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슈페이퍼는 한미FTA 이후 물 민영화 전망을 담았습니다. 한 줄로 요약한다면 상수도는 사실상 유보 목록이 아니고, 개방 이후 한국에서도 익숙한 기업인 맥쿼리 , 베올리아 등이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문서를 참조바랍니다. --------------------요약 --------------------------- 한미FTA로 한국의 상수도 부분은 사실상 개방. 음용수 처리 및 공급 서비스에 대한 유보조항은 민간 공급이 허용되는 부분에서 적용되지 않는데, 이미 한국 수도법에서는 광범위한 지방상수도 민간 위탁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 이로 인해 민간위탁 부분에서 민간 기업과 같은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나 환경관리공단은 ISD와 내국민대우 의무에 따라 미국 물 기업에 의해 제소 당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나마 민간위탁 피해를 줄여보려 만든 환경부의 여러 규제들도 최소시장규제 의무에 따라 무력화될 가능성이 큼. 미국에는 세계적 물기업 대부분이 법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미FTA 발표와 함께 한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며,이로 인해 한국 지방상수도 위탁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 될 것. 베올리아와 맥쿼리(템즈워터)가 한국 시장에 가장 빨리 진출할 것으로 보이며, 이미 미국에서도 민간위탁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적지 않은 만큼 한국에서도 많은 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임. 물 민영화의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인 장기 민간위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미FTA 폐기와 함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지방상수도 통합 위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함.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새로운 조직화가 필요하다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죽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한 달 전 광주에서 베트남 노동자 2명이 경찰과 출입국의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죽었는데, 11월 8일 출입국의 단속 과정에서 중국 이주노동자 H(남, 44세)씨가 사망했다. 출입국 단속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1%]H씨의 죽음은 특별히 비극적이다. 지난 11월 8일 H씨와 다른 중국노동자 3명이 김포에서 출입국 단속반원의 불심검문에 걸려 연행되었다. H씨는 200m가량을 도주하다 다시 붙잡혔다. 수갑 채운 상태에서 단속차량에 실렸는데 타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있던 이주노동자가 단속반 직원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심폐소생술을 진행했고, H씨를 차량에서 내려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은 증상이 나타난 지 1시간~1시간 반 후였다. 반성할 줄 모르는 출입국 부검결과 H씨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H씨가 심장질환이 있었으며, 그 상태에서 수백 미터를 달렸으면 심근경색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즉 단속으로 인해 도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심근경색이 와서 사망한 것이다. 아마도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H씨를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H씨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국은 책임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이 범죄자 잡다가 범죄자가 도망가다 사망하면 경찰이 사과하냐’는 식으로 책임과 사건의 비극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출입국의 잔인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출입국의 비인권적인 태도만이 H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경시는 출입국관리제도와 외국인인력관리제도에 구조화되어 있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본질 출입국관리법, 고용허가제 등 한국의 전체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근본적으로 출신국가와 계급 차이의 차별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온 동포와 거액을 투자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 장기 체류할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제3세계에서 이주하고자 하는 자를 ‘외국인근로자’고 규정해 체류기간과 국내 활동범위를 엄격히 제한한다. ‘외국인’이라는 지칭은 민족국가의 외각에 있다는 뜻으로, 국가가 필요에 따라 관리하고 배제할 수 있는 존재다. ‘근로자’는 노동력 필요에 따라 국경 안쪽으로 도입된 자로, 고용주의 편의에 맞게 제공된 인력인 것이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제3세계에서 온 이주민을 정부가 선정한 산업과 사업장에서만 일하게 하고, 고용주에 종속시켜서 속박된 노동으로 만든다. 법제도는 이주노동자를 권리나 자유의 주체 아니라 상품이나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전제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용허가제 개정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10월에 발의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한나라당 개정안)에도 잘 드러난다. 법안은 △기업에는 숙련인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주노동자로부터 ‘성실근로’를 유도하면서도, △‘정주화 방지’와 ‘단기순환 원칙 견지’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고용주가 신청할 경우 사업장을 이동하지 않은 노동자에 한해 추가 체류기간을 부여한다. 추가 체류 자격을 얻으려면 여러 요건이 필요한데, 핵심은 현재 허용된 3번의 사업장 번경을 포기하는 것이다. 개정안의 추가 체류 기회는 기존 4년 10개월의 체류 기간 중에 사업장 변경(폐업, 휴업이나 비슷한 불가피한 상황은 제외)을 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즉, 이미 현행법 하에서 엄격히 제한된 사업장 선택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한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추가체류가 허용된다. 사업장을 이동하지 않는 것을 ‘성실근로’와 연결시키지만, 이는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보다 심각하게 종속시키고 온갖 학대와 착취에 노출시킬 것이다. 개정안은 또한 이주노동자가 기존 체류기간이 끝나면 추가체류기간을 시작하기 전에 1개월 동안 출국하도록 규정한다. 이 규정은 ‘정주화 방지’를 위한 수단이다. 현재 한국 국적법은 합법적으로 5년 연속 체류한 자에게 귀화할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일부 이주노동자는 최대 9년 8개월 동안 체류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출국 요건을 전제로 하여 합법적정착을 방지한다. 사업장 변경 포기와 1개월 출국이라는 두 요건은 이주노동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고용주가 보다 손쉽게 다룰 수 인력으로서의 취급을 영속시킨다. 개정안의 모순 개정안은 추가 체류기간을 규정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이주노종자의 장기체류 필요성과 필연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점점 긴 체류기간을 허용하는 것은 출입국 정책의 최근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체류기간은 벌써 3년에서 4년 10개월로 연장되었다. 올해 상반기에 시행된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은 일부 미등록 동포에게 F-4 체류자격(영주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주노동자 체류가 장기화될수록 취업국 사회로의 통합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많은 국가는 장기 체류한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장기 이주로 인해 서로 떨어진 이주민 가족의 결합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취업국가에 요구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개정안은 이주민의 장기 체류의 필연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주노동자를 원칙적으로 단기방문객으로 취급해 영주권 획득의 기회나 가족결합 등의 권리 보장은 아예 언급조차 않는다. 이 모순은 (제3세계에서 온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는 이 법안의 인종주의적 본질을 드러낸다. 단속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기능 단속은 개정안이 영속시키는 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주축이다. 물질적으로 쉽게 관리되지 않은 노동자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정부가 지정한 사업장 외에도 취업하고 정부가 정한 체류 기간을 초과해 한국사회에 정착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차별에 기반 한 출입국․외국인력 제도 전반을 위협한다. 그래서 정부가 단속을 통해서 내보내려고 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단속은 국가가 외국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국가가 외국인들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배제하는 권리를 강조함으로써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의 규제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속은 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를 유지하는 데에 물질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필수적이다. 그리고 출입국․외국인력 제도가 전제로 한 차별은 인간 아닌 관리할 노동력과 관리체계 바깥에 있을 때 제거하면 되는 존재, 단속으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단속으로 인한 또 다른 비극적인 죽음을 방지하려면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조직화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화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단속반대 투쟁, 개정안 반대 투쟁도 시급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내고 운동을 직접 건설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단속을 막을 힘, 제도 개선을 쟁취할 힘을 키울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고용허가제 개정안에 당연히 관심이 많고 의견도 많다. 많은 이들은 추가체류 기회에 대해 큰 희망을 가질 것이다. 개정안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이주노동자 대중들과의 토론이 중요하다. 개정안 발의를 많은 이주노동자를 접촉하고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할 기회로 삼자.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수렴하고 그 요구를 바탕으로 제도개선투쟁을 점차 조직하는 것은 현재 시기에 제일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활동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ISD 재협상 제안은 국회 강행처리를 위한 기만 술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15일 “일단 한미FTA를 비준하면, 3개월 내에 투자자국가제소조항(ISD) 재협상을 미국에 제안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선 비준 후 ISD 재협상’ 안이다. 이에 미국 백악관과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11월 16일에 이러한 이명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미국 측의 제안은 한미 FTA 국회비준 강행처리를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 위 세척을 약속해 줄 테니 독약을 먼저 먹으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미국 측의 답변도 비준 후에 한국 측에서 ISD 시행과 관련된 구체적 협의안을 제기하면 ‘협의해 볼 수 있다’는 답변에 불과하다. 백악관과 USTR은 ISD를 재협상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없다. FTA 본항에 포함된 ISD를 수정,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은 미국 의회가 가진다.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측이 말하는 ‘재협상’이란 단지 한미 FTA 본안에 이미 적혀있는 ‘비준 후 협의’에 불과한 것이다. 이 협의는 말 그대로 비준이 결정된 이후에 실제 FTA시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한번 만나 협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통령 제안의 속뜻은, 비준안이 국회에서 어떻게든 처리만 되면 그 이후 미국 측에 ISD 재협상을 하자는 제안을 건넨 뒤 몇 마디 의견을 나누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재협상 결과 별 내용 없는 보완시행책이나 발표하고 어물쩡 넘어가려는 기만술책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제안은 아무런 내용도 실효성도 없는 제안이다. 단지 목적은 하나다. 강행처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민주당은 오늘 의원총회에서 이명박대통령의 이 제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동안 갈팡질팡하던 민주당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애초에 한미 FTA를 체결한 책임은 민주당에게 있다. 한미 FTA를 날치기하려는 한나라당을 방조한다면 한나라당에 앞서 온민중의 집중 규탄대상이 될 것이다. 더욱이 한미 FTA는 ISD 조항 말고도 독소조항이 넘쳐난다.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미래 최혜국 대우’, ‘역진방지 조항(Rachet)’, ‘비위반 제소’,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제' 등의 독소조항은 ISD와 유사하게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소권한을 제공한다. 이들 조항을 남겨둔 채 ISD 조항만을 손보는 것만으로는 한미 FTA의 독소조항을 해결했다고 볼 수 없다. - 한미 FTA 선 비준 후 ISD 재협상은 기만이다. 한미FTA 국회비준 강행 음모 즉각 중단하라! - ISD 이외 독소조항 넘쳐나는 한미FTA 비준안 즉각 폐기하라!! 2011년 11월 16일 사회진보연대
차례 요약 1 1장 서문 4 2장 미국서비스노조(SEIU)에 대한 기본 이해 6 1. SEIU 소개 6 2. 한-미 노동법제 비교 9 3. 미국의 노동조합 체계 13 3장 최근 조직화 사례 15 1. 마이애미대학교(UM) 청소노동자, 캠퍼스관리 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15 2. 재가요양보호사조직화활동(SEIU 1199P) 23 3. 공항 조직화 캠페인 31 LA공항 조직화 31 덴버국제공항조직화 34 4. SEIU 32BJ 지부의 뉴저지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37 5. 병원 조직화 사례 45 4장 한/미 조직화 프로그램 비교 51 1. 한/미 대학 청소노동자 전략조직화 비교 51 2. 미국 재가요양보호사와 병원 간병인 조직화 비교 56 3. 한/미 공항 전략조직화 비교 62 5장 결론 : 시사점과 제언 66 <자료> 추가 이해를 위한 참고 자료들 71 <부록 1> 미국서비스노조 활동가 인터뷰 자료 73 1. 마이애미대학 서비스노동자 조직화 담당자 인터뷰 74 2. Local 1199PA 재가요양보호노동자 조직화 담당자 인터뷰 83 3. SEIU 105 지부 덴버 국제공항 조직화 캠페인 담당자 인터뷰 94 4. SEIU 32BJ 지부 뉴저지 상용빌딩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담당자 인터뷰 103 5. SEIU 병원 조직화 전략 담당자 인터뷰 114 <부록 2> 미국서비스노조 교육 자료 124 1. SEIU의 상근자 및 노동자 교육 소개 125 2. 실천단/상근자 훈련 프로그램(발췌) 129 3. 국장급 상근자 능력계발 교육 진행자 가이드 131 4. 리더쉽 아카데미 136 5. 노동자 동원에 관한 82 지부 상근자 및 노동자 실천단 교육자료 149
[발간사] 우리는 왜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민중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1월 초 G20 정상회의에 한미 FTA 국회 비준 결과를 들고 가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날치기로라도 올해 안에 한미 FTA를 비준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갈팡질팡하는 행태를 볼 때, 민중들의 투쟁이 확대되지 않는 한 한미 FTA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국은 미국 외에도 이미 44개국과 FTA를 체결, 발효한 상태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FTA 대상국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FTA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을 ‘FTA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 재벌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를 통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양국 간 협상에서 이익균형만 잘 맞추면 FTA는 쌍방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농업 등 일부 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대책만 잘 마련하면 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FTA의 핵심적 문제점을 감춥니다. FTA는 단순히 국가 간 통상전략이나 부문간 이해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시작해서 한미 FTA로 완성된 미국식 FTA는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와 서비스·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포괄합니다(질문1). 이에 따라 자본에게는 국경을 오가며 막대한 이윤을 누릴 자유가 보장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구조조정과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굴레가 강요됩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자본도피와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FTA가 체결되면 수출경쟁력을 갖춘 재벌에게는 큰 이익이 되지만 경제 전체적인 성장과 고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질문2, 질문3). 따라서 FTA가 1997년 이후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습니다(질문5). 한미 FTA는 비단 경제적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특히 금융위기와 천안함 사태 이후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질문4). 또 한미 FTA에 포함된 각종 투자 자유화 조치들은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소조항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습니다(질문6). 이와 관련하여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에서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대폭 강화되고 의료민영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질문8).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한EU FTA도 한미 FTA 못지 않은 파괴적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질문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당면한 한미 FTA를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을 저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FTA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개별 FTA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질문10, 질문7). 이 소책자는 이상 10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한미 FTA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지난 5월 발간된 초판에서 현재 상황을 반영하여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고, 또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부록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각각의 질문 당 4-5쪽 분량으로 짧게 쓰려고 노력했고 사이사이 사진도 넣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소책자가 한미 FT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운동의 물결을 더욱 크게 일으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목차> 1.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사실인가요? 3.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왜 한미 FTA를 추진했을까요? 4. 미국 오바마 정부는 왜 한미 FTA를 다시 추진할까요? 5. FTA를 통하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가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무엇일까요? 6. 한미 FTA는 주권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나요? 7. 한미 FTA 노동조항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한미 노동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나요? 8. 한미 FTA는 한국의 보건의료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9. 한EU FTA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10.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맞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부록] 막아야 하고, 막지 못하면 앞으로 폐지하기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한미FTA 독소조항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안정화 계획과 제국주의 개입의 모순 10월 20일 카다피가 사망했다. 리비아 반란군이 10월 4일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선언한 지 두 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카다피 일행은 시르테의 함락 직전인 10월 20일 오전 8시에 차량 100여 대에 나눠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나토는 무인 폭격기와 프랑스 미라주 2000 전투기를 출동시켰고, 폭격으로 15대가량이 불타고 50여 명이 사망했다. 카다피는 고속도로 밑에 있는 콘크리트 배수관에 몸을 숨겼으나 결국 반란군에 발각되었고, 반란군에 의해 호송되는 과정에서 결국 사망했다. (카다피의 최종사인이 무엇이냐는 것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반란군에 의해 우발적으로 사살되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카다피가 최종 사망한 것은 10월 20일이지만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된 8월 23일 이후 카다피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었다. 지난 8월 20일 아침부터 수도 트리폴리 내에서 민중봉기가 시작되었고 다음날인 8월 21일 정오경에 이르러 트리폴리 여러 구역에서 봉기세력이 정부 보안기구를 격퇴하였다. 8월 21일 저녁 트리폴리 외부에 있던 반란군 중 첫 번째 부대가 트리폴리에 도착했고 남아 있는 카다피 군 거점을 공격했다. 트리폴리는 내부의 민중봉기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트리폴리의 국가과도위원회(NTC) 성원은 나토의 ‘인어작전’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토는 사전에 계획된 40개 목표에 대한 공습을 수행하지 않았고, 외부 전사는 실제로 봉기계획 시간보다 48시간 후에야 트리폴리에 도착했으며 아무런 전투도 수행하지 않고 녹색광장으로 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리비아 반란군은 8월 23일 카다피 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트리폴리의 핵심 거점인 알 아지지야 요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신중한 트리폴리 주민은 처음 일주일간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10여 일이 지난 후부터는 정부가 사라진 트리폴리에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트리폴리의 지구별로 주민들이 원로, 반란을 계획했던 지하지도부, 종교지도자와 함께 지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공서비스를 재개하고 사회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카다피가 선언했지만 진정으로 실현된 적이 없는 ‘자마히리야’(대중의 공동체), 즉 분권적 기층 네트워크이자 비당파적 인민위원회가 카다피가 사라진 바로 그곳에서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지구위원회는 NTC의 이름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실제로 NTC와 직접 접촉하는 것은 아니다.) 10월 23일 지브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은 벵가지 키쉬광장에서 열린 해방 선포식에서 카다피가 없는 리비아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리비아 봉기는 이제 해피엔딩만을 남겨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이고, 누가 그것을 주도할 것이냐는 문제로 진입하는 새로운 국면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과도위원회의 안정화 계획과 헌법 초안 국가과도위원회(지브릴 정부)가 설계한 ‘안정화 계획’은 그들이 구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단호한 의도를 보여준다. 70페이지에 달하는 안정화 계획은 이라크에서 폴 브레머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행한 것과 정반대의 방책을 제시한다. 안정화 계획은 ‘이라크의 교훈과 모범사례를 통합한다’고 선언하면서, 브레머의 바트당 축출 구상을 국가장치를 공백으로 만들고 이라크 중산층이 미국의 점령에 등을 돌리게 한 원인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안정화 계획은 과거 정권과 관계를 맺은 모든 인물을 배제하거나 그들을 조사하는 것에 반대하며, 카다피 정권 인사를 향후 정치계획에 포괄하는 구상을 지지한다. 구정권 인사들을 사회에 통합하고 그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곧바로 무기를 들 수도 있다는 것이 논거가 된다. 과거 정부와 보안기구에서 고위직을 차지했던 부족이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리비아 헌법선언도 발표되었다. 국가과도위원회는 수개월 전부터 헌법선언을 작성했다. 리비아 헌법선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식 헌법 초안이 제헌의회 수립 후 2개월 내에 제출되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즉 국가과도위원회의 구상에 따르면 자신들의 임무는 제헌의회 선거로 마무리되며, 제헌의회 구성 후 1개월 내에 총리를 지명하고 2개월 내에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해야 한다. 카다피 사망 후 10월 23일 국가과도위원회는 해방 선포를 계기로 본거지를 벵가지에서 수도 트리폴리로 옮기고 30일 이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이어 8개월 내에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0년에 걸친 카다피 독재를 고려하면, 리비아 사회에 산적한 여러 근본적 문제를 토론하기에 2개월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다. 게다가 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한 혁명세력이 이미 발표된 헌법선언을 미리 검토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리비아 사회가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헌법과 제도를 창출하기 위한 토론에 모든 리비아인이 참여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무시된다면 새로운 헌법과 정부는 정통성을 결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헌법선언에서 국가과도위원회는 혁명으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끌어오지만, 국가과도위원회 인사들과 전선에서 희생한 혁명전사의 관계가 희박하므로 그러한 규정은 곧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가과도위원회 구성원 자격에 관한 정의도 불충분하다. 구성원은 원칙적으로 지역 위원회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지만 헌법선언에서는 선출 메커니즘이 정의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비민주적 수단에 의해 즉 스스로 자신을 임명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브릴 총리가 30일 내에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불씨로 남아 있다. 카다피가 사라진 후에도 구질서가 회복된다면 이는 반란군의 희망을 위협할 것이다. 반란군은 여전히 카다피가 소유했던 부동산과 트리폴리의 항구, 중앙은행을 손에 쥐고 있으며 방어군이란 이름으로 주요 시설에 주둔해 있다. 해외 추방을 당했다가 돌아온 이들과 이슬람주의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고 있다. 반란군, 해외 망명객, 이슬람주의자 모두 구 국가제도를 완전히 갈아엎고 처음부터 새롭게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넘쳐나고 있는 무기와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강력한 열정이 결합하면 어떤 심각한 내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가 반란군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채 그들의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분리주의적 경향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스트라 지휘부는 트리폴리 지휘부의 명령을 따르라는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나푸사 산맥지역의 베르베르인도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미스트라 반란군과 달리 트리폴리 점령 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전투에서 획득한 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리비아 민족통합과 부족주의 최악의 경우 리비아가 소말리아 유형으로 분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논자는 리비아가 진정으로 민족적 통합을 경험하지 못했고 언제나 지역주의부족주의가 강력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논자는 리비아 봉기가 부족 간 충돌이 아니라 민족 혁명이라면서 이와 같은 견해를 부정한다. 물론 카다피 정권과 국가과도위원회 양자 모두 전쟁 기간 동안 부족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고심했다. 카다피는 트리폴리가 포위되기 전에 부족 대표 회의를 조직하고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냈으며, 그의 연설은 항상 리비아 부족들을 언급했다. 국가과도위원회도 카다피 제거를 요구하는 부족 지도자들의 선언을 장려했다. 하지만 리비아 봉기가 민족혁명이라고 주장하는 논자는 리비아 부족주의 문제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리비아에서 부족 관계는 견고한 동맹분할 체계가 아니며 매우 신축적인 존재다. 어떤 리비아인은 부족 정체성을 중시하지만 다수는 과거의 유물로 간주하며,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원래 ‘소속된’ 부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리비아에 300개 부족이 있다지만 다수는 단일 지역에 위치한 균질적 집단이 아니며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부족 지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리비아인은 부족관계와 민족적 정체성 사이의 충돌을 경험하지 않았다. 나아가 리비아 부족 문제는 카다피의 정치 프로젝트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카다피는 40년 동안 진정한 시민사회의 형성을 가로막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족관계에 의존해서 일상을 영위해야 했다. 또한 민족적 충성심을 강화하기 위한 카다피의 시도는 항상 부족 간 ‘분할과 지배’라는 형태를 띠었다. 카다피는 교묘하게 부족 간 불협화음을 조장하면서 자신이 떠나면 리비아가 부족들에 따라 분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의 리비아인은 리비아 민족이라는 관념으로 투쟁을 전개했고, 현재의 무장충돌이 종식된 후에도 여전히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민족혁명을 지지하는 논자가 제시하는 결론은 부족 파벌이 부족적 공감대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려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리비아 혁명이 지방주의부족주의적 지향의 분리주의에 추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반란군 세력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과도정부위원회의 안정화 계획이나 헌법제정 시도가 반란군 세력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리비아 혁명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보호책임의 성공사례인가, 제국주의의 납치인가 리비아 혁명은 국제정치에도 중대한 쟁점을 던진다.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나토의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논자는 리비아 혁명의 결과가 곧 유엔이 자임한 ‘보호책임’의 성공적 사례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닉 휘트니 전 유럽방위청 청장은 “결정적 개입이 전장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흔들 수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후폭풍을 피하면서 그런 개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것을 비판하는 논자는 제국주의가 리비아 민중혁명을 납치(hijacking)했다고 주장한다. 보호책임은 지금도 논란을 지속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쟁점이기 때문에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호책임은 아직 조약이나 국제관습법과 같은 경성법(hard law)이 아니고, 2005년 유엔총회결의 형식으로 채택된 연성법(즉 응고과정에 있는 법)이기 때문에 실제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또한 보호책임의 일반적 해석과 구체적인 실행방식 문제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엔의 리비아 결의안과 나토의 군사행동은 보호책임의 실행방식에 관한 국제관행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에 던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 서방 국가의 군사개입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논자도 비서구 세계의 반권위주의 운동과 국제 정부의 행동의 시너지가 나토의 성공적인 리비아 개입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정권교체를 추진할 당시에는 이라크 민주화운동을 군사개입으로 대체함으로써 시너지를 중단시켰다면 리비아의 사례에서는 나토와 반란세력 간 동맹이 훨씬 더 개방적이었고 그로 인해 시너지가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시너지 효과를 통해 리비아 반권위주의 운동도 성공을 거두고, 서구 세계도 인도주의적 개입을 위한 더욱 효과적인 방식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반면 서구 제국주의가 리비아 민중혁명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논자는 서구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리비아에서의 이권에 주목한다. 나토의 군사작전을 주도하고, 국가과도위원회를 지원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9월 15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카다피 집권 시절부터 서구의 석유회사는 이미 리비아 석유를 장악했지만 언제 카다피가 인도와 중국 같은 경쟁자들과 흥정을 벌일지 불안을 느꼈다. 프랑스 기업은 리비아의 막대한 수자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미국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프리카군사령부(AFRICOM) 기지를 설치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지금도 AFRICOM 기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국가과도위원회가 구질서를 보호한다는 분명한 방침을 세우고 있는 현실은 제국주의가 혁명을 납치하고자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보호책임론자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의 군사적 일방주의와 유엔의 보호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지만,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것은 분명하다. 유엔의 보호책임 적용 여부는 오직 서방 강대국만 결정할 수 있다. (유엔 안보이사회는 보호책임에 관한 제재를 가할 재량을 갖지만 반드시 모든 경우에 제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유엔 안보이사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권한도 있다.) 또한 보호책임의 명문화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군사적 일방주의를 제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엔이 미국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 강대국이 상황에 따라 군사적 일방주의를 가동할 수도 있고, 보호책임을 활용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나토 공습, ‘인도적’ 전쟁인가, ‘위험전가’ 전쟁인가 또한 나토의 자화자찬은 초정밀 인도적(자비로운) 전쟁이라는 환상을 유포할 위험이 있다.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을 지지하는 논자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공중폭격은 서방국가 군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그 위험성을 지상의 민간인에게 전가하는 ‘위험전가 전쟁’ 방식이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사례를 보더라도, 벵가지 주변 반란군이 장악한 지역에 추락한 2명의 나토군 비행사를 구출하기 위해 나토는 500파운드 폭탄 두 발을 투하한 후 헬리콥터를 착륙시켰고, 이 과정에서 6명의 리비아 주민이 부상을 당했다. 이는 나토의 본능이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군인의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4월 7일 아즈다비야에서도 나토의 공습으로 인해 13명의 반란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나토의 리비아 군사개입은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21세기 판본의 미국 주도 군사모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2001년 럼스펠드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공군과 해군 능력을 극대화하고 지상군 활용을 최소화하는 전쟁, 즉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녔다.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전망은 911 사건, 이라크전쟁을 거치며 더욱 현실화되었다. 이에 따라 두 가지 경향이 강화되었다. 첫째, 특수부대가 강조되었다. 미국 합동특수전사령부 인원은 911 이후 10배 증가했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않았고 그 비밀성은 CIA를 능가한다. 둘째 다양한 유형의 무인항공시스템(UAS)이 널리 활용되었다. 지금도 보잉사는 스텔스 무인전투기 팬텀 레이와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정찰기 팬텀 아이를 개발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토는 리비아 전쟁을 최근 성공 사례로 추켜세울 것이다. 6개월 이상 계속된 공습, 무인항공기의 지속적 활용, 광범위한 특수부대 작전 등. 이에 따라 공습으로 인해 수백 명의 군인 또는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거의 무시된다. 리비아에서 얻은 결과는 전쟁을 수행하는 효과적이고 수지가 맞는 새로운 방식이 있다는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10월 20일 카다피 사망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단 한 명의 지상군도 투입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리비아 혁명의 미래 카다피가 수도 트리폴리에서 도피한 후 리비아 민중은 지역별로 주민위원회를 결성하여 사회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위원회나 반란군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국가과도위원회가 제시하는 안정화계획과 헌법제정 절차는 구질서의 완전한 해체와 민주주의의 건설이라는 민중혁명의 목표와 근본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나토의 군사작전을 통해 리비아 개입의 정당성을 획득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이권을 관철하려고 골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며 하이테크 전쟁 모형을 가속할 것이다. 리비아 민중 스스로 시작한 리비아 혁명은 어떤 사회를 누가 주도해서 건설할 것이냐는 혁명의 본질적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시사점과 제언 『사회운동』은 노조페미니즘팀의 [기획연재]를 통해 여성노동자 조직화에 관한 분석과 제언을 소개하고 있다. 7-8월호에서는 「5060대 청소노동자들은 어떻게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청소노동자 조직화를, 9-10월호에서는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 노동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라는 기사를 통해 간병·요양노동자 조직화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여성의' 일자리로 만들고 이를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만들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옭아맨다. 여성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과 인식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서비스노조(SEIU)에서는 청소노동자 조직화와 간병·요양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나름 성공적인 전략조직화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시사점을 도출하려고 한다. 청소노동자 조직화와 관련해서는 SEIU의 32BJ 지부가 2000년대 초반 진행한 뉴저지 주 건물청소 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을, 간병·요양노동자와 관련해서는 1998년 캘리포니아와 2008~2010년 펜실베니아 주(1199P)에서 있었던 캠페인을 소개한다. 아래 소개되는 사례들은 공공운수노조와 노동자운동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CtW(SEIU)-공공노조조직화 프로그램 비교연구』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뉴저지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소개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J4J) 캠페인은 1980년대 초부터 주로 건물 청소 및 유지를 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로부터 일어난 운동으로서 SEIU의 간판 전략조직화 프로그램이며 모델이다. 그 역사는 1930년대 SEIU의 전신인 건물서비스노동조합(BSEIU)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SEIU의 뉴욕지부인 32B 지부는 맨하탄 가먼트 지구에서 일하는 건물관리자, 청소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34년 역사적인 파업을 통해서 교섭대표권(노조 인정)을 쟁취했고, 이후 신규 조직화와 다른 노조·지부와의 합병을 통해서 BSEIU는 크게 성장한다. 조직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1968년 BSEIU는 SEIU로 개명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15일(J4J 기념 행동의 날) 10만 명이 참여한 전국 J4J 행동 후 SEIU 중앙은 미국 동부지역인 볼티모어(인구 60만 명), 필라델피아(인구 100만 명), 북 뉴저지(전체 주 인구 800만 명)에서 새로운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조직화 대상 2만 명, 평균 시급 6달러). 이 캠페인을 담당한 SEIU의 지부가 32BJ였다. 이 캠페인, 더 나아가 모든 J4J를 모델로 한 조직화 사업의 핵심은 사업주로부터 노조 인정을 얻어내는 것인데, 대부분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이들 청소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조합으로 조직되는 지를 알아보려면 먼저 이와 관련된 미국의 노동법제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노동법제 하에서 노조승인: NLRB 선거와 카드체크 미국에서 노조 설립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는 전국노사관계위원회(NLRB)가 주관하는 선거다. 이 선거는 교섭단위(bargaining unit)의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대표권을 노조에 위임할지 여부를 묻는 선거이다. 미국 노동법에 따르면 미조직 노동자를 신규 조직화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은 최소 30%의 노동자들로부터 노조 지지 의사를 표시한 카드를 모아 선거를 신청할 수 있다. 선거 장소 및 일정 등은 NLRB가 주관하여 결정하며 선거일까지 약 20~30일까지의 기간 중 노사양측 선거운동이 진행된다. 투표결과는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복수노조가 경선할 경우, 첫 번째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면 그 조합이 교섭대표권을 획득하게 되지만 어느 측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그 중의 1위와 2위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결선투표를 1회 행함). 이러한 NLRB 선거과정은 복잡하고 조직화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데, 우선 교섭단위를 결정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교섭단위 결정을 위한 청문회에서 사용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경우 선거과정 전체가 지연되어 사용자가 반노조 선전 및 공작을 행할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한다. 위에서 말한 NLRB선거를 통하지 않고 노조를 설립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50% 이상의 노동자가 노조 지지 카드에 서명을 하고, 사용자가 이를 승인한 경우 비밀 투표 과정을 생략하고 노조가 승인된다. 다른 경우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로 공정 선거가 불가능할 경우 50% 이상의 노조 지지서명 카드를 받아 NLRB가 사측에 노조 승인을 명령할 수 있다. 오바마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의 경우 50% 이상의 기명 지지카드가 모이면 비밀선거 과정이 생략되고 (사용자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자동적으로 노조를 인정하게 하는 법이었으나, 현재는 상원에서 부결된 상태이다. 실제 조직화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술: 카드체크-중립 협정, 기본협약-트리거 조항 따라서 신규노조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노조는 지난한 NLRB 선거보다 카드체크 방식을 선호한다. 다양한 전술을 통해 사용자가 카드체크 방식을 택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립 협정(neutrality agreement) 전략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립협정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조직화 캠페인 기간 동안 노조 승인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는 것이다. 실제 경험을 보면 양 전략을 함께 사용했을 경우 효과적이다. (2005년 NLRB 선거의 경우 노동조합이 승리한 경우는 56.8%인 반면 카드체크와 중립협정 체결 혼합전략의 경우 80% 가량 성공했다(중립협약만 단독으로 사용했을 시 45%, 카드체크 단독 사용시 62.5%, 양 전략 동시 적용시, 78%). 이를 통해 조직활동가는 사측과의 싸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사측으로서는 노조와의 분쟁을 피함으로써 반노조 캠페인에 들어가는 비용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을 사측이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선 사측을 압박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노동조합의 강력한 힘이 이러한 압박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대중적 조직화, 그리고 조직화를 통한 기반 강화라는 선순환을 그리기 위해 SEIU는 포괄적 캠페인을 진행한다. 기본협약(master contract)은 다수의 사용자가 참여하는 협약으로, 특정한 지역 전체에 적용되는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을 규정한다. 따라서 이 협약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은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강요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는 대신 서비스의 질이나 다른 측면을 통해 서로 경쟁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협약을 통해 노조가 조직된 업체가 경쟁력을 잃고 퇴출되거나,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노동자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다. 즉, 노동조건을 시장경쟁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대부분의 경쟁업체들이 이 협약에 참여하기만 한다면)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굳이 막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협약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 주는 메커니즘이 트리거(trigger) 조항인데, 뉴저지의 조직화 사례에서 살펴보자면, 기본협약의 노동조건이 협약에 참여하는 순간 발효되는 것이 아니라 노조가 조직된 업체의 청소면적이 일정수준(뉴저지의 경우 60%)를 넘을 경우 발효되는 것이다. 따라서 업체로서는 기본협약에 참여하는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본협약에는 이러한 트리거 조항이 삽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직화율이 아닌 면적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업체가 고용한 노동자의 수는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정 면적을 청소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동일하다고 보고 면적을 기준으로 삼아 한 지역의 기본협약을 활성화(트리거)할 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카드체크를 통한 노조인정과 기본협약 체결이라는 전략은 대규모 중앙집중식 전략 조직화를 가능케 하는 전술이면서 동시에 조직된 노동의 힘을 조건으로 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상기 전략을 취하기 위해선 대규모 전략 조직화가 필요하고, 대규모 조직화를 위해서도 또한 이러한 전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J4J 캠페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용역업체가 노동조합 인정을 하더라도 경쟁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지역 차원의 대규모 조직화를 통해 지역 전체에서 일정 비율 이상이 조직될 때까지 단위 노동조합의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요구를 자제시킴으로써 고용주를 안심시키고 대신 중립협정을 맺는 방식이다. 뉴저지 캠페인의 전개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 32BJ 내에서는 캠페인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새로운 조직화에 많은 자원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 조합원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자원이 삭감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32BJ 지부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범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2000년 지부장 선거는 신규 조직화를 둘러싼 입장을 두고 치러졌으며, 조직화를 강조한 후보가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캠페인이 시작될 수 있었다.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뉴저지와 인접한 뉴욕의 건물 청소노동자는 이미 다수 조직된 상태였다. 뉴욕의 노동자들이 시급 17-18달러에 연금, 의료보험 등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데 반해 뉴욕과 뉴저지의 청소업체들은 대체로 일치했고 건물 소유주도 동일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뉴저지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파트타임(하루 20시간)으로 일하면서도 시급은 5-6달러 수준이었고 복지 혜택은 아예 없었다. 뉴욕의 바로 옆 주인 뉴저지의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뉴욕의 기존 조합원의 이해조차 보호하지 못할 것은 명확했다. 같은 해부터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친 노조 후보가 선출될 수 있도록 조합원을 동원해서 선거활동을 벌였으며, 다음 해에는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롱아일랜드 등에서 노조가 지원한 여러 후보가 선출되었다. 이러한 선거활동 결과 뉴저지 주지사, 뉴어크 시장 등 민주당 정치인의 적극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간의 조직화 캠페인(2001년 4월부터 2003년 4월까지)을 통해서 뉴저지 지역 5,000명의 신규 조합원을 조직하고 이들을 고용한 파견업체들과는 기본협약을 맺었다.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뉴욕에서 SEIU와 협약을 체결하고 있던 몇 개의 청소업체는 뉴저지 조직화에 대해 중립협약을 맺었다. 이미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던 규모가 큰 청소업체의 경우 노조를 인정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노조가 기본협약을 통해 지역시장 전체의 임금 수준을 통일적으로 설정한다면 큰 청소업체들의 경우 작은 업체에 비해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즉 지역시장 전체의 임금수준이 고정되면 다른 업체들과 임금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고 큰 업체들의 경우 작은 업체들에 비하면 임금 이외의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노조가 지역시장 임금기준을 정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건물소유주는 노동자의 임금에 큰 영향을 미치고 노조가 있는 청소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한 투쟁도 중요하다. 대개 야간에 청소 노동을 하고 낮에는 다른 일터에서 일하는 상용건물 청소노동자의 노동패턴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의 행동범위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건물주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였다. 회사의 문제점 있는 투자, 탈세, 환경 파괴 행위 등을 조사해서 지역사회 단체, 정치인, 종교인, 변호사 등과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이를 기업상대 캠페인(corporate campaign)이라고 한다. 뉴저지 캠페인의 특징 조직대상의 선정에 있어 대부분 SEIU 노조가 선호하는 ‘열성사업장’(불만이 많은 현장)에 집중을 하는 방식과 32BJ가 사용하는 전략적 선정방법은 차이점이 있다. 다른 노조들이 노동자가 불만이 많고 싸울 준비만 되면 일단 조직화를 시도하는 반면, 32BJ는 한 지역에서 60% 조직률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략적인 현장부터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대상인 노동자는 애초에 의지가 높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와 대화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보다 큰 중요성을 갖는다. 뉴저지 청소 노동자(95% 남미 이민자)는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야간에 근무하며 뉴저지 건물들이 흩어져 있어서 접촉하기 매우 어려운 편이다. 파업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밤이기 때문에 파업의 효과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직접 행동 이외의 캠페인 전술 사용이 필연적이다. 전술한 건물주 압박전략도 이러한 맥락에서 배치되는 것이다. 32BJ는 조직화 전략에서 관계지향적인 문화 또는 관계지향적 회의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데 중점을 두고 현장의 문제 파악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제기하는 요구를 바탕으로 투쟁을 계획하는데, 가령 겨울에 지급되는 작업복 문제가 노동자에게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문제이지만 애초에 노동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낮은 수준의 투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명운동으로 시작해서 배지 달기, 지역사회 종교인, 정치인과의 면담, 집회, 파업까지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는 전술을 사용한다. 모임, 대화 등을 통해 서로 다른 층이나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 간의 신뢰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관계지향적인 조직화 문화라고 한다. 따라서 32BJ의 캠페인에서 파업은 핵심 전술이 아니었다. 실제로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 동안 지역파업은 없었으며, 사업장 단위 파업을 하루 혹은 며칠 동안 진행하긴 했지만 상징적인 수준을 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파업을 벌이면 사업주는 영구 대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으며, 오직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파업만이 법적 보호를 받는다. 32BJ는 영구 대체 노동자 고용이 불가능한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파업만을 벌였다. ‘조직화 실천단’(organizing brigade)이라는 조직화 · 훈련 프로그램이 32BJ를 비롯해 SEIU 전체의 전략에서 핵심 축으로 기능한다. 실천단은 투쟁 경험이 있는 조합원 30~40명으로 구성되는데, 조합원들이 조직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지역에 파견돼서 조직활동에 체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실천단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2주에서 3개월의 무급휴가를 내고 조직화 활동에 전념하는데, 이러한 노조 활동을 하기 위한 휴가 시간은 단협에서 보장되는 경우에 가능하다. 실천단 기간 동안의 임금은 노조가 노동자들의 자기 사업장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보전한다(정확히 말하면 사용자에게 급여를 주고 사용자는 노동자의 정상임금을 지급). 2001년~2003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조합원들이 실천단으로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에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천단의 프로그램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핵심 전략이다. 소결: 시사점 및 제언 2001년~2003년 32BJ의 뉴저지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은 사측과의 중립협정, 기본협약, 트리거전략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지역을 조직하기 위해서 기존 조직화를 통해서 키운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여러 조건(파트타임, 야간 근무 등)으로 제약이 심한 노동자의 힘을 조직된 뉴욕 노동자의 행동과 지역사회 활동가, 정치인과 같이 진행한 기업상대 캠페인으로 보충해서 빠른 시기에 조직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상대가 대형 청소업체였기 때문에 조직화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대형 청소업체를 상대로 투쟁하거나, 공단과 같은 일정한 지역에서 청소노동자 조직화를 시도한다면 32BJ의 뉴저지 캠페인은 참조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음 3가지 지점이 주목할 만하다. 1) 건물주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노동자의 행동은 사측을 압박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포괄적인 투쟁전략의 일부이다. 또한 기본협약과 트리거전략을 활용함으로써 조합원에게 요구된 희생(장기파업, 연행 등)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을 채택했을 때 노동자를 수동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전투적인 소수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전통적인 J4J 전략에서 ‘다수의 참여’를 중심으로 한 전략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활동 참여율에 있어서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2) 많은 신규 조직화 캠페인과 같이 SEIU 중앙은 뉴저지 청소노동자를 조직화기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투자했다. 또 32BJ 내에서도 신규 조직화를 가능하도록 조합원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지원을 투자했다. 이러한 투자가 결국 결실을 맺어, 32BJ는 뉴저지에서 성공적으로 조직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조직화 모델을 개발해서 현재 보다 적은 자원으로 비슷한 수준의 캠페인을 수행할 수 있다. 3) 조직화 실천단은 참가자의 임금지급 등을 위해서 매우 많은 재정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그러한 투자가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실천단을 통해서 조합원이 훈련될 뿐 아니라 실제 조직화 사업을 담당함으로써 노조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SEIU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조직화 실천단은 노조 성장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SEIU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활동 소개 ‘가족의 영역에 맡겨져 왔던 간병·장기요양의 문제를 사회연대원리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분담한다’는 취지 하에 한국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넘었다. 이 제도 아래서 대상자를 운동시키고 대상자의 청결을 유지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외출을 돕는 일과 같이 대상자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요양보호사라고 부른다. 2010년 6월 현재 약 90만 명으로 추산되는 요양보호사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가족 내에서 여성이 주로 수행해 온 돌봄노동이 사적으로 저평가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요양보험제도를 통해 사회화된 돌봄노동 역시 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간병인도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고용 관계로 묶여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 역시 돌봄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현재 공공운수연맹에서 설립한 희망터에서 재가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노동자들이 시설이나 각 가정에 분산되어 있고 간접고용으로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노동조합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재가서비스(home care service)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 대한 조직화 노력과 그 성과는 한국과 미국에서 사뭇 다르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캘리포니아 주의 SEIU 434B 지부에서 12년 간에 걸친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노력 끝에 1998년 캘리포니아 카운티에서 74,000명의 재가 요양보호사가 한꺼번에 노동조합으로 가입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1941년 포드 사 리버 루즈(River Rouge) 공장이 미국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한 이래 단일 조직화 캠페인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조직화 성과였으며, 이후 계속된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의 전범이 되기도 하였다. 캘리포니아 주의 대규모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의 성격과 진행과정, 그리고 최근 펜실베니아 주에서 시도된 조직화 캠페인을 살펴보고,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간병인 및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보려 한다. 미국에서 재가 요양보호 산업의 등장 미국에서 재가서비스(home care service)는 자택에 거주하는 노약자 혹은 장애인의 일상 활동을 보조해 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 요양보호사(homecare worker)의 역할은 당사자의 요구에 따라 개인위생, 요리, 청소, 쇼핑, 투약 보조 등 다양한 활동을 포괄한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공공 및 사설 사회복지 기관, 카운티의 복지부서, 메디케어의 승인을 받은 재가 요양보호 파견업체, 사설 파견업체를 통한 고용과 각 가정에 직고용된 형태 등이 있다. 이들을 라고 부른다. 한국과 미국의 복지제도와 노동정책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건의료 및 복지 체계 내에서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직종은 미국의 경우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병원 및 요양원 등의 시설에서 일하는 간병인과 가정 및 시설의 장기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원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장기요양보호사가 일정한 자격요건 취득을 필요로 하는 데 비해, 미국의 경우 각 주에 따라 특별한 면허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미국의 재가 요양서비스의 출현과 변화는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의 변화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그 기원은 1930년대 뉴딜 정책 아래서 시행된 방문 가사도우미 지원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정책의 목적은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가정에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유급 여성 노동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전자의 목표가 복지정책적 측면을 보여 준다면, 후자는 노동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일자리는 보건의료 영역이 아닌 가사노동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노동법의 관리에서 벗어난 비공식, 저임금 노동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도 이러한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 재가서비스는 흑인, 유색 이주민 여성들의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노동은 유급이긴 하였지만 정식 일자리 혹은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비가시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2세대 페미니즘의 부상과 함께 전문직 여성, 민권운동단체, 노조가 공동으로 법 개정 노력을 통해 1974년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의 개정을 이끌어내어 이들도 공식적으로는 최저임금, 노동시간, 초과근무수당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되지만, 여전히 이러한 노동은 임시직으로 여겨지며 실제로는 임금과 노동시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욱이 노동자성 역시 부정되었으며, '독립 사업자'로 취급된다. 당시 목표는 노동-복지 연계 정책으로서 공적 부조가 필요한 이들에게 대한 부조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그 자신이 복지수혜자인 저소득 여성이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정부는 일손 부족을 겪고 있던 간병인, 육아 보조인, 가사 보조인 등의 공급을 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저소득 여성이 '자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의 기본은 이들을 시설에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재정은 주정부가 연방정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충당되었다. 1960년대 들어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 국가의료보험)와 메디케어(노인 대상 국가의료보험)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전달체계를 통해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 노인을 상대하는 가사 보조인을 위한 재정이 지원되었다. 이러한 기관의 설립과 함께 지역별 가정요양 기관(대상자와 요양보호사를 연결)과 민간 서비스 제공기관(요양시설)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재가서비스 노동자들은 가사노동과 요양보조인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생활임금 보장, 가사노동과의 차별화에 대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여전히 보건의료 분야가 아닌 가사노동으로 취급되어 노동조건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기관요양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복지 전달체계는 1974년 이후 가정요양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러한 재편의 목적은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급증하는 재정지출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 주정부들의 재정위기 이후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가정요양 부문이 하나의 산업으로 급속히 성장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1958년 2,000여 개에 불과하던 가사노동자, 가정요양인 등의 일자리가 1975년에는 60,000개로, 1980년대에는 350,000개로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 재가서비스 산업의 부상과 함께 정부에서는 저소득 복지 수혜자를 이 산업의 잠재적 인력풀로 여기고 이를 활용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급여통제가 심해지면서 가정요양 기관들은 이전에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들이 하던 직무 중 일부를 저숙련-저임금 노동자에게 이전한다. 이에 따라 재가 요양보호사가 보건의료 체계 내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등장한 재가 요양보호 산업은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개별 가정에 직접 고용되어 일하거나 정부기관에 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전 시기와 다르게 영리 및 비영리 파견업체에 의해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즉, 복지체계의 일환으로서 장기요양서비스가 이전에는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거의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던 것에서 외주화 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기요양보호 체계에서 정부가 재정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재가 요양서비스의 경우 그 재원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부담한다. 그렇지만 국가가 담당하던 시설을 통한 요양서비스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지위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하게 되었고, 이들 역시 시설요양에서 재가요양으로의 재편과정에서 재가 요양서비스 산업으로 유입된다. 일반적으로 볼 때 미국의 재가 요양보호 전달 시스템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독립 서비스 제공자 모델’(independent provider model)이고 다른 하나는 ‘파견 모델’(agency model)로도 불리는 ‘계약 모델’(contract model)이다. 1998년 74,000명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에 성공한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전자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 모델은 1) 요양보호사를 직접 고용하고 감독하는 소비자(대상인) 2) 대상자 자격요건을 결정하는 카운티별 사회 복지기관 3) 요양보호사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주 단위 기관으로 구성된다. 이에 반해 계약 혹은 파견 모델에서는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는 주 정부이지만, 노동자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영리 및 비영리 중계기관 혹은 파견업체가 존재하며 이들이 주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 및 관리를 담당한다. 펜실베니아 주의 경우 후자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재가요양보호사 조직화의 경험: 캘리포니아 한국과 미국에서 재가요양보호사(미국)나 장기요양보호사 및 시설간병인(한국) 조직화 사업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노동자들이 시설별, 가정별로 분산되어 있어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 간접고용 아래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노동조합 설립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 또 이들의 사용자라 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일반적으로 간병인 및 요양보호사의 노동조합 가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캠페인에서 구사했던 방법 역시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풀뿌리 조직화, 로비 등을 통한 변화, 정책 소비자 단체등과의 연합 결성(공동체 조직화)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먼저 분산되어 있는 노동자를 가정방문 등을 통해 만나 노동조합의 계획을 설명하고 지원을 호소한다. 이렇게 모인 역량을 통해 주정부 및 카운티의 지방자치단체를 압박하여 주법을 개정하거나, 행정명령을 통해 공식적 사용자 단체의 역할을 하는 주 차원의 재가 요양보호인을 관장하는 기구를 건설한다(③). 또한 소비자 단체와의 연합을 통해(②)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오히려 이직률을 낮춤으로써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설득하여 이들이 조직화를 지지하게 하며(①), 전술한 재가 요양보호 관장 기구에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⑤) 이와 관련된 주(州) 재원의 활용을 감시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한다(⑥). 또한 공식적 사용자 단체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이를 교섭상대로 삼아 노조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며(④) 노동시간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을 두고 주정부와 협상을 벌인다. 최근 미국의 재가요양보호사 조직화 운동: 펜실베니아 펜실베니아에서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 역시 기본적으로는 캘리포니아에서 사용되었던 전략을 따르고 있다. 다만 펜실베니아의 경우 주정부를 주체로 하는 교섭단위 구성에 실패한 후, 노조설립에 동의하는 중개기관 역할을 하는 비영리 장애인 단체를 묶어 사용자 단체를 결성하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펜실베니아에서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을 전개한 단위는 펜실베니아 요양보호사 연합(United Home Care Workers of Pennsylvania, 이하 UHCWP)이었다. UHCWP는 SEIU의 1199P지부와 전미지방공무원연맹(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AFSCME)이 공동으로 결성한 노동조합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펜실베니아에서도 노조는 대상자와의 연합, 정책적 요구, 조직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활동을 진행하였다. 펜실베니아주 재가 요양보호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군에 속하며, 임금은 빈곤선을 밑도는 시간당 9.10달러 수준이다. 낮은 임금뿐 아니라 병가나 유급휴가가 보장되지 않으며, 이들 자신이 보건의료 종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 이주, 유색인종 노동자이다.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돌봄노동을 꺼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에 기반하여 이들 노동에 대한 체계적 저평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재가 요양보호사의 이직률은 매우 높은 편인데, 요양보호사 사용자(수급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높은 이직률 때문에 재가 요양보호사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따라서 이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이직률을 낮추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캠페인에 참여하였다.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에서 소비자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전체 사업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소비자들이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에 참여하는 주요 이유는 재가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이직률을 낮추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요양보호 전달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사용자로서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주 차원의 재정에 크게 의존하는 재가 요양보호사 서비스의 개선과 재정확충을 주 정부에 요구하고, 재가 요양보호사의 서비스에 따라 이들의 임금을 인상한다거나, 해고/교체 등의 권리를 원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따라 SEIU는 일반적으로 노조 설립 후 노동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단체협상의 적용을 받는 부분과 피요양인에게 위임되는 부분으로 분리하여 체결한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소비자들이 요양인 고용, 해고, 요양방식에 대한 결정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펜실베니아의 경우 다른 주들보다 장기요양 전달 시스템이 복잡한 것이 전체 조직화 사업에서 난점으로 작용하였다. 예를 들어 워싱턴 주의 경우 주정부가 운영하는 통합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펜실베니아 주에는 67개 카운티에 52개 요양보호서비스 기관이 있고 20개의 장애인 자활센터가 존재하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199P에서 주된 조직화 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는 소비자가 직접 고용하는 재가 요양보호사이다. 이러한 고용 형태에서는 실질적으로 고용주가 없으며, 중개기관은 중간에서 노동자를 알선하고 주정부로부터 지급되는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임금의 결정 구조가 모호하므로 노조 설립에 있어 독립 서비스 제공 모델에 비해서도 난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조직화 캠페인은 노동자 조직화와 함께 전체 요양보호 체계에 대한 정책적 요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의 가장 큰 정책적 과제는 법적으로 공식 고용주 역할을 할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요구와 로비가 캠페인의 큰 축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미국 노동법 상에서 임금 결정 기관이 노조인정권을 가지는 것을 고려할 때, 주정부가 임금결정 기관인 경우가 많아 UHCWP도 애초 주단위 노조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그렇지만 펜실베니아 주에는 재가 요양보호서비스가 필요한 소비자와 요양보호사를 연결해 주는 중개기관이 있기 때문에 시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임금결정자는 요율 등을 결정하는 주정부이지만, 중개기관의 존재 때문에 펜실베니아의 경우 두 가지 노조 인정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주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협상단위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부문에서 노조를 인정하는 재정적 중개기관과 협상단위를 꾸리는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의 경우 주 정부를 사용자로 하는 첫 번째 경로가 바람직하기 때문에 UHCWP도 주 정부 차원의 행정명령을 통해 소비자, 노동자, 주정부, 중개기관으로 구성된 협상단위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펜실베니아에서 노조에 우호적인 민주당 출신의 에드 렌들(Ed Rendell) 주지사가 당선된 이후 몇 년간의 로비 끝에 주지사는 행정명령을 통한 소비자 노동자 협의체 설립에 동의하지만 행정명령이 발표되자 나서 영리 중개기관 연합체인 재가 요양보호사 파견기관 연합회에서 행정명령의 중지처분을 신청하였다. 결국 법원은 소비자-노동자 협의체의 설립을 중단하는 가처분 조치를 내렸다. 렌들 주정부는 이에 순응했고, 이후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의 인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SEIU는 노조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뜻을 함께 하는 장애인 자립센터들을 묶는 계획으로 전환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노동자 조직화와 노조에 동의하는 연합회에 대한 조직화는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일부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노동조합이 인정받게 된다. '(노조인정을 할 의지가 있는 기관들의) 의지 연합'을 상대로 한 노조인 UHCWP는 단협을 통해 최저임금 수준과 임금 인상 기준을 만들려고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약간의 임금 인상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 캠페인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특히 풀뿌리 조직화, 정책변화, 이해관계자와의 연합을 세 축으로 하는 SEIU 전체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의 모델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정책변화를 통해 노동조합 조직화의 공간을 열고, 이렇게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캠페인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선순환이 이 모델의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1199P의 사례에서는 정책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조직화가 난항을 겪고, 조직화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노동조합으로서는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찾지 못하게 되는 이중의 괴로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 실천단을 통한 교육훈련과 조직화의 사례는 여전히 풀뿌리조직화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고, 의도했던 법제도적 변화가 불가능하게 되자,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조합 건설을 통해 이후 투쟁의 여지를 남겨놓은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노동자 실천단을 중심으로 한 실제 조직화의 진행과정 만약 행정명령이 계획대로 통과되었다면 전체 재가 요양보호 노동자를 포괄하는 협상단위가 법적으로 승인되는 동시에 모든 재가 요양보호사에 대한 조직화 작업에 재빨리 착수하여 선거 전까지 노조에 대한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을 터이나, 행정명령 불발로 조직화 대상은 노조 설립에 동의한 6개 파견기관에 소속된 노동자 5,300여명으로 제한되었다. 실제 조직화에서는 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재가 요양보호사를 만나 노조에 대한 지지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대규모 조직활동가와 이들을 위한 지원(호텔, 렌터카 등)이 필요했다. 조직화에 필요한 대규모 인원은 기본적으로 기조직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로 충원되는데, 이들을 실천단 체계로 구성하였다. 메사추세츠나 일리노이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파견되었고, 펜실베니아 주의 요양보호원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들도 동참하였다. 실천단에 속한 노동자들이 소속된 지부는 이들의 임금손실분과 경비를 지원했다. SEIU 중앙에서도 기술지원 및 상근자 지원을 통해 캠페인을 도왔다. 기본적인 조직화 방식은 재가 요양보호사가 일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상근 조직가들이 팀 리더의 역할을 하면서 조직화와 함께 실천단의 노동자들을 교육하였다. 실천단은 60명에서 65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대략 8개 팀으로 나뉘어서 교육 및 활동을 진행했다. 조직화 기간 동안 하루 일과는 회의로 시작하는데, 이 회의에서는 전날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쟁점 토론 및 교육을 진행한다. 참석자들은 조직화 방식과 면담 방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스스로 교육, 훈련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2010년 9월부터 연말까지 진행된 조직화 캠페인을 통해 만난 노동자들은 대부분 당장 급격한 임금인상은 어렵겠지만 서로 분산되어 있던 많은 노동자들이 한 조직으로 모임으로써 힘을 갖게 됐다는 것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전체 5,300명 중 과반수 이상을 조직한 UHCWP는 이를 바탕으로 6개 자립생활 기관에 노조를 승인 받는다. 소결: 시사점 및 제언 미국의 장기요양 산업 노동자 조직화 노력은 노조설립을 위한 법 제도 개선,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험에 비추어 한국의 사례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 교섭범위를 넓힐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펜실베니아 주의 사례에서 볼 때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잠재적인 조직대상 모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직화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계속 추진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 각 주 별로 법제도적 측면에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한국에서는 노동자성이 철저하게 부정된다는 점에서 이를 일면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역사적인 성공 사례는 장장 12년에 걸친 장기적인 조직화 캠페인의 성과라는 점이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2) 풀뿌리 조직화, 연대전략, 정책변화라는 세 가지 고리의 유기적 연계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돌봄연대 등을 통한 정책변화 노력과 간병분회, 희망터 등을 통한 조직화 노력이 있지만 전략적 차원에서 연계되어 진행되고 있지는 못하다. 간병제도화에 있어서 ‘건강보험 급여화’와 ‘간병노동자 직접 고용’을 중심으로 조직화 노력과 연계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고용서비스의 공공성을 포기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무마하는 방패막이로서 사회적 기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무료소개소는 비영리단체로서 국가의 사업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활용되기 쉽다. 노동조합에서 직업 알선을 통한 조직화 사업을 할 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 하고, 아울러 직업 알선 외에 주체 조직화의 다양한 경로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3) 미국서비스노조 전략조직화 사업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단위는 현장 조합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조직화 실천단이다. 같은 업종에 오랜 기간 종사해 온 조합원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상태와 정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정서적으로도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조직화 실천단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상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현장에 들어가는 역할까지 맡는다. 이러한 실천단은 노조가 직접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재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점에서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실천단 활동을 한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다시 노조 강화, 재조직화 사업의 주축이 되며 튼실한 간부로 성장한다는 점, 조직화 사업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이끌어 내는 기반이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직화 사업 확대, 기존 조합원의 조직화 사업에 대한 동의 지반 확대라는 선순환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