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폐기하기 위한 실질적인 투쟁을 위하여 모두가 “비준무효! 명박퇴진!” 분노의 한주가 지났다. 1만 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매일저녁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준무효! 명박퇴진!”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정권을 향한 분노의 함성이었다. 오늘도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비준무효, 명박퇴진”을 목 놓아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한미FTA 반대 투쟁의 명확한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비준무효, 명박퇴진”은 살아있는 정치적 목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 날치기 비준 무효투쟁은 어떻게 한미FTA를 폐기하기 위한 실질적인 투쟁이 되어야 하는가? [%=사진1%] ‘날치기 무효’는 선거용 호재가 아니라, 한미FTA 폐기로 가는 분노의 외침이다! 거리에서는 “비준무효, 명박퇴진”이 대세지만, 현실 가능한 정치적 목표는 총선심판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촛불집회만으로는 한미FTA를 폐기하기 어려우니,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표로 심판하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다수 또한 <반한나라당 정권교체 후 폐기론>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작금의 날치기 무효 촛불집회는 때 이른 총선 선거운동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경찰의 집회금지 원천봉쇄를 피한다는 명분까지 더해져서, 촛불집회는 형식적으로도 ‘야5당 정당 연설회’, ‘야당 국회의원 연설회’가 되었다. 반면 이제까지 한미FTA투쟁을 이끌어왔던 한미FTA범국본은 날치기 다음날부터 야5당과 함께하는 <(가칭)한미FTA 비준무효, 이명박-한나라당 심판 연석회의>를 구성하여 스스로의 역할을 제한시켰다. 하지만 총대선에서 한나라당을 표로 심판하는데 성공한다고 쳐도, 민주당이 주도하는 새 정권이 한미FTA를 얼마나 손볼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도 사실상 방조공범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 민주당이 이제는 날치기 무효투쟁을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위한 호재로 적극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에 나선 노동자민중들의 ‘날치기무효’ 함성은 야당의 선거 지지부대가 아니라 ‘한미FTA폐기’로 나가고자 하는 분노의 외침이다. 비준절차를 마무리한 한미FTA를 사후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한미군사동맹관계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쳐도 당장 한미양국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이미 유입된 투자자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사적소유권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때문에 아무리 부분적인 투자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국내외의 전면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이미 체결된 한미FTA를 폐기하는 일은 국회비준반대나, 날치기 무효반대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앞둔 ‘명박퇴진’의 분노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대중투쟁의 힘만으로 FTA를 폐기할 수 없으니, 한나라당을 먼저 표로 심판하고, 그 후에 민주당을 압박하여 FTA폐기의 한걸음을 단계적으로 내딛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당장 100만의 민중항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권교체-자유주의 선거연합이 FTA투쟁의 정치적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불가피성을 내세워 야권연대를 합리화하려는 상황논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닥친 2012년 총대선은 세계경제위기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첫 번째로 고려해야할 객관적인 정세적 조건이다. 한미FTA는 경제위기의 파괴적 효과를 더욱 첨예하고 고통스러운 형태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며,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이 좀 더 첨예한 형태로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위기에 맞서는 계급투쟁 역량의 배가와 새로운 투쟁태세 마련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정치적 과제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아닌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명박퇴진”을 외치는 대중의 분노를 긍정적으로 수용했다고 할 수 없는 정세인 것이다. 보수정치 세력과 근본적인 내용의 차이도 없고, 실질적인 계급정치 역량이 없는 정권교체는 작은 위기 앞에서도 (노무현정권이 그랬듯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실패하여 대중의 정치적 환멸을 증폭시킬 뿐이다. MB정권을 불러들인 것은 말로만 진보를 외치면서 계급양극화, 민생파탄을 야기한 노무현정권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파국을 목전에 둔 ‘날치기 명박퇴진’의 분노는 허울 좋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져야 한다. 당면 날치기 규탄 투쟁의 파고를 이어가자! 한미FTA 반대 투쟁은 적어도 올 연말까지 현재의 파고를 이어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부분적인 독소조항 재협상 수준이 아니라, 한미FTA폐기에 대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의지를 명확하게 천명하는데 힘을 더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한미FTA 비준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말로만 ‘비준 무효’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한미FTA 폐기투쟁을 위해서 국회의원직을 총사퇴하고 거리투쟁에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한다. 이러한 압박 과정에서 특히 사실상 날치기를 방조해놓고도, 벌써부터 선거준비와 지역구 예산배정으로 국회 재등원 시점을 엿보는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쐐기를 박을 필요도 있다. 노동자 없는 촛불집회, 정치적 대중운동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노동자운동을 극복해야 아울러 당면한 날치기 무효투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장기간의 촛불시위 과정에서 소외되기 십상인 조직된 현장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재조직화와 장기적인 한미FTA 투쟁과제들에 대한 준비다. 여론을 중시하는 촛불집회는 그 특성상 고등학생이나 자발적인 비조직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더욱이 지난주 동안에는 이 조차도 야당 국회의원 일색으로 채워졌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 산하 현장 노동자들은 촛불집회의 부차적인 동원부대로 방치된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노동자 없는 시민 자유발언 마당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선 곤란하다. 노동현장의 쟁점과 한미FTA의 정치적 쟁점이 결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미FTA투쟁과 같은 정치적 대중운동의 장에 현장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정치세력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체적인 한미FTA 투쟁의 장기 과제들을 현장에서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제 어떤 식으로건 한미FTA투쟁은 장기전일 수밖에 없다. 날치기 투쟁의 파고를 이어가는 한편, 이후 예측되는 한미FTA와 관련된 구체적인 투쟁들이 노동 현장에서부터 준비되기 시작해야 한다. 한미FTA로 인한 농업이나 제약 부문의 각종 피해효과는 당장 나타나겠지만, 보다 심각한 변화는 전력 가스 체신과 같은 공공 서비스부문 및 의료보험 사유화를 향한 단계적 재편과 영리병원 등의 문제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을 대중들이 직접적인 고통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적어도 4~5년 이후의 일이다. 완전한 금융자유화에 대한 법제도적 보장으로 인한 폐해는 2~3년 내로 세계 경제 악화와 관련된 금융 불안정의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고용조건의 전반적인 악화와 법제도적 경제 체제의 변화는 그보다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단기적인 선거 공학적 이득을 쫓는 선거연합으로는 이런 구조적 변화와 위기에 제대로 맞서기 어렵다. 구체적인 노동자대중운동의 중장기적인 대안과 부문별 계급적 연대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후 미국은 한미FTA를 발판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미일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은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새로운 동아시아, 환태평양 세계질서의 하위 일원으로 재배치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한의 노동자민중들은 요동치게 될 미중간의 정치경제적 긴장의 부담뿐만 아니라, 북미관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차원의 군사적 긴장과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한미FTA 반대 투쟁은 한국의 정권 교체에 머물 수 없다. 우리가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세계 민중들의 투쟁과 결합하고,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수립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FTA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대중적인 촛불집회의 확산, 주춤하는 한나라당 지난 11월 3일 본회의가 무산된 이후 한미FTA저지 투쟁은 대중적인 촛불시위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수천 명의 시민 학생들이 연일 촛불집회에 운집하고, 트위터와 SNS온라인 여론은 한미FTA 반대여론으로 뜨겁다.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날치기 드라이브 역시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10일 본회의도 오늘 오전에 급하게 연기되었다. [%=사진1%]이런 가운데 공안당국은 11월 6일 갑자기 위헌으로 폐지된 ‘허위사실 유포죄’를 거론하면서 이른바 ‘FTA괴담 유포자’ 구속수사방침을 천명하고, 고루한 색깔론을 들먹이는 등 이 정권의 궁색한 심경을 그대로 표출했다. 서울시장 선거패배로 입은 한나라당과 정권의 상처가 한미FTA 강행처리 불발로 조금 더 벌어진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처가 치명상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20여명의 문제제기가 크게 보도되었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근본적인 반성이나 분명한 정책적 내용이 없다. 그저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효과적인 국면전환 해법을 촉구할 뿐이다. 한나라당은 다음 주내로 어떤 식으로건 당 쇄신안 논의를 봉합하고, 내부를 단도리 한 뒤에 다시 한 번 몰아칠 것이다. 연내 한미FTA 비준안처리라는 이명박 정권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민주당의 절충론 오히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쪽은 민주당이다. 김진표 원내대표와 김동철 외통위 간사 등 FTA관련 논의를 도맡은 책임자급 의원들이 그제 또다시 'ISD절충 조건부 FTA비준 찬성안’을 주장하면서, 소속 의원 45명의 연서명을 받았다. 이 안은 지난 10월 31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미 한차례 부결된 바 있는 안으로, 한미FTA는 일단 체결하고, ISD만 따로 협상하자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비록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아직까지는 이들의 주장이 당론과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31일 이후 민주당의 비준반대 당론이 'ISD만 없으면 비준할 수 있다'는 타협안으로 이미 후퇴했다는 점, 이번에는 김진표 원내대표의 독단적인 물밑협상이 아니라 당내 여론수렴을 거친 절충안이라는 점에서, 이들 조건부 비준찬성파의 당내 영향력은 점차로 커지는 추세다. 야권연합의 기회비용 대중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한미FTA 반대 여론을 넓혀가는 것은 중요한 발전이다.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미FTA의 부당성과 반민중성을 더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한미FTA투쟁의 폭이 넓어질수록 점점 더 ‘야권연합’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미FTA투쟁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하루라도 국회비준을 더 미루고 막는 것만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설령 그런 이유라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흔들리는 민주당이 한미FTA비준안 처리를 국회 안에서 언제까지고 막아줄 리도 만무하다. 더욱이 그들이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어느 정도 늦추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그만큼의 정치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이란 간단하다. 한미FTA투쟁의 성격과 의미가 그만큼 퇴색되는 것이다. 또 정치적으로 그것은 야권통합이나 (2012년 총대선)연대 강화라는 정치적 비용으로 청구될 것이다. 한미FTA투쟁은 남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둘러싼 총체적 투쟁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11월 5일 촛불집회에 연사로 나와서 “한미FTA가 이렇게 불공정한 무역협정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예전엔 미처 잘 몰랐다”고 고백했다. 이제 이점을 깨우치게 되어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FTA는 불공정한 무역협정일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투자협정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한미FTA는 단순히 한국과 미국 양국 간의 국가이익이 아니라 계급이익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그 본질이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은 여전히 선진통상국가론을 당론으로 유지하면서, 불공정한 무역협정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FTA반대전선에 선 것이다. 유시민 대표보다 훨씬 헌신적인 원내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 또한 근본 인식은 비슷하다. 그는 요즘 들어 “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난주 어느 날인가 그는 외통위 한나라당의원들을 향해 “이완용이 되고 싶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어느 한나라당 의원이 이렇게 받아 쳤다. “그럼 당신은 흥선대원군이냐”고 말이다. 정동영 의원의 한미FTA는 국가이익을 훼손하는 불평등조약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에피소드는 그가 반자본주의적인 대안보다는 불평등협정을 바로잡는 것이 현실 가능한 투쟁수위라고 판단한 결과다. 한미FTA는 남한자본주의의 미래를 둘러싼 계급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민중운동 세력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고, 자유주의 야당에게 투쟁을 의존한다면 스스로의 정치적 전망은 점점 더 불투명해 질 것이다. 한미FTA투쟁을 외주화한 댓가로 말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한미FTA투쟁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재인식하고, 그 투쟁에 걸 맞는 대응태세를 갖추도록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국회 일정이 아니라 대중투쟁의 확대가 중요하다 11월 10일 예정되었던 본회의를 당일 오전에 급히 취소하면서 한나라당이 밝힌 다음 본회의 일정은 11월 24일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한미FTA비준안 처리 입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그들은 날치기 처리의 부담을 덜기위해서 외통위 표결처리를 계속 밀어붙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독처리를 불사하거나 민주당 타협파들이 더 지치기를 기다리는 양면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물론 본회의를 기습적으로 열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논리대로라면, 본회의 산회를 정식으로 결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의장의 직권으로 본회의는 어떤 날이라도 열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알 수 없는 속내를 추측하고 그들의 뒤를 ?는 식으로는 우리만 지칠 뿐이다. 세세한 국회 의사일정을 따지기 보다는, 국회 밖의 대중투쟁을 줄기차게 확대해내는 길만이 한미FTA 저지의 길이다. 그럼으로써 한나라당이 감히 날치기를 감행하지 못하고,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묶어놓아야 한다. 지배 정치체제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날치기 처리의 정치적 부담을 극대화해야 한다. 깨알 같은 실천과 과감한 노동자대중투쟁으로 계급투쟁의 전세를 바꿔내자 무엇보다도 전국노동자대회를 기점으로 조직적인 한미FTA저지 노동자 대중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관건이다. 시민 촛불이 한미FTA 반대 여론을 확산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한미FTA투쟁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을 응원하면서 하루하루를 맘 조릴 뿐이다. 잘해야 공정한 무역, 좀 더 정상적인 대미관계를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노동자대오의 적극적인 결합을 통해 이러한 투쟁의 수준을 높이고, 이를 통해 초민족적 자본의 권리장전인 한미FTA를 폐기시키자. 그 길 뿐이다. 다행히 민주노총이 지난 8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한미FTA 총력투쟁과, 날치기 처리시 전조직적인 정권 퇴진투쟁을 결의했다. 이러한 중집의 결정이 단순히 상급단체 결정 공문으로 하급단체 팩스에 꽂히는 형식적인 의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대중운동이 확산되도록 현장의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미FTA저지투쟁의 1주일, 2주일여의 시간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의 '긴 병'이 되지 않도록 분발해야 한다. 더 많은 이들에게 특히,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체를 자임하고자 하는 각급 단위 조직과 활동가들과 함께 한미FTA의 부당성을 알려내자. 이것이 단지 국익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 우리 민중생존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직결된 ‘노동자계급 자신의 문제’라는 동의와 참여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빨리 처리되기'를 바라는 '긴 병에 지친 효자'들이 늘어날 것이고, 지친 투쟁대오는 점점 더 민주당과 야권연대에 의지하는 나태함에 빠지게 될 것이고, 이명박은 그 기회를 독사처럼 물것이다. 노동자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더 강하고, 끈질기게 싸워내는 것만이 한미FTA를 막아내고 이후 계급투쟁의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발간사] 우리는 왜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민중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1월 초 G20 정상회의에 한미 FTA 국회 비준 결과를 들고 가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날치기로라도 올해 안에 한미 FTA를 비준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갈팡질팡하는 행태를 볼 때, 민중들의 투쟁이 확대되지 않는 한 한미 FTA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국은 미국 외에도 이미 44개국과 FTA를 체결, 발효한 상태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FTA 대상국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FTA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을 ‘FTA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 재벌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를 통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양국 간 협상에서 이익균형만 잘 맞추면 FTA는 쌍방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농업 등 일부 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대책만 잘 마련하면 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FTA의 핵심적 문제점을 감춥니다. FTA는 단순히 국가 간 통상전략이나 부문간 이해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시작해서 한미 FTA로 완성된 미국식 FTA는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와 서비스·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포괄합니다(질문1). 이에 따라 자본에게는 국경을 오가며 막대한 이윤을 누릴 자유가 보장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구조조정과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굴레가 강요됩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자본도피와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FTA가 체결되면 수출경쟁력을 갖춘 재벌에게는 큰 이익이 되지만 경제 전체적인 성장과 고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질문2, 질문3). 따라서 FTA가 1997년 이후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습니다(질문5). 한미 FTA는 비단 경제적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특히 금융위기와 천안함 사태 이후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질문4). 또 한미 FTA에 포함된 각종 투자 자유화 조치들은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소조항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습니다(질문6). 이와 관련하여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에서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대폭 강화되고 의료민영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질문8).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한EU FTA도 한미 FTA 못지 않은 파괴적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질문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당면한 한미 FTA를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을 저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FTA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개별 FTA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질문10, 질문7). 이 소책자는 이상 10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한미 FTA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지난 5월 발간된 초판에서 현재 상황을 반영하여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고, 또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부록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각각의 질문 당 4-5쪽 분량으로 짧게 쓰려고 노력했고 사이사이 사진도 넣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소책자가 한미 FT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운동의 물결을 더욱 크게 일으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목차> 1.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사실인가요? 3.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왜 한미 FTA를 추진했을까요? 4. 미국 오바마 정부는 왜 한미 FTA를 다시 추진할까요? 5. FTA를 통하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가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무엇일까요? 6. 한미 FTA는 주권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나요? 7. 한미 FTA 노동조항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한미 노동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나요? 8. 한미 FTA는 한국의 보건의료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9. 한EU FTA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10.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맞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부록] 막아야 하고, 막지 못하면 앞으로 폐지하기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한미FTA 독소조항들
민중의 힘으로 한미FTA 날치기를 저지하자! 날치기 의지가 확고한 이명박과 말로만 반대하는 한미FTA 원조당 이명박 정권은 끝내 한미FTA를 날치기 처리할 작정이다. 10월31일 오후부터 줄기차게 외통위 처리를 시도하고, 11월3일 본회의에서 비준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다음날 G20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빈손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다. 비준안이 외통위를 정상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국회 본회의 때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처리하려 할 것이다. [%=사진1%]반면 민주당은 갈팡질팡이다. 처음에는 ‘10+2 재재협상’을 주장했다가, 다른 독소조항들은 몽땅 눈감아주고, 투자자-국가제소(ISD)만 빼주면 비준동의 해주겠다는 타협안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틀 만에 한나라당과 야밤(10월 31일 새벽)에 만나 포기해버렸다. 김진표 원내대표가 간밤에 한나라당과 만나 엉뚱한 합의안에 사인해버린 것이다. 한미FTA를 여야합의로 비준체결하고 난 뒤에, ISD에 한해서 미국과 추가 협의하자는 말도 안 되는 안이다. FTA가 체결된 이후에 미국정부가 추가 협의를 해줄 리 없다. 설사 협의를 진행한다고 해도 ISD는 정식재협상과 의회결의가 필요한 FTA본문 조항이기 때문에, 미국정부는 수정권한이 없다. 결국 그때 가서 이러저러한 법적 절차와 미국 측의 거부로 협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끝나고 말 것이 뻔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다행히 31일 오후에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 야합 안은 부결됐다. 그러나 31일 저녁 한나라당 남경필 외통위원장이 외통위에서 FTA비준안을 처리하려고 할 때 민주당은 소극적인 행동으로 일관했다. 애초부터 한미FTA 원조당인 민주당이 끝까지 반대하리라 믿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들의 포기가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고 교활하다는 데 분노할 따름이다. 적당히 반대할 사람은 반대하고, 물러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물밑협상을 하면서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결국 민주당은 분노한 민중운동의 진이 빠지고 날치기가 통과되고 나서야, 다시 정색을 하고 한나라당을 맹렬 규탄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더 많은 의석을 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힘 있는 대중투쟁만이 한미FTA를 막을 수 있다 ! 결국 믿을 것은 힘 있는 대중투쟁이다. 한나라당이 감히 날치기를 감행치 못하도록 몰아세우는 길뿐이다. 인민주권과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쟁취된다. 한미FTA는 노동자 농민 대중의 힘으로만 막을 수 있다. 국회의사 일정의 절차적인 문제는 다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한미FTA를 포기할 의사도, 전면 재협상할 능력도 없다. 그들은 11월 3일에 통과시키려 발악할 것이고, 안 된다면 10일, 17일, 24일, 줄줄이 예정된 본회의에서 똑같은 시도를 할 것이다. 국회 의사일정이나 몇몇 기술적인 협상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끈기 있고 줄기차게 대중투쟁의 파고를 높여가야 한다. 지난 10월28일 국회진격 투쟁을 통해 우리는 ‘한미FTA는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식의 관성적이고 패배주의적 태도를 극복하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 뒤이은 11월 3일 범국민대회는 한미FTA 저지 투쟁을 본격적인 대중투쟁으로 이어가기 위한 결정적인 고비다. 우리가 첫 번째 투쟁의 포문을 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대중투쟁의 위력은 충분치 못하다. 이런 때일수록 힘 있는 대중투쟁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동자/농민/빈민/청년/학생 대중조직의 결의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든 이런저런 일들로 지치고 흐트러진 운동조직들의 투쟁태세를 비상태세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건 11월3일 날치기를 막고, 한미FTA 저지 투쟁의 파고를 높여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11월 10일 본회의는 3일 뒤에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전후로 결집하는 노동자대오가 주력이 되어 투쟁을 펼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 추수작업으로 발이 묶였던 농민들도 다음 주부터는 이번 주보다는 더 많이 결집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여의도로 결집하는 대오가 직접 국회 본회의장으로 진격하는 힘 있는 의지를 보여주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다양한 대중 여론전을 이끌어 대중투쟁을 지지 엄호해야 한다. 아울러 막대한 서울시 예산의 상당부분이 한미FTA의 공공정책 제약에 묶이게 될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한미FTA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분명한 반대 입장표명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한미FTA가 날치기될 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한미FTA 투쟁은 국회비준 절차만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한미FTA는 양국 간의 무역이익을 조정하는 단순한 무역 관세협정이 아니다. 한미FTA는 세계 경제위기에 내몰린 초민족 자본이 살아남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협정이자, 그들의 입맛대로 남한사회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종합 정책이다. 미국 자본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재벌 또한 민족경제의 주체가 아니라 초민족적 자본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국익’이 아니라 ‘계급’이 본질인 것이다. 한미FTA를 둘러싼 싸움은 한국 재벌을 포함한 초민족적 자본과 노동자 민중이 남한사회의 전반적 재편을 두고 맞붙는 계급투쟁이 그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가 국회에서 비준 통과 된다고 해서, 결코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미국은 한미FTA를 발판으로 더 큰 동아시아-환태평양 FTA 전략을 추진 할 것이고, 한국의 재벌과 정권은 그 틀 아래에서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이념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이다. 다시 말해 비준안 통과는 최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실제 재편이 이루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비준안 통과 이후에 곳곳의 현장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한미FTA 국회비준안 저지 투쟁은 그렇게 각개격파 당하기 전에, 함께 뭉쳐 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앞으로 폐지하기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한미FTA의 온갖 독소조항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이후 우리의 삶과 투쟁은 그만큼 더 고단해질 뿐이다. 지금 이대로 저들을 막지 못한다면, 가까운 내일에 우리는 이렇게 물으며 살아갈지 모른다. “한미FTA가 날치기될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아무리 늦었더라도 함께 모일 수 있을 때, 모일 수 있는 만큼이라도 있는 힘껏 싸워야 한다. 우리가 비준안 저지 투쟁에 얼마큼 힘을 쏟느냐에 따라 이 피치 못할 투쟁의 조건이 변화한다.
한국경제는 현재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 주택부분의 침체에 따른 장기불황에도 현재와 같은 회복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들 외부변수의 악영향으로 조만간 위기에 빠질 것인가? 위기에 빠진다면 위기 강도와 지속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이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다음을 확인해 두자. 첫째, 주지하다시피 한국경제는 저성장 경로에 접어들었다. 저성장 경로가 곧바로 위기를 야기하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기순환의 저점에서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한층 커질 것은 뻔한 이치이다. 둘째, 한국경제의 커다란 위기는 주로 외환 위기로 나타났다. 경상수지 적자, 외채규모나 해외순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커지고, 이에 불안을 느껴서 초국적 자본이 빠져나가면(이는 환율폭등을 가져오고 외화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부실해진 은행이나 기업들이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신용경색으로 이어지고, 생산 및 판매활동의 축소를 가져온다. 따라서 변수는 우선 한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내적으로 얼마나 튼튼하냐이다. 해외에 문제가 생겨 초국적 자본이 빠져나가도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튼튼하다면 위기를 견뎌내는 것이고, 이런 경우에는 초국적 자본이 빠져나가는 규모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아주 튼튼하다 할지라도 다른 나라들의 경제(특히 한국경제와 관련이 깊은 나라들의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면 한국경제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수출 비중이 아주 높을 뿐만 아니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심화하여 금융적으로 초국적 자본에 상당히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경제가 현재 유럽이나 미국경제의 악화에 따라 위기에 빠질지 여부는 한편으로는 이들의 위기의 크기나 지속성에 달려 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경제가 이들 해외변수의 악영향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우선 한국경제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고, 간단한 전망을 해 보기로 하자. 한국경제의 현황 성장률과 제조업 평균가동률 한국경제는 이번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2008년 4/4분기 1개 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한 뒤 2009년 1/4분기 이후 계속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표 1> 참조). 설비투자와 수출증대가 성장의 주요 동력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4분기 들어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약간 둔화하고 있다. 전기 대비 성장률도 2011년 1/4분기 1.3%, 2/4분기 0.9%, 3/4분기 0.7%로 그리 높지 않고 2개 분기 연속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 [표 1] 한국경제 성장률 현재의 성장률을 조금 더 장기에 걸친 시야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 1>을 보면 1990년 이후 분기별 한국경제 성장률은 우하향하고 있다. 분기별 성장률이 1990년대 초반에는 2%에 근접하던 것이 최근에는 1%대 아래로 떨어졌다. 크게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경우는 97, 98년 위기 시기와 이번 금융위기 시기이다. 두 위기 모두 한국경제 내부에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지역적 혹은 세계적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았다. 전자는 과잉투자-부도기업 발생,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 발생, 외채 누적이라는 내부요인에 더해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 아래 초국적 자본의 증시 철수가 발생하면서 증권시장 폭락, 신용경색 등이 발생하여 생산 활동의 축소가 있었다. 후자는 경상수지의 적자전환, 순해외자산(IIP) 마이너스 규모 폭증 등 한국경제 내부가 취약해 있는 조건에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초국적 금융자본 철수 및 수출 급감 등의 사태가 초래되었다. 즉 90년대 이후 순 국내변수에 의한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두 위기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기간이 2개 분기를 넘어가지는 않았다. 97, 98년 위기 때는 2개 분기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이번 위기 때는 1개 분기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즉 위기 지속기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0.5%인데, 이는 전월보다 낮아진 것이긴 하지만 과거 평균수준(’00~’10년 78.3%)을 2.2%p 상회하고 있다. 결국 성장률이 그리 높지는 않으나 대체로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제조업가동률은 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가동률이 높은데도 성장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한국경제가 저성장궤도로 진입하면서 잠재성장률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림 1] 한국경제의 분기별 성장률과 추세선 이윤율 추세 이윤율의 추세적인 하락은 경제위기를 낳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자본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발전 등으로 이런 추세는 반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반전 이외에 1980년대 이후 미국 등 중심부 국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서 1990년대 말까지 이윤율 하락추세가 일정하게 반전되기도 했다. 한국경제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길게는 1966년 이래, 짧게는 1986년 이래 IMF 위기 당시까지 이윤율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윤율 대리변수로 유형고정자산영업이익률을 사용해 이야기해 보면, 한국 제조업의 이윤율은 1960년대 초반 25-30%, 70년대에서 3저 호황시기까지는 20-25%, IMF 위기 직전 90년대에는 15-20%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IMF 위기가 한창인 시기에는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10-15%대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97, 98년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심화시킨 이후 이윤율 추세는 약간 상승하고 있다. 이윤율 궤적을 보면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IMF 위기, 대우사태 등 금융위기로 매우 낮아진 이윤율(1998, 1999, 2001년 이윤율은 12% 초반으로 하락했고, 2000년에는 정보기술산업(IT)의 반짝 호황으로 이윤율이 약간 높아졌으나 대체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은 금융위기가 해소되면서 이후 약간 높아졌고, 2004년에는 이윤율이 22.08%까지 상승하기도 하였다. 구조조정 이후 이윤율 수준은 대체로 90년대 중반 수준 혹은 그것을 약간 넘는 수준이고, 2010년에는 70-80년대의 이윤율 수준인 20-25%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IMF 위기 이후 금융위기가 해소되고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이윤율은 약간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이윤율이 대폭 하락한 1998, 1999, 그리고 2001년의 이윤율을 예외로 친다면 그 상승추세는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표 2] 제조업 유형고정자산영업이익률(%) 한편 이런 이윤율 개선은 현재 세계적인 성장 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경제의 호황이 일정하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윤율 상승 추세가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이윤량 규모는 매우 클 텐데 이는 분모인 유형고정자산 규모가 커지고 있으면서 이윤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윤율을 마진율(매출액영업이익률)과 회전율(유형고정자산회전율)로 분해해 보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 이윤율의 일정한 상승은 주로 회전율의 상승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형고정자산회전율이 1999년 1.85에서 2008년 3.18(2010년 3.19)로 상승한 것이다. 이는 유형고정자산 가동률이 높았다는 의미이다. 즉 유형고정자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투자가 부진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10년은 투자증가가 꽤 있었는데, 회전율도 높았다. 그리고 마진율(매출액영업이익률)도 높아 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획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기업들이 대외변수의 악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상당히 개선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림 2] 제조업 유형고정자산영업이익률(1960-2010) 가계부채 2000년대 들어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한 가계소득이 별로 늘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가 부동산 구매를 위한 저리의 주택대출을 늘리고 카드사나 할부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1998년 -5.7%의 성장률을 기록한 한국경제는 이후 환율상승과 노동비용 삭감을 활용하여 IT 제품 중심으로 수출을 늘리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비교적 단기간에 벗어났다. 그러나 가계소득은 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임기 초기에 부동산 경기활성화 정책을 내놓았고, 이에 따라 가계의 저리 주택대출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카드남발’이라 할 정도로 카드발급이 증가했고 이로 인한 판매신용도 늘었다. 이런 경기활성화 대책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자본의 이윤율을 약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가계부채를 급격히 늘렸다. <표 3>에서 보다시피 가계신용(=가계부채)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2002년에 무려 약 97조 원의 가계신용이 증가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 가계신용잔액 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그림 3> 참조). 정부는 이후 각종 규제를 통해 가계신용 증가를 억제하였는데 이런 조치로 2003년에 판매신용은 21.3조 원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가계신용증가액이 엄청났고, 2009년에도 가계신용증가액이 약 91조 원에 달해 2010년 말 가계신용잔액은 약 847억 원에 이르고 있다. 결국 노동자의 고용악화에 따른 생계불안, 저금리 상황에서 노동자가계의 부동산 구입 붐에의 동참이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계부채의 증가는 노동자의 삶이 금융시장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지속적인 잔업 특근의 한 이유가 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한국경제가 금리 인상에 취약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의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바뀐다면 가계와 금융기관, 그리고 소비지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중심부 경제가 장기불황 상태에 빠져 있고 한동안 여기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별로 없어서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표 3] 가계신용잔액과 가계신용증가액(단위: 조 원) [그림 3] 가계신용잔액과 가계신용증가액(단위: 조 원) 정부부채 유럽의 재정 또는 정부부채 위기로 인해 한국도 정부부채 규모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긴축정책을 취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부채 위기가 단기간 내에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어서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이명박 정부도 균형재정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대체로 증가해 오고 있으나 그 수준을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공기업부채를 이야기하나 이는 다른 나라에도 일정하게 존재하는 문제이다. 즉 한국은 정부부채로 인한 위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정부부채는 외채 또는 국제투자자산잔액(=해외순자산)과 구별되어야 하는데, 정부부채는 자국민에게 진 빚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 볼 국제투자자산잔액(=해외순자산)은 정부와 민간을 포함한 해외순자산이라는 점에서 정부부채와 다르다. [표 4]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 대외 변수 (1) 해외순자산 현황 한국 자본주의는 현재 금융세계화의 불안정성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OECD 가입, 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 협약 등을 통해 환율 변동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유출입에 취약한 경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환율인하(원화 평가절상)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반되면서 순국제투자자산잔액(=해외순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증대하다가 결국 초국적 금융자본의 유출 및 환율폭등이 발생하는데 이런 사태가 IMF 위기와 2008년 위기 때 공히 발생하였다. 현재는 어떤 상태인가? 2011년 2/4분기 현재 순국제투자자산잔액(=해외순자산)은 -1,520억 불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3/4분기 때보다 낮아졌고,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더 낮아졌다. 지난 8월에도 유럽 재정위기의 이탈리아로의 전염 가능성이 얘기되면서 환율이 출렁이기는 했으나 2008년 같은 큰 폭은 아니었다.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것으로 볼 때 당장 대외불안이 크게 올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가가 폭등하고 초국적 자본이 몰려와 거품이 또다시 형성된다면, 그 과정에서 환율이 급격하게 내려가고(원화가치가 급격하게 절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 혹은 적자가 커진다면, 초국적 금융자본의 급격한 유출 등 대외불안이 야기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2) 수출비중 한국경제의 수출비중은 예전에도 높았으나 최근에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0년 39.9%이던 것이 2010년 54%까지 치솟았다.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악화하면 한국경제는 즉각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위기의 진앙지인 미국과 유럽연합의 비중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세계경제는 이러저러한 연쇄 고리를 통해 전체가 연결되어 있어서 수출비중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한국경제가 대외변수에 매우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표 5] 해외순자산 [표 6]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비중 전망 한국경제의 현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대외변수가 악화하면 어쩔 수 없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주택부문 부진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한국경제 위기가능성을 점검해 보기로 하자. 10월 26일에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은 시한을 연장해 가면서 주요한 내용의 대강에 합의하였다. 위기에 견딜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은행자본을 더 확충하기로 합의하였고, 그리스 정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민간은행들로 하여금 새로운 채권과 교환방식으로 ‘자발적으로’ 50%를 상각하도록 하여, 2020년까지 그리스 정부부채 수준을 현재 160%가 넘는 규모에서 120%로 줄이기로 하였다. 또한 독일의회는 현재 4,400억 유로인 유럽금융안정화기금을 1억 유로까지 늘릴 수 있도록 메르켈 총리에게 권한을 부여하였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일단 한숨을 돌린 상태다. 그러나 유럽의 긴축정책을 여전히 지속한다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개선되어가고 있는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의 상황은 또다시 악화될 수 있다. 성장률 둔화 및 재정상황 악화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으며, 현재와 같은 금융자본의 자유가 허용된 상황에서 위기국가의 부채감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위기국 안에 머물고 있는 금융자본이 언제든 이들 국가를 떠나면서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미국의 주택부문도 부분적인 호전 기미가 없지는 않으나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미 연준은 최근에 또다시 주택담보증권(MBS)을 추가로 매입하기로 하였다. 종합해 보면, 한국경제는 위기 상태에 있다고 볼 수는 없고 예전보다 상당히 위기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어떤 측면에서는 증대되어 당장 커다란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외변수의 악화에 따라서는 여전히 위기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국민총소득 대비 수출비중이 대폭 증가했고, 여전히 불안정한 금융세계화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 확인해야 할 것은, 위기 가능성이 현재 낮다는 것이 민중들의 생활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불황에 가까운 저성장에서 시장기제에 의한 대폭적인 고용증대나 비정규직의 낮은 근로조건 개선을 예상할 수는 없다. 여전히 노동자 민중적 대안을 추구해야 할 상황이다.
증폭되는 유럽 재정위기의 전망과 과제 10월14일 슬로바키아 의회를 마지막으로 유로존 17개국에서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EFSF 증액 및 역할 확대 그리고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지원이 현실화되었다. 1차 구제금융 이후 약1년 반 만의 추가지원 결정이다. [%=사진1%]1차 구제금융 후에도 그리스의 채무상환능력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스 경제성장을 위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EU와 IMF에 의해 강제된 긴축정책은 그리스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임금은 하락하고, 국영기업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으며, 복지는 축소되고, 공공요금이 인상되었다. 결국 지난 6월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게다가 7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의 위기 전염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이들 국가의 국채금리와 CDS 프리미엄이 급상승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유로존 역내 경제규모의 28.4%를 차지하는 국가들이고, 이 두 나라의 재정위기는 이들에게 대출을 해준 프랑스와 독일 금융기관의 부실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이번 EFSF 증액 및 역할확대 방안은 이처럼 더욱 악화된 상황에 대한 유로존 17개국 정상들의 대응방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보인다. 이번 대응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당분간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FSF 증액 및 역할 확대 방안 지난 7월21일 유로존 17개국 정상들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증액 및 역할 강화와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지원을 합의했다. 즉, EFSF가 발행시장 뿐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도 국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역할을 확대하고, EFSF의 가용자금을 기존 2,500억유로에서 4,400억유로로 증액하며, 이 중 1,090억유로를 그리스 2차 구제금융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유로존 17개국 의회 EFSF 법안 통과 과정에서 전 세계 이목은 독일에 집중되었다. 이전부터 역내 최강국으로서 독일은 재정위기국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29일 독일 하원에서 메르켈 총리는 재정위기국 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의원들을 설득해냈다. 그러나 이것이 메르켈 총리나 신자유주의자들의 태도 선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내 금융시장 통합으로 유럽 금융기관들은 타 회원국의 국채 보유 및 은행대출을 크게 증가시켜왔다. 가령, PIIGS 5개국으로 위기가 확산될 경우, 독일은 1,134억 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구제금융이라는 것도 실은 자국 금융자본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번 EFSF 증액 규모가 선진국으로의 부실 전염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FSF의 가용자금 4,400억유로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의 위기 전염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1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스페인, 이탈리아를 포함한 재정적자국의 만기도래 국채(1조 1,770억유로)와 재정적자(6,240억유로)를 모두 합하면 1조 8,000억유로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스의 ‘질서있는 디폴트’, 가능한가? 이러한 조건에서 지배세력은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 첫째, EFSF 법안 통과에 이어 획기적인 채무조정(부채 탕감)을 통해 그리스 위기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스 국채 보유 민간투자자들은 2차 구제금융 시 약21%의 채무조정에 합의한 바 있는데,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이를 50% 수준으로 상향조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간채권단이 이러한 상향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채무조정이 일반화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스페인 국채 매각이 가속화되면 결국 위기가 PIGGS 국가들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둘째, EFSF의 추가자본을 확충하고자 한다. 위기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염가능성이 높은 스페인, 이탈리아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시장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2조유로(원화로 약 3,000조원) 이상의 자금 확충이 요구된다. 이 액수는 유로존 내 국가들이 부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가이트너 미 재무부장관의 경우 EFSF가 보증하는 특수목적회사(SPV)를 활용한 레버리지 확대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EFSF는 각국 분담금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레버리지 확대는 결국 독일과 프랑스의 신용악화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EFSF 최대 분담금을 내고 있는 독일이 “남한테 충고를 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 보다 휠씬 쉬운 일”이라며 미국의 레버리지 제안에 적극반대하는 이유다. 또한 EFSF의 신용공여(보증)를 통해 4,400억유로의 EFSF 가용자금을 약2조유로까지 확대하는 이 방안은 실제 PIGGS 국가들의 국채에 문제가 생길경우, ECB까지 신용위기에 처할 위험성이 높다. 정리하면, 만기 국채와 이자금에 대한 지급 여력 부재로 인해 이미 기정사실화된 그리스의 디폴트가 유로존 및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소위 ‘질서있는 디폴트’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관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유로존 내 선진국, 민간채권단 간 이해조정이라는 수많은 걸림돌을 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시장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다른 형태의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의 모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위기관리전략이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이라는 유로존의 모순을 결코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역내 무역에서 가격경쟁력이 낮은 유럽국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저임금과 긴축재정으로 자국 노동자들에게 내핍을 강요하는 것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채무상환능력을 확보하는 길과도 거리가 멀다. 이에 따라 유로존의 재정동맹을 진전시키고자 하는 유로본드(유로존 회원국의 공동채권) 도입 방안 역시 논의되고 있다. 재정위기국의 입장에서 유로본드는 많은 이점을 갖는다. 재정이 취약해지면 국채 금리도 급등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보증이 있기 때문에 국채금리를 낮출 수 있고, 이를 통해 채무상환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할 여지가 늘어난다. 그러나 이 역시 독일과 프랑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해있어 도입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반대로 그리스가 통화동맹으로부터 탈퇴하는 방안 역시 논의되고 있다. 그리스가 먼저 부채 및 이자 지급을 중단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하여 고환율 정책을 통해 경상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가절하는 유로화 표시 대외채무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고, 운송과 관광에 편중된 그리스가 누릴 경상수지 개선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스가 이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동맹 없는 화폐통맹’이라는 모순과 역내불균형 문제가 지속되는 한 화폐통맹으로부터의 철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전망: 불안한 미래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유로존의 모순을 간직한 채 디폴트를 지연시키고 시간을 버는 기존 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러한 정책이 유지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10월23일 유럽정상회담과 그 전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은행들에 대한 3차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24일 EU․ECB․IMF 트로이카실사단 발표라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어 11월 칸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EFSF 추가자본 확충과 관련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로 할 경우, 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다소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국의 채무상환능력이 확보되지 못하면서, 재정위기국의 국채만기시점 마다 불안이 심화될 계기가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역내불균형이 지속되고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들에게 긴축정책이 강제되는 한, 위기가 심화되고 확산될 가능성은 내재해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상황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 10월 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이 연이어 하락하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럴 경우 스페인, 이탈리아와 강한 금융연계를 맺고 있는 프랑스, 독일, 영국 금융기관으로의 위기전염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신용경색을 야기될 것이다. 나아가 프랑스 은행을 매개로 그 위기는 미국까지 확대될 수 있다. 프랑스 은행과의 거래금액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 모건스탠리의 주가는 올해 들어 고점대비 최대 54%나 하락했다. 10월3일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덱시아 은행이 파산 위기에 직면하자 모건스탠리 주가는 약 7% 급락했다. 뿐만아니라, 신용경색에 처한 유럽계 금융기관이 해외자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면 아시아, 동유럽, 중남미 신흥국들 역시 신용경색이 심화될 것이다. 중남미, 아시아 국가들은 대외차입금의 50% 이상을 유럽계 금융기관에 차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1-7월 중 유럽계 자금이 약7조 5천억원 빠져나갔으며, 8월에만 3조원 이상이 유출되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8월에만 1조원 이상이 빠져나갔다. 경제위기와 극우주의의 부상에 맞선 사회운동을 강화하자 향후 유럽 재정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추가적 대응방안들이 꾸준히 논란이 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획기적인 채무조정, EFSF의 더 많은 증액, 유로본드 도입, 유로존 탈퇴 등 여러 추가적 대응방안들이 이미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 등 선진국과 투자자의 이익 보장이 최우선시 되는 한, ‘시간벌기용 미봉책’을 넘어설 대안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지금까지의 유럽통합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변혁하기 위한 투쟁과 대안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유럽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수주의와 인종주의에 기반을 두고 부상하고 있는 극우주의의 위험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EFSF증액안 통과를 1차 무산시킨 자유연대(SaS)를 비롯, 프랑스 국민전선(FN), 핀란드 진짜핀란드당(TF), 네덜란드 자유당(PVV) 등의 지지율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반이민, 반이슬람, 반EU 정서를 대변하는 극우정당들은 자국민우선주의를 내세워 재정위기국에 대한 지원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생활여건 악화와 유럽연합의 모순이 국수주의적 정서를 불러일으켜, 극우정당의 부상에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히 중심국에서 경제위기를 주변국이나 국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정책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2010년 이후 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은 격렬하게 긴축 반대투쟁을 전개해왔다. 최근에는 월스트리트 점거운동과 상호작용하면서 유럽연합 본부 소재지인 브뤼셀을 비롯, 프랑크푸르트, 런던, 로마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긴축정책 철회, 부채탕감, ECB의 신보수주의적 통화정책 폐기, 안정 및 성장에 관한협약(SPG)의 개혁 등 민주적이고 대안적 유럽을 형성해나가려는 이러한 시도는 더욱 강화되어, 보다 근본적이고 국제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