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나누기 금속노조는 최근 대의원대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2009년 임단협 요구안을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총고용 수준 유지와 신규 일자리 창출 방안이다. 금속노조는 2월 26일 정부 및 금속사용자협의회 등에 요구안을 발송하였고, 2월 28일 금속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임단협 투쟁을 예년보다 빠르게 시작할 계획이다. 금속노조의 노동시간단축 요구안은 크게 정부를 향한 요구안과 사용자를 향한 요구안으로 나뉜다. 정부 요구안의 핵심은 법정 노동시간 5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상한제(잔업제한제도) 도입이며, 사용자 요구안의 핵심은 35시간 협약노동시간 체결, 교대제 개선(주간연속2교대제)과 월급제 도입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은 임금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즉 임금 나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노동비용은 고정한 채,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 유연화를 통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임금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부의 안은 계급적 성격이 명확하다. 노동의 몫을 줄여 자본의 생산감소와 그에 따른 이윤감소를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은 1998년 당시 제조업에서 생산에 대한 노동의 몫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을 10% 가까이 하락시켰다. 당시 투하 자본에 대한 순생산의 비율인 자본생산성은 제조업에서 약 35% 가까이 하락하였는데, 자본은 이러한 자본생산성 하락을 노동자의 노동소득을 줄여 상쇄한 것이다. <표 1>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자본과 금속노조의 입장 차이 하지만, 자본의 이러한 실질적 요구에 맞선 금속노조의 ‘일자리 나누기’ 방안은 다소 관념적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교대제 개선’에서부터 ‘노동시간상한제’까지 다양한 노동시간단축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 현실에서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진영이 원하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8년 위기 이후 증가한 하청생산은 제조업에서의 노동시간단축의 효과를 일자리 증가가 아니라 저비용 하청의 증가로 만들었고, 더욱 유연화된 노동조건은 노동시간단축이 기존 노동자의 노동강도 증가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현 경제위기 하에서의 노동시간단축 요구 역시 1998년 이후의 하청생산과 노동유연화 심화라는 조건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오히려 자본에 의해 이용될 여지가 많다. IMF 경제 위기 이후의 제조업 조건: 자본의 노동비용 하락과 하청생산 확대 제조업 부문의 노동비용은 이미 IMF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그림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조업에서 영업 총비용 중 인건비 비중은 1990년대 초반 16%에서 IMF 경제 위기 이후 10%대로 하락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 역시 마찬가지다. 1998년 이후 2007년까지 제조업 매출액이 매년 평균 8.6% 상승하였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매년 평균 6.5%였지만, 인건비 비중은 변화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설비 투자 증가로 인한 것도 아닌데, 1998년 이후 총고정자본형성증가율은 1990년대 초중반의 절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 1> 제조업 인건비 대 영업총비용, 인건비 대 매출 (자료: ECOS DB) [%=사진1%]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대규모 제조업 자본이 노동비용을 관리한 첫 번째 방법은 하청 생산을 크게 늘리는 것이었다. 하청 생산은 생산공정 중 일부를 중소규모 제조업체에 넘기는 것과 노동력을 중소규모 제조업체에 넘기는 형태(사내하청) 등으로 이루어졌다. 자본은 생산증가에 대해 노동비용을 늘리는 것보다 하청비용(외주가공비)을 늘릴 때 비용과 생산의 유연성 측면에서 모두 더 큰 이득을 얻는다. 1997년에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69%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격차는 더 벌어져 2007년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57%까지 하락했다. 전체 제조업 차원에서 대규모 사업장의 하청이 늘어나면 전체 노동비용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제조업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무비(직고용 노동자에 대한 비용) 대비 외주가공비(하청 생산비)는 1996년 41%에서 2007년 67%까지 증가했는데, 1990년에서 1996년까지 매년 1.3% 상승하던 이 비율은 2008년 이후 상승 속도가 두 배로 빨라져 매년 2.6%씩 상승했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경우 외부에서 생산하는 모듈이 2006년 (전체 생산 중) 30%에 육박하였고, 1998년 16%에 불과하던 직고용 대비 하청 노동자의 비율은 2007년 26%로 상승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997년 39.3%이던 사내하도급인력 비율은 2006년 133%까지 증가했다. 즉 현대자동차는 생산의 30%를 경기에 따라 납품 계약 해지를 통해 간단하게 줄일 수 있게 되었으며, 26%의 노동자를 매출 증감에 따라 손쉽게 해고/재계약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조업에서의 법정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증감 그렇다면 위와 같은 조건에서 법정 노동시간단축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먼저 제조업에서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규모 사업장을 따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제조업은 중소규모 사업장 매출의 88% 이상이 대규모 제조업체에 대한 납품일 정도로 매우 위계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생산 대부분은 대규모 사업장의 변화에 종속되어 있다. <그림 2> 제조업 사업장의 월평균 실노동시간 추이 (노동부<매월노동통계>에서 재구성) [%=사진2%] 위 그림은 1996년 이후 제조업 사업장에서의 실노동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점선은 실통계수치이며, 실선은 변화 추이를 보여주기 위한 선형추세선이다. 법정노동시간단축이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1000인 이상 사업장과 2006년 7월부터 시행된 100인 이하 사업장 모두에서 노동시간이 단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법정노동시간단축 이전에 실노동시간 감소가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법정노동시간단축 이전부터 약간의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사업장 노동조합이 이전부터 단체협약 등을 통해 기준노동시간을 조금씩 단축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림 3> 제조업 사업장 상용근로자 수 추이(노동부 <매월노동통계>에서 재구성) [%=사진3%] 하지만 일반적 예상과 달리 실질노동시간 감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서 일자리 증가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위 그림은 1997년 이후 제조업 사업장에서의 상용직 근로자 수 추이를 보여준다. 법정노동시간 10% 단축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사업장에서의 약간의 일자리 감소와 중소규모 사업장에서의 약간의 일자리 증가만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전체적으로 보면 2004년 3/4분기 대비 2008년 4/4분기 노동자는 약 1.2%만 증가했을 뿐이다. 사실 이 증가도 매년 제조업에서 5-10% 생산 증가가 이루어진 것을 고려하면 매우 적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일자리가 늘지 않은 이유 먼저 <그림 3>에서 주목할 부분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대규모 일자리 이동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대규모 사업장 자본은 노동비용 감소를 위해 하청을 증가시켰고, 그 결과 대규모 사업장의 일자리는 줄고, 하청 생산을 담당한 중소 사업장의 일자리는 늘었다. 위 그림에서 1997년에서 2002년 사이에 양자 간의 일자리 증감 추이가 비교적 정확한 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대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는 18만 명이 줄고, 중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는 39만 명이 늘었다. 한편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된 2004년 이후는 거의 일자리 증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매년 5-10% 생산 증가가 이루어졌지만, 실노동시간은 감축되었고, 노동자 수는 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규모 투자를 통한 생산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생산은 증가했지만 노동시간과 노동자 수가 모두 줄었다.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법정노동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줄기 전까지 1997년에서 2002년까지 노동자 수가 대폭 증가하며 생산을 확대하였지만, 이후 노동자 수는 늘지 않았고, 2006년 이후에는 법정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본이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청을 증가시키고 개별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경영혁신, 자원관리를 위한 지식 등의 무형자본 증가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정부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무형자본은 대부분 현장통제를 강화하여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현대자동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장에서 근골격계 환자가 5년 동안 430%나 증가하였다.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대규모 사업장에서 중소규모 사업장으로 이동한 노동이 노동시간 감소와 노동자 수 정체 속에서 더욱 큰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 게 분명하다. 한편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실노동시간이 본격적으로 감소한 2006년 이후 중소규모 사업장은 더욱 더 저임금의 일자리를 늘려 이에 대처하기도 하였다. 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07년 1/4분기에서 2008년 3/4분기까지 비상용근로자는 27%나 상승하였다. 경제위기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함정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1월까지 4개월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09년 1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7% 감소했으며, 총유동성, 기계수주액 등의 지표를 바탕으로 6-7개월 후의 경기 상황을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는 -4.5%까지 하락하였다. 현재 상황은 IMF 당시와도 크게 다르다. IMF 위기가 몰아친 1998년에도 제조업 부문은 0.7% 정도 매출이 증가한 것은 물론 1999년 8%, 2000년 15%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위기가 동아시아 외환위기라는 국지적 형태였고, 미국과 중국의 큰 성장이 있어 수출 증가가 내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의 2008년 4/4분기 경제성장률이 -3.8% 하락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 -12.7%, 유럽 -6% 등 세계적으로 공황에 가까운 성장 하락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장기간의 생산 감소를 예상할 수 있다. 한편 1998년 이후 노동조건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자본에게 노동시간단축은 하청생산의 확대를 통해 노동비용을 낮추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자본의 요구가 금속노조에도 일정하게 관철되었음은 물론이다. 금속노조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자동차와 조선업 대공장에서 노동시간 감소, 외주화화 비정규직 증가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경제 상황은 1998년 이후 조건마저 침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제위기는 좀 더 심각하고 길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998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최소한 20%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야 할 것이며, 심각한 생산 하락을 예상할 경우, 제조업 노동자 모두는 10% 이상의 노동 몫을 잃어야 할 것이다. 생산감축에 따라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줄겠지만, 자본은 이마저도 더 많은 유연화(최근 정부는 이를 유연안전성이라고 강조한다)로 이끌려 할 것이다. 금속노조가 예전과 같은 방식, 즉 일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고용안정으로 노동시간단축을 얻으려 할 경우 예전보다 더욱 악화된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금속 노동자들의 대응은 현실 노동조건과 자본의 전략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일면 타당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지난 10년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하청 확대, 비정규직 확대 등의 함정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지난 10년의 오류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길은 노동시간단축 요구라는 맹목보다 먼저 현실의 노동자계급의 조건, 즉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 대규모사업장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대안이거나 투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요구가 자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세상을 위한 한 걸음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일 것이다. 노동시간단축 요구에 앞서 정규직-비정규직 단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여성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12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48.8%로 떨어졌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여러 신문에 경제위기의 한파가 여성에게 더 거세다는 취지의 제목을 달고 보도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나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같이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사업을 벌여온 여성단체들 또한 상담 사례 분석을 통해 경제위기 상황에서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한 해고나 불이익이 급증하고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적 해고 대상이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경험처럼 경제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우선 희생되어온 것이 사실이었고,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권리와 생존이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그렇지만 세계 자본주의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상황은 단순히 여성의 고용과 임금을 줄이고,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하여 몇 년을 버티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가 여성, 이주노동자,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약한 부위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폐업, 도산,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과 해고, 위기를 빌미로 한 임금동결 또는 임금삭감 등 전체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우선해고나 성차별적 해고위협에 국한되지 않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어려움에 놓인다. 여성 우선해고 반대나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는 근본적인 대안과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1930년대 대불황 시기 여성노동자들의 상황 경제위기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고용과 임금에 대한 위협을 초과한다. 1930년대 대불황 시기 미국의 여성들의 삶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불안한 고용을 유지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생계비용 절감을 위해 가사노동을 늘려야만 하는 이중의 부담을 감당했다. 성별 직종분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보호받을 수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산직에 집중된 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남편과 아버지를 부양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비서, 청소, 식당일 등에 종사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노동자계급의 미혼의 딸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임금 노동에 종사했다. 그녀들의 저임금에 의존한 가족생활은 늘 불안함과 가난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여성들은 가족 내에서 수행되는 일도 늘려야만 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채소를 가꾸고, 저장음식을 만들고, 낡은 옷을 수선해야 했으며, 더 열악한 주거로 밀려나면서 그곳을 편안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부가적인 일들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실업 상태에서 집에 있는 남성들의 긴장과 신경질을 중재하고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여성은 가족 내 일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관념 하에서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것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던 조건과 실제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할 때조차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따로 있다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노동시장 내 성별 직종분리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리가 대불황이라는 위기에도 여성의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유지해주었지만,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나 자율성을 실현하는 해방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각한 경제위기 하에서 남성노동자들의 실업이 늘어나자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비를 벌면서 가사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는 이중의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여성들이 해고되고 정규직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실질임금의 하락, 대량실업으로 노동자계급의 가계는 커다란 소득감소를 경험했고, 여성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가계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더욱 늘려야 했다.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사무, 유통, 청소용역 등의 부문은 임시직, 파견직, 계약직의 고용 형태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무기계약제나 분리직군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었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확대되었지만, 그것이 여성 자신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것과는 무관하고 가족 수준에서 위기를 흡수하고 감당하기 위한 여성의 이중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 전망과 정부의 대응 심화되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여성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고용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는 그 위기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의 가능성도 이야기되는 가운데, 수출을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들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는데도 수출이 급락한다는 것은, 현재의 위기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이야기해주는 것임과 동시에 한국 경제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수출이 급락하면서 제조업의 경기 하강 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용감소가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임금동결 내지 삭감을 수용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으며, 제조업의 경우 잔업, 특근의 축소로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노사화합,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 삭감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누렸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저임금, 비정규직에 집중되어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위기감을 가중시킨다. “남성 가장, 여성 가사담당자”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속에서 언제든 가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관념이 여전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맞벌이 부부나 사내 커플을 중심으로 여성 우선해고 흐름이 존재하고, 자동차 등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부문에서 구조조정 시 여성들이 일차적인 대상이 된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된 부문의 경우 고용 형태 자체가 임시직, 계약직 등이 많기 때문에, 재계약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저임금 삭감 시도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압박한다는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대응 전반적으로 실업이 늘어나고,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은 여성노동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여성이 제일 먼저 잘릴 수 있다는 위기감은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 해고위협, 노동조건 악화와 같이 위기를 전가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대해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성의 일은 부차적이라는 관념은 노동자운동 또한 공유해온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투쟁에 있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주변화, 부차화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여성노동자들의 위기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설사 여성들이 집중된 부문의 고용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성들에게 권리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억압적인 측면이 크다. 대불황의 경험에서 봤듯이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하고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저임금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동시에, 가족을 유지, 부양하면서 위기를 감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자신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임금삭감 반대라는 과제와 맞물려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여성운동 진영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사회서비스 부문의 괜찮은 일자리 창출’ 요구의 위치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서비스가 사회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다수 종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로 제안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따라 보육, 간병, 노인 돌봄과 같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진 것에 대한 대응이자, 사회서비스 부문의 시장화를 통한 이윤 창출, 그리고 저소득층 여성들의 일자리에 대한 요구 관리 등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실제 시행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사업을 보아도, 이 정책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재생산 노동을 전담한다는 성별분업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할당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요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단순히 실업과 일자리 대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전략에 대한 비판을 확산하는 가운데 재생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특히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해고를 반대하는 투쟁과 결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이에 따라 실업과 빈곤이 늘어날수록 가족과 재생산의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여성들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보족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중부담을 감내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위기를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내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 권리로서 사회서비스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일자리 창출을 제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운동이 중요할 텐데,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심리는 매우 위축되어 있고 노동조합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여하한 투쟁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실제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대안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고용 유지를 중심으로 한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위기 전가를 위한 자본의 공세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차이와 분할을 활용하면서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한 축으로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활용되기도 하고, 또 그 분열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세계경제가 대불황의 초입에 놓인 상황에서, 일정 정도 양보하거나 고통을 분담하면 이 위기가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요구를 포괄하는 전국적 투쟁전선의 구축과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형성하고, 위기를 넘어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필수적으로 참조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가사를 전담한다는 성별분업 모델, 가정은 정치의 장소가 아니고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이라는 이데올로기, 여성은 남성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상징을 수용해왔다. 이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운동의 한 주체이기보다는 특수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문으로 취급되었고, 여성노동자들의 고유한 요구는 배제되거나 가장 먼저 포기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성에 대한 배제와 부차화가 지속된다면,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 박탈로 지연시키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 전국적이고 단결된 투쟁을 구축하기란 난망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주체화, 조직화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위기 하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의 생존과 권리의 파괴는 단순히 고용불안과 노동권의 박탈로 환원될 수 없고,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을 매개로 한 여성억압의 구조가 제약하는 여성의 노동권과 여성권을 동시에 사고할 때 진정 여성들의 권리와 해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운동과 분리된 채 여성들만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관점 하에 이 글에서는 경제위기 시 여성노동자들의 운동과 투쟁의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후 경제위기가 전개되는 상황에 맞춰 더욱 구체적인 입장과 제안들을 만들어 가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노조와 노동자운동에서 적극적인 부위로서 경제위기에 맞서는 투쟁을 벌여낼 수 있도록 주체화,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일자리 보전이나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극복을 위해 더욱 좋지 않은 조건을 감내하고 이중부담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삶과 권리 파괴에 맞선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노조와 노동자운동도 지금까지 여성들을 적극적인 주체로 사고하지 못했고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들의 주체화, 조직화는 축소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생존이 파괴되는 상황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사업을 펼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의 일차적인 역할이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며 남성 가장에 비해 부차적인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와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속에서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자신을 조직하고 현실에 맞서기보다는 현실을 감내하고 수용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여성들 스스로가 가족과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등 자신의 권리를 억압하고 제약하는 조건과 구조를 인식하면서 그것을 바꾸는 것이 자기 해방의 과제라는 신념과 이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식화, 조직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촉구하고, 노동자운동 내에 여성들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구조와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전체 운동의 주요한 과제임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서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인 경향이 강화될수록 여성노동자들의 주체화, 조직화는 어려워지고,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도 불가능해진다. 사회의 변혁과 근본적인 대안을 지향하는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실천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여성해방 이념을 수용하고 여성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여성운동과 여성해방 이념의 관점에서 노동자운동의 전략과 목표를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이 꾸준히 제출되고,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 양자의 결합을 추동하기 위한 시도들이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으로, 경제위기 책임 전가에 맞서는 투쟁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악 시도가 여성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사안에 대한 투쟁에 그치지 않고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실천을 통해 제기해야 한다.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잔업특근 축소와 조업중단 등으로 인한 임금 감소에 맞선 임금인상 요구, 실업급여와 사회보장 확대,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등의 요구를 걸고 전체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아가 금융과 초민족자본에 대한 통제 요구와 같이 사회적 투쟁을 제기하면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력을 강화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2009년 세계사회포럼 참가 후기 벨렝(Belem) 세계사회포럼 단상 세계사회포럼은 반(反)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성과로 지난 2001년 처음으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이후, 세계사회운동 세력들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2007년 1월 케냐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은 그 동안 포럼 내부에 잠재해 있던 문제들을 아주 심각한 형태로 드러내면서, 포럼의 정치적 전망과 그것의 의미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착취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할 세계사회포럼에 케냐의 풀뿌리 활동가와 도시 빈민들은 높은 등록비와 조직위원회의 배타적 태도로 참가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였다. 이에 대한 불만은 결국 현장에서 세계사회포럼을 강력히 비판하는 직접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더욱이 거대한 국제시민단체와 북반구의 후원을 받는 현지 NGO들은 막강한 재원을 바탕으로 세계사회포럼의 전체적인 프로그램과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장과 대중운동에 근거한 세계사회포럼의 확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이 과연 아프리카 사회운동을 진전시키고, 세계사회포럼 운동 그 자체에 역동성을 부여했는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나아가 “세계사회포럼이 소통의 ‘공간’(space)이냐 ‘운동으로서의 과정’(process as a movement)이냐”라는 그것의 미래를 둘러싼 전략 토론은 제자리를 맴돌면서, 세계사회포럼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08년 1월 조직된 ‘세계사회포럼 1.26 세계 행동의 날’은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세계사회포럼을 어떻게 다시 활성화시킬 것인가는 2009년 벨렝 세계사회포럼을 앞두고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였다. 벨렝(Belem)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세계사회포럼이 보다 적극적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사실 아마존 지역인 브라질 벨렝이 세계사회포럼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환경’과 ‘원주민 권리’라는 의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계사회포럼을 포르투알레그레 이후 다시 브라질로 유치하기 위한 브라질 단체들의 의도가 개입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벨렝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위기’라는 화두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경제/금융위기, 생태위기,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나아가 ‘문명의 위기’ 등 저마다의 관점에서 위기를 말하고, 그 해법을 찾는데 골몰했다. 특히 각 부문 네트워크들 사이의 공동 토론을 통해, 위기에 대한 세계적 해법을 토론하고 공동 행동 계획을 도출하고자 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세계적 위기가 터지자마자 지배계급들은 G20 정상회담 개최 등 신속한 대응을 모색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뭐했느냐’며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의 느린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긴급한 국제 공동행동, 상호지지/지원 투쟁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특히 3월 28일 G20 정상회담, 12월 UN 기후변화회의 대응 국제공동행동은 대다수 참가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다만,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을 문제의 심각성과 긴급성에 비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벨렝 세계사회포럼은 세계 사회운동들의 공간이자 네트워크로서 자신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한편 2007년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결성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이번 벨렝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조직하여 세계적 위기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대응을 모색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그동안 전통적인 노동조합 운동에서 배제되거나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았던 노동자, 즉 비공식 부문 노동자, 이주노동자, 가내 노동자 등을 조직하고, 세계적 연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 프랑스노동총동맹(CGT), 미국의 ‘세계적 정의를 위한 풀뿌리운동’(Grassroots Global Justice) 등 북반구 조직들과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남아공노총(COSATU), 브라질노총(CUT), 네팔노총(GEFONT), 인도의 새로운노동조합계획(New Trade Union Initiative, NTUI) 등 남반구 조직들이 참가하였다. 동시에 국제금속노련(IMF),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등 국제조직들도 참가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주관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핵심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첫째는 공식/비공식 부문을 망라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벨렝에서 열린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총회에서 제안된 선언은 그 문제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생산 노동뿐만 아니라 재생산 노동까지, 공식부문 뿐만 아니라 비공식부문 노동까지, 종속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노동까지, 노동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갱신하고 확장한다.” 특히 비공식 부문 노동자의 포괄을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단순히 주변화된 빈곤층 혹은 룸펜-프롤레타리아트, 혹은 잘해야 사회복지가 필요한 대상이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희생양으로 간주하기보다, 변화하는 세계적 노동시장에 통합된 일 부문으로 인정하여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조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두 번째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계를 넘어선 수평적이고 평등한 세계적 노동자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남반구뿐만 아니라, 북반구 노동자와 노동시장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남반구와 북반구 노동자들 간의 연대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능한 조건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시켜낼 때 현재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또한 전통적 혹은 공식적 국제노동조합운동이 북반구 노동조합의 강력한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상호간에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 의미의 제3세계주의 혹은 남-남 노동자 연대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세계사회포럼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탄생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그에 맞선 대항의 정치적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탄생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사회포럼의 긍정성을 존중하고, 노동자 운동의 미래는 세계적 정의를 위한 사회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찾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다. 또한 세계사회포럼이 NGO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운동 혹은 대중운동 중심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쟁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의 두 가지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출발하였다. 하나는 공식/비공식 부문을 넘어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건설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남반구/북반구 노동자의 평등하고도 수평적 연대를 존중하는 문제다. 이는 벨렝에서 제안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성명서에 잘 나타나 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공동의 이해, 특히 북반구 노동운동과 신흥 경제권 노동운동간의 공동 이해에 관한 솔직한 토론을 통해 세계적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는데 전념한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또한 공식, 비공식 경제를 망라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 및 그 조직들과의 연대를 건설하는데 전념한다.” 위 두 가지 문제의식 중에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해야 한다는 것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칙적인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전통적 의미의 노동조합운동을 개혁하는 수준에서 위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전통적 노동조합운동의 급진적 전환을 주장하는 것인지는 의견 차이가 있다. 또한 대륙별, 국가별 정치경제적 상황의 차이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기니(Guinee)의 경우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50% 이상이고, 남아프리카의 경우에도 30-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이 북반구 국가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반구 국가들에서는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화’에 맞선 대응이 주요한 의제인데, 이를 넘어서 비공식부문 노동자 조직화까지 확장되기에는 아직 토론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평적이고 평등한 남-북 노동자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점들이 존재했다. 실제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조직한 ‘새로운 투쟁, 새로운 동맹 - 세계적 노동헌장을 위하여’라는 토론회에서, 남아공노총(COSATU)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대응의 예를 들면서, 북반구 노동자들의 ‘민족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남북 노동자연대의 현실적 곤란함을 지적하였다. 북반구 노동조합들이 ‘민족주의적’ 입장을 버리지 않는 한, 남북 노동자연대는 공허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피터 워터만(Peter Waterman)은 세계적 위기 시대에 과연 남반구와 북반구라는 문제 설정과 남반구에 국한된 노동자 연대가 여전히 정치적 유의미성을 지니는지 의문시된다면서, 지금이야 말로 그 경계를 넘어선 세계적 노동자 연대의 실현이 가능하고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참가자와 조직들 사이에 이 쟁점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쟁과 토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속가능한 세계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각국의 투쟁과 실천을 세계적 수준에서 조정해낼 수 있는가, 이미 존재하는 다른 노동자 혹은 사회운동 네트워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지극히 실천적인 쟁점이 남아 있다. 네트워크가 건설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참가자들의 적극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일정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필수적 요소인 ‘공감대’를 넘어선 적극적인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또한 참가 조직들 간의 소통과 공동행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내부를 들여다보면, 적극적 행위자는 이탈리아 사회운동체인 ‘이탈리아를 변혁하자(Transform! Italia)’,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세계적노동전략(Global labor Strategy) 등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 네트워크가 말 그대로 보다 공식/비공식 부문을 포괄하는 세계적 노동자 연대 네트워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위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의 연계 혹은 포섭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위기와 노동자 투쟁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주관한 “세계적 위기 속의 노동자”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유하면서 이를 어떻게 지지/지원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였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역사상 처음으로 8개 노총이 공동으로 1월 29일 공동파업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 투쟁에 약 250십만 명이 참가하였다고 보고했다. 주요한 요구는 임금인상, 노동권 보장, 노동조건 개선, 퇴직노동자 보호,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 확대, 노동자를 위한 저비용 주택 공급 확대 등이었다. 또한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산별교섭 체계를 개악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시도에 맞서 작년 12월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였다. 브라질노총(CUT) 역시 심각한 위기 속에서 임금 삭감 반대, 빈곤층에 대한 지원 확대, 사회보장지출 확대,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G20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고 공유했다. 참가자들은 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스템이 실패했는가를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논리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공유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 자동차 제조업체 등에 대한 구제금융은 ‘실패한 모델’의 지속을 위한 지원에 불과하며,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효과만을 가져올 것이라 비판하였다. 진정한 위기 극복 정책은 ‘자본만을 살리는 구제금융정책’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저임금을 포함하여 임금을 인상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것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경제위기 극복은 환경, 에너지, 식량 등 총체적인 위기에 맞서는 계획과 긴밀히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좋은 일자리 창출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일자리,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일자리 등 환경 친화적 일자리 창출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현 위기의 근원인 국제금융자본 규제 및 국제금융질서 개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Tobin Tax)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급진적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런 점에서 3월 28일로 제안된 G20정상회담에 맞선 국제공동행동 조직화가 다시 한 번 강조되었다. 세계적 위기 국면은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해왔던 요구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며, 보다 급진적인 요구까지도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은행 국유화’에 관한 최근의 논쟁과 흐름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독일 노동운동가가 자국 상황을 두고 “자본은 마르크스를 논하고 있는데, 좌파는 케인즈를 논하고 있다”고 말했듯이, 현재 노동운동이 ‘사회 타협적 노동조합운동’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현 국면이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운동의 대응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경제위기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지 말라!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회주의에 기초한 대안이 긴요하다. 우리, 전 세계 사회운동은 아마존 벨렝에서 열린 8차 사회운동포럼을 계기로 한데 모였다. 포럼이 열린 아마존에서 민중들은 자연, 토지, 문화 강탈 시도에 맞서 오랫동안 저항해왔다. 이곳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운동과 토착민운동은 지난 10여 년 동안 힘을 모아 자본주의 체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급진적인 사회적 투쟁의 결과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던 여러 정부가 물러났고, 경제의 핵심부문의 국유화나 민주적인 헌법 개혁과 같은 여러 긍정적인 개혁을 추진해 온 정부들은 강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은 이 정부들이 채택한 긍정적인 조치를 지지하면서도 이들 정부를 거리를 두고 비판해오며 적절하게 대응해왔다. 이런 경험은 위기의 책임을 피억압 민중에게 전가하는 각국 정부, 기업, 은행의 정책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전 세계 사회운동은 현재 역사적인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국제적인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러 면에서 인류에 재앙적이다. 식량, 금융, 경제, 기후, 에너지, 이주, 그리고 문명 자체가 위기에 빠져 있으며, 국제질서와 정치구조 역시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적 위기는 자본주의 체계의 직접적인 결과다. 따라서 체제 내에서는 해법을 찾을 수가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 취해진 모든 조치는 전략적 경제 부문, 공공 서비스, 자연자원과 에너지자원에 기초를 두면서 생명을 상품화하고 노동과 자연자원을 착취하는 한편 자원을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노동자로부터 자본가에게 이전하는 데 바탕을 둔 현 체계의 유지를 위해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존 체계는 착취, 경쟁, 집단적 이해의 훼손을 무릅쓴 사적 이익의 추구, 소수의 부유한 이들에 의한 막대한 부의 축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유혈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외국인혐오증, 인종주의, 종교근본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사회운동의 범죄화를 강화한다. 현재의 위기를 배경으로 민중의 권리는 체계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야만적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 비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며 민중의 권리에 대한 부정의 상징이다. 이 추악한 범죄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사회운동은 전 세계 민중의 억압에 맞선 모든 행동, 특히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을 열렬하게 지지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제의 근원에 맞서야 하며 가능한 신속하게 자본주의 체계와 가부장적 지배를 철폐할 급진적인 대안의 구축을 향해 진전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정치적 자유에 입각한 민주적 참여를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고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분리 불가능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시민권,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적 협약이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전망 하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러 긴급한 조치의 실행을 촉구하는 가장 대중적인 투쟁이 성사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 은행 부문을 무상으로 국유화하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감시되도록 한다. -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 식량주권과 에너지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 - 전쟁중단, 점령군 철수, 해외군사기지폐쇄 - 민중의 주권과 자율성, 자결권 인정 - 모두에게 토지, 영토, 노동, 교육, 건강에 대한 권리 보장 - 의사소통 수단, 지식에 대한 접근의 민주화 21세기 여성운동, 환경운동, 사회운동이 추진하는 사회적 해방의 과정은 사회를 생산수단, 소통과 서비스 수단의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 사회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는 즉 공적이고 협력적이며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자산과 같이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는 소유형태를 지지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런 대안은 반드시 여성해방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인류의 절반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사회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바탕에 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토착민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기여를 인정하면서, 각자가 스스로, 다른 이들과, 전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한다. 우리 사회운동은 전 세계적 규모의 해방을 위한 제안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대중 투쟁을 통해서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풀뿌리부터 의식을 고양하고 동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회운동은 전 세계적인 운동의 결집을 이루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억압과 착취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운동의 결집을 지지함으로써 투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을 위해 노력한다. ○ 3월 28일~4월 4일: 자본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 공동행동 주간 - 3월 20일 반-G20 공동행동 - 3월 30일 전쟁과 위기에 반대하는 공동행동 - 3월 30일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를 위해 이스라엘 보이콧, 투자철수, 제재를 촉구하는 날 - 4월 4일 나토 60주년 즈음 시위 ○ 1년 내내 다음의 기회를 활용하여 국제적인 행동을 조직한다.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 4월 17일 식량주권의 날 - 5월 1일 세계 노동절 - 10월 12일 원주민의 날 - G8 정상회담(6월,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 기후 정상회의(12월 덴마크 코펜하겐) - 미주정상회의(트리니다드 앤 토바고) 위와 같은 요구와 투쟁 제안을 통해 우리는 급진적이고 해방지향적인 해법으로 위기에 대응할 것이다. 2009년 2월 1일, 브라질 벨렝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노조 상층부에서는 양 노총 재통합이 추진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임기 동안 단일노총을 만들어 상대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내용이 미국전역에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일반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층 조합원들도 이러한 정황이나 함의를 거의 모른다.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지지에 의존해왔다. 사실 노동자의 지지는 모든 연방, 주, 지역 선거에서 대개 당연하게 여겨진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과 미국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대통령 선거출마 지원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4억 5천 여 달러의 기금을 투자하여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켰다. 양 노총과 산하 노조들은 24개 주에 걸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를 위한 캠페인에 25만여 명의 조합원들을 동원하였다. 조합원들은 전화 연락을 통해 1,300만 투표자들을 조직했다. 인수 기간 동안과 취임 이후 버락 오바마 후임 정부는 정치 의제를 구체화하고 정책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 및 세계 경제 위기 문제를 다루기 위한 팀을 꾸렸다. 다시 한 번 닥쳐올지 모르는 대불황에서 미국을 구해낼 계획을 고안하는 것은 금융계 및 산업계 “지도인사”들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자리는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가게나 상가에서 소매업을 하거나, 혹은 서비스업을 하거나, 제조업을 하는 수백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한다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독재를 향해 발언해야 할 것이다. 현재 정치의제를 결정짓고 있는 것은 오직 월스트리트, 은행, 거대 자동차기업과 부동산업체의 목소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고 또 상충되는 이해를 가질 때가 많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 건강보험, 연금, 작업장 안전, 고용 안정과 존엄성을 희생시키는 데는 뜻을 같이 했다.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응 혹은 무대응,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처절한 상황은 최근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1세기 들어서면서 미국의 노동자운동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 성장하던 보수주의 세력은 1981년 공화당의 로날드 레이건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이후 8년 동안 연방정부는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지 몇 개월 후 항공교통관제사노동조합(PATCO)은 파업에 돌입하여 전 세계 항공을 마비시키고 미국 내 항공 운송을 중단시켰다. 파업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낮아지고 다른 노동조합의 연대도 사그러들자 레이건 정부는 PATCO에 치명타를 날렸다. 레이건 정부는 2기에 걸친 임기 동안 노동법과 안전법을 시행하지 않았고 전국 노동관계위원회의 친 기업적 마인드를 포함한 반노동자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원만했던 정부와 노동자의 관계는 깨지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단결의 기운을 높이고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분열하여 내리막길로 치달으면서 민주당에 포섭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노동조합은 수동적인 파트너로서 민주당과 ‘정략결혼’과 같은 관계를 맺었는데 노동조합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민주당은 노동조합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관계였다. 1992년에는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공화당의 보수적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서 여겨졌던 클린턴 정부는 그러나 공화당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클린턴 임기 이후 “자유 무역” 정책이 시행되고 나프타(NAFTA)가 통과되었다. 이로써 미국 기업들은 제3세계로 대대적으로 이동했고 국내에서는 수십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다른 “사회정의운동”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은 점점 자기 잇속만 차리는 거대한 관료집단이 되어갔다. 클린턴 집권 동안 노동조합은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운동 내부적으로 북미규모 노조들과 그에 가맹된 지역지부들은 운동성과 연대의 원칙을 포기하고 미국 특유의 기업적 관행을 재빠르게 수용했다. 노동자 연대는 부패, 경쟁, 횡령으로 대체되었고 노조 관료 내에는 부와 권력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제거되지 못한 채 노조 내의 주된 경향으로 남았다. 노조의 위계 내의 끓어오르는 불화는 2005년 AFL-CIO의 분할을 가져왔다. 갈등의 중심에는 노총 관료들의 안위를 지키려는 태도가 있었다. 그것은 AFL-CIO의 조직율이 민간부문 노동자의 8%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축소되었다는 사실과 북미규모 노조들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우선적 과제로 삼고자 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AFL-CIO가 분할되면서 승리혁신동맹이 창립되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소속 노조들과 함께 힘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승리혁신동맹의 평조합원과 소속 노조들의 좋은 의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별 영향력이 없었다. 이는 기업적이고 관료적인 욕심이 이 계획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노골적인 예는 아마 승리혁신동맹에 가입된 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큰 서비스노조국제연맹(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S.E.I.U.)의 예일 것이다. 앤디 스턴이 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비스노조국제연맹은 내부적으로 가맹 지역노조의 부정부패와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으로 진통을 겪었다. 남캘리포니아의 6434번 지역지부의 위원장인 타이런 프리만은 아내가 운영하는 업체와 60만 달러 규모의 사업계약을 체결했다. 또 지부에서 그의 장모에게 자신의 아이를 포함한 노조간부의 아이들을 보육하는 댓가로 매달 8,000달러를 지불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사퇴하였다. 프리만은 또한 하와이에서의 그의 결혼식을 위해 노조 기금에서 8,000달러를 썼다. 프리만 집행부의 사무총장이었다가 앤디 스턴의 추천으로 SEIU 미시건 지부 보건의료지회장을 맡았던 릭만 잭슨은 또 다른 사례로 들 수 있다. 잭슨은 미시건으로 옮긴 후에도 프리만의 캘리포니아 지역지부에서 추가 임금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퇴출당했다. 또한 잭슨은 노조에서 만든 주택 공급단체에서 매달 2,500달러의 월세를 받았다. 그의 퇴출 이후 앤디 스턴은 잭슨에게 캐나다의 SEIU 관련 단체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러한 부정부패는 SEIU 관료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미국 내 지도력은 노조 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을 희석시켰다. 1월 말 SEIU는 캘리포니아의 유나이티드헬스케어 노조(United Health Care Workers, U.H.W.) 지역지부를 장악했다. UHW는 SEIU내에서 지금까지 가장 빠르게 성장해온 풀뿌리 운동 지부였다. 이 지부는 민주노조의 모범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샐 로셀리 지부장은 65,000명의 간호조무사 조합원들을 강제로 다른 지부로 편재하려는 것에 맞서, 그리고 다른 조직 전략에 맞서 SEIU 지도부에 대항했다. SEIU의 이러한 관행은 미국 내 노동운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인 푸에르토리코에서 SEIU는 3년 이상 고용계약서가 없었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에서 정부의 편에 섰다. 2008년 초 푸에르토리코 교사노조(the Federation de Maestros de Puerto Rico, F.M.P.R.)은 막다른 골목 끝에 파업을 결행했다. SEIU는 그 뒤에서 아세베도 빌라 푸에르토리코 지사와 협상하여 교사노조의 설립인가를 취소하도록 했다. SEIU는 노조기금에서 수백만 달러를 지사와 그의 정당에게 주었다. 그 목적은 몇 년 전 여당에 의해 만들어진 SEIU 산하의 교사 노조를 교사들의 유일한 교섭 기구로 만들고 노동 분쟁을 교사들에게 불리한 협약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푸에르토리코의 법원이 교사노조를 불법화하자 SEIU는 이 노조의 조합원들을 흡수하고자 했다. 이에 2008년 10월 푸에르토리코의 교사들은 SEIU에 의한 교사노조의 장악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한편 부정부패로 기소당했고 현재 재판 중에 있는 아세베도 빌라 지사는 11월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이러한 행태는 SEIU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승리혁신동맹의 묵인에 의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그러한 방식으로 이끌어왔던 앤디 스턴이 오바마 정부에 의해 노동부 장관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노동자 조직의 주된 전략은 오바마가 그의 임기 첫 달에 노동자자유선택법 (Emplolyment Free Choice Act, E.F.C.A)에 서명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고용계약서를 받는 과정이 극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기대만으로 경제위기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현재 노조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작업장 내에서 선거를 실시하기 위해서 30%의 노동자로부터 위임장을 받아야 한다. 기업주가 반(反) 노조 전문가를 고용하여 노동자들을 움직이기도 하는 등 작업장 내에서 유세를 할 수 있는 반면 노조는 작업장 외에서만 선거유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자유선택법이 통과되면 전국노동관계위원회는 사업장 내 고용된 노동자 대부분이 위임장에 서명할 경우 노조를 독자적인 교섭 기구로 승인해준다. (즉, 노조 설립 절차가 간소화된다.) 그리고 사용자가 성실히 교섭에 임하지 않을 경우나 90일 안에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위원회는 중재에 들어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대선 전 상원의원이었을 당시 노동자자유선택법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자유선택법은 선거유세 당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것은 이 법이 노동계 외부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심한 경기침체/불황이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일 때 이 법안이 오바마 정부의 의제로 올라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역사상 최대위기에 처한 노동자운동의 입장에서 노동자자유선택법은 만일 통과되어 시행된다면 이 곤경에 대한 해답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승리혁신동맹은 지금까지 “두고 보자”는 태도로 노동자자유선택법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의회 로비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국면에서 노동자 조직의 태도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는 과거 정치적 행태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조직노동자들보다는 정치인들이 정치의제를 결정하는 관행에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인들은 과거 누렸던 생활수준을 앞으로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 명의 생계부양자가 한 가족을 책임질 수 없다. 가족 내 모든 성원이 고용되어야 가족의 생계를 감당할 수 있다. 2008년에만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뿐 아니라 건강 보험과 퇴직 연금이 손실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노동조합은 지금껏 이렇게 악화되는 상황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미국이 심각한 경기침체/불황에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주문했다. 정책 입안 주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면 누가 배부르고 누가 굶주릴지는 뻔하다. 수십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의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사례로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U.A.W.)를 살펴본다면 경제위기 해결책의 고통을 떠안는 것은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자유선택법을 노동법으로 입안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전전을 조직하고 그것을 노동조합에 기꺼이 미래를 걸겠다는 수천만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자기 조직 내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미국 노동자들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법안에 관한 평조합원 교육사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개발한다면,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합원 뿐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아우르는 미국의 전체 노동자 빈민을 마주하고 있는 이 사안에 대한 정치 담론을 지지한다면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노조가 대중 속에서 그러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조합원들을 결집시키고 미조직 대중들을 조직한다면 정치적 의사 결정상의 권력 관계는 바뀔 것이다. 정부, 금융, 기업계 거물들은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운동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역사 속에서 사례와 시사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들은 1930년 대불황 이후 불평등을 없애고 실질적으로 미국인들의 생활조건을 향상시켰던 노동자운동의 역할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오늘날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노동조합의 대응의 예를 살펴봐야 한다.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들은 미국 노동조합이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주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