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많은 시민들이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투쟁을 “음모론을 매개로 포퓰리즘 정치 이슈”가 되었다고 평가하시는데 ‘세월호 투쟁을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대중동원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겠는데요?
세월호 투쟁은 모든 시민들의 깊은 상처, 특히 유가족의 아픔이 너무나 클 뿐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평가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투쟁을 빼놓고는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대중운동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평가 지점을 제기하려고 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게다가 사고 이후 청와대의 실정이 매우 심각했고, 소위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사고의 원인과 대응 과정에 대해 누구라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따라서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다시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구조적 개혁을 만들어내기 위한 투쟁이 분명히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공격하고 재집권으로 나아가기 위해 세월호 투쟁을 활용하고 동원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고 안전사회를 건설하는 주체를 자임할 자격이 없습니다. 민주당은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세월호 투쟁을 활용하면서 음모론을 직접적·간접적으로 유포했고, 다른 한편, 특별법 제정과 특조위 출범 과정에서는 새누리당과 반복적으로 야합하면서 세월호 투쟁을 기만했습니다. 19대 국회에서 기업주의 사고 책임 회피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입법청원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역시 민주당은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지요.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함께 누더기가 된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한 직후 문재인 등이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 운운하면서 동조단식에 돌입한 것은 특히 기회주의적이었습니다.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세월호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안타까운 지점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4.16연대 –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로 이어지는 세월호 투쟁 연대체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악마화와 음모론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공식적인 사고 조사 과정을 신뢰할 수 없도록 행동하면서 음모론의 토양을 만들었던 박근혜 정권와 새누리당의 대응이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자명합니다. 이것은 곱씹을수록 속상하고 분노스러운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세월호 참사는 오랜 기간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연안 해역 운수업의 안전관리 문제, 비정규직·외주화와 관련된 사회 전반의 문제, 자본의 사회적 책임 회피 문제 등 광범위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공론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부패,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행태, 그리고 음모론이 함께 얽히면서 세월호 투쟁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안전사회”를 위한 사회개혁의 단초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투쟁 전체가 외력설을 강하게 지지하는 진상규명 활동으로 쏠리고,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대형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은 주변화되었던 것이지요.
1기 특조위와 선체조사위의 질곡에 대해서는 글에서 자세하게 정리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1기 특조위와 선체조사위의 활동이 종료된 현재까지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채 남고 말았습니다. 외력에 의한 침몰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른바 “열린설”이 주장된 것인데, 열린설은 외력을 실제 침몰의 합리적 원인으로 입증하지 못하고 외력의 실체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열린설의 핵심 내용은 외부조사기관의 판단과도 상당 부분 배치됩니다.
유가족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는 분들의 진정성에 대한 폄하의 뜻은 전혀 없습니다. 여전히 저는 이러한 평가가 관련된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제가 가장 속상한 것은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여가 지난 현재,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규명되지도 못했고, 이를 기반으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구조적 개혁의 단계를 전혀 밟아나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세월호 투쟁을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한 민주당에게만 재집권의 길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당이 현재 시점에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개혁에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죠.
몇 가지 남은 질문을 더 하겠습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 국면에서 노동자사회운동이 독자적인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19대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6.17%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민주당과 대별되는 독자적인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을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높아진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9대 대선은 문재인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고, 심상정 후보의 완주 여부가 변수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높은 득표율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2010년 지방선거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민주당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대연합전선”이 본격화되었던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심상정씨는 민주당·국민참여당으로의 후보단일화 압박 속에서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중도 사퇴합니다. 당시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故노회찬씨는 독자 완주했는데,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하자 비난 여론에 직면하게 됩니다. 일부 당원들은 탈당하기도 했지요. 심상정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중도 사퇴합니다.
2010년 지방선거는 진보정당운동의 형해화, 그리고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던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를 대가로 외형적 선전을 기록했고, 진보신당은 표면적으로 후보단일화를 거부했지만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키지도 못했고 여론의 지지를 얻지도 못했습니다. 이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일부는 친노세력의 근거지였던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출범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세력과 연합합니다. 이후 다들 아시는 바대로 “통진당 사태”,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등을 거치며 진보정당운동은 더욱 위축되지요. 민주당에 대한 진보정당의 종속이라는 현실은 2010년보다 2017년에, 그리고 2017년보다 현재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정의당은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정치적 쟁점에서도 민주당과 행동을 같이하는 등 이념·정책에 있어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여러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보다는 문재인 정권 시기가 노동자 운동에 더 좋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문재인 정권 들어 실제로 노동탄압이 줄어들었고 노동조합 가입이 늘었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문재인 정권 들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비해 노동탄압이 줄어들었고 민주노총은 확대되어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질문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왜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달리 노동자운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하지 않는 것일까요. 민주당이 노무현 정권의 과오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민주당이 아닌 노동자 운동이 달라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을 지나오면서 노동자 운동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글에서 핵심적으로 평가하고자 했습니다만, 10년 동안 시민운동진영이 주도하는 반보수전선이 공고화되면서 반신자유주의라는 문제의식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새누리당보다는 민주당이 나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지난 10년간 노동자사회운동을 옭아매왔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소소한 차이에 주목하면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보수정치세력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단적으로 민주당은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성을 강조하는 자극적인 소재로 “댓글부대” 쟁점을 적극적으로 동원했지만, 집권 이후 민주당도 인터넷으로 여론을 조작해왔음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박근혜 정권 시기에 민주당은 평화운동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면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의 사드 배치를 비난했지만, 대선 과정에서는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등 사드 배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고, 집권 이후에는 새누리당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사드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2015년 타결된 한일 간 합의를 인정할 수 없으며 자신이 당선된다면 이를 파기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당선 이후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즉, 합의가 존재하지만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며,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 엔을 화해치유재단에 사용하지도 않지만 반환하지도 않는다는 모순된 입장을 보인 것입니다. 재벌개혁론의 역시 파산했습니다. 문재인은 최순실과 연결된 삼성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 편승하여 재벌개혁론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집권 후에는 실상 피라미드 지주회사 형태를 묵인하고,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용인하면서 재벌개혁은 유명무실화되었지요.
자유한국당보다 민주당이 그나마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은 지금 노동자사회운동 앞에 놓인 본질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문제는 보수 양당 사이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리고 자본주의가 놓인 구조적 위기를 인식하고 노동자사회운동의 독자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시민들에게 민주당이 아닌 다른 대안적 운동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전망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박준형 실장을 만나, 글을 읽으면서 생긴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몇 가지 해보았다.
노동자운동은 개별적인 주체들의 특수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에서 지적하셨듯 현재의 민주노총은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 간, 주로 재벌·공공부문과 민간 중소영세 부문 사이의 임금격차 확대와 이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심각한 분할”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 모순과 대결하는 자신의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정세에서 노동자운동 스스로 단결하고 연대하기 위한 보편적인 요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조합이 요구안을 만들기 이전에, “누구”의 요구인지 먼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어느 범위에서 요구하는지, 어떤 요구를 제시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예를 들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한국 노동운동은 기업별 임금 극대화가 목표이고, 산별노조나 총연맹과 같은 초기업 조직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지원하거나 정당화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노조가 당연히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담보하는 조직인 것도 아니라는 점 역시 냉정하게 보아야합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대로 노조는 원래 자본주의 임금법칙을 지양하는 조직이 아니고, 오히려 그 임금법칙이 그나마 적용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조직이니까요. 말하자면 생계비 임금이나 생산성 임금을 노조를 통해서 겨우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노조가 없는 부문의 노동자들, 한국의 경우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조차 실현하지 못합니다.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상황을 보면, 어떤 요구안을 제시할 지 고민하는 것은 다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으로 이런 저런 요구안을 제시할 수는 있겠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임금인상, 혹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재벌개혁 등에 대해서요. 그런데 그 요구가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나 한국 사회, 경제의 변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검토된 적이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별로 그런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각각의 요구 자체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검토해보자는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물론 어떤 요구안이 정당한지 논의도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어떤 수준이 정당한지, 말하자면 올해 투쟁에서도 최저임금 당장 1만원 요구를 계속해야하는지에 대한 근거도 충분치 않죠. 그런데 정작 지금 한국 노동자운동에 더 필요한 것은, 노동자운동이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인 것 같습니다. 체제를 변혁하고자하는 것인지, 혹은 당면한 개별 사업장의 경제투쟁의 지지 엄호하는 것이 목표인지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개별 사업장의 임금극대화, 이를 위한 전투적 경제투쟁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데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근거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단은 그렇게 하다가는 투쟁하는 양 계급의 공멸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이 대안적 체제를 구성할 준비가 되기 전에 남한의 국민경제가 붕괴할 경우, 그것은 외국 자본의 지배이거나 혹은 야만일 것입니다.
노동자운동이 사업장별 임금 극대화를 넘어,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것인가가 문제라 봅니다. 그런 목표를 세운다면,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전체 국민경제 혹은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시야에 넣고, 투쟁에 있어서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 차원으로 사고할 수가 있겠죠. 물론 현재 민주노총 구조로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일 수는 있겠습니다.
임금격차와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인 쟁점을 묻고 싶은데요. 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들이 “제대로 된 정규직화”,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정규직의 호봉제(연공급)를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연공급 호봉제는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이라는 예외적 정세에서 생산직까지 확장되었지만, IMF 위기 이후에는 재벌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게만 실질적으로 작동하면서 임금격차 확대와 이로 인한 분열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부와 자본은 임금격차를 근거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오고 있는데요. 물론 글에서도 평가를 하셨지만, 좀 더 보충해주면 좋겠네요.
임금 수준과 이를 결정하게 되는 임금체계는 노동자 개인에게나 노동자 조직(노조)에게나 가장 민감한 쟁점이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전체 국민경제에도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노동소득분배는 국민소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많은 노조 활동가들이, 임금체계 개편을 정부와 자본의 임금 수준 억제책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문제가 지금 부각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로 인해 장기 저성장 혹은 붕괴국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임금인상이 불가능한데요, 자본 측은 당연히 임금억제를 통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노동조합이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부터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위기 시에 위기 부담은 상당히 불균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입니다. 경제위기 부담은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먼저 전가되어 해고와 임금저하가 일어나게 됩니다. 재벌, 공공부문의 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연공급 임금체계의 결합으로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심화되면서 노동자 계급이 사실상 분열됩니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이중노동시장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임금격차를 좁히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이 노조로 단결하기 곤란합니다. 일각에서는 고임금노동자들도 계속 임금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재벌·공공부문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 상태의 다수 노동자로 분할선이 그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는 노동운동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공격이 될 것입니다.
연공급 임금체계가 이러한 분할을 강화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임금체계 개편은 불가피합니다. 연공급이 평등주의적인 임금체계라는 주장은 기업에 한정할 경우에, 또 연령에 따른 임금격차를 정당화할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기업 안에서만 쌓이는 근속에 기반해서, 또 연령에 따라 임금차이가 3배 이상 발생하는 것이 왜 정당한 것인지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는 임신, 출산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여성들에게 저임금이 강요된다는 점도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자운동이 임금격차 문제를 회피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 문제의 해결을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게 되면 문제도 당연히 해결하지 못하지만, 노동조합을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 더 심각하군요.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뻔하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을 노조운동이 스스로 검토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칫 고임금 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에 대한 임금억제, 삭감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노동자운동이 스스로 장기 저성장시기에 임금체계 개편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합니다. 그것이 직무급일 수도 있고 어쩌면 또 다른 임금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안 수립을 자본 측에게만 맡겨놓고, 모든 임금체계 개편을 거부하는 방어적 투쟁만 벌인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금 격차 축소를 위해서는 기업별 교섭, 투쟁 구조를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별노조와 총연맹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산별교섭 등 초기업 교섭을 추진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교섭권을 집중해야겠죠. 단숨에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방향은 분명히 잡아야할 것입니다.
기업별 교섭과 투쟁 구조를 넘어서는 노동조합.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겠죠. 그렇기에 더욱 지난 역사에 대한 평가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의 확립이 절실해 보입니다. 이번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년 여름호 특집은 최근에 다시 강화되고 있는 반보수전선에 대한 비판을 지난 10년간 역사적 관점에서 다뤘는데요. 반보수전선의 기원은 1987년 이후 첫 대선에서 재야세력 일부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는 30여 년간 남한 민중운동에 커다란 질곡으로 작용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선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겠죠. 어떤 지점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번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특집의 다른 글(김동근, 「반보수전선이라는 막다른 길」)에서 주로 다룬 부분인데요, 민주노조 운동에 있어서도 지난 10년간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쟁점입니다.
돌이켜보면 1998년 IMF 구제금융협약과 이의 충실한 집행자를 자처한 김대중 정권이나,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노조 운동이 자기 노선을 제대로 정립하고 혁신하지 못한 것이 만시지탄입니다. 당시 활동했던 저와 같은 노조 활동가들의 큰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J-노무현 정권 당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전개한다고 했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 곧바로 보수야당(민주당)과 연합에 돌입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를 비롯한 노조운동 활동가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투쟁과 일관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2008년은 세계 금융위기 과정에서, 자본 측에서도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안 모색과 함께 신자유주의 비판이 모색되던 과정이었습니다. 노조운동은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혹은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 대기업의 정리해고에 대해 정권 반대 프레임을 중심으로 대응했고, 민주당과 연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진1%]
10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져야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봉합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도 한계에 도달해 있고, 남한만 하더라도 당시와 같은 틈새시장에서의 성공과 상대적으로 신속한 회복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중·미 무역분쟁이나 한·일 무역분쟁을 보아도 그렇지요. 2020년대에는 남한 국민경제의 고유한 모순은 물론, 세계자본주의 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시기에 각 민족과 계급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겠죠. 노동자운동이 기존의 이익을 지키는데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공공부문에서는 기존의 이익이 충분하니 이를 방어하는 선택이 당연히 손쉬운 선택입니다. 반면, 체제 자체가 위기이니 이 체제 자체를 변혁하자는 운동도 가능하겠죠. 그런데 이것은 물론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현재 자본주의 국민경제와 세계체계의 모순을 인식할 수 있어야하고, 변혁노선과 이론도 역시 필요합니다.
사회진보연대는 후자의 길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한 자본주의 상태로 보나, 노동자운동의 상황으로 보나, 혹은 세계 좌파운동의 상태로 보나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정된 위기와 예정된 전개라는 점에서, 또 이제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저력을 생각할 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