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 미명 아래 추진되는 노동신축화와 금융세계화 미국의 2010년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6%를 기록한 데 이어 4/4분기에도 2% 중후반일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미국경제 더블딥 논란은 일단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하지만 세계 자본주의는 위기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기회복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2010년 11월 2차 양적완화정책(QE2)을 발표했다.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대불황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는 2007-2009년 금융위기라는 표현 대신에 2007-2010년 금융위기라는 표현을 쓰는 논자들이 있다. 즉 위기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1,100억 유로, 2010.5.2.)와 아일랜드(850억 유로, 2010.11.28.)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결정에도 불구하고 유로지역의 불안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아일랜드 문제가 드러나자 그리스 위기 때와는 달리 신속하게 금융지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유로존 위기에 대한 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특히 포르투갈로 위기가 파급될 것이냐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을 끌었고, 포르투갈 경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스페인으로 위기가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증했다. 하지만 구제금융을 통해 재정위기 확산을 막아 금융시장이 안정된다고 하더라도 유로단일통화제도의 고유한 모순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금기를 깨고 G2 의제, 곧 중국 환율문제를 G20에 들여왔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중국과의 갈등이 봉합되기 어렵기 때문에 G20에서 미중 환율문제에 관해 진정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가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G3(미국, 일본, 한국)을 강화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 문제를 앞으로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고 점점 더 그 강도를 높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안보 문제와 중첩되어 중국과 미국-일본-한국 간 긴장은 점점 더 고조될 것이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와 중국경제의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세계 금융위기를 잉태한 위기 요인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미국이 외형적으로나마 미약한 회복세를 유지하고 중국이 세계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면 한국도 2000년대 위기 이전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 서민희망, 따듯한 사회와 같은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 창출과 노동신축화를 핵심기조로 하는 경제정책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명박 정부의 ‘따뜻한 서민경제’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2월 14일 <2011년 경제정책방향과 과제: 다함께 잘사는 선진일류경제>를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있으며 민간부문 자생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있으나 서민 체감경기 개선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중점 정책과제의 하나로 서민경제 활성화와 삶의 질 제고를 통한 ‘따듯한 서민경제’를 내세웠다. (정부가 따듯한 서민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책에는 일자리 창출기반 강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자영업과 농어업과 같은 성장지체부문 경쟁력 제고, 취약계층 지원과 중산층 확충이 포함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보건복지부 업무계획: 서민이 행복한 나라, 따뜻한 대한민국>도 “경제성장의 온기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골고루 퍼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의 복지재정이 OECD 국가에 비해서는 아직 낮은 수준이나 고령화를 비롯해 복지수요 증가로 인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보건복지부는 지속적인 복지재정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전달체계 구축이 아직까지 미흡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복지전달시스템 개선하는 게 중점과제라고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가 저소득층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실제로 지니계수가 2008년 0.296에서 0.293으로 소폭 하락했고, 5분위 배율도 같은 기간 4.97에서 4.92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소득격차 완화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1분위(하위 20%)의 소득이 최근 증가한 것은 정부, 공공기관의 이전소득 확대가 주요한 원인이다.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생계구호금, 생활안정자금을 신설 또는 증액하는 방식으로 이전지출 규모가 직접 늘어나거나, 실업률 증가에 따라 실업급여액이 자동 증가하는 사례처럼 자동안정화장치 작동에 따라 이전지출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에게 도입된 희망근로 프로젝트도 소득 격차 확대 방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고소득층은 부동산부문의 역자산효과로 인해 임대소득이 부진했고, 자산의 평가손실이 컸다. 세계적 차원에서 산업간 성장률 격차 확대,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경제위기에 따른 투자 부진, 숙련 기술 인력과 전문직에 대한 보상 증가로 인해 소득격차가 장기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만약 한국에서 고용이 회복되고 실업률이 안정되면 역으로 이전지출의 소득기여도는 과거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며, 임시근로 대책이나 한시적 생계구호는 이미 종료되고 있다. 고소득층이 입은 타격은 부동산 시장이 다소 불확실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도 있으나 주식과 같은 다른 자산으로 포트폴리오 구성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자산효과가 점차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의 이전지출액 증가나 공공근로사업이 소득불평등 악화를 어느 정도 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득격차 완화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따라 소득격차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장기적 추세가 진정한 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국가고용전략 2020’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 기반을 확충해 따듯한 서민경제를 달성하겠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2011년 계획은 2010년 10월에 발표한 <국가고용전략 2020>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 요체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고용시스템’이다. 먼저 정부는 직업소개, 직업훈련, 파견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는 ‘복합고용서비스 기업’을 도입하여 민간고용서비스기관의 대형화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서비스라는 표현은 노동자도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으로 묘사하지만, 민간고용서비스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자본가일 뿐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중간착취를 법이 허용하는 경우만 제외하고는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고용서비스 업체들이 지난 수년 간 불법ㆍ탈법을 가리지 않고 근로자공급사업(파견)을 해왔고, 인사ㆍ노무관리 외주용역사업을 수행해왔다. 정부 방침은 아직까지 불법, 탈법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인력공급사업을 완전히 합법화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또한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제한(2년) 예외대상을 확대하여 신설기업이나 용역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청소경비업무를 추가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곧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켜 사용기간 제한 규정을 아예 없애자는 논거만 제공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시간제 근로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직무분할효과보다는 임금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효과가 더 크다. 전일제 고용으로 8시간분 임금을 주어야 할 일자리가 6시간분 임금을 주는 일자리로 대체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초과근무시간을 적립한 후 필요할 때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연장근로에 대해서 1.5배 시급을 적용하지 않고 그 대신 그 임금을 일거리가 적을 때의 휴가로 대체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는 일자리 확충 기반 강화란 노동신축화를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을 재조직해서 다시금 도래할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에 닥칠 손실을 더 손쉽게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 놓겠다는 것이다. 한미 FTA와 대외경제정책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대외경제정책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그 핵심은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 구축의 가속화다. 우선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실무추진단을 구성하여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2011년 1분기 내에 국회에 제출하고 한EU FTA도 2011년 7월 1일에 발효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협상이 진행 중인 호주, 터키, 콜롬비아와의 FTA도 2011년 중 협상타결을 추진하고, 시장 선점과 자원협력을 위해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FTA 추진국을 지속적으로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역내 경제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한중 FTA는 협상개시 여부나 시기를 판단하고, 한일 FTA도 여건을 감안하여 협상재개 여부를 판단하며, 한중일 FTA는 2012년까지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무리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파트너십(TPP)의 경우는 2011년 연구용역 결과를 감안하여 참여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외경제정책은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에 강한 영향력을 받기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현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은 모두 FTAAP에 동의하지만 시기, 계획,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애초 미국은 FTAAP가 도하개발의제(DDA)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고, 미국이 APEC에 참여하는 주된 목적은 아시아에서 미국을 배제하는 경제협력기구가 부상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8년 DDA가 좌초한 후 미국은 자신의 구상을 수정했다. 2008년 2월 미국은 싱가포르, 칠레, 뉴질랜드, 브루나이 등 이른바 'P-4'(범태평양전략경제협력협정 회원국)와 금융서비스와 투자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라면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 호주 및 페루도 동참할 경우 범APEC FTA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에 체결된 P-4는 상품, 서비스, 투자, 경쟁, 지적재산권, 정부조달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협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륙 국가가 함께 참여한 지역간 자유무역협정이었다. (한국은 이미 P-4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거나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은 미국과 P-4 국가들로부터 협상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전달받았다.) 이 협상은 P-4 국가와 미국, 호주,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이 참여하는 범태평양파트너십(TPP)으로 발전했다. TPP는 무역투자자유화에 원칙적으로 예외를 두지 않으며 모든 무역 상품에 대해 100% 관세철폐를 지향하고 있다. TPP는 현재 일본에서 매우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0년 11월 요코하마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 민주당 소속 간 나오토 총리는 “제3의 개국을 한다는 자세로 TPP 참가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 정부는 내년 6월까지 TPP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 발 물러선 상태이자만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강력해 보인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일본 정부가 TPP 참여를 검토하게 된 배경이다. 그것은 첫째로 한미 FTA다.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일본 내각부는 한국만 미국, EU, 중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일본 GDP는 연간 6000억∼7000억 엔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역정책을 입안하는 경제산업성도 “일본이 TPP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FTA로 인해 오는 2020년 자동차·전자·기계 수출에서 1조5000억 엔, 국내 생산에서 3조7000억 엔의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미국이 원하는 ‘경쟁적 자유화’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즉 시장선점을 명분으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유화를 추진하도록 유도한다는 미국의 전략이 일본 정부의 입장으로 공식화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배경은 일본과 중국의 영토분쟁(조어도)과 미일 동맹의 강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본이 TPP 참여를 결정하면 한국도 경쟁적으로 TPP 참여 문제가 공론화될 것이며, 미일군사동맹이 강화되면서 중국과 세력경쟁이 격화되면 그 역시도 미국과의 포괄적 경제안보동맹관계를 주창하는 목소리를 확대할 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미 FTA와 한EU FTA 체결에 주력하면서 TPP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한국의 FTA 추진 전략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금융세계화와 노동신축화 이명박 정부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있으나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비롯해 서민 체감경기 개선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진단하며 공정사회, 서민희망, 따듯한 사회와 같은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복지예산이 꾸준히 증가했고 특히 경제위기에 긴급예산 편성을 통해 이전지출을 확대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로 소득격차를 극대화해온 신자유주의 정책, 전략이라는 구조적 원인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가 복지’라는 구호로 일자리 창출 기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확대는 노동신축화에 근간을 두며, 대체로 지금보다 더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일자리의 유지 수준에 머물거나 고용형태별, 기업규모별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의 구축을 핵심적 대외경제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 체제에서는 한편으로 국내고정자본 투자가 감소하고 또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의 경제 지배력 확대에 따른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TPP에 참여할 의지를 밝히면서 동아시아에서 경쟁적 자유화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은 한미 FTA 체결을 통해 이미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 구상에 큰 한 발을 내딛었다. 한국 민중운동은 한미 FTA가 대표하는 한국정부의 대외경제정책과 일자리 정책으로 포장되는 노동신축화정책에 맞서 싸우며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따듯한 서민경제’의 허구성을 폭로해야 할 것이다.
민중의 복된 삶을 향한 열망과 그들의 노동, 그리고 투쟁들 농성을 접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출입을 거부합니다” 때 이른 날치기로 국회 문이 닫힌 다음 날인 12월 9일, 농성 해단식을 갖고 나오던 조계사 정문에 내걸린 현수막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농성 며칠 더 할 걸 그랬네...’ 하는 헛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 시행 10년을 맞아 전개하였던 법 개정을 위한 농성은 한나라당의 기습 날치기 예산안 통과를 통해 그렇게 끝이 났다. 10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복지의 사각지대를 내몰아온 부양의무자 기준,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절망적 빈곤선 최저생계비, 이제 제발 바꿔보자는 열망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2002년 죽음으로 기초법의 실상을 알린 최옥란 열사의 명동성당 농성, 2005년 기초법 전면 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에 이어, 2010년 기초법 개정을 위한 조계사 천막농성을 11월 15일부터 25일간 전개하였지만, 그 노력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마무리된 것이다. 이번 농성은 가장 기초적인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410만 가난한 이들에 대해 ‘친서민 복지’ 운운하는 이명박 정부와 국회가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결과는 “생계급여 축소, 사각지대 해소 계획 없음. 최저생계비 이만하면 살만하다” 였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러든 말든’이었다. 날치기 그 난리 통에 ‘형님예산’, ‘사모님예산’ 챙길 정신은 있어도 복지예산 챙길 정신은 없었다. 오죽 정신이 없었으면 조계종 총무원장과 약속했다던 템플스테이 예산도 못 챙겨 빈축을 샀겠는가? 빈곤에 대한 기초법의 해답 이번 농성은 빈곤사회연대가 출범 당시부터 강조해왔던 기초법의 중요성과 기초생활수급자를 조직하려 한 일련의 시도들을 중간 결산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 생산적 복지의 대표적 정책 중 하나였던 기초법은 복지정책의 획기적 진전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했으며, 빈곤문제-사회정책과 관련한 중대한 쟁점을 내포한 것이었다. 쟁점들에 대한 기초법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가난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초법 : 정하기 나름이지만, 전문가와 정부가 정하면 된다. 둘째, 빈민이란 누구인가? 기초법 : 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을 모두 합쳐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 소득이 전혀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사람. 수급자에서 탈피하면 ‘탈수급, 탈빈곤’이니까. 셋째, 빈민에 대한 부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초법 : 가족.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부모를 완전히 부양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만 넘으면 부모 또는 자식의 생계를 완전히 책임질 만큼 ‘살만하다’는 것이다. 넷째, 빈곤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기초법 : 없다.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은 죽지 않을 정도의 생계지원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고 조금이라도 일할 수 있다면 (자활을 이룰 수 없는) 자활사업에 참여하거나, 아마도 일하고 있을 테니 추정소득을 매기겠다. 조그마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빈민 기초법은 기존 생활보호제도가 65세 이상 노인인구과 18세 미만의 아동, 임산부 및 노동능력이 완전히 없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국한되어 지원되던 것을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최저생계비 개념을 도입하여 빈곤선의 지표로서 기능하는 제도로 도입되었으며,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수급권자로 권리개념을 도입한 획기적인 제도로 선전되어 왔다. 그러나 낮은 최저생계비와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남겨두는 부양의무자 기준, 노동을 강제사항으로 전제하는 조건부수급조항 등 진입장벽과 거름장치를 동시에 고안하였다. 현행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한 번 계측조사를 실시하여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한 달 식비, 광열·수도비, 주거비, 보건의료비 얼마얼마 등 연구자들이 책정하는 기준을 절대적인 지표로 삼아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균소득 같은 상대 지표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기초법 상 최저생계비는 한국사회의 빈곤선이자 복지제도 수급의 중요한 기준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1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532,583원 4인 가구 1,439,413원이며 이는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30% 수준이다. 이는 제도 도입 당시 40% 수준에서 10년간 10% 이상 그 상대적 수준이 뚝뚝 떨어진 결과다. 부양의무자 기준과 비현실적인 재산기준 등은 2009년 발표된 정부 공식 통계로 410만 명에 달하는 사각지대를 낳았다. 수급자로 살아온 이들의 일상은 아주 조그만 희망마저 가질 수 없는 빈곤고착상태에 빠져있었다. 한 번 넘어진 삶은 일어설 줄을 몰랐다. 급작스러운 실직과 질병, 개발로 인한 삶의 터전 붕괴는 수많은 가난한 이들을 만들어냈지만, 진입장벽을 뚫고 기초생활수급자 된 이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일을 해서 재기의 기반을 만드는 것도 제대로 된 일자리 지원을 통해 빈곤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빈곤에 맞선 주체 조직과 연대 빈곤사회연대는 기초법 연석회의에서 출발하였다. 내가 빈곤사회연대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2006년 당시, 빈곤에 맞선 투쟁과 빈민들의 조직-재조직화를 위한 운동은 노동권-생활권이라는 화두로 전개되었다. 빈곤에 대한 해법은 복지국가가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실업)노동자들 자신이 노동권을 쟁취해내는 운동 속에서, 부동산 투기와 철거폭력에 무너져온 민중들이 생활권을 쟁취하는 운동에서 쟁취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정책사업이나 구제사업보다는 연대운동을 지향했다. 최저임금 현실화가 시급했고, 막개발과 강제철거가 없어지는 것이 시급했고, 공공서비스, 보건의료가 시장화 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시급했다. 무려 41개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왔다. 또한 무엇보다 실업-빈곤에 맞선 대중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체 형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연대운동과 동시에 주체를 조직하는 운동이 필요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조직하기 위한 실태조사, 서명, 선전전, 토론회, 증언대회, 집회, 문화제, 영화제, 선언대회를 했다. 철거민-노점상이 사회운동과 조우할 수 있도록 만나고 연결하고 소통하고 연대하였다. 스스로의 사안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서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었다. 그 사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했고, 노점상이 목을 맸고, 철거민이 불타 죽었다.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죽음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죽음들을 우리 모두에 대한 생명의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다. 우리가 진정 말하고 싶고, 싸우는 것은 민중의 삶과 노동이다 너도 나도 복지를 얘기하고 있다. 전면무상급식이 현금폭탄과 같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파업의 근거를 대는 오세훈의 논리는 희극적이기까지 하지만, 그가 떠드는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은 일견 타당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복지의 외피를 쓴 노동유연화, 복지와 나란히 세워진 사회서비스 시장화, 복지를 핑계로 한 투기성 개발을 보지 못했는가? 그런데도 ‘복지국가를 향한 진보대연합’이란다. 한나라당의 복지예산 삭감 날치기를 규탄하는 이상의 무슨 실천을 할 것인가? 폐허 위에 휘황찬란한 복지국가 깃발을 꽂아, 온갖 철학과 담론을 동원해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은 호들갑이 지나간 뒤에, 그 알량한 사회안전망이 후두둑 균열을 내며 뜯어지던 일들을 모두 잊었는가? 복지를 내걸고 싸우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복지가 아니다. 오세훈이 복지를 내걸고 파업투쟁을 벌이는 게 복지가 핵심 이슈가 아니듯 말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도 복지만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며 노동이다. 한편에서는 소실된 민중연대운동을 복원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소실된 것은 민중연대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다. 숱한 죽어간 이들이 몸에 새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썩어 없어지기도 전에, 이렇게 급속하게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 놀랍다. 끝 기초법 관련 활동이 많아지면서 사무실로 걸려오는 상담전화가 잦다. “대학생 아들이 휴학하고 알바를 몇 달 뛰었는데, 아들이 휴학했으니 부양의무가 있다며 그 때문에 수급권이 박탈될 상황에 놓였다” - 인천에 사는 중증장애인 어머니. “허리디스크로 동사무소에 한 번 가기 어려운데 근로능력평가 결과 근로능력자로 분류되어 다음 달부터 추정소득을 매기겠다는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 서울에 사는 61세 할머니. “60만 원을 받는 인구주택총조사 알바를 했는데 수급비에서 근로소득을 깎아서 지급하겠다고 한다” - 학교에 다니는 아이 한 명과 함께 사는 수급자 어머니 가장. 다시 한번! 우리가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순간들이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복지를, 복된 민중의 삶을 향한 열망을 모르면 곤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민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몬 죄, 민중 생존을 외면한 채 정치놀음과 투기행위를 일삼은 죄를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많은 이들이 2011-12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저들의 정치놀음에 또다시 휘말린다면 그걸로 끝이다.
투자자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 “많은 경우 양자 간 투자협정(BIT)은 자발적이고 강제되지 않은 거래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받아들일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라는 입장으로 이해되었고,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그 상대국은 그에 애원하는 형태였다는 것이 진실이다. 양자 간 투자협정 협상은 평등한 주권국 간의 토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에 의하여 미국의 용어로 이루어진 강도 높은 훈련세미나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미국의 용어에 기초하여 미국의 초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호세 E. 알바레즈, 1992. (미국 국무부 양자 간 투자협정팀) 현재 한미 FTA 재협상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양국이 공방을 거듭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양국이 무역장벽(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적절히 조절하여 슬기롭게 ‘이익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조속히 한미 FTA를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미 FTA의 가장 본질적인 어떤 측면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것은 한미 FTA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즉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 현재 한미 FTA 논란은 자동차와 쇠고기 무역장벽을 둘러싼 양국 간 힘겨루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한미 FTA의 기본 이념이다. 즉 투자자, 곧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의 기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국 간의 관세철폐라는 낮은 단계의 경제통합으로 정의되었고 투자 문제는 FTA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 문제는 대개 양자 간 투자협정이란 형식으로 별도로 다루어졌다. 전통적인 투자협정은 투자의 설립 후 단계에서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산의 보호 문제를 다루는 ‘투자보장협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전통에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는 투자보장협정에다 투자자유화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투자의 설립 단계 이전에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유화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에 모든 투자 기회를 완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무역협정에 투자협정 모델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NAFTA에 투자협정이 포함된 후 자유무역협정은 상품무역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서비스무역, 자본이동과 투자의 자유화를 포괄하기 시작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NAFTA를 모델로 삼으며, 그것을 초과하는 내용을 담은 ‘NAFTA 플러스’였다. 따라서 당연히 한미 FTA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식 투자협정 모델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헌법을 대체하는 자유무역협정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과 한국-유럽 자유무역협정(한-EU FTA)을 둘러싼 논란은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초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개요를 간략히 살펴보자. 2010년 3월 14일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는 한국 의회가 추진 중인 SSM 규제가 한-EU FTA를 위반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초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공동위원회와 런던에서 열린 한영 경제협의회에서 SSM 규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EU FTA 체결 당시 유통업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에 SSM 규제 강화는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야 정당이 합의 하에 추진하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유통법은 대형마트 등록제를 SSM에도 적용하여 재래시장 500미터 내 SSM 진출을 규제한다는 것이었고, 상생법은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사업조정이 신청되면 중소기업청이나 지자체가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권고할 수 있고 이후 조정 및 협의를 거쳐 주위 상권이 지나친 타격을 입지 않도록 품목이나 영업시간을 조정하게 된다.) 그 후 김종훈 본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 SSM 관련법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10월 25일 민주당 자유무역협정 특위에서도 ‘국회가 SSM 쌍둥이법을 모두 처리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라며 한국경제의 신인도 문제까지 운운했다. 어떻게 행정부 관리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정부 관리가 앞장서서 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을 추진하던 정당들은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월 28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이 개최한 '한-EU FTA와 상생법' 토론회에서는 정당한 규제마저 어렵도록 한-EU FTA가 불리하게 체결된 것이 문제인데 그 책임 당사자인 김종훈 본부장이 도리어 한-EU FTA 위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앞서 10월 2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영국 테스코 한 회사의 로비로 그동안 상생법이 제지돼 왔다는 것을 개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2010년 SSM 규제법안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자유무역협정의 무서운 힘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군다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도입되어 있는 것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통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자가 제소 가능성을 언급만 하더라도 투자대상국은 감히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NAFTA의 경우에 이미 많은 사례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지방정부가 공공 자동차보험 도입을 준비했지만 자동차보험 회사가 소송을 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도입을 포기한 사례가 유명하다. 자유무역협정은 기업의 자유 또는 투자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초국적 기업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의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 한국의 헌법보다 기업의 소유권을 우선시한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사실상 한국의 헌법이 바뀌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어찌 보면 SSM 관련법 논란은 사소한 사례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의 권리를 절대화화는 자유무역협정 1997년 세계무역기구 총장 레나토 루지에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단일 세계경제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헌법’이란 표현이 단지 은유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자들이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어떤 권력과 법률도 투자자의 목표를 침해할 수 없도록 세계의 정치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을 ‘새로운 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라고 부른다. 왜 새로운 입헌주의인가. 과거의 입헌주의가 ‘인간․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치와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의미했다면 현재는 헌법이 보장해야 될 대상이 인간․시민이 아니라 자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국가와 국제정치형태에 개입하여 법에 준하는 규칙과 징벌을 부과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자 했다. 어떤 수단이 동원되었는가. 첫째, 국가장치의 재구조화. 새로운 국제협정에 대비하거나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족국가의 헌법형태가 변화되곤 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남아공은 양자 간 투자협정 체결하기 위해 헌법을 수정해야 했다. 또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균형예산이나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통화위원회를 요구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헌법, 각종 법률, 제도, 정책의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막강한 국가장치를 새롭게 구축했다. 둘째,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의 구성과 확장. 대표적으로 토지와 자연자원의 사유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생명과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지적 재산권의 제도화는 초국적 자본의 권리가 관철되는 영역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초국적 자본의 새로운 창,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핵심적 특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뿐만 아니라 투자가-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 더 정확히 말하자만 투자자(초국적 기업)가 투자국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내포한 치명적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1980년대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따라 정부 규제가 기업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전면화되었다. 이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기업이 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피해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부규제는 법률적 용어로 ‘간접수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직접수용’이 공공의 목적을 위한 재산권의 직접적 박탈(국유화와 보상)을 의미했다면 간접수용은 기업의 미래 소득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경․보건 규제도 기업 소유권(미래소득창출권)에 대한 규제로 심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중재판정은 ‘균형성 심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경향을 다소 완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격렬한 저항이 그 원인일 것이다.) 둘째. 궁극적인 문제는 투자국의 입법권, 본질적으로는 인민주권의 원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에 따르면 투자국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중재심판의 대상이 된다. 중재심판은 극소수의 중재심판관, 즉 누구도 그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는 자들이 각 국가의 법률이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격을 가하자 한국 헌법은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즉 한국의 경우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국민을 구속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는 한국의 헌법을 사실상 바꾸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투자협정 위반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보를 제소하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1994년까지 국제중재 건수는 5건에 불과했으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 건수는 245건에 이르고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이 추구하는 최신형 자유무역협정(투자협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할 것이다. 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EU FTA가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가 먼저 ‘알아서 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 정부가 FTA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언론의 논리는 한미 양국 정부가 노리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한다. 그것은 정부의 모든 규제가 기업 소유권의 침해이며 굳이 규제를 가하려면 기업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미국식 소유권 개념의 확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미 FTA 비준을 막을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적 비약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G20 정상들의 기만적인 사교모임은 더욱 나쁜 세계를 만들 것이다 G20 정상회의가 목전에 다가왔다. 11월 7일 전태일 열사 40주기 노동자대회에는 4만 명이 모였다. 이 기세를 11월 11일 G20 규탄 국제민중공동행동의 날로 이어가야 한다. 경제위기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20개국 정상들의 사교모임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다. 이들이 벌이는 모임은 단순한 말잔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를 더욱 나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사진1%] G20은 불평등한 세계를 연장시키고 있다 G20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했다. 1970년대 경제위기의 결과 선진국 모임인 G7이 탄생했다면, 2000년대 경제위기의 결과로 G20이 탄생한 것이다. G20을 만드는 데 미국과 유럽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만큼 G20은 자본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일만 진행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가 심각해질 당시에는 G20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가 참가하는 민주적인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다. 세계 각국에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를 강요한 IMF도 없애자고 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G20으로 결집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힘을 잃었다. G20은 대표적으로 IMF를 재신임하고 오히려 권력을 강화시켜줬다. 위기를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하고, 자본주의 열강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는 국제주의 관점에서 세계 민중들과 연대해야 한다. 한국 노동자 민중들이 G20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국제적인 투쟁에 큰 힘이 될 것이다. G20에는 중국, 브라질 등 거대 개도국과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남아공 등 지역에 따라 안배를 받은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새롭게 포함된 나라는 대부분 친미국가들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문호를 개방하면 더 나은 점이 있다. 위기로 발생되는 각종 비용과 부담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을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 등 개도국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깡패들의 모임에 들어갔다고 좋아해야 할까? “전세계 노동자 민중은 하나”라는 관점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길에 함께 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관리 기구는 말잔치만 늘어놓고 있다 G20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30년의 결과 파국적인 세계경제위기가 발생했는데도 신자유주의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G20은 ‘정책조정의 실패’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큰 변화는 필요 없고 금융규제 약간 하고, 주요 국가 간에 정책협력을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자라났다. 노동자·민중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노동자·민중의 고통은 해결될 수 없다. 단순히 경제위기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노동자 삶의 위기, 지구 환경의 위기, 에너지․식량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자본이 강요하는 팍팍하고 불안한 삶을 견뎌야 하나. G20은 변화를 회피하고 사탕발린 말만 늘어놓는다. 올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G20은 은행세에 대해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위험한 금융투기의 주범인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통제에도 실패했다. G20은 금융자본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준 시스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몇 가지 건전성 지표의 조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노동권 보장, 온실가스 감축, 빈곤 퇴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지만 실제 행동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소재를 활용해 자신들의 이미지 치장에 이용할 뿐이다. 당연하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 자본의 이익을 우선 보장하면서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G20은 반노동정책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 작년 9월 피츠버그 회의에서 G20은 “국제노동 기준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합의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민주노조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선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재정위기에 몰린 유럽 각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자본은 저성장 국면에서 이윤을 늘릴 방법이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켜야한다. 자본과 정권이 한 몸이 되어 노조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바로 이런 현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G20은 이러한 자본의 활동을 비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G20은 노동자 민중의 세금으로 위기에 빠진 부자와 기업만 구제하더니 이제는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긴축 강요는 그리스를 포함해 유럽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연금과 임금 삭감, 복지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G20은 그리스 정부의 끔직한 노동자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또 G20 국가들에게 노동유연화를 적극 주문하고 있다. 이명박은 G20에 목을 매고 있다 이명박은 정권의 치적 사업으로 G20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국제회의를 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국민들이 G20에 걸맞은 에티켓을 가져야 한다며 외국인을 보면 무서워하지 말고 “헬로우”하고 인사하고, 술도 적당히 마시라고 훈계하고 있다. 글로벌스탠더드 운운하면서 노동자를 순한 양처럼 길들이고 착취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G20 회의에서 미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거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한국이 먼저 강대국 입장을 거들고 나서는 것이다. G20을 위상을 강화해서 안정적인 국제기구로 안착화시켜야 한다거나, 자유무역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러한 것들이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미국의 입맛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보수층과 자본은 이런 장단에 춤을 추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사진2%] 강력한 투쟁으로 우리 의지를 보여주자 이럴 때일수록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고용과 임금을 위협하고, 민중의 삶을 옥죄는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에 한국 민중운동은 항상 앞장 서왔다. 2005년 APEC 반대 투쟁, 2006년 한미 FTA 반대 투쟁이 바로 그러한 사례들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 민중을 갈라놓고 경쟁시킨다. 불안한 일자리, 강화된 노동강도, 확대된 비정규직으로 노동자 민중의 단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삶의 조건도 팍팍해진다. 어쩔 수 없이 내 임금, 내 일자리, 내 가족 챙기기에 내몰린다. 악순환을 끊고 노동해방의 새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한다. 우리의 분노를 모아 11월 11일 대규모 시위를 성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상회의 당일에 강력한 투쟁이 전개되는 것을 이명박은 가장 두려워한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G20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투쟁은 피할 수 없는 한판 싸움이다. 정권은 노골적으로 민주노조 죽이기에 나섰다. 단협해지, 공공부문 구조조정, 타임오프 강행, 노조 불인정, 비정규직 확대에 개별적으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 G20 투쟁은 민주노조 말살과 노동유연화 확대를 꿈꾸는 자본과의 대결이다. 또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축소하고 공포를 통해 반대자를 탄압하려는 보수 세력과의 한판 싸움이다. 나아가 G20 투쟁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걸음이기도 하다. 파산한 신자유주의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한다. 11월 11일 2시 서울역에 모이자. 그리고 G20 정상들이 만찬을 벌리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앞까지의 행진을 성사시키자. 노동자 민중의 대안과 G20의 모의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강고한 투쟁이 필요하다!
미국은 왜 한미 FTA를 꺼내 들었나 2010년 6월 30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인 3주년이었다. 2006년 1월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통해 한미 FTA 협상 의지를 천명하고 6월에 1차 협상을 시작하여 불과 1년여가 지난 2007년 6월 30일 한미 양국이 공식적으로 협정문에 서명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모두 비준동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국회비준 절차를 진행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특히 2008년 12월 18일에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본회의에 단독상정하려 하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실력 저지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한미 FTA 이행을 위해 필요한 국내법 개정 사항을 의회에 통보하고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미 FTA의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밟은 것 외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2010년 6월에 들어 갑작스러워 보이는 변화가 발생했다. 2010년 6월 26일 G20 정상회의 중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기에 합의한 직후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한미 FTA와 관련해 새로운 논의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보도가 나오자마자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새로운 논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은 재협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며 “미 의회를 통과하기 위한 부분을 실무적으로 조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표현만 바꾼 재협상이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갑자기 한미 FTA가 급진전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정문을 수정하는 재협상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누차 밝혔다. 따라서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늦추는 대가로 한미 FTA를 다시 협상 테이블에 놓는 빅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반면 오바마 정부가 한미 FTA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도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당시에 과거에 자신이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 반대표를 던졌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했던 적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 정부는 왜 한미 FTA라는 카드를 집어 들었는가? 여기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미국 경제의 불균형 재심화라는 경제적 조건과 최근 국제쟁점으로 떠오르는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작용했다. 미국경제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불균형 심화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대비연율)이 2010년 1/4분기 3.7%에서 2/4분기 2.4%로 하락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대불황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거의 10%에 육박하고 이에 따라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에도 주택시장은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 소득세와 판매세에 의존하는 지방정부의 세입이 감소해 지방정부의 재정난도 악화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 버냉키 의장은 7월 21일 “미국경제가 비정상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면서 경제상황을 경고했고 8월에는 추가적인통화완화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경제의 불균형 해소는 계속 난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유로화 약세가 세계경제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0년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로화의 급격한 하락으로 유로존 국가가 앞으로 몇 년간 최소한 연간 3,000억 달러의 흑자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유럽 국가가 엄격한 재정정책을 구사함으로써 국내 수요를 억제하면서 유로화의 추가 하락이라는 느슨한 통화정책을 계속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 타임즈>도 유로존 국가들이 결국 경기침체를 수출하는 근린궁핍화 정책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6년의 8,000억 달러라는 사상 최고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또한 미국경제의 불균형 해소라는 문제에서 가장 큰 쟁점인 중국 위완화의 평가절상 문제도 미국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중국의 실질실효환율이 10% 평가절상되면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연간 1,700~2,500억 달러 감축되고 미국의 경상수지도 연간 220억~630억 달러 개선될 것이라면서 위완화 환율조정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5년간 위안화가 그 어느 통화보다도 많이 절상되었고 미국의 무역수지적자는 위안화 환율과는 관련이 없으며 위안화 저평가라는 문제는 미국 국내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경제의 불균형이 다시 심화된다면 미국 달러와 자산에 대한 시장의 공격이라는 위험을 강화시킬 수 있고, 해외자본의 미국 유입은 다시금 금융위기라는 씨앗을 뿌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실업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적자 상승은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인다. 따라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오바마 정부가 통상정책에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7월 7일 오바마 대통령은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수출위원회를 조직하면서 향후 5년 내로 수출을 5배 이상 증가시키겠다는 ‘그랜드 플랜’을 제시했다. 즉 수출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미국경제의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지적되는 실업과 민간소비 부진을 극복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의 격화 가능성 오바마 정부의 입장 변화에는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한미동맹에 어떤 작은 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전달하기 위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상대방은 북한이라기보다는 중국을 뜻할 것이다. 최근 미중 갈등의 격화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주요 정치외교 사안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의견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해양지배권을 둘러싼 군사경쟁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태도 발생했다. 중국은 2009년 3월 8일 남중국해 하이난 섬 부근 공해상에서 중국 해군 함정 5척을 동원하여 미국의 정보수집 함정 임페커블호의 항해를 방해하며 상당 시간 대치를 했다. 미국은 민간 함정에 대한 공격이라며 거세게 항의를 했고, 중국은 임페커블호가 사실상 간첩선으로 중국에 대한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곳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속하는 곳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미국은 어느 나라 선박이라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국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남중국해가 한국과 일본의 유조선이 중동으로부터 원유를 수송하는 주요 루트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해상패권을 둘러싼 갈등의 화약고가 될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3월 중국은 ‘남중국해가 중국의 주권과 영토보전과 관련된 핵심이해 사안’이라고 미국 정부에 공식통보했다. 그러나 2010년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은 아시아 공해상에서의 항해의 자유라는 국가적 이해’를 갖고 있다고 천명했고, 시사군도와 난사군도 영토분쟁을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미중 경쟁은 동아시아 국가 간 외교구도에도 반영되고 있다. 2010년 5월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소장 구안 요우페이는 ‘미국이 전략적 동맹을 이용해 중국을 포위해 견제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미국이 미얀마, 말레이시아, 라오스, 파키스탄,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적극적인 외교를 벌이면서 미국이 중국의 아시아 주변국과 협력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전형적인 대중국 봉쇄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중국이 대북 압박이나 제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미국 보수파 중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중국의 역할을 재평가해야 한다거나 대중국 정책에 변화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나쁜 경찰, 중국이 좋은 경찰’을 맡는 그림이 연출되면서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새로운 대안처럼 보이는 효과를 향유하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동아시아 문제에 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새로운 외교구도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6자회담을 폐기하고 미국-남한-일본 3국 동맹을 전면화하자는 제안이 있다. 여기에 호주, 유럽연합, 러시아를 묶어 ‘의지연합’을 형성하여 중국의 안보와 동북아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중국이 배제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중국을 자극해야 한다,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 남북 양자 평화협정을 중재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최근 미국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가입을 신청했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상당히 다양한 지역협력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 국가는 이를 두고 동상이몽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꿈은 무엇일까. 클린턴 국무장관은 ‘EAS가 정치안보협의체로 발전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즉 지역의 정치안보는 EAS로, 경제협력과 자유무역은 APEC을 중심으로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서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건재한 위력을 발휘해야 하며 APEC을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한미 FTA가 유력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 한미 FTA의 미래 한미 FTA 조인 후 부시 정부는 법률에 따라 미국무역대표부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협정을 분석하도록 의뢰했다. 분석에 따르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완전히 이행되면 미국의 수출이 연간 100-110억 달러 증가할 것이다(금융서비스, 보험, 항공운송서비스, 통신, 농업부문). 하지만 한미 FTA는 특히 미국의 자동차 생산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지연되었다. 최근 한미 FTA 재협상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처럼 소형 트럭과 스포츠용다목적차량(SUV)에 대한 25%의 관세를 매년 2.5%씩 10년 동안 제거한다는 합의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 재협상에서 이 문제가 한국이나 미국에게 정말로 사활적 쟁점인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그 분야에서 25%라는 높은 관세는 미국 대 프랑스, 서독의 무역분쟁 과정에서 보복조치로 부과된 예외적으로 높은 관세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이고 앞으로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와 유가상승으로 인해 이러한 유형의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고 한국에서 수출을 위한 투자 인센티브가 높지 않을 것이며 만약 수요가 상승하더라도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는 미국 조립공장에서 미국 노동자를 고용하여 그 부문의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또한 한국 자동차시장의 비관세장벽을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도 있으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수출을 제외하면 미국이 디트로이트나 오하이오처럼 미국 영토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여 해외로 수출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GM대우의 사례처럼 대부분 해외 자회사를 통해 자동차가 생산, 판매된다.) 또한 연구소는 미국 육류 수출업자가 느끼는 현재 수준의 개방도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자동차, 쇠고기 재협상 문제는 실익도 그리 크지 않거나 부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실용적인 수준에서 해결하면 될 뿐이고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이 미국에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주장이다. 결국 재협상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동차, 육류에 대한 개방수준은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FTA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미 FTA의 진정한 쟁점은? 한미 FTA는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경제가 진입한 장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자본의 선택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이라는 형태로 국내고정자본 투자가 감소하고, 초민족 자본의 경제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이른바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 ‘산업공동화’, ‘초민족자본 지배’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재벌의 해외투자, 재벌과 은행에 대한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강화라는 이중적 양상이 동시에 등장했다.) 곧 한국은 장기침체에 돌입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라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야만 했다. 기존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의 핵심은 노동신축화와 원화 평가절하를 통한 대미수출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신흥경제국과 동일한 방식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기존의 경제전략을 보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바로 그것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였다. 하지만 한미 FTA가 그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나? 불행히도 그것은 심각한 결함을 내장한다. 한미 FTA는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를 가속화함으로써 평가절상 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상수지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FTA는 미국의 입장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다시 확대되고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불황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전략이자 미국의 사활적 국익이 걸릴 동아시아 지역을 자유무역지대로 묶기 위한 경제전략이자 군사안보전략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수출확대 전략이 최소한 단기간에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것처럼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또한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 FTA는 한국 자본의 발전전략이 첨예한 경쟁 속에서 위기에 처하자 선택한 카드다. 그러나 한미 FTA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심화시킬 결함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아니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일종의 비상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선택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해안을 넘지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