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우리는 왜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민중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1월 초 G20 정상회의에 한미 FTA 국회 비준 결과를 들고 가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날치기로라도 올해 안에 한미 FTA를 비준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갈팡질팡하는 행태를 볼 때, 민중들의 투쟁이 확대되지 않는 한 한미 FTA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국은 미국 외에도 이미 44개국과 FTA를 체결, 발효한 상태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FTA 대상국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FTA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을 ‘FTA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 재벌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를 통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양국 간 협상에서 이익균형만 잘 맞추면 FTA는 쌍방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농업 등 일부 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대책만 잘 마련하면 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FTA의 핵심적 문제점을 감춥니다. FTA는 단순히 국가 간 통상전략이나 부문간 이해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시작해서 한미 FTA로 완성된 미국식 FTA는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와 서비스·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포괄합니다(질문1). 이에 따라 자본에게는 국경을 오가며 막대한 이윤을 누릴 자유가 보장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구조조정과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굴레가 강요됩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자본도피와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FTA가 체결되면 수출경쟁력을 갖춘 재벌에게는 큰 이익이 되지만 경제 전체적인 성장과 고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질문2, 질문3). 따라서 FTA가 1997년 이후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습니다(질문5). 한미 FTA는 비단 경제적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특히 금융위기와 천안함 사태 이후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질문4). 또 한미 FTA에 포함된 각종 투자 자유화 조치들은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소조항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습니다(질문6). 이와 관련하여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에서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대폭 강화되고 의료민영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질문8).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한EU FTA도 한미 FTA 못지 않은 파괴적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질문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당면한 한미 FTA를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을 저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FTA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개별 FTA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질문10, 질문7). 이 소책자는 이상 10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한미 FTA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지난 5월 발간된 초판에서 현재 상황을 반영하여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고, 또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부록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각각의 질문 당 4-5쪽 분량으로 짧게 쓰려고 노력했고 사이사이 사진도 넣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소책자가 한미 FT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운동의 물결을 더욱 크게 일으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목차> 1.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사실인가요? 3.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왜 한미 FTA를 추진했을까요? 4. 미국 오바마 정부는 왜 한미 FTA를 다시 추진할까요? 5. FTA를 통하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가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무엇일까요? 6. 한미 FTA는 주권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나요? 7. 한미 FTA 노동조항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한미 노동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나요? 8. 한미 FTA는 한국의 보건의료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9. 한EU FTA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10.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맞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부록] 막아야 하고, 막지 못하면 앞으로 폐지하기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한미FTA 독소조항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안정화 계획과 제국주의 개입의 모순 10월 20일 카다피가 사망했다. 리비아 반란군이 10월 4일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선언한 지 두 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카다피 일행은 시르테의 함락 직전인 10월 20일 오전 8시에 차량 100여 대에 나눠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나토는 무인 폭격기와 프랑스 미라주 2000 전투기를 출동시켰고, 폭격으로 15대가량이 불타고 50여 명이 사망했다. 카다피는 고속도로 밑에 있는 콘크리트 배수관에 몸을 숨겼으나 결국 반란군에 발각되었고, 반란군에 의해 호송되는 과정에서 결국 사망했다. (카다피의 최종사인이 무엇이냐는 것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반란군에 의해 우발적으로 사살되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카다피가 최종 사망한 것은 10월 20일이지만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된 8월 23일 이후 카다피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었다. 지난 8월 20일 아침부터 수도 트리폴리 내에서 민중봉기가 시작되었고 다음날인 8월 21일 정오경에 이르러 트리폴리 여러 구역에서 봉기세력이 정부 보안기구를 격퇴하였다. 8월 21일 저녁 트리폴리 외부에 있던 반란군 중 첫 번째 부대가 트리폴리에 도착했고 남아 있는 카다피 군 거점을 공격했다. 트리폴리는 내부의 민중봉기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트리폴리의 국가과도위원회(NTC) 성원은 나토의 ‘인어작전’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토는 사전에 계획된 40개 목표에 대한 공습을 수행하지 않았고, 외부 전사는 실제로 봉기계획 시간보다 48시간 후에야 트리폴리에 도착했으며 아무런 전투도 수행하지 않고 녹색광장으로 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리비아 반란군은 8월 23일 카다피 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트리폴리의 핵심 거점인 알 아지지야 요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신중한 트리폴리 주민은 처음 일주일간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10여 일이 지난 후부터는 정부가 사라진 트리폴리에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트리폴리의 지구별로 주민들이 원로, 반란을 계획했던 지하지도부, 종교지도자와 함께 지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공서비스를 재개하고 사회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카다피가 선언했지만 진정으로 실현된 적이 없는 ‘자마히리야’(대중의 공동체), 즉 분권적 기층 네트워크이자 비당파적 인민위원회가 카다피가 사라진 바로 그곳에서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지구위원회는 NTC의 이름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실제로 NTC와 직접 접촉하는 것은 아니다.) 10월 23일 지브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은 벵가지 키쉬광장에서 열린 해방 선포식에서 카다피가 없는 리비아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리비아 봉기는 이제 해피엔딩만을 남겨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이고, 누가 그것을 주도할 것이냐는 문제로 진입하는 새로운 국면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과도위원회의 안정화 계획과 헌법 초안 국가과도위원회(지브릴 정부)가 설계한 ‘안정화 계획’은 그들이 구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단호한 의도를 보여준다. 70페이지에 달하는 안정화 계획은 이라크에서 폴 브레머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행한 것과 정반대의 방책을 제시한다. 안정화 계획은 ‘이라크의 교훈과 모범사례를 통합한다’고 선언하면서, 브레머의 바트당 축출 구상을 국가장치를 공백으로 만들고 이라크 중산층이 미국의 점령에 등을 돌리게 한 원인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안정화 계획은 과거 정권과 관계를 맺은 모든 인물을 배제하거나 그들을 조사하는 것에 반대하며, 카다피 정권 인사를 향후 정치계획에 포괄하는 구상을 지지한다. 구정권 인사들을 사회에 통합하고 그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곧바로 무기를 들 수도 있다는 것이 논거가 된다. 과거 정부와 보안기구에서 고위직을 차지했던 부족이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리비아 헌법선언도 발표되었다. 국가과도위원회는 수개월 전부터 헌법선언을 작성했다. 리비아 헌법선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식 헌법 초안이 제헌의회 수립 후 2개월 내에 제출되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즉 국가과도위원회의 구상에 따르면 자신들의 임무는 제헌의회 선거로 마무리되며, 제헌의회 구성 후 1개월 내에 총리를 지명하고 2개월 내에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해야 한다. 카다피 사망 후 10월 23일 국가과도위원회는 해방 선포를 계기로 본거지를 벵가지에서 수도 트리폴리로 옮기고 30일 이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이어 8개월 내에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0년에 걸친 카다피 독재를 고려하면, 리비아 사회에 산적한 여러 근본적 문제를 토론하기에 2개월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다. 게다가 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한 혁명세력이 이미 발표된 헌법선언을 미리 검토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리비아 사회가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헌법과 제도를 창출하기 위한 토론에 모든 리비아인이 참여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무시된다면 새로운 헌법과 정부는 정통성을 결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헌법선언에서 국가과도위원회는 혁명으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끌어오지만, 국가과도위원회 인사들과 전선에서 희생한 혁명전사의 관계가 희박하므로 그러한 규정은 곧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가과도위원회 구성원 자격에 관한 정의도 불충분하다. 구성원은 원칙적으로 지역 위원회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지만 헌법선언에서는 선출 메커니즘이 정의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비민주적 수단에 의해 즉 스스로 자신을 임명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브릴 총리가 30일 내에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불씨로 남아 있다. 카다피가 사라진 후에도 구질서가 회복된다면 이는 반란군의 희망을 위협할 것이다. 반란군은 여전히 카다피가 소유했던 부동산과 트리폴리의 항구, 중앙은행을 손에 쥐고 있으며 방어군이란 이름으로 주요 시설에 주둔해 있다. 해외 추방을 당했다가 돌아온 이들과 이슬람주의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고 있다. 반란군, 해외 망명객, 이슬람주의자 모두 구 국가제도를 완전히 갈아엎고 처음부터 새롭게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넘쳐나고 있는 무기와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강력한 열정이 결합하면 어떤 심각한 내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가 반란군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채 그들의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분리주의적 경향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스트라 지휘부는 트리폴리 지휘부의 명령을 따르라는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나푸사 산맥지역의 베르베르인도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미스트라 반란군과 달리 트리폴리 점령 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전투에서 획득한 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리비아 민족통합과 부족주의 최악의 경우 리비아가 소말리아 유형으로 분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논자는 리비아가 진정으로 민족적 통합을 경험하지 못했고 언제나 지역주의부족주의가 강력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논자는 리비아 봉기가 부족 간 충돌이 아니라 민족 혁명이라면서 이와 같은 견해를 부정한다. 물론 카다피 정권과 국가과도위원회 양자 모두 전쟁 기간 동안 부족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고심했다. 카다피는 트리폴리가 포위되기 전에 부족 대표 회의를 조직하고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냈으며, 그의 연설은 항상 리비아 부족들을 언급했다. 국가과도위원회도 카다피 제거를 요구하는 부족 지도자들의 선언을 장려했다. 하지만 리비아 봉기가 민족혁명이라고 주장하는 논자는 리비아 부족주의 문제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리비아에서 부족 관계는 견고한 동맹분할 체계가 아니며 매우 신축적인 존재다. 어떤 리비아인은 부족 정체성을 중시하지만 다수는 과거의 유물로 간주하며,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원래 ‘소속된’ 부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리비아에 300개 부족이 있다지만 다수는 단일 지역에 위치한 균질적 집단이 아니며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부족 지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리비아인은 부족관계와 민족적 정체성 사이의 충돌을 경험하지 않았다. 나아가 리비아 부족 문제는 카다피의 정치 프로젝트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카다피는 40년 동안 진정한 시민사회의 형성을 가로막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족관계에 의존해서 일상을 영위해야 했다. 또한 민족적 충성심을 강화하기 위한 카다피의 시도는 항상 부족 간 ‘분할과 지배’라는 형태를 띠었다. 카다피는 교묘하게 부족 간 불협화음을 조장하면서 자신이 떠나면 리비아가 부족들에 따라 분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의 리비아인은 리비아 민족이라는 관념으로 투쟁을 전개했고, 현재의 무장충돌이 종식된 후에도 여전히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민족혁명을 지지하는 논자가 제시하는 결론은 부족 파벌이 부족적 공감대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려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리비아 혁명이 지방주의부족주의적 지향의 분리주의에 추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반란군 세력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과도정부위원회의 안정화 계획이나 헌법제정 시도가 반란군 세력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리비아 혁명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보호책임의 성공사례인가, 제국주의의 납치인가 리비아 혁명은 국제정치에도 중대한 쟁점을 던진다.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나토의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논자는 리비아 혁명의 결과가 곧 유엔이 자임한 ‘보호책임’의 성공적 사례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닉 휘트니 전 유럽방위청 청장은 “결정적 개입이 전장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흔들 수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후폭풍을 피하면서 그런 개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것을 비판하는 논자는 제국주의가 리비아 민중혁명을 납치(hijacking)했다고 주장한다. 보호책임은 지금도 논란을 지속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쟁점이기 때문에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호책임은 아직 조약이나 국제관습법과 같은 경성법(hard law)이 아니고, 2005년 유엔총회결의 형식으로 채택된 연성법(즉 응고과정에 있는 법)이기 때문에 실제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또한 보호책임의 일반적 해석과 구체적인 실행방식 문제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엔의 리비아 결의안과 나토의 군사행동은 보호책임의 실행방식에 관한 국제관행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에 던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 서방 국가의 군사개입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논자도 비서구 세계의 반권위주의 운동과 국제 정부의 행동의 시너지가 나토의 성공적인 리비아 개입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정권교체를 추진할 당시에는 이라크 민주화운동을 군사개입으로 대체함으로써 시너지를 중단시켰다면 리비아의 사례에서는 나토와 반란세력 간 동맹이 훨씬 더 개방적이었고 그로 인해 시너지가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시너지 효과를 통해 리비아 반권위주의 운동도 성공을 거두고, 서구 세계도 인도주의적 개입을 위한 더욱 효과적인 방식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반면 서구 제국주의가 리비아 민중혁명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논자는 서구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리비아에서의 이권에 주목한다. 나토의 군사작전을 주도하고, 국가과도위원회를 지원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9월 15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카다피 집권 시절부터 서구의 석유회사는 이미 리비아 석유를 장악했지만 언제 카다피가 인도와 중국 같은 경쟁자들과 흥정을 벌일지 불안을 느꼈다. 프랑스 기업은 리비아의 막대한 수자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미국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프리카군사령부(AFRICOM) 기지를 설치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지금도 AFRICOM 기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국가과도위원회가 구질서를 보호한다는 분명한 방침을 세우고 있는 현실은 제국주의가 혁명을 납치하고자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보호책임론자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의 군사적 일방주의와 유엔의 보호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지만,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것은 분명하다. 유엔의 보호책임 적용 여부는 오직 서방 강대국만 결정할 수 있다. (유엔 안보이사회는 보호책임에 관한 제재를 가할 재량을 갖지만 반드시 모든 경우에 제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유엔 안보이사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권한도 있다.) 또한 보호책임의 명문화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군사적 일방주의를 제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엔이 미국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 강대국이 상황에 따라 군사적 일방주의를 가동할 수도 있고, 보호책임을 활용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나토 공습, ‘인도적’ 전쟁인가, ‘위험전가’ 전쟁인가 또한 나토의 자화자찬은 초정밀 인도적(자비로운) 전쟁이라는 환상을 유포할 위험이 있다.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을 지지하는 논자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공중폭격은 서방국가 군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그 위험성을 지상의 민간인에게 전가하는 ‘위험전가 전쟁’ 방식이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사례를 보더라도, 벵가지 주변 반란군이 장악한 지역에 추락한 2명의 나토군 비행사를 구출하기 위해 나토는 500파운드 폭탄 두 발을 투하한 후 헬리콥터를 착륙시켰고, 이 과정에서 6명의 리비아 주민이 부상을 당했다. 이는 나토의 본능이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군인의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4월 7일 아즈다비야에서도 나토의 공습으로 인해 13명의 반란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나토의 리비아 군사개입은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21세기 판본의 미국 주도 군사모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2001년 럼스펠드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공군과 해군 능력을 극대화하고 지상군 활용을 최소화하는 전쟁, 즉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녔다.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전망은 911 사건, 이라크전쟁을 거치며 더욱 현실화되었다. 이에 따라 두 가지 경향이 강화되었다. 첫째, 특수부대가 강조되었다. 미국 합동특수전사령부 인원은 911 이후 10배 증가했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않았고 그 비밀성은 CIA를 능가한다. 둘째 다양한 유형의 무인항공시스템(UAS)이 널리 활용되었다. 지금도 보잉사는 스텔스 무인전투기 팬텀 레이와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정찰기 팬텀 아이를 개발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토는 리비아 전쟁을 최근 성공 사례로 추켜세울 것이다. 6개월 이상 계속된 공습, 무인항공기의 지속적 활용, 광범위한 특수부대 작전 등. 이에 따라 공습으로 인해 수백 명의 군인 또는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거의 무시된다. 리비아에서 얻은 결과는 전쟁을 수행하는 효과적이고 수지가 맞는 새로운 방식이 있다는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10월 20일 카다피 사망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단 한 명의 지상군도 투입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리비아 혁명의 미래 카다피가 수도 트리폴리에서 도피한 후 리비아 민중은 지역별로 주민위원회를 결성하여 사회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위원회나 반란군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국가과도위원회가 제시하는 안정화계획과 헌법제정 절차는 구질서의 완전한 해체와 민주주의의 건설이라는 민중혁명의 목표와 근본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나토의 군사작전을 통해 리비아 개입의 정당성을 획득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이권을 관철하려고 골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며 하이테크 전쟁 모형을 가속할 것이다. 리비아 민중 스스로 시작한 리비아 혁명은 어떤 사회를 누가 주도해서 건설할 것이냐는 혁명의 본질적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시사점과 제언 『사회운동』은 노조페미니즘팀의 [기획연재]를 통해 여성노동자 조직화에 관한 분석과 제언을 소개하고 있다. 7-8월호에서는 「5060대 청소노동자들은 어떻게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청소노동자 조직화를, 9-10월호에서는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 노동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라는 기사를 통해 간병·요양노동자 조직화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여성의' 일자리로 만들고 이를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만들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옭아맨다. 여성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과 인식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서비스노조(SEIU)에서는 청소노동자 조직화와 간병·요양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나름 성공적인 전략조직화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시사점을 도출하려고 한다. 청소노동자 조직화와 관련해서는 SEIU의 32BJ 지부가 2000년대 초반 진행한 뉴저지 주 건물청소 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을, 간병·요양노동자와 관련해서는 1998년 캘리포니아와 2008~2010년 펜실베니아 주(1199P)에서 있었던 캠페인을 소개한다. 아래 소개되는 사례들은 공공운수노조와 노동자운동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CtW(SEIU)-공공노조조직화 프로그램 비교연구』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뉴저지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소개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J4J) 캠페인은 1980년대 초부터 주로 건물 청소 및 유지를 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로부터 일어난 운동으로서 SEIU의 간판 전략조직화 프로그램이며 모델이다. 그 역사는 1930년대 SEIU의 전신인 건물서비스노동조합(BSEIU)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SEIU의 뉴욕지부인 32B 지부는 맨하탄 가먼트 지구에서 일하는 건물관리자, 청소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34년 역사적인 파업을 통해서 교섭대표권(노조 인정)을 쟁취했고, 이후 신규 조직화와 다른 노조·지부와의 합병을 통해서 BSEIU는 크게 성장한다. 조직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1968년 BSEIU는 SEIU로 개명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15일(J4J 기념 행동의 날) 10만 명이 참여한 전국 J4J 행동 후 SEIU 중앙은 미국 동부지역인 볼티모어(인구 60만 명), 필라델피아(인구 100만 명), 북 뉴저지(전체 주 인구 800만 명)에서 새로운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조직화 대상 2만 명, 평균 시급 6달러). 이 캠페인을 담당한 SEIU의 지부가 32BJ였다. 이 캠페인, 더 나아가 모든 J4J를 모델로 한 조직화 사업의 핵심은 사업주로부터 노조 인정을 얻어내는 것인데, 대부분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이들 청소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조합으로 조직되는 지를 알아보려면 먼저 이와 관련된 미국의 노동법제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노동법제 하에서 노조승인: NLRB 선거와 카드체크 미국에서 노조 설립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는 전국노사관계위원회(NLRB)가 주관하는 선거다. 이 선거는 교섭단위(bargaining unit)의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대표권을 노조에 위임할지 여부를 묻는 선거이다. 미국 노동법에 따르면 미조직 노동자를 신규 조직화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은 최소 30%의 노동자들로부터 노조 지지 의사를 표시한 카드를 모아 선거를 신청할 수 있다. 선거 장소 및 일정 등은 NLRB가 주관하여 결정하며 선거일까지 약 20~30일까지의 기간 중 노사양측 선거운동이 진행된다. 투표결과는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복수노조가 경선할 경우, 첫 번째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면 그 조합이 교섭대표권을 획득하게 되지만 어느 측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그 중의 1위와 2위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결선투표를 1회 행함). 이러한 NLRB 선거과정은 복잡하고 조직화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데, 우선 교섭단위를 결정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교섭단위 결정을 위한 청문회에서 사용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경우 선거과정 전체가 지연되어 사용자가 반노조 선전 및 공작을 행할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한다. 위에서 말한 NLRB선거를 통하지 않고 노조를 설립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50% 이상의 노동자가 노조 지지 카드에 서명을 하고, 사용자가 이를 승인한 경우 비밀 투표 과정을 생략하고 노조가 승인된다. 다른 경우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로 공정 선거가 불가능할 경우 50% 이상의 노조 지지서명 카드를 받아 NLRB가 사측에 노조 승인을 명령할 수 있다. 오바마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의 경우 50% 이상의 기명 지지카드가 모이면 비밀선거 과정이 생략되고 (사용자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자동적으로 노조를 인정하게 하는 법이었으나, 현재는 상원에서 부결된 상태이다. 실제 조직화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술: 카드체크-중립 협정, 기본협약-트리거 조항 따라서 신규노조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노조는 지난한 NLRB 선거보다 카드체크 방식을 선호한다. 다양한 전술을 통해 사용자가 카드체크 방식을 택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립 협정(neutrality agreement) 전략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립협정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조직화 캠페인 기간 동안 노조 승인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는 것이다. 실제 경험을 보면 양 전략을 함께 사용했을 경우 효과적이다. (2005년 NLRB 선거의 경우 노동조합이 승리한 경우는 56.8%인 반면 카드체크와 중립협정 체결 혼합전략의 경우 80% 가량 성공했다(중립협약만 단독으로 사용했을 시 45%, 카드체크 단독 사용시 62.5%, 양 전략 동시 적용시, 78%). 이를 통해 조직활동가는 사측과의 싸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사측으로서는 노조와의 분쟁을 피함으로써 반노조 캠페인에 들어가는 비용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을 사측이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선 사측을 압박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노동조합의 강력한 힘이 이러한 압박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대중적 조직화, 그리고 조직화를 통한 기반 강화라는 선순환을 그리기 위해 SEIU는 포괄적 캠페인을 진행한다. 기본협약(master contract)은 다수의 사용자가 참여하는 협약으로, 특정한 지역 전체에 적용되는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을 규정한다. 따라서 이 협약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은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강요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는 대신 서비스의 질이나 다른 측면을 통해 서로 경쟁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협약을 통해 노조가 조직된 업체가 경쟁력을 잃고 퇴출되거나,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노동자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다. 즉, 노동조건을 시장경쟁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대부분의 경쟁업체들이 이 협약에 참여하기만 한다면)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굳이 막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협약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 주는 메커니즘이 트리거(trigger) 조항인데, 뉴저지의 조직화 사례에서 살펴보자면, 기본협약의 노동조건이 협약에 참여하는 순간 발효되는 것이 아니라 노조가 조직된 업체의 청소면적이 일정수준(뉴저지의 경우 60%)를 넘을 경우 발효되는 것이다. 따라서 업체로서는 기본협약에 참여하는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본협약에는 이러한 트리거 조항이 삽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직화율이 아닌 면적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업체가 고용한 노동자의 수는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정 면적을 청소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동일하다고 보고 면적을 기준으로 삼아 한 지역의 기본협약을 활성화(트리거)할 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카드체크를 통한 노조인정과 기본협약 체결이라는 전략은 대규모 중앙집중식 전략 조직화를 가능케 하는 전술이면서 동시에 조직된 노동의 힘을 조건으로 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상기 전략을 취하기 위해선 대규모 전략 조직화가 필요하고, 대규모 조직화를 위해서도 또한 이러한 전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J4J 캠페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용역업체가 노동조합 인정을 하더라도 경쟁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지역 차원의 대규모 조직화를 통해 지역 전체에서 일정 비율 이상이 조직될 때까지 단위 노동조합의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요구를 자제시킴으로써 고용주를 안심시키고 대신 중립협정을 맺는 방식이다. 뉴저지 캠페인의 전개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 32BJ 내에서는 캠페인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새로운 조직화에 많은 자원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 조합원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자원이 삭감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32BJ 지부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범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2000년 지부장 선거는 신규 조직화를 둘러싼 입장을 두고 치러졌으며, 조직화를 강조한 후보가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캠페인이 시작될 수 있었다.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뉴저지와 인접한 뉴욕의 건물 청소노동자는 이미 다수 조직된 상태였다. 뉴욕의 노동자들이 시급 17-18달러에 연금, 의료보험 등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데 반해 뉴욕과 뉴저지의 청소업체들은 대체로 일치했고 건물 소유주도 동일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뉴저지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파트타임(하루 20시간)으로 일하면서도 시급은 5-6달러 수준이었고 복지 혜택은 아예 없었다. 뉴욕의 바로 옆 주인 뉴저지의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뉴욕의 기존 조합원의 이해조차 보호하지 못할 것은 명확했다. 같은 해부터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친 노조 후보가 선출될 수 있도록 조합원을 동원해서 선거활동을 벌였으며, 다음 해에는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롱아일랜드 등에서 노조가 지원한 여러 후보가 선출되었다. 이러한 선거활동 결과 뉴저지 주지사, 뉴어크 시장 등 민주당 정치인의 적극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간의 조직화 캠페인(2001년 4월부터 2003년 4월까지)을 통해서 뉴저지 지역 5,000명의 신규 조합원을 조직하고 이들을 고용한 파견업체들과는 기본협약을 맺었다.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뉴욕에서 SEIU와 협약을 체결하고 있던 몇 개의 청소업체는 뉴저지 조직화에 대해 중립협약을 맺었다. 이미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던 규모가 큰 청소업체의 경우 노조를 인정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노조가 기본협약을 통해 지역시장 전체의 임금 수준을 통일적으로 설정한다면 큰 청소업체들의 경우 작은 업체에 비해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즉 지역시장 전체의 임금수준이 고정되면 다른 업체들과 임금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고 큰 업체들의 경우 작은 업체들에 비하면 임금 이외의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노조가 지역시장 임금기준을 정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건물소유주는 노동자의 임금에 큰 영향을 미치고 노조가 있는 청소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한 투쟁도 중요하다. 대개 야간에 청소 노동을 하고 낮에는 다른 일터에서 일하는 상용건물 청소노동자의 노동패턴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의 행동범위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건물주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였다. 회사의 문제점 있는 투자, 탈세, 환경 파괴 행위 등을 조사해서 지역사회 단체, 정치인, 종교인, 변호사 등과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이를 기업상대 캠페인(corporate campaign)이라고 한다. 뉴저지 캠페인의 특징 조직대상의 선정에 있어 대부분 SEIU 노조가 선호하는 ‘열성사업장’(불만이 많은 현장)에 집중을 하는 방식과 32BJ가 사용하는 전략적 선정방법은 차이점이 있다. 다른 노조들이 노동자가 불만이 많고 싸울 준비만 되면 일단 조직화를 시도하는 반면, 32BJ는 한 지역에서 60% 조직률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략적인 현장부터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대상인 노동자는 애초에 의지가 높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와 대화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보다 큰 중요성을 갖는다. 뉴저지 청소 노동자(95% 남미 이민자)는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야간에 근무하며 뉴저지 건물들이 흩어져 있어서 접촉하기 매우 어려운 편이다. 파업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밤이기 때문에 파업의 효과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직접 행동 이외의 캠페인 전술 사용이 필연적이다. 전술한 건물주 압박전략도 이러한 맥락에서 배치되는 것이다. 32BJ는 조직화 전략에서 관계지향적인 문화 또는 관계지향적 회의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데 중점을 두고 현장의 문제 파악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제기하는 요구를 바탕으로 투쟁을 계획하는데, 가령 겨울에 지급되는 작업복 문제가 노동자에게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문제이지만 애초에 노동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낮은 수준의 투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명운동으로 시작해서 배지 달기, 지역사회 종교인, 정치인과의 면담, 집회, 파업까지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는 전술을 사용한다. 모임, 대화 등을 통해 서로 다른 층이나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 간의 신뢰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관계지향적인 조직화 문화라고 한다. 따라서 32BJ의 캠페인에서 파업은 핵심 전술이 아니었다. 실제로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 동안 지역파업은 없었으며, 사업장 단위 파업을 하루 혹은 며칠 동안 진행하긴 했지만 상징적인 수준을 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파업을 벌이면 사업주는 영구 대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으며, 오직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파업만이 법적 보호를 받는다. 32BJ는 영구 대체 노동자 고용이 불가능한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파업만을 벌였다. ‘조직화 실천단’(organizing brigade)이라는 조직화 · 훈련 프로그램이 32BJ를 비롯해 SEIU 전체의 전략에서 핵심 축으로 기능한다. 실천단은 투쟁 경험이 있는 조합원 30~40명으로 구성되는데, 조합원들이 조직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지역에 파견돼서 조직활동에 체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실천단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2주에서 3개월의 무급휴가를 내고 조직화 활동에 전념하는데, 이러한 노조 활동을 하기 위한 휴가 시간은 단협에서 보장되는 경우에 가능하다. 실천단 기간 동안의 임금은 노조가 노동자들의 자기 사업장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보전한다(정확히 말하면 사용자에게 급여를 주고 사용자는 노동자의 정상임금을 지급). 2001년~2003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조합원들이 실천단으로 뉴저지 조직화 캠페인에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천단의 프로그램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핵심 전략이다. 소결: 시사점 및 제언 2001년~2003년 32BJ의 뉴저지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은 사측과의 중립협정, 기본협약, 트리거전략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지역을 조직하기 위해서 기존 조직화를 통해서 키운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여러 조건(파트타임, 야간 근무 등)으로 제약이 심한 노동자의 힘을 조직된 뉴욕 노동자의 행동과 지역사회 활동가, 정치인과 같이 진행한 기업상대 캠페인으로 보충해서 빠른 시기에 조직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상대가 대형 청소업체였기 때문에 조직화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대형 청소업체를 상대로 투쟁하거나, 공단과 같은 일정한 지역에서 청소노동자 조직화를 시도한다면 32BJ의 뉴저지 캠페인은 참조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음 3가지 지점이 주목할 만하다. 1) 건물주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노동자의 행동은 사측을 압박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포괄적인 투쟁전략의 일부이다. 또한 기본협약과 트리거전략을 활용함으로써 조합원에게 요구된 희생(장기파업, 연행 등)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을 채택했을 때 노동자를 수동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전투적인 소수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전통적인 J4J 전략에서 ‘다수의 참여’를 중심으로 한 전략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활동 참여율에 있어서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2) 많은 신규 조직화 캠페인과 같이 SEIU 중앙은 뉴저지 청소노동자를 조직화기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투자했다. 또 32BJ 내에서도 신규 조직화를 가능하도록 조합원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지원을 투자했다. 이러한 투자가 결국 결실을 맺어, 32BJ는 뉴저지에서 성공적으로 조직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조직화 모델을 개발해서 현재 보다 적은 자원으로 비슷한 수준의 캠페인을 수행할 수 있다. 3) 조직화 실천단은 참가자의 임금지급 등을 위해서 매우 많은 재정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그러한 투자가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실천단을 통해서 조합원이 훈련될 뿐 아니라 실제 조직화 사업을 담당함으로써 노조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SEIU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조직화 실천단은 노조 성장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SEIU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활동 소개 ‘가족의 영역에 맡겨져 왔던 간병·장기요양의 문제를 사회연대원리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분담한다’는 취지 하에 한국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넘었다. 이 제도 아래서 대상자를 운동시키고 대상자의 청결을 유지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외출을 돕는 일과 같이 대상자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요양보호사라고 부른다. 2010년 6월 현재 약 90만 명으로 추산되는 요양보호사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가족 내에서 여성이 주로 수행해 온 돌봄노동이 사적으로 저평가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요양보험제도를 통해 사회화된 돌봄노동 역시 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간병인도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고용 관계로 묶여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 역시 돌봄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현재 공공운수연맹에서 설립한 희망터에서 재가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노동자들이 시설이나 각 가정에 분산되어 있고 간접고용으로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노동조합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재가서비스(home care service)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 대한 조직화 노력과 그 성과는 한국과 미국에서 사뭇 다르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캘리포니아 주의 SEIU 434B 지부에서 12년 간에 걸친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노력 끝에 1998년 캘리포니아 카운티에서 74,000명의 재가 요양보호사가 한꺼번에 노동조합으로 가입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1941년 포드 사 리버 루즈(River Rouge) 공장이 미국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한 이래 단일 조직화 캠페인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조직화 성과였으며, 이후 계속된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의 전범이 되기도 하였다. 캘리포니아 주의 대규모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의 성격과 진행과정, 그리고 최근 펜실베니아 주에서 시도된 조직화 캠페인을 살펴보고,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간병인 및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보려 한다. 미국에서 재가 요양보호 산업의 등장 미국에서 재가서비스(home care service)는 자택에 거주하는 노약자 혹은 장애인의 일상 활동을 보조해 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 요양보호사(homecare worker)의 역할은 당사자의 요구에 따라 개인위생, 요리, 청소, 쇼핑, 투약 보조 등 다양한 활동을 포괄한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공공 및 사설 사회복지 기관, 카운티의 복지부서, 메디케어의 승인을 받은 재가 요양보호 파견업체, 사설 파견업체를 통한 고용과 각 가정에 직고용된 형태 등이 있다. 이들을 라고 부른다. 한국과 미국의 복지제도와 노동정책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건의료 및 복지 체계 내에서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직종은 미국의 경우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병원 및 요양원 등의 시설에서 일하는 간병인과 가정 및 시설의 장기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원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장기요양보호사가 일정한 자격요건 취득을 필요로 하는 데 비해, 미국의 경우 각 주에 따라 특별한 면허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미국의 재가 요양서비스의 출현과 변화는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의 변화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그 기원은 1930년대 뉴딜 정책 아래서 시행된 방문 가사도우미 지원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정책의 목적은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가정에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유급 여성 노동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전자의 목표가 복지정책적 측면을 보여 준다면, 후자는 노동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일자리는 보건의료 영역이 아닌 가사노동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노동법의 관리에서 벗어난 비공식, 저임금 노동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도 이러한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 재가서비스는 흑인, 유색 이주민 여성들의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노동은 유급이긴 하였지만 정식 일자리 혹은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비가시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2세대 페미니즘의 부상과 함께 전문직 여성, 민권운동단체, 노조가 공동으로 법 개정 노력을 통해 1974년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의 개정을 이끌어내어 이들도 공식적으로는 최저임금, 노동시간, 초과근무수당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되지만, 여전히 이러한 노동은 임시직으로 여겨지며 실제로는 임금과 노동시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욱이 노동자성 역시 부정되었으며, '독립 사업자'로 취급된다. 당시 목표는 노동-복지 연계 정책으로서 공적 부조가 필요한 이들에게 대한 부조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그 자신이 복지수혜자인 저소득 여성이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정부는 일손 부족을 겪고 있던 간병인, 육아 보조인, 가사 보조인 등의 공급을 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저소득 여성이 '자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복지정책의 기본은 이들을 시설에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재정은 주정부가 연방정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충당되었다. 1960년대 들어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 국가의료보험)와 메디케어(노인 대상 국가의료보험)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전달체계를 통해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 노인을 상대하는 가사 보조인을 위한 재정이 지원되었다. 이러한 기관의 설립과 함께 지역별 가정요양 기관(대상자와 요양보호사를 연결)과 민간 서비스 제공기관(요양시설)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재가서비스 노동자들은 가사노동과 요양보조인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생활임금 보장, 가사노동과의 차별화에 대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여전히 보건의료 분야가 아닌 가사노동으로 취급되어 노동조건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기관요양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복지 전달체계는 1974년 이후 가정요양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러한 재편의 목적은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급증하는 재정지출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 주정부들의 재정위기 이후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가정요양 부문이 하나의 산업으로 급속히 성장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1958년 2,000여 개에 불과하던 가사노동자, 가정요양인 등의 일자리가 1975년에는 60,000개로, 1980년대에는 350,000개로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 재가서비스 산업의 부상과 함께 정부에서는 저소득 복지 수혜자를 이 산업의 잠재적 인력풀로 여기고 이를 활용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급여통제가 심해지면서 가정요양 기관들은 이전에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들이 하던 직무 중 일부를 저숙련-저임금 노동자에게 이전한다. 이에 따라 재가 요양보호사가 보건의료 체계 내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등장한 재가 요양보호 산업은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개별 가정에 직접 고용되어 일하거나 정부기관에 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전 시기와 다르게 영리 및 비영리 파견업체에 의해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즉, 복지체계의 일환으로서 장기요양서비스가 이전에는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거의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던 것에서 외주화 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기요양보호 체계에서 정부가 재정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재가 요양서비스의 경우 그 재원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부담한다. 그렇지만 국가가 담당하던 시설을 통한 요양서비스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지위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하게 되었고, 이들 역시 시설요양에서 재가요양으로의 재편과정에서 재가 요양서비스 산업으로 유입된다. 일반적으로 볼 때 미국의 재가 요양보호 전달 시스템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독립 서비스 제공자 모델’(independent provider model)이고 다른 하나는 ‘파견 모델’(agency model)로도 불리는 ‘계약 모델’(contract model)이다. 1998년 74,000명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에 성공한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전자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 모델은 1) 요양보호사를 직접 고용하고 감독하는 소비자(대상인) 2) 대상자 자격요건을 결정하는 카운티별 사회 복지기관 3) 요양보호사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주 단위 기관으로 구성된다. 이에 반해 계약 혹은 파견 모델에서는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는 주 정부이지만, 노동자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영리 및 비영리 중계기관 혹은 파견업체가 존재하며 이들이 주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 및 관리를 담당한다. 펜실베니아 주의 경우 후자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재가요양보호사 조직화의 경험: 캘리포니아 한국과 미국에서 재가요양보호사(미국)나 장기요양보호사 및 시설간병인(한국) 조직화 사업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노동자들이 시설별, 가정별로 분산되어 있어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 간접고용 아래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노동조합 설립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 또 이들의 사용자라 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일반적으로 간병인 및 요양보호사의 노동조합 가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캠페인에서 구사했던 방법 역시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풀뿌리 조직화, 로비 등을 통한 변화, 정책 소비자 단체등과의 연합 결성(공동체 조직화)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먼저 분산되어 있는 노동자를 가정방문 등을 통해 만나 노동조합의 계획을 설명하고 지원을 호소한다. 이렇게 모인 역량을 통해 주정부 및 카운티의 지방자치단체를 압박하여 주법을 개정하거나, 행정명령을 통해 공식적 사용자 단체의 역할을 하는 주 차원의 재가 요양보호인을 관장하는 기구를 건설한다(③). 또한 소비자 단체와의 연합을 통해(②)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오히려 이직률을 낮춤으로써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설득하여 이들이 조직화를 지지하게 하며(①), 전술한 재가 요양보호 관장 기구에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⑤) 이와 관련된 주(州) 재원의 활용을 감시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한다(⑥). 또한 공식적 사용자 단체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이를 교섭상대로 삼아 노조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며(④) 노동시간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을 두고 주정부와 협상을 벌인다. 최근 미국의 재가요양보호사 조직화 운동: 펜실베니아 펜실베니아에서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 역시 기본적으로는 캘리포니아에서 사용되었던 전략을 따르고 있다. 다만 펜실베니아의 경우 주정부를 주체로 하는 교섭단위 구성에 실패한 후, 노조설립에 동의하는 중개기관 역할을 하는 비영리 장애인 단체를 묶어 사용자 단체를 결성하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펜실베니아에서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을 전개한 단위는 펜실베니아 요양보호사 연합(United Home Care Workers of Pennsylvania, 이하 UHCWP)이었다. UHCWP는 SEIU의 1199P지부와 전미지방공무원연맹(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AFSCME)이 공동으로 결성한 노동조합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펜실베니아에서도 노조는 대상자와의 연합, 정책적 요구, 조직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활동을 진행하였다. 펜실베니아주 재가 요양보호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군에 속하며, 임금은 빈곤선을 밑도는 시간당 9.10달러 수준이다. 낮은 임금뿐 아니라 병가나 유급휴가가 보장되지 않으며, 이들 자신이 보건의료 종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 이주, 유색인종 노동자이다.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돌봄노동을 꺼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에 기반하여 이들 노동에 대한 체계적 저평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재가 요양보호사의 이직률은 매우 높은 편인데, 요양보호사 사용자(수급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높은 이직률 때문에 재가 요양보호사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따라서 이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이직률을 낮추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캠페인에 참여하였다.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에서 소비자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전체 사업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소비자들이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캠페인에 참여하는 주요 이유는 재가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이직률을 낮추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요양보호 전달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사용자로서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주 차원의 재정에 크게 의존하는 재가 요양보호사 서비스의 개선과 재정확충을 주 정부에 요구하고, 재가 요양보호사의 서비스에 따라 이들의 임금을 인상한다거나, 해고/교체 등의 권리를 원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따라 SEIU는 일반적으로 노조 설립 후 노동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단체협상의 적용을 받는 부분과 피요양인에게 위임되는 부분으로 분리하여 체결한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소비자들이 요양인 고용, 해고, 요양방식에 대한 결정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펜실베니아의 경우 다른 주들보다 장기요양 전달 시스템이 복잡한 것이 전체 조직화 사업에서 난점으로 작용하였다. 예를 들어 워싱턴 주의 경우 주정부가 운영하는 통합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펜실베니아 주에는 67개 카운티에 52개 요양보호서비스 기관이 있고 20개의 장애인 자활센터가 존재하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199P에서 주된 조직화 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는 소비자가 직접 고용하는 재가 요양보호사이다. 이러한 고용 형태에서는 실질적으로 고용주가 없으며, 중개기관은 중간에서 노동자를 알선하고 주정부로부터 지급되는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임금의 결정 구조가 모호하므로 노조 설립에 있어 독립 서비스 제공 모델에 비해서도 난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조직화 캠페인은 노동자 조직화와 함께 전체 요양보호 체계에 대한 정책적 요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의 가장 큰 정책적 과제는 법적으로 공식 고용주 역할을 할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요구와 로비가 캠페인의 큰 축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미국 노동법 상에서 임금 결정 기관이 노조인정권을 가지는 것을 고려할 때, 주정부가 임금결정 기관인 경우가 많아 UHCWP도 애초 주단위 노조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그렇지만 펜실베니아 주에는 재가 요양보호서비스가 필요한 소비자와 요양보호사를 연결해 주는 중개기관이 있기 때문에 시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임금결정자는 요율 등을 결정하는 주정부이지만, 중개기관의 존재 때문에 펜실베니아의 경우 두 가지 노조 인정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주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협상단위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부문에서 노조를 인정하는 재정적 중개기관과 협상단위를 꾸리는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의 경우 주 정부를 사용자로 하는 첫 번째 경로가 바람직하기 때문에 UHCWP도 주 정부 차원의 행정명령을 통해 소비자, 노동자, 주정부, 중개기관으로 구성된 협상단위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펜실베니아에서 노조에 우호적인 민주당 출신의 에드 렌들(Ed Rendell) 주지사가 당선된 이후 몇 년간의 로비 끝에 주지사는 행정명령을 통한 소비자 노동자 협의체 설립에 동의하지만 행정명령이 발표되자 나서 영리 중개기관 연합체인 재가 요양보호사 파견기관 연합회에서 행정명령의 중지처분을 신청하였다. 결국 법원은 소비자-노동자 협의체의 설립을 중단하는 가처분 조치를 내렸다. 렌들 주정부는 이에 순응했고, 이후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의 인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SEIU는 노조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뜻을 함께 하는 장애인 자립센터들을 묶는 계획으로 전환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노동자 조직화와 노조에 동의하는 연합회에 대한 조직화는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일부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노동조합이 인정받게 된다. '(노조인정을 할 의지가 있는 기관들의) 의지 연합'을 상대로 한 노조인 UHCWP는 단협을 통해 최저임금 수준과 임금 인상 기준을 만들려고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약간의 임금 인상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 캠페인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특히 풀뿌리 조직화, 정책변화, 이해관계자와의 연합을 세 축으로 하는 SEIU 전체의 재가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업의 모델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정책변화를 통해 노동조합 조직화의 공간을 열고, 이렇게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캠페인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선순환이 이 모델의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1199P의 사례에서는 정책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조직화가 난항을 겪고, 조직화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노동조합으로서는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찾지 못하게 되는 이중의 괴로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 실천단을 통한 교육훈련과 조직화의 사례는 여전히 풀뿌리조직화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고, 의도했던 법제도적 변화가 불가능하게 되자,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조합 건설을 통해 이후 투쟁의 여지를 남겨놓은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노동자 실천단을 중심으로 한 실제 조직화의 진행과정 만약 행정명령이 계획대로 통과되었다면 전체 재가 요양보호 노동자를 포괄하는 협상단위가 법적으로 승인되는 동시에 모든 재가 요양보호사에 대한 조직화 작업에 재빨리 착수하여 선거 전까지 노조에 대한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을 터이나, 행정명령 불발로 조직화 대상은 노조 설립에 동의한 6개 파견기관에 소속된 노동자 5,300여명으로 제한되었다. 실제 조직화에서는 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재가 요양보호사를 만나 노조에 대한 지지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대규모 조직활동가와 이들을 위한 지원(호텔, 렌터카 등)이 필요했다. 조직화에 필요한 대규모 인원은 기본적으로 기조직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로 충원되는데, 이들을 실천단 체계로 구성하였다. 메사추세츠나 일리노이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파견되었고, 펜실베니아 주의 요양보호원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들도 동참하였다. 실천단에 속한 노동자들이 소속된 지부는 이들의 임금손실분과 경비를 지원했다. SEIU 중앙에서도 기술지원 및 상근자 지원을 통해 캠페인을 도왔다. 기본적인 조직화 방식은 재가 요양보호사가 일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상근 조직가들이 팀 리더의 역할을 하면서 조직화와 함께 실천단의 노동자들을 교육하였다. 실천단은 60명에서 65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대략 8개 팀으로 나뉘어서 교육 및 활동을 진행했다. 조직화 기간 동안 하루 일과는 회의로 시작하는데, 이 회의에서는 전날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쟁점 토론 및 교육을 진행한다. 참석자들은 조직화 방식과 면담 방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스스로 교육, 훈련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2010년 9월부터 연말까지 진행된 조직화 캠페인을 통해 만난 노동자들은 대부분 당장 급격한 임금인상은 어렵겠지만 서로 분산되어 있던 많은 노동자들이 한 조직으로 모임으로써 힘을 갖게 됐다는 것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전체 5,300명 중 과반수 이상을 조직한 UHCWP는 이를 바탕으로 6개 자립생활 기관에 노조를 승인 받는다. 소결: 시사점 및 제언 미국의 장기요양 산업 노동자 조직화 노력은 노조설립을 위한 법 제도 개선,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험에 비추어 한국의 사례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 교섭범위를 넓힐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펜실베니아 주의 사례에서 볼 때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잠재적인 조직대상 모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직화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계속 추진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 각 주 별로 법제도적 측면에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한국에서는 노동자성이 철저하게 부정된다는 점에서 이를 일면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역사적인 성공 사례는 장장 12년에 걸친 장기적인 조직화 캠페인의 성과라는 점이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2) 풀뿌리 조직화, 연대전략, 정책변화라는 세 가지 고리의 유기적 연계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돌봄연대 등을 통한 정책변화 노력과 간병분회, 희망터 등을 통한 조직화 노력이 있지만 전략적 차원에서 연계되어 진행되고 있지는 못하다. 간병제도화에 있어서 ‘건강보험 급여화’와 ‘간병노동자 직접 고용’을 중심으로 조직화 노력과 연계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고용서비스의 공공성을 포기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무마하는 방패막이로서 사회적 기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무료소개소는 비영리단체로서 국가의 사업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활용되기 쉽다. 노동조합에서 직업 알선을 통한 조직화 사업을 할 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 하고, 아울러 직업 알선 외에 주체 조직화의 다양한 경로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3) 미국서비스노조 전략조직화 사업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단위는 현장 조합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조직화 실천단이다. 같은 업종에 오랜 기간 종사해 온 조합원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상태와 정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정서적으로도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조직화 실천단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상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현장에 들어가는 역할까지 맡는다. 이러한 실천단은 노조가 직접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재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점에서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실천단 활동을 한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다시 노조 강화, 재조직화 사업의 주축이 되며 튼실한 간부로 성장한다는 점, 조직화 사업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이끌어 내는 기반이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직화 사업 확대, 기존 조합원의 조직화 사업에 대한 동의 지반 확대라는 선순환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것이다.
증폭되는 유럽 재정위기의 전망과 과제 10월14일 슬로바키아 의회를 마지막으로 유로존 17개국에서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EFSF 증액 및 역할 확대 그리고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지원이 현실화되었다. 1차 구제금융 이후 약1년 반 만의 추가지원 결정이다. [%=사진1%]1차 구제금융 후에도 그리스의 채무상환능력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스 경제성장을 위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EU와 IMF에 의해 강제된 긴축정책은 그리스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임금은 하락하고, 국영기업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으며, 복지는 축소되고, 공공요금이 인상되었다. 결국 지난 6월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게다가 7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의 위기 전염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이들 국가의 국채금리와 CDS 프리미엄이 급상승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유로존 역내 경제규모의 28.4%를 차지하는 국가들이고, 이 두 나라의 재정위기는 이들에게 대출을 해준 프랑스와 독일 금융기관의 부실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이번 EFSF 증액 및 역할확대 방안은 이처럼 더욱 악화된 상황에 대한 유로존 17개국 정상들의 대응방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보인다. 이번 대응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당분간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FSF 증액 및 역할 확대 방안 지난 7월21일 유로존 17개국 정상들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증액 및 역할 강화와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지원을 합의했다. 즉, EFSF가 발행시장 뿐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도 국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역할을 확대하고, EFSF의 가용자금을 기존 2,500억유로에서 4,400억유로로 증액하며, 이 중 1,090억유로를 그리스 2차 구제금융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유로존 17개국 의회 EFSF 법안 통과 과정에서 전 세계 이목은 독일에 집중되었다. 이전부터 역내 최강국으로서 독일은 재정위기국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29일 독일 하원에서 메르켈 총리는 재정위기국 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의원들을 설득해냈다. 그러나 이것이 메르켈 총리나 신자유주의자들의 태도 선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내 금융시장 통합으로 유럽 금융기관들은 타 회원국의 국채 보유 및 은행대출을 크게 증가시켜왔다. 가령, PIIGS 5개국으로 위기가 확산될 경우, 독일은 1,134억 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구제금융이라는 것도 실은 자국 금융자본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번 EFSF 증액 규모가 선진국으로의 부실 전염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FSF의 가용자금 4,400억유로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의 위기 전염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1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스페인, 이탈리아를 포함한 재정적자국의 만기도래 국채(1조 1,770억유로)와 재정적자(6,240억유로)를 모두 합하면 1조 8,000억유로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스의 ‘질서있는 디폴트’, 가능한가? 이러한 조건에서 지배세력은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 첫째, EFSF 법안 통과에 이어 획기적인 채무조정(부채 탕감)을 통해 그리스 위기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스 국채 보유 민간투자자들은 2차 구제금융 시 약21%의 채무조정에 합의한 바 있는데,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이를 50% 수준으로 상향조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간채권단이 이러한 상향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채무조정이 일반화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스페인 국채 매각이 가속화되면 결국 위기가 PIGGS 국가들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둘째, EFSF의 추가자본을 확충하고자 한다. 위기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염가능성이 높은 스페인, 이탈리아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시장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2조유로(원화로 약 3,000조원) 이상의 자금 확충이 요구된다. 이 액수는 유로존 내 국가들이 부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가이트너 미 재무부장관의 경우 EFSF가 보증하는 특수목적회사(SPV)를 활용한 레버리지 확대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EFSF는 각국 분담금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레버리지 확대는 결국 독일과 프랑스의 신용악화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EFSF 최대 분담금을 내고 있는 독일이 “남한테 충고를 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 보다 휠씬 쉬운 일”이라며 미국의 레버리지 제안에 적극반대하는 이유다. 또한 EFSF의 신용공여(보증)를 통해 4,400억유로의 EFSF 가용자금을 약2조유로까지 확대하는 이 방안은 실제 PIGGS 국가들의 국채에 문제가 생길경우, ECB까지 신용위기에 처할 위험성이 높다. 정리하면, 만기 국채와 이자금에 대한 지급 여력 부재로 인해 이미 기정사실화된 그리스의 디폴트가 유로존 및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소위 ‘질서있는 디폴트’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관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유로존 내 선진국, 민간채권단 간 이해조정이라는 수많은 걸림돌을 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시장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다른 형태의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의 모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위기관리전략이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이라는 유로존의 모순을 결코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역내 무역에서 가격경쟁력이 낮은 유럽국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저임금과 긴축재정으로 자국 노동자들에게 내핍을 강요하는 것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채무상환능력을 확보하는 길과도 거리가 멀다. 이에 따라 유로존의 재정동맹을 진전시키고자 하는 유로본드(유로존 회원국의 공동채권) 도입 방안 역시 논의되고 있다. 재정위기국의 입장에서 유로본드는 많은 이점을 갖는다. 재정이 취약해지면 국채 금리도 급등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보증이 있기 때문에 국채금리를 낮출 수 있고, 이를 통해 채무상환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할 여지가 늘어난다. 그러나 이 역시 독일과 프랑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해있어 도입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반대로 그리스가 통화동맹으로부터 탈퇴하는 방안 역시 논의되고 있다. 그리스가 먼저 부채 및 이자 지급을 중단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하여 고환율 정책을 통해 경상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가절하는 유로화 표시 대외채무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고, 운송과 관광에 편중된 그리스가 누릴 경상수지 개선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스가 이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동맹 없는 화폐통맹’이라는 모순과 역내불균형 문제가 지속되는 한 화폐통맹으로부터의 철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전망: 불안한 미래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유로존의 모순을 간직한 채 디폴트를 지연시키고 시간을 버는 기존 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러한 정책이 유지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10월23일 유럽정상회담과 그 전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은행들에 대한 3차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24일 EU․ECB․IMF 트로이카실사단 발표라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어 11월 칸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EFSF 추가자본 확충과 관련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로 할 경우, 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다소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국의 채무상환능력이 확보되지 못하면서, 재정위기국의 국채만기시점 마다 불안이 심화될 계기가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역내불균형이 지속되고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들에게 긴축정책이 강제되는 한, 위기가 심화되고 확산될 가능성은 내재해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상황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 10월 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이 연이어 하락하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럴 경우 스페인, 이탈리아와 강한 금융연계를 맺고 있는 프랑스, 독일, 영국 금융기관으로의 위기전염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신용경색을 야기될 것이다. 나아가 프랑스 은행을 매개로 그 위기는 미국까지 확대될 수 있다. 프랑스 은행과의 거래금액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 모건스탠리의 주가는 올해 들어 고점대비 최대 54%나 하락했다. 10월3일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덱시아 은행이 파산 위기에 직면하자 모건스탠리 주가는 약 7% 급락했다. 뿐만아니라, 신용경색에 처한 유럽계 금융기관이 해외자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면 아시아, 동유럽, 중남미 신흥국들 역시 신용경색이 심화될 것이다. 중남미, 아시아 국가들은 대외차입금의 50% 이상을 유럽계 금융기관에 차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1-7월 중 유럽계 자금이 약7조 5천억원 빠져나갔으며, 8월에만 3조원 이상이 유출되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8월에만 1조원 이상이 빠져나갔다. 경제위기와 극우주의의 부상에 맞선 사회운동을 강화하자 향후 유럽 재정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추가적 대응방안들이 꾸준히 논란이 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획기적인 채무조정, EFSF의 더 많은 증액, 유로본드 도입, 유로존 탈퇴 등 여러 추가적 대응방안들이 이미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 등 선진국과 투자자의 이익 보장이 최우선시 되는 한, ‘시간벌기용 미봉책’을 넘어설 대안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지금까지의 유럽통합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변혁하기 위한 투쟁과 대안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유럽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수주의와 인종주의에 기반을 두고 부상하고 있는 극우주의의 위험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EFSF증액안 통과를 1차 무산시킨 자유연대(SaS)를 비롯, 프랑스 국민전선(FN), 핀란드 진짜핀란드당(TF), 네덜란드 자유당(PVV) 등의 지지율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반이민, 반이슬람, 반EU 정서를 대변하는 극우정당들은 자국민우선주의를 내세워 재정위기국에 대한 지원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생활여건 악화와 유럽연합의 모순이 국수주의적 정서를 불러일으켜, 극우정당의 부상에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히 중심국에서 경제위기를 주변국이나 국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정책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2010년 이후 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은 격렬하게 긴축 반대투쟁을 전개해왔다. 최근에는 월스트리트 점거운동과 상호작용하면서 유럽연합 본부 소재지인 브뤼셀을 비롯, 프랑크푸르트, 런던, 로마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긴축정책 철회, 부채탕감, ECB의 신보수주의적 통화정책 폐기, 안정 및 성장에 관한협약(SPG)의 개혁 등 민주적이고 대안적 유럽을 형성해나가려는 이러한 시도는 더욱 강화되어, 보다 근본적이고 국제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1년 10월에 발간된 범국본 한미FTA국민보고서입니다.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되있습니다. 목차 제1부 총괄보고 제2부 총괄 10대 쟁점 1. 한미 FTA에서 쌀은 지켰는가? 2. 미국에 이로운 사항을 위해 죽도록 싸운 관료들 3. 미국의 법 아래에 있는 한미 FTA 4. 한미 FTA는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보호하지 않는다. 5. 한미 FTA는 한국의 법위에 존재 6. 한국의 일방적 제도 변경 7. 한글본 번역 오류 정오표 미제출 8. 한미 FTA 경제 효과는 어디에서 왔는가 9. 재탕 국내보완대책은 대책인가 10. 약값과 국민건강보험료가 올라간다 제3부 각론 15대 쟁점 11. 중소기업 적합 업종제도는 한미 FTA에서 가능한가? 12. 골목 상권 보호와 대기업 슈퍼(SSM) 규제는 가능한가? 13 우리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 사용할 수 있을까? 14.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검역과 유전자조작식품 15. 투자자 국가 제소 16. 우체국 택배는 생존할 수 있을까? 17. 4대강 굴삭기 총량제를 왜 하지 않는가? 18. 농수축산업이 무너진다 19. 지적 재산권 절대주의와 미국 국부의 새로운 창출 수단 20 외환위기 21 사교육 22. 문화정책 국산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23. 환경 정책 24. 자동차 안전기준 25 사전 정책 협의를 해야 할 의무 26 동북아 정책과 최혜국 대우 27. 개성공단 28. 취업비자 약속서한은 어디에 있는가? 29. 섬유 회사 정보 제공 30. 미국의 반덤핑 장벽과 삼계탕 금지 31. 미국의 섬유 및 자동차 긴급수입제한조치 32. 식품수출통제 33. 미국의 주 정부 규제 34. 공동위원회 35. 전기자동차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의의와 전망 미국 경제와 정치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채 규모가 GDP 대비 100%에 가까우며 실업률이 9.1%로 여전히 높다. 청년 실업률은 25%로 훨씬 높다. 가계 부채 규모도 GDP의 90%며, 수많은 미국인들이 주택 압류로 집을 잃었다. 8월 연방정부 부채 한도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동안 미국인들은 무능한 정치인들을 불신하게 되었고 생활수준 하락에 낙심하였다. 무엇보다 수조 달러의 세금으로 부도덕한 금융시스템을 부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민생고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사진1%]그 동안 일반 시민의 분노를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티파티였다. 티파티는 민주당, 세금, 사회복지나 소위 ‘큰 정부’의 문제를 꾸준히 규탄하면서 미국 정치지형을 우경화시켰다. 반면 그 동안 진보세력은 혼란을 겪으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진보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변화를 약속한 오바마 후보의 선거운동에 힘을 쏟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과의 합의에 치중하면서 진보적 의제를 방기하자 무기력에 빠졌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청년들의 대중 투쟁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금융자본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말이다. 9월 17일부터 ’월스트리트 점거’(사실 점거가 아니라 월스트리트 인근 주코티 공원에 위치한 농성이다)는 금용기관과 기업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 3주 동안 이 투쟁은 활력이 강화되면서 100개 이상 도시로 확산됐다. 월스트리트 점거가 너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커졌기 때문에 이제 언론이나 정치인, 기존 진보세력 그 누구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진보세력들은 지금까지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대응이 별로 없다가 드디어 누군가가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시작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거의 실제 모습과 이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누가 월스트리트 점거를 주도하고 있나? 많은 언론과 참가자에 따르면, 점거를 주도하는 세력은 없다. 지도부가 없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공식 지도부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점거가 시작되기 두 달 전부터 소규모 집단과 개별 활동가들이 이미 점거를 계획하고 준비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지금도 주코티 공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준비 과정은 7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캐나다에 본부를 둔 국제 활동가 네트워크이자 소비절제주의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단체인 ‘애드버스터’(Adbusters)가 평화로운 월스트리트 점거를 호소하는 광고를 자신이 발간하는 잡지에 실었다. 몇 주 후에 뉴욕에서 활동가들이 모여 세부계획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는 ‘예산 삭감 반대 뉴욕시민’이라는 단체 회원들도 참석하였다. 이 단체는 지난 6월 3주간 진행된 뉴욕시청 앞 긴축 반대 농성을 조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집트, 스페인, 그리스 등의 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참석했다. 월스트리트 점거 활동가의 말에 의하면 이들이 투쟁 형식과 전술에 대해 중요한 조언을 했다고 한다. 회의 결과, 점거 투쟁의 실무 팀들이 만들어졌다. 8월 말에는 해커 활동가 집단인 ‘익명인’(Anonymous)도 결합해 회원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미국 전역에서 조직된 1천 여명의 사람들이 9월 17일 첫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뉴욕으로 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직된 사람이었다. 첫 집회 이후 기존 핵심 활동가들 외에 다양한 세력들이 합류했다. 직접행동 경험이 많은 무정부주의 경향의 동호인 단체 회원, 학생운동 경험이 조금 있거나 아예 없는 학생들, 노동/환경/지역사회 운동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이었다. 실무 팀은 30개 이상으로 확대됐는데, 이들은 각각 식사, 청소, 기획, 집회 및 행동, 그리고 월스트리트 점거의 핵심 의사결정 체계인 오전, 오후 총회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정치적 지향은 무엇인가? 현재 월스트리트 점거를 주도하고 있는 비공식 지도자 중 많은 이들은 무정부주의를 지향한다. 애드버스터, 익명인 외에도 현재 주코티 공원에 천막을 친 동호인 단체들은 모두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중앙집권 형태의 운영체계, 공식 지도부, 구체적인 강령을 반대하는 이들은 주코티 공원 농성장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농성장은 개성과 자발적인 행동을 장려하며 수많은 개별 요구와 기질을 용인하는 축제의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예산 삭감 반대 뉴욕시민’은 무정부주의 조직은 아니지만 총회라는 개방적 운영체계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농성장에 있는 모든 참가자가 정기총회에 참여하여 누구라도 발언할 수 있고, 모든 내용은 합의제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점들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개방적 문화를 상징한다. 참가자 대부분도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다. 학자금 대출과 고용시장 축소로 고통 받고 있는 학생, 최근에 집이나 일자리를 잃어버린 부모 등,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일반 민중들이다. 개인주의를 표방하며 위계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사회변화에 대한 보편적 이론을 부정하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월스트리트 점거의 분권적 문화가 전통적인 활동가 조직보다 편하고 참여하기도 쉽다. 기업에 대한 분노, 문화운동 일반 미국인들은 생활수준 하락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며 금융기관과 기업을 탓한다. 투쟁의 축제 분위기와 더불어 광범위한 낙심과 분노 때문에 월스트리트 점거와 전국적으로 생긴 점거투쟁에 대한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 대오의 유일한 공식적 입장인 ‘월스트리트 점거 선언’은 이 분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인간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들이 현재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모였다. 기업들은 모기지 증서를 보유하지 않지만 우리의 집을 압류하고, 납세자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기업 경영진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주고, 사업장에 피부색, 성, 연령, 젠더정체성(gender identity), 성적 경향(sexual orientation) 등에 기반을 둔 차별을 영속시키고, 농업 독점을 통해서 농업 체계를 파괴하고, 감독 당국의 부주의로 식중독 발생을 방조하고, 동물학대로 이익을 보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노동권을 침해하고, 학비 융자로 학생을 인질로 잡아두고, 노동을 외주화시켜 보건의료와 임금을 삭감한다.” 선언문은 구체적 요구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개인 참가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손으로 쓴 피켓(농성장에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자재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비공식 월스트리트 점거 사이트(공식 사이트는 없다), 블로그, 트위터 등으로 표현한다. 진보적 언론과 지식인은 이러한 모습에 주목하면서 월스트리트 점거 투쟁이 좀 더 진지한 성격을 지니려면 요구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일 많이 나오는 요구는 일반인에 대한 채무 면제다. 금융거래세 도입과 기업의 로비 활동을 제한할 선거법 개정 요구도 자주 등장한다. 참가자 일부는 생활임금과 교섭권 보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 요구는 매우 드물다. 이는 월스트리트 점거 참가자들이 단결된 노동자계급의 입장이 아니라 박탈당한 개인의 입장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비공식 지도자는 구체적 강령이나 공식적 요구를 일부러 피한다. 한 활동가는 요구를 내거는 순간 월스트리트 점거의 핵심 목표에 어긋난다고 설명한다. “공식 요구를 내는 것은 권력을 장악한 개인과 기관에게 무엇을 조금 다르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기관 자체를 근본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점거는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미국 사회와 다른 형태의 공간을 창조하고 확대시킬 것 외에 사회변화를 위한 구체적 목표가 없다. 이 점에서 사회운동보다 문화운동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문화운동이라고 함은 주류 사회의 구체적인 변화를 목표하는 것보다 주류 사회에 상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상징적 문화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1960년대 히피운동과 유사한 흐름이다. 99%란? 월스트리트에서 자주 보이는 또 다른 문구는 ‘우리는 99%다’라는 것이다. 이 슬로건은 미국사회에 대한 참가자들의 공동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1%만 이익을 보며 99%는 부담을 진다는 것이다. 이는 얼마 전까지 중산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 잔고가 바닥나고 (금융기관이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듯이) 구제를 못 받은 사람에게 특히 의미 있는 문장이다. 99%는 월스트리트 점거가 모든 일반 미국인을 대변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주코티 공원에서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사회적 계층이 대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참가자는 무척 동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젊고, 백인이다. 월스트리트 점거가 미국 전역, 심지어 유럽에서도 참가를 이끌었지만 뉴욕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이민자와 유색인의 관심을 대대적으로 끌지는 못했다. 이것은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이 일이나 구직활동에 바빠 시간을 못 내거나 축제(또는 히피) 문화에 반감을 느껴서 그런 듯하다. 월스리트 점거는 분명 대항문화지만 백인 대항문화를 넘지 못한다. 또한 월스트리트 점거의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방식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다수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계급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점거 참가자들이 얼마 전부터 겪게 된 문제들은 대부분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이 훨씬 오래 전부터 경험했던 것들이고, 이들의 삶은 경제위기 하에서 백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부 유색인공동체 활동가는 99%라는 슬로건이 애초부터 미국 자본주의가 인종주의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작동해온 사실과 오늘날 이민자와 유색인이 더 심한 착취와 더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의의와 전망 월스트리트 점거와 이것이 촉발한 운동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는 경제위기 하에서 고통을 느끼는 일반인들이 티파티 외에 대안이 있다고 느끼게 한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든 온건적 진보세력(자유주의)에게 일종의 대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던 대안을 말이다. 또한 티파티가 공화당의 기반이 됐듯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내년 선거 시기에 민주당에 긴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오바마를 다시 당선시키는 것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강화되면 미국 정치문화가 좌선회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랬을 때 일자리 창출이나 일반인에 대한 구제조치가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다 중요하게는 월스트리트 점거가 노동자운동이나 유색인공동체 급진적 단체들로 하여금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도전하도록 하는 장기적인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고무시켰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인 미트 롬니는 주코티 공원 농성을 ‘계급전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 월스트리트 점거는 계급전쟁에 미달한다. 농성 중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정치 경제적 변화에 대한 생각이 없다. 그들의 불만은 부자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다. 금융자유화와 불평등을 극단화하는 자본주의 체계나 인종적, 성적 위계를 통해서 착취를 강화하는 체계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분권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며 자발적인 문화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투쟁형태라는 점도 분명하다. 아랍의 봄, 스페인과 그리스, 한국의 희망버스까지 비슷한 운동문화가 보인다. 월스트리트 점거는 미국의 문화답게 분권화 수준이 극단적이다. 이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 점거가 문화운동에서 정치운동으로 전환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미래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점거 운동의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이와 같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첫째, 월스트리트를 조직한 활동가들은 애초 정치활동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둘째, 강령이나 구체적인 투쟁 목표와 요구를 도입하는 순간 투쟁의 활력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거에 공식 요구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해온 수많은 조직들이 자신의 요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뉴욕과 전국 각지에서 노동조합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권을 사수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주택 압류에 저항하고 긴축정책에 반대하면서 많은 연대체들이 투쟁하고 있고, 공동체조직들은 이주자의 권리와 유색인 대상 경찰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러한 기존 조직들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기존 조직들이 수행해온 활동을 갑자기 포기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월스트리트 점거가 기존 조직들의 요구를 공식 요구로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연대를 표현하고 호소하며 월스트리트 점거의 에너지를 빌려 자신들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노력이 이미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 참가자가 처음으로 대량 연행된 9월 29일 집회는 조지아주에서 사형을 당한 트로이 데이비스(흑인)를 추모하고 인종주의를 영속시키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세력과 공동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10월 6일에 월스트리트 점거 세력과 반전 세력은 아프간전쟁 10주년을 규탄하기 위해서 워싱턴과 수많은 지역에서 힘을 합쳤다. 기존 진보조직과 노조들이 월스트리트 점거와 개방적으로 연대하는 방안을 찾아내고 역동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월스트리트 점거는 단순한 문화운동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당장 미국 사회운동의 급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침체에 빠져있던 미국 사회운동이 다시 활성화되는 하나의 계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펼쳐진 투쟁에서 용기를 얻어 이제 월스트리트 점거와 같은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0월 15일이 국제행동의 날로 지정되었고, 한국에서도 이날 예정되어 있던 ‘빈곤철폐의 날’과 한미FTA 반대 투쟁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무정형의 축제를 문화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넘어 개방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