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국가채무의 부도사례가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에 주는 시사점 세계정세 한미 FTA 한국경제 민선5기 지방재정 건전화 5대과제 한국정세 지자체 지방재정 위기(성남시 채무지급유예) 박근혜표 복지 노동 총연맹 – 민주노총, 7월 투쟁사업 계획 수립 – 타임오프제 분쇄 및 노동탄압 분쇄 산별연맹(노조) 투쟁 계획 – 민주노총 부위원장 실업급여 부정수급 관련 여성 <여성과 금융위기>(실비아 월비)_본문 주요내용 요약과 노조페미니즘 팀 토론
차례 G20 공동대응을 논의하기까지 4 1부 : G20과 각 의제들 의제 1 좋은 일자리 7 의제 2 노동기본권 11 의제 3 금융통제 15 의제 4 환경과 기후변화 35 의제 5 민주주의와 인권 45 의제 6 빈곤과 개발 58 의제 7 FTA와 초국적 기업 68 의제 8 안보와 평화 72 의제 9 강요된 이주 82 의제 10 기업세계화와 빈곤 88 의제 11 식량위기 2부 : G20 정상회의 비판과 우리의 대응방향 G20에 맞서기(민주노총 이창근 정책국장) 98 G20에 항의해야 하는 이유와 운동의 방향 (김어진 '다함께‘ G20 대응팀장) 105 환경 관점에서 바라 본 G20와 환경 의제의 시사점 113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G20 대응 방향 토론문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130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을 확산하는 G20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133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정지영) MB와 G20 서울 정상회의, 그리고 시민 민중진영의 대응 방향 (한국진보연대 정책부위원장 주제준) 147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국제회의 보고서 각국 정부 대표는 2010년 5월 3일부터 5월 28일까지 뉴욕 국제연합에서 개최된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에 참가했다. 하지만 이때 정부 대표들만 뉴욕에 집결했던 것이 아니다. 공식 NPT 평가회의가 열리기 직전 주말 동안 핵 폐기 운동가들이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국제회의>(2010년 4월 30일~5월 1일)를 조직했다. 국제회의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렸다. 8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이틀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과 전체토론에 참석했다. 미국의 주최자와 국제기획위원회는 유럽과 아시아의 활동가를 참가시키기 위해 노력했고(국제 참가자를 우선 배려했다), 야심찬 의제를 설정했다. <미국친우봉사회>(AFSC)의 평화안보 프로그램 국장이자 국제회의를 조직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조셉 거슨은 회의 첫째 날 총회에서 이번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윤곽을 제시했다. 1) 핵무기 폐지 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분석을 공유하고 NPT 평가회의 대응책을 조율하고 장기적인 운동 건설 전략을 계획한다. 2) 핵무기 폐지를 위한 운동과 평화, 경제정의, 환경의 지속성을 위한 운동과 통합한다. 3) NPT 평가회의가 <핵무기협약> 협상에 동의하도록 촉구한다. 이 글은 국제 핵 폐기 운동의 강점과 약점, 잠재력을 검토하기 위해서 국제회의에서 제시된 주요 내용을 요약할 것이다. 개막 총회 국제회의는 4월 30일 개막 총회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비니 버로우즈는 킹 목사가 1964년에 오슬로 대학에서 행한 연설을 인용하며 회의 분위기를 띄웠다. “정신적 도덕적 후진성은 현대 인류가 처한 최고의 딜레마다. 이는 더 큰 세 가지 문제로 표현된다. 각각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그것은 인종적 부정의, 빈곤, 전쟁이다.” 그녀의 깊은 목소리는 킹 목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낭독을 마친 후 리버사이드 교회의 아놀드 토마스 목사는 참가자를 환영하면서 킹 목사의 신념이었던 비폭력 원칙을 환기시켰다. 그는 비폭력 문화를 고취하는 것이야말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달성하는 열쇠라고 제시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테루니 타나카는 나가사키 핵폭격의 생존자로서의 경험과 미국 핵폭격의 사후 효과로 죽거나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 시민들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핵무기의 잔학성’을 고발하면서 그가 속한 단체가 <핵무기협약>을 지지한다고 천명했고 NPT 국가들이 2000년 평가회의에서 그 개요가 제시된 ‘13단계 핵군축 실질조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의 집행국장인 존 버로우즈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 보유고를 감축하기 위해 합의한 최근 조치와 NPT 체제에 대한 일반적 비판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가 비(非)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예방적인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했고, 양국의 핵무기 준비태세는 거의 변함이 없으며, 양국이 ‘3원 핵전력’(전략폭격기, 지상발사 미사일, 핵미사일 잠수함)을 현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NPT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 각각에 적용되는 이중기준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으며, 핵보유국이 핵군축을 해야 한다는 임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핵을 보유하지만 NPT 참가국이 아닌 국가를 고려하면 더 큰 모순이 존재한다. 핵물질을 거래하는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예외로 인정되지만, NPT 가입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조사가 가해지고 있다. 버로우즈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가 개발한 <핵무기협약> 모델에는 단 하나의 기준, 즉 핵무기의 비보유라는 기준만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첫 날의 가장 흥미로운 발표는 프린스턴 대학의 <동남아시아 평화안보 프로젝트> 국장인 지아 미안의 발표 ‘핵무기, 자본주의,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맞서다’였다. 미안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핵무기는 세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하다”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이 핵 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연간 50억 달러를 지출하지만 이는 전체 국방예산의 10%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위기 시기에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려면 핵 예산을 삭감해야할 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고 전쟁 체제를 전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과 금융규제는 현상유지를 의미할 뿐이며 경제위기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재분배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불평등에 맞서는 것이다. 핵무기 문제로 돌아와서 미안은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우리의 투쟁은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나 일부 핵탄두의 감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NPT 6조(핵군축)의 이행에 대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군사력, 권력, 폭력에 대한 것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에 대한 것이다.” 미안의 발표는 핵 감축이란 문제를 군사주의나 경제위기와 같은 더 폭넓은 이슈와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하지만 전쟁과 인종주의, 경제적 부정의의 상호관련성을 분석한 미안의 발표보다는 핵무기를 도덕성의 문제로 다루는 (즉 인도주의 대 비인도주의) 타나카의 발표나 킹의 비폭력 원칙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춘 토마스의 발표가 회의의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했다. 워크숍 이튿날 오전과 오후에 여러 워크숍이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 중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참여한 두 개의 워크숍을 소개한다. 핵억지를 폭로하자 이 워크숍은 ‘핵억지’라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하고자 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핵시대평화재단>(미국)의 데이비드 크리거는 핵억지 개념이란 보복 위협이 적국의 공격을 중지시킬 것이라는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억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복 위협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하며, 상대방이 그 위협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위협을 당하는 자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는 결함이 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필요조건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나 특히 테러리스트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는 핵보복 위협에 항상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그는 미국이 핵위협 위계의 최상층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미국이 “위협을 멈추면 다른 어떤 누구도 핵억지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국제연합 핵군축국의 정무관 랜디 라이델은 그가 생각하기에 반핵운동가가 활용할 수 있는 국제연합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국제연합 헌장이 1) 군축, 2) 군비통제, 3) 갈등 조정을 요청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46년 국제연합은 군축을 화학무기, 핵무기, 생물학무기의 제거로 정의했다. 그는 문제가 군축 약속의 결여가 아니라 구체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하부구조의 결핍이라고 말했다. 국가들은 평화 전담 부서를 필요로 하며 NPT는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관리기구를 필요로 한다. 워크숍 전반에 걸쳐 발표자와 사회자는 핵억지 개념이 ‘물신’(맹목적 숭배대상)이라고 칭했다. 핵 물신은 미국과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 핵 프로그램을 합리화하면서 대량파괴의 실질적 가능성을 은폐한다. NPT를 넘어서: 핵 폐기 운동의 건설 전략 이 워크숍에는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온 발표자가 참여했고, 그들은 각 국가의 핵 프로그램 상태와 반핵운동가의 요구에 대해 토론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일본 원수폭금지국민회의(원수금)에서 온 나가히사 와다와 원수폭금지협의회(원수협)에서 온 히로시 타카였다. 와다는 과거 미국의 핵폭격과 현재 일본 전역에서 가동 중인 53개 핵발전소가 건강과 환경에 끼친 지속적 영향을 폭로하며 일본 운동의 요구를 소개했다. 반면 타카는 미국정부가 핵군축을 주도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미국 활동가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며 핵 폐지를 위한 풀뿌리 조직과 정부의 협력을 포함하는 국제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는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을 수용한 것이 일본의 비핵 3원칙(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일본 영토 내로 반입하지 않는다) 정신과 모순된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에 이어 프랑스 <평화운동>의 피에르 비이야르와 영국 <핵군축을 위한 캠페인>의 데이비드 웹은 유럽과 세계에서 진행 중인 핵군축의 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이야르는 오바마 정부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과거 미국 행정부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의미하며 NPT 평가회의 내에서 중동 비핵지대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군축을 지원하고 최근의 긍정적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광범위한 대중교육 프로그램을 주창했다. 데이비드 웹은 영국 정치 내에서 핵무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록 최근에 영국 의회는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폐기하는 대신에 이를 대체하는 신규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지만, 영국과 유럽연합 의회 내에서 새로운 핵무기 체계 창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정 강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평화행동>(미국)의 케빈 마틴은 핵 폐기 운동을 위해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일단은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이 비준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조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요구를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1) 핵무기 복합체에 대한 재정지원의 축소, 2) 일방적 무기 감축을 위한 행정명령, 3) 핵무기 경계태세의 완화, 4) 중동 비핵지대에 대한 미국의 지지. 마틴은 다른 발표자에 비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지만 그의 발언을 대체로 미국 활동가와 연관된 것이었다. 불행히도 워크숍 동안에 지역을 넘어서 연대를 구축하고 공동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참가자가 다양했지만 국제회의 전반에서 이런 취약성이 드러났다. 몇몇 개인이 국제총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 한국의 전쟁 상황이나 핵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검토했지만 그 형식은 심도 깊은 분석이나 국제운동의 건설을 위한 의미 있는 대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폐막 총회 국제회의의 마지막 행사는 폐막 총회였다. 폐막 총회에서는 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 국제평화위원회 의장인 소코로 고메즈, 히로시마 시장 타다토시 아키바를 포함한 몇몇 연사들이 800명의 참석자를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회의 주최자와 여러 참가자가 볼 때 폐막총회와 회의 전체의 하이라이트가 반기문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비핵화를 위한 참석자들의 활동에 찬사를 보내며 발언을 시작했다. “나는 인류의 가장 숭고한 소망, 곧 세계 평화를 말하고 그것을 위해 항의하고 그 기치를 표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늘 밤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이어서 NPT 체제에 찬사를 보냈다. “NPT는 40년 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그 후로 NPT는 비확산 체제와 우리의 핵군축 노력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단지 몇 개 국가만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NPT가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덕이 매우 컸습니다.” 그는 이어서 미국에 찬사를 보냈다. “예를 들면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비핵국가가 NPT를 준수하는 한 핵무기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맹세했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비판한 후 청중에게 “여러분의 훌륭한 활동을 지속하시고 앞으로도 양심의 소리가 되어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연설을 마쳤다. 그의 연설은 모든 청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한국 참가자들만 제외한다면. 소코로 고메즈는 반기문 총장 바로 다음에 연사로 나섰고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다. 핵 폐기를 위한 투쟁은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녀는 NPT의 특징이 “불균형과 불평등”이라고 비판했고, NPT가 군축과 핵에너지 이용의 위험성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NPT 체제가 사실상 핵무기 독점을 동결했고, 핵군축이라는 약속은 단순한 치장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의 한계와 미국이 발표한 글로벌 신속타격 프로그램을 더욱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녀는 이란과 북한이 제국주의적 의도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적인 혐의를 받고 있지만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한 범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메즈의 발표는 반기문의 연설이 보여준 오류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녀는 NPT를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구조로 간주하는 것이나, NPT가 국가들의 재래식 전력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불균형을 함께 다루지 않고 핵무기의 폐기를 모색하는 것이나, 미국의 세계적 군사 지배를 고려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회의 주최자가 반기문의 연설 바로 뒤의 발표자로 고메즈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총회 사회자는 두 연설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고메즈는 기립박수를 받지 않았다. 평가 국제회의는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 NPT 평가회의 개막을 앞두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특히 국제회의가 끝난 후 5월 2일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시위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둘째, 국제회의가 국제기획위원회에 의해 조직되었고 이 회의에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국제 협력에서 드문 사례다.(최소한 미국 운동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마지막으로 국제회의는 활동가들이 핵무기 프로그램과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다만, 두 가지 약점에는 주목해야 한다. 첫째, 큰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와 연구소가 과잉 대표되었고 핵시설이나 핵정책에 대항해 현장 조직화를 수행하는 풀뿌리 집단의 대표성이 부족했다. 이는 운동 행위자가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취해야 할 활동을 국제연합과 NPT 평가회의의 틀 내로 제한시킨다. 풀뿌리 운동의 대표성 부족은 국제회의의 형식 문제와 함께 운동 건설 전략에 관한 구체적인 대화를 어렵게 했다. 둘째, 핵무기에 대한 비판을 군사주의에 대한 더 광범위한 분석에 결합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발표자들 사이에서 불균등했고 전반적으로 불충분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하여 핵무기 보유 국가의 군사적 지배를 통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 누구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의 결핍은 핵 폐기 운동을 더 광범위한 평화운동 또는 현재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위해 벌어지는 투쟁과 연결시키기 위한 논의를 어렵게 했다. 결론 첫 번째 워크숍에서 몇몇 발표자는 ‘핵억지’가 물신이고, 미국과 영국이 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핵무기 개발을 통해 벌어지는 현실적 위협을 은폐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물신숭배 비판은 중요하며, 핵 폐기 운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운동 내에서는 핵무기를 국가 간 이해관계나 군사지배 체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하기보다는 핵무기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로 보는 두드러진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향이 국제회의에서 보편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지배적 흐름이었고, 이틀간에 벌어진 대화의 효과성을 제한했다. 핵무기 숭배를 비판하는 것은 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냐는 문제와 관계없이 대량 살상과 파괴를 위해 고안된 핵무기의 근본적 부도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아 미안이 지적했듯이, “군사력, 권력, 폭력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는 것”이다. 남한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비핵화 요구가 남한의 대북 적대 정책의 종결, 남한 국방예산의 감축,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의 제거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핵우산의 제거 요구는 남한, 미국, 일본의 전략적 군사동맹 비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핵 폐기 운동은 더 광범위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2010년 NPT 평가회의와 향후 과제 지난 5월 3일부터 28일까지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2010년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이하 평가회의)가 열렸다. 평가회의는 NPT 조약 8조 3항의 규정에 따라 5년 마다 조약의 주요 구성 요소인 핵군축과 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상황을 평가하는 조약 당사국 회의로 이번이 8번째 회의다. 평가회의는 핵무기 문제만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과 원자력 기술, 핵물질의 생산과 통제, 안전보장 등 원자력과 관련된 문제 전반을 다룬다. NPT에 가입하고 있는 조약 당사국 정부뿐만 아니라 반핵운동진영, 평화운동진영, 환경운동진영 역시 평가회의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2009년 ‘핵 없는 세계’ 선언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행동은 핵군축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취시켰다. 이번 평가회의에는 189개 당사국 외에 121개 반핵반전평화운동 조직에서 1,0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해 평가회의와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한 높은 기대를 보여주었다. 2010년 평가회의의 주요 특징 이번 평가회의는 전체 토론, 3개의 메인위원회별 회의, 심사위원회, 전체회의, 초안 위원회 등 총 64개 회의와 옵저버들의 다양한 부대 행사들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2010년 평가회의의 주요 특징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핵보유국,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핵군축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들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4월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통해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 핵탄두를 1,500-1,675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평가회의 개막 당일 미국은 현재 보유 중인 핵탄두 비축량 규모를 공개했다. 핵보유국의 핵군축 노력이 별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쌓여왔던 비핵보유국의 불만이 폭발해 파행으로 치달았던 2005년 평가회의 당시 상황에 비추어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보여준 행동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평가에 기반해 이번 평가회의는 15년 만에 ‘최종문서’ 합의에 성공했다. 둘째, 핵무기와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 강조되었다. 이는 이번 평가회의 개최 전부터 충분히 예상되었던 내용이다.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을 ‘핵심 계획’으로 설정한 미국의 2010 핵태세검토보고서나,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험으로 핵 테러리즘을 강조한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와 같은 맥락이다. 북한과 이란 사례는 다른 나라들의 핵개발 의욕을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핵보유국은 이탈세력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대처를 통해 강력한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며 추가적인 이탈 행위를 막으려 하고 있다. 셋째, 강력한 비확산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나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과 같은 추가적 조약/조치들이 강조되었다. 추가적인 핵무기의 개발이나 현존 핵무기를 개량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하, 수중, 외기권에서 진행되는 핵실험을 금지하는 CTBT 비준과 시행이 핵군축과 비확산 체제의 핵심요소로서 강조되었다. 더불어 CTBT가 시행되는 시점까지 핵보유국 개개의 핵실험폭발에 대한 모라토리엄 선언을 촉구하였다. 이와 함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핵분열성 물질을 신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국제적인 검증 시스템의 통제를 적용할 것이 요청되었다. 넷째, NPT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몇몇 비핵보유국 국가/그룹과 반핵평화운동 조직들이 ‘핵무기협약’(Nuclear Weapon Convention)이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조약을 제안했다. 그동안 NPT가 지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핵보유국이 핵무기 숫자를 늘리거나 개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도 가할 수 없으면서, 비핵보유국의 활동만 제약하기 때문이다. NPT를 통해 핵보유국이 증가하는 것은 막을 수 있더라도 핵군축을 이룰 수는 없으며, 결국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패권을 보증하는 체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성을 극복하고 진정 핵군축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의견그룹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신의제연합, 비동맹노선을 비롯하여 비엔나 10그룹, 디-알러팅 그룹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주로 핵보유국-비핵보유국의 대립 구도였던 과거에 비해, 2000년 평가회의 이후 자국의 이해에 따라 다양한 의견그룹들이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평가회의를 통해 드러난 미국의 속내 5월 3일 평가회의 개막 첫 전체토론에서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조약 당사국 회의이긴 해도 각국의 정상이 모이는 정상회의가 아닌 NPT 평가회의에 참가국의 대통령이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의혹과 이에 대한 처리가 이번 평가회의에서 주요한 쟁점인 만큼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대표단은 즉각 퇴장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어떤 나라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핵을 이용하지만, 어떤 나라들은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핵을 이용한다’, ‘수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 대한 압박을 정면으로 비판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대답이 그날 오후 바로 나왔다. 오후 전체회의에서 발언에 나선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몇몇 이탈 세력들이 국제 사회에 도전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규칙은 지켜져야 하고, 위반은 처벌되어야 한다...(중략)...지금 이 회의가 강력한 국제 사회의 응답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표방한 ‘핵 없는 세계’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미국이 응답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핵무기 감축 의무와 비확산 의무는 NPT 체제의 양대 축이다. 그러나 미국이 말하는 ‘국제 사회의 규칙’은 핵무기 감축보다는 비확산 쪽으로 훨씬 더 기울어져 있다. 1995년 NPT의 연장을 결정하기 앞서 미국은 CTBT의 비준을 약속하면서 핵보유국들의 지지부진한 군축에 불만이었던 비핵보유국들을 달랬다. 그러나 막상 NPT의 무기한 연장이 결정되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1999년 미국은 CTBT 국회 비준을 거부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또한 2002년에는 미사일방어망(MD)을 추진하기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협정’(ABMT)도 파기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국제 사회의 규칙’을 내세웠다, 쓰레기통에 내버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주장하는 ‘국제 사회의 규칙’이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쟁점들 New START와 핵군축 이번 평가회의에서 미국-러시아가 맺은 New START를 근거로 핵군축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현재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보유국들이 한 최근의 핵군축 약속이 너무나 미흡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실제 실현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5월 6일에는 러시아 정부 대표단이 주최한 ‘러시아의 NPT 준수 브리핑’이라는 사이드 이벤트가 열렸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의 NPT 이행 상황, 특히 핵군축 관련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New START가 핵군축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러시아 정부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집을 지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집이 정말 좋은 집이라고 언제 대답할 수 있는가? 물은 잘 나오는지, 전기 공급 문제는 없는지,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언제쯤 정말 훌륭하다고 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New START는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 그것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우리로선 알 수 없다.” New START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보유하고 있는 전략 핵탄두를 1,500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했지만 교묘한 탄두 계산 방식으로 감축 효과가 과장되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New START가 ‘전략’무기 감축 협정이란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핵무기는 그 용도와 사거리에 따라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로 구분하지만, 이렇게 구분해보면 보통 300Kt(킬로톤, 1Kt은 TNT 1,000톤의 폭발력)의 파괴력이 그 기준이 되기도 한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리틀보이의 파괴력은 13-18Kt,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은 21Kt 정도로 추정된다. 폭탄 투하 후 4개월 내에 사망한 사람만 히로시마에서 9만-16만 6천 명, 나가사키에서 6만-8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이후 사망자나 후세의 고통은 측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전술핵은 내버려두고 전략핵만 일부 감축하는 것은 핵 없는 세계와 거리가 멀다. 핵무기협약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핵무기협약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는 NPT 체제가 지난 40년간 핵무기의 무차별적 확대를 막는 역할을 했지만 핵보유국의 실질적인 감축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아직까지는 제안 단계이고 정부들의 입장도 다르기 때문에 향후 협약의 실내용이 어떻게 구성될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제안된 내용을 살펴보면 ‘효과적인 국제적 통제 하에 핵무기 폐기를 완수할 법적 구속력이 있는 틀’로 요약할 수 있다. 1996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핵무기의 위협과 사용의 법적 타당성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했다. 권고안은 모든 국가들이 NPT 6조에 명시된 협상(일반적이고 완전한 군축 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결론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2009년 유엔 총회에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안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결의안은 모든 국가들이 NPT 6조의 의무를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의안은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 실험, 배치, 비축, 전달, 위협이나 사용을 금지하고 완전히 폐기하는 핵무기협약을 조속히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개시하는 것을 NPT 6조의 이행수단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번 평가회의 최종문서에는 핵무기협약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못했으며 NPT에 제시된 핵군축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은 5월 5일 국무부 주최의 사이드 이벤트에서, 미국이 세계적인 군축을 추진하겠지만 새로운 핵무기협약의 형태는 아니라고 밝혀 NPT 이외의 조약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핵 없는 세계’ 선언이나 New START 체결 등으로 핵군축 의지를 포장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핵군축을 통해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음이 드러난다. 이란과 중동 앞서 이란과 미국의 갈등을 소개했듯, 이란의 핵프로그램과 함께 중동 문제는 이번 평가회의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란은 평가회의 내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며 자국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정당화했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평가회의 첫날 이란을 강도 높게 비난했던 것에 이어 평가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5월 18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강력한 추가 제재안에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이란에 대한 공세를 가속했다. 그러나 이번 평가회의 최종문서에서 이란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다만 1995년 중동 결의안을 언급하며 중동 지역 문제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강제력이 떨어지는 NPT 평가회의 결의보다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실제로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월 9일 이란에 대한 네 번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밖에 기타 쟁점으로는 1)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 2) 중동 비핵지대 회의, 3) 북한 문제를 들 수 있다. 평가회의 최종문서는 이스라엘이 NPT에 가입하고 모든 핵시설을 IAEA의 통제 하에 둘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핵무기와 여타 모든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중동 지대 건설을 논의하는 회의를 2012년에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인도와 파키스탄을 포함하여) 북한이 비핵보유국 자격으로 NPT에 가입/복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질 수 없음을 명시했다. 진정 ‘핵 없는 세계’를 향해 미국은 핵 테러리즘이 국제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라며 핵물질이 거래되는 암시장을 차단하고 이를 이용하는 비국가 행위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세력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차단하고 처벌해도 암시장은 세계의 뒤편 어디선가 존재하기 때문에 암시장이다. 핵무기와 이에 필요한 물질, 장치들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기 용도의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지 않는 것(FMCT, 핵분열물질금지조약),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CTBT), 그리고 핵보유국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하루 빨리 폐기하는 것이 바로 핵무기와 핵테러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확실한, 그리고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핵보유국의 일부 핵군축 노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NPT는 또다시 그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지만, 획기적인 군축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러시아 대표의 말처럼 “New START가 미국 의회를 통과할지조차 아직 알 수 없”으며, 실제 군축 효과도 미지수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핵무기 감축을 법적으로 강제할 새로운 조약의 출현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의 군사적 패권과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가 유지되는 한 ‘핵 없는 세계’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수차례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는 이란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제재와 위협은 핵 경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 40년 NPT의 역사는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경험한 모든 나라들은 군사력의 차이가 절대적일수록 핵보유국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포기하기 힘들다.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공포가 팽배했던 냉전 시기 서유럽에서 또 한 번의 세계적 비극을 막은 것은 소련의 SS-20 미사일도, 미국의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퍼싱-2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사일 배치를 저지시킨 대중적인 평화운동의 힘이었다. 진정 핵 없는 세계를 향해 평화운동이 올바른 해답을 보여줘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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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을 빌미로 진행되는 노점상 단속 강화와 최악의 인종차별적 조치 올 11월 11-12일에 서울에서 5차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올해 G20 의장국인 한국은 2월 27-28일에 인천 송도에서 열린 재무차관 중앙은행부총재 회의를 시작으로 회의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개최를 ‘국격 향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G20을 앞두고 G20 기간 내 집회 및 시위를 원천봉쇄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또한 ‘국격 향상’이라는 미명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노점상에 대한 탄압을 진행하고 있다. G20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부의 노점상 탄압 얼마 전 서울 선릉역 주변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던 노점상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져 그를 찾는 소동이 있었다. 다행히 유서를 남겼던 노점상은 무사히 돌아왔다. 왜 이런 소동이 벌어졌나? G20 정상회의를 앞둔 무리한 노점단속이 원인이었다. 하루에 오전 3시간 동안 토스트 장사를 하는데, 강남역삼지구대에서 하루에도 2~4차례 단속이 나왔다고 한다. 이 노점상은 3시간 동안 언제 단속이 나오나 마음을 졸이며 장사를 했고, 단속이 나오면 준비한 물건을 다 팔지도 못하고 장사를 접어야 했고, 또 하루 벌이를 훌쩍 넘는 벌금을 내야했다. 강남구는 올해 1월부터 G20 정상회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도시 환경, 기초 질서 분야의 대대적 정비에 나선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는 지난 5월 G20 정상회의에 대비해 25개 자치구의 ‘도로특별정비반’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로특별정비반은 25개 자치구에 88개 반, 400여 명으로 구성되며 순찰과 정비,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서울시는 도로파손 등의 도로정비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간선도로변의 노점철거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시 전역에 노점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행사 때마다 노점상들의 수난은 계속됐다. 2005년 아펙, 2002년 월드컵, 2000년 아셈 등 국제행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노점상 철거가 진행됐다. 단속은 각 국 참가자들의 숙소 및 방문지, 이동경로 등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올해는 주요 숙소지인 용산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종로구, 중구, 서대문구, 마포구, 성동구 등의 호텔 주변과 이동경로인 강서구 양천구 등의 노점이 집중 단속을 받을 것이다. 올해는 세계디자인수도로 서울이 선정된 해(일명 ‘디자인 서울’)이고, 이에 발맞춰 2007년부터 진행해온 각종 디자인 사업(디자인 거리, 동대문디자인파크&플라자, 한강르네상스 등)을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다. 또 종로대로변의 노점상을 이면도로로 밀어 넣고, 노점허가제를 실시한 사례를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노점관리대책을 더욱 확대 실시할 것이다. G20 정상회의, 디자인서울 완성, 노점관리대책 확대가 공명하면서 서울시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노점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이명박은 한국이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세계 리더 국가로 진입하고, 그에 걸맞은 리더십을 보이고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또 ‘선진국 중의 선진국’만 가입할 수 있다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새천년 개발의제 원조국으로 지위를 상승시켰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빈곤을 확산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G20을 빌미로 한 이주노동자 합동단속 6월부터 시작 법무부는 G20의 성공적 개최라는 미명 아래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예고된 법무부, 노동부, 경찰을 동원한 미등록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미등록이주민(미등록이주노동자)은 국내에 18만 명이 체류 중이고 이번 조치를 통해 1만 명 이상 자진출국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법무부는 이번 집중단속이 있기 전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을 4월에 통과 시킨 바 있고 법안으로는 최단기간 3개월 만인 오는 8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집중단속은 사전 포석인 출입국관리법 개악의 조속한 정착의 의미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이주민 정책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일련의 조치인 것이다. 현재 법무부의 집중단속은 ‘자진출국 프로그램’으로 포장돼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이번 자진출국 기간 동안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에 한해 5년 동안의 입국규제를 유예해주고 고용허가제로 들어올 수 있는 한국어시험 응시자격을 주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정부는 제조업의 노동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올해 외국인 노동인력 쿼터를 줄였다. 그리고 상당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이미 취업 자격이 있는 제한 연령대(고용허가제는 40세 미만)가 지났기 때문에 자진출국 한다고 해도 다시 들어올 수 없게 된다. 미등록이주노동자도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이번 법무부의 자진출국 프로그램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 정부는 단지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단속할 명분을 찾기 위해 허울 좋은 정책을 내걸고 있을 뿐이다. 법무부는 이러한 정책을 통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법테두리 밖으로 밀어내고 엄정한 법질서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경찰청은 법무부의 발표와 함께 ‘G20 정상회의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등록체류자 단속을 전국 전역에서 매우 공격적인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미등록체류자의 대부분은 체류기간을 넘겨 노동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으로 경찰의 직접적 공격의 대상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되고 있다. 이번 특별 단속은 경찰청 주도로 50일 동안 진행될 것이라 예고하고 있지만 이번 단속을 계기로 정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범죄자화시키고, 출입국법상 단속권한이 없는 경찰의 단속을 정당화시켜 경찰의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을 정당화한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경찰은 단속의 표적을 1) 범죄 혐의자, 2) 칼 등의 흉기를 가진 외국인들, 3) 지명 수배 중인 외국인, 4) 성 매매자, 5) 미등록이주노동자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미등록체류 자체를 범죄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미등록체류는 형사범이 아닌 행정법 위반으로 명확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종 강력범죄와 동일시하면서 국내 체류 중인 미등록이주노동자 전체를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 범죄 집중 단속’은 한국 정부가 모든 이주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벌이는 인종적 편견,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계급 차별 정책으로 G20 정상회의는 단지 이 나라의 이주민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리한 알리바이일 뿐인 것이다. G20을 앞두고 정부의 이러한 외국인과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일련의 조치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더불어 인종차별적 조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한 앞서 지적한 출입국관리법 개악과 5, 6월부터 시작된 이주민집중단속은 그간 정부의 일방적 이주민 탄압정책의 일환이다. 이로써 정부가 앞장서 한국사회에 구조적 인종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고 인종차별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민사회에 내재화시킨다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부의 공격에 맞서 대중적인 투쟁을 준비하자 이명박 정부는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주민들과 노점상에 대한 선제적 공격을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발언력이 가장 취약한 계급을 그 첫 제물로 선택한 것이다. 2010년 현재, 노점관리대책으로 인해 노점상 운동은 혼란을 겪고 있고 분열되어 있다. G20 정상회의를 빌미로 한 노점단속강화와 노점관리대책의 확대에 맞서 어느 때보다 노점상운동의 단결된 투쟁이 중요한 때이다. 또한 우리는 올해 하반기 정부주도로 시작되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이 한국사회에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 한 나라의 인권과 사회적 권리의 척도가 되는 이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녀들의 권리를 함께 찾아 나가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는 시작점이다. 이것과 함께 다시금 올해 벌어지게 될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이 세수가 감소하고 세출이 증가하면서 재정이 악화되었다. 이미 유럽통합 과정에서 무역적자ㆍ자본수입이 구조화된 그리스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재정위기가 심화하면서 작년 말부터 채무불이행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스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남부유럽 국가들도 올해 들어 재정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위기가 고조되었다. 5월 2일 1,100억 유로 규모의 그리스 구제금융 방안이 확정되고 5월 10일 7,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이 발표되면서 일단 그리스의 채무불이행 사태는 막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비상조치들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재정위기가 남부유럽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그리스발 위기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나아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경기 둔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세계적인 차원의 더블딥 우려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 국가 재정위기 사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재정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전망은 어떠한지, 유로화와 유럽연합(EU)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이에 대한 유럽 사회운동의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리스 구제금융 방안과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 지난 해 10월 파판드레우 신정부가 2009년 예상 재정적자를 종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6%가 아니라 12.7%라고 발표하며 그리스 재정위기가 가시화됐다. 12월 들어 주요 신용평가회사들이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며 위기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그러자 올해 초 그리스 정부는 2012년까지 재정적자를 3% 미만으로 축소한다는 요지의 ‘안정 및 성장 프로그램’을 제출하고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요청했다. 노동시장 및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예산제도 및 공공행정 효율성을 높여 투자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금년 중 530억 유로, 특히 4-5월중 200억 유로에 달하는 국가채무의 만기가 도래하는 그리스로서는 필사적이었다. 3월 말,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막기 위해 유로지역 회원국과 IMF가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물론 엄격한 지원조건을 부과하고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의 평가에 기초하여 유로지역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런데 독일이 유보적 입장을 취하면서 구제금융의 실행이 지연되었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은 다시 한 번 하락했고, 급기야 그리스 국채는 투자부적격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와 동시에 남부유럽 전체가 재정위기 상태로 치달았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급증한 것은 물론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국채 금리도 급상승했다. EU 추정에 따르면, 2010년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는 각각 GDP대비 14.7%, 10.1%, 8.7%, 8.0%, 5.3%로 적자 확대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2010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 역시 그리스 120%, 이탈리아 117%, 포르투갈 85%, 아일랜드 83%, 스페인 64%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금융자본의 투기가 가세했다.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신용부도스왑(CDS)의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CDS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이를 보유한 투자자는 금융시장에서 패닉상태를 조장하기도 했다. 결국 5월 2일, 유로지역 회원국은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800억 유로 규모의 그리스 구제금융 방안에 합의했다. IMF도 재정긴축 등 강력한 지원조건(conditionality)과 함께 3년간 2-3% 금리로 그리스에 대한 300억 유로의 차관을 승인했다. 총 1,100억 유로에 달하는 그리스 구제금융 액수는 2012년까지 상환해야 할 국채 규모(700억 유로)와 감축해야 할 재정적자 규모(300억 유로)를 합산하여 산정된 금액이다.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지원액 800억 유로의 80%를 부담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의회도 그리스 지원 방안을 신속히 통과시켰다.(독일이 최대 규모인 223억 유로를 지원하며, 다음으로 프랑스가 168억유로, 이탈리아 147억 유로, 스페인 98억 유로, 네덜란드 47억 유로, 나머지 10개국이 119억 유로를 지원한다) 구제금융 합의에 앞서 그리스 정부는 세금 인상, 공무원 급여 삭감, 연금 삭감을 골자로 하는 강도 높은 재정긴축 프로그램을 제출했고, 곧이어 그리스 의회도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안을 가결했다. 유럽중앙은행도 그리스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 한도 적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그리스 국채의 신용등급을 추가로 하향조정하더라도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 국채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어서 EU는 그리스발 위기가 남부유럽 및 유로화의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5월 10일 긴급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① 5,00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 ② 강력한 재정긴축 요구 ③ 유럽중앙은행의 지원 등으로 구성된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에 합의했다. IMF도 자체 대출제도를 통해 2,500억 유로를 유로회원국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총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안정화 기금은 향후 3년간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4개국이 재정적자 및 국채 상환을 위해 필요한 추정액 7,450억 유로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그림1> 참조) 우선 EU는 자체적으로 5,000억 유로의 유럽금융안정기금을 조성하여 3년간 회원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16개 유로지역 회원국이 특수목적회사(SPV)를 설립하여 지급보증 및 상호차관을 통해 4,400억 유로의 재원을 금융시장에서 조달하여 회원국을 지원한다. 둘째, 기존 500억 유로의 국제수지안정기금을 600억 유로 증액(총 1100억)하고, 지원 대상을 기존 11개 非유로 EU국에서 유로 16개국을 포함한 27개 전 EU 회원국들로 확대한다. [그림1] 향후 3년간 필요재원(재정적자·국채상환) 추정액 이와 함께 그동안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이유로 수량완화조치에 반대해왔던 유럽중앙은행도 ‘증권시장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의 국채ㆍ회사채를 직접 매입하고 3개월ㆍ6개월 만기 기간제 대출을 재시행하는 등 향후 최대 6,000억 유로에 달하는 유동성을 제공하게 된다. 그동안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여 국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유럽중앙은행이 국채시장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불안정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RB)도 유럽중앙은행, 영국중앙은행, 스위스중앙은행 등과 통화 스왑 계약을 체결하여 유럽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5월 10일 이후 21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265억 유로 규모의 유로지역 국채를 매입하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감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종합 비상대책은 독일, 프랑스와 같은 EU의 중심국들과 미국의 긴밀한 공조를 배경으로 한다. 유럽 정상회의에 앞서 독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동 기고문을 통해 회원국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경고했으며, 같은 시점에 미국 오마바 대통령은 두 정상에게 ‘보다 단호한 조치’를 주문한 바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 금융위기를 방치할 경우 유로화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고 그렇게 될 경우 2007-09년에 이어 제2의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공동의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스 구제금융 방안과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의 한계 이러한 긴급 국제공조 방안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듯, 5월 중순에 접어들며 금융시장의 패닉상태는 다소간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부유럽 국가들의 CDS 가격이 급등하고 유로화 가치도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이번 구제금융 조치와 유럽안정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할지 불분명한데다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구제금융 방안과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의 한계를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첫째, 그리스 재정위기는 지불능력의 문제기 때문에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부채 상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금융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그리스 국가부채 규모는 GDP의 150%에 달할 전망이다. 국채금리 6%를 적용하면 GDP의 9%를 이자로 지불하는 셈인데, 이는 그리스 정부 세수의 25%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원천적으로 부담 불가능한 비율이다. 또한 그리스가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지킨다 해도 3년간 총 500억 유로에 달하는 누적 재정적자를 채권발행을 통해 메워야 한다. 이 액수와 3년간 상환해야할 국채 700억 유로를 단순 합한 액수만 해도 1,200억 유로로 이미 승인된 구제금융 1,100억 유로를 초과한다. 그런데 실제로 향후 3년간 그리스가 필요로 하는 재원은 1,500억 유로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그림1> 참조). 더구나 그리스 국채의 외국인 보유 규모(2,147억)와 외국계 은행의 대출 규모(1,648억) 역시 구제금융 예상액을 훨씬 초과한다. 따라서 그리스가 추가적인 금융지원 없이 부채를 ‘돌려막기’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표 1] 연도별 국채상환 규모 2010.5.24 이후 원금상환 필요액 기준. 단위는 억 유로. 자료: Bloomberg; 한국은행. 둘째, 구제금융 조치로 단기적인 채무불이행 가능성은 줄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금 대여 주체만 달라졌을 뿐 위기국의 채무상환 부담은 그대로 남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의 경우,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이 시행되는 기간(2010-12년)보다 종료 이후 3년(2013-15년) 동안 상환해야 할 국채 규모가 더 커서 그 유효성이 반감된다(<표1> 참조). 또한 지원국 역시 지난 금융위기 과정에서 상당한 재정 부담을 안은 상황에서 이번에 지급 보증을 서게 되면서 우발 채무 부담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구제금융의 조성방식, 실행주체, 수혜조건, 지원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까지 결정되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다. 특수목적회사 보증은 각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각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집행 여부가 불확실하다. 특히 독일은 헌법상 다른 나라의 국채 발행에 보증을 설 수 없어, 한동안 특수목적회사의 법적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특수목적회사에 대한 지급보증은 국제수지안정기금과 같은 공동보증 방식이 아니라 개별보증이기 때문에 자금 수혜국이 특수목적회사 채무를 보증하게 될 경우 보증 가치가 감소될 수 있다. 신용평가회사들이 손실률을 감안하여 특수목적회사 발행 채권의 신용등급을 그리스와 같은 가장 낮은 회원국의 신용등급에 준하여 부여할 경우 특수목적회사 발행채권이 투기등급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표 2] GDP 성장률 전망(%) 셋째, 재정건전화를 위한 긴축재정은 오히려 경기침체와 재정위기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EU는 2007-09년 금융위기의 결과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는데(<표2> 참조), 최근 재정위기의 영향으로 잠재성장률 수치는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긴축재정을 시행할 경우 성장률이 하락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처할 우려가 있으며, 이는 곧 대량 실업과 민간소비 침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등은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데, 긴축재정은 성장률을 더욱 하락시키고 이는 다시 세수 감소로 이어져 오히려 재정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넷째, 실현 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긴축재정은 그 자체로 내핍 정책을 의미하며, 따라서 노동자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과 노동권의 악화를 의미한다(<표3> 참조). 사실 1990년대 말 환율위기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구조조정을 통한 노동비용의 가치절하 외에도 자국 통화의 대대적인 평가절하를 통해 경기회복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당시 세계경제가 금융화에 따른 일시적 경기상승 국면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안을 쓸 수 있었다. 반면 남부유럽 국가들은 평가절하를 단행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임을 감안한다면 그 실행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근본적 모순: 유럽화폐동맹과 역내 불균형 설사 남부유럽 국가들이 강도 높은 긴축재정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남부유럽의 국가부채 문제는 유럽통합 과정에서 무역적자ㆍ자본수입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재정적자가 중첩된 결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 역내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궁극적인 위기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럼 이제 ‘재정통합 없는 화폐통합’으로서 유로 단일통화 체제에 내재한 모순이라는 관점에서 남부유럽의 무역적자ㆍ자본수입, 재정적자 메커니즘을 검토해보자.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환율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파괴적 효과가 지속되자, 화폐공급과 금융에 대한 탈규제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통화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1978년 도입된 유럽화폐제도는 회원국간 환율을 고정시킴으로써 환율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설정했다. 유럽화폐단위와 환율조정제도를 주축으로 하는 유럽화폐제도는 특히 기술력과 생산력이 낮은 국가들에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국가들은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실질임금을 하락시키는 인플레이션과 수출가격을 하락시키는 평가절하에 의존했다. [표 3] 남부유럽 국가의 긴축재정안 유럽통합 찬성론자들은 단일환율의 적용으로 환리스크가 사라져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고 교역도 크게 확대된 것을 중요한 성과로 지적했다. 하지만 유로를 단일화폐로 채택하기 위해 마스트리히트조약(1992)에서 제시된 경제정책 기준은 민족국가의 화폐 주권을 유럽중앙은행에 완전 이양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의 연간 재정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국가부채는 GDP의 60% 이내로 한정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기준이었다. 이로써 유럽화폐제도에 제한적으로나마 존재하던 개별 국가의 환율조정 가능성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이로써 기술력과 생산력이 열세인 국가가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신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화폐정책에 비해 재정정책은 민족국가의 주권적 성격이 강한데다 조세제도, 재정지출 등은 국내 정치적 측면을 많이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 결과 복지정책처럼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는 재정정책은 크게 제약됐다. 이제 각 회원국들은 적자재정을 포기하고 균형재정의 범위 내에서 예산을 분배하는 선택지만 갖게 되었다. [그림 2] 각국 실질실효환율 이는 곧 국내 거시정책을 모두 재정정책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화폐정책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면 적절한 금리인하와 유동성 확대정책을 재정정책과 병행할 수 있지만, 독일 헤게모니 하 유럽중앙은행의 화폐정책을 수용해야 하는 주변국들은 이러한 정책조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국내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확장적인 거시정책 수행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할 경우 팽창적인 재정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메커니즘이 확립됐다. 이와 함께 EU 역내에서 수출경쟁력이 낮은 주변국들은 실질실효환율이 고평가되어 무역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된 반면, 수출경쟁력이 높은 중심국들은 실질실효환율이 저평가되어 무역흑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됐다(<그림2> 참조). 특히 아래 <표4>에서 보듯이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경우 무역적자 중 역내에서 발생한 부분이 90%를 넘는다. 반대로 통일 이후 1990년대 내내 장기 침체를 겪었던 독일 경제는 본격적인 유럽 통합 과정에서 경쟁력을 회복했다. 역내에서 기술력과 생산성의 우위를 점한 독일은 유럽 통합으로 인해 거대한 단일 시장이 창출됨에 따라, 2000년대에 연평균 13.1%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했다. [표 4] 2008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무역수지 또 아래 <표5>에 나타나 있듯이, 그리스 등의 역내 자본수입 비중이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는 독일, 프랑스 등 자본수출국이 역내에서 막대한 금융 수익을 누렸다는 뜻이다. [표 5] 유로지역 회원국의 역내외 차입 현황(2009.9) 더욱이 이번 사태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역내 불균형은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현재 유럽에서 역외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는 룩셈부르크, 핀란드, 독일인 반면, 그리스의 경우 역외 수출이 GDP의 4% 밖에 되지 않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그리스가 유로지역을 탈퇴해서 대규모 평가절하를 단행한다 하더라도 큰 수출 이득을 볼 수 없다. 게다가 자국통화를 대폭 평가절하할 경우 경상수지 적자를 소폭 줄이는 데는 유리하겠지만 이들이 지불해야 할 실질 대외채무는 급격히 팽창하게 되어 오히려 손실이 더욱 클 것이다. 또 그리스와 같은 나라가 유로지역으로부터 이탈하여 평가절하를 단행한다면 이는 주변국의 경쟁력 하락을 야기하여 또 다른 문제점을 낳게 된다. 반면 역외 수출 비중이 높고 수출경쟁력이 높은 독일 같은 나라들은 유로화의 약세에 따라 더 많은 이득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유럽 금융위기로 유로화가 10% 떨어지면 유로지역 경제는 5% 성장하고 수출경쟁력이 높은 독일이 특히 그 효과를 누리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로화의 약세에 따른 역내 불균형의 심화는 유로화와 EU의 기반을 위협한다. 유로 탄생의 근거가 된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단일통화 정책이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통화권 내에서 물가ㆍ금리ㆍ재정적자ㆍ정부부채 등 거시경제 변수들이 적정 범위에서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주변국과 중심국의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면 단일 통화권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중심국과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주변국 간 역내 불균형으로 인해 유럽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곧 유로 단일통화 체제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전망: EU의 불안한 미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EU 당국은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에 이어 유로 단일통화 체제를 보완하는 방안들을 다각도로 제출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방안은 △유럽통화기금 창설, △유럽투자은행 기능 확대, △유로채권 발행 등 위기관리 체제 마련, △재정규율 강화, △통합감독기구 설립 등 관리·감독기능 강화 등이다. 그밖에도 불가피한 상황을 대비하여 회원국의 채무를 재조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EU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로화 가치는 6월 들어 1.2달러/유로 선이 붕괴하면서 지난 2006년 3월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그리스 재정위기가 불거지기 이전인 지난해 11월 말에 비해 20% 가까이 폭락한 수치다. 심지어 일부 기관은 유로화의 가치가 1달러/유로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반면 금값은 6월 중순 1,263달러/온스를 기록함으로써 명목가격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들어서만 14% 상승한 수치다. 이에 따라 여러 전문가들은 유로지역에서 취약국의 채무불이행과 더블딥이 발생할 가능성, 나아가 유로 단일통화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다양한 비상조치에도 불구하고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이라는 EU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지난 연말 리스본조약의 발효에 따라 한 단계 더 높은 통합을 이뤄냈다고 평가되는 EU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재정통합의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EU ‘중앙정부’가 중심국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위기에 처한 ‘지방정부’로 재정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진정한 재정동맹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단적으로 최근 유럽중앙은행 트리셰 총재는 “EU 당국이 각국 재정 운용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넘겨받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채 보증을 통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채무를 이관하는 어떠한 시스템도 유럽중앙은행은 거듭 반대한다”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이는 EU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부채 국가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주장하는 독일 헤게모니가 여전히 관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해보자. 우선,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무역수지·자본수입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시간 벌기 식’ 자금조달책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장 채무불이행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남부유럽 국가들의 국채 만기가 집중되는 3/4분기까지 위기 국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EU-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의 ‘조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금을 추가로 지원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3/4분기 들어 2/4분기 실물경기 지표들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날 경우, 긴축재정의 실행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구제금융 수혜국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여론이 지원국에서 급증하면서 추가적인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그리스가 다시 한 번 채무불이행 사태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그 여파가 여타 남부유럽 국가로 파급될 위험이 있다. 이런 파국적인 결과를 막기 위해 EU 당국은 그리스의 채무재조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전 유럽으로 확산될 것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EU GDP의 8.5%를 차지하는 역내 4위-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지만, 2009년 12월 현재 실업률은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인 19%에 달하고,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스페인이 향후 3년간 필요로 하는 재원은 4,483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제규모가 그리스의 4배에 달하는 스페인이 채무불이행 사태에 직면할 경우 그 영향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스페인의 기초 경제구조가 위기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스페인은 유로 체제에 편입하면서 대외경쟁력 약화로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고 그 결과 무역적자가 만성화되었다(2006-08년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10%를 상회하며, 그 규모는 미국에 이어 2위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금융위기 이후 세수 감소, 사회보장지출 급증으로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대적인 부동산 버블 붕괴로 모기지 대출이 많았던 저축은행이 대거 부실화되었다는 점이다. 저축은행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재정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것도 문제거니와, 은행체계를 통해 유럽 전체의 금융위기로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스페인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커다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스페인이 유럽금융안정기금을 지원받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시되면서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마저 채무불이행 사태에 처하게 된다면, 이는 EU 회원국과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 부담을 가중시켜 최악의 경우 구제금융의 중단과 함께 일부 국가의 유로지역 이탈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남부유럽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지원국도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이 막대한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재정위기국의 채무불이행이 자본을 수출한 자국 은행의 위기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현재 남부유럽 국가들이 국채를 발행해서 해외로부터 조달한 자금의 75% 가량을 유럽의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프랑스는 23%, 독일은 18%, 영국은 12%를 차지하고 있고, 남부유럽 국가 간 거래도 10%에 달한다). 남부유럽의 국채가 부실화될 경우 유럽의 은행들은 대거 지급불능 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당수의 유럽 은행들이 심각한 건전성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IMF에 의하면 2010년 중 유로지역 은행들이 상각해야 할 부실자산은 2,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럽중앙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2010-11년 중 추가 상각 규모는 1,950억 유로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EU 당국은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인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상당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유럽 은행들의 부실화가 심각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금융기관 부실 → 정부 구제금융 → 정부부채 확대 → 재정위기 → 민간 보유 정부부채 부실 → 민간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는 곧 남부유럽 재정위기가 은행 체계를 통해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남부유럽 재정위기는 이 국가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과 함께 유럽 각국의 긴축재정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 유럽 금융기관의 부실 확대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을 동시에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2009년 하반기부터 미약한 성장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세계 경제가 2007-09년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한 번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 사회운동의 대안 그렇다면 유럽 사회운동은 EU-IMF 구제금융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과연 유럽 사회운동은 실패한 EU 모델을 바꾸고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위해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우선 그리스 노동자운동은 최근 양대 노총 주도로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과 거리시위를 전개하면서 정부의 긴축재정 프로그램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좌파 정당들도 EU-IMF 구제금융이 그리스 민중들의 임금, 연금, 사회복지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본을 회생시키는 조치에 불과하다며 재협상, 부채탕감, EU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의 즉각적 폐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구제금융 조치의 본질은 금융자본, 특히 EU 중심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리스와 같은 주변국 민중의 출혈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노동자운동도 그리스의 위기가 ‘마스트리히트 체제’의 모순의 산물이며 경제위기에 직면한 EU의 실패를 입증하는 첫 번째 사례일 뿐이라며 그리스 민중들에 대한 연대를 표방하고 나섰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에서도 정부의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의 양대 노총, 노동자위원회와 노동총연맹은 정부가 IMF 부과조건에 따라 재정을 삭감하고 노동신축화 정책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최근 총파업으로 맞섰다. 비슷한 취지에서 이탈리아 제1노총도 6월 말 대정부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권에 대한 공격을 통해 수출경쟁력의 회복과 국가부채의 지불을 꾀하는 해법이 비단 그리스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EU-IMF와 자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이러한 노동자 투쟁 속에서 나타나는 공통의 구호, 즉 “유럽 민중들은 위기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연대 유럽’을 위해 단결하자!”라는 구호에 주목할 수 있다. 이 구호는 현재 유럽 각국 정부의 공공지출 삭감 방안이 위기를 촉발시킨 금융자본을 위해 노동자계급에게 위기비용을 전가하는 메커니즘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유럽 각국 노조들의 연맹체인 유럽노조연맹은 지난 3월 유럽공동행동의 날을 개최하여 그리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EU가 긴축재정이 아니라 고용창출을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또 유럽좌파당과 같은 정당들도 IMF의 구제금융이 ‘자본가의 이익에 복무하고 노동자의 실업과 빈곤을 증가시킨다’고 비판한다. 또 유럽중앙은행의 대출은 ‘은행을 구원하지만 국가를 구원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노동권과 권력 및 소유의 민주화 없는 위기 탈출 전략은 기만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유럽 노동자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그러나 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면서 고용ㆍ성장 정책을 요구하는 이러한 주장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방어라는 측면에서 정당하지만, 장기적으로 재정위기 메커니즘을 변혁하기 위한 경제적 대안과 결합할 때에만 유효할 것이다. 다음으로, 유럽 사회운동들이 공히 이번 위기의 원인으로 금융화와 이를 지지하는 국제기구들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의 경우, EU-IMF의 방안이 각국 화폐주권의 종속을 더욱 심화하고 금융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와 함께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 혜택이 금융기관이 아닌 유럽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CDS와 같은 파생금융상품의 규제, 은행에 대한 공적 통제의 강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재정위기에 몰린 국가의 정부채권이 금융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민간 신용등급 평가회사가 아닌 유럽차원의 공적 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ATTAC 스스로 덧붙이고 있듯이 금융개혁 요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에 내재한 근본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유럽 역내 불균형’이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바닥을 향한 경쟁’에 의해 강화되어 왔다며 유럽 수준의 초민족적 단체교섭을 위해 노력하는 유럽금속연맹의 시도에 주목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EU의 ‘확대경제가이드라인’은 임금인상을 생산성 성장 이하로 억제하고 지리적·직종별로 임금을 차등화하는 내용을 명문화했고,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이 임금 억제 정책에서 이탈할 경우 통화수단에 제한을 가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그런데 이미 유럽의 노조들은 1980년대 이후 대체로 일정한 조정기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으로 수렴됐다. 민족국가 수준의 사회협약과 함께 기업 수준에서는 양보협약-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자타협을 통한 ‘조직화된 분권화’가 일반화되었다. 유럽 차원에서는 초민족적 수준에서 자본의 구조적 우위를 강조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상징적 유럽 코포러티즘이 작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개별 노조들의 대응은 ‘국가 대 국가’나 ‘기업 대 기업’의 경쟁으로 귀결되어 임금 및 노동조건 하향 압박을 강화하는 역설에 처하곤 했다. 이중에서도 유럽 통합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노동조합은 수출주도 성장 모델에 기반을 둔 ‘경쟁 지향 코포러티즘’을 적극 수용해왔다. 독일은 2000년대 내내 극단적인 임금 동결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했고(1999-2008년 10년 동안 독일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0.5%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심각한 역내 불균형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독일 노동조합은 불황기 임금정책을 수용하는 대신 숙련도를 향상시키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내부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노동조합은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대를 교환했다. 유럽연합 내부에 민족국가 간 분할과 불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민족경제의 배타적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코포러티즘을 수용한다면, 그 결과는 상호 파괴적인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유럽금속연맹의 주력이자 독일 노동조합 운동의 주축을 이루는 금속노조(IG Metall)의 경우, 최근 공식 입장을 통해 EU-IMF의 구제금융 조치를 비판하고 유럽 역내 불균형을 감축하기 위해 독일과 같은 무역흑자국이 구매력과 공공지출을 증가시킴으로써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차 유럽 역내 불균형과 노동자들의 민족국가 간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이러한 발의를 바탕으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 차원의 공통 단체교섭 지침을 채택, 적용하려는 유럽금속연맹의 시도는 노동자의 민족적 분할 및 수출경쟁력을 위한 출혈적 ‘임금덤핑’을 지양하기 위한 유의미한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유럽, 나아가 금융화한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은 그리스 위기 이후에도 줄곧 유사한 방안을 강요할 것이다. EU의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유럽 사회운동은 비상한 각오로 ‘또 다른 유럽’을 구체화하면서 대안적 정치·사회적 세력으로 부활해야 한다. 그들의 표현대로 ‘오직 유럽 민중의 저항만이 근본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럽의 상황은 국내 사회운동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그리스발 위기가 확산되면서, 결국 세계경제가 다시 한 번 침체에 빠지는 ‘더블 딥’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위기비용을 전가하려는 지배계급의 공세에 맞서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적ㆍ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