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이주해온 한 여성은 이미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와 함께 한 고층 빌딩 청소 일을 하게 된다. 젊은 그녀 앞에 한 남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는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한 나이 많은 노동자가 근무시간에 지각을 하게 되자, 관리자는 근무 태만과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잘라버리려 한다. 마침 노조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된 주인공과 주위 노동자들은 합심하여 단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관리자의 방해공작과 해고 협박이 이어지지만, 노동자들은 다른 청소 노조원들과 연대하며 스스로를 조직화한다. 턱없이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임금 상승과 의료보험 혜택 등을 내걸고 사측과 투쟁하여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다. 결말에선 두 자매의 갈등도 서로를 이해하며 해소된다. 언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이주해 성매매에 종사했었고 그 기반으로 이제야 그나마 직장을 얻어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데, 동생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되면서 안정된 생활을 잃게 될까 염려하며 동생과 갈등을 빚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들이 좌초되고 타협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는 현실적인 갈등들 또한 이 영화는 놓치지 않고 있다. 계속 봐야지 벼르다가 간만에 비디오방을 찾아 본 “빵과 장미”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오랜만에 보는 정치적으로 건전한(^^) 영화였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은 스스로 단결하여 조직화하는 것과 동시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하는 여성들이 조직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업장에 모여 함께 노동한다는 것은 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큰 장점일 것이다. 실제 많은 여성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재택 근무의 형태로, 가내 하청의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 노동자들이 주로 여성이다. 그녀들은 노동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도 못한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만 하더라도 150만 여명으로 추산되는데, 그녀들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감히 자신의 직업조차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흩어져있고, 지속적으로 노동할 수 없다는 것도 여성 노동자 조직화에 어려운 점으로 작용한다. 여성 취업곡선은 M자형을 그린다. 결혼 전까지 높았던 취업률은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시기에 급격히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상승하게 된다. 양육이나 가사 노동 때문에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취업상태에 있지 못하고 실업을 반복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여성들을 조직화하려면 다른 방식의 조직화 계획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비공식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사업장에 앉아 노조원들이 가입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있는 영세 사업장, 그녀들의 가정과 같은 곳으로 가서 직접 그/녀들을 조직해야 한다. 사업장별 노동조합을 고수하는 형태로는 더 이상 여성노동자들을 폭넓게 조직할 수 없다. 지역일반노조나 실업자를 포함하는 노조 형태가 이러한 점에서 긍정성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조사,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최근에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엄마 간병을 하느라 병원에 자주 드나든 나는 간병하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아픈 사람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보살핌 노동에, 환자 볼일까지 치워야하는 허드렛일, 환자 옆에서 꼬박 새우잠을 자야하는 장시간 야간 노동까지...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노동해온 그녀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녀들은 이제 비공식 부문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스스로를 조직화하며 투쟁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 조직화는 우리에게 여성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여성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좀 더 정세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연대투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나는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인식이 무조건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안정적으로 노동하던 남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화되고 사내하청화된다는 것에 대항해서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는데, 이런 현실 이면에는 애초에 비정규직이었고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간과되어 있다. 나는 이제껏 여성이 처한 불안정한 노동 상황이 전반적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노동을 분석하는 개념들이 더욱 예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노동운동, 단위 사업장 중심의 투쟁이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주체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수세적인 투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신자유주의 시대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새로운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며 이들과의 연대를 위한 각각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만이 침체되어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여성위 토론회에 참석했던 ‘장애여성공감’ 양영희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성이 처한 노동 현실의 열악함에 대해, 또한 장애 여성이 겪는 또 다른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장애 여성의 노동 실태에 대한 조사는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정도로만 조사가 이뤄지는 방식은 장애 여성이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것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도 노동 현장에서는 철저한 성별분업 하에 여성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한다고 장애 여성들이 여성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취급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인식과 지위가 여성이 노동하는 곳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장애 여성들의 경우, 온전히 학교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영세 수공업 등의 노동현장에 투입되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극악한 노동 착취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장애 여성의 교육권 박탈과 노동 상황의 열악함을 말해준다. ‘여성’이 ‘노동’한다는 것, 많은 숙제를 남긴다. PSSP
2월 26일에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있었던 [쟁점토론회] 참여복지5개년 계회 과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 토론회 자료집입니다. 자료집 목차 주발제 참여복지 5개년 계획 비판과 과제: 강동진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 비판: 김혜진 토론문 장애인 복지정책비판: 양영희 참여복지5개년 계획에 제시된 주거부문에 대한 검토 및 비판: 문헌준 청년실업운동본부 투쟁방향과 계획: 최정민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제안서 참여복지5개년 계획의 주요내용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 전문
비정규공대위에서 실시한 진상조사 보고서입니다.
고 박일수 동지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꼬리를 무는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죽음'들'에 무뎌지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살을 에는 자본의 탄압보다 두려운 것은, 이겨낼 생각조차 품지 못하는 사람들의 온순함이다. 박일수. 50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인터기업' 노동자. 노조의 '노'자만 꺼내도 서슬 퍼런 해고가 현실이 되는 침묵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진정서 한번 내보겠다고 연판장을 돌리던 이. 원하청 노동자 하나하나 만나가며 연대를 호소하고 투쟁을 조직했던 이. 심장의 피 꺼내 쓴 듯한 울림 깊은 유서를 A4용지 석 장에 빼곡이 적어 집에 한 통, 품속에 한 통. 울산에선 부리나케 분신대책위가 꾸려졌다. 유일한 유족인 딸로부터 위임장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부검을 마친 뒤 현대중공업 정문 바로 앞 울산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짙다"면서 대책위 참가를 거부했다. 이어 "고 박일수 씨는 현대중공업은 물론, 현대중공업 협력회사인 인터기업과도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않는 사람"임을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친절히 알려왔다. 이도 모자라 "현중노조의 요구가 무시되고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현 사태를 악용할 경우, 민주노총은 물론 울산지역의 제 노동단체와의 모든 관계를 신중히 재검토할 것임을 천명"까지 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노동자들은 크레인 고공농성을 시도하다 개처럼 두들겨 맞고 경찰에 넘겨졌다. 그 시각 정문 밖에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이 공장진입을 시도하다 잡초처럼 짓이겨졌다. 여성도, 시의원도 예외가 없었다. 유족은 검은색 소나타에 실려 납치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납치범 중 한 명은 현대중공업노조 이 아무개 기획부장이었다. 경찰도 찾지 못했던 고인의 이복동생이 돌연 등장했다. 이건 희극인가, 비극인가. 유서는 차라리 비정규직을 둘러싼 21세기의 야만을 폭로하는 한편의 신랄한 고발장이었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존엄성은 개만도 못한 처지…암울한 하청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해 줄 곳은 아무 곳도 없다…대한민국 노동법은 자본을 위한 법…억울함을 노동부에 고발해봐야 부당해고비 몇 푼 받으면 끝난다…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피눈물나는 심정으로 울분을 달랬어야 한다…현대 중공업 공장 사내복지 시설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식당, 샤워실, 화장실, 커피자판기 뿐…이런 현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대수술이 없는 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희망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현대어용노조는 그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조이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원칙은 말장난일 뿐…나도 앞서간 열사들의 고뇌와 희생에 같은 심정이다…부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실 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고인의 분노는 날이 서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인상된 시급 640원을 소급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가 하청업체 하나가 통째로 날라 가는 곳이 현대중공업이다. 원청노동자가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샤워실에 따뜻한 물과 수건조차 나오지 않는 곳이 현대중공업이다. 자본이 쳐놓은 차별의 그물은 이렇듯 촘촘하다. 하나하나 셀 수조차 없는 일상적 차별에서, 정규직 노조라면 상상도 못할 부당노동행위까지, 자본은 비정규직을 인간 이하로 대우했다. 위험수위를 넘은 차별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됐다.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이 지난해 발간한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실태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현재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모두 14,050명이다. 2002년 1월 사내 하청노동자가 9,128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9개월만에 5천여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숫자의 하청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비단 현대중공업만이 아닌 모든 직종과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정규직 폭증은 철저한 이윤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자본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선택했다. 자연스레 노동통제 및 노동강도도 직영노동자보다 가혹해졌다. 심지어 현대중공업은 다른 사내 하청업체로 이직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출입증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출입증제도는 사내하청 노동자 관리를 위한 전산망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다른 회사뿐만 아니라 사업장, 나아가 지역차원의 이동도 통제하고 있다. 노조결성을 시도했거나, 노조에 관심을 보이거나, 노조에 적극적인 노동자의 취업을 막기 위한 블랙리스트도 횡행한다.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별 인력관리를 위해 구축된 통합전산시스템을 원하청업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구성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원 대부분은 노조결성 직후 해고됐고, 지금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그야말로 보잘 것 없었다. 정부는 잇따르는 비정규직의 죽음과, 이 죽음을 불러온 사태악화의 주범이란 역사의 판결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이번 사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분명히 기록하고자 한다. 고 박일수 동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차 가해자는 분명 자본과 정권이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1년 만에 비정규노동자 2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살인정권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다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은 바로 우리 스스로다. 고인이 겨눈 비판의 화살은 정권과 자본을 향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안이한 인식과 불철저한 연대도 죽음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 이야기는 아예 말자. 그들이 '비정규 투사'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사회주의 언론'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보수정치인들까지 '차별 철폐'를 심심찮게 외치고 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민주노조 진영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비정규 사업을 '제1과제'로 삼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아직 한참 부족했다. 각종 정책과 제도개선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그 투쟁을 주도하고 이끌어야 할 투쟁주체는 아직도 형성되지 않았다. 비정규 투쟁주체 형성의 난망함이 그들의 불안정한 신분에 있음을 깨닫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정규직노조의 과제로 규정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임단협 말기 슬그머니 양보할 수 있는 '카드' 이상이 아니지 않는가. 혹 그렇다면 이는 차별에 멍든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 젖은 얼굴을 다시 한번 가격하는 것은 아닌가. 활동가라면 누구나 성경처럼 외우고 있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과 연대'는 공염불에 머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은 아직도 '노조운동의 현실을 모르는 학구파들의 푸념' 이상이 아닌가. 사람이 몇씩 죽어나가도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가 아닌가. 다시 반문해야 한다. 고 박일수 동지의 죽음으로 촉발된 이번 싸움에서 무엇보다 역점을 둬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열과 반목을 딛는 일이다.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기획하고 수행해야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급기야 오만을 넘어 방자함에 이른 자본과 정권은 사태의 본질을 노동계급 내부의 갈등으로 치환해 해석할 것이다. 계급 내부의 약한 고리를 물고늘어지며 하나의 대오가 형성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현대중공업노조의 이해할 수 없는(혹은 충분히 예상됐던) 반응은 그들에게 참으로 요리하기 좋은 호재임이 틀림없다. 단언컨대, 지금 싸움의 핵심은 계급 내부의 단결과 연대, 그 단순한 진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분명한 이 명제가 실현되지 않을 때 닥쳐올 불행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지경임을 확신한다. 죽음의 행렬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고, 그 때마다 분노에 몸을 떨던 노동자는 그 분노만큼의 절망에 빠져들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패륜적인 의혹처럼 어둠의 세력이 죽음을 부추겨서도 아니며, 현실의 노동운동이 무능해서도 아니다. 문제는 모두에게 닥친 노동운동의 위기 일반이다. 여기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전투성 혹은 허울좋은 투항에 경도된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좌표를 상실한 노동운동은 계급대중을 두 가지 길로 내몰았다. 하나는 죽음도 불사한 극단적 항거이며, 다른 하나는 당장의 안락함이 보장되는 투항이다. 그칠 줄 모르는 자본의 공세와 융단폭격 속에 이 땅 노동자는 빈사상태에 놓였다. 폭격은 때론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고, 때론 '손배·가압류'라는 꼬리표를 달거나 '해고'라는 얼굴로 나타났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노조결성도 시도해보고, 수배생활을 견디고, 크레인 농성도 해보지만 단단한 자본의 벽 앞에 절망하고 만다. '사회적 합의'를 미끼로 달콤한 미소를 보내는 자본 앞에, 어떤 이들은 쉽게 투항한다. 먼 앞날의 효과보다 눈앞의 성과에 만족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들은 차라리 자본의 품안으로 들어간다. 협조와 타협을 앞세우고, 투쟁의 준비를 내세운다. 공장 안에 틀어박혀 고전적인 임단협 투쟁에 안주하기도 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목소리 높이며 정작 문제의 근원은 외면한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투항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갖춘 것으로 포장된다. 보다 건강한 이들은 차마 투항하지 못한 채 끝간데 없는 싸움을 택하지만, 노동운동의 위기 속에 활로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죽음을 택한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명제 중 하나인 '노동자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통한 비정규직 철폐를 향해 총진군해야 한다. 정규직노동자의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장·단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강령 제·개정 운동을 통해 비정규 차별철폐의 정신을 담는 등 조직문화 혁신사업을 펼쳐야 한다. 임단협 투쟁에서부터 원하청 공동투쟁을 활성화해 민주노조 운동의 진일보를 이뤄내야 한다. 절망을 부르는 투항주의를 극복하고, 근본변혁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정방향을 걸어야 한다. 다시 한번 고 박일수 동지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
[성명] 노무현정권는 계속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 강제연행을 즉각 중단하라. 지난 2월 15일 노무현 정부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만나러 간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 샤말 타파 대표를 불시에 강제 연행되는데 이어, 이에 항의하는 2월 17일 출입국관리소 앞 집회를 출입국관리소 직원 80명과 경찰이 침탈하여 네팔인 굽타 씨가 폭력적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월말까지 단속추방을 하지 않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법무부장관이 이주노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과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이 언제였던가? 이번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부가 보였던 ‘대화와 양보’의 목적이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자체를 와해시키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누가 이주노동자들을 이 나라로 받아들였는가? 누가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들었는가? 바로 한국의 정부였다. 명백하게도 이번 사건을 비롯하여 고용허가제 발표 이후 벌어진 모든 일의 책임은 한국의 정부에게 있다. 과거 경제 부흥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그들이 처한 체불임금 문제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한 어떠한 해결도 없이 무작정 정부의 방침이니 나가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천만 원, 이천만원씩 소개비를 내고도, 임금체불과 임금횡령,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산업재해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도 묵묵히 일해 왔었다. 정부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못할망정, 되려 범죄자로 만들고 폭력을 행사하고 잡아가두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신자유주의와 정권의 횡포로 고통 받고 있고, 이에 맞서 싸우려는 모든 민중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보여주는 배제와 폭력은 단지 ‘외국’이주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현실이 민중들에 대한 분할과 배제, 폭력의 정치가 ‘국적’을 불문하고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비인간적인 비정규직 차별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농업과 자신의 삶을 파탄 내는 개방에 맞서 저항하는 농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들에게 붙여지는 ‘폭도’와 ‘사회 불안정 세력’의 딱지를 보라. ‘참여정부’에게 고통 받는 민중, 저항하는 민중은 참여의 주체일 수 없고 ‘2등 국민, 2등외국민, 또는 외국인’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여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정부는 강제 연행된 이주노동자들을 즉각 석방하고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을 토끼 몰이식으로 잡아들이는 작태를 즉각 멈춰야 한다. 또한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사면하여 합법화하고 사업장 이동이 보장되는 제도의 개선에 즉각 나서야 한다. 만일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 다면, 사회진보연대는 제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노무현정권의 이주노동자 탄압에 맞서 힘차게 연대투쟁을 진행 할 것이다. -2월 17일 사회진보연대-
현중사내하청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노동자 단결투쟁으로 비정규직 철폐하자! -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故박일수 동지 죽음에 부쳐 1. 또다시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을 했다. 고인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비는 바이다. 향년 50세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故박일수 동지. 그는 유서에서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나도 앞서간 열사들의 고뇌와 희생에 같은 심정이다.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 부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실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절규했다. 작년 10월 근로복지공단비정규노조 이용석 광주지부장이 분신 자결한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또다시 비정규 노동자의 분신사태를 접해야 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그동안 비정규직을 양산해왔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무엇 하나 대책도 없는 정부와 자본이 그 일차적 가해자이다. 2. 그러나 책임을 마냥 떠넘기기에는 우리 민중운동 진영도 그리 떳떳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화된지 몇 년이 되었고,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1의 과제로 받아안고자 노력해왔지만 이렇게 열사의 죽음을 또다시 맞이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불안정노동자층의 급증한 증가 속에서 이들을 노동운동의 주체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노동자계급 내에서의 차별과 분열을 단결과 연대로 극복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故박일수 동지의 죽음으로 맞이한 투쟁의 계기 속에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최대의 목표로 놓고 투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비수처럼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중공업 노조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울산대책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관건은 현장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단결일 것이다. 3. 비정규직의 죽음을 막는 길은 노동자가 계급으로서 단결하고 연대하여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 뿐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이를 위해 투쟁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2월 10일 노사정위원회에서 나온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안)'입니다.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안) 목차 제1장 정부는 일자리만들기를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경제․사 회․산업정책 전반을 포괄하는『일자리만들기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일관 성 있게 지속 추진한다. 제2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 제3장 고용안정과 격차완화를 통해 성장기반을 확충한다. 제4장 취업 애로계층에 대한 일자리 만들기 시책을 강화한다. 제5장 일자리만들기를 지원하기 위하여 노사관계 안정에 노력한다. 제6장 노사정은 본 사회협약을 다음과 같이 충실히 이행하고 확산시켜 나 간다. 제7장 노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정치권에 건의한다.
부산지역 비정규직 현황, 실태 보고서 2003년 전체 노동자 수가 1천4백만을 넘어섰다. 비정규직의 경우 해마다 증가하여 2003년 8월 통계청 조사에서만 임금노동자의 55.4%인 784만명으 로 집계됐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이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한 것 이 이미 6년째. 현정부의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우선 공공부분의 비정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차별해소는커녕 비정규 직이 더욱 확대심화 되고 있는 현실이다. 민주노총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100만대 민주노총 시대를 향한 준비과 정으로 비정규직, 미조직 5개년 사업방향을 설정하였다. 비정규직 조직화 를 위한 5대전략산업 선정을 포함한 4대 핵심사업의 추진이 바로 그것이 다. 그러나 총연맹에서의 전략적 계획과 지역에서의 활동들은 전혀 별개의 것 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업의 접점이라고 하면 '비정규직'이라는 주제의 집 회 행사 및 캠페인 정도의 수준에서 그칠 뿐 각개투쟁의 모습인 것이다. 부산지역의 경우, 비정상적으로 큰 서비스 산업의 덕택으로 비정규직의 비 율 또한 그만큼 클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나 아직 이것에 대한 제대로 정리 된 통계나 자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미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 조합, 단체 조차 그 범위와 현황이 체계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비 정규직 투쟁에 있어 연대의 필요에 대한 목소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 고 있으나 제대로 지역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그 어려 움이 크다. 그리하여, 2003년을 정리하고 2004년 새로운 한해를 맞는 시점에 부산지 역의 비정규 현황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한다. 현황정리는 2003년 년말 4 개월 동안 진행된, 제1기 미조직비정규직 신규조직활동가 학교 교육과정에 서 보고/듣고/정리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정책 담당자 혹은 전문가의 손으로 작성한 보고서가 아니라 분석틀이 덜 정돈되고 조잡한 수준이다. 2004년과 향후 지역내의 현황분석을 위한 자료로 거듭나기 위해서 충분히 수정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차례> 1. 비정규직 현황 개략 2. 현재 부산지역 비정규직 조직 현황 3. 각 단위별 현황, 실태, 주요노조, 조직화 방안 4. 민주노총의 4대 핵심사업 설명 5. 민주노총 부산본부 2003년 사업평가 6. 주요 연관 사업 : 최저임금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