이 0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붕괴, 최종적 위기의 의미이고 그런 상황이 이미 벌어졌다는 것이다”고 답변했다. 더해서 “이와 같은 분석은 현재의 국면에서 노동운동이 경제위기가 구조적 위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이를 노동운동의 양보를 강요하는 빌미라고 인식하면서 기존의 투쟁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임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경계를 넘어서서 함께하기 위하여
서보람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본부 조직국장은 발제문에 대해 “발제문의 요지가 본인이 활동하는 공공부문과 연관이 많이 되어있어서 그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고 토론문의 취지를 밝혔다. 토론문은 전반적으로 “지금 시기에 어떻게 더 많은 노동자를 모아내고 싸워낼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최근 급격히 조직이 확대되었는데, 주로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직종에서 그러했고, 정작 공공운수노조가 주목했던 사회서비스(보육, 요양 등)에서는 조직 확대가 미미했다. 신규조합원들이 대규모 공공기관을 위주로 포진하고 투쟁도 이를 위주로 진행되는데, 비조합원인 대다수의 노동자는 전국에 퍼져있고 영세한 사업장 소속이 많다보니 노동조합의 투쟁이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이를 볼 때, 조직화의 ‘원칙’이 먼저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소위 ‘될 만한 곳’을 위주로 조직화를 진행하는 경향을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비정규직’이라는 공통점으로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이 기업과 기관별로 성과의 차이가 나고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쌓은 연대도 무너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양적으로 늘어난 조직을 어떻게 통합적이고 질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즉 어떻게 연대를 확대하고 무엇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인가에 대해 (묶어내는 방식은 쟁점이 있겠지만)기관별, 기업별 형태는 지양해야 하며 이를 넘어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강고한 지배계급에 맞서기 위한 이념의 재건이 필요하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국장은 발제문과 관련한 몇 가지 평가를 이야기하면서 토론을 시작하였다. 장석원 국장은 먼저 “발제문에서 ‘왜 노동운동이 촛불과 민주당에 끌려다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박근혜 퇴진촛불이 결국 제도적 장치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 남한의 정치체제가 굉장히 강고한데 이에 비해서 민중운동이 이를 넘어서는 것은 고사하고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노조운동의 이념이 점차 사라져왔던 역사를 짚는다. 노조운동의 초기, 전노협이 출범할 당시에는 ‘노동해방 평등사회’라는 구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라는 지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의했으나 오늘날에는 총노동차원에서 이와 같은 차원의 논의가 전혀 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는 “2000년대 이후 노동자운동은 이념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반자본주의 이념의 복원, 사회연대국가라는 전략의 확보, 이를 실현할 주체인 ‘사회운동정당과 사회운동노조’의 건설이 중요한 과제임을 제기한다. 관련하여 발제문의 단체협약적용범위를 확대하자는 주장과 연대임금-연대고용을 추구해야한다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왜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추구하는가 하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변혁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런 의지를 현재 노동자 운동이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결국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만들고 이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석원 국장은 최근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례를 보며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현대차 울산공장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3시간 정도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이는 모비스 등 부품사가 멈췄기 때문이다. 비슷한 측면에서 공장의 식당노동자들을 조직했는데, 3만 명 정도 되는 공장에서 식당이 3일만 멈춰도 작업이 진행될 수 없다. 이처럼 주변에서 압박한다면 원청노동자들도 가만히만 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너무 희망적으로만 보는 것일 수 있으나 변화의 조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자운동이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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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임금-연대고용, 함께 토론하고 실천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하여
발제문의 핵심 주제가 연대임금-연대고용이었던 만큼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가 임금(체계)과 관련한 토론을 주되게 진행하였다.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 임금체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다. 그는 “현재 사회의 큰 화두가 ‘공정함’인 것 같다. 특히 정규직 전환이 된 사업장에서 많이 나온다. 그런데 ‘임금’은 과연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입직을 위한 노력의 대가라고 흔히 인식하는데, 그 노력의 대가인 신분에서 오는 지대로서 임금을 사고하는 것은 봉건적인 사고가 아닌가 한다. 불로소득 추구가 만연한데 비슷한 맥락이다. 임금은 중요한 전장이다. 지대, 불로소득에 전선이 필요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노동자 단결을 확대·강화할 수 있는 임금체계의 형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노동운동 내에서 주체적으로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문에서 이를 언급한 데에 크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보람 조직국장은 “비슷한 생각이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데 들인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조합원부터가 반발한다”고 이야기하며 “남한사회에서 임금이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관, 어떤 기업, 즉 어디서 하는가’가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노동자들과 취업준비생의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볼 때, 정규직 전환 당시에 반대했던 이들의 왜 그런 입장이었는지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서보람 조직국장은 또한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공동의 기준을 논의해야 할 텐데, 이 부분이 방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어떻게 가야 할지 판단해야만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국장은 “연대임금은 교섭전략 같은 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가 현재 연대임금에 준하는 전략을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하후상박 같은 전략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것은 노동조합이 계급 일반의 이해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끝으로 김동근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은 “임금 문제가 비정규직, 공공기관 전반에서 어떤 식으로든 마찰과 이탈을 피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임금체계의 변화에 있어서 내 소득을 깎는 문제라고만 접근하면 그런 갈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러나 현재 정세가 노동자운동에게 강제하는 조건이 있기에 지금과 같은 호봉제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노동자운동의 목표, 즉 노동자 단결의 확대와 사회 변혁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그러한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본다”면서 “결국 정세에 대한 인식과 이념에 대한 토론을 어렵더라도 활성화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해서는 노동자운동이 마주한 조건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조 내부의 주체적 위기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였다. 노동자운동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시간만큼 그 방향성을 재고하고 변화시키는 데에는 더 많은 토론과정과 역량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토론회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타파하는 한방이 제출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려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확산한다면 모든 참여자가 공감했듯이 희망이 전무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