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폐기를 위한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일자가 발표되고, 그동안 줄곧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미 FTA가 총선 최대 쟁점으로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22일 날치기 비준 이후 발효가 개시되는 일은 단순 법절차에 불과한 수순이라고 본다면, 문제는 발효 이후 그동안 <날치기 비준무효 촛불집회>중심의 한미 FTA 투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은 이러한 쟁점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반격과 궁색하기 그지없는 민주당 새누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이 2월 초 미국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대표가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한번 체결된 국제협약을 이런 식으로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물러섰다. 기세를 잡았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2주가 넘도록,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한명숙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과거 행적과 발언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반면 민주당의 대응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형편이다. 이로써 날치기 이후 줄 곳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던 새누리당은 정식 발효를 앞두고 오랜만에 반격에 나서게 되었고, 한미 FTA는 새누리당의 선공에 의해 총선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2010년에 재협상된 MB FTA를 반대할 따름이다. 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맞춘 이익균형을 이명박정부가 깼다는 근거다. 하지만 민주당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10여 개 항목들 중 MB가 추가한 자동차부문의 양보는 큰 비중의 사안이 아니다. 또한 나머지 9개 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4월에 체결한 내용 그대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역진방지 조항(래칫), 주요 농축산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 등 핵심 독소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있던 그대로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야권단일화 정당화 명분으로 이용당하는 한미 FTA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관점과 이념노선의 차이가 없는 보수양당이 앞 다퉈 한미 FTA를 선거 쟁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 짓고 손쉽게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선거 여론조사 기관에서 흔히 말하는 대표적 ‘갈등이슈’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한미 FTA 폐기 서한은 실제로 한미 FTA를 폐기시키겠다는 운동 전략이 아니라, 한미 FTA라는 갈등이슈를 소재로 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 퍼포먼스’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한미 FTA같은 중대한 국가 간 협정을 함부로 다루는 민주당을 성토하고 나서는 모순적인 태도 역시 선거 정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서민경제도 돌보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당과 달리 말을 바꾸지 않는 진정성 있는 보수,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공천기준에는 한미 FTA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천심사위원회 자체가 친 FTA 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내부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카드를 버리지는 않는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어, 자신이 주도하는 반MB-야권연대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보다 강력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린 한미 FTA투쟁과 범국민운동본부 한미 FTA가 이렇게 여야 정당 간 표몰이 쟁점으로 전락하는 사태로 말미암아 정작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왜곡되고 가로막힌다.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한미 FTA 폐기투쟁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잊어가고 있다. 범국본은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지만, 집회내용과 실질적인 사업기조는 이미 반MB-야권연대 총선대응으로 변질되었다. 올 초 범국본 내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진행된 이른바 ‘심판운동’은 야권연대 총선대응 사업기조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최초의 논란은 여야정당의 공천반대인사 명단발표 문제로 불거졌다. 범국본 산하에 구성된 검증지원단은 심판자 명단을 ‘날치기의원 151인, 국회의장, 부의장 2인, 민주당의원 7인’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기준에 따라 협소하게 심판대상자를 선정한 안이었다. 범국본 내 여러 단체 대표자들은 이러한 명단발표를 반대하고, 다른 기준과 질적으로 다른 총선대응방식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첫째, 심판명단 작성의 기준은 한미 FTA 날치기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심판대상은 날치기에 참여한 151인과 7인의 민주당 야합파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날치기151인’과 민주당의 핵심 야합파 의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강조하면 될 일이지, 그들 때문에 나머지 의원들을 심판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논의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검증지원단의 안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쟁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논의는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다수의견 대로 검증지원단의 심판자명단을 발표하되, 심판명단발표 취지에 “한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날치기를 자행한 새누리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범국본의 심판자명단은 2월16일에 1차 발표되었다.) 범국본은 밀실협상을 통해 한미 FTA를 폭력적으로 체결한 노무현 정부에 맞서 결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범국본은 날치기 이전이나 이후나 일관된 한미 FTA 폐기 입장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참여정부 FTA 원안 찬성론이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찬성론 등을 비판해왔다. 그런 범국본이 이제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감안하여 야합파 7명 수준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심판명단을 발표하고, 한미 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 한미 FTA 전면 폐기 기조를 명확히 하고,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한미 FTA는 계급갈등의 광범위한 쟁점들과 분리 불가능한 사안이다. 한미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도 아니고, 양국 간 국익의 균형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협정도 아니다.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핵심이 아니다.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에 걸친 포괄적인 경제제도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일단 한번 체결-발효된 국가간 협정을 폐기하는 일”은 양국 간의 정치, 경제,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전환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다. 가령 한미 FTA 폐기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의 근본적 전환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민주당의 진정성 없는 선거용 퍼포먼스 정치에 활용되고 범국본에 야권연대를 목표로 하는 사업기조가 삽입되면서, 한미 FTA 폐기운동은 더욱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미 FTA 폐기가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새롭게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모색해야할 때이다. 경제제도 전반의 근본적 전환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부분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재벌규제 제도들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노조 투쟁, 철도노조 투쟁으로 이어져온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투쟁은 지난 2000년대 내내 거듭해서 패배하고, 집중력 있는 공동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데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탄압의 선봉인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재벌들과의 투쟁은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추가적으로 민영화하고 한번 개혁된 부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되돌리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 민영화 잔치판에 머리 검은 외국투자자로 재벌이 참여하여 각종 규제와 노동권 관련 제도들을 무력화하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 폐기운동은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운동전선의 재건과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선 총노동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지역-현장의 운동을 중심으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한다. “투쟁 없이 총선승리 없다!”는 현재 범국본 촛불집회의 기조는 야권연대를 압박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대중동원과 명분 쌓기로 기능할 뿐이다. 한미 FTA투쟁은 이러한 정치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익을 위한 재협상이 아니라 전면폐기를 명확한 기조로 다잡아야 하고, 반MB 유권자운동-낙선운동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투쟁과 민영화저지 운동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때다.
시그나(Cigna)와 국내의료기관이 체결한 진료비 직불계약의 경과와 의미 지난 1월 31일 글로벌 보험사인 시그나(Cigna International Corporation)가 11개 국내 의료기관과 진료비 직불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서 시그나의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외국인환자들이 한국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며, 의료기관은 환자의 진료비를 시그나로부터 직접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계약에 참여한 병원은 서울대병원, 가천의대길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대치과병원, 세종병원, 인하대병원, 청심국제병원, 한양대의료원, 화순전남대병원으로 대부분 수도권 대형의료기관이다. 2009년 1월 국내 병원이 외국인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된 후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시도가 활발한데, 주로 정부기관 주도로 추진되는 모양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의료계를 대상으로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워크숍과 설명회를 열고 해외 보험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는 ‘한국병원 체험행사’를 개최하는 등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다. 2011년 2월에는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정보포털’을 개설하여 유치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번 계약 역시 2011년 3월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장관과 시그나 총수와의 면담이 중요한 계기였으며 보건산업진흥원이 나서서 MOU 체결, 표준직불계약서 공동작성 등을 진행한 후 의료기관을 모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간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왔음에도 지지부진하던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이 이번 계약을 계기로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외국 보험회사와 국내 병원간 진료비 직불계약 체결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미국시장 점유율 10위권의 대형 민간보험회사와 국내 주요 의료기관들이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례와는 구별된다.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올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번 계약이 보건의료영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시그나의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외국인 환자의 진료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의 이해관계, 그리고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이 추진되는 맥락을 고려해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현재 의료법에는 ‘보험업법 제2조에 따른 보험회사, 상조회사, 보험설계사, 보험대리점 또는 보험중개사는 외국인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는 민간보험회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국내 보험회사들은 여기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향후 비슷한 형태의 협약들이 이루어지고 외국인환자를 상대로 한 시장이 커지면 국내 보험회사들은 자신들도 외국인환자 유치와 관련한 사업을 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한편 ‘진료비 직불계약’이라는 형태에도 주목해야 한다.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을 통해서 민간보험회사는 의료기관에 진료비를 지불하는 ‘갑’의 입장이 되어 진료 내용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진료비 지급심사라는 명분으로 환자의 건강정보 및 의료기록에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더불어 직불계약이 체결된 병원에서만 진료가 이루어지므로 보험회사는 피보험자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은 의료시장에서 민간보험자본의 우위를 확보하고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확대하는 핵심적 장치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이 결합될 경우 보건의료체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보험회사들도 외국인환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되면 의료기관과 직불계약을 체결하여 환자를 끌어들일 것이고, 외국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민간보험회사와 의료기관 사이의 직불계약이 일반화되면 이는 곧 직불계약의 전면적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자본이 의료시장을 장악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험가입에서 배제하는 등 대중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보험료 대비 지급율도 공적보험에 비해 훨씬 낮다. 보다 심각한 것은 민간보험자본과 의료기관과의 직접적 연계망 형성이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 허용은 민간보험자본의 오랜 숙원이다. 삼성생명은 내부보고서에서 직불계약 허용을 건강보험 해체로 가는 중간단계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의료산업화가 아닌 의료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병원자본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것이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하는 등(한나라당 심재철 의원과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주최한 ‘한국의료의 국제화 그 현황과 전망’ 토론회, 2009년 6월)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을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구체적으로 요구해왔다. 정부는 자본의 요구에 호응하여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이 국부를 창출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신성장동력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삼성생명과 삼성병원 등 의료자본의 이해를 반영하여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해서는 영리병원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는 대형병원, 민간보험회사의 배를 불려줄지언정 민중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관광산업 추진 과정에서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되고 국민건강이 악화될 것이 우려된다. 국민건강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산업화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적인 보건의료체계의 구축이다.
KTX 민영화 저지하고 외주화 철회, 인력충원으로 공공철도 쟁취하자 2011년 말 이명박 정부는 KTX 분할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다. 2015년에 개통되는 수서-경부·호남선 KTX의 운영권을 민간 사업자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운영 권한의 범위는 열차 운행 뿐 아니라 역사, 차량기지, 기반시설 유지보수 등도 포함된다. [%=사진1%] 경쟁이 아니라 대기업 특혜 첫째, 정부는 현재 철도 운영의 많은 문제점이 코레일의 독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운영권을 민간 기업에 주어 독점을 깨뜨리고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철도의 특성상 이용자에게 두 개 회사의 경쟁은 효과가 없다. 철도는 표준 기술을 토대로 선로 위를 여러 열차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신호에 따라 운행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용객은 자신이 가까운 역에서 제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지금과 같은 소비 패턴을 유지할 것이다. KTX 분할 민영화는 경쟁체제 도입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안정적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는 특별한 투자 없이 안정적인 수입을 장기간 보장받게 되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게 된다. 철도 노선 중 유일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KTX의 운영권을 사기업에 주고, 일반열차의 적자는 국민의 혈세로 메우겠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 철도 노선을 분할하여 서로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것도 문제다. 철도는 궤도, 차량, 인력 시스템이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 열차 운행의 안전성과 수송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로, 차량규격, 신호, 통신 방식이 일치해야 하며 관제, 열차, 역사, 시설관리 등의 기능을 통합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별개의 기업이 철도를 운영하게 되면 이러한 시스템이 파괴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한국철도의 영세한 영업거리를 감안할 때, 분리(경쟁)로 인한 효율성이 증가하기 보다는 규모와 범위 및 밀도의 경제가 상실되고 거래비용이 증가함으로써 비효율성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의 호주머니 털어 기업주 배 불리는 것이 경영효율화 셋째, 정부는 민간 기업이 이윤극대화의 논리를 따르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되고, 철도 운영의 효율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철도 적자도 해결하고 심지어 운임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철도 운임과, 지출의 31%를 차지하는 선로사용료를 정부가 결정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오로지 인건비 절감뿐이다. 현재 코레일 수준보다 인력을 줄이고, 더 많은 업무를 외주화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말하는 경영 효율화의 실체다. 민영화 지지의 선봉에 서고 있는 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민간은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내기 때문에 운임료의 20%가 아니라 그 이상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대놓고 인건비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구조조정으로 얻는 이익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소득이 민간기업 소유주의 소득으로 이전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일자리가 줄고 노동자의 소득이 감소하여 국민경제에는 악영향만 끼칠 것이다. 외주화와 인력감축의 참혹한 결과 정부의 투자와 관리부족으로 인한 철도 적자 문제를 외주화와 인력감축, 인건비 절감으로 해결하는 정책 기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공공부문 개혁, 선진화로 이름만 바꾸며 이어져 왔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시설과 운영이 분리되고, 수많은 업무가 잘게 쪼개져 민간으로 위탁되었다. 시설은 늘었으나 운영 인력은 줄어, 현장의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리게 되었다. 한국의 철도노동자 대비 1년간 여객 수송량은 세계에서 5번째로 많다. 그 만큼 인력은 적고, 업무는 과중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철도노동자의 임금은 1.2% 인상되었을 뿐이며,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인 3.2%보다 낮다. 외주화와 인력감축은 철도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허준영 코레일 사장 체제에서 5,115명이 감축되었고, 이 중 2,958명이 철도 안전과 긴밀한 시설·전기·차량 관련 인원이다. 2011년 연이어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구성된 ‘민간안전위원회’의 최종보고서는, 시설량은 증가했으나 인원은 오히려 감소하는 등 “경영효율화 논리에 밀린 구조조정으로 인한 유지보수 인력 부족”을 안전 문제의 주요 원인이며, “적정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1년 12월 8일 코레일 공항철도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철도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어 숨진 끔직한 사고는 외주업체의 작업에 대한 안전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데에 원인이 있었다. KTX 민영화는 철도 전체의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 KTX 분할 민영화는 철도 전반에서 추진되고 있는 외주화와 민영화의 일부다. 이명박 정권 초기 공기업 지주회사를 통한 철도 민영화 방안은 유보되었지만 단계적인 분할 민영화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우선 시설과 운영의 완전한 분리를 위한 시설유지보수 업무의 광범위한 외주화가 추진되어 왔다. 현재 철도공사는 선로유지보수 업무 외주화를 포함해 2020년까지 전체 시설 분야 노동자의 59%, 전기 분야 36.4%, 차량 분야 28.3%를 외주화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여객과 화물, 그리고 노선별로 운영사업자를 분할하고 민간기업을 진입시키는 방안이 추진되어 왔다. 그 첫 시작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KTX 분할 민영화고, KTX 민영화가 성공하면 화물부문 까지 민영화가 확대될 것이다. 철도를 통해 물류를 진행해온 육상수송 기업들로 구성된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는 여객 부문 민영화가 마무리되면 물류부문에서도 민간참여를 정부 측에 공식 요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물류기업들은 코레일이 기존 철도운임 할인 폭을 축소하자 철도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미 민간업체는 약 700량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어, 기관차만 소유하면 충분히 열차 운영이 가능하다. KTX 분할 민영화를 막아내지 못하면 다음은 화물,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노선의 민영화가 계속될 것이다. 때문에 KTX 분할 민영화를 막고, 시설유지보수 외주화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철도 전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단계적 민영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KTX 민영화 저지하고 외주화 철회, 인력충원으로 공공철도 쟁취하자 KTX 분할 민영화는 운영권을 받게 될 기업과 이들과 결탁한 정치권과 정부 관료 외에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철도 노동자는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인력 부족으로 살인적인 강도로 노동을 해도 임금은 줄어들어 생존을 위협받는다. KTX를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 역시 위협받는다. 노동자 죽이고 철도의 안전과 공공성을 위협하는 KTX 분할 민영화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나아가 시설유지업무의 외주화 등도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외주화를 철회하여 다시 코레일에서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하고, 해당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며, 부족한 인력을 시급히 충원해야 한다. 또한 철도의 민영화와 구조조정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공공성을 확대할 수 있는 철도 정책이 새로이 수립되어야 한다. 정부는 민영화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자 총선이 끝난 4월에 KTX 운영사업자 공고를 내고, 7월에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최악의 경우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추진하겠다는 태도다. 국토부가 이야기하듯 KTX 민영화는 “법 개정이나 누구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은 행정처분”이다. 참여정부 시절 제정된 법에 의해 철도운영에 대한 민간사업자 진입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그동안의 행태를 돌이켜 볼 때 아무리 반대 여론이 거세도 개의치 않고 민영화를 추진하려 들 것이다. 현재 정부는 공격의 화살을 철도 노동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1월 11일자 보도자료에서 “코레일은 직원들에게 평균 5천8만원의 연봉을 지급하고” 있으며 특히 “고속버스 매표원의 평균 연봉 2천만 원 수준”인데 비해 “기차표를 판매하는 직원은 평균 6천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며 원색적인 선전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여러 차례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얼마 남지 않은 정규직들의 연봉이며, 코레일 발표 자료와 비교하면 2천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 철도 노동자가 하는 일에 비해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방만 경영의 핵심이고 철도 적자의 원인인양 호도하고 있다. 따라서 KTX 민영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철도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고, 철도 노동자들이 투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KTX 민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과 외주화와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현장의 투쟁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임기말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를 막을 유일한 길은 대중운동을 통해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 뿐이다. 공공운수노조는 6월 화물, 철도 등을 중심으로 전면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KTX 민영화에 반대하는 모두는 공공운수노조의 전면투쟁에 지지, 연대하고 민주노총의 전 조합원이 투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민영화의 문제를 알리고 조직해야 한다.
2012년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하고 한반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력이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다. 이 글은 민중운동 계획 수립의 기초로서 정세의 객관적 요소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선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위기의 전개 양상을 전망한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대외·통상 전략의 전환과 한미동맹 강화, 북한 체제의 변화를 주축으로 동북아시아의 정치·군사적 균형을 검토한다. 이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면서 정부의 정책기조와 경제위기 대응을 비판한다. 아울러 정부 여당의 레임덕 이후 정치 지형을 분석하면서 총선·대선의 구도와 쟁점을 파악한다. 끝으로 민중운동의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세계 경제의 위기 가능성 증대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장기적 원인은 1970년대 이후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추세다. 중기적 원인은 1970년대의 ‘징후적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다. 이에 따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대완화’가 발생하지만, 결국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가 이번 금융위기의 단기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7-09년 금융위기는 실물경기의 침체로 파급되면서 성장 및 고용·임금의 후퇴를 낳았다. 금융위기가 은행위기를 거쳐 대불황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취한 통화·재정정책의 결과로 2009-11년에는 세계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주변부에서 발발한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염되면서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핵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미국도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켰지만, 그 후과로 2011년 들어 재정위기 위험이 제기되며 2012년 경기침체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2012년 세계 경제 전망을 위해,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을 차례로 검토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2009-11년 유럽 재정위기는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채가 누증한 결과다. 그 구조적 요인은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으로서 유럽연합(EU)의 태생적 결함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신보수주의적 통화정책에 있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자본수입과 무역적자가 구조화된 주변국(PIIGS)에서 먼저 재정위기가 가시화됐다. 2010년 5월 그리스, 11월 아일랜드, 2011년 4월 포르투갈이 차례로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EU와 각국 정부의 대응은 역내 불균형과 유로 단일통화 체제에 내재한 모순을 해결하는 원인요법이 아니라 구제금융-긴축재정과 같은 대증요법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2011년 6월에 그리스가 다시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7월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우려가 고조됐다. 이에 따라 7월 유로존 정상들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증액 및 역할 확대와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방안에 합의했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진 그리스 위기가 전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0월에 EU 정상들은 민간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무조정, EFSF 레버리지 확대, 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 등 ‘질서있는 디폴트’ 방안을 추가로 합의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1월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급등하며 위기가 고조되자 결국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경제안정화법안 통과 직후 사임했다. 차기 총리로 선임된 마리오 몬티는 재무장관을 겸임하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올해 들어 내내 경제성장률이 제로 수준에 머물렀던 스페인도 11월 들어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11월 초 프랑스 깐느 G20 정상회의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방안은 구체화되지 못했다. 남부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현재 은행체계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 등 중심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정위기국과 강한 금융 연계를 맺고 있는 유럽 은행들의 위험노출이 커지면서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도 덩달아 강등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유럽의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이되고 나아가 유로화와 EU 자체의 위기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ECB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고 유로본드를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주요국 간 이견으로 실행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독일은 ECB의 독립성, EU 조약 위배 등을 이유로 ECB의 역할 확대를 반대하는 동시에 재정부담을 이유로 유로본드 도입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프랑스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ECB의 역할 확대를 찬성하는 반면 유로본드 도입은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12월 초 EU 정상회의에서는 새로운 재정 협약을 도입하고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강화하는 방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일각에서 해석하듯 재정통합의 진전이 아니라 사후적인 재정규율 강화에 불과하다. ECB도 정책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 조치 외에 장기자금공급조작(LTRO) 등 단기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비전통적 조치를 병행 실시했지만, 그러나 또다시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재정위기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7%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향후 유럽 재정위기는 다음과 같은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 첫째, 역내 3-4위 경제권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우 2012년 중 대규모 국채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다. 현재 EFSF와 IMF의 가용재원을 고려할 때 이들의 구제금융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둘째,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이미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국가들도 대대적인 긴축에도 불구하고 채무상환 능력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있는 그리스는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고, 아일랜드도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셋째, 각국의 정치적 사정으로 새로운 재정협약 체결이 지연되거나 안정화 수단의 실효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상당하다(2월 그리스 총선, 3월 슬로바키아 총선, 4-5월 프랑스 대선, 독일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 등). 넷째, 이런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고 있다(특히 2012-13년 중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50%를 상회하는데, 이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의 보증에 크게 의존하는 EFSF의 신용등급도 강등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유로존 은행들이 2012년 6월까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자본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면서 신용경색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자금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실물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여섯째, 앞으로 발표될 위기 대응책이 미흡할 경우 EU 중심국으로 위기가 전염되면서 매우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재정통합과 같은 근본적 해법이 제시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이상을 종합할 때, 유럽 재정위기는 임시방편을 통해 일시적으로 진정되다가 다시 악화되는 악순환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가 유로존을 이탈하거나 심지어 유로존이 붕괴할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교역의 1/4, 생산의 1/5을 차지하는 유럽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재정위기와 은행위기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럽 은행들이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할 경우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 10%, 외국인투자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유럽의 위기가 심화·확산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2007-09년 금융위기에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은행이 파산하고 증시가 붕괴함으로써 경기침체가 대불황으로 심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구제금융 및 적자재정정책,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구사했다. 하지만 정책 당국의 대응은 인수합병과 겸업화, 즉 금융해방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게다가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적 금융뿐만 아니라 공적 금융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즉, 적자재정정책과 수량완화정책의 결과로 정부 부채가 급증하고 연준 대차대조표가 비정상화된 것이다. 국가의 지불능력이 국채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므로, 만일 공적 금융의 위기, 즉 재정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채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국채가 5조 달러 가량 증가하여 2011년 초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중이 100%에 근접했다. 급기야 2011년 5월 말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법정 한도를 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수량완화 정책이 종료된 2011년 6월 미 정부와 연준은 당초의 예상과 달리 출구전략이 아니라 경기둔화를 공식 발표했다. 2011년 상반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동시에 고용과 주택지표가 장기간에 걸쳐 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재정위기 우려 속에서 미 의회는 연방정부의 ‘기술적 디폴트’ 시한을 며칠 앞둔 7월 말 국채 상한을 2.4조 달러 증액하고, 대신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2.4조 달러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단순히 국채 상한이 문제가 아니라 재정정책의 지속 불가능성이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재정적자의 대부분을 감축하는 주체가 현 정부가 아니라 차기 정부인 데다가 재정적자를 감축시키기 위해 조세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정지출을 감소시킨다는 문제도 있었다. 2011-12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3%, 2%, 1%, 0%라고 가정하면 국채 비중은 108%, 111%, 113%, 11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8월 세계 금융시장은 폭락을 경험했다. 그러나 연준은 기대와 달리 3차 수량완화정책을 발표하지는 않고 대신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와 주택담보부증권(MBS)의 원금을 재투자할 것이고 또 대차대조표의 규모와 구성을 적절하게 조정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함으로써 3차 수량완화정책을 어느 정도 암시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9월 초 오바마 대통령은 4,470억 달러의 감세와 재정지출로 구성되는 3차 적자재정 정책, 즉 미국일자리법안(AJA)을 제안했다. 하지만 현재 의회의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1년 하반기 연준은 2011-13년 성장률 및 실업률 전망치를 상반기 예상에 비해 하향조정한 상태다. 실물경기 회복세가 둔화됨에 따라, 특히 장기에 걸쳐 고용상황의 개선이 미흡하고 주택시장 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2012년 미국경제의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2011년 말에 발표된 제조업·고용·소비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일시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요인들이 다수 존재하여 경기회복의 지속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고용율과 실업률이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실업자 비중이 사상 최고치에 이르는 등 구조적 실업이 심화하고 있다. 이는 소득과 소비 감소로 이어지면서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주택경기 역시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복 속도가 느려 여전히 침체상태에 있다. 주택가격 하락은 역의 자산효과를 가져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건설업 고용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1월 미 의회 슈퍼위원회의 긴축재정안 합의 실패에 이어 향후에도 경기부양책 및 재정건전화 방안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또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확산되는 것도 주요한 경기하방 요인이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유럽 위기국에 대한 직접 위험노출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간접 위험노출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위기국의 신용 하락 시 전염이 불가피하다. 2012년 경기침체의 징후가 보다 분명해지면 미국 정부의 3차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연준의 정책수단으로서 3차 수량완화정책이 구사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적자재정정책과 수량완화정책은 실물경제에 대한 효과가 미미하다는 문제가 있다. 경기회복 지연과 재정건전성 악화, 그리고 유럽 재정위기와 부정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금융연계와 무역연계를 통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이 미칠 것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와 금융연계가 강한 한국 경제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 중국 경제도 2011년 성장세가 다소 둔화된 가운데 내외부 위험 요인들이 불거지면서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중국의 최대 수출지역인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와 경기회복세 약화로 수출 증가율이 큰 폭으로 둔화되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 둔화, 기업수익성 악화 등으로 기업들의 이자상환 부담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비은행권 대출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은행권의 대출부실이 확산되어 대출축소로 이어질 경우 부동산 시장 추가 하락, 중소기업 자금경색 심화 등 악순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부진 등으로 지방정부의 세입이 줄어들면서 상당수의 지방정부가 재정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이 과도한 수준에 있어 급격한 투자 축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비은행권 부실이 폭발하거나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하거나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잠재적 위험 요인들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일부 요인들이 불거지더라도 중국 정부가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밀접하게 연관된 각 요인들이 연쇄적으로 파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중국은 저임금 기반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 공급사슬에서 최종공급자로 기능하는 한편,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외화를 다시 국외에 투자하는 최종대부자로 기능하면서 과거 세계 경제위기 시 안전판 역할을 담당했는데, 오히려 현재는 중국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의 또 다른 원천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반도 불안정성의 고조 유럽의 위기와 대조적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확대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처한 미국에 사활적인 과제다. 미국으로서는 경기침체에 대비하여 금융과 함께 이른바 지식기반경제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비즈니스서비스를 중심으로 수출주도 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로 대두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 역내 안보 불안도 미국의 아시아 재관여의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통해 대외 전략의 무게중심을 유럽이나 중동에서 아시아 태평양으로 옮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상태다. 게다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 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위해 공세적인 아시아 전략을 펼쳐야 할 국내 정치적 요인도 결부되어 있다. 현재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서로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있기 때문에 갈등이 조정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쌍방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어 잠재적인 갈등이 확대되는 형세에 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미국은 경제위기의 원인이자 효과로서 이중적자의 확대, 즉 재정적자와 함께 무역적자가 누증하는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최대 무역적자 상대국인 중국에 평가절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현재 위안화는 최소한 20% 평가절하되어 있다. 이로써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실업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달러화는 중국을 비롯한 수출지향국의 통화가 평가절하됨에 따라 10-20% 평가절상되어 있다. 미국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경우 대외부채가 대폭 개선되고 국내에서 다량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미국은 2011년 5월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개최하여 위안화 절상을 요구한 데 이어 10월에는 환율조작국 제재법안을 의회에 상정한 상태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나 자신의 구상에 동의하는 동맹국들의 ‘의지연합’을 활용하여 환율 분쟁 상대국에 대해 보다 강경한 정책을 구사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미중 관계에서 안보 문제 협력을 이유로 환율 문제와 같은 경제적 이슈에서 국익을 희생해서 안 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2011년 10월 한미 FTA 의회 비준을 발판삼아, 11월 연이어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아시아 관여 의지를 적극 드러냈다. APEC에서 일본이 환태평양경제파트너십(TPP) 협상에 참여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이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폐쇄적 지역주의’, 즉 아시아 역내 국가 간에 체결되는 FTA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대신 한미 FTA나 TPP처럼 자신이 관여하는 무역투자 협정을 ‘개방적 지역주의’ 전략을 관철하는 교두보로 사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흥국 금융서비스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미 FTA나 TPP와 같은 ‘21세기 무역협정’이 종국적으로 FTAAP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동시에 이를 통해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통상 전략은 곧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신 아시아 정책 구상’에서 ‘아시아와 미국은 태평양에 의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묶여있다’면서, 적극적인 개입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구상은 최근 미국이 발표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미국은 ‘대 아시아 수출이 자국 경제의 결정적 활로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재정감축 방안에 따라 국방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1월 EAS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확인했다. 또 미국은 호주에 미군을 장기 배치하기로 함으로써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에 대한 안보 우산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한미동맹의 강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된다. 한국은 여기에 적극 조응하여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FTAAP 구상의 시발점으로서 한미 FTA가 비준된 것과 함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사령부(KORCOM)로 재편되는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정부는 한미 FTA 비준으로 ‘한미동맹은 정치안보동맹에 경제동맹이 더해져 다원적포괄적 동맹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한다. 군사 안보에서 ‘평화와 안정의 축’과 경제협력에서 ‘번영과 발전의 축’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한미관계가 운영되고 발전하는 새로운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통상 주도권을 둘러싼 각축전과 금융무역 자유화 물결이 몰아치는 가운데 한국은 한미동맹 기조 하에서 ‘글로벌/역내 파트너십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TPP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이미 FTA를 체결했거나 아니면 협상 중에 있다. 정부는 ‘한국의 경제 자체가 개방을 지향하여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한중 또는 한중일] FTA든 TPP든 그 어느 한 쪽에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그 다음 수순으로 미국이 한국에 TPP 참가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TPP의 기본형으로 기존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 4개국이 체결한 TPP4가 아니라 한미 FTA를 강조한다는 점은 TPP와 한미 FTA가 미국에 별개로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을 방증한다. 반대로 중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ASEAN과의 FTA를 강화하면서 지금보다 더욱 강하게 한중 FTA나 한중일 FTA 체결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TPP에 일본이 참가하는 반면 중국이 불참하는 것을 두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사실 중국이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금융 및 서비스 시장을 대폭 개방해야 하므로, 이는 현재 중국의 경제구조 상 상당한 시일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향후 추이를 지켜보면서 한일 FTA 체결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미군 제7사령부로 편제되는 한국사령부는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국 육해공군 전체의 작전을 통제하게 되고, 한국사령부가 위치할 평택은 동북아 허브기지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역내 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향후 미국은 주둔군 비용분담 요구를 강력히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된 전체 비용 가운데 약 40%가량을 부담하고 있는데, 미국이 조만간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분담비율을 50% 수준으로 높이고 평택기지 이전에 소요되는 자국 부담을 여기서 충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국은 미국의 후원 아래 2012년 3월 서울에서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할 예정인데, 이것이 미국의 북핵 관리 전략에 조응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미국은 2010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여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북한과 이란에 대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개방한 뒤, 북한과 이란을 제외한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여하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북한 체제의 변화 미국 오마바 정부는 북한 핵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핵위협 청산을 핵 포기 조건으로 제시하며 2009년 이후 공세의 수위를 계속해서 높였다(광명성2호 발사, 6자회담 불참 및 기존합의 파기, 영변핵발전소 불능화 취소 및 원상복구 방침 발표, 2차 핵실험 등). 그러나 미국은 적극적 개입 대신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정성을 보이거나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선의의 무시’, ‘전략적 인내’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보상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을 약화시켜 자신의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가정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무시와 인내가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시켜 도발 수위가 점점 높아지게 되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단계로 불안정성이 고조될 위험도 있었다. 결국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태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공개 이후 미국은 대북정책을 다소 수정했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은 국내 여론과 북한의 추가적 도발을 관리할 목적으로 대화를 재개했다. 이후 6자회담 참가국 간의 대화가 폭넓게 진행됐지만, 북핵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미국과의 핵군축 회담을 상정하는 북한의 기본적인 대립구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남한은 남북비핵화회담을 개최하여 천안함, 연평도 문제(군사문제)와 6자회담(비핵화문제) 간의 분리 대응을 추진하고 인도주의적 지원 및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재개 의사를 내비쳤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제시한 사전 조치에 동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의지 확인, 핵과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중국은 북핵의 안정적 관리를 기조로 삼으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제재와 일정한 선을 그어왔다. 따라서 2012년에도 남북관계가 부분적으로 개선되거나 6자회담이 재개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상황 변화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일단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순조롭게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하고, 상당 기간 동안 내부 정치적 안정화에 주력하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김정은 후계 체제를 인정한 것도 안정화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므로 북미 관계는 한동안 교착 상태에 머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이 공세적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 한국 경제는 1997-98년 경제위기·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상황에서 금융자유화와 구조조정·평가절하와 같은 수출-재벌 주도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만성적인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는 주요 원인은 생산적 투자의 지표인 자본축적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하락·정체된 것에 있다. 이는 이윤율 하락이라는 기본 요인에 더해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 인수합병(M&A) 중심의 투자행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금융자유화에 따라 신흥시장으로 변모한 한국 경제는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와 국부유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와 같은 문제가 일상화되었다.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로, 성장 유발 효과가 극히 제한적인데 반해 변동성이 커서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외국인 직접투자 기업도 저임금·비정규직 활용에 의존하고 있어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노동력 신축화와 수출-재벌 구조의 강화로 귀결됐다.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따라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급상승하였고 국내 산업구조가 국제적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재벌의 지배력도 급상승했다. 그러나 국외 생산의 확대로 기업 내 교역이 증가하고, 또 부품?소재 산업의 기반이 취약하여 기초소재 및 조립가공 제품을 중심으로 수입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출이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완제품 수출 대기업의 가격경쟁력을 강화하는 반면 원자재와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수출-재벌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소득 및 고용이 호전되지 않는다. 그런데 금융자유화에 따라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확대되면서 평가절상 압력이 커지기 때문에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 무역흑자나 환율하락(평가절상)이 한국 경제의 생산력·기술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제조업은 2000년대 이후 기술경쟁력보다는 주로 가격경쟁력 우위에 기초하여 무역흑자를 시현해 왔으며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일례로, 한국은 대중 무역흑자를 대일 무역적자가 상쇄하는 무역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대일 무역적자는 주로 기술경쟁력의 열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첨단 부품·소재 산업에서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한 반면 중국도 저임금 위주의 가공무역에서 탈피하고 있어, 가격경쟁력 우위에 기초한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역대 정부는 FTA 전략을 추진했다.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를 근간으로 하는 FTA가 한국 경제의 모순과 위기를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한편 수출-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이 낳은 폐해를 감안하여 내외수 균형성장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역대 정부들은 제조업의 성장 및 고용 창출력 저하와 대외의존도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내외수 균형성장 방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여기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란 비즈니스서비스 부문을 특화하는 반면 유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부문을 부차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숙련 지식기반 부문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골드 칼라가 육성되는 것 외에는 고용 창출 효과도 미미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더라도 비즈니스서비스에 종속된 저임금·비정규 노동이 주종을 이룰 뿐이다. 심지어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정부는 수익성 있는 공공부문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간주하여 개방과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때 FTA는 서비스시장 개방을 촉진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또한 최근 이명박 정부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전략으로 제기한 이윤공유제는, 물론 노자 간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윤을 공유해야 한다는 논지로, 1948년 제헌헌법에서 규정되고 1962년 폐지된 ‘이익균점권’에 미달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기업의 반발과 정부 부처 내의 이견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자유화와 수출-재벌 주도 성장전략,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FTA 전략은 투자활성화와 수출경쟁력을 위해 노동력을 신축화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또 대외 의존을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국민경제를 세계 경제위기의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2007-09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환율 및 주가 변동폭과 실질임금 삭감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임기 중 만성화된 저성장 문제의 원인을 정치 불안과 반시장·반기업 정서로 꼽으며 △법인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활동·금융규제 최소화 △노사관계 법 지배 확립 △경영권 보호 장치 강화 등으로 대표되는 친 재벌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또 ‘버블 세븐’ 지역을 비롯한 부동산 소유주의 이해에 적극 부응하는 한편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뉴타운 개발’과 같은 공급 확대를 통한 해결이라는 논리로 투기 붐을 다시 자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세계 경제위기의 격랑 속에서 크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을 심화하였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집권 5년(2012년 전망치 포함) 경제성장 실적을 단순 평균하면 3.1%에 불과하다. 이는 자신의 공약이었던 7%는 물론이거니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그토록 비판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적(각각 5.0%, 4.3%)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둘째, 성장 부진에 따라 고용도 악화되었다. 공식 실업률은 세계적으로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고용률도 크게 낮아져 실업과 비경제활동인구의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잠재실업자군(실망실업자·경계근로자·취업준비자)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잠재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부분실업)를 포함하는 확장실업률은 공식실업률의 2-3배에 달하는 8-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경기변동에 따른 실업자 변동폭은 취업자 변동폭에 비해 현저하게 적게 나타나는데, 이는 일자리 감소시 실직자의 일부만이 공식실업으로 포착되고 다른 일부는 불완전취업 및 잠재실업의 형태로 노동시장에 잠복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동일한 노동력 상태를 유지하는 비율이 크게 낮아져 경제위기를 전후로 고용불안이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 속에서 취약계층의 고용이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인적으로는 여성과 청년, 일자리별로는 건설업·도소매업·서비스직·단순노무직, 5인 미만 영세소기업, 자영업과 일용직 등에서 취업 감소가 현저했다. 셋째, 명목임금인상률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인상률도 대폭 악화되었다(2007년 3.0%, 2008년 -8.5%, 2009년 -0.1%, 2010년 3.8%, 2011년 -3.5%). 이명박 정부 임기를 제외하면, 1993년 김영삼 정부 이후 실질임금인상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 IMF 직후인 1998년(-9.3%)이 유일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현 정부 하에서 임금인상이 얼마나 억제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56.7%에서 2010년 52.5%까지 하락했다. 넷째, 조세 감면, 규제 완화, 개발 확대를 통해 건설 및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발상은 용산 참사와 4대강 개발로 상징되는 거대한 재앙을 낳았다. 투기 수요를 부추겨 주택 매매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전세난을 야기했으며,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가 반토막난 반면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는 서민용 주거가 대량 멸실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부채로 주택 구입을 장려하는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은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가계부채 용도는 주택 구입용 50%, 생계 유지용 30%, 사업자금 마련용 20%다). 다섯째, 이명박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을 대체로 계승하면서도 ‘공정한 시장 경쟁 논리’와 같은 우파적 교리를 가미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이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정됐다.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소기업을 살리며,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친서민 중도 실용 정책’을 2009년 국정운용 기조로 밝혔다. 이어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하자 집권 후반부를 위한 국정철학으로 ‘공정사회’를 제시하였다. 이어서 2011년에는 ‘공생발전’으로 전환하며 부자감세 정책을 일부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민생 악화라는 조건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회정책은 야권의 민생-복지 프레임에 치명적 약점으로 노출되었다. 급기야 2011년 하반기 총대선 전초전 격으로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레임덕이 가시화되었다.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 이렇듯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폐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2012년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한 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세계 경기침체와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하고 자본유출입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세계 경제위기로 전통적으로 수출을 주도했던 철강·자동차·조선·기계·석유화학·정보통신 등 주력산업 분야에서 수출이 둔화하고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은 물론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올렸던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도 체감경기가 급랭하고 있다. 조선·철강 업종의 경우 부도·구조조정·감원 가능성이 크고 건설·저축은행 등 취약 업종에서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높고 유럽·미국으로부터 유입된 자금규모가 커서 이들 국가의 불안이 계속된다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국제유가는 선진국의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수요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중동 산유국의 지정학적 위험으로 공급이 축소되면서 2012년 중에도 2011년에 이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유가는 물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생산과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1997년 구조적 위기 이후 성장률이 하락하고 저출산·고령화로 성장잠재력마저 축소된 상황에서 지난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해지며 장기 성장 추세가 재차 하락했다는 문제가 있다. 그 결과 고용 부진, 실질임금 감소,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노동자 대중의 삶과 직결된 경제지표가 금융위기 이후 현저히 악화되거나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최근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기가 급격히 둔화될 경우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였다. 선거를 의식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없을 것이라는 예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 상반기 중 예산을 대부분 집행하고 위기가 가시화될 경우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과 노동신축화 법제화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정책 기조도 ‘일하는 복지와 맞춤형 복지 강화’로 유지되고 있다(참고로, 내년도 복지 증가분 5.6조 원 중 의무지출을 제외한 재량지출 증가 몫은 1조 원인데, 여기서 사실상 복지지출로 보기 어려운 주택 부문 증가분 9천억 원을 제외하면 실제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작동하는 재량지출 증가분은 1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제1차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FTA를 더욱 확대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며 “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국가간 장벽이 희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2011년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 등 대외 부문에서 큰 성과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GDP 대비 교역규모가 100%를 상회하고, 성장의 수출 의존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외부문이 물가 안정, 성장 견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2년 대외 경제정책에 더욱 역점을 둘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보다 공세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2012년 경제상황 악화 및 고용조정 등에 따른 불안요인에 대처하기 위해 ‘일할 기회의 부족’과 ‘일하는 사람들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 일할 기회 늘리기’, ‘내일 희망 일터 만들기’, ‘상생의 일자리 가꾸기’를 3대 핵심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고용대책은 실상 노동신축화를 전제한 ‘일자리 나누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은 정리해고제와 같은 고용량의 신축화와 파견제·기간제와 같은 고용형태의 신축화를 거쳐, 이제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피를 쓴 시간제를 통해 임금 및 노동시간 신축화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청년실업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는 ‘미스매칭 해소’란 대학 구조조정과 생색내기 식 고졸자 취업 확대를 통해 노동력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지난 9월 수립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불합리한 차별해소와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추진을 명목으로 업무 재편, 직무·성과 연동 임금체계로의 개편, 정규직 고용의 유연화와 임금 불안정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정부가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을 막고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진한 시간제 노동의 경우 실상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 가정 양립’과 일자리 창출 시간제법안은 애초 노동시간과 임금을 신축화하여 기업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정치 위기와 총대선 지형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로 인한 민심 이반과 각종 실정·부패로 집권 하반기 레임덕에 빠진 상태다. 민주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전 집권세력은 위기의 책임을 현 정부 여당에게 전가하는 인민주의적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반복,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현재 반한나라당-비민주당을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의 레임덕 대선을 1년 앞둔 2011년 12월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0% 대 중반으로 하락하고 한나라당 지지율은 30%대 초반에서 정체되어 있다. 2007년 대선에서 2위와 무려 20% 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두고 2008년 총선에서 여유있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부 여당이 불과 3-4년만에 위기에 처한 원인은 무엇인가? 반민주적·억압적 통치 스타일과 남북관계의 악화라는 여러 요인들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명박-한나라당의 ‘747 공약’과 ‘뉴타운 공약’과 같은 장밋빛 경제성장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했다는 사실을 핵심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무능하고 불안한’ 진보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민주화’ 담론을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그에 후속하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예의 수출-재벌 주도 성장 전략을 더욱 강화하였지만 이는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과 위기를 심화할 뿐이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2007년 이후 경제위기를 경험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집권당 또는 다수당의 이념·노선과 무관하게 ‘현직의 실패’가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을 사상하고 선거 주기만 고려한다면, 대선 뒤 1년 이내에 실시되는 ‘신혼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고 차기 대선 전 1년 이내에 실시되는 ‘황혼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재편을 단행한 상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의 후과와 선거 개입 의혹 등 각종 권력형 비리가 터지며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한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전권을 행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비대위는 정책적으로는 복지 공약을 보강하면서 중도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조직적으로는 외부 인사 영입, 개방형 국민경선제 등의 방안을 도입하여 재창당 수준의 인적 쇄신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확실한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나라당의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당내 친박계를 제외한 여타 계파의 원심력이 확대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계파 간 이해 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내부 분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권력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10% 대 초반을 기록한 것과 비교한다면 현 정부 여당의 경우 핵심 지지층의 결속력이 최소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지도가 2011년 하반기 ‘안철수 돌풍’에 밀려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여전히 다자 구도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반정권 야권연대에 의존하는 이유가 된다. 민주통합당의 반정권 공세 민주당은 12월 (‘혁신과 통합’의 후신인)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과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으로 재편하였다. 동시에 진보정당을 포함하는 범야권공조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면 총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구상 하에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주요 정책적 조직적 특징을 검토해보자.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실현(재벌대기업 개혁 등)과 보편적 복지(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주거복지, 일자리복지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본 노선으로 제시했다. 통합 정당 내에 전국노동위원회를 상설기구화하고 ‘당권은 당원에게 있다’는 당원 주권 조항을 삭제한 것도 특기 사항이다. 이러한 노선은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주축으로 하는 ‘뉴민주당 플랜’에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의 요구를 절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민주당이 이전에 비해 진보적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이후 복지 논쟁 구도는 누가 더 복지를 잘 공급할 수 있는가라는 전문가주의적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노동 의제를 부각시키며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제시하는 개혁 의제의 폭과 수위는 대단히 협소할 것이다. 2011년 상반기 민주노총이 민주당과의 공동 입법발의와 한국노총 공조를 염두에 두고 꾸린 ‘노동대책 및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위한 야5당-민주노총 회의’에서 민주당은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손댄 부분(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만 다시 약간 손질한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민주당에 합류한 한국노총이 최근 ‘파견전임자 임금을 지원받기 위해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한 투쟁 전선의 교란 요소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 사안에서 민주당이 제시하는 방안이란 것도 실상은 노동신축화를 전제한 상황에서 일부 부작용과 문제점을 보완하는 ‘신축적 안전성’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 민주통합당의 출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당의 조직적 특성은 정당 밖 운동조직의 지지와 인적 구성에 의존하는 ‘수평적 조직화’로 특징지어진다. (1987년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그 기원을 두는 이들은, 이후 신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으로 변모하며 14대(1992년), 15대(1996년), 16대(2000년) 총선에서 외부 인사를 각각 63%, 47%, 50% 공천하였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외부 영입 공천 비율은 35%에 불과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68%에 달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관계·학계·법조계 등 전문가집단이었다.) 외부 인사 공천은 정당의 정체성보다는 당선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후보들의 개별적 인지도나 지지도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다. 정당 외부 전문가들의 참여와 국민경선제 등을 통해 선거승리와 유권자 전반의 동원에 주력하는 민주당은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또한 인터넷 등의 매체 발달과 더불어 선거과정의 기술적 발전이 촉진되면서 민주당은 선거전문가정당으로 재빨리 변모하였다. 일반적으로 선거전문가정당은 당원 중심의 수직적 연계가 약화되는 대신 광범위한 유권자의 여론에 호소한다. 정당 내부의 지도력보다는 개인적 지도력과 대중적 대표성이 강조된다. 재원조달 방안도 당비보다는 이익집단이나 국가보조금 같은 공공자금에 의한 재정확보가 중요시된다. 이념보다는 개별 이슈나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에 강조점이 놓이고, 조직 내에서도 직업적 전문가들과 이익집단 대표들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에는 정치 토크 콘서트와 인터넷 라디오방송, SNS 등 다양한 신기술과 매체를 통해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향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전문가정당으로의 변모는 선거승리에도 유리하지만 선거패배에도 취약하다. 2007년 대선 및 2008년 총선을 각각 1년, 1년 반 앞둔 시점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공히 1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일반적으로 현역 의원을 소속 정당에 잔류하게 할 유인은 정당이 갖는 자원, 즉 정당의 고정 지지층과 선거 시기 정당의 인적·물적 지원이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집권당의 이미지를 탈각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한편 집단으로 탈당하여 중앙당의 지원과 국고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적실정당’(원내교섭단체)을 결성하였다. 그 결과 2007년 열린우리당은 이념·노선의 전환 없이 단순한 조직 전환만 빈번해지는 무수한 이합집산을 반복해야 했다. 이상은 민주통합당의 이념적·조직적 토대가 대단히 부실하고 지지층의 휘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치 위기와 안철수 돌풍 민주통합당으로 결집한 이전 집권세력들은 ‘이념·노선·정파를 초월하여 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면 민생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 여당의 거듭되는 실정으로 인한 반사 효과와 통합 효과로 인해 민주통합당은 창당 직후 여론조사에서 기존 민주당에 비해 약 10% 포인트 지지율이 상승하며 한나라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이들은 2010년 이후 그 위력이 거듭 확인된 야권 단일화 선거기법을 발전시켜 정계개편과 정권교체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30%) 외에 당원과 일반 시민의 모바일/인터넷 투표(70%)를 반영하고, 총선 공천도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로 실시할 예정이다. 한편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지만 최근 지역경기 부진으로 여론이 악화된 부산·경남에서 주요 친노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예정이다. 이들은 부상·경남 지역 총선 승리를 통해 전국정당화와 과반의석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차기 대권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구상이 실패할 경우, ‘안철수 카드’가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현재 양대 정당의 본격적인 선거 체제로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이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 현재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는 집단은 이른바 2040 세대로서, 이들은 냉전의 유산과 지역주의로부터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만 취업난·가계부채·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세대다. 그런데 ‘안철수 돌풍’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철수 돌풍’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한국 정치의 이념적·조직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안철수 원장이 ‘정치의 본질은 행정’이라고 언급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정치 위기의 중요한 증후 중 하나는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이자 집단적 운동으로서 정치가 행정이나 치안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일단 안철수 원장이 단호하게 신당 창당설을 부인함에 따라 총선은 현재 구도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당론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이 등장할 경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지세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다는 결과가 있다. 또 안철수 돌풍은 위력적인데 반해 기존 지배 정당의 리더십은 대단히 취약해서 과거 3김 ‘보스정치’ 시대와 달리 안철수 원장을 영입할 장악력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정치권 엘리트들도 안철수 돌풍에 편승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가 직접 총선과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랬듯이 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민중운동과 총대선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대선 국면을 겨냥한 단기적 구상과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모토로 창당한 민주노동당과 ‘노무현의 삶과 참여정부 계승’을 목표로 창당한 국민참여당, ‘비국민참여당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다 끝내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가 이념과 역사의 차이를 무시하고 통합에 합의하였다. 2011년 진행된 진보정당 통합 논의는 군소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생존이라는 목적에서 제기된 측면이 컸기 때문에 대중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이념·노선·전략에 대한 논의가 부차화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 주류세력의 경우,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통해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와 ‘연립정부 참여’를 목표로 설정하면서 이념·노선을 대폭 우경화하였다. 통합진보당은 5대 비전으로 △나라의 주권 확립 △복지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지향 △녹색생태 사회 건설 △한국정치 개혁 등 대단히 절충적이고 모호한 내용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원내교섭단체로 발돋움한 뒤 보수-개혁-진보의 3정립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 지지도가 두 자릿수로 상승했다가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다시 과거 민주노동당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신생정당으로서 당의 홍보 부족과 민주통합당 통합 효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여 총선 선거연합에서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애초의 구상에 적신호가 켜진 것도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이 이념·노선을 대폭 우경화하고 민주통합당이 진보적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양당의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지지층이 당선 가능한 정당을 지지할 경우 통합진보당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도 당의 대중적 토대를 확장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수권정당으로서 당의 위상을 제고하고 그 힘에 기초하여 노동조합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자는 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우선 민주노총 주류가 구 민주노동당의 당론에 보조를 맞추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 운동 전반의 무기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확정된 민주노총 총선방침은 노동 의제 전면화를 위해 과반의석 확보를 제시하고 있다. 현실에서 이는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데, 선거연합이라는 정치적 수단이 민주노총의 투쟁 목표를 희석 또는 변질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기 성과와 실리에 매몰된 선거방침이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정치방침을 역으로 규정하여, 일순간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를 정당화하는 역설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노총이 설정한 핵심 의제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 주류가 총선과 대선에서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이러한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통합진보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유주의(당)-노동자운동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의 건설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이 야권 단일화 프레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적·조직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총대선 국면에서 범야권의 일부로 흡수 통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민중운동의 대응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서 2012년 민중운동의 투쟁 방향을 도출해보자. 첫째, 2012년 세계경제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 고조와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 중국의 경착륙 위험 등으로 대단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제위기는 세계화된 금융연계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서, 일시적인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갖는다.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정권 말기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여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정부가 감세정책을 일부 철회했지만, 재벌주도 성장 및 노동력 관리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과 노동신축화 법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긴축경영 기조 속에 임금을 억제하고 고용을 축소하면서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중운동은 거시적 수준에서 금융자유화와 노동신축화를 주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전면 비판해야 한다. △한미 FTA를 필두로 하는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 비판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비롯하여 금융거품과 부실을 양산하는 금융자유화 조치 반대 △국가고용전략 2020 이후 제출되고 있는 각종 노동신축화 법제 반대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현행 노조법의 전면 개정 등이 당면 주요 과제다. 둘째, 미국은 경상적자 해소책으로 중국 등 신흥국의 환율유연성 제고와 자국의 서비스산업 수출 주도 정책 전환을 강조하며 한미 FTA 이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통해 이해관계가 조정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잠재적인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의 수정과 전력 증강으로 귀결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한층 고조된 한반도에서는 북한 체제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당분간 조정 국면을 맞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고 2012년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의 공세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중운동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한다는 점을 명확히 폭로하면서 반전평화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 비판 △평택 미군기지,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한 주둔미군 재배치 계획에 대한 비판 △한국의 전력 증강 사업 비판 등이 주요 과제다. 셋째, 고용·임금과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총노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제기하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실상 노동시간을 신축화하여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의 본질을 정확히 비판하면서, 이전부터 금속노조가 주장해온 주간연속2교대제와 야간노동철폐 투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실질임금 하락폭이 컸고 올해 선거라는 정치 일정도 있어서 임금인상 요구 관철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지만, 교섭력이 취약한 부문은 경제위기 여파가 커질 경우 여전히 실질임금 삭감이 우려된다. 또 경영난을 이유로 물량이나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다. 총연맹 수준에서는 노동자계급 전반의 사정 악화와 함께 내부 격차의 확대를 감안하여 연대임금 정책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산별연맹 수준에서는 산업적 위계의 정점이자 임금협상의 기준이 되는 주요 완성차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산별교섭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38 여성의날과 연계한 공공운수노조서울경인지부의 대학비정규직 집단교섭, 공단 차원의 전략조직화와 연계한 금속노조서울남부지회의 집단교섭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투쟁으로 부상한 정리해고 이슈를 진전시키고 사내하청·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경제위기에 사각지대로 몰리게 될 민중들의 기초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중요하다. 복지 정책의 수혜자로서 정책적 요구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서 대중 저항 주체 형성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경제위기와 민심이반을 바탕으로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상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야권은 민중운동의 일부를 포섭하는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통해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반한나라당 공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만성적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현직의 실패와 정당의 위기가 반복되고 있는데, 반한나라당-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위기를 반영하는 통합진보당의 등장 및 이들의 민주통합당과의 선거 제휴 속에서 민중운동 전반의 주류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정세는 향후 대중운동을 재건하여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를 유실하지 않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민중운동 좌파는 전선의 유실과 진보정당 및 노동조합의 우경화를 저지하고 향후 민중운동의 발전적 재편을 추동하기 위해 상호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 사회운동의 경제위기 대응에 대해 주의 깊은 관찰과 연대가 필요하다.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2010-11년 유럽 긴축반대 운동, 2011년 상반기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 2011년 하반기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등 경제위기에 맞서 투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한동안 추동력을 상실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본주의의 체계적 위기에 맞서 국제적 수준에서 민중적 대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2012년 가난의 풍경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줄 알았던 2012년이 왔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가난의 풍경이다. 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진학도 못 한 채, 중국집 배달부를 거쳐 봉제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떠돌다 거리에서 사망한 삼십대 홍 씨. 부도직전 사장이 만들라는 카드 만들어 빌려줬다가 2,000만원 빚을 떠안게 된 후 일용직 일을 전전하며 쪽방-고시원-노숙을 반복하다 병을 얻었다. 죽기 직전 늙은 아버지를 찾아가 같이 지냈지만 아들의 존재가 아버지의 기초생활 수급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걸 염려해 거리로 돌아간 그는 죽어가는 몸으로 국립의료원을 찾았지만 의료비 미납기록 때문에 진료를 거부당한 채 거리에서 서른여덟의 생을 마감했다. 언론에도 숱하게 보도된 바 있는 실제 이야기다. 작년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재조사 이후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노인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그 중 남해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지내던 70대 노인은 수급 탈락 결정이 통보되었다는 사실을 딸로부터 전화통화로 전해들은 며칠 후 요양시설 난간에 목을 맸다. 시설거주 수급자는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탈락하면 80만원의 시설이용비를 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을 다니다 결혼 후 아이 낳고 식당 일 등을 하며 살아온 사십대 중반의 정 씨는 서울의 큰 기차역 근처에 집을 얻어 살았다. 기차역 바로 옆 시끄럽고 낙후된 판잣집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1,000만 원 전세로 살 수 있는 서울에 몇 안 남은 동네였다. 하지만 어느새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개발-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등에서 중심이 되는 지역들에 인접한 고급 주거지역으로 각광받는 지역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싶더니, D산업이 달려들어 개발사업이 착수되었다. 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자 하니 주민들의 의견을 달라는 벽보를 붙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래도 무슨 수가 나겠지 생각했지만 2008년 살던 집이 그대로 철거되었다. 그때부터 천막생활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그녀는 1,000만 원 보증금으로 갈 곳이 없어 천막생활과 매일 반복되는 나홀로 집회를 근 4년간 이어온 끝에 매입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수 있었다. 60대 초반의 김 씨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 줄곧 노점상을 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정착한 곳이 청계천이었다. (청계천 복원 이전 노점상 규모는 3,000명으로 추정되고 당시 전국노점상총연합 회원이 1,000명이었다고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은 2002년 본격화되었고 박봉규 열사의 분신, 노점상 조직의 투쟁 끝에, 동대문 운동장 내 풍물시장 이전이 합의되었다. 그러나 동대문 운동장은 2008년 철거되었다. 노점상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김 씨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는 이름도 괴상한 역전에서 장사를 다시 시작한지 이제 3년이 조금 넘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디자인파크플라자 완공을 앞두고 또 퇴거가 예상되고 있다. 1.5m 길이의 노점박스에서 악세사리를 파는 그녀는 지금 나이에 노점을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기초생활 수급 가정의 맏이로 자란 20대 초반 이 씨는 지금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고 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이 씨는 부모님과 같이 살면 가족들 모두 수급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30만 원 월세방을 얻어 100만 원이 넘지 않는 아르바이트들을 해왔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간주부양비’가 무조건적으로 부과되므로, 이 씨의 수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모의 급여는 줄어든다. 이 씨는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줄줄이 딸려 있는 이 씨의 동생들의 미래는 또한? 이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 사람들은 서로 같은 가족 내 속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웃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사람들 가족, 친지, 이웃 중 최저임금만을 받거나 최저임금을 벌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몇몇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대단히 극단적인 사례로 보이는 홍 씨의 비참한 죽음은 몇 가지 삶의 고비만 넘겼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다. 화전금지정책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홍 씨 가족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졌더라면, 홍 씨가 열세 살부터 스무 살이 되도록 일했던 중국집 사장이 월급을 떼어먹지 않았더라면, 봉제공장 사장이 홍 씨의 카드를 도용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아버지에게 찾아갔을 때 일할 수 없는 정도인 홍 씨의 건강 상태를 보고 주변 사람들과 복지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왔더라면,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 문을 두드렸을 때 병원에서 약이라도 타 갈 수 있었더라면. 이 모두가 얽혀 현재의 절망적인 가난의 풍경을 낳는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매년 겨울, ‘전기장판 합선으로 인한 노인 화재사’, ‘촛불 켜놓고 자던 가족 사망’, ‘가스 버너로 몸 녹이던 장애 청소년 사망’과 같은 뉴스들이 이어진다. 그 때마다 ‘에너지 빈곤층’(가구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비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십분의 일에 육박한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떠들썩해지면, 몇 가지 한시적인 지원대책이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대기업들은 앞 다투어 빈곤층 에너지 상품권 지급, 연탄 후원 행사 같은 것을 하기도 한다. 빈곤에 대한 대처방식이 이렇다. 단편적이고 표면적, 일시적인 대응들이 이어지다 예산 효율성 등을 이유로 중단된다. 중단 후에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폭이 한결 좁아지거나, 진입장벽이 한층 쌓인다. 소득불평등 심화의 원인은 일하는 이들의 빈곤화와 소득상위층의 부의 독식 2000년대 이후 빈곤과 소득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빈곤율, 소득분배율 모두 조사할 때마다 최고치를 경신한다. 빈곤의 기준선이 되고 있는 최저생계비 수준이 평균소득에 비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빈곤율은 2007년 10.2%, 2008년 10.4%, 2009년 11.1%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부가 고소득층에 몰리는 한편, 중간 이하 계층의 상당수가 절대빈곤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그림1] 빈곤율 전망 (가계조사자료 기준) 상대빈곤율은 관련 통계가 나온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져 2010년 14.9%를 기록했다. 이는 개인소득에서 비소비지출(세금, 사회보험료 등)을 빼고 이전소득(사회보장금, 연금 등)을 더한 가처분소득이 그렇다는 것이지, 개인소득만을 비교해보면 상대빈곤율은 2010년 18.1%로 전체 국민 6명 중 한 명이 빈곤한 상태다. 상대빈곤율은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하는데, 중위소득의 50%는 2009년 기준 118만 원으로 이에 못 미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 8.68로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1인가구를 포함했을 때의 수치이며, 이 당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85만 5천 원, 상위 20%의 소득은 742만5천 원이라는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절대빈곤인구 및 독거노인세대가 대거 포함된 1인가구를 제외하고 소득 5분위배율을 따지면 훨씬 격차가 줄어든다. 1인가구를 제외하였을 때의 소득5분위배율은 2008년 5.71을 기록하였고, 2010년 5.66으로 소폭 완화되었으나, 이는 한시적 고용대책 및 지원대책의 효과이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고소득층의 자산 감소 등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이다. 물론 이 역시도 가처분소득을 따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정부로부터의 지원금, 복지급여 등 공적이전소득을 더하기 전의 소득격차는 훨씬 커진다. 복지정책이 작용하기 전 단계인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5분위 배율은 2010년 7.74로 전년보다 늘었다. 최근 10년 사이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 중 최고의 악화 속도를 보인다. 2010년 10월 OECD가 26개 회원국의 9분위 소득배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소득불평등도는 미국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8년 0.314에서 2010년 0.310으로 소폭 하락한 것도 일시적인 복지지원의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한시적 복지지원 사업들은 2011년 들어 대부분 종료되거나 지원액이 삭감되었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은 점점 감소추세이며 부채는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 엥겔계수(소비에서 먹거리로 지출하는 비율)는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먹을 것 이외에는 다른 소비를 할 여력이 점점 없어진다는 의미다. 이렇듯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와 불평등 심화는 노동을 통해 먹고 사는 이들의 소득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은 점점 하락하고 있으며, 저임금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1,700만 여명 임금 노동자 중 410만 명이 저임금 노동자이며, 이중 절반 이상은 최저임금 이하만을 벌며 살아간다. 저임금노동자 비중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70%는 여성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구 사이의 소득 격차 역시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이 5.8% 상승할 때 비정규직 가구는 단 1% 상승에 그치고, 비정규직 가구 부채는 1년 새 8.9%나 증가하였다. [표2] 빈곤율 추이 비교표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한 이들의 최저생활 수준을 가늠하는 최저생계비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기준선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은 점점 바닥으로만 향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저생계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생계비 기준선인 동시에, 빈곤기준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정부가 3년에 한번 계측조사를 실시하여 결정하고 있으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전물량방식을 택하고 있어 문제가 많다. 최저임금 역시 노-사-공익위원 합의 방식으로 매년 결정되지만,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재계와 정부의 편에 서 있으므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합의방식이며, 이명박 정부 들어 인상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노동자평균임금의 30%수준) 게다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받는 노동자 수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 2012년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553,354원, 4인가구 1,495,550원이며,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실제로 현급으로 지급되는 급여는 최대치가 그보다 10에서 20만 원 가량 낮다. 2012년 최저임금은 시급 4,580원, 주 40시간 노동했을 때 월 957,220원이다. 2000년 이후 고용의 불안정성, 임금 격차 분배구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도입한 정책(비정규보호법)이나 기존의 제도들(최저임금, 최저생계비 등)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저지하는 방지책으로서의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문제의 경우, 비정규보호법안 시행 이후 기간제근로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기간제 계약을 호출근로, 시간제 근로로 전환하거나,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으로 대체하는 것이 추세인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자본은 비정규직보호법 등을 계기로 기존 기간제 비정규직을 간접고용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경우도 법정 최저임금이 미미하나마 꾸준히 상승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수는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 왔다. 고소득자와 중간소득자의 격차가 나날이 확대되는 것은 고소득자들로 부가 집중되면서 분배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임금 격차의 확대 뿐 아니라 비임금, 특히 주식투자, 각종 사보험 등 금융적 수단을 통한 확보되는 소득의 규모와 비중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또한 노동자 민중, 빈민들의 삶은 금융화된 세계경제와 긴밀히 결합되면서 더욱 불안정해진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뇌관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중산층 이하 빈곤인구마저도 금융투기에 활용한 ‘빈곤 비즈니스’의 대표적 사례다. 보다 많은 투자자와 몸집 큰 시장을 원하는 투기 자본의 술수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은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여하면서 금융자본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그 부담을 임금삭감, 복지축소, 민영화 확대를 통해 노동자와 민중에게 전가해 왔다. 이로 인해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빈곤율은 15%를 넘어 전후 사상 최대에 이르고 있다. 실물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장기적인 침체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기 때문에 민중들의 고통과 불만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은 경제위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화자찬하지만 한국경제의 화려함과 빛은 소수 재벌대기업과 부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삼성, 현대를 비롯한 재벌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은 2011년에만 20조에 달하는 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감세로 인한 직접적 혜택으로 기업과 소수 부자가 얻은 이익만 해도 수십조에 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노동자민중, 특히 빈민의 고통은 더 심화되고 있다. 물가폭등, 전세값 폭탄,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증가라는 이른바 ‘트리플 폭탄’이 민중의 삶 속에서 터지고 있다. 정치권이 퍼뜨리는 복지담론은 확산되지만, 노동자, 빈민을 위한 구체적인 복지대책은 개선되지 않고 현실의 고통도 덜어지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 규모가 1,000조원을 돌파하였다. 부양의무자 일제조사라는 명목으로 3만여 명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고, 14만 여 명의 수급혜택이 감소하였으며, 수급탈락을 비관한 수급자의 자살도 있었다. 강제이주 당한 포이동에서는 화재에 따른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기는 커녕 자발적으로 마련한 임시주택마저 철거하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뉴타운개발로 인해 고통 받는 주민의 죽음도 줄을 잇고 있다. 빈곤을 심화하는 도시 재개발의 광풍과 빈민 양산 정책 2000년 이후 도심광역개발방식의 ‘뉴타운’개발이 시작되면서, 다시금 도심내부의 광범위한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36년간 진행된 서울 개발면적의 2배) 지속된 부동산경기 침체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진행되던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들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러한 사업들도 조정기를 거쳐 변형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전세대란이라 할 만큼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동시다발로 급속하고 광범위한 개발, 세입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임대차구조 등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부동산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빚 내서 집 사라는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로 주춤한 건설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선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12월 남아있는 모든 투기의 빗장을 풀었다. 수차례 걸쳐 진행된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완화의 마지막 단계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완전히 폐지하였고 강남3구 투기과열지구까지 해제했으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조치를 실시하겠다고 해놓고선 이는 유예하였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개발 관련 부실금융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이들을 서민 혈세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정작 살고 있는 원주민을 내모는 개발사업은 그동안 주거환경 개선 등을 명분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엎어지고 어그러지는 개발사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들이 떠받쳐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각 개발지역에서의 공고한 동맹은 건설재벌-지방정부-투기세력-용역깡패의 공공연한 조합을 통해 유지되며 지역을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이는 비단 이들 ‘개발동맹의 공고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익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원주민 특히 세입자에게까지 부추겨 지역 자체를 투기개발의 바람에 종속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업비만 2조원 규모라 예상되었던 용산4구역 개발이 강행되었다. 철거민을 떼잡이로 매도하는 구청장 - 삼성, 대림, 포스코 등 굴지의 건설재벌 - 투기세력들이 좌지우지하는 재개발조합 - 용역깡패조직의 외피인 철거정비업체, 그리고 정권과 자본이 부르면 달려가는 경찰, 이들 개발동맹은 사업시행인가 2년 만에 철거행위를 몰아쳐 상가세입자를 망루에 오르게 했고 망루농성 단 하루 만에 무참히 이들을 살해하고 생존자들을 3년째 감옥에 가둬두고 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개발과정에 대한 정보는 평범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숱한 죽음을 낳았던 철거민들의 수십 년에 걸친 투쟁으로 주거세입자에 대한 보상은 어느 정도 마련이 되었으나, 이 역시 개발동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개발사업의 시기에 들어맞는 자격조건이 없으면 주어지지 않고, 왕십리뉴타운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 동시 보장이라는 세입자 권리는 수년에 걸친 철거민들의 투쟁 없이 평화롭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뉴타운 개발’이라는 광폭한 개발방식은 이명박 정부가 서울시장 시절 법적 근거도 없이 밀어부쳤던 사업이다. 일단 밀고 갈아엎은 후, 도심재정비촉진사업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되었지만 개발사업의 갈등을 사인(私人)간의 분쟁 정도로 여기게끔 하는 이 개발사업은 원주민 재정착률 10%대에 그치는 가난한 시민 몰아내기 사업의 전형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추진 중이다. 한편, 노점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민원, 가로정비, 도시 디자인, 재래시장 현대화 등 갖은 이유로 노점 단속이 자행되고 있으며,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노점관리대책은 노점상의 지위와 조건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노점관리대책은 노점합법화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실상, 노점상을 선별하여 퇴출시키고, 외진 곳에 노점상을 밀어 넣고 고사시키는 정책이다. 특히 서울 중구, 중랑구, 노원구, 강서구, 강북구, 송파 가락시장 및 경기 부천, 화성,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노점단속과 기만적인 노점관리대책 시행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노점상은 과태료 인상, 도로점용료 인상 등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노점상 조직은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한편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이후, 디자인파크플라자 건립이 추진됨에 따라 동대문 주변 노점상은 다시 한 번 싹쓸이의 위기에 놓여 있으며,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빌미로 가락시장의 영세상인과 노점상은 생존권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이명박-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해온 노점관리대책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노점상들은 생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했지만 이미 지자체에서 발주한 용역들은 서초, 강남, 종로 시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몰락한 자영업자들과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인한 집 값 상승으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많아졌다. 노숙인 규모는 정부 차원에서 정확히 파악조차 되지 않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작년에 들어서야 겨우 ‘노숙인지원법’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노숙과 불안정 주거상태를 오가는 홈리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설 위주의 정책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지만, 저임금 단기적 일자리로 안정적인 생계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공공역사를 전전하는 노숙인에 대한 지원대책보다는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등 청소 정책만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해 8월부터 철도공사는 서울역 노숙행위를 금지하며 역사 내 노숙인을 몰아냈다. 서울역 주변에는 300여명 안팎의 노숙인들이 있다. 서울역 등 공공역사는 최소한의 복지 접근권 및 일자리 접근 가능성, 가난한 이들의 최소한의 네트워크 형성에 용이한 공간이며, 오랜 세월 노숙인들이 머물러온 공간이다. 이들이 긴급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진료를 받거나 필요한 복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안내 및 상담, 지원 역할이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노숙인 관련 단체들의 오래된 요구였다. 그러나, 테러가능성 등을 명분으로 ‘노숙인처럼 생긴 사람’을 선별해 공적 공간에서 강제로 추방하고 있는 행태는 공공기관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숙인들은 낮에도 살벌하게 돌아다니는 특수경비용역과 철도공안을 피해 아예 역사 내 출입을 포기하고 있으며 엄동설한의 추위에 간신히 삶을 유지하고 있다. 2012년 반빈곤운동의 과제 1월 20일은 용산참사 당시 이상림, 양회성, 이성수, 한대성, 윤용헌 다섯 철거민 열사가 망루에서 죽임 당한지 3년째 되는 날이다. 다가오는 1월 19일 추모제가 열린다. 3월 26일은 중증장애인이자 여성이자 노점상이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옥란 열사의 10주기 기일이다. 최옥란 열사는 청계천에서 노점을 하다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었으나, 수급자가 되려면 일을 할 수도 없고, 의료급여와 임대아파트를 보장받으려면 수급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벌이며, 김대중 정부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을 온몸으로 폭로하였다. 빈곤사회연대는 바로 그 곳에서 출발했다. 올해 9월이면 청계천 노점 철거에 맞서 싸우다 분신한 박봉규 열사의 10주기가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복원한 청계천에는 수천에 달하는 노점상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다. 김영삼 정권 말기 광폭한 시기, 수지의 철거민 열사 신연숙, 전농동 박순덕 열사가 망루에서 사망하였고, 서초구청의 노점 단속에 분신으로 항거한 최정환 열사가 있었고, 인천 아암도에서 농성 중이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노태우 정권의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재식 열사 죽음 10여년이 지나, 노무현 정부는 임기가 두 달여 남은 즈음 폭력적인 노점 단속으로 인해 붕어빵 노점 이근재 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이들 빈민 열사들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이 자기 권리를 단 한 번도 주장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2012년 정치의 격랑기에 각종 이합집산이 횡행하고 있다. 범야권은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한나라당 심판으로 공동행보를 강화할 것으로 보이며, 진보대통합 흐름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통합으로 일단락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앞장서 가난한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며, 의료급여 개악에 앞장서고 사회서비스를 투자상품으로 둔갑시킨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와 손잡은 것이 진보대통합이라고 선전되는 상황이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자리에 오른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노무현의 반성처럼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 김대중의 이름을 걸고 보편적 복지를 실천”할 사람임을 자임했는데, 건설노동자가 파업한다고 머리를 깨부수는 등 숱한 노동자들을 살해한 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미 FTA 체결, 400만 명이 넘는 사각지대를 안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비정규직 3분의 2에 달하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분명히 보았고, 하중근 열사의 머리를 깨부순 곤봉에 본인 자신도 얻어맞았던 기억을 지운 모양이다. 소위 ‘정치한다’는 사람들의 정신분열적 언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5년간 민주노조와 가난한 이들이 갈망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한 흐름은 이렇게 사그라들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행보가 대중운동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심판하기 위한 선거전략과 투표방침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격랑기에 대중조직 스스로가 변덕스러운 물살을 쫓기만 하다간 스스로를 해치게 될 것이다. 물살을 유연하게 헤치고 나가되 지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반빈곤운동은 빈민조직들과 함께 기억하고 요구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의 긴급한 과제는 선거 공학에 경도된 진보정당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반대보다 대중의 요구를 조직하는 일일 것이다. 작년 한해 ‘희망’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졌다. 그 ‘희망’이라는 건 스스로의 권리를 나서서 외치는 주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해고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이 ‘희망’버스의 기적을 만들었고, 그 ‘희망’을 위해 엄동설한에 ‘희망’텐트를 치고 싸움을 이어가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그 ‘희망’이 찍 소리 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숱한 가난한 민중들도 품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빈곤사회연대는 빈민대중조직, 사회운동단체 등이 참여하는 연대체로서 대중운동이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의 권리를 발언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 속도만큼이나, 빈민대중운동의 토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보다 세련된 도시미화 명분이 내걸어지면서 시민들과의 갈등도 쟁점화될 것이다. 노점상 운동의 경우, 대중동원투쟁 이상의 자기계획이 필요하다. 분화/갈등 상태에 놓여 있는 노점상 조직이 상호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최소한의 공동행보를 취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도시빈민운동의 핵심 대중운동으로서 반빈곤운동 의제에 대한 보다 다각적인 접근과 실천계획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지난 해 김밥노점 단속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서울 남부지역 노동자들의 결합, 서울 북부지역 노점상의 지역연대 운동 참여 및 송파, 서부지역, 대구/경산 등의 활발한 지역연대운동 참여와 같은 각 지역 회원들의 직접적인 연대운동 경험들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철거민 운동의 경우 개발 초기 단계부터 대응할 수 있는 상시적인 주거권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등으로부터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상적 운동의 주체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도심광역개발 방식은 대규모의 상가세입자철거민을 양산하는데, 상가세입자에 대한 제도적 권리보장이 대단히 미미하지만 주거 문제와 같이 동일한 이해관계 하에서의 대중운동이 쉽지만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까페 마리를 중심으로 한 명동 세입자들의 싸움은 연대세력들의 노력과 지리적 특성 탓에 널리 알려지며 하나의 공동체와 같은 기능을 했고 공동의 성과를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싸움 이후 뿔뿔이 흩어지고 그 공동체는 해체된다는 취약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단계가 늦은 명동 2,4구역 세입자들은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대응 중이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철거민 조직들이 빈민운동으로서의 지속성을 갖고자 한다면 장기적인 운동계획의 실마리를 찾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공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2-30년 전 철거민 투쟁의 한 축은 임대주택 공동 입주와 투쟁 이후에 이어지는 주민운동의 여러 실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주거세입자를 위한 보상대책은 일정하게 제도화되었으므로, 철거민운동으로 조직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철거민 운동이 개발에 대응하는 지역운동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운동전략에 대한 논의와 모색이 시급하다. 현재 빈민운동이 빈곤에 대항하는 대중운동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빈민주체의 조직이 필요하다. 거리 노숙뿐만 아니라 쪽방, 고시원 등 불안정 주거계층의 주거문제, 소득보장 등 복지문제, 일자리 문제에 포괄적으로 대응하는 홈리스대중운동이 본궤도에 오르려 하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연대가 요구된다. 한편, 복지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검토되어야 한다.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의 평등과 삶의 개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전제는 부가 일부에 집중되고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현존하는 ‘복지제도’의 확대, 강화만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소득 재분배 및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권)하기 위한 방향성을 띄는 것이 복지라면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권리 보장이라는 관점에 입각해야 한다.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는 선별이냐 보편이냐의 쟁점은 그런 점에서 허구적이다. 한국사회의 복지는 그 절대적인 질과 양이 열악하므로 무조건적으로 증대되어야 한다. ‘무상’이라는 쟁점은 ‘권리’라는 개념으로 옮겨가야 한다.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고 건강할 권리, 생활 유지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권리,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안정한 집에 살 권리, 일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고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해치지 않으며 건강하게 일하며 노동을 통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권리 등, 권리의 목록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 중 불평등한 조건에 처한 이들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인, 아동, 장애인 및 빈곤층에 대한 복지가 필요한데, 이는 근본적으로 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종합적 권리 실현에 방향성을 기초해야 할 것이다.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이 주창하는 소위 ‘예방적 복지’란 저소득 가구 아이들에게 아동발달지원계좌를 통해 일시적인 지원금을 쥐어주겠다는 방식인데, 진정한 의미의 예방적 복지란 이들의 권리가 제반 사회 분야에서 실현될 수 있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가난한 이들에게마저 복지지원은 인색하다. 절대빈곤인구 600만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50만 명에 불과하며 부양의무자 기준, 소득 기준 엄격 적용 및 근로소득자 걸러내기 행태가 이어져 수급자들은 더욱 깊은 좌절과 불안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민중의 삶의 불안과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세계 각지에서의 저항운동을 낳고 있다. 빈곤에 맞선 우리의 투쟁은 그 저항과 만나야 할 것이다. 2012년이라는 격랑기에서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폐해로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잊혀져간 이름들을 불러내야 한다. 지금도 숨죽인 채 죽어나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그 어떤 정치메시아의 목소리보다도 크게 터져나올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이 대중적 힘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