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지상탱크에서 초고농도의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어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시인하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원전 사고등급을 3등급(‘중대한 이상 현상’)으로 두 단계 상향 조정한 바로 그날이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035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50% 이하로 ‘낮춘다’는 데 합의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교훈 삼아,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확대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변경하겠다는 것이 당정의 설명이다. 이미 한국은 시설용량에서나 발전전력량에서나 세계 5-6위권에 해당하는 핵발전 대국이다. 수정안에 따르더라도 핵발전 비중 50%는 프랑스에 이어 2위에 오를 수 있는 높은 수준이다. 현재 23기의 원전을 상업운전 중에 있는 한국은 단위면적당 핵발전 시설규모가 가장 조밀한 국가인데, 5기가 건설 중에 있으며 4-6기가 건설 준비 중임을 감안할 때 조만간 핵발전소 밀집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이는 그만큼 한국이 핵발전 사고에 취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납품 부패비리와 노후화된 원전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대폭 증가하던 상황이다. 이쯤 되면 핵발전 일변도로 이뤄진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려할 만도 한데,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정반대다. ‘일본 방사능 괴담을 추적 처벌해 근절하라’는 정홍원 국무총리나 ‘일본산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대응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정부는 정당한 문제제기를 억압하거나 차단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유출 사실을 시인하자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하겠다, 수산물 안전대책을 보강하겠다는 등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면서 실은 전력 민영화라는 잘못된 정책의 산물에 다르지 않은 ‘전력대란’을 핑계 삼아 원전의 불가피성을 호도하기도 한다. 세계적 추세와 비교할 때, 한국은 대단히 예외적이고 집약적인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왔다. 1970년대 이후 석유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안에너지 개발은 사활적 쟁점이 되는데, 초기의 가장 유력한 대안은 핵 에너지였다. 그러나 핵은 안전성에서 심각한 위험을 내포했다. 이에 따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반핵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원자로의 신규 건설은 1976-1980년을 정점으로 세계적으로 서서히 감소한다. 특히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사고와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핵 에너지의 위험이 가시화되면서, 프랑스일본한국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핵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사실상 중단하고 기존 발전소도 서서히 폐쇄하고 있다. 이 예외적인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로 핵발전을 추진한 국가로 손꼽힌다. 한국은 1970년대 외채의존적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심화하는데 이는 에너지 집약적 생산소비체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석유 의존도를 증가시킨다. 특히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석유위기를 계기로 자본은 핵 에너지를 석유 에너지의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1978년에 처음으로 핵발전소를 가동한 후 1980년대에 핵발전소를 대폭 증설하였고, 그 후로도 꾸준히 핵발전소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1980-1990년대 세계적으로 핵발전이 침체기에 진입했을 때에도 한국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하여 핵발전을 확대하고 ‘한국형 원자로’ 개발을 촉진했다. 저탄소 에너지원이 부각되던 2000년대 이후에도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핵발전소 건설 호황을 틈타 원전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근래 들어서도 정부는 원자력을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포장하고 국외 원전 수주를 통해 핵발전 기술을 수출동력 또는 신성장동력으로 선전하는 등 핵발전 확대정책을 국내외에서 지속하고 있다. 또 정부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줄기차게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 완성함으로써 원전 수출을 확대하는 동시에 장차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에너지 체제가 갖는 내적 모순은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부안의 투쟁에서 분명히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의 반핵운동은 핵발전 시설이 특정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막는 데에는 비교적 성공했지만 핵발전소 이슈를 지역주민의 문제를 넘어 전국의 문제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반전운동과 반핵운동이 평화주의의 지평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신화가 낱낱이 허구로 드러난 지금도 사회운동은 정부의 핵발전 확대 기조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에너지 체제가 안고 있는 잠재적 위험을 해결할 힘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을 예고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과 후쿠시마의 재앙이 ‘오버랩’되는 8월 말,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번 가을호에는 8월 25일 고려대학교에서 성황리에 치러진 2013 노동운동포럼 기사를 [특집]으로 실었다. 류주형과 박준형의 기사는 그날 발표된 발제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며 이유미의 기사는 그날 발표된 현장 사례를 요약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노동운동포럼에 참여한 토론자들과 청중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기획]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에 관한 두 개의 인터뷰를 실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엄길용 본부장과 아슬락센 의장에게도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전한다. 이와 함께 상반기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로부터 사회운동이 얻어야 할 교훈을 김동근이 기사로 정리했다. 끝으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한 고용률 제고’를 비판할 목적에서 서구의 노동시간 유연화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한 피에로 바소의 글을 [기획번역]으로 옮겼다. 9월에 나올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 비판 소책자도 많은 관심과 토론 부탁드린다.
주어진 시간 안에 노동자운동의 주객관적 상태를 상세히 진단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현 정세에서 우리 운동의 이념노선과제를 둘러싸고 쟁점을 형성하는 세 가지 주제에 관해 초점을 맞춰보겠다. 첫째, 경제위기에 따른 동아시아한반도 정세의 변화 속에서 노동자운동의 민족주의적 대응을 비판하고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를 이념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둘째, 경제위기와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을 기조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노선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셋째, 신임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당면 정치적조직적 과제로서 정치세력화와 전략조직화에 대해 제언한다. 그동안 사회진보연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제출해왔던 입장을 정세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는 훗날 1930년대 대불황에 비견되는 대침체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2007-2009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플랜 A’는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제로금리정책수량완화정책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자 ‘플랜 B’가 적극 동원되고 있다. 그 핵심은 2011년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따른 범태평양파트너십(TPP)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 구상이다. 오바마 정부는 TPP 협상을 2013년까지 완료하고 FTAAP 협상은 2010년대에 완료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상반기 첨예하게 고조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남한 노동자운동의 주류적 이념은 민족주의였다. 반제국주의민족자결민족공조에 입각한 북한의 선군정치핵자위론 옹호가 주류적 대응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남한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갖는 함의는 통합진보당의 자주적 민주정부론, 즉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1-2012년 일련의 통합진보당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한미동맹의 대북 위협과 함께 북한의 핵무장과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넷째, 남한에서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심지어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유실할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방적 군비축소’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와 같은 군사동맹 폐기 또한 지향해야 한다. 그럼 이상의 정세적 비판을 이론적으로 보충해 보겠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전쟁론의 전통에서 전쟁은 혁명의 조건으로 사고되었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구호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토대와 대중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를 통해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토대가 되고, 제국주의적 전쟁에 연루되는 대중이 민족자결주의로서 국제주의를 포함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전쟁론은 냉전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의 종전이자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미국의 대일 핵공격이었고, 뒤이은 냉전 하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미소간의 군비 경쟁은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불의의 전쟁’과 혁명적 내전이라는 ‘정의의 전쟁’을 구별하는 대신 평화라는 이상이념에 따라 ‘일방적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라는 구호를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능동적 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경제적 착취와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라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국제주의는 민족자결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며 나아가 평화주의는 대안세계를 향한 가장 중요한 이념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혁명의 조건으로서 전쟁’이라는 관점을 ‘평화의 조건으로서 혁명’이라는 관점으로 전도해야 한다. 이상 정치군사정세와 관련하여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제기된 민족주의 비판을 확대해보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 정세에서 민족주의 비판이 필요한 이유는 세계화와 그것의 위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종족적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가 발호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에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복지국가도 쇠퇴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권리’의 해체가 불평등과 배제의 심화로 이어지면서 대중적 불만이 고조되고 그것이 좌우를 막론한 기존 정치계급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하에서 배타적인 동일성의 감정이나 원한을 동원하는 극우 세력의 정치적 약진은 파시즘의 부활에 대한 우려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현재 그리스의 신나치주의 황금새벽당을 들 수 있다. 그럼 종족적 민족주의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현실적 쟁점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재외동포를 민족으로 간주하는 데서 드러나는 종족적 민족주의다. ‘동포’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민족주의 관념은 실은 다분히 종족적인 관념을 내포한다. 본래 ‘동포’(同胞)란 ‘한 어머니의 소생’을 뜻하는 말로, 혈연의식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통상적으로, 외국국적자(시민권자)에 다르지 않은 이들을 민족으로 부르는 반면 이주노동자를 민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2년 총대선부터 재외국민(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나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2011년 시행된 정부의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면서 F-4비자(재외동포비자) 자격이 없는 미등록 재외동포(대부분 중국동포)가 신청자격을 획득하게 되고 신청시 D-4비자(일반연수비자)를 받게 된다. 9개월 간 재외동포기술교육지원단에 의한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H-2비자(방문취업비자)로 비자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현재 방문취업제 하에서 재외동포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36개 업종에서 4년 10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동포’에 대한 ‘편애’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비동포 이주노동자와 정주 시민(및 선진국 재외동포)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등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의 제도화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분열을 심화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고한다면 과거지향적 측면보다도 미래지향적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즉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또는 현재로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고 현재로서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이라면, ‘민족’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서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겠다. 사실 종족적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확대된 가족으로서 종족이라는 관념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가족 비판이 종족적 민족주의 비판에도 적합하다. 출산제한 또는 출산장려 같은 가족정책인구정책은 성욕과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가부장제적으로 통제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은연중에 이주노동자나 혼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셈이다. 민족주의인종주의의 부활에 대한 대안은 ‘또 다른 세계화’ 즉 대안세계화 또는 대안지역화일 수밖에 없다. 가령 유럽연합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의 단계를 지나 제도위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제도적 기초를 변형하기 위한 경제정책과 세력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나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으로서 국가간 노동표준을 통일시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 임금 격차 축소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증가율 둔화가 가속화되고 고용률 상승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매우 긴요한 정책과제이며,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을 위한 임금체계 및 교대제 개편과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대책이 적극 제시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고용량·고용형태의 유연화를 거쳐 임금 및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조만간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실은 소책자를 발간할 예정인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보겠다. 신보수주의가 직접적인 방식, 즉 대량실업을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신자유주의는 간접적인 방식, 즉 ‘실업의 조직화’를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한다. 임금 및 고용의 유연화를 위한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효율성 임금,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추진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외부적수량적 노동유연화로서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부적기능적 유연화로서 비정규직화’를 포함한다. 어쨌든 ‘일자리 나누기’라는 개념 자체가 고용형태의 유연화와 함께 노동시간 및 임금의 유연화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충격을 배경으로 1998-2003년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 이름하여 ‘3제’의 도입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과정을 잠시 환기해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후속하는 1989년 노동법 개정 투쟁의 성과로 쟁취된 44시간 노동주에 반하여 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의 도입을 줄곧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으로 3제의 도입을 얼마간 저지하지만,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노총전교조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과 3제를 교환했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주5일 근무제에 따른 40시간 노동주가 도입되는 대신 변형근로제가 확대되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경제위기 속에서 대량실업에 직면한 각국 정부는 고용 유지창출을 위한 각종 경기부양책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노사정협정 또는 노사협약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가 임금 동결삭감 같은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코포러티즘이 특징적이다. 경제위기에서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핵심목표로 설정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고용창출에 덧붙여 고용안정특별법과 고용안정협약을 핵심 요구로 제기했다. 이 중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에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세적 대안이자 ‘장시간 노동체제의 해체를 통한 국민병 치유’, ‘무제한적 노동을 넘어선 노동해방’, ‘질 좋은 노동시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과제로 승격되는 듯 보인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비판해보자. 1998-2003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가 법정노동시간 단축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요구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것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대개 노동강도 상승으로 대체되는데, 이때 그에 비례해서 임금이 증가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게다가 노동강도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 양적질적으로 고용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역사적으로도 1990년대 유럽(독일·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경험은 변형근로제를 동반한 노동주노동년 단축이 오히려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통계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만일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상관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의 결과 우리 사회에는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에서 공히 불안전이 확대되어 전반적인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로 보면 ‘서비스화’가 진척되지만 1990년대 이후 고용 창출을 주도한 서비스업종은 음식료도소매숙박업과 같은 기술수준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 전체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여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부진이 지속되면 취업자수 증가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줄어들고 고용창출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고용창출로 인한 실질구매력 증대효과가 크지 않아 고용창출이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적으로도 ‘법정근로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시간당 임금이 증가하였다’는 긍정적인 통계 지표의 이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장시간 노동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현상이 공존한다.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초과노동 사용을 억제할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노동력 가치로 지불되는 임금은 주어진 임금제도 내에서 노사간 교섭(력)에 의해 결정되고 임금체계에 따라 변동한다. 현실에서 사용자는 초과노동을 이용하더라도 총액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정액급여를 낮게 조정하여 지불하고, 또한 준고용비용이 높은 노동자의 초과노동을 이용함으로써 추가고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비용 증대를 방지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용된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신규고용과의 대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 대비 현저하게 낮은 기본급 수준이 초과노동의 결정적 유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이라는 기조를 비판해보자. 민주노총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노동거부’나 ‘일중독 비판’과 같은 아나키즘 또는 문화주의를 하나의 이론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상은 그 실행 방안이 묘연하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장시간 노동체제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임금보전 욕구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조장하거나 노동자운동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에서는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수단을 고용조정의 유력한 대안으로 소개한 적도 있는데, 독일의 사례에서 노동시간계좌제는 ‘외부적’ 유연화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이 선택하는 ‘내부적’ 유연화 기제로서 물량 변동에 따른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여 집단 노동자의 개별화를 야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체제’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 즉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결합하는 임금률의 작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 속에서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 즉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전략과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하청계열화에 대한 분석이 결합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과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임금노동자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영유하는 착취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동기는 자본가의 무한한 이윤 증식 욕구에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 즉 부불노동시간의 생산을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년·노동일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부가가치를 증가시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과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가치를 감소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을 결합한다. 전자가 노동시간의 ‘외연적 연장’이라면 후자는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는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에 대한 논의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생산과정의 기계화와 자동화, 그리고 노동력 활용방법의 끊임없는 ‘합리화’는 노동강도 강화, 마르크스식으로 말해서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테일러주의에서 최근의 도요타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자연시간에 대한 기계들의 전체주의적 지배는 산 노동의 ‘죽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온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고정자본의 엄청난 증가는 노동강도를 비례적으로 상승시켰다. 또한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생산 증대보다 생산성 및 노동강도 증가를 목표로 두게 되면서 ‘노동절약’ 기술들에 대한 투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방금 이야기를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보겠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노동을 절약하는 대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따라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보편적 법칙이므로, 이에 대한 반작용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현대적인 ‘관리자 혁명’이다. 이는 곧 노동강도를 강화함으로써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방법으로서,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결합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통일시키는 경제적 방법이 바로 기계제대공업이 발명하는 새로운 임금지불 방법으로서 시간급과 (시간급을 변형한) 성과급이다. 시간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시간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을 강제한다. 시간급은 잔업과 특근 같은 초과노동이나 교대제를 통한 노동자 수의 증가를 통해서 노동시간을 외연적으로 연장한다. 성과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성과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고강도 노동을 강제한다. 성과급은 노동강도의 상승을 통해서 노동시간을 내포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본질로 한다. 이상 마르크스의 임금론은 곧 노조론으로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1997-1998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국 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산업 개방 및 선진화를 추진했다. 결국 지배계급의 입장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유일한 활로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여전히 기술경쟁력보다 저임금 기반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경쟁요인 분석 결과, 한국은 아직 세계 시장에서 확실하게 품질경쟁을 하는 품목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세계시장에서 아직까지 확실하게 품질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경쟁국 상품과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범용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취약한 동시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여전히 존재하여 신흥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점차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샌드위치론’ 또는 ‘넛 크래커(nut-cracker)론’이 틈만 나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내적 측면에서는, 1997-1998년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수출-재벌이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위계적 하청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자동차 가치사슬에서는 내부생산을 축소외부화하고 연구개발기획과 판매마케팅 부문을 강화하는 완성차기업을 정점으로, 중간관리 모듈기업(생산관리기업, 하위모듈기업)과 하위부품기업(전문부품기업, 하위납품기업)이 중층적이면서도 종속적인 위계관계로 연결되는 가치사슬구조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종속적 모듈 가치사슬’에서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함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한다. 기업 위계의 상위로 잉여가치 이전이 강조되는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기업 간 긴밀한 신뢰구축을 통한 동반발전효과는 줄어들고 일방적인 수익이전과 비용전가 구조만이 강화된다. 산업의 성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상위위계로만 집중되고 위계의 하위로 갈수록 그 조건이 열악해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원청 대자본의 부담 전가, 특히 경제위기 시기의 부담 전가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업 내 부담 전가 경로로서 1차 사내하청 노동(고용)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청 대자본의 정규직 노동(임금)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는 1차적으로 대공장내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서는 고용을, 정규직 노동에게는 임금을 매개로 부담 전가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경로는 기업 외부, 즉 외주 하청구조를 통해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서, 이를 구현하는 수단은 물량과 단가다. 물량과 단가 삭감을 통해 외주 하청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이는 또다시 외주하청 업체 내 파견사업체 및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임시직의 고용과 노동시간의 변동을 통해 흡수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특히 초과노동시간의 증감에 따른 소득 증감이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윤율 하락에 따른 위기는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 즉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전화로 전개된다. 1997-1998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이윤율 하락→자본축적률 저하→구조적 실업률의 상승→(교섭력의 약화)→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가 관찰된다. 1998-2003년 ‘3제’의 도입을 통한 노동유연화는 노동시간 및 임금의 개별화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 내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이 취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원하청노동자간 경쟁,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을 특징짓는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연대임금이 대안적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년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재벌체제에 대한 노동자 단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듯이,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정액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단결’ 프레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뒀던 노동조합의 의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노동자-자본가 간의 임금투쟁이라는 일종의 ‘관습’ 또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가 임금을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멀게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이탈리아 평의회노조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나고, 가깝게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한국 전노협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났던 연대임금 또는 정액임금 인상 운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 축소와 단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 논의 지형이 ‘장시간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다. 원론적으로는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는 법정 노동일 단축이 대안이겠지만,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하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나 지금의 역관계를 감안할 때,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상정할 경우 정부와 자본이 의도하는 노동유연화 기제와 맞바꾸는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논리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의 유연근무제 확대 방안,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비판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시간특례제도 폐지, 포괄임금제 금지 등 법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미시적으로는 교대제 개편 방안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임금 유연화 대응 기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노사간의 역관계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의 경우 이렇게 임금이 제도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경직성’이라고 부르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공서열급이다. 연공서열을 포함해서 임금이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성과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는 ‘생산성임금’이 실현되고 임금분배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생산성임금을 역전시키는 것이 바로 효율성임금으로서, 이는 임금의 개별화를 통해서 노동자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개별화된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아직 생산직에서는 연봉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단 연공서열을 비롯한 경직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의 문제를 고려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적조직적 과제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취임한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가 노동자운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으로 연합정당론과 전략조직화를 제시하고 있다. 둘 다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아래에서는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갈등이 첨예화돼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공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 하에 ‘분열된 진보정당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당으로 재편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정당론은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진보정당연합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석회의는 ‘자신의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재편과 재정립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맥락에서 정당연합 또는 정치연합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기존의 진보정의당, 진보신당[노동당], 녹색당, 노동 추진기구 등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그 조직들의 협의로 연합정당을 운영하자”). 이들은 현재 서구에서 나타나는 좌파정당 통합 흐름, 특히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나 프랑스의 좌파전선의 사례를 모델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리스와 프랑스 좌파의 사례에서 정당연합과 선거연합의 성공은 경제위기 하 대중운동의 분출과 기존 정당의 위기라는 정세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당연합과 선거연합 문제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게다가 국외 사례를 국내에서 참고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차이와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진보연합정당 구상에서 한국의 선거법과 정당법 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이 이중당적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연합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당법상 효력을 가지는 연합정당의 경우(정당연합)와 정당법상의 효력이 없는 경우(정치연합)일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적 고려 외에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제휴 대상의 범위, 선거구/후보 조정 등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어쨌든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의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존하는 진보정당이나 당면한 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합정당론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가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 순환이 극적으로 종료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보다 긴 호흡과 큰 틀에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반공발전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억압된 남한 노동자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항거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맹아기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정파운동의 각성기를 거쳐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1987-1989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 1990년 전노협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동시에 1989-1991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이념의 혼란 속에서, 1991-1992년 합법정당 결성을 주장하는 신노선이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노동운동 위기론’을 기화로 진보적 조합주의가 제기되었고, 1993년 전노대가 결성되면서 전노협이 상대화된다. 결국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모토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악을 얼마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외환위기경제위기 속에서 1998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3제를 수용한다. 1990년대 노동자운동의 수세적 대응 속에서 출범한 민주노총이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 건설 운동을 주도하던 정파들의 영향력은 1996년 총선 이후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1996-1997년 총파업의 한계를 ‘국회의원의 부재’에서 찾은 민주노총이 1997년 대선 대응 이후 조직적 결의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0년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 위에 정파들이 연합하는 형태로 민주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운동적 활력은 상당 부분 민주노총의 그것과 직결되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만성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민주노총과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의회에서 약진하였고. 급작스러운 성공의 이면에서 선거정치와 집권을 강조하는 수권정당론과 함께 민주노총으로부터 자립화하려는 ‘탈 민주노총’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정파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2007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분열했다. 대선 직후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종북주의가 대선 패배 요인이라는 평등파의 주장은 오류로 볼 수밖에 없는데, 반공반북주의에 편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주파의 민족주의가 노동자 국제주의나 평화주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적합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패권주의라는 비판 역시 일면적인데, 다수파의 당직공직 독점의 근본적 원인은 수권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평등파 일부의 ‘탈 민주노총’ 주장도 수권정당 지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분당 과정에서 ‘탈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사회운동적 노조로의 혁신이라는 쟁점, 수권정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의 혁신이라는 쟁점은 토론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민족해방 계열은 ‘자주적 민주정부론’에 입각하여 2011년 당 강령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한 뒤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와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전면 제휴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공직 선출을 둘러싼 부정부패와 정파간 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경험한 뒤 다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분열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대폭 우경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2012년의 위기를 정파 생존의 위기로 인식하며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재확인하고 2017년 집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민주당과의 정치적 제휴와 대중조직의 장악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민족해방 계열 일부는 (진보)정의당을 결성하여 중도로 변모하는 중이다. 2007-2012년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붕괴하는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정당과 노조 내외부의 민중운동 좌파 세력은 정세에 개입할 몇 번의 계기가 있었지만, 원칙적 태도로 정세적 입장을 환원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또는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더라도 그 실력 부족으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2012년 대선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민중운동 진영이 독자적이면서 통합적인 기획을 통해 대선 이후 질서재편을 위한 합의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민주노총의 부동주의와 좌파 세력의 의지주의로 인해 끝내 공동 대응이 무산되었다. 요컨대,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진보정당 결성 시도와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 시도 모두가 하나의 순환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인해 2000년대 들어 만성화된 민주노총의 위기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 정당/정파간 갈등이 대중조직의 통합력을 저해하고 진보정당에 대한 현장의 냉소와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단기적 실리주의에 따라 야권연대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파의 통합을 통해 민주노총의 갈등을 감축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에 대한 처방일 수는 있어도 원인에 대한 처방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노동조합 활동가든 정당 활동가든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의 이념의 복구와 조직의 재건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 실패의 요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연대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력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선거 대응을 위한 정당/정파들 간의 조정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자체의 재활성화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1980년대 사회운동노조주의의 사례로서 전노협과 함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질과 남아공 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집권 이후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략조직화 계급대표성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계급대표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적 기초가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재벌 및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서비스부문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현재 신임 집행부는 3기 전략조직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주로 기금 마련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략조직화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조직화 사업으로 돌파하고자 시도했고 이는 민주노총의 강화발전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이후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포함하더라도 10%에 미달한다. 낮은 노조 조직률에는 여러 제도적 요인이 있겠지만, 노동력의 평가절하에 기초한 수출경쟁력 확보를 성장 전략으로 추구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이야말로 노조 조직화와 투쟁을 억압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동안 독일과 같은 중상주의적 ‘제국주의’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것이 왜 남한에서 불가능했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전자철강조선 등 업종에서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업종 전체의 무노조 정책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수년간 전략조직화의 성과는 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국내에서 전략조직화의 사례로 많은 참고점이 된 미국노총의 시도를 살펴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 보겠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 이후 금융세계화노동유연화에 따라 생산성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미국노총은 생산적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에서 비생산적 서비스노동자의 조직화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자동차노조철강노조광산노조통신노조 대신 서비스노조교사노조공무원노조가 새로운 핵심 노조로 부상했다. 산업노동자와 서비스노동자의 차이는 생산적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측면 외에도 금융세계화의 영향을 받는가 아닌가라는 측면에 있다. 제조업은 무노조저임금의 외국으로 이동한 반면 서비스부문은 ‘육봉’(陸封, landlocked)되어 있다. 서비스부문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일정한 전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 출신인 스위니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사회운동노조’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직능이나 산업을 불문하고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동시에 다양한 노조를 흡수통합하여 거대노조를 형성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그러나 서비스노동자의 일반노조 조직화가 미국노총의 오랜 ‘전통’인 비즈니스노조의 청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미국노총이 서비스노조가 중심이 된 승리를위한변화(CtW)라는 제2노총(위원장 스턴)과 분열했다. 당시 스위니에 대한 스턴의 비판의 핵심은 민주당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대신 일반노조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노총이 분할된 결과 제1노총(AFL-CIO)과 제2노총(CtW) 사이에 일정한 산업부문적인 분할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산 및 분배수단에 기초하지 않는 노동자운동이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제2노총 소속 SEIU는 ‘관료적 비즈니스노조주의’와 ‘민주적 사회운동노조주의’와 구별되는 ‘관료적 법인기업노조주의’(corporate union)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미국노총의 사회운동노조 개혁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비즈니스노조의 청산과 사회운동노조로의 쇄신은 사실 조직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차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구상함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조직화 대상의 변경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조직화의 목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전자와 관련하여 특히 금융세계화와 수출-재벌 체제의 핵심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업종 및 공단 조직화가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맹목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화를 지양하고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신규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정파 구도에 따른 조직화 경쟁과 관할권 분쟁 사례가 빈번하고, 또 정부·지자체의 보조금을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보는 것이 능사라는 실용주의와 우경화가 만연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는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각각 ‘임을 위한 행진곡’과 ‘인터내셔널가’로 장식했다. 이 두 곡으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즉 노동절이다. 잘 알다시피 두 곡의 배경은 1980년 광주항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이다. 광주와 파리의 항쟁은 착취와 억압에 대한 봉기였지만, 그러나 ‘패배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해야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항쟁에 참가하지 못했던 ‘관객/구경꾼’들도 당시의 비극을 반추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배우/행위자’들로 변화할 수 있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518 추모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되고 전두환·노태우의 추징금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이미 1997년 대선 직후 IMF 위기 속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전·노를 사면한 것에서 오늘의 희비극이 예고되었던 셈이다. 광주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것이 노동자운동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라면 노동자운동의 부활이 광주를 새롭게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재건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미국의 시리아 공습 반대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에 대한 무력 사용 승인을 요구하는 제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현재 미 해군은 시리아가 접해 있는 지중해에서 순항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는 채비를 마쳤다고 한다. 이미 지중해 해상에는 각각 40개의 순항미사일(크루즈 미사일)이 장착된 미국 해군 구축함이 파견돼 있다. 미국 정부는 시리아 내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됐기에 “민주주의”와 “인도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습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어떤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결단코 반대한다. 그러나 시리아 내에서의 화학무기 사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민간인 피해를 낳을 대규모 공습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더욱이 미국이야말로 화학무기를 가장 많이 사용해 온 장본인들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0.15그램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 독극물이 포함된 고엽제를 대량살포한 바 있다. 2003년에 이라크에서 살갗을 들러붙게 하는 신형 네이팜탄을 사용했으며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는 뼈와 살을 태우는 백린을 사용해서 7일만에 4천 명을 학살한 바 있다. 서방 강대국들의 “인도주의적” 개입은 재앙만을 불러왔다. 19세기에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발된 “인도주의적” 개입은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인종청소는 오히려 더 부추켰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유아사망률은 더 높아졌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대중의 민주주의 염원을 보호한답시고 미국과 서방이 개입한 리비아의 경우, 폭격 한 달 동안 나토 군대는 자그마치 1천8백 회 이상의 폭격을 해서 상당한 민간인들의 사상자들을 낳았다. 우리는 미국이 그렇게도 시리아 민중들을 걱정했다면 왜 미국과 서방은 주변국으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 수백만 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 미국이 진정으로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벌이려는 이유는 중동 내에서 다시 패권주의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이다. 아랍 혁명이 이집트 군부의 반혁명으로 위기에 처한 가운데, 시리아에서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군사적 개입을 강화한다면 아랍 민중의 힘은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공습을 규탄하는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 평화를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은 시리아 공습을 반대하고 있다. 8월 2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미국 정부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특히, 영국 런던에서는 시리아 공습에 반대하는 5천여 명의 시위가 즉각적으로 조직됐고 8월 29일 영국 의회에서는 시리아 군사개입 동의안이 부결됐다. 그러나 국제적인 여론과는 달리,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한국 정부 관리들은 시리아에 대한 강경 대응을 미국 측에 촉구했다”고 한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은 새로운 중동전쟁을 야기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12년 계속된 ‘대테러전쟁’이 세계평화를 위협해 왔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또다시 새로운 중동전쟁을 시작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걱정하기는커녕 중동전쟁을 촉구하고 나선 김관진 국방장관의 언행에 우리는 깊은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더욱이 한국군의 해외 파병에 반대해 온 한국의 반전평화연대 세력은 레바논에 파병된 한국군 3백50여 명(동명부대)가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 휘말릴 수 있음을 준엄하게 경고하고자 한다. 동명부대는 시리아-이스라엘의 접경 지역인 골란 고원에서 겨우 4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올해 들어서만 시리아를 세 차례나 폭격했다. 이 지역의 불안이 계속된다면 더 많은 폭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 때문에 지난 몇 달 동안 자국 병사가 두 번이나 전투에 휘말려 억류되고 최근에는 부상자까지 발생했다. 그 때문에 최근 오스트리아와 필리핀 등 레바논에 파병된 군대들이 속속 철군을 결정한 바 있다. 동명부대는 아랍 민중이 제국주의 강대국에 맞서 싸우는 것을 막는 역할만을 할 뿐이며 그 때문에 위험천만한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글로벌 동맹’ 차원에서 시리아에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우리들은 위와 같은 시리아 개입도 불사하려는 현 정부의 태도가 미국의 군사작전을 지지하는 행동으로 결단코 이어져서는 안 됨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시리아에 대한 그 어떤 서방의 군사작전도 안 된다.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은 더 큰 재앙을 불러 들일 것이다. -. 미국의 시리아 폭격 계획 철회하라! -. 레바논의 동명부대 즉각 철군하라! -. 미국의 대 시리아 군사작전 반대한다! 2013년 9월 2일 반전평화연대(준)[경계를넘어, 국제노동자교류센터,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노동인권회관, 농민약국, 노동자연대다함께, 동성애자인권연대, 랑쩬,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민족문제연구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보건의료단체연합, 불교평화연대, (사)민족화합운동연합, 사월혁명회, (사)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회진보연대,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예수살기,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2005년파병철회단식동지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연대, 전국학생행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노동당, 통일광장, 통합진보당,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의친구들, 평화재향군인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진보연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한국청년연대 Statement Against US Plans to Bomb Syria US President Obama has asked Congress to pass his proposal for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The US navy reportedly finished preparations to launch cruise missiles in the Mediterranean sea. Already, US destroyers armed with 40 cruise missiles each are deployed to the Mediterranean. The US government claims a strike is necessary in order to defend ‘democracy’ and ‘humanitarianism’, given that chemical weapons have been used in Syria. We are adamantly opposed to any use of chemical weapons. However, a military strike that will cause massive civilian casualties is not the solution, even if allegations of chemical weapons use in Syria are true. It must be recalled that the US itself has the deadliest record of chemical weapons use among all countries. It sprayed massive quantities of agent orange in Vietnam, containing poison that is lethal at a dosage of just 0.15 grams; used a new type of napalm during the Iraq war in 2003; and murdered 4 thousand Iraqis in Fallujah in just 7 days in 2004 using white phosphorus, which burns through flesh and bone. The so-called humanitarian interventions by western powers have brought nothing but disaster. Originally devised as a term to justify colonialism in the 19thcentury,‘humanitarian’ intervention only fueled ethnic cleansing in the 1999 Kosovo war and led to heightened infant mortality in Afghanistan. In Libya, where the US and the West intervened ostensibly to defend the democratic aspirations of the Libyan masses, the NATO carried out over 1,800 bombing missions within a span of 1 month, again causing severe civilian casualties. If the US is so worried about the fate of ordinary Syrians, then why has it done nothing to help the millions of Syrian refugees in neighboring countries? The real motive behind the US’ planned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is to regain its imperial initiative in the Middle East. The strengthening of Western imperialist military intervention would certainly weaken the power of the Arab people at a time when the Arab Revolution is being threatened by the Egyptian army’s counter-revolution. But opposition to US bombing is spreading globally. Above all, the majority of US citizens are yearning for peace and opposed to an attack on Syria. According to a Reuters/Ipsos poll taken August 24, 60 percent of respondents said the US should not intervene in Syria: a mere 9 percent said the Obama administration should take action. In Britain, a 5 thousand-strong anti-war rally was immediately organized and the UK Parliament voted down a motion to support US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on August 29. In contrast to such international public opinion, Korean government officials reportedly urged their US counterparts to deal with Syria in a tough manner, according to the Wall Street Journal. Any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is extremely dangerous as it can unleash yet another Middle Eastern war, after 12 years of devastation and suffering brought by the ‘War on Terror’ that began with the attack on Afghanistan in 2001. We therefore find deeply disturbing the remarks by the Korean Defense Minister Kim Gwan-jin that in effect serve to instigate another war in the Middle East. Moreover, we the anti-war forces in Korea who have been opposed to dispatching Korean troops abroad, hereby warn the Korean government that the 350-strong Korean unit already dispatched to Lebanon can easily get embroiled in any US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This unit is stationed barely 40 km away from the Golan Heights, which straddles the Syrian-Israeli border. Israel has bombarded Syria three times this year alone; more such attacks are likely to come as long as instability continues in this region. It was under this highly combustible situation that Israel twice saw its soldiers get entangled in combat and detained over the last few months, and lately even saw casualties. International troops stationed in Lebanon, including the Austrian and Philippine units, recently decided to leave Lebanon for this reason. The Korean unit, whose sole mission is to prevent the Arab people from rising up against imperialist powers, would only court disaster by choosing to stay. President Park Geun-hye nevertheless said during the Korea-US summit meeting that Korea would intervene in Syria out of consideration for its ‘global alliance’ with the US. Standing for peace and against war, we hereby issue a stern warning that we shall not countenance any attempt by the Korean government to aid and abet US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The West must steer clear of any military move against Syria. A US strike on Syria will only lead to horror and destruction on a greater scale. -. Scrap plans to bomb Syria! -. Withdraw the Korean troops in Lebanon now! -. No to US military action against Syria!
한반도 핵전쟁 위험성 높이는 UFG 연습 중단하라! 한미연합사령부가 8월 19일부터 30일까지 2013년 한미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을 전개한다.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은 “UFG 연습은 한미 양국군의 준비태세를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동맹간의 연습”이라며 “이 연습은 실전적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범정부적 차원에서의 필수과업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UFG연습은 연례적인 방어연습이라는 한미연합사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군 격멸과 북한정권 제거를 작전목적으로 하는 작전계획 5027과 한미연합 '국지도발대비계획', '북한 급변사태'에 대응하는 작전계획 5029에 따른 대북 공격연습이다. 이에 따라 평양 점령과 북한 최고지도자 생포 작전, ‘국지도발’의 경우 도발원점은 물론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타격, 북의 대량살상무기 유출시 한미연합군 투입하여 탈취작전 등을 연습한다. 이와 함께 19일부터 22일까지 실시되는 정부연습인 을지연습은 ‘응전자유화계획’(충무 9000)에 따라 북에 대한 '안정화 작전'(점령통치)을 연습한다. UFG 연습에는 미군 3만명, 한국군 5만여명, 정부`민간인 40여만명 등 총 50여만명이 동원된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공격적 전쟁연습이 실전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특히, 작년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에서 선제타격전략을 최초로 공식 도입한 바 있는 한미군당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등 북한의 핵위협이 심각해졌다는 판단 하에 북한의 핵위기 상황 유형을 핵위협 단계‧사용임박 단계‧사용 단계 등으로 구분하여 각 단계별로 구체적인 타격 전략을 수립 중이며, 올해 UFG 연합연습에서 적용 및 검증하고 10월에 열리는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최종 승인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은 2010년 핵태세보고서(NPR)에서 부시정권의 대북 핵 선제사용(First Use) 전략을 그대로 유지했고, 이를 구체화하는 대북 핵선제 공격계획인 ‘OPLAN 8010'과 북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저지 작전계획인 ’CONPLAN 8099'을 세우고 B-2, B-52 전략폭격기 등을 동원하여 한반도에서 핵전쟁연습과 대량살상무기 탈취훈련을 수시로 벌여왔다. 한국도 이에 보조를 맞춰 선제공격 전략인 ‘능동적 억제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미당국은 대북 선제타격을 핵심으로 하는 ‘킬 체인(Kill Chain)’을 2015년 이전에 구축하기로 하고 각종 무기체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또 한국군 이지스 구축함이 수집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해 온 데 이어, '한국형 MD'(AMD-Cell)와 주한미군 TMD(TMO-Cell)를 연동시키고, SM-3 요격미사일 도입을 추진하는 등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로 포장된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미당국이 대북 (핵)선제공격 전략과 작전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할 타격체계를 갖추어 수시로 이를 연습하면 당연히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위험성은 그만큼 높아져 한반도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한미연합사는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 등 7개국의 유엔군사령부 파견국이 참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전협정 이행 및 준수 여부를 확인`감독하는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스위스와 스웨덴 요원들도 이 훈련을 참관한다고 한다. 이는 2010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가 "필요시 유엔사와 전력을 제공하는 국가들을 연합연습에 참여시킨다"는 내용의 한미 국방협력지침에 서명한 데 따라 2011년부터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형식적으로 정전협정 관리만 해오던 유엔군사령부(UNC)에 대해 2006년 전작권 전환 합의 이후 지속적으로 전시임무 복원을 추진하는 이유는 미군이 전작권 이양과 관계없이 유엔사를 존속시켜 한국군에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데 있다. 나아가 유사시 유엔사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북에 대한 점령통치를 함으로써 국제법적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50여만명이 동원되어 북한군 격멸과 북한 최고 지도부 생포, 안정화작전을 수행하는 UFG연습은 그 자체로 유엔헌장이 금지하는 ‘무력의 위협(2조 4항)’에 해당한다. 평화통일의 사명을 명시한 헌법 전문, 평화적 통일정책 추진을 규정한 헌법 4조,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 헌법 5조에도 위배된다. 정전협정 상 ‘적대행위 금지’(2조 12항), ‘군사인원 및 작전비행기 등 무기 증원 금지’(2조 13항 ㄷ, ㄹ목) 규정 위반이기도 하다. 평화적 통일, 상호 체제 인정과 존중을 규정한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 남북합의에도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미군주둔비부담(방위비분담) 협상 과정에서 북핵 문제로 인해 전략 폭격기 등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연합 군사훈련 등으로 연합방위력 증강에 소요되는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는 이유로 한국 부담의 대폭 증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미국은 북핵을 빌미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스스로 증폭시켜놓고 이를 핑계로 한국에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UFG연습은 대북 (핵)선제공격을 포함한 침략적이고 불법적인 전쟁연습이다. 미국은 이 같은 연습을 위해 비용 부담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한반도에 핵전쟁 위험성을 높여 평화를 위태롭게 하고 대미 군사적 종속을 심화하며 국민의 부담까지 강요하는 2013년 UFG연습을 즉각 중단할 것을 한미당국에 강력히 촉구한다. 나아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이를 위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촉구한다. 2013. 8. 19. 2013년 을지프리덤가디언 전쟁연습 중단 촉구 공동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노동인권회관, 노동자연대다함께,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평화연대, 사회진보연대, 새물약사회,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통일광장, 통합진보당,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화해통일위원회,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2013년 8월 2일 레디앙 칼럼] 오바마의 추가 핵군축 제안, 세계는 더 안전해질까?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2013년 6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우리의 전략핵무기를 최대 1/3 감축하면서도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결심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신전략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미국과 소련이 실전 배치한 핵탄두의 수를 1,550기로 제한했으나, 오바마의 새로운 제안은 그 상한선을 1/3 더 감축하자는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프라하 연설에서 미국 국가안보 정책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감축하며 세계 핵군축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맹세했다. 따라서 그의 이번 제안은 마치 핵군축을 향한 꾸준한 진보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얼마나 현실에 부합할까? New START는 무엇이었나? 오바마의 새로운 제안을 평가하기 위해선 그에 앞서 체결된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협정으로 2010년 4월 8일 서명되어 2011년 2월 5일 발효되어 2021년까지 효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협정은 실전 배치된 핵탄두의 수를 1,550기로 제한했다. (하지만 실제로 배치된 핵탄두의 수는 1,550기 제한을 넘을 수 있는데, 폭격기 한 대에 탑재된 탄두는 그 수가 얼마든 간에 1기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또한 협정은 실전 배치되거나 배치되지 않은 발사체,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중폭격기(장거리전략폭격기)의 수를 800기로 제한하고, 그 중 배치된 미사일과 폭격기의 수를 700기로 제한했다. 협정은 검증을 위해 위성 원격 감시를 허용했고, 1년에 18회 현지 사찰도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이 감축하자는 상한선은 실전 배치된 핵탄두를 대상으로 하며, 여기에는 비축분은 제외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상당량의 핵탄두를 비축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현존 운반 체계에 4,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배치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많은 언론이 정확히 잘못 전달하고 있는 바다. 또한 협정은 전술핵무기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록히트 마틴의 F-35 라이트닝Ⅱ는 전술핵 운반체 역할을 하는 F-15E와 F-16을 대체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어떤 제한도 가해지지 않았다. 실전배치 전략핵무기 감축 제안의 맹점 나아가 백악관은 핵무기 추가 감축이 미국의 일방적 조치로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즉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추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러시아의 협상 참여 여부에 운명이 달려 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를 협상에 참여하게 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New START가 규정한 상한선이 1,550기냐 1,000기냐는 문제는 거의 중요성이 없다. 그 이유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다. 같은 날 백악관이 배포한 <핵무기 사용 정책에 관한 새로운 지침>도 “기술적, 지정학적 위험에 대항하여 강건한 대비책(hedge)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대비책이란 바로 핵탄두 비축량을 의미할 것이다. 설사 미국이 전략핵탄두 비축량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감축한다고 제안하더라도, 이 역시 러시아에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 현재 러시아심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이나 재래식 타격능력, 우주의 군사화, 중국 핵전력을 견제하기 위한 다자간 핵군축 협상과 같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제안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장래도 그리 밝지 않다. 미국의 핵무기 의존도는 감소했나? 오바마 정부의 핵정책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베를린 연설보다는 오히려 같은 날 발표된 <핵무기 사용 정책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규모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역할도 축소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그 약속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2010년에 발표된 미국의 <핵태세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핵비확산조약(NPT)에 가입했고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위협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장기적인 ‘소극적 안전보장’을 강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 따라 보고서는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공격에 대해서는 재래식 무기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언급은 미국이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감축한다는 상징이라고 선전되었다. 즉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비상사태의 범위를 상당히 축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그들이 재래식 무기나 생화학무기로 미국 또는 동맹국에 공격을 가한다면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유일한 목적’은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에 대한 핵공격 억제라는 보편적 정책을 현재 시점에서는 채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지침>도 위와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전략 핵전쟁 계획은 6개의 적대세력, 즉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마지막으로 9·11 유형의 대량살상무기 공격 시나리오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중에 러시아, 중국과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란과 시리아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으나 핵비확산조약이 규정한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미국의 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은 거의 변화가 없다. 냉전식 핵전쟁 계획의 재확인: 선제응징과 전략핵 대응발사 <새로운 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잠재적 적국에 대항하는 선제응징 능력(counterforce capabilities)을 유지하며, 결코 등가보복전략 또는 최소억지전략에 의존하지 않는다. 선제응징 전략은, 미국 전략사령부의 용어를 쓰자면 ‘예방적’, 또는 ‘공격적으로 반응적’(offensively reactive)이다. 이러한 미국 핵전쟁 계획의 재확인은 오바마 정부의 핵 정책이 프라하 연설에 밝힌 ‘냉전적 사고의 종식’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또한 선제응징은 전략핵 대응발사(launch under attack)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미국 정부의 <새로운 지침>은 냉전 이후로 기습 핵공격을 무력화할 필요성이 상당히 감소했기 때문에 국방부가 전략핵 대응발사의 역할을 축소하기 위한 새로운 옵션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미국은 전략핵 대응발사 능력을 상당 규모 보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북극에 도달하는 데 약 30분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전략핵 대응발사를 실행하려면 수백 개의 핵무기가 경계 태세에 있어야 하며 발사 명령을 접수한 후 수 분 내에 발사가 가능해야 한다. 선제응징이나 전략핵대응발사와 같은 핵전쟁 수행 계획은 냉전과 거의 유사한 전쟁준비태세와 기술적, 운용적 요소를 요구한다. 이는 주요 핵보유국의 핵경쟁을 유지시키며 핵무기의 역할과 규모를 감축하려는 모든 노력에 장애를 초래한다. 오바마 등장 후, 세계는 핵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더 안전해졌는가? 오바마 정부는 실전 배치된 핵무기의 수를 감축하자고 제안할 뿐, 그 이상 어떤 의미 있는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다. 냉전식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선제응징’이나 ‘전략핵 대응발사’ 개념을 고수하며, 주요 적대국에 대한 핵공격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핵무기 현대화 계획에 따라 실전에서 사용가능한 핵무기 개량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이라는 실제적 위험을 의미한다. 2013년 7월 31일 미국 공군 지구권타격사령부의 제임스 코왈스키 사령관은 서태평양 괌 기지에 B52 전략폭격기를 6대 이상 지속적으로 배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 작전계획을 '폭격기의 지속적 배치'(Continuous Bomber Presence) 프로그램이라 명명하고 "6개월마다 새로운 B52 폭격기를 교대로 괌 기지에 순환배치하고 있으며 최소한 6대 이상의 폭격기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3년 3월에는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2대가 한·미 연합 독수리연습에 참여해 폭격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3월 27일 출발한 폭격기들은 공중 급유를 받으며 10,500㎞를 비행했고 28일 정오 한반도 상공에 도착해 전북 군산 앞바다 직도 사격장에 훈련탄을 투하한 뒤 기지로 복귀했다. B52나 B2 폭격기는 양자 모두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현재에도 진화하고 있는 미국의 핵전쟁 계획에서 한반도는 가장 중요한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끝>
<9차 미군주둔비부담 협정 체결 첫 협상 대응 공동 기자회견문> SOFA 위반, 국민 부담 가중, 집행 통제 불능 미군주둔비부담(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폐지하라! 2014년부터 적용될 미군주둔비부담 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한미 간 첫 협상이 7월 2일 워싱턴에서 열린다. 미국은 한국이 주한미군의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용(비인적주둔비, NPSC)의 40~45%만 부담하여 불공평하다면서 50%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주장은 한국의 부담 중 미군주둔비부담금만 인정하고, 카투사·경찰지원 등의 직접비와 부동산 임대료 등의 간접지원은 모두 무시한 것이다. 미국은 1992년도 한국의 부담이 76%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만족감을 표한 바 있다. 이후 우리의 미군주둔비부담금이 대폭 늘어나고 주한미군 숫자는 줄어들었는데도 미국은 2000년대부터 한국의 부담을 40% 초반대로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해왔다. 이는 일본의 부담을 줄곧 70% 중반대로 평가하는 것과도 대비된다. 이처럼 미국의 비인적주둔비 개념은 한마디로 ‘고무줄 잣대’이고, 특히 우리에게 불평등한 기준이다. 그런데 한미 국방부의 통계(2010년 기준)를 종합하면 우리는 이미 주한미군 비인적주둔비의 65.1%를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 저평가된 부동산 임대가치, 누락된 미군기지 이전비용과 미군기지 환경오염 치유비용 등을 합치면 우리는 이미 70%가 넘는 부담을 하고 있다. 협상 때마다 미군주둔비부담금이 모자라다면서 불공평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증액을 강요해 온 미국은 우리 국민 혈세를 엉뚱한 데 흥청망청 쓰고 있다. 미국은 2004년 미2사단이전비용은 자신들이 부담하기로 협정(LPP)을 맺어놓고도 미군주둔비부담금 중 군사건설비를 빼돌려 미군기지이전비용에 쓰고 있다. 주한미군은 2008년까지 무려 1조1193억원의 미군주둔비부담금을 미군기지이전에 쓰기 위해 빼돌려 돈놀이에 탈세까지 자행했다. 미상원 군사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에서의 군사 건설 프로젝트가 적절한 감독없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기여는 116억원이나 되는 평택 캠프 험프리에 주둔하는 미2사단을 위한 박물관이나 16억원에 달하는 용산미군기지를 위한 식당시설과 같은 의심스러운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공돈”으로 간주된다고 밝히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에 50억원짜리 제빵·제과시설을 신축하려다가 역시 미 의회의 제지로 중단되기도 했다. 한미 간 협약에 따라 한국 업체가 맡게 돼있는 군수지원 업무를 미국회사 록히드 마틴의 자회사 PAE Korea에 맡겨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06억원의 부당이득을 안긴 사례도 있고, 미군주둔비부담금 중 인건비 11억원을 영리 목적의 미군기지 내 드래곤힐 호텔 종업원 인건비로 돌려쓰다가 적발된 사실이 ‘미국 국방부 감찰관 보고서’에서 확인된 바 있다. 협상 때마다 ‘미군철수’ 등을 내세우는 미국의 증액 강요에 못이겨, 1991∼2013년 사이에 우리 국방비가 4.6배 늘어나는 동안 미군주둔비부담금은 8.1배나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군주둔비부담금이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서 2.5%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 요구대로 미군주둔비부담금이 또다시 증액된다면 우리는 2014년부터 매년 1조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미군주둔비부담금이 국방비 증액을 크게 압박하여 결국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부담한 미군주둔비부담금만 합쳐도 주한미군의 장비가치 약 10조원을 넘어선다. 이는 미군주둔비부담금을 한국군 전력강화에 투자했다면 주한미군이 보유한 것에 상응하는 장비를 우리가 모두 갖출 수 있었다는 뜻이다. 미군주둔비부담금이 자주적 방위력을 갉아먹고 한국 국방의 미국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군주둔비부담 협정은 한미SOFA 제5조에 따라 미국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 경비의 일부를 한국에 떠넘기는 불법적인 협정이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성격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대북 방어에서 신속기동군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대북 방어 임무를 벗어난 주한미군을 위해 기지를 무상으로 임대해 줄 필요가 더 이상 없고,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부담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군주둔비부담 협정은 조속히 폐지되어 마땅하다. 미군주둔비부담 협정 자체가 한미SOFA 5조에 대한 예외적 특별조치협정이므로 새로운 협정을 맺지 않으면 미군주둔비부담금 제도는 자동적으로 종료된다. 이에 우리는 한미당국에 불법적이고 불평등한 미군주둔비부담 협정 폐지를 촉구한다.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노동자 고용보장 문제 등으로 협정을 당장 폐지하기 어렵다면 우선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군사건설비를 폐지하여 미군기지이전비용으로의 전용 등 불법성과 재정주권 침해를 근절해야 한다. 우리는 첫 협상에 나서는 우리 협상 관계자들이 우리의 주권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적극 임할 것을 촉구한다. 2013. 7. 2. 노동자연대다함께,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미군문제연구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전망 5월에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위기가 비상하게 고조된 상황에서 60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었다.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의 본원적 기능이었던 군사동맹을 한층 강화하는 가운데 ‘지역적세계적 안보 및 경제발전과 불가분으로 연계되어 있는’ 한미관계를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한미정상회담 결과 채택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은 최근 한반도 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태평양으로의 선회’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고 한국이 이러한 미국의 지역적세계적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적극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최근 한미동맹 대 북한의 대결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이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세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감축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오늘날 한반도 위기의 구조적 요인이자 역사적 기원으로서 세계적지역적 차원의 미국 헤게모니와 한반도 차원의 냉전적 구도의 존속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한반도 위기의 정세적 요인이자 현실적 모순으로서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와 미일동맹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제고 ▲한미연합전력 대 북한의 군사적 대결과 박근혜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과정을 차례로 분석한다. 끝으로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전망하면서 평화주의와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의 과제를 논의한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북핵 위기’ 탈냉전 이후 (아버지) 부시 정부는 레이건 정부의 ‘2차 냉전’이나 ‘두 개의 중국’ 노선과 단절하며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이후 탈냉전 시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공식화한 것은 클린턴 정부로, 이들은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과의 ‘교류’(engagement)를 시도한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아들) 부시 정부 1기에는 신보수주의적 국방부를 중심으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된다. 반면 부시 정부 2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국무부가 중심이 되어 주요2개국(G2) 구상에 따라 2005년 미중전략대화를 시작하고 2006년에는 전략경제대화를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 역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정확히 조응하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아버지)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 상응하여 1990년과 1992년에 각각 소련, 중국과 국교를 체결하고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도 각각 클린턴 정부와 (아들)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관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한편으로는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하는 모순을 내포했다. 또 동북아 금융물류 중심국가 구상과 연계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부시 정부의 대테러 전쟁과 ‘북핵 위기’ 정세에서 한미동맹 현대화와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귀결되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은 한소 국교수립, 한중 국교수립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경제위기와 함께 에너지식량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사실상 붕괴했다. 그리고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선군정치’가 출현하게 된다. 선군정치는 인민군이 ‘주체혁명’의 방위자에서 그것을 완성하는 주력군으로 격상된다는 의미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선군정치가 본격적인 핵무장으로 발전했다. 한국전쟁 이후 불안정한 정전체제 하에서 미국이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계속 유지하는 상황에서 ▲탈냉전 이후 중소 핵우산의 공백 ▲주한미군의 핵우산과 남한의 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 ▲‘수직적 확산’을 유지한 채 ‘수평적 확산’만 규제하려는 핵비확산조약(NPT) 체계의 이중 잣대 ▲장기간에 걸친 대북 경제 봉쇄제재의 파괴적 효과 ▲첨단 재래식 무기 대비 핵무기 비용의 상대적 이점 등이 북한의 핵무장을 유발한 요인이다. 1993-94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폐연료봉 추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 제재안 결의로 빚어진 1차 ‘북핵’ 위기 국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되었다(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대가로 경수형 원자로 2기,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북한은 1998년 3단계 로켓 발사 실험으로 대응하였고, 이 국면은 2000년 ‘조미 공동 코뮤니케’ 체결로 봉합된다(미국이 북한에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 원조를 약속하는 대신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부시 정부 들어 미국은 일본을 향해 배치된 100여 기의 북한 노동미사일을 문제 삼으며 또 다시 기존 합의를 파기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미 국무부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여부를 추궁하면서 2차 ‘북핵 위기’ 국면이 시작되었다. 이에 북한은 ‘인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NCND)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안전 보장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일괄 타결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제안 거부와 그에 뒤이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선언, IAEA 사찰단 추방, NPT 탈퇴 (재)선언으로 위기가 고조되다가 이 국면은 2003년 8월 6자회담 개최로 일단락되었다.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선언, 2007년 213합의, 2007년 103 합의가 도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 틀은 기본적으로 북미협상이라는 일대일 협상에서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을 여러 나라로 분산하는 구조였다. 더구나 미국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을 ‘정권교체가 필요한 깡패국가’로 규정하였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부시 정부 말기 북한은 2008년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하고, 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 의혹이 제기되면서 같은 해 12월 6자회담은 결렬되기에 이르렀고, 지금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위기와 대화가 끊임없이 교착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2009년 2차 핵미사일 실험, 2012-13년 3차 핵미사일 실험으로 핵미사일 역량을 단계적으로 제고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에는 ‘북한과의 협상이 핵 공갈과 그에 따른 갈취의 악순환만 조성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런 인식은 오마바 정부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 정책기조에 반영되는데, 이는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시키기 전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외전략과 대북정책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심화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위기는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연준의 통화정책(제로금리수량완화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과 같은 비상위급대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더블 딥’을 예방하는 데 얼마간 성공하지만, 일련의 정책은 금융위기로 인한 민간의 부채를 정부의 부채로 이전한 것으로, 이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위기와 달러위기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유럽연합의 재정위기은행위기를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 경제는 추가적인 적자재정정책 실행의 곤란과 주택시장의 부진이라는 두 가지 역풍에 직면해 있다. 비상위급대책에 의해서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차선책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2011년 오바마 정부가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정책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된다. 이중에서도 최근 부각되는 것이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모형으로 삼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이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global commons)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Anti-Access/Areal Denial, A2/AD)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2010년 제출된 미국의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는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옵션을 유지했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축소될 수 있으니 ‘3원 전략 핵전력’(전략 폭격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망(MD),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유지해 전략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선전대로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북한이나 이란 같은 비확산 체제의 이탈 세력을 관리하여 핵독점 체제를 유지하려는 명분일 따름이었다.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초당파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 재검토하였다. 이 보고서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더 이상 사용가능한 마땅한 옵션이 없어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명시적 묵인’(explicit acquiescence) ▲북한을 비핵화하는 데에는 장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협상과 압박의 수단을 병용하여 북한의 수직적수평적 확산을 방지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는 ‘관리와 봉쇄’(manage and contain) ▲제재와 인센티브를 병용해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비핵화의 길로 복귀하도록 시종일관 압박하는 ‘원상복귀’(rollback) ▲경제적 제재를 확대하고 해상 봉쇄를 강화하는 등 북한 지도부를 전복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펼치는 ‘정권교체’(regime change) 등 네 가지 옵션을 검토한다. 첫 번째 옵션인 ‘인정’ 정책은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연계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이는 긴장 완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역내 동맹국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은 미국 힘의 약화와 NPT 체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핵 보유를 추구하는 여타 국가들에 대한 협상력을 침식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 옵션을 채택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네 번째 옵션인 ‘정권교체’ 접근법은 일체의 대화와 협상을 북한이 핵 위기를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한 구실로 간주한다.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남북통일이나 또는 개혁성향의 북한 지도부의 수립 등과 같은 정권교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안정성이라는 대가를 감내하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중국이 지역 평화와 안정을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남한도 갑작스러운 정권교체 시 부담해야 할 비용을 우려한다는 점이 이 옵션의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수평적수직적 확산을 지속하면서 비핵화의 길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오바마 정부는 비핵화를 계속해서 압박하는 공식 방침에 병행해서 이 옵션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한다. 두 번째 옵션인 ‘관리와 봉쇄’ 접근법은 오바마 정부 초기의 대북정책과 가장 유사한데, 이는 북한의 수직적수평적 확산 방지를 최우선적이고 직접적인 목표로 삼으면서,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관리와 봉쇄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는 방책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관리와 봉쇄 접근법은 또한 미국이 오로지 반확산에만 관심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결과적으로 비핵화보다는 북핵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관리와 봉쇄는 비핵화 노력과 결합되어야 한다. 세 번째 옵션인 ‘원상복귀’는 미국이 역내 국가들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핵 포기를 강제한다는 구상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할 경우 2005년 ‘9.19 공동 성명’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받게 될 것인 반면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을 비핵화 프로세스로 복귀하게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본다. 중국의 경우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옵션 2의 잠정적 편익을 인정하면서도 옵션 3을 중점적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오바마 정부에 권고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시리아, 리비아 등으로 수출되거나 이란과 연계되는 것은 미국 국가안보와 지역의 안정에 직접적 위협이 되므로 수평적 확산을 금지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추가적인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수직적 확산을 중단시켜야 한다. 셋째,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세계 NPT 체제에 중대한 도전이 되므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난민의 발생, 핵무기핵물질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 상실, 내부 혼란의 장기화와 같은 북한 우발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의 고립이 현 지도부의 지속에 도움이 되는 반면 노출은 궁극적으로 정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므로 접촉(engagement)을 확대해야 한다. 여섯째,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 등 북한 인민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국의 대응 이런 정책적 옵션 내에서 오바마 정부 1기의 대북정책은 실제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6자회담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비가역적 조치’를 취한다는 보장이 없는 한 거부한다. 둘째, 6자회담이나 북미 대화에 앞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남북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평가를 변경하도록 노력한다. 넷째, 합동군사훈련과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에 대응한다. 이러한 미국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에 따라 대화와 협상이 교착상태에 처하고 한미일의 군사적 압박과 국제적 제재가 한층 강화되자, 북한은 오바마 정부 2기 출범 직후인 작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주기를 명분으로 로켓 실험을 강행했다. 이번 로켓 실험 성공은 이미 확보한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에 도전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서 올해 2월 진행된 3차 핵실험은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의 소형화개량화를 목표로 한 실험이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에 대한 기술적 평가와 더불어 ‘전략적 인내’에 대한 정책적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전에 행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이 지역안정을 해치는 것은 물론 미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미국 국방부가 보고서에 공식 반영되어 있는데, 여기서 미 국방부는 북한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안보적 도전’이라고 평가한다. 북한이 남한, 일본, 태평양 전구(theater)에 도달할 수 있는 이동식 탄도미사일 역량을 확보했고 핵기술 개량과 함께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제한된 자원 투입 규모와 실험 빈도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미사일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은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출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했다거나 ICBM이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초고열과 압력에 견디는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보고서는 정보당국 간 이견을 보인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수준에 대한 평가도 다루지 않고 있다(4월 미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고 평가했으나 국가정보국(DNI)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출된 다른 기관의 보고서는 북한이 아직 높은 수준의 핵폭탄 위력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북한이 핵탄두를 충분히 소형화경량화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미국에 대해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최소억제’ 수준의 핵전력을 구축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현재 소형화경량화된 핵탄두를 ICBM에 탑재해 미 본토를 타격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국방연구원의 한 분석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서는 남한의 재래식 공격을 제2격하여 무력화할 수 있는 충분한 핵무기 수량과 위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평가한다. 이런 기술적 평가를 바탕으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을 부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핵확산 활동을 봉쇄하는 데 주안점을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이 상황을 통제하도록 허용한 것이 오바마 정부 1기 대북정책의 결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유화 시기에는 접촉을, 긴장 시기에는 압박을 병행하며 북한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동안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미사일 역량을 키웠고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확대되어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 2기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여 일관되게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정책적 옵션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3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오바마 정부의 일련의 입장은 ‘전략적 인내’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인 정책의 효과를 높이는 추가적 조치를 적극 구체화하고 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안정화와 비핵화를 위해 한미일의 공조가 필수적이며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재확인한다 ▲미국과 중국 간에 북한 문제에 대한 불신을 감소시킴으로써 중국이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여 북한의 행동을 순치하고 비핵화 프로세스에 복귀하도록 견인한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로 복귀할 경우 협상에 임하고 협상에서 합의한 약속을 이행한다. 이에 따르면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단중기적으로는 국제적 제재 강화, 중국과의 공조 강화 등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강제하는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확대하고 한미일의 군사적 압박을 강화함으로써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면서 북한이 계속해서 도발을 지속한다면 압박을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의 위협과 도전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정책적 옵션으로서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3-4월 한미동맹과 북한의 군사적 대결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북한의 대결 구도가 첨예해진 가운데 3월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여 한층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돌입하였다. 이와 함께 한미연합전력은 3-4월 확장억지 성격을 지닌 대북 무력시위를 본격화하였다. 한미연합훈련에서 전략폭격기 B-52, 스텔스폭격기 B-2, 핵잠수함 샤이앤이 동원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미국은 북에 대한 핵위협을 실제화했다. 또한 한미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시 도발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한미국지도발대응계획’도 발효했다. 북한도 3월 들어 대미 공세 수위를 한층 높였다. 최고사령부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5일), 외무성의 ‘핵 선제 타격권 행사’ 발언(7일), 조평통의 ‘남북불가침합의 무효’ 선언(8일),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선언(27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은 강력한 핵 선제 타격이 포함된다”), ‘남북 관계 전시상황 돌입’ 선언(30일)이 차례로 이어지며 한반도의 위기감은 날로 고조되었다. 또한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하고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과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했다(‘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 ‘우주개발법’). 그 후속조치로 2일에는 영변 핵시설 용도의 조절변경을 언급했는데, 이는 기존 핵시설을 이용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4월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전개된 양측의 작용반작용은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우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사활적 과제로 추진 중인 ‘태평양으로의 선회’ 전략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단적으로, 미국은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온 MD 체제의 당위성을 이번 계기를 통해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 무기 외에도 F-22 스텔스전폭기, SBX 레이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는 파격적 군사 조치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격 실행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축을 이루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비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재처리 시설을 공인받고 있으며 핵물질과 핵기술 두 측면에서 언제든 핵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빌미로 핵무장화와 ‘보통국가화’를 계속 시도했다(2011년 무기수출금지 3원칙 수정, 2012년 우주관련법 개정). 그리고 아베 정부는 올해 2월 ‘긴밀한 미일동맹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선언하고 3월 TPP 협상 참가를 결정하고 4월 주일미군 재편 협정을 마무리했다. 박근혜 정부도 북핵 억지와 불용이라는 원칙 하에 각종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여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한편 한미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핵억지력을 제고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보수세력들은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 등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거나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는, 전자의 경우 ‘국제법상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평화 차원에서 부도덕하며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동북아에서 미중 간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것이므로 미국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공약과 양해를 얻어내는 기제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가령,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남한이 동맹국과의 조정·합의를 거쳐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사할 토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글로벌 파트너십으로의 진화 이런 상황에서 5월에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보다는 제재와 한미동맹의 군사적 압박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더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였다.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은 ‘북한의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그리고 반복되는 도발행위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위기를 만들고 양보를 얻어내는 때는 지났다”고 말함으로써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로 표현된 기존 정책기조를 변경할 뜻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한 목소리로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보조를 맞췄다. 대북 정책 공조를 뒷받침하는 군사동맹 강화 방안도 폭넓게 논의되었다. 공동선언에서 미국은 확장 억지와 재래식 및 핵전력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 사용을 포함한 대한(對韓) 방위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특히 이번 공동선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정보·감시·정찰 체계 연동을 포함한 포괄적이고 상호 운용 가능한 연합방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한국의 미사일방어망(MD) 체계 편입을 암시하고 있다. 향후 일본과 남한의 MD 참여와 함께 이와 연관된 한일정보협정 체결, 한일 양국의 재래식 전력 증강(첨단무기 도입) 등이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양국은 한미동맹을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에도 합의했다. 공동선언은 이러한 동맹 발전의 중요한 전기로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꼽고 있다. 한미 FTA가 한미 양국 간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여 양국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군사동맹과 함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linchpin)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TPP 참여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공동선언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미 FTA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조만간 미국이 박근혜 정부에게 TPP 협상 참여를 종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동맹은 2003년 노무현-부시의 ‘동맹 현대화’와 2009년 이명박-오바마의 ‘동맹 공동비전’을 거치며, 동맹의 범위를 한반도에서 지역과 세계로 확대하고 동맹의 이슈를 군사안보에서 경제문화 등으로 확장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해왔다. 가령, 이라크전을 비롯한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한국이 파병으로 호응하고, 해외주둔미군재배치전략(GPR)에 따라 주한미군기지를 재편하고, 한미 FTA를 체결발효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세계화·지역화 전략에 편입하고, 핵안보정상회의와 같은 미국의 핵독점체제 유지를 위한 거버넌스를 지지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번에 합의된 ‘글로벌 파트너십’ 개념은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인권, 인도적 지원, 개발 지원, 테러리즘, 원자력 안전, 사이버 안보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통치성(global governance)에 한국이 하위 파트너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한다.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도발을 중단하면 대북 지원과 경제공동체 건설 등을 추진하고 북한이 도발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대화와 억지가 배합된 정책으로서, 이는 오바마 정부의 ‘투 트랙’에 입각한 ‘전략적 인내’와 공조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또 정부는 한미 정상 간에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합의점을 찾았다는 것을 두고 향후 대북정책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상대적으로 방점을 찍고 있는 한국이 한미 대북공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동선언은 2009년 이명박-오바마의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 기초하여 ‘비핵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재론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기존 노선과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최근 케리 미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현재 상태에서 신뢰프로세스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란 외교적 수사로 보는 것이 옳다. 한국이 대북정책을 주도한다는 것도 실은 북미대화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그간의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북핵 제거 및 확산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4월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나 5월 방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연이은 강경 발언 등 일련의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박근혜 정부 스스로가 신뢰프로세스를 선언 이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최근 비상하게 고조된 한반도 긴장 국면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여기서 의미있는 합의가 도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설령 단기적으로 대화 국면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북한은 지금까지 이뤄진 대화 또는 협상을 상대방이 진정한 의도를 숨기고 자신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기만술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미일 삼각공조가 북핵을 빌미로 점점 더 중국을 포위하는 형세를 조성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은 점증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 최근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적 충돌은 물론 핵전쟁의 가능성이 엄연히 실존함을 보여주었다. 오마바 정부는 동아시아 주둔미군의 전쟁태세를 한층 더 강화하며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 정책을 재확인하고 MD 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남한은 북한 핵을 빌미로 미국과의 동맹을 포괄적으로 강화하면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비핵화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을 주장하며 핵미사일 역량을 제고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핵재래식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종국적으로 비핵지대를 구축하려는 평화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회운동은 대화나 협상을 통해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 외에 한반도에서 핵재래식 군비경쟁과 전쟁 위기를 감축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개월 간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사회운동의 대응을 간략히 평가하면서 향후 과제를 점검해보자.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으로 결집한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등 범 민족해방 계열은 ‘관련국의 군사적 행동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시작’을 요지로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미 군사대결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북에 대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오류와 맹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한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해야 한다는 관념, 또는 최소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을 내포한다. 우선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의’ 핵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핵비확산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크지 않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부수적으로는 주변국의 보수적호전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진보적 평화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도 낳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이후 최근까지 전개된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한 협상용이라거나 자위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2012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일괄타결이냐 전면전이냐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대결 논리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었고 그 판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남한에서는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장은 고사하고 대중적 토대마저 유실할 위험이 크다. 강조하건대,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핵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억지 요인이 아니라 유발 요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핵 전략가들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에 대해 핵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핵전쟁을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 또는 현실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한다는 것은 예상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위험, 하지만 그 대가가 인류전체의 절멸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에 대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아울러, 설령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그 결과 일정한 타협이 도출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근본적으로 침식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동아시아 핵재래식 군비경쟁 또는 전쟁위기의 근본적 유발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의 대화나 협상이 갖는 제한적 의의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자신의 일관된 요구로 채택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폐기,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의 군비 증강 반대와 같은 ‘일방적 군비축소’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확장억지 성격을 지닌 합동군사훈련 저지, 미국산 첨단무기 도입, 한국형미사일방어망(KAMD) 구축 및 MD 편입 반대, 주한미군 방위비 추가 분담 저지를 목표로 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아울러 양국 간 입장 차이로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독자적 핵무장화와 핵수출을 용이하게 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핵무장을 해제하고 군사동맹을 폐기하기 위한 평화운동의 국제적 연대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끝으로, 이 글의 주요 분석 대상은 아니지만, 한국의 TPP 협상 참여 여부를 예의주시하면서 정부의 자유무역협정 전략 전반에 대한 포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한중 FTA, 한중일 FTA 협상 상황을 고려하면서 TPP 참여 문제를 신중히 결정한다는 입장을 가져왔지만, 한미정상회담을 전후로 미국 당국자들이 “TPP는 미국 정부의 우선 정책 과제”라고 거듭 강조한 사실을 감안할 때 TPP 참여 문제를 계속 우회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미 FTA가 한미동맹 현대화나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맥락에서 추진되었고 현재 일본의 TPP 협상 참여도 미일동맹 강화 맥락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글로벌 파트너십’ 개념은 향후 TPP 참여의 강력한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운동은 한국의 TPP 참여가 초래할 정치적경제적 효과를 비판하면서 정부의 FTA 추진 전략을 비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