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서비스 활성화 법안의 기만성과 본질 2010년 직업안정법 전부 개정안 지난 9월 15일 『직업안정법 전부개정안』(이하 「전부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입법취지에 따르면,「전부개정안」은 노동력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고용서비스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전부개정안」의 주요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 3가지와 같다. 첫째, 법제명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직업안정법』을 『고용서비스 활성화 등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였는데, 이는 고용서비스산업 성장 흐름에 발맞추어 법과 제도도 정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과 민간이 함께 상호 보완적으로 고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전부개정안」에는 관계 행정기관 협력을 강화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고용서비스 제공 주체임을 명시하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역할분담과 상호 협력근거들이 규정되어 있다(5조, 6조, 7조). 또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도 민간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별로 고용서비스 실적이 우수한 기관을 육성하여 고용서비스 민간위탁을 활성화하도록 하였다(8조). 셋째, 이번「전부개정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고용노동부는 이번 법안에서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이 가능하도록 근거조항을 마련하였다(4조 9호, 37조, 38조, 39조, 40조). 직업훈련, 직업소개, 근로자파견 등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행정적 번거로움을 간소화하였고, 또 수익기반도 확대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였다. 구직자((노동력 판매자)로부터의 소개요금은 금지하지만 구인자(사용자)로부터의 소개요금은 자율화하는 한편(26조), 사업주에 대한 노동부의 교육훈련을 강화하고(11조 2항), 민간위탁시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을 우선 지정하는 방안 (8조 3항)등 관련 규정을 추가하였다. 공공 고용서비스사업과 민간위탁 이번 「전부개정안」에서 고용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유일하게 제시된 것은 '민간위탁에서 사회적 기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한국의 공공직업안정기관은 인프라도 취약하고, 인력도 턱없이 모자란다. 2009년 3월 기준으로 고용지원센터는 전국 81개소에 불과하며, 부족한 고용지원센터를 248개 기초지자체가 일용·공공근로를 알선하며 지원하고 있다. 고용지원센터 직원 1인당 지원해야 할 경제활동인구는 8,293명으로 공공 고용서비스가 잘 발달되어 있는 독일(2008년 3월 기준 479명)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는 미국(2008년 3월 기준 3,312명)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많다. 그나마 한국의 고용지원센터는 고용보험 관련 업무에 집중되어 있어, 취약계층 접근성은 더 곤란한 상태다. 이렇게 부족한 직업안정기관 문제를 공공과 민간의 역할 재정립이라는 차원에서 정부가 내놓은 해결방안이 (비영리, 영리) 민간기관을 활용한 민간위탁이다. 공공이 재정을 조달하고, 민간기관이 공급을 대행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공공영역의 고용지원기능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민간위탁 방식을 통해 청년 뉴스타트, 저소득층 취업패키지 등 고용보험 비적용자에게까지 고용지원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민간위탁사업이 직업안정을 위한 공적 기능을 보완하는 것조차도 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는데, 인프라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한된 예산 아래 추진되는 사업이다 보니, 민간기관이 수행할 수 있는 고용지원의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2006년 이래 실시된 고용서비스 민간위탁의 실질적인 목표가 공공영역의 고용지원기능의 보완보다는 민간 고용서비스산업의 육성에 있었기 때문에, 유관한 선도기업을 육성하는데 주안점이 있었다. 2010년 민간위탁 사업은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했다. 민간 일자리 서비스 산업을 대폭 정비하고 서비스의 공신력을 제고하며, 표준화·대형화를 유도하는 한편, 이 때 선정된 고용서비스 우수인증기관에게 (『직업안정법』4조의5를 따라 )우선 민간위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부개정안」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나는데,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을 민간위탁사업에서 우선하기로 한 것이다(8조).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사업에 대한 민간위탁은 공무원·공공기관 인건비도다 더 적은 비용으로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입을 창출하는 핵심 고용서비스는 민간업체들이 맡고 돈이 안 되는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사업은 (비영리)민간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은 정부가 고용지원사업에 있어 공적기능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은폐할 뿐이다. 지금 고용서비스 제공기관의 영세성을 고려하면, 비영리 민간기관의 고용서비스나 사회적 기업의 고용서비스 사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면, 일부 지원대상이 확대되는 효과가 나타나긴 하겠지만, 이 또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없는 고용서비스, 취약계층의 일자리 알선 사업을 사회적 기업이 국가로부터 사업비 지원을 받으며 공공의 직업안정기능을 일부 보완하는 것 이상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공공성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사회적 기업을 활용한 민간위탁은 정부가 공공영역의 고용안정기능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을 무마하는 방패막이에 불과하다. 새로운 중간착취 시장의 형성, 소개요금 규제 완화 고용노동부는 이번 「전부개정안」이 구직자(노동력 판매자)에게서 받는 수수료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임을 강조했고, 일부 언론은 고용노동부의 홍보기조를 그대로 받아 「전부개정안」이 중간착취 시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개정된 법인 양 보도했다. 임금이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사용자에게서 받는 것인 한, 직업소개 수수료는 구직자(노동력 판매자)에게서 나오거나 구인자(사용자)에게서 나오거나 임금 몫에서 제외되기는 매한가지다. 구직자가 주는 수수료도 임금 중 일부를 알선업자에게 주는 것이며, 구인자가 주는 수수료도 임금노동자에게 주어야 할 몫 일부를 알선업자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직자로부터 수수료를 금지한다고 해서 중간착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구인자로부터 수수료를 자율화한다는 점에서 중간착취시장은 더 확대될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데, 왜냐하면 구인자로부터의 수수료에는 노무관리 업무를 대행한다는 의미에서 중간관리자로서의 몫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고용서비스산업의 수익모델은 한층 더 개선될 수 있다. 구인자(사용자)로부터 수수료를 자율화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고용서비스를 다변화하고, 그로부터 수익기반을 창출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고용서비스 선진화 방안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직접적인 고용서비스 업무와 간접적인 고용서비스 업무를 구분한다. 전자는 직업알선 등 기업이 직접 고용하는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근로자공급과 파견, 용역 및 하도급, 인사·노무관리 대행 등 새로운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영업무의 일부를 대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료직업소개소가 이제까지 영세성을 면치 못했던 것은 직접적인 고용서비스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즉 단순한 직업알선에 의존해왔고, 상용직 보다는 임시·일용직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상용직은 구직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소개알선수수료도 최대 3개월 치 이상은 받기 어렵지만, 임시·일용직은 구인처 확보도 쉽고, 직업알선 때마다 일정액의 소개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임시·일용직 시장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접적인 고용서비스 업무가 활성화되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인력을 공급하며, 인사·노무관리 업무까지 위탁받게 되면 수입모델은 무궁무진해 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재적소·적재적시에 필요한 노동력을 원활히 공급해주고, 인사 및 노무관리를 잡음 없이 효과적으로 대행해 주기만 한다면, 회사로서는 경영비용이 대폭 절감되는 것이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라도 외주용역을 마다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직자 수수료 금지 및 구인자 수수료 자율화란, 정부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하고 강제해서 임시·일용직 시장에 난립해 있는 인력소개사업자들을 간접적인 고용서비스 시장으로 유인하고, 여기서 성공한 고용서비스업체들이 다른 영세한 인력공급업체들을 통폐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장의 논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자. 이들이 이야기 하는 간접적인 고용서비스 업무가 이제까지 전혀 없었던 사업도 아닌데다, 그들이 이 사업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해왔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고용서비스 업체들은 지난 수년 간 불법·탈법 가리지 않고 근로자공급사업(파견)을 해왔고, 헤드헌팅 사업을 하면서 인사·노무관리 외주용역사업을 수행해 왔다. 가까운 예로 우리는 인력공급업체들이 공단지역에서 탈법적인 형태로 3~6개월 단위 제조업 파견을 해온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들이 도급관계인 양 불법파견을 하거나, 하도급 관계인양 더욱 치밀하게 위장해서 절대 인력파견이 아니라는 식으로 무마하려 해왔던 것도 잘 알고 있다. 상대적으로 직고용 형태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100인 이하 사업장 사장에게 고용서비스 업체들이 이곳에서도 간접고용방식의 노무관리가 가능하고, 실제 그 방책을 전해주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구인자 수수료 자율화는 더 많은 소득원을 찾는 고용서비스 업주들에게 안정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수입원으로서 근로자공급사업(파견)을, 불법적이며 탈법적인 형태로 수행하도록 유인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인력파견업의 전문화, 대규모화를 촉진할 복합고용서비스사업 이렇게 수익모델을 확대할 수 있는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이제 남는 것은 하나다. 직업소개, 직업교육, 직업정보제공, 모집, 근로자공급(파견) 등 다양한 고용서비스사업을 일관되게 하면서, 고용서비스산업 전체를 선도하는 복합고용서비스업체 설립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전부개정안」의 핵심 목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전부개정안」이 밝히고 있는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이란 다음과 같다. “이 법에 따른 직업소개사업, 직업정보제공사업, … 근로자파견사업, … 직업능력개발사업 등 고용서비스와 관련된 사업 중 둘 이상을 수행하는 사업을 말한다.” (4조 9호) 현재 입법 예고된 「전부개정안」에는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이 3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허가제이다(37조). 하지만 각각의 단행법이 별도로 요구하는 허가 및 등록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전부개정안」에 준거해 한 업체가 고용노동부장관으로부터 복합고용서비스사업 허가만 받으면, 그 업체는 직업소개사업, 직업정보제공사업은 물론이거니와 근로자파견사업, 직업능력개발훈련사업 모두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법안 개정의 특징이다(38조). 뿐만 아니라 민간공동사업이나 위탁사업에서 정부는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을 우대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고(8조 3항), 민간고용서비스 육성을 위한 세제 지원 조항까지 추가하여(9조)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을 재정적으로도 지원할 것임을 명시하였다. 반대로 유료직업소개업체들의 난립은 막고,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직업소개사업을 하는 자에 대한 사전 교육훈련 조항도 마련(11조 2항)하는 한편, 전문화를 유도하기 위해 직업소개 일을 하는 고용서비스업체 종사자는 자격을 갖춘 직업상담원이어야 한다는 조항도 새롭게 추가하였다(29조). 지난 1월 21일 있었던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한시적이라는 단서조항을 두긴 했지만) 구직자의 취업 전 과정(교육훈련알선-DB등록 일자리 취업)을 민간 고용중개기관이 관리해 줄 경우, 그 기관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6월 17일 있었던 민간고용서비스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도 노동부는 유료직업소개업 대표자 요건을 완화하여 전문경영인이 고용서비스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는 직업안정법 시행령 개정 사안이다)임을 밝힌 바 있다. 행정적으로나, 법·제도적으로나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이 가능하도록 꾸준히 진척시켜 왔던 것이다. 고용서비스산업의 실체 「전부개정안」에서 드러난 고용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간추려보자. 첫째, 고용서비스산업의 완전 합법화, 둘째, 중간관리자 기능을 대행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의 창출, 셋째, 고용서비스 산업 모두를 총괄하는 종합고용서비스사업, 넷째, 고용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정부의 세제 및 재정적 지원, 법·제도적·행정적 지원, 다섯째, 정부주도에 의한 (선도모델 역할을 할) 민간고용서비스기업의 전면적인 육성 등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렇게까지 육성하려는 고용서비스산업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국사회는 당해 연도 동일직장 유지율이 53%대(2006년 기준)에 불과할 만큼 노동이동률이 높은 나라다.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렇게 높은 노동이동률을 낮춰야 하는데,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각료들과 HR사용자협회, 경총, 전경련 이데올로그들은 도리어 높은 노동이동률을 시장수요가 많다는 증거로 제시하며, 여기서 고용서비스시장이 창출되면 엄청난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발상은 직업안정법 기본 취지 ― 취업의 기회 제공뿐만 아니라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을 도모하자는 취지조차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전부개정안」이 1조 법의 목적에서 직업안정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취업기회 확대라는 문구로 대신한 것이나, 제명을 『직업안정법』에서 『고용서비스 활성화 등에 관한 법률』로 변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실 이들이 강조하는 이른바 '고용서비스시장'은 산업사회형성 초기나 산업구조재편 시기 혹은 경기 침체시기 고용이 불안전하고, 노동력수급을 오로지 외부노동시장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그 역할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거나 포기할 때)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을 전제로 활성화되는 퇴행적 시장이다. 중간착취란 취업을 전후하여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개입, 노동자가 받아야 할 몫을 일부 공제하여 중간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가리키고, 자본주의 법 규범 내에서도 이는 원칙적으로 배제된다(근로기준법 8조). 앞서 살펴보았듯이 구직자 수수료든, 구인자 수수료든 이는 모두 임금 몫의 일부이다. 그리고 고용서비스 선진화론자들이 시장수요로 예상하고 있는'고용서비스시장'이란 높은 노동이동률에 동반되는 구인·구직 수수료시장을 가리킨다. 고용서비스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노동자도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인 양 꾸며보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고용서비스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자본가들일 뿐이다. 고용서비스업을 하는 이들은 생존권 위협에 내몰린 노동자의 노동력 판매를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주선하는 거간꾼―중간착취자에 불과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중간착취는 법이 허용하는 경우만 제외하고는 완전히 금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법이 허용하지 않는 이상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정상적인 사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이 합법화에 목을 매는 것이다. 한편, 경제위기시기에 이들은 직업소개 수수료 착복 등 직접적인 중간착취 말고도 노무관리에 관한 비용절감업무를 대행하면서 중간관리자로서 이익을 얻기도 한다. 이 때 비용절감이란 결국 인건비 절감인데, 아웃소싱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건비 절감은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자본가들은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이윤을 남길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생산성 상승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실업의 위험, 불완전한 취업상태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고, 높아지는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한다. 새로운 고용서비스의 수혜자 역시 자본가일 뿐이다. 이들이 어떻게든 전문성을 갖춰 사업화하려는 '간접적인 고용서비스 업무' 란 경제위기시대 자본가가 입게 된 손실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이윤을 남기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고용서비스 선진화론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경제위기시대에 높아지는 실업률을 잠재우고 고용률을 높이는 순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국가고용전략회의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고용중개사업이 고용률을 높이는데 순기능을 하려면 (농촌의 과잉노동인구나 가족 내 가사노동인구와 같은) 경직적인 비경제활동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안정되게 유인할 때, 그렇게 해서 경제활동인구 규모를 늘릴 때 그나마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대상으로 하는 취업애로계층 대다수는 (경제위기로 인해, 물량유동성에 따라 고용이 불안하여)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취업알선을 확대한다고 고용률이 높아질 리 만무하다. 더구나 고용중개사업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생산비용절감, 생산물량 유동성 조절능력 확보 미명아래 고용신축성과 임금신축성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반실업 상태로 내모는 장본인이지 않은가? 이들 주장 중 딱 하나 맞는 것이 있다면, 국가 경제 차원에서 실업 관련 복지비용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전적으로 맞다. 보통 실업 관련 복지재정을 절감하는 방법은 취업자로 전환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대상자를 실업급여 지급기준 밖으로 내모는 방법도 있는데, 반실업상태로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반실업상태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용과 계약해지를 반복해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 바로 자신들이고, 실업자들을 실업급여 지급기준 밖으로 내몬 뒤 이들을 반실업상태로 꾸준히 유지·관리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집단도 자신들이다. 그래서 실업 관련 복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간접고용-노동신축화의 실질적인 확대, 이것이 직업안정법 개악의 궁극적 목표다 그렇다면 직업안정법 개정은 단지 인력파견업체들의 합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개선인가? 이제까지 고용서비스산업 선진화론자들은 고용서비스산업을 금융산업과 비유해왔다. 그러면 이번 개정은 정부가 고용서비스산업을 육성해서 경제위기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성장동인으로 내놓은 산업육성계획인가?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 노동신축화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신념을 가진 신흥세력(?)의 성장을 독려하고, 한편으로는 노동신축화를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내적 동인을 만드는데 목표가 있다. 고용서비스산업(특히 복합고용서비스)이 실제로 수익을 얻고자 하는 시장은 단기 인력시장에서 인력소개업을 중개하는 것과 노동력공급을 대행하며, 인사·노무관리를 외주 용역 받거나 경영컨설팅 하는 일, 그리고 인력 개발 및 노동력 교육 시장이다. 이들은 우선 단기계약직, 파견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가 그 자체로 자신의 수입기반이 되기 때문에, 이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불완전한 취업, 상시적인 인력구조조정, 해고의 자유 등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제도개악을 위해 경주할 것이다. 또 이들은 인력공급사업의 형태를 다변화하고, 교육과 노동자공급 사업을 연계하며, 인사·노무관리를 전문적으로 외주용역받으며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척해나갈 것이다. 이들의 합법적인 존재, 이들이 개발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은 그 자체로 (현실을 인정하고 양산하자는 식의 논리를 동반하며) 노동신축화 관련 법·제도 개악의 동인이 될 것이다. 근로자공급(파견)사업을 통한 노동신축화는 물량변동에 맞출 수 있도록 (고용불안을 매개로) 고용신축성과 노동시간·임금신축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법제도를 고쳐놓는다고 바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생산공정과 노무관리의 혁신, 적재적소·적재적시의 노동력 공급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 사회의 관습·관행에 따라 구체적으로 진행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가들에게도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고용서비스산업 이데올로그들의 표현을 빌면, '전문성'이 필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전문성'을 토대로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과 회전률을 동시에 높일 수 있어야 노동신축화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야 자본가들은 노동력 공급의 장애를 겪지 않으면서도 실업을 관리하며,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가속하고, 동시에 (간접고용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노동자의 노동3권을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자본가들 입장에서 적어도 다음 4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여기에 적합한 생산공정의 표준화 및 노무관리의 전면적인 혁신이 가능해야 한다. 둘째, 노동신축화에 가장 커다란 반대세력인 노동조합운동이 철저히 약화되어야 한다. 셋째, 노동력 공급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노동시장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하고, 일―가정 양립과 같은 법제도적인 지원도 있어야 한다. 넷째, 노동력 회전률을 높일 수 있으려면, 노동생산성을 단기간 내 높일 수 있는 교육―직업능력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를 산업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노동신축화의 실질적인 동인을 갖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불법파견 논란을 무릅쓰고, 위장도급 형태로 인력파견하면서 축적해온 몇몇 재벌대기업의 노동신축화 노하우를 중소영세사업장 및 전체 공단 차원으로 확대하고, 간접고용이 전면 확대될 때 일부 자본가들이 겪을 수 있는 애로사항을 사전에 개선해 내는 것, 이것이 고용서비스 산업이 해결해야 할 자기 과제인 것이다. 복합고용서비스 사업을 대형화하고, 전문화하는데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것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해 두자. 고용서비스산업이 전문화되고 대형화되면 될수록 시민권 맥락에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인데, 그것은 이들이 사용주의 노동력공급사업(파견) 및 인사·노무관리 용역사업을 대행하면서, 원청 자본가들의 사용자로서의 책임, 법·제도적 책임을 더욱더 모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간접고용의 핵심 목표 중 하나가 법적인 고용주와 실질적인 사용주를 다르게 하여 노동자의 노동3권을 사전에 무력화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기업경영에서 하나의 관행이 되어 실질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직업안정법 개악문제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파견업종 확대방안이 아니라고, 인력공급업체 몇몇을 키우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고 뒤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가깝게 이는 제조업 공단지역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온 온갖 탈법적인 파견행위를 합법화하는 개악 안이며, 멀게는 고용서비스산업을 육성해서 간접고용·노동신축화를 전면 확대하기 위해 자기실행능력을 갖추려는 구상이다. 『직업안정법 전부개정안』은 금지된 중간착취시장을 이들이 부활시키려는 계획에 불과하며, 간접고용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준비하려는 것임을 명확히 폭로해야 한다. 직업안정법 개악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당장 얻으려는 것, 수수료 자율화와 복합고용서비스사업 실시 방침을 좌절시켜야 한다.
안녕하세요 노동자운동 연구소(준)입니다. 활동가를 위한 노동경제 통계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노동 경제 분야의 기본적인 통계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필요하신 분들의 많은 활용 바랍니다. <차례> 1.고용 -취업자 및 실업자 실태 경제활동 인구조사 -비정규직규모와 실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사회보험가입률/상여금, 퇴직금 적용률/노조가입률, 고용형태별 임 금 근로시간) -산업별 고용실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산업별 분류통계) 광업 제조업조사 (산업편) 사업체 고용 동향 조사/특별조사 (현원, 구인, 채용, 미충원, 부족, 채용계획인원) -외국인근로자(고용허가제)고용동향 2.임금 사업체 임금 근로시간 조사 (사업체 규모별, 산업별, 임금 근로시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직종별, 산업별, 규모별, 학력별 통계) 중소제조업직종별 임금조사 법정최저임금 협약임금인상률 3.노동조합 활동 민주노총 조직현황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 중소제조업직종별 임금조사 (노동조합 결성 유무) 노사분규발생건수 및 근로손실일수 4.국민계정 실질국내총셍산(GDP) 경제활동별 성장률 지출항목별 증감률 노동소득 분배율 5.물가 생산자 물가동향 소비자 물가지수 6.국제수지 국제수지 국제투자 대차대조표 대외채무 7.환율 8.금리 9.정부수지 통합재정수지, 관리대상수지 조세수입 및 조세부담률 국가채무 10.산업활동 자동차 산업 동향 조선산업 동향 IT산업 생산 외국인 투자 제조업 평균가동률 11.기업경영 제조원가명세서 성장성에 관한 지표 손익의 관계비율 자산자본의 관계비율 12. 국제통계 국제 경제성장률 국제 GDP 국제 실업률
불법파견 판결 이후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의 방향 7.22 대법 판결 이후 비정규직 조직화와 자본의 탄압 지난 7월 22일 대법 판결 이후 한 달 반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과 운동 주체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숫자는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9월 3일 현재 사측의 지속적 탄압으로 연초 820명까지 줄었던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은 2,485명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같이 조합 가입 문의가 들어온다 하니 투쟁 경과에 따라 조만간 7천 5백 생산직 (1차) 사내 하청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의 조직화도 가능할 것 같다. 7월 22일 대법 판결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요지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판결은 파견법 개정이 있기 전인 2005년 7월1일 이전에 입사하여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 근로를 한 것이기 때문에 입사 2년 이후부터는 정규직으로 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9월 12월에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는 약 4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판결의 1차적인 대상자다. 파견법 개정 이후에 입사하여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판결의 1차적 대상은 아니지만 현대차 사측이 정규직 고용의무를 지니는 사법적 효력이 미친다. 정말 오래 간만에 찾아온 비정규직 투쟁의 기회다. 물론 사측이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눈뜨고 구경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달 29일에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하청업체 관리자가 노조 조직화를 위해 순회 중이던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을 맥주병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회 간담회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있는 사무실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는 감금부터, 입사추천인을 해고하겠다는 협박, 노조원이 나오면 업체를 폐업하겠다는 공갈까지 갖가지 방법으로 조합 가입을 막고 있다. 울산, 아산, 전주의 현장은 노조 조직화를 둘러싼 전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5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있었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을 판정하자 대규모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합 가입 운동을 벌였었다. 당시도 순식간에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했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며 노동부의 판정을 무시하고 노조 파괴에 열을 올렸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사수하고 고용안정을 쟁취하기 위해 해고와 구속을 감당하며 싸워야 했었다. 이 과정에서 류기혁 열사가 자결해 현대차의 부당함을 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물론 상황은 당시보다 유리하다. 당시 노동부 판정이 시정 권고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대법 판결로 법적 구속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지 사내하청 노동자 운동이 법적 판결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의 단호한 투쟁이 없다면 현대차 자본은 예전처럼 법적 다툼으로 시간을 벌며 비정규직 노조 파괴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대법원 판결을 왜곡하여 4천여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으로 재고용하며 시간을 벌 가능성도 있다. 2005년 7월 1일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는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릴 여지도 다분하다. 2년 이하 사내하청 노동자는 해고 후 현 도급체계를 법적 허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하여 재취업시킬 수도 있다. 대법원 판결을 현실화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제약들이 있다. 2005년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가 폐업으로 대응하며 조합원들을 해고했었던 사례, 2008년 대법원이 현대미포조선의 원청사용자성을 인정했지만 원직복직을 반년 넘게 연기하다 복직 이후 중징계로 노동자들을 해고한 사례 등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노동탄압으로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금속 정규직-비정규직 단결 투쟁, 비정규직노조 강화가 함께 진행되어야 결국 문제는 대법 판결이 숨통을 틔어준 사내하청 문제를 어떻게 금속노조가 노동자 대중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다.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이 2003년 사내하청지회 결성부터 근 8년간 수십 명의 노동자가 해고와 구속을 불사하고 만든 투쟁이었듯이 판결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 역시 금속 노동자들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는 7월 27일부터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금속노조 중앙 특별대책팀’을 꾸리고 완성차 지부, 지역지부, 법률원 등을 모두 참여시켜 투쟁, 교섭, 집단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지회는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 정규직화, 투쟁과정에서 부당해고된 조합원 전원 정규직 복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미지급 임금 지급, 비정규직 구조조정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한 특별교섭 요구안을 9월 16일 사측에 발송할 예정이다. 그런데 부족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신규 조합원들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의 기둥으로 세워내기 위한 중단기적 계획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정규직 전환, 미지급임금지급 등을 내용으로 한 특별교섭, 집단소송은 일정대로 진행한다 하더라도 새로 조직된 노동자들을 금속노조 비정규직 운동의 진성 조합원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사측의 대응 정도에 따라 노조 자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2005년의 경험도 그러하고, 법적 다툼이라는 것이 항시 시간을 끌면서 지루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사측의 다양한 노조 파괴 공작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합원 교육과 사회운동 참여의 경험을 통해 금속 노동자로 주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위한 금속노조 차원의 노력이다. 현대차는 이미 세 차례나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노조를 꾸리는 1사1노조 방침을 부결한 경험이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정규직 고용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지회 투쟁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작용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이미 현대차지부 이경훈 집행부는 금속노조의 이후 투쟁 계획에 대해 이러 저러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경훈 집행부는 비정규직지회 특별교섭안을 현대차 지부 대의원 선거가 끝나는 11월에나 진행하자며 투쟁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나섰고, 지난 4일 류기혁 열사 5주기 추모 문화제에 대해서도 자신들과 논의가 부족했다며 공개적으로 불평을 표하기도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까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사실 지금 자본이 노리는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다. 대법원 판결이 미치는 영향은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크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논평은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강력한 노조에 의해 보호되는 대공장 근로자들의 경직적 고용관행을 개혁해야 할 당위성은 더욱 커졌다. 열린 노동시장이 구축되는 상황에서 법에 의존하는 비정규직 보호는 또 다른 형태의 편법적 고용관행을 가져오고, 비록 일부이지만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가져 올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 한 명을 줄여 비정규직 일자리 두 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재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하며,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더 확산해나가지 않으면 결국 자본의 다음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는 현대차 관련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 의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며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 투쟁을 모색해야 한다. 금속노조가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지회 사이에서 투쟁 조율하는 소극적 역할에만 머무른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단결 투쟁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금속노조는 수직적 하청계열화, 비정규직 고용 등으로 수탈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 문제를 사회적 쟁점화하며 사내하청 문제를 사내하청 노동자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보다 근본적 문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1998년, 2009년 경제 위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재벌 대기업들은 부품사 노동자들,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비용 전가로 자신의 배를 불려왔다. 이들은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쥐어짜서 이윤을 축적했다. 금속노조가 보다 힘있게 사회적 여론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적극적인 공동 투쟁 의제로 단결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은 불황을 준비하는 자본과 대안세계를 준비하는 노동자의 한판 대결 7.22 대법 판결 이후 활기 있기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금속노조 운동이 향후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를 보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이번 투쟁은 현대차를 매개로 자본의 불황기 전략과 금속노조의 산별 전략이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자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사활을 걸고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고, 특히 2009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더욱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북미와 유럽 침체 속에서 소위 중국, 인도 등 성장세가 큰 시장에서 생산을 확대하고 있고, 경기 변동이 큰 불황기 경제 특성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에서 설비 투자보다는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2009년에 현대차 생산량은 해외 비중이 50%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현금성 자산 역시 경제 위기 이전에 비해 22% 가까이 늘었다. 불황에 대비하는 현대차가 대법 판결 하나로 고분고분 정규직화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2009년 쌍용차 투쟁 패배, 완성차 정규직이 중심인 기업지부 해소 실패 등으로 산별노조로서의 존재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금속노조의 가장 적극적인 사태 해결 방식은 다시 계급 대표성을 세워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고, 이번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 투쟁, 사내하청 노동자 대규모 조직화로 이끄는 것이다. 자본만큼이나 금속노조 역시 벼랑 끝에서 이번 7.22 대법 판결을 맞이한 셈이다. 지난 십여 년간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고, 대법 판결 이후 새로운 국면 속에서 사내하청 투쟁이 진행 중이다. 재벌 문제의 범사회적 의제화와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 광범위한 연대 투쟁으로 이번 싸움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자. 불황을 준비하는 자본과 노동해방의 대안세계를 준비하는 금속노조의 제대로 된 싸움을 만들어 보자. 현대차에서의 승리가 이후 자동차업종 사내하청 노동자의 투쟁으로, 그리고 한국 사회 비정규직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어 가보자.
현황과 과제 동시 진행 중인 두 개의 위기 이윤율 저하를 배경으로 한 경제 위기는 좌파들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던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의 위기가 노동자 운동의 희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선언했던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한 대안세계화 운동은 몇 년째 정체되어 있고,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의 노동조합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투쟁이 때때로 승리하기도 하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진정한 성과는 노동자들의 확대되는 단결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의 노동자 운동에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경제 위기는 자본에게도 타협 의지보다는 계급투쟁의 투지를 불태우도록 만든다. 노동자 운동에게 승리보다는 패배가 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이 확대될 수 있다면 우리 운동은 대안 세계를 위한 한 걸음을 더 내 딛는 것이다. 문제는 일희일비하는 승패를 넘어 노동자 단결을 위한 전략적 과제를 찾는 것이다. 노조운동의 이념과 정체성 - 사회운동노조 지금까지 노동자 운동의 전략과 관련된 논의들은 특정 ‘모델’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독일 노조 모델을 수입한 산별노조-노동자정당 건설 운동과 유럽의 사회 협약(또는 노사정협약)을 따온 노사정협조주의 전략이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 고성장 시대에 정착된 1950~1960년대 유럽 사민주의 모델을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과 금융 세계화가 한창이던 1990년대 반주변부 국가에서 실현하려 했으니,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려 했던 격이다. 안정적 노사관계를 기초로 한 사민주의 모델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모두 파탄이 났다. 중앙교섭 쟁취를 중심으로 했던 금속 산별 운동의 정체, 국민정당화의 길로 들어선 진보정당 운동, 이명박식 노사민정으로 희화화된 노사정협약을 보면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에 독일 산별모델을 1990년대 초부터 열정적으로 소개해 왔던 임영일 소장조차도 산별노조운동의 재설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투쟁에서 사회협약 정치로 중심을 이동할 것을 십여 년간 주장해온 김유선 소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노사정 사회협약은 어려우니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야당과 시민운동 진영을 파트너로 사회연대전략을 펴자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시했던 노동자운동 혁신론은 사회운동노조주의다. 이는 20세기 주류를 이룬 노동조합주의가 한편으로는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익의 방어에만 몰두하는 사회경제적 노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를 정당의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대상으로 간주하는 정당중심적 노조주의 양자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는 기구임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노동자들이 생산 통제, 민주주의, 생태 평화 페미니즘을 배워나가는 학교다.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을 통해 대안 세계의 이념과 주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운동노조는 소수의 조직 노동자를 위해 다수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비즈니스 노조나 국내 노사관계 제도화를 통해 자본간 국제 경쟁의 하위 파트너로 노동조합을 격하하는 코포러티즘 노조 모두를 지양한다. 국내외 경제전망 지금부터 검토해 봐야 할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사회운동노조주의가 최근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적합한가 여부다. 모든 노조 노선은 정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사회운동노조주의는 한국 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 국면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했던 시기에 등장했다. 이 시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코포러티즘적 약속들을 남발하며 노동자 민중 운동에 환상을 심어주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운동노조주의는 금융세계화에 맞선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 재벌 대공장 노조의 실리주의, 국민파 지도부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비판 노선으로 정세적 적합성을 획득했다. 그렇다면 금융적 축적의 막바지로 이윤율 저하 궤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세에도 사회운동노조주의는 정세적 적합성을 가질 수 있을까? 먼저, 현재 정세를 보자. 수년간의 저성장/위기 국면이 반복되는 가운데, 중국의 성장 속도, 각국의 정부 재정 위기 진행 과정이 세계 자본주의의 결정적 위기 시기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 지출을 통한 위기 완화는 미봉책일 뿐 이번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었던 장기적 이윤율 저하 추이가 변한 것은 아니다.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자본 회전률(자본 조달, 생산, 소비에 걸리는 시간의 역수)을 임시로 높여 이윤율 저하 속도를 잠시 늦춘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적자 재정은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현재의 소비를 늘리는 것일 뿐인데, 정부 지출로 인한 경제 성장 증가가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와 같은 국가 부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헤게모니가 아니라 19세기로의 퇴행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 증가는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 저하 속도를 늦춘다. 중국의 자본 수출과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 증가는 세계적 수준에서 자본 축적 둔화를 늦출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언제까지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감싸 안고 갈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이룬 생산과 경영의 혁신은 전후 세계 자본주의를 재조직할 정도의 힘으로 작용했지만, 20세기 후반 미국 이중적자의 파트너로 성장한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혁신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중국 폭스콘, 혼다 자동차 부품 공장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성장은 20세기 미국 노동자보다는 19세기 영국 노동자 상태에 가까운 퇴보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럭저럭 버티는 가운데 저성장과 국지적 위기 빈발 세계 경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추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미래 세입을 담보로 한 정부 지출과 중국의 성장으로 몇 년간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상황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이 당장 1930년대 공황처럼 발전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발전시켜 놓은 위기 관리 도구들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으며, 중국이라는 변수를 간과하는 것이다. 당장 대공황과 같은 시장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저성장이 계속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무담보 채권, 모기지 파생상품, 주식 등을 통한 신용 확대가 1990년대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 성장을 이끌었는데, 더 이상 이러한 신용 확대를 통한 고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산 시장 활성화, 자금 조달 비용 감소, 생산과 소비 확대라는 금융-실물경제의 성장이 역전되어 자산 시장 침체, 자금 조달 비용 증가, 생산 감소와 소비 축소, 자산 시장 붕괴라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각국 정부들의 공세적 통화 재정 정책이 속도를 늦추고는 있지만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잠재적 성장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악순환의 속도 조절이 다시금 세계적 경기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많은 통화 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는 점이나, 유럽 재정위기에 이은 유럽 은행 위기가 언급되고 있는 점이 그 예다. 최근에는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이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저임금 착취를 받아온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정세 변수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라, 세계적 차원에서 생산이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은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속했고 그 중에서도 중국은 농민공에 대한 저임금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최근 중국 내 초국적 기업에서 농민공의 파업과 시위가 폭발적으로 전개된 것은 출혈적인 저임금 정책에 맞선 투쟁을 통해 세계적 차원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양하는 실마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 경제 정세의 세 가지 포인트는 재벌의 수탈, 유럽 금융위기, 부동산 거품 한국은 2008년 4/4분기, 2009년 1/4분기 이후 빠르게 경제 성장률을 회복했다. 일부에서는 2010년 6% 이상의 성장을 점치기도 한다. 한국은 2008년 4/4분기부터 증권 시장을 탈출한 미국, 유럽계 금융 자본으로 인해 2009년 초 외환위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2008년 10월 이후 경상수지 흑자와 2009년 중반 이후 국제 금융 시장 위기 완화는 한국 자본주의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① 재벌의 수탈 경제 회복을 주도한 것은 재벌 대기업의 수출이었다. 2008년 6월 400억 달러에서 2009년 1월 243억 달러까지 줄어든 수출은 2010년 5월 다시 400억 달러 선으로 회복되었다. 세계적 무역 감소 속에서도 수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4분기 46.5%에서 2010년 1/4분기 47%로 상승했다. 수출 대기업들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는 100대 대기업의 순이익은 2008년 43.7조원에서 2009년 55.2조원으로 늘어났고, 이들의 순이익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2%에서 5.5%로 크게 늘었다. 재벌 대기업들의 당기순이익 증가는 2009년 환율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늘어나 매출 감소 폭이 적었지만, 그에 반해 비용 절감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들과 중소 부품 업체의 부등가교환으로 인한 가치 이전이 이들 대기업 자본 축적의 중요한 경로 중 하나다. 단적인 예로 현대차는 2009년 매출이 전년에 비해 1% 가량 감소했지만, 오히려 과감한 비용 절감을 통해 영업이익을 19% 가까이 증가시켰다. 2009년 현대차의 납품 단가 인하로 인해 현대차의 상위 10개 부품사의 매출액 감소는 현대차의 매출액 감소에 비해 3배 가까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 구조는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 계열화 구조이며, 정부의 각종 정책 역시 이들 재벌들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제공한 공적자금은 이들 대기업들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데 쓰였고, 당시만 해도 반주변부 국가의 제조업 기업에 불과했던 재벌 대기업들은 이후 현재와 같은 명실상부한 초국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8~2009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은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서도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한 걸음 더 발전했다. 더군다나 이들 재벌들은 2000년대 호황을 기점으로 주요 자금 조달 경로를 내부 자금 조달로 바꾸어 신용 경색의 영향도 덜 받고 있음이 이번 경제 위기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을 계속한다면 이들 대기업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비용 전가를 확대할 것이다. 심지어 이들 재벌 대기업들은 수출 비중이 커 국내 경제 성장률 증감에도 상대적으로 둔하다. 현대차의 경우 2009년 전체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고, 생산 역시 국외에서 절반 가량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외 매출이 국내 매출에 4배 가까이 되고, 해외생산 비중도 매출액 대비 절반 가까이 된다. ② 유럽 금융위기 남유럽 재정 위기 이후 더욱 위험도가 커진 유럽 금융 시장은 한국 금융 시장 위험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2009년 말 외국인증권투자 중 33%(1,274억 달러, 약 140조 원)가 유럽계 금융 자본으로 미국보다도 많다. 유럽 금융자본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내 증권투자를 560% 가까이 늘렸고, 또한 경제 위기 시기에는 가장 빠르게 자본을 빼냈는데, 2008년 말에는 2007년 말에 비해 47%의 자본(816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110조 원)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2009년 2월 환율은 달러 당 1,560원 선까지 치솟았다. 유럽발 금융 위기 발발 시 한국의 외환위기가 다시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③ 부동산 거품 부동산 거품 붕괴 역시 한국 금융 위기의 뇌관 중 하나다. 은행이 가계에 대출한 주택담보부대출은 500조 원 규모며, 건설사에 대출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50조 원 규모다.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경우 한국의 일년 국내 총생산의 50%에 가까운 규모의 잠재적 부실 채권이 발생하는 것이며, 상환 및 이자 연체가 발생할 경우 9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은행 이자 수익(국내 총생산의 약 30%에 달하는 규모)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자, 건설사, 금융자본 삼자 간의 투기 동맹은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을 이끌었다. 은행은 실제 가치가 확정된 것이 아닌 미래의 부동산 개발 기대 수익을 담보로 건설사에게 대출(프로젝트 파이낸싱, PF)을 해주고, 그 부동산의 수요를 높이기 위해 부동산 투자자에게 또 다시 주택담보부대출을 확대해왔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해 건설사는 분양 수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고도 남을 수익을 올리고, 부동산 투자자는 매매 차익을 얻고, 은행은 양자에게 이자 수익을 올리면 문제가 없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여 기대 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3자가 동시에 파산하게 된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자산가 계층의 이해도 있지만, 한국 경제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국민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거품을 계속 확대할 수도, 꺼뜨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의 노동현황과 노동조합 한국의 실질 실업률은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0년 2/4분기 실업률은 3.5%로 2008년 1/4분기 3.4%에 근접했다. 2010년 1/4분기 4.7%까지 상승한 실업률이 2/4분기에 들어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 고용률도 2008년 1/4분기 58.5%보다 높은 59.6%다. 하지만 정부 공식 실업률은 실업자의 수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으로 최근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취업준비자, 구직포기자 그리고 취업자로 분류되는 불완전취업자들을 실업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흔히 확장 실업률이라고도 불리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실업지표를 구해 보면 실업률은 2008년 6월 10.7%, 2009년 6월 12.5%, 2010년 6월 12.5%로 경제위기 이후 낮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 통계에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 그리고 취업자 중 18시간 미만 취업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분기와 2분기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체감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수출 재벌을 위한 내핍형 위기 극복으로 임금 및 고용 조건이 악화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취업을 포기(혹은 대기)하고, 소비 감소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사업 포기가 속출한 것이 원인이다. 고용 완충 역할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의 원자료를 재가공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3월 858만 명(경제활동인구의 53.6%)에서 2009년 3월 841만 명(52.3%), 2010년 3월 828만 명(49.8%)로 줄어들었다. 정규직은 2008년 3월 741만 명(46.4%)에서 2010년 3월 833만 명(50.2%)로 늘어났다.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초에 비해 2010년 초 30만 명 가까이 줄었고, 정규직은 92만 명 가까이 늘었다. 비정규직은 제조업, 도소매업, 건설업에서 감소 폭이 매우 컸으며, 정규직은 사업서비스, 도소매업, 운수, 교육, 보건 서비스 분야에서 증가했다. 상용직 증가도 대부분 상용직 평균 임금 이상에서 증가한 것으로 보아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인한 정규직 전환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질 임금 감소, 임금 격차 확대 노동부 사업체임금근로시간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 노동자 평균 월임금은 2010년 1/4분기 276만 9천 원으로 2009년 4/4분기에 비해 실질 상승률이 3.2%를 기록했다. 2008년 3/4분기 -2.7%를 시작으로 6분기 연속 실질임금이 하락하다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아직까지 본격적인 임금 회복은 되지 않고 있다. 2008년 1/4분기와 비교하면 실질임금은 여전히 -3.6% 하락한 수준이다. 이러한 감소는 고용 형태별로도 차이가 난다. 고용형태별 근로조사에 따르면 정규직(노동부 기준) 임금은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에 비해 2009년 8.48% 상승하여 0.9% 정도 증가가 있었던 반면, 비정규직(노동부 기준)은 4.98% 상승하여 2.6% 이상의 실질 임금 감소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역시 2007년 월 88만 원에서 2009년 월 1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벌어진 것은 경제 위기로 비정규직의 노동 시간이 크게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의 노동시간은 2007년에 비해 2009년 월 2.5시간 증가한데 반해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4시간 줄었다. 더군다나 통상, 수당이 정규직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노동 시간의 감소는 더 큰 임금 격차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노사연이 재구성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2008년 3월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1.2%였으나, 2010년 3월 47.5%까지 하락했다. 이후 전망: 파견근로 확대와 노동시간유연화 한편 정부는 작년 초부터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노동법 재개정과 정부 고용 정책을 논의해 왔다. 정부가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장기적 고용 전략은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노동 수요 측면에서는 제조업 일자리 창출이 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며, 노동 공급 측면에서는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대비하여 여성 노동 활용을 위한 상용 단시간 근로 확대와 정년 연장, 그리고 대학 구조조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노동 시장의 효율화를 위해서 임금유연성 확대(성과급 확대)와 고임금 정규직 보호 완화(해고 요건 완화), 실근로시간단축과 변형시간근로제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10년이 넘게 이야기되는 방안들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확대 방안의 경우 생산자 서비스와 사회 서비스를 예로 들고 있다. 생산자 서비스는 보험, 부동산 등의 금융서비스, 회계 연구개발 등 기업 특정 분야의 외주화된 서비스를 말하는데 금융 서비스는 두 집 건너 보험 설계사가 있고, 상가에 부동산만 넘쳐나는 현실만 보아도 탁상공론임을 알 수 있고, 기업 외주 서비스는 재벌 대기업이 수직 계열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상태에서 그다지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사회 서비스업 확대 방안은 여성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저임금 노동 시장만을 만들고 있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실상 정부 부문을 민영화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정부의 서비스업 확대 방안은 일자리 창출의 곤란함을 정부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수요 공급 정책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정부는 중간착취를 규제하는 직업 안정법을 전면 개정하여 파견중개업을 대형화하고, 파견법개정으로 인한 논란을 우회하기 위해 고용서비스촉진법을 새로 만들어 파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이미 공무원 노동자를 상대로 시범 실시하고 있는 단시간근로시간제 역시 전 산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이지만 일반화된 불법 파견 노동자 사용을 아예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며, 자본의 의도만큼 활성화되지 않은 노동시간의 유연화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보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대폭 확대된 노동 유연화의 종점인 셈이다. 노동조합 상황 총연맹 집행부 스스로가 평가하듯이 2009~2010년 대부분의 투쟁은 물리적 파급력이 없는 상징적 투쟁과 지지 연대 정도로 그쳤다. 총노동투쟁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총노동투쟁전선이라 부르는 것은 가장 높은 수위의 집중 투쟁인 총파업에서부터, 대규모 조합원 동원을 통한 위력적 가두 시위, 산별노조부터 단위 사업장에 이르는 임단협 투쟁 시기와 기조의 통일, 조합원들의 결의와 범사회적 지지 여론 조직 등 여러 수위가 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은 총파업은 고사하고 가장 낮은 수위의 전선 구축에도 실패했다. 산별노조의 경우 이명박 정권 이후 더욱 강경해진 자본가들의 태도로 인해 산별교섭 자체가 대부분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민주노총에서 가장 집중적 형태로 산별교섭을 펼쳤던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단체 해산으로 인해 대각선교섭을 진행 중이고, 금속노조는 2만 수준의 중앙교섭 명맥은 이어가고 있지만 완성차 3사와 대공장을 포함한 중앙교섭 투쟁은 사실상 잠정 유보된 상황이다. 금속노조가 최근 조직발전특별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고 있는 바는 2006년 이후 금속 산별노조 완성의 척도처럼 여겨졌던 중앙교섭을 유연화하고, 기업지부 해소를 장기적 과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중앙교섭 참가를 강제할 만한 조직적 제도적 힘이 없는 상황, 현대차지부,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의 실리가 분명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동의지반도 크지 않은 상황을 당장 타개하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공공운수연맹은 조직을 공공운수노조준비위로 개편하고 오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이후 조직 통합 일정을 밝힐 계획이다. 하지만 통합의 키를 쥐고 있는 운수노조 업종본부(철도본부, 화물연대본부)들이 대대적 탄압을 받아 역동적인 조직 전환을 결의할 상태가 아니고, 공공서비스노조의 전국단위지부들 역시 단협해지와 탄압(사회연대연금지부, 가스공사지부) 속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규모 있는 연맹 직가입 노조들 역시 탄압으로 인해 노조의 생사 기로에 처해있거나(도시철도노조, 발전노조) 어용집행부가 노조를 장악하고 있다(서울지하철). 공공운수 산별 노조 건설의 현실적 장애는 정권의 탄압이지만,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산별 건설의 동인이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은 민주노조 진영의 전략적 지역에 탄압을 집중하고 있다. 공공운수연맹의 대규모 사업장들과 금속노조가 그 전략적 타겟이다. 재벌 대기업의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조업 공단의 핵심 노조들에서부터, 파업 파급 효과가 전산업에 미치는 운수 노조들, 초국적 자본 이동에 제약이 되는 외투기업의 노조들, 노조 조직률이 높은 공공기관 노조들에 이르기까지 정권과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노동조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편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조운동 기반에 큰 변화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현재 금속 및 공공 대형 사업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보건의료노조 지부들 중 상당수는 아예 사용자가 타임오프 건을 가지고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타임오프제가 가장 첨예하게 걸린 금속의 경우 현대차 그룹 계열사, 두산그룹 계열, S&T 그룹 계열사 등 재벌 대기업 계열사들이 노조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사업장 수로는 약 80% 가까이가 단협을 타결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60여 개 사업장(대부분 500인 이상)은 8월까지 단협투쟁을 진행 중이다. 타임오프제로 인한 전임자 축소 규모도 문제지만 타결 이후도 문제다. 사회공헌기금 등의 우회로를 통해 합의를 하더라도 이후 전임자에 대한 규제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기존 조합활동이 타임오프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떼를 쓸 수 있다. 단협을 체결했음에도 상근단체 파견에 대한 임금지급을 중단하는 사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철도의 경우 무급전임자에 대해서도 사측이 규모 제한을 두려 하고 있다. 별도의 단협 조항이 없다면 무급전임자에 대해서도 무급휴가 처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비 인상, 사측에서 제공받은 전임자 기금 등으로 전임자 수를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전임자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산별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법 개정이 당분간 어렵다고 전제하면, 현실적으로 버티는 기간이 사회운동을 포기하는 기간이 되어서는 투쟁의 의미가 퇴색해 버린다. 타임오프산정범위 등으로 옭아매면 사실상 노조판 국가보안법이 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의 노동자 대중운동 강화를 위한 지향 이러한 정세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흐름은 두 가지다. 위기는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전적 사민주의적 입장과 대공황에는 이행적 강령을 내걸고 사회주의 정당으로 노동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고전적 좌파 입장 등 다시 고전적 방식들이 부활하고 있다. 전자는 복지동맹(민주대연합), 사회연대노조(복지동맹에 참여하는 노동운동 노선으로)등으로 불리고 후자는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 사회변혁적 노조 등으로 불린다. 한편 현실에서는 정치세력들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대공장 노동자들의 실리적 선택이 더욱 많아 있다. 2년간 무쟁의 임단협을 진행한 현대차 노동자들, 타임오프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측의 선물 공세에 별다른 투쟁을 만들고 있지 못한 기아차 노동자들, 단협효력상실이라는 노조 붕괴 상황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만들지 못하는 발전, 도시철도 등의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대표적 예다. 복지동맹-사회연대노조 전략의 문제점은 복지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로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상황, 현 정권의 노골적인 친기업, 부자 우선 정책에 대한 분노를 고려할 때 응당 노동자들이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지동맹-사회연대노조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사회운동이 노동자운동을 상대화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하고, 노동자 간 격차 확대와 분열에 대해 눈을 감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이 전략의 실행 경로가 노조 외부(정당에 대한 특정 시기의 지지)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노조 운동의 우향우에 대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회주의정당-사회변혁노조 전략은 노동자운동 위기의 문제를 오로지 전위당 건설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이같은 맹점으로 인해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복구라는 현실의 대중운동적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세적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운동노조주의 관점에서 중요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로 보인다. ①노동자 계급의 분열과 내부 갈등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② 국제적 대안세계화 운동강화에 복무해 나가며 ③ 정세에 걸맞은 노조 체계와 이념을 다시금 세워나가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경제위기와 노동자 계급의 단결: 연대임금 전략과 투쟁 임노동제에서 노동자 간 갈등의 핵심은 임금 격차다. 이는 급증하는 산업 예비군, 상대적으로 더 보호를 받고 있었던 대기업 노동자들의 보수화 등으로 타협의 여지가 줄어드는 경제 위기 시기에는 더욱 첨예한 문제로 등장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현 정세를 ‘대공황’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혁신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당장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우리의 정세 분석 결과다. 저성장과 국지적 위기가 한동안 지속된다고 봐야 하고, 그에 걸맞은 투쟁을 논의해야 한다. 즉 한동안은 저성장 시대 핵심 문제로 대두될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한 투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임금 격차를 축소시키면서도 노조의 수동화를 가져오지 않는 방식의 연대임금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연대임금은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물가연동제와 스웨덴 렌 마이드너 모델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1970년대 중반에 도입된 이탈리아 물가연동제는 물가연동 표준 임금(1974년 2,389 리라)을 소비자물가(1974년 8월-10월을 100으로 기준) 인상분만큼 상승시켜 그 정액 인상분을 모든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 전체 임금 평균이 1982년에는 1974년 대비 250% 이상 오르고 임금 격차도 크게 축소했다. 스웨덴 모델은 1950년대 물가 인상과 수출 대기업 경쟁력 저하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억제, 저임금 노동자 임금 인상, 대규모 복지정책, 한계기업의 퇴출과 구조조정, 정부의 적극적 완전 고용정책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 역시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했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1980년대 세계적 저성장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유지되지 못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세 노총의 분열, 피아트 노조, 공공부문 독립노조 등 고임금 노동자 층의 저항,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통화동맹 가입 조건에 따른 물가 안정이 1994년 제도 붕괴에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역시 1980년대 고임금 노동자 층이 연대임금으로 인한 임금 억제에 저항하며 비공인 파업을 광범위하게 벌이며 제도가 붕괴했다. 위와 같은 적극적 연대임금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을 연대임금의 한 형태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그리스는 노사 교섭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정부가 이의 적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형태다. 그리스 노총은 최저임금 인상분 요구를 가지고 매년 파업을 벌여, 평균임금의 40%선까지 최저임금을 끌어올렸다. 프랑스의 경우 평균임금의 50%선까지 최저임금이 보장되는데, 물가인상분과 실질구매력 상승분 등의 지수를 통한 결정과 동시에 정부 재량에 의한 결정권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매년 총연맹은 정부 재량에 의한 인상분 수준을 제한하며,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다. 한국에서의 연대임금 현재 한국 상황에서 1970년대 이탈리아와 같은 연대임금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1969년 대투쟁이라는 대중운동과 1970년대 이탈리아 경제 성장이 만나 만들어진 제도는 현재 대중투쟁 약화, 경제위기라는 한국 조건과 괴리가 크다. 더군다나 1970년대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고임금 노동자들의 반발이 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에서 정규직과 사내하청의 임금 격차는 크지 않았다. 1987년 이전 사내하청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80~90%였다. 울산과 거제의 금속 사업장들에서는 정규직 사내하청이 함께 임단투를 벌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노조 민주화 투쟁과 전투적 임단투 이후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는데, 연대임금 없이 진행된 노동조합 임단투의 결과다. 현재 현대차의 경우 1차 사내하청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60% 수준이다. 2,3차 하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에서 연대임금투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해볼 수 있다. 먼저 한국노동자운동의 혁신의 중요 사안으로 연대임금을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수년 전에 노동자운동 내 일부 정파에 의해 연대임금이 정규직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금 조성이라는 형태로 제시된 적이 있다. 사실상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보호 심리를 자극하는 논의 제기였다. 현재 민주노총 임금 요구안에 나오는 연대임금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이용한 “기금 조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해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할을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함께 요구할 수 있는 제도로 연대임금이 제시되어야 한다. 연대임금을 ‘단결’의 이데올로기로 내세워야 한다. 단결의 이데올로기로 연대임금은 우선 민주노총 차원에서 “재벌에 의한 국민 수탈 저지” 투쟁을 범사회적으로 펼쳐보는 것으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로의 부의 집중과 하청기업 수탈 문제를 노동조합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 문제들로 제기하는 것이다. 내수 육성과 같은 공허한 이야기보다는 재벌들의 이윤을 사회화하며 사내하청 노동자, 부품업체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을 상향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최저임금 실질화 제도적 연대임금으로 최저임금 실질화 투쟁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임금 격차가 매우 크고, 노조 조직률이 낮은 한국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그나마 저임금 노동자들의 보호막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투쟁은 지금까지 여성연맹, 공공서비스노조 등으로 조직된 저임금 노동자들 일부의 투쟁으로만 진행되었다. 하지만 저성장 위기반복 국면이 계속되면 고용, 임금 유연화 정도가 매우 큰 한국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위기 과정에서 위기 비용을 민간 자본이 일정하게 부담하는 방법으로서도 효과가 있고 노동자가 언젠가는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정부 재정 적자 방식보다 바람직하다. 전체 노동자의 42%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다. 최저임금투쟁이 총연맹 차원의 연대임금투쟁으로 더 많은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 위원이 사실상 아무런 기준도 없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제도는 문제가 크다. 법적 기준과 정부 재량권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프랑스식 제도가 바람직해 보인다. 현재 정치 구조에서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법적 기준으로만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것은 대중운동 활성화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초 발표되는 민주노총 임금 인상 요구액과 최저임금인상액을 동일액수로 맞추며 전국적 임금 요구 설정의 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민주노총 임금 요구안은 조합원 생계비 조사를 통해 임금 인상액을 설정하고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을 최저임금요구안으로 만든다. 이 과정부터 하나의 틀이 필요하다. 같은 액수의 정액 인상을 요구하며,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공동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남녀 간 임금격차 문제 마지막으로 연대임금의 다른 핵심 과제로 남녀 간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연대임금은 주로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를 중심으로 언급되지만 격차 수준을 놓고 보면 남녀 간 격차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남성 정규직 대비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38.3%에 불과하고, 남성 비정규직에 비해서도 80%다. 여성 노동자 중 전체 노동자 평균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77%에 이른다.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남녀차별에 관한 법제도가 있으나, 성별 분업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좀 더 복잡한 것은 남성 노동자의 경우 1990년대 후반 노동시장 유연화가 본격화된 이후 임금 계층이 중간층이 두터운 구조에서 저임금과 고임금으로 양극화되는 변화를 보였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우 저임금 계층에 극단적으로 몰려 있던 임금 구조가 저임금부터 고임금까지 고루 확산되는 변화를 보였다.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와 중위임금 이상의 여성고용이 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남성 노동자 임금 격차 문제가 중간층이 저임금 층으로 몰리는 문제라면, 여성 노동자 임금 격차 문제는 아예 노조와 노동자운동에서 배제되었던 여성 직무와 여성 업종에 대한 문제이다. 일반적 연대임금과 종별적인 여성 노동권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직무, 업종에 대한 노조 조직화와 운동 의제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2011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맞선 대응 제도적 요구로는 우선 2011년 상황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11년 하반기부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다. 현행 노조법은 기본틀부터가 창구단일화의 틀을 기업노조로 설정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거부감과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을 봤을 때 민주노조 사업장 내 어용노조를 만들어 교섭 체계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금속, 보건, 공공 등에서 사용자들이 노조를 흔들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기업에서 노조 간 경쟁은 실리적 노조에게 산별의 정치적 교섭 의제들을 회피할 명분을 쥐어줄 수도 있다. 결국 승패는 얼마나 준비된 투쟁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집단교섭 혹은 중앙교섭을 통한 산별노조 임단협이 연대임금 실현에 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임단협 의제 개발이 시급하다. 이러한 사회적 힘을 바탕으로 노조법 재개정 요구를 하고, 산별교섭의 이유를 보다 대중적으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 노조법 재개정 투쟁이 국회 앞에서 진을 치는 투쟁이 아니라 중앙교섭 혹은 전국교섭의 사회적 우위를 확인해 나갈 수 있는 준비에서 비롯된다는 점, 그리고 핵심의제는 임금격차를 줄여볼 수 있는 연대임금 의제라는 점을 본격적으로 토론해봐야 한다. 국제적 대안세계화 운동의 강화 반주변부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에서 일국적 수준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수 중심 경제 변화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미 초민족기업화된 재벌 대기업, 국내총생산 증감에 90% 가까운 영향을 미치는 수출 비중 등 금융세계화된 21세기 한국 경제 체계에서 내수 중심 전환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 상황으로 인해 일국적 집권 전략 중심의 대안보다는 국제적 수준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대안 세계화 운동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대안 세계화 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검토를 요한다. 세계사회포럼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새로운 국제 흐름은 현재 정체다. 1994년 북미자유협정 반대 투쟁, 1999년 시애틀 투쟁, 2001년 세계사회포럼으로 이어진 이 흐름은 2007년 이후 정체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더 이상 변화가 없으면 운동이 계속되기 힘들다는 평가도 많이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위기 한 복판에서 열린 2009년 벨렝 세계사회포럼과 2010년 지역사회포럼들은 정세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사회포럼을 주도해 왔던 남미와 유럽의 노동자 대중 운동이 침체해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세계경제위기가 남미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은 가운데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주요 중도좌파 정권들은 기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절하게 관리하며 사회운동을 국가 정책 내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좌우파 정권 할 것 없이 사회협약을 통한 노사관계 안정화와 정부 경기부양 정책으로 노동자 운동에 대한 코포러티즘적 관리에 일정 부분 성공했다.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한 대안세계화 운동이 왜 한계에 봉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비판적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현재로서는 오히려 대안세계화 운동에 친화적인 노조운동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① G20 투쟁 대안세계화 운동에 친화적인 노조 운동을 위해 올 가을 G20 투쟁을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 의제를 다루는 대중적 운동으로 만들어 보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즉자적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한국 노조 운동을 국제적 운동에 친화적으로 변화시켜본다는 목적 의식 하에 가능한 국제적 운동과 매개할 수 있는 의제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주로 논의되는 국제적 의제는 금융 통제다.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과 일부 케인즈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만 이야기되던 은행세, 금융거래세, 금융상품규제 등 여러 정책 대안들이 이제는 우파 정부들의 국제 회의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자본은 실상 금융 규제에 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국제회의 상의 요란한 립 서비스로 무마하며, 실제로는 대형은행의 리스크 관리 수준의 조치들만 취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7월 15일 통과시킨 도드-프랭크 법안은 대형은행에 대한 정부 감시를 높이고 부실은행을 조기에 퇴출시켜 금융 시장 교란 요인을 줄여보겠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국제적으로 공조가 안되고 있다는 이유로 유럽과 미국은 핑퐁 게임을 벌이며 은행세, 금융거래세와 같은 금융 규제안은 회의 석상에만 올려 놓고 있는 상황이다. G20을 계기로 한국 노동자 운동은 국제적 노동 조건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의제들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좋은 일자리’, ‘사회보장확대’ 정도로 의제화되어 있는 노동 문제는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자주 제기되는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남반구 노동자와 북반구 노동자의 갈등이나 초국적 기업에 의한 노동권 파괴 앞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되고 국지적 위기가 반복될 경우 국제적 노동권 보호 문제는 노조 운동에 있어 핵심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가 작년과 올해 초국적 기업들의 구조조정, 자본 철수로 곤욕을 치루었듯이 경제위기 시기에는 자본 철수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보호무역 혹은 국가 경쟁력 우위를 위한 저임금 경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상징적 수준에서 주요 노조들이 국제적 수준의 노동헌장 제정 운동을 펼치는 것에서부터, 무역협정에서 노동권 기준과 노동권 파괴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의제들의 개발,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 투쟁을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 마련 등 여러 수준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하반기 G20 투쟁을 준비하며 한국 상황과 국제적 흐름을 반영하는 요구들을 만드는 토론이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② 초국적 자본의 구조조정 및 철수에 대한 대응 대안세계화 운동의 다른 경로로 초국적 자본의 구조조정 및 자본 철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을 만드는 것도 모색해 볼 일이다. 한국에 있는 초국적 자본의 자본 철수와 구조조정으로 작년부터 금속노조 십여 개의 지회가 심한 타격을 입었다. 공장을 폐쇄한 발레오공조부터 자본 철수 압력으로 노조를 파괴한 발레오만도, 대규모 해고와 임금삭감을 단행한 캐리어, 만도위니아 등 초국적 자본에 의한 피해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에 의한 국외 현지 노동자들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인도 현대차, 포스코 사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태가 벌어지면 대응하는 현재의 투쟁 방식은 초국적 자본의 휘발성으로 인해 효과를 보기 힘들다. 2~3년 전부터 브라질 CUT와 프랑스 CGT가 양국에 서로 진출해 있는 초국적 기업의 단체교섭, 사회적 의무, 최저임금 적용 방법 등에 대해 사전적 조치를 취하는 전략적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10년에 CUT, CGT는 발레오, 패넥스, 미쉐린, 까르푸 등 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일종의 양자 간 ‘투쟁협정’인 셈이다. 한국 노조 운동 역시 구조조정, 자본 철수 등의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원정투쟁 등을 통해 어려운 싸움을 하는 것보다 위와 같은 방식의 총연맹, 산별 수준에서 초국적 기업과 관련한 장기적 전략, 단체협약 및 기타 의무조항들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을 검토해봐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에 진출해 있는 유럽계 자본의 노조들, 인도 노총과 인도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계 자본의 노조들이 단체협약 또는 노동 기준의 국제화를 이루는 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다. 정세에 걸맞은 노조 체계와 이념의 구축 2010년 그 어느 때보다 총연맹의 존재감이 없는 가운데, 총연맹 위상 문제는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 반드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더군다나 올해 하반기부터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동조합 간부들이 어디로 배치되어야 하는지는 모든 노조 조직에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총연맹의 위상 잠시 국외 노조의 사례를 살펴보자. 산업 발전이 일정 수준 이상인 중심국과 반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내셔널 센터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조건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이를 정치세력화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다. 1990년대 초 전노협이 그러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노총이 ABC공단 파업과 이후 전국적 노조 조직화로 정권의 반노조 정책에 맞설 때가 그러했다. 비슷한 시기 남아공노총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체계에서 흑인 노동자의 노조 설립 자체가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인종차별 투쟁에 대한 민중연대 투쟁이 그러했다. 1990년대 이후 브라질 노동자운동은 1980년대와 같은 총파업 투쟁을 통한 전선 구축보다는 PT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에 주력하고, 총연맹의 역할 역시 정당 건설 강화의 센터로서 역할이 커졌다. 정부 민주화로 그나마 노조 교섭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화되고 산별노조가 대부분의 교섭을 담당하게 되었다. 남아공노총은 1990년대 ANC 집권 이후 정부 집권 세력의 한 파트너로 총연맹의 역할이 커진 경우다. 주로 저임금 흑인 노동자가 조합원의 대다수인 남아공노총은 교섭 수준에서의 안정화보다는 정부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이 여전히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제도적으로 총연맹이 (중앙 및 지방)정부, 사용자 단체와 임금, 연금 등에 관해 의미 있는 교섭을 하거나, 복수노조 상태에서 제도적으로 어느 한 총연맹 소속의 단위노조에게 유리한 조건이 법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총연맹이 사용자단체와 전국단위통합교섭을 하는데, 실업보험 퇴직연금 등의 사회보험관련 문제부터 노동법 개정 사항에 대한 사전 사후 교섭을 주로 한다. 프랑스의 단협 효력확장제도에 의해 교섭은 사실상 전노동자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지방정부들은 지역내 고용 문제나 투자 유치 문제 등으로 노자 대립 문제에 대해 깊숙하게 관여해온 전통이 있는데, 이 때 총연맹의 지역본부가 지방정부 사용자단체와 중요한 교섭을 해왔다. 이탈리아는 1969년 이후 현장 노조 운동이 확대되는 가운데 1970년대 중반부터 물가연동임금제도를 통해 총연맹이 중앙정부, 사용자단체와 물가 통제, 임금 인상 등에 관한 교섭을 해왔다. 1994년 이후 물가연동제가 폐지된 이후 총연맹의 제도적 교섭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20세기 초부터 계속되어 온 이탈리아 노조의 중앙 집중적 전통으로 인해 총연맹에 의한 산별노조 관장력이 유지되는 편이다. 특히 2000년대 베를루스코니 집권 이후 펼쳐진 각종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 많이 펼쳐졌다. 총연맹 지역본부들은 제도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지방정부가 관장하는 각종 보험 기금들에 대해 총연맹 지역본부들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노조 간 경쟁이 첨예한 상황도 총연맹의 역할과 지도력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원인이다. 프랑스는 법률로 보호하는 5개 총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업 내 노조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고, 전국 교섭이나 산별 교섭에도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탈리아 역시 기업 내 노조 선거에서 주요 총연맹 소속이 아니면 RSU라 불리는 기업단위 노조통합 대표단에 끼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의 정세적 조건과 총연맹 한국의 경우 정부 노동 정책에 의해 크게 변화하는 노동 시장, 국가적, 산업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초기업 교섭, 낮은 노조 조직률 등의 조건으로 총연맹을 강화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위의 국외 사례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다만 유럽과 같이 총연맹이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대한 안정적 개입 경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한계다. 명확한 공동의 투쟁 과제가 있지 않으면 산별노조나 기업별 노조가 총연맹을 경유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총연맹의 지위가 제도적이기보다 운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총연맹 지도력 상실의 원인은 총연맹 지도부의 운동 노선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흔히 양날개론이라 불리는 초기업 교섭 제도화를 핵심으로하는 산별노조, 의회 진출을 통한 집권 세력화라는 노동자정당 건설 운동, 무늬만 코포러티즘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정부에 대한 대립과 참여를 반복하며 노동자 대중운동의 힘보다는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의지했던 사회적합의주의 운동 등이 그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의 집행부 노선이 핵심 문제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집행부를 바꾸면 되는 문제인가? 집행부 교체와 더불어 총연맹으로 힘을 모으기 어려운 조건들이 동시에 고민되어야 한다. 하나는 노동자 운동 전반적으로 현재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별 건설 운동에서조차 금속 자동차 지부들과 공공운수연맹 대형 공공기관들이 사실상 저항하고 있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뿌리 깊은 관념이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산별노조 건설이었고, 이는 총연맹에 대해서 산별노조 협의체로서 위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했다. 한국에서의 산별은 독일식 산별 모델을 이상화하여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일식 총연맹-산별은 유럽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다. 많은 다른 나라에서 오히려 총연맹의 역할이 산별노조와 더불어 중요했다. 지역 대중운동의 중심으로 총연맹 지역본부 강화 총연맹의 지도력 재구축은 지도부 문제와 더불어 몇 가지 조직 혁신 ‘운동’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지역연대운동의 구심으로서, 총연맹 활동의 집행기구로서 지역본부의 위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노조 조직화, 정세대응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연대의 활성화를 위해서 지역본부와 산별지역본부/지부의 통합적 운영 및 공동기획ㆍ공동집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 지역본부에 대한 인력, 재정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다만 지역본부 강화를 위한 한 조건으로 예산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본다. 산별노조 연맹과 총연맹 예산을 총연맹 지역본부로 가능한 집중해 사업의 규모를 키워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예를 들면 금속노조 수입 중 7.6%가 총연맹 납부금으로 올라가고, 이 7.6%의 43%가 지역본부 예산으로 교부된다. 금속노조 예산의 3.3%만이 사실상 금속노조 지역지부와 함께 하는 지역본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CGIL의 경우를 보자. 금속노조는 조합비를 총연맹에서 교부받는 형식으로 예산을 받는데, 금속노조 조합비는 1%가 총연맹 예산으로, 9%가 총연맹 지역본부로, 16%가 총연맹 지구지역협의회로 분배된다. 금속노조 전체 예산의 25%가 총연맹 지역본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 본부에 대한 기여도가 8배 가까이 된다. 참고로 우리 금속노조의 지역지부에 해당하는 산별 지역본부는 9%, 지역지회에 해당하는 산별노조지구협의회에는 56%가 배정된다. 이탈리아 공공노조의 경우도 규모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산별노조 안정화와 전략적 공동 투쟁 과제 정립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산별노조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별노조를 포기하고 다시 기업별노조로 돌아가자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조직 전환이란 머릿속의 모델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투쟁의 성과와 정세 조건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조직 전환 논리는 관념적 발상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금속노조와 공공운수연맹은 산별건설 운동을 조직 형태를 갖추는 방식에서 공동 투쟁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 한국 제조업이 수출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산별노조 운동이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의 제조업 산업 조건은 수직 계열화를 통해 경영혁신을 달성했던 20세기 초 미국 대기업들과 하청 기지 건설을 통한 부등가 교환으로 이윤을 극대화했던 일본 대기업들의 전략을 종합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은 파워트레인(엔진, 변속기) 등의 핵심 부품사를 수직 계열화하며 동시에 국내 2,3차 부품사들을 강하게 수탈하고 있다. 최근 친기업 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내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경제 위기 와중에 재벌 대기업들의 수탈은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내 지불 능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기업별 노조로는 재벌 기업 노동자들과 하도급 기업 노동자들의 격차 축소는 고사하고 적대적 대결 구도를 피할 길이 없다. 미국 전미자동차노조의 퇴행 사례 금속노조가 기업별 노조 전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CIO의 전미자동차노조가 전후 산별노조와 산업 평균 임금 정책을 포기하면서 걸었던 길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유럽식 산별노조로 조직된 CIO는 전쟁 기간 중 정체된 임금 인상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본가와 정권의 탄압을 우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별 교섭 전략을 취했다. 지엠, 포드, 크라이슬러 완성차 기업과 5~6개 대형 부품사는 큰 인상을 해줄 여력이 있었지만, 2천여 개에 달했던 하도급 기업들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CIO는 ‘능력만큼의 지불(ability to pay)’이라는 슬로건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서 많은 하도급 기업의 노동자들을 조직에서 배제했다. 사회운동노조주의가 비판했던 비즈니스 노조의 세계적 첨병으로의 발전 경로가 시작되었다.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 고성장 시기에 전미자동차노조는 완성차와 핵심 부품사, 그리고 일부 하도급 기업들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실리를 챙겨왔지만 1980년대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에 조합원 수는 200만에서 40만까지 줄어들고, 결국 2009년 경제위기 와중에 노조 자체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기존 투쟁에 대한 평가와 대안 무리한 조직 전환과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중앙교섭에 당분간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남은 금속노조의 쟁점은 완성차 지부들과 지역지부의 관계를 대립 관계로 몰고 가지 않을 전략적 공동 투쟁 의제를 만들어 내는 것과 조합원의 구성 비율을 조정하고 계급적 대표성을 높여낼 조직화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금속노조의 공동투쟁 과제는 지금까지 주로 주간연속 2교대제나 노동시간단축 등이었다. 이 중 노동시간 단축은 쟁점이 있는데 노동시간단축 투쟁은 1990년대 독일, 프랑스 등에서 기업노조 혹은 종업원평의회에 비해 영향력이 줄어들어가는 산별노조가 취한 전략 중 하나였다. 독일의 경우 산별협약을 통한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변형근로시간제와 맞물려 결과적으로 노동강도의 강화로 귀결되기도 했지만, 산별 노조의 전략으로는 유럽 대륙 노조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한국 노동자운동에서도 유럽 사례(특히 독일)를 들어 2000년 이후 전략적 투쟁 과제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도 노동시간유연화를 통한 노동 효율성 강화와 시간단축을 통한 고용 증대 방안이 공공연히 이야기된다. 다시 말하면 저성장 시대에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노자간의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대공장과 중소영세사업장 간의 공동 요구가 될 수 있냐는 점이다. 이번 2009년 경제위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현재 제조업 임금 체계에서는 노동시간이 줄어들 경우 통상, 수당이 뒷받침되는 대공장 노동자보다 시간외 수당에 의해 임금 변동폭이 커지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큰 타격을 입는다. 독일과 같이 산업 평균 임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노조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단결과 노조 지위 상승의 매개보다는 오히려 대공장 노동자의 이해만 관철되기 쉽상이다. 저성장 시대의 금속노조는 현대-기아 노조와 금속노조 간의 대결 구도에 대해 고민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기아 노조와 현대-기아 기업 간의 싸움이 아니라 산별 금속노조와 현대-기아 자본 간의 싸움을 사회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직적 산업 구조에서 금속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의 중심에 현대-기아 자본이 있다. 성장의 열매는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하락의 고통은 중소제조업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조그만 실리의 분배로 완성차 노동자들을 포섭하는 현대-기아 자본에 대한 싸움은 단순히 한 기업에 대한 투쟁이 아니다. 특히 앞으로 많은 고통 전가가 예상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 노조 내에서 이야기되었던 여러 의제들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근절, 자동차 산업 내 노동소득분배율 상향 조정을 위한 사회적 기금 조성, 모비스, 위아, 동희오토 등 무노조 공장에 대한 노무관리정책 변화, 사내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등이 있다. 이러한 의제들을 공허한 정책 선전 수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완성차지부, 지역지부의 부품업체지회, 금속노조 중앙이 함께 실천적으로 책임지는 투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저성장 국면에서의 손실을 현대-기아 자본 스스로가 지게 하고, 이 과정 속에서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사업장 노동자로 분열되어 있는 금속노조의 ‘단결력’을 높여내는 것이다. 현대-기아의 문제를 현대-기아 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게끔 만드는 것이 내용 있는 산업 차원의 교섭, 투쟁의 과제다. 공공부분의 2010년 공동 투쟁 과제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 공공부문의 노조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정부의 임금 통제로 민간기업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임금을 정상화시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투쟁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이러한 공동 투쟁 속에서 1999년 공익노련, (구)공공연맹, 민철노련이 공공운수연맹을 결성하고, 2006년에는 공공운수연맹, 화물통준위, 민주택시, 민주버스가 산별노조 건설 결의를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부족하게나마 운수노조와 공공서비스노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민간 부문 임금의 정체와 정권의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코포러티즘적 대응으로 민간부분에 비해 오히려 임금과 고용안정 수준이 높아졌고,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대규모 민영화 계획도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과 임금 유연화 정책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동 이해로 자리잡기도 했으나, 대규모 정리해고가 아닌 추가 고용에 대한 감축과 조기 퇴직 확대, 미시적인 임금 유연화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고강도 탄압을 뚫어낼 만큼의 동인을 만들지는 못했다. 공공부문 역시 일각에서는 굳이 무늬만 산별인 조직통합을 할 필요가 있냐고도 주장하지만 현재와 같이 기업별 노조로의 복귀 흐름이 강한 상황에서 공공운수노조를 포기하는 것은 훨씬 해악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전임자임금지급금지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다 내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까지 시행된다면 기업별로 나뉘어져 대응이 가능한 단위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시급한 문제는 수차례의 연맹 대의원대회에서도 드러났듯이, 공공운수노조 건설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경우 금속노조와 같은 산별노조에 대한 당위론적 동의지반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여성조합원대회>를 조직하자 1. 들어가며 노동자 대표성이 남성을 넘어서지 못해 ‘여성’ 노동자들이 처하게 되는 특수한 현실과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은, 노동자운동 내외부에서 민주노총이 페미니즘적으로 혁신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민주노총 스스로 어렴풋이 여성의 권리를 사고하게 되었으나, 그 방향과 내용이 일관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들의 결합경로가 부재한 채 상층 사업단위로 인식되면서 여성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아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활용되는지를 투쟁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더라도 여성 노동자의 요구를 정식화하거나 성과로 이어가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인 혁신을 위해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주체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위원회는 주체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관장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성조합원들과의 접촉면을 확대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식화하여 이를 노동자 운동의 과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로 준비되고 있는 서울지역 여성조합원대회를 여성노동자 주체화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은 페미니즘적 혁신을 위한 노동자운동의 실천 상황을 진단하고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첫째로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에 대한 비판과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적 주체화에 주력한 사례를 비교하는 것을 통해 시사점을 도출한다. 두 번째로는 현재 민주노총의 여성관련 요구안과 여성사업 진단을 바탕으로 과제를 도출하고 정세 분석을 통한 투쟁 방향을 제시한다. 2. 노조 페미니즘 현황 진단과 평가 1) 노조의 페미니즘 수용, 두 가지 길 ①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 성주류화 전략은 국가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하는 체계적인 전략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책의 목표와 전략, 자원 분배에 영향을 미칠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가의 정책 안에서 실행 체계와 도구가 확대되어 왔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성주류화 전략은 성별영향평가, 성인지 예산 제도화 등 일정한 실행 경로와 도구를 갖췄으며, 정당 공천 시 할당제, 공적 영역으로의 여성 진출 확대 등 일부 가시적인 성과도 낳았다. 성주류화 전략이 여성운동의 ‘성평등’을 위한 일반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고, 일정하게 체계를 갖춰감에 따라 성주류화 전략을 사회 각 분야로 확대하려는 흐름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영향 아래 노조 내에서도 성주류화 전략은 유력한 성평등 전략으로 고려되고 있다. 지금까지 노조 내에서 여성 문제 나아가 페미니즘이 다뤄지는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일관된 이념이나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 활동가들이 할당제나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성 의제가 다뤄지고 여성 사업이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어떤 노선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여성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취사선택되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노조의 여성사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이 성주류화 전략이었고, 최근에는 이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성평등미래위원회> 내 <중장기사업계획전략수립팀>의 논의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성주류화 전략의 도구로는 성별영향평가, 성별통계, 성인지적 예산, 젠더 감사, 성평등 추진 기구 수립 등이 있다.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 모색은 대체로 위와 같은 도구들을 갖춰 노조 내에서 성주류화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럽노조연맹(ETUC)의 성주류화 전략> 해외의 여러 노조들은 성주류화 전략을 노조 내에서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는 유효한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로서 유럽노조연맹의 성주류화 전략을 들 수 있다. 유럽노조연맹은 가맹 조직들에서 의사결정 단위 내 여성 비율을 조사한 1994년 연구(Women in Decision Making in Trade Unions)를 시작으로 4년마다 소속 노총을 대상으로 여성의 대표성 및 성주류화 실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평등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다음 조사 시기 전까지 이행 사항을 제시하는 메커니즘이다. 2006년 유럽노조연맹은 가입한 81개의 노총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내에서 남녀 격차 축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연구(Women in Trade Unions: Bridging the Gap)를 수행했다. 여기에는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노총이 참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7년 유럽노조연맹 총회에서 성주류화 헌장(ETUC Charter on Gender Mainstreaming in Trade Unions)이 채택되었다. 유럽노조연맹의 성주류화 헌장은 남녀 간의 임금격차, 여성의 직업훈련에 대한 투자 부족, 직종 분리 심화, 일ㆍ생활 양립을 위한 제도 미비, 노조 내 조직률 및 대표성에서의 여성 과소 등이 성주류화 전략이 필요한 정치적 맥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 유럽연합 수준에서 위와 같은 문제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는 조치들을 언급하면서, 유럽 수준의 이러한 조치들이 경쟁력 있고 번영된 유럽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사업장, 노동시장, 사회 전반에 남녀의 동등한 참여가 가지는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헌장은 이런 점에 있어서 유럽노조연맹과 그 가맹 조직들이 노력과 조치들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장에 언급된 구체적인 조치로는 유럽노조연맹과 가맹 조직들의 성주류화 실행 도구 마련, 단체교섭에서의 성주류화(교섭위원에 여성참여, 교섭위원들의 성인지적 관점 교육, 임금격차축소를 위한 직종분류 및 직무평가 개정 등), 성별영향평가 시행, 성별조사 통계(3ㆍ8 조사통계), 할당제, 젠더 감사, 여성에 대한 리더쉽 교육, 성평등 관련 기구 설치 등이 있다. 또한 유럽노조연맹은 헌장에 따라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 노조 내 여성조합원 수, 대표성, 단체교섭에서 성평등 가이드라인 준수 등의 항목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평가> 우선 성주류화 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성평등’으로 집약된다. 이에 따라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남녀의 동등한 책임과 참여를 제기하며(일과 사적 생활의 양립), 이를 위한 제도나 조치의 마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구조화해 온 역사적 가족 형태를 전화하기 위한 전망과 여성의 독자적 권리로서 여성권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현존하는 제도와 체계 안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해 취하는 변화와 조치들이 여성들의 현실에 약간의 개선을 가져다줄 수도 있겠지만, 여성해방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경로가 되기는 어렵다. 또한 노동조합 내에서 페미니즘의 전략으로서 성주류화 전략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위적인 차원이 아니라면 노동조합이 성평등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 여성의 과소대표성이나 여성노동자의 낮은 조직률, 여성차별적인 노조의 문화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노조 내 여성노동자/여성조합원들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성주류화 전략은 노조가 이런 현실을 왜 극복해야 하는지, 왜 성주류화 전략이 노조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성주류화 전략은 노조운동 전체의 노선이나 전망과 별개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가 된다. 그리고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이 제기하는 문제가 정부와 자본의 여성인력 활용방안인 일ㆍ가정 양립 정책과 맞물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성주류화 전략이 세계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이 처한 구조적인 위기를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는 조건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 대한 비판 없이 주류 여성운동은 성주류화 전략을 추구하면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여성 정책의 하위파트너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럽노조연맹의 예처럼, 노조의 성주류화 전략은 유럽 차원의 성주류화 전략의 목적과 궤를 같이하면서 ‘사회적 유럽’구상의 한 경로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주류화 전략이 그 실행 도구와 체계를 갖추는 것을 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도 노조 내에서 체계를 갖추는 문제를 중요하게 사고한다. 여성들이 노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덜 조직되고, 덜 대표되어 있는 까닭은 성별분업 구조와 이데올로기, 이에 따른 여성들의 노동권 제약 및 여성권 부재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으로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집단적 힘이 없이 체계만으로 여성들의 세력화를 이룬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② 노조 페미니즘의 다른 사례 우리가 제기하고자 하는 노조 페미니즘은 남녀 사이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 마련만을 그 실행경로로 삼지 않는다. 성적 차이에 기반한 여성의 독자적 권리를 여성들의 집단적 힘을 통해 노조의 과제로 제기하는 것이며, 이것이 노조의 변혁지향성을 강화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그동안 많이 인용해왔던 이탈리아 사례와 남아공 노총의 사례를 살펴본다. 이탈리아나 남아공의 몇 가지 조치를 현재 한국의 노조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노조 페미니즘의 답은 아니다. 그 전반적인 맥락과 문제의식이 주는 시사점을 살피는 것이 목표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1970년대 중반에 노조페미니즘이 전개되고 성적차이의 페미니즘이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남녀 사이의 (기회의) 평등’을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는 달리 평등의 요구가 가진 딜레마에 대한 고찰과 성적 차이에 기반을 둔 요구, 분석 등이 노조 페미니즘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러한 페미니즘적 문화는 노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여성노동에 대한 분석을 접목하여 새로운 분석과 조직형태, 그리고 노조활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생산하였다. 1970년대 후반 여성들의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구들이 노조 내에서 관철되었다. 기층에서부터 건설된 네트워크들이 확산되면서 지역과 전국 수준의 여성위원회가 형성되었다. 이런 성장을 토대로 노조 내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인정되었고, 페미니즘적 담론들이 노조의 공식적인 담론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1981년 이탈리아노총(CGIL)이 여성 직장대표 및 노조 대표들의 전국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고, 2,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전국회의에 참가했다. 이런 노조 페미니즘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150시간’ 협정에 의한 노조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탈리아 노총은 1972년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손실 없이 노동자들이 공교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협약을 맺었다. 이 교육은 여성들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가족, 건강, 섹슈얼리티, 노동, 정치 등의 과정을 통해 여성조합원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긍지를 가짐으로써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교육은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조 여성교육에서 지배적인, 기술적 전문지식이나 적극성 고취 프로그램과 같은 여성들이 남성의 세계에 더 쉽게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리더쉽 교육’과는 정반대였다. 노조 외부의 지식인, 활동가, 페미니스트들과 연계한 이런 교육을 통해 여성 그룹들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성과는 노조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이탈리아의 사례가 바로 차용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우선 노조 내 여성조직들의 기반에 관한 문제다. 여성위원회와 같은 노조 내 여성조직들은 여성들의 조직적인 결집과 활동이 바탕이 될 때 노조 내에서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교육에 관한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자신의 현실과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노조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일관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남아공> 남아공 노총의 여성위원회 활동은 대략 다음과 같은 패턴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매년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위원회가 남아공 노총의 여성정책에 대한 평가와 제안을 제출하고, 남아공 노총 전국대회에서 이런 제안을 논의하여 필요한 사항을 결의한다. 이런 패턴은 1988년 남아공 노총 여성대회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여성대회를 통해 기존 남아공 노총 및 소속 단위들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성과를 평가하고, 노조 내에 여성 조직의 필요성과 형태를 도출했으며, 이런 여성대회의 결의에 따라 노조 내 여성위원회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1989년 전국대회에서는 매우 쟁점적인 논쟁이 진행되기도 했는데, 여성대회를 통해 제출된 ‘성별 행동 규약’ 결의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 결의는 1988년 여성대회에서 노조 내부의 성희롱에 대한 투쟁으로 제안된 결의였는데, 조직 내 남녀 간의 성별 행동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했다. ‘성별 행동 규약’은 조직 내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여성의 활동과 자율성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제기했지만, 논란 끝에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하지만 성폭력, 성희롱의 문제를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조직 전반의 문화와 남녀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 이를 조직 전반의 규약과 문화 쇄신의 차원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남아공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여성 문제를 노조 내에서 제기하는 양태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위원회의 활동 방식이다. 여성위원회가 여성 관련 사업을 전담하면서 소수 담당자들의 활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반의 활동에 여성노동자들이 참여하고 발언력을 획득하는 관점에서 여성정책을 평가, 준비하고 이를 노조 전체의 결의와 과제로 만드는 과정을 밟는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을 뒷받침하는 힘은 여성조합원들의 존재와 집단적 결의다. 2) 민주노총의 현황 진단 및 평가 ① 여성조합원 비율 및 분포 양상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수 627,274명, 여성조합원 156,395명. 비율 24.9%.(2006년) 최근 전체 조직의 성별 조합원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관계로 정확한 수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민주노총 내 여성조합원 비율은 대체로 25~30% 수준으로 추측된다. 조사 및 통계의 미비로 인해 여성조합원의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고용형태, 임금격차, 평균 노동시간, 여성 관련 단협안 적용 현황 등 기초적인 자료도 없다. 민주노총이 여성노동자 및 여성조합원의 현실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식하지 못함을 평가할 수 있다. ② 여성관련 요구 및 단협 요구안 경제위기가 심각해진 2009년 단협 요구안 이래로 경제위기 시(구조조정 시) 여성우선해고 금지 조항이 포함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 계속 제출되었다. 그러나 실제 단협에서 체결되고 적용되는가에 대한 확인은 어렵다. 더불어 단협 조항으로 체결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의 노동 및 고용에 관한 단협 요구는 주로 차별 개선의 관점에서 접근되는데 남녀고용평등법 상 차별개선 조치가 그 근거이다. 전반적으로 단협 요구안 자체는 정부 정책이나 법령에 근거하며 그것을 상회하는 내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모성보호 조항은 그 자체로는 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문제는 실제 적용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일ㆍ가정 양립 관련 조항은 여성‘만’을 그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육아휴직 시 파파쿼터제, 배우자 출산휴가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제기가 있어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법률> 개정안에 이러한 조항들이 포함되었다. 현재는 이를 근거로 단협안에 모두 포함되었다. 산별 단협 요구안 및 지부/지회 요구안 현황은 총연맹의 단협 요구안과 큰 차이는 없다. ③ 총연맹 및 산별노조의 여성사업 현황 노조의 여성사업은 여성위원회가 하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래에서는 여성위원회의 사업 현황을 분석, 평가하도록 한다. 여성위원회 기본 사업은 조직사업, 정책사업, 교육사업, 연대사업 등으로 구성된다. 대체적으로 이런 사업들은 상층의 여성사업 담당자가 전담하는 실정이다. 정책사업의 경우 여성의 고용/임금 차별, 모성권, 할당제, 성폭력, 건강권 등 여성에 관한 다양한 의제를 포괄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은 연구프로젝트나 토론회, 설명회 등으로 진행된다. 이상에서 언급된 의제들이 여성조합원들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하지만 정책사업이 외부 전문가나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 정리되고 실제 그 정책들을 사업화할 계기들을 잡지 못하면서, 정책과 요구가 민주노총의 노선, 투쟁방향에 적합한지 여성조합원들의 현실과 요구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교육사업으로는 민주노총 내 여성사업 현황, 여성노동 관련 법률과 쟁점, 여성학 기본 등을 다루는 여성노동교실이나 성평등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참여자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일회성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교육내용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여자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여전히 여성사업 담당자나 여성 간부들로 한정된다. 총연맹이나 산별연맹의 여성위원회와 여성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위에서 언급한 사업들이 여성조합원들과의 결합 경로를 분명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들의 자율적인 기구라는 위상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조합원들의 결합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거나 부재한 상황에서 상층 사업단위로 인식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위상이 매우 모호하다. 덧붙여 중요한 평가 지점은, 여성사업이나 여성위원회가 제기하는 페미니즘/여성운동의 방향이 전체 노조운동의 방향이나 노선과 관계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에서 평가했듯 전체 노조운동의 이념이나 노선과 별개로 진행되는 여성사업은 여성조합원을 조직하는 데도 한계적일 뿐만 아니라, 노조운동 전체에서 그 위상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도 여성위원회 사업 담당자들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전담하고 있는 상황도 지적되어야 한다. ‘노조 내 여성운동 = 반성폭력 운동’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기도 하고, 기층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산별로 접수되고, 산별이나 지역본부의 여성사업 역량이 취약해 결국 총연맹으로 접수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그동안 민주노총 내에서 벌여왔던 반성폭력 운동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높여주고 있다. 노조 내 여성 활동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과연 노조 내에서 성폭력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만들어내었는가, 또한 올바른 사건 처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최소한의 수준에서 사건 처리의 원칙이나 방식을 노조 내에 안착시켰는가. 그간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성폭력을 감축하기 위한 다른 모색(여성운동의 강화)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노조 내 여성사업이 강화되기란 어렵다. 반성폭력 운동과 더불어 노조 내 여성사업의 대표적인 사례인 할당제 또한 여성위원회 및 여성사업의 확대와 강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평가가 필요하다. 할당제 시행 이후 여성임원 비율 증가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는 평가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할당제를 통해 제고하려고 했던 여성 대표성의 실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성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집단적인 요구도 분명하게 조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여성 간부는 여성조합원들을 대표한다기보다는 개인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성대표로 선출되었으나 대표할 여성의 요구와 집단적 주체성이 부재한 현실은 한편에서는 여성위원회, 여성대표의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대표들의 활동이 개인의 성향, 정파 등을 근거로 진행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한다. 3. 정세와 쟁점 1) 경제위기를 통해 본 여성노동자의 현실 고용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08년 1/4분기와, 고용위기가 본격화된 2009년 1/4분기, 그리고 회복기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2010년 1/4분기로 시기를 구분하여 취업자를 성별로 비교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해 보자. 2009년 1/4분기에 전체 취업자가 14만 7천 명이 감소한 가운데 여성 노동자는 12만 4천 명이 감소했고 남성노동자는 2만 2천 명 감소했다. 전체 취업자 감소분의 84%가 여성이다. 회복기로 접어들었다는 2010년 1/4분기에 전체 취업자가 13만 3천 명이 증가했는데 남성은 11만 7천 명, 여성은 1만 5천 명으로 취업자 증가분의 88%가 남성이다. 경제위기 시기 여성 일자리가 중점적으로 사라지고 회복 속도 역시 남성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 수치 상 실업률이 2009년 1/4분기 여성 3.1%, 남성 4.3%, 2010년 1/4분기 여성 4.5%, 남성 4.7%로 여성이 낮게 측정되는데, 여성이 일자리를 잃을 경우 비경제 활동인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실업률 통계가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성 취업자 수가 많고 비정규직이 다수인 산업에서 취업자 증감을 살펴보면 여성들의 실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의 취업자가 2009년 1/4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32만 2천 명이 감소해 전체 취업자 감소분인 14만 6천 명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의 우선해고가 광범위하게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산업에서 성별 취업자 감소를 비교해 보면 남성은 10만 6천 명 감소하고 여성은 그 두 배인 21만 6천 명 감소하였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해고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회복 속도 역시 2010년 1/4분기 산업 전체 취업자가 증가로 돌아섰지만 이 분야는 여전히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 취업은 남성에 비해서 더욱 더딘 실정이다. 한편 2007년 월급여액 비교 남성 대비 여성임금 비율 66.3%에서 2009년 62.3%로 급격히 낮아졌다. 2009년 평균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 비율은 77.1%이고, 최저임금 미달자 중에서 여성 비율은 63.5%를 차지한다. 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이 저임금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남녀 임금격차가 급격히 확대된 것으로 보아 경제위기 시기에 남성에 비해 임금삭감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와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특히 여성들이 우선해고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고용구조를 핵심인력 위주로 슬림화하고 아웃소싱과 비정규직 채용을 통해 고용조정이 상시적으로 가능하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비정규직의 규모가 지난 10년간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급증하였으며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70%에 육박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위기에는 상용직 중심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아도 비정규직 규모 조정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었다. 여성 우선해고처럼 직접적이고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다수가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노동자가 (손쉽게 인력을 축소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의) 경제위기 완충지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자본의 대응 전략 정부는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노령인구 부양 부담이 증가하는 위기가 발생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여성과 노령인구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로 대두하였다. 그러나 고용창출이 둔화된 상황에서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거나 새로운 분야에서 고용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는 것은 서비스업으로, 정부는 사회서비스 산업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저임금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일자리를 나누는 대표적인 방식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문제로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것을 줄이고, 대체인력으로 단시간 근로자를 채용해 고용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여성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노동시장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유연근무제의 확대는 노동유연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규직의 과보호로 고용시장이 경직되어 비정규직과의 격차가 고착되었고, 이것이 고용률 증가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던 자본이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을 유연화하기 위해 여성 직무부터 치고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의 몸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통제로 낙태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낙태 단속은 실질적으로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조치임과 동시에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이처럼 자본과 정권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며 여성에게 위기를 전가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 방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은 여성의제 문제로만 한정하여 산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① 유연근무제 정부는 국가고용 전략회의에서 10년 내 고용률 60%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중장기 일자리 창출 방안 중 하나로 유연근로제ㆍ단시간근로 등의 근로형태를 다양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 비경제활동인구 1,013만 4천 명 중 68%가 육아 가사 부담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경제활동에 쉽게 참여하도록 일ㆍ가정 양립형 유연근무제의 확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전략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고 전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겠다는 것이다. 유연근무제가 여성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여성부에서 퍼플잡 도입을 발표했을 당시부터 남성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남성 역시 가정의 책임자로서 근로시간을 조정하자는 취지라고 말하지만 노동유연화를 여성에서 시작해서 노동시장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가고용 전략회의는 2009년 경제위기 시기에 획일적인 전일제 중심의 고용관행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 등 근무형태 다양화를 추진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도 유연근무제가 비단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의 만성적 저성장과 반복되는 위기로 고용창출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전일제 일자리를 나눠서 고용률을 높이고 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기업의 비용을 절감하여 경기순환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시범 실시되고 있는 공무원의 사례를 보더라도 유연근무제는 공무원 노동자 전체를 겨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유연근무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승진이나 평가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근무시간은 공직사회 내의 연공급적 임금 인사제도의 특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유연근무제의 도입은 임금 인사제도의 개편을 동반할 수 밖에 없고, 성과주의 임금 인사제도 개편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직무공유제를 확산함으로써 하나의 업무를 두 사람이 나누어 하게 한다는 것 역시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으로서 유연화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유연근무제가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선전되는 이유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노동자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함이자 실제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유연근무제를 우선 도입해 여성직무를 분할하고 비정규직화와 외주화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학력 여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유연화하여 비경제 활동인구 영역에 있던 경력 단절 여성들을 단시간 근로자로 고용하려는 계획이다. 따라서 유연근무제에 대한 대응이 여성 사안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의 전략은 전체 노동시장 유연화에 맞춰져 있는데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부적합하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접근하게 되면 유연근무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대응방향이 귀결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유연근무제가 여성 경력단절을 당연시하고 여성에 적합한 업무를 만든다는 이유로 남녀 간 성별 직업분리와 고용격차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여성 고용정책의 우선순위는 질 좋은 여성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억제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마땅히 가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유연근무제에 대한 반대는 타당하지만 유연근무제를 여성일자리 문제로만 규정하는 것은 한계적이다. 노동자 운동은 유연근무제가 여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으로 전체 노동시장 유연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② 사회서비스 일자리 국가고용 전략회의는 서비스 산업이 일자리 창출과 내수기반을 확충하는 데 핵심적인 분야라고 지적하면서 고용창출 유망 서비스 분야로 보건ㆍ사회복지서비스, 전문자격사ㆍ과학기술서비스, 교육, 콘텐츠ㆍ미디어, 관광ㆍ레저 사업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고용창출의 유력한 분야로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2006년 정부가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을 발표한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회서비스 사업을 현재 이명박 정부가 이어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지속적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하는 이유는 재생산의 위기에 따라 보육, 간병, 노인 돌봄과 같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진 것과 저출산 고령화로 여성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저임금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성 노동력은 자본의 입장으로서 매력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양육과 가사의 부담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끌어들이고, 이를 보조하기 위한 사회서비스를 활성화하며 그 분야의 고용 창출로 여성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더 많이 유인하자는 계획이다.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포장되어 추진되고 있지만 실상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재생산 노동을 전담하는 성별분업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할당하고 있다. 공공노조의 2009년 워크샵 발표내용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1인당 최소 월평균 20시간에서 최대 108시간으로 기관별 4배 이상으로 차이가 날 정도로 유동적이고,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으며, 가사 간병노동자들의 경우 일용직이 77.4%로 고용이 불안정하다. 시간급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서비스의 요청빈도에 따라 임금수준이 결정되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고용의 지속성과 안정성 모두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고 보고했다. 또한 작업환경의 열악함, 과도한 초과근무, 이동시간이나 보고서 기록노동에 대한 비인정, 계약과 다른 노동 강요, 일방적인 부당해고, 인권침해 등이 주요한 노동문제로 나타났다. 가정에서 여성들이 아내 딸 며느리로서 가족을 돌봐왔기 때문에 돌봄 노동 자체가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거나 여성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져 저임금을 당연시해온 결과 노동권의 침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고, 노동자성 인정마저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권과 자본의 전략은 여성들을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착취하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보족하는 역할과, 또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중부담을 감내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여성을 위한 좋은 일자리로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략을 간파하지 못하고 돌봄 노동에 관한 일차적 책임이 여성이라는 구조와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 노동자 운동은 돌봄 노동이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현실에 문제 제기하며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③ 재생산에 대한 통제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이 대두되자 낙태 단속 강화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위기가 야기한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확대가 여성의 이중부담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실질임금의 하락과 실업으로 노동자계급의 가계는 커다란 소득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를 찾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가계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사노동을 더욱 늘려야 했다. 이처럼 가족의 경제적 결핍이 심화될수록 여성이 감내해야 할 몫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출산ㆍ양육이 노동조건의 차별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빈곤층 여성에게 출산 기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대다수 여성에게 출산ㆍ양육이냐, 노동이냐 하는 선택이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낙태를 범죄화하는 이유는 사회가 안정적인 재생산을 담보하지 못할 정도로 위기에 빠져서 출산율이 낮아졌음을 은폐하고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 국가가 위기에 처한 것처럼 호도하여 출산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출산의 의무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박탈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피임은 임신을 통제하기 위한 일차적인 수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을 경우 사후적으로 낙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를 대립시키는데, 이 같은 주장은 낙태와 출산에서 발생하는 권력관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권리와 피임할 권리가 주어져 있는지, 여성이 출산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써 주어져 있는지, 현재의 성규범과 결혼제도 속에서 미혼여성에게 출산이 가능한지, 기혼 여성일지라도 아이를 낳았을 경우 양육과 돌봄에 대해 사회적 지원은 어떠하고 자신의 삶을 구성해 갈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외면하고 있다. 결국 자기 삶을 계획하는 독립적 여성이 되고 싶다면 금욕해야 하고,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려면 임신과 출산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성을 전제하지 않은 성욕을 추구하며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부정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을 의무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낙태불법화를 반대하는 운동을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 낙태 불법화는 살기 어렵고 힘들어도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여 재생산의 위기를 책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며 가정을 돌보는 일까지 책임지라는 자본의 요구에 맞서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와 노동에 대한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재생산의 위기를 여성에게 전가해 위태로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본에 맞서는 싸움이자 노동자 운동이 여성의 권리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과제 1) 미조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확대 여성의 조직률이 매우 낮고 미조직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중요한 일이다.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노동조건과 임금이 열악하고, 해고나 여타의 권리 침해에 대응조차 할 수 없거나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다. 민주노총이 이런 무권리 상태의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방어함으로써,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자신의 노동과 삶에 의미를 가지는 조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과정은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라는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여성을 어떻게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거나 활용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권과 페미니즘을 민주노총의 과제로 받아들일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제기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 청소미화, 전자 산업의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를 고려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고용 없는 성장을 하면서 인적자본 활용을 핵심으로 하는 서비스 산업이 발전했는데,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서비스영역의 다수가 여성 직종으로 구성된다. 최근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를 보더라도 유통 영역의 이랜드 투쟁과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 등 서비스 영역에 집중되는 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권이 재생산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사회서비스 시장을 창출해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고 조직하는 것은 핵심적인 과제다. <청소미화 노동자> 미조직 여성노동자 조직화가 꾸준히 진행되는 분야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한편 각 단위 조직화도 추진되고 있다. 양적인 확대를 넘어 여성노동자들을 활동가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 사업이 시도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더불어 운동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과제가 중요한 만큼 향후 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성과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전자산업 노동자> 전자산업 생산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 노동자이며 노동 조건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지만 자본의 필사적인 노동탄압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간접고용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일자리를 자주 옮겨 다녀 취업기간이 3년에서 1년 사이가 대부분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역시 매우 낮은 상황인데 이마저도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산업이자 자동차 산업 보다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노동자 규모도 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의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여성조합원들의 주체화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이 터져 나왔고 대사회적으로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이 상당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조합 내에서 그 의미와 성과를 남길 수 있는 구조가 취약하거나 요구가 정식화되지 못해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위원회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와 의미를 노동자의 투쟁과제와 대사회적 요구안 등으로 정리하여 노조가 수용할 수 있는 단초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여성억압의 문제가 제기될 때, 또 이러한 문제가 노조 내에서 표출됐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전체 민주노총 운동의 과제로 제시하는 기구로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여성사업 담당 부문, 여성 간부들의 사업 단위로 인식되고 있는 여성위원회를 여성조합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여성들의 자율적인 조직으로 강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여성조합원과 접촉면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중요한데, 올해 하반기에 열릴 서울지역여성조합원대회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제안되고 있다. 대회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한편 기존의 여성사업 담당자들을 재조직 하고 새로운 여성주체를 발굴 양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공동의 과제를 도출함으로써 향후 여성노동자들이 집단적인 유의미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 처음 시도하는 것이지만 대회의 정형을 만들어 문제의식을 이어가고, 현재 역량 상 서울지역에서만 대회를 진행하지만 이후 각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자.
[편집자주] 이 글은 지난 8월 14-15일 개최된 사회운동학교의 발표문을 대폭 축약한 것이다. 원문은 8월 31일자로 발간된 노동자운동연구소(준) 이슈리포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노동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2009년 하반기 이후 잠시나마 반등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이던 경제위기는 올해 들어 유럽 재정위기로 그 모순이 파생되면서 더블딥 또는 장기 불황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이 글은 경제위기 아래 2008-09년 세계 각국의 정책대응, 그리고 이에 대한 각국 노동조합의 대응을 평가하면서 한국 노동자운동에 대한 시사점을 추출한다. 2007-09년 세계 경제위기와 실업 아래에서는 올해 초 발간된 「2010년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 전망」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끼친 영향을 개괄해보겠다. 필요할 경우 OECD 고용 통계 월보를 보충한다. OECD 추계에 따르면 2007-09년 경제위기 기간 동안 회원국 실업자가 50% 증가했다. 특히 2008년 3/4분기에서 2010년 1/4분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실업률은 급격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4월 현재 OECD 평균 실업률은 8.7%, 전체 실업자 수는 4억 6천 5백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동년 말 예상 실업률은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수치로, 지난 1973-74년 경제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그림1> 참조). <그림 1> 경기침체 발생 시점 이후 분기별 실업률 궤적 비교 자료: OECD, 2010. 가로축 단위는 분기.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은 경제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 그리스발 재정위기의 충격으로 유럽연합과 유로존의 최근 실업률은 유럽통합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표1> 참조). 예외적으로 실업률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독일의 경우, 조업시간단축제와 같은 위기대책에 힘입은 결과로 분석된다. <표 1> OECD 주요국 2010년 4월 실업률 OECD 회원국 가운데 스페인(19.7%), 슬로박(14.1%), 아일랜드(13.2%), 포르투갈(10.8%), 헝가리(10.4%), 프랑스(10.1%) 등이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4.1%), 일본(5.1%)이 낮은 수준에 속했으며, 한국의 경우 3.7%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미국은 9.9%, 유로존 16개국은 10.1%, 선진7개국(G7)은 8.4%를 기록했다(<그림2> 참조). <그림 2> OECD 회원국 실업률 시기별 비교: 2007년 12월-2010년 3월. 자료: OECD, 2010. 세계 각국의 실업률은 향후에도 최소한 1년 정도 계속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경제위기의 효과가 노동시장에 시차를 두고 발현될뿐더러,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국가수준의 특별위기 지원책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러한 대책이 조만간 종료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보면, 금융·주택시장의 붕괴가 불황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던 나라, 가령 스페인·미국·아일랜드 등에서 실업률이 크게 상승했다. 집단별로 보면, 임시직과 청년층ㆍ저숙련ㆍ이민자 등 취약계층에서 실업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경제위기가 청년실업에 미친 영향이 막대했는데, 2009년 말 기준 OECD 평균 청년실업률은 2007년 말에 비해 5.3% 포인트 증가한 18.8%를 기록했다. 2010-11년 중 청년실업률은 20% 내외가 될 전망이다. 산업별로 보면, 광업·제조업·건설업 등 특정 산업 부문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림 3> 주요국의 한계노동자와 불완전노동자를 포함한 확장 실업률 자료: OECD, 2010. UR1: 장기실업자, UR3: 실업자, UR5: 실업자+한계노동자, UR6: 실업자+한계노동자+불완전노동자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끼친 충격은 공식 실업률의 증가로만 설명할 수 없다. 2009년 말 현재 OECD 회원국의 경우, 한계노동자(marginally attached workers)와 불완전노동자(underemployed workers) 수를 합치면 공식 실업률의 두 배를 상회한다(<그림3> 참조). <표 2> 유사실업자의 정의 ㆍ불완전노동자: 경제적 이유로 법정 주당노동시간 이하로 근무한 상용직 노동자 또는 상용직 일자리를 원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자 ㆍ한계노동자: 과거 4주 동안 구직을 하지 않았으나,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노동자. ㆍ실망실업자(discouraged workers): 취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현재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로, 한계노동자의 하위 범주. 구직단념자라고도 함. 신흥경제국의 경우, 이번 경제위기의 충격이 국제무역 및 자본이동의 감소를 통해 이전되었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고용률이 감소했다. 노동력의 대부분이 노동시장제도와 사회보장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공식노동의 비중이 매우 큰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실업이 증가하고 비공식 부문으로 노동력이 유입된 결과 소득이 감소하고 빈곤률이 상승하고 있다. 또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임금이 삭감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가재정의 제약으로 인해 사회정책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빈곤률과 비공식노동 비중이 높기 때문에 사회정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서도 제약이 따르고 있다. 신흥국 경제위기의 효과는 이러한 ‘비공식노동’과 ‘빈곤 함정’으로 인해 더 길게 지속될 전망이다. 2010년 들어 그리스발 재정위기로 유럽연합이 위기에 빠지고 미국도 하반기 들어 다시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어 고용-실업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많은 실업자들이 장기간 실업을 경험하면서 순환적 실업의 급증이 구조적 실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각국은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전례 없이 높아진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는 가운데 고용-실업 난을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위기 대응 세계 각국은 대량실업에 직면하여 경기부양책을 통한 고용 유지·창출과 노동신축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1930년대 대불황 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은 대규모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추진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고용보조금 지원, 공공부문 고용창출, 실업급여, 기타 사회부조 개정을 통한 실직자의 소득 보조 등 고용을 유지·창출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 조업시간단축이나 일시해고(layoff)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늘어났으며, 기술훈련과 구직 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다(<표3> 참조). <표 3> 2009년 OECD 회원국 노동정책 자료: OECD, 2009. 이와 함께 각국 정부는 대량실업에 대한 포괄적 대안으로 노동신축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일자리 나누기’란 경영난에 처한 기업이 정리해고를 실시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지킨다는 개념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여 임금 삭감을 수용해야 한다. 이번 경제위기 동안 일부 국가에서는 단체협약이나 노사정합의를 통해 사용자나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삭감 분을 분담하기도 했는데, 유럽 국가들의 조업시간 단축제나 부분실업급여제, 일본의 고용조정금조성제가 이와 관련된 정책이다. 최근 일자리 나누기 개념은 교대제 재편, 일시 휴직, 교육휴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한편 일자리 나누기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직무분할(job sharing)’ 방법도 있는데, 이는 가령 1일 8시간의 풀타임 일자리를 두 개의 4시간 파트타임 일자리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각국의 노동신축화 정책을 특별히 ‘일자리 나누기’에 국한하여 그 관행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경우 일시해고와 재고용(recall)이 자유롭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고, 다만 1980년대 이후 임금 동결ㆍ삭감을 통한 고용유지 타협 관행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비해 해고 비용이 높은 독일의 경우, 오래전부터 다양한 노동신축화 제도를 통해 ‘내부적 신축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산업ㆍ기업 특수적 숙련을 증진시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네덜란드 역시 상용직 파트타임을 중심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전반적인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은 가운데, 특히 상용직 파트타임의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통적으로 해고 대신 잔업시간 조정, 전적 제도 등을 통해 노동시간의 신축성을 확보해왔지만,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의 확대로 방향을 대폭 전환했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독일과 같은 대륙유럽 국가에 비해서 해고가 자유로운 대신 실업보호가 발달하여 일자리 나누기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동결ㆍ반납, 혹은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해 청년층을 채용하는 ‘임금 삭감’의 방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일자리 나누기 개념은 불황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양보교섭 개념과 호응하게 된다. 그럼 이제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각국에서 도입된 노동신축화 사례들을 살펴보자. 이번 경제위기에서 독일은 조업시간단축 또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방식으로 고용조정을 실시했다. 1993년 폴크스바겐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이런 방식은 이번 위기 시기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전형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노조나 직장협의회와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하여 정리해고의 방식의 고용조정 대신 정부의 지원 아래 조업시간단축제와 노동시간계좌제 등의 기제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노동정책을 대량해고와 외주화와 같은 ‘외부적 신축화’에 대비하여 ‘내부적 신축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파견근로자 및 기간종업원에 대한 해고와 신규사원의 내정이 취소되는 등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개정된 노동자파견법 상 제조업체에서 체결된 파견근로계약 대부분이 2009년 중 만료되었는데, 경제위기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파견근로자를 비용부담이 큰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음에 따라 대량 해고로 이어진 것이다(<표4> 참조).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2009년 1월 제1노총(CGIL)을 제외한 나머지 6개 노총들과 1993년 체결된 단체교섭 관련 기본협약을 개정했다. 이번에 체결된 노사정 타협안은 △실질임금의 보존을 위한 새로운 물가지표 도입 △가변급 교섭에 세금·연금의 공제와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 도입 △집권화된 교섭의 경제적·규범적 부분에서 구조조정에 대항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거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예비조항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CGIL은 이 협약이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의도가 숨어있다며 협약 체결에 반대했다. CGIL은 △부족한 임금인상분을 성과급에 연동해서 인상하던 관행을 폐지함으로써 임금 감소와 격차 확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물가인상률에서 에너지 수입이 제외되어 있으며 △예외조항으로 인해 노동자 보호가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CGIL은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과 단체협약 개혁안을 비판하면서 2009년 4월 총파업과 가두시위(270만 명 참가) 전개했다. <표 4> 일본 주요 대기업의 고용조정 현황 자료: 김명중, 2009. 프랑스에서도 2008년 제1노총(CGT)을 제외한 노사간 협약에 따라 ‘노동시장 현대화 법’이 시행되었다. 본 법안은 해고조건을 완화하고 기업 수요에 대한 노동력의 상시 연계를 위한 개별 서비스 확보를 주축으로 한다. 이중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로계약 합의 파기제도는 노사 당사자의 협의에 의하여 근로계약 해지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일단 협의가 확정되면 노동자들은 이에 관하여 다툴 수 없을 뿐더러 협의의 확정 및 법적 효과는 사법적 영역이 아닌 행정적 영역에서 통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사용자와 정부는 지금까지 도입에 실패했던 근로계약 부분에 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을 환영하고 있다. 반면 CGT는 협약이 사용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고 있으며 근로자 보호 사항은 미약하다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했다. 영국의 경우 2010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보수당-자유당 연정이 기존 노동당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을 보다 강화하면서 경제위기를 빌미로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있다. 신축노동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평등법(차별 시정 정책)과 파견노동자 동등대우 원칙을 개정 내지 삭제할 예정이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 폭을 제한하고 향후 수년간 30만-70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 사이에 실업급여 범위 확대, 실업급여기준 완화, 조업시간단축제의 확대와 같은 위기 대응 수단이 종료될 예정이다.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 대책의 경우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도입한 조업시간단축제의 경우 포괄 노동자 범위는 일부 상용직과 무기계약 노동자로 한정되어 있다. 반면 일용직을 비롯한 대부분의 비정규직의 경우 조업시간단축제의 적용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에도 파견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부분 실업, 또는 조업단축에 대한 임금보전 보조금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또한 조업시간단축제가 임금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효과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없지만, 대체로 생산감소에 따른 실질임금 삭감의 효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 주로 파견직과 같은 비정규직이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의 집중적인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임금신축성을 높이는 방안이 노사정 협약으로 체결되었다. 프랑스도 합의해지라는 보다 신축적인 해고 방안을 법제화했고, 영국도 기존의 법안을 개악하여 노동신축화를 강화하는 과정이다. 세계 주요 노조의 경제위기 대응: 지역ㆍ국가별 유형 이번 절에서는 노동조합의 경제위기 대응 사례를 유럽 노조의 코포러티즘, 미국 노조의 민주당 공조, 남반구 노조의 정치세력화로 유형화하여 살펴보겠다. 우선, 개별 민족국가 수준에서 볼 때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부와 사용자 간에 거시적 타협이 이뤄졌다. 정부는 노조에 대해 고통스러운 개혁과정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대신 노조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형국이다. 기업 수준에서 볼 때, 노사 ‘고통분담’이 제조업 부문에서 특징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유럽에서는 단기 노동시간 조정 조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노동관계 입법, 실업 급여, 기업 지원 등에 있어 노사정 3자 합의 기구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유럽에서는 노사정 3자간 논의가 재활성화 됐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과거에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대화’가 제기되었고, 이는 일국 수준에서 노사정협약으로 귀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의 노사정협약은 전형적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이었다. 최근 경제위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이 발견되고 있는데, 경제위기 대응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로 인해 ‘거시대화’는 노동신축화를 주요 의제로 한 3자 협상이 주를 이뤘다. 유럽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특히 일시 해고, 노동시간 단축, ‘부분실업 기금’(프랑스), ‘조업시간단축제’(독일) 등의 조치가 국가별로 다양하게 도입되었다. 이 조치들은 정부 재정지원을 토대로, 노조가 일정한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대신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노사정 타협책이다. 이 조치들은 위기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일 뿐만 아니라 회복 이후를 대비하는 조치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노사 모두의 합의를 원만하게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사간 또는 노사정 협약을 통해 위기에 대응한 사례들을 보면, 대개 위기가 일시적이라는 가정 아래 임시 조치에 합의한 것이 특징이다. 경제위기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이러한 임시 조치는 정부 재정이나 기업의 노동비용, 노동자의 임금 수입 모두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작년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는 대량해고와 임금삭감은 물론 긴축재정으로 인한 저성장-고실업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해고 비용이 높지 않고 노조가 분절화되어 있고 단체교섭이 분권화되어 있는 영국·아일랜드 또는 동유럽에서는 조업단축과 같은 위기 조치들이 주로 기업 차원 단체교섭을 통해 시행되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대선 국면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주된 전략은 오바마의 친노동정책에 대한 지지와 로비였다. 2008년 대선에서 미국노총(AFL-CIO)과 2005년 미국노총으로부터 분리한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공히 오바마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오바마 당선과 친노동계 인사인 힐다 솔리스(Hilda Solis)의 노동부장관 발탁 등으로 한껏 고무된 노조가 오마바 정부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lyment Free Choice Act, EFCA)의 입법화였다. 그러나 현재 노동조합의 오바마 정부에 대한 낙관주의에는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단적으로, 노조의 대정부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노동자자유선택법과 이주제도 개혁은 줄곧 유예되어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자체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공식 실업률이 10%를 상회하고, 금융위기의 충격은 주택문제 등 노동자계급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노조 내부의 분열도 큰 위기 요소다. 대표적으로 미국 노동조합의 대표적 조직인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조직 내분과 부패 스캔들이 노조운동의 정당성을 침식하고 있다. 이는 SEIU의 조직화 중심 전략의 이면에 도사린 실용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 한편 노조는 오바마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여 이들을 조직화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노동조합의 조직률 제고라는 목표에 종속되어 있을 뿐 이주노동자의 주체역량 강화라는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끝으로, 북반구 주류 노조운동의 퇴조기에 사회운동 노조주의로 새롭게 주목받은 브라질노총(CUT)과 남아공노총(COSATU)의 최근 경제위기 대응 현황을 살펴보자. 이 두 노조는 남반구 노조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정치세력화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먼저 브라질노총의 경우, 주요 관심사는 2010년 대선 승리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브라질노총을 위시한 노동자운동은 룰라 정부가 수행한 재분배 정책과 노동조합에 호의적인 정치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사고해왔다. 대선과 별개로 브라질 노동자운동이 2010년에 집중하려 하는 것은 노동조합 교섭의 포괄범위를 확대하고, 작업장 수준에서 현장 활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노동당에 의해 8년째 유지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여전히 보수당이 다수당인 관계로 대부분의 노조 관계법이 예전 수준에서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브라질노총의 상황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모순을 보여준다. 브라질노총의 ‘신노조주의’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브라질노동자당(PT)은 룰라의 대선 도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집권 전략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당은 중간계급을 포괄하는 계급연합 전략을 추구하였고, 노동조합 역시 노동자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호응하여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했다. 브라질이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2002년에 다시 경제위기에 직면할 때 노동자당은 경제위기 담론을 발전시켜 변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위기의 심화를 부정하며 사회안정과 현상유지를 추구했다. 그 결과 2002년 집권한 룰라 정부에서 은행 및 기업 국유화와 같은 좌파 고유의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다. 물론 룰라 정부의 우경화는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된 외채 규모, 공공 부채와 재정적자 누적, 무역수지 악화와 산업 기반 훼손과 같은 경제 여건은 노동당 집권의 원인인 동시에 룰라 정부 정책대안의 제약 요소가 되었다. 또는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 사회정책과 통화주의적 긴축재정 정책 사이의 모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노총에서는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와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사이의 대립이 첨예해졌다. 일부 좌파는 브라질노총으로부터 분리해서 별도의 노총을 결성했다. 브라질노총 좌파는 노총이 룰라 정부의 방어와 2010년 대선 승리를 위해 룰라 정부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것이 개량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2005년 타보 음베키가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대표하여 대통령이 된 이후 ANC 내에서 심각한 좌우 분파 투쟁이 발생했다. 음베키는 ANC의 좌익 노선을 비판하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아공노총 내부 노선 투쟁 속에서 좌파 진영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결과 2007년에는 남아공공산당(SACP)과 노총의 공식적 사회 개혁 노선이었던 성장 고용 재분배에 관한 정책(GEAR, 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을 폐지하고 폴로콰네(Polokwane)선언이라 불리는 계급투쟁 기반의 이행 노선으로 좌선회한 상태다. 남아공노총은 현 경제위기를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진단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남아공노총의 이러한 입장은 2007년 극렬한 ANC내 좌우 대결을 겪은 이후 노총 내 좌익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2009년 9월 개최된 남아공노총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이러한 내부 노선 투쟁을 반영하듯이 ANC, SACP, 노총 내 우파를 견제하기 위한 각종 결의들을 제출하고 있다. 가령 국민회의 지도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안들, 노총 내부에서 의회ㆍ노동자회사 등에 파견된 간부들에 대한 소환권과 통제, 부패에 대한 감시 방안들,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한 중간 간부들의 육성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이어 남아공노총은 지난 해 10월 금융 위기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여, “노동자들이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데 비용을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전투력과 조직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남아공 내 경제 정책 및 전 세계 노동조합 운동과의 연대에 보다 정교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제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공노총은 중앙은행(Reserve Bank)의 통화 정책 기조를 인플레이션 관리 최우선에서 고용과 복지 중심 기조로 변경하는 데 성공하였다. 평가와 시사점 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신축적 안전성 최근 경제위기 시기 유럽 노조의 대응은 대체로 교섭 대응을 통해 정리해고의 수준을 완화하거나 노동신축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숙련노동력(‘ 인적자본’)을 유지함으로써 경기 호전 시 내부적 신축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자본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독일에서는 △산업 차원의 단체협약을 통해 실시될 수 있는 노동시간 단축 △기업 차원의 단체협약으로 확립된 노동시간 계좌제를 통한 조업시간 단축 △그리고 국가 차원의 노동시장 제도를 통한 임금보존 등 다양한 조치가 연결되어 실시되고 있다. 즉 경제위기와 대량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유럽의 노조들은 ‘신축적 안전성’(flexicurity)을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축성’와 ‘안전’의 합성어로서 ‘신축적 안전성’(flexicurity) 개념은 노동시장의 신축화와 노동의 이동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전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의미한다. 신축적 안전성의 기본 원칙은 유럽연합의 성장 및 고용 전략의 중심적 요소와 같은 맥락에 있다. 또한 신축적 안전성은 높은 수준의 노동력 훈련에 기반을 두고 있고, 사회적 파트너의 역할과 관련하여 고용안전성과 노동시장 분절화 감축과 결합된 신축성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은행, 세계노동기구(ILO)와 같은 국제기구들도 경제위기와 실업에 대한 해법으로 신축적 안전성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의(job) 안전성보다는 노동자의 고용 또는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의 안전성을 강조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신축적 노동시장을 장려하고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변화에 적응하는 수단, 즉 노동시장에 머무르면서 노동 생애를 진보시킬 수단이 주어졌을 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축적 안전성 모델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조하는 한편 평생 학습과 훈련을 추동하고 구직자 지원, 남녀평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내 기회 균등을 지지한다. 최근 금속노조는 독일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난 고용안정협정을 경제위기에 대한 유효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요지는 독일의 고용안정협정이 △기업위기에 대한 노사의 공동인식에 기반하고 노동자의 연대적 실천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일자리안정과 산업입지역량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사의 전략적 타협의 산물이다 △산별교섭체계와 법제도적 보완조치가 병행되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독일 노사관계의 전통(특히 유럽 통합 과정에서 독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에 대해 맹목적이라는 문제도 있을뿐더러 경제위기 아래 고용안정의 대가로 노동신축화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동시간 계좌제는 연간 단위의 변형근로제라고 볼 수 있고, 초과근무 수당을 사실상 폐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 효과가 서구에 비해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다. 장시간의 잔업ㆍ특근을 통해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던 상황에서 잔업ㆍ특근만 줄어도 노동시간 감소율에 비해 임금 감소율이 훨씬 더 클 것이고 노동자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노동시장 내에서 ‘이동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자 스스로 기술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대안은 결국 독일식 ‘사회적 파트너십’ 모델로 귀결되는데, 이는 ‘새로운 사회협약’을 통해 단체교섭의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구상과 연결되고 있다. 한편 신축적 안전성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곤 하는 ‘네덜란드 모델’은, 특히 여성노동력 활용을 목표로 파트타임 일자리 확대를 통해 ‘일과 가사의 양립’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맞벌이 부부의 ‘1.5 job’).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양보교섭 이러한 노조운동의 코포러티즘은 20세기 서구 노조주의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다. 유럽 노조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임금정책을 수용함으로써 성장기 동안 생산성 증가에 따른 임금 인상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아들였으며, 그 대가로 국가를 매개로 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장시키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서 독일 코포러티즘 모델은 강력한 국가주도 산업화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중상주의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불황기 임금정책을 수용하는 노조는 노동자 내핍 강제기구로 전환되어 지속적인 임금억제를 정당화하게 된다. 이에 대한 자구노력으로 노조는 직업훈련을 담당함으로써 숙련을 향상시키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내부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또 높은 조직률과 강력한 중앙교섭을 바탕으로 하는 연대임금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특징지어지는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 역시 재정확대가 아니라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인플레 없는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이에 대한 반경향으로 나타난 금융화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기초로 한 자본과 노동의 타협의 물질적 조건 및 제도를 해체하고 그 결과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를 동반해왔다. 산업이윤율의 하락으로 인한 생산의 침체와 금융비용의 증가에 직면하여 경영자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을 재배치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고임금과 실업의 동시적 원인으로 노동조합의 경직성이 지적되고, 고용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용 및 임금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확립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시장의 신축성을 높이고 노동의 이동성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부가되었다. 그러나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대체로 고용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양보교섭을 선택했다. 이는 자본축적의 성장기에 인정받았던 노조의 교섭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불황기에 기존 노조의 헤게모니의 물질적 토대가 해체되고 상대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양적ㆍ질적으로 증가하면서,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기존의 제도적 관행을 유지하려는 노조의 노력은 종종 노동자운동 내에서 내핍과 고통분담을 강제하는 역설로 드러났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이질성과 분절화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노총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대체로 선임권 규정과 같은 기존의 제도적 안정성을 유지한 가운데 임금과 같은 쟁점에서 일정한 양보를 제공하는 양보교섭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기본적으로 노조의 교섭력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키며, 그 결과 조합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도 점차 축소시키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교섭력 증대가 관건이 되고, 교섭력 증대의 전제 조건인 조직률 상승이 주요한 목표가 된다. 이는 영미권에서 종종 ‘신노조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조직화 노선으로 수렴되었다. 조직화 노선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노조간 통합, 특히 군소 노조의 흡수를 통한 조직률 증가 전략이다. 이러한 시도는 종종 전국적 규모의 ‘조직화 학교’나 ‘지역 사회 캠페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혁신 없이 조직률 상승이라는 실용적 목표에 종속된 조직화노선은 앞서 SEIU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문제를 파생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단체교섭의 분권화 양상이 뚜렷해졌다. 가령 독일은 전체 단체교섭에서 기업별 협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대폭 증가했고(1990년 27%→2000년 39%), 노조가 없어서 단협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 또는 직장협의회도 없는 기업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사용자단체의 조직률 하락과 병행한다. 또 산별협약에서 기업 수준 노사에 근로조건 결정권의 일부를 위임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1980년대에는 노동시간에 대해, 1990년대에는 임금에 대해 개방 조항이 적용). 이 과정에서 노조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신축성 확대를 교환하고 숙련 향상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자초하고 있다. 1995년 ‘일자리를 위한 동맹’, 1998년 ‘일자리, 직업훈련, 경쟁력을 위한 동맹’과 같은 사회협약이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스웨덴의 경우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의 독점적 지위가 축소되고 사무직노총(TCO)-전문직노총(SACO)과의 중앙 단체교섭이 분리되면서 연대임금 정책이 붕괴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유럽 노조의 대응은 대체로 위기와 일정한 조정기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코포러티즘으로 수렴되어 왔다. 특히 유럽통화동맹으로의 이행기인 1990년대 말에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신 사회협약이 체결되면서 국가적 수준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이(혹은 경쟁적 코포라티즘) 확립되었다. 이 사회협약의 특징은 △생산성 증가 이하로 임금 수준을 유지하고, △산업부문에서 기업수준으로 임금협상을 부분적 개방하고, △높은 임금편차를 수용하는 것을 기초로 임금 억제 정책을 노조가 승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노동시장의 신축화와 사회보장 및 조세제도를 친기업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코포러티즘인가 단체교섭의 초민족화인가 유럽 통합 과정에서 유럽 각국이 민족국가 수준에서 임금 억제 정책이 실행 가능했던 것은 대량실업으로 인한 노조의 협상력 저하와 같은 조건 외에도 유럽화폐동맹의 ‘제도화된 화폐주의’가 바닥을 향한 경쟁을 추동했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수준의 사회협약-경쟁적 코포러티즘과 함께 기업 수준에서는 양보협약-경쟁적 기업동맹을 통한 ‘조직화된 분권화’가 일반화되었다. 즉 탈규제화된 금융시장, 강화된 시장경쟁, 대량실업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자본-노동 간(해외이전ㆍ투자재배치ㆍ해고위협), 초민족적법인기업 내부의 본부-자회사 간(생산성ㆍ임금ㆍ노동시간ㆍ작업조직 벤치마킹 강제), 주주-경영진 간(주주가치지향 단기 실적주의) 세력 관계의 변화를 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유럽 차원에서는 초민족적 수준에서 자본의 구조적 우위를 강조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유럽의 ‘상징적 코포러티즘’이 작동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이후 환율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파괴적 효과가 지속되자, 화폐공급과 금융에 대한 탈규제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통화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1978년 도입된 유럽화폐제도(EMS)는 회원국간 환율을 고정시킴으로써 환율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설정했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유럽화폐동맹(EMU)을 위해 제시한 경제정책 수렴기준은 민족국가 화폐주권의 소멸을 의미했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기술력과 생산성이 열세인 국가가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신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유럽화폐동맹이 부과하는 조건 속에서, 노동비용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격이나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한 요소로 간주되었으므로 국가들은 저마다 노동조건의 사회적 덤핑이나 임금덤핑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 산하 각종 기구에서도 경쟁 지향적 단체교섭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연합이사회(European Council)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ttee)가 기초한 ‘확대경제가이드라인’을 채택했는데, 이는 임금인상을 생산성 성장 이하로 억제하고 지리적·직종별로 임금을 차등화하는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이와 더불어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이 임금 억제 정책에서 이탈할 경우 통화수단에 제한을 가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노조들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처했다. 한편으로 유럽의 화폐ㆍ경제적 통합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경쟁을 부과하면서 점점 더 단체교섭의 기초 기능을 침식했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상위적 유럽 단체교섭 체계는 가까운 미래에서 출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후반 무렵, 유럽 노조들은 단체교섭 정책에서 국경을 넘어서는 노조 간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단체교섭의 유럽화를 향한 새로운 접근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체교섭의 유럽화에 관한 초기의 이론적·정치적 논쟁은 대부분 유럽의 ‘사회적 대화’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유럽의 사회적 대화의 내용적 빈곤과 법적 완결성의 한계는 노조(사회·노동 표준에 대한 경쟁적 탈규제에 대항한 민족상위적 보호)와 사용자 단체(사회적 규제를 회피하고 국가간 경쟁을 활용한 이점을 누리고자 함)가 근본적으로 유럽의 사회적 대화에 대해 상이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와중에 1990년대 말 유럽금속연맹(EMF)을 비롯한 가맹 조직들의 발의에 따라 유럽노조연맹은 생산의 초민족화가 진전되면서 임금교섭이 더 이상 일국이나 특정 산업부문 이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유럽차원의 ‘단체교섭 조정’을 새로운 ‘유럽의 노사관계 체계’에 관한 주요 결의사항 중 하나로 채택하였다. 유럽노조연맹은 각국 단체교섭에 대한 권고사항을 담고 있는 단체교섭 조정을 위한 ‘유럽 가이드라인’을 채택, △정규 임금인상은 이윤과 임금 간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총임금 인상에 분배되는 생산성 비율을 최대화하면서 최소한 인플레이션을 초과해야 하며 △생산성 향상 잔여분은 단체협상의 여타 의제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임금이 평행적으로 인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노조연맹은 이 가이드라인이 다음 목표에 부합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확대경제정책가이드라인과 유럽중앙은행의 화폐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수준에서 노조들이 임금협상의 일반 지침을 가질 수 있고 ‘거시경제적 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유럽에서 사회적ㆍ임금 덤핑과 임금의 분기를 막을 수 있고, △유럽 내에서도 임금 지불이 쉽게 비교될 수 있는 단일통화지역에서 임금 요구안을 조정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생활조건을 상향 수렴할 수 있다. 이러한 ‘임금 공식’의 활용은, 임금인상이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조로 하여금 유럽 수준에서 임금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또한 가이드라인은 유럽에서 단체협상 결과에 대한 비교평가를 위한 분명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유럽노조연맹이 ‘사회적 유럽’을 상징적 매개로 하여 노동3권의 초민족화를 추구하는 것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양하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통합의 신자유주의적 본질과 코포러티즘의 잠재적 위험을 차치하더라도, 유럽 차원의 노사관계가 그 목적과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실상 유럽연합은 사회적 파트너로서 어떤 권위 있는 대화당사자(즉 노사정)도 없으므로 최소한의 실체를 가진 정교한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하면 현실과 괴리되면서 거버넌스의 하위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노조운동의 이념과 지향 그렇다면 경제위기 시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이념과 지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노동조합은 일차적으로 방어적 조직이다. 즉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서 임금인상·노동시간단축·노동조건개선이 노조의 일상적 방어투쟁의 과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어투쟁의 방식이다. 즉 노동조합의 활동이 연대지향적인 방식인가, 아니면 자기중심적 방식인가라는 쟁점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방어투쟁의 특정한 방식은 ‘노조주의’를 통해 표현된다. 노조주의는 특정한 조직형태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이념과 노선을 포함한다. 노조주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동반하지만 ‘정치노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조합 내에서 노동자대중이 어떤 형태로 스스로를 조직하며, 활동가들은 어떠한 지향과 활동방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지침에 가깝다. 따라서 노조주의는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의 조직과 활동 노선을 포함한다. 즉 노조주의는 노동조합 일반에 관한 특정한 이론이나 관념을 동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조주의 내에서 사회운동적인 요소를 추출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대중 내부의 계급적 통일성을 증가시키고, 내적 배제를 제거한다는 기본적 이념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이념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 전체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전략으로 나타나며, 종종 노동조합으로 포괄되지 않는 실업자 운동이나 여타 민중부문과의 연계 전략을 동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이나 양보교섭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자초하는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례로, 전미자동자차노조(UAW)는 경제위기가 가시화된 2007년 단체협약에서 기존보다 낮은 임금에 합의했다. 이로써 UAW 가입 노동자 고용에 드는 비용은 미국 내 조업 중인 아시아계 자동차 회사인력의 수준과 동일하거나 적은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 조항이 현 조합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되 현 UAW 조합원의 퇴직에 따른 신규 대체인력 채용 시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UAW는 저비용의 ‘미래 노동계약’을 마련함으로써 현 조합원의 생활수준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기업을 살릴 급부를 제공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일 폴크스바겐의 경우, 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가로 세계 전역의 공장에서 다수의 비정규직이 해고되기도 했다. 2007-09년 세계 금융위기와 최근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의 재정위기가 폭발하면서 노조의 대응은 더욱 방어적으로 경도되는 인상이다. 특히 노조의 대응이 개별 기업이나 민족국가 수준에서 고착되면서 세계화ㆍ지역화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을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념적 전망의 소실과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노조의 이념적·조직적 혁신 전략이 역시 아직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과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0년 들어 발발한 남부유럽 재정위기는 해당 국가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과 함께 유럽 각국의 긴축재정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 나아가 유럽 금융기관의 부실 확대로 인한 세계적 금융위기 가능성을 동시에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2007-09년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한 번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단기간 안에 경기침체가 재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윤율 궤도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기가 재발하면서 경제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설령 경기가 일정하게 회복된다 하더라더 ‘고용 없는 성장’이 되리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민중적 대안의 모색이 노조운동의 부활에서 결정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이념 속에서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는 단체교섭의 행위자로서 노조가 사회·정치운동의 주체로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민족국가적 전략과 세계적 전략 사이의 가교를 놓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금융위기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국제적 대응 속에서 노조는 초민족적 수준의 노동의 대표이자 사회ㆍ정치적 행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밖에 중국 노동자들의 최근 투쟁 사례서 보듯이 초민족적법인기업에 대한 각국 노조의 공동 대응과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이 시급한 과제로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