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이다. 때로는 어마어마하게 떼를 지어 가기도 하는데, 최근엔 기름값이 올라서 그런지 스쿠터가 많아졌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고 한다. 울산을 처음 방문해 이 광경을 처음 본 사람들은 종종 ‘웬 오토바이 동호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잠시 바라보면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은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고된 삶에 대한 상징으로 느껴진다. 경이로울 만치 밝고 환한 빛을 내는 현대중공업 건물의 야경을 보고, 우뚝우뚝 높은 굴뚝이 서 있는 현대자동차의 열여섯 개나 된다는 출입구를 쭉 돌아보면, 노동자들이 갖고 있을 노동의 자긍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높고 거대한 기계 앞에서 견딜 수밖에 없는 길고 고된 노동과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이 다치고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기도 한다. 울산 노동자투쟁의 역사와 비정규직 노동운동 울산은 노동자들의 도시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왕국이라 불리는 자본의 도시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들을 만들어 온 곳이라는 의미다. 1987년 이후 늘 격전의 연속이었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노동자들의 굵직굵직한 투쟁 속에서, 노동운동은 자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경험들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비단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실로 거대한 노동자들의 공동체이기도 했다. 흔히 울산을 노동운동의 메카, 중심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한 계급투쟁의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의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투쟁의 정신을 잃지 않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울산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많은 활동가들은 ‘이젠 울산도 더 이상 노동운동의 도시가 아니’라고 자조하듯 말한다. 노동조합은 민주적·계급적인 공간으로서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회사 측의 통제와 압박은 어느 때보다도 더 과감해지고, 노골화되었다. 보수언론에서 ‘대기업 강성노조’라고 떠들어대는 울산의 정규직 노조조차 이들 자본의 공세를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987년 이후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지난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일궈왔다. 지게차와 샌딩머신을 앞세우고 남목고개를 넘어 운동장으로, 시청으로 진군해 갔던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1988-1989년 현대중공업 노조민주화를 위한 128일 파업투쟁,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 “현중이 깨지면 현자도 깨진다!”고 외치며 연대를 외친 현대자동차 4·28 연대투쟁, 1991년 5월 투쟁, 1991-1992년 현대자동차 성과분배투쟁, 1992-1993년 지리했던 민주노조 재건투쟁, “현중과 현자가 만났다!” 1993년 현총련 공동임투, 1994년 현대중공업 파업투쟁, 19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열사 투쟁, 그리고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투쟁까지. 2000년 들어서 잇달아 결성된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울산 노동운동의 새로운 기점이 되었다. 현자비정규노조, 현중하청노조,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구몬학습지노조, 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 등의 결성은 비정규직 투쟁 중심으로 지역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현대자동차를 기점으로 한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의 여러 계기는 울산 노동운동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왔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은 이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정규직이 떠난 자리에 비정규직이 채워졌고, 본격적인 후과는 2002년 이후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0년 현재 30대 초중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2년 이후 입사한 이들이다. 그때 그들은 20대 중후반이었는데, IMF 이후 대부분의 청년세대가 그렇듯 당시 그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 ‘젊은’세대들로 구성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하나의 낙인이며, 신분이 되었다. 현대자동차를 둘러싼 지역 공동체내에서는 이러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때로는 암묵적인 때로는 명시적인 차별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으로 삶의 전반을 아우르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30대 초중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애나 결혼의 과정에서 언제나 부딪히는 물음이 있다. 맞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할 때 ‘직영인지, 하청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고, 떳떳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현실에 대한 좌절이 밀려온다고 했다. 한 조합원은 ‘그래서 여기 비정규직은 노총각이 많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가족대책위 모임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 조합원의 젊은 아내들은 결혼할 때 남편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경우가 많았다. 또한 ‘직영인지, 하청인지’ 물어보는 건 이미 오래된 질문이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1차 하청인지, 2차 하청인지, 3차 하청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물어본다고 한다. 실제 원청과 직접 계약한 1차 사내하청 업체는 2차, 3차 사내하청에 비해 원청 자본에 의해 상대적으로 내부화되어 있어서, 이들 사내하청들 간에서조차 각 노동자 간의 차별이 점점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 절반의 임금, 작업복·안전화에도 적용되는 차별, 월차 한번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일상이다.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공정의 일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공정을 떠맡느라 겪어야 하는 노동강도에서의 차별들. 원청 자본을 정점으로 하는 하청 업체의 먹이사슬 구조는 노동자들의 인간관계와 일상적인 삶까지 지배하며, 차별과 억압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25일간의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점거 파업투쟁 지난 11월 15일, 울산 공장에서 시작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러한 차별에 대한 오랜 시간 동안의 분노로부터 촉발되었다. 수년간 경험했던 차별은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열망’을 더욱 부추겼고, 지난 7월 22일 대법원 판결과 11월 26일 고등법원 판결은 더욱 공세적인 투쟁을 밀어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뿌리 깊은 패배감과 무기력을 걷어내고 새로운 투쟁의 공간을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6년 불법파견 투쟁 패배 이후 5년의 세월 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억압을 뛰어넘어 파업투쟁을 일구었다. 11월 15일 시트 1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의 불길은 공장을 멈춰 세웠고, 1천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공장 도어탈착 농성장을 가득 메웠다. 자신감과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1공장 점거 파업의 불길은 야만적인 폭력을 뚫고 2, 3공장의 파업으로 이어졌고, 아산과 전주공장으로 번졌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분신으로 항거한 황인화 동지의 염원이 들불이 되었고, 울산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1,700여 명 중 1,200여 명이 파업에 참가했고, 전주 350명, 아산 250명 등 1800여명의 조합원이 노조지침에 따라 끝까지 파업에 참여했다. 2010년 12월 9일, 25일간의 파업투쟁이 끝난 후 우리에겐 남겨진 과제가 매우 많다.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천천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이 지난 10년간 이야기했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파업기간동안 가장 많이 강조되고 이야기된 것은 “아름다운 연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들이었다. 그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 단결과 연대가 중요했고, 그것은 비단 비정규직의 힘이 약해서 정규직의 도움이 필요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으로 ‘분할’해 통제하고 억압할 때, 노동자들이 그 경계들을 뛰어넘어 계급적으로 단결하고 공동투쟁을 만드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된 ‘운동의 위기’는 자본이 만든 다양한 분할(정규직-비정규, 남성-여성, 정주-이주 노동자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조차 그 경계들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은 아직 우리가 넘어서야 할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현대자동차 지부(정규직노조)는 ‘중재’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했을 뿐 만 아니라 사실상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투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아니러니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이번 투쟁 내내 회자되었던 ‘아름다운 연대’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현대자동차 지부 이경훈 지부장이었다. 이경훈 지부장은 간간이 지부 간부들과 함께 식료품을 가지고 들어와 ‘아름다운 연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농성장 안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매번 밥을 들여오는 것이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 무렵은 하루 한 번 김밥 두 끼 분이 들어왔지만 김밥이 이내 쉬는 문제가 발생해, 조합원들은 전날 저녁에 들어와 그 다음날 아침에 쉰 김밥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전날 김밥이 두 줄 나오면 다음날은 저녁에 한 끼만 김밥이 나왔고, 운 좋은 날은 점심 때 컵라면이나 건빵이 나오기도 했다. ‘아름다운 김밥연대’는 조합원들이 춥고 배고픈 농성장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었지만, 현대차지부의 “교섭과 동시에 농성해제”요구와 “손 떼겠다”, “내가 없으면 김밥도 못 먹는다” “김밥도 못 넣어주겠다”는 모욕적인 협박도 감수해야 했다. 조금씩 음식반입이 줄어들기도 했는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현대차 지부가 농성장기화 되는 것을 막고 빨리 교섭에 매달리게 해서 농성을 해제하도록 하기 위해 밥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이 돌기도 했다. 이 말은 농성을 해제할 때 정확히 들어맞았다. 농성해제를 결정하기 바로 전날인 12월 8일은 하루 종일 전기가 끊어져 암흑 속이었다. 현대차 지부는 비정규직지회에서 ‘선 농성해제 후 교섭’을 거부하자 지원을 끊겠다고 선포하고 농성장을 떠났다. 농성장 아래에서 사수를 맡고 있던 상집 간부들도 모두 철수했다. 또한 식사 지원을 중단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비상식량인 초코파이 2개로 저녁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정규직, 아름다운 연대는 가능한가? 하지만 지금 우리는 현대차 지부 이경훈 집행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초부터 이경훈 집행부에게 기대할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의 문제는, 특정 정파나 몇몇 현장조직들만의 문제를 초과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19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하고 그 이후 매 시기 비정규직의 권리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투쟁을 공세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는 1998년 정리해고 투쟁 패배 이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현장분위기를 일신하지 못했다. 현장권력이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더욱더 불안해지는 고용위기 앞에 위축되었고, 그것은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하는 근거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2000년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는 사내하청 대거 투입을 사측과 합의한다. 2000년 6월 현대자동차 노조는 현 조합원들이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부족한 생산인력은 비정규직(사내하청)을 대거 투입하여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는 향후 고용위기가 발생할 경우, “비정규직은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사용한다”는 점을 내용적으로 포함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이 광풍처럼 휩쓸고 간 자리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저항할 힘을 잃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불안한 고용 앞에 놓여 있는 유혹에 무너져 갔다. 자기 부서에 비정규직이 많을수록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다는 생각, 비정규직이 많을수록 힘들고 어려운 공정을 그들에게 넘기고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편한 공정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정규직들의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투쟁 패배와 고용의 불안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은 유혹 앞에 급속하게 허물어진다. ‘벌 수 있을 때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정서는, 현장 내 노동강도 강화와 살인적인 노동시간연장 등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조 설립조차 정규직 노조가 방해하거나 반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정규직 노조와 활동가들은 자기 방향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을 고용보장의 도구로 인식’하는 반계급적인 태도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연대’속에서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원하청 노선의 단층선을 따라 노동자들의 인간관계, 삶의 양상까지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조 운동은 허물어지고, 노동자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진정 ‘아름다운 연대’를 위하여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번 투쟁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가 투쟁의 큰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25일간의 파업투쟁에서 진심어린 ‘아름다운 연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1공장 대의원들은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대체인력 투입 저지를 결의했고, 파업농성장에 대한 침탈을 인간방패가 되어 막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농성장을 지켰고,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반입시키며 농성자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파업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규직 조합원들보다 더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싸웠다. 1980년대 혹은 1990년대부터 투쟁경험이 많은 정규직 활동가들은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 적은 젊은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직접 ‘훌라송’을 불러가며 집회 사회 보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고, 투쟁방향을 함께 토론하며 격려하고 투쟁을 만들어갔다. 많은 정규직 활동가들은 매일 아침저녁 공장 정문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였고, 공장 앞 천막농성에 결합했으며, 1공장 농성장을 방문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담요를 대신해 잠바를 벗어 비정규직을 덮어주었다. 2공장의 대의원은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구사대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 큰 부상을 입었다. 많은 대의원들은 사측으로부터 고소고발당하고, 체포영장을 받았다. 2차 파업을 위하여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할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자신의 존재조건을 뛰어넘어 새로운 운동을 일구어나가는 것은 매우 지난하고 고된 과정이 될 것이다. 파업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학교가 되려면, 노동조합은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원칙을 가지고 힘겨운 과정들을 함께 고민하고 교육하고 토론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현대자동차 자본이 ‘원청사용자’임을 명확히 하며, 자신들을 고용한 ‘정몽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이젠 차별받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들불처럼 일어났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돌파구를 어떻게 확장하고 뚫어 나가느냐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2011년 1월 울산공장 최병승 조합원의 고등법원 선고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아산공장의 대법원 판결은 3-4월 중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기들을 고려하여 비정규직 지회는 2차 파업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5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보여준 조합원들의 의지와 자신감을 모아 2차 파업을 성사해야 한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 구조조정 저지! “3년이면 충분하다! 현장으로 돌아가자!” 12월 1일 새벽,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인이 GM대우 자동차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로 올라간 지 어느 새 한 달이 다되어 가고 있다. 지난 2007년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설립 이후 한강대교․마포대교 고공농성, 부평역 CCTV 철탑 고공농성, 135일간의 부평구청 CCTV 철탑 고공농성에 이어 벌써 다섯 번째의 고공농성이다. GM비정규직지회하면 고공농성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투쟁전술이 되었는데, 이번 고공농성은 한 겨울의 투쟁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제조업 사내하청 불법파견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GM대우 사측의 태도는 3년 전과 다르지 않다. 불법파견 문제를 감추기 위해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노조활동을 위해 취업한 외부인으로 규정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CCTV와 카메라 촬영을 통해 집회 참가자를 파악하거나 해당 노동자를 불러 협박․회유하고 있다. 또 출퇴근 출입을 다른 문으로 유도해 노동자들이 정문 앞 농성대오와의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 사측의 태도가 변한 것은 없어도 지금의 상황은 3년 전과는 다르다. 기륭전자․동희오토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고,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지고,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 점거 파업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다시 세간의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지역의 연대단위들도 집중적으로 결합하여 다각도로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고공농성이 알려지면서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송영길 인천시장이 GM대우 사장을 만나 농성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인천시의회는 사측의 책임 있는 교섭과 인천시․노동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GM비정규직 노조원 안전 및 조속한 해결책 촉구 건의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은 GM자본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 투쟁이 여론의 불을 댕긴 것도 있지만, GM대우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 때문에라도 지역의 여론이 집중되고 있다. GM대우는 현재 지역 총생산의 21%, 수출액의 51%를 차지해 인천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GM대우는 향토기업으로 대접받으며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다. GM대우는 2002년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연도부터 10년간(7년간 100%, 3년간 50%) 법인세와 본사파견 임원의 소득세 면제를 약속받았고, 자동차 판매 시 따라 붙는 평균 10% 정도의 특별소비세 납부유예라는 특혜도 챙겨왔다. 대우차 부도 이후 첫 흑자전환이 2005년인 것을 감안하면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한 푼도 제대로 내지 않은 셈이다. 이 밖에도 각종 부지지원, 시의 GM대우차 사주기 운동 등 안정적인 지원도 제공받고 있는데, 모두 계산해보면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2000년 대우차 부도사태, 2008~09년 위기 때 시와 시민운동진영이 나서서 ‘GM대우차 사기 운동’을 펼쳤던 것도 그 산업 경제적 비중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원 받은 비용을 따지면 현재 일하고 있는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8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비용 100억 원(현대차 비정규직 8,000명의 정규직 전환비용 1,000억 원 대비)을 쓰고도 충분히 남는 돈이다. 현재 해고된 GM대우 비정규직 조합원 20여 명 분을 더한다 한들 전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고용문제를 수익창출을 위한 안전판 정도로 생각하는 GM대우가 선뜻 문제를 해결할리 만무하다. 2003년 비정규직 800명 채용을 시작으로 정규직 라인을 대거 도급화하고 2,000명이 넘도록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해왔던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다. 노동비용 절감을 통한 빠른 기간 내 경영정상화 달성, 경기 변동에 맞춘 탄력적 고용조절이 그것이다. 2005년 예상보다 1년이나 빨리 경영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이러한 비용절감에 힘입은 바다. 이렇게 안전판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2008년 2조 원에 달하는 수익 유출로 경영위기에 빠졌어도 잘못을 저지른 경영진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가하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동자 1000명 해고로 대신한 것이다. GM대우가 아무리 향토기업 운운한들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거나, 수익을 쫓아 한국공장을 청산할 수 있는 초국적 자본이라는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GM대우에게 비정규직 문제는 기본적으로 가볍게 털고 갈 수 있는 비용문제가 아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시장이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GM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향후 3~5년 내에 한국공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는데 고용문제에 발목 잡힐 이유가 없고,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지는 자충수를 둘 수가 없다. 결국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투쟁의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던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시점을 계산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GM대우의 구조조정 계획 최근 산업은행과 GM본사 간에 맺어진 ‘GM대우 장기발전전략’은 산업은행이 주장하는 바와 다르게 GM이 추진하는 국제적 구조조정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의 내용을 보면 산은 등에 지급된 우선주 상환을 GM이 책임지고, GM대우가 “GM 본사와 결별한 후에도 독자적인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공동 개발한 기술 건에 대해서는 7년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생산물량 확보 보다는 2조 3천억 원 규모의 우선주에 대한 수익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협상이라 GM의 한국에서의 생산계획을 강제하지도 못하고, 우선주에 대한 GM의 상환 보장 약속도 구속력도 없다는 점에서 ‘장기 발전전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협의라고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설상가상 GM과의 결별이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GM대우가 공동 개발권을 가진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같은 차종을 생산한다고 해도, 역시 동일한 개발권을 가진 GM이 차종을 개량해서 판매한다면 자체 판매망도 없는 GM대우가 경쟁에서 열세에 놓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GM대우의 산업기반 유지 및 발전 방안 수립 보다 GM본사와의 결별을 상정한 수익성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을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의 시작으로, 초국적 자본 GM에 대한 지역의 감시와 통제를 만들어가는 논의의 시작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GM대우 자본의 경영실패의 책임을 묻고, 노동비용절감 및 구조조정 전략을 바꿔 나간다는 원칙 속에서 비정규직투쟁에 연대하고, 운동 진영의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위해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하자!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농성장을 사수하고, 여론을 이어나가도록 하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하되 특히 사측이 집회 신고를 내놓은 첫 날인 1월 1일에 맞춰 12월 31일과 1일 양일 간 힘 있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농성 장기화를 막기 위해 낫까지 동원한 사측이다. 만약 있을지도 모르는 농성해제 시도에 맞서 농성자를 보위하고 투쟁의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이 단순히 해고된 노동자 몇몇의 복직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 조합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몇 차례 현장 유인물이 배포되었으나 아직까지 적극적인 현장활동이 조직되고 있지 못하다. ‘불법파견 중단! 정규직화 실시!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플래카드 문구처럼 이번 투쟁이 현장에 만연한 제조업 불법파견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 또한 이번 투쟁이 노동자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활동인 노조 탄압과 사측의 현장 통제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을 알려야한다. 앞으로 더욱 강화될 노동자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저항하는 투쟁이라는 점을 현장 조합원들과 분명히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기획함으로써 이번 투쟁의 성과가 파견노동법에 대한 투쟁으로, 사측의 구조조정 전략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은 최근 촉발되고 있는 불법파견 철폐 투쟁의 일환이자, 전국적인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주요 고리이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목표로 투쟁하는 제 민중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결합이 필요하다. 극한의 고공농성 중인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하자!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이하며 이번 12월 18일은 11번째를 맞이하는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2000년 12월에 시작된 세계 이주민의 날은 1990년 12월 18일에 UN 총회에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하 이주노동자협약)’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 세계에서 이주노동자와 그 지지자들은 이 날을 통해 이주민에 대해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정책, 노동조건, 사회 관습의 변화를 요구하고 국가가 존중해야 하는 최저 기본 기준을 설정한 이주노동자협약을 비준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적 현상으로서 이주와 국제 경제에 대한 이주 노동의 중요성에 관해 인식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이제 적어도 이주민의 인권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립 서비스라도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주노동자협약은 겨우 43개 국가만이 비준했으며 그 중 다수는 이주민 본국들이다. 한국은 아직도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 폭력적인 단속추방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주노동자협약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공무원이든 개인에 의해서든 단체든 기관에 의해서든, 폭력과 물리적 부상, 위협과 협박에 대해 국가에 의해 효과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제16조 2항) 그리고 협약은 그들이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자의적인 체포나 구금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제16조 4항) 그러나 한국정부가 미등록 이주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무차별적이고 종종 폭력적인 단속과 체포된 모든 이들을 구금하고 그들을 재판 없이 추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지난달에 발생한 이주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것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0월 29일에 출입국 단속반원들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벌어진 집중단속 기간에 서울 금천구 가산의 한 공장을 급습했다. 35세의 베트남 노동자이자 4개월 된 딸의 아버지인 찐 꽁 구안(Trinh Cong Quan)은 모든 출구가 막혀 있자 2층의 창문으로 탈출하려고 시도했다. 꾸안은 떨어졌고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그는 11월 3일에 사망하였다. 서울 출입국관리소는 이 사건을 전혀 책임지지 않았고, 법적으로 규정된 과정에 따른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꾸안의 유족에게도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고 주장하기만 했다. 노동권에 관해서 이주노동자협약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급여, 휴식, 건강과 안전조치, 고용관계 종료에 대해 차별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제 25조 1~3항) 이러한 원칙과 상반되게 한국정부의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고용주에게 마음대로 계약 해지를 할 권한을 주고 있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고용허가제는 저임금, 임금체불, 강제 초과근무, 노동보건 기준 미준수 등 광범위하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협약 비준은 이러한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협약비준 요구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협약비준이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변화의 필요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UN 총회가 동의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공통분모를 표현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협약에 규정된 기준들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비준 요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을 획득하기 위한 이주민 스스로의 투쟁인 것이다. 많은 경우에 주체적인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요구들은 이주노동자협약에 보장된 권리들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협약은 모든 이주민들에게 기본적 교육권을 보장하는데(제 30조), 내국인과 동등한 교육 제도에의 접근은 등록된 이주민에게만 보장된다.(제 43조) 미국에서 미등록 이주민 학생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드림 법안(Dream Act)의 통과를 위해서 수년간 투쟁했다. 이 법안은 그들에게 대학 진학의 권리,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지원을 받을 권리, 법적인 영주권을 얻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투쟁은 아직 승리하지 못했고 법안의 정당성이 최근에 공격받고 있다. 2011 회계연도 국가방위권한법에 이 법이 첨부되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영주권을 얻으려면 군복무를 할 것을 요구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드림 법안 투쟁은 미국 사회에서 미등록 이주민 학생들을 실질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주체화했고 그들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미래에 미국 이민자 권리 운동을 이끌 역량 있는 젊은 활동가들을 이미 많이 만들어 냈다. 이주노조에 대한 계속되는 공격: 표적단속과 지도부 탄압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TU)를 통해 2005년 이후 결사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 왔다. 이주노동자협약은 이주민이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할 권리와 그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할 뿐이다.(제 26조) 그러나 이주노조는 설립 이래로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도 가진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한국 헌법이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고 있는 권리이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조직화를 통해 이주노조 조합원들은 한국 정부가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이 그들이 이 권리의 주체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다른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이주노조의 투쟁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2009년 11월에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와 UN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에 대한 권고를 발표했는데, 이주노동자가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노조를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면서, 정부가 이주노조를 합법적 노조로 즉각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명료한 선언에 더해 ILO와 UN의 권고는 또한 한국정부가 결사의 자유 원칙과는 상반되게 이주노조 간부들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는 핑계로 계속 표적으로 삼아 체포하고 추방하는 행태를 인식하면서 이러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주노조를 해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2007년과 2008년에 이주노조 간부들을 체포하고 추방한 것에 이어 출입국은 다시 이주노조의 지도부를 쫓고 있다. 출입국은 등록 이주노동자인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해, 합법적 고용관계를 유지하지 않았고 출입국관리법에서 금지된 정치활동에 연관되어 있다며 소환장을 발부했다. 또한 그 와중에 서울노동청 동부지청은 분명 출입국의 조사를 도울 목적으로, 미셸 위원장이 고용된 사업장의 고용허가를 취소해 버렸다. 이러한 조치들은 명백히 이주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들이다. 미셸 위원장이 출입국법을 위반했다고 밝혀지면 출입국은 즉각 비자를 박탈하고 추방시키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주노조 위원장에 가해지는 탄압은 한국 노동운동 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현재 운동의 전반적 취약성 때문이거나 이주노조 지도부에 대한 공격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응이 부족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노동조합으로서 이주노조는 반드시 사수되어야 한다. 우선, 이주노조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소속되어 있고 이주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 대의원이며, 정부의 탄압은 전체적으로 민주노총과 한국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 노동력 가운데 이주노동자가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함에 따라,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 권리를 수호하는 힘과 능력을 다시 획득하고자 하면 그들을 조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한 공격은 한국정부의 인종주의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은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의 낮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한 인종주의는 우리를 분열시킨다. 노동자로서 민중으로서 단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희생자로 만드는 억압의 구조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모으자 : 이주노조 위원장 탄압 중단하고 이주노동자 결사의 자유 보장하라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민 지원단체들은 12월 19일 일요일 오후 2시에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대구경북은 오후 3시, 대구 2.28 기념공원에서, 부산경남은 오후 2시 30분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세계 이주민의 날 집회를 개최한다. 한국사회의 제반 노동․사회운동 단체들이 함께 결집하여 이주민 권리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도록 하자. 이 날을 기념하고 UN 이주노동자협약의 비준을 촉구하면서, 우리는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한 탄압과 이주노동자 결사의 자유에 대한 계속되는 공격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한국사회의 인종적 위계의 정착을 뒤엎고 모든 노동자 민중의 단결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이주민과 비이주민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를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조직하고 주체화하는 새로운 길을 찾도록 집단적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올해 겨울은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 파업으로 다시 한 번 비정규직 문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기였다.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 사회 주요 쟁점이 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올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한국 사회에 제기한 질문은 몇 가지 점에서 남달랐다. 첫째는 2010년 매출액이 30조가 넘고, 순이익이 5조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차가 굳이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소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한 추가 비용은 연 1천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2009년 현대차가 자동차를 만드는데 직접 사용된 비용(매출원가)의 0.4%밖에 되지 않는 액수다. 순전히 이번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따른 비용 문제만 따지자면 오히려 현대차가 정규직화를 거부하면서 입은 파업 손실이 더 크다. 지불능력이 없는 기업이라면 그래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현대차와 같이 지불능력이 충분한 기업이 이렇게까지 모질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막는 이유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둘째는 경제위기 상황으로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이어지던 시기에 현대차가 어떻게 오히려 더욱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현대차는 한국의 두 번째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이야기되었던 2009년에 창사 이래 가장 큰 수익을 올렸다. 2009년 현대차는 순이익은 3조 원으로 오히려 위기 이전인 2008년보다 두 배나 컸다. 세계경제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 2010년에는 이보다 더 많은 5조원이다. 셋째는 재벌 대기업들의 순이익 기록갱신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는 여전히 왜 이렇게 어려운가이다. 곳간에 넘쳐흐르는 돈에도 비정규직 차별 개선에 소극적인 현대차는 재벌과 한국경제 관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이 밖에도 창사 이래 가장 큰 이익을 올린 현대차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골치 아픈 여러 문제들을 만들어 냈었다. 올해 초부터 문제가 된 원·하청 불공정 거래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가진 놈이 더한다고는 하지만 한국 경제에 이렇게까지 문제를 일으키며 혼자 이익을 올리는 재벌에 대해 사회적 규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본 글에서는 현대차에 대한 몇 가지 분석을 통해 위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본다.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으로 금속노조 총파업 방침을 수행하자! 이경훈 집행부는 파업을 교란하고 있다 아름다운 연대를 이야기하던 현대차지부 이경훈 집행부가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아닌 사측과의 파업 교란 협조를 선택했다. 지난 12월 6일 현대차지부 확대운영위의 ‘교섭창구 개설시 1공장 점거농성 해제’ 결정은 사실상 비정규직지회에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지회의 파업에 대해 현대차지부가 점거농성 해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권한도 없거니와 마치 비정규직지회가 농성 해제를 합의한 것처럼 현장에 소문을 퍼트리는 것은 비정규직지회의 파업을 교란하는 것이다. 이경훈 집행부의 이런 행동은 교섭을 여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지회가 점거파업을 굳건히 유지하고 정규직 노조가 연대파업을 결의하고 준비할 때 교섭도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경훈 집행부는 정작 조합원 파업 총투표 조직은 소홀히 하며 비정규직지회에 점거 농성 해제만을 요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교섭의제에는 이번 파업의 원인인 정규직화에 대한 해결책도 들어가 있지 않다. 막연하게 논의한다 정도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현대차지부가 임단협 투쟁에서 무쟁의를 먼저 선언하고 사측과 교섭을 할 수 있겠는가? 현대차지부가 임단협투쟁에서 손배소 취하만 이야기하고 임금인상은 추후협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총회는 조합원의 연대 의지마저 왜곡한다 이경훈 집행부의 이러한 상식 이하의 행동 속에서 12월8일 지부 총투표가 진행된다. 지부 소식지에 따르면 지부는 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지부가 만든 교섭을 거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찬반을 묻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총투표는 연대파업 총투표가 아니라 정규직지부의 교섭안을 거부한 비정규직지회에 대한 심판 투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교섭창구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핵심의제가 빠져있다. 또 사측이 교섭이 아니라 협의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이번 교섭창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조합원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토론도 제공하지 않고 진행되는 조합원 찬반투표는 조합원들의 진정한 연대 의지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민주적 절차를 제대로 지킨 것도 아닌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 교란 작전일 뿐이다. 현장의 힘으로 원하청 연대파업을 조직하자 현대차 사측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부담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정규직화로 인한 비용 증가는 현대차가 가지고 있는 현금성 자산의 이자 수익보다도 훨씬 작다. 비용만 고려한다면 정규직화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본에게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에 대한 ‘위협 수단’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비용절감 이상의 의미다.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면서 현대차는 사실 정규직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하고, 차별 속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로 갈등하게 만들 때 이득을 얻는 것은 현대차 자본뿐이다. 민주노조의 정신을 계승하는 현장조직들은 노동조합의 명운을 걸고 연대투쟁을 다시 조직해야 한다. 이경훈 집행부의 상식 이하 행동을 막아내고, 다시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을 조직하자. 금속노조 총파업 방침을 수행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12월 11일 서울여성조합원대회의 의의와 과제 오는 12월 11일 제1회 서울여성조합원대회가 열린다. 각기 다른 조건과 상황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여성조합원들이 모인다. 노동조합의 주변이 아닌 주체가 되기 위해, 여성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현실을 바꾸기 위해 투쟁할 것임을 결의하는 자리다. 3.8 세계여성의 날 맞이 투쟁대회를 일회성 사업으로 끝내지 말자는 다짐이 이어진지도 몇 해째다. 하지만 각 노조마다 여성사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3월 8일의 대회가 여성노동자들이 결집하는 유일한 자리가 되고 있다. 이번 서울여성조합원대회는 여성노동자들의 단결과 한마당의 자리임과 동시에 올해 이어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총화하는 자리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왜 여성조합원대회인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논란이 될 때마다 민주노총과 노동자운동은 페미니즘적으로 혁신할 것을 요구받아왔다. 여성억압의 현실을 타파하고 여성과 남성의 성적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진정한 노동자 단결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성폭력 규약이나 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지고, 여성위원회를 중심으로 여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체질개선은 요원한 상태이다.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 조직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태도, 민주노총의 여성의제와 관련한 요구 등의 지표만 보더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노동자가 처하게 되는 특수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개조는 몇 가지 사업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즉 가족을 매개로 한 성별분업과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대한 책임이 어떤 구조 속에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가를 분석하고, 그에 입각한 투쟁을 기획해야 한다. 하지만 ‘여성’노동자의 특수성에 주목하지 않다보니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비정규직 일반의 문제로 여길 뿐이었다. 여성의 노동을 부차화하고 현재 가족의 성별분업 구조와 여성 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 여성들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투쟁은 민주노총의 중심과제가 될 수 없고,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일주체로 설 수 없다. 또 출산, 양육에 대해 일부를 지원하면서 여성에게 모성과 재생산 노동을 강요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자본과 정부의 공세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한다는 민주노총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에 주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저마다의 삶과 고민을 공유하고, 단결을 이야기하는 자리인 서울여성조합원대회가 열린다. 지난 10월 20일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건설연맹, 전교조 서울본부, 공무원노조 서울본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이 참가한 ‘서울여성조합원대회 공감 워크샵’을 통해 문제의식 모아냈다. 또 워크샵 이후 서울에 있는 산별노조와 단위노조 차원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서울여성조합원대회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취합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노동조합 일주체로 여성노동자가 당당히 나서야 함을 독려하고 결의하는 자리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가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네요. 그것을 믿고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 100%는 아니지만 결론을 내었습니다. 살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느꼈습니다. 함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연대의 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여전히 비정규직, 파견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연대의 고마움을 갚는 길입니다. 구로공단에 있는 노동자들과 더 많은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맞서 1895일이라는 시간동안 투쟁해 온 기륭전자 동지들의 투쟁 승리는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인 이 시대에 희망의 소식이었다.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전체 노동자의 미래다’라는 말처럼 결혼과 가사노동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빌미로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져온 열악한 노동조건, 상시적 해고 위협이 이제는 전체 노동자들의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비단 여성노동자들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바꾸는 투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불안정하게 지속되고 있고, 저출산 고령 사회로 진입한다는 위기감 속에 정부와 자본은 전체 노동시장의 재편과 여성, 청년 등 취약계층 인력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데 분주하다. 각종 법, 제도 개편을 통해 노동시간과 임금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를 방해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또 ‘일 ․ 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일 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준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일하면서 집안일까지 잘 해내라는 것과 다름아니다. 정부와 자본의 분주함 덕택에 수많은 여성노동자는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이라도 하게 되면 바로 무자비한 탄압을 받는다. 하지만 이에 맞서기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꿋꿋하게 이어지고 있다. 기륭전자분회가 그러했듯이 KEC지회는 노조를 파괴하려는 자본과 정권에 맞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파업을 6개월 째 이어나가고 있다. 또 저임금으로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던 재능 학습지 교사들이 단체교섭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도 3년이 다 되었다.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법과 공권력에 가로막히고, 짓밟히고 있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희망을 이야기 하는 그녀들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각 단위 사업장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전체 여성노동자가 처한 특수한 현실을 짚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여성조합원대회에서부터 여성이 처한 현실을 확인하고, 공동의 힘을 모을 것을 결의하도록 하자.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자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당당해지기 위하여 “이 나이에 투쟁해야하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아니죠. 여성들도 노동조합에 당당히 가입하고 자기의 역할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또 여성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면서 가족들과 멀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깨야한다고 봅니다.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부 투쟁도 계속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깨달으면 입소문을 내야 합니다. 그게 힘이 큽니다.” - 이경옥 서비스연맹 사무처장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그런 문제에 앞장 서 나서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남성에게 익숙한 것인 반면 여성은 앞에 나서지 않고, 가정에 충실하고,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익숙하다. 태생적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디 여자가’ , ‘여자가 드세다’라는 말 속에 녹아나는 편견들로 그렇게 길러져 온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가장 달라진 좋은 점은 나이어린 남자 반장이 막말하고 그래도 잘릴까봐 꾹 참았는데, 이제는 누구누구 씨라고 불러주며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라는 어느 청소노동자의 고백처럼 여성에게 주어진 열악한 노동조건은 인간적 대우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낮은 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일한다고 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고, 인격적 모독을 당해도 되거나 성폭력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현실을 참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은 대부분 집에서 하던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집에서 하던 일 밖에서 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는 인식하에 저임금이 당연시 되고, 그 마저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반장이나 사장에게 막말을 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다. 어느 지하철역에서 청소하는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용역업체 직원으로부터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도 자식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 말도 못하고, 문제를 폭로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반격과 해고이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상처와 모독을 개인이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 할 때!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음에도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조건과 현실을 보다 면밀하게 바라보고,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늘려주겠다지만, 막상 그 일들은 집에서 하던 것이라며 저평가하고 저임금을 당연시하는 자본과 정부의 태도를 단호히 거부하자.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왜 집안일의 일차적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지, 왜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일들을 그리 낮게 평가하는지, 왜 일상적인 성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인간적으로 대우받기도 힘든 현실이 있는지 말이다. 한편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는 것은, 노동운동을 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투쟁으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뭉치고, 더 많이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이 되기 위해 서울여성조합원대회는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만나 한 판 힘 다지는 자리로 기획되고 있다. 각기 다른 직종의 여성노동자들이 서로 하는 일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 다독여주고, 또 앞으로 여성노동자들이 가야 할 공동의 투쟁 전망을 그려보는 자리. 첫 출발로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없지만 탄탄한 징검다리를 놓아가는 기획들로 향후 여성노동자 간의 연대를 강화해보자!
피켓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