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정부는 한총련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정부는 지난 5.18 행사장에서의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11기 한총련 의장 등 시위참가자 119명을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이례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시위주동자 엄정처리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한총련 죽이기에 나섰다. 대통령의 행사참여를 방해했다는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총련에 대한 엄중 검거방침은 그동안 현 정부가 천명해 온 한총련 합법화와는 상충되는 입장이다. 그런데 왜 이럴까? 정부의 입장이 돌변한 것은, 대미 굴종외교에 대한 거센 비판을 조기에 봉쇄하려는 의도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대미 굴종외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안착 주장은 기만이다.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미국에 대한 주체적 입장을 천명해 왔다. 하지만 지난 파병사태를 비롯해 이번 방미에까지, 노무현의 행보에는 어떤 주체적 입장도 없고 다만 미국의 대북/ 대외 정책에 대한 비굴한 추종만이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번 방미 때는 법적 정당성 없는 군사정권에서도 차마 하지 않았던 대미 굴종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은 전남대 강연에서 '나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대통령이 되어 보니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더라...'라고 밝혔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이 자랑은 아닐 테지만, 그것도 개성이라고 굳이 뽐내려 하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인 한 미국 대북 강경 대응을 지지하는 발언은 심각한 문제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막지는 못할지언정 전쟁가능성을 높일 뿐인 선제공격까지 포함한 미국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은 대북 평화해결을 천명한 것과 전면 배치된다. 결국 노무현이 밝힌 대미 굴종외교를 통한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은 기만일 뿐이다. 한총련은 정당하다. 노무현은 광주영령들에게 무릎꿇고 사죄하라!! 노무현의 방미 결과를 놓고 보수일간지 까지 노무현의 방미외교가 대미 굴종외교에 다름 아니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민주당내에서 조차 노무현의 방미결과를 놓고 비판적인 입장이 발표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같은 시점에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 5.18 묘역 참배를 저지한 것이다. 5.18 민중항쟁 당시 미국의 학살방조를 넘어 적극적 개입을 밝혀주는 증거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미국의 충실한 하인이 되어 버린 노무현이 5.18 묘역을 참배한다는 것은 돌아가신 열사들과 5.18을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광주 민중들에 대한 모독이다. 노무현의 행보를 막아선 것은 이 땅의 양심과 열사들의 뜻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은 한총련을 탄압함으로써 향후 방미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한 것이다. 또한 이번 노무현의 광주 5.18 묘소참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가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다른 곳도 아닌 망월동에 감히 군인신분인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묘소를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할 권리는 없다. 결단코 없다. 묘역 앞에서 들려오는 비판의 목소리를 마주하면서,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경호를 핑계삼아 부시 앞에서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던 가련한 위신을 뽐내는 계기로 이용하려는 자에게, 누가 됐든 그 오만함을 꾸짖지 않을 수 없으며, 만일 그런 행동이 없었다면 망월동의 존엄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더럽혀졌을 것이다. 그 당연한 행동을 한총련이 했을 뿐이고, 그 점에서 그/녀들이 한 것은 망월동의 명예를 지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적반하장격으로 자신의 친미 굴종외교에 반성과 경찰력을 동원한 것에 대한 사죄는커녕 한술 더 떠 자신이 광주민중항쟁을 완성하겠다는 모욕적인 말들을 늘어놓고 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에는 관심이 없고 언론개혁만을 부풀리고 있는 것이 그리고 어떠한 정책적 이념적 지향도 없는 정계개편에 열을 올리는 것이 과연 5.18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인가. 전투경찰을 동원해 묘소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5.18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인가. 노무현이 진정 5.18 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면 아니 적어도 훼손시키지라도 않으려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정부는 한총련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얼마전 대법원 판결에서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최종적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기만적이게도 한총련 합법화를 줄곧 입에 담아왔다. 5월 18일 시위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은 정부가 한총련등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을 조금도 중단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학생들의 대표자라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더해 정부는 청년학생들의 의로운 투쟁마저 괘씸죄를 적용해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총련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그리고 행사장에 전투경찰을 동원한 것에 대해 광주영령들과 시민들에게 사죄하라!! - 2003년 5월 19일 사회진보연대
[진보강좌] 5강 반세계화운동과 세계사회운동의 흐름의 발제문입니다. 이창근(민주노총 국제부장) 동지의 글입니다. 발제문은 2개입니다. 하나는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운동 평가와 개괄]란 글이고, 또하나는 [반WTO, 반전운동과 노동자]란 글입니다. ---------- 사회진보연대 교육국 ----------------------------
미국 민주당 기관지라 칭할만한 <<더 네이션(The Nation)>>에 2003년 4월 21일자로 게재된 데이빗 코트라이트(David Cortright)의 "지금 우리가 해 야하는 것(What We Do Now)"을 등록합니다. 5월 15일자 한겨레(!)에서 미국 내 반전평화운동에 대한 평가 글이라고 소 개하길래 찾아봤더니,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 로 광범위하게 형성된 반전평화 운동이 이라크 종전 이후 어떤 목표를 가 지고 나아갈 것인지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너무 빠른 종전이 우리 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 의제를 제안합니다. -국방부가 아닌 민간이 집행하는 이라크 국민에 대한 대대적인 인도적 지 원과 경제적 보조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군사적 서비스를 제공한) 페르시아만에 파견된 미 군 장병(특히 사병들)에 대한지지, 지원 -군대의 귀환 -이란에 대한 전쟁 및 군사적 위협 반대 -석유를 위한 전쟁 반대 -중동 지역에서의 평화(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중동 지역에서 무장해제("대량살상무기로부터 자유로운 지대", 즉 이라크 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 것은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어야 함) 이어서 저자는 부시 행정부의 선제적 예방전쟁 전략을 비판하면서 대량살 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더 안전하고 비용이 덜 드는, 궁극적으로는 더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대안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저자는 이라크와 북한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잠재국의 무장해제를 지지한 다고 밝히면서 (이들에 대한) UN 무기 사찰단의 엄정한 감시, 외교적 해 결, 군사적 수단이 아닌 정치적 수단을 통한 정책지지 유도 등을 강조합니 다. 동시에 무장해제는 궁극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NPT 에 대한 미국 및 핵보유국의 이중적 관점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자는 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한 강제력이 필요하다면서 결국 UN의 권위 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무기력하게 후퇴합니다. 또 무장해제를 위해 경제 적 원조와 안전보장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도 저자 는 UN 안보리의 승인이라는 조건만 갖춰진다면 미국은 필요한 경우 군사 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미끄러지고 맙니다(물론 역으로 안보리의 승인이 없다면 무력개입은 불가능하지만...). 결론적으로 저자는 미국의 정치적 방향과 지도력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 하다고 하면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행정부의 재선을 저지하는 것 이 당면한 과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반전평화운동, 그 중에서도 대중적인 시민들의 운동이 즉각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초 제가 기대했던 반전운동에 대한 평가글로서는 턱없이 거리가 먼 것이 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아마 미국 내에서 반전평화 운동에 동참했 던 대중들의 심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참고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특 히 결론부분의 경우, 낙천낙선운동-햇볕정책-(반미없는) 촛불시위-노무현 당선-정계개편으로 이어지는 국내 지형과 유비되어 흥미롭습니다. 한편, <<더 네이션>>에 기고되는 다른 글 중에서도 부시의 일방주의적 정 책을 비판하면서 UN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는 '순진무구한' 글들이 많이 있던데요, 저의 경우 민주당( 및 이의 지지세력)이 다음 대선에서 이를 강 력히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섣부를지는 모르겠지만 911 이후 '선제적 예방전쟁'은 이전의 '페리 프로세스'를 대체하는 미국 의 새로운 대외전략(당파를 초월한)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thenation.com/docprint.mhtml?i=20030421&s=cortright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작성한 (2003.5.7) "이라크 전후 계획(IRAQ Postwar Plan)"입니다. 간략한 문답 식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종전선언 이후 이라크 재건 계획에 관한 미국의 구상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 생각됩니다. 질문의 내용은 대략 다 음과 같습니다. 참고하십시오. "미국은 전후 이라크를 통치할 계획이 있는가?" "누가 전후 계획의 책임이 있는가?" "그 계획은 실제로 어떻게 실행되어 왔는가?" "미국은 전후 이라크에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준비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명확히 무엇인가?" "전후 이라크에 대한 접근법에서 국무부와 국방부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통령 특사로서 브레머(Bremer)가 임명된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본 글에 따르면 브레머는 레이건 행정부 당시 국무부관리이자 대테러리 즘 책임자라고 함) "그것들의 반대 이유는 무엇인가?" "브레머의 임명으로 인해 정책[결정]은 국무부의 접근법에 가깝게 될 것인 가?" "ORHA(재건 및 인도적 지원 부서, Office of Reconstruction and Humanitarian Assistance)의 계획은 무엇인가?" "약탈과 무법은 사라졌는가?" "가너(Jay M. Garner, 퇴역장군) 팀은 충분한 준비가 되었나?" "이라크 과도(interim) 정부에 대한 타임테이블은 무엇인가?" "다른 나라들은 권력의 진공 상태를 채우기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이는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가?" "현재 얼마나 많은 미군이 이라크에 있는가?" 원문링크는 다음을 참고 하십시오. link_http://www.cfr.org/background/background_iraq_postwar.php
<<뉴 레프트 리뷰>> 2003년 5-6월호에 Editorial로 실린 타리크 알리의 < 이라크 재식민화>를 등록합니다(Tariq Ali, <RE-COLONIZING IRAQ>, New Left Review 21, May-June 2003. 2003.4.8 작성). 최근 국제적 반전운동이 1세기 전의 반전운동(특히 제2인터내셔널)과 어 떤 차별점이 있는지, 미국 부시 행정부 내의 매파들의 전략(특히 911 이 후)은 무엇인지, 이번 전쟁을 둘러싼 각국의 입장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변화, 분기하고 있는지, 이라크 점령 이후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 번 전쟁이 미국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결론적으로 국제적 반전운동(세계사 회포럼을 포함하여)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개괄적으로 서술하 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newleftreview.net/NLR25501.shtml
역사는 역시 좋은 방향으로 진행해 가지 않는 것인가? 이라크 침공의 승리감에 들떠 있는 미국의 지도부는 4월 14일 잇달아 시리아에 대한 경고를 쏟아 놓았다. 대통령 부시는 "우리는 시리아에 화학무기가 있다고 믿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고, 파웰 국무장관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를 시리아가 제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외교적, 경제적 또는 다른 성격의 가능한 조처들을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술 더 떠서 강경 매파의 대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12-15개월 동안 우리는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실험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며, 또 시리아인들과 다른 이들이 국경을 통과해 이라크로 들어가도록 시리아가 허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전문에는 미국인과 연합군을 살해하면 포상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우리는 시리아가 몇몇 이라크인들을 받아들이거나 머물도록 하거나 통과해서 다른 나라로 가도록 허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이라크 다음 미국의 목표는 어디일 것인가를 놓고 많은 예측이 있었는데, 이제 그 목표가 시리아로 좁혀지고 있는 것일까? 시리아에 대해 미국이 퍼붓는 비난은 이라크 전쟁을 개시할 당시 내세운 두 가지 명분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하나는 테러리스트와의 연계이고, 두 번째는 대량살상무기다. 아랍권의 대표적 반미국가인 시리아는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시리아 국경을 봉쇄하지 않고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려는 아랍 자원병들이 이라크에 들어가도록 허용했으며 바그다드 함락시 도피한 이라크의 핵심 인물들이 국경 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테러조직'인 이라크와의 연계--더 이상 알카에다는 문제가 아니다--를 증명해 주는 '불량국가'이자 테러지원국의 징표 아닌가. 그리고 미국이 아직 이라크에서 찾아내지 못한 대량살상무기가 시리아에 있다는 정보가 있으니 어찌 이 위험한 불량국가를 눈앞에 두고 정의의 전쟁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눈엣가시인 이란도 문제겠지만, 시리아의 경우 이라크 전쟁을 쉽게 연장할 수 있는 구실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인 데다가 중동에서 영향력도 크고 군사적 역량도 이라크보다 훨씬 약하다는 계산이 선다면, 그리고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기보다 서쪽으로 돌리는 편이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리비아로 이어질 중동의 평정에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고 판단한다면, 전선이 곧 시리아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 세계질서 구상을 주도하는 핵심 브레인으로 알려진 대표적 매파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란혁명 직후인 1980년대부터 이란보다 이라크가 잠재적으로 미국에 훨씬 더 위험한 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라크의 아랍권에 대한 파급력이 더 크다는 견해일 것이며, 이 때문에 이라크로부터 시작된 연계고리를 끊어나가는 방향도 동쪽보다는 서쪽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의 구상에도 맞는 일일 것이다.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미국의 세계전략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것인가? 이라크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거론되는 논리 중 하나는 이라크 전쟁의 배경이 석유자원이라는 것이다. 50년 후로 예견되는 자국 내 매장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해 미국이 중동의 석유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석유자원은 사태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사태의 결론에 따라 얻어지는 부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매파의 구상은 그보다 훨씬 더 심대하다.
고삐 풀린 미국과 세계질서의 반동적 재편 백 승 욱 | 편집자문위원, 한신대 교수 다음 목표는 어디인가? 역사는 역시 좋은 방향으로 진행해 가지 않는 것인가? 이라크 침공의 승리감에 들떠 있는 미국의 지도부는 4월 14일 잇달아 시리아에 대한 경고를 쏟아 놓았다. 대통령 부시는 "우리는 시리아에 화학무기가 있다고 믿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고, 파웰 국무장관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를 시리아가 제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외교적, 경제적 또는 다른 성격의 가능한 조처들을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술 더 떠서 강경 매파의 대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12-15개월 동안 우리는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실험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며, 또 시리아인들과 다른 이들이 국경을 통과해 이라크로 들어가도록 시리아가 허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전문에는 미국인과 연합군을 살해하면 포상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우리는 시리아가 몇몇 이라크인들을 받아들이거나 머물도록 하거나 통과해서 다른 나라로 가도록 허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이라크 다음 미국의 목표는 어디일 것인가를 놓고 많은 예측이 있었는데, 이제 그 목표가 시리아로 좁혀지고 있는 것일까? 시리아에 대해 미국이 퍼붓는 비난은 이라크 전쟁을 개시할 당시 내세운 두 가지 명분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하나는 테러리스트와의 연계이고, 두 번째는 대량살상무기다. 아랍권의 대표적 반미국가인 시리아는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시리아 국경을 봉쇄하지 않고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려는 아랍 자원병들이 이라크에 들어가도록 허용했으며 바그다드 함락시 도피한 이라크의 핵심 인물들이 국경 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테러조직'인 이라크와의 연계--더 이상 알카에다는 문제가 아니다--를 증명해 주는 '불량국가'이자 테러지원국의 징표 아닌가. 그리고 미국이 아직 이라크에서 찾아내지 못한 대량살상무기가 시리아에 있다는 정보가 있으니 어찌 이 위험한 불량국가를 눈앞에 두고 정의의 전쟁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눈엣가시인 이란도 문제겠지만, 시리아의 경우 이라크 전쟁을 쉽게 연장할 수 있는 구실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인 데다가 중동에서 영향력도 크고 군사적 역량도 이라크보다 훨씬 약하다는 계산이 선다면, 그리고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기보다 서쪽으로 돌리는 편이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리비아로 이어질 중동의 평정에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고 판단한다면, 전선이 곧 시리아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 세계질서 구상을 주도하는 핵심 브레인으로 알려진 대표적 매파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란혁명 직후인 1980년대부터 이란보다 이라크가 잠재적으로 미국에 훨씬 더 위험한 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라크의 아랍권에 대한 파급력이 더 크다는 견해일 것이며, 이 때문에 이라크로부터 시작된 연계고리를 끊어나가는 방향도 동쪽보다는 서쪽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의 구상에도 맞는 일일 것이다.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미국의 세계전략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것인가? 이라크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거론되는 논리 중 하나는 이라크 전쟁의 배경이 석유자원이라는 것이다. 50년 후로 예견되는 자국 내 매장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해 미국이 중동의 석유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석유자원은 사태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사태의 결론에 따라 얻어지는 부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매파의 구상은 그보다 훨씬 더 심대하다.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기 위해 이들 매파가 미국 내에서 왜 점점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이런 매파의 목소리는 늘 존재해 왔고 가끔씩 대통령 선거에도 등장하였지만 소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매파들이 부시를 후보로 만드는 기간에 상호결집하였고, 특히 9.11 이후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신문지상에 많이 등장하듯이 매파들은 서로 상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 원리주의자들과 군산복합체를 배경으로 한 보수파들이라는 오래된 뿌리 외에, 최근 이념적 틀을 만들어 주고 있는 신보수파가 결합한 것이 이들 매파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월포비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신보수파는 다른 보수파들에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을 했다. 9.11이 일어난 4일 뒤 국방부 부장관인 월포비츠는 테러와의 전쟁을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전쟁을 개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 주장이 곧바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1년 반의 준비와 명분쌓기를 거쳐 최초의 계획대로 전쟁이 수행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알카에다와의 연계도 대량살상 무기의 존재도 아니었고,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중동의 새로운 질서짜기였다. 다시 앞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미국 내에서 이들 매파의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고, 심지어 한때 좌파라 자칭하던 자들 사이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지가 늘어가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 다른 모든 미국의 정치세력--민주당이건 공화당 내 현실주의자들이건--이 현상유지에만 급급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종이호랑이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인데 반해, 이들 매파는 비전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글로벌 전략이 오직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되었건, '불량국가'가 되었건 사방에서 미국이 모멸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다가 급기야 자본과 군사력을 표상하는 미국의 두 상징적 심장부가 테러공격을 받게 되도록 "너희는 무엇을 하였는가?" "매파의 논의에 완전히 동의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럼 지금 이들 말고 누가 미국의 쇠퇴를 진정으로 걱정하는가," 그리고 자기도취에 빠진 미국인의 말투대로 "누가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걱정하고 새질서를 짜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들 말고." 'TINA only but hawks' 이들 매파는 '틀을 완전히 새로 짠다'는 점에서 기존의 세력들과 다르다고 미국인들에게 수용되고 있다. 탈냉전의 국제질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들은 오랜 기간 준비해 왔고 세력을 모아 왔다. 이들에게 군사력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다. 실제 사용하지 않는 군사력은 쓸모 없는 것이다. 군사력은 실제 사용될 때만 '충격과 공포'가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세계는 잠재적인 적들이다. 제 1 전선은 미국에 대해 도발하고 있는 이른바 '불량국가'와 대량살상무기를 지닌 나라들. 제 2 전선은 겉으로는 미국에 협조하는 듯 하지만 그 배후에서 위험세력이 암약하는 나라들--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파키스탄, 터키 등등, 제 3세력은 앞으로 미국에 위협이 될 강국들--러시아, 중국, 그리고 제 4세력은 미국을 모멸하고 무시하기 시작한 유럽 국가들, 이 모두가 잠재적 적들이다. 미국의 우군은 '의지연합', 거기에는 영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아마도 일본과 한국 정도가 포함될까. 새로운 질서짜기는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는 없지만, 중단될 수 없는, 한꺼풀씩 벗겨나가는 포위공격이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북한 문제를 살펴보자. 이들에게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특히 최근 유화적 제스추어를 보이는 것--은 전략적 변화가 아닌 전술적 변화일 뿐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뿐 대응의 기본 원칙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중동에서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할 동안 시간을 벌자. 그 다음은 원칙대로." 북한에 대한 이들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는 없다. 왜 승리의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이 시점에 태도를 바꾸어야 하겠는가? 승리자의 아량으로? 한국이 파병을 했기 때문에? 중국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두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전술적 고려가 상황을 일시 정전상태로 가져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동의 상황이 바뀌면 동아시아 위기는 다시 급상승할 수 있다. 유엔이나 유엔안보리가 결국 이라크전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던 것처럼, 명분을 쌓는 별도의 과정만 충실히 밟아간다면 전쟁위기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이 과정이 북미간의 2자적 틀로 가건 다자주의적 틀로 가건 상황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다자주의는 미국에게 전쟁 정당화의 구실을 해 주는 한에서만 유의미했고, 미국이 전쟁개시를 결정한 순간 다자주의는 곧바로 폐기될 수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다자주의란 다자의 이견들을 조정하고 다자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틀이 아니라, 다자가 북한에 압력을 가해 미국의 일방주의를 정당화하는 틀이다. 이런 점에서 이 틀은 다자주의라기보다는 다자적 일방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자주의적 틀 속에서 제기되는 조건과 압력을 북한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할 때, 다자주의 자체가 미국이 이 다자주의의 틀을 폐기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지고 특히 2002년 9월 미국이 '예방전쟁'의 권한을 선언하자 북한의 선택지는 매우 좁아졌고, 이라크 전쟁으로 이는 더욱 좁아졌다. 4월 6일 북한은 "이라크가 보여 준 바에 따르면, 사찰을 통해 무장해제를 허용하는 것은 전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을 촉발시킨다...... 이 때문에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더라도 전쟁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현재 한반도 위기 상황은 1994년 제네바 협의 전의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1994년 당시 북한에 대한 공격 구상은 아직 새로운 세계구도 속에서 정리되어 제출된 것은 아니었다. 반면 현재는 신보수파를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의 구도가 짜여가고 있고, 여기서 북한체제 전복은 필수 요소로 되고 있다. 더구나 이 글로벌 전략의 초반부가 이미 실행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꾸려는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다 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 어떤 양보도 미국의 결정된 노선을 전환시킬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제약되어 있다는 점 또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결코 상황을 제네바 협의 당시 수준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정세 및 관련국가들의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며, 이 때문에 미국 지도부 내에도 북한 문제 처리방식을 둘러싼 이견들이 상존하기 때문에 아직도 여러 변수가 작용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경노선의 입지점이 전에 비해 훨씬 커진 것은 사실이고, 중동에서의 사태전개 방향에 따라 이 문제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현상유지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 중동에서 드러낸 군사적 '충격과 공포'의 효과와 다른 한편에서 남한이나 중국의 압력을 통해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선에서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일 뿐이다. 다시 월포비츠로 돌아가 보자. 본래 민주당원이었다가 레이건 정부에 들어가 레이건 정부 하에서 국방부 아시아담당 차관보로 근무한 월포비츠는 미국의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하던 마르코스를 1985년 전복하도록 레이건 정부를 독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1986년에서 88년까지 인도네시아 대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어, 아시아에서 하나의 국가를 어떤 시점에 전복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노하우를 상당히 축적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을 수행한 이후 미국은 이라크와 북한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정을 키워갈 수 있다. 다시 말해 포탄을 쏟아 부으면 북한 또한 안에서부터 자멸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을 수 있다. 전후 복구 문제도 북한의 경우에는 남한을 통한 대리정부 수립의 길이 훨씬 더 수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사담의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북한의 경우 포스트-전쟁 상황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고, 미국이 펴나가는 조치들은 북한 길들이기가 아니라 전쟁 후를 구상한 남한 길들이기라고 생각한다면 과도한 것이라 할 것인가? 미국이 북한과 일시적으로 대화를 개시하는 것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본격적 공격에 들어가기 위한 명분쌓기의 과정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계획의 완전 포기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재래식 군사력의 완전무장해제도 요구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여러 첩보를 조금씩 흘릴 것이다. 이라크 전쟁개시를 위해 미국이 위성사진--나중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을 수시로 들이밀며 화학무기 개발의 증거를 무수히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전쟁종료 후에도 대량살상무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이남 이전을 얼마나 빠르게 추진하는가는 이와 관련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는 문제일 것이다. 헤게모니 쇠퇴와 세계질서 재편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한 세기 전으로 잠시 돌려보자. 역사의 비교는 현재를 새롭게 조명해 줄 수 있으니까. 19세기 영국이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로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바탕은 영토제국주의에 기반한 전지구적 상업네트워크의 형성이었다. 영국의 해군력을 통해 지탱된 이 상업네트워크에 기반해 영국은 식민지의 약탈과 식민지에서 저가의 원료공급을 통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세계의 공장으로서 영국의 제조업 성장을 지속시켰고, 이른바 산업혁명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1873년을 기점으로 영국은 생산의 팽창이 중단되고 급속한 금융화의 국면에 들어섰고, 영국을 잇는 후발 헤게모니 경합국들 사이에 영국의 영토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의 모델을 모방한 경쟁이 첨예화되었다. 쇠퇴하는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의 금융자본이 새로운 헤게모니 경합국들 사이의 무력경쟁의 자금줄이 되었고, 영토제국주의적 확장을 펴 나간 독일과 대륙적 국가로서 등장한 미국 사이의 경쟁은 두 차례 헤게모니 전쟁을 거쳐 결국 미국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 미국은 압도적인 생산력을 바탕으로 금-달러 본위제와 고도금융의 통제를 통해 국제금융체계를 복구하고 식민지 독립과 UN 체제 건립을 통해 영토제국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림으로써 경쟁자를 제거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미국을 '자유세계'의 일반적 모델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1970년부터 시작된 미국헤게모니의 쇠퇴의 조짐은 한 세기 전의 헤게모니 경쟁의 구도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세 가지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1980년대 이후 세계의 자본은 이전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 다시 집중되고 있고, 이것은 1990년대에도 지속되어 미국의 금융화를 더욱 촉진시키고 이른바 '신경제'의 환상을 촉발하였다. 물론 그 대가는 세계의 여타 지역의 오랜 경기침체로 나타났다. 이는 영국의 금융자본이 헤게모니 경합국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대립을 촉발하는 자금줄이 된 한 세기 전의 상황과 매우 다른 상황이다. 두 번째, 세계의 군사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미국에 집중되어 있어, 이제 세계 모든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을 합하여야 미국의 국방비 지출수준과 맞먹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생산의 측면에서 본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더라도 당분간은 한 세기 전과 같은 중심부 국가사이의 군사적 헤게모니 경합이 뚜렷하게 등장할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 세 번째, 영국 주도의 영토제국주의의 세계질서의 와해를 불러온 두 가지 축은 중심부 국가 간의 제국주의전쟁과 더불어 식민지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응책이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는 식민지의 독립을 통해 영토제국주의적 힘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미국의 초국적기업 중심의 세계질서의 운영을 위한 새로운 틀이 가능한 민족국가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주의 프로젝트를 통한 이 구도의 지원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20세기말 이런 민족국가 공동체의 틀은 상당히 그 기반이 와해되고 있다. 이는 특히 냉전의 해체와, 그에 따라 미국이 지원해 온 발전주의 프로젝트가 종료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적지 않은 '제 3세계' 국가들 사이에 국가구조 자체의 붕괴가 나타나면서 더 이상 '국가이하' 형태로 나타나는 갈등을 민족국가를 통해 봉합할 수 없는 위기가 일반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질서의 위기는 북-북 국가들 사이에서보다는 북-남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북-남의 갈등은 한 세기 전의 식민지해방운동과 같은 형태의 대립구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당시 제국주의 질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던 식민지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절합이라는 조건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 가지 모두 미국의 절대우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클린턴의 달러-월스트리트 레짐은 미국으로 자본의 집중, 주식시장의 전례없는 팽창, '신경제'를 통해 미국헤게모니의 재부활의 장밋빛을 그려주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매파들이 미국의 위기를 외치고 나온 것이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보는 그들은 무엇인가 여기에 결단을 내릴 시점이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어디로? 위에서 살펴본 미국에 유리한 세 가지 요소들은 사실상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생산의 팽창이 아닌 금융팽창에 기반한 '신경제'의 위기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의 과열과 특히 IT 거품, 기업과 가계의 부채 증가, 신규투자의 정체상태, 외국자본이 보유한 미국 자산 비중의 급속한 증가 등 미국 경제는 1950-60년대 전성기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군사력 면에서 절대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전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데, 미국은 더 이상 2차대전후 그런 것처럼 미국을 정점에 둔 다자주의적 틀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모든 곳에서 다른 나라들과 충돌하면서 일방주의를 펴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늘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낳게 된다. 다음으로, 과거 사회주의운동이나 민족해방운동 같은 조직적 저항이 없고 중심부 내의 조직적 저항의 기반도 상당히 와해되었지만, 제어되지 않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새로운 혼란의 요소들은 늘어났고, 이는 미국적 자유주의에 의해서도 민족국가의 틀을 통해서도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거부는 늘어가고 미국은 이제 더 이상 '헤게모니적'으로 세계를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미국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이제 매파들은 스스로를 '제국' 또는 '제국주의'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다만 좋은 제국주의와 나쁜 제국주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미스테리 중 하나는 이들이 그리는 경제적 대차대조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아다시피 레이건은 통화주의와 공급경제학을 수용해 대대적인 긴축정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별들의 전쟁'을 벌이면서 국방비 지출을 엄청나게 늘려 재정적자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려놓았다. 미국이 더 이상 2차대전 후 베트남 전쟁 시기까지 지속된 군사적 케인즈주의 방식을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아버지 부시가 걸프전에서 이기고도 재선에 실패한 것은 이런 경제적 부담을 헤어나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클린턴이 당선된 직후부터 미국경제가 좋아진 것은 또 반대로 레이건 하에서 지속된 미국경제의 구조조정과 금융화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건 클린턴은 공화당보다 더 공화당적이라는 경제정책을 추진한 결과 국방비를 줄이지는 않았지만 사회보장비를 대대적으로 삭감하여 재정적자를 재정수지 균형으로 돌려놓아 1998년부터 연이어 4년간 재정균형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미국의 금융화가 지속될 수 있고, 달러강세가 지속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9.11 이후 전쟁준비가 가속화하면서 지난 해 미국은 다시 1천5백억 달러의 재정적자가 발생하였고, 이 추세는 앞으로 200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비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반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나마 대폭 삭감된 사회보장비용을 더욱 삭감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제국'을 지향하는 미국은 그 팽창의 비용을 무엇을 통해 벌충할 것인가? 제국의 팽창은 새로운 부를 그 제국에 귀속시킴으로써 계속 팽창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은 영토의 확장을 약탈의 확장을 통해 벌충하였고, 약탈과 수탈이 로마의 부를 지탱해 주었다. 물론 그 유지비용의 증대와 주변으로부터의 반란의 증가는 결국 로마제국을 무너뜨렸긴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네덜란드를 잇는 헤게모니 계승 전쟁이 벌어진 18세기 말-19세기초의 경합은 해상무역권의 독점과 금융중심지의 장악, 그리고 약탈가능한 대규모 식민지의 확보라는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되었고, 여기서 승리한 영국은 대서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해상무역권을 장악하고 특히 인도의 무굴제국의 대대적인 약탈을 통해 그동안의 부채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세기 미국의 헤게모니는 초국적기업을 통한 세계시장의 장악과 이를 통한 세계적 부의 미국으로의 집중을 통해 지탱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미국의 제국적 확장은 어떤 부의 확장을 동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새로운 부의 이전 메커니즘이 미국을 다시 헤게모니로 부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결국 미국은 늘어나는 군사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아갈 것인가? 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통해 독점할 석유자원이 미국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주요한 자금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라크에 매장된 원유는 지표층 가까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배럴당 5달러 수준으로 채굴비용이 매우 저렴하여,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석유는 사실상 미국정부가 아닌 미국인 자본가들에게 사유화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막대한 부를 소수 미국인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소수 미국인 자본가들의 부가 증대한다고 이것이 미국 재정수입의 증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세계화 하에서 세계의 자본이 미국에 집중되고 금융자본으로 부의 재분배가 급속하게 진행된다고 해서 미국의 재정적 기반은 튼튼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취약해지고 있는 것처럼, 이 경우에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세계자본주의의 금융적 팽창 국면에서 나타나는 미국자본주의의 초국경적 금융적 성격과 미국헤게모니의 영토주의적 성격 사이의 모순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이권 독점과 관련해서도 그 모순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의 군사적 팽창은 정치적 방식을 통한 달러의 힘과 미국으로의 자본 집중을 당분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 속의 '제국'적 틀 하에서 잠재적 경합지역을 영토적 정치적 종속 하에 둘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현재의 군사적 팽창은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에서의 생산의 비용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고, 이는 중기적으로 다른 생산의 중심지들이 정치적으로도 미국 중심의 구도와 갈등을 맺게 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말이 미국이 경제적 문제에 부딪혀 단기간 내에 현재의 추동력을 상실하고 군사적 팽창을 중단하게 될 것을 함의하는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 살펴본 시리아의 문제는 이후 미국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번의 이라크 침공을 추진하면서 미국은 이 전쟁이 1991년 걸프전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는 연장선임을 애써 강조해왔다. 걸프전의 유엔합의를 계속 재론하고, 걸프전 이후의 무기사찰에 대한 국제적 동의를 계속 강조한 것, 그리고 어쨌건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을 유도하려 요구한 것 등이 모두 이런 배경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시리아를 침공할 경우는 틀이 완전히 변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유엔이나 유엔안보리의 논의는 배제되며, 국제적인 명시적 위협이 없더라도 미국의 자체적 판단에 따라 어느 곳이든 전쟁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것, 2차대전 후 국가간 체계의 핵심인 유엔의 틀과 국제법의 형식상의 존중 등의 조건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며, 구식민제국의 힘을 약화하고 전지구적인 미국 헤게모니를 수립하기 위해 미국이 설립한 전후 국가간체계의 근본 구도를 미국이 직접적으로 파괴하고 그 영향력을 전지구적으로 확대할 것임을 천명하게 되는 것이다. 고삐풀린 완전한 일방주의를 중단할 근거는 이제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전후 복구의 비정치적 영역에 유엔의 참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 이를 시리아에 대한 공격명분 쌓기에 활용하여, 점차 전쟁의 조건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사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전후 국가간체계의 틀을 허물고 미국 일방주의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다져왔고, 탈냉전시기에 걸맞는 전지구적 개입정당화의 담론으로서 냉전시기의 '공산주의의 위협' 대신 '인권'이나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의 담론을 적극 개발해 오고 있다. 이라크 침공 직전인 3월 17일 미국 PBS 방송은 클린턴 시절의 국무장관 올브라이트와 닉슨-포드 시절 국방부 장관이던 슐레진저의 대담을 방송하였는데, 여기서 나온 언급은 주목을 끈다. 올브라이트는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 "미국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았음에도 다른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최초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국제질서의 기본 틀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에 대해 슐레진저는 이를 반박하며 미국은 이미 그레나다, 파나마, 코소보에서도 미국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았음에도 군사력을 파견하여 다른 영토에 진입한 적이 있다고 강조하고, 이번의 이라크 전쟁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대한 미국의 침공은 1823년 선언된 먼로 독트린--미국의 유럽개입을 포기하는 대신 유럽의 라틴아메리카 개입을 허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 영향력을 인정한 것--의 틀 속에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코소보 이후의 상황은 이와도 다른 것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유엔의 틀 속에서 전쟁을 수행한 미국은 코소보 전쟁의 경우 유엔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NATO와의 연합을 동원하여 유엔 틀을 벗어나 최초로 비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전격적으로 벌였다. 그 다음 단계인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는 미국의 독자적 군사력으로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이라크 전쟁에서는 사실상의 동맹세력 없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상군을 통한 도시진격이라는 사실상의 침공전쟁을 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라크를 넘어선 확전은 이런 미국의 일방주의적 틀의 확장이 이라크라는 예외적 상황에 따른 일시적 조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반화하는 틀로 정착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본적 변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시리아 침공이 현실화 될 경우 매파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세계질서의 새로운 틀짜기 구상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 여파는 조만간 동아시아에까지 미칠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관건은 내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보통 이라크전쟁의 여파로 미국 경기가 침체하고 미국 국내외의 반전여론이 비등하면서 매파의 약진은 중단되고 아들 부시 또한 아버지 부시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데, 다시 말해 앞의 두 예측이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대로 부시를 재선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매파는 계속 싸움터를 확대해갈 것인데, 종결되지 않은 전쟁들이 널려있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과연 무엇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매파가 아닌 누가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미국의 전쟁은 대외적으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로도 확장될 것이다. 이미 '애국입법'에서 나타났듯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초헌법적 탄압을 확장하는 시도들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잠재적 적들의 색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은 더욱 반동화되는 이런 정권의 지지자들이 될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비관적인 전망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직후인 3월 미국인을 대상으로 타임-CNN 공동의 여론조사를 실행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특히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부분은 '만일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42%가 찬성의 답변을 했다는 사실이다. 오만한 일방주의와 자기도취적 우월감, 그리고 고립된 위기감이 결합되어 미국인의 정서는 반전과는 반대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그렇겠지만 미국은 더더욱이 자신의 역사를 반성해 본 경험이 없는 나라이다. '신대륙'과 '처녀지'라는 허구적 이미지로 뒤덮어진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디언의 학살과 절멸의 역사도 그렇고, 노예제도에서 흑백차별로 이어지는 인종주의의 역사도 그렇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투하한 역사도 그렇고, 수많은 나라에서 CIA를 통해 벌인 '더러운 전쟁'의 역사도 그렇다. 모든 것은 미국의 이상, 미국의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반전과 반미는 문제의 끝인가? 이제 반전과 반미는 세계적으로 모든 이의 일상어가 되었다. 초등학교에서조차도 반전과 반미를 주장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는다는 역설은 바뀐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직후 TV 토론에 나온 보수 언론의 원로기자조차 이 전쟁은 명분이 없고, 미국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만 '국익'을 위해 파병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수세적인 주장을 펼 정도로 반전과 반미를 둘러싼 지형은 바뀌었다. 미국 주도의 전쟁을 비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베트남전과 이른바 '68'년 이후 이처럼 단일 이슈를 가지고 한목소리로 반대 운동이 일어난 적도 없다. 위기에 대한 미국 매파의 대응만큼이나 위기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우려와 절박함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우리가 적지 않은 혼돈 속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반전과 반미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이 반전과 반미 그 다음의 구호는 무엇으로 집약되는가? 어떤 집약점이 있는가? 전쟁에 대한 이런 세계적인 반대는 어떤 구호와 조직으로 집약되고 있는가? 세계의 반전운동은 아직 무정형적이다. 그것은 연대의 가능성도 담고 있지만, 어떤 집단에 의해선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전유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1차세계 대전 이후의 상황이 던져주는 함의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 1차 대전 후의 유럽의 반전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양되었다.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에 대한 갈망은 한편에서 러시아혁명을 촉발시킨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같은 조건이 다른 곳에서는 파시즘을 낳았다. 1차대전이 끝난 이후 1930년대까지 누구도 파시즘이 유럽의 대세로 등장하리라고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잇달아 현실적 대안세력으로서 실패한 것으로 밀려나면서 기존의 우파와 완전히 다른 '혁신된 우파'인 파시즘 세력이 급속하게 부상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틀 속에서 현상유지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판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짜고자 하였고, 국내의 틀 뿐 아니라 전지구적 구도 자체도 전환시키려 하였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를 시도한' 세력이었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국가간체계 질서의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 속에서 나타난 반전의 심성은 파시즘이라는 가장 반동적 자본주의의 혁신에 의해 전유된 것이었다. 현재의 반전적 심성 또한 초기단계에 있다. 현재 사회운동세력의 딜레마는 이 반전운동이 지금까지 진행시켜온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구상이나 기획과 전혀 별도로 떨어져 나와 진행되고 있는 무정형적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다. 개입하지 않을 수 없지만 개입을 해도 주도할 수 없다는 딜레마. 결국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표상된 자본주의 위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쟁의 수행이라는 형태로 표상되는 국가간체계의 위기--그것은 극단적으로는 인류절멸의 위기를 함축한다--가 하나의 전선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 고리를 찾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반신자유주의는 반전이 아닐 수 없으며, 반전은 반신자유주의가 아닐 수 없는 긴밀한 결합의 선을 찾는 것과, 그 조직적 틀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대중으로서의 계급을 발견하는 문제가 될 것이며, 또한 신자유주의 반대 속에서 국제주의가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나타나는 변화는 한국사회에서 냉전의 이데올로기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냉전적 방식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은 현재의 반전의 분위기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세력 중 여기에 가장 기민한 대응을 보인 것은 자유주의 세력일텐데, 이들은 냉전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내용을 채우려는 변신을 보이고 있다. 반전을 반신자유주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이들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보수주의 또한 변화를 강제받고 있는데, 아직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혁신하여 현재 분출되는 저항의 동력을 반동적으로 전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 진보세력은 스스로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과잉결정되는 한반도 민중의 절멸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PSSP
= 아랍세계의 제국주의 질서와 대안 = 엄 한 진(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이 글에서 우리는 폭력적인 이행기로서의 세계화 시대가 낳은 아랍세계의 정치·경제질서와 이데올로기적 지형의 분석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아랍정세에 대해 조망해 보고자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 지배세력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그에 기반한 사악한 음모에 대한 폭로와 분노를 낳았다. 그렇지만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우리가 그나마 이란혁명 이후 가장 효과적인 이슬람마케팅이었던 9.11테러 직후의 문명담론의 포로상태에선 다소 벗어났다 해도 여전히 위의 음모와 비극이 가능했던 아랍세계의 종속과 분열, 무력함의 원인, 즉 아랍문제에 대한 총체적이고 구조적 인식은 미흡하다. 전쟁에 대한 인식과 대응 역시 2차 대전 이후 전쟁과 일상화된 무력사용이 아랍세계에서의 제국주의 이해관철의 핵심적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 그 자체의 야만성에 대한 비판과 일시적, 인도주의적 박애를 넘어 총체적 인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베트남, 레바논, 이라크, 소말리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다시 이라크로 전쟁에 대한 그간의 세계의 관심은 일시적이었다. 예를 들어 걸프전 이후 이라크와 이라크 민중의 고통은 잊혀졌었고 1988년 종전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습과 무력점령을 경험하고 있는 레바논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또 다른 전쟁을 요구한다. 조만간 또 다른 분쟁과 비극의 지점으로 우리의 관심은 옮아가겠지만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랍문제가 현 세계의 본질의 특수한 발현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그리 먼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I. 아랍세계에서의 제국주의 제국주의를 경제적 착취와 국가간 정치·군사적 지배관계의 중첩, 그리고 세계체제에 대한 일국 현실의 종속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아랍세계에서의 새로운 제국주의는 구 식민본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특히 미국 주도하에 형성된 경제적, 정치적 개방, 이데올로기적 종속, 종족적·종파적 차이의 정치도구화, 그리고 군사적 개입 등으로 실현되어 왔다. = 경제적 동기와 정치적 압력: 신자유주의와 형식적 민주화 = 경제개방과 정치개방은 90년대 이후 아랍의 지역질서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적인 동력이다. 식민지 경험, 발전전략 및 근대화 방식, 천연자원 보유 등에 따라 시기와 정도 면에서 국가간 차이가 있지만 아랍세계의 경제개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띠었다. 이들 모두 산업간 연계성에 기반한 통합성있는, 그리고 자주적인 민족경제 건설에 실패하고 심각한 재정위기와 외채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대다수 국가들이 외채문제를 계기로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강요된 개혁프로그램을 채택하게 된다. 이것은 여타 지역에서처럼 거시적 지표의 안정화와 구조조정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조조정과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경제개방 전략은 미국과 유럽연합 주도의 개방적인 지역경제질서 형성과정이다. 그리고 아랍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전망은 부정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랍정권들은 분열과 불평등으로 인해 구조적 한계를 지니는 아랍 차원의 지역화가 아닌 서방에의 편입만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은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지만 역사적,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서로 다른 틀에서 이 지역에 대한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어서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정치·군사적 이해관계가 큰 유럽연합은 1995년 11월 바르셀로나 회의에서 윤곽이 잡힌 유럽-지중해 차원의 틀에서의 지역화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협력, 이민문제 해결 등을 중심으로 최근 활발해진 유럽의 지중해정책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중동석유 독점 기도,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아랍세계 분열정책이 유럽에 미치는 경제적, 군사적 불안정 효과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아랍국가들이 포함된 이 전망 속에는 20세기 초에 그랬듯이 이스라엘이 유럽의 첨병으로 기능한다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미국은 중·근동지역 아랍국가들과 터키, 이스라엘이 포함된 틀에서의 경제통합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이해관계의 차이는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이래 두 세력 모두에게 대아랍정책의 핵심요소인 반테러정책의 경우, 미국이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과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전쟁과 테러의 빌미로 사용하는데 반해 유럽, 특히 프랑스는 테러조직 유입 방지에 전력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중동정세의 불안정이 유럽본토, 그리고 아랍국들과의 경제관계에 미칠 파장을 막으려는 의도가 크다. 한편 이러한 방식의 세계경제에의 통합과정은 정치적 변화를 수반했다. 1980,90년대이래 군주제 국가와 세속적인 성격의 정권 모두에서 국가주도의 제한적인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아랍국가들의 정치 지형은 대체로 권위주의 정권, 정치적 이슬람, 시민운동 삼자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구도는 매판적인 정치권력이 지역질서 재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하면서 이로 인해 야기된 정당성의 위기를 절차적 제한된 정치개방과 종교적 담론의 강화로 극복하는 전략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다당제의 도입은 발전전략의 실패로 민족주의적 권력이 약화되면서 남긴 정치적 공백을 메우는 국가 주도의 지배구조재편 과정의 주요 기제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슬람세력과 과거의 반체제세력의 온건한 분파가 제도권 정치에 편입되었다. 1970년대 이집트의 정치개방이 시장개방과 대외종속을 정당화하기 위한 과정이었듯이 1990년대 초반부터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레바논, 요르단, 그리고 1990년대 후반 아라비아반도 군주제 국가들에까지 확산된 정치범 석방, 다당제와 직접선거, 언론의 자유의 도입은 제국주의와 그 매개체로서의 지역정권들 주도하에 이루어진 시장개방의 정치적, 제도적 토대구축과정이었다. 최근에 이루어진 일부 나라들에서의 정치변동과정 역시 경제개방과 정치개방이 동시대적 현상이며 상호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로코의 경우 90년대에 진행된 왕실 주도의 반체제 진영의 체제내 수용과정은 1998년 정권교체를 낳았으며 2000년 새로이 국왕이 된 젊은 모하메드 6세는 경제개방과 정치개방, 그리고 여성문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해에 역시 국왕이 교체된 시리아도 경제개방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특히 2010년 발효될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농산물, 석유,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이 나라의 경제부흥의 열쇠로 간주되고 있다. 그 과정의 주역으로서 기술관료들이 정치적으로 부상하였고 정치개혁이 경제개방의 관건으로 논의되고 있다. 군주제 국가 바레인 역시 2001년 위로부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세계경제에의 편입을 계기로 외부로부터의 압력하에, 그리고 위로부터 진행된 정치변동은 일부 형식적인 민주적 권리의 신장과 시민사회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의 질적 변화나 신자유주의노선에 대한 어떠한 근본적 수정도 이루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도입은 연고적 권위주의의 강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속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아랍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화 시대의 주된 정치현상의 하나는 민주주의의 강요이다. 198,90년대 개발도상국들에서의 민주화 현상은 대부분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통한 세계경제에의 편입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강대국과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권고 내지 강요된 결과였다. 이는 세계경제체제가 낳은 국지적 위기,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실패를 부패, 비효율적 문화와 체제의 성격 등 개별국가 내적 문제로 환원시켰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시장의 투명성 문제로 환원된 민주주의 담론은 아랍정권들의 권위주의를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 대비시키면서 미국, 프랑스, 영국의 정치·군사적 개입, 그리고 이스라엘의 군사주의를 묵인하는 빌미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정치도구화와 그것의 비민주적 결과는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논리적 결과인 전지구적 차원의 민주주의의 퇴보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세계화에의 적응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고 희망의 근거라는 분위기 속에서 선진국을 포함하여 세계 전 지역에서 민중의 실질적인 정치참여나 민주적이고 관용적인 논의문화의 퇴보를 볼 수 있다. 난해한 용어와 허구적인 수치로 치장된 주요 정책결정은 효율성을 앞세워 소위 전문가들에게 일임되고 경쟁을 빌미로 한 국익, 그리고 대안의 부재 또는 종말을 내세워 반체제적 사회운동과 민주적 논의를 억제하고 있다. = 종족적·종파적 차이를 이용한 분열 전략 = 근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 유럽은 아랍세계를 그들 각자의 이해에 유용한 매판적 성격을 띤 여러 지역으로 분열시켜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전략의 실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종족적·종파적 차이의 정치적 이용에서의 이스라엘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레바논 출신 경제학자 꼬름(G. Corm)은 배타적인 유대인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시온주의(zionism)와 그 정치적 화신인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가 이 지역 정치질서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로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건너온 유대인 이주민들은 차별과 위협에 따른 유럽에서의 그들의 패쇄된 공동체 생활의 경험과 배타적인 탈무드 문화, 그리고 유대교, 유대인만의 국가의 창설이라는 이념으로 인해 다원주의 전통이 강했던 아랍사회가 그들에게 제공했던 공존의 기회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타자에 대한 거부를 본질로 하는 유대국가가 자신의 부당한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지 타민족을 차별, 배제함으로써만이 아니라 주변민족들 역시 자신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자신처럼 배타적인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에 따라 서로 분열, 대립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초까지만해도 이러한 이스라엘 존재의 의미와 그들의 정체성에 따른 분열의 전략은 종교적 차원이 미미했고 종교적인 면에서 관용적이었던 아랍민족주의에 의해 효과적으로 저지되었다. 그런데 이미 1967년 아랍진영의 패배는 이러한 방어벽의 붕괴를 의미했고 그 이후 이 지역 정치질서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변형되었다. 즉 각 지역마다 다른 형태로 발전해 온 이슬람 내 분파간 차이를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는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은 이스라엘의 이 지역 분열정책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꼬름은 이슬람근본주의의 발전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레바논 내전(1980-1988)을 야기하며 키워낸, 기독교 종족인 마로니트족(Maronite Christians)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독교운동단체, 팔랑헤주의자(Phalangists)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 의한 배척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이집트의 기독교 집단 꼽트족(the Copt)의 종교적 정치운동도 바로 이 이스라엘의 영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간은 아랍민족주의의 저항으로 온전히 실현되기 어려웠던 경제적 차원을 포함한 온전한 의미의 이스라엘 제국주의의 실현이 이스라엘의 대아랍전략의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의 군사적 헤게모니 완성과 미국주도의 평화협상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의 온전한 일원으로 암묵적으로 인정되어 그 역사적 정당성 문제가 현실적으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면서 이스라엘이 꿈꾸던 이스라엘 중심의 아랍경제질서 형성은 커다란 장애물을 벗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사실상 승인한 아랍정권들은 정치적 양보를 하더라도 지역안정을 확보하여 경제부흥의 길을 걷고자 한다. 시리아 역시 이미 75년부터 레바논에 대한 침략과 내정간섭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수행한 레바논 분열전략의 동조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걸프전에서의 시리아의 참전은 이 지역 반제·반시온주의 세력의 결정적 패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는데 시리아는 전쟁참여에 대한 대가로 레바논에 대한 자유로운 개입을 보장받았다. 아랍세계가 언어, 종교,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되어 있고 적대감과 경계심이 팽배한 것도 이러한 종족적·종교적 정체성의 정치도구화에 크게 기인한다. 이 전략은 국제사회가 그간 보스니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에 적용한 공동체 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여러 공동체가 공존하는 이 지역들의 비극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정체성의 도구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지배의 이데올로기적 측면: 이슬람 담론 = 이슬람근본주의의 대두과정은 바로 제국주의 논리가 관철되는 과정, 즉 70년대이래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로 새로운 지역질서가 형성되는 과정과 동시대적인 현상이었다. 영국의 인도지배에 그 연원을 두고있는 이슬람의 정치도구화는 1970년대 이후 소련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계승하게 된다. 이 지역의 국가들에서의 재이슬람화는 바로 이러한 석유·사우디 중심의 지역경제질서 재편과 함께 강화된 것이다. 이 변동과정에서 이슬람근본주의의 대두는 새로운 지역질서 형성이 낳은 부산물인 동시에 이 과정의 필수 구성요소였다. 즉 기존 이데올로기들이 무력해진 상황에서 나타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통합의 위기에 대한 민중의 대응양식이자 동시에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실현의 축인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슬람 중심의 지역질서 형성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사우디가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대리인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이 사우디의 아랍세계 주도권 장악을 도와주는 방식의 미-사우디 관계는 이미 5,60년대 낫세르의 범아랍주의에 대한 견제전략으로 그 모습을 보였었다. 당시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은 팔레비 치하의 이란과 사우디, 쿠웨이트 등 종교적 성격이 강한 군주국들을 통해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저지하려 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미 CIA의 대리인 역할 수행, 이란혁명 이후 사우디 주도의 대이란전선의 형성, 석유수출국기구(OPEC),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에서 사우디에 의한 미국의 이해대변으로 둘간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빈 라덴 역시 이 양국관계의 익명의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었다. 참고로 근본주의적 이슬람을 주창하는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파키스탄 역시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중동에서의 사우디아라비아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미국은 이슬람이 있는 제3세계 모든 곳에서 이슬람을 정치도구화했던 것이다. 또한 이슬람 정치세력의 부상에 따른 정치의 불안정이 미국의 개입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9·11테러 이후 억압적인 여성현실, 비민주적인 정치체제, 아프간 무자헤딘의 지원 등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사우디 비난, 그리고 걸프전 이후에 시작되어 최근 심화된 정권과 여론의 괴리에서 미-사우디 관계의 변화의 조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이스라엘 관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는 사우디 왕가와 사우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공통이해는 여전히 굳건하다. 1980년대에 전 아랍세계에서 주요 정치·사회세력으로 부상했던 정치적 이슬람은 90년대에 들어 알제리 이슬람 저항세력의 비극을 신호탄으로 탈정치화 또는 온건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의 의복문제나 의례의 준수문제와 같은 형식적 측면에 국한해 이슬람을 사고하는 세속화된 아랍민중과 이슬람 운동세력의 정치적 전망과의 괴리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이제 아랍에서의 이슬람 세력은 이슬람 NGO들의 비정치적 활동과 극소수의 테러리즘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바로 이 후자 덕택에 또는 전자와 후자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면서 이슬람담론과 문명담론의 생명연장을 꾀하는 것이다. 9·11이 소위 '이슬람세계'의 희생과 이슬람의 평화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이루어진 이슬람열기를 통해 유럽의 극우파와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의 강화를 가져왔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군사적 지배 = 최근 미국의 지배전략은 반테러리즘을 빌미로 한 군사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제도의 무력화 시도의 양상을 띠고 있다. 1970년대부터 영국, 프랑스의 뒤를 이어 이·팔분쟁에 개입하기 시작한 미국은 걸프전을 기화로 이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개입의 시대를 열었다. 영국의 퇴각을 가져온 수에즈 전쟁부터 걸프전 이전까지만해도 다른 지역들과 달리 중동에서의 직접적인 군사적 역할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 이스라엘에 맡겨져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은 그 이후 추진된 이·팔 평화협상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은, 그리고 일회적인 것에 그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부터 9·11까지의 기간에도 반테러리즘은 아랍의 현 정권들과 이 지역질서의 고착화를 추구하는 미국과 유럽의 주된 이데올로기였다. 걸프전은 코소보전쟁으로 전장을 옮겼을 뿐이고,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반테러리즘 투쟁이 평화협상과 결부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탄압이 심화되면서 9·11이후의 반테러리즘 전쟁의 토양을 닦아놓았다. 결과적으로 9·11이후의 과정은 테러리즘을 빌미로 구 소련을 포함한 세계 전 지역에 군사기지와 결정적인 군사적 우위의 확립과정이었다. 한편 최근 미국 대외정책의 군사화는 다음과 같은 유일 강대국으로서의 헤게모니의 한계와 연관이 있다. '신경제'와 금융세계화의 환상이 깨어진 21세기의 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상실했으며 과거 동아시아 모델과 같은 모범사례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세계경제체제의 조절자로서의 능력도 의지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나마 유일하게 압도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는 군사적 차원을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미국의 정치·군사적 개입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정당성 인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세계화의 장밋빛 미래의 제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지구화되고 일상화된 위기감을 이용하고 동시에 스스로가 창출한 위기를 해소해줄 수 있는 힘의 과시를 통해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의 파괴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처럼 미국의 군사주의화 경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그 속에서의 자신의 헤게모니의 안정성을 침식할 것이다. '예방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전략에는 그간의 세계화가 낳은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양극화의 심화와 그로 인한 저항의 분출을 예방하려는 긴급한 요구가 담겨있다. II. 대안적인 아랍질서의 모색 아랍세계는 정치적으로 위기의 상황에 처해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90년대 초반 이후 정치적 이슬람의 쇠퇴가 남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공백을 채울 대안세력이 부상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이미 걸프전 이후 설득력을 상실한 이슬람 담론이 위로부터, 즉 미국·유럽과 아랍정권들에 의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 이후의 반테러리즘이 세계질서의 이데올로기의 주요 구성요소로 등장하고 미국의 이라크지배 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종족·종파간 갈등의 정치적 이용은 이슬람 담론의 정치적 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을 예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의 위기 내지 부재는 민중운동의 역량 미흡에 크게 기인한다. 사실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아랍민중의 모습은 억압적인 정치적 조건에서도 분연히 일어서는 의식있고 용기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아랍민중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아랍민족주의와 무슬림들의 연대가 실체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분출은 1999년 2차 인티파다 이후 무장투쟁 참여열기가 가혹한 탄압의 결과이듯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의 산물이라는 점을 주지해야한다. 정치변혁에 대한 아랍민중의 전반적인 소극적 태도는 계급구조, 대안의 부재 등 여러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사회해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2000년 2차 인티파다 이후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오랜 내전이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후견으로 이어진 레바논, 서방세계와의 갈등으로 아랍세계에서마저 고립된 리비아, 걸프전 이후의 이라크, 군과 이슬람 무장단체들간의 내전의 참혹한 결과를 겪은 알제리, 그리고 이슬람국가 아프가니스탄의 파괴와 이란의 고립은 아랍민중으로 하여금 이슬람을 통해서든 세속적 이념에 따르든 현 체제에 대한 어떤 거부의 시도도 사회의 붕괴 내지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결국 이 지역질서의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제국주의 세력들처럼 민중도 현실의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에도 소극적이다. 테러리즘과 세계화담론이 심어주는 경제적 환상만이 이들의 고통과 허탈함을 달래줄 수 있는 마약인 것이다. 위로부터의 정치개방의 산물인 측면이 큰 시민사회 담론은 아랍세계와 서양 및 그들의 것으로, 그들의 지배도구로 인식된 민주주의, 인권, 법치국가, 여성해방 등의 근대적 이념과 가치간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만을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이 서구 및 서구적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졌던 정치적 이슬람의 전망과 그것의 구체화로서의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환상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물론 전망을 상실한 아랍민중의 미약한 역량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주변부의 현실적 힘의 약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주변부 민중의 정치적 약화 및 이데올로기적 종속이라는 전반적 현상의 한 부분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방식의 축적위기 극복형태는 결국 주변부와 민중의 대항능력 약화라는 계급관계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자주적이고 민중적인 사회변혁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는 신자유주의나 추상적인 민주주의 담론, 그리고 현 세계질서의 유지에 기여하는 일부 인도주의적 개입세력들이 상정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유리된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이 주체는 공통이해에 근거한, 즉 지난 20년간의 세계화를 통해 생존의 위협에 처한 대다수의 세계민중의 일원으로서의 아랍민중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회·이데올로기투쟁과 연대의 창출이 요구되는 것이다. 다행히 2000년을 전후해 등장했고 전세계적인 반전열기 속에 강화된 대중운동의 부활에서 그 태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력의 형성은 다음과 같은 아랍세계의 본질적 과제들의 해결과정 속에서 가능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이 과제들의 미해결이 이러한 세력의 형성을 가로막아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는 팔레스타인국가 수립문제, 동예루살렘의 지위문제, 난민문제와 같은 본질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와 같이 중동질서의 핵심문제인 이-팔분쟁의 근본적 해결이다. 둘째는 종족간·종교간 공존이다. 석유를 매개로 한 세계경제에의 편입이 낳은 대외종속의 심화와 아랍국들간 경제적 격차의 심화,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는 5,60년대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아랍민족주의의 현실적 기반을 붕괴시켰고 이란-이라크전, 사하라분쟁, 레바논내전을 비롯한 종족간, 종파간, 국가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제 종족·종교간 갈등의 해결은 자율성의 보장과 공존을 지향해야 하며 그 해결은 분리독립이 아닌 다원적인 국가의 건설이라는 원칙하에 역사적, 지역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형태를 모색하는데서 나올 수 있다. 셋째는 제국주의의 매개체로서의 아랍정권의 개혁과 아랍지역차원의 통합이다. 아랍 각국의 미래가 워싱턴이나 파리가 아닌 스스로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조건의 창출이 절실하다. 이는 사회통합 능력이 있는 정권에 의해서 가능하며 이러한 정권의 창출은 자주적이고 민중적인 정치세력의 등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이 이 지역 국가들의 민주화에 무관심하고 연고에 기반한 권력과 지배를 용인 내지 부추기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탈을 쓴 봉건적 체제가 그들의 이해실현에 효과적이며 민주적인 정권은 미국이나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보다 자국민의 이해를 대변할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30년간 미국과 유럽에 의해 저지된 이러한 세력의 창출은 현재의 종속적인 지역질서 유지를 위해 행해져온 아랍세계의 분열전략을 극복하고 아랍세계에 속한 국가들간의 경제통합, 아랍차원의 산업 연계구조의 창출이 절실하다. 넷째는 석유자원에 대한 자주적 권리의 확보와 석유수입의 민주적 배분 그리고 산유국을 포함해 경제의 석유의존도의 완화와 산업화 추진을 통한 저발전의 극복이다. 이는 중심부-아랍 산유국-아랍 비산유국으로 이어지는 지배-종속관계와 석유지대의 통제를 기반으로 한 연고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열쇠이다. 다섯째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창하는 방식의 일국내 제도개혁보다 지역차원의 정치·군사적 갈등의 해결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이슬람 중심의 지역질서와 이데올로기 지형의 극복이다. 그간 석유를 매개로 한 세계질서에의 편입이 낳은 아랍사회의 재이슬람화와 정치적 이슬람은 위에서 언급한 아랍세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 과제는 시급하다. 새로운 주체의 형성은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라크 민중의 고통을 댓가로 우리가 이슬람이라는 차이가 아닌 세계화라는 보편적 현상을 통해 아랍세계를 덜 낯설게 느끼게된 지금, 이 지역의 저항운동에 대한 연대 역시 세계질서와 이것의 특수한 구현형태로서의 아랍의 지역질서의 근본적 변화라는 전망을 갖고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상의 과제들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