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정부 정책을 관통하는 핵심 기조로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창조경제 개념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창조경제론자들은 그것을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즉 성장전략으로서 제시한다. 이들은 대체로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창조경제론의 논리는 1990년대부터 유행한 지식기반경제론과 매우 유사하다. 1990년대 미국 신경제 호황에 힘입어 한국에도 지식기반경제론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IT벤처기업 창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되었고, 굴뚝경제에서 지식경제로 이행한다는 장미빛 전망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의 신경제 호황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2007년 이후 미국경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진앙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경제의 불안정성이 더욱 증대되었고 각국에서 고용, 소득불평등 같은 전통적인 문제들이 더욱 악화되었다. 지식기반사회 내지는 정보사회의 화려한 외양에만 주목한 미래학자들과 정부 관료들의 장미빛 전망은 전혀 현실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아래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창조경제론의 주요 내용을 분석한 후, 그것이 과연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박근혜 정부는 왜 창조경제를 제시했나?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살펴보면 1990년대까지는 높은 성장세가 나타났지만 2000년대 들어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다. 2010-11년 1인당 실질GDP는 27,157달러로 1970년대의 7배 이상으로 높아졌으나 1인당 GDP성장률은 4.4%로 1970년대의 1/3 수준으로 낮아졌다(그림1).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가 하락함에 따라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작년 말 정부는 세계경제가 전반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대하며, 국내경제 활력이 저하되는 3중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어 지난 3월에도 한국경제가 7분기 연속 전기대비 0%대의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기둔화가 장기화할 위험이 있음을 우려했다(그림2). 단기적으로도 정부는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3%로 조정하는 등 경제전망 수치 대부분을 하향조정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는 제조업 부문의 노동생산성 향상과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증가에 힘입어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제조업 부문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감소하고,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 증가율도 하락했다. 2005년 현재 한국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OECD 25개국 중 12위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 반면 서비스업의 경우 최하위에 머물러 있어, 서비스업의 낮은 노동생산성이 2000년대 들어 한국 전체 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둔화시키고 나아가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그림3). 이는 1997년 이후 제조업의 잠재성장률은 그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서비스업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함에 따라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림4).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는 노동시간 및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속도를 둔화시켜 경제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향후 20년 동안 한국경제 GDP 성장률이 연평균 4%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 평균 4.5% 수준이었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 4.9%, 2020년대 6.1%까지 증가해야 한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미 추격(catch-up)에 성공해 선진국과 노동생산성 격차가 크게 축소되어 있는 제조업 부문의 경우 연구개발(R&D) 투자의 확대를 통한 기술혁신이 요구된다. 반면 여전히 선진국과의 노동생산성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부문, 특히 서비스업의 경우 시장개방을 통해서 선진국으로부터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된다. 이런 방법을 통해 특히 의료, 법률, 금융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 이래 장기적인 성장추세 악화에 대응해서 한국 정부는 기존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함과 동시에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선진국 추격형’에서 ‘세계시장 선도형’으로,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이 발현되고 새로운 부가가치가 마련되도록 우리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전환을 상징하는 표현이 바로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 전략 한국경제의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전략은 이미 지난 2월 국정과제로 제출된 바 있다. 새 정부의 6개 국정과제 중 첫 번째 과제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는 △창조경제의 생태계 조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 동력 강화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운영이라는 6개 전략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여섯 번째 전략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운영’은 거시경제 안정을 의미하므로 직접적인 창조경제 실현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 번째 전략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와 다섯 번째 전략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역시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반영한 것이지 장기적인 성장추세 회복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표1]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전략의 핵심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 산업 전반에 융합확산될 수 있도록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전반적 내용을 담고 있는 첫 번째 전략 ‘창조경제의 생태계 조성’, 정보통신보건산업 등 정부가 주목하는 산업별 육성전망을 담고 있는 두 번째 전략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 동력 강화’, 이를 뒷받침하는 네 번째 전략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에 있다. 이런 전략들을 종합하는 표현이 최근 유행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기존 산업과 IT과학기술이 융합돼 일자리 창출과 성장으로 연결되는 경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ICT 융합이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플랫폼 확보 기업의 성공 덕분이다. 스마트기기의 확산에 따라 주로 컴퓨터에서만 쓰이던 운영체제(OS)가 모든 스마트기기에 탑재되고, 기기 내 모든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통제하는 핵심기능을 수행하면서, 플랫폼을 확보한 기업은 ICT 관련 모든 산업의 가치사슬에서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제공 가능한 콘텐츠, 서비스, 소프트웨어까지 장악함으로써 관련 산업 내에서 자신의 독보적 지위를 강화하여 수익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나아가 스마트기기 제조업의 경우 완제품 경쟁력에 있어서 ICT가 적용된 부품과 소프트웨어가 부각되고, 이를 최적화하는 제조기술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가령 핵심부품인 CPU, AP 등의 제조역량을 갖추었거나, 이런 핵심부품과 플랫폼 등의 모듈을 결합하여 차별화된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하드웨어 제조역량이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와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주도적인 하드웨어 제조업체로 자리 잡은 대표적 사례다. 자동차를 비롯한 기존 제조업에서도 제품의 차별성을 위해 ICT를 도입한 서비스 기능을 부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는 자사의 전기자동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서비스(Windows Azure)를 장착했다. 애저를 통해 자동차의 전력관리, 배터리 잔량 원격점검, 홈 네트워크 원격제어 등을 수행한다. 롤스로이스는 24시간 원격으로 전 세계 8,300개 엔진을 관리하고 엔진 가동시간 기준으로 임대료를 받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서비스업의 경우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ICT 융합의 범위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가령, 보건서비스 분야의 원격의료 서비스는 서비스업 고부가가치화 및 ICT 융합의 핵심으로 사고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원격의료 서비스는 삼성전자가 제작한 당뇨관리 의료기기(삼성헬스다이어리)를 당뇨환자 집에 설치하고 SK텔레콤의 정보전달 플랫폼을 통해 병원으로 환자의 건강상태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보건서비스뿐만 아니라 교육서비스로도 확대될 수 있으며, 나아가 재난안전, 치안 등 정부행정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외에도 정부는 “소프트웨어, 영화, 게임, 관광, 컨설팅, 보건의료, MICE(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을 ‘창조형 서비스업’으로 분류하고 이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처럼 창조경제의 핵심인 ICT 융합은 플랫폼 확보, ICT 핵심부품 생산 및 완제품 제조, ICT 기술과 융합된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 등을 통해서 소득을 얻는 기업 모델과 관련된다. 이런 기업 모델에서는 혁신적 기술이나 창조적 아이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창의성이야말로 소득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강화된다. 나아가 정부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일자리를 만드는 창조경제”라고 설명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개인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확산된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ICT 융합이라는 신성장동력을 바탕으로 장기적 성장추세를 회복하고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창조경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인가 굴뚝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로, 그리고 창조경제로? 사실 정보통신기술(ICT)과 지식, 정보, 아이디어가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인식은 1990년대 지식기반경제론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다. 창조경제라는 개념도 지식기반경제라는 개념과 거의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대체로 지식기반경제 내지는 정보경제를 보충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그것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한다는 미래학자들의 전망을 공유한다. 가령 1990년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창조사회를 제4의 물결로 설명했고, 『창조경제』(2001)의 저자 존 호킨스 역시 창조경제를 새로운 경제체제라고 정의했다. 노동이나 자본 투입이 아니라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사회로 이행한다는 지식기반사회론에 창조적 아이디어도 부를 창출한다고 보충하는 셈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 현실적 기반은 197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지속되고 있는 제조업 부문 축소와 서비스업 부문의 성장이었다. 미국의 경우 이미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 세계적으로도 1974-83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농업, 광업, 제조업의 고용은 크게 감소했다.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부분적으로 서비스 산업이나 금융보험 부문으로 흡수되었고 부분적으로 실업의 증가를 낳았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서비스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은 70%, 발전도상국은 50%까지 상승한다. 이와 같은 서비스 부문의 확대에 더해 1990년대 미국 신경제 호황과 실리콘밸리의 신화는 정보통신기술의 적용을 통해 굴뚝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성장 모델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IMF 이후 모든 정부가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이라는 전망과 목표를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다만 정부에 따라서 정치적 표현방식과 정책적 강조점이 부분적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가령, 김대중 정부가 IT 벤처창업과 신지식인 개념을 강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산업의 결합사례로 두바이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의 팽창 과정은 지식과 정보에 의한 부의 창출이 확대된 결과가 아니었다. 서비스부문 내 사회서비스, 금융서비스, 생산자서비스, 개인서비스 등 각각의 서비스업은 서로 다른 축적 요구와 결합되어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볼 때 서비스업은 20세기 초중반 정부, 보건, 교육 같은 사회서비스의 팽창에서 시작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으며, 산업적 축적이 위기에 처한 1970년대 이후에는 특히 금융서비스가 팽창하고 기존 생산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던 업무의 외주화에 따른 생산자서비스가 증가하면서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생산자서비스는 기업의 핵심적 전문업무를 외주화한 법률, 공학건축 서비스, 회계, 감사, 세무, 연구, 검사, 경영, 광고 등 기업서비스(business service)와 경비, 청소, 식당 업무 등 기업의 업무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쉽게 분리될 수 있는 업무영역으로 양극화되어 등장했다. 또한 서비스 부문의 팽창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굴뚝경제로부터의 탈피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의 징후로 해석할 수도 없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대표하는 금융서비스와 기업서비스의 경우 고용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이 굴뚝경제를 대표하는 자동차산업에 비견될 만한 전후방 효과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의 후방에는 무수히 많은 기계산업의 발전이 있고, 그 전방에는 자동차산업의 발달에 따른 소비산업과 오락산업의 성장이 있다. 반면 정보통신기술은 성장과 고용의 확대 보다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한 시장의 확대(인터넷 상점, 신용거래 등), 금융세계화, 국제적인 하청계열화(글로벌 아웃소싱)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역사상 전례가 없는 큰 폭의 혁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전신의 발명은 대륙 간 통신에 걸리는 시간을 몇 주에서 몇 초로 줄였다. 철도, 자동차, 오디오, 텔레비전, 항생제, 전화, 전기, 제트비행기, 플라스틱, 가내배관 등도 마찬가지다. 고객맞춤형 다품종 생산으로 인해 신제품 숫자가 오늘날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하더라도 혁신의 속도는 더 느릴 수 있다. 1870년에 태어나 70년 간 살았던 사람이라면 195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서비스 부문의 양적 팽창에만 주목하거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그것을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지식기반경제론 또는 창조경제론은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저하하면서 발생한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산업과 상업에서 금융과 서비스로 경제의 무게중심을 옮긴 과정에서 부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 또는 창조경제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반영하는 금융세계화에 따른 금융서비스의 성장, 과거 제조업 내 부서로 포괄되어 있던 서비스 부문의 아웃소싱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성장담론, 새로운 성장단계가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생존방식이다.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재분배 역량의 강화 창조경제가 성장과 고용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기업들의 성공이 가치의 생산보다는 그 재분배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식, 정보, 창조적 아이디어를 지식재산권을 매개로 사업화해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인과 기업은 소득을 막대하게 늘릴 수 있지만, 이것이 전체 경제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조경제는 특정 개인과 기업에게만 고소득의 기회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플랫폼을 확보한 ICT 기업의 막대한 소득은 지대(rent)와 상당히 비슷하다. 토지 소유자는 자본가에게 토지를 대여함으로써 지대를 획득하는데, 그 전제는 토지에 대한 자본가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토지 소유권이다. 소유자는 실제 생산과정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지만, 즉 생산적 노동의 착취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자본가로부터 임대료를 받음으로써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단 한 명의 노동자도 고용하지 않고도 소득을 얻으며, 그 소득은 자본가로부터 제공된다. 창조경제가 주목하는 지식, 정보, 아이디어는 지식재산권이라는 배타적 소유권에 의해 보호되고, 이 지식, 정보, 아이디어를 대여하는 자본가는 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단, 토지소유자가 1명에게만 그것을 빌려줄 수 있는 반면 지식재산권 소유자는 그것을 아주 싼 가격에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명에게 그것을 대여할 수 있고, 따라서 엄청나게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같은 운영체제(OS)는 구매자 수가 많아질수록 그 유용성이 커지기 때문에 대여자 또는 소비자가 이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경쟁기업의 신규 시장진입도 어렵다. 대부분의 플랫폼 확보 기업의 고소득은 이러한 시장지배력에 기인한다. 지대와 마찬가지로, 지식재산권 소유자에게 제공되는 소득은 자본가가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사용료 또는 자본가로부터 노동자가 받은 임금의 소비로서 간접적으로 이전(transfer)되는 것이다. 지식, 정보, 창조적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경제활동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고방식은 구글과 같이 웹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고수익을 얻는 기업 모델 때문에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모델이 결국 광고수익에 의존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자본가로부터의 소득 이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무료 서비스를 사용하는 개인들은 어떤 지출도 없이 사용가치를 얻기 때문에 이런 사업모델이 경제의 기본법칙을 거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아주 오래된 소득 이전 방식을 새로운 기술에 적용한 것일 따름이다. 창조경제는 경제 전체의 성장과 관련되기보다는 소유권을 보장받은 개인이나 기업의 성장과 관련된다. 이런 논의를 더욱 확대해보면, 대부분의 서비스업이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가치의 재분배와 관련된다. 생산자서비스의 경우 애초 생산기업으로부터 외부화되었다는 점에서 가치의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한편 생산기업에서 생산된 가치를 분배받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주목받는 법률, 회계, 컨설팅 등 기업서비스는 주주의 소유권에 기여하는 국제적 행위 규준을 개발도입하는 대가로 생산기업이 생산한 가치의 많은 부분을 재분배 받을 수 있다. 금융서비스 기업의 소득 역시 이자, 수수료 등의 형태로 생산자본의 순환으로부터 잉여가치의 일부를 보상으로 받은 것이다. 만약 금융기관의 소득 원천인 순이자가 이처럼 이전으로 다루어진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금융기관이 생산한 가치는 없는 반면, 금융기관 소유자나 금융기관에 고용된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급여만 존재하므로 금융기관의 부가가치는 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자의 지급을 통한 금융중개기관의 수익을 제외할 경우 OECD의 표현에 따르면 “[경제 각 부문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이 국민총생산에 보잘 것 없는 수준 혹은 심지어 마이너스로 기여하는 것으로 나오는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금융부문의 생산적 기여를 정당화하는 추계방법을 고안해왔으며,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구분하는 노동가치론의 정치적 함의를 의식적으로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의 결함은 금융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무엇인지, 금융의 생산적 기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의 생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노동, 즉 산업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상업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운송창고통신업무 같은 유통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생산적인 반면 매매업무와 재무회계마케팅광고홍보 같은 순수유통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비생산적이다. 그러나 상업자본이나 금융자본에 고용되는 비생산적 노동자도 잉여가치의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한다. 한편 서비스노동은 비생산적일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과도 무관하다. 그리고 서비스노동 중에서는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유용한 노동이 있는 반면, 일부 개인서비스처럼 무용하거나 유해한 서비스노동도 있다. 이 때 어떤 경제활동이 비생산적이라는 명제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필요없다거나 쓸모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자본주의에서 신용의 공급은 경제활동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산업자본의 가치 생산 촉진에 신용과 금융의 필수적인 역할을 인지하고 그로 인한 가치이전의 크기와 효과를 분석하는 것과 이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가치의 생산과 이전 그리고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은 국민계정이 경제주체들이 실제로 생산한 부가가치를 제대로 집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중요한 기제인 것이다. 반면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 가치의 이전이라는 개념을 의식적으로 제거해온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금융의 생산적 기여를 여러 취약한 논리들로 정당화하는 것이 곤혹스런 과제가 된다. 던컨 폴리는 현대 국민계정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 교육, 의료, 전문기업서비스 등 서비스업의 부가가치로 계산되는 부분을 제외한 ‘좁은 범위로 측정한 부가가치’와 GDP 간의 편차, 고용지표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금융과 부동산, 정부서비스 부문 등에서의 여타 귀속소득을 GDP에 포함시키는 현행 방식이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 규모를 과소추정하고 반대로 금융권의 재건과 그들의 소득 진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기회복의 수준은 과대평가함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좁은 범위로 측정한 부가가치’로 부가가치를 계산할 경우 전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기존 3.3%에서 2.4%로 1/4정도 하향 조정된다. 따라서 지대 수취와 유사한 지식재산권을 매개로 하는 ICT 관련 산업과 금융서비스, 기업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고소득을 핵심으로 하는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일 수는 없다. 그것은 가치의 생산보다는 생산된 가치의 더 많은 부분을 재분배 받으려는 기업 모델일 뿐이다. 창조경제에서의 가치사슬과 임금노동조건의 악화 굴뚝경제에서 창조경제로의 전환의 또 다른 징후로 해석되곤 하는 것은 제조업 가치사슬의 변화다. 제조업 가치사슬은 여전히 연구개발(R&D)→제조→마케팅→서비스 등의 단계를 이루지만 그 단계별 경중이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고정자본 투자와 저임금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제조 단계가 이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가치사슬의 앞에 위치한 연구개발 및 기획 단계와 뒤에 위치한 마케팅이나 서비스 단계가 더 중요해졌다. 연구개발, 판매전략 수립, 제품 디자인, 광고, 유지관리 서비스 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지식, 정보, 아이디어의 활용이기 때문에 제조업 가치사슬의 변화는 창조경제로의 전환의 징후로 해석되곤 한다. 단적으로 아이폰, 아이패드는 스티브 잡스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낳은 성과로 평가되며, 최근 기아자동차 K시리즈의 성공은 피터 슈라이어라는 창조적 디자이너의 역량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부터 살펴보자. 완성차 기업들은 시장경쟁의 격화에 대응해서 생산전략을 변화시켜왔다. 표준제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보다는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제품차별화를 위해서는 연구개발과 기획디자인 능력이 중요해지는데, 2000년대 들어 현대, 기아, 쌍용자동차 모두에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또한 시장확보를 위한 유통망 장악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중요해지면서 이를 위한 마케팅 능력이 핵심적인 경쟁력으로 등장한다. 특히 마케팅 능력은 소비자들의 불만과 요구를 신속히 파악해 이를 연구개발과 기획단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 결과 1999년 현대차와 기아차는 외부화되어있던 자동차 판매부문인 현대자동차서비스와 기아자동차판매를 각각 내부화했다. [그림7] 한국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 구조변화 연구개발기획, 마케팅 기능은 강화된 반면 기존에 완성차 기업에서 수행하던 최종조립 및 주요 부품생산의 상당부분은 축소외부화되었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 현대모비스를 설립하여 주요 모듈의 독점 공급 기업으로 육성하고, 여타 부품기업을 현대모비스의 하위부품기업으로 재편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모듈화를 총괄하고 하위 생산사슬 전반을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중간관리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위부품기업을 조정통제하는 관리구조 덕분에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완성차기업이 최종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제품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인 디자인과 설계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공신력있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종속적이고 위계적인 생산구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생산기능의 축소외부화는 완성차기업 입장에서 생산공정이 비용절감의 대상이 된다는 점, 그리고 외부화를 통해 경기변동에 따라 쉽게 그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기아차는 비용절감과 유연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모듈화와 플랫폼 통합이라는 새로운 생산기술을 적용했고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노동과정을 표준화단순화할 수 있었으며 이는 임금과 고용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지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림 8] 휴대전화 글로벌 가치사슬 이와 같은 가치사슬 변화는 창조경제를 대표하는 ICT 제조업에서 더욱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전자산업은 핵심 기술과 범용 기술의 구분이 명확하여 모듈화가 용이하고 업계표준도 잘 정리되어 있어 생산 외주화가 용이하게 진행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적인 전자산업 대기업들 역시 생산의 외주화, 나아가 탈생산 방식을 채택했다. 가령 애플은 연구개발과 디자인만을 담당하며 생산 일체를 대만계 위탁제조업체(EMS, 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인 폭스콘에 외주화한다. 탈생산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애플과 같은 대기업들은 불황 시 설비 유휴에 대한 비용을 위탁제조업체에 넘길 수 있다. 물론 타 제조업체에 휴대전화 조립을 위탁하는 정도는 기업 간에 차이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노동집약적 생산 부분의 외주화와 핵심부품 생산의 그룹 내부화를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휴대전화 조립은 중소기업들이 전문적으로 담당하지만 (물론 이 경우에도 전량 외주화하는 것은 아니고 자체 생산능력을 유지하며 일부를 외주화한다) 핵심 부품 중 자체 기술을 갖출 수 있는 범위의 부품들은 그룹 내부화하는 형태다. LCD 패널, 메모리 반도체와 같이 기존에 생산 능력을 갖춘 부품 외에도 RF모듈은 삼성전기가, 배터리 모듈은 삼성 SDI와 LG화학이, 카메라 모듈은 삼성테크윈, LG이노텍 등이 담당한다. 이런 방식은 자체 생산과 외주생산을 병행하면서 위탁제조업체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 낳을 수 있는 변수를 통제하여, 내부 생산에 따른 위험 비용은 외부화하고 탈생산에 따른 단점은 내부 생산으로 극복하는 이중 체계이다. [그림9] 애플 아이폰4의 부가가치 배분 휴대전화 가치사슬에서도 글로벌 대기업은 하위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생산과정에서의 비용절감을 달성한다. ICT 산업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이미지와 달리, 소수의 고기술 핵심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면 가치사슬 내 대부분 노동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휴대전화 가치사슬은 아프리카 탄광의 강제노동에서부터 폭스콘 공장의 학생인턴과 인도콜센터의 교대 근무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비정규직에 의존한다. 반면 여기서 발생하는 가치는 소수 국가 및 글로벌 대기업에게 집중되어 심지어 대표적인 공급업체들에도 적은 수익만이 돌아간다. 예를 들어 중국의 조립업체가 아이폰4 한 대를 수출해서 받는 대가는 소매가(600달러)의 1%에 그친다. 대부분의 가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고기술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 제조업 국가의 전자제품 대기업과 이 제품을 설계하고 판촉하는 애플에게 돌아간다. 자동차산업과 휴대전화 가치사슬 분석에서 알 수 있듯, 연구개발기획과 마케팅 분야의 강화는 생산과정에서 임금과 고용의 불안정화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는 창조경제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노동과정을 표준화, 단순화시킴으로써 노동의 탈숙련화를 통해 노동의 가치저하를 지속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개별 기업이 제품차별화, 시장확보, 비용절감에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과잉축적에 따른 시장 경쟁 격화에 있다는 점은 우리가 어떤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기보다는 여전히 자본주의 위기 시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시사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경제위기에 대응해서 ICT 융합과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재개하겠다는 담론으로, 1990년대 이래 유행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론을 한국경제 사정에 맞게 일부 보완한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의 팽창은 금융세계화 및 제조업 아웃소싱의 결과였고 정보통신기술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볼 때 지식기반경제 및 창조경제를 새로운 성장단계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창조경제가 주목하는 ICT 플랫폼, 금융서비스, 기업서비스는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가치의 더 많은 몫을 재분배받는 기업모델이기 때문에 성장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리고 ICT와 제조업의 융합 역시 각 기업이 경제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여전히 임금과 고용불안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선진국들의 창조경제 실현 전략은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치의 재분배 능력을 제고하여 타국으로부터 생산된 가치를 자국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은 실물경제의 쇠퇴에 대응하여 환태평양파트너십(TPP)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의 설립을 통해 금융서비스와 기업서비스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재개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결국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받음으로써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재개하려는 시도다.일본의 TPP참여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이와 같은 재분배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자유무역을 유지하면서도 수출을 증가시키려는 각국 정책은 국제적인 갈등과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부의 재분배 능력을 제고하려는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은 자본의 소유권 강화로 귀결되고, 이는 소득불평등이 심화시켜온 기존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저임금 후진국에 잉여가치의 생산을 집중시키는 반면 고소득 선진국은 금융서비스, 기업서비스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잉여가치를 재분배받는 불평등한 분업이 강화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소유권 강화에 더해서 임금과 고용조건의 불안정화, 의료교육서비스의 영리화 등으로 인해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 저성장 속에서 불평등의 확대는 결국 대중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기반경제론과 마찬가지로 창조경제론은 이러한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 수평성을 강화하고 개인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돕는다는 믿음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와 연결된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수직적 위계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대체하고 있고, 국가와 기업은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북돋기 시작했으며, 임금과 고용의 불안정은 오히려 역동적인 삶을 의미할 수 있다는 식이다. 1990년대 신지식인 담론 이후 꾸준히 확산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작년 총대선에서 IT벤처기업 출신의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지지로 그 힘을 발휘한 바 있다. 그는 실제로 김대중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 중 한명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 담론의 진정한 의미는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있다.
새로운 보수 정권과 노동운동의 과제 취임 후 100일이 다되도록 노동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이 5월 27일 시간제 일자리(단시간 근로)를 언급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가 중요하다” “시간제 일자리라는 표현에서 편견을 쉽게 지울 수 없으니, 공모 등을 통해 이름을 좋은 단어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의 대명사인 시간제 일자리가 중요하다니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소리다. 더군다나 비판이 있으면 이름을 바꿔서 포장을 달리해보자는 제안까지 한다. 그럴듯한 말로 현실을 호도하고 노동자를 더욱 착취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는 것. 이것이 어쩌면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의 가장 큰 특징일 수도 있겠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고용률 70%’ ‘실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와 같은 사회적 담론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추진하려고 하는 바는 무엇인가? 고용률 70%, 저성장을 막기 위한 노동의 동원 박근혜 정부는 주요 국정과제로 고용률 70% 달성을 내세운다. 현재 64.2%인 고용률을 임기 내에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고용률을 핵심 목표로 내세운다는 점을 들어 박근혜 정부가 이전의 보수 세력에 비해서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고용정책은 노동유연화 등 반민중 정책을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고, 실상은 경제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 고안한 경제정책의 일부이다. [표1] 기관별 한국경제 잠재성장률 예측치 (단위: %) 우선 고용률이 강조되는 맥락을 살펴보자. 최근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이 매우 빨라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일본형 장기 저성장이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경제정책을 펴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재벌들이 최근 이러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전경련이 후원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박근혜 정부 취임에 맞춰 한층 비관적인 잠재성장률 예측치를 내놓고, 잠재성장률 1%p를 끌어올리는 것을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잠재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인구의 고령화를 꼽았다. 2017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노동 공급의 감소로 인해서 잠재성장률의 하락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다른 요소의 변동이 없으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만으로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2011~2020년 연간 3.6%에서 2021~2030년 연간 2.4%로 감소한다. 따라서 고용률을 최대한 높여서 경제성장률의 추가적인 하락을 막는 것이 경제정책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결국, 고용률 제고는 저성장기에 잠재적인 위기 요소를 관리하는 정책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는 자본-노동의 갈등과 분배의 문제가 들어갈 틈이 없다. 노동은 경제를 위해 동원되어야 할 자원의 하나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계 관계는 정부 부처 간에도 작용한다. 고용 정책의 큰 틀은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에서 만들어지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시행할 세부적인 계획을 짜고 점검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고용전략회의의 의제를 세팅한 것은 기획재정부였다. 고용노동부의 역할도 변화하여 노사관계의 조정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실업자 재취업 지원의 비중이 높아진다. 2010년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꾼 것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결국 고용률 높이기가 새 정부의 핵심 과제로 제기되는 배경에는 바로 한층 어려워진 경제를 위해 노동을 더 동원해야 한다는 익숙한 경제 논리가 있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단시간 근무 확대 경제 논리에 기초한 고용률 제고는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켜서 양을 늘리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을 통한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을 제외한다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제를 성장시키거나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경제산업정책을 통해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거나 한국 경제를 내수-고용 중심으로 전환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재벌-수출 중심의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세계적 불황 시기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생길 수는 없다. 뚜렷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정부는 그럴듯한 담론을 동원해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존의 정책을 조합해서 재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과 핵발전소 수출을 녹색경제로 포장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기만과 말잔치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검토되는 것은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정부와 재계는 많은 인원이 서비스 산업에 고용되어 있으나 부가가치 창출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보건의료는 고용창출 여력이 크고 부가가치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지속적인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의료관광 활성화, 국제병원 유치, 영리병원 허용 등이 바로 그 내용이다. 또한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통해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민영화와 시장화는 모든 사람들이 보장받아야 할 삶의 권리와 건강을 담보로 한 도박판을 벌이려는 시도이다. 지금도 병원에서는 초고강도 교대제 근무로 인해서 간호사의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회서비스 영역에서는 최저임금을 받는 단시간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일자리가 이 지경인데 영리를 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경쟁을 강화시킬 때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할 것은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저임금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 일이다. 둘째, 노동 비용을 낮추어서 기업이 노동을 더욱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고, 노사관계에서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직업교육훈련을 효율화하는 것 등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표2]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대상별 주요대책 5월 23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곧 발표할 일자리 대책에서 시간제 근로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이 주최한 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나온 뒤 기자들에게 밝힌 내용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률 제고 대책의 핵심에도 노동유연화 조치가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유연근로제, 단시간 근무를 확산시키고 근로시간계좌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유연화 공세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2017년까지 238만 명의 취업자 증가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 여성의 비중이 69.3%에 달한다. 특히 일-가정의 양립을 이야기하면서 출산과 양육,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을 단시간 일자리로 흡수하겠다고 강조한다. 이미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정부는 5년 동안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으로 시간제 노동자 5만 명을 충원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유연근로제가 2010년 시범 도입 이후 2012년부터 전 공공기관에서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95개 공공기관 중 207개의 기관에서 2만 4,400명(총 직원대비 8.1%)이 유연근로제에 참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유연근로제를 시간제 근무(단시간 근로), 탄력근무제, 원격근무제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중 탄력근무제가 1만 6,800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단시간 근로로 6,683명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주로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주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들도 확대할 계획이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집에 있는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해야 한다”며 “양질의 파트타임 일자리와 함께 경제활동을 해보지 않은 여성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2~3시간 일할 수 있는 초단시간 일자리를 만들어 부담없이 일할 수 있는 분야에 적용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시간 근로의 확대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만을 늘릴 뿐이다. 정부는 단시간 근로를 확대하기 위해서 컨설팅 등을 통해서 단시간 근로에 적합한 직무를 개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정한 직무가 단시간 근로로 채워진다면 그 직무는 중요하지 않은 직무,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직무로 취급을 받으면서 저임금을 당연시할 것이다. 또한 외주화나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가장 먼저 대상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시간 근로가 여성의 노동에 대한 폄하를 더욱 강화할 것은 물론이다. 반쪽짜리 임금을 받고 일과 가정을 동시에 돌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한 유연화 공세 박근혜 정부의 유연화 공세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명분도 내세우면서 진행되고 있다. OECD 최고인 우리나라의 연평균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유연근로제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고용노동부는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올해 6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노사정위원회는 2012년 3월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를 발족시켜 1년여 동안 연장휴일근로 축소, 유연근로제 활성화, 교대제 개편, 휴일휴가 사용 촉진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노사의 이견이 합의되지 않아서 올 4월에 공익위원회의 권고안을 채택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공익위원회 권고안의 핵심 내용은 첫째,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허용되는 근로시간의 상한에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모두 포함시켜 1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둘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핵심은 연장근로 단축과 노동시간 유연화를 교환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것의 효과도 거의 없어진다. 정부는 단위기간을 취업규칙만 변경하면 되는 2주를 1개월로 연장하고, 노사 서면합의가 필요한 3개월 이내를 1년 이내로 연장하려고 한다. 1997년 2주-1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된 이래, 2003년 주40시간제의 시행과 함께 단위기간이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 비율은 2011년 6.1%에 불과할 정도로 별로 활용되지 않았다. 휴일근로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편법불법적인 방법으로 노동자의 실제 노동시간이 늘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했기 때문에, 변형근로제의 도입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장근로가 12시간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나아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늘어난다면 이 제도의 사용이 매우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2주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최대 주당 60시간까지,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최대 주당 64시간까지 연장 할증임금 없이 장시간근로가 가능하게 되어있다. 단위기간이 늘어나면 작업량과 수요변동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개발되고 시행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작업 시간이 기업의 필요에 맞게 촘촘히 짜여져, 노동자가 체감하는 노동 강도는 한층 강화될 것이다. 반면에 기업이 할증임금의 부담 없이 자유롭게 노동시간을 재편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하락하게 된다. 정부는 노사발전재단을 통해서 이러한 제도를 이용해서 기업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면서 임금 비용과 생산성을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기존의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기업들의 우려가 감소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으로 법 개정에 나설 것이다. 또한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4월 국회에 제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근로시간저축휴가제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를 포함시켰다. 근로시간저축휴가제는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 초과근로나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를 근로시간으로 환산해 저축한 뒤에 근로자가 필요할 때에 휴가로 사용하거나 저축한 근로시간이 없어도 미리 휴가를 사용하고 나중에 초과근로로 보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진짜 목적은 휴가에 있지 않다. 초과근로나 부족근로를 돈이 아니라 시간으로 계산하여 가감하는 제도로서 노동운동의 힘이 강하다는 독일에서도 기업이 원하는 시기에 노동력을 동원하고, 덜 필요한 시기에는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연차휴가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사업장에 따라서는 70%의 휴업수당을 회피하기 위해서 연차를 강제로 쓰게 하고, 연차가 없을 때는 무급휴가까지 강제로 실시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근로시간계좌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자유롭게 휴가를 갈 수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근로시간계좌제가 시행된다면 휴업수당을 회피하기 위한 불법 관행이 제도적으로 합법화되는 효과가 난다. 또한 근로시간계좌제는 단기(1년 이내)와 장기(1년 이상)로 구분되는 시간계좌의 적용방안과 적립노동시간의 상한선을 ‘사업장 여건’에 맡기고 있다. 노동자의 힘이 약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정산기간 내에 초과근로시간을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무급으로 초과노동을 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주노조에 대한 배제와 탄압 박근혜 정부가 노사관계에 대해서 침묵하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노동 문제’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판단하고 그 기조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특별한 내용을 필요로 한다기보다는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과 배제를 기조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는 데에 있다. 괜한 말로 소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이 조용한 실천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을 판단할 때는 말보다 행동과 실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나? 우선 눈엣가시로 여기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탄압을 검토하고 있다. 첫 번째 화살은 전교조를 향하고 있다. 올 2월에 고용노동부는 현직 교원이 아닌 해직 교원도 조합원 자격이 될 수 있는 전교조의 규약이 ‘교원노조법’에 어긋난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전교조가 시정명령을 거부해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 상실을 통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논리는 공무원노조의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하는 데에도 적용되었던 논리다. 하지만 공무원노조가 이후 해고자를 제외하고 2010~2012년 세 차례나 노조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조 설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고 때 마다 규약에 포함된 ‘정치적 지위 향상’을 빼라거나 노조원 명단을 내라며 신고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빌미와 명분을 내걸더라도 결론은 민주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에 안전행정부의 서기관은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을 상급 조직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노조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통상임금과 관련된 논란 때문에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공부문 노조 손보기는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명박 정부는 철도노조의 단협을 해지하고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면서 노조를 악랄하게 탄압했다. 또한 발전노조 등에서도 단협 해지와 어용노조 설립을 통해서 민주노조를 파괴했다. 박근혜 정부는 철도 민영화, 가스법 개정 등 큰 이슈를 둘러싼 투쟁과 연계하여 대표적인 공공기관 노조 손보기를 저울질 할 것이다. 또한 노조를 파괴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 기조라는 점을 확인한다면, 자신감을 얻은 기업주들이 민간 기업의 노조 와해 공작에도 서슴지 않고 나설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는 공공부문의 노조를 단협해지 등으로 탄압하고, 후반기에는 타임오프와 복수노조를 이용해서 금속노조의 대표적인 사업장을 탄압했다. 이 과정은 ‘사측 책임자의 교체나 외부 영입 -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공세적인 선전전 - 기존 노사관계에 대한 무시와 도발 - 직장폐쇄 - 조합원 복귀 - 생산재개 - 어용노조 설립- 민주노조 고립과 무력화’라는 노조 파괴 시나리오로 공식화할 수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사측 부당노동행위의 결과물인 어용노조를 인정함으로써 사측의 노조 와해 공작을 용인해주는 역할을 했다. 어용노조를 적극적으로 적발하여 설립신고를 취소하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엄격히 처벌하는 식으로 정책 기조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사측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되풀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을 공고화하는 비정규직 대책 민주노조에 대한 철저한 탄압배제와 달리 박근혜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면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 지난 2월 25일 취임식 날 박근혜 대통령이 광화문 광장에서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 달라”는 집배원의 요청을 읽고 한 이야기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기간제 노동자를 2015년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용노동부는 4월에 올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4만 1,000명 이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시도는 2011년 발표된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확대하는 조치이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대책도 내놓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설립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사내하도급법)의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벌써 수많은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고, 앞으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신분을 공고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에서 박근혜 정부가 상시지속 업무로 분류한 노동자의 수가 전체 36만 명의 28.8%인 10만 4,00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1% 이상(25만 6,000명)은 여전히 해고의 불안을 떠안고 사는 비정규직으로 남게 된다. 그나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차별과 해고의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 것은 기간제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도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 기간제보다 더욱 열악한 임금을 제시하고, 직무도 단순 업무로 바꾸어 무기계약직을 차별하는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규직’이라고 불리던 무기계약직이 또 하나의 비정규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무기계약직 사무원들은 복리후생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16년째 일한 사무원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 160만 원에 불과하다. 공공운수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의 평균 임금은 127만 430원으로 정규직 211만 4,070원의 60%에 불과하지만, 비정규직 평균임금인 126만 9,040원과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고용노동부 사무원노조가 2011년 차별 시정을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전국의 고용센터에 “사무원은 보조업무를 하는 직원이니, 채용 목적에 맞게 업무를 분장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그동안 취업상담이나 고용보험 일을 하던 사무원들이 스티커 부착, 팩스 정리, 우편물 발송과 같은 단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차별 시정이 아니라 보조 업무를 담당하도록 직무를 분리한 것이다. 또한 무기계약직이라고 하더라도 고용안정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에 따르면 15개 정부 부처의 무기계약직 관리규정을 분석한 결과 그중 9개 부처에서 무기계약직을 근무성적에 따라 임의로 해고할 수 있는 규정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예산부족이나 사업 폐지 등을 이유로 해고가 가능한 독소조항들도 존재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학교비정규직은 지난 3월까지 무기계약직 1,118명이 정원 감소나 사업 종료를 이유로 해고되었다. 더군다나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서 기간제 노동자가 해고되는 사례도 다수 보고되고 있다. 지자체 보건소에서 저소득층의 건강을 돌보는 방문간호사들의 경우 정부가 지난해 말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을 내렸지만, 일선 지자체에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행하지 않고 해고하는 경우가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대책도 약간의 보호 조치를 취하되 이들을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묶어두는 방법이다. 정부가 추진할 특별법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노동3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보호대책만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특별법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는 노조가 아닌 단체를 조직할 권리만 보장 받는다. 또한 노동자 과반수를 조직하지 못하면 교섭의무를 가질 수 없으며 파업권도 부여받지 못한다. 이러한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기존의 노동자들마저 특수고용직으로 재분류되어 노동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사내하도급법은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해체해서 아무런 사유와 기간 제한도 없이 간접고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다. 사내하도급법은 “원사업주(원청)의 사업장 내에서 수급사업주(하청)가 원사업주로부터 도급 또는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사내하도급으로 정의한다. 사내하도급을 원사업주의 사업장 내에서 수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해 근로자 파견과 유사한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수급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서 작업특성상 불가피한 경우 원청이 개입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심지어 원청이 직무교육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도 있게 하였다. 이런 내용은 모두 대법원 판결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것들이다. 결국 사내하도급법이 통과된다면 오랜 투쟁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대법원의 불법 파견 판례가 무효화되고, 제조업의 파견이 완전히 허용되어 간접고용이 대대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맞선 노동운동의 과제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은 고용률 제고와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한 유연화 공세,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배제탄압, 기만적인 비정규직 대책을 통한 비정규직 관리로 요약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노동 정책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지만, 고용률노동시간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담론을 앞세워서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민주노총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 일반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보수 세력 역시 저성장 시대에 드러나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의 불안과 고통이 심상치 않음을 자각하고 이를 관리포섭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인 정책을 막아내고 침체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희망으로 부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주체적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고통이 계속해서 분출하고 있다. 올해에도 건설노조,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학교비정규직, 대형마트 등 새롭게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대부분이 상당 기간 동안 주체적인 조직화 노력이 투여된 곳들이다. 박근혜 정부에 맞선 노동운동의 과제를 간단히 점검해보자. 우선 민영화 저지, 노동3권 보장,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내걸고 전개될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6~7월 투쟁을 지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권 초기에 대정부 전선을 어떻게 치느냐가 향후 투쟁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박근혜 정부는 각종 꼼수를 동원해서 철도와 가스를 필두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상수도, 인천공항, 영리병원, 발전소 등 민영화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정부는 지난 10여 년의 학습과정을 통해 형성된 민영화 추진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민영화 이슈를 최대한 개별화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서 조용히 처리하려고 한다. 반대로 노동운동은 투쟁 전선을 흩뜨리고 힘을 빼려고 하는 개별화 전략에 말려들지 말고, 훨씬 더 강고한 반민영화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중단시킨 것은 2002년 벌어진 철도가스발전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이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는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민영화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정책 역시 2008년에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시위를 통해 막을 수 있었다. 이러한 민영화 전선이 최소한의 노동기본권마저 무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노조전교조 탄압에 맞선 저항, 기만적인 비정규직 대책에 맞서는 투쟁, 건설노동자들의 6월 총파업 투쟁 등과 결합하고 확대할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한다. 정권 초기에 투쟁을 통해서 누가 자신감을 가지느냐가 향후 운동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투쟁들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하자. 다음으로 민주노조 파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조 파괴 공세에 대한 가장 좋은 해법은 금속노조 SJM지회 투쟁, 유성기업지회 투쟁과 같은 모범 사례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이 매뉴얼화되어 있다면 노조 측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진행된 투쟁을 통해서 창조컨설팅이나 용역폭력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기 때문에 노조가 미리 준비한다면 이전보다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 외에도 공공운수, 보건 등 다양한 산별노조, 다양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노조파괴의 사례를 수집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SJM와 유성 투쟁을 통해서 마구잡이식 파괴의 흐름은 일단 저지되었다. 이제 함부로 노조 파괴를 기획할 수 없도록 흐름을 반전시키고 긍정적인 효과를 확대할 계획을 짜자. 또한 박근혜 정부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막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휴일근무의 연장근무 포함과 탄력적 근로시간제근로시간계좌제의 확대도입을 교환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지만, 노동운동의 태세는 허술하다. 법안을 둘러싼 국회 대응에만 머문다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담합을 막지 못할 것이다. 유연화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기획과 더불어, 사회적 캠페인과 투쟁 조직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공공부문에서 단시간 근무제의 폐단을 발굴하고 추가적인 도입을 막기 위한 사업을 더 공세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휴업수당 미지급의 문제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과 투쟁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모아져 노동유연화의 폐해가 이슈화되고 사회적 저지선이 형성된다면, 또한 노조 내에서 노동유연화 저지가 우선적인 사업과제가 된다면 노동유연화 공세를 실질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인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대안은 주체를 조직하고 이들이 투쟁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직접 포섭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 때문에,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해당 노동자가 조직화해서 부당한 현실을 폭로하고 스스로 만든 대안을 내세우는 것은 원칙이자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내하청 불법파견에 맞선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 사내하청 불법파견의 상징이 된 이 투쟁을 더욱 확대한다면 사내하도급법 등 불법파견을 양성화하려는 반동적 시도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중대재해 원청 처벌, 유보임금 근절을 요구하는 건설노조와 플랜트건설노조의 6월 공동총파업 투쟁도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서울지역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집단교섭, 건설노조의 조직화 등 지역 및 산업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범적인 조직화 모델을 더욱 확산하기 위해서 노력하자. 한국 산업 구조의 결정적인 고리에 위치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 조직화, 전자산업 노동자 조직화, 공단 노동자 조직화 시도 역시 중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끊임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인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10년 이상 노동운동의 위기와 혁신이 반복되어 이야기되어왔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민주노조운동의 위상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개별 투쟁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으나, 민주노조운동이 담당해왔던 사회적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산별노조도 산별노조다운 구실을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운동의 분열, 산별전환 이후 공통 목표의 상실, 비정규직 투쟁의 교착, 종파적 패권주의의 만연 등 다양한 원인을 지적할 수 있지만, 민주노조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조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지역정치나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흐름, 또는 노조운동을 자기 정파를 위한 동원부대로 여기고 버젓이 종파적인 행태를 일삼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1,800만 노동자, 900만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을 우회한 운동의 왕도가 있을 리 없다.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추슬러 노동자의 희망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민주노총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각 지역현장과 산별 활동가들이 나서서 혁신을 추동할 힘을 만들자. 다시 치러질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와 내년에 시행될 직선제 선거를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라는 대의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자. 개인이나 정파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단결과 지도력 구축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5년의 끝머리에 누가 웃고 누가 후회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박근혜는 초라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웃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신발 끈을 다시 조여보자.
박근혜 정부 사회보장정책 평가와 운동과제 새롭지 않은 국정목표, ‘맞춤형 고용복지’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으로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제시하고, 다섯 가지 국정목표를 설정하였다. 그 두 번째 목표가 ‘맞춤형 고용복지’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맞춤형 고용복지와 관련, "출산에서 노령층이 될 때까지 생애주기별 다양한 복지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국민들이 근로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한편, 고용과 복지가 긴밀히 연계되는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림1]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2. 맞춤형 고용복지 ‘희망의 새 시대’, ‘복지국가의 원년’ 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강조하는 것을 새로운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선진’, ‘일류’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가 ‘희망’, ‘행복’을 강조한다는 점도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7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소위원회 활동을 통해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자신만의 복지 담론을 구축했고, 일명 박근혜 법이라 불리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입안하기도 했다. 복지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된 ‘브랜드’가 되었다. [그림2] 이명박 정부의 복지투자원칙 그러나 그 내용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먼저 맞춤형 고용복지란 표현과 그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복지투자원칙으로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고용복지란 근로연계복지를 의미하는 ‘일하는 복지’와 사회서비스 중심의 복지를 의미하는 ‘맞춤형 복지’의 조합이다. 또한 박근혜의 정부 복지국가 담론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은 스스로 ‘사회투자형 생활보장국가’라고 표현하듯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인 사회투자국가론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형 복지국가는 인적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현금이전보다 현물급여를 강조하며, 재정건전성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한국형 복지국가는 ‘경제 성장을 위한 인적 투자’로서 복지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따라서 보육교육과 같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복지 관련 공약 대부분이 인수위 국정과제에 반영된 반면, 인적투자의 성격이 약한 연금과 보건의료 공약만 후퇴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국형 복지국가론’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담론을 주장하는 주체가 보수정당, 새누리당의 박근혜라는 사실이 새로울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 담론을 당시 야당대표가 계승했다는 아이러니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지배계급의 한계를 보여준다. 박근혜의 복지국가론이 새로울 수 없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시기 주요 공약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이것이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이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의회가 통제력을 갖는다고 간주되는 재정정책과 사회정책이 낮은 이자율과 낮은 부채비율 유지를 목표로 하는 화폐정책에 종속되는데, 이는 재정제약을 낳는 한 요소가 된다. 실제 지난 대선 시기 기재부, 조세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은 선거 공약 비용 추계를 저마다 발표하면서 사회정책을 둘러싼 논쟁에 개입했다. 이러한 개입으로 복지 공약은 사회정책의 이념과 방향에 대한 정치적 쟁점보다 비용 추계와 재원 마련 방안이라는 기술적 쟁점이 주요 의제가 되었다. 이러한 재정제약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저성장과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조세연구원은 조세부담률을 고정하면 2050년 국가 채무비율은 128.2%로 남유럽국가 평균 120%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고, 가계부채로 인한 공공부문 부채위기의 현실화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2050년 국가 채무비율은 165%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2008년 한시적으로 도입한 재정준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재정준칙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1세대 재정준칙은 균형재정 달성까지 지출증가율을 수입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해 재정수지 적자를 감축하는 것이었다. 조세연구원은 2013년부터 균형재정이 달성된 후에는 균형재정 혹은 소폭 재정수지 흑자를 목표로 한 2세대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확대하면서 1세대 재정준칙이 유명무실화 되는데, 이를 반영해 2세대 재정준칙은 경제상황에 따라 목표를 변동할 수 있도록 하되 그러한 변동에 대한 원칙을 설정하고 제재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위기시 탄력적 대응을 열어두긴 하지만, 균형재정이라는 원칙은 더욱 강화하고 재량적 예산 조정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재정의 한계는 사회보장의 확대를 제약한다. 특히 현재 공적 사회복지지출 비중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보건의료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은 말해도 무상의료는 말하지 않는 것은 사회투자국가론에 의거하여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향후 고령화로 인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연금도 보장성 강화에 대한 상당한 제약이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심화되는 건강불평등 속에서 국가가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현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형성될 것이다. [그림 3] 2013년 1분기 국세수입과 전년대비 증감액 위기관리와 통치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서 복지 재정제약으로 인한 복지 확대의 한계 속에서, 빈곤의 확산과 그로 인한 대중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 사회서비스 보장과 같은 현물급여 중심의 복지 정책 전환으로 적은 비용으로 복지 체감도를 높이려고 한다.둘째, ‘행정 혁신’을 통해 사회정책 추진기반을 재확립한다. 이는 ‘국민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국정과제로 나타난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 2012년 전부개정되어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시행되기 시작한 사회보장기본법은 박근혜 정부가 사회서비스와 복지 정책의 부처 간 정책조율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형 복지국가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2010년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법안에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의 특징이 담겨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사회보장의 의미를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 사회참여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확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또한 사회보장의 기능으로 소득보장과 서비스보장을 명시하였고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맞춤형 사회보장을 평생사회안전망으로 규정하였다. 사회보장제도를 구성하는 제도로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정의한다. [표 1] 신구 사회보장법안 비교 1995년 제정된 기존 법안과 비교했을 때,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사회서비스로 개념을 바꾸면서 정의도 새롭게 한 것이 특징적이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서비스를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상담, 재활, 돌봄, 정보의 제공, 관련 시설의 이용, 역량 개발, 사회참여 지원 등을 통하여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정의하고 있다. 이전 법에서 정의했던 사회복지서비스 개념보다 더 많은 분야(복지, 의료, 문화, 환경)를 언급하고 있고, 제공방식도 더 다양하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의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격상해 실질적 정책조율 기능을 가지는 사회보장위원회를 신설하고 사회보장기본계획을 매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 기획재정부복지부 장관을 부위원장으로 두고 법무부교육과학기술부 등 각 부처 장관을 포함한 정부 위원 총 15명과 노사대표와 사회복지전문가 중 대통령이 위촉하는 민간위원 15명으로 구성된다. 이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격년으로 재정추계도 시행한다. 또한 중앙정부 각 부처가 사회보장정책을 도입변경할 때 보건복지부와 사전에 협의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조율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서비스품질관련전담기구 설치, 사회보장통계의 취합,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운영을 법으로 규정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자아실현과 같은 수사를 통해 사회보장의 개념을 더 확대, 강화한 것처럼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기능에 대한 규정을 보면 현물급여, 즉 ‘사회서비스’ 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법안이 언급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의 개념은 모호한데, 사회서비스는 제도이자, 제도가 제공하는 혜택이자, 그 혜택을 통해 보장받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부처 별로 사회보장정책이 흩어진 채 상호 연계도 부족해서 중복과 누락이 발생하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을 극복하고 각 정책들을 통합조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투입되는 재정대비 복지만족도와 복지실효성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정책 조율은 행정의 효율을 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러한 통합적 조정과정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기 위한 구체적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급여 체계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급여 제공 방식을 중복수급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실제 부처 간 정책 조율은 수급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부정수급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빈곤에 대한 낙인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리의 강화와 낙인이 사각지대를 만들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인수위는 “국민 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국정과제의 주요 추진계획으로 ▲사회보장위원회 중심의 복지거버넌스 ▲주민센터 복지허브화 ▲범정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확대 ▲민간자원 활성화를 제시한다. 복지거버넌스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와 같이 복지 전달체계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지역사회 등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의 한정된 인력과 재원으로 급증하는 사회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한정된 재정으로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90년대 초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정부혁신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공적 행정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새로운 공적 경영’, ‘우량통치(거버넌스)’라는 패러다임이 부상한다. 신자유주의 하 법인기업에서 금융관리부서가 자율적 권한을 행사했던 것처럼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자율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경제적 국가장치가 정책 입안과 실행의 통제력을 획득한다. 한편 법인기업이 홍보, 생산 등 다층적 영역에서 외주와 하청을 발전시킨 것처럼 사회정책의 실행 및 전달은 다수의 행정적 기관과 비정부적 기구 또는 민간 기업 등으로 분권화되는 현상이 출현한다. 그 결과 조직혁신의 방향으로 지출과 실적을 연계해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는 경영자주의가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관리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사회정책 전문가의 재량권과 자율성은 약화된다. 기존의 국가장치는 비정부기구와 같은 전통적인 국가장치 외부의 조직들에게 부분적으로 관리업무를 위임하거나 또는 외부의 조직들로부터 생산된 정책적 처방을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인 관리와 함께 관리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이 확대된 국가적 관리의 틀 내로 흡수되면서 관리의 제도적 안정성은 더욱 약화된다. 정부, 비정부기구는 대체적으로 분절적이고 단기적인 관심에 지배되고, 더 적은 비용으로 사회문제를 봉합하려는 노력은 정부기구 내, 정부와 비정부기구, 통치구조와 사회운동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진주의료원 사태는 복지전달체계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한 갈등을 보여준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건국 후 최초의 지방의료원 폐업 시도였다.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과 관련하여 새누리당과 중앙정부는 초기에 이 사안이 지자체 소관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 후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자 새누리당은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보건복지부는 권고를 내렸다. 분할된 국가기구는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갈등을 국가 관리의 틀 안으로 내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국가장치 내로 포섭되거나, 국가장치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양자의 선택에 내몰린다. 재정적자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노동자운동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한다. 공공적 기능보다 수익성을 중시하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흐름은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복지전달체계의 민간참여를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부들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났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행정체계인 ‘맞춤형 복지전달체계’는 복지전달체계 내 주체들 간의 분할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책비전, ‘국민100% 행복사회’ 박근혜 정부 복지 정책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지를 강조하지만, 실상 그 내용은 이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서비스를 강조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간 비판 받아온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을 복지와 결합시켜 놓은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서 박근혜의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와 대별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종속된 사회정책일 뿐이라는 것, 다만 새로운 수사와 민간부문의 활용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와 사회보장제도 구상은 ‘국민100% 행복사회’라는 보건복지부의 정책 비전으로 구체화되었다. 핵심 목표는 중산층 형성, 안락과 건강, 사회통합이다. 이를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국정목표에 따라 아동, 청장년, 노인별로 정책을 분류했고, 추가적으로 취약계층과 보건의료를 따로 분류했다. 아동, 청장년, 노인별로 정책 대상을 생애주기별로 구분한 것이 특징이지만 정책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아동의 경우 보육, 임신출산 지원 등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이뤄져 있고, 청장년은 일자리 정책이다. 노인의 경우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돌봄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정책이 혼재 되어 있다. 보건의료의 경우도 의료민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강화’ 계획은 청장년 복지 정책으로 분리시키고 나머지 건강보험, 사회서비스 등의 사회정책이 혼재되어 있다. 분류별로 제도의 성격과 내용이 상이하다보니 사실상 수급권자가 중복되는 경우도 많고, 각 제도의 가치가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공공부조제도를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로 둔갑시켰지만 아동과 노인 역시 취약계층이다. 또한 청장년에 대한 일자리 복지 정책에는 의료민영화,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을 확대하는 문제는 외면한 채 ‘처우개선’ 수준의 소극적 태도만 보이고 있다. 청장년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다시 양육부담, 의료비 부담, 노인시기 빈곤으로 이어지게 되어 아동, 노인과 보건의료에 대한 복지 강화라는 목표를 무색케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장정책을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의 분류에 따라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도), 사회서비스, 사회보험제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개별 정책의 내용은 관련 분야 관료,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전문적 용어들로 인해 일반인은 이해가 어렵다. 이러한 복잡함과 난해함이 사회정책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정치적 주체로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아직 제도 변화 방향을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아래에서는 다양한 사회정책들 중 주요 쟁점으로 제기되며 논의가 이뤄지는 정책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맞춤형 개별급여’, 기초생활보장정책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 제1차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정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차상위계층의 기준을 현 기준인 최저생계비의 120%(중위소득 45.6% 수준)에서 중위소득 50%로 바꿔,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대상자를 확대한다. 둘째, 수급자 선정기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아도 일촌 직계혈족 혹은 그 배우자가 부양능력이 있으면 수급을 받지 못하도록 설정해 둔 것인데, 이 부양능력의 판정기준이 되는 소득이 올라간다. 셋째, 통합급여 체계에서 개별급여 체계로 바뀐다. 현행 기초법에 따르면 수급자 선정기준을 만족하는 수급권자는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 주거급여를 받고, 그 외 교육, 의료, 해산, 장제, 자활급여를 필요가 발생할 때 받게 된다. 개별급여 체계로 바뀌면 각 급여의 수급자 선정 기준이 달라진다. 생계급여의 경우 중위소득 30%이하 저소득층에게 적용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38%의 근로무능력자, 주거급여교육급여는 각각 중위소득의 40%, 50%를 기준으로 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차상위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이를 통해 빈곤예방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수급자 중 17.7%의 근로능력자를 노동시장으로 더욱 참여시키기 위해 근로인센티브를 강화한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보장 대상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밝히고 있으나 이미 확대, 심화되고 있는 빈곤의 규모에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개별급여 전환으로 급여 수급자가 140만에서 220만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비수급 빈곤층 600만 중 80만에게만 적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의 보장 수준은 거의 변동이 없다. 둘째, 보장 대상을 늘리기는 하지만 보장 내용과 보장 수준이 제각각 분할된다. 개별급여 전환으로 인해 늘어날 것이라는 80만의 수급자는 이전의 수급자처럼 최저생계비를 모두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거, 교육과 같은 개별급여 하나만 받는 수급자들이다.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생계급여 대상자는 10만 명 증가할 뿐이다. 주거급여, 교육급여는 각각 국토교통부, 교육부가 주관부처가 되어서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정할 예정이다. 선정기준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국민들이 제도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더 많은 갈등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연이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자살사태에서 알 수 있듯, 이런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포화상태라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각지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2012년 6월 기준, 읍면동 수준에서 전체 주민센터 10개소 중 8개소는 1-2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복지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점은 기초생활보장제도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가 수행하는 복지 사업 전반에서 나타날 것이다. 차상위계층의 범위가 확대되지만 구체적인 복지사업의 대상범위가 확대된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정부가 수행하는 297개 복지사업들은 사업별로 대상자 선정기준이 상이하다. 사업들의 상당수가 현재 최저생계비 개념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의 몇% 이하 소득 가구’ 와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선정하고, 급여를 제공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업들의 대상선정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즉 중위소득 몇% 이하로 정해질 것인지 명확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원 마련이 부족한 경우 대상은 늘려도 오히려 보장수준은 줄어들 수도 있다. 셋째, 그간 수급 당사자를 포함해 사회운동이 요구한 의제들을 일부분 제도화했지만,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다.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투쟁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 전가하는 국가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가난한 이와 장애인이 자립하면서 기본적 생활을 영유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는 실천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지 ‘덜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변경했을 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료전문가가 주도하는 해법은 합리성과 혜택의 확대라는 명목으로 부양의무자라는 관념을 더욱 공고화한다. 부양의무제 기준을 완화하는 정부의 대책이 밝혀졌지만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 공동행동은 여전히 광화문 지하도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넷째, ‘맞춤형 개별급여’ 제도는 가난한 이로 하여금 저임금불안전 노동을 감내하도록 강제하고, 이 과정에서 빈곤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 단적으로 사회보장위원회는 ‘탈수급 저해 급여 구조’를 문제로 지적하면서 개별급여 체계 도입의 기대효과로 ‘일할수록 유리한 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지금도 수급대상자들은 근로능력이 있다고 평가되면 최저임금도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근로 인센티브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해도 실제 노동시장의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해도 빈곤할 수밖에 없다. ‘탈수급’이 확대될 뿐 ‘탈빈곤’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정책은 보장 범위와 보장 수준은 여전히 부족해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수치상으로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별적 관리를 강화하여 사회운동의 요구를 희석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 당사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은 보편적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주체로 형성되지 못하고, 적절한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지 혜택에 의존하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사회서비스 보장 정책의 특징과 모순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은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 추진과정에서 일반화되었다. 사회서비스는 표준산업분류체계에 따라 공공행정, 교육, 보건 등 공공서비스 대부분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사회적 일자리는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정부나 민간 비영리단체가 창출하는 일자리로서 자활사회적 기업, 가사간병도우미, 장애인 활동보조, 숲 가꾸기 등이 있다. 이러한 일자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좁은 의미의 사회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사회서비스 보장과 관련한 박근혜 정부 정책의 특징은 ‘창조경제’라는 경제정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라는 첫 번째 국정목표 하에 서비스 산업 전략적 육성 기반 구축, 청년 친화적 일자리 확충기반 조성, 협동조합 및 사회적기업 활성화, 보건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이라는 국정과제가 보건복지부의 실천계획과 긴밀히 연관된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통해 ‘(일자리 확충을 통한) 성장 잠재력 제고와 복지수준 향상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사회서비스를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본다. 미세한 차이점은 사회서비스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면서, 사회서비스를 미래 성장 전략, 창조 경제 전략으로 강조를 하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이라는 국정과제가 이를 대표한다. 보건복지부는 실천계획에서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 강화’를 명시하고 있다. 보육, 요양보호와 같은 사회적일자리 정책에 포괄되었던 사회서비스들은 수익성이 낮고, 이제 민간 공급자가 확대 형성되고 있는 단계다. 그러나 의료의 경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부터 민간 공급이 확대되기 시작해서, 민간의료가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민간병원 간 경쟁과정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한 재벌병원이 공급체계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영리병원의 추진 근거로 외국인 환자 유치, 병원 시스템 수출을 통한 국부창출을 주장해왔다. 이러한 재벌 병원자본의 수익창출 전략을 창조경제의 성장전략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서비스 정책은 갖는 또 다른 특징은, 국가가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활성화를 통해 민간부문이 공급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국가는 이것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운동은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된 이러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사회서비스 시장화라고 비판해 왔다. 그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지난 10년간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하지 못했고, 양질의 복지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늘어난 민간 공급자는 제도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일자리 확충 및 처우개선’이라는 국정과제를 통해서 단순히 민간공급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감독을 강화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관리와 감독의 방식은 공정한 경쟁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사회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는 시장화 된 사회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동일시된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 품질관리 및 사업관리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가칭 ‘사회서비스 품질관리원’을 설립하여 사회서비스에 대한 평가 및 지원을 수행할 전담기관을 설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나눔문화 확산,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운영 활성화, 공공민간 복지자원 통합시스템처럼 비정부기구를 포함한 민간자원의 발굴 및 활용도를 제고할 계획이다. 이렇듯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사회보장정책의 일부로서 자리 잡은 반면,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는 방식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지면서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될 사회서비스’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할 사회서비스’라는 개념 간의 긴장과 모순이 심화되고, 정부의 민간시장에 대한 관리도 실패하고 있다. 국정과제인 ‘보건산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과 보건복지부 실천과제인 ‘창조경제 성장동력인 보건산업 육성 강화’에는 그동안 의료민영화로 비판받았던 정책이 총망라 되어있다. 한편 ‘건강의 질을 높이는 보건의료서비스체계 구축’에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는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는 점에서 국정과제는 서로 모순되고 있다. 민간의료의 영리추구는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명목상’ 목적과도 배치된다. 보육 정책이 확대되면서 민간 어린이집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최근 시군구청의 영유아 보육 담당 공무원들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추진되다가 어린이집 원장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 항의로 보름 만에 추진이 중단되었다. 물론 이 법안이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지 전달체계 내 민간공급자와 정부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은 다시 관료, 전문가가 주도하는 더욱 정교한 관리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시장화 된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사회서비스의 목표로 제시되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들을 파괴한다. 노동자계급은 실상 사회서비스의 제공자이자 수혜자인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협상을 하는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할되어 질 낮은 서비스와 열악한 노동조건이 고착화된다. 빈곤층은 사회서비스를 상품으로 구매해야 하기에 서비스 혜택의 차별이 발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에 대한 선택을 제약받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사회보험 정책의 전망과 쟁점 사회보험에는 4대 보험으로 불리는 공적연금(국민연금, 군인공무원사학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2008년에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다. 사회보험은 공공사회복지지출에서 64.4%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2010년 건강보험 지출은 34조 원 정도로 공공부조 지출 사회복지서비스 지출의 합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공적연금 지출은 21조 원 정도인데 국민연금이 8.6조원으로 공무원연금(8.5조 원)을 앞질렀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20년 이상 납부한 완전노령연금수급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국민연금 지출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고용보험은 8.3조원, 산재보험은 3.6조 원의 지출규모를 가지고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노동자의 실업과 직업병으로 인한 위험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도이지만, 이 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자 대중적 이슈로 부각되었던 연금과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정하도록 한다. [표 2] 사회복지지출의 기능별 추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을 주요 복지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부분의 공약이 인수위 과정을 거쳐 국정과제로 반영된 반면 이 두 공약은 인수위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다.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해서 비급여 진료비는 애초에 공약에서 제외되어 있었다는 기만적 발표를 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통해 주요 비급여인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을 추진하기로 밝혔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전체 노인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급여액도 모두 두배 인상하겠다는 처음 공약에서 후퇴해서, 소득 상위 30% 노인과 소득 하위 70% 중 국민연금 가입자는 차등적으로 급여를 인상할 계획이다. [그림 4] 국민행복연금(기초연금) 도입방안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험 정책이 가지는 특징은 첫째, 경제위기와 빈곤의 확대에 대응하여 보장성을 강화할 계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출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공약과 국정과제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보장성이 충분히 강화되지는 못할 것인데, 공약 상의 보장성 수준이 이미 너무 낮은데다가 사각지대라는 아킬레스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는 비급여 진료다. 비급여 진료의 확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욱 낮춘다. 지난해 발표한 건강보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2.7%로, 2009년 64%에 비해 1.3%p 하락했다. 본인부담률 37.3% 중 법정 본인부담률은 21.3%,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6.0%로 2009년과 대비해 비급여 본인부담률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법정 본인부담률은 22.5%,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3.9%) 이미 급여 항목의 95%를 보장해주고 있는 중증질환의 경우에도 비급여 진료비로 인해서 실제 보장률은 71.4%에 지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은 비급여 진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비급여를 급여화하거나 가격과 양을 통제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비급여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민간병상의 포화와 과잉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없다면 민간병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저항을 회피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비급여 해결 논의는 비급여에 대한 공정거래 확립 차원의 통제(비급여 가격 고시제 도입, 환자 사전 동의 제도 도입 준비 등)와 어떤 비급여 진료를 우선 급여화 할 것인가를 둘러싼 관료전문가 수준의 쟁점이 중심을 이룰 것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높은 수익비의 급여를 제공하지만, 미가입자나 미납부자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점에서 현 세대 노인,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이 사각지대에 존재하게 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분할의 문제가 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인 납부예외자 수는 지난 11년 동안 큰 변동이 없으며 오히려 약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역가입자 중에서 보험료를 장기 체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며 여성이 7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5%에 불과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을 하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근속기간이 짧아서 연속성이 떨어진다. 두 번째 특징은 민간보험의 역할 정립 및 협력을 통해 민간보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해서 민간의료보험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고 이명박 정부는 당연지정제 폐지를 통해 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들려고 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퇴직연금을 도입해서 사적연금 시장을 확대시켰다. 아직까지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공사역할의 분담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기조 하에서 사회보험 정책을 운영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이명박 정부 말부터 경제관료들은 ‘실손보험 종합대책’ 등을 통해 민간의료보험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건강보험이 수행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심사평가 권한을 민간보험도 갖도록 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계획하는 기초연금 정책은 기초연금 급여를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할 동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같은 소득이라도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더 기초연금을 적게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특징은 재정 절감을 위한 관리, 운영효율화가 강화되면서 민간보험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되고, 민간보험의 운영원리를 닮아간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공통의 위험에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사회보험의 ‘보험의 원리’가 ‘투자의 원리’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은 위험에 대비하거나 노후 보장을 위해 자산을 투자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혁을 통해 계획한 대로 보장수준이 매년 0.5%씩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연급지급 연령 또한 올해부터 1년 씩 연장되어 5년 뒤에는 65세로 연장될 예정이다. 또한 3차 재정추계에서도 기금 고갈을 강조하면서 연금 재구조화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사적연금과 같이 연금액의 소득비례적 성격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기금을 축적하는 적립방식의 연금제도 하에서 이러한 제도 변화는 더 많은 연기금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 종속된다. 축적된 연기금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 원리가 점점 더 사적연금와 동일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 비율이 계속 확대 되었고, 민간금융기관 위탁 운용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사회보장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종속되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연기금이 금융 시장을 성장시켰다. 건강보험은 포괄수가제 도입, 평가인증제 강화 등 의료공급자들이 비용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지도록 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관리 경쟁을 유도한다. 민간의료보험의 이러한 비용통제는 때로는 의학적 논리에 반하기도 하고, 민간 의료공급기관의 재정을 악화시켜 의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 공급자의 불만을 강화한다. 정부는 민간 공급자를 관리할 뿐, 정부가 책임지는 공적 서비스 공급체계를 확충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계획은 제출하지 않는다. 정작 지역 간, 계층 간 의료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확대 강화하자는 대중운동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 특징은 사회보험의 ‘보험의 원리’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점이다. 노후소득보장의 경우 소득계층별로 차별화된 다층체계화가 진행된다. 고소득층은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중간층은 공적연금과 개인연금, 저소득층은 공공부조와 기초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주요원천이 된다. 이러한 개별화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분할할 뿐더러 계층에 따른 연금 차이도 크게 해 은퇴 이후에도 불평등을 지속시킨다. 민간의료보험은 2008년에 이미 연 30조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의 규모를 넘어섰다. 그만큼 의료보장정책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는데 질병이 있는 사람이나 노인의 경우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거나 보험료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 금융감독원은 40~50대 남성을 기준으로 연령 증가에 따른 위험률 증가와 그 외 증가요인을 포함해서 3년 갱신마다 보험료는 26~33%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것도 매우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실제 실손 보험료 인상률은 3년 갱신 시마다 44%씩 증가했다. 이에 따르면 매월 보험료는 61세에 73,000원, 70세 218,000원, 82세 90만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민간의료보험이 ‘보험’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분할과 갈등에 맞서 대안적 이념과 주체를 형성하자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정책은 재정제약의 한계로 보장성 확대의 한계를 가진다. 사회서비스 제도를 통해 복지 체감도를 높이려 하지만, 민간 공급에 의존하는 시장화 된 확충방식은 질 낮은 서비스로 인해 건강권, 주거권과 같은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 이러한 박근혜의 복지정책은 다양한 분할선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보장의 권리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분할시키기 때문이다. 근로연계복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소득과 직업을 가진 노동자와 불안전한 가난한 노동자를 분할한다. 맞춤형 개별급여는 수급자 간에도 혜택의 분할을 만들면서 개별화한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여성노동을 저평가 하며, 시장 주체로서 서비스의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할한다. 사회보험은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노동자 개인이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면서 보장방식을 개별화한다. 또한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한 재정제약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기여자와 급여를 지급받는 수여자간의 분할을 만든다. 특히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험제도의 재정위기는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의제를 만들고,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을 강화한다. 고령화로 인해 생산인구가 감소하면 부가가치 생산이 줄어들고, 재정적자는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후세대의 조세부담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문제가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정치적 의도로 활용되면서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보편적 권리마저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류 고령화 담론의 문제설정은 총자본의 입장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저출산고령화의 파급 영향의 첫 번째로 ‘노동공급 감소와 노동력의 질 저하, 저축·투자·소비 위축 등에 따라 경제 전반의 활력이 저하되고 성장 잠재력이 약화’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번째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저해되고 세대 간 갈등이 야기’된다는 점이다. 자본과 정부의 관점에서 노인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고령화의 문제를 인식한다면 이는 곧 노동자 일반을 대상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노동자가 다 늙기 때문이다. 노인 빈곤의 문제는 계급적 문제이다. 노년기 이전의 불평등은 노년기에도 지속된다. 퇴직이전에 높은 교육, 높은 지위, 높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일 수록 대체로 노년기에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고, 질병과 장애와 같은 문제가 덜 하고, 기대수명이 더 길다. 노년기 소득도 더 높다. 국가간 비교를 해보면 공적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춰질수록 이러한 노년기 불평등이 감소한다. 복지의 확대가 가지는 이러한 의미를 은폐한 채 복지비용 부담자를 청년층으로, 복지 수급자는 노년층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노년의 빈곤은 청장년기에 저축하기 힘든 수준의 저임금 노동을 감내했다는 것을, 또한 이를 보정해 줄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활력 저하, 복지 지출 증가만 우려하는 고령화 담론은 일해도 가난하게 만드는 노동 유연화와 복지의 부실함, 즉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은폐한다. 따라서 박근혜의 ‘국민행복’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빈곤에 맞선 사회운동이 주장해 왔던 기본생활권이라는 이념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본생활권을 구성하는 노동권, 기본생활소득, 보편적 권리로서 공적 사회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의 복지정책에 대한 총괄적이고 일관된 비판을 지속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기본생활권이라는 이념을 재확립한다는 것은 그러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주체를 형성하고 연대를 통해 그 힘을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분절된 사회정책은 복지를 권리로서 요구하는 주체를 분할하고 약화시킨다.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들은 정치적 의제로 발전 강화되지 못하고, 제도적 과정에 포섭되거나 배제된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구체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주체형성과 연대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 요구를 가진 주체들이 형성, 강화되고 이들이 기본생활권을 매개로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투쟁의 경우 진주의료원 노동자와 환자가 중심이 되어서 민중의 건강할 권리를 위해 노동권과 공공의료를 지키기 위한 지역적, 전국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향후 승리의 관건은 이 두 요소가 얼마나 강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박근혜식 복지는 사회서비스 시장화, 의료민영화 등과 병행하면서 오히려 사회보장을 후퇴시키는 모순을 낳고 갈등을 만들 것이다. 의료민영화 반대와 공공의료 확충, 국민연금 보장성 축소 반대, 바우처 제도 폐기와 공적기관에 의한 보육, 간병, 노인 돌봄 서비스 확충,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통합적 빈곤정책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 등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들이 가지는 체제 비판적 의미, 노동자의 단결의 매개로서의 의미에 주목하고, 사회보장 전달체계 내 노동자, 사회보장 수급자 대중을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일상적 실천과제를 도출하자. 이를 통해 대중운동의 혁신을 추동할 때 사회보장을 지키기 위한 요구와 투쟁도 강화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고용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대안과 투쟁이 필요하다 지난 5월 30일,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 이희범 한국경총 회장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을 체결했다. 한 달 전부터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구성해 고용률 제고방안을 논의한 결과다. 이어 정부는 6월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협약에 대해, 일자리 문제에 대한 노사정의 공동인식을 확인한 것은 물론, 향후 일자리 로드맵 추진에 있어 상당한 추진동력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하였다. 그러나 이번 협약은 형식적으로도 ‘사회적 합의’로 볼 수 없으며, 고용정책 자체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진1%] 노동자를 배제한 ‘사회적 합의’ 이번 일자리 협약은 노사정 협약의 형식은 띠고 있지만, 사회적 공론화조차 전혀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논의된 결과물이다. 민주노총을 배제한 것은 물론, 한국노총은 심지어 내부 구성원들과 논의도 없이 협약을 체결했다. 금융노조 등 한국노총 소속 일부 산별들은 이번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합의문 내용도 이미 노동부가 준비하고 있던 정책을 협약서의 형태를 빌어서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이해관계 주체들의 협의라는 최소한의 외양마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서는 ‘야합’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협약서 첫머리에서부터 “기업의 성장과 투자 활성화가 양질의 일자리 확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현재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기를 완전히 왜곡하는 진단에서 시작한다. 그 결과 정리해고 문제를 다루되 쌍용차, 한진중공업과 같은 정리해고 노동자는 배제되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지만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탄압하고,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다루지만 건설노조나 화물연대에는 의견조차 묻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반영해야할 노동기본권 보장 등 집단적 노사관계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작 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배제하면서 나온 고용정책의 내용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만병통치약이 된 시간제 일자리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일자리 협약과 고용률 로드맵 발표 전부터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언급하는 등 고용 정책을 강조해왔다. 심지어 (다른 경제지표에 앞서) ‘고용률 70%, 중산층 70%’ 달성을 박근혜정부의 국정 최우선 과제로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의 고용률(15세 이상)은 2012년 59.4%에 지나지 않아 OECD 가입국 중에서도 매우 낮은 형편이다. 과거 고용정책에서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였다면, 최근에 고용률이 강조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 과정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포기한 실망실업자가 크게 늘어나 실업률이 고용지표로서 의미를 상실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용률 기준이 되는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자는 반드시 전일제로 일하는 노동자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 일자리를 쪼갠 것에 불과한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률 수치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고용률을 5년 만에 10% 높이겠다는 정책의 실현가능성도 문제이지만, 그 방법은 더욱 문제다. 시간제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정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고용이 안정되고 불합리한 차별이 없으며 기본적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같은 조건의 정규직 일자리 영역에서는 사용자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 유인이 없는 반면, 저임금·비숙련 영역에서는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할 유인이 확대된다. ‘알바 일자리’만 확대되는 셈이다. 일자리 협약은 고임금 전문직종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노동생산성과 임금 측면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이를 수용할 유인은 낮다. 기업규제 완화로 고용률 상승? 한편, 일단 고용률부터 높이고 보자는 정부 정책은 출산율과 생산가능인구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된다. 절대적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되는 상황에서 고용률마저 악화된다면 노동력 투입이 급감하게 되어 임금은 상승하고 성장률도 저하될 수 있다. 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정책이 노동시장에 진입해있는 인구를 미리 확대하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고령자고용촉진법’을 통한 정년연장 법제화도 이러한 맥락이다. 출산율 저하는 주로 비정규직노동자를 중심으로 실질 가계소득이 저하되는 가운데 높은 자녀 양육, 교육 비용을 부담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저임금노동자의 가계소득을 보장하고 양육과 교육 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하거나 낮출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용률 저하는, 굳이 노동시장에 나설 의지를 갖기도 힘들 정도로 임금과 고용이 열악한 일자리만 존재하는 노동시장 조건 탓이다. 그렇다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출산율과 고용률이 동시에 저하되는 문제의 원인을 외면한다. 일자리 협약과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은, 오히려 기업에 고용관련 규제를 풀어주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진단한다. 그 동안 재벌기업은 사내유보와 금융투자를 늘이면서도 생산적 투자는 더욱 축소해왔다. 그나마 필요한 영역은 비정규직을 사용하거나 외주화해왔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 고용관련 규제를 더 풀어준다고 일자리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고용률에 진짜 관심이 있기는 한 것인지, 진짜 의도는 기업에 노동법 상 규제완화를 선물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조차 의심스럽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노사정 일자리 협약이라는 기만적인 형태만큼이나, 고용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에 있어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노동자운동이 기만적인 노사정 협약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정부와 자본의 전면적인 고용정책 변화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요구를 수립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모아낼 필요가 있다.
서울 대형병원 환자 집중과 병원 상업화 심화시킬 메디텔 허용 반대한다 정부가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병원이 의료관광객용 숙박시설, 속칭 ‘메디텔’ 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1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규제개선 중심의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서 기획재정부는 오는 6월까지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메디텔 설립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실제 일부 병원들은 이미 메디텔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인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1%] 의료관광활성화를 위해 추진한다는 '메디텔' 메디텔은 '메디신(medicine)'과 '호텔(hotel)'의 합성어로 의료기관과 숙박시설을 겸한 형태를 지칭한다. 병원과 호텔의 만남은 2009년 7월 병원의 부대사업중 하나로 숙박업이 허용되면서 적극 추진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법률적 미흡함 때문에 병원의 숙박업이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호텔업은 ①관광호텔업, ②수상관광호텔업, ③한국전통호텔업, ④가족호텔업, ⑤호스텔업으로 분류되고, 의료관광객용 숙박시설에 대한 별도의 분류는 없다. 그래서 병원이 숙박시설을 설립하려면 ‘관광호텔업’으로 지자체에 설립허가를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관광호텔을 지을 경우 일정 공간의 컨벤션 홀 등을 지어야하는 등의 규제가 있고, 관광호텔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주민들이 반대해서 지자체가 승인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기획재정부는 평가한다. 그래서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호텔업 중 하나로 의료관광객용 숙박시설(메디텔)을 추가하여 병원의 숙박업 설립조건을 완화해 의료관광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진행 중인 병원의 숙박사업, 메디텔 허용의 속내는? 정부의 메디텔 설립 허용 발표에 병원들과 호텔업계는 아직 구체안이 확정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구체안이 나와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도 병원의 숙박업은 가능하고, 호텔과 병원의 제휴로도 숙박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스마트 병원과 제주도의 한라병원은 병원이 직접 호텔을 설립한 경우다. 2011년 개원 시 국내최초의 호텔 부대사업 사례로 주목을 받았던 부산의 스마트 병원은 17층짜리 건물의 9층까지는 병원을, 10층부터는 호텔을 지었다. 병원은 국제진료센터를 포함한 총 12개 진료과목의 150병상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호텔은 초국적 호텔체인인 이비스 엠베서더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제주도의 한라병원은 오는 7월 개원을 목표로 수치료(스파의 일종), 미용, 성형, 건강검진 등을 중심으로 한 WE호텔을 건설 중이다. 의료관광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서울의 성형외과, 피부과, 한의원 들은 이미 주변 숙박시설들과 제휴를 맺고 있는데도 있고, 이는 자체 숙박업소 설립보다 여러모로 편하다는 입장이다. 아니면 의원이 고급호텔 안에 입주하기도 한다. 리츠칼튼, 롯데호텔, 신라호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플라자 호텔 등 고급호텔 내에 피부과·치과·성형외과·한의원 등 피부·미용 중심의 의원 및 스파 등을 구축해 국내외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고가의 개별화된 의료서비스 및 유사의료행위를 제공하고 있다. 메디텔 허용, 수도권 대형 병원들의 환자 집중을 심화시킬 것 이처럼 이미 병원과 호텔의 관계가 가까워진 상황에서 이번 메디텔 설립을 제도화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의 언론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메디텔은 의료기관만 설립가능하나 호텔업의 일종이므로 투숙객을 외국인으로만 한정하기는 힘들다. 결국 외국인 의료관광객수가 많지 않고 그마저도 대부분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이 유치하는 현실에서, 지방에서 원정치료 오는 국내 환자도 많아 내국인 숙박 수요 중심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 수도권 대형병원이 메디텔 설립 허용의 최대 수혜자다. 자체적으로 호텔을 지을 수 있는 자금력도 갖추고 있다. 이미 삼성서울병원은 일원역 주변에 호텔을 건립하려고 했었으나 관광호텔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로 시청에서 승인하지 않아 2011년 포기한바 있어, 이번 메디텔 설립 허용으로 미소를 짓고 있을 수 있다. 강동 경희대병원도 호텔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으나 관광호텔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지자체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또한 경향신문 기사에서 “병원들이 이런 하소연을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해온 것” 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형병원으로의 전국의 환자 쏠림현상으로 보건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고, 의료서비스의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병원이 자체 숙박시설을 확충할 경우, 외국인 환자는 물론이고 내국인 암환자·외래환자·건강검진 수요 등의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치는 관광호텔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로 거듭 무산된 수도권 대형병원의 숙박업을 허용하기 위한 법 개정이다. 나아가 이는 현재 의료법에서 5%로 제한된 상급종합병원의 외국인 환자 병상 수에 제한을 두고 있는 현행 의료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의 외국인 진료가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대사업 확대를 통한 병원의 상업화와 의료관광정책의 문제점 이번 메디텔 설립 허용은 그간 논란이 많았던 병원의 부대사업 확대의 연장선이다. 병원의 부대사업은 진료에서 적자가 나는 부분을 진료 외 수익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병원의 상업화 경향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적정한 진료의 진료수익만으로도 병원이 운영될 수 있는 의료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의료계·시민사회단체의 요구에 정부는 이를 앞장서 해결하는 것도 모자란 상황에서 거꾸로 부대사업을 확대해 병원이 진료 외 수익에 의존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번 메디텔 허용 추진은 병원의 숙박업 규제를 완화해 실질적으로 부대사업을 확대시켜주는 것으로, 이는 병원의 상업화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기업들의 ‘손톱 및 가시 제거’라며 기업의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어준다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 아래, 향후 병원의 다른 부대사업 확대도 예상해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적·효율적 재편이 아니라 의료비 절감이라는 목표 아래 병원의 상업화·영리화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부창출이라는 논리 아래 무비판적으로 추진되는 정부의 의료관광정책들이 국민건강에 대한 고려 없이, 그것도 기획재정부 주도로, 병원을 하나의 기업으로 바라보며 철저히 경제적이고 관료적 입장에서 추진된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이번 메디텔 설립 허용도 기업들의 투자활성화, 관광규제개선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국이 의료관광의 롤 모델로 삼고 있으며 의료관광 선두주자인 태국의 의료관광에 대해 세계보건기구는 “태국 GDP의 0.6%에 지나지 않는 의료관광사업이 건강불평등과 지역의 의료진부족을 낳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공병원 비중이 10%도 채 안 되는 한국에서 의료관광활성화가 의료기관, 의료 인력 등 보건의료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분석과 대안이 전혀 없는 채 무비판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국민건강의 심각한 문제다. [%=사진2%] 의료 상업화 정책을 중단하고 공공의료 강화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시기 공공의료 강화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진주의료원 폐쇄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으로 실질적으로는 진주의료원 폐쇄에 힘을 실어주고, 메디텔 설립 추진·원격의료 활성화 등 의료관광활성화 정책으로 의료의 상업화를 더욱 강화하려고 한다. 한국의 보건의료전달체계는 비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에 의한 수도권 대형병원의 환자집중 현상,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격차 심화, 그로 인한 건강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이 절실한 시기이다. 이를 위해 공공의료의 확대· 강화를 기본으로 한 보건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재구축이 핵심 과제다. 박근혜 정부는 이와 정반대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집중을 강화하고 의료의 상업화·시장화를 더 부추기고 있다. 의료관광활성화를 앞세운 무책임한 의료상업화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박스1%]
2013년 4월 19일 반전평화연대(준)가 개최한 '고조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 원인과 해법' 토론회 발표 자료입니다. ------------------------------------------------------------------- 고조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 원인과 해법 - 한반도 비핵화 노선을 견지하며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천하자 류주형 |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장 현재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은, 세계적·지역적 차원의 미국 헤게모니와 한반도 차원의 냉전적 구도의 존속이라는 구조적 요인(역사적 기원)과 함께 ▲세계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와 ▲이에 조응하는 미일동맹·한미동맹의 재편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 등의 정세적 요인(현실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 지난 두 달여간 전개된 한미연합전력 대 북한의 군사적 대결이 4월 중순에 접어들며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그러나 이번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이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 우리는 현 정세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감축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북한 사회주의와 핵무장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어느 정도 전제하는 것임 1.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 - (아버지) 부시 정부는 레이건 정부의 ‘2차 냉전’이나 ‘두 개의 중국’ 노선과 단절하며 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전략 수립에 착수. 이후 탈냉전 시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주축을 공식화한 것은 클린턴 정부의 <교류와 확대의 국가안보전략>(1995). 이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일명 ‘나이 보고서’)를 통해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과 ‘교류’를 시도 -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아들) 부시 정부 1기에는 신보수주의적 국방부를 중심으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미중안보 검토보고서>, 2002). 반면 부시 정부 2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국무부가 중심이 되어 주요2개국(G2) 구상에 따라 2005년 미중전략대화를 시작하고 2006년에는 전략경제대화를 시작 - 1990년대 이후 역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조응하는 것. 노태우 정부는 (아버지)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 상응하여 1990년과 1992년에 각각 소련과 중국과 국교를 체결하고,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도 각각 클린턴 정부와 (아들)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관 -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한편으로는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하는 모순을 내포. 또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과 연계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경제적 불안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부시 정부의 ‘예방전쟁의 교리’와 수렴(한미동맹 현대화) 2.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북핵 위기’ - 탈냉전 이후 북한은 한소 국교수립, 한중 국교수립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경제위기와 함께 에너지·식량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사실상 붕괴. 그리고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선군정치’가 출현. 선군정치는 인민군이 ‘주체혁명’의 방위자에서 그것을 완성하는 주력군으로 격상된다는 의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선군정치가 본격적인 핵무장으로 발전 -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 유지 ▲탈냉전 이후 중·소 핵우산 공백 ▲주한미군과 남한의 핵·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 ▲‘수직적 확산’을 유지한 채 ‘수평적 확산’만 규제하려는 핵비확산조약(NPT) 체계의 이중 잣대 ▲경제 봉쇄·제재 ▲첨단 재래식 무기 대비 핵무기의 비용의 상대적 우위 등이 북한의 핵무장을 유발한 요인 - 1993-94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폐연료봉 추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 제재안 결의로 빚어진 1차 위기 국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대가로 미국이 경수형 원자로 2기,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 그러나 미국의 제네바 합의 불이행, 1998년 북한의 3단계 로켓을 발사 실험, 2000년 ‘조미 공동 코뮤니케’ 체결(미국이 북한에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 원조를 약속하는 대신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을 검토하기로 함) 등 사태가 전개 - 그러나 부시 정부가 출범 이후 미국은 일본을 향해 배치된 100여 기의 북한 노동미사일을 문제 삼으며 기존 합의를 파기. 또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 미 국무부가 같은 해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여부를 추궁하면서 2차 위기 국면이 시작. 이에 북한은 ‘인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NCND)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안전 보장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일괄 타결할 것을 제안. 미국의 제안 거부와 그에 뒤이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선언, IAEA 사찰단을 추방, NPT 탈퇴 (재)선언으로 또다시 위기 국면 조성. 이 국면은 2003년 8월 6자회담 개최로 일단락 -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선언, 2007년 2·13합의, 2007년 10·3 합의 등이 도출. 그러나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 틀은 사실 북미협상이라는 1:1 협상에서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을 5개 나라로 분산하는 구조. 더구나 미국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을 ‘정권교체가 필요한 깡패국가’로 규정하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와 연계. 북한은 2008년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했고, 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 그러나 또다시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 의혹이 제기되면서 같은 해 12월 결국 6자회담은 결렬 - 북한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2009년 2차 핵·미사일 실험, 2012-13년 3차 핵·미사일 실험으로 단계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제고. 이 과정에서 미국 내에는 ‘북한과의 협상이 핵 공갈과 그에 따른 갈취의 악순환만 조성했다는’ 인식이 확산. 이는 오마바 정부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 정책기조에 반영되는데, 이는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시키기 전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음 3.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 -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연준의 통화정책(제로금리·수량완화·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과 같은 비상위급대책을 실시. 이에 힘입어 미국은 ‘더블딥’을 예방하는 데 얼마간 성공하지만, 그러나 일련의 정책은 금융위기로 인한 민간의 부채를 정부의 부채로 이전한 것. 이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위기와 달러위기의 가능성을 함축 - 현재 미국은 고실업의 장기지속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경기회복세가 개선되지 않고 있음. 유럽연합의 재정위기·은행위기를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 경제는 추가적인 적자재정정책 실행의 곤란과 주택시장의 부진이라는 두 가지 역풍에 직면. 비상위급대책에 의해서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차선책이 동원되고 있음 - 2011년 오바마 정부가 ‘태평양으로의 선회’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플랜 B’가 본격적으로 전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 이중에서도 최근 부각되는 것이 바로 한미FTA를 모형으로 삼아 환태평양파트너쉽(TPP)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로 발전시키려는 구상. 이러한 대외전략은 현재 미국의 군사전략에도 반영되어 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으로 구체화. 즉 오마바 정부는 2011년 이라크 철군과 2014년에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기존 부시 정부의 유럽·대서양 중심 정책을 아시아·태평양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 - 이에 따라 미국의 군사력 투사 범위가 본토에서 일본·한국, 인도네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로 확대. 이에 동반하여 미국의 군사정책도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해상·공중전’ 개념으로 전환. 이에 조응하여 한미일 군사동맹의 재편 및 강화가 적극 추진. 단적으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사령부(KORCOM)로 재편. (참고로, 2012년 제출된 미국 아미티지·나이의 <미일동맹 보고서>는 ‘북한의 호전성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한일 양국의 진정한 전략적 도전이며, 따라서 공통의 가치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한미일 민주동맹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 여기서 ‘가치 동맹’이란 곧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의미하며, 이 보고서는 결론 중 하나로 한일정보협정 체결을 강조.) 이러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 - 한편, 오바마 정부 하 2010년 제출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는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옵션을 유지했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축소될 수 있으니 ‘3원 전략 핵전력’(전략 폭격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사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망(MD),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유지해 전략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힘. 이는 오바마 정부의 선전대로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북한이나 이란 같은 비확산 체제의 이탈 세력을 관리하여 핵독점 체제를 유지하려는 명분일 따름 4. 북한의 3차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전력의 핵 위협 - 북한은 작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 1주기를 명분으로 로켓 실험을 강행. 이번 로켓 실험 성공은 이미 확보한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에 도전했다는 의미로, 향후 과제는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의 소형화·개량화 실험.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올해 2월 3차 핵실험을 단행 - 이에 3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이후 국제사회가 한층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돌입하는 한편 한미연합전력은 3-4월 확장억지 성격을 지닌 대북 무력시위를 본격화. 한미연합훈련에서 전략폭격기 B-52, 스텔스폭격기 B-2, 핵잠수함 샤이앤이 동원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미국은 북에 대한 핵위협을 실제화. 또한 한미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시 도발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한미국지도발대응계획’도 발효 - 동시에 북한도 3월 들어 대미 공세 수위를 한층 높임. 최고사령부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5일), 외무성의 ‘핵 선제 타격권 행사’ 발언(7일), 조평통의 ‘남북불가침합의 무효’ 선언(8일),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선언(27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은 강력한 핵 선제 타격이 포함된다”), ‘남북 관계 전시상황 돌입’ 선언(30일). 또한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하고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과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 ‘우주개발법’). 그 후속조치로 2일에는 영변 핵시설 용도의 조절변경을 언급했는데, 이는 기존 핵시설을 이용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볼 수 있음 - 이번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은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음. 우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사활적 과제로 추진 중인 ‘태평양으로의 선회’ 전략은 이번 국면을 계기로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단적으로, 미국은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온 MD 체제의 당위성을 이번 계기를 통해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었음. 게다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 무기 외에도 F-22 스텔스전폭기, SBX 레이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는 파격적 군사 조치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격 실행 - 이와 함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축을 이루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음. 비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재처리 시설을 공인받고 있으며 핵물질과 핵기술 두 측면에서 언제든 핵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일본도 북한의 핵·미사일을 빌미로 핵무장화와 ‘보통국가화’를 계속 시도(2011년 무기수출금지 3원칙 수정, 2012년 우주관련법 개정, 2013년 2월 ‘긴밀한 미일동맹이 완전히 부활했다’ 선언, 3월 TPP 협상 참가 결정, 4월 주일미군 재편 협정을 마무리) - 남한에서도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핵억지력 제고 주장이 힘을 얻고 있음(‘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 등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술 더 떠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속속 제기되고 있음* * 물론 정부는, 전자의 경우 ‘국제법상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평화 차원에서 부도덕하며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동북아에서 미중 간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것이므로 미국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부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공약과 양해를 얻어내는 기제로 활용하기 위함. 가령,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남한이 동맹국과의 조정·합의를 거쳐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사할 토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 5. 평화운동의 과제: 한반도 비핵화와 적극적 평화주의 - 최근 두 달간 전개된 한미연합전력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적 충돌은 물론 핵전쟁의 가능성이 엄연히 실존함을 보여줌. 현재 상황은 ‘한반도 비핵화’를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하고 절실한 현실적 요구로 제기. 안타깝게도 남한의 사회운동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함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기 엇갈린 해답을 갖고 있음 - 현재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이하 반전평화국민행동)으로 결집한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등 범 민족해방 계열은 ‘관련국의 군사적 행동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시작’을 요지로 하는 입장을 발표. 북미 군사대결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북에 대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 그러나 이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오류와 맹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음.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해야 한다는 관념, 또는 최소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을 내포 - 우선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 ‘사실상의’ 핵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핵비확산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실 가능성이 크지 않음.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 부수적으로는 주변국의 보수적·호전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진보적 평화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도 낳을 수 있음 - 다음으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이후 최근까지 전개된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한 협상용이라거나 자위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음. 2012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 미국과의 일괄타결이냐 전면전이냐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대결 논리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었고 그 판돈은 점점 커지고 있음. 그에 따라 남한에서는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실정 -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장은 고사하고 대중적 토대마저 유실할 위험이 큼. 강조하건대,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핵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억지 요인이 아니라 유발 요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함. 핵 전략가들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에 대해 핵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핵전쟁을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정당화함.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 또는 현실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음. 또한 우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함. 전쟁을 예방한다는 것은 예상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위험, 하지만 그 대가가 인류전체의 절멸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에 대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임 - 남한의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함. 아울러, 설령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그 결과 일정한 타협이 도출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근본적으로 침식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음. 동아시아 핵경쟁 또는 전쟁위기의 근본적 유발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의 대화나 협상이 갖는 제한적 의의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음 - 남한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자신의 일관된 요구로 채택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폐기,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의 군비 증강 반대와 같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천해 나가야 함. 끝. (2013.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