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접근권 파괴하는 인도-EU FTA 유럽의 새로운 FTA정책과 지적재산권 2월 17일 유럽의회는 한-EU FTA를 통과시켰다. 또 3월에는 인도-EU FTA를 체결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은 상대국에 따른 매우 신축적인 교역협상을 맺던 과거의 FTA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모두 철폐하려는 새로운 FTA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한국과 인도다. 유럽연합은 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최우선사항이고, 특히 효과적인 지재권 집행이 최고 관심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1) 위조방지무역협정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초국적기업들이 지재권 침해를 빌미로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민,형사소송을 손쉽게 제기하도록 하고,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제네릭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복수국가간무역협정이 위조상품 유통 문제의 해결을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바로 위조방지무역협정(ACTA: Anti-Couterfeiting Trade Agreement)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소수 선진국이 협상을 주도하고 있으며, 2008년 6월부터 한국 정부도 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ACTA는 소수 선진국들이 지재권 강화를 통해 얻는 흑자폭을 더 늘리기 위한 국제규범을 만들겠다는 것이지, 위조상품의 유통을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위조상품은 현행 국제조약에서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ACTA는 수출국이나 수입국의 지재권을 침해하지 않더라도 환적(in-transit, 운송중인 화물을 옮겨 실음) 국가에서 지재권 침해가 문제될 여지가 있으면 세관의 압류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08~2009년에 유럽을 거쳐 브라질로 가는 인도산 제네릭(복제약)을 유럽에서 위조품으로 취급하며 압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의약품은 수출국(인도)과 수입국(브라질)에서 지재권 침해 문제가 없는 의약품인데, 네덜란드에서 환적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 세관에 의해 압류당하였다. 이는 유럽이 요구하는 지재권 집행조치와 ACTA의 전초전으로서 전면 실시될 경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인도와 브라질은 2010년 5월 12일 네덜란드와 유럽연합을 상대로 WTO에 제소한 상태이다. 2) 자료독점권 유럽이 의약품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의약품에 대한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특허권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153개국이 가입한 트립스 협정(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 따라 최소 20년의 특허보호기간이 보장된다. 자료독점권은 의약품 판매승인을 받을 때 제출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임상시험자료를 제네릭 제약회사가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제네릭 판매를 지연시켜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이 부여되면 특허가 없는 혹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일지라도 판매독점권이 생기게 되어 제네릭 생산과 수출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강제실시와 같은 특허권의 공공적 사용도 못하게 된다. 유럽은 미국과 경쟁적으로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유럽의 초국적제약사들이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상황과 보건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네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약품단일시장을 완성하기위해 2001년부터 유럽약사법의 포괄적 개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은 자료독점기간에 집중되었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물질특허가 의약품독점을 보장하는데 불충분하다고 여겨 이를 보상하기 위해 1987년에 자료독점권을 도입했다. 트립스 협정 이후 유럽 각국은 대부분 20년 동안 특허권을 보호하고 있으나, 자료독점기간과 관련해서는 그리스의 6년에서부터 프랑스의 10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폴란드 등의 신흥 유럽회원국들은 대부분 6년의 자료독점기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흥 회원국들은 자료독점기간을 확대하면 그들 국가의 보건의료예산에 지나친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2003년 12월 유럽의회는 8+2+1 공식을 따르는 자료독점기간을 결정했다. 8+2+1이라는 공식은 8년의 자료 독점, 2년의 마케팅 독점, 그리고 추가적 1년은 새로운 적응증에 대한 자료 독점기간을 뜻한다. 8년이 경과한 후 2년 동안 자료공개를 허용하여 제네릭을 생산하고 그 판매허가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판매하지는 못하도록 제한하였다. 만약 8년의 자료독점 기간 내에 새로운 치료적응증(new therapeutic indications)을 허가받으면 자료독점기간은 1년 더 확대될 수 있다. 즉 판매독점기간은 최대 11년이다. 8+2+1의 기간이 끝나야 제네릭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유럽의 새 약사법은 2005년 11월부터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료독점권의 확대와 통일화를 이룬 유럽연합은 미국의 자료독점권보다 더 강력한 공식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신흥제약시장과 미국, 유럽 제약회사들의 위기감 사(제약산업 전문 리서치)에 따르면 2009년 세계의약품 시장 규모는 8,370억 달러(약 1,068조 원)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2008년 456억 달러)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IMS Health는 향후 10년간 의약품시장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2009년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는 38.5%, 유럽 29.8%, 일본 10.8%,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12.7%, 남미 5.5%, 기타 3.4%를 차지했다. 북미, 유럽, 일본이 79%를 차지한다. 한편 북미, 유럽, 일본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2007년 86.4%). 그 이유는 미국, 유럽, 일본은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특허만료, 신약승인 건수 감소, 약제비 절감을 위한 의료정책 등으로 1~2% 성장에 그친 반면, IMS 헬스가 일명 ‘파머징 마켓(Pharmerging Market, 신흥제약시장)’이라고 부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태국 등 17개국의 의약품시장이 급속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곳으로 중국과 인도를 주목하고 있는데, 중국은 2020년 세계 두 번째 의약품 시장으로 부상, 인도는 2015년 세계 10위권 내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시장변화에 따라 초국적제약기업들은 독점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고, 신흥제약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초국적제약회사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80%이상을 차지해왔던 북미, 유럽, 일본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의 가격으로 결정한 후 다른 국가에도 그만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그 약을 사 먹을 수 없다 해도 제약회사에겐 그만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을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초국적제약기업들은 특허권보다 자료독점권을 얻기가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특허보다는 자료독점권을 통해 독점을 획득해왔다. 자료독점권은 특허권에 비해 독점기간이 짧지만, 그 효과가 같고 훨씬 간편한 절차를 거쳐 쉽게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의 환자개인 내지 공공의료가 파탄날 지경까지 이윤을 뽑아내고, 제네릭이 수출되거나 수입되는 것을 막아왔다. 개발도상국에도 FTA와 트립스-플러스 조항(트립스 협정보다 더 높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함)을 강요하면서 특허권과 자료독점권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제네릭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세계의 약국‘인데 인도에서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려 한다면 전 세계 민중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세계의 약국’과 의약품접근권 투쟁 작년 1월에 인도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처지는 많이 달랐지만 서로를 만나게 했던 키워드는 글리벡, 에이즈, FTA였다. 인도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초국적제약사 노바티스와 소송이 진행 중이고, 유럽과 FTA협상 중이었다. 우리는 2003년에 글리벡 강제실시투쟁과 2009년 에이즈치료제 ‘푸제온’ 강제실시투쟁을 한 경험이 있고, 한-미 FTA를 체결한 상태, 한-EU FTA는 협상 중이었다. 필자는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는 인도가 2005년에 트립스 협정을 수용한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실은 필자는 ‘글리벡’ 강제실시 투쟁당시에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복제약)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안도했었지만, 인도의 역할이 ‘세계의 약국’ 수준인 줄 실감하지 못했다. 에이즈운동을 하게 되면서 전 세계 3300만명이 넘는 에이즈감염인들이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는지, 인도의 제네릭이 에이즈감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인도는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의 90%를, 전 세계 에이즈치료제의 50%를 공급하고 있다. 북미, 유럽, 일본, 한국 등 소위 선진국과 몇몇 중진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도산 에이즈치료제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는 에이즈치료제 외에도 항생제, 항암제, 혈압약, 당뇨약 등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시장의 20%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도 제네릭의 의미란 무엇인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글리벡 투쟁 당시에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을 글리벡에 비해 1/20도 안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글리벡 투쟁의 정당성 그 자체였고, 희망이었다. “우리가 연간 약 1500달러를 내면 약을 먹을 수 있는데 왜 3600만원을 내야 하느냔 말이야. 노바티스가 돈이 없어 글리벡을 먹지 못하는 한국의 환자들을 내팽개친다해도(실제로 공급거부를 했었다) 우리에게는 인도약이 있단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요구했지만 특허청은 우리의 요구를 기각했다. 기본권이자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제약사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우리는 1년에 1000억 원가량을 노바티스에 지불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낼 수 없는 개발도상국에게 인도 제네릭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 특허법의 역사와 더불어 활동가들이 특허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특허강화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제조공정을 달리하여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인도는 트립스협정에 따라 2005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제도를 재도입하게 되었지만 전 세계의 환자, 활동가들이 연대투쟁을 벌여 공중보건과 생명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인도특허법에 담을 수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초국적제약사들의 영구독점전략인 ‘에버그리닝’을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인도특허법 섹션(section) 3(d)에 담겼는데, 1995년 이전에 개발된 약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치료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사용, 새로운 제형, 새로운 혼합품일지라도 특허를 얻지 못하도록 하였다. 제약자본은 특허가 강화되어야 혁신적인 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실은 치료효과가 그다지 향상되지 않은, 사소한 변형을 했을 뿐인 자신들의 신약을 ‘혁신약’이라고 부르며 독점권을 얻기 위해 특허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인도특허법이 자료독점권이나 특허-허가 연계와 같은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담고 있지 않고, 무분별하게 특허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약국’을 없애려는 인도-유럽 FTA 그러나 초국적제약기업은 인도특허법에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포함시키려고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2006년 1월에 글리벡 특허가 거절되자 인도특허법 섹션 3(d)가 트립스협정에 위배된다고 2006년 5월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7년 8월과 2009년 6월에 각각 노바티스의 소송을 거절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노바티스는 섹션 3(d)조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2009년 8월에 대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한 바이엘사는 항암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인도 시플라사가 판매허가를 받자 특허-허가 연계제도를 도입하고 시플라사의 판매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대법원까지 끌고간 바이엘사의 소송은 2010년 12월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법원은 특허제도와 의약품규제제도는 별개이고, 인도법 하에서는 의약품규제기구가 특허약의 제네릭 판매허가를 막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시플라사의 판매허가 여부는 바이엘사가 이미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로슈사 또한 항암제 ‘타세바’에 대해 특허-허가 연계를 주장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바 있다. 2008년에 시플라사가 타세바와 같은 제네릭을 시판하자 로슈사는 특허-허가연계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시플라사는 특허무효소송으로 맞대응했다. 2009년 4월에 고등법원은 시플라사의 판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2009년 8월에 대법원은 로슈의 소송을 기각했다. 현재 특허소송은 진행 중이다. 인도에 있는 초국적기업들의 연합인 OPPI(Organisation of Pharmaceutical Producers of India)는 자료독점권, 특허-허가연계, 섹션 3(d)의 개정을 촉구하는 로비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초국적제약기업의 요구를 한방에 관철시키려는 것이 인도-EU FTA이다. 인도정부와 유럽연합은 의약품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에 대한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고 3월에 체결을 할 예정이다. 지재권조항에 대한 대립 때문에 유럽연합이 이번 FTA에 유럽식 자료독점권을 비롯하여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다 포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자료독점권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세계의 약국’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초국적제약회사가 노리는 것은 인도의 특허요건에 미달하는, 임상적 효과가 더 낫지도 않은 약들에 대해 더 수월한 방식으로 독점을 획득하여 제네릭의 생산을 막고 비싼 약값을 받으려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은 인도처럼 특허요건이 엄격한 나라에서 특허가 없는 약에조차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인도에서는 글리벡 외에도 에이즈치료제 ‘칼레트라’, ‘비레드’ 등이 섹션 3(d)에 따라 특허가 거절되었고, 제네릭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특허가 거절된 약들에 자료독점권이 주어진다면 자료독점기간동안 제네릭 판매,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이 말은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의 민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미국 노동자 운동의 부활인가? 아랍 지역 노동자 민중이 파업과 반정부 시위에 나서고 있는 지금, 미국에서도 시위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주도 매디슨에서 수만 명의 공공부문 노동자와 그 지지자들이 2주 넘게 수백 때로는 수천 명씩 주의회 의사당을 점거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위스콘신의 새로운 공화당 주지사 스콧 워커가 발표한 ‘예산수정안’(budget repair bill)의 통과를 저지하는 것이다. 예산수정안은 공공부문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크게 삭감하고, 단체교섭권을 철저히 제한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는, 비슷한 예산안이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인디애나주와 오하이오주의 의사당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동료 노동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연대집회를 벌이고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오고 있다. 이렇듯 노동 이슈가 중심이 된 대규모 투쟁은 미국에서 대단히 드문 일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노동조합은 한편으로는 노동 탄압과 탈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협조주의 경향과 물질적 풍요에 안주하면서 쇠퇴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투쟁은 미국 노동자운동과 정치적 상황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진1%] 워커의 예산수정안 워커의 예산수정안은 2월 25일에 위스콘신 주하원을 통과했고, 이제 주상원에서의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예산수정안에 따르면 주와 지방정부에 고용된 (경찰, 소방관, 주경찰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의 연금과 건강보험 비용 부담분이 각각 50%와 최소 12%씩으로 설정되어, 실질적으로 임금의 약 7%가 삭감된다. 또한 예산수정안은 임금인상을 소비자물가지수 이하로 한정하고, 계약을 일 년 주기로 제한하였다. 게다가 새 수정안은 주와 지방정부에 고용된 대부분 노동자가 수당이나 노동조건과 같은 쟁점으로 교섭하는 것을 금지하고, 물가인상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까지의 임금 협상만을 허용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은 매년 투표를 통해 교섭대표로서의 증명을 갱신해야 하며, 급여에서 노동조합비를 공제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와 비슷하게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 수당, 권리를 빼앗는 예산안들이 테네시, 인디애나, 오하이오, 메인, 플로리다, 미시간, 오클라호마를 포함한 여러 다른 주 의회에서 발표되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러한 정책들이 막대한 주 재정적자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정당화한다. 주정부가 재정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워커는 자신의 법안이 위스콘신의 현재 예산에서 1억 3800만 달러의 적자와 향후 2년간 예상되는 36억 달러의 부족분을 극복하고 수천 명의 공공부문 해고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예산안에 격렬히 반대했던 노동조합들과 위스콘신주 민주당 의원들은 단체교섭권이 온전히 유지된다면 임금과 수당 삭감에 동의하겠다면서 주지사와 타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워커 주지사는 이러한 절충안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미래에 주 정부가 적자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취할 자유가 없어져 어려움에 처한다는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으로 묘사한다. 주 재정위기, 과연 얼마나 심각한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미국은 상당한 규모의 재정위기에 직면해있다. 연방, 주, 지방 정부의 부채를 모두 합치면 올해 안으로 1946년을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에 달할 것이다. 미국의 2011년 국가부채는 GDP 대비 10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44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대부분 2011년 7월 1일에 시작되는 2012년 회계연도 예산 부족이 예상된다. 이는 비단 올해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년간 경제위기로 인해 늘 예산 부족에 시달렸다. 주정부 적자가 발생한 주 원인은 2009년 이후 세금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주정부들은 막대한 규모의 연금기금의 적자에 직면했다. 지난 몇 년간 주정부가 필수 항목 예산을 삭감하지 않도록 했던 연방정부의 보조금은 2011년 회계연도 말이 되자 거의 소진됐다. 미국의 우파들은 재정 문제의 책임을 공공부문 노동자와 이들에게 제공되는 복리후생 제도의 탓으로 돌린다. 이는 보수집단의 공통된 주문이다. 하지만 사실 주정부 적자의 근본적 원인은 금융자본의 무모한 투기행태와 그로 인해 촉발된 2008~2009년 경제위기에 있다. 지난 30년 간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은 연금기금 투자 포트폴리오를 유치하여 엄청난 수수료를 챙기는 한편, 이를 리스크가 높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부동산 투기와 부채담보부채권(CDO)에 투자하였다. 재정위기에 처하자, 109개 연금기금은 약 1년간 8,6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동시에 실업과 임금 하락으로 세수가 감소했다. 현재 주 세수는 위기 전에 비해 12%(인플레이션 반영) 감소했다. 이에 따라 주정부는 공공지출을 급격히 줄였지만, 여전히 커다란 예산 공백에 직면해있고 그것을 채울 세원을 찾느라 고심 중이다. 놀랍게도 재정위기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은 지역은 위스콘신, 인디애나, 오하이오와 같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지역들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주는 2011년 회계연도에 처리할 수 없었던 적자 82억 달러를 포함하여 회계연도 2012년에 254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2011년 회계연도 예산의 29.3%에 달한다. 일리노이는 2011년 회계연도 예산의 44.9%인 15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에 비해 오하이오의 2012년 회계연도 예산 적자는 예산의 11.0%인 30억 달러로, 비교적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애나는 한 해 예산의 2.0%인 2억 7천만 달러로 예상된다. 위스콘신의 2012년 회계연도 예산은 18억 달러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예산의 12.8%이다. 현재 주정부의 적자 예상분 1억 3700만 달러는 예산의 단 1%로, 위기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위스콘신 적자 예산을 편성한 것은 워커 주지사 자신이다. 워커가 1월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업에 1억 4천만 달러의 감세를 허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가 지금 예산수정안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주 예산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정부 지출 삭감을 강제하기 위해 감세를 이용하는 정책, 소위 “야수(정부) 굶기기”로 알려진 이러한 정책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점점 더 선호하는 방법이다. 워커 주지사는 그의 예산수정안이 일자리를 지킨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영리연구조직인 위스콘신 미래 연구소(Institute for Wisconsin’s Future)은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의 감소는 민간부문에 파급효과를 일으켜 주 전체적으로 9,000에서 11,500개의 좋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과 민주당 분명히 미국의 재정위기는 주정부와 공공부문 노동자들 간 싸움의 배경을 이루지만, 그것이 유일한 쟁점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여러 주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법안들은 기업 엘리트와 그들을 지지하는 우파적 정부 관료들이, 이미 줄어들고 있는 미국 노동조합의 힘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 전략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성공과 자유지상주의 티파티 운동의 지지로 한껏 고무된 보수주의자들은 재정 문제를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공공부문이 주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민간부문의 조직률이 7%로 떨어진 반면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36%의 조직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조합비 납부를 어렵게 하고, 노동조합대표권승인을 위한 투표를 매년 실시하도록 함으로써, 노조 조직률을 낮추고 민주당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려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찰스 녹스, 데이비드 녹스와 같은 신자유주의 기업 엘리트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지금 노동조합 반대를 선동하는 공화당의 선거운동에 수십만 달러를 퍼붓는다. 워커는 선거운동 당시 녹스 기업의 정치행동위원회로부터 4만3천 달러를 받았다. 녹스 형제는 워커의 민주당 반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 340만 달러를 썼던 공화당 주지사 연합에도 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데이비드 녹스와 티파티 운동 지지자들이 설립한 ‘번영을 위한 미국인’이라는 단체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축소하려는 워커의 공약을 지지하는 캠페인 광고에 34만2천 달러를 사용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의 공세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워커의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통상적이지 않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위스콘신의 민주당 주 상원의원과 인디애나 하원의원들은 투표에 필요한 정족수에 미달하도록 회기 동안 일리노이에 ‘피신’하기도 했다. 노동조합도 평상시와 달리 매우 공세적인 전술을 시도했다. 미국 제1노총(AFL-CIO) 가맹 전미연방주지방정부노동자연맹(AFSCME) 및 전미교직원노조연맹(AFT) 산하 지부의 협의체인 중남부위스콘신노동자연맹에는 민간부문 노동조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현재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AFSCME의 전국 본부와 AFL-CIO는 위스콘신, 인디애나, 오하이오에서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전국적으로 연대 집회를 조직하고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 물론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은 단지 민주당에 대한 공화당의 공격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가들과 자유지상주의적 정치인들로 구성된 ‘역사적 블록’이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동시에 주와 연방 수준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밀어붙이기 위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이러한 공격에서 유일한 희생자가 아니며, 공화당 역시 유일한 가해자가 아니다. 민간부문 노동조합 역시 많은 곳에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사업장에서 조직대상 노동자의 과반수가 노동조합 결성에 찬성하여 노조가 단체교섭 대표권을 정상적으로 획득하더라도, 노동조합 가입을 의무 조건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또는 종업원 전원이 노동조합비를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노동조합관련법(Right to Work Act)이 현재 여러 주에서 추진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오바마 정부는 작년 말 향후 2년간 연방정부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는 안에 이어 부자들에 대한 감세 연장안을 발표했다. 물론 이것은 실업,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긴급 구제에 수조 달러가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위스콘신에서의 투쟁과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러 투쟁은 민주당을 강화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최초의 공세적인 대중운동이며,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힘을 강화할 기회이며, 또 이러한 운동이 계급과 계급 투쟁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 노동조합이 민주당과 밀접한 제휴 관계에 있고 좌파 전반이 이념적 대안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노조 간부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계급이나 계급투쟁이라는 분석틀로 최근의 노동자투쟁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민주당이 대변한다고 흔히 여겨지는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중간계급’ 미국인과 공화당과 티파티 운동,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소수 부유층 간의 싸움으로 노동자투쟁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들이 이른바 ‘중산층 생황양식’을 보장하는 ‘진보적인’ 오바마 정부를 무력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장기적으로 노동자운동에 필요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비판을 발전시키기 위한 잠재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출발을 위하여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투쟁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미국 노동자들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대단히 강력한 투쟁을 펼치고 있다. 최근 미국 노동자 투쟁은 경제위기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보다, 그리고 경제위기 발발 이전 상당 기간과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하다. 노동자 투쟁은 시민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사실은 지난주에 전국 각지에서 열린 연대집회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 집회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통상 수개월의 조직화와 수천 달러의 비용이 필요한데, 이번에는 불과 며칠 만에 달성될 수 있었다. 온라인 네트워크도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위스콘신 투쟁의 영향을 받은 개인들의 적극적 참여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전 활동가들도 노동자운동과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전평화 운동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아닌 아프가니스탄 파병 철수와 국방비 감축을 통해 연방정부 예산 폭을 확대함으로써 국가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위스콘신 투쟁은 미국에서 노동자운동이 아래로부터 다시 새롭게 부활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 위스콘신 투쟁을 통해 확고한 계급의식과 변혁적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어디로건 첫 발걸음은 띄어야 여정이 시작되지 않겠는가?
의약품 접근권 파괴하는 인도-EU FTA 중단하라 유럽의 새로운 FTA정책과 지적재산권 2월 17일 유럽의회는 한-EU FTA를 통과시켰다. 3월에는 인도-EU FTA 체결이 준비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6년부터 공격적으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모두 철폐하는 새로운 FTA정책을 취하고 있다. 첫 대상이 바로 한국과 인도다. 유럽연합은 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빌미로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민형사 소송을 손쉽게 제기해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고, 제네릭(복제약)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수 있는 집행조항이 포함된다.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위조방지무역협정'(ACTA)도 준비되고 있다. [%=사진1%] 소수 선진국의 이익만 보장 ACTA 협상은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소수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다. 2008년 6월부터 한국 정부도 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데, ACTA는 사실 위조 상품의 유통을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위조 상품은 지금의 국제조약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이 ACTA에 열을 올리는 것은 지재권 강화를 통해 얻는 흑자폭을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ACTA는 수출국이나 수입국의 지재권을 침해하지 않더라도 환적(운송중인 화물을 옮겨 싣는 행위)하는 국가에서 지적재산권의 침해 여지가 있으면 세관의 압류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2009년에 브라질로 가는 인도산 제네릭이 네덜란드에서의 환적 과정에서 압류당하는 사건은 ACTA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압류된 의약품은 수출국인 인도와 수입국인 브라질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도 환적 국가인 네덜란드 세관에 의해 압류당했다. 유럽이 요구하는 지적재산권 집행조치와 ACTA가 전면 실시될 경우 이러한 일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자료독점권을 통한 의약품 독점 유럽이 의약품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자료독점권은 의약품 판매승인을 위해 제출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임상시험 자료를 제네릭 제약회사가 사용하지 못하게 해 제네릭 판매를 지연시켜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이 부여되면 특허가 없거나 만료된 의약품일지라도 판매독점권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제네릭 생산과 수출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강제실시와 같은 특허권의 공적 사용도 할 수 없다. 유럽은 2001년부터 유럽약사법의 포괄적 개정을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료독점 기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물질특허가 의약품독점을 보장하는데 불충분하다고 여겨 1987년에 자료독점권을 도입했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20년 동안 특허권을 보호하고 있으나, 자료독점기간은 천차만별이다. 신흥 회원국들은 자료독점기간의 확대가 보건의료예산에 지나친 부담을 줄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2003년 12월 유럽의회는 자료독점 기간을 최대 11년까지 보장하도록 결정했고, 이렇게 개정된 약사법은 2005년 11월부터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자료독점권의 확대와 통일로 미국의 자료독점권보다 더 강력한 제도를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신흥제약시장의 성장에 대한 대응: 독점의 확대 의약품 전문조사기관 에 따르면 2009년 세계의약품 시장 규모는 8,370억 달러(약 1,068조 원)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이며, 향후 10년간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런데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와 유럽,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86.4%에서 2009년 79%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신흥제약시장'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태국 등 17개국의 의약품시장이 급속히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곳으로 중국과 인도가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2020년 세계 2위의 의약품 시장으로, 인도는 2015년 세계 10위권 내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장변화에 따라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독점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세계 의약품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해왔던 북미, 유럽, 일본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치로 가격을 결정한 후 다른 지역에도 강제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그 약을 사 먹을 수 없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독점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환자 개인이나 공공의료가 파탄 날 지경까지 이윤을 뽑아내고, 제네릭이 수출되거나 수입되는 것을 막아왔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한창 문제가 되었던 때를 기억해보자. 글리벡과 똑같은 효과가 있는 인도 제네릭을 1/20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글리벡 투쟁의 정당성 그 자체였고, 희망이었다. 1년에 180만 원 정도면 먹을 수 있는 약을 한국의 환자들은 3,600만 원을 내고 먹어야 했다. 노바티스가 공급을 거부하는 사태로 한국 환자들이 사경에 내몰리는 일까지 있었지만, 특허청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대신 노바티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 결과 우리는 1년에 1,000억 원가량을 노바티스에 지불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낼 수 없는 개발도상국에게 인도 제네릭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세계의 약국' 인도 인도는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의 90%를, 전 세계 에이즈치료제의 50%를 공급하고 있다. 에이즈치료제 외에도 항생제, 항암제, 혈압약, 당뇨약 등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의 20%를 공급하고 있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인도 특허법의 역사와 더불어 활동가들이 특허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특허 강화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했고,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제조공정을 바꾸어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었다. 2005년에 인도는 트립스협정(TRIPs,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에 따라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제도를 재도입하게 되었지만 전 세계의 환자, 활동가들이 연대투쟁을 벌여 공중보건과 생명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특허법에 담았다. 인도특허법은 자료독점권이나 특허-허가 연계와 같은 '트립스 플러스' 조항을 담고 있지 않고, 무분별하게 특허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의 약국'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의 약국'을 없애려는 인도-유럽 FTA 그러나 초국적 제약기업은 인도특허법에 트립스 플러스 조항을 포함시키려고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2006년 1월에 글리벡 특허가 거절되자 인도특허법이 트립스협정에 위배된다고 2006년 5월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바이엘사는 항암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인도 시플라사가 판매허가를 받자 특허-허가 연계제도를 도입하고 시플라사의 판매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로슈사 또한 항암제 '타세바'에 대해 특허-허가 연계를 주장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바 있다. 인도에 있는 초국적 제약기업들의 연합인 OPPI는 자료독점권, 특허-허가 연계, 인도특허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로비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개발도상국 민중의 죽음을 부를 자료독점권 이런 초국적 제약기업의 요구를 한방에 관철시키려는 것이 인도-EU FTA다. 3월에 체결 예정인 인도-EU FTA는 의약품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에 대한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적재산권 조항에 대한 대립 때문에 유럽연합이 이번 FTA에 유럽식 자료독점권을 비롯하여 트립스 플러스 조항을 다 포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자료독점권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세계의 약국'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효과가 더 낫지도 않은 약에 대해 더 수월한 방식으로 독점을 획득하여 제네릭의 생산을 막고 비싼 약값을 받으려 한다. 자료독점권은 인도처럼 특허요건이 엄격한 나라에서 특허가 없는 약에조차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인도에서는 글리벡 외에도 에이즈치료제 '칼레트라', '비레드' 등이 특허가 거절되었고, 제네릭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특허가 거절된 약들에 자료독점권이 주어진다면 자료독점 기간동안 제네릭 판매,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이 말은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의 민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한진중공업은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15일 결국 172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를 정리해고 근거로 이야기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발표 직전에 현금배당을 결정하는 등 여유만만한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2009년에 4천6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2010년 3/4분기까지 1천8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1%]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노동조합과 지역시민사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 조선소를 폐쇄하고 필리핀의 저임금 지역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기 위한 사전조치다. 사측은 영도 조선소에 물량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같은 기간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는 서른 척이 넘는 선박 건조를 계획하고 있다. 사측이 의도적으로 수빅 조선소로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는 뜻이다. 필리핀 수빅 공장, “꿈을 안고 들어가 시체가 되어 나오는 곳” 그렇다면 한진중공업의 물량 몰아주기로 필리핀의 노동자들은 좀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인근 지역에서도 유명한 저임금 고강도 노동 착취 사업장이다. 한 수빅 지역 노동 단체의 표현에 따르면 수빅 조선소는 “꿈을 가지고 들어가 시체로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한진중공업 수빅 조선소는 2006년 필리핀 정부의 적극적 지원 속에서 건설이 시작되어 2007년 12월 1단계 완공, 2009년 4월 2단계 완공을 마쳤다. 현재 2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약 4만 5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할 계획이다. 수빅 자유경제구역에 위치한 한진중공업 조선소는 필리핀에서 가장 큰 직접투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외양과 달리 수빅 조선소의 노동조건은 필리핀 내에서도 최악으로 꼽힌다. 필리핀의 한 노동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빅 조선소에 들어간 노동자들은 최장 3개월까지 훈련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이 기간에는 하루 3달러의 임금만 지급된다. 그리고 이 훈련 기간을 거치면 약 6개월 가까이 수습 기간을 추가로 또 거치는데 이 수습 기간에 관리자의 눈에 들어야 정식 채용이 된다. 수습 기간에 시급은 0.6달러(약 7백원)에 불과하다. 수빅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정식 채용이 된다고 해도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40여개에 달하는 하청 업체에 고용이 되는데, 우리의 불법 파견과 비슷하다. 필리핀 노동법에서도 금지하는 불법 파견인데, 한진중공업은 자유무역구역에서의 특권적 지위를 활용해 불법적 작태를 지금도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다. 임금 착복도 존재한다. 한진중공업은 철야 맞교대 조의 교대 시간 간격 조정을 통해 30분 이상의 추가 근로를 의무화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추가 근로 수당을 지불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지불되지 않는 임금이 연 830만 달러(약 100억 원)에 이른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수빅 조선소 노동자들 대부분은 출퇴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6~8명이 기숙사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노동안전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약 5천 건의 안전 사고가 공식 보고되었고, 2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열악한 위생 조건으로 인해 321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조선소에는 반상근을 하는 의료진 한 명이 있을 뿐이며 가까운 병원은 27Km 밖에 위치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노조 탄압은 더욱 가관이다. 2009년에는 노조 지도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노동 안전 협약을 근거로 노조 간부들 60여명을 안전 협약 위반으로 해고하기도 했다. 최악의 노동 조건은 방치한 체 정작 노동 안전 협약을 노조 간부들의 해고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영도 조선소와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모두 한진중공업 자본으로부터 노동 착취와 노조 탄압에 힘겨워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자본은 영도 조선소 물량을 줄여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그 물량이 이동하는 필리핀 수빅에서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연대 투쟁으로 공장 철수를 막아낸 노동조합들 이러한 자본 이동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무기는 역시 국제적 단결과 공동 투쟁뿐이다.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을 통해 공장 폐쇄를 막아낸 사례는 많지 않지만 꾸준하게 보고되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는 브라질 계 철강 자본인 발레가 2009~2010년 캐나다의 광산을 폐쇄하려 했을 때 보여준 국제적 공동 투쟁이다. 캐나다 노동조합은 1년이 넘는 기간 단결된 파업투쟁을 벌였고, 본사가 있는 브라질의 철강 노조가 캐나다 공장 폐쇄 문제 해결을 임단협 요구에 함께 넣어 파업을 조직했다. 캐나다 광산의 대체지로 선정된 호주 인근에서는 호주 철강 노동자들이 연대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발레 자본은 2010년 말 이러한 국제적 노동자 연대 투쟁에 두 손을 들었다. 발레 자본은 캐나다 광산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투쟁 역시 국제적 연대에서 해법을 찾아봐야 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노동자들은 물량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라 한진중공업 자본으로부터 노동 착취와 노조 탄압을 당하는 같은 노동자들이다. 한국에서는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노동 조건 개선을 내걸고,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서는 한국의 정리해고 철회를 내걸고 공동 투쟁을 벌인다면 한진중공업 자본도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세계 민중들은 지난 1월 25일부터 18일 동안 전 이집트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구호를 외치고, 기도하고, 전경들과 싸우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결국 이집트 민중들의 요구가 관철되었다. 2월 11일 금요일, 무바라크 일가는 카이로를 떠나 홍해 해안에 위치한 별장으로 도망쳤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위에 대한 회유책으로 불과 12일 전 임명된 오마르 술래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군사최고위원회에 이양했다고 발표했다. 군부는 2일만에 발표된 3번의 성명을 통해 ‘공정한 자유선거’를 실시하고 국민의 ‘정당한 요구들을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 주류 언론은 이집트 현지에선 1.25 혁명으로 불리는 이 운동을 우발적인 봉기로 묘사하며, 이를 1월 14일에 벤 알리 대통령 체제를 전복한 튀니지 시민항쟁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집트인들의 봉기가 튀니지의 투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25 혁명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이집트의 정치제도와 사회경제적 구조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1.25 혁명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민주화 활동가, 청년과 노동자들이 지난 몇 년간의 활동과 조직화를 통해 맺은 결실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것이 1.25 혁명의 의의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배경이다. 1.25 혁명의 이집트 내적 원인을 검토하고, 이러한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혁명을 통해 가능하게 된 구조적인 변화의 전망을 살펴보자. 1.25 혁명의 기원: 30년 동안 이어진 독재와 신자유주의 이집트에서 계급 양극화, 독재정권과 미국과의 동맹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집트의 현재 정치, 사회적 구성의 기원은 가말 압델 나세르 초대 대통령의 죽음(1970) 이후 혼란상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세르의 민족주의적 외교정책과 인민주의적 독재통치가 해체되었고, 1970년대 나세르의 후임자인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드 대통령은 나세르의 국가주도 산업화 정책으로 등장한 신도시자본가계급과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해외자본에 개방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동맹을 맺어, 미국의 중동 패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미국, IMF, 세계은행 등이 전파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하여 공기업의 사유화를 시작하고 보건의료, 교육, 공공 부문 임금, 사회복지에 대한 공공 지출을 삭감했다. 1981년 사다드 대통령의 암살 이후 정권을 장악한 무바라크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했다. 무바라크 치하 30년 동안 시행된 경제개혁은 나세르가 도입한 식량 보조금 삭감, 토지개혁 역전, 농촌지역 부동산시장 자유화, 공공기업 사유화, 국제금융시장과 해외투자에 대한 추가 개방, 세제혜택과 미약한 노동기준이 적용된 경제특구 건설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토지개혁의 역전으로 인해 농촌 인구가 도시로 떠났고, 도시는 곧 도시빈민과 실업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공공기업의 사유화와 함께 정리해고, 실질 임금 축소, 노동조건 악화, 노동유연화 등이 도입되었다. 2002년의 도입된 경제 특구법은 이러한 노동조건 악화를 심화시켰다. 무바라크 정권은 소수 자본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들에게 공공기업 매각이나 정부조달 관련 특혜를 제공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무바라크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와 아흐메드 나지프 전 총리(2004년~2011년 1월)의 영향 아래 이 밀월관계는 보다 공고화되었다. 이들 재계 엘리트들이야 말로 이집트의 놀라운 경제성장(2005년~2008년 사이 평균 GDP 성장률 7%)의 핵심 수혜자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높은 경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빈곤과 계급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집트 국민의 약 40%는 하루 2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생활한다. 100여 개 가문이 이집트 부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실업률은 10%에 달하고, 대졸 청년 실업률은 30%이다. 취업인구 중 60%는 비공식부문에 종사한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을 통해 소수 엘리트의 부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 1981년 사다드의 암살로 인해 실시된 비상계엄을 테러위험에 대한 대응으로 정당화하며 30여 년 동안 유지했다. 비상계엄법률은 경찰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며,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유예한다. 또한 검열을 합법화하고, 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하며, 승인 받지 않은 정치조직의 형성을 금지한다. 2010년 11월에 시행된 지난 총선의 부패상은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총선에서 크게 선전한 이집트의 최대 야당인 무슬림 형제단은 광범한 탄압을 받았다. 이들은 선거운동을 제한당하고, 당원과 지지자 천여 명이 구속되어 선거권을 박탈했으며, 유권자들의 투표권은 원천 봉쇄되었다. 이렇게 구조화된 경제적 양극화와 광범위한 정치탄압은 이집트 국민으로부터 더욱 결렬한 분노를 불러왔고 결국 1.25 혁명을 촉발했다. 여러 계급의 광범위한 대중들은 이집트 정부가 민중이 아닌 다른 이들, 즉 신자유주의 엘리트, 미국, 이스라엘에 봉사하고 있을 따름임을 깨닫게 되었다. 정부와 이 정부가 대변하는 체제에 대해 다양한 사회경제적, 정치적인 불만을 품은 이집트 시민들은 무바라크 정권을 하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혁명의 주체: 청년과 자주적 노동자 운동 주류 언론은 고등교육을 받은 이집트 청년들이 시위의 핵심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 매체가 집회 동원에서 보여준 역할에도 주목한다. 이렇게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강조함에 따라 청년층의 집회 참여는 어떠한 기획도 없이 조직되지 않은 자발적인 행동으로 묘사된다. 물론 타흐리르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 중 과거에 집회 참여 경력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활동을 해왔고, 정치적 세력으로 조직화해 왔던 집단도 분명 있었다. 예컨대 1월 25일 첫 집회를 공동주최하고, 이후 18일 동안 주도적 역할을 한 4.6 청년운동(April 6 Youth Movement)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2008년 4월 나일텔타 주변에 위치한 섬유업 중심지에서 일어난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또 다른 단체로는 경찰들이 몰수한 마약을 서로 나누어 갖는 사진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후 경찰한테 살해당한 소기업인의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도 있다. 이 단체는 결성 직후 광폭한 경찰의 폭력과 부패에 반대하는 전면적인 투쟁으로 확산됐다. 이와 같은 단체들이 유동적인 네트워크의 형태를 가지고, 주로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게 리더가 없는 것도 아니며, 이들이 지닌 힘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집트 청년들이 온라인 매체를 폭압적 상황과 사이버시대에 적합한 조직화 수단 및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주류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못 받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운동 주체가 있다. 바로 이집트의 노동자들이다. 2월 9~11일에 다양한 업종(섬유, 군용품, 우편, 운송, 병원, 행정 등)에 종사하는 공공, 민간부문 노동자들 수만 명이 파업에 나섰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모인 시민들은 이러한 노동자의 행동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정권을 압박하는 데 파업이 갖는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했다. 국제노동진영은 노동자들의 행동이 형세를 일변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집트 노동자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들은 친정부 성향의 이집트노동조합총연맹(ETUF)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이집트노총은 무바라크정권을 끝까지 지지했다. 법적으로 이집트의 모든 노조는 이집트노총에 가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2월 9~11일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은 이집트 노총이라는 공식체계를 벗어나 자신들을 대표하고 지도할 파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러한 독자적인 조직화는 선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집트 노동자들은 무바라트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투쟁해 왔다. 2004년에서 2009년 사이에 17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1,900건이 넘는 파업 등 쟁의 행위에 참여하였고, 이때에도 2월 9~11일 파업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파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04년부터 이어진 파업은 4.6 청년운동의 형성으로 이어진 2008년 4월 섬유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절정에 달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대중투쟁과 더불어 이집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집트사회에 저항의 문화를 심었”고 “시민권과 권리에 대한 인식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친 노동자들의 행동은 민주노조운동으로 싹트기 시작하였다. 2007년 12월 5만 5천 명의 지방 세무원 파업의 결과, 경제적 요구의 쟁취뿐 아니라 부동산세무원 독립 노조라는 이집트노총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노조가 사상 처음으로 결성되었다. 그리고 1.25혁명이 한창 무르익던 1월 30일 독립 노조들과 노동자위원회가 이집트독자노조연맹(EFTU)의 결성을 발표했다.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 중에는 자신의 요구를 경제적인 것으로 한정 지은 이들도 있었지만, 노동자 대다수는 무바라크의 사임을 요구했다. 일부는 근본적인 정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요구하였다. 예건대 철강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1)무바라크 대통령과 정권과 관계된 모든 인사들의 즉각적인 사임, 2)정권 인사 등 모든 부정부패 인사의 재산 몰수, 3)이집트노총 해산과 민주노조 결성, 4)매각, 폐쇄, 사유화된 공기업의 몰수, 노동자 민중의 통제를 통한 공공부문 국유화, 5)생산, 가격, 분배와 임금을 감시할 수 있는 직장위원회 구성, 6)모든 사회집단들이 참여하는 제헌의회 소집. 새롭게 결정된 EFTU의 요구는 월 최저임금 1,200이집트 파운드(1984년에 규정된 현 최저임금의 약 4배), 최저임금 10배로 최고임금 제한, 사회보장, 보건, 주거, 교육, 연금, 복지, 결사의 자유 등에 대한 권리보장 등이 있다. 이러한 요구는 이집트 민주화운동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며,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하는 데 있어 노동자와 민주노조의 역할이 중요했던 만큼 미래에도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함을 보여 준다. 전망: 군부의 반혁명을 저지하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권력을 이양받은 군부는 무바라크 정권 및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를 통해 많은 특혜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무바라크 퇴진에 군부의 개입을 강력히 요청했고 군부의 역할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집회가 벌어지는 동안 군이 개입을 자제하였기 때문에 집회참가자들은 군을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이집트 군대는 나세르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서구열강에 맞서온 역사가 있는 만큼, 이미 상당한 사회적 존중을 받았다는 이유도 있다. 더욱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사병과 하급 장교들의 처지가 이집트 청년들이 겪는 현실과 유사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군사 엘리트는 구체제 아래서 많은 특혜를 받았다. 군은 지난 3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받은 40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의 수혜자였다. 이 돈은 국가안보와 방위 산업뿐 아니라 시멘트, 건설, 석유, 올리브유, 식수 등 다양한 산업에 투자되었다. 넓은 사막과 해안 토지를 개발하여 내․외국인 소비자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쇼핑몰, 관문도시, 해변 휴양지 등으로 개발했다. 분명히, 군부는 항쟁의 조속한 종결과 현상 유지를 원하였다. 군이 여전히 야당 정치인에게 권력을 이양하지 않은 핵심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집회 참가자들 대다수는 군부나 향후 집권할 정권이 바람직한 행보를 취하도록 자신들이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집회에 참여한 한 활동가는 기자로부터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상관없습니다. 타흐리르 광장에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현재 군부는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정당성이 의심되던 국회를 해체시키고 6개월 이내에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또한 헌법 개정안을 직접 작성하겠다는 입장을 바꿔서 현재 이를 담당할 전문가 위원회를 소집했다. 무슬림 형제단 단원 등 야당 세력들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집회 지도자들이 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 역시 특기할만하다. 반면에 노조의 회합을 금지함으로써 파업을 사실상 불허했고 비상계엄법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1.25 혁명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은 군부가 선거 일정을 명확히 제시한 데 대해 만족하였다. 그러나 파업은 계속되고 있고 시위참여자 중 일부는 자신들의 요구가 전부 관철되기 전까진 타흐리르 광장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집회 외에 군부의 권력을 억제할 다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시급한 과제는 군부가 약속을 이행토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가 약속을 지켜,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선출된 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적인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집트의 심각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과 군사 엘리트의 권력을 해체하고 이집트 경제에 구조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역전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난점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집트 1.25혁명과 유사한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는 한국 민중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중요한 성과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직선제 도입을 독재 종식의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여기며 이를 넘어서는 요구를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군부가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를 수용하자, 운동세력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보다는 어느 야당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거듭하게 되었다. 결국 야당은 단결에 실패하였고, 이듬해 치러진 직선제 대선은 군 장성 출신의 노태우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만 부여해 주는 꼴이 되었다. 이 과정과 뒤이은 3당 합당 과정에서 군부는 야당과 타협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상당부분 유지할 수 있었다. 군부의 권력을 유지시켰던 사회경제적 체계는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었고, 김대중 정권을 비롯한 이후 집권세력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권리를 대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6월 항쟁은 한국 노동자 운동에 있어 중요한 공간을 열었으며, 이는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대변된다. 1987년 7, 8월 노동자들은 임금인상뿐 아니라, 민주노조의 건설을 위해 싸웠다.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의 연속선상에 위치하는 것이며, 이집트에서도 응당 그래야만 한다. 다만 한 가지 불행한 점은 당시 한국의 노동자 운동이 견결한 정치적 역량으로 결집할 만큼 단결되어 있지도, 그럴만한 경험도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1997년과 1998년 IMF 위기에 대해서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도 아쉬운 측면이다. 만약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이 한국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혁명에 대한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를 정확히 분석하며, 내부의 차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단결을 강화해 나가는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이집트 민중들에게 현 시점은 많은 난관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희망과 결의를 새로이 다질 시간이다. 무바라크의 퇴진까지 이어진 투쟁의 물결 속에서 무언가 다른 가능성이 포착되었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는 자신들이 지닌 권력을 실감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학습할 수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진료소를 세우고, 무대장치를 설치하고, 질서유지단과 집회장 청소를 위한 봉사단을 조직하였다. 무슬림들이 기도를 할 때는 기독교인이 이들을 경호해 주었고, 기독교인의 기도시간에는 무슬림이 그 경비를 맡았다.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지도적 역할을 행하였다. 노동자들은 파업 위원회를 꾸리고 독립 노조를 결성하면서 민주주의를 실천하였다. 그 무엇보다 이집트 민중들이 단지 정권 교체가 아닌 부패한 엘리트의 제거와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부의 재분배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이 모두를 달성할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의 꾸준한 투쟁(혁명적인 투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 모두가 이집트 민중의 손에 달려 있다. 국제 노동계와 민중운동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난 3주간 세계 각국의 노조와 좌파 단체들은 이집트 민중을 지원하였다. 연대 집회를 조직하고, 무바라크의 검열을 피해 정보를 공유하며, 자국정부를 통해 무라바크를 압박하였다. 무바라크가 사퇴하였다고 이러한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이집트 민중들이 투쟁하는 한, 이들과의 계속 교류하고 연대하여 국제적 투쟁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이제 막 시작된 독립노조운동은 실질적인 정치적 실체로 발전되어 나가야 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수호하는 강력한 힘을 갖추어야 한다. 타국의 노조와 교류나 국제 노총의 지원을 통해 이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 좌파들은 이집트 민중들이 보낸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중동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메시지다. “혁명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주노동자운동을 위한 새로운 전진 지난 9월 28일 민주노총과 네팔노총(General Federation of Nepalese Trade Unions, GEFONT)은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해각서를 통해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은 1)공동의 전략을 논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두 노총 지도부들의 상호 방문 추진, 2)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경험 공유, 3)관련된 법제도, 연구, 자료 교환, 4)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각자의 활동 지원 등에 대해 합의했다. 양해각서 하에서 수행되는 사업의 일부로 네팔노총은 출국 전 선전과 교육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를 준비하는 네팔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법, 노동조건, 민주노총 노동조합에 대해 안내받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 책임을 지기 위해 네팔노총에서 훈련받은 이주민 활동가를 채용하는 데 합의했다. 국제연대의 새로운 전진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의 양해각서는 국제연대 영역에서 중대한 발전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네팔과 같은 이주노동자 본국의 노총과 함께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처음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노동계에서 이주 본국과 목적국 노조 사이의 협력은 중요한 전략으로 자주 강조된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이 이주 과정의 모든 단계에 개입하고, 빈번히 이동하는 노동자들과 장기간 접촉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총(ITUC)이 노조들의 협력관계 설정을 유도하기 위해 표준 양해각서를 개발했지만, 맺어진 협정은 많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를 낸 사례는 여전히 매우 적다. 네팔노총과의 협력이 성공적이게 되면 그것은 민주노총과 다른 이주 본국 노총 간의 유사한 협정 뿐 아니라 다른 목적국 노조들이 체결한 협정에도 긍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네팔노총의 양해각서는 또한 상징적인 성명과 연대행동을 넘어 양 당사자들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진전시키는 국제협력의 실천적인 형태를 나타낸다. 해마다 수십만 명을 해외로 보내는 나라의 총연맹으로서 네팔노총은 해외 네팔노동자의 권리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고, 그들이 결국 네팔 노동시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이와 유사하게 민주노총도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들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에는 이주 관련 활동가들이 부족하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공동체들과 연계가 약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과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에서 떠난 후에 정보를 교류하고 접촉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 두 노총은 양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네팔노총과 체결한 양해각서를 모델로 삼아 한국에 이주노동자를 보내는 다른 나라의 노조와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렇게 된다면 민주노총-네팔노총 양해각서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주의 모든 과정에서 접촉할 수 있는 노동자층이 더 확대·다양화될 뿐만 아니라, 네팔노총과 한국에 있는 네팔 활동가들이 엄호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정부는 한국에 있는 네팔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앞장선다는 이유로 압박해 왔고 양해각서를 체결한 직후 한국 G20 투쟁에 참여하려는 네팔노총 간부들의 비자를 거부한 바 있다. 한국 내 조직화에 이어지는 다른 나라 노조들과의 협력은 한국정부가 네팔활동가들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전진 국제연대 영역에서의 진전에 더하여, 이번 양해각서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민주노총의 국내 사업에 새로운 국면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활동가가 한국인 민주노총 간부와 함께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주노동자 본국의 단체에서 파견된 활동가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활동가들이 3개 국적의 가사노동자 노동조합들을 설립하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태국에서는 버마노조연맹(FTUB)이 두 개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을 성공적으로 지원했고 태국 노동조합에 이주 공동체들을 소개했다. 민주노총의 상황은 약간 다르다. 네팔노총은 장기간 한국에서 일할 활동가를 네팔 내에서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민주노총은 한국인과 결혼해서 이미 한국에 살고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라이 동지를 채용했다. 그는 이주노조 전신인 평등노조 이주지부(ETU-MB)의 조합원이었고 이후에 이주노조의 간부가 되었다. 그는 지난 10월부터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고 12월 말에 네팔로 가서 네팔노총에서 한 달 반가량 연수를 받을 계획이다. 여전히 이주노동자 권리와 조직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민주노총에서 한 사람의 이주 활동가가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 과도하다. 그렇지만 네팔 사람이자 이주노동의 경험이 있는 라이 동지는 민주노총에 특별한 자원이 된다. 민주노총이, 특히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접촉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강화할 가능성 때문이다. 지난 2개월 동안 라이 동지와 민주노총 담당자는 이미 네팔, 베트남, 버마,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공동체 지도자들을 만났고 노동권과 노조 조직화에 관한 간담회를 해오고 있다. 민주노총의 목표는 내년 중반까지 전국에서 이주노동자 500명, 2년에 걸쳐 2,000명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계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가입하게 된다. 산별노조의 지회나 일반노조, 혹은 이주노조 같은 이주노동자 독자노조가 될 수도 있다. 새롭거나 그렇게 새롭지 않을 수도 있는 질문들 민주노총에서 라이 동지의 활동, 민주노총이 이후에 다른 이주 활동가를 채용할 것이라는 예상,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조합원 숫자의 증가 가능성 등은 노동운동에서 이주민과 비이주민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운동이 언어, 경험수준,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을 뚫고 나갈 효과적인 수단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민주노총 내에 이러한 것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한국의 인종화된 사회적 위계가 노동운동에서 어느 정도로 재생산될 것인지와 민주노총에 소속된 이주노동자들이 의사결정력을 행사하고 지도부로 활동할 수 있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주민과 비이주민 활동가 사이의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적 연관관계와 자원이 많고 온정주의적인 이주센터 활동가들이 이주민들을 대신해서 발언하는 경향에 대한 분노는 2001년 평등노조 이주지부 설립으로 이어졌다. 2003-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 당시 투쟁방향을 정하고자 하는 경험 많은 한국단체들과 활동가들 사이의 경쟁 역시 이주노동자의 지도력을 억압했다. 이러한 인식은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이끌어가는 독자 노조로서 이주노조를 설립하게 된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주노조의 지도부들 다수가 표적단속 되어 추방되면서 비이주민 활동가의 권한과 그에 대한 의존이 증가한 것은 남아 있는 이주 간부들을 질식시켰다. 이러한 상황은 비이주민 활동가들이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양쪽에서 느끼게 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이주노조의 경험은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 이주민과 비이주민 사이의 연대에 장애물이 되고 이주민의 지도력을 질식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총이 진심으로 향후에도 라이 동지와 같은 다른 이주 활동가들을 양성하려 한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이주노동자 조합원을 늘린다는 민주노총의 계획도 어려워질 것이다.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처하는 첫걸음은 물론 인식과 교육,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진실한 대화다. 그러나 이를 넘어 민주노총의 가맹산하 노조들은 이주민들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이주노동자들이 주체화되고, 그들의 운동에서 지도부로 발전할 수 있는 운동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또 무엇을 위해서 조직화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새로운 조직화 목표 조직화에 대한 라이 동지의 관점은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이주노조에서의 활동 경험에 주로 기반해 있다. 서로 자기들의 의견을 밀어붙이려는 한국단체들과 활동가들에게 실망해서 그는 한동안 활동에서 떠나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다시 이주노조에 돌아와 지금은 민주노총에 있다. 산별노조나 일반노조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주노조와 같은 독자적 노조가 이상적인 조직형태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독자적 노조조직화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중요한 함의가 있지만, 라이 동지가 인식하듯 많은 경우 실제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노조에 가입하든 노조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고용주가 파업을 파괴하거나 저임금을 강제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이용하는 것을 막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즉 이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바로잡는 세력화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맞다면, 이주노동자 지도력의 발전은 처음부터 조직화의 중심 목표로서 설정되어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할 최선의 수단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나라의 조직화 경험에 기반 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있다. 첫째, 노동자들은 대개 수동적인 교육이나 상담이 아니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계급의식과 지도력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이랜드나 기륭투쟁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비정규노동자 투쟁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되었다. 2003-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한국인들의 과도한 개입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주노조 초창기 간부들에게 이전의 어떤 공식적 노조 교육프로그램보다 더 나은 훈련의 장으로 기능했다. 농성투쟁 당시에 고용허가제 철폐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요구는 실현가능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정책들이 완전히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공 가능성은 농성투쟁 참가자들, 초기 이주노조 조합원과 간부들에게 희망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6년 투쟁의 성과는 미미했고, 실망으로 이어졌다. 이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오랜 투쟁이 그 변화의 중요성과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운동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치적 요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기보다 조직화와 주체화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중단기적인 달성 가능한 목표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의 몇몇 이민자 공동체 단체들은 작은 승리들을 통해 주체화를 이루고 운동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조직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조직화 수단도 겸하는 투쟁들은 종종 ‘승리할 수 있는 목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직원·노동자협회(CSWA)는 배달과 식당 및 여타 산업에서 노동법을 강제하고 상습적인 임금·봉사료(팁) 체불 근절을 위해 대부분 미등록인 중국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상당히 성공했다. 법적 소송과 행동의 결합은 대부분 법의 기준에 못 미치는 관행을 충분히 알려냈다. 노동조건은 실제로 개선되었고 협회원 숫자와 핵심 활동가 숫자도 증가하였다. 30년이 넘는 조직화 기간 동안, 협회의 지도부는 노조로 등록하거나 공식적인 집단교섭권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주 조합원이 있는 이주노조나 일반노조들이 임금과 노동조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사에 위임하여 노동부 진정이나 사업장 집회 같은 전술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이주노동자 주체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또 다른 사례를 보면,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설립하여 이끄는 단체인 가사노동자연합(DWU)은 뉴욕주 당국으로 하여금 ‘가사노동자 권리헌장(Domestic Workers Bill of Rights)’을 채택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활동가들은 결사의 자유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뉴욕의 가사노동자들의 부당한 현실을 인식했지만 우선 권리헌장을 요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목표가 달성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가사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지도력을 획득하는 수단이 되었다. 가사노동자연합의 사례는 조직화 캠페인이 고용주를 타깃으로 삼아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사노동의 경우 사업장에 집중된 투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의 고용주가 다 다르고 고용주 바로 곁에서 일하고 살며, 일하는 중에는 노동자들이 매우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영세규모 공장들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고용허가제로 인한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극히 불평등한 관계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취약한 위치는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대해 직접 맞서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필자는 ‘사업장 투쟁 대신에 지역 고용센터들이 사업장 이동을 다루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통해 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없을까’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필자는 2007년에 이주노조가 사업장 이동을 처음에 거부당한 필리핀 이주노동자 사건을 다루면서, 고용센터 직원들이 이주노동자 권리행사를 쉽고 효과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법적 조사를 태만히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우리가 약간 시끄럽게 하자 수원 고용센터로부터 잘못했다는 시인을 받아낼 수 있었기에 이러한 투쟁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또한 이주노동자 처지에서도, 날마다 봐야 하는 고용주를 타깃으로 하는 투쟁보다는 이러한 운동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 더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운동은 등록 이주노동자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부기관에서 구체적인 개선조치를 성취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는 참여자들에게 지도력을 배우고 단결을 발전시키고 활동가로서 자신감을 갖게 할 수 있다. 2011년을 위한 몇 가지 생각들 고용센터 캠페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구체적인 제안이라기보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네팔노총 협약 체결과 라이 동지의 민주노총 활동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나타낸다면(이것은 객관적 현실보다 더 많이 필자가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는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것으로 조직화를 사고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조직화의 매개로 기능해 제도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단계가 될 수 있는, 승리가 가능한 지역투쟁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언어, 거주 지위와 인종에 기반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이주노동자의 지도력 발전과 주체화를 위한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찾아야 한다. 2011년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