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 지방선거가 끝난 후 평가가 분분하다. 그러나 선거과정이 그랬듯이 평가에서도 ‘MB심판에 대한 대중의 민심’, ‘민주대연합의 승리’라는 진단 이외의 다른 쟁점들은 여전히 잠복되거나 억압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른바 반MB연합에 비판적이거나 거리두기를 했던 세력, 조직들은 평가에 신중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그 과정과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낼 효과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선거 직후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완주를 두고 형성된 여론지형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전주곡처럼 들린다. 선거전술로서 진보대연합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의 독자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포함하는 주장들도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 구도가 형성되는 데 기여했던 정치적ㆍ정책적 쟁점들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시도들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이미 드러났듯이, 이와 같은 정치지형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운동방향이 민주대연합을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 상당한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 평가는 향후 전개될 정세와 정치지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적 구도와 몇 개의 단일 이슈 중심의 ‘신자유주의 네거티브 선거’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대체로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의 대패로 요약된다.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은 7석, 정당 비례대표 35.1%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6석, 정당 비례대표 39.8%를 얻었다. 그리고 친민주당 성향 무소속 후보가 경남과 제주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되었다. 의석수만으로는 아주 큰 차이가 아니지만, 이전 지방정부 수권정당이 한나라당 일색이었던 현실에 비추어 상당한 변화라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과거의 지방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1개 지방정부를 수권하였다.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 두 곳을, 열린우리당이 전북 한 곳을 수권하였고, 제주는 무소속 당선이었다. 의석수만 놓고 보자면, 이번 선거에 비할 데 없는 한나라당의 완승이었다. 또한 2002년의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직선제가 본격화된 1987년 이후 치러진 모든 종류의 선거를 망라하여 가장 큰 폭의 표차를 만들며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광역단체장 선거를 통해 획득한 표는 총 880만 표로 487만 표를 얻은 민주당을 393만 표만큼 앞섰다. 그 결과 광역단체장 의석은 한나라당 11석, 민주당 4석, 자유민주연합 1석으로 배분되었다. 2002년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정당 투표를 기준으로 해도 한나라당은 859만 표, 민주당은 479만 표로 380만 표 차를 벌였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정작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방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몇 가지 경향성이다. 우선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단연 우세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도 정권심판론이 회자되는데, 이는 이번 선거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역대 총선결과를 함께 놓고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며, 특히 정권 말기에 선거가 치러질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투표성향이 일관되게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2년 선거가 가장 대표적이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같은 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정권심판론은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의 주도력을 확인해 주기보다는, 대중의 일관된 정치적 경향성이 해체되고 정치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를 규정할 만한 고유한 특징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과거의 지방선거는 대체로 집권정당 심판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지역별 발전전략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몇 개의 단일이슈 중심의 전국적 구도가 유지되었다. 물론 각 지역마다 특수한 지역적 쟁점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세종시 논란 등 몇 개의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전국적 구도가 확고하게 짜인 것이 이번 지방선거였다. 전국적 쟁점에 근거해 오히려 지역적 쟁점이 확장되기도 했는데,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사회운동의 고민을 돌아보면 이와 같은 차이는 명확해진다. 당시 사회운동의 활동은 한미 FTA 반대운동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운동 주체들이 선거공간을 활용하여 이러한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역별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선거지형 속에서 전국적 사안을 쟁점화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차이는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이슈, 그리고 선거구도의 정치적 성격을 말해준다.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집회·시위의 자유(서울광장)란 쟁점은 민주당과 개혁주의 세력들의 입장에서 한나라당과는 평행선을 달리는 정치적 소재지만, 진보진영과도 이미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반면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 파병문제, 노동법 개악 등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일말의 공유지반도 없는 수많은 이슈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것도 쟁점화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그리 많지 않은 정책적 차이가 매우 과장·극대화된 신자유주의 세력들간의 네거티브 선거였다고 집약해 볼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근거를 더 보태자면 선거의 속성상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위해 빠질 수 없었던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문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는 경제위기가 쟁점화되는 순간 민주당이 내놓을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선거구도는 민주당과 개혁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들에 의해 기획·주도되었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구성된 5+4 연석회의에서 선거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정책적 의제들을 ‘필터링’했던 과정을 상기해보자.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당이 거부하여 협상이 지체될 때마다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자를 자임했다. 그러나 중재의 내용은 번번이 민심을 명분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주문이었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역설적 지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현장의 정치활동 붕괴, 정치방침 수립의 어려움이 항상 거론되어 왔다. 그를 극복하기 위한 취지로 진보정당 대통합운동이 작년부터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민주노총의 대응은 혼란과 무기력 그 자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올 3월 경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수많은 논쟁과 수정 과정을 거쳐 5월 중순 경 최종 확정되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쟁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가 복수 출마할 경우, 특히 그 중에 진보정당의 후보가 독자출마와 ‘반MB연합 후보’로 나뉠 경우의 방침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논의는 5+4 연석회의의 합의사항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기초의원이나 비례의원의 경우 복수의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추천, 지지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외 부문의 경우 양쪽 모두 지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민주당 후보인 반MB연대 후보 지지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정치방침을 수정해 나갔다. 이러한 방침 아래서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서약서나 광역단체장 복수 출마의 경우 조합원에 한해 지지후보로 결정한다는 단서조항은 형식적인 의미 이상을 가지질 수 없었으며, 실제로 각 지역에서 쉽게 무력화되었다. [%=박스1%] 이러한 정치방침이 사실상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는 사실은 민주노총 지역본부마다 지지후보가 결정된 과정이나 실제 진행된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16개 광역단체장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이 세 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결정한 지역 5곳(강원, 경기, 경북, 전남, 충북), 복수 출마로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지역 7곳(광주, 대구, 대전, 서울, 울산, 인천, 전북), 마지막으로 지지후보가 없는 곳(경남, 부산, 제주, 충남). 이 중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두 번째 그룹은 대부분 진보신당이 독자 출마를 한 지역이다. 그리고 지지후보가 없는 지역은 대부분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모두 출마하지 않은 지역이다. 지지후보를 결정한 첫 번째 경우도 내막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기의 경우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심상정 후보 지지를 형식적으로는 결정했으나, 실제로는 정책협약식을 통해 유시민 후보를 지지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강원의 경우 민주노동당 후보가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되었으나 중도 사퇴하여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였다. 그리고 대구와 전남의 경우 민주노동당 후보가 지지후보로 결정되었으나, 알다시피 이들 지역은 민주노동당의 독자출마가 전체 선거 판세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곳들이다. 따라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민주노총 지지후보는 충북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충북의 경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3개 진보정당이 합의를 통해 진보신당의 후보를 단일후보로 추대하였고 민주노총 충북본부도 지지후보로 승인하였다. 그러나 실제 득표율은 대구의 5.61%, 전남의 10.86%에도 한참 못 미치는 2.84%에 불과했다. 노동조합 기층의 실제 선거활동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상황전개를 되짚어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대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시민단체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민주노총이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선거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정치방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선거 시기 소속 조직과 조합원들의 정치활동 방향과 지침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각 지역 본부들이 선거연합 전술을 판단하는 데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였다. 즉 이번 선거에서의 이른바 야권연대, 민주대연합의 실제 내용이 후보연합전술을 의미하고,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각기 다른 판단을 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각 지역본부가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활동’과 ‘비공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활동’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범공공부문 노조의 적극적 선거대응과 ‘보편적 복지’ 쟁점 산별노조들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에 많은 관심을 두고, 나아가 직간접적인 선거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곳은 단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각기 시국선언 참여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 노조활동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 지속되던 가운데, 민주노동당에 대한 후원금 납부를 빌미로 한 대대적인 징계가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징계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 교육감과 광역단체장 및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노조탄압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면, 보건의료노조는 자신의 운동과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선거에 능동적으로 개입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일이년 전부터 쟁점화시켜 온 ‘보호자 없는 병실’을 비롯하여 의료민영화, 영리병원, 의료법 개악 반대를 정책요구로 내걸고 이를 수용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이들 세 노조의 선거활동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서 ‘당선 가능한 후보’에 대한 지지·지원에 집중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 지지 경향이 강했던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민주노동당이 ‘민주대연합’에 가담하자, 공개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지원활동을 벌였다. 선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산별노조가 주로 범공공부문의 노조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공공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이 지속되고, 최근에는 노동조합을 아예 무력화시키려는 집중포화가 이어져 왔던 상황과 관련되는 문제다. 이러한 조건에서 기층의 대응력과 활동력이 축소·붕괴된 노조의 경우 상당한 타협과 정부가 제시하는 노동조합 노선에 대한 적응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사실상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은 이전 민주당 정부 집권시절에도 정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탄압 양상은 노조의 활동력이 상당 부문 붕괴된 가운데 그 ‘체감도’가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현재의 집중적인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선거나 정치권의 권한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층의 활동력을 복구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공세적인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매우 우려스러운 결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노총 특히 범공공부문 노조들 내에 이른바 ‘보편적 복지’ 쟁점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노총 내에서의 복지 관련 논의는 ‘사회연대전략’ 논쟁 당시의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 제안처럼 전사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확산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 담론, 그리고 그 정책과제로 기획·제기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실’ 사업,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예고편으로 등장하여 이제 본격적인 활동이 개시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사업은 이전의 논쟁지형을 훨씬 초과하는 쟁점들을 내재하고 있다.(건강보험 하나로 쟁점은 이 책 중 ‘건강보험 하나로, 어떻게 볼 것인가’(최윤정, 김동근)를 참조하라) 보편적 복지 담론이 그 내용 면에서 몇 년 전 사회연대전략의 재판인 듯 보이지만, 그 주체나 추진 방식은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사회연대전략이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 내부에 복지 확대를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나 경로창출 방식을 제안한 것이었다면(물론 좁은 의미에서 볼 때), 현재 제기되고 있고 특히 지방선거 이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보편적 복지 논의는 정치세력의 재편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 기획의 성격이 강하다. 즉 민주대연합 구도를 지속해 나가려는 민주당 개혁세력과 시민단체들에게 보편적 복지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과 제휴할 수 있는 유력한 매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이미 무상급식, 보호자 없는 병실, 기초노령 연금의 현실화 등 노동자운동 내의 복지 관련 요구를 상당부분 수렴하였다. 대부분의 정책과제들이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는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것들이다. 선거 이후 민주대연합을 적극 추진했던 여러 정치세력들은 ‘보편적 복지’를 내건 다양한 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부영, 이수호, 주대환 등이 주축이 되어 최근 구성된 ‘(가칭)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대표적이다. 또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하여 보편적 복지 담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그룹들은 지방선거 이후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책적 쟁점을 다루는 데 노동자운동이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형과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복지확대에 대한 낙관적 기대나 개별 정책과제에 대한 지지 차원으로만 최근의 보편적 복지 논의에 접근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범공공부문 노조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시적인 입장과 활동을 드러내지 않은 공공노조의 경우 ‘보편적 복지’ 노선에 대한 지지 경향이 강한 만큼 현재와 같은 논의지형이 어떤 방향으로든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공공노조뿐 아니라, 지방선거에 비해 전국적 차원의 정책적 쟁점화가 더 용이한 총선, 대선 등 중앙선거 일정을 준비하면서 범공공부문 노동조합을 포섭, 순치하기 위한 개혁세력의 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전국적 정치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역의 시민단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은 지역에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많은 지역에서 중앙의 5+4 연석회의에 소속된 시민단체과 계통성을 확보하면서 시민단체간 연대구조가 형성되고, 중앙의 활동을 모사하여 공동의 지역정책 의제를 제안하고 선거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논의가 그러했듯 지역의 활동 역시 실제로는 진보정당, 야권후보들간의 후보연합전술을 중재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몇몇 지역에서는 ‘풀뿌리 정치 강화’를 기조로 지역의 진보적인 의제를 구축하고 진보진영 내부의 통합력에 근거한 유의미한 선거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오히려 예외적일 만큼 지역에서의 후보단일화 바람은 거셌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의 논의에 비해서 훨씬 통합력과 강제력 있는 후보연합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전국 최초의 ‘야권단일화’에 이어, 최초의 ‘수도권 진보정당 구청장 당선’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인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알려져 있듯이 인천은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 간의 ‘진보대연합’ 합의 역시 가장 최초로 이루어진 곳이다.) 지역 내의 정치구도, 정치세력간의 관계와 영향력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추상적인 원칙과 기준 중심의 중앙의 논의보다 후보조정 논의에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요컨대 시민단체들의 정치 활동은 낙천낙선운동이 꾸준히 진화해온 결과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연합, 그리고 후보 발굴 사업을 통한 자체 후보출마 등 과거 어느 선거보다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추동한 동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른바 ‘공동정부’ 구성 등을 내세우며 당선자 인수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통해 그 일단이 이미 드러났다. 또한 더욱 세부적인 양상은 앞으로 지방정부 운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개입방식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여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과 자원에 관계된 문제다. 중앙의 시민단체들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정치적 협력관계가 이명박 정부 들어 해체된 이후 그를 상쇄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기획을 추진해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지방선거를 압도한 몇몇의 정치적 단일 이슈 역시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경우 시민단체의 정치적 지위나 지방정부 및 개혁세력과 분점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 그리고 선점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정책이슈가 중앙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 또한 이러한 조건을 극복해 나갈 만한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역량도 대체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단적으로 촛불집회를 통해 쟁점화 된 정치적·정책적 의제들이 지역 차원에서는 좀처럼 대중적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의 시민단체들 대부분은 일관된 운동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풀뿌리 자치운동-지역적 의제개발’과 ‘정책적 개입 중심의 상층운동’ 사이를 실용적으로 오간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지방정부 수권이 장기화되고 이명박 정부 집권 아래서 시민단체들의 활동기반은 점차 축소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민단체들이 유용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운동경로는 중앙으로부터 형성되는 전국적 구도와 정치적 쟁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차원에서 지방정부를 비롯한 제도적 영역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주력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 시민단체의 그러한 활동방식과 정치적 지향이 결합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제공했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단호한 태도와 입장 앞서 짚은 내용들은 민주노총이 이번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주요 쟁점에 대한 평가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구조적인 문제와 운동 과제에 대한 평가가 심도 깊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쟁점들이 포함될 것이다. 우선 민주노총이 근 십여 년에 걸쳐 추진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현재적 진단과 평가는 어떠한가?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정당의 양적 성장, 선거활동 중심으로 추진되어온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분당이라는 정치적 조건 아래서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계기였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어떠한 정치세력화운동인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며,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사회운동 조직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시 놓칠 수 없는 쟁점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운동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영향력과 정치적 지위는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사회운동 조직은 극도의 무기력, 무능력을 드러냈다. 지역의 정치자원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분점하기 위한 시민단체 주도의 활동경향과 단절하고, 지역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정치력을 강화하는 운동 전략에 대한 모색이 다시금 본격화되어야 한다. 셋째, 노동자 운동, 사회운동의 운동과제들이 자유주의적 정치쟁점에 포섭되거나 억압되지 않기 위한 정치적 기획과 대응역량의 구축이라는 과제가 있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노동권의 요구를 정치 쟁점화하기 위한 더욱 공세적인 운동기획은 물론, 개혁주의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책적 이슈를 다룰 때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부차화하거나 분리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쟁점과 과제는 이른바 ‘민주대연합’, 그리고 그 실체로서 제안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사회개혁과 정치재편 논의에 대한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할 것이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로 간의 크지 않은 차이를 과장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쟁점들을 은폐·축소하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일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단호한 비판이 있다.
전체 노동자 공동요구·공동투쟁의 단초를 만들자! 2010년 5월 28일, 최저임금위원회 산하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이 최저임금 동결안을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6월 4일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을 점거했고, 이후 6월 7일 경총 앞에서 농성을 하며 동결안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6월 11일 열린 전원회의에서도 사용자 단체들은 최저임금 동결을 고수했다. 최저임금위원장조차 수정안 제출을 요구했지만, 경영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을 또 다시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노총 요구안 _ 시간당 1070원 인상하자! 민주노총은 2011년 1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올해 4,110원보다 26%인상된 시급 5,180원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 월 정액임금 누계평균(2,153,500원)의 절반 수준인 1,076,700원(주 40시간 기준)을 목표로 산출한 것이다. 법정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 하한선이며, 더 이상은 내려서는 안 된다는 최후의 저지선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열악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생계는 전적으로 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제 생계가 가능하도록 보장되어야 하며, 대폭 인상되어야 한다. 매년 최저임금이 조금씩 오르기는 했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안정과 기초생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매우 낮은 수준이다. OECD등 국제기구의 자료만을 보더라도 한국의 최저임금이 얼마나 낮은 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전체 임금 근로자 가운데 중위임금의 2/3이하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OECD중 가장 큰 국가이다. 또한 OECD가 2010년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의 수준이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수준이 낮고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노동자들간의 임금 격차가 커졌고, 시간이 갈수록 임금격차는 늘어나고 있다.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이래 최저임금은 전체 노동자 임금수준과 비교해 1/3 수준을 맴돌고 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의 평균 인상액을 보면, 최저임금은 단순평균으로 3만 4천 원 인상되어, 전체 노동자 급여 인상액 평균 11만 2천 원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지난 20년 동안 2009년을 제외하면 최저임금 월급여인상액은 전체노동자 월급인상액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최저임금 동결하면 고용보장 된다는 경총의 기만성 상황이 이런데도 경총은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해 최저임금 삭감을 주장했던 경총이 올해는 ‘노동생산성만 고려한다면 2011년 최저임금은 36.2% 삭감된 시급 2,624원이 되어야 하는데, 제반여건을 고려해 동결을 제안한다’며 선심 쓰듯 동결안을 내밀었다. 최저임금이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저임금 단신근로자 보호라는 최저임금제 정책적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고용률이 감소할 것이라는 해묵은 주장으로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는데,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절반 이상의 중소기업이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기존직원까지 줄인다’, ‘2000년을 기점으로 최저임금은 연평균 9% 이상 인상돼 영세·중소기업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와 같은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경총은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삭감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동결 혹은 삭감이 고용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경제위기 하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리를 이용해 실업 공포를 확산하려는 협박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자 간 경쟁과 분할을 조장하기 위한 의도 경총이 주장하듯이 최저임금이 삭감되면 일자리가 확대되어 고용을 보장할 수 있을까.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구체적 현실을 살펴보자. 기업들이 최저임금을 지키더라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적절한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해서 임금을 높이게 된다. 법정근로시간을 일하는 것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소득이 모자라기 때문에 최대한의 연장근로를 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퇴근 후 휴식시간을 보장 받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연장, 야간근무를 통해 더 많은 수당을 받으려 한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자발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한다. 자본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상황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더 많이 착취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동결되면 일자리가 확대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지급해야 할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초과 착취를 통해 초과 이윤을 달성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또한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중소기업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지난 6월 12일 노동부는 인력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제조업 등의 ‘빈 일자리’에 취업하면 취업장려수당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런 계획까지 내 놓을 정도면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꽤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실업률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구인난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기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저임금과 매우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이다. 자본과 정권은 구인난 해소를 위해 취업자들에게 ‘구직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하지만, 현재 중소기업의 임금으로는 적정한 생활이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노동조건이 개선되면 취업률이 늘어나고 구인난도 해결될 것이다. 경총은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률을 높일 것이라는 주장은 고용과 임금 문제를 충돌시킴으로써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그러한 경쟁은 노동강도를 강화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주체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 채 자본이 원하는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게 된다. 자본은 그 틈에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는 노동신축화를 강화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급격히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최저임금을 지키는 척 하면서 악용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야 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2009년 8월 최저임금 4,000원 미만인 사람이 210만명(12.8%)이었고, 2010년 3월 최저임금 4,110원 미만인 사람은 211만명 (12.7%)이다. 평균잡아 매년 12%를 상회하는 정도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자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기업들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액을 지키는 척 하면서 다른 수당을 슬그머니 없애버려 실질 임금을 깎아버리거나, 정해진 최저임금은 깎지 못하니까 이런저런 구실로 근무시간을 교묘하게 줄이는 일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거나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면서, 경제위기 아래 실업대란·고용불안정의 문제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알 수 있다. 실질적 공동요구 공동투쟁의 단초를 만들자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을 노동자 정액급여의 절반으로 요구해 왔다. 국제적으로도 평균임금 50%나 중위소득 2/3등의 방식으로 빈곤의 기준을 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민주노총의 요구안이 합당하고 명확한 근거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최임위의 결정방식을 보면 경영계와 노동계의 힘겨루기 속에 최저임금을 공익위원들이 결정해 버림으로써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50% 요구는 실제적으로 쟁취할 목표라기보다는 요구할 수 있는 최고치로서 상징적인 의미에 머물고 있으며, 최저임금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적은 대다수의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한계가 있다. 50% 요구는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조합원들이 시혜적 입장을 넘어 참여하기 위한 동일한 기반을 형성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한편, 요구수준에 비해 타결수준은 매우 낮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여타 사업장과 비교했을 때 임금인상 달성률이 과도하게 낮은 것이다. 최저임금 투쟁에서 비정규직 정규직 연대 강화는 늘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어 왔다. 이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은 함께 투쟁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만큼 최저임금도 올라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공동투쟁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식을 바꾸어내기 위한 노력뿐 아니라 실질적인 연대가 가능하기 위한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국민임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임금요구안이 최저임금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산별노조 중앙 교섭을 확대해서 최저임금이 그 구조 안에서 논의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최저임금이 민주노총 교섭구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요구액과 민주노총 임금요구액의 동일한 기반을 형성할 매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규직 요구액과 동일한 액수를 최저임금 인상 요구액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최고율의 인상’ 운운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인상액’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폭로하자는 것이다. 최저임금 월급여인상액수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체노동자 월급여인상액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최소한 민주노총 임금인상 요구안과 동일한 액수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는 50%요구안보다 적게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다. 즉, 현재 민주노총의 50%요구는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도 50%를 고착시키는 반면, 동일한 임금인상 요구는 점차적으로 격차를 축소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상액수가 같아진다고 해서 곧바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투쟁에 적극 나서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금속노조가 정규직 비정규직 동일한 액수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단결이 확보되지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투쟁 전술을 전환하고 투쟁을 확대하는 데에 유의미한 문제제기가 될 수 있다. 최저임금 투쟁이 절박하고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위력적으로 전개되지 못하는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의 기반을 만들고 단결을 모색해보는 시도를 해 보자는 것이다. 이는 비단 최저임금 투쟁뿐만 아니라 노동자간 격차가 확대되고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자 운동이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투쟁,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하여 공동요구 공동투쟁의 단초를 만드는 것은 민주노총 전 조합원이 최저임금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경로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여성연맹과 공공노조 서경지부를 비롯한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어 왔다. 국가가 고시하는 최저임금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자신의 요구로 제기하고 주체화되어 투쟁해 온 것이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한계에 부딪히고 있으며, 최저임금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것에 비하여 최저임금투쟁을 위력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저임금계층의 임금인상투쟁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우 낮은 노조 조직율과 절대적 다수가 각종 차별과 초과 착취에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의 문제, 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동요구를 만드는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본격적으로 최저임금 투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그 동안 최저임금 투쟁이 가진 위상은 점점 커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은 ‘최저임금 투쟁의 달’로 많은 노동자들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6월 29일까지 투쟁 수위를 높이고 6월 29일 최임위 앞 집회는 실질적인 ‘전국노동자대회’로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에서 우리의 투쟁이 최저임금 결정에 큰 압박이 되기는 힘든 조건도 있다. 2010년 최저임금 투쟁은 이러한 여러 한계를 극복하는 단초를 만드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특히 6월 반짝 투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지속적인 흐름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에도 현재 추진 중인 최저임금법 개악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최임위 회의실 안에서는 교섭하고 밖에서는 농성하다가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흩어지고 다시 다음해 6월을 기약하는 투쟁의 패턴을 변화시켜야 한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를 바꾸어내고, 현재 최임투쟁이 가진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권고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연대, 실질적인 임금격차 축소를 가져올 수 없다. 정규직의 임금인상투쟁과 최저임금 투쟁이 사실상 다른 메커니즘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위적인 요구, 시혜적 수준의 연대를 넘어,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공동요구·공동투쟁을 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나가자. 장기적으로는 투쟁전술에 있어서도 단순 동원형 농성과 집회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임위 앞 집회를 넘어서 거리시위나 파업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자본과 정권과의 승부, 전체 노동자들의 공동요구 공동투쟁을 위한 논의를 시작으로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싸움을 만들어보자.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이화여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하겠다고 노동조합, 학생, 지역의 단체들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이었다. 학교와 용역회사는 우리 활동을 알아 차렸는지 현장의 큰 바람이었던 주 5일제를 시행하겠다며 사람들을 흔들기 시작했고, 막판 조직화 사업은 탄력을 잃은 채 휘청거렸다. 그러나 2010년 1월 재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관리자의 말이 ‘사탕발림’이었음이 드러나자 현장은 술렁였다. 그리고 더 이상 관리자와 학교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며 8명이 첫 주체모임에 참가하기로 했다.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곳에 모임장소를 잡았지만, 그녀들은 관리자의 눈을 피해, 퇴근하는 동료들의 눈을 피해, 빙글빙글 같은 길을 맴돌다 30분 늦게 모임장소에 나타났다. 반신반의하는 그녀들을 설득한 끝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하고, 비밀리에 가입원서를 받기로 했다. 8명은 금세 2배로 늘어났고, 그 2배는 또 금세 배로 불어났다. 하지만 그 뒤로 주체모임을 두서너 차례하고, 가입자가 30명이 되자 더 이상 조합원은 늘지 않았다. 비밀리에 조직 확대가 어렵겠다는 판단 하에 우리는 1월 27일을 디데이로 잡고 출범 준비를 했다. 학교에 가입 통보와 함께 출범식 공문을 보냈다. 보통 ‘무시’로 일관하는 다른 학교와 달리 원청인 이화여대는 이례적으로 일일이 공문에 회신하며 “학교와 상관없는 용역회사 노동자들이기에 일체의 장소사용을 금하며 행사 강행 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출범식 당일 원래 실내 장소로 준비하고 있던 곳은 학교 측에 의해 이미 봉쇄됐고, 우리는 할 수 없이 야외 출범식을 준비했다. 학교는 교직원들을 총동원하여 음향 등의 집회 장비를 물리력으로 철수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격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용역회사 현장소장들은 퇴근 시간 이전부터 출범식 장소에 나와 매서운 눈초리로 행사에 참가하려고 하는 조합원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날씨는 비가 오는 것도 모자라 급격한 기온 저하와 함께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주춤거렸다. 모든 상황이,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궂은 날씨에도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눈과 비를 뚫고 연대투쟁의 모범을 보여줬다. 출범 당시 이대 조합원들은 30여 명뿐이었지만 지부와 여러 연대 대오로 학생문화관 앞 광장은 3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연대대오의 규모에 자신감을 얻은 조합원들이 가장 앞자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잠시도 앉아 있기 힘든 추위였지만, 1시간이 넘게 결연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출범식을 진행했다. 출범식 이후 분회장님은 용역회사 소장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며 신이 났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다. 조합원들은 궂은 날씨에 자신들을 야외로 내몬 학교와 용역회사에 점차 분노하기 시작했다. 교섭을 둘러싼 투쟁은 쉽지 않았다. 학교는 ‘용역회사와 협의할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용역회사는 ‘이미 학교와의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교섭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출범식 이후에도 학교는 계속해서 총회 장소를 불허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본관 앞 계단이나 학생문화관 로비에 앉아 총회를 진행했고, 총회는 매번 학교와 용역회사를 규탄하는 결의대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조직률이 취약했던 한 업체의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조합의 강력한 항의에도 멈출 줄 몰랐다. 교섭이 7차례쯤 진행되고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던 즈음 우리는 조금 더 잘 준비된 조합원 총회를 하기로 했다. 총회를 마치고, 학교를 한 바퀴 돌며 선전전도 진행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집회 때 볼 수 있는 빨간 조끼도 입었다. 구호도 더 많이, 더 열심히 외쳤다. 총회를 마치고 본관 앞으로 행진했다. 이화여대가 책임지고 우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번엔 현장소장실 앞으로 갔다.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용역회사를 규탄한다고 소리쳤다. 원래 여기까지가 사전에 논의된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소장을 잡으러 가자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쳐들어갈 기세였다. 잠시 당황했지만, 조합원들의 투쟁의 열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대오는 현장소장실로 들어갔고 이미 현장소장은 자리를 피한 뒤였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조합원들이 자리를 깔고 앉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투쟁을 정리했다. 그다음 주, 교섭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현장소장의 부당노동행위도 계속됐다. 조합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우리는 이번에도 본관 앞을 거쳐 현장소장실로 항의방문을 갔다. 현장소장은 자리에 없었고, 조합원들 역시 이번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우리는 현장소장실 옆 잔디밭에 앉아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며 현장소장을 기다렸다. 현장소장은 비조합원들과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 했으나 현장소장은 목을 빳빳이 세우며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이었다. 분노에 찬 조합원들은 ‘이런 용역회사와는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며 본관으로 달려가자고 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조합원들은 앞다투어 본관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또 예정에 없던 본관 점거 농성이 됐다. 퇴근시간만 되면 가족들 밥해주러 가야 한다며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던 그녀들이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 되도록 흐트러짐 없이 대오를 지키며 투쟁을 즐기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구호를 외쳤고, 그동안 ‘너무 높으신 분들이라 눈 한번 못 마주쳤다’던 교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녀들에게 그 순간은 너무나 절박한 순간이었다. 이러한 몇 번의 투쟁은 적당한 선에서 투쟁전술을 고민하던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용역회사 이사와 현장소장에게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투쟁을 정리하는데, 한 조합원이 다가왔다. “다음에도 이 조끼 꼭 입어요. 희한하게 이 빨간 조끼를 입으니깐 구호도 더 크게 외쳐지고, 힘이 나네. 진짜 힘이 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통쾌하고 신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집에 돌아가는 조합원의 뒷모습을 보며 오히려 더 큰 반성을 하게 됐다. 얼마 전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이화여대 분회장님은 이런 말을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그래요. 유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슬프다고. 노조 만들기 전에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했어요. 유령처럼 살았지만 유령인지도 몰랐던 거죠. 근데 이렇게 알고 나서 보니깐 우린 진짜 유령이었고, 투명 인간 취급받았던 거예요. …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이런 활동 진짜 열심히 할 텐데, 아직도 권리를 찾지 못하고 유령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지금은 그게 너무 아쉬워요…” 미화 조합원들은 언제나 조직적인 투쟁에서 모범을 보인다. 어느 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가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표현대로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며 노동조합을 만났고, 노동조합을 만나서 일하는 게 너무 즐겁다는 그녀들에게 노동조합은 삶의 활력소이다. 또한 가장 절박한 순간 노동조합을 만났기 때문에 누구보다 노동조합의 소중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기에 구구절절한 연설과 교육 없이도 몸소 연대투쟁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활동가들이 가끔 관성적인 태도로 그녀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부에서 미화 간부교육을 준비하며 이런 집중적이고 장기간의 교육 프로그램은 ‘아줌마들이라 안 된다, 힘들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실제로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고, 가사도 도맡아 해야 하는 그녀들의 조건 속에서 8개월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익숙지 않은 토론과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데에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교육은 한 회, 한 회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 큰 감동을 얻어갈 만큼 생동감 있게 진행됐고, 교육을 이수한 간부들은 현장에서 훌륭히 자기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다. 이제 그녀들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희망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보다 능동적으로 우리의 투쟁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얼마 전 있었던 청소노동자행진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았다. 발언을 준비하고, 노래를 직접 개사해서 공연을 준비하고, 그 순간 누구보다 집회를 즐기고 있는 그녀들 하나하나 참으로 진정한 활동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대분회 간부들은 이번엔 어느 학교 조직하러 가냐며 우리가 할 일은 없냐며 항상 묻는다. 더 많은 청소노동자를 조직하여 제대로 된 싸움을 준비하자는 그녀들. 나에게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지만, 나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워 더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들로부터 우리 투쟁의 새로운 희망을 마음껏 상상해본다. 빨간 조끼를 입고,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는 그녀들과 함께 오늘도… 투쟁!!!
금속영세사업장 실태와 노동자의 삶 현재 K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약 12만 명이다. 아파트형 공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다른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이전하는 회사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중 제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의 하청인 중소영세사업장에서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현재 제조업은 파견허용업무가 아니지만, 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취직하려면 파견회사를 거쳐야 한다. 직접고용을 하는 사업장이 없지는 않으나 이런 곳은 대부분 10~20인 정도의 작은 사업장이다. 이런 회사들은 잔업, 특근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미안해하기도 하고, 식비 등을 월급에 포함해서 시급은 적지만 최저임금위반은 교묘히 피해가는 회사도 있다. 노동자들의 이직률은 상당히 높은데, 자발적인 이직 뿐 아니라 도산ㆍ공장이전ㆍ해고 등으로 인한 이직도 상당하다. 주야 맞교대나 3교대, 야간 일을 하는 곳도 많다. 불법파견에 최저임금, 상시적인 해고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금속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주어졌다. 제조업과 운수업으로 파견업종을 확대하겠다는 노동부의 계획이 지난 4월 밝혀지고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결정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이 글이 이후의 우리의 투쟁에 더 많은 영감과 책임감을 줄 수 있길 바란다. 불법이지만 당연시되는 파견노동 A사에 다니는 B씨는 파견업체를 통해 현재의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에 직접 연락하는 것보다 파견업체가 노동시간, 시급, 잔업수당, 상여금 등의 노동조건에 대한 설명을 훨씬 자세히 해줬다고 한다. 파견업체에서 한꺼번에 다섯 명을 모아 회사로 가 면접을 봤다.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정도만 물어보는 간단한 면접이었다. 5분 뒤에 합격 결과가 나왔고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면접날이 파견업체 직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고, 첫 월급날이 가까워오자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원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라고 느끼진 않았다. C사에 다니는 D씨 역시 파견업체를 통해 회사에 취직했다. 작은 회사보다 큰 회사가 나을 것 같아 찾아봤지만,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10인 이상의 회사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며,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면접에서 미리 통보받았다. 그래도 C사는 첫 달부터 상여금이 나오는 곳이라서 다른 곳보다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E사에서 일하고 있는 F씨는 직접 고용 계약직이다. 파견직보다 대우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2개월간의 수습기간 동안 월급 90만원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가 받은 임금을 시급으로 따져보니 오히려 A, C사의 파견노동자들의 월급보다 적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파견노동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하지 않거나 차라리 파견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규직이 좋다는 것이야 알지만,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이 될 희망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파견노동이 일반화되면서 파견업체도 점차 대형화ㆍ체계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약을 하는 시즌에만 연락이 오는 파견업체도 있지만, 노무관리랍시고 한 달에 2~4회 정도의 안부문자를 꼬박꼬박 보내는 곳도 있고, 불법파견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회사로 출근해 간단한 업무지시까지 직접 하는 곳도 생겼다. 이렇게 파견업체가 전문화되면서 노동자들은 점점 파견노동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직접 고용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 자체에 문제를 느끼고 제기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파견업체를 통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에 갑자기 일거리가 없어져 파견업체 통째로 계약이 해지되어도, 파견업체가 한 곳에서 일주일은 일해야 돈을 준다는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제시해도, ‘요즘에 다 그렇잖아’ 하고 넘어가버린다. 노동자들의 그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함이 오히려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황은 진행되고 있다. 공정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 고용되었건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을 하게 된다. F씨는 지름이 0.5cm도 안 되는 원 모양의 배터리를 하루 종일 육안으로 검사하며 불량을 가려낸다. 그녀가 하루에 처리하는 물량은 10만 개가 넘는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이 작은 배터리만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고 목이 뻐근하다. 그녀는 함께 짝을 이루어 일하는 50대의 중국 동포가 주는 물량 압박 때문에 자꾸 쉬는 시간에도 일을 하게 된다고 곤란함을 호소했다. 무선통신장치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G씨는 20-30초에 하나씩 제품 검사를 마친다. 이것이 그 회사에서 시간이 적게 걸리는 공정이 결코 아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10-15초에 하나씩 물건이 쏟아진다. 무선통신장치를 연결하고 버튼만 한두 번 누르면 되는 작업인데도 일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손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그러나 손으로 조립하는 사람들보다야 낫다. 그 곳에서 3년 일했다는 노동자가 보여준 손은,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오래 걸어 다녀 부르튼 발처럼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단순노동을 하면 몸이 뒤틀리고 시계를 하루에 몇백 번 쳐다볼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고 했다. 오히려 일이 없을수록 시간이 가지 않고, 노동자들은 더 힘들어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재가 들어오지 않아 라인이 돌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누구든 자기가 맡은 일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끝냈다고 쉬지 않는다. 쉬지 못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그제야 노동자들은 짧으면 9시간, 길면 12시간 머물렀던 공장을 떠난다. 그렇게 똑같은 일주일, 한 달이 금방 지나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월급날은 더디 오는지 모르겠다며 노동자들은 웃었다. 컨베이어 벨트와 세분화된 공정, 작업방법 및 작업조건을 표준화한 일일 과업량 설정은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의 특징이다. 공정을 세분화한 결과, 어떤 노동자는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에 부품을 놓아주기만 하면 되고, 어떤 노동자는 전선을 꼬아 끼우기만 하면 되고, 어떤 노동자는 스크류만 박으면 된다. 각 공정 사이에 약간의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빠르면 2-3일, 길면 1-2주 만에 완전히 그 공정에 익숙해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근속이 짧던 길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해고해도 손해 따윈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인력 투입 며칠 후에 생산량이 정상수준으로 돌아와 노동자들이 힘겹게 조직한 파업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굳이 포드나 테일러의 이름을 꺼내지 않더라도 공장에서 얼마간 일을 하다보면 이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빠르게 공정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노동자들 대부분이 자신은 남들보다 일을 잘하고, 숙련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너무 쉽게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서야 안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들의 일터에서 자존감을 지키려는 아주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존감의 유지 방식은 종종 신입 노동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거나 다른 라인, 다른 층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반장ㆍ조장이나 고참 노동자들이 신입들에게 친절하게 공정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공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알아내야 한다. A사의 B씨는 처음으로 생산직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맡은 일은 검사였다. 조립이 끝나면 몇 가지의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검사 순서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자신이 일을 끝내면 어느 위치에 갖다 두어야 하고, 일이 밀리거나 없으면 어디까지 유연하게 공정순서를 바꿀 수 있는지를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며칠 지난 뒤에야 공정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 뒤에도 계속 좌충우돌했음은 물론이다. 공정의 흐름 정도야 며칠 관찰하면 파악이 가능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공정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크고 작은 돌발적인 상황은 계속 일어나는데, 눈치 보며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고 관리자나 고참 노동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 두 번이다.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다 실수를 하면 한 번 크게 깨져야 한다. 그녀는 다른 층에서 넘어온 검사에서 엉뚱한 시리얼 넘버가 중간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넘겼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이 맡은 공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다. 오히려 관리자가 제대로 모르면서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고 회사도 그걸 알고 있지만, 지식과 통제수단을 보통 노동자들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공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네들은 훨씬 지혜롭게 일을 할 수 있다. 그 능력을 빼앗긴 채 오늘도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반복되는 노동에 매달린다. 인간답지 말라 강요하는 저임금 대학휴학생인 21살의 여성노동자를 만났다. 이외에도 20대 초반 노동자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반짝반짝 빛나는 애들이 왜 이런 힘든 일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20대와 공장에서 일하는 20대는 어떤 차이가 있는거지? 아르바이트 소개 사이트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는 곳도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맥도날드에 시급 4600원에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21살의 그녀가 해주었다. “왜 다른 곳이 아니라 공장에 왔어?” “잔업수당이 있잖아요. 한 달 월급, 꽤 쏠쏠하죠. 알바 했으면 이렇게는 절대 못 벌었을껄요? ” 20대건, 40대건, 잔업의 유무는 초유의 관심사고, 매일의 화제다. 차라리 미리 잔업이 있다고 알려주면 포기하고 일할 마음을 먹을 텐데, 빠르면 마지막 쉬는 시간에야 알 수 있다. 그래도 끝나기 10분 전에 알려 주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잔업 없고 특근 없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공장에서 일하게 된 동인은 ‘잔업’과 ‘특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왕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녀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5월, 평소보다 2-3배 많은 양의 출하계획이 나왔다. 컨베이어 벨트에 제품이 놓이는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고, 관리자들은 뒷 공정 밀리는 것을 고려하지 말고 무조건 내리라고 지시했다. 끔찍한 노동 강도였다. 신기한 것은 이게 하루 생산량의 최대치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이 되면 그것을 또 갱신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한지 열흘 정도가 지난 날, 과장이 생산직 사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석가탄신일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황금연휴에 과연 쉴 수 있을까를 기대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는 ‘지금 한 명만 잔업 빠져도 너무 힘든 상황이다’라며, 지금부터 5월 말까지 단 한 번도 지각이나 조퇴를 하지 않고, 회사가 요구하는 잔업ㆍ특근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면, 10만 원을 더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적지만 많은, 10만 원. ‘제발 쉬었으면’ 이었던 생각은 ‘기왕 하는 거 버텨서 10만 원 타야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를 관두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그럴수록 남아 있는 이들의 잔업시간은 늘어나고 노동 강도는 심화되었다. 5월에 그녀가 다니는 회사는 어린이날 이후로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그녀는 96.5시간의 잔업과 특근을 했으며, 잔업수당으로 588,750원을 받았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잔업시간이 120시간이 넘었다. 이렇게 되면 잔업수당과 기본급이 거의 맞먹는다. 6월 초에 몇몇 고참 노동자들은 그제야 평일에 연차를 사용했다. 주말 특근을 빼먹는 것보다는 그게 낫기 때문이었다. D사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E씨는 첫 월급이 체불된 경험이 있다. 15일에 나오기로 한 임금이 나오지 않았다. 상습적인 체불 사업장이라는 것을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안 나온 적은 없었다고 하긴 하는데, 당장 내야 할 돈이 많은데 나오기로 한 날짜에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며칠 기다리다 결국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부장에게 항의를 하게 되었다. 왜 월급을 주지 않느냐. 그가 차라리 회사에 돈이 없다는 변명을 하거나 줄 때 되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런 대답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대들고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월급을 달라고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한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깟 돈 얼마나 된다고 그래. 그거 좀 늦게 받아도 살 수 있잖아.” 아무도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이라도 그게 없으면 당장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우린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대출회사에서 돈을 빌린 상황이었다. 월급은 예정된 날짜보다 9일 늦은 24일에 나왔다. 그 사이에 같은 부 평사원 8명 중 3명이 회사를 관뒀다. 거의 모든 사업장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에게 “어디나 똑같으니 여기 더 있자” 라는 생각과 “이럴 바에야 그냥 나가고 말지”라는 양면적인 생각을 갖게끔 한다. 노동자들은 비슷한 조건이지만 덜 억울하고 조금이라도 더 사람대접 받는 곳을 찾아 떠나지만,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기본만 지켜줘도… 만났던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식사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구내식당이 없으면 근처 식당과 계약을 해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메뉴가 별로 변하는 일이 없고 질도 좋지 않다. 식당 주인이 노동자들을 하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많은 중소영세사업장이 휴게공간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함은 물론이다. 계속 서서 일해야 하는 곳인데도 휴게공간에 의자가 부족하다거나, 인원수에 비해 휴게실이 너무 작고 열악하거나, 아예 휴게실이 없어 비 오는 날에는 아무 갈 곳이 없는 곳도 있었다. 일하는 곳이 너무 더운데도 냉방장비가 없거나, 98% 황산을 사용하는데도 고무장갑과 앞치마만 줘서 옷에 구멍이 났다거나, 7년 째 건강에 해롭지 않은 무연 납을 사용한다고 말만 해놓고 가격이 싼 일반 납을 사용한다거나, 근속이 긴 노동자를 승진시키지 않고 외부에서 대리를 뽑아온다거나, 어머니가 쓰러졌다고 알리고 결근했는데 무단결근 처리되어 3일치 월급을 깎인다던가, 물량이 없어서 선거일에 쉬는 것인데도 쉬게 해주니 잔업 3시간을 수당 없이 하라던가, ‘이 새끼’, ‘저 새끼’라는 호칭으로 노동자들을 부른다든가…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금속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말하는 ‘복지’는 대기업의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과 같은 것들이 아니다. 커피와 종이컵을 사다 놓는 곳이 이 지역에서는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다른 곳보다 상당히 여건이 좋은 C사는 식당에 영양사가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실은 상시 50명 이상에 식사를 제공하는 집단급식소에는 영양사가 있어야 한다. C사의 D씨는 사람들이 휴게실도 있고 식당도 좋고 해서 부러워하지만, 그런 것들이 최저임금사업장이라는 것을 자꾸 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지역의 다른 회사보다 여건이 훨씬 좋은데도, 왜 더 줄 수 있으면서 최저임금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최저임금이 지역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되어버리는 상황, 주말에 쉬게 해주는 것을 감사해 하는 상황, 휴게실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상황, 이러한 기묘한 상황들이 지금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자에게 있다 지난해 상을 받은 모 언론사의 기획 기사의 전체 타이틀은 ‘노동OTL’, 절망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받으며 단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 안에 절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21살 여성노동자가 다니는 회사.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속도가 빨라지자 조립라인에 있던 노동자들은 요구를 했다. “하루 종일 이런 속도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조립라인에서만이라도 공정 로테이션을 시켜 달라!”고. “원래 했던 일을 제일 잘하지 않느냐”며 요구가 거절당하자 조립라인 노동자들은 자신들 스스로 규칙을 세웠고, 로테이션을 시작했다. 청소기를 만드는 H사. 어느 날 갑자기 관리자가 “세금을 많이 떼이지 않냐” 며 신고를 다르게 해서 세금을 줄이자는 제안을 했다.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많이 받게 해주겠다면서 4대 보험 해지를 종용한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라 옳다구나 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일주일 뒤 노동자들은 모두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납땜에 불량이 많이 난다고 회사에서 실시한 불량실명제에 대항해 노동자 개개인이 피해보지 않도록 서로 감싸줬던 일, 식당을 개선해 달라며 집단적으로 항의한 일, 모두가 잔업을 거부하겠다고 관리자들에게 들고 일어났던 일… 작은 일들이지만, 노동자들 스스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하나하나의 사례들이 무척 크게 다가왔다. 여전히 저임금ㆍ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 이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그네들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게, 노동할 수 있기 위해 끊임없이 벌이는 크고 작은 싸움에 최대한 가까이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주위에 있어 노동자운동에서 감히 희망을 찾자고 말할 수 있다.
G20 정상회의와 이주노동자 탄압 G20을 빌미로 정부 합동단속 6월부터 시작 법무부는 2010년 5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미등록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을 발표했다. 한 달 동안 계도기간과 홍보기간을 거치고 6월부터 본격적으로 법무부, 노동부, 경찰이 함께 집중단속을 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현재 미등록이주민(미등록이주노동자)이 국내에 18만 명 가량 체류 중이고 이번 조치를 통해 1만 명 이상 자진출국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며 편협한 인종주의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단순기술노동인력'과 '전문/숙련 기술인력'으로 구분해 차별적으로 관리/통제해 왔다. 전자는 단기순환노동인력으로 배제와 통제의 대상이며, 후자는 국내 경제력 신장의 일환으로 적극적 유입과 정착 지원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순기술노동인력의 체류가 국내 사회에 미치게 될 갈등비용만을 부각시킨다. 정부는 사회통합적 이주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아니라 이주민들을 사회혼란세력으로 규정, 배제하는 정책만을 우선시 해왔다. G20을 앞두고 외국인과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이러한 조치들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인종차별적 조치다. 또한 정부에서 추진한 개악된 출입국관리법과 6월부터 시작되는 이주민집중단속은 그간 정부의 일방적 이주민 탄압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앞장서 한국 사회에 인종주의를 조장하고 인종차별을 내재화 시키는 만행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진1%] 출입국관리법 개악 이번 정부 집중단속 발표는 4월 21일 개악된 출입국관리법안의 통과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개악된 출입국관리법은 '국내로 입국하는 외국인과 국내체류중인 외국인의 재등록 시 지문날인'과 '안면사진정보 수집 허용'이 법안의 주요 핵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출입국관리법은 'G20의 안정적 개최'라는 미명아래 통과 직후 최단 기간인 3개월 만에 시행되게 되었다. 개악된 출입국관리법은 현재 미국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애리조나 이주민 단속법안'(이주민단속권한을 연방정부에서 주경찰까지 확대한 것으로, 주경찰이 외모를 보고 외국인을 불심검문해서 미등록자를 가려내는 것에 대해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이 거세다)과 매우 흡사다. 기본적으로 두 법안은 이주민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공권력을 동원한 단속이야 말로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올바른 정책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개악된 출입국관리법이 어느 정도로 이주민의 인권을 짓밟히고 있으며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법안들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현재 신설된 조항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①정보화기기를 이용한 출입국심사의 근거 마련과 ②외국인의 지문 및 얼굴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다. 정보화기기를 이용한 출입국심사는 17세 이상 모든 외국인의 입국심사 시 지문 및 얼굴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의무화 하고 있다. 이 법안은 2003년 개정될 당시만 해도 외국인 지문날인이 미치게 될 악영향을 고려해 폐기되었다. 하지만 개악된 출입국관리법은 이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대상 및 요건을 입국심사에까지 적용해 개인정보수집에 불응하는 외국인은 입국금지 혹은 비자연장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확대 강화하고 있다. 모든 외국인에게 입국심사 시 지문 및 얼굴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은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관련 정보의 누설ㆍ악용 시 인권침해의 소지가 너무나 크다. 또한 지문과 같은 정보는 수집ㆍ이용ㆍ관리 및 감독에 엄격한 제한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제한적 조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둘째 '출입국공무원에 정지ㆍ질문권한 부여'의 조항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출입국공무원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고 의심되는 외국인을 불러 세워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을 잠정적 범죄자로 보고 상시적인 검문검색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외국인을 '얼굴 및 언어, 신체적 특징'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인종차별적으로 적용될 우려가 매우 크다. 이주민들은 출입국관리직원들에게 불심검문을 당할 때 한국인에게 적용되는 불심검문에 대한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또한 이번 출입국관리법은 단속된 미등록이주민이 형사범이 아니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미란다 원칙)를 반드시 고지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과 미등록이주민을 법의 사각지대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분명 법무부의 자의적 해석이며 어떠한 국내법 및 국제법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항이다. 셋째 '보호에 대한 정의 규정'이다. 그간 보호의 개념이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어 정의 규정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법무부에서는 '보호'라 강변하지만 엄격히 말해 현행 미등록이주민들의 인신구금 혹은 수용의 의미가 더 크다. 그간 시민사회 단체들은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과 추방의 전 과정에 있어 불법적이고 임의적인 법집행을 방지하기 위해 '단속, 연행(체포), 구금, 퇴거'라는 명확한 구분을 두고 이에 상응하는 적법한 절차를 마련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법무부는 오히려 보호의 의미를 '퇴거 대상이 해당된다고 의심할 만한 사람을 출국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에 인치하여 수용하는 집행활동' 일체로 확대 규정해 버렸다. 지금과 같이 인신구속의 성격이 강한 보호소에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이나 퇴직금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6개월 이상의 장기구금 이주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법무부는 이러한 사실을 허울만 좋은 '보호'라는 말속에 은폐시켜 버리고자 하는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긴급한 경우의 긴급 보호' 조항이다. 이 조항은 출입국공무원이 먼저 대상 외국인을 긴급히 보호하고, 즉시 긴급보호서를 작성하여 그 외국인에게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에서 말하는 긴급보호는 내국인에게 긴급체포에 해당된다. 따라서 상당한 신중성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그동안은 '긴급하여 보호명령서를 발급받을 여유가 없을 때'로 긴급 보호서 발부와 긴급 보호를 제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법집행의 편의성만을 고려하여 개악해 버린 것이다. 요즘 출입국관리직원들은 길거리 단속 때 외국인으로 보이면 무작위로 단속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연행하고 있다. 비자가 있건 없건, 심지어는 외모가 외국인으로 보이는 내국인까지도 납치하듯이 연행하는 사례를 신문지상을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웃지 못 할 현실이 한국사회의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으며, 이번 출입국관리법 개악으로 인해 출입국 직원의 불법적 연행을 방지할 법적 조항마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이 G20을 위한 선제적 대응? 경찰청의 발표에서 'G20 정상회의를 위한 선제적대응'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이 현재 전국적으로, 그리고 매우 공격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특별단속은 서울 지역의 경우 서울 경찰청 주도로 5월 3일부터 16일까지 2주 동안 진행되었고, 50일 동안 전국에서 진행된다. 경찰의 이번 단속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첫째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범죄자화 하고, 둘째 출입국법상 단속권한이 없는 경찰의 단속을 정당화하며, 셋째 이주민공동체를 붕괴시킨다는 점이다. 경찰 보도자료에 제시된 경찰 단속의 표적은 1)범죄 혐의자, 2)칼 등의 흉기를 가진 외국인들, 3)지명 수배 중인 외국인 4)성매매자 5)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는 미등록체류 자체를 범죄로 규정한 것이며, 미등록체류가 형사사건이 아닌 행정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강력범죄와 동일시하면서 국내 체류 중인 미등록이주노동자 자체를 범죄자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찰의 이번 조치는 그간 논쟁되고 있던 경찰 단속 문제를 정당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앞서 설명했던 미등록이주노동자 '범죄화'와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정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를 씌워 노동하는 것 자체를 형사범으로 간주해 각 경찰서에 배치되어 있는 외국인범죄수사팀들을 동원한다. 이는 현행 미등록체류자 단속의 권한이 없는 경찰에게 단속권한을 주는 행위로 엄청난 행정력 낭비를 넘어 공권력 남용이다. 현재 경찰은 특정 국적별로 지역을 구분하여 미등록체류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인(대만 포함)은 영등포/구로/금천 지역, 몽골인은 중구 광희동 몽골타운, 베트남인은 성동구/금천구/성북구,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인은 중구 광희동 러시안 거리, 나이지리아인은 이태원으로 구분했다. 이는 이주민공동체를 공격하겠다는 의도다. 즉 이주민들의 국내 체류의 기반이 되는 이주민 지역공동체의 존재를 약화시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외국인 범죄 집중 단속'은 한국 정부가 모든 이주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벌이는 인종적 편견,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계급 차별 정책이다. G20 정상회의는 단지 이 나라의 이주민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리한 알리바이일 뿐이다. 실효성 없는 자진출국 프로그램 현재 법무부의 집중단속은 '자진출국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에서는 이번 자진출국 기간 동안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에 한해 5년 동안의 입국규제를 유예해주고 고용허가제로 들어올 수 있는 한국어시험 응시자격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제조업의 노동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올해 외국인 노동인력 쿼터를 줄였다(한해 13만 명 정도를 도입하던 외국인력 규모를 2009년 34,000명, 2010년 24,000명으로 쿼터를 축소). 그리고 상당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이미 취업 자격이 있는 연령대(고용허가제는 40세 미만)가 지났기 때문에 다시 들어올 수 없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법무부의 자진출국 프로그램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 단지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단속할 명분을 찾기 위해 허울만 좋은 정책을 내걸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법테두리 밖으로 밀어내고 엄정한 법질서 확립이라는 미명아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철저히 집중 단속하겠다는 것이 법무부의 속셈이다. 법무부는 8월 달까지 지속되는 집중단속에서 벌칙조항으로 사업주벌금과 이주노동자들의 미등록체류기간에 상응하는 입국규제와 벌금을 엄포하고 있다. 2003년의 자진출국 프로그램과 집중단속에서 보았듯, 또다시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태가 예상된다. 법무부는 이번 미등록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또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일변도의 정책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 이주민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가? 지금 정부는 G20 정상회의를 위한 성공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한국사회에 공포를 조장하는데 이주자들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발언력이 가장 취약한 이주민들을 그 첫 제물로 선택한 것이다. 이주민 다음에는 G20 정상회의를 비판하는 사회운동 세력으로 칼날이 돌려질 것이고, 결국 전 국민이 그 대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마치 88올림픽 당시 서울인근 판자촌을 도심외각으로 몰아냈던 것처럼 국내에 체류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한국 밖으로 추방하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인종적 편견을 넘어 점점 미등록체류자의 존재 차체를 거부하는 극단적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올해 하반기 정부주도로 시작되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 한 나라의 인권과 사회적 권리의 척도가 되는 이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녀들의 권리를 함께 찾아 나가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기반을 형성 하는 시작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올해 다시금 벌어지게 될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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