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기업에 맞선 노동운동의 전략 International Responses: TNC Structural Adjustment during the Economic Crisis and Labour's Strategies for Resistance 11월 8일 오후 4시 30분 / 서강대 예수회회관 Monday, November 8, 4:30pm / Jesuit Apostolic Center, Sogang Univ. - 발표 ◦초국적 기업의 구조조정과 한국 노동자운동의 대응 _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초국적 기업에 맞선 브라질 노동운동의 경험 _퀸티노 마르케스 세베로(브라질노총 사무총장) - Presentation ◦TNC Structural Adjustment and the South Korean Workers Movement's Strategy (Jiwon Han, Research Director, Research Institute for Alternative Workers Movements) ◦Brazilian Workers' Experience in Fighting TNC (Quintino Marques Severo, General Secretary, CUT-Brazil) - 참고자료 * 발표로 참석하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 이탈리아 제1노총(CGIL), 피아트 그룹의 포밀리아노 공장 구조조정 방안 및 금속산업사용자단체의 2008년 금속노동자 전국 단체협약 이탈에 관한 제1노돛-금속연맹의 입장 ◦ 아르헨티나 제2노총(CTA), 세계화가 노동에 미친 영향:아르헨티나노조의 도전과 응답 - References ◦FIOM-CGIL, The FIOM-CGIL position on the FIAT Group’s plan for the Pomigliano plant and the Federmeccanica deviation from the 2008 Metalworkers National Collective Agreement ◦CTA, The globalisation of capital and its impact on the world of formal and informal work: Challenges for and responses from Argentine unions.
G20 정상들의 기만적인 사교모임은 더욱 나쁜 세계를 만들 것이다 G20 정상회의가 목전에 다가왔다. 11월 7일 전태일 열사 40주기 노동자대회에는 4만 명이 모였다. 이 기세를 11월 11일 G20 규탄 국제민중공동행동의 날로 이어가야 한다. 경제위기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20개국 정상들의 사교모임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다. 이들이 벌이는 모임은 단순한 말잔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를 더욱 나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사진1%] G20은 불평등한 세계를 연장시키고 있다 G20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했다. 1970년대 경제위기의 결과 선진국 모임인 G7이 탄생했다면, 2000년대 경제위기의 결과로 G20이 탄생한 것이다. G20을 만드는 데 미국과 유럽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만큼 G20은 자본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일만 진행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가 심각해질 당시에는 G20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가 참가하는 민주적인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다. 세계 각국에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를 강요한 IMF도 없애자고 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G20으로 결집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힘을 잃었다. G20은 대표적으로 IMF를 재신임하고 오히려 권력을 강화시켜줬다. 위기를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하고, 자본주의 열강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는 국제주의 관점에서 세계 민중들과 연대해야 한다. 한국 노동자 민중들이 G20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국제적인 투쟁에 큰 힘이 될 것이다. G20에는 중국, 브라질 등 거대 개도국과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남아공 등 지역에 따라 안배를 받은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새롭게 포함된 나라는 대부분 친미국가들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문호를 개방하면 더 나은 점이 있다. 위기로 발생되는 각종 비용과 부담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을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 등 개도국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깡패들의 모임에 들어갔다고 좋아해야 할까? “전세계 노동자 민중은 하나”라는 관점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길에 함께 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관리 기구는 말잔치만 늘어놓고 있다 G20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30년의 결과 파국적인 세계경제위기가 발생했는데도 신자유주의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G20은 ‘정책조정의 실패’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큰 변화는 필요 없고 금융규제 약간 하고, 주요 국가 간에 정책협력을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자라났다. 노동자·민중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노동자·민중의 고통은 해결될 수 없다. 단순히 경제위기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노동자 삶의 위기, 지구 환경의 위기, 에너지․식량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자본이 강요하는 팍팍하고 불안한 삶을 견뎌야 하나. G20은 변화를 회피하고 사탕발린 말만 늘어놓는다. 올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G20은 은행세에 대해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위험한 금융투기의 주범인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통제에도 실패했다. G20은 금융자본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준 시스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몇 가지 건전성 지표의 조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노동권 보장, 온실가스 감축, 빈곤 퇴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지만 실제 행동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소재를 활용해 자신들의 이미지 치장에 이용할 뿐이다. 당연하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 자본의 이익을 우선 보장하면서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G20은 반노동정책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 작년 9월 피츠버그 회의에서 G20은 “국제노동 기준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합의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민주노조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선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재정위기에 몰린 유럽 각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자본은 저성장 국면에서 이윤을 늘릴 방법이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켜야한다. 자본과 정권이 한 몸이 되어 노조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바로 이런 현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G20은 이러한 자본의 활동을 비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G20은 노동자 민중의 세금으로 위기에 빠진 부자와 기업만 구제하더니 이제는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긴축 강요는 그리스를 포함해 유럽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연금과 임금 삭감, 복지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G20은 그리스 정부의 끔직한 노동자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또 G20 국가들에게 노동유연화를 적극 주문하고 있다. 이명박은 G20에 목을 매고 있다 이명박은 정권의 치적 사업으로 G20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국제회의를 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국민들이 G20에 걸맞은 에티켓을 가져야 한다며 외국인을 보면 무서워하지 말고 “헬로우”하고 인사하고, 술도 적당히 마시라고 훈계하고 있다. 글로벌스탠더드 운운하면서 노동자를 순한 양처럼 길들이고 착취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G20 회의에서 미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거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한국이 먼저 강대국 입장을 거들고 나서는 것이다. G20을 위상을 강화해서 안정적인 국제기구로 안착화시켜야 한다거나, 자유무역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러한 것들이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미국의 입맛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보수층과 자본은 이런 장단에 춤을 추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사진2%] 강력한 투쟁으로 우리 의지를 보여주자 이럴 때일수록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고용과 임금을 위협하고, 민중의 삶을 옥죄는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에 한국 민중운동은 항상 앞장 서왔다. 2005년 APEC 반대 투쟁, 2006년 한미 FTA 반대 투쟁이 바로 그러한 사례들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 민중을 갈라놓고 경쟁시킨다. 불안한 일자리, 강화된 노동강도, 확대된 비정규직으로 노동자 민중의 단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삶의 조건도 팍팍해진다. 어쩔 수 없이 내 임금, 내 일자리, 내 가족 챙기기에 내몰린다. 악순환을 끊고 노동해방의 새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한다. 우리의 분노를 모아 11월 11일 대규모 시위를 성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상회의 당일에 강력한 투쟁이 전개되는 것을 이명박은 가장 두려워한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G20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투쟁은 피할 수 없는 한판 싸움이다. 정권은 노골적으로 민주노조 죽이기에 나섰다. 단협해지, 공공부문 구조조정, 타임오프 강행, 노조 불인정, 비정규직 확대에 개별적으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 G20 투쟁은 민주노조 말살과 노동유연화 확대를 꿈꾸는 자본과의 대결이다. 또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축소하고 공포를 통해 반대자를 탄압하려는 보수 세력과의 한판 싸움이다. 나아가 G20 투쟁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걸음이기도 하다. 파산한 신자유주의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한다. 11월 11일 2시 서울역에 모이자. 그리고 G20 정상들이 만찬을 벌리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앞까지의 행진을 성사시키자. 노동자 민중의 대안과 G20의 모의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강고한 투쟁이 필요하다!
11월 12일 20개국 행정부 수반이 정상(summit)에 선다. 1년에 한두 번씩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셰르파의 도움을 얻었다. 스무 명은 해가 지기 전에 힘든 등정을 끝내고 맞잡은 손을 강조하며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정상(회의)’이라는 용어는 윈스턴 처칠이 만들어낸 말이다. 냉전이 막을 열던 1950년 처칠은 소련에 “정상에서의 회담”을 제안했다. 어떤 계기로 처칠이 ‘정상’이라는 등산 용어를 외교에 적용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시대상을 반영한 점은 분명하다. 당시 그 용어는 영국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1940년대 후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 등반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처칠이 평화의 의지를 다지는 최고위층 회담을 다시 호소하던 바로 그때, 세계 최고봉은 1953년 5월에 마침내 정복되었다. 정상회의는 20세기의 산물이다. 이전에도 정상회의가 없진 않았으나 안전과 체면의 문제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피되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타국으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낮은 신분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회의 중간에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동반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정상회의는 빈번한 외교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항공기 여행의 발달은 육로나 해로로 며칠씩 걸리던 여행길을 한나절 내외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두세 명의 국가 원수들이 만나 며칠 동안 안건을 협상하는 형식의 전형적 정상회의는 193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벌어졌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지 30년이 지나자 항공기는 운송과 여행의 수단이 되었고 상업적인 항공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정치인으로서 최초로 항공기 여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국적인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전통적인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처칠은 1940년대 초반 미국을 방문할 때 두 번이나 배를 타고 갔으며,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1945년 처칠과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흑해연안의 얄타까지 가는 데 열하루가 걸렸다. 미국에서 지중해까지 열흘 동안 배를 타고 갔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정상회의가 빈번했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 때문이다. 열전과 냉전이 정상회의의 주 무대였다. 먼저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전후 처리를 위해서 정상회의가 열렸다. 나치의 독일인 거주 체코슬로바키아 지역 병합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1938년 뮌헨회담,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과 파병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1940년대 초반 처칠-루즈벨트 회담, 전후 처리문제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논의한 1945년 얄타회담이 각각을 대표한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정상회의가 이어졌다. 1961년 케네디와 후르시초프, 1972년 닉슨과 브레즈네프, 1985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의는 냉전의 격화, 데탕트, 신데탕트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 정상회의의 계보를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G7이나 G20 정상회의에 적절한 자리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다. 두 회의는 20세기 정상회의의 일반적인 관례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과 프랑스의 재무부장관이던 헬무트 슈미트와 지스카르 데스탱은 1974년에 각각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은 1년 전에 처음으로 열렸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부장관이 참가하는 G5 회의 경험을 정상회의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1970년대의 위기로 긴급한 경제 문제를 다룰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75년 이탈리아가 포함된 G6 정상회의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캐나다가 포함된 G7 정상회의로 확대되었다. G7 정상회의는 기존의 정상회의와 다른 점이 많다. 먼저 두세 명이 모이는 소수의 회의가 아니라 일곱 명이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모였다. 모임의 주기도 일 년으로 정례화되면서 긴급한 현안 논의보다는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협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정상회의의 초점이 정치ㆍ군사가 아니라 경제 문제에 맞춰졌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어렵다. 정치인인 한 국가의 수장이 경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매년 열리는 회의를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각국 지도자는 장관이나 보좌관을 자신의 개인 대리인(셰르파)으로 지정하여 회의 준비와 합의의 얼개를 짜는 일을 담당시켰다. 또한 1년에 네 차례 열리는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는 독자적인 리듬과 역할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상회의를 보조했다. 이렇게 되자 G7은 지도자들의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의 의미는 퇴색되고 의례화되고 제도화된 정상회의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공식적인 국제기구는 아니지만 제도화된 정상회의라는 G7의 독특한 지위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 적격이었다. 초기에는 선진국 간의 환율조정이나 경제정책 공조 문제를 주로 논의했지만 점차 다룰 문제가 늘어났다. 1980년대가 되자 서유럽 미사일 배치와 같은 정치ㆍ군사 문제가 회의석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동구권의 붕괴 이후 이 지역 경제와 정치를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시키는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수적’ 문제들, 외채탕감이나 빈곤퇴치를 다루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된 가장 중요한 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공개되는 자료인 성명에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좋은 말이 넘쳐났다. G7 정상회의의 성명은 점차 길어졌지만 정상회의에 앞서 몇 달 동안 정성스럽게 준비된 이 문서는 실제 논의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예를 들어 1989년 파리 성명의 3분의 1은 환경문제로 채워져 있었지만 이것은 만찬 때 잠깐 이야기되었을 뿐이었다. 또한 말과 행동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15년 동안의 G7 정상회의 성명에 대한 1992년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각국 정부는 209건의 약속 가운데 3분의 1만을 이행했고, 특히 미국과 프랑스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대신에 G7은 비공식적인 결정,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담론을 통해서 실제 권력을 행사했다. 독자적인 집행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유연하게 활용해서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에 비공식적이지만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먼저 G7은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유엔과 국제금융기구를 활용했다. G7은 IMF와 세계은행을 사실상 지배했다.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는 IMF와 세계은행의 봄ㆍ가을 회의 직전에 회의를 열어 이 기관의 대출 절차와 정책에 대해 미리 토론하고 합의를 꾀했다. 그리고 연이어 열리는 IMF와 세계은행의 회의에서 G7은 보다 공식적인 절차와 기구를 통해서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논의를 주도했다. 따라서 G7의 회의 결과에 따라 IMF와 세계은행 회의의 주요 의제가 정해지고,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의제는 공식적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즉 G7은 IMF와 세계은행의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주도하고 거부권을 가짐으로써 국제금융기구의 활동에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다. 또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진행되는 G7 정상회의는 국제 문제에 관한 담론을 주도하면서 세계경제, 비G7 정부, 국제기구, 초국적 정책기구, 국내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G7 정상회의가 문제를 제기하고 의제를 설정하고 네트워크를 창출하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국내에서 정치적인 결정을 하기도 한층 쉬워진다. G7 정상회의의 성명(코뮈니케)은 비공식적이고 법적인 효력이 없는 순수한 도의적 합의문일 뿐이다. 하지만 그 내용 중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국제적인 합의’나 ‘글로벌스탠더드’의 이름으로 쉽게 강요할 수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국제 정치ㆍ경제 엘리트와 집권 세력의 필요에 따라 선택된 3분의 1 정도만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G7 정상회의를 모델로 하고 있다. 심지어 2년간의 조정 끝에 20개국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것도 G7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G20은 G7의 운영구조와 역할을 많이 계승하고 있다. G7의 주요 역할은 달러화 가치 조정과 신자유주의 확산이었다. 전자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고 활성화시키는 일로 1985년의 플라자합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후자는 무엇보다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배후 개입이었다. 이러한 두 축은 G20에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행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환율전쟁’이 한 사례다. 환율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저달러 정책에 있다. 실업률이 계속해서 10%를 위협하고 소비와 투자의 부진으로 내수회복이 지체되면서 미국 경제는 다시 한 번 침체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 거품에 힘입어 지탱되던 고소비의 경제가 거품 붕괴 후에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는 이전과는 달리 수출을 통해서 미국 경제의 활로를 개척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저달러 기조를 유지하고 타국 환율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개도국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의 피해자가 범죄자로 몰리는 형국이다. 환율갈등은 이번에도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조정하는 문제, 즉 미국 경제를 회생시키는 문제의 다른 이름인데도 말이다. 물론 1985년의 G7과 2010년의 G20은 다르다. 1985년의 일본과 독일처럼 미국을 위해 일방적인 양보를 감행할 수 있는 당사자가 없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중국은 달러표시 자산을 매각해버릴 수 있지만, 이러한 선택은 서로 의존하고 있는 둘에게 모두 좋지 않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불균형 문제의 구조적인 해결이 없다면, 10월 경주 재무장관회의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환율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때때로 갈등적인 방식으로 분출할 수밖에 없다. IMF에 대한 개입은 G20이 더욱 노골적이다. 세부적인 금융규제의 방안 마련과 관리ㆍ감독 절차는 대부분 IMF와 FSB(금융안정위원회)에 위임되었다. IMF에 국제적인 금융 감독의 권한까지 부여해준 것이다. 각국의 환율과 무역수지 균형을 다루는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협력체계’는 향후 G20의 핵심 과제인데 이를 지원하고 감독하는 역할도 IMF에 맡겨졌다. 이렇게 IMF의 권한은 대폭 확장된 반면 IMF의 지배구조 개혁은 생색내기로 진행되고 있다. 개도국에게 IMF의 지분을 일부 이양한다고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총재를 유럽과 미국이 나눠먹는 관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거부권, 고위관료들의 회전문 인사 관행, 지분에 따라 부여되는 투표권이 문제의 근본적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IMF-미 재무부-월스트리트의 견고한 동맹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별로 없다. G20은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관리하기 위해 분주하다. 금융세계화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수준에서 금융규제 정책을 손질하고 있고, 각국 간의 정책조율 틀을 짜고 있다. 이 일에 개도국을 일부 포함시켜 적절한 관리와 포섭을 모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발전과 환경 같은 국제 이슈를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G20 정상회의가 이렇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이들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전권을 위임 받은 비상대권을 쥐고, 위기와 위기에 대한 대응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G20은 위기를 일으킨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위기 대응을 경영학으로 즉 관리의 기술로 다룬 것이다. 비상대권은 일상적 권력 밖에 있는 권력이다. 비상 상황 때문에 기존의 법과 절차를 뛰어넘어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이다. 이러한 권한이 아래로부터 부여된다면 민중의 혁명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지배자의 계엄령이 된다. 정상회의의 역사는 바로 지배자의 위치에서 비상대권을 부여받은 자들의 모임에 관한 기록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였다. 그 자리에서 영토를 분할하고, 국경선을 긋고, 한 민족과 세계의 미래를 결정했다. 미국과 소련, 양극이 맞붙을 때도 정상회의는 필요했다. 당장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동적인 요소는 덜 했으나, 핵무기를 둘러싼 지루한 긴장감은 더 했기 때문이다. 반면 G7과 G20은 미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정상회의다. 잘못하면 목이 날아간다는 긴장보다는 합의의 꽃이 만발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권력의 문제, 정치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 복잡한 경제 용어와 화려한 언론 보도 속에 숨어 있는 정상회의는 더 이상 정치적인 사건의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정상회의에서 다루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정상회의라는 형식 자체도 비정치적인 문제로 숨어버린다. 그렇다면 개도국이 포함된 일은 좋은 것이다. 정치는 기껏해야 각국 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드러날 뿐이다. 그 이해관계는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 위에 세워진 것이지만 더 이상 누구도 그 점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과거의 정상회의가 열강 지도자가 약소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 그러한 까닭에 제도정치의 의미에서든 대중운동의 의미에서든 정치적 쟁투의 핵심에 위치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경제 용어와 수치 속에 감추어진 정상회의는 월드컵과 같은 축제이고, 국가브랜드 향상을 통해 수십조 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세일즈의 장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상을 만들 권리가 민중이 아니라 지배자의 손에 있다고 선언될 때, 그들의 수중에 놓인 비상대권이 당연한 권력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는 정말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한 미래를 원하지 않는 자라면 G20 정상회의에 부여된 권력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싸울 수밖에 없다. 11월 11-12일 서울에서 20개국 지도자가 모여 세계경제의 향방을 논의한다. G20이 그리는 미래는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이라는 수려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자본주의 위기를 관리하고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는 계급적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 하지만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질문은 체제의 변혁을 꿈꾸는 민중운동의 주체적인 상태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 민중 내부의 분할과 분열을 극복하고 정치적 운동으로서 스스로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에 대한 대중적 열망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조금이나마 더 열심히 대답하고자 10월 21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출범했다. 지난 호에 그 동안의 고민을 정리하여 실었고, 이번 호에는 연구소 출범기념 토론회를 정리하고 박하순 연구소장을 인터뷰했다. 연구소 출범을 기념하여 번역 출간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은 책소개에 실었다. 집권 전반기에 타임오프제 시행과 민주노조 파괴 공격을 밀어붙였던 이명박 정부는 집권 하반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국가고용전략 2020을 내놓았다. 앞으로 진행할 노동유연화 공세를 종합한 이 보고서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격이 새로운 방향에서 한층 강화될 것을 알려주고 있다. 박준도 노동위원장의 글은 이명박 정부의 선전포고에 대한 긴급한 분석을 담았다.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돌봄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 모색에 관한 글에 현재 운동의 구체적인 과제를 담았다. 북한 당 대표자회의 후 지도체제의 변화와 북한 사회 전망에 대한 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글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 정세를 분석했다. 2010년 마지막 호는 다소 얇게 발행되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되는 의미는 가볍지 않기를 기대한다.
세계적 파트너십의 제도적 완성 지난 10월 13일부터 이틀간 처음으로 한국이 주관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이 실시됐다. 13일에는 한국, 미국, 일본을 비롯해 14개국 대표들이 참가해 국가별 PSI 정책과 해상차단 절차를 논의하는 비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14일에는 한국 해군 구축함 2척과 지원함 2척, 해경 경비정 3척을 비롯해 미 해군의 이지스함과 일본 자위대 구축함 2척 등이 참가하는 해상차단 훈련이 부산 앞바다에서 실시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은 PSI의 운영위원회라 할 수 있는 운영전문가그룹에 참여하기로 결정, 향후 PSI 관련 훈련과 활동이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PSI는 반확산 정책의 대표적 예다. ‘반(反)확산’이라는 개념은 9.11 테러 이후 급부상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품의 수출통제가 중심이 되는 기존의 ‘비확산’ 정책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에 한계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불량국가나 집단의 대량살상무기 능력 자체를 와해시킨다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PSI 적극 참여, 이란 제재 동참 등 미국이 주도하는 반확산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어찌 보면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 영해에 일본 자위대를 들여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실익도 없이 한국 기업에 피해만 주는 것으로 보이는 이란 제재 조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PSI, 이란 제재, 한미안보협의회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PSI PSI는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의 흐름을 중간에서 ‘차단’한다는 것으로, 기존의 소극적인 수출통제만으로는 불량국가 간 또는 불량국가와 테러리스트 집단 간의 대량살상무기 거래를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종의 국제 협력체제다. 2003년 5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안, 같은 해 9월 11개국(네덜란드, 독일, 미국, 스페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일본,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이 ‘PSI 차단원칙’에 관한 합의문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가 이동하는 것을 PSI 참여국들이 공동으로 차단하는 것이 합의문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참여국 간에 정보가 공유되며, △관련해 훈련이나 실제 작전이 벌어질 때 물자나 군대지원 같은 협조를 해야 하고, △PSI 체제와 일관되게 자국의 법을 손봐야 하며, △PSI와 관련된 국제법이 논의될 때 PSI가 강화되는 쪽으로 의견을 내야 한다. PSI에는 2010년 현재 9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지난 해 5월 26일부터 정식 참여하고 있다. PSI는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필요시 무력 사용도 불사하는 공격적인 조치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해당국의 승인 없이 제3국이 공해상의 선박을 차단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해양법 협약 87조는 공해상에서는 해적행위와 같은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선박을 멈추거나 검색할 수 없는 자유항행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동 협약 17, 19, 23조는 공해는 물론 어떤 나라의 영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피해(조업, 오염, 정보수집, 군사훈련 등)를 주지 않는 한 방해를 받지 않고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권리인 무해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군사인원과 무기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정전협정 2조 13항과, 적대행위와 봉쇄를 금지하고 있는 동 협정 2조 14-16항에도 위배된다. 해상에서의 국경이 정해지지 않아 군사적 충돌이 반복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력 사용까지 불사하는 차단 조치는 정치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 한국 정부는 PSI 정식 참여가 아닌 옵저버 자격을 유지해왔다. 지난 2006년 10월 국회에 출석한 유명환 당시 외교부 1차관은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PSI를 이행한다면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어서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난 해 4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발사한 4월 5일,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PSI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것이므로 정부는 전면 참가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혔다. 인공위성과 장거리 미사일은 기술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UN의 제재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며 북한이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이를 빌미로 이명박 정부는 PSI 전면 참여를 강행했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 PSI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핵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올해 4월 6일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NPR)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NPR은 향후 5-10년간 유지될 미국의 핵정책과 전략, 목표와 전력 태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전략과 핵억지력, 비확산과 핵군축 등 핵에 관련된 기본 입장이 결정된다. 냉전 이후 1994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된 이번 NPR이 ‘핵심 계획’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다. 이를 위해 핵 물질 밀수의 탐지, 차단 능력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보,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거나 허용하는 행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핵 물질 밀수의 탐지와 차단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PSI다. 핵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일종의 ‘깡패 짓’이 헤게모니 국가의 정책상 핵심적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NPR 발표 직후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국제적으로 관철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4월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핵 테러리즘은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협 중의 하나이며, 강력한 핵 안보 조치는 테러리스트, 범죄자, 혹은 다른 비승인 행위자들이 핵 물질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밝혔다. 또한 “불법적인 핵 거래에 대해 효과적으로 예방, 대응하기 위해 국가 간 협력…(중략)…핵 탐지, 수사, 법 강화, 신기술 개발과 같은 관련 영역에서 양자, 다자간 체제를 통해 국제법, 절차 관련 정보와 전문 지식을 공유할 것”이라 밝혔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핵 없는 세계’는 이른바 불량 국가나 테러 집단이 핵무기를 입수하여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위협하며,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권 지위를 침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핵 테러 없는 세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더불어 2012년 서울에서 두 번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로 합의되면서 한국이 미국의 반확산 정책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과 한국 한국이 미국의 반확산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시행된 이란 제재 조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지난 7월 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 이란제재법’에 서명하면서 추가적인 이란 제재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월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 이행 관련 조처’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란혁명수비대를 포함 이란의 단체와 기관 102곳과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 조처로 한국의 모든 기관과 개인은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는 금융제재 대상자와 어떠한 금융거래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이번 조처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것일 뿐이라 주장하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제재를 통해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번 조치가 실질적으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로 가는 수순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핵심적으로 이번 이란 제재가 미국의 아인혼 제재조정관이 한국-일본-중국을 방문한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정책에 적극 동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을 살펴보자.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제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의 미국 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란의 주요 재정 수입원인 에너지 부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기업을 미국 금융시장에서 배제하여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노림수다.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첫 번째 경제제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란에 다양한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과 미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중국 등 교역 라인의 다양화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란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제3국 기업의 이란 거래, 특히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부분의 투자를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포괄적 이란제재법이 1996년 발효된 ‘이란제재법’에 더해 ①물품, 서비스, 기술 등을 제공하여 이란의 정제유 국내 생산에 기여한 경우, ②이란에 정제유를 제공하거나 이란의 정제유 수입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에 관여한 경우를 제재 대상에 추가하여 △미국 내 외환시장 접근 금지, △미국 은행 시스템 접근 금지, △미국 내 자산거래 금지를 명시한 것에서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 한미안보협의회의와 한미동맹 지난 10월 8일 워싱턴에서 4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다. SCM은 한반도 안보와 관련된 제반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 회의다. 이번 회의에서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은 <전략동맹2015>, <한미 국방협력지침>, <전략기획지침>에 합의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전략동맹2015>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한 새로운 동맹 군사구조, 연합방위능력 제고, 주한미군 재배치, 방위비 분담 등에 대한 추진계획과 발전방안을 담고 있다.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라 양국 간 새로운 동맹 체제를 확립하고 긴밀한 군사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한미 국방협력지침>은 2009년 6월에 발표된 ‘한미동맹 미래비전’을 국방 분야에서 구체화시킨 것인데, 한반도에서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동시에 지역 및 세계 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협력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의 군사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전략기획지침>은 국방부 차원에서 작전계획 수립과 발전의 준거를 제시하는 문서로, 향후 한미군사위원회는 이 지침에 입각해 작전계획 작성과 관련한 전략 지시를 양국 합참에 하달하게 된다. 이번 지침은 기존의 작전계획을 대체하여 북한의 비대칭위협, 국지도발, 전면전 등 광범위한 위협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작전계획5015>를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SCM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불안정 사태’를 처음으로 언급하여 북한 급변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빌미로 전시가 아닌 평시에 선제적인 군사작전을 펼친다는 <개념계획5029>가 실제 작전계획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 간의 이러한 합의는 변화된 한미동맹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동성명 7항은 ‘양 장관은 평화유지활동, 안정화 및 재건지원, 인도적 지원 및 재난 구조를 통한 협력을 포함하여 상호관심사항인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고 적시했다. 한미동맹은 이제 그 개념에 있어서도 한반도의 방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반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이는 한국 정부가 작년 말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한 일명 ‘PKO 신속파견법’을 제정하고, 올해 7월 1일에는 1천여 명(예비지정부대와 별도지정부대를 포함하면 3천여 명) 규모의 파병전담부대를 만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제 한국 군대는 세계 안보의 증진이라는 명목 아래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는 전쟁과 학살, 폭력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한국 군대가 한반도 방어라는 굴레를 벗고,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유지의 첨병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글로벌화’가 제도적으로도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반도에 매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공격적인 작전계획의 수립과 이를 바탕으로 거듭되는 위협적 군사훈련, PSI와 같은 고립ㆍ제재 조치는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증폭시키고, 상호 폭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군대가 된다는 것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위협에 놓이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투쟁이 파병된 군대의 철군만이 아니라 한미동맹 자체를 끝장내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 한EU FTA 쟁점 토론회: 한미FTA 재협상, 무엇이 문제인가 일시 : 2010년 10월 28일 (木) 장소 : 민주노총 15층 교육원 □ 발표(각 20분) - 한미FTA 재협상, 무엇인 문제인가 |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통상연구소 소장 - 미국의 쇠고기 전면개방 요구와 한국정부의 대응 | 박상표, 수의사
1.제42차 한미안보협의회가 2010년 10월8일 워싱턴D.C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김태영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합중국 국방부 장관이 공동 주재하였으며 양국의 국방 및 외교 분야의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동 회의에 앞서 2010년 10월7일 대한민국 합참의장 한민구 대장과 미 합중국 합참의장 마이클 멀린 제독은 제32차 한미 군사위원회 회의(MCM)를 주재하였다. 2.양 장관은 2009년 6월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기반하여 양자.지역.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구축해 나간다는 양국 정상의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지난 7월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표명된 바와 같이, 더욱 긴밀한 안보협력과 여타 분야에서의 보다 포괄적인 협력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맹협력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 심화되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을 재확인하였다. 3. 양 장관은 지난 7월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양측이 북핵 문제 관련 양국간 긴밀한 공조를 평가하고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모든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 추구를 포기할 것과 비핵화의 진정한 의지를 구체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 공동의 인식을 재확인하였다. 양 장관은 대한민국과 미 합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재강조했으며 또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및 1874호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양자제재를 이행하는 데 있어 긴밀한 공조를 계속해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4. 양 장관은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 양국이 공동의 결연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나갈 것임을 재획인했다. 양 장관은 또한 대한민국의 천안함이 북한의 공작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공통된 인식을 재확인했으며 천안함 사태에 대한 최종 합동결과 보고서가 발간된 것과, 천안함 침몰에 관한 특별조사에 대한 유엔사의 특별보고서가 유엔안보리에 제출되어, 안보리 공식문서로서 정식으로 회람된 것을 환영하였다. 또한 양 장관은 천안함 사태이후 안보환경하에서의 북한의 군사활동 뿐만아니라 한반도 및 동.서해에서의 한미 연합연습 등을 포함한 대응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특히, 금년 서울 개최 G-20 정상회의 때까지 북한의 동향에 대한 연합감시활동을 증대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 장관은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양자간 긴밀하고 지속적인 계획 발전과 광범위한 연합훈련.연습은 한반도에서의 미래 도전에 대해 적절히 대비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5. 양 장관은 공고한 연합방위태세를 통해 대한민국을 방위한다는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임무와 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상호 안보의 증진에 대한 양국의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양 장관은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데 있어 양국의 미래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긴요함을 재확인하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연합전력의 충분한 능력을 확고히 유지해 나갈 것임을 강조하였다. 게이츠 장관은 한반도에 배치된 전력 뿐만 아니라 위기시 한미연합방위 증강을 위해 세계 전역에서 가용한 미군 전력.능력을 사용하여 대한민국을 방위한다는 미 합중국의 단호하고 확고한 공약을 재강조하였다. 양 장관은 미 합중국의 이러한 공약이 주한미군의 현수준 유지 공약과 더불어 모든 주한미군 소속 장병들의 복무기간 확대 및 복무정상화를 통해 더욱 입증되고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6. 게이츠 장관은 미 합중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능력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확정억제를 제공하고 강화할 것이라는 미 합중국의 계속된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이와 더불어 양 장관은 확장억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협력 메커니즘으로서 확장억제정책위원회를 제도화해 나가기기로 합의하였다. 7. 양 장관은 평화유지활동, 안정화 및 재건지원, 인도적 지원 및 재난 구조를 통한 협력을 포함하여 상호관심사항인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간 긴밀한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 게이츠 장관은 대한민국이 과거 이라크에서 뿐만 아니라 금년에 지방재건팀 파견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사의를 표하였다. 또한 게이츠 장관은 대한민국의 아티티 재해복구 활동, 아덴만에서의 해적 퇴치노력과 레바논에서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대한 기여에 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아울러 게이츠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PSI 참여에 대해서도 사의를 표하였다. 특히 금후 이달중에 실시되는 'Eastern Endeavor 10' PSI 연습을 대한민국이 주최하는 것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범세계적 협력 노력에 있어 중요한 진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8. 양 장관은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으로부터 한미 연합방위태세가 '상시 전투태세'(Fight Tonight)의 능력과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어떠한 도발, 불안정 사태 또는 침략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요지의 한미 군사위원회 회의 결과를 보고 받았다. 9. 양 장관은 지난 1년간 진행된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협의 결과를 보고 받았으며 한미가 긴밀한 협의를 통해 효과적인 연합방위 보장, 주한미군 기지이전 및 반환 진행, 동맹 미래비전 구체화 등 한미동맹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있어 중요한 현안들을 상당히 진전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만족을 표명하였다. 양 장관은 지난 6년간의 중요한 성과와 한미동맹의 지속적 강화에 대한 상호의지를 기반으로 2011년과 그 이후에도 SPI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 10. 양 장관은 연합전쟁 수행을 위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2015년에 대한민국 합참으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하여 향후 수년동안 한미동맹을 강화시켜 나가기 위한 포괄적 전략을 확인하였다. 전작권 전환은 동맹의 연합방위태세 능력을 유지 제고시켜야 하며, 한미동맹의 주요 국방 우선과제들과 미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양 장관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 합참으로의 전작권 전환을 위한 기본틀을 제공할 전략동맹 2015를 승인 서명하였으며 2015년 12월에 전작권을 전환할 것이라는 양측의 의사를 재확인하였다. 양 장관은 또한 변화하는 북한 위협에 특히 주목하면서 연례 SCM/MCM 회의를 통해 전략동맹 2015의 이행상황을 주기적으로 평가 점검하여 전작권 전환과정에 반영해 나갈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양 장관은 전작권 전환이 체계적으로 이행되어 연합방위태세가 강력하고 빈틈없이 유지되도록 보장해 나가는데 있어 전작권 전환검증계획(OPCON Certification Plan)이 중요하다는데 주목하였다. 게이츠 장관은 미 합중국은 대한민국이 완전한 자주 방위역량을 갖출 때까지 구체적이고 상당한 보완능력을 계속 제공할 것임을 재확인하고 동맹이 지속되는 동안 미측의 지속능력을 제공한다는 미 합중국의 공약도 재확인하였다. 11. 양 장관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 및 반환의 진전 상황을 평가하고 이러한 협력적 공동 노력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완료가 양국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기지 이전 및 반환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면서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사업의 신속한 완료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양 장관은 공동 환경평가절차(JEAP)가 기지 반환을 위한 양자간 협력을 촉진시키는데 유용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였다. 12. 앵 장관은 작년에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통해 합의되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한미동맹의 미래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문서인 국방협력지침을 승인 서명하였다. 양 장관은 동 국방협력지침이 양국간 연합방위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 국방협력관계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고 21세기 지역.범세계적 안보에 전략적으로 기여할 것임을 확인하였다. 13. 양 장관은 작전계획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전략지침.권한을 한미 군사위원회에 제공하는 전략기획지침(SPG)을 승인 서명하고, 동 전략기획지침이 대한민국에 대한 광범위한 위협을 억제하고, 군사대비계획을 수립하는데 유용한 조치임을 확인하였다. 양 장관은 양국군이 한반도에서의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여 군사계획을 발전시키는데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이뤘으며, 본 지침이 잠재적인 위기상황하에서 한미동맹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보장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14. 김태영 장관은 게이츠 장관에게 미 합중국 정부가 자신과 대한민국 대표단에 보여준 예우와 환대 그리고 성공적인 회의를 위한 훌륭한 준비에 대해 사의를 표하였다. 양 장관은 제42차 SCM과 제32차 MCM에서의 논의가 한미동맹 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으며 양국간 국방관계의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의 발전을 증진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양 장관은 제43차 SCM을 2011년 상호 편리한 시기에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기대한다.
참세상 기고 G20에 다른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겠다? 시위 차단에 발 벗고 나선 이명박 정부 1. G20은 도대체 뭐하는 기구인가 2. 신자유주의 기구를 재신임 3. 새로운 계엄령 <G20 경호특별법> 4. G20산성에 테러진압 장비까지 5. G20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