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없는 세상과는 반대로 가는 길 오는 3월 26-27일,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핵안보 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0년 4월 워싱턴에서 처음 열렸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약 40개국 정상들과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 국격을 높일 기회라며 선전에 선전을 반복했던 G20 보다도 훨씬 많은 국가 정상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실로, 단군 이래 최대 정상회의라 할만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으로 ‘핵테러’를 꼽았다. ‘핵안보’란 한마디로 ‘핵 테러로부터의 안전’을 의미한다. 물론 핵테러를 예방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핵의 위험성을 검토함에 있어 ‘핵테러’는 전혀 핵심이 아니다. 핵테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지만, 핵무기는 1945년 일본에 실제 투하되었다. 또한 핵발전소 사고는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에서 차례로 일어나 인류에게 핵재앙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렸다. 핵은 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 핵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려면 핵을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핵무기 감축과 핵발전소 가동중단이다. 하지만 핵안보정상회의는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핵무기 감축 논의는 없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핵으로부터의 안전을 이야기할 때 기존에는 핵군축과 비확산이 주된 의제였다. 핵군축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핵무기를 줄여나가는 것을, 비확산은 더 이상 핵무기를 보유하는 국가가 늘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지금까지 핵물질이나 핵무기, 핵기술의 통제는 주로 비확산 체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비확산 체제는 핵비확산조약(NPT)으로 대표되는데, NPT는 5개 핵무기 보유국(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외의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방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조약 하에서 비핵보유국은 자체 핵개발을 할 수 없고, 핵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의무적으로 받아야한다. 하지만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군축 노력은 미미한 상황에서, 안보위협을 느끼는 나라들은 ‘핵의 평화적 이용’을 근거로 핵발전을 확대하고,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북한은 NPT를 탈퇴하고 핵실험을 지속하고 있고, 애초 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NPT가 인정하진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다. 핵무기는 2011년 현재 최대 20,500기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바마는 2010년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발표하여 러시아와 전략무기 감축을 약속하고 미국의 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NPR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장거리 폭격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등 ‘3원 전략 핵전력’은 유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핵무기는 전혀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바마는 핵무기 생산 인프라 현대화에 20억 달러의 예산을 증액했고, 새로운 크루즈 핵 미사일 개발에 8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홈페이지는 핵안보정상회의가 “핵안보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핵군축 및 비확산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핵무기를 줄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핵무기 감축을 논의조차 하지 않는 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핵 테러 방지를 위해 호전적 군사행동 허용 NPT보다 강력하게 핵무기와 핵물질을 통제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다. 이 협약은 해상이나 상공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싣고 있다고 의심되는 선박과 항공기를 세워서 검색, 나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때 군사력 사용을 하게 된다. 국제법에는 공해상에서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는 권리와, 다른 나라의 영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해를 끼치거나 해적질을 하지 않은 선박은 자유롭게 통항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PSI는 의심만으로 배를 세우거나 승선하고 나포할 수 있으며, 무력까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PSI에 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옵서버 자격을 유지했는데,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차관 시절인 2006년 말 국회에 출석해, “한반도 주변에서 PSI가 시행될 경우 북한과의 충돌이 우려되는 등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낳을 것” 이라며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정부도 인정했듯이 PSI같은 호전적인 정책은 군사적 긴장을 높여 평화를 위협한다. PSI자체가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제로 선정되어 있거나, 핵안보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담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핵안보정상회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PSI의 제도화를 추구하고 있다. 워싱턴 회의에서 발표한 작업계획 문서를 보면, ‘비국가행위자의 대량살상무기, 그 운반체 및 특히 핵물질과 연관된 관련 물질 취득 방지에 대한 안보리결의 1540호의 전면적인 이행 필요성에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안보리결의 1540호는 UN의 모든 회원국이 비확산과 수출통제 입법과 집행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아무런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PSI를 제도화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안보리결의안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핵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핵 테러 없는 세상’을 위해 세계 각국의 협조와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PSI로 대표되는 적극적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수용과 확산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호전적인 반확산 정책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편입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핵발전 정책을 확대하려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후쿠시마 사고는 우리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동안 핵 산업계와 정부가 주장하던 핵발전소 안전 신화는 냉각장치 고장이라는 단순한 사고로 산산조각이 났다. 사고의 피해는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여러 대에 걸쳐 지속될 것이다. 핵발전소는 한번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을 뿐 아니라, 핵무기로도 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인도와 이스라엘은 산업용 핵발전 기술을 전용해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가장 기본적인 핵무기 또는 핵폭발 장치는 25kg정도의 고농축우라늄(HEU)이나 8kg정도의 플루토늄이 있으면 만들 수 있는데, 현재 세계에는 약 1,600톤의 고농축 우라늄과 약 500톤의 플루토늄이 있다. 이는 약 126,5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데, 이러한 핵물질은 핵발전으로 인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전세계에서 탈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들은 탈핵을 선언하며 핵발전소 가동을 차례로 중단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사고 전 54개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었지만, 안전점검을 위해 차례로 가동이 중단되어 2012년 2월 현재 3기만이 운전 중이며 5월에는 모든 핵발전소가 멈춘다. 일본의 반핵운동진영에서는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기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는 ‘원자력 및 원전산업에 대한 국내외적 신뢰 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위축된 원자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원자력 시장의 지속적이고 안전한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와 같은 큰 사고는 아니어도, 핵발전소 사고는 국내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도 부산에 있는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에서 전원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 9일 12분간 전원이 끊겼는데도 비상발전기도 작동하지 않았고, 책임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3월 13일에 밝혀졌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후쿠시마 사고로 핵발전을 축소하는 것은 인류 역사의 퇴보’라며 핵발전 확대 의지를 분명히 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를 핵발전확대와 핵발전소 수출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우리는 원한다,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을! 핵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핵 테러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세계에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후쿠시마 사고에서 알 수 있듯 핵발전소 자체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핵 없는 세상’은 정말로 ‘핵이 없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테러 방지’를 주장하며 핵무기 보유국들의 패권을 유지하고 북한 같은 나라를 위협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여 인류의 평화적 생존을 위협할 뿐이다. 또한 ‘핵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하다는 거짓 선전으로 핵발전을 다시금 확대하고자 한다. 핵안보는 부족하지만 핵없는 세상으로 가는 중간 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지 않고, 핵무기 개발을 위해 핵실험을 하지 않고, 핵보유국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하루빨리 폐기하는 것이 핵무기와 핵 테러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로 핵발전의 위험이 전 세계에 폭로된 지금, 핵발전을 축소하고 탈핵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세계평화를 바라는 민중들은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핵안보’가 아니라 핵무기도 핵발전도 없는 진짜 ‘핵 없는 세상’을 원한다. 오는 3월 25일 핵안보정상회의 규탄대회에서 함께 외치자. 우리는 원한다,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하고, 구속자를 즉각 석방하라! 지난 3월 7일부터 정부와 해군에 의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발파가 강행되고 있다. 발파에 반대하며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강정 주민, 활동가, 종교인들은 연이어 연행되었다. 한술 더 떠 발파를 막고자 공사장에 들어간 이정훈 목사와 김정욱 신부를 구속했다. 구럼비 발파를 전후로 제주도가 생명과 평화의 섬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자, 더 커질 반대 여론을 조기에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정부와 해군이 이처럼 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오로지 한미동맹에 있다. 정부는 한미 FTA, 키리졸브 훈련 등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해왔다. 제주 해군기지 역시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합동 해양전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동아시아에서의 군사력 경쟁을 가속화하고 해양의 군사화를 촉진함으로써,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다. 연행과 구속으로 평화를 향한 민중의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다. 부당한 구속수사와 무리한 공사강행은 더 많은 분노를 이끌어낼 것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투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우리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저지 투쟁을 더욱 힘차게 전개해나갈 것이며,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발파 작업 즉각 중단하라! 제주해군기지 건설 계획 폐기하라! 구속자를 즉각 석방하라! 2012. 3. 12 사회진보연대
[기자회견문]핵안보정상회의를 빌미로 한 홈리스 탄압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문 국제행사시 마다 빈곤을 은폐하고, 빈민을 탄압했던 망령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3월 26~27일, 양일간 개최되는 ‘핵안보 정상회의'를 위해 노숙인들을 사전차단하겠다는 민생치안대책을 내놓았다. “‘묻지마식’ 우발범죄 예방”을 위해 노숙자풍을 사전하겠다는 것이다. “핵테러 없는 세상”이라는 겉 포장에 숨어, 핵발전과 핵 패권 유지를 위한 회의를 위해 무고한 거리홈리스를 탄압하겠다는, 겉으로는 범죄 차단을 운운하나 실상은 자국의 빈곤을 가리고 싶은 이명박 정부의 천박함의 발로라 할 것이다. 이미 지난 1월부터 강남구청은 핵안보 정상회의를 위해 거리의 ‘지저분한 모습’을 감추고자 강남대로의 노점상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분을 설치하려 하고 있다. 마치 국제행사가 노점상을 철거하기 위한 호재라도 되는 양 이번 기회를 통해 강남대로 노점상들을 아예 싹쓸이 철거해 버릴 계획인 것이다. 60명이 넘는 노점상들의 생존권은 ‘거리의 미관’이라는 고상할 권리에 짓밟히고, 외국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이명박 정부의 결벽증에 벼랑으로 내 몰리는 것이다. 국제행사를 빌미로 한 거리 홈리스에 대한 탄압은 이미 공식이 된 지 오래다. 월드컵이 있던 2002년에는 서울시에서 거리 홈리스들을 수 십 명씩 팀을 짜 지방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으로 집단 연수를 보내려다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때는 거리 홈리스들이 살림살이를 보관하곤 했던 공공역사의 물품보관함을 사전 통보조차 없이 폐쇄해 무더기 도난사태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회담 장소였던 부산에서는 노숙인 ‘시설수용기간’을 지정하고 합동 계도반, 임시 수용시설을 만들어 본격적인 빈곤 가리기를 실시한 바 있다. 2010년 G20 개최때에는 종전에 없던 임시주거지원사업을 실시해 거리홈리스들을 한시적으로 가리고, 동시에 주요 노숙지역을 통한 상습적인 불심검문으로 거리홈리스들의 기본적 인권과 통행의 자유마저 구속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이 나라 정부는 가난한 민중들을 외국 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숨겨야 하는 치부로만, 골칫거리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가 묻지마 범죄자라는, 홈리스는 언제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가정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테러범죄자들은 ‘노숙자 풍’으로 입고 다닐 것이라는 단정은 또한 무슨 근거인가? 근래 강남 모 서점에서 발생한 폭행사건과 같이 일부 홈리스에게서 발생한 형사법적 위반행위들을 홈리스인구집단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조작 외 어떤 근거가 있단 말인가? 이런 일반화의 오류라면 하늘아래 그 누가 죄인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찰의 단정과는 달리 이 땅의 홈리스들은 한 평의 거처하나 지키지 못할 만큼 극단적 빈곤에 처한 이들에 불과하다. 소소한 경범죄에 휘말릴지언정 오히려 명의도용, 폭력 피해와 같은 치안의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일 뿐이다. 경찰은 오로지 홈리스에 대한 낙인에 근거한 강남일대 노숙자풍 사전 차단 대책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다. 핵발전과 핵 패권 유지를 위한 부정한 국제회의를 위해 무고한 홈리스들이 잡도리 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경찰은 신속히 깨닫기 바란다. 2012. 3. 8. ‘핵안보정상회의를 빌미로 한 홈리스 탄압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기자회견문]핵안보정상회의를 빌미로 한 홈리스 탄압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문
2012. 3. 8. ‘핵안보정상회의를 빌미로 한 홈리스 탄압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제주해군기지건설 강행 중단, 평화적 해결 촉구 비상시국회의 결의문 구럼비를 살리자! 강정마을로 달려가 생명평화의 섬 제주를 지켜내자!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부실과 문제점, 그리고 심각한 인권탄압과 사회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끝내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 방침 재천명했다. 총리실과 경찰은 공권력을 앞세워 기어이 구럼비 발파를 강행하고 이에 항의하는 정당한 외침을 물리력으로 억누르려 하고 있다. 심지어 제주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그리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제주도당위원장이 공사보류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이에 대한 어떤 대화도 거절하고 경찰력을 앞세워 천혜의 구럼비 바위에 탄약을 장전하여 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강력히 촉구한다.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즉각 중단하고 주민과 대화하라!, 주민들의 정당하고 절박한 외침을 억누르고 탄압하는데 국민이 부여한 공권력을 남용하지 마라!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해군이 지난 2007년, 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제주도 강정마을을 해군기지신축부지로 일방적으로 선정한 이래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극한에 이르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는 그 시작부터 주민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변칙적이고 편법적인 의사결정, 환경파괴에 대한 적절한 조사와 대책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해상수송로 보호하는 명분아래 한국해군이 미 해군과 함께 중국에 대항하여 해양군사동맹을 강화하고 그 전초기지로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려한다는 정당한 우려와 경고들이 계속되어 왔다. 이에 따라 2011년 8월 4일 야5당 진상조사위원회가 공사잠정중단과 재검토를 요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7대 종단이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0일 각계인사 375명은 바로 이 장소에서 생명평화의 섬 제주도와 강정마을은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제주도민들에게 공약한 경제적 효과 역시 완전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 역시 확인되어 왔다. 2012년 2월 14일 총리실은 ‘민ㆍ군 복합형 관광미항 기술검증위원회’ 최종보고서를 발표하여 “현재 공사 중인 제주 해군기지 공사 실시설계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15만톤급 크루즈 여객선이 정박할 수 있는 민군복합형 시설을 짓겠다던 당초의 공약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해군기지에 15만톤급 크루즈항도 함께 만들겠다는 거짓 공약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제주도민들에게 발표했던 것으로, 제주도민들의 압도적 다수는 군항 위주의 항만 건설에는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항구는 그 입지와 설계에서 군항으로서도 제구실을 못할 것이라는 분석 또한 제기되었다. 이 검증보고서는 지난 연말 국회가 같은 이유로 2012년 해군기지 건설예산의 95%가 삭감하면서 정부의 추가검증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제주도와 국방부, 총리실이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검증보고서로 인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실시설계와 경제적 타당성 분석, 환경영향 평가 등이 전반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제주도민들에게 약속했던 지역개발 공약마저도 완벽한 허구임이 밝혀진 것이다. 해군기지 공사강행, 구럼비 발파강행에는 아무런 명분도 논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나 해명도 없이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천명하고 말았다. 총리실 역시 이 대통령이 천명한 공사강행을 지원하기 위해 경찰청, 해경 등이 참여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가진데 이어, 23일 국방부가 제출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기지건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2월 29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개최해 2015년까지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급기야 지난 3월 2일 시공사가 서귀포경찰서장에게 발파 허가를 요청하자 경찰은 제주도지사 등의 보류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즉각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3월 7일) 살아있는 생명의 바위 구럼비를 파괴하려는 발파작업이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경찰의 호위 속에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준계엄상태의 강정마을에서 인권과 평화적 생존권은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지난 2년 2개월간 강정마을에서 300여명이 연행되었고, 그 중 109명이 2012년에 연행되었다. 2월 들어서만 70명가량의 주민과 활동가, 해외인사가 불법적으로 체포되었다. 과태료 처분에 불과한 행위에 대해서조차 경찰은 집시법 위반, 공유수면관리법 위반, 재물손괴, 공무집행방해 등 다양한 구실을 붙여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주장과 요구를 완전히 사전에 봉쇄하려는 이같은 공권력 남용은 민주국가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주민들에게 예산이 삭감된 공사가 왜 강행되는 지, 군사적 경제적 환경적 문제가 총제적으로 입증된 사업이 무슨 논리로 강행되고 있는지 어떤 설명도 제공되지 않았다. 단지, 중무장한 육지경찰들이 주민 모두를 법법자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현실은 강정주민들과 제주도민들에게 제2의 4.3을 연상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명분없는 공사강행을 즉각 중단하라! 이명박 정부는 구럼비 발파 작업을 즉각 중단하고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모든 갈등과 인권침해에 대해 강정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주민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여야 정당, 특히 허구적인 공약에 책임있는 새누리당과 이 공사의 원인을 제공한 민주통합당은 구럼비 발파를 막고 공사를 중단하기 위해 책임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또한 이미 드러난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군사적 문제점에 대한 전면적인 검증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정주민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공권력 남용과 불법적 탄압으로부터 주민의 인권과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제주도지사는 고유의 권한을 즉각 발동하여 공유수면매립 공사 중단을 명령하고, 나아가 첫 단추부터 잘못된 이 공사의 면허 승인을 취소해야 한다. 각계각층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지금 강정마을로 달려가자! 주민들의 외롭고 간절한 투쟁에 온 마음 온 몸으로 연대하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원천 구럼비를 살리자!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중단시키고 생명평화의 섬 제주를 온전히 지켜내자! 2012년 3월 7일 제주해군기지건설 강행 중단, 평화적 해결 촉구 비상시국회의 참가자 일동 시국회의 주요인사 63명과 용산참사 유가족 등 총 1597명
제주해군기지건설 강행 중단, 평화적 해결 촉구 비상시국회의 결의문 구럼비를 살리자! 강정마을로 달려가 생명평화의 섬 제주를 지켜내자!
2012년 3월 7일 제주해군기지건설 강행 중단, 평화적 해결 촉구 비상시국회의 참가자 일동 시국회의 주요인사 63명과 용산참사 유가족 등 총 1597명
핵안보의 함의, 의도, 쟁점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0년 4월 12-13일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2009년 4월 5일 체코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상’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는데, 이 자리에서 ‘핵 테러’ 문제를 함께 언급했다. 그는 핵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 “향후 4년 내에 전 세계의 관리가 취약한 모든 핵물질을 안전하게 방호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노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상에 따라 제안된 핵안보정상회의는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탈취해 테러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의 관리를 철저히 하고, 핵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국제적인 공조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핵안보는 ‘핵 테러에 대한 방지와 대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010년 워싱턴 회의에는 세계 47개국 정상들과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정상회의다. 물론 핵 테러 대응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일반적인 군사 협의체와는 다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간 지속된 테러와의 전쟁을 돌이켜보자. 그것은 미국의 전쟁이었고,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UN차원의 결의를 통해서건, 아니면 개별 동맹국 차원의 지원에 의해서건 다른 나라들이 동원되는 형태였다. 다시 말해 테러와 싸우는 핵심 주체는 미국이었고, 다른 나라들이 일정하게 이를 도와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구도를 바꾸고 있다. ‘핵 테러’라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50개 이상의 국가와 국제기구 대표들이 일정한 틀을 갖춘 논의를 진행하고, 핵 테러의 방지대응을 위해 필요한 자국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며, 국제 공조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단지 자국의 핵시설과 핵물질의 관리 수준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핵 테러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체계 마련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그리고 테러에 대응하는 이러한 활동은 다분히 군사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가장 큰 정상회의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의 반핵평화운동 진영, 더구나 제안국인 미국의 운동 진영조차 이러한 정상회의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거나,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핵안보정상회의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활동을 조직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그 이유를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핵안보정상회의가 불과 2년 전에 시작되어 아직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아 그 존재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둘째, 핵 테러에 대응하는 핵안보라는 이슈가 국제사회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셋째,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해 알고 있는 운동 진영의 대부분은 핵안보정상회의가 부족하나마 일정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첫 번째의 경우,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을 조직하고 향후 핵안보라는 쟁점에 개입하려는 운동의 입장에서 넘어서야할 조건이기에 이 글에서 논의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경우는 ‘핵 테러의 예방과 대응’이라는 쟁점이 핵 이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하지만 핵안보가 현재 미국의 핵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향후 충분히 확대될 것임을 예상하면서 지금부터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 번째, 즉 반핵평화운동 진영이 핵안보정상회의를 일정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 내부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부분이며, 핵안보정상회의 대항 국제포럼을 조직하면서 해외의 다른 운동 조직들이 제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핵안보정상회의의 긍정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핵안보정상회의가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핵 없는 세상’이라는 전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핵물질의 관리 수준을 높이고, 핵 테러를 예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논의하는 고농축우라늄 사용 저감과 같은 의제는 일정하게 핵무기를 감축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핵안보 이슈를 반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운동진영이 보이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격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혼란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주장하는 핵안보는 ‘핵 없는 세상’에 미달하지만 긍정적인 조치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핵 없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주장하는 핵안보라는 이슈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핵 이슈에 대한 세계적인 국제체제인 ‘핵 비확산 조약’(NPT)의 의미와 한계를 분석함으로써 핵안보 이슈가 제기되는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미국의 핵정책과 비교한다. NPT와 핵 비확산 애초 핵물질이나 핵무기, 핵기술의 통제는 비확산 체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비확산이란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것으로 1970년 5월에 출범한 ‘핵 비확산 조약’(NPT)으로 대표된다. 비확산 체제의 출발 1945년 미국이 일본에 핵무기를 떨어뜨리고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들게 된다. 세상에 처음으로 핵무기가 등장한지 불과 4년 뒤인 1949년에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고, 1952년에는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핵무기 보유국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날 것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53년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구호를 제시하게 된다. 이는 다른 나라에 핵발전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이를 감시하여 핵무기 제조를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라는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해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핵보유국의 의도를 국제적으로 보증하는 것이 바로 NPT다. 비확산 체제는 NPT가 인정하고 있는 5개 핵무기 보유국(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이외의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다. 다른 나라들이 새롭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비확산)하는 대신에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무기를 감축하는 약속(핵군축)을 이행하고, 다른 나라들이 핵발전을 할 수 있는 권리(핵의 평화적 이용)를 보장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비확산, 핵군축,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3개의 축이 핵 통제의 핵심이다. NPT 체제의 구조적 한계 그러나 이러한 비확산 체제로는 핵무기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핵보유국들의 핵 경쟁은 지속되었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한국 등의 핵보유 시도는 계속되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애초 NPT 체제에 들어오지 않은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인도는 산업용 핵발전 기술을 이용해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발전 기술이 충분히 핵무기 기술로 전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보 위협을 느끼는 여러 나라들이 핵발전 기술을 확보해 연구하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핵무기 개발 경쟁에 계속 뛰어들게 된다. NPT 체제는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통제하지만,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핵무기를 수적질적으로 개량(핵무기의 수직적 확산)하는 것에는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불평등 조약이다. 때문에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비확산 의무는 강조되지만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군축 약속은 성실히 이행되지 않았고,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불만은 높아져 왔다. 2005년 열린 7차 NPT 평가회의에서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불만이 극적으로 터져 나왔다. 비보유국들은 지난 NPT 평가회의에서 마련된 핵 군축 약속을 핵 보유 국가들이 이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면서 2000년 평가회의에서 제출된 13단계 핵군축 프로그램의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마저 거부했다. 결국 회의 개막 후 의제 설정도 못한 채 10여일을 허비하다 핵군축,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3개 의제에 대한 분야별 합의를 시도했으나 참여국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협상을 포기하게 되었다. 또한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의 약속 역시 정치적 선언에 불과했다. 미국은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으며, 소위 ‘악의 축’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협박을 공공연히 해댔다. 따라서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군축 노력은 미미한 상황에서, 안보 위협을 느끼는 나라들이 핵의 평화적 이용의 권리를 들어서 자신들의 핵발전 확대를 정당화하고,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제적인 핵 비확산 체제의 3가지 축이 모두 흔들리게 된다. 2005년 7차 NPT 평가회의가 끝나고 ‘NPT 무용론’이 제기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비확산 체제의 이완 이렇게 비확산 체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비공식적 핵보유국의 등장은 NPT 내부에 있는 나라들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군축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만 막고 있기 때문이다. 비확산 체제가 핵무기 보유국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틀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처럼 NPT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해서 핵무기 개발에 성공만 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확산을 보다 확실하게 차단하지 않으면 비확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독점적인 패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핵물질과 핵기술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주장하는 핵안보의 개념은 이러한 비확산 체제의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확산 체제를 강력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를 막을 수 있고,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적인 패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핵안보라는 개념을 통해서 더욱 강력한 통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핵안보와 미국의 핵정책 핵안보 이슈의 부상 핵안보가 미국의 핵전략, 군사 정책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오바마 정부가 새로운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발표하면서부터다. NPR은 발간시점에서 향후 5-10년간 유지되는 미국의 핵정책과 전략, 목표와 전력태세를 제시하는 문서다. 2010년 4월 6일 『2010 NPR』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서 미국의 ‘핵심 계획’으로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 등장하게 된다. NPR은 이 핵심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에너지부의 비확산 프로그램 예산을 27억 달러까지 증액하며, 핵 물질 밀수의 탐지차단 능력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거나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거나 허용하는 행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핵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정책을 유지하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축소될 수 있으니 ‘3원 전략 핵전력’(전략 폭격기,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망(MD),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유지해 전략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무너져가는 비확산 체제의 복구 ‘핵 선제공격’ 옵션의 유지나, 강력한 차단 조치, 핵 억지력 강화, 미사일 방어망 유지 등을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로 볼 수는 없다. 이는 비확산 체제의 이탈 세력(북한, 이란 등)을 압박하여 무너져가는 비확산 체제를 다시 복구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핵무기의 확산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이탈 세력은 강력하게 응징하여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핵발전이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여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측면도 있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나라들이 핵발전 기술을 전용해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핵의 평화적 이용은 수사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나라들이 핵무기를 가지려해서 핵무기 개발 경쟁이 발생하니 핵의 이용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져 왔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는 핵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핵안보와 반확산 정책 반확산 정책 기존의 비확산 정책보다 강력하게 핵무기와 핵물질을 통제하는 것이 ‘반확산 정책’이다. 이러한 반확산 정책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이 바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다. 이는 해상이나 상공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싣고 있다고 의심되는 선박과 항공기를 세워서 검색, 나포할 수 있는 협약이다. 이때 당연히도 군사력 사용이 동반된다. 국제법에는 공해상에서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는 권리(UN 해양법협약 87조 자유항행원칙)와, 다른 나라의 영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해를 끼치거나 해적질을 하지 않은 선박은 자유롭게 통항할 수 있는 권리(동 협약 17/19/23조 무해통항권)가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PSI는 의심만으로 배를 세우거나 승선하고 나포할 수 있으며, 무력까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PSI에 정식 참여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옵서버 자격을 유지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교부 제1차관 시절인 2006년 말 국회에 출석해 “한반도 주변에서 PSI가 시행될 경우 북한과의 충돌이 우려되는 등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나을 것”이라며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정부가 인정했듯 PSI 같은 호전적인 정책은 군사적 긴장을 높여 평화를 위협할 뿐이다. 핵안보정상회의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물론 PSI 자체가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제로 선정되어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PSI가 핵안보정상회의와 무관하다거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PSI의 제도화를 추구한다. 워싱턴 정상회의 직후 정상성명과 함께 발표된 작업계획 문서를 보면, ‘비국가행위자의 대량살상무기, 그 운반체 및 특히 핵물질과 연관된 관련 물질 취득 방지에 대한 UN안보리 결의안 1540호의 전면적인 이행 필요성에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결의안 1540호에 따라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동 결의안의 전면적인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적 지원, 협조 제공 등을 촉구하고 있다. 결의안 1540호는, 2003년 9월 UN 총회에서 미국이 제의한 ‘대량살상무기가 테러집단에 의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수출 통제체제 강화’ 요청에 따라 2004년 4월 28일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이다. 동 결의안은 모든 회원국이 비확산과 수출통제 입법과 집행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결의안 1540호는 아무런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PSI를 제도화할 수 있는 법적인 뒷받침을 해준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핵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핵 테러 없는 세상’을 위해 세계 각국의 협조와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PSI로 대표되는 적극적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수용과 확산을 의미한다. 핵 확산의 진정한 이유 핵무기나 핵물질의 확산을 막지 못하는 것은 PSI와 같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확산 방지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아직도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고, 핵발전을 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최대 20,500기의 핵탄두가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핵무기 때문에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핵무기를 확보하려 애를 쓰고 있다. 1971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파키스탄은 ‘온 국민이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해 이를 실현시켰다. 이처럼 현실에서 드러나는 절대적 전력 차이는 수많은 국가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멸의 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드는 유인 요인이 된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고 있는 학살과 이에 대항한 테러, 그리고 이어지는 보복 공격과 또 다른 테러라는 죽음의 사슬처럼, 절멸의 공포가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평화가 아니다. 강력한 차단 조치, 군사력 사용을 동반한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확산은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죽음을 향한 경쟁을 보다 가속시킬 뿐이다. 핵무기와 핵물질의 확산을 막으려면 지금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핵군축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여 핵무기 공격의 위협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적대 정책의 폐기, 일방적 군축이라는 방식으로 상호 안보 위협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의 위험성이 낱낱이 밝혀져 세계적으로 탈핵의 흐름이 일고 있는 지금, 핵발전의 비중을 시급히 줄여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 핵안보와 핵발전 확대 핵안보가 감추고 있는 것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얼마 전 신규 핵발전소 건설 부지로 선정된 강원도의 경우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는 핵발전소 유치 여론이 압도적이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반대 여론이 높아져 427 재보궐 선거에 나온 여야 후보 모두가 핵발전소 건설 반대의 입장을 밝혀야만 했을 정도로 후쿠시마 사고는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의 문제점을 깨닫는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핵발전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과 두려움이 커졌고, 이러한 상황은 핵발전을 유지확대하려는 핵 산업계와 정부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테러를 언급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핵발전소를 탈취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을 상정한다.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테러에 의해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핵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핵발전소의 안전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미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테러에 의한 핵발전소 파괴에 대한 두려움’으로 환원하고, 그 두려움을 오히려 핵발전소 안전 강화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즉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저들이 취하는 결론은 핵발전 축소, 핵 폐기가 아니라 핵발전소 안전 강화인 셈이다.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가 다 무너진 상황임은 숨긴 채 테러 위협만 막아내면 핵발전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며, 이는 결국 핵발전 유지·확대의 근거가 된다. 실제 한국 정부가 발행한 ‘20문 20답으로 알아보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라는 자료를 보면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에 대한 논의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위축된 원자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원자력 시장의 지속적이고 안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핵발전에 대한 신뢰를 높여 핵발전 확대, 수출 확대를 꾀하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 핵발전 확대를 위한 노림수 이는 핵안보정상회의와 연계하여 개최되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Nuclear Industry Summit, 핵 산업계 회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보다 3일 앞선 3월 23-24일에 열리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은 세계 핵산업계의 최고 경영자들과 핵 관련 국제기구 대표 등 약 200여 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다. ‘핵안보 및 원자력 안전 증진을 위한 원자력 산업계의 역할’이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의 주요 논의 과제다.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은 핵 산업계 인사들로 구성된 워킹 그룹을 통해 핵 산업계의 공동 현안을 논의하여 정상회의에 건의하겠다고 한다. 이들이 밝힌 워킹 그룹은 고농축우라늄 사용 저감, 원자력분야 민감 정보 보안, 후쿠시마 이후 안보와 안전의 연계라는 3가지 분야다. 또한 한국의 핵산업 시찰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한국 핵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한다. 고농축우라늄의 사용을 제한하고 줄여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고농축우라늄 기술은 그 자체가 핵무기 제조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 기술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핵무기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산업용 핵발전에서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줄이더라도 현존하는 고농축우라늄 핵무기나 플로토늄 핵무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물론 핵발전에서 고농축우라늄의 비중을 줄이면 향후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이 역시도 기존 핵무기 보유국들이 더 이상 핵무기의 확산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핵산업계 스스로도 고농축우라늄 발전을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하게 될 경우 비용과 핵폐기물이 증가하게 되는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로, 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후쿠시마 이후 안보와 안전의 연계라는 워킹 그룹은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후쿠시마 사고로 핵발전의 안전 신화가 무너진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마치 핵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핵발전소 안전을 강화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핵발전 유지확대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노림수다. 결국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의 주된 목적은 핵 산업계의 수장들이 모여 핵발전을 확대하는 근거를 만들고, 핵발전소 세일즈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겠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전 세계적으로 탈핵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핵산업계가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가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에서 한국의 핵산업 시찰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한국 핵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것은 핵발전소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이 회의를 통해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결국 ‘핵 없는 세상’이라는 애초의 기조는 오간데 없고 핵발전을 자랑하고 핵발전소 수출 경쟁을 벌여, 없애야 할 핵발전 기술을 사고파는 죽음의 장사판을 키우게 될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 반대 행동을 적극 조직하자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홈페이지는 핵안보정상회의가 ‘핵안보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핵군축 및 비확산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핵무기를 줄이거나, 핵발전 자체를 줄이는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핵무기 감축이나, 핵발전 축소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 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미국을 비롯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여하는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려 한다. 그러나 미국 같은 초강대국들이 먼저 핵무기를 없애지 않는 한 핵무기 경쟁, 핵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공격에 위협을 느끼는 나라들은 끊임없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것이고, 이런 압박은 동북아시아와 중동에서 군사적 긴장만 높이고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이란 제재가 강화되고, 오는 2-3월에 또다시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이뤄지는 등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데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주장하는 ‘핵 테러의 차단’은 결코 핵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핵 안보의 개념 자체가 비확산 체제를 보다 강화하여 핵발전의 명분을 지키고,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핵발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따라서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에는 미달하지만 일정하게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무엇이 아니다. 핵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핵 테러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세계에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후쿠시마 사고에서 알 수 있듯 핵발전소 자체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무기와 핵물질의 확산을 차단해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려고 할 뿐이고, 이명박 정부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핵발전소 수출 계약을 따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을 폐기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탈핵의 흐름이 대세가 되고 있는 지금,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핵이 더 많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하게 폭로해야 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전부터 정부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 주변의 노점상들을 철거하면서 정리 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강남역 주변은 이미 정비가 끝났고 선릉역 등 주변 지역으로 정비 작업이 확대되고 있다. 서울 G20 정상회의와 마찬가지로 저들의 잔치가 직접적으로 민중들의 생존을 짓밟고 있다. 지금 당장 우리의 직접 행동이 필요한 또 한가지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에서는 3월 23일에 열리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과 26, 27일에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선 직접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퍼져나가고 있는 세계적인 탈핵 흐름에 대한 저들의 반격이며, 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따라서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이 싸움은 저들의 반격을 막아내고 탈핵의 흐름을 확대할 수 있느냐, 또한 비확산 체제의 한계를 폭로하여 이를 넘어서는 핵무기 감축과 폐기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들에게는 대안이 없다. 이제 민중의 반격을 시작하자.
미국 반핵활동가 앨리스 슬레이터(Alice Slater) 인터뷰 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기 한 달 전인 2월 25일, 미국은 캘리포니아 주 반덴버그 공군 기지에서 시뮬레이션 핵탄두가 배치된 미닛맨 III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실험했다. 47개 국가 정상들과 국제기구 수장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핵테러 방지와 핵시설 안전 방안 등 소위 핵안보 논의를 준비하는 동안 미국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전 세계에 핵전력을 상기시켰다. 반덴버그 기지에서의 탄도미사일 실험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번 실험에 이어 3월 1일에 2차 실험이 진행될 예정이며, 2012년에 총 5개 실험이 계획되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탄도미사일 실험은 반덴버그 기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탄도미사일 실험에서 다른 점은 비교적 활발한 저항이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은 물론이고 산타바브라, 로스앤젤레스 등 여러 캘리포니아 도시에서 2월 25일 전후로 기자회견, 시내 집회, 촛불집회가 벌여졌다. 동부에 위치한 필라델피아에서까지 집회가 열렸다. 24일에 수백 명이 여러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정 직전에 반덴버그 공군 기지 앞에 집결했다. 집회 현장에서 14명이 반덴버그 기지 안쪽으로 행진하다 연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행동들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막지는 못했지만 핵안보를 내세우면서 핵전력을 과시하는 미국정부의 위선을 강력히 규탄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앞서 미국의 탄도미사일 실험과 미국 반핵운동의 상대적으로 활발한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역할과 우리의 대응전략을 정확히 잡기 위해서 핵안보정상회의를 제안한 미국의 핵정책 동향과 그에 대응하는 운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반핵운동의 확장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수준에서 사고해야하며, 더불어 미국 반핵운동과의 소통 또한 중요하다. 이런 두 가지 목표로 필자는 미국 반전반핵운동에서 오래 동안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앨리스 슬레이터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 글은 슬레이터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미국 핵정책, 핵안보정상회의의 의미와 미국 반핵운동의 현황을 다룬다. 30년의 반핵운동 경험 앨리스 슬레이터는 현재 ‘원자시대 평화연구소’의 뉴욕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원자시대 평화연구소는 평화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서 1982년에 설립되었다. 핵군축에 관련한 교육과 연구, 로비활동을 진행하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 협의적 지위(consultative status with ECOSOC)로 유엔 내에서 시민사회대표로 발언하고 있다. 핵폐기를 위한 세계적 운동을 도모하는 ‘핵폐기2000 세계 네트워크’(Abolition 2000 Global Network)의 초기 제안단체이다. 슬레이터는 핵폐기2000 집행위원 겸 핵에너지 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이다. 동시에 핵정책 변호인 위원회(Lawyers Committee for Nuclear Policy), 우주배치 핵무기와 핵발전 반대 세계 네트워크(Global Network Against Weapons and Nuclear Power in Space), 평화와 정의 연대(United for Peace and Justice) 등 다양한 반핵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슬레이터 대표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 반핵운동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앨리스 슬레이터(이하 슬레이터): 1984년에 상법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핵군비 규제를 위한 변호인연합(Lawyers Alliance for Nuclear Arms Control)의 회의광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LANAC에 가입해서 고르바초프 정권 시절에 현재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위치한 소련의 핵실험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군축을 위한 경제학자 모임(Economists Alliance for Arms Reduction)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고, 미국의 핵무기복합체를 민간산업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네바다 핵실험장, 로스앨러모스와 리버모어 연구소, 나바호 우라늄 광산, 켄터키와 오하이오 농축시설 등 많은 황폐하고 오염된 핵시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1995년에 핵비확산조약(NPT)이 무기한 연장되었다. 핵보유국들이 NPT를 따르거나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고, 많은 활동가들은 핵군축을 요구하기 위해 유엔회의에 참여했다. 나는 다른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핵폐기2000을 결성했다. 핵폐기2000은 핵무기와 원자로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인식하여 핵무기와 핵발전의 폐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변호인과 과학자, 정책전문가를 불러 ‘핵무기협약’ 초안을 작성했다. 우리의 협약안은 15년 후에 유엔의 공식 안으로 채택되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핵군축에 대한 5포인트 기획’에서 언급되었다. 지금 여러 국가가 논의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관한 국제기관을 요구하였는데 2008년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설립으로 우리 요구가 쟁취되었다. 슬레이터가 언급한 핵무기협약은 현재 미국 반핵운동의 핵심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말했듯 핵무기협약에 관한 활동은 15년의 역사를 지닌다. 슬레이터를 비롯한 많은 반핵활동가의 노력으로 협약안이 작성되어 1997년 코스타리카에 의해 논의자료로 유엔에 제출되었다. 10여 년 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2007년에 개정된 안이 코스타리카와 말레시아에 의해 다시 제출되었다. 2008년에는 평화의 응원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핵군축에 대한 5 포인트 계획’을 발표하면서 NPT 회원국들에 핵무기협약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서 2010년 NPT평가회의 최종문서에서 반기문의 5포인트 계획과 핵무기협약이 언급되었다. 2011년에 유엔 군축회의에서는 핵무기협약이 제한적으로나마 논의되었다. 핵무기협약에 대한 제안은 NPT 체제가 지난 40년 동안 핵보유국의 실질적인 감축을 강제할 수 없었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생화학무기와 지뢰에 관한 협약을 모델로 작성된 핵무기협약안은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 실험, 배치, 비축, 전달, 위협이나 사용 금지와 완전한 폐기라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데, NPT의 결점을 극복해 ‘국제적 통제 하에 핵무기 폐기를 완수할 법적 구속력이 있는 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핵무기협약 쟁취를 위한 세계적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핵무기와 핵발전의 ‘뗄 수 없는 연계’ 슬레이터 대표는 핵무기협약 쟁취를 우선적인 목표로 보고 있으며, 그녀의 핵심 활동은 핵군축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소개만 봐도 핵무기 문제와 핵발전소 문제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핵발전 과정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핵물질이 축적되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존재하는 한 핵무기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연계를 대중에 알리고,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핵발전소 건설 사업을 반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림 1] 핵연료 순환 과정 슬레이터: 월스트리트 점령에서 내가 참여하는 반전 실무팀과 지속가능성 실무팀은 핵무기와 원자로의 연계에 관한 강연회를 계획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핵발전 과정을 통해서 핵무기를 위한 원료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들으면 충격을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2차 핵무기 군축의 규모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프라하 연설을 통해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인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최근에는 조지아 주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80억 달러 규모의 대출보증을 약속했다. 1979년 스리마일 사고 이후에 처음있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사업이다. 슬레이터 대표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오바마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원자력협력협정도 언급했다. 현재 오바마 정권은 미국 핵기술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여러 나라들과 원자력협력협정을 논의하고 있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와 비슷한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 협정을 통해서 UAE는 핵무기 원료를 만들 수 있는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UAE 협정이 체결됐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이 협정이 향후 원자력협력협정의 기준으로 사용될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협정의 기준을 완화하지 않으면 많은 협정을 체결하지 못하고 발전소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금지 원칙을 포기하고 사례별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요르단이나 베트남과의 협상은 마지막 단계에 있는데 금지조항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1974년에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이 지금 재협상 중인데, 이명박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금지 조항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베트남과의 협정이 기준이 되면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더 어려울 듯하다. 슬레이터 대표는 다음과 같이 미국의 핵무역 정책을 비판했다. 슬레이터: 오마바 대통령의 핵무역 정책은 핵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다 많은 국가가 핵무기의 원료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이 핵발전소를 수출하는 다른 나라들과 경쟁을 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등 많은 나라에 핵기술을 팔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핵안보정상회의 논의 의제로 선정된 핵물질규제를 미국의 거래대상국에 요구하지 않는다. 거대한 위선이다. 위선의 무기 미국 핵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슬레이터 대표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그녀는 핵안보정상회의도 미국의 핵 위선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한다.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핵물질’의 안보를 이야기하지만 이를 미국에는 적용하지 않다고 강조하며, ‘핵안보’ 개념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핵무기와 핵발전의 완전한 폐기 없이 ‘핵안보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핵안보정상회의 기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슬레이터: 핵안보정상회의의 실제 의도는 군비규제나 위험한 핵분열성 물질의 안전화가 가능하다는 신화를 전파해 핵보유국과 그들의 핵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 동맹국들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보유국들이 핵물질 안전화와 핵시설 점검에 관련해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는 척하면서 핵비보유국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실 미국의 핵물질에 대한 점검이나 안전화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 슬레이터 대표는 미국 정부의 핵기술 개발정책, 대이란 정책에서도 위선을 찾는다. 2월 25일에 실행된 탄도미사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슬레이터: 미국의 위선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핵에 관련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그 주장의 정당성을 아예 무력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전 세계를 협박하고 거만하게 핵무기를 실험하고 개발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를 보유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탄도미사일 실험을 반대하기 위해서 슬레이터 대표가 속한 원자시대평화연구소는 서명운동을 조직했다. 서명서는 슬레이터의 비판을 반영하여 실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핵 탑재 미사일 미닛맨 III의 지속적인 실험은 미국의 이중 잣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탄도미사일을 계속 실험하면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원시적이고 단거리인 미사일을 실험하면 위선적으로 규탄하고 도덕적인 분노까지 표현한다. 이와 같은 이중 잣대는 핵확산을 유도하여 세계를 보다 위험한 상황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서명서에서 언급된 미국이 비판하는 ‘다른 나라’는 분명히 북한과 이란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 반전반핵운동은 특히 미국의 대이란 정책을 중요한 의제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충분하다. 2011년 11월 8일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 핵개발 보고서’를 통해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급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이란의 핵무장 의도가 드러났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한 경제 재재를 시행했다.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강력히 반발하고 원유 수출이 중단될 경우 선제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해협을 열도록 행동을 취하겠다”면서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만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다면 이스라엘의 동맹국인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슬레이터는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위선적일 뿐 아니라 국제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슬레이터: 이란이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미국은 폭력을 준비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NPT는 (우라늄 농축)권리를 (이란에) 부여한다. NPT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으로 핵무기 보유를 포기한 나라에는 핵폭탄의 공장인 핵발전소의 열쇠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미국 활동가들은 이란의 핵위협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을 뿐더러 이란이 원시적인 핵무기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핵보유국인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도적인 핵전력을 이길 수 없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레이터는 미국 국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부와 기업에 의해 통제된 언론이 (이란의) 핵무기를 빌미로 테러와 공격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라크전쟁과 이어진 과정이 다시 반복될 거라고 우려했다. 슬레이터: 비슷한 상황에서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했다. 부시 대통령이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전쟁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떠들며 미국을 위협하는 버섯구름 이미지를 그렸다. 군, 산업, 학계, 정치 복합체 그녀는 아쉽게도 많은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의 실수를 벌써 잊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인 대부분은 핵무기에 대해서 미국 핵정책의 도발성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로부터의 위협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맹목의 원인을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슬레이터: 북한이나 이란이 미국의 실제적인 위협이라고 믿고 국민들이 전쟁과 제재를 지지하도록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언론을 이용한다. 전쟁이나 제재정책을 반대하는 정치인의 목소리는 주요 언론에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군산업학계정치 복합체에 포위되고 있다. 군산학정 복합체는 핵산업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소수 엘리트 집단을 지칭한다. 미국 패권의 유지를 직업으로 하는 군사지도자, 핵무기 기술의 개발과 생산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는 록히드마틴이나 보잉 같은 핵산업 기업들, 핵기술 개발로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연구기관과 학자, 의회에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을 의미한다. 슬레이터 대표는 이 강력한 세력이 미국 핵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고 여론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핵, 화석연료 등 ‘더러운’ 연료 산업들도 부정부패한 정치과정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지속불가능한 오염 에너지가 계속 사용되도록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프라하 연설에서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자마자 “내 인생에서 볼 수 없다”라고 해명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핵군축을 이야기하면서도 2013년 국방예산에서 핵시설과 핵무기를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올해에 비해 5% 증가된 액수인 76억 달러를 책정하고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8억 덜러 대출보증을 결정한 이유도 군산업학계정치 복합체의 막대한 영향력과 이데올로기적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슬레이터 대표는 설명한다. 경제위기, 월가점령운동, NATOG8 반대 투쟁: 반핵운동의 발전 기회 그러나 슬레이터 대표는 최근 미국 정세에 대해서 희망적이다. 경제위기가 핵군축을 요구하고 운동을 건설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슬레이터: 현재 경제위기 속에서 핵무기가 실제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고 대중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좋은 일이다. 예산위기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삭감할 기회다. 예를 들어 로스앨러모스 플루토늄피트 공장 건설 사업이 얼마 전에 중단되었다. 플루토늄피트 공장 건설 사업은 2006년에 뉴멕시코 주에 위치한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서 시작된 ‘화학금속공학연구 대체시설’(Chemistry and Metallurgy Research Replacement Facility, CMRR) 공사를 말한다. 완성되면 이 시설은 핵무기의 폭발체로 작동하는 플루토늄 피트를 생산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군산학정 복합체의 파괴적인 이해관계의 상징으로 많은 비판을 받던 CMRR은 2014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예산위기 속에서 일정이 연기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2013년 국방예산에서 CMRR 건설을 위한 예산이 크게 삭감되고 건설계획이 5년 연장되었다. 최소한 한 가지 문제에서는 군산학정 복합체가 경제위기에 패배한 셈이다. 슬레이터 대표는 또한 월가점령운동의 미국정세에 대한 영향을 언급했다. 슬레이터: 월가 점령운동을 비롯해 여러 풀뿌리 운동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더러운’ 연료산업에 대한 보조금과 세금 우대 조치를 인식하고 이에 대항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추구하는 풀뿌리 운동이 강해지고 있다. 이들이 신규발전소 건설을 막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캘리포니아의 탄도미사일 실험 반대운동, 조지아의 핵발전소 반대 운동, 원자시대평화연구소와 같은 전문조직의 교육과 대정부 로비활동 등 다양한 흐름들이 몇 개월 후에 시카고에서 모일 예정이다. 오는 5월 19-21일에 NATO와 G8 정상회의가 시카고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세계경제의 안정, 군사적 안보에 대한 협조를 빌미로 강대국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 유지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이 두 회의는 집중 투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슬레이터 대표는 반핵운동에서의 NATO과 G8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슬레이터: 지구와 세계 평화를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 같다. 우리는 NATO를 해체하고 유엔헌장에 의해 수립된 평화유지 방법과 같은 국제법에 기반한 체제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헌장에 명시된 평화유지 방법은 비토권을 지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에 의해 무시되었다. 이 5개국은 NPT 하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나라들이다. 위선적인 이중 잣대가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핵확산을 금지하는 NPT를 위반한 NATO의 핵공유정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벨기에, 독일, 터기, 네덜란드, 이탈이아 등 5개 유럽 국가에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다. NATO가 정당한 사용이라고 주장하는 핵억지력은 NATO 정책에서 사라져야 한다. 시카고에서 평화세력과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힘을 합쳐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다. 슬레이터 대표는 한국 반전반핵운동이 NATOG8 투쟁에 함께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녀는 NATOG8 투쟁 외에도 여러 활동방안을 제안했다. 슬레이터: 아시아민중들이 핵폐기2000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다음 NPT 평가회의를 위한 준비회의가 4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비엔나에서 열리는데 대표를 보냈으면 좋겠다. 우리 핵폐기2000 총회가 5월 5일 비엔나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국회의원들을 ‘핵 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국회의원회의’(Parliamentarians for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Disarmament)에 가입시키고, 시장들을 ‘평화시장회의’(Mayors for Peace)에 가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슬레이터 대표가 제안한 활동들은 모두 핵무기협약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핵폐기2000은 핵무기협약안이 처음 작성됐을 때 핵심 역할을 하였고 2007년부터 200여개 조직들과 함께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국제 캠페인(ICAN,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이라는 이름으로 핵무기협약 쟁취운동을 벌였다. 핵 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국회의원회의와 평화시장회의는 국회의원과 시장이 핵무기협약을 비롯해 핵군축 정책을 지지하는 공약을 밝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80개국 800명의 국회의원들이 2000년에 시작된 핵 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국회의원회의에 참여하고 있으며, 153개국 5,126명의 시장과 그들이 대표하는 도시가 1982년에 시작된 평화시장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두 네트워크는 최근에 핵폐기2000의 지원으로 많이 확대되었다. 슬레이터 대표는 현재 핵무기협약을 체결을 위한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슬레이터: 경제위기, 월가점령운동, NATOG8 정상회의, 핵 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국회의원회의의 확산, 반기문의 5포인트 계획 등의 상황 속에서 핵무기협약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를 300개까지 낮출 수 있다면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인디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다른 핵보유국에 핵 금지 협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민중의 세계적인 반핵운동을 건설하자 슬레이터 대표의 활동 제안은 미국 반핵운동의 강점과 약점을 잘 보여준다. 강점은 국제적인 관점과 범위라고 할 수 있다. 슬레이터 대표를 비롯해 미국의 많은 반핵 활동가들은 핵 패권에 있어서 미국 정부의 특수한 역할을 이해하면서도 핵군축과 핵폐기가 일국적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다양한 국제적인 논의 틀과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단점은 유엔 중심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반핵운동은 대체로 각국 정부를 핵폐기의 주체로 보고, 유엔을 핵군축폐기 논의와 활동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대중적인 조직화보다 유엔 틀 내에서 각국 정부에 대한 로비 활동이 보다 큰 비중을 자치하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패권 기구인 유엔의 성격을 충분히 비판하지 못한다. 결국 미국 반핵운동은 군산학정 복합체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핵으로 이득을 보는 소수 엘리트와 다수 세계 민중간의 심각한 권력 불평등의 반전이나 민중의 통제 하에서의 핵폐기에 대한 전망은 아직까지 갖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망은 유엔 내에서의 로비활동 보다 핵과 핵을 둘러싼 권력관계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강화하고 조직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 반핵운동은 이러한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지만 위 내용에서 보듯 변하고 있다. 그들의 시야는 유엔에서 점점 대중들로 넓어지고 있는 듯하다. 탄도미사일 실험과 핵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 이어 대 NATOG8 투쟁을 통해 충분히 대중성이 강화될 수 있다. 또한 한계가 있지만 슬레이터 대표가 제안한 국제 활동방안은 큰 의미가 있다. 핵 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국회의원회의와 평화시장회의와는 정치인의 네트워크지만 핵군축에 대한 공약을 얻어내는 활동이 대중적 교육사업과 연결될 수 있으며, 지역의 활동을 국제적인 운동과 연결시킬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핵무기협약은 NPT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새로운 체제를 모색할 기회를 제공한다. 여러 나라 반핵운동의 공동 요구가 됨으로써 운동의 국제적인 단결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 핵안보정상회를 계기로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모여 핵군축과 핵발전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그 동안 침묵하던 반핵운동이 핵안보정상회 대응을 통해 다시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것이 일회 행사에 대항하는 일시적인 활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반핵운동을 건설하기위해서 이번 기회를 우리의 운동 전략을 논의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 논의에서 반핵운동이 일국적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슬레이터 대표가 제안한 활동방안을 비롯해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국제적인 반핵운동을 검토하고 의미있게 결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는 3월 11일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지 1년이 된다. 일본 도호쿠지방 해안일대를 집어삼킨 검은 파도는 후쿠시마에 있는 핵발전소도 예외없이 덮쳤다. 쓰나미 피해로 외부전력을 상실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는 지진 후 5시간 후부터 연료손상이 시작되어, 지진 후 16시간 후인 3월 12일 새벽 6시에 핵발전소 사고 중 가장 심각하다는 멜트다운(노심용융)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1호기의 수소 폭발을 시작으로 2~4호기까지 연쇄적으로 수소폭발을 일으키면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을 유출하게 된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사고 상태’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피난을 강제당한 후쿠시마의 주민들을 비롯하여 방사능 공포를 견디며 살고 있는 일본의 시민들은 물론, 넓게 보면 인류 전체가 이번 사고의 피해자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발전의 길을 선택한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와 달리, 가동중인 핵발전소의 20%, 건설중인 핵발전소의 52%가 몰려있는 동북아시아 3국에서 탈핵의 길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현재 13기의 핵발전소를 가동중이며, 무려 27기의 핵발전소를 건설 중에 있다. 이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에서 세계 최대 규모이다. 미증유의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조차 탈핵발전 선언이 뒤집히고 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핵발전소의 재가동 쪽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그는 간 나오토 총리의 탈핵발전 정책에 대해 “급격한 탈핵발전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으며, 지난 12월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수습을 발표하여 빈축을 샀다. 올해 2월 15일 민주당은 당 에너지프로젝트팀 회의를 열어 정기점검으로 멈춰선 원전의 재가동을 용인하는 쪽으로 정책조정에 착수했다. 3월 26-27일에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하는 한국도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은 21기의 핵발전소를 가동중인데, 탈핵발전의 계획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새로운 성장동력’ 운운하며 핵발전소 수출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가 폭발한 당일 아랍에미리트(UAE) 핵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했고, 일본의 사고가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망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역시 핵발전소 수출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선전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한국에서도 탈핵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반핵운동의 힘이 되기보다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 때문에 애꿎은 우리만 피해를 입었다며 반일감정이나, 어떻게 하면 내부피폭을 줄이기 위해 먹거리를 조심할 것인가와 같은 개인적인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피해의 한가운데에 있는 일본 민중들의 삶, 오랜 기간 대중운동이 침체되어 있던 일본에서 다시 시작된 반핵운동은 한국에서도 시급히 반핵의 흐름이 강화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히로시마의 아픔을 딛고 핵발전 강국으로?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이 투하된 국가임에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전력 소비량의 약 30%를 핵발전소에 의지하고 있던 핵발전 강국이다. 일본에는 핵발전소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도시바와 히타치, 미츠비시와 같이 핵발전소 건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이 세 업체는 미국의 업체를 인수하여 프랑스, 미국과 함께 전세계 핵산업계를 사실상 과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핵연료 사이클을 자립적으로 구축하고자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핵연료 사이클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다시 핵연료(우라늄)로서 사용할 수 있는 순환체제를 말하는데, 이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은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갖는다는 말과 같다. 일본은 이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핵 관련 기술에서 첨단을 자랑해왔다. 일본이 핵발전 강국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난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54년부터이다. 1954년 3월 핵분열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235에서 따 온 상징적인 금액 2억 3천 5백만엔을 원자력 연구 개발 예산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일본은, 이후 큰 무리없이 핵발전소를 차례로 건설해 나간다. 핵무기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일본이 핵발전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핵무기와 핵발전소는 서로 다른 것이고 일본이 반대하는 것은 핵기술의 군사이용이지 평화이용은 아니라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핵운동 단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매년 8월 일본에서 열리는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의 당시 선언문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1회 선언문에서는 “본 대회는 원수폭(원자폭탄수소폭탄) 금지가 반드시 실현되어 원자전쟁을 기도하는 힘을 깨부수고 그 원자력을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2회 선언문에서는 “원자폭탄의 금지가 실현되어야만 비로소 원자력이 인류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그때까지의 비밀주의를 포기하고 핵기술을 다른 나라들과 공유하기 시작한다. 1950년대 미국은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원자력 판매 공세를 펼치는데, 일본은 이런 미국의 요구에 적극 부응한다. 원자력 연구 개발 예산이 통과된 이듬해인 1955년 6월, 미일원자력협정이 조인되었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사고는 지금까지 핵발전소를 정당화하는 핵심 이유이다. 그러나 핵무기나 핵발전소 모두 우라늄을 원료로 하는 것이고, 그 원리도 핵연쇄분열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핵발전소와 핵무기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핵산업계와 일본정부의 선전으로 핵발전소는 ‘핵의 평화적 이용’ 이라는 잘못된 사고가 상식이 된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일본 뿐 아니라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가동 중인 국가들 전체에 통용되고 있다. 이 믿음은 핵폭탄의 피해를 직접 경험했던 일본의 반핵여론을 바꾸고, 반핵운동의 기조에까지 침투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원자력 촌: 죽음의 산업을 유지하는 거대 이권 네트워크 일본에서는 핵발전소를 건설운영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자본가기업가들과 그들에게 협력하거나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정치인, 관료, 언론, 학자들이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원자력 이권 네트워크’를 ‘원자력 촌’(원자력 마피아)이라 부른다. 원자력 촌 구성원들에게 핵발전 정책 추진과 자신들의 이익은 떨어질 수 없다. 이들은 이익을 위해 안전 기준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설정하고, 핵발전소에 대한 정보를 은폐하고 데이터를 조작했다. 기본적으로 핵발전소는 국가의 비호없이는 성립 불가능하다. 최신형 핵발전소 1기를 짓기 위해서는 대략 3조원에서 3조 5천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들며, 핵발전 과정에서 생기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수천 년에 걸쳐 관리하기 위해서는 역시 방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국가가 함께 책임지지 않으면 핵발전소는 건설도 사후 관리도 불가능하다. 현재 일본의 핵발전 시스템에서 도쿄전력을 비롯한 전력회사는 굉장히 큰 이익을 내고 있다. 일본에는 9개의 전력회사가 있는데 모두 지역별 독점 회사이며,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가와 기업의 유착관계가 자주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일본 핵발전소의 안전평가를 시행하는 경제산업성 산하 조직인데, 이들이 작성하는 안전에 관한 보고서를 실제로는 핵발전소 건설사가 만든다. 실제로 안전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설계 건설을 담당하는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이며, 도쿄전력은 그들이 작성한 문서의 표지를 ‘도쿄전력’이라고 바꿔달 뿐이다. 이 문서를 원자력 안전 보안원에 제출하는데, 보안원은 관료 그 자체이다. 즉 ‘도쿄전력 문체’를 ‘관료 문체’ 로 바꾸는 정도의 작업만 할 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력회사 직원들은 사고를 은폐하고, 정부는 이를 눈감아준다. 2002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의 격납용기 시험 테이터를 도쿄전력 직원들이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1978년 3호기의 제어봉이 공기 중에 노출된 사고도 2007년이 되어 발각됐다. 그러나 사고 은폐가 발각된 뒤에도 정부는 도쿄전력에 운전 정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미 안전이 확인됐고, 사회적 제재도 받았다”는 이유였다. 핵발전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안전성 보증서를 달아주는 원자력 전문가 없이 핵발전은 추진될 수 없다. 일본 교토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며 핵이용의 위험성을 연구해 온 이마나카 데츠지는 “원자력 학회는 원래 원자력을 추진하는 학회로, 그런 의미에서 과학을 목적으로 한 학회가 아니다. 원자력 추진은 기술개발에만 치중된다. 요즘 들어 잘 알려진 대로 원자력학회도 원자력촌(村), 원자력 마피아의 일각이다. 원자력 학회가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주범이라는 것은 틀림없다”라고 말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핵 전공 학자 중 핵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적으며, 이러한 의견을 밝히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언론은 국민들에게 핵발전은 안전하고 경제적이라고 선전하면서, 전력회사로부터 막대한 광고비를 챙겼다.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도 주류언론에서 반핵이나 탈핵움직임을 적극적, 지속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이마나카 데츠지는 이런 원자력촌을 유지하는 동력은 만약의 경우 일본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핵 옵션’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비핵3원칙(핵무기를 가지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은 1968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숨겨진 의미는 ‘지금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지만, 만약의 경우 언제든 가질 수 있도록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고속증식로, 재처리, 농축우라늄 제조 기술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언제든 가능하도록 기술을 갖고 있는다’는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이것이 원자력 촌을 유지하는 하나의 큰 이유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후쿠시마 주민들 핵발전을 지속하면서 입는 피해,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피해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은 원자력촌 구성원들이 아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후쿠시마현의 주민들이다. 일본정부는 2011년 4월 22일, 반경 20km 이내 지역을 강제 피난이 실시되는 ‘경계 구역’으로, 30Km까지를 자발적 피난을 권유하는 ‘긴급시 피난 준비 구역’으로 지정하였다. 30km 바깥이라 하더라도 방사선량이 법정 기준을 초과한 곳은 ‘계획적 피난 구역’으로 지정돼 강제 피난 명령이 내려졌다. 피난을 강제당한 사람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피난 구역이 아닌 지역에서도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피난구역은 핵발전소 반경 30Km보다 넓게 설정되었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피난구역의 범위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피난을 강제당했든 자발적 피난을 고민하든, 이들은 그 동안의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피폭을 피하기 위해 이주하면 주택이나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주하지 않으면 수입이나 재산은 유지될 수 있지만 건강, 출산, 육아 등의 권리가 침해받는다. 이 둘은 충돌되는 권리가 아님에도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런 권리들의 포기를 강요당한 주민들은 분열된다. 이주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하며 육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가족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피난을 강제당한 대가족은 가족들과 흩어져 살게 된 경우가 많다. 주민 6,200명의 이타테무라는 사고 전 1,700가구가 임시주택으로 옮기면서 2,700가구로 나뉘었다. 단기간에 수습될 수 있는 사고라면 일시적인 피난으로 끝나 불편을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이 본래 살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몇 십 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후쿠시마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금 현 외로 피난가거나 이주하는 것은 입에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자칫했다가는 소심하다거나 지역을 버린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 지역인 도호쿠 지방의 역사를 보면 안타까움은 더하다. 도호쿠지방은 전통적인 농업지대로, 일본 패전 직후에 장자상속제로 인해 아무것도 물려 받을 수 없어 군대에 간 차남과 삼남이 대거 진입하여 개척한 곳이다. 그러나 1970년대 고도경제 성장 정책으로 1차산업은 파괴되고 젊은 노동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도시로 내몰리면서 이 지방은 인구 과소지역이 됐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일본도 이런 곤란을 이용하여, 도시에서 기피하는 핵발전소를 쇠락한 농촌지역에 지었다. 후쿠시마현에는 핵발전소가 10기 있고,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핵발전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도호쿠지방은 치명적인 사고가 났을 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현재 피난민은 15만 명에 이르며,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주한 지역에서 배제당하기도 한다.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간 후쿠시마 출신 학생들이 이지메(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들이 보고되고 있다. 후쿠시마 주민들이 고향을 잃은 상황에서, 다른 지역을 떠돌지만 타지역으로부터 배제당하는 현상을 두고 후쿠시마 주민들의 ‘국내 난민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피폭당하며 일하는 노동자들 또 다른 핵심 피해자는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아무리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한다해도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이상 피폭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핵발전소 정기검사 때는 엄청난 압력과 300도에 이르는 수온으로 인해 얇아진 배관이나 노후된 밸브를 교체해야 하는데, 이 작업에는 반드시 피폭이 동반된다. 그러나 피폭의 피해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며, ‘시키는대로만 하면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듣고 작업에 투입된다. 핵발전소에서 피폭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업무는 3,4차 하청회사를 통해 들어오는 최하층 노동자들의 몫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피폭의 위험에 노출되면서 받는 임금은 중간업자들이 가져가고,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권리 주장도 어렵다. 핵발전소 작업으로 피폭되어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의 86%가 하청계약으로 들어온 노동자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평상시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허용 피폭치를 적용하면 작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핵발전소 노동자의 피폭 허용치는 연간 20mSv(밀리시버트), 긴급시는 100mSv인데, 사고가 나자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한해 허용 피폭치가 250mSv로 변경되었다. 이 자체로도 노동자들을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인데, 이마저도 초과하여 피폭된 노동자들도 있다. 이 중에서는 500mSv이상 피폭된 노동자도 있는데, 500mSv이상 피폭되면 일시적인 백혈구 수치의 저하가 관찰되며, 급성 방사성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몇 명의 노동자들이 어떤 상태로 일하며, 피해가 어떠한지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고선량 지역으로 들여보는 정책에 대해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방사선 양이 내려갈 수는 있지만 방사성 물질의 제염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이는 또 다른 비극이 된다. 제염작업이 핵기업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부상하고, 도호쿠지방의 재건이 건설회사에 호기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특정 사회층을 희생시킴으로써 성립하는 핵발전, 일하는 사람이 피폭당해 죽어가고, 핵발전소가 건설된 지역의 주민들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핵발전소의 현실을 볼 때,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것은 사고 발생여부를 떠나 어불성설이다. 다양한 피해자들, 각기 다른 고통 앞서 언급했듯 많든 적든 방사성 물질의 피해를 입고, 정신적인 상흔을 입은 전세계 민중들 모두가 피해자이겠지만, 이 사고의 피해가 가장 아프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앞서 언급한 후쿠시마현의 주민, 핵발전소의 노동자라는 정체성에서 즉각적으로 보이는 문제만이 다는 아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각각 다양한 정치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너무나 커다란 피해 앞에 사고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후쿠시마현의 농민들의 이야기는 여러 경로로 한국에도 전해졌다. 방사성 물질이 날아오는 바람에 시금치도, 배추도 출하정지 조치가 되자 절망해 자살한 농민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애써 짠 우유를 버려야 하는 나날을 견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낙농업 농민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지난해 6월 말까지 자살한 152명의 지진과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 중 후쿠시마 낙농업 농민은 68명이었다. 안타까운 사연은 종종 언론에 보도되지만, 피해보상을 줄이기 위해 피폭허용치를 제멋대로 늘린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 농민들의 피해보상까지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지진과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일본정부는 패닉에 빠지지 말고 ‘자숙’해야 한다, 핵발전소 사고로 에너지가 부족하니 ‘절전’에 협조해달라는 선전을 진행했다. 그 중 핵심은 ‘힘내라 일본!’ 이라는 슬로건으로, 이에 대해 일본의 지식인들과 운동진영은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힘내라 일본!’ 이라는 슬로건은 일본이라는 ‘집단’을 주어로 만든다. 이는 피해자 내부에 있는 여러 차이를 감추고, 피해지원 밖에 있는 사람들을 아예 보지 못하게 만든다. 몇몇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1923년 관동대지진에서와 같은 타민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본정부가 학교교육법상 정식 학교로 인정하지 않는 조선인학교에 대해서는 방사선측정기나 운동장에 대한 제염처리 지원을 하지 않는다거나, 행정 정보도 전달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정부의 지원없이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나서 제염작업을 거의 마무리했을 지난해 9월 즈음에서야, 일본정부와 후쿠시마현은 태도를 바꿔 학교 재건 비용 전액을 보상했다. 재일조선인 외에도 고려해야 할 대상은 또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농촌에는 아시아에서 유입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으로 이주한 아시아인들이 많다. 현재 후쿠시마 전체에서는 2,000여명 이상의 필리핀인들이 일본인 남성의 배우자로 살아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낙농업 농민의 부인도 필리핀인이다. 그녀는 이제 남편이라는 보호막 없이, 외국인으로서, 재난지역에서, 혼혈인 아이와 함께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본의 반핵운동의 요구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전국에서는 반핵탈핵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적은 일본에서, 지난 4월 도쿄에서 1만 5천 명 규모의 집회가 처음 열렸고, 사고 6개월 후인 9월 19일에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6만 명이 도쿄 도심에 모여 대규모 반핵 시위를 벌였다. 반핵 시위에는 작가나 평론가 등 지식인 참가자들도 눈에 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요나라(헤어질 때 하는 인사) 핵발전소 1,000만 서명’의 제안자 중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와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일본의 반핵운동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고 에너지정책을 전환하는 것, 일본정부 및 도쿄전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운동의 목표와 요구가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당사자들이 처한 문제에 좀 더 구체적으로,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먹거리와 교육에 좀 더 방점이 찍혀있는 등의 차이가 있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의 요구에 대해 정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핵발전소 재가동 저지와 에너지정책 전환 후쿠시마 사고 이후 54기에 이르는 일본의 핵발전소는 정기점검에 이은 내성검사를 받느라 잇따라 멈춰, 2월 15일 현재 3기만 운전 중이다. 오는 5월에는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이 중지될 예정이다. 이대로 가면 핵발전이 없는 상태를 맞이하지만, 일본 정부는 현재 재가동을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일본 반핵운동 진영에서 가동 중단된 핵발전소의 운전 재개를 막는 것이 현재 가장 핵심적인 요구이다. 핵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는 전력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논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해 일본정부는 전력소모가 많은 여름을 핵발전 없이 맞이하면 약 9%의 전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하였는데, 이는 9%만 전력소모를 줄이면 핵발전 없는 사회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부족의 논리에 맞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풍력, 태양열 등을 이용한 에너지생산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독일 등을 좋은 예로 삼아 일본 반핵운동 내에서도 그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 1월 14-15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핵 세계회의에서 채택된 ‘핵발전 없는 세계를 위한 요코하마 선언’ 의 일곱 번째 요구는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자체를 지원할 것’이다. 최근엔 핵발전 옹호 논리가 전력 부족에서 핵발전소가 폐쇄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고용문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도 렌고(連合)등 일본의 거대노총은 핵발전 관련 노동조합이 소속되어있다는 것을 이유로 핵발전소 폐쇄에 대해 반대했고, 아직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탈핵이라는 사회적 흐름에 대해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대하여,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반핵운동은 고용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하는 가운데, 렌고 등 노동조합의 입장을 바꿔내면서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를 못 박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일본정부 및 도쿄전력에 대한 책임을 묻자 일본 정부는 사고 후 피난 기준을 연간 20mSv로 상향 조정했다. 원래 일본 법률에는 연간 1mSv를 허용치로 적시하고 있으니, 기준치를 20배나 올린 셈이다. 기준치의 상향 조정에 대해 일본 반핵운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첫째는, 원래 법률에 적시된 기준치로 보면 현 내 거의 모든 지역을 피난 구역으로 설정해야 하고, 둘째로 본래의 법적 기준으로는 배상 대상이 너무 커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일본의 지식인인 가라타니 고진은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 넣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계 핵실험장 및 피폭자 취재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모리즈미 다카시는 사고 직후의 인터뷰에서 “도쿄전력이 살인자라면 정부는 살인협력자”라고 분노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부의 국난극복선전에 응하여 ‘지금은 정부를 비판할 때가 아니라, 일본 전체가 일치단결해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도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에서는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해 정보공개와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도쿄전력의 해체까지 요구되고 있다. 도쿄전력 뿐만 아니라 일본에 지역별로 있는 전력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송전과 발전 기능을 분리하라는 요구도 있다. 일본은 전력회사가 송전 기능을 독점하여, 전력회사의 승인을 받은 업체만 자신들이 발전한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전력회사가 이런 권한을 이용해 재생에너지 개발을 막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피폭을 줄이기 위한 노력 요코하마 선언의 요구 중 첫 번째 항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권리’였다. 지난해 3월 11일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 수준의 생활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피폭 문제이다. 정부가 정한 연간 20mSv라는 피폭허용치는 어린이들에게도 동일한데,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후쿠시마현 주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20mSv라는 잠정적 기준의 철회를 문부과학성에 요구하는 활동이 이루어졌다.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국가가 결정한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성과라고 평가한다. 이외에도 학교 운동장 표면 같은 데에 있는 흙을 제거만 해도 방사능 수치가 현저히 낮아진다는 것을 발견해내고 모든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결국은 일본 정부가 이 방안을 수용하여 제염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을 방사능 피해로부터 지키려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개인 및 단체들이 연대하여 각각의 활동을 서로 지원하는 네트워크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식품의 안전을 검사하고,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교섭, 후쿠시마 지원, 방사선치 측정 등의 활동을 자체적으로 벌이고 있다. 핵발전소 수출저지 및 핵사이클의 완전철폐 1970-1980년대에 일본 내에 핵발전소가 굉장히 많이 지어졌지만 1990년대부터는 차츰 줄어들어, 사고 직전 건설 중이었던 것은 2기에 불과했다. 도시바, 히타치, 미츠비시 등 핵발전소 건설 회사는 국내 수요를 찾지 못하자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것은 후쿠시마 사고에도 핵발전소 수출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산업성의 핵발전소 수출 정책은 변화가 없다. 2011년 6월 도시바와 히타치는 핵발전소 건설 시찰 건으로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는데, 이 시찰 후 도시바와 히타치가 리투아니아 핵발전소 건설의 우선적인 교섭권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일본 반핵운동의 비판이 거세다. 작가인 사와치 히사에는 2월 11일 도쿄 반핵 집회에서 “정부는 자신들이 일으킨 사고도 수습하지 못하면서, 외국에 핵발전소를 팔려고 하고 있고, 세계의 시민들은 싫어하고 있다. 이것이 국적을 뛰어넘은 시민의 의사다”라고 발언하며 정부의 핵발전소 수출을 비판했다. 일본 반핵운동은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발전소가 군사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핵사이클 자체를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핵탈핵을 위한 여러 활동과 전망 이러한 요구를 가진 반핵운동은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올 1월 14-15일에는 요코하마에서 탈핵 세계회의가 열렸는데, 1개월 여의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1만 1,500명이 참가하여 주최측을 놀라게 했다. 탈핵 세계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요코하마 선언을 채택하고, 선언에 포함된 8가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핵발전소 없는 세계를 만드는 행동의 숲’ 활동을 시작했다. 행동제언은 개인적인 실천에서부터 대정부요구까지 다양하다. 직접 행동도 계속되고 있다. 2월 11일에도 전국 각지에서 반핵집회가 열렸으며, 이 날 도쿄 도심에는 12,000명이 모였다. 경제산업성 앞에는 작년 9월 11일부터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탈핵 텐트’라 불리는 이 농성장은 경제산업성을 1,300명이 둘러싼 인간 띠잇기 행사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세 동의 ‘탈핵 텐트’ 농성은 철거 위기를 넘기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요나라 핵발전소’ 1000만 서명은 2월 말 현재까지 420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5월 말까지 1,000만명을 목표로 계속될 예정이다. 오는 3월 11일에는 15,000명 정도의 참가를 목표로 하여 후쿠시마에서 집회가 열린다. 7월 16일에는 10만 명을 목표로 도쿄 도심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명확한 요구를 가지고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가공할 피해를 입고 생존권을 위협받으며 살고 있는 후쿠시마 현지 주민들과 후쿠시마 외부에서 벌이는 반핵운동과의 충돌이 있다. 일본 운동 내에서 이에 대한 우려와 실제 겪고있는 곤란에 대한 증언이 나오고 있다. 서경식은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는 일본 전역과 전 세계에서 탈핵 운동의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지만, 일본 내에 후쿠시마에 대한 거부반응이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후쿠시마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고 증언한다. 문제는 정작 후쿠시마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생활 근거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원전의 위험성이나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소리에 대해서 점점 짜증이 나고, 오히려 방사능 오염은 별거 아니다, 괜찮다 하는 말에 위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전국 네트워크’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핫토리 나츠오는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정보가 혼재하는 가운데,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일만 하더라도 벅차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일종의 사고정지 상태가 되어 부정적인 정보에 대해 눈을 감고 싶어지는 심리상태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가와사키 대표는 후쿠시마 주민들은 도쿄에 의해 핵발전을 강요받았다는 불만이 있으며, 도쿄와 탈핵운동을 함께 하자는 연대의 노력이 있는 반면에, 도쿄에 대한 불만 의식도 공존한다고 말한다. 오는 3.11 후쿠시마 집회에 관해서도 현 내외의 태도가 다르다. 후쿠시마현 바깥에서는 ‘왜 방사선량이 많은 지역에서 집회를 하는가’라는 질문이 주최측에 제기된다. 이에 대해 주최측은 2월 24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여기에서 살고 있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참가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집회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외에도 보수적인 일본 노동운동의 변화 여부, 재생에너지가 결국은 또 다른 돈벌이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한 민족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인학교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많은 운동단위가 지적하고 함께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벌여 일정한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농촌지역에 결혼하여 이민 온 필리핀 여성들이나 후쿠시마 지역에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까지 눈을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일상생활과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고자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향토애나 애국심과 혼동되기도 한다. 2.11 도쿄 반핵집회에서 젊은 배우인 야마모토가 한 발언은 일본의 반핵 여론이 이 경계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정말로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모여있으며, 다시 한 번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일본은 이제 끝이다’라며 핵발전소 반대를 외쳤다. 피해가 장기화되어 후쿠시마 주민들이 버티기 힘들어질수록 반핵운동과의 충돌이 심해 질 수 있다.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이것이 반핵운동의 내부에도 침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며 운동을 지속할 것인가, 현재 일본의 반핵운동이 처한 과제이다. 탈핵 움직임에 대한 원자력 촌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소위 경제전문가들은 ‘상당한 빚을 지고 핵발전소를 지었으므로 국가 재정 차원에서도 핵발전소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그 이면에 국가의 핵발전소 사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그에 따른 기득권이 있다. 핵발전소로 인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연대는 강고하다. 1960년대 안보투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이번에야말로 후쿠시마의 희생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느냐라는 기로에 서 있다. 2012년 한국에서 핵발전소 사고나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에 관한 숱한 문헌과 자료를 읽다보면,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기 쉽다. 핵기술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사고정지에 빠지는 것은 비단 후쿠시마의 주민들만이 아니다. 그러나 핵발전의 위험을 알면서도 목숨 걸고 싸우지 못했다고, 사고의 책임의 절반은 우리에게 있다는 일본 활동가들의 참회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후쿠시마의 사고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보고도 여전히 ‘설마’ 하며 적당히 싸운 오늘을 후회할 내일이 올 수 있다. 우리는 방사성 물질의 오염에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반핵운동은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핵발전소 수출은 안된다’ 고 할 때 ‘일본이 안하면 한국이 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걸 막아야 한다. 서로 경쟁시키며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는 논리를 꺾어야 한다. 그래서 두 나라가 함께 핵발전을 중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묵시록적인 상황은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일본도, 핵발전소 21기를 가동 중인 우리도 여전히 싸워야 할 것이 많다. 이를 위해 핵발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에, 기만적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질 저들의 담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