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회적 합의주의와 노동운동 송강현주 (노동차장) 영국, 사회적 합의주의 과정을 개괄하며 영국은 서구 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의 형태 중 가장 약한 형태로 간주된다. 역사적으로 영국에서의 사회적 파트너십은 거의 부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때때로 산업과 경제 사안을 넘어서는 다양한 합동의 형태를 기획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특히 세계대전의 상황은 삼자간의 정책협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촉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보수-노동 내각(Conservative and Labour administrations)은 경제번영과 사회평화를 위한다 는 명목으로 영구적인 사회적 파트너십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패로 끝나고 대처주의의 (노동배제, 탄압적인) 신자유주의가 성공하면서, 영국에서 사회적 파트너십은 역사적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리고 영국의 노동운동은 보수당 80년대 이후로 암흑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글은 영국의 사회적 합의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현재 TUC(Trade Union Congress;노동조합회의)의 전략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으로, 현재 남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문제와 노동운동의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1939년까지의 사회적 파트너쉽 ; 전쟁과 국가의 계획 영국의 노사관계에서, 국가가 관계된 화해와 조정의 메커니즘이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나 사용자 양측의 어느 편에 의해서도 거의 환영받지 못했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역할에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법으로 보장된 자유와 자유로운 단체협상을 위한 권리를 보존하고자 했다. 반면에 노동조합에 대항할 수 있는 공격 능력을 보유하고자 했던 사용자에게 그들의 힘을 제한하거나 경영적 특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불안한 것이었다. 국가가 관련된 첫번째 사례는 '전면전(total war)'에서 요구되던 사항이, 관행적인 사회적 파트너들간의 밀접한 평화 시기의 상황을 변형시킨 것이다. 이러한 변형의 촉매제는 1915년의 군수품(munition) 위기였는데 심각한 노사불안이 수반되었다. 군수품 산업의 조합과 사용자 사이에서 동의가 이루어져야 했으며, 정부의 통제가 석탄과 선박에까지 확장되어져야만 했고, 정부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의 자리가 마련되어졌다. 1919년에는 사용자와 노동조합 대표 양자로 구성된 국가산업회의(National Industrial Conference) 안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식 해결책이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 제시되었으나, 이러한 계획은 정책협의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의 부족으로 인하여 희생되고 1921년 NIC는 해체되고 말았다. 1930년에는 전반적으로 노동조합과 사용자들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정부가 그들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을 시도하지 않았다. 세계대전(Great War)이 국가에 의하여 조율되고 주선된 노사간의 협의와 협력을 유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사정 3자에게 이러한 발전은 일단 평화가 복구하면 지속되지 않을 임시적인 비상조치로 사고되었을 뿐이었다. 1939 62년까지의 사회적 파트너십 ; 전쟁과 재건 제2차 세계대전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사회적 파트너십의 외연적인 시스템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경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고, 그 결과는 국가 자체의 존재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중앙의 경영과 지시가 자유시장을 대체해 버렸다. 국가는 생산적인 능력과 인력자원을 군사와 경제 목적을 위한 방향으로 조정한 상황에서 사용자와 노동조합간의 협상, 협약, 합의에 나섰다. 또한 그 시기는 산업생산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노동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목적을 둔 양자간, 그리고 삼자간의 기구 운영이 번영되었던 시기였다. 새로운 행정부(생산, 공급, 식료품, 연료, 그리고 전력)는 확대된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서는 노동부였고 1940년 5월 어니스트 베빈(Ernest Bevin){{) 베빈(Bevin)은 소규모이고 내적으로 응집된 공동협의위원회 (Joint Consultative Committee)를 설립했고, 매우 역동적이고 건설적인 정책을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노동조합의 대표로서 노동조합 운동의 전폭적 지지를 획득했던 사람이었다. }}이 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그는 파업 행동을 타개하기 위한 강압보다는 합의의 방법이 성공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임금억제를 호소하는 것이 법정 임금 제한을 강요하는 것보다 더욱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TUC는 1944년 사용자와 노동조합주의자들이 함께 모여 정부에 조언할 수 있도록 한 국가산업위원회를 통하여 국가의 경제생활에 대한 실제적인 통제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시기의 사회적 파트너십을 일시적인 해결책 이상으로 보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세계대전이라는 외부의 요구에 따라, 영국은 처음으로 영국의 상대적인 경제 하강을 역전시키기 위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산업 불안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초점이 맞추어진 일련의 사회적 파트너십 전략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62 79년까지의 사회적 파트너십 ; 국가발전위원회 1960년대와 1970년대 기간 동안 영국의 정부는 TUC와 사용자들의 대표 조직(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 : CBI)과 함께 사회적 파트너십을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사회적 파트너십의 첫 번째 실험은 1962년 보수당 정부의 국가경제발전위원회(National Economic Development Council: NEDC)로 시작되었다. 국가경제발전위원회는 외연적으로는 사용자, 노동조합, 그리고 국가로부터의 대표를 가지고 있는 협의체(tripartite body)였다. 위원회의 임무는 생산성의 목표를 설정하고 보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 기관은 특정 산업을 위해 만들어진 경제 발전위원회들(Economic Development Councils)의 창설을 이끌어 냈다. 결국 국가소득위원회(National Incomes Commission: NIC)는 임금 논쟁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파트너십이라는 측면에서, 1970년대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시도가 반복되는 양상이었다. 1972년 경기침체가 닥쳐왔을 때, 헤스 정부는 모든 사회적 파트너들은 경제번영을 확신하기 위해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 계획의 미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1974년 2월 헤스 정부가 붕괴되었을 때,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경제 계획과 사회적 파트너십 모두에 등을 돌렸다. 초기 TUC는 임금억제를 받아들였지만 1977년 가을에 자유로운 단체협상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아 졌다. 1978 79년의 겨울에 상호계약의 마지막 흔적은 격화된 산업분쟁으로 사라지고 쇠퇴했으며, 1979년 선거에서 '사회적 파트너십'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1979~1997년; 보수당 정부의 상업주의 원칙 1979 97년까지의 보수당 정부는 경제와 산업과 관련된 정책결정 과정에서 오로지 시장의 작동원리나 또는 상업주의 원칙 (commercial criteria)에 기반하여 결정되도록 하기 위해 노동조합과의 관련성을 점차로 줄여 나갔다. 대처 정부는 전후 지속되어 온 노사간의 합의를 철저히 부인하고 노조를 탐욕적이고 무책임한 독점집단으로 규정하여 노동조합의 규제에 나섰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시작이었다.{{) 보수당 정부는 일련의 새로운 법률 도입을 통해 노조세력의 약화를 꾀하였는데 여기에는 사용주의 노조에 대한 법률적 인정의무의 철폐, 클로즈드 숍(closed shop: 노조에 가입해야만 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 제도)의 금지, 노동쟁의시 노조의 면책특권 제한, 불법파업시 노조 기금의 압수, 파업시 조합원의 사전 비밀투표 의무화, 피케팅(picketing: 노동쟁의 시 사업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면서 파업 불참자의 사업장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제한 강화, 노조의 업무·재정에 대한 정부 감사,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 권리의 강화, 노조에 대한 노조원 개인의 권리 보호, 조합비 체크오프제(check-off제: 임금에서 조합비를 일괄 공제하여 조합에 주는 제도) 철폐, 최저임금제 철폐, 불공정 해고 규제의 완화 등 광범한 분야에 걸친 것이었다. }} 따라서 조직화된 노동세력이 더 이상 사회적 파트너로 보일 수 없게 되었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영국의 사회적 파트너십의 거부에 관한 가장 명확한 상징은 1992년 국가경제발전위원회(National Economic Development Council : NEDC)의 폐지와 그 해 4월 보수당의 4회 연속된 선거에서의 승리였다. 다양한 삼자체에서 사용자, 사업가, 혹은 다른 사적 부문의 대표체들은 여전히 구성원에 들어 있는 반면 노동조합 대표는 감소하였다. 보수당 정부는 또한 장관들과 TUC 사이의 접촉의 기회를 줄여나가는 것을 주도했다. 보수당 장관들이 TUC를 만나고 있을 경우에도 예외없이 정부의 결정과 목적에 대하여 협의하기보다는 통보되어졌다. 한편 1980년대 후반 주된 야당이었던 노동당은 1983년과 1987년 선거에서의 심각한 패배 후 우파 성향으로 꾸준히 움직였다. 지난 10년 동안 노동당은 노동조합과의 연계를 느슨하게 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는 1997년 노동당의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별다른 협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블레어 정부는 노동정책에 있어서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 확대를 추구하는 반면, TUC가 주장하는 최저근로기준 설정이나 노조의 권리 강화 등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공공부문의 임금억제정책을 계속하고 있으며 완전고용정책에 대한 지지도 철회하였다. }} 한편 TUC의 1997년 연례회의는 '노조, 사용자, 정부 사이의 사회적 파트너십의 원칙'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승인하였다. 결과적으로 TUC는 영국 내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보수당 아래에서 했던 것보다는 정부 장관들과 좀더 정기적인 교류를 누렸지만, 그것들은 진정한 사회적 파트너십에는 못 미치는 것이었다. 오히려 블레어 정부 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사용자 주도 파트너십에서의 실험임이 주장된다. 블레어 정부는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 그리고 가장 명백히 정부와 사적 분야사이, 그리고 사업장에서의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파트너십을 강조한다. 파트너십의 이 같은 방법들 중 어느 것도 노동조합에게 국가적인 수준의 경제정책 결정에서의 역할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업장내 파트너십에 대한 옹호는 경영자의 경영권이 신성불가침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파트너십'은 경영자가 그 계획과 정책을 사업장에 더 잘 알리는 것과 관련된다. 자본과 노동이 전통적으로 국가에 대해서 품어 온 불신들은 영국 사회 내에서의 자유적인 자유방임 가치에 대한 좀더 넓은 지지의 일부분으로 보여질 수 있고, 이것은 또한 영국 안에서의 사회적 파트너십을 불리하게 만들어 왔다. 영국의 전통적 단체교섭 ; 비공식적, 분권적, 자율적 영국은 독일의 산업발전이 아직 시작하기 전에 이미 완전히 산업화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국경제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쇠퇴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륙의 국가들과 달리 영국의 산업은 전쟁 이후에 재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영국의 산업은 파괴되지 않았으므로). 또 다른 이유는 기술혁신에 대한 노동조합의 부정적 태도인데, 이러한 조합 측의 태도는 영국에서 노사관계의 본질을 이룬다. 영국의 중심적인 노동조합연합회는 노동조합회의(TUC; Trade Union Congress)이다. TUC에는 유럽의 어떤 다른 노동조합연합회들보다도 더 많은 대규모 노동조합 회원들이 가담하고 있는데, 이는 직종별 노동조합(occupational unions)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데 기인한다.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는 오래된 조직유형인 장인노동조합(craft unions)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직업별 노동조합은 유럽 대륙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이러한 장인노동조합들은 한 직업 내에 종사하는 숙련 근로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는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미숙련근로자들이 제외되었다. 이들 노동조합은 일방적으로 또는 사용자와의 계약을 통하여 임금률을 정하고, 미숙련의 신규근로자들과 도제들이 동일직종으로 유입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노동조건을 개선시켰다. 필요할 경우 새로운 기술들의 도입과 다른 부류의 근로자들의 고용에 반대한다. 장인노동조합의 주요 우선순위는 이동성과 재교육의 수용을 의미하는 고용안전이 아니라 직업안전, 즉 자신들의 직업을 유지한다는 보장이었다. 영국모델에서 각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숙련 근로자들이나 미 숙련 근로자들을 대표하여 개별 사용자들이나 사용자 연합들과 교섭했다. 이는 다차원적인 사용자교섭(multi-employer bargaining)일 수 있지만, 그 교섭의 결과들은 산별 노동력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다차원적인 사용자 교섭과 기업 교섭에서 사용자들은 많은 노동조합들과 교섭해야 했는데, 각 노동조합들은 근로자들의 여러 분파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에서의 교섭패턴과 결과들의 다양성은 유럽 대륙에서보다 더 크다. 대부분의 실제적인 노동조건들은 기업내의 노동조합-사용자 계약에 맡겨졌다. 이러한 절차들은 기업교섭에서 제기되는 갈등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주요교섭차원으로서의 기업이나 작업장의 지위를 암묵적으로 남겨 놓는다. 기업내의 교섭은 다소 자율적인 유니온 샵 직장위원(stewards)과 여러 등급의 사용자들간에 거의 지속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TUC의 '새 출발'운동과 '새 노조'운동{{) 1993년부터 TUC의 새로운 총서기 존 몽크스(John Monks)에 의해 주도 }} 80년대 이후 영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쇠퇴일로를 걸어 왔다. 1979년 집권한 대처 보수당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과 노조에 대한 공격으로 노동조합은 조직률의 감소, 전투성의 상실, 정치적 발언권의 상실을 겪었으며, 그 결과 영국 사회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노동조합의 힘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현장에 토대를 둔 노동운동은 약화되고, 그 대신 기업별 노사협력주의가 나타났다. 직무경계의 소멸, 다기능공화, 파트타임 노동자 및 파견노동자의 증가, 업적급 및 이윤분배제의 도입, 변형근로시간제 및 교대제의 변경 등 경영자 측에 유리한 노동관행이 잇달아 도입되었다. 하청·임시노동자의 광범한 사용에 의해 고용불안은 한층 심해졌다. 노동조합은 정부와의 일체의 대화통로가 끊긴 채 정치적 시민권을 잃어버렸다. TUC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93년 '새 출발' 운동과 '새 노조'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의 내용은 먼저 TUC가 조합원의 좁은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보다는 넓은 범위에 걸친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최근 TUC의 캠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의 예를 들면 파트타임 노동자의 권리, 최저고용기준, 전국단일 최저임금제, 실업문제의 해결, 인종차별문제, 연금문제 등이 있다. 또 새 출발 운동의 핵심과제 중 하나는 노조 조직률의 향상을 위한 조직화 사업이다. 주요 대상은 여성, 청년층이며 특히 새로운 산업 및 불안정한 직종에 있는 노동자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 외에도 TUC는 각종 정당, 사용주, 단체와의 연대 및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언론 홍보작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TUC는 새 출발 운동의 성과를 스스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새 출발 운동은 회원노조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완전고용과 근로조건의 질적 개선, 그리고 노동자 권리의 보장을 가져오는 한편, 사용주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노사공동목표인 경쟁력 강화 및 작업장에서의 공정성을 획득하는 등 커다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 내 비판적 세력들은 사회적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TUC의 새 출발 운동을 온건노선(moderation)으로 규정하면서 새 출발 운동이 노사간 이해관계의 갈등적 측면을 축소하고 노사공통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온건노선은 파업 등 단체행동을 반대하고, 노사협의회 등 단체교섭기구 외의 통로를 지지하며, 파트너십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노조원의 동원보다는 사용주에 의존하는 경향을 낳는다. 그 결과 고용보장, 노조영향력 증대 등 새 출발 운동이 약속한 것들은 지켜지지 않은 채 오히려 노동자의 요구를 사용자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고 노조의 영향력을 줄여 노조를 약체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온건노선을 버리고 전투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파트너십 전략의 한계 영국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반한 계획들은 전쟁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항상 평화시기가 오면 거두어져 버렸다. 전쟁 시기의 특수하고, 일시적인 조건 이외에, 1964 70년까지 윌슨 정부에 의해 대국 모의의 사회적 파트너십이 한때 시도되었다. 영국 내에서 '사회적 파트너들' 각각은 상당한 정도의 단기간주의 (short-termism)에 의해서 특성화되고, 노동조합은 항상 본래적으로 업무조건과 업무환경에 대해 사용자들과의 협상을 통해서 사업장에서의 그 구성원들의 즉각적이고 물질적인 이해관계와 관계되어 왔다. 순차적으로 이것은 기본적으로 계급의 위치와 정치적인 소속보다는 직업과 산업에 기초한 회원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 사이에서 상당한 파벌주의를 촉진시켰다. 이것은 분권화된 형태의 단체교섭을 유지시키고 다른 유럽사회에 비하여 산별협약이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으며, 노동운동의 힘을 단결시키지 못하고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처를 중심으로 한 폭압적인 신자유주의 재편에 TUC로 대표되는 영국의 노동운동은 약해지고 말았다. TUC의 새 출발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하에서 쇠퇴를 경험한 노동조합이 채택한 노동조합 전략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의해 위축당한 영국 노동조합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분파적 이익을 넘어 전 계급의 이해를 위한 노동운동으로 거듭나려는 조직화와 캠페인 등의 새로운 움직임은 현재 IMF 위기국면 하에서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전략과 노동정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한국의 노동조합들에게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TUC는 단일하게 조직된 사용자 연합이 미비하고 사용자들이 노조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나 EU 차원의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노동당 정부의 성격변화라는 상황과 사용주와의 공동이해관계를 강조하는 TUC의 새 출발 운동이 추구하는 사회적 파트너십 전략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하겠다. PSSP
독일 사례를 통해 본 사회적 합의주의 이규철(노동차장) 1. 他山之石 독일은 노사간의 공동의사결정체계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는 나라다. 이는 한국처럼 몇 년간의 투쟁과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독일 노동운동의 긴 역사만큼의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과거를 되돌아 보라 했다. 사회적 합의주의가 노동운동을 휩쓸고 있는 지금, 독일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재 우리의 상황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자. 2.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 독일에서 형성된 노사 공동의사결정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를 먼저 간단히 살펴봐야 한다. 독일의 노사관계라는 것이 독특하고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를 몇 시기로 나누어 특징적인 부분들을 검토해보자. 1시기: 독일 노동운동의 태동(1840-1918) 이 시기는 독일에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등장하면서 노동운동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1844년 슐레지엔 방적공들의 파업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이후 1860년대부터 위로부터의 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되면서 독일에서는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시작하고 이념적으로도 자유주의, 라살레주의 등으로 분화된다. 그러나 1871년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합하고 군국주의적 정책을 펼치면서 '사회주의자 탄압법'으로 인해 독일 노동운동은 큰 시련을 맞게 된다{{) 비스마르크 정권이 도입한 사회주의자 처벌법은 모든 노동자조직과 노동자언론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비스마르크 정권은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을 국가적으로 통합하고자 한다. }}. 그러나 이런 탄압에도 독일 노동운동은 의회에 13명을 진출시키는 등 영향력을 점점 강화한다. 결국 1890년 사회주의자탄압법이 폐지되고 난 후 30만 명 이상의 조합원들을 기반으로 '독일 노동조합 중앙위원회'가 설립되어 이른바 '자유노조'(Freie Gewerkschaften)가 탄생했다. 자유노조는 아직 산별이라기보다는 직업별 조직의 성격이 강했으며 조합원 권익신장, 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 등을 놓고 단체협약을 체결해나갔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 과정에서 독일 사민당 다수파가 전쟁참여를 지지하면서 자유노조도 민족적 이해가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는 체제 자체의 변화보다는 체제 내 개선을 지향했던 자유노조의 성향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의 독일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의 본격적 시작과 아울러 투쟁 속에 형성되었으나 내부 분열과 이념적 한계-체제 변혁에 대한 명확한 상의 부재-에 의해 경향적으로 체제에 통합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시기: 11월 혁명부터 바이마르 공화국까지(1918-1933) 1918년 독일 노동운동은 11월 혁명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11월 혁명과정에서 북부독일의 키일해병들의 반란과 뮌헨 혁명, 베를린의 투쟁 등을 통해 노동자, 농민 병사를 아우르는 평의회가 독일 곳곳에 설치되었으며, 이런 투쟁을 통해 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이행한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평의회 운동을 주도했던 급진적 세력에 의해 건설된 것이 아니라 개량주의 세력의 타협과 협상의 산물이었다. 이는 1918년 11월 협정{{) 11월 협정은 독일 노사관계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turning point)을 이룬다. 그것은 이 협정이 기존의 전제적인 노사관계를 유지시켜 왔던 구조를 해체시키고 집단적 노동관계에 입각한 새로운 틀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11월 협정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노동조합'의 공식적 인정과 남여노동자의 '단결권'을 합법적으로 보장. ② 회사조합(어용노조)에 대한 원조를 중지할 것. ③ 구체적 노동조건을 '단체협약'으로 결정할 것. ④ '노사동수'로 된 분쟁조정위원회의 설치를 협약에 포함할 것. ⑤ 근로자 50명 이상의 기업에 '노동자위원회'를 설치할 것. ⑥ 직장알선을 노사공동으로 관리할 것. ⑦ 1일 '8시간 노동제'를 실시. ⑧ 이상의 협정실시 및 사후문제의 협의기관으로 '노사동수'의 중앙위원회를 설치함. 사실 11월 협정은 내용적으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문제는 이런 협정이 임시방편적인 것이었으며 불안정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을 통해 명징하게 드러난다. 전쟁과 자본주의 자체에 저항하는 혁명적 대중들에 대해 부르주아는 개량적인 사민당 다수파와 노조지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건설하게 한 것이다. 이런 태생적 한계속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여전히 혁명적이었던 평의회운동{{) 1919년 2월과 4월 루르지역 탄광노동자들에 의한 총파업, 3월 베를린 노동자들의 총파업, 4월 뮌헨의 '레테공화국' 선포와 내전의 발생(노동자 약 1천 명 정도 살해됨) 등 }}을 체제내화한다. 1920년 제정된 '노동자평의회법'이 그것인데 노사 공동의사결정 등을 명문화하기는 했으나 평의회의 파업권을 부정하고 노사의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할 의무를 부과하는 등 그 한계는 명확한 것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혁명적 대중운동을 체제내화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지지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찌당을 음양으로 지원해 혁명적 대중과의 세력균형을 이루려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결국 나찌당을 키워주는 결과를 나았으며 결국 나찌당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1933년 붕괴된다. 이 시기 독일에서는 분업화, 단순작업의 확대 등 테일러리즘이 본격화되는 생산의 합리화가 시작된다. 이에 대해 사민당 다수파와 노조지도자들은 이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생산합리화가 사회 진보로 이루어질 거라는 생산력 주의-하고, 이 과정에서 평의회운동은 패퇴하고 만다. 이를 통해 독일 자본주의는 1929년 공황까지 상대적 안정기를 유지하고, 노동운동은 체제 자체에 대한 정치투쟁에서 분배를 위한 경제투쟁으로 경도된다. 3시기: 나찌 시대(1933-1945) 나찌가 권력을 잡았던 이 시기는 독일 노동운동의 암흑기다. 집권 후 4개월이 안되어 대부분의 노조와 운동조직이 파괴되고 그동안의 제도적 성과물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모든 저항운동은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는 포디즘적 발전체계의 기초가 형성되어 1950년대 비약적 발전의 기반을 갖추게 된다. 4시기: 본격적 산별체계의 시작(1945-1968) 2차대전 후 독일 노동운동은 본격적 산별노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광범위한 연대를 위해, 또 한편으로는 나찌즘의 재발호를 막기위한 연합국의 이해관계속에 16개 산별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독일노동조합총연맹이 1949년 결성된다{{) 독일 산별노조의 3대 기본원칙; 1산업 1노조의 원칙, 1기업 1노조의 원칙, 그리고 정치적 독립의 원칙(조직적 자주성을 의미) }}. 한편 이 시기 독일의 부르주아들은 포디즘적 축적체계를 본격화하면서 노동자들의 분노를 체제내화하기 위해 강력한 사회보장정책을 실시하고 대량소비의 확대를 꾀한다. 이는 국가에 의한 노사공동의사결정의 보장과 노동자 경영참가를 통해 노사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 독일의 산별노조 역시 이 과정에 함께 하면서 경제주의적 이익 추구를 본 목적으로 삼게 된다. 이런 과정은 노동조합 상층부와 기층 노동자, 노조와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분리를 낳게 되고 근본적으로 노동자, 혹은 노동자조직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5시기: 산별체계의 안정화에서 신자유주의로(1968-현재까지) 1966/67년 공황을 거치며 독일 부르주아들은 산업합리화를 적극 추진한다. 고용불안과 노동강도의 강화라는 상황에 대해 노동자들은 69년 가을 전국적 파업으로 대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노조 지도부는 산업합리화과정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노조의 영향력을 합리화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참여와 형성정책을 내세운다. 부르주아들도 이에 동조하며 '노동생활의 인간화'라는 일종의 유화책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이루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이후 197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치며 독일 부르주아들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기조를 받아들이며 적극적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이런 부르주아들의 공격에 대해 독일 노조는 이에 대해 적극적 저항보다는 협상과 타협을 통해 문제해결을 꾀하기 시작한다. 덧붙여: 독일 통일과정에서의 노동조합 이런 과정에서 독일 통일은 노동운동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었다. 독일의 통일과정(여기서는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인 통일협정이 조인된 이후의 과정을 말한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3차원의 정화사업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헤어진 이산가족이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시간이 채 가시기도 전에 3차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나 산업구조 전체를 서독 자본의 필요에 맞게 바꿔내고('시장경제'라는 경제적 차원), 둘째로, 이것과 맞물리면서 노동자의 내부구성, 세력관계, 사회적 의사결정의 구조를 완전히 새로 짜 맞추며('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차원), 셋째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위방식을, 즉 일상적 삶의 방식을 서독의 기준에 맞추어 내는(사회적 차원) 것이다. 이런 통일과정에서 서독 노조는 통일 이후의 사회재편에 대해서는 부르주아들에게 맡겨버린 채 조합원을 늘리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통일 이후 서독의 부르주아들이 추진한 동독의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에 대해 노동운동은 거의 방관으로 일관해버렸다. 물론 독일의 노동운동은 동독과 서독사이의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투쟁을 전개했으나, 이 역시도 노동자계급의 주체형성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동독 노동자들이 능동적으로 자본주의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현재 독일의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를 거스르는 흐름이라기보다는 소극적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3. 독일의 노사 협상과정 독일에서 노사 협상의 주체는 대부분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다. 이들간의 대표협상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독일의 일반적인 노사협상이다. 산별수준에서 맺어진 단체협약은 기업수준에서는 임금 및 근로조건의 '최저수준'으로 인정되며 각 기업별로 이 협약에 기반해 세부 협상을 한다. 이때 세부협상의 노동자측 주체는 공장/노동자평의회다. 이 평의회는 한국의 노사협의회와 비슷한 기능을 지니며 경영참가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경영참가의 수준은 임금 및 노동조건에 관한 공동의사결정 및 각종 이의제기와 협의를 할 수 있는 정도로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자평의회는 파업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파업은 산별수준에서만 가능하며-단사에는 노조가 없고 평의회만 있기 때문에-평의회의 파업은 불법이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독일에서 노조가 파업을 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단체협약 체결시 합의가 안돼 쟁의행위에 돌입하면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75%(!)이상의 찬성이 나오고 4주간의 '평화기간'(냉각기간)을 거친후 파업에 돌입해야 합법파업이 된다. 처음 단체협상부터 파업 돌입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석달 정도다. 덧붙여 파업기간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어 노조에서 파업참가조합원들의 임금을 지급한다. 한마디로 파업에 돌입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며 노조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런 이유로 독일의 산별노조들은 가능한 파업을 피하려 하며 파업 돌입전에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는다{{) 지난 1995년 2월 말에 이뤄진 금속노조 바이에른 지구의 파업은 이를 잘 증명한다. 즉 금속노조는 바이에른주에서 '파업을 해도 망하지 않을 기업' 120개를 고른 뒤, 그 중 '소비자와 중소납품업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22개 공장에서만 파업을 개시했다. "노동조합은 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독일 금속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해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피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 독일의 노사협상과정을 통해 우리는 독일의 노사관계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산별노조와 평의회의 경영참가 및 공동 의사결정은 존중하고 이를 근거로 파업투쟁에 강력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독일의 노사관계가 갈등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협조적이며 덧붙여 경영참가와 공동의사결정을 통해 노조가 기업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가 실제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4. 폭스바겐 사의 노동시간 단축 협상 사례 독일 폭스바겐 사의 노동시간 단축 협상은 93년 11월 사측의 30%인원감축계획 발표에서 시작되었다. 폭스바겐 사는 애초에는 노동과정 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했으나 이것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잉여인력의 과감한 정리를 통해 기업의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인원감축 계획은 구체적으로 당시 10만 3천 2백 명인 국내 노동자를 95년까지 7만 1천 9백 명으로 30%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무려 3만 명의 노동자를 '정리'하겠다는 이 계획에 대해 폭스바겐사의 노동자평의회와 독일 금속노조는 사측에 협상을 요구한다{{) 폭스바겐 사는 독일의 사용자단체에 가입해있지 않기 때문에 금속노조와 폭스바겐사가 직접 협상을 하는 대각선 교섭구조를 가진다. }}. 이에 사측에서도 적극 협상에 나섰고 결국 세가지 주요원칙에 기반한 단체협약을 맺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 4일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 유연화: 교대제를 통해 주 4일 28.8시간 노동{{) 당시 노동시간은 주당 36시간제였는데 이를 20% 감축하면 28.8시간으로 된다. }}에 주 5일 공장 가동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20% 줄어든 대신 세후 소득의 12-13%를 삭감하지만, 생계비 보전을 위해 보너스나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정상 월급여로 계상한다. 그리고 주당 35시간이 넘는 노동시간분에 대해서는 금전적 보상과 함께 시간외 노동에 대한 보상 휴가를 부여하는 방식(노동시간 계좌제도, Arbeitszeitkonto)을 도입했다. 둘째, '미혼자 탄력근로제': 30세 이하의 미혼자 4만 명은 1년 중 8∼9개월 근무만 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3∼4개월은 취미생활이나 신설 공공직업훈련원에서(공공실업기금 보전) 계속교육, 직능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를 Block-Modell, 블록시간 모델이라고 함). 셋째, '직업훈련생과 고령자 파트타임제': 수천 명의 직업훈련생이나 고령자는 주당 28.8시간 미만으로 일하게 하면서도{{) 직훈생(Azubi)의 경우 첫해는 주 18시간, 둘째 해는 주 20시간, 셋째 해는 주 24시간, 넷째 해는 주 28시간 노동. }} 타기업에 대체노동력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거나 서서히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정년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한다.{{) 50세 이상의 고령자는 정년의 3년 전에는 주 24시간, 2년 전엔 주 20시간, 1년 전에는 주 18시간만 일하게 함. 그리하여 매끄럽게(glatt) 정년 생활로 적응이 되게 만들고자 함. }} 결국 폭스바겐사의 고용조정은 한마디로, 임금축소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의 완벽한 유연화로 정리된다{{) 고용조정의 결과 대부분의 폭스바겐 노동자들의 월 급여는 전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각종 상여금과 수당을 월급여에 포함시킨 결과로 연봉으로 계산했을 때는 전보다 약 11%정도 감소하게 되었다. }}. 이는 사측 입장에서 보면 임금 총액의 축소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생산성 향상, 노동시간 유연화로 인한 공장 가동시간 연장 등 여러모로 긍정적인 것이었다. 또 폭스바겐사의 '주 4일 근무제' 협약은 그 자체로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한 초석이었다. 즉 작업교대제와 노동시간이 그로 인하여 유래 없이 유연화될 수 있었고, 그 사이에 독일 내 10개 폭스바겐 공장들에서만 약 150 가지의 노동시간 모델이 실시될 정도로 다양화되었다. 그러나 위의 협약이 노사가 모두 좋은 윈윈전략은 분명히 아니었다. 협약의 4조 1항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해서 경영상의 이유로 배치전환과 전근 등이 불가피하므로, 모든 소속노동자는 회사측으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을 두말없이 수행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주 4일 근무제' 협약은 1995년 말, 1997년 말에 가서 효력이 끝나고 비슷한 내용의 새로운 협약이 맺어졌지만, 이 노동력의 유연한 사용에 관한 특별조항은 그에 관계없이 효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 개인의 '시간'에 대한 권리를 완전하게 사측에 '양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시간의 끊임없는 변동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박탈한다. 개인적으로는 규칙적 생활의 불가능으로 인해 건강 및 사회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며, 작업장내에서도 집단적 유대형성이 힘들어져 단결의 저해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 자동차 공장내에서 탄압의 방법으로 노동자를 주간조에서 야간조로 옮기는 것은 흔한 일이다. }}.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베를린 금속노조 지부의 W. Hajek에 따르면 주 28.8시간 근무는 주당 4일 근무가 아니라 1년단위의 변형근로시간제이며 그나마 각 공장별로 4주에서 4개월 정도밖에는 시행되지 않았다. 반면 인건비 30% 절감, 생산의 유연화, 노조의 협조주의적 통합 강화 등 사측의 의도는 잘 먹혀 들어간 것이 이 모델의 특징이다. 또 한국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삭감이 노조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각종 휴가와 수당의 폐지, 초과근로수당 지급조건의 강화(주35시간 이상)등도 큰 문제점이다.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하를 바꾸자는 경영측의 제안에 대해 조합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도 않은 채 별 다른 독자적 대안의 모색이 없이 너무도 쉽게 수용적 태도를 보이고 말았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는 노사간의 협조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철저한 부르주아적 명분아래 노조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이후 독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와 비슷한 성격의 협약을 계속적으로 사용자와 체결하면서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의 적극적 동반자로 전락하고 만다{{) 독일 사민당 집권이후 98년에 창설된 '일자리를 위한 동맹'은 독일을 철저한 신자유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구상이었으며 독일노총은 이에 적극 동참한다. 또 2004년 금속노조는 폭스바겐사와 새로운 단체협약을 맺는데 협약의 주요 내용은 향후 7년간의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동결 및 노동자간 임금차별, 노동시간 유연성의 강화, 초과근로수당 지급조건의 강화 등이다. }}. 독일 노동운동의 슬픈 역사다. 5. 총평가 많은 이들에게 독일 노동운동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왔다. 확고하게 자리잡힌 산별노조체계와 노사공동의사결정 등이 그 주된 부러움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변혁을 소망하는 이들에게 독일 노동운동은 마냥 부러운 대상일 수만은 없다.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은 우리에게 부럽다기보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독일의 평의회는 처음 봉기했을 때의 혁명적 지향을 개량주의자들에 의해 강제로 거세당한 채, '협의회'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대중의 투쟁의 성과를 나찌에게 넘겨버렸다. 나찌 몰락이후 독일 노동운동은 산별노조를 통한 사용자와의 협상과 합의를 주목적으로 한 철저히 실리주의적 지향으로 경도되고 만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2차 대전 이후 6-70년대를 거치면서 강력하게 시행된 사회보장제도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및 노동조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앞에 지금 독일의 노동운동은 무능하기만 하다. 사용자측과 다양한 협상을 체결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켜내는 듯 하나 그 것은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에 대한 완전한 동의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개량의 유혹에 홀려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린 것이 현재 독일 노동운동의 현 주소다. 독일 노동운동을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한 모범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독일 노동운동은 우리의 모범이 아니라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6. 나가며 알튀세르는 노동조합 역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전 사회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잘 들어맞는 말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했을 때 노동조합의 동의는 조합원의 동의로 등치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노동조합이 부르주아들과 어떤 합의를 이룰 경우 그 합의는 노동자대중과의 합의로 인식되고 신자유주의는 전체 대중의 합의로,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관철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에 반대하는 노동자대중의 역동성은 질식되어버린다. 결국 남는 것은 부르주아의 이해만이 대변된 앙상한 '합의'뿐이며 노동조합은 '부적절한'방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노동자대중의 피 어린 투쟁으로 만들어진 민주노조와 방대한 체계, 그 체계가 지금은 대중의 역동성을 질식시키고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의 지지대가 되고 있다면, 그것은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투쟁의 성과들이 밑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면 작은 기득권 하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봐야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과감하게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의로 강한 걸음을 준비해야 할 때다. PSSP
* 역시 진보저널 읽기모임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http://journal.jinbo.net 일회용 노동자 : 오늘날의 산업 예비군 ― Disposable Workers : Today's Reserve Army of Labor ― 출처 : Monthly Review, Vol. 55, Iss. 11, April 2004 글쓴이 : Fred Magdoff & Harry Magdoff 옮긴이 : 오창룡 (진보저널 읽기모임)
* 진보저널 읽기모임 홈페이지에서 퍼온 자료입니다. http://journal.jinbo.net 2003 미국의 복지 The State of Welfare: United States 2003 출처 : Monthly Review, Vol. 55, No. 5, 2002년 10월 역자; 이재훈 (중앙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2차) jinbo21@korea.com 이 글은 토니 플랫(Tony Platt)이 2003년 3월 27~28일 유럽문화교류재단(Foundation for European Cultural Exchange)과 오스트리아 잘쯔부르크(Salzburg)대학 공동기획으로 열린 <경제적 침체기의 사회복지 Social Welfare in Time of Economic Stagnation>라는 회의를 위해 준비한 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 역자서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복지후진국이다. 따라서 복지라는 필터로 미국을 바라볼 때 흔히 자연스레 미국의 복지수준이 이렇게 낮은 요인은 무엇인가를 규명하거나 다른 선진복지국가들과의 '비교 들러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미국의 복지가 주는 다른 의미의 중요한 함의가 있다. 복지축소에 대한 압력의 동인이 다분히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져왔고, 그러한 지구적 신자유주의 재편의 중심에 미국이 있듯이 미국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자본과 노동을 유연화하는데 적합한 복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복지재편의 의도가 미국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종화·성별화된 기준으로 어떻게 도덕적으로 규제하고 강제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2004년 12월 17일 이주노동자문제의 정책적 대안 토론회 *사회 박하순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운영위원 *발표 이주노동자 권리에 대한 국제협약 - 설동훈 (전북대 교수) 유럽에서의 이주노동자 - 송태수 (한국노동교육원) 미국에서의 이주노동자 - 안병진 (창원대 교수)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 -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 지구시민사회의 이주노동자와 시민권 - 박천응 (이주노동자인권연대 운영위원) *토론자 민주노총 비정규국장 김혁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사무국장 이완 평등노조 이주지부장 아느와르 한신대 교수 남구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홍원표
2003년 5월에 조사한 자료를 다시 재구성, 보강했습니다
복지부동, 철밥통,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과거 반성부터 시작 2002년 3월 23일 정부의 폭압적인 탄압을 뚫고 공무원노조는 당당히 노동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그것은 비능률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온 행정을 스스로 개혁하고,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공무원노동자의 시대적 소명이었다. 해방 이래 약 50여 년 동안 공무원은 복지부동, 철밥통,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과거 우리 공무원노동자는 선거철이 되면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세력에게 정치적 양심을 팔았고, 행정을 수행하면서는 자본가의 입맛에 맞는 인허가 행정으로 행정의 형평성을 차단하여 기층 민중을 외면하였으며, 국가발전과 역사발전에 대한 자각과 소신 없이 무사 안일한 행정을 펼쳐온 것도 사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노동자들은 이 부끄러운 과거를 이 나라 민중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신자유주의 광풍 앞에 구조화되어 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즉 자본 위주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내부로부터 아래로부터 행정의 형평성이 담보되는 행정개혁을 통해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진력해 왔다. 한편 대부분의 공무원노동자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경제적 보상은 낮지만 국민을 위한 봉사행정이라는 자부심과 보람을 중요한 선택요인으로 꼽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사회적 집단보다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 또한 공무원노동자들임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공직사회 개혁은 공무원의 내적 동의와 공무원이 주체로 나서야 성공 이런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48년 이승만 정권이 수립된 이래 정권만 바뀌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말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서정쇄신, 부정비리 척결이었다. 그러나 성공을 거두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을 것이다. 그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쿠테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정당성이 약한 정권의 길들이기식(군기잡기식)시도, 권위적인 명령하달 방식의 타율적인 힘에 의해 추진되어 시늉만 내고 본질적인 행태는 개선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진행 등이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물론 개혁의 내적동의와 주체화의 문제일 것이다. 정권마다 공무원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내적 에너지를 긍정하고 국가사회의 실질적 민주화, 개혁의 주체 세력으로 공무원노동자를 인정하면서 내부로부터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의 동인이 발현되는 방식보다는 주체를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시도는 이제 국민들 사이에 불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공무원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한 공무원노동조합이다. 공무원노조가 출범한 이래 이런 변화가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이 출범한 이래 달라진 게 있다. 우선 인사의 투명성 등 행정내부 개혁적 차원에서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다. 투명성이 효율성과 사기 진작에도 기여하고 있다. 2003년도 IMD(국가경쟁력평가기관)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행정부문의 효율이 세계 18위로 기업경영 효율(20위)보다 높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또한 부정부패도 국가 전체적인 지수는 나빠지고 있으나 공공부문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부패방지위원회에서 발간한 2003년도 백서를 보면 민원을 경험한 국민의 11%정도만이 공무원이 부패하다고 답변했고, 민원을 경험하지 않은 일반국민은 65%가 부패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이 있을 뿐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공무원들의 봉사행정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만해도 공무원은 권위적이고 불친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행정서비스 개념이 정착화 되고 공무원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자각하면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형식적인 봉사와 친절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친절도에서 전년대비 10%대의 꾸준한 성장을 하는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정부 대화의지조차 없이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어 이런 공무원노조의 긍정적인 역할을 외면한 정부의 대응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노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만을 가지고 있으며, 권위적·수직적인 행정문화의 틀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당한 지시와 압력을 통해 여전히 권력의 하수인으로 복무케 하려하고 있다. 그 방편으로 정부는 불법단체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말만 기계적으로 되풀이하고 상식에 기초한 대화보다는 탄압으로 공무원노동자들의 혁명적인 개혁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다. 서구 선진사회는 노동기본권이 인권으로 인식되어 철저히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의 행태는 공무원노동조합법 입법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노동자로서 공무원노동자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인권은 무시한 채 공무원을 권력에 복종시켜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조차도 최대한 부정하려고만 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법의 실체는 인권부정의 위헌적 악법이다. 정부가 마련하여 2004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공무원노동조합법은 공무원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보다는 원천적으로 권리를 제한하여 굴종을 강요하고 과거와 같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우리의 발목을 붙들려는 수구적이며 반역사적인 악법 중의 악법이다. 정부는 공무원노동조합법(안)을 요즘 사회 쟁점화 되고 있는 사안들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는 배제한 채 힘을 빌려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통한 설득이나 타협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노조에 대해서 현실의 하위직 공무원노동자의 고통은 외면한 채 반공 이데올로기의 잔재와 과거 부정적인 고위관료들의 행태 등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여론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노동자에게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있는가? 정부는 공무원노동자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인정한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2권을 보장했다고 언론에 홍보하면서'이렇게 정부가 선심(?)을 쓰고 있는데 단체행동권까지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라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대국민 사기극이다. 국민을 우매화하고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저급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정부입법안의 실체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단결권의 원천적 부인이다. 법안 제6조에서 가입범위를 규정하고 제6조 제2항에서 가입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바, 동조항 제1호의 규정에서 다른 공무원에 대하여 지휘, 감독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공무원 업무를 총괄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제외대상으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제3항에서 구체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하여 제한의 재량권을 무한정으로 인정 사실상 6급 공무원에 대해 가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단결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법률로 제한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것을 확대 적용하여 시행령에 위임 무제한적으로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위헌적인 요소를 내포함은 물론 사실상 노동조합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두 번째로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부인이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공행정의 특성은 강조하면서 공무원이 하는 일은 곧 근무조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정부는 애써 외면하려하고 있다. 법안 제8조 제1항 단서 규정을 통해 단체교섭 내용 중에서 정책에 관한 사항, 인사권 등 행정기관의 관리·운영에 관한 사항은 교섭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또한 제10조 제1항에은 노동조합이 강한 단결력으로 단체교섭이 체결된다하더라도 법령, 조례 또는 예산에 의하여 규정되는 내용과 법령 또는 조례에 의한 위임을 받아 규정되는 내용으로 그 효력이 광범위하게 부인되는 등 사실상 단체교섭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놓은 규정이다. 따라서 교섭권은 현실에서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는 전교조의 현실에서 이미 역사적 교훈을 배웠다. 세 번째로 현재 정부와 쟁점이 되고 있는 단체행동권의 부인이다. 노동조합이 교섭을 통해 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이해관계의 성취를 위해 강한 단결력을 필요로 하고, 당사자 합의 사항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한 단체행동을 행사하는 것이 노사자치의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1995. 5.18일과 2001.5.9일 유엔(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은 교원 및 공무원에게 단체행동권이 법과 실제에서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외국의 사례 운운하면서 단체행동권이 부정되는 나라의 예만 들고 있으나, 유럽과 같이 모든 공무원에게 노동기본권을 완전히 보장하고 있는 선진적인 사례를 참고로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우리나라도 유럽의 경우처럼 노동총비용 감소정책 추진으로 인한 인력과 임금 감축 정책이 일반화되어 가는 사회현상을 반영하여 근무고용관계로 전환하였듯이 굳이 특별권력관계에 기초한 권리부정에 가까운 권리제한 방식을 버리고 실제로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여 전향적인 사고로 이 쟁점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제한을 하더라도 합리적인 제한 즉, 공무원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여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전임자 무급규정, 행위 위반자 처벌기준 강화(일반노동조합의 5배), 복수노조 허용으로 분열을 조장해 어려워질 교섭청구의 단일화, 정부교섭대표의 임의규정 적용 등 현재의 법외노조 보다 권리보장이 부족한 내용이 입법안에 담겨 있어 오히려 조직운영이 위축될 소지가 많으며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이 박탈되고 나아가 생존권 사수를 위한 노조 역할이 무력화 될 수밖에 없는 수구적 반동적 입법이다. 전례로써 교원노조법의 문제점을 보면 공무원노동조합의 미래가 보인다. 1996년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1998년의 노사정위원회에서는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기본권보장의 당위성을 인정하였다. 다만, 사회적 충격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공무원에게는 직장협의회 결성권을, 초중등교원에게는 노조 결성권을 인정하는 입법 작업이 행하여졌다. 정책적으로 보류되었던 공무원과 대학교수에 대한 노조결성권이 계속 금지되어야 할 법리적·현실적 이유는 모두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 한편, 교원노조법은 그 동안 전면 금지되어 왔던 교원의 노조 결성권을 초중등교원에게 보장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법은 교원 중에서 부당하게 대학교수를 적용대상에서 제외하였고,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체결권에 관하여 많은 규제를 가함으로써 헌법위반의 논란이 있어 왔고, 나아가 단체행동권을 전면 부인한 것은 헌법위반이 분명하다. 헌법에서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그 운용에 관해서만 하위 법령에 위임한 것이므로 교원의 노동관계도 일반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게 하기 위하여 교원노조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이의 당위성은 현재 교원노조의 경우 실태를 보더라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정부는 법령상 교섭구조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실질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부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단체행동권이 없는 관계로 이를 강제해 내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강제할 수단 즉, 연가파업 등의 투쟁방식을 결행할 경우 온갖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다. 물론 연가파업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정부가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에 임하는 문제등은 일반 국민이 인지하기 힘들어 비판의 초점에서 벗어나는 등 교섭구조는 불평등한 관계로 기본적인 노동조합의 활동이 활성화되기 어려운 노동조합으로 전락될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를 특별법이 아닌 일반 노동조합법에 의해 규율되어야 교원노조법의 문제점에서 보듯이 공무원노조를 특별법에 의해 규율하는 것은 똑같은 문제점을 야기할 위험성이 크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은 모두 특별법이 아닌 일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규율되도록 한다.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관계에 관하여 특별한 규율이 필요하다면, 이 법령의 관계 규정의 개정을 통해서 반영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노조의 조직대상은 법률에서 먼저 제한할 필요 없이 노조법 제2조 제4호의 사용자의 이익대표자 개념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조직형태 또한 자주적으로 선택할 문제이고, 법령·예산에 관한 단체협약의 효력은 특별규정을 둠으로써 해결이 가능하고 현역군인, 경찰공무원 등 공안직공무원의 단체행동권 제한 또한 노조법 제41조 제2항의 개정을 통해서 규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은 이를 폐지하여 교수까지 조직대상을 포함해 노동조합 활동을 확대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노동조합의 기능에서 교섭과 행동권 행사의 보장은 기초적인 것이며 공무원노조가 공직사회의 내부적 자주적 개혁과 부정부패의 추방을 자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다. 정부의 특별법 제정 의도는 아직까지도 공무원노사관계를 특별권력관계에 기초하여 권리를 제한하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에서 공무원노사관계를 스스로 근무고용관계로 전환하고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서 규정하여 유럽선진국처럼 일반노사관계에 적용토록 입장을 밝히고도 굳이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특별법을 통해 공무원노동기본권을 제약하려는 비상식적인 입법태도이다. 당사자와 대화를 통해 노동정책을 추진하고 입법에 반영해야 국민의 정서 운운하고 공무원노조의 자기통제력 미검증 등 억지논리를 앞세우기 보다는, 건전한 상식과 투철한 책임의식에 근거한 공무원노동자를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인정하고 완전한 권리부여를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또한 법률제정에 있어 현재의 가치기준으로 제약하기 보다는 공무원노조의 미래지향적인 역할에 더 많은 가치판단을 부여하는 지혜로운 입법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공무원노조는 정부와 형식을 불문하고 대화할 용의가 있다. 정부는 공무원노조 법안을 제정하면서 엄연히 14만 조합원을 둔 조직체에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정부입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공무원노조를 불허한다는 정부입장이 관철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노동자의 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더 나아가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국가민주화를 위한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모든 사회적 혼란과 불필요한 낭비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음을 경고한다. 공무원노조는 국제 동지들과 국내 민주노조 진영의 강고한 연대투쟁을 공무원노조는 총파업투쟁으로 인한 국민의 혼란을 최소화하기위해 정부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를 요구하되, 거부할 경우 최후의 수단인 총파업 투쟁을 통해 우리의 기본권쟁취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다.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파탄내고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총파업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공무원노조는 일반노동조합과는 달리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 우리 사회는 현재 과거의 권위주의적 사회운영을 벗어던져 버리고 참여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적 운영양식을 구축해야 할 시점에 있다. 민주개혁의 핵심적인 과제가 국가민주화를 통한 통제사회를 해체하여 실질적인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면, 공무원노조 출범의 의의는 민주개혁을 위한 충만된 내적 에너지의 발현이며,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자율적인 질서유지 체계와 공무원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집단적인 행동의 자유 보장을 통해 국가민주화의 과제를 담지 해 나가는 주체로서 의미가 크다. 공무원노조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진다. 우선은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해주체로서의 성격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이라면 당연히 수행해야 할 기본 기능이다. 다음으로 국가민주화를 담당해야 할 공공적 조직으로서의 성격이다. 공무원의 업무 특성상 사회 소외층,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는 행정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가 진보적인 것이며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공무원노조가 강조하는 것은 물론 후자의 경우이다. 국가민주화를 행정운영원리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원노조가 표방하는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을 통한 국가 발전의 기초적인 에너지를 담당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제고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공무원노조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공무원노조의 불법화 또는 결사·단체행동의 부정은 공무원노조의 역할에 대해 기초부터 부정하는 것이며, 아래로부터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어리석음이며 반역사적·반동적 태도이며 불행한 일이다. 공직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곧 사회를 개혁하는 토대이며, 부정부패 척결은 아래로부터 관료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국가투명성 지수를 현재 40위권에서 20위권으로 향상시키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고, 또 부정부패추방위원회는 명칭이 부정적이어서 이를 국가청렴위원회로 명칭을 개정한다고 한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석조차 못하는 상태에서 사회·문화·제도적인 수준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소할 수 있겠는가? 과거 1948년 이승만 정권 때부터 정부만 바뀌면 변죽만 울릴 뿐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낡은 수법을 정확한 원인 진단도 없이 공무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매도하며 반복하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은 국가적· 전국민적인 개혁 정책임을 공무원노조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공무원이 개혁의 대상이 아닌 진정 개혁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몸에 스며든 병균을 도려내겠다는 의지로 부정부패 척결을 공무원노조의 기치로 내 걸고 투쟁하고 있지 않는가? 투명성 지수에서도 행정 분야는 꾸준히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올해 추석 절을 맞이하여 공무원노조에서 추석 절 부정부패 밀착감시단을 자율적으로 운영했다. 정부에서는 이를 두고 권한이 없으니 중단하고 그 일은 감사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공무원 스스로 부정부패를 뿌리 뽑자는 순수하고 실천 가능한 일을 부정하고 나서는 정부는 도대체 자정의지가 있는가? 내부비리 고발제도는 뭐 하러 제정했는가? 공무원노조는 사회공공성 강화에도 사회적 소임을 다할 것이다. 작은 정부 지향으로 인한 복지부분의 재정투자 감소로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여야 할 책무가 국가에게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 경쟁의 개념으로 사회공공성을 불필요한 비용분담으로 취급하는 정책 기조하 에서는 부의 균등한 분배는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말 것이다. 공무원노조는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건강한 노조로서 국민과 민중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봉사행정을 추구하는 국가의 기둥으로서 역할과 소임을 다할 것이다. 총파업투쟁도 이런 관점에서 힘차게 진행할 것이다. 국민 불편 사항에 대해서는 스스로 현장복귀를 단계별로 준비하는 조치 등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예방할 것이나 이번만은 어찌되었건 국민들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 모든 사태의 원인과 책임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부하고 권력을 내세워 탄압만을 일삼는 정권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PSSP
-외환위기 이후 총파업투쟁 평가와 하반기투쟁의 과제 박 민 영 | 노동국장 현 시기 명확한 계급투쟁 관점만이 힘찬 투쟁을 예비한다 지배계급 내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소위 4대 개혁법안을 두고 이전투구가 계속되고 있다. 여야 정당은 각종 색깔론과 좌우논쟁을 동원하여 사활을 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결코 한국 사회의 미래는 이들에 의해 담보될 수 없다는 것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세게 밀고 나가고 있으며, 대다수 노동자 민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동참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계속해서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쌀 시장 개방, 경제자유구역법 시행과 기업도시 설치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상시적으로 침해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응해야 할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여전히 실리적이며 고립적인 투쟁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운동 내부에서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불철저하게 인식하여 노무현 정권의 개혁에 기대려 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불철저한 정세인식은 ‘탄핵’사태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 민중을 지배 계급에 동원하는 결과만을 가져왔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투쟁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며, 또한 작동하더라도 성과가 축적되기 어렵다. 현 시기 중요한 것은 노동자 민중이 지배 계급에 대해 독자적인 대안적 세력으로 서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의 창출은 현 정세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하반기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 실현을 위한 노사정위 참가여부가 지하철노조의 공동투쟁과 하반기 투쟁 등에 의해서 연기되었다. 하지만 좀더 본질적으로 보면 이러한 과정은 지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 계속해서 반복된 행태로서, 결국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무현 정권이 노동자민중에게 줄 수 있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바로 노동자민중이 주체가 되어 전망을 열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총파업 투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다시금 총파업 깃발을 올렸다.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 결정은 비정규대표자들의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로부터 촉발되었다. 9월 2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을 결의한 직후, 민주노총 임원진의 현장 순회, 총파업 찬반 투표가 실시되고 현장 활동가들의 결의대회가 연이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총파업을 통한 비정규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의 파고는 어찌 보면 아직 커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금속 중심으로 네 시간 총파업이나 하루 파업하고 말겠지’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주위 사업장의 동향이나 살피며 투쟁에 돌입하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서는 파업에 돌입하는 것 못지않게, 어떠한 준비를 거쳐 파업을 성사하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가 더욱더 중요하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교육과 선전은 기본이지만, 총파업 자체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노동법 개악 저지에 느슨한 모습을 보인다면, 향후 노동자 운동의 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시기 민주노총이 총파업 선언과 철회를 반복했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투쟁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투쟁 전술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계속되었지만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를 뛰어넘지 못했다. 96, 97년도에 노동자 민중의 강력한 총파업이 있었지만, 결국 정리해고 등의 노동법 개악을 뛰어넘지 못한 채 노동 유연화는 전면화되기 시작했다. 초민족적 자본을 대변하는 구조조정은 ‘위기를 헤치고 제2의 건국’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폭풍처럼 밀려 들어왔다. 금융 부문과 공공 부문에 이어 기업 부문과 노동 부문에 대한 4대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정권과 자본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를 완성시켜 나갔다. 이에 맞서 노동자 운동은 정리해고 저지투쟁과 사유화 저지투쟁,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벌였고,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을 통해 고용안정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98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에 합의한 이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를 소환하고 총파업을 결의하였지만 이마저 불발로 그쳤다. 매년 선언되는 총파업 선언과 총파업 선언 철회, 4시간 총파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성적인 총파업은 조합원에게나 정권과 자본에게나 위력적인 행동이 될 수 없었다. 지난 2002년 발전, 가스, 철도의 3사 노조 공동 파업을 통해 민주노총이 한번의 기회를 갖는 듯 했지만, 민주노총은 기존의 관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리고 당해 하반기 투쟁에서 경제자유구역법이 안고 있는 심각성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과 대응으로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법률 제정을 허용하고 마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 공무원조합법 저지, 경제특구법 저지 등 3대 악법 저지를 내걸고 돌입한 11·5 총파업에 대해 근로기준법 개악이 연기되었다는 이유로 8시간 만에 중단한 것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둘째, 신자유주의 공세에 적합한 노동자 운동의 조직화 방식을 창출해야 한다. 80년대 말 형성된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여러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민주노총 1기 지도부가 98년 노사정위 정리해고에 합의한 이후 대중적으로 촉발되었고, 이에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커다란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이후에도 민주노총 2기 지도부의 총파업 선언 철회, 2002년 발전노조 투쟁에 대한 연대총파업 철회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민주노총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담론은 확산되어 갔다. 2003년 열사 정국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존재하였음에도, 노동운동의 혁신은 계속해서 지체되고 있다. 비단 노조운동의 위기는 이런 파국적인 사건 속에서만 감지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 상당수는 관례화된 노사교섭에 따라 무쟁의 상태에서 임단협을 타결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비정규직, 사내하청 등 불안정노동자에 대해서 무관심을 넘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럴 때마다 많은 논자들은 위기의 원인으로 민주노총의 지도력, 타협적인 지도부가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이는 표면적인 진단일 뿐이다. 문제는 오히려 80년대 후반에 형성된 조합원 동원 식의 투쟁이 신자유주의 대응에 무력했다는 점이며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 대중이 그러한 투쟁과제를 수행하는데 역시 한계적이었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합의주의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단히 한계적이며,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전망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투쟁의 교훈은 노동조합이 기업별 수준이든 국가적 수준이든 사회적 합의주의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본격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의 민주노총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막아낼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도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현재의 노동자운동에 대해서 발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검토를 위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운동의 전형적인 동원형 투쟁방식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노총은 매년 여러 차례 ‘총파업’을 선언하곤 했다. 그러나 총파업을 선언했다가 철회한 경우도 적지 않았고, 민주노총 전체 차원의 ‘총파업’임에도 금속과 몇몇 관련된 투쟁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산하 노조들은 생색내기 수준에서 참여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투쟁을 회피한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투쟁의 동원을 상당히 중요한 무기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투쟁 동원 전략은 영향력 행사를 위한 목적에 국한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일차적으로는 자본 및 국가를 협상의 장에 끌어내기 위한 ‘압박’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투쟁을 기획한다. 사실 압박이라는 ‘영향력 행사’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쟁을 그 목표에만 국한하여 사고하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노정하는 일이다. 투쟁이 교섭 자체를 위한 영향력 행사로만 생각되는 한, 투쟁은 노동자 계급의 연대성을 강화하기보다는 기존 노조들의 교섭 지원 성격만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지난 시기 투쟁이 오히려 실리주의를 강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연대를 약화시킨 역사를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반기 투쟁 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다. 현 시기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은 자본의 이익을 구축하기 위해 노동 유연화를 제도화해 온 지배계급과 여기에 저항해온 피지배계급과의 연속적인 투쟁의 접점을 그릴 것이다. 정권은 이번 노동법개악이 비정규보호 법안이라고 말한다. 11월 2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비정규입법안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남용을 규제하되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조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지 ‘차별금지’란 문구로 정부는 노동법 개악안이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며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안은 비정규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양산법이다. 개악안은 이제까지 26개로 제한해 왔던 파견허용업종을 제조업을 포함한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50대 이상 준 고령자를 기간 제한 없이 파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개악안의 목적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이며, 비정규직 고용을 보편화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간접고용의 확대와 계약기간의 자유화를 통해 기간제 고용과 파견제에 관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없애버림으로써 비정규직의 확산과 남용을 막을 수 없는 무노조, 무권리의 자본의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둘째는 구조조정·시장화·개방화에 대비하는 자본의 총체적 공격 저지 투쟁이다. WTO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자 각 국 정부는 보다 쉽게 더 높은 무역 자유화를 이룰 수 있는 양자 간, 지역별 교섭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이즈미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한일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자유무역협정은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초민족적 금융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생산과 고용을 파괴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은 초민족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철폐’하고 이들이 침투하여 이익 창출 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 측이 제시한 비관세 장벽 철폐 목록에 ‘무노동 무임금 준수’, ‘퇴직금 산출의 유연화’, ‘휴가수당에 대한 사용자의무 면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적 재산권을 강화하고, 교육, 의료, 에너지, 우편 등 노동자 민중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도 자본의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도록 할 것이다. 최근 정권에서 추진하는 기업도시는 △파견근로제의 무제한적 허용으로 인한 비정규노동자 확대 △생리휴가와 월차휴가 무급화로 실질임금의 삭감 △국내 노동관계법 및 사회보장법 적용 불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경제자유구역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초민족 자본을 보호하고,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막아야 한다. 셋째는 노사관계 로드맵과 노사정합의주의 공세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번에 국무회의에 통과된 노동법 개악안은 작년 정부가 발표한 ‘노사관계 로드맵(이정표)’의 연장선으로,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의 출발이 될 것이다. ‘노사관계 로드맵’은 노동법을 개악해 비정규직을 확대, 파업권을 제한하며, 정리해고를 완화하고, 단체협상의 무력화를 통해 노동조합을 무력화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에서 내놓고 있는 ‘유사 근로자 단결 활동 등에 관한 법률’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노사정위의 이러한 시도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수면 아래로 들어간 상태지만, 이번 노동법 개악이 어떻게 처리되느냐 따라 충분히 다시 거론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국면에서 노동법개악 저지 투쟁은 향후 이루어질 총체적인 노동법개악을 저지하는 의미를 갖는다. 넷째는 노동기본권의 박탈과 민중의 권리 침해를 저지하는 투쟁이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다. 지난 10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공무원노조법안(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이 확정되었다. 법률안은 일반직 6급 이하와 이에 상당하는 별정직 등의 공무원들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되 단체행동권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노조 가입 범위에 경찰·소방·외교관 등 특정직과 이미 다른 노조법이 적용되고 있는 철도청과 정보통신부 종사 기능직, 교원 등은 제외했다. 공무원 노조는 보수와 복지, 근무조건 등을 놓고 소속 기관의 대표와 교섭을 할 수 있으나, 정책 결정 사항이나 임용권 관련 사항은 교섭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법안의 문제점은 단체행동권을 불허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단체교섭권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법안에 따르면 단체협약은 ‘법령·조례 및 예산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과 법령 또는 조례에 의해 위임을 받아 규정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기본권이 보장조차 안되는 ‘고용허가제’라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이주노동자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생때까지 쓰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공무원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정권의 구미에 맞게 길들이려는 일체의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노동법 개악안 저지를 넘어 비정규 권리보장입법 쟁취하는 것이다. 지난 7월 12일에 단병호 의원의 대표발의로 비정규 권리보장입법 상정이 이뤄졌다. 비정규 권리보장입법은 크게 네 가지 근기법개정안(근로기준법 중 개정 법률안), 노조법개정안(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자 중 개정 법률안), 파견법폐지안(파견근로자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폐지안), 직업안정법개정안(직업안정법 중 개정 법률안)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번 투쟁은 수세적인 파견법 개악저지가 아니라 그간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차별을 합법화하였던 희대의 노동악법, ‘파견법’을 완전폐지하고 비정규직 사용의 엄격한 제한과 사용자처벌강화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삽입하는 투쟁으로 상승되어야 한다. 더불어 개악안 저지투쟁을 넘어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목표로 함으로써 어떠한 정권의 유도적인 전술에 넘어가지 않고 강고한 전선을 유지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병군 철군과 연장동의안 저지, 국가보안법 완전철폐이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한국정부는 협력을 약속했다. 부시는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벌이려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3,000여명의 자이툰 부대주둔의 연장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12월로 예정된 연장동의안 처리 강행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공허하고 맹목적인 한미관계로는 노동자 민중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파병이야말로 침략과 학살의 제안에 굴복한 것이며, 피의 악업에 동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중의 정치사상의 자유’의 문제이며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남북관계 재정립’의 문제이다. 진정한 국가보안법폐지는 정치적 탄압과 인권유린의 지난 역사를 반성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민중이 압제와 탄압으로부터 저항할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현재 한반도 위협의 근본적 원인이 미제국주의의 일방주의와 전쟁 책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안보 위협을 계속해서 증진시키는 한미동맹의 해체 없이는 국가보안법폐지의 온전한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하기에 현재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형법 보완을 통한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은 불충분함을 넘어 대단히 한계적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반도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반공발전주의의 역사를 청산하는 과정에 놓여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조건 없이 완전 철폐되어야 한다. 위기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투쟁을 만들어 가자 몰락해가는 세계자본주의는 구조적 위기를 지연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공세를 취하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노동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비정규직 확대와 정리해고 자유화 등 ‘노동의 유연화’가 그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이 문제만큼은 타협하지 않는다. 97년 정리해고 법제화, 98년 파견법 제정, 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03년 주5일제를 빌미로 한 근기법 개악, 04년 비정규 노동법 개악을 출발로 하는 노동법 개악 공세 등 지난 수년 간 어느 정권을 불문하고 한 치의 양보도, 후퇴도 없이 노동에 대한 공격이 몰아쳤다. 이번 총파업은 작년 열사 투쟁처럼 일부만이 참여하는 총파업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4시간 부분 파업과 어정쩡한 집회 몇 차례로 끝내는 형식적인 하루 총파업은 기만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결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파업대오가 빈틈을 보인다면 저들은 파죽지세로 들어올 것이다. 사업장에서부터 단호한 결의로 총파업 투표를 압도적으로 가결시키고 위력적인 총파업과 집회 투쟁으로 맞서야 하고 사업장별 비정규 노동자와 공동투쟁, 공동파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공동파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공동실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와 공동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이번 총파업이 형식적인 총파업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단결을 통한 실질적인 투쟁을 꾀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와 노동자 단결을 실현할 수 있도록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는 56%이다. 한국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특히 심한데, 그 이유는 유연화된 고용 형태 때문에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고, 값싼 임금을 별다른 저항 없이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다양한 고용형태를 만들어 왔다. 단지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자본이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해고되는 것이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이러한 차별은 반사회적일 뿐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하여 노동자 대중 전반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70%가 여성노동자인 현실은, 남녀차별이 이제는 고용 형태에 따라 구조화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번 하반기 투쟁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향후 노동운동의 미래가 달려있다.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막고 연대의식과 헌신성을 강화하는 계급 형성의 관점을 각인하고 투쟁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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