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동참한 이명박 정부 한국 정부의 이란 제재 동참 한국 정부는 9월 8일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 이행 관련 조처’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란혁명수비대를 포함 이란의 단체와 기관 102곳과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 조처로 한국의 모든 기관과 개인은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는 금융제재 대상자와 어떤 금융거래도 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조처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것일 뿐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조처의 제재 수준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를 훨씬 상회한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영업정지 조치를 받게 된 멜라트은행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란과 거래 시 4만 유로 이상은 한국은행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1만 유로 이상은 한국은행에 사전신고를 해야 하는 부분 역시 안보리 결의안을 초과한 제재 조치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로 가는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동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 지난 7월 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포괄적 이란제재법이 발효되었으며, 미국 재무부는 8월 16일에 동법의 시행규칙을 발표했다. 포괄적 이란제재법은 1996년 발효된 ‘이란제재법’을 확대, 강화한 것이다. 기존의 이란제재법은 ①이란 석유자원 개발에 연간 2,000만 달러 이상 투자한 외국기업, ②이란의 대량살상무기 및 재래식 무기 증강에 기여를 한 외국 개인 및 기관에 대해 △미국 은행의 대출 제한 △미 정부 조달 금지 △대미 수출 금지와 같은 제재 조치를 부과했다. 이번 포괄적 이란제재법은 여기에 더해 ①물품, 서비스, 기술 등을 제공하여 이란의 정제유 국내 생산에 기여한 경우, ②이란에 정제유를 제공하거나 이란의 정제유 수입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에 관여한 경우를 제재 대상에 추가하여 △미국 내 외환시장 접근 금지 △미국 은행 시스템 접근 금지 △미국 내 자산거래 금지를 추가했다. 이번 제재의 주요 내용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제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이 미국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동안 추진된 미국의 이란 제재로 현재 이란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번 제재의 목표는 이란의 주요 재정 수입원인 에너지 부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기업을 미국 금융시장에서 배제하여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이란 제재의 효과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첫 번째 이란 경제제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란의 테러 및 핵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제재 조치(미국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이란 무역/투자 금지, 제3국의 대이란 교역 및 투자제재, 금융제재 등)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런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무역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졌고, 이란의 핵 개발 의혹 역시 해소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1987년 수입금지 조치를 비롯하여 1997년까지 이란과의 모든 교역 및 투자를 금지하는 등 포괄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교역은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유럽 국가와의 교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이란 교역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더불어 2003년 이후 본격화된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란의 교역규모는 매년 급증했다. 2008년 이란의 수출규모는 1,070억 달러로 2003년 320억 달러에 비해 200% 이상 증가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이란 전체 수출의 8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란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각각 5.1%, 4.7%, 5.8%, 7.8%, 6.5%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이란의 교역선이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옮겨졌다. 2009년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 이행으로 프랑스의 Total이 철회를 결정한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 계약을 중국 국영석유기업인 CNPC가 체결한 바 있다. 이란의 총수출에서 EU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21.8%에서 2008년 17.9%로 축소되었다. 반면 대중국 수출은 2002년 9.6%에서 2008년 18.6%로 확대되었고, 수출금액은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2008년 현재 이란 전체 수출에서 중국(18.6%), 일본(15.4%), 한국(7.0%) 3개국의 비중이 40%를 넘을 만큼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이 확대되었다. 즉 국제유가의 고공 행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 증가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이번 이란 제재의 배경 따라서 이란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제3국 기업의 이란 거래, 특히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부분의 투자를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번 이란 제재에 앞서 미국의 아인혼 대북ㆍ대이란 제재조정관이 한국-일본-중국 등을 방문하고, 한국과 일본이 적극적인 제재 조치에 착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미국이 이란에 매달리는 것은 첫째 미국의 중동 전략 때문이고, 둘째는 미국 내 정치 상황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10 국방계획 4개년 검토’에서는 이란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역’으로 평가하며 ‘지속적으로 분쟁을 방지하고 억제해야한다’고 적시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을 포섭과 배제의 원칙에 따라 관리해왔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 국가가 되었고, 1984년부터 미국은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해왔다. 즉 이란은 미국의 관리 정책에서 포섭의 대상이 아닌 배제시켜야 할 국가다. (이외에도 이라크, 시리아 등이 배제 대상으로, 미국은 이들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 바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곤란이 증명하듯 미국의 개입은 중동 지역에서 반미 운동의 성장을 가져왔을 뿐이다. 따라서 반미 세력의 확산을 차단하고 중동 지역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란을 ‘억제’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가 된다. 여기에 에너지 문제도 포함된다. 이란은 현재 원유 확인 매장량이 세계3위(전 세계 매장량의 10%)이고,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2위(전 세계 매장량의 16%)에 달한다.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 모두에 접해 있는 이란에 대한 관리는 미국의 에너지 패권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불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내 정치상황도 크게 작용했다. 오바마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8천억 달러가 넘는 재정 지출을 했지만 경기회복의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공화당을 비롯 여론의 맹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와 같이 강경한 대외정책을 표방하고,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지출을 하면서도 기업투자에 대한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종전을 선언하고 철군 일정을 서두르는 것이나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도 흐트러진 지지 기반을 회복하고 보수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재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기존의 이란 제재가 이란의 교역 규모 확대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란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란은 현재 세계3위의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정제 능력 부족으로 원유를 수출하면서도 국내 가솔린 소비의 절반가량을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투자와 기술 유치가 힘든 상황이다. 미국의 진보적 씽크탱크인 ‘정책연구소’는 9월 초 이란 제재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90년대까지 세계적인 제재 조치의 2/3는 미국이 시행한 것’이라면서,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무력 개입의 위험이나 비용이 들지 않는 제재 조치가 외교적 노력에 비해 더 강력하다고 믿어왔다”고 밝혔다. 경제적, 사회적 제재가 군사력 사용의 대안이라는 믿음은 미국의 정책입안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폭넓게 퍼져 있다. 비군사적 처벌을 가함으로써 전쟁에 따른 대중의 고통과 희생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제재가 민중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1991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이라크에 가해진 제재 조치는 미국의 폭격으로 피폐해진 이라크의 공공 서비스를 복구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수년 간 지속되었고, 영양실조가 만연했다. 1991-2001년 사이의 이라크 제재 동안 수십만 명의 아이가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재는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가해지기 마련이고, 사회적 부와 사회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민중들에게 그 피해가 집중된다. 제재 대상 국가의 지도자들이나 대량살상무기 관련 기관을 한정하여 제재한다는 이른바 ‘스마트 제재’ 역시 강대국의 위압적 수단이며, 더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위한 예비 단계라는 면에서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파괴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지속적으로 가해진 미국의 제재는 이란의 핵개발 시도도, 반미 세력의 성장도 막지 못했다. 제재 조치는 모든 문제를 외부의 제재에 대한 불만으로 전환시켜 지배 집단이 국내의 민주적, 민중적 요구를 쉽게 억압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가를 향한 집결’, 즉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촉발시킬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결국 폭력의 악순환을 부채질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현재 중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군사적 개입이 아닌 조치라 하더라도 폭력의 악순환을 부채질하여 그 자체가 전쟁 유발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정부를 포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인 이란 제재는 중동 지역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는 점에서 이란 제재는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더불어 미국의 패권 전략으로 인해 반복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 ‘더 큰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그 더러운 전쟁과 폭력에 참가하고 있는 한미동맹을 끝장내기 위해 사회운동은 강고한 투쟁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목차 발간사 우리는 왜 G20에 반대하는가? G20 정상회의의 역사와 전망 1. G20은 언제, 왜 탄생했나요? 2. 개도국이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3. G20은 무엇을 위한 모임이고 전망은 어떠한가요? 경제위기와 G20 4. G20의 경제위기 원인 진단은 타당한가요? 5.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G20이 합의한 것은 무엇인가요? 6. 경제위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G20과 우리의 삶 7. G20이 합의한 금융개혁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 것인가요? 8. G20의 글로벌 협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9. G20이 노동권을 보호한다는 데 실제로 그러할까요? 10. G20이 빈곤국 발전을 돕는다는 데 정말인가요? 11. 이명박 정부가 G20을 통해서 노리는 바는 무엇인가요? 12. G20과 APEC, FTA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G20과 우리의 투쟁 13. G20 투쟁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14. 주요 의제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요? 15. 우리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요? * 인쇄본 구입 문의: 02-778-4001~2, 가격 2000원 * 오탈자 수정했습니다. 새로 올린 파일로 보세요(9월 11일).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지난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디트로이트주 미시간에서 개최된 2차 미국사회포럼(USSF)에 노동조합 간부, 비정부기구(NGO) 간부,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모였다. 포럼 행사는 참가자 수가 대략 1만 8천 명에 달할 만큼 상당히 큰 규모로 치러졌다. 5일간 열린 포럼에서는 1,062개의 워크숍과 50개의 ‘민중운동 회의’가 개최되었고 그밖에도 다양한 총회, 집회와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졌다. 실업에서부터 주택압류, 이라크·아프간 전쟁, 이주자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다. 포럼을 마친 뒤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 모두 미국사회포럼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사회포럼의 규모는 최근 경제위기에서 노동자를 향한 공격에 대해 좌파들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결과다. 부시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은 상당한 불만과 일부의 저항을 촉발했지만 (긴급경제안정화법으로 알려진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금융기관 구제 조치는 오바마 정부에 들어와서도 지속되었다) 이것이 전국적 운동으로 유지되지는 못했다. 일부 좌파 진영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가 2009년 2월 입법한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 정책 패키지(미국경제회복및재투자법)는 다른 조치들과 함께 거의 16%에 달할 수도 있었던 실업률을 낮추고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업률은 2010년 1-2월 9.5%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고, 특히 흑인과 라틴계의 실업률은 백인에 비해 훨씬 더 높다. 불완전 취업노동자 숫자를 더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주택소유권을 박탈당했고 주택압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많은 주정부가 교육 보건 서비스나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한 공공서비스의 예산을 삭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물론 이러한 서비스노동에 의지하는 많은 이들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노동자계급은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소득, 고용, 생활기준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악화되었고 향후에도 개선이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특히 유색인은 노동자계급 비율이 백인에 비해 더 높다), 자본의 위기 전가에 반대하고 고용 유지와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강력하고 통일적인 운동을 누구든지 기대하거나 최소한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투쟁 사례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그런 운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글은 노동조합과 여타 좌파 세력의 경제위기 대응을 살피면서 이것이 통일적이고 변혁적인 저항으로 통합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평가한다. 노동조합의 대응 2008년 12월 5일 전국 단위로 조직된 소규모 독립노조인 미국전기라디오기계노동자연합(UE)에 소속된 약 200명에 달하는 라틴계 이주자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합원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Republic Windows and Doors) 공장 점거에 돌입했다. 불과 며칠 전 회사가 공장이 폐쇄될 것이고 근로계약에 명시된 해고수당이나 각종 수당도 없이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노동자들에게 느닷없이 통지한 것이다. 경영자들은 아메리카은행(BoA)이 회사의 추가적인 신용대출을 거절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 거대 은행은 최근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 투쟁은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하려는 사용자와 금융자본의 의도에 맞서 전투적이고 공세적인 저항을 펼침으로써 미국 좌파는 물론 일반인에게 짧은 시간 동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국 각지의 유색인 노동자 단체들이 연대투쟁을 조직해서 아메리카은행 지점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공장점거와 대중적 지지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오바마 대통령마저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언급을 할 정도였다. 투쟁을 통해 결국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은행과 회사의 2차 신용기관인 제이피모건체이스마저 UE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점거 6일째, UE는 사측으로 하여금 체불 임금과 수당, 그리고 두 달 치 건강보험료를 지불할 175만 달러의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 좌파들은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투쟁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대한 전투적 대응, 특히 유색인과 이주자들이 주도하는 노동자계급의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잠시나마 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확산됨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사용자들은 재빨리 고용을 삭감하고 단체협정을 무력화했다.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투쟁과 달리, 주요 노조의 일반적인 태도는 양보 형태를 띠었다. 미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조치를 실행하자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체결한 일련의 협정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제너럴모터스(GM) 및 크라이슬러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기로 했던 그 협정은 2009년 중반 만료되었는데,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퇴직자의 건강보험 기금으로 당초 약속한 현금을 공여하는 대신 회사 주식을 공여함으로써 노조들은 신탁기금을 통해 그 책임을 부담해야 했다. 그밖에도 전미자동차노조는 해고된 이후 실업수당이 소진된 노동자들에게 원래 급여의 약 85%를 제공하는 “일자리 은행”의 폐지를 포함하여, 향후 6년간 파업 금지나 초과수당 삭감과 같은 양보안에 대거 합의했다.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서도 해고와 수당 삭감이 자행됐지만, 이에 대한 저항은 극히 미미했다. 예를 들어 2009년 봄, 뉴욕시 공공노조는 4억 달러에 달하는 건강보험 수당 삭감에 합의했고, 이는 55만여 명의 노동자와 퇴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노조는 희망퇴직자에게 현금으로 수당을 제공하는 대가로 7천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없애기로 뉴욕주와 합의했다. 주지사 아놀드 슈워츠제네거가 캘리포니아주의 노동자들에게 2009-2010년 2년간 월별로 2-3일씩 무급휴직을 강요했지만, 노조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노조들의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민주당과 의 긴밀한 연계에서 연유한다. 미국노총(AFL-CIO)과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공히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약한 뒤(비록 미국노총은 예비선거가 끝난 뒤에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지만) 재정을 후원하고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아래에서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이러한 양대 노총의 오바마 선거운동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주당과의 공조가 낳은 결과다. 이러한 노조-민주당 공조는 “뽑아만 주신다면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후보자 개인에게 매료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러 친노동정책 입법을 취하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노동법 개혁, 특히 노동자자유선택법(EFCA)을 입법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 소속 노조들은 오바마가 당선되면 EFCA가 통과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미조직 노동자를 신규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7년 의회에 제출되어 계류 중인 이 법안이 가까운 시일 내에 통과될 것 같지는 않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자동차 산업 사용자들과 대대적인 양보협약을 체결한 데에는 일반적으로 민주당과의 공조, 특히 오바마 정부와의 친밀한 관계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오바마가 자동차 산업 구제조치 과정에서 이러한 양보협약을 강력히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 정부와의 관계는 경제위기 시기에 노조가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제를 선별적으로 지지하면서 의회 통과를 위해 로비를 하거나 때로는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경우, 보건의료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 들어 건강보험 개혁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최근 물러난 SEIU 전 위원장 앤디 스턴은 모든 미국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논쟁적인 조항을 쟁취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미국노총 역시 민주당의 의제를 바탕으로 강령을 기초했다. 오바마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미국노총은 △학교 도로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추가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주정부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실업자 수당을 확대하고 △지방은행에 대해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메디케이드(65세 미만의 저소득자, 장애인 의료 보조 제도)와 교사들의 봉급을 지원할 수 있도록 주정부에 260억 달러를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의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8월 5일과 10일 각각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이와 같은 의안은 대체로 노조들이 조합원들로 하여금 의원들을 압박하도록 장려하거나 노조 지도부 스스로 로비를 함으로써 법제화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미국 노조 지도부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거나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또한 경제위기가 노동자에게 가한 타격을 다소간 완화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현 체제를 영속화하는 것 이상의 해법을 제시하는 데에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노조 지도부는 공공연히 실업과 저임금의 책임을 신흥경제국, 특히 중국에 돌리며 이들을 계속해서 비난할뿐더러,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라는 관점에서 사고하기보다는 미국 노동자의 이해를 강조하곤 한다. 단적으로 최근 8월 4-5일 개최된 미국노총 집행위원회 회의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집행위에서 노조 지도부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조치로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① ‘바이 아메리카 프로그램’의 확대 ② 국가 제조업 전략 수립 ③ 환율 조작 중단을 위한 강력한 조치 ④ 미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한 관세 정책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 기원: 코포러티즘적 합의와 미국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노동자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고 경제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미국 노조들의 상황은 비단 현 지도부의 노선이나 전략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멀게는 1900년대 초 미국노동조합연맹(AFL) 위원장을 역임한 새뮤얼 곰퍼스와 그의 후계자인 윌리엄 그린이 ‘빵과 버터 노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를 발전시켰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실리적 노조주의는 AFL에 속한 고숙련·정주·백인 조합원들의 협소한 이해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계급투쟁을 등한시했다. AFL 초기 지도부들은 정치적 행동을 노동자계급의 동원이라는 의미보다는 로비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들이 대표한 실리적 노조주의 경향은 전간기 동안 강력한 노동탄압과 몇 차례의 파업 실패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대불황 시기 동안 노동자운동은 코포러티즘과 전투성이라는 두 개의 경향을 모두 드러냈다. 1929년 경제위기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AFL은 친노조 공약과 케인즈주의 정책에 희망을 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프랭클린 로저벨트를 지지했다. 전국산업부흥법(NIRA, 1933년)의 7(a)조항과 전국노사관계법(와그너법, 1935년)과 같은 로저벨트 정부 초기에 통과된 노동개혁 법안은 단체교섭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불공정 노사 관행을 규제할 목적으로 전국노사관계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노조 조직화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올 기회를 제공했다. 1934년에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주도하는 몇 개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고조됐다. 그러나 여전히 AFL 지도부는 숙련노동자에 기반을 둔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숙련 기반 조직화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노총 내 좌파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들은 저숙련 노동자를 포함하는 산별 조직화를 추진했다. 이 세력들은 결국 1935년 산별노동조합회의(CIO)를 결성하고 산별 조직화를 통해 여성 및 흑인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다. 좌파들의 적극적인 조직화 노력과 더불어 AFL과 CIO 사이의 경쟁은 노동자운동의 급성장을 가져왔다. 로저벨트는 노동자들의 힘이 강력해진 것에 놀란 나머지 파업이 벌어지면 일방적으로 자본가들의 편을 들면서 노조 지도부들의 코포러티즘적 성향을 고무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CIO는 민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노조 상층 간부들은 전시 ‘무파업 맹세’를 약속하는 대가로 정부 정책을 협의하는 자리에 참가하곤 했다. 이러한 합의는 꽤나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전후 자본과 노동 사이에 산업평화가 도래했다. 산업평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냉전정책, 즉 반공주의와 해외침략을 신봉하는 조건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으로 통합되었다. 1947년에 미국 의회는 태프트-하틀리가 발의한 전국노사관계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태프트-하틀리법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사용자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노조의 전술에 심각한 제약을 부과하면서 노조 지도부들에게 더 이상 공산당을 가입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연방정부에 파업중단 명령권을 부여했다. CIO는 서약 강요에 저항하다가 1949년 이에 굴복, 1949-50년 11개의 좌파 성향 노조를 축출했다. 이후에도 5개의 노조가 추가로 CIO를 탈퇴했다. 좌파를 효과적으로 숙청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을 일소하는 데 성공한 결과 실리주의적이고 코포러티즘적인 노조주의 헤게모니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전미자동차노조와 GM 사이에 체결된 ‘디트로이트 협정’이었다. 이 협정에서 노조는 생활임금 인상, 사용자의 건강보험 보장, 연금안을 수용하는 대가로 파업권과 현장통제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나머지 자동차 산업에서도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후 CIO는 1955년 AFL과 재통합했고, 미국노총(AFL-CIO)은 공산주의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다.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이 심각하게 침식됨으로써 노동자운동이 실질적으로 파괴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곧 자신이 선택한 ‘위험한 동침’의 결과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노조는 냉전정책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안전한” 세계(즉 해외 자본투자)를 만드는 데 조력했지만, 이러한 ‘충성’에 대한 보상은 보잘 것이 없었다. 오히려 1970년대 초반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탈산업화·금융화를 통해 미국 경제 중에서도 노조로 조직된 핵심 부문을 탈노조화하고 중공업을 남반구로 이전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은 노동현장 인구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노조로 조직화된 제조업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는 일자리로 쫓겨났고, 여성ㆍ이주ㆍ비정규ㆍ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이 다수 증가했다. 조직된 조합원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 집단을 조직할 전략마저 부재한 나머지, 노동조합원 숫자가 급락했다. 1950년대 중반 약 35%에 달하던 노조 조직률은 2009년 현재 12.3%로 추락했고, 민간부문에서는 고작 7.2%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는 처음에는 미국노총 내에서 새로운 조직화 모델의 도입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노총의 분리, 더 정확히 말하면 ‘분열’을 촉발했다. 1995년 선출된 존 스위니 신임 지도부는 조직화 모델을 채택했다. 친노동 법제화에 희망을 품고 여전히 민주당을 강력히 지지하긴 했지만, 스위니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서 서비스의 제공이나 분규 처리수단에 의존하는 대신 동원을 선호했다. 그는 또한 미조직 부문의 조직화를 장려하고 지역사회 단체들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스위니의 조직화 모델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토대를 규정하거나 노동조합 운동의 코포러티즘적 태도와 기능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 게다가 스위니는 가맹 노조들로부터 전방위적인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일부 노조는 새로운 조직화 방식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중앙 지도부를 지나친 간섭주의라고 몰아붙이기도 했고, 일부 노조는 높은 액수의 민주당 지지 의무기금에 피로를 호소하기도 했으며, 탈산업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서비스부문에 기반을 둔 일부 노조는 보다 공세적으로 신규 조합원 조직화를 수행할 자유를 원하기도 했다. 뒤의 두 가지 입장을 보인 노조들은 결국 2005년 미국노총을 탈퇴하여 승리혁신동맹을 결성했다. 승리혁신동맹은 스위니가 도입하려고 시도했던 것과 유사한 강령을 표방했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의 분리는 미국노총의 취약함의 반영이자 단결의 토대가 되어야 할 계급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의 반영으로서, 노조의 부활과는 거리가 멀다. 승리혁신동맹의 강령은 민주당에 대한 독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자계급의 정당한 정치적 행동의 발로라기보다는 민주당과의 공조에 대한 일종의 균형추로서 공화당의 환심을 사려는 것으로 종종 드러나곤 했다. 승리혁신동맹의 정치적 요구는 일반적으로 미국노총의 거울상에 불과했다. 승리혁신동맹의 중추 세력인 북미서비스노조(SEIU)가 신규 부문에서 거둔 조직화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와 (정치적 내용이 결여된 맹목적인 ‘조직 몸집 불리기’에 다름 아닌) 일방적인 하향식 조직화 방식, 그리고 유나이트히어와 같은 다른 노조의 내부 분쟁에 대한 개입 등으로 인해 크나 큰 비난에 처해왔다. 2008년 앤디 스턴 위원장은 유나이트히어의 위원장 브루스 레이너가 히어 부문과 갈등을 겪자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레이너 진영에 속한 10만여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지역지부들은 2009년 3월 유나이트히어를 탈퇴하여 SEIU로 상급단체를 변경, 워커즈유나이티드(Workers United)를 결성했다. 워커즈유나이티드와 유나이트히어는 최근까지 쌍방간 부패와 실정의 책임을 묻는 18개월에 걸친 지난한 법적 분쟁을 벌였다. 미국노총-승리혁신동맹, 유나이트히어-워커즈유나이트 간의 분리는 공히 운동의 역량을 소진시켰다. 또한 이러한 노조의 분리는 노동자운동 내 개별 부문들이 각기 이전에 누려온 협소한 이해에 몰두하는 무능력을 표상한다. 요컨대, 스위니의 개혁 노력과 SEIU가 시도한 조직화 전략은 전후 노자 간 ‘대타협’에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지려는 지속적인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적(계급적) 방향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내부 분파 갈등은 상당 부분 이러한 결점의 결과인 셈이다. 미국사회포럼 참가 세력들의 현황 이상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보면 양대 노총과 그 가맹노조들이 최근 경제위기에 맞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는 유의미한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를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미국사회포럼에 참가하는 노조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노총, 유나이트히어, SEIU와 기타 노조에 소속된 간부들이 미국사회포럼에 참가하긴 했지만, 이들은 포럼을 다른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운동을 건설할 호기로 활용하려는 어떠한 통일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고 행동 제안을 결의할 ‘노동조합 간부회의(Labor Caucus)’가 계획되었지만 이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번 포럼에서는 각 노조가 여타 세력과 함께 공동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떠한 실질적인 기구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사회포럼에 노조만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노조는 미국 사회운동 전반을 대표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미국 노동자운동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노조 이외의 몇몇 운동 세력들은 미국사회포럼에 적극 참여한 것은 물론, 포럼 전후 프로세스를 통해 경제위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주자 권리> 아마도 포럼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이주자 권리 운동일 것이다. 이주자 권리 운동은 지역 노동자센터, 지역사회 단체에서부터 거대 NG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은 항상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대개 노조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주자 권리 부문은 애리조나 주가 이주자단속법 SB1070을 채택함으로써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이 법안은 정식 비자가 없이 애리조나 주에 체류 중인 이주자에게 범죄 혐의를 씌우고, 경찰관이 미등록이주자로 의심되는 모든 이들의 신원을 조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SB1070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에서 대규모로 일어났고, 연방정부도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이 법안은 시행을 하루 앞둔 7월 28일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주자 권리 운동은 SB1070에 반대하는 투쟁 외에도 1,200만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자의 합법화 프로그램을 포함한 포괄적인 이주관련법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이슈는 포럼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진 주제였다. 이주자 공동체의 주체화를 목표로 하는 조직화 전략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은 서면 상으로는 포괄적인 이주개혁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입장 역시 이주자에 대한 감시·통제와 더불어 사업장에서 고용 허가 인증을 통과한 이주자만 입국을 허용할 것, 그리고 멕시코 국경의 경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주자 조직화에 초점을 맞춘 양대 노총 소속 노조들은 투쟁의 주체로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목표를 병행하고 있지 않다. 비노조 이주자 권리 운동에 동참하는 많은 세력들의 경우, 이주자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계급 일반에 대한 공격 사이의 연관을 분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일부 이주자 단체가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이주가 이뤄지는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해는 투쟁방향에 충분한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향후 노조와 이주자 권리 운동 세력 사이의 상호 교류를 증진하고 양자가 서로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반전운동>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약화되긴 했어도 반전운동 역시 포럼의 주요 참가 세력 중 하나였다. 다양한 반전 활동가들은 경제위기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범죄 사이의 연관 고리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전비가 아닌 일자리와 공공서비스를!”(Move the Money)이라는 제목의 캠페인에 대해 논의했다. 보스턴 지역의 단체들이 최초로 발의한 이 캠페인은 일자리를 위한 재원 확충과 공공서비스를 요구하면서, 미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역별 투쟁을 연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역에서 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별 캠페인이 잘 실행된다면 향후 국방예산에 사용되는 돈을 일자리와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 투쟁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비록 캠페인 규모가 아직 충분히 커지지는 않았지만, 캠페인 조직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전단체인 평화행동(Peace Action)과 함께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여타 부문으로도 연계망을 확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유색인 노동자계급 단체> 다른 범주와 겹치긴 하지만, 포럼의 또 다른 주요 참가 세력은 필자가가 비노조 반인종주의·유색인 노동자계급 단체라고 부르려고 하는 세력이다. 이 부문에는 전국가사노동자동맹, 노동자공동체전략센터(로스앤젤레스), 아시아공동체조직(CAAAV, 뉴욕), 고용권쟁취민중조직(POWER, 샌프란시스코)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러한 단체들 중 다수는 그 기원을 1960-70년대 민권운동 및 유색인운동에 두고 있으며, 대체로 이들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인종주의와 보수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노조를 주요 고려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인종주의가 어떻게 교착하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20-30년 전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비노조 조직화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가사노동자를 노동자 범주에 넣고 고급주택 위주의 재개발로 인한 유색인들의 강제 퇴거 문제나 공공운송 이용권과 같은 이슈에 주목하면서 노동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이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을 조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 이러한 운동단체들은 전통적인 노조들과 관계를 맺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다. 5년 전 이 단체들 중 많은 단체들이 선도적으로 나서서 60여 개가 넘는 각종 지방ㆍ지역ㆍ전국 단위 단체들의 전국적 연합체인 풀뿌리세계정의(Grassroots Global Justice)를 결성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빈민ㆍ노동자계급 공동체 속에서 기층 조직화 전략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빈곤, 분쟁,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세계 정치ㆍ경제 세력” 비판을 토대로 국제적인 “변혁적 사회정의 운동”을 건설한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2007년에 개최된 1차 미국사회포럼과 이번 포럼을 조직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9년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비아캄페시나(농민의길), 세계여성행진, 남반구사회동맹과 같은 국제적 반(대안)세계화 운동 세력들과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적 운동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아마도 풀뿌리세계정의의 참가단체들이 정치적 관점이 꼭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로 지역별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동원을 위한 통일적인 강령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규모 면에서나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나 노동조합에 상응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포럼에 참가한 또 다른 비노조 단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세계정의 참가 단체 중 하나인 일자리와정의(Jobs with Justice)라는 전국 단위 단체가 그것이다. 일자리와정의는 더욱 광범위한 경제ㆍ사회 정의라는 맥락에서 노동권을 옹호하기 위해 1987년에 결성된 단체다. 일자리와정의는 노조와 지역사회 단체들 간의 연대를 실질적으로 증진하려고 노력하고, 활동가들 역시 노조의 조직화 캠페인이나 노동현장 투쟁에 직접 지지ㆍ연대한다는 점에서 풀뿌리세계정의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많은 단체들과 구별된다. 일자리와정의는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고, 현재는 미국 전역의 하얏트 호텔에서 임금동결 중단과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유나이트히어의 장기 캠페인을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와정의 각 지부들은 포럼에서 다수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자신들이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캠페인을 홍보하기도 하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이주자의 권리 투쟁과 기존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일자리와정의는 노동조합들과 함께 포럼 둘째 날 “은행이 아니라 일자리에 돈을”이라는 슬로건 하에 ‘노동자 행진과 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더 많은 장애물: 개별주의, 오바마, 풀뿌리 우파 불충분하긴 하지만 미국사회포럼을 개관하면서 미국 사회운동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동시에 운동의 역량이 다양한 이슈로 나눠져 있고, 상이한 부문 간에 각자의 이슈에 선행하는 공통 과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도 살펴볼 수 있었다. 미국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적 노선에 비견할 만한 이러한 ‘개별주의’는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고 냉전 시기 공산주의를 억압했던 미국 역사의 유산에 다름 아니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미국에는 진보적 계급 분석이 부재했는데, 이는 미국의 해외전쟁과 국내 인종주의에 대응해서 1960-70년대에 출현한 운동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동안 진행된 투쟁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를 멀리 하면서 종종 단일 이슈에 집중하거나, 또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재분배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유색인ㆍ여성ㆍ성소수자 등 특수한 하위주체(subaltern) 집단의 대표성을 강조하곤 했다. 이 시기 또는 그 이후에 출현한 유색인 운동 내 일부 세력들의 경우 인종적 억압에 대한 분석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결하려고 노력하였고, 또 어떤 집단들은 여성 억압과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을 유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지만, 운동의 분열상은 지속되었다. 계급 분석의 결여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에 의해서 강화되기도 했는데, 반지성주의는 1960년대 구좌파의 교조주의와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억압적 본성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 운동의 통일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몇 가지 요인들이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비단 노조뿐만 아니라 좌파 일반이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는 강력한 투쟁을 펼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모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망에서 비롯된 문제로서, 오바마가 사상 초유의 흑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다. 공화당원과 티파티운동이 조직한 풀뿌리 우파들이 오바마를 악의적이고 때로는 인종주의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좌파들은 오바마를 비판하는 데 훨씬 조심스러워하고 있고, 이로 인해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가 오바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대안을 제출하는 데 실패하는 와중에, 경기침체기에 터져나온 대중적 불만으로부터 티파티운동이 발전하여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티파티운동 동조자들이 건강보험 개혁이나 정부 지출에 반대하는 몇 차례 집회를 개최하여 언론으로부터 대대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반면, 미국사회포럼과 같은 행사는 어떠한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언론이 차별적으로 반응한 것은 티파티운동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는 단일한 이념으로 무장한 반면, 좌파의 경우 이러한 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일부 연유한다. 각 지역 수준 또는 개별 이슈별로 중요한 투쟁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좌파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통일적 대응을 건설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결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나 개인이 혼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몇 가지 평가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선, 좌파 세력들이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수행하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노동탄압 및 냉전의 유산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유산이라 함은 미국 노동조합들의 코포러티즘적 노선과 신사회운동이 표방한 개별주의 그리고 좌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및 이론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감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노조와 비노조 반인종주의·유색인 노동자계급, 그리고 지역사회 단체들 사이가 긴밀해지고 상호 협력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스위니 지도부 시절 미국노총이 이를 처음 시도한 바 있고, SEIU는 이러한 방식을 특정 조직화 캠페인에서 채택했다. 일자리와정의 역시 이러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으며 노조 조직화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매우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풀뿌리세계정의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과 같은 집단들이 노조와 교류하고, 비전통적인 부문에서 기층 조직화를 위한 집단적 전략을 논의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군사세계화가 개별 억압과 연결되는 맥락과 인종주의ㆍ가부장주의ㆍ이성애주의가 자본주의와 상호 연관되는 맥락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끝으로, 일자리와 공공서비스 등 노동권 투쟁은 이주자의 권리 쟁취 투쟁과 반전운동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는 이주자의 권리 쟁취 투쟁이나 반전운동이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고 전국적 규모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이 정부의 재정 지출이나 경제위기 시 노동자 통제 방식과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하였듯이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실행되고 있다. 강력하고 통일적인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을 배가하는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노동조합 내부와 비노조 노동자계급 좌파 내부에서 지배적인 경향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실현할 구체적 방법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 노동자가 일어서고 있다 *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준), 「2010년 5-7월 중국 노동자의 연쇄 파업과 시위 : 배경과 전망」, 이슈리포트 2010-3, 2010. 8. 19.의 내용을 요약ㆍ재구성ㆍ일부 보완 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참고하시오. 파업의 물결에 휩싸인 중국 파업의 물결이 중국을 휩쓸고 있다. 2010년 5월 이후 광둥성을 중심으로 시작된 파업의 물결은 이후 북상하여 장강 삼각주와 내륙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파업은 주로 수출 위주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어났고,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이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였다. 파업의 규모는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로 인해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최소 수백 건 이상으로 추측된다. 1992년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노선이 채택된 이후 사회주의 시대의 유리한 제도들이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확대되면서 중국 노동자들의 처지는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 집단민원과 노동쟁의조정 신청 등 각종 노동분쟁이 점점 증가해왔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는 국유기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크게 증가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신흥 공업지역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주로 농민공이 주도하는 임금체불이나 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노동분쟁이 크게 증가해왔다. 또한 파업과 같은 집단적인 행동방식이 늘고 있고 그 양상도 전투적으로 변해 왔다. 올해 초 중국의 유일한 합법 노동조합 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이하 전국총공회) 소속 기업노조위원장들의 절반 이상이 2010년을 집단적 노동분쟁이 폭발하는 해로 예상할 정도로 운동의 기세가 오르고 있었다. 이처럼 중국의 노동자운동, 특히 농민공이 주도하는 신흥 공업지역의 노동자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왔고 그 힘이 이번 연쇄 파업으로 분명하게 표출되었다. 혼다자동차부품제조유한공사 노동자 투쟁 사례 5월 17일부터 약 2주일간 이어진 혼다자동차부품제조유한공사(이하 난하이 혼다) 노동자의 투쟁은 이번 연쇄파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난하이 혼다의 노동조건은 중소규모의 수출지향 제조업의 일반적 노동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난하이 혼다의 노동조건과 파업의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번 연쇄 파업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회사는 혼다자동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독자(獨資)기업으로 노동자 2,000여 명이 고용되어 중국 혼다공장에서 사용되는 변속기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부품공급라인을 현지화하여 생산과 운송에 있어 부품 공급가격을 낮춤으로써 경쟁업체들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혼다자동차는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막대한 이윤을 착취해왔다. 난하이 혼다의 생산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농민공이다. 한 노동자가 공개한 임금명세표에 따르면 초급 노동자의 초과근무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합한 총 급여는 사회보장비용을 공제하면 월 1200위안(약 20만원)이다. 더구나 생산직의 약 80%를 차지하는 인턴 노동자들의 급여는 이보다도 낮은 900~1,000위안에 불과했다. 둘 다 기본급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며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근속기간이 늘어도 임금이 거의 상승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노동자들의 불만과 좌절감은 파업이라는 집단적인 형태로 터져 나왔다. 5월 17일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호소했고 150여 명이 파업에 동참하였다. 놀란 경영진은 이후 협상을 약속하며 파업을 일단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순식간에 월 800위안 임금인상 등 108개의 요구가 수합되었다. 이날 이후 경영진은 소폭의 임금인상안을 제시하는 한편 인턴 노동자들에게 파업 참여 시 계약을 파기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파업을 주도한 2명의 노동자를 해고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꺾으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파업에 참가하는 노동자의 수는 늘기 시작했다. 24일에는 1,700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파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괜히 동참했다가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던 노동자들이 단결과 투쟁의 힘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난하이 혼다 공장의 생산은 중단되었고 혼다자동차의 4개 조립공장의 생산마저 중단되었다. 난하이 혼다에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었지만 노동조합의 대표단은 전부 회사 쪽 사람들이었다. 파업이 시작되자 노동조합 간부들은 파업을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영진의 이익을 대변했다. 노동자들은 파업 노동자 중심의 새로운 대표단을 선출하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대표부 재선거 등 노동조합의 재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완강하게 계속되자 결국 광둥성 인민대표자대회 위원이자 광저우자동차의 총경리 쩡칭홍(曾慶洪)이 중재에 나섰다. 6월 4일 결국 노동자와 경영진이 정규직 월 500위안, 인턴 634위안의 임금인상, 추가 상여금 지급, 노동조합의 재건을 위한 상호 노력 등에 합의하여 2주간의 투쟁은 노동자의 부분적 승리로 끝났다. 이상의 난하이 혼다 노동자의 투쟁에서 우리는 이후 연쇄파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파업이라는 집단적 투쟁으로 분출되었고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둘째, 노동조합이나 주변 단체의 개입 없이 자생적으로 투쟁이 시작되었으며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단결과 단체행동의 힘과 권리를 자각하며 전면적인 파업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노동조합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각 기업의 투쟁 상황이 빠르게 전파되며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이 성장했다. 배경과 원인 이번 연쇄파업은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라 심화되고 있는 계급 갈등이 표출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하락해왔다. 또한 2007~2009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중국 경제침체의 피해가 저임금 노동자, 특히 농민공들에게 집중되었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들이 일시적인 경기 회복기에 파업과 시위로 분출하고 있다. 또한 몇 가지 요인들이 노동자들의 협상력과 투쟁력을 높였다. 농민공 수급의 지역적 불균형으로 인해 연안지역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시장에서의 협상력이 커졌다. 신세대 농민공의 임금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권리의식의 향상과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소통능력도 투쟁의 전투성과 연대성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생산성 증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상승 이번 연쇄파업의 직접적인 원인은 낮은 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과잉착취에 기반하고 있는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위안화 가치절하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억제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중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주요 중진국에 비해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06년 중국 제조업 시간당 평균 임금은 0.81달러(6.43위안)로 미국의 2.7%, 한국의 5.6%, 멕시코의 1/4, 필리핀의 2/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저개발 국가에 비해서 중국의 임금은 다소 높은 수준이다. 중국의 임금이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중진국과의 격차는 줄어들고 저개발 국가와의 격차는 늘어나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서 중국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임금만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중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은 매우 높으며 당분간 이러한 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4년 사이에 중국 제조업(향급 이상 소재 기업) 노동보수비용은 3.05배 증가했으나 노동생산성이 5.35배 증가하여 단위노동비용은 오히려 0.56배 감소했다. 이에 따라 국민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 55%에서 2007년에는 45%로 하락했다. 2008년 중국의 단위노동비용은 2009년 미국의 1/4, 멕시코, 폴란드, 한국, 터키 등의 나라들과 비교해도 1/3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인도와 같이 중국보다 임금수준이 낮은 저개발 국가와 비교해도 단위노동비용은 커다란 차이가 없다(<그림1> 참조). 일본, 한국, 싱가폴 등 중국에 앞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의 경우 경제성장의 초반에는 노동생산성 증가에 비해 임금상승이 억제되다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경제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임금이 상승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중국은 아직 임금인상이 억제되어 있는 상황이고 이제 막 억눌린 임금인상의 요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2007~2009 세계 금융위기의 피해가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 이번 연쇄 파업은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의 악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2009년 중국은 10%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국내 투자, 특히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의 활성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심각해졌고 일부 자산계층은 커다란 이익을 얻었으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실업과 임금상승의 둔화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수출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임금인상률이 전 년에 못 미치거나 어떤 경우에는 임금이 삭감되기도 하였다. 국가통계국의 표본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 임금인상률은 전년도 보다 낮은 5.1%로 2001년 이래 최저 수준이었고 지방정부도 평균 10% 이상 인상해오던 법정 최저임금을 동결했다. 중소 수출기업에서 임금이 20-30% 삭감되기도 하였다. 실업률도 크게 증가하였다. 중국 정부에 의하면 2008년 하반기 이후 객지 농민공 1억 3천만 명 중 2,000만 명이 실직하여 귀향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2008년 12월 15일 기준 비공식 실업자를 포함한 도시 실업률이 9.4%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농민공의 2009년 평균소득은 1,417위안으로 명목상 5.7% 증가하는데 그쳤다. 2009년에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의 물가가 크게 상승했음을 감안하면 농민공의 실질소득은 제자리이거나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소득의 불평등도 크게 증가하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상하위 각각 10%의 소득격차가 1985년 2.9배, 1995년 6.2배, 2005년 9.2배에서 2007년 23배로 확대됐으며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55배로 벌어졌다. 연안지역에서의 농민공 부족 현상 연안지역에서의 농민공 부족 현상으로 인해 이 지역의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높아졌다. 전체적으로 중국의 노동력은 공급이 수요를 웃돌고 있으나 2004년부터 연안지역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농촌사가 발표한 “2009년 농민공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중서부로 유입되는 농민공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중국의 거대한 산업지역인 장강삼각주 지역과 주강삼각주 지역의 농민공수가 각각, 7.8%, 22.5% 감소했다. 특히 이 지역 가공무역 수출업종에서 농민공의 감소폭이 매우 컸다. 연안 지역에서의 농민공 부족 현상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강도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임금으로 인해 농민공들이 더 이상 연안지역의 일자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둘째, 중국 정부의 중ㆍ서부 지역의 기초설비 건설 등의 투자확대정책으로 인해 중ㆍ서부에서의 농민공의 성내 취업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 중국의 출산제한정책과 젊은 층의 의식변화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하여 청년층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다수가 청년층인 타지 진출 농민공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줄어들면서 노동력 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임금이 본격적으로 오르는 ‘루이스 전환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도시화율이 낮고 농업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농업의 기계화와 함께 잠재적인 잉여노동력층은 여전히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공급의 지역적 불균형은 농민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략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즉 만약 농촌 노동력 이동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면 지나친 인구부담을 수용하지 못하는 도시는 혼란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면 노동력 공급과 수요의 일시적인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 농민공의 세대적 특성 한편 연쇄 파업을 주도한 집단인 1980년 이후 출생한 신세대 농민공의 세대적 특징 역시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 전국총공회는 6월 21일 “신세대 농민공 문제에 대한 연구보고”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출생자(바링허우, 八十後)들이 전체 농민공의 61.6%를 차지한다. 이들은 예전 세대와 달리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농민이 아닌 임금노동자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임금노동을 통해 도시에서 자리를 잡고 자기를 실현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신세대 농민공은 3고(높은 교육수준, 직업기대치,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반면 3저(낮은 임금수준, 사회보험가입 및 노동계약 체결 비율)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어 희망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들은 평등과 권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 권리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조화사회’와 ‘균부론’의 모순적 효과 중국 정부가 이번 연쇄 파업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면서 파업이 더욱 확대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나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1980년대 파업권에 대한 조문을 헌법에서 삭제했고 파업의 절차 등을 규정하는 법률도 없다. 따라서 모든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정부는 정치사회적 안정성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한 파업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노동자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다만 파업이 거리시위나 물리적인 폭력사태로 확대되는 경우 공권력을 동원하여 파업을 진압하였다. 이번에도 중국정부는 이러한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중국 정부는 파업 확산을 막기 위해 공권력을 공장 주변에 배치하거나 파업관련 보도를 통제했지만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처벌하거나 공권력을 투입해서 파업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이번 파업의 확대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2년 취임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조화사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혁명시대와 개혁개방시대 속에 복잡하게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평등을 관리하고자 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노동계약법 제정이다. 2004년부터 초안이 논의되기 시작하여 2008년 시행된 노동계약법은 초안에 비해 기업의 이해관계가 대폭 반영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조항들이 들어있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시장적 틀 속에 내모는 조항들도 삽입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법 제정으로 인해 노동자의 권리의식은 높아졌음에도 법의 이상과 현실이 크게 괴리되어 있어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 즉 ‘위권투쟁’(爲權鬪爭)에 나서고 있다. 노동계약법과 함께 중국 정부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화하고 관리 능력을 효율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중국의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자주적인 조직이 아니라 당에 종속되어 있으며,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는 생산을 독려하거나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해 왔다. 2000년부터 정부와 공회는 노동쟁의의 양적 증가와 독립적 노동자 조직 건설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외자기업 등 비공유제 기업을 중심으로 조직 확대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08년 말 기준 전국총공회의 조합원은 농민공 7천 2백만 명(조직률 50% 이상)을 포함하여 2억 1천 2백만 명(조직률 73.7%)으로 지난 5년간 2배나 증가했다. 동시에 노동조합 간부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사업장 단위에서의 노동자에 대한 관리능력을 높여 왔다. 또한 단체협의(集体協商)와 단체협약 제도를 발전시켜 단체행동은 억압하되 노동자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자 해 왔다. 하지만 단체협의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기층 노동자들의 요구와 참여는 배제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노동조합을 보다 효율적인 노동자 관리와 통제기구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으나 그리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 이번 파업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이번 파업에서 공회는 기층 노동자들에게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중재자 역할을 가장하여 기업의 편을 들거나 직접적으로 파업을 방해하는 활동을 하기도 해 공회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자본주의적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대응 국내외적 요인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와 노동불안 요소의 증대는 중국 정부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추진해 온 자본주의적 발전 전략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정책의 조정과 노동불안에 대한 관리 능력을 강화하여 자본주의적 발전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거품붕괴에 대한 대응 2007~2009년 세계 금융위기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진국에서 또 한 번의 경기침체(더블 딥)가 예상되고 있다. 이 여파로 중국의 수출증가세가 둔화되었고, 경기 선행지수들이 지난 4월부터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2011년 중국경제는 또다시 경기 저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중국 내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해 자산시장에 투입되었던 막대한 자금으로 인한 자산거품과 지방정부의 재정위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게 위안화 절상과 내수 확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적정 수준의 완화된 통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 유지’를 제창하는 한편 ‘새로운 상황에 따라 정책의 유연성을 부단히 제고할 것’과 ‘경제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리인상, 재정정책의 점진적 긴축, 소비 진작 정책의 유지, 부동산 안정화 정책, 위완화 평가 절상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 대응은 여러 가지 면에서 딜레마에 부딪히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수출이 둔화될 경우 내수나 투자를 통해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철강, 시멘트 등 일부 산업의 생산설비가 과잉되어 있고 부동산 거품이 심각해서 과거 같은 자산 시장 중심의 투자 확대도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낮은 환율과 저임금 노동에 기반한 수출 주도형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지만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내수 주도형 성장으로 가기 위한 기반은 불충분하다. 임금협상의 제도화와 노동조합의 개혁 중국 정부는 이번 연쇄파업에서 드러난 관리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임금조례 제정을 올 4월부터 재차 추진하고 있다. 임금조례는 소득분배개혁과 관련된 중요한 법률규정으로, 인력자원과 사회보장부에서 현재 초안을 제정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임금결정의 방식, 최저임금기준, 임금지급방법, 특수상황하의 임금지급방법, 임금의 거시적인 조정방법, 법률책임 등과 관련된 규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지방정부 차원의 임금협상의 제도화도 시도되고 있다. 광둥성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는 7월 21일 “광둥성기업민주관리조례(广東省企業民主管理條例)”의 개정안 토론을 상정했다. 2년 전 관련 조례가 통과되었으나 세계 금융위기로 시행이 연기되었는데 이번에 단체임금협의와 분쟁조정과 관리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조례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1/5이 단체임금협의를 요구할 경우 노조상급단체는 이를 수용하여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적 선거를 조직하고, 기업에 단체협의를 요구해야 한다. 현재는 노동조합만 단체협의 요구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일반 노동자들은 권한이 없다. 또한 조례개정안은 노동자들이 상급 노조간부뿐 아니라 외부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업이 노동자가 선출한 대표자에 대한 해고 등 어떠한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한 법적으로 단체협의를 요청하거나 협의가 진행 중인 경우 파업과 태업을 금지하는 대신 내부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개입하여 중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업경영주가 협의에 응하지 않거나 의견조정에 실패했을 경우 파업이나 태업을 이유로 노동계약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간접적으로 단체행동의 근거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개혁정책들은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연내에 실행될지 매우 불투명하다. 또한 노동계약법 제정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초안 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내용이 거듭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총공회 역시 관리능력의 강화를 위한 내부 개혁에 착수하고 있다. 전국총공회는 6월 6일 <공회조직에 관한 긴급통지>를 발송한 바 있다. 이 통지문에는 공회가 노동자의 권익보호시스템 마련, 노동자 권익 제고, 단체 임금협상 추진, 임금의 정상적인 인상, 임금체납 방지 등 추진, 경영상황 공개 및 감독 권한 부여, 다양한 문화 체육활동 조직 및 신세대 농민공과 상호교류 증대, 기업발전을 전제로 하는 노동쟁의조정시스템 정비, 노사문제 선제적 대처, 공회 간부들의 노동자 대면접촉 활성화 및 문제 해결 능력 보유 유도 등의 활동을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또한 전국총공회는 공회 간부들이 기업이 아니라 상급 단체에서 임금을 받도록 하여 노동조합 간부의 자주성을 높이고 노동불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며, 200명 이상 사업장에서 반드시 위원장을 민주적으로 선출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7월 31일에 발표했다. 하지만 전국총공회의 이러한 개혁은 관리능력의 효율화를 위한 것일 뿐이다. 민주적 선거를 도입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 실제 선거가 민주적으로 치러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남을 것이며 정부와 공산당을 비판하거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어떠한 시도도 금지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대안적 미래는 노동자운동의 성장에 달려 있다 2010년 5~7월 연쇄 파업의 발전적 측면 2010년 5~7월의 연쇄파업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노동자운동의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의 결과이다. 이번 투쟁의 발전적 측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연쇄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이전의 주요 노동분쟁은 과거 누리고 있던 권리가 줄어들거나 임금체불과 같은 법적으로 명시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신흥 공업지역에서의 노동분쟁이 주로 민원이나 노동중재요청과 같은 법ㆍ제도적 해결 방식에 의존했던 데 비해 이번에는 파업과 거리시위라는 집단적인 투쟁 방식이 전면화되었다. 둘째, 이 투쟁은 다양하게 분할되어 있는 중국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이 강화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계급적 의식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파업에서 난하이 혼다 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인턴 노동자들의 단결에서 나왔다. 또한 노동자 대표단은 6월 3일, “우리의 ‘권리투쟁’은 단지 1800명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국의 노동자의 권리와 이해를 고려한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위권투쟁의 좋은 선례를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셋째, 과거의 노동자들의 파업은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에 의해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이번의 개별적인 파업의 상황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빠르게 교류되었고 이를 통해 다른 기업으로 파업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넷째, 노동조합에 대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고 노동조합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난하이 혼다 노동자들은 사업장의 노동조합 대표부에 대한 민주적인 선거와 자주적인 활동을 요구했으며 9월 노동조합 대표자 재선거를 앞두고 있다. 다른 몇 개의 기업에서도 노동조합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했다. 과제와 전망 현재 중국 노동자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은 중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을 통해서만 바뀔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급진적인 노동자운동의 성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1989년 자유노동조합을 결성했던 주동자는 공개 처형되었으며 평화로운 조합 활동에 가담했던 사람은 폭행죄로 구속되어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중국 정부는 급진적인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장 경계하며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의 개선과 같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도적으로 수렴하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파업과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파업과 시위가 단발적인 저항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통해 계급적 단결이 확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연쇄파업에서도 개별 기업의 파업이나 시위에 지역의 다른 기업의 노동자나 혹은 실업자 등이 가세하거나 공동의 투쟁을 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기업 내에서의 노동조건의 개선이라는 경제적 이슈에 한정되어 있다. 이번 연쇄파업에서도 농민공의 사회적 처지의 개선과 같은 정치ㆍ사회적 요구는 등장하지 않았다. 경제적 요구가 정치 사회적 요구로 발전되고 기업 간, 다양한 노동자 집단 간 공동의 투쟁이 늘어 갈 때 중국 노동자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이 도입되는 노동조합의 민주적 선거가 노동자운동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열린 문제다.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서 이후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중국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위해서 지식인들이나 노동단체의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전환에 비판적인 담론은 매우 취약하다. 과거 중국에서는 당 내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아래로부터의 ‘민간’ 마르크스주의의 흐름이 이어져 왔다. 1957년의 백가쟁명, 백화제방 시대에서 시작하여, 문화대혁명의 급진파, 그리고 1970년대 말 ‘베이징의 봄’ 시대의 ‘청년 노동자 주체의 사회주의 민주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것이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이들을 흡수하여 이론화하는 동시에 조직적으로 억압하였고, 마오쩌둥 사후 당의 실용주의적 변신과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에 대한 전면적 탄압으로 인해 비판적 전통의 토대는 약화되어 왔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이를 중심으로 이른바 ‘신좌파’라 불리는 지식인 집단이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중국의 몇몇 지식인들은 이번 연쇄파업을 지지하고 중국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중국노동자연구네트워크(Chinese Workers Research Network)와 리민치 교수 등 6명의 지식인들은 “전국총공회가 노동자를 위해 말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최초에 중국노동자연구네트워크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는데 중국정부가 성명서를 삭제하고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들은 난하이 혼다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2명의 노동자에 대한 복직과 보상, 공회의 개혁 등을 요구했다. 또한 구좌파적인 입장에서 정부와 사회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는 입장도 제출되었다. 리청루이(Li Chengrui) 교수를 비롯한 5명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최근 노동자 행동의 부상에 대한 구 혁명주의자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서 언론의 자유 보장, 사회주의적 공적 소유의 재확립을 촉구했다. 이번 연쇄파업을 계기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모순을 분석하고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11월 11-12일에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패권과 경제ㆍ금융질서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G20을 규탄하는 운동 역시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 G20에 대해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입장부터 몇몇 분야에서는 비판적인 개입이 가능하지 않으냐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근거로 G20이 세계 경제위기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등장했다는 점, 한국을 포함하여 개도국이 포함되었다는 점, 몇 가지 개혁조치를 실제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는 G20이 세계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패권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변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대안세계화를 주장하는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G20과 관련된 두 가지 쟁점을 검토하고 민중운동의 투쟁 방향을 제안한다. G20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표성, 정당성, 민주주의의 결여 G20에는 대표성, 정당성, 민주주의가 없다. 경제규모를 중심으로 선택된 20개국이 전 세계 190여 국가를 대표할 수 없고, 신자유주의의 교리를 강요해서 현재의 위기를 발생시킨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정당성이 없고, 회의 참가가 봉쇄되어 있고 내용과 진행절차도 철저히 비공개라는 점에서 민주적이지 않다. 2008년 하반기 경제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미국과 유럽의 패권국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여 G20 정상회의를 열었다. 지금까지 4차례 열린 회의를 통해서 G20은 스스로 세계경제에 관한 최고 기구로 규정했고, 경제뿐만 아니라 발전, 빈곤, 환경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국제패권에 관한 중심적인 논의기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G8과 마찬가지로 G20에는 아무런 국제법적인 지위가 없다. 왜 20개국인지에 관한 기준도 없다. G7에 경제규모와 지정학적인 고려에 따라 12개 신흥개도국을 포함시켰는데, 이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이루어진 조정의 결과였고 최종 승인은 G7이 했다. 누가 7개국에, 20개국에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나? 경제규모가 참가 여부와 발언력을 뒷받침한다는 측면에서 G20은 기업의 주주총회나 이사회의 구성 원리와 같다.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개도국이 포함되었으나 각 지역 경제의 강자들로서 대부분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질서의 옹호자들이다. G20에 배제된 170여 개국의 입장은 대변될 길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주빌리사우스, 아탁 등 115개 국가 900여 개 사회운동단체가 서명한 <국제금융체계 개혁을 위한 ‘세계정상회의’ 성명>은 현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G20이 아니라 민주적인 참여와 토론이 보장되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www.choike.org/bw2/ 참고.) 이들은 세계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 G20이 아니라 유엔이 주최하는 국제회의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안한 유엔의 회의는 ①세계 모든 정부가 참여하고, ②시민사회, 시민조직, 사회운동의 대표자가 참여하고, ③현재 위기로 큰 영향을 받는 지역들이 협의하기 위한 분명한 시간표와 절차를 마련하고, ④포괄적인 범위로 모든 문제와 기구들을 다루고, ⑤투명성이 보장되어 제안서와 결과 문서의 초고가 공개되고 토론될 수 있어야 한다. 유엔 역시 역사적ㆍ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수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이 이 성명서에 서명한 까닭은 G20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리핀의 대안세계화운동가 월든 벨로는 “누가 그들에게 위기를 해결할 권한을 부여했나?”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G20 반대 투쟁의 전제라고 강조한다. 한국을 포함한 일부 개도국이 G20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실체도 의심스러운 배타적인 국가적 이해관계보다는 세계 민중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보편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운동에 있어서 국제주의가 다시 제기되는 지점이다. 현재의 위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G20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틀은 제국주의의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전을 이루었고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이 있는 북반구보다는 남반구 민중의 권리를 대폭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변화가 아니라 관리, 행동이 아니라 말 G20은 경제위기를 해결하겠다고 모였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그들은 경제위기 극복을 정책 조율의 차원으로 다루고 있다. 정작 중요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 금융자본의 권력문제, 전 세계적인 불평등과 사회적 위기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공분의 대상이었던 IMF의 권력을 강화시켜 기술관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는 전혀 손대지 못하고 있다. 결국 G20이 목표로 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침해받지 않는 정도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폐지할 생각도, 금융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들 의지도 없다. 현재 존재하는 체제의 원만한 관리와 패권유지가 G20이 공유하고 있는 목표다. G20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사르코지와 같은 각국 정상이나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마저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의 위기가 훨씬 더 깊고 넓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1970년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었다. 금융화를 통해서 실물부문의 수익성 문제를 우회하고자 했던 자본의 전략이 주식, 채권, 부동산 투기로 이어지다가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새로운 거품으로 금융적 축적을 이어갈 방법이 분명하지 않고, 그렇다고 실물부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는 지난 수십 년과는 달리 장기적인 저성장과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빈곤, 기후변화, 에너지, 농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는 위기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질서와 단절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이다. 하지만 G20은 행동이 아니라 말로 이러한 문제를 감추고 자신을 멋지게 포장한다. 2009년 하반기부터 경제위기가 한풀 꺾이는 것처럼 보이자 G20은 고용, 발전, 환경 등 다양한 문제를 언급하는 여유를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는 주목을 받는 국제회의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각국 정상들은 자신들의 친목과 단합을 뽐내고, 언론을 상대로 멋진 말을 늘어놓고 좋은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약속은 휴짓조각이 된다. G8이 대표적인 사례다. G8이 신자유주의 추진기구로 비판을 받자 그들은 외채탕감이나 개발원조와 같은 문제도 주요한 의제로 다룬다고 선전했다. 이러한 행동은 G8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행된 것은 얼마 없고 대부분은 말 잔치로 끝났다. G20도 마찬가지다. G20은 노동권, 환경, 발전에 관한 모호한 공약을 내놓지만 알맹이는 없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존에 하던 것을 좀 더 잘하겠다는 말뿐이다. 새천년개발목표(MDG) 달성에 힘을 쓰겠다,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을 기울이겠다, 화석연료보다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펴겠다,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노동권을 존중하겠다 등등. 그런데 각국에서는 이런 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진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G20은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노조법을 개악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금융규제에 합의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금산분리 완화 등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일은 비단 한국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통제의 요구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보다 강력한 규제와 세금 부과 G20은 첫 회의부터 금융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G20에서 추진하는 것보다 한층 강력한 금융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이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10월에 발표된 아탁(금융과세연합)의 <때가 왔다. 금융 카지노를 폐쇄하자: 금융위기와 민주적 대안에 관한 성명서>에 이러한 주장이 잘 드러나 있다. 아탁은 네 가지 요구를 제기한다. 첫째, 민주적인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금융자본의 권력을 해체하고 실물부문과 사회적 필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셋째, 경제위기로 인한 비용을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지불해야 한다. 넷째, 금융 시스템의 핵심 부분을 개혁하기 위해서 금융통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G20에서 실제 추진되고 있는 금융규제 개혁은 네 번째 요구 중의 일부분인데, 그 정도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G20의 의제에 초점을 맞추고 각 금융규제를 강화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경우에는 투자 중인 자산의 세부내역과 차입금 규모가 상세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금융상품에 관한 포괄주의 규제를 열거주의 규제로 개혁함으로써 모든 개별 신금융상품에 대한 공적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투기자본의 천국인 조세도피처나 역외금융센터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등의 요구들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모든 금융거래에 금융거래세(일명 로빈후드세)를 부과하자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거래세는 주식, 채권, 외환거래 등 모든 금융거래에 0.001~0.05%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운동이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던 토빈세를 모든 금융시장으로 확장시킨 아이디어다. 모든 상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대해서 과세가 이루어진다는 원칙이 금융부문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금융거래에 세금이 부과되면 단기적인 금융거래의 규모가 상당한 정도로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금융거래세로 인해 조달되는 막대한 재원의 일정부분을 기후변화 대응, 빈곤국의 발전 등에 할당하자고 주장하면서 이를 로빈후드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변화를 추동할 힘 다양한 금융통제의 요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아탁에서 제안한 네 가지 개혁 요구에 비추어 본다면 다수의 금융통제 요구안이 가장 미시적인 부분인 금융규제 정책 도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G20을 대체하는 새로운 논의 틀 구성, 금융자본의 권력 통제를 위한 근원적 정책 전환, 위기 비용에 대한 책임 부과라는 나머지 과제는 상대화되어 있다. 이 중 하나인 금융자본의 권력 통제를 위한 근원적 정책 전환에는 금융거래세 도입, 거대 금융복합기업 금지, 공기업과 연금 민영화 금지, 분배정책의 전환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었을 때에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 사회운동단체는 G20이라는 틀에 효과적으로 개입한다는 목적에서, 처음에 제기된 전체적인 변화라는 과제를 상대화하고 G20에서 제기되는 개혁 정책을 좀 더 급진화하거나 금융거래세와 같은 한두 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한 이슈파이팅 및 로비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금융정책 개혁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금융자본의 권력을 제어할 수 없다. 각국의 입장이 다르고 금융자본의 권력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조정과정에서 정책왜곡이 발생한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는 G20이 스스로 변화를 추진할 리가 없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인 평가와 이에 대한 반성에 근거를 둔 포괄적인 방향 전환이 없이는 하나의 정책을 온전히 시행할 수 없다. 따라서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운동은 스스로의 목표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은 새로운 대중운동의 구성으로 사회변화를 꾀했던 대안세계화운동의 구상에 미달한다. 우리가 금융통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그 자체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쟁점을 매개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대안세계를 향한 운동의 동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면적인 금융통제의 요구를 대안세계화 운동의 맥락 하에서 파악해야 한다. G20 투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당면한 G20 투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여기에서는 민중운동 내의 과제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첫째, G20 투쟁은 무엇보다 우리가 맞고 있는 경제위기와 복합적인 사회적 위기의 현실을 폭로하고 교육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G20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는 이유, G20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라는 관념이 힘을 얻는 이유는 현재의 위기를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일련의 정책 조합으로 사고하고, 이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그러하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정책과 새로운 기술과 탄소거래의 문제로 간주할 때,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새천년개발목표 달성의 문제로 간주할 때 그러한 사고와 실천은 체계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점에서 G20을 계기로 현재의 정세와 관련된 교육과 토론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추구하고, 어떠한 운동을 건설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둘째, G20의 실체에 대한 폭로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각 부문별 과제와 요구를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투쟁의 대상은 정확하게 G20과 관련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동원하고 선전하는 것도 바로 G20과 한국의 발전 전망을 결부시키는 데 있다. G20이 망가진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하는 기구라는 점, 진정한 변화를 회피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점, G20에서 한국이 맡고 있는 역할이 개도국 입장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지하는 데 있다는 점이 폭로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을 제정하는 등 각종 제도와 엄포를 동원해서 강력한 탄압으로 대중적인 집회를 봉쇄할 것이기 때문에 조직된 대중운동단체의 결의와 노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제에 관해서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해야 한다. 셋째, 대안세계화 담론과 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2000년대 대안세계화운동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과 토론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위기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이러한 주장이 오히려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G20 투쟁과정에서 대안세계화의 문제의식을 다시 운동의 과제로 제기해야 할 것이다.
* 8월 30일 수정 내용 - 고유명사 표기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았습니다. -'중국의 헌법에는 파업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 중국의 헌법에는 파업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 4조원의 경기부양 -> 4조위안의 경기부양 <요 약> - 2010년 5~7월 노동자의 연쇄적인 파업과 시위의 물결이 중국을 뒤 덮었음. 이 기간의 파업과 시위는 대부분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어났으며, 젊은 농민공이 주도.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이 주된 요구였고, 노동조합 대표자의 민주적 선출 등 노동조합 개혁에 대한 요구도 많았음. - 혼다자동차부품제조유한공사 파업이 연쇄 파업을 선도. 혼다자동차 중국공장은 부품 조달 라인을 현지화하여 중국 저임금 노동력의 활용을 최대화함으로써 경쟁업체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 하지만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임금격차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파업으로 분출. 소수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주도하였고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이 변화하며 파업은 전체 노동자로 확산. 파업의 요구도 노동조건 개선에서 노동조합의 재건으로 확대. 결국 파업은 노동자들의 부분적인 승리로 끝남. 이후 예정되어 있는 노동조합 대표자 선거를 통해 민주적인 지도부를 구성하고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가 남아 있는 과제. -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임금상승은 생산성 증가에 비해 낮았음. 중국의 경제성장 기적은 중국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에 기반.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임금인상은 둔화되었음. 특히 농민공에게 피해가 집중되어 농민공 실업이 급증하였고 농민공들의 실질소득은 2008년과 비슷하거나 낮아짐. 이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이 경기 회복 시기에 이번 파업으로 분출. 연안 지역에서의 농민공 노동력의 부족은 노동자들의 협상력 증대의 하나의 원인. 중국 정부의 갈등 관리 정책의 취약성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음. 신세대 농민공들의 임금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권리의식의 향상과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소통능력도 투쟁의 전투성과 연대성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 이번 파업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신 공업지역의 노동자운동이 꾸준히 성장해 온 결과. 특히 집단적 행동이 주된 저항 방식이 되고 있다는 점, 노동조합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 개별 투쟁 사례들이 교류되고 다른 투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번 연쇄파업은 과거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음. 하지만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는 없었다는 점, 연쇄적으로 파업이 발생했지만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교류와 연대는 한계적이었다는 점에서는 과거 투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줌. - 중국 정부는 지역 최저임금 인상, 임금조례 제정, 임금 단체협상의 제도화 등 일정한 수준의 소득분배 개선과 코포타티즘적 제도의 강화를 통해 잠재적인 노동불안을 관리하려 하고 있으나 그 폭은 제한적일 전망. 개별 기업들은 중국 내륙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한편 노무관리를 강화하여 노사갈등을 예방하려 할 것임. 전국총공회의 개혁에 대한 내․외부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운동 세력이 영향력 있는 규모로 성장하기 전에는 한계적일 전망.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정치적 탄압이 강력한 상황에서 대안적인 운동의 성장은 쉽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