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 유지를 위한 위기 전가와 경제 통합 지난 달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일본, 중국, 한국을 순방했다.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국제경제와 안보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고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한국, 중국, 일본과 아세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지역경제안보공동체에 대한 구상에서 미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판단은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정책의 계기가 되었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오바마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임을 특히 강조하며 아시아의 안보와 경제에 대한 개입을 더 높이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은 최근 아시아 정책이 지역적 이슈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 체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결정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자국 경제의 불안정으로 미국의 지위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은 범태평양지역의 경제통합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오바마의 경제상황 인식 오바마는 11월 14일 도쿄 산토리홀 연설에서 미국의 소비와 빚에 의존했던 아시아의 ‘불균형 성장’을 강조했다. 그는 수출주도형 아시아 경제가 이제 내수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미국 상품 수입 확대를 요구했다.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오바마는 경기가 회복되는 시기라 해도 정부 부채가 증가하면 더블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경기를 살릴 수 있는 균형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또한 미국 경제에 대해서 지난 3분기에 경제가 성장세를 보였고 다음 분기도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으나 고용은 경제 성장에 후행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를 가속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이 10.2%에 달하고 있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고용회복에 소요되는 기간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1980년대에는 취업자수가 직전 경기정점의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1개월이었으나 1990~91년 경기순환기에는 31개월, 2001년에는 47개월로 크게 늘어났다. 이번 경기침체 기간이 이전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에 고용의 반등폭도 클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고용 없는 경기회복’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는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하여 균형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아시아 방문 일정과 논의내용 오바마는 11월 13~14일 일본을 방문하여 미일 동맹 강화 원칙에 합의했으며 주로 군사, 기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한편 11월 14~15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의 및 아세안 10개국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미 무역적자를 덜기 위해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에 대한 여론을 끌어내려고 했으나 어떤 국가도 속 시원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11월 15~18일 오바마는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 주석과 이란 핵 문제 및 위안화 평가절상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실질적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오바마는 중국이 내년까지 위안화를 절상할 것을 요청했으나 중국의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2005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20%로 급등했으나 작년 8월 이후로는 중국이 자국 내 수출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을 문제 삼으며 중국 측에 위안화 절상 요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던 상황이다. 미-중 정상회담 공동발표문은 다양한 이슈의 공동협력 약속, 정기적인 정상 교차 방문, 상호 전략적 관심사에 대한 배려 등을 담고 있으나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실제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오바마는 11월 18~19일 한국을 방문하여 주로 북한 핵 대응 문제와 한미 FTA를 다루었다. 양국은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동차가 문제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며 한미 FTA 비준에 열성을 보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대통령의 협상 최대 이슈가 한미 FTA이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도 지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 규모의 FTA이며 한국으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양자 간 협정”이라고 언급했다. 한국 정부는 서둘러 한미 FTA를 비준하고자 하지만 미국은 한미 FTA 내용 가운데 자동차 부분을 변경할 의도가 있으며 미 의회도 한미 FTA를 현 상태에서 비준하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오바마 정부가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미 자동차 업계 등 미국 내 여론을 무마하면서 빠른 타결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던 건강보험개혁안이 11월 하원에서 통과돼 한미 FTA 처리 시기도 다가오고 있어 추진 여부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범태평양파트너십 구상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버그스텐은 현재 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거대 지역 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것에 주목한다. 아시아 지역이 서로 무역 블록을 만들어 태평양 중앙에 선을 그으려 하고 있으며 미국이 그 블록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자 한다.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에서 미국에 대한 차별적 효과만으로 미국은 매년 250억 달러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 바 있다. 미국이 소외된 지역 경제 체제를 만드는 것은 미국에 손해기 때문에 미국은 어떻게든 그 체제에 참여하고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하길 원하고 있다. 현재 범태평양파트너십 참여 국가는 싱가포르, 뉴질랜드, 브루나이, 칠레 정도인데 곧 호주, 베트남, 페루도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약 미국이 이 파트너십에 동참한다면 한국과 일본도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10개 국가가 된다. 현재 범태평양파트너십의 목표는 네 개 국가 사이의 무역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특히 이미 존재하는 쌍방 자유무역협정을 하나의 체계 안으로 포섭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이미 싱가포르와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며 호주와 페루는 미국과의 FTA를 고려 중이다. 이들 쌍방 FTA는 때로 상충하기도 하는데 범태평양파트너십을 통해 이를 통합하려 하는 것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놀랜드는 아시아 국가들이 지역적 수준에서 무역 블록을 형성하려는 것에 대해 글로벌 수준에서의 개혁 없이는 그런 시도가 서로 경쟁하는 지역적 블록으로의 파편화만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가 글로벌한 수준의 경제체계 개혁을 강화할지 아니면 지역적 대안을 위해 글로벌 질서를 훼손하게 될지는 미국의 정책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아시아가 열쇠를 쥐고 있다.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가 국제 경제 체계의 진화에 가장 큰 결정요인이 될 텐데 아시아의 향방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이 지역적 이슈만은 아니며 그것은 미국의 국제경제에 대한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계획에 핵심적으로 놓여있는 것이 한미FTA와 WTO의 도하개발의제다. 그런데 놀랜드는 한미FTA가 비준될지는 불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 의회는 한 번도 쌍방 무역협정 비준에 실패한 적이 없는데 한미FTA 비준 실패는 한미 관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치, 또 국제 무역 정책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심각한 손상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미FTA가 결렬될 경우 미국의 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9년 4월 G20에서 오바마가 이 대통령에게 한미FTA를 성사시키겠다는 언급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미FTA는 오바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돼있지는 않다. 한편 미국은 WTO의 교착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아태지역에서 APEC을 추진하고 있다. APEC의 가입국들은 2020년까지 아태 지역에서 자유무역을 구축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2년 후 미국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버그스텐에 따르면 미국은 이때까지 앞에서 언급한 10개 국가들 중 8개 국가들이 TPP에 가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1년 호놀룰루에서 열리는 APEC에서 적어도 이러한 합의 도달의 첫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APEC이 이런 목표를 강제할 메커니즘이 없다고 해도 각 국에 미치는 압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범태평양파트너십에서 무엇보다 주목하는 국가들은 중국, 한국, 일본과 아세안 국가들이다. 특히 경제위기 회복에 있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최대 달러 보유국이며 경제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합의체제의 강조는 미-중전략경제대화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7월 27~28일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국 재무부증권의 발행규모와 달러가치의 안정성 문제였다. 미국의 이중적자 중에서 무역적자는 경제위기의 전개과정에서 GDP의 3% 수준으로 감소했으나 경기회복에 따라 앞으로 다시 상승할 수도 있고, 재정적자는 GDP 대비 두 자리 수로 상승했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 요구 등 환율조정과 WTO 세계무역 등의 시장개방으로 무역적자를 완화해보려 한다. 특히 미국이 타깃으로 하는 분야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 농업, 의약품에서의 지적재산권 등이기 때문에 미국 자본이 진출할 시장개방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그러나 미국에 수출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경제가 회복세에 있다 할지라도 가구소비의 회복은 아직 더디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의 수출은 여전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놀랜드는 이런 상황이 이들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요구하게 되는 긴장을 낳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에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보호무역을 배격하고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강제하려 할 것이다. 미국 패권 유지를 위한 위기 전가와 경제 통합 결국 미국의 범태평양파트너십 구상은 미국의 패권이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세계적 통치력을 회복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첫째, 환율조정을 통해서 아시아에 대한 부채를 감각하고, 미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회복하여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려고 한다. 둘째, 무역개방을 통해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조정하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지속시키려고 한다. 특히 도하개발아젠다(DDA)의 지체 이후 주춤하고 있는 농업, 서비스, 금융 부문의 개방을 가속화하는 것이 미국에게 중요하다(미국은 특이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즉 미국은 아시아에게 경제위기의 부담을 전가하고, 미국식 경제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통합력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의도가 아시아 지역 민중에게 파괴적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차례> 1. 세계경제 ● 향후 세계경제의 주요 리스크 평가 ● 디커플링(decoupling)에 관한 논란 2. 국제정세 ● 오바마 아시아 방문 관련 분석 ● 세계 노사정 소식 - 미국 3. 한국경제 ● 2010년 한국경제 회복의 6대 불안 요인 ● 2010년 한국기업의 5대 불안요인과 대응방향 ● 재도래하는 원화 강세와 한국경제 ● 2008년 한국 무역의존도 상승 원인 분석 ● 최근 부동산 시장의 동향과 향후 전망 4. 한국정세 ● 2010년 지방선거 관련 ● 오바마 아시아 방문 관련
<차례>
1. 세계경제
● 향후 세계경제의 주요 리스크 평가
● 디커플링(decoupling)에 관한 논란
2. 국제정세
● 오바마 아시아 방문 관련 분석
● 세계 노사정 소식 - 미국
3. 한국경제
● 2010년 한국경제 회복의 6대 불안 요인
● 2010년 한국기업의 5대 불안요인과 대응방향
● 재도래하는 원화 강세와 한국경제
● 2008년 한국 무역의존도 상승 원인 분석
● 최근 부동산 시장의 동향과 향후 전망
4. 한국정세
● 2010년 지방선거 관련
● 오바마 아시아 방문 관련
반이명박 민주대연합 누가 왜 추진하는가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 상승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최근까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정운찬 총리 임명 및 ‘친서민’ 행보가 부각되면서 일부 여론조사(9월 12-13일 한길 리서치 조사 등)에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10월 여론조사에서는 기관 간에 다소 편차가 있으나 9월보다 약간 하락하거나 유사한 수준에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10%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명박 후보의 대선 득표율이 48.7%였고, 취임 직후의 가장 높은 지지도가 50% 중반 정도였음을 기억한다면 집권 2년차 하반기에 반등한 지지도가 상당기간 유지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 상승의 원인은 무엇일까. 강조점에 차이가 있지만 부동산 가격 및 주가의 상승으로 나타난 지표상의 경기회복과 이른바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자기 자산 가격의 상승을 희망하며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 따라서 중도실용과 유능한 CEO 대통령을 표방한 그에게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약속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예상치 못한 광우병 촛불집회와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해 그러한 약속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거대한 대중운동으로 나타난 민심이반 때문에 집권초기에 누릴 수 있는 지지와 그에 따른 권능을 많은 부분 활용하기 어려웠다. 촛불집회의 여진이 사라질 때쯤에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파고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중간 자산계층 및 중도세력의 지지 획득을 핵심 목표로 추구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수구보수세력의 결집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강경한 대북정책과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주요 이슈로 활용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30% 수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한국경제의 반등이 가시화되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고환율로 인한 무역흑자, 외국인 투자자의 귀환, 저금리 및 풍부한 유동성이 자산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경제적인 호조건에 더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약속했던 친서민 중도실용 행보를 전면에 내세우고, 상징적으로 정운찬을 총리로 영입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이미지에 덧씌워진 때는 한 꺼풀 더 벗겨졌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이러한 지지는 공고한 것인가? 정권의 성격변화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성격과 효과 문제. 둘째 한국경제의 전망에 관한 문제.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이 존재하느냐는 문제. 과연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또는 새로운 정당이 유의미한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이명박 민주대연합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유일한 대안인가. 각각을 살펴보자. 중도실용과 서민정책의 실체 이명박 정부가 서민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미소재단을 통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보금자리 주택, 등록금 후불제가 대표적이다. 이 정책이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의 기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 서민정책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대부분의 비판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듯이 22조 원이 투여되는 4대강 정비 사업, 부자감세, 부동산 경기 부양, 공기업 구조조정 추진 등 그동안 비판 받았던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자본시장통합법, 보험업법, 지주회사법의 개정 등을 통해 금융과 재벌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고,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는 흔들림 없이 추진될 계획이다. 따라서 일부 계층에 대한 몇 가지 지원 정책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가 변화했다고 보기는 도저히 어렵다. 그렇다면 서민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운동진영 일각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행보를 대중운동의 압력에 의한 불가피한 유화조치라고 본다. 혼란스럽고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명박 정부는 각종 단체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금속노조 붕괴 공작, 공무원노조 불법화에서 드러나듯이 운동진영을 구시대 이익집단으로 매도하고 탄압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용산참사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운동에 대한 유화조치는 없다. 친서민행보의 본격화에는 광우병 촛불집회 1주년이 조용히 지나면서 대중적 저항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진정된 점,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려고 한 점, 일정한 지지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경제지표가 호전되어 정책추진의 기반이 마련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조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정권의 기반을 안정화하고 지지를 늘리기 위해 몇 가지 정책을 부각시켜 ‘정치상품’으로 기획했다. 중도실용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원래 기조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근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정책들은 신자유주의 정부의 불가피한 보완물이다.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은 그 성격을 따지자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인민주의 정권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활용한 ‘목표수혜’(target benefit) 정책과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빈곤과 배제가 확산된다. 특수한 계층에 집중되는 이러한 빈곤과 배제의 문제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정권의 지지를 획득할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목표수혜 정책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조차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정치적 안전성을 위해 빈곤감축정책을 제안한다. 빈민에 대한 원조는 재정균형을 위협하지 않는 작은 비용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으로 간주된다. 특히 국가기구의 제도적 매개를 활용하지 않고 대신 부자와 빈자의 자발적 연대를 강조한다. 또 참여와 자기원조라는 수사를 통해 지원의 조건으로서 빈민층의 적극적인 노력이 강조된다. 이명박 정부가 금융권과 재벌로부터 각각 1조 원씩을 조달해 2조 원 규모로 만들겠다는 미소재단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목표수혜 정책은 자신의 잠재적인 지지층이 될 수 있는 계층의 불만을 다스리고 경제적인 이해를 만족시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중 주택가격의 50~70% 수준에서 제공되는 보금자리 주택은 수도권에서 주택을 구하기 힘들지만 일정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보금자리 주택 공급이라는 명분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부동산 투기가 조장되는 등 부동산 거품 확산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등록금 후불제 역시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높은 등록금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불만을 가진 가계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보편주의적 수사인 ‘서민’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회의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특수한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신자유주의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는 속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완 정책은 계속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이 이명박 정부가 목표한 바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경제위기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한국경제의 중장기 항로 이명박 정부의 단편적인 정책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이 정부가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항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려고 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전에 한국경제 앞에 놓인 조건을 간략하게 가늠해보자. 최근의 한국경제의 회복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완화에 따라 신흥시장으로의 투자가 재개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한국은 고환율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출 감소가 적었고 수입의 더 많은 축소로 인해 불황형 흑자를 기록하면서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보자면 최근의 반등세는 신흥시장의 거품에 힘입은 바가 크고, 향후 세계적인 수준에서 은행위기와 달러위기의 가능성이 상존해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오히려 현재의 회복을 떠받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천문학적인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잠재된 위기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세계경제의 일부인 한국경제 역시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고용부진이 장기화되고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도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업률은 크게 오르지 않고 있지만 구직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숫자가 매월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취업자 수가 계속 줄어 작년 대비 1분기에 14만 개, 2분기에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줄었다. 특히 경기침체가 내수부문에 집중되어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 부문 실업률이 7%를 돌파했다. 물론 대기업 부도가 발생하지 않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인해 고용사정이 단기간에 크게 악화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호적인 대외조건으로 V자 형으로 회복한 외환위기 이후와는 달리 현재는 경기회복력이 미미해서 내년 성장률이 3%대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고용창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올해 노동자 임금인상이 제한되어서 임금이 명목기준으로 2008년보다 감소했고, 실질소득도 감소했다. 결국 고용부진의 장기화와 실질소득 감소로 민간소비의 부진이 계속되고 민중의 생활고도 가중될 것이다. 고환율과 저유가 등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교역조건의 변화도 예상된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국제 경제질서 재편 과정에 깊숙이 참가하고 그 속에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한국경제의 미래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역할을 핵심적인 것으로 본다.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아시아는 이미 세계 산출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그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외환을 달러 환류의 형태로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의 비중이 줄고 미국에 우호적인 아시아태평양권 국가가 대거 포함된 G20이 G8을 대체하고, 미중전략경제대화(G2)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미국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세계 패권으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핵심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내부의 경제 협력을 막고, 대신 미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를 건설하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이러한 세계 경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맡고 있는 역할은 신흥국의 위치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배격과 자유무역의 원칙을 강조했고, 도하라운드가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자랑한 내년 G20 정상회의 한국 개최는 이러한 충견계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이라는 상황에서 다시 미국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수행해서 수혜를 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중장기 전망에 대한 토론과 판단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민중운동의 입장이 없다면 단기적인 경제상황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 변화에 민중운동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토론은 당연히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구조적 위치와 신자유주의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한다. 반이명박연합, 누가 왜 추진하는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반사이익을 누리고자 한 민주당 등 전 집권세력과 이에 편승하여 운동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 일부 민중운동은 이명박 정부 정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양자는 반이명박이라는 틀 속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대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지를 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낮은 지지도와 민중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 및 대중운동의 사기저하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실에서 반이명박연합이 드러나는 방식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전 집권세력은 이명박 정부를 반민주 보수세력, 더 심하게는 독재나 파시즘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행보를 본격화하자 이들은 상당한 자기 혼란에 빠진 듯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아프간 파병 방침이 발표된 후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군 파병이 이뤄졌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나 등록금 후불제처럼 시민단체나 운동진영에서 제기한 정책의 일부를 수용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은 가짜 서민정책이고 자신들이 진짜 서민의 대변자임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이런 구도에는 진보정당도 동참하고 있다. 원조 민생정당임을 내세우는 진보신당은 신종플루 특진비 폐지, 은행 휴일연체료 환수, 통신비 인하 운동에 나서면서 그 활동이 민생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서민’, ‘민생’ 정치의 핵심에는 바로 ‘유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만족시켜주겠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하겠다,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숨겨진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가장 잘 조직해온 것이 아닌가. (심지어 차기 대권의 가장 강력한 후보자인 박근혜는 국민이 행복한 정치를 모토로 삼고 있다. 한층 노골적이고 강력한 민생정치의 판본이다.) 일부 운동세력은 진짜 민생정치 담론이 이명박 정부식 민생정치의 실상을 드러내고, 재벌과 보수세력의 기득권 등 한국 사회에 내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 민생정치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 속에서 실제 한국사회를 주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문제는 총체적인 정치적 전략으로 다뤄지지 않고 단편적인 정책대안으로 격하된다. 반이명박연합의 또 다른 형태는 대중적인 저항이 조직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민주당을 활용하자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수세적 태도는 이른바 MB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대국회 투쟁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광우병 촛불집회의 열기가 사그라진 후에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막는 길은 국회에서 민주당을 활용해서 각종 악법의 통과를 저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했던 세력이 민생민주국민회의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실상 한미FTA, 금융자유화, 복지 정책 등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집권세력에서 의석이 많지 않은 야당으로 추락한 자신의 지위 때문에 국회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맺고 있는 대립과 충돌이 격렬해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권력을 둘러싼 당파적 마찰일 뿐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세력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작은 차이, 큰 대결’을 할 수밖에 없다. 그 활동을 통해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자신의 추락한 위신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 민주당에게, 시민단체와 일부 민중운동의 외곽 지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에게 이들이 필요치 않거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민주당은 연대는 물론이고 관련성을 ‘부담없이’ 부정할 것이다.) 반면 이 과정에 동참하는 진보정당은 국회에서 민주당에 비해 조금 더 급진적인 주장이나 투쟁을 하는 세력 정도로 비친다. 결국 민주당 2중대라는 비난을 다시 자초한다. 반이명박연합의 마지막 형태는 ‘민주대연합’으로 제기되는 선거연합이다. 특히 과거 민주화 운동의 명망가나 시민단체 인사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담론화하고 있다.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단체 어느 세력도 한국의 개혁진보 진영을 대표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판짜기가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이 주장이 등장한 배경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특수를 누린 시민단체의 사면초가 상황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집행자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지난 집권세력과 동일하지만 정치 스타일의 측면에서 인민주의적 요소보다는 억압적인 보수주의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단체 및 노동조합의 기득권에 대한 공격과 억압, 반대세력에 대한 강력한 탄압과 도덕적 비난을 통해서 정권에 대한 지지를 공고히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를 추구하기보다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의 각종 위원회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던 시민단체의 주요 활동 경로가 대부분 차단되었다. 대중적 토대 없이 협력적 정권과 언론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던 집단에게 이러한 상황은 재앙에 가깝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정권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진보정당의 일부 인사들도 이러한 흐름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집권정당, 통치정당 모델로 설정하면 계급적 기반이나 사회운동보다는 유연한 선거연합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의 입지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거연합이 전면적인 수준에서 가시화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민주대연합으로 제기되는 외풍에 대해서 단호한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계급적 기반인 노동자운동과 민중운동의 독자성 확보를 경시한다면 토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는 반이명박연합의 근저에는 억압적인 보수정권이 등장한 상황에서 과거 집권세력이나 시민단체와의 상층 연대를 통해 활동공간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나 만족될 수 없는 기대 속에서 민중운동의 주체적 투쟁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상대화되고 있다. 10ㆍ28 재보선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전선은 민주당과 그 주변세력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고 있다. 한국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심판은 당선 가능한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곤 한다. 따라서 될 사람을 찍자는 ‘비판적 지지’(사실상 무조건 지지) 논리가 재현되면서 반이명박연합은 사실상 민주당에 대한 지원군이 된다. 민주당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민주, 평화 세력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고 정권 탈환을 노리고 있다. 민중운동의 과제 그렇다면 민중운동은 어떻게 이러한 함정을 벗어날 수 있나? 서민정책, 민생정치는 진보정당의 이념적 지향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반이명박연합을 명분으로 하는 선거공학에 몰두해서는 이른바 캐스팅보트의 역할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중운동은 노동자운동의 재건, 민중운동 간 연대활동의 강화, 진보정당의 사회운동적 성격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파업에 대한 탄압과 구속에 이어서 금속노조 탈퇴 공작으로 민주노총의 핵심조직을 제거하려고 한다. 또한 공무원노조 불법화, 공기업노조에 대한 통제와 엄격한 법적용으로 노동조합 조직과 활동 전반을 옥죄고 있다. 올 하반기 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시행이 예정되어 있는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의 경우에도 교섭창구단일화나 유급근로면제 제도를 도입해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고 일상활동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노동조합 전반에 대한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 투쟁하지 못할 경우 민중운동의 가장 중요한 대중적 토대가 무너질 것이다. 한국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이념과 목표를 분명히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단결을 꾀하고,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등 당면 공세에 대한 대응 외에도 민주노조운동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민중연대의 해소와 한국진보연대의 출범, 진보정당의 분화, 반이명박연합이라는 교란요인으로 인해서 흐트러졌던 민중운동 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민중운동의 일각은 시민단체와의 연대 강화를 투쟁의 출구로 삼았다. 민생민주국민회의 활동이 그러한 시도를 대표했다. 하지만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지 않고 상층정책 연대에 매몰되었고, 반이명박이라는 구호나 민주/반민주, 민생/반민생이라는 퇴행적 구도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투쟁하는지가 모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민주노총과 전농 등 대중단체를 중심으로 민중운동 단위가 모인 <이명박 심판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공동투쟁본부>는 민중운동 간 연대의 기풍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조 탄압 및 노동법 개악, 아프간 파병, G20 정상회담 등 산적한 과제에 대해서 민중운동이 단호한 대중투쟁을 일궈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정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활동의 일부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계급적 토대와 이념적 지향을 상실하고 매년 반복되는 선거일정에 쫓기고 선거공학에 매몰되어 민주당 등과의 연합에 힘을 소진한다면 진보정당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진보정당이 사회적 저항의 조직화보다는 집권을 중단기 목표로 삼는다면 이러한 경향은 강화될 것이다. 또한 복수의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운동 속에서 협력하기보다는 반목하고,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언론 노출을 강조할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일례로 몇년 전 진보정당은 공히 악화되고 확산되는 비정규직 문제에 주력할 것을 약속했지만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 속에서 그 문제를 위해 활발히 활동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중적인 투쟁이 활성화되고 확산될 때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 상승도 동반된다는 상식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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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경제위기와 달러 경착륙 가능성 2009년 10월 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은 ‘달러화 대비로 한국의 원화가치는 2008년 초부터 올해 3월까지 40%나 떨어졌으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회복됐다’고 언급했다. 버냉키 의장이 원화의 가치가 절상되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해 아시아 경제가 내수 기반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연설은 아시아 국가들이 인위적 환율개입을 통해 무역불균형, 즉 아시아 국가들의 무역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것과 같다. 따라서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여러 질문을 낳는다. 세계 경제의 불균형은 무엇이고 어떻게 왜 형성되었나? 불균형을 교정할 수 있는 진정 유효한 수단이 있는가? 버냉키 의장이 말한 것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과연 얼마나 정당한가? 한편 어느 정도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대략 2009년 3월부터 달러 가치가 다시 하락하고 있다. 현재 달러가치는 대체로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 파산 이전 수준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금융위기가 진정되면서 달러 유동성을 둘러싼 각축전이 완화되고 안전통화로서 달러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달러화 약세 경향은 기본적으로 2002년 이후 미국에서 정보기술 버블의 붕괴와 엔론 사태로 인해 미국의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신뢰가 붕괴하면서 나타난 달러화 약세 경향이 관철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있다. 즉 달러 신뢰성 약화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도 여러 질문은 낳는다. 달러 신뢰성 약화가 세계경제에 끼칠 영향은 무엇인가? 중국 중앙은행장이나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달러 기축통화제를 대체할 진정 유효한 수단이 있나?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은 무엇이고 그 함의는 무엇인가? 세계경제의 불균형 곧 미국경제의 불균형,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 약화라는 문제는 현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기 때문에 이 쟁점을 둘러싼 논의가 각계에서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논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함의를 따져 보겠다. 미국경제 불균형과 미중 전략경제대화 미국경제 불균형, 어떻게 확대되었나? 미국의 경제학자와 연준 관리들도 이미 10년 전부터 경상수지 적자를 우려했다. 1997년 미국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GDP의 3%에 육박하면서 적자누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적자규모는 계속 증가하여 2005년에 GDP의 6% 수준을 넘어섰다. 왜 그랬나? 첫 번째는 불황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붕괴로 불황이 나타나자 연준은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정부도 재정지출을 대규모로 확대했다. 하지만 금리인하와 넘치는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 활황, 자산가격의 급격한 성장을 초래했다. 이는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욕구를 증대시켰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GDP 상승분의 90%가 민간소비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는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독특한 지위와 관련된다. 미국 대외부채의 구성통화 대부분은 달러인 반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대외자산은 주로 유로나 다른 국제통화로 표시된 자산이다. 만약 달러가 약세이면 달러로 표시된 미국 부채의 가치는 하락하고(달러당 더 적은 외국통화에 상응하게 된다), 외국 통화로 표시된 미국 자산의 가치는 상승한다(외국 통화당 더 많은 달러에 상응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에게 자본이득이 발생하고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달러지수는 2001년 6월말부터 2008년 3월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달러가치가 무한정 하락하면 외국 투자자는 자산가치 하락 때문에 달러 표시 자산을 아예 처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에 의존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막대한 외환(달러)보유액을 축적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에 대비해 자국 통화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 수출을 위한 가격경쟁력이 악화된다다는 우려 때문에 달러를 계속해서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경제의 위기에 직면하여 미국 내에서도 이와 같은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대규모 해외자본의 유입은 낮은 이자율, 과도한 유동성, 느슨한 통화정책에 기여했고 해이한 금융감독과 결합하여 과도한 차입, 위험의 과소평가를 낳았다는 것이다. 즉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 유지된다면 현재와 같은 금융위기가 재발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외적자는 미국 예산의 적자 즉 재정적자와 짝을 이룬다. 대규모 재정적자는 일반적으로 해외 상품과 해외자본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고 더 큰 경상수지 적자를 촉진한다. (물론 미국이 현재 처한 상황처럼 재정적자는 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감소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한다.) 오바마 정부와 의회예산국은 미국 예산적자가 과거 기록을 상당 폭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과거 기록인 GDP 대비 6%에서 2030년 15%(연간 5조 달러)로 상승할 것이며 순부채가 현재 3.5조 달러에서 2030년 50조 달러로 (즉 GDP의 140%만큼, 수출의 700%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된다면 미국은 외채 이자를 갚기 위해 매년 산출액의 7%(2.5조 달러)를 외국에 이전해야 한다. 이는 미국에 삼중의 위협을 뜻한다. 첫째, 미국에 대규모 대외적자를 기록하고 세계 각국이 미국에 자금을 공급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현재 위기가 앞으로 또 복제될 것이다. 둘째, 2030년 이전에 달러가치 급락이 야기될 수 있다. 셋째, 설사 미국이 위기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외채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미국 소득을 해외로 이전하면 미국의 생활수준은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성장이 소비지향이 아닌 수출지향으로 바뀌어야 하고 세계 최종소비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이제는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경제 불균형, 교정 가능한가: 환율조정과 균형예산 여기에서 바로 제기되는 문제가 달러 환율이다. 다른 국가들이 무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추구하면서 달러의 과대평가를 밀고 나가는 경향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이미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주요국과 환율조정을 시도한 바 있다. 미국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걸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그에 따라 미국 달러 가치는 사상 최대로 높아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미국은 적자 규모를 개선하기 위해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의 평가절상을 종용하여 1985년 플라자합의가 체결되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로 인해 일본 수출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경기침체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고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내수진작을 꾀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엄청난 부동산 거품이 생겨났고, 이는 거품경제의 붕괴와 장기불황으로 귀결되었다. 현재 시점에서 미국은 경제 불균형을 치유할 방법으로 다시금 주요국에게 환율조정을 요구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심각한 난제에 직면했다. 2006년부터 개최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양국 환율조정 문제가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다. (하지만 2009년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환율 문제가 심각한 화두로 부상하지 않았다. 이는 상당히 미묘한 문제인데 뒤에서 다룬다.) 중국은 수출입 규모가 GDP의 60%에 이르러 일본의 20%보다 3배 더 해외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인위적인 환율 개입을 자제하고 내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구상은 단시일 내에 실현되기 어렵다. 바로 일본 사례처럼 중국 인민폐의 평가절상은 수출 채산성 악화로 이어져 경제성장률 저하, 실업 증가로 나타날 수 있고, 내수 기반 확대를 위한 금리 인하는 자산가격 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한 미국 예산균형이 대외 적자와 부채의 누적을 막기 위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다른 방법은 (현재 경기침체의 사례처럼) 투자를 억제하여 해외상품과 해외자본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며, 또 하나의 방법은 민간 저축을 높여서 수입품을 포함한 소비자 지출을 줄이고 해외자본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투자 억제는 생산성 성장의 하락과 불경기를 이끌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채택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민간 저축을 높이는 것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 위기 직전에 미국 가계저축은 사실상 제로였다. 이 수치는 최근 5-7%로 반등했으나 이는 위기 동안 주택과 주식 가격 하락으로 인해 가계자산이 급감하면서 나타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주택가격과 주식가격이 상당히 회복된다면 (2009년 3월부터 주식가격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높은 저축성향은 쉽게 역전될 것이다. 또한 가계저축 상승을 야기했던 요인들은 기업이윤과 기업저축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계저축 상승이 유지되더라도 이것이 자동적으로 전체 민간저축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예산정책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9년 미중 전략경제대화 의제와 함의 이러한 조건에서 2009년 7월 27~28일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개최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2005년부터 고위급 전략회담을 개최하며 주로 외교안보이슈를 다뤘고 (한반도 문제도 주요 관심사의 하나다), 2006년부터 전략경제대화를 개최하여 양국 경제이슈를 논의했다. 오바마 정부 등장 이후 두 개의 회담이 통합되어 미중 고위급 전략경제대화로 확대되었다. 부시 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열린 전략경제대화는 주로 양국 간 무역불균형 문제를 다루었고, 매번 대화는 중국의 대미흑자를 줄이기 위해 인민폐를 평가절상해야 한다며 미국이 일방적 공세를 취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은 전략경제대화 직전에 인민폐 가치를 소폭 올리거나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는 조치를 취하곤 했다.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주로 미국이 발표하고 중국은 가급적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 전략경제대화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중국도 여덟 차례 기자설명회를 개최한다고 공지했고 고위급 인사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환율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긴장이 지난 2~3년 전보다 감소했다.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는데 우선 미국의 무역적자가 2006년 이후로 상당히 감소했다. 둘째, 2008년 동안 달러에 대한 인민폐의 가치가 지난 시기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상승했고, 중국의 2009년 2분기 무역흑자가 2008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다. 따라서 인민폐는 달러 대비 평가절상되어야 할 통화 목록에 포함되지만 현재 최상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양국 간 불균형 문제는 계속 다루어지겠지만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지난 시기 환율문제가 직접적인 쟁점이 된 것과는 달리 양국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경제성장 모델(금융정책이나 산업정책, 재정정책)과 같이 더욱 포괄적인 문제틀 속에서 무역불균형 문제가 다루어졌다. 현재 중국과의 환율 문제는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위기 이후 유로는 상대적으로 평가절상 되었고 미국과 중국이 유로지역 시장을 공략함으로써 유로지역의 수출지향 국가,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현재의 세계적 금융위기는 미국경제의 불균형(미국의 이중적자/중국의 대미 수출달러 환류)과 (중국의) 과도한 재정, 통화 완화정책의 결과이기 때문에 유럽은 위기를 낳게 된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세계 경제위기의 대가는 유럽이 치러야 하는 형국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 환율 문제는 상대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국 재무부증권의 발행규모와 달러가치의 안정성 문제였다. 중국은 자신이 달러보유 함정에 빠져 있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 조건에서 중국이 미국 재무부 증권을 판매하면 증권가격이 하락할 것이며 중국이 달러를 다른 통화로 교체하면 달러가 평가절하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자산에서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중국은 성급히 움직이지 못한다. 케인즈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은행에 천 파운드를 빚지고 있다면 당신의 운명은 은행 뜻에 좌우될 것이다. 당신이 은행에 백만 파운드를 빚지고 있다면 은행의 운명은 당신 뜻에 좌우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은행이고 미국은 100만 파운드를 빚진 사람인 셈이다. (자국 통화가 타국 통화에 대비해 절상되지 않도록 환율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타국 화폐를 대규모로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이와 같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중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의 안정성을 보장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이 실행 가능한가? 만약 중국이 1조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에서 중국보다 10%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왜냐하면 미국이 대규모 적자에 처해 있고 재정 관리가 충분히 건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입은 10%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중국에게 추가적으로 1억 달러를 제공한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이를 미국 의회가 승인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에 실행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도 이런 카드가 실행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중국이 미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중시한다는 점을 압박하기 위해 달러 자산의 안정성 보장 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간주한다.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이처럼 첨예한 쟁점을 담고 있었지만 동시에 양국은 세계 경제시스템의 변화를 향한 포괄적 문제를 다루었다. 양국은 회의 주요결과로 ① 강력하고 지속적인 경기회복 정책을 추진한다, ② 강력한 금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③ 교역 투자 개방을 확대하고 보호무역을 배격한다는 합의를 발표했다. 특히 기존 전략경제회담의 쟁점이 주로 환율 문제였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양국이 균형성장을 추구하면서 미래지향적 화폐정책을 추진한다’는 수준의 언급이 담겨 있었다. 여기에는 미국이 국내저축 증대를 추진하고 중국이 내수촉진 거시경제정책을 추구한다는 언급도 포함된다. 또한 강력한 금융시스템 개혁 구축에는 미국이 전면적인 금융규제개혁을 수행하고 중국이 금융시스템 개혁과 내수 진작을 위해 금리자유화를 추진한다는 합의가 포함되었다. 또한 교역 투자 개방 확대와 보호무역 배격에는 2010년까지 세계무역기구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타결한다는 합의도 포함되었다. 물론 이러한 합의에는 상당한 립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국 정부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수출주도 성장을 추구하고 대규모 흑자를 바탕으로 대규모 달러 준비금을 운영하는 반면 미국이 최종소비자로 기능하며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게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중국과 합의하길 바란다. 즉 중국은 내수(특히 소비)를 확대하고 미국은 수출과 생산적 투자로 방향을 재수립해야 하며, 중국은 달러에 대한 인민폐의 평가절상을 더 이상 봉쇄해서는 안 되고, 미국은 경제회복이 허용하는 한 예산적자를 상당히 감소시켜야 한다는 인식이다. 나아가 중국은 대규모 공식적 달러 보유액(약 1.5조 달러)의 안정성을 열망하고, 대미 직접투자에 대한 미국의 억제를 우려한다. 미국은 중국의 산업정책전략이 ‘내셔널 챔피언’이라는 개념(전략부문의 대기업이 이윤뿐만 아니라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개념)과 선호 부문에 대한 광범위한 보조금을 포함하는 것을 우려한다. 미국은 각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IMF의 더 강력한 감시를 촉구하는 것과 같이 국제금융기구(IMF, 세계은행) 개혁방안이나 국제경제 이슈에 대해 중국이 미국과 공동행보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개방적인 세계무역시스템을 보존하는 데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강조하며 (물론 WTO 도하라운드의 구체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 차이가 있지만) WTO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리도록 함께 추동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경제의 불균형, 중국에 의한 수출달러 환류 메커니즘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미국으로서는 중국과의 정책공조가 사활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심각한 정책변화를 추진할 것이냐,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시점 내에 그러한 변화가 실현될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중 간 대화는 아직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에 이르다. 하지만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더블딥(2차 경기하강)에 빠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달러 기축통화제도에 대한 대안은 존재하는가? 미국경제 불균형과 강한 달러는 양립 가능한가? 한편 미국경제의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서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미국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달러의 국제 지배가 미국 국익에 봉사한다는 견해가 널리 수용되었다. 달러의 국제적 지위로 인해 미국이 끌어들이는 외국돈 때문에 미국인들이 더 높은 생활수준을 향유한다는 것이다. (월마트에서 파는 값싼 중국 상품, 지중해 해변으로 해외여행, 중동국가들에 의해 유지되는 예산적자 등.) 여전히 재무부 관리들은 달러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강한 달러를 반복하려 하거나 달러 가치를 건전한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를 막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재선을 바라보면서 달러 지위 하락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제 미국 경제의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복수통화제도나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발전시켜 달러를 다운사이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특별인출권 현실화 문제는 후술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얼마나 현실적일까? 위기 발발 후 2009년 3월 시점까지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실제로 더 강해졌다. 투자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도피할 때 그들은 미국 재무부 증권으로 도피했다.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여 미국과 외국 투자자는 가장 유동성이 높은 시장인 미국 정부 채무증권 시장에서 피난소를 찾았다. 외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외환준비금 구성에 관한 자료도 동일한 결론을 보여준다. 공식적인 외환보유액 중 달러의 비율은 2008년 현재 64%로 2002-3년 66%에서 근소하게 감소한 수치다. (중국은 관련 자료를 발표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현재 달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는 유로는 26.5%에 머물고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외국 중앙은행이 패니메이나 프레디맥과 같은 정부기관 증권보다 재무부 채권을 축적하고 있으며 장기채권보다 단기증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위기는 외국의 민간 투자자가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억제했을 수 있지만 외국 중앙은행은 최소한 그 전과 마찬가지로 달러를 축적하고 있다. 달러를 위협할 경쟁자가 존재하는가? 달러 특권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주장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달러의 지위는 건재해 보인다. 이러한 격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달러준비금 보유는 여전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달러로 부채를 빌려오고 달러로 무역결제를 한다. 2008년 말 국제 채무증권의 45%가 달러 표시였고, 2007년 국제결제은행 조사에 따르면 달러는 모든 외환거래의 86%를 차지했다. (외환거래 합계는 200%다.) 2008년 봄 시점에서 66개국이 달러를 환율 기준(anchor)으로 사용한다. 어떻게 통화를 혼합하는 것이 위험과 수익 조합을 최대화하는지 추산할 때는 모든 통화의 매매가 동등하게 용이하다고, 즉 모든 채권시장이 동등하게 유동성이 높다고 가정한다. 즉 유동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미국 재무부 채권 시장은 유일하게 가장 유동성이 높은 정부 채권 시장이다. (재무부채권 시장은 회전율이 높고 매수/매도 호가 격차가 좁다.) 파운드 스털링과 스위스 프랑은 한때 중요한 준비통화였으나 영국과 스위스 경제는 세계금융시스템이 요구하는 규모의 채무증서를 발행할 수 없다. 일본은 엔화가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오랫동안 억제했다. 이는 엔화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환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잠식하고 산업정책을 복잡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인이 일본 증권을 대규모 매매할 수 있었다면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에 자금이 제공될 수 있도록 금융체계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제 일본은 특히 아시아에서 엔화의 국제적 역할을 열망하지만 이를 억제하려던 과거 정책이 시장의 유동성을 제한하며, 최근 일본경제의 정체와 제로 이자율은 준비금으로서 엔화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로는 가장 유력한 라이벌이다. 그러나 유로지역의 정부 채무증권은 이질적이다. 각 정부 채권들이 지닌 위험성, 수익, 유동성은 서로 다르다. 독일정부 채권은 안정성이 높지만 기관투자가들이 만기까지 보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유동성이 부족하다. 다른 유로지역 국가는 심각한 금융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위기는 모든 유로지역 국가들이 뒷받침하는 유로지역 채권 발행에 대한 토론을 고무했다. 만약 유로지역 채권 발행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이것이 각 회원국의 채무증권을 대체한다면 유로지역은 미국 재무부증권 시장에 필적하는 시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급진적인 재정 연방주의는 독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 달러를 대체할 수 있나?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부 국가들은 다른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중국 중앙은행장은 준비금통화로서 달러가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러시아는 100억 달러어치의 미국 재무부 증권을 SDR로 표시된 IMF 채권으로 교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는 국제화폐금융시스템에서 SDR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준비금은 그것이 사용될 수 있을 때만 매력적이지만 정부는 SDR을 오직 다른 정부나 IMF에 대한 결제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SDR은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나 다른 시장참여자와 거래할 때 사용될 수 없다. 따라서 SDR이 더욱 매력적이려면 SDR이 매매되는 민간 시장이 발전되어야 한다. 즉 정부와 기업이 경쟁적 비용에 따라 SDR 채권을 발행하는 유동성 시장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SDR표시 예금과 대출이 은행에 매력적이어야 한다. 또한 예를 들어 태국 바트화로 남한 원화를 매입하기를 원하는 매매업자가 원화를 구입하기 전에 바트를 팔아 (달러가 아닌) SDR을 구입할 수 있는 외환시장이 구축되어야 한다. 하지만 1970년대 SDR을 상업화하려는 시도가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SDR 채무의 최초 발행자는 초과비용에 부딪친다. 최초의 민간 SDR은 유동성 시장에서 매매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미 달러표시, 유로표시 자산을 매매하는 유동성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최초의 SDR은 경쟁의 불이익을 당한다. 민족통화의 대체는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힘든 전투다. (중국이 SDR을 준비금 통화 지위로 격상시키겠다고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이는 SDR 유동성 시장을 창출하는 한 단계가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은 SDR 표시 채권을 발행한다면 이는 IMF로부터 SDR 표시 채권을 구매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IMF 채권은 매매될 수 없고 따라서 시장유동성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SDR 시장이 형성되더라도 누가 수요자가 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다수의 정부채권은 연금기금과 보험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채권의 만기가 그들이 연금수령자와 보험계약자에게 진 채무 만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DR 채권은 그들 채무의 통화표시와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달러가 유로에 대해 평가절하되면 유로 표시 채무는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것이다. 또 다른 도전은 SDR 기반 외환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만약 SDR을 국제 준비금 단위로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국제공동체는 IMF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유사하게) 시장 창출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그에 부합하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SDR이 진정한 국제통화가 되려면 IMF는 2008년 하반기 미국 연준이 적절한 달러 유동성을 보장하기 위해 달러 스왑을 제공했던 것처럼 SDR이 부족할 때 주기적으로 SDR을 발행해야 한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IMF 회원국의 85% 이상이 동의해야 SDR을 발행할 수 있다. 따라서 IMF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위원회처럼 독립성과 권위를 지녀야 한다. 즉 국제적 최종대부자로서 세계 중앙은행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중국 인민폐의 국제화는 가능한가? 중국 중앙은행장도 이러한 현실을 잘 알 터인데 왜 SDR을 장려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나의 해석은 그가 G-20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중국도 국제통화시스템 개혁에 대한 발언권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당국이 달러 관련 정책이 실패했다는 언론의 비난을 벗어나고자 했다는 분석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진정한 목표는 인민폐를 준비금 통화로 격상시키는 것이고 SDR에 관한 언급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인민폐는 태환성(교환성)이 떨어진다. 외국인은 중국에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중국 접경국가와의 국경 간 교역을 할 때나 홍콩과 마카오와 같은 특별행정구역에서 인민폐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태환성이 매우 떨어진다. 중국이 아르헨티나, 벨라루스,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한과 스왑협정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중요성이 없다. 이 국가들의 중앙은행은 인민폐를 활용하여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없고, 3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할 수 없고, 외국 은행이나 채권자에게 지불할 수도 없다. 중국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통해 긴급신용을 공급할 수 있지만 이는 인민폐의 국제적 역할을 개선하려는 인민폐 스왑을 잠식할 것이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한다. 언젠가 중국이 증권 유동성 시장을 발전시키고 외국인의 접근을 자유화한다면 인민폐의 태환성이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냐에 있다. 중국이 완전한 자본자유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국이 은행대출과 고정환율이 개발정책의 두 가지 핵심도구가 되었던 성장모델을 수정해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의 금융시장이 외국투자자에게 단지 점진적으로 개방될 것임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시장환율로 계산했을 때 중국 경제성장이 연간 7%에 달한다고 해도 2020년까지 중국의 GDP는 미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 것이다. 인민폐 시장에서 유동성과 거래비용은 달러시장과 비교할 수 없고 인민폐로 외화준비금을 보유하는 것은 여전히 제한적 매력만을 지닐 것이다. 2차 경제위기와 달러 경착륙 가능성 한편에서는 미국경제에 대한 신뢰성이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달러에 대한 신뢰성 약화와 달러 약세 경향이 기본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서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조정하는 게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길이며 복수통화제도나 IMF 역할 강화 같은 새로운 변화를 예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술혁신에 성공적인 국가의 통화는 평가절상되는 경향이 있고 기술혁신이 지체된 국가의 통화는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국가가 지속적이며 일반적인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면 외국에서 그 국가 통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평가절상이 발생한다. 그 국가의 통화가 평가절상된다면, 예를 들어 미국 달러에 대해 일본 엔화가 평가절상된다면 엔화 보유자가 더 많은 달러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며 달러로 가격 표시된 사용가치에 대한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된다. 이것이 기술혁신에 성공적인 국가에서 평가절상이 나타나는 기본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은 수입을 확대하고 수출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반경향을 지니기도 한다. 반면 기술발전이 지체된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출구는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향해 열려 있다. 평가절하로 인해 수출품에 대해 받는 외국 통화와 교환되는 자국 통화가 감소하더라도 수출량의 증가는 민족통화로 표시된 이윤량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73년부터 장기추세로 볼 때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기술혁신이 지체되고 있다, 즉 미국이 세계자본주의의 혁신을 주도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 유럽이나 일본 또는 중국이 상대적으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머지 국가들도 사실상 환율경쟁에 뛰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도 미국은 헤게모니 국가이자 기축통화 보유국가라는 이점을 살려 얼마간 이득을 얻고자 한다. 달러가 유로나 엔에 대해 상대적 약세를 나타내면 미국의 경기침체를 유럽이나 일본에 수출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미국 대신에 유럽이나 일본이 경기침체를 겪게 된다. 중국 위안화가 평가절상되면 미국이 중국에게 지고 있는 부채 즉 미국 정부가 발행한 달러표시 증권의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에게 지고 있는 부채가 탕감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미국이 누리는 상대적 이익은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미국은 달러 약세가 점진적으로 질서 있게 전개되기를 희망하지만 이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달러 캐리-트레이드는 달러 위기가 무질서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달러 캐리-트레이드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아진 미국 달러를 빌려 다른 통화로 표시된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고수익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위협은 미국 경제가 지니고 있는 취약성 그 자체다. 여러 경제지표가 미국 경제가 점차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를 나타내는 듯 보이지만 심각한 위험요인들이 존재한다. 미국 실업률은 2009년 6월 9.5%까지 상승하다가 7월에 소폭 하락한 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실업률 악화를 억제했던 주요 요인은 신차구매보조제도, 즉 중고차를 신차로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였으나 8월 중에 만기가 완료되었다. 또한 노동자 시간당 임금이 2008년 12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고, 주당 노동시간도 2008년 2월 이후로 하락 추세이기 때문에 노동자 구매력 개선이 더디게 진행 중이다. 신용 스프레드 즉 부도 위험이 없는 국채와 부도 가능성이 있는 회사채의 금리 차이가 감소하고 TED 스프레드 즉 국채 3개월 수익률과 리보 금리(영국 런던에서 우량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의 차이)가 감소하여 신용이 낮은 기업이나 은행들 간의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미국정부가 엄청난 돈을 퍼부으며 부실자산 매입, 자본 확충, 유동성 공급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대출 기준은 지난 10년 동안의 평균 수준보다 엄격하고 가계대출 기피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소규모 지방은행들의 도산 건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2008년 26개 은행 도산했으나 2009년 10월 23일까지 106개 은행이 도산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큰 위협 요인이다. 상업용 모기지 연체율이 급상승하여 2분기에 7.67%를 기록했고 상업용부동산담보부증권(CMBS) 발행 규모도 급감한 상태다. 2010년에 3천억 달러에 이르는 상업용 모기지의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상업용 부동산 가격 폭락, 은행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또한 미국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던 주택시장의 경우 중저가 주택시장 상황은 개선되었다. 여기에는 2월에 발표된 주택구제법안 즉 가계소득이 15만 달러 이하인 경우 최초 주택구매시 8천 달러의 조세를 지원하는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가주택 시장이 불안정해질 가능성, 모기지 금리의 상승 가능성, 최초 구매자 대상 조세지원의 만기(11월)로 인해 주택시장이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들어갔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고가주택과 관련된 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2008년 상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현재 13.5%에 이른다.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33.7%다.) 결국 고용 없는 회복, 경기부양 수단의 소진에다가 금융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미국경제의 장기침체나 2차 경제위기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미국경제의 불균형은 기본적으로 미국경제가 지닌 혁신능력의 쇠퇴, 자본생산성과 이윤율 하락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정책적 대응으로 위기 비용을 유럽이나 일본, 중국에게 전가한다고 하더라도 위기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 세계 통화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으나 이미 기축통화 달러를 중심으로 구축된 시스템에서 빠른 시일 내로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시스템은 무질서한 달러 위기가 전개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달러 경착륙과 2차 경제위기 가능성 2009년 10월 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은 ‘달러화 대비로 한국의 원화가치는 2008년 초부터 올해 3월까지 40%나 떨어졌으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회복됐다’고 언급했다. 버냉키 의장이 원화의 가치가 절상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해 아시아 경제가 내수 기반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연설은 아시아 국가들이 인위적 환율개입을 통해 무역불균형, 즉 아시아 국가들의 무역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것과 같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여러 질문을 낳는다. 세계 경제의 불균형은 무엇이고 어떻게 왜 형성되었나? 불균형을 교정할 수 있는 진정 유효한 수단이 있는가? 버냉키 의장이 말한 것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과연 얼마나 정당한가? 미국경제 불균형, 어떻게 확대되었나? 미국의 경제학자와 연준 관리들도 이미 10년 전부터 경상수지 적자를 우려했다. 1997년 미국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GDP의 3%에 육박하면서 적자누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적자규모는 계속 증가하여 2005년에 GDP의 6% 수준을 넘어섰다. 왜 그랬나? 첫 번째는 불황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붕괴로 불황이 나타나자 연준은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정부도 재정지출을 대규모로 확대했다. 하지만 금리인하와 넘치는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 활황, 자산가격의 급격한 성장을 초래했다. 이는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욕구를 증대시켰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GDP 상승분의 90%가 민간소비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는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독특한 지위와 관련된다. 미국 대외부채의 구성통화 대부분은 달러인 반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대외자산은 주로 유로화나 다른 국제통화로 표시된 자산이다. 만약 달러화가 약세이면 달러로 표시된 미국 부채의 가치는 하락하고(달러당 더 적은 외국통화에 상응하게 된다), 외국 통화로 표시된 미국 자산의 가치는 상승한다(외국 통화당 더 많은 달러에 상응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이득이 발생하고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달러지수는 2001년 6월말부터 2008년 3월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달러가치가 무한정 하락하면 외국 투자자는 자산가치 하락 때문에 달러표시 자산을 아예 처분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에 의존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막대한 외환(달러)보유액을 축적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에 대비해 자국 통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수출을 위한 가격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달러를 계속해서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경제의 위기에 직면하여 미국 내에서도 이와 같은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대규모 해외자본의 유입은 낮은 이자율, 과도한 유동성, 느슨한 통화정책에 기여했고 해이한 금융감독과 결합하여 과도한 차입, 위험의 과소평가를 낳았다는 것이다. 즉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 유지된다면 현재와 같은 금융위기가 재발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 게다가 미국의 대외적자는 미국 예산의 적자 즉 재정적자와 짝을 이룬다. 대규모 재정적자는 일반적으로 해외 상품과 해외자본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고 더 큰 경상수지 적자를 촉진한다. (물론 현재처럼 재정적자는 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감소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한다.) 오바마 정부와 의회예산국은 미국 예산적자가 과거 기록을 상당 폭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과거 기록인 GDP 대비 6%에서 2030년 15%(연간 5조 달러) 상승할 것이며 순부채가 현재 3.5조 달러에서 2030년 50조 달러로 (즉 GDP의 140%만큼, 수출의 700%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된다면 미국은 외채 이자를 갚기 위해 매년 전체 경제 산출액의 7%(2.5조 달러)를 외국인에게 이전해야 한다. 이는 미국에게 삼중의 위협을 뜻한다. 첫째, 미국에 대규모 대외적자를 기록하고 세계 각국이 미국에 자금을 공급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현재 위기가 앞으로 또 복제될 것이다. 둘째, 해외 투자자에 대한 미국의 수요를 증대시키는 것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고 2030년 이전에 달러가치의 급락을 야기할 것이다. 셋째, 설사 미국이 미래 위기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외채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미국 소득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미국의 생활수준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성장이 소비지향이 아닌 수출지향으로 바뀌어야 하고 세계 최종소비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이제는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경제 불균형, 교정 가능한가? 여기에서 바로 제기되는 문제가 달러 환율이다. 다른 국가들이 무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추구하면서 달러의 과대평가를 밀고 나가는 경향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이미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주요국과 환율조정을 시도한 바 있다. 미국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걸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그에 따라 미국 달러 가치는 사상 최대로 높아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미국은 적자 규모를 개선하기 위해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의 평가절상을 종용하여 1985년 플라자합의가 체결되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로 인해 일본 수출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경기침체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고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내수진작을 꾀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엄청난 부동산 거품이 생겨났고, 이는 거품경제의 붕괴와 장기불황으로 귀결되었다. 현재 시점에서 미국은 경제 불균형을 치유할 방법으로 다시금 주요국에게 환율조정을 요구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심각한 난제에 직면했다. 2006년부터 개최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양국 환율조정 문제가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다. (하지만 2009년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환율 문제가 심각한 화두로 부상하지 않았다. 이는 상당히 미묘한 문제인데 뒤에서 다룬다.) 중국은 수출입 규모가 GDP의 60%에 이르러 일본의 20%보다 3배 더 해외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인위적인 환율 개입을 자제하고 내수 기반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구상은 단시일 내에 실현되기 어렵다. 바로 일본 사례처럼 중국 인민폐의 평가절상은 수출 채산성 악화로 이어져 경제성장률 저하, 실업 증가로 나타날 수 있고, 내수 기반 확대를 위한 금리 인하는 자산가격 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2009년 미중 전략경제대화의 의제와 함의 이러한 조건에서 2009년 7월 27~28일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개최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2005년부터 고위급 전략회담을 개최하며 주로 외교안보이슈를 다뤘고 2006년부터 전략경제대화를 개최하여 양국 경제이슈를 논의했다. 오바마 정부 등장 이후 두 개의 회담이 통합되어 미중 고위급 전략경제대화로 확대되었다. 2006년부터 열린 전략경제대화는 부시 정부 당시 주로 무역불균형 문제를 다루었고, 매번 대화는 중국의 대미흑자를 줄이기 위해 인민폐를 평가절상해야 한다며 미국이 일방적 공세를 취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은 전략경제대화 직전에 인민폐 가치를 소폭 올리거나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는 조치를 취하곤 했다.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주로 미국이 발표하고 중국은 가급적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 전략경제대화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중국도 여덟 차례 기자설명회를 개최한다고 공지했고 고위급 인사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환율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긴장이 지난 2~3년 전보다 감소했다.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는데 우선 미국의 무역적자가 2006년 이후로 상당히 감소했다. 둘째, 2008년 동안 달러에 대한 인민폐의 가치가 지난 시기에 비해 2008년 동안 상당히 빠르게 상승했고, 중국의 2009년 2분기 무역흑자가 2008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다. 따라서 인민폐는 달러 대비 평가절상되어야 할 통화 목록에 포함되지만 현재 가장 최상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양국간 불균형 문제는 계속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지만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환율문제가 직접적인 쟁점이 되기보다는 양국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경제성장 모델(금융정책이나 산업정책)과 같이 더욱 포괄적인 문제들 속에서 함께 다루어졌다. 현재 중국과의 환율 문제는 오히려 유럽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위기 이후 유로화는 상대적으로 평가절상이 되었고 미국과 중국이 유럽연합 시장을 공략함으로써 유럽연합의 수출지향 국가,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현재의 세계적 금융위기는 미국경제의 불균형(미국의 이중적자/중국의 대미 수출달러 환류)과 (중국의) 과도한 재정, 통화 완화정책의 결과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위기를 낳게 된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세계 경제위기의 대가는 유럽연합이 치러야 하는 형국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 환율 문제는 상대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국 재무부증권의 발행규모와 달러가치의 안정성 문제였다. 중국은 자신이 달러보유 함정에 빠져 있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 조건에서 중국이 미국 재무부 증권을 판매하면 증권가격이 하락할 것이며 중국이 달러를 다른 통화로 교체하면 달러가 평가절하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자산에서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중국은 성급히 움직이지 못한다. 케인즈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은행에 천 파운드를 빚지고 있다면 당신의 운명은 은행 뜻에 좌우될 것이다. 당신이 은행에 백만 파운드를 빚지고 있다면 은행의 운명은 당신 뜻에 좌우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은행이고 빚을 진 게 미국인 셈이다. 자국 통화가 타국 통화에 대비해 절상되지 않도록 환율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타국 화폐를 대규모로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이와 같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중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의 안정성을 보장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이 실행 가능한가? 만약 중국이 1조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에서 중국보다 10%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왜냐하면 미국이 대규모 적자에 처해 있고 재정 관리가 충분히 건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이 입은 10%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중국에게 추가적으로 1억 달러를 제공한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이를 미국 의회가 승인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에 실행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도 이런 카드가 실행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중국이 미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중시한다는 점을 압박하기 위해 달러 자산의 안정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간주한다. 현재 미국에게 중국과의 정책공조는 사활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간 대화는 아직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에도 이른 시점이다. 하지만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더블딥(2차 경기하강)으로 몰고 갈 위협 요인은 여전히 작동 중이다. 달러 경착륙과 2차 경제위기 가능성 한편에서는 미국경제에 대한 신뢰성이 근본적 의문에 처해 있기 때문에 달러에 대한 신뢰성도 약화될 수밖에 없고 달러 약세 경향이 기본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서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조정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술혁신에 성공적인 국가의 통화는 평가절상되는 경향이 있고 기술혁신이 지체된 국가의 통화는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국가가 지속적이며 일반적인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면 외국에서 그 국가 통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평가절상이 발생한다. 그 국가의 통화가 평가절상된다면, 예를 들어 미국 달러에 대해 일본 엔화가 평가절상된다면 엔화 보유자가 더 많은 달러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며 달러로 가격 표시된 사용가치에 대한 권리를 더 많이 갖게 된다. 이것이 기술혁신에 성공적인 국가에서 평가절상이 나타나는 기본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은 수입을 확대하고 수출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반경향을 지니기도 한다. 반면 기술발전이 지체된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출구는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향해 열려 있다. 평가절하로 인해 수출품에 대해 받는 외국 통화와 교환되는 자국 통화가 감소하더라도 수출량의 증가는 민족통화로 표시된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73년부터 장기추세로 볼 때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기술혁신이 지체되고 있다, 즉 미국이 세계자본주의의 혁신을 주도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 유럽이나 일본 또는 중국이 상대적으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머지 국가들도 사실상 환율경쟁에 뛰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도 미국은 헤게모니 국가이자 기축통화 보유국가라는 이점을 살려 얼마간 이득을 얻고자 한다. 달러가 유로나 엔에 대해 상대적 약세를 나타내면 미국의 경기침체를 유럽이나 일본에 수출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중국 위안화가 평가절상되면 미국이 중국에게 지고 있는 부채 즉 미국 정부가 발행한 달러표시 증권의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에게 지고 있는 부채가 탕감되는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미국이 누리는 상대적 이익은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미국은 달러 약세가 점진적으로 질서 있게 전개되기를 희망하지만 이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달러 캐리-트레이드는 달러 위기가 무질서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달러 캐리-트레이드는 미국의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저리의 풍부한 달러 자금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가능한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위협은 미국 경제가 지니고 있는 취약성 그 자체다. 여러 경제지표가 미국 경제가 점차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듯 보이지만 심각한 위험요인이 존재한다. 우선 미국 실업률은 2009년 6월 9.5%까지 상승하다고 7월에 소폭 하락한 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실업률 악화를 억제했던 주요 요인은 <신차구매보조제도>(중고차를 신차로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금전적 인센티브 제공)였으나 8월 중에 만기가 완료했다.) 또한 노동자 시간당 임금이 2008년 12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고, 주당 노동시간도 2008년 2월 이후로 하락 추세이기 때문에 노동자 구매력 개선이 더디게 진행 중이다. 신용 스프레드(부도 위험이 없는 국채와 부도 가능성이 있는 회사채의 금리 차이)가 감소하고 TED 스프레드(국채 3개월 수익률과 리보 금리 즉 영국 런던에서 우량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의 차이)가 감소하여 신용이 낮은 기업이나 은행들 간의 자금조달 여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미국정부가 엄청난 돈을 퍼부으며 부실자산 매입, 자본 확충, 유동성 공급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대출 기준은 지난 10년 동안의 평균 수준보다 엄격하고 가계대출 기피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소규모 지방은행들의 도산 건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2008년 26개 은행 도산했으나 2009년 10월 23일까지 106개 은행이 도산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큰 위협 요인이다. 상업용 모기지 연체율이 급상승하여 2/4분기에 7.67%를 기록했고 상업용부동산담보부증권(CMBS) 발행 규모도 급감한 상태다. 2010년에 3천억 달러에 이르는 상업용 모기지의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상업용 부동산 가격 폭락, 은행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또한 미국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던 주택시장의 경우 중저가 주택시장 상황은 개선되었다. 여기에는 2월에 발표된 <주택구제법안>(가계소득이 15만 달러 이하인 경우 최초 주택구매시 8천 달러의 조세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가주택 시장이 불안정해질 가능성, 모기지 금리의 상승 가능성, 최초 구매자 대상 조세지원의 만기(11월)로 인해 주택시장이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들어갔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고가주택과 관련된 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2008년 상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현재 13.5%에 이른다.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33.7%다.) 결국 고용 없는 회복, 경기부양 수단의 소진에다가 금융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미국 경제의 장기침체나 2차위기(더블딥)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미국 경제의 불균형은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의 혁신능력의 소진, 자본생산성과 이윤율 하락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적 대응으로 위기 비용을 유럽이나 일본, 중국에게 전가한다고 하더라도 위기 그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 세계 통화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으나 이미 기축통화 달러를 중심으로 구축된 시스템에서 빠른 시일 내로 대안이 나오긴 어렵다.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조정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무질서한 달러 위기가 전개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공투본 노동해방선봉대 경제위기 강의안입니다. 파워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