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 해봤어 이 욕심 많은 세상에 그대가 여기 없었다면 난 얼마나 허전했을까 나도 그런 생각 해봤지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대가 여기 없었다면 난 얼마나 흔들렸을까 구르는 돌처럼 세상에 던져져 그 어설픈 작은 위로가 나에게는 커다란 힘 함께 나눈 얘기들 나를 평화롭게 하지 -<소풍가는 날> 언니들의 '이런 생각'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여름캠프. 우리는 '해방을 향한 여성운동! 자율성과 연대를 실현하기 위하여~'라는 멋진 슬로를 달고 출발을 했다. 황금연휴의 고속도로는 꽉꽉 막혔지만, 김삼순이라는 캐릭터로 우리 여자들을 씨원~하게 해주었던 그녀가 출현했던 영화들을 감상하며 수다를 떨 수 있었기에 답답하지는 않았다. 4시간이나 걸려 가평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바로 이어진 물놀이. 물살이 꽤나 거친 강의 복판으로 진입하여 다이나믹하게 유희를 즐기는 이, 발목만 물에 담그고 유유자적 광합성을 즐기는 이, 강바닥의 생물들을 채집하며 홀로 여유를 즐기는 이…. 여성위원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물가에서의 한때를 보낸 후, 광주에서 먼 길 달려오신 강연자 선생님의 도착으로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정향자 선생님은 사회진보연대에 대해서 들어본 바도 많지 않고, 저 이들이 왜 광주의 나에게까지 강연을 요청할까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20-30대 여성 활동가들의 요청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강연을 승낙하셨다고 한다. 희망이 있던 시대에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에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이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있었다는 후문.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시에,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성노동자들에게 있어 무기는 나이, 그거 하나밖에 없었죠. 그때 결혼 적령기는 21~23살이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싸우고 잘 조직되어놔도 금방 다 결혼하고…. 2~3년 주기로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고 마는 거예요. 동지로 같이 활동하다가, 어느 날 떠나고…. 떠나고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는…. 그래서 저희들이 생각하기로는, 우리 한 세대 정도는 결혼하지 말자, 그랬거든요. 그러면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하냐, 공동체를 꾸려서 함께 살자, 그런 약속을 했었어요." 전남의 실크 만드는 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20대를 보내고, 서른 즈음에 광주항쟁을 겪고…. 정향자 선생님은 누에가 실을 짜내듯 천천히 당신의 삶과 운동을 풀어내셨다. 신명나게 투쟁했던 그 시절 이야기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고, 고달프게 살아왔던 그 당시 이야기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다. 특히 여성으로 살아가고 투쟁하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는 공감대는 반가운 것이기도 했고 서글픈 것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소위 왕년에 투쟁했던 선배활동가가 "여성으로 살기 고달프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버티고 사는 것"이라며 "이 모임을 앞으로도 잘 꾸려나가 보아요"라고 진심으로 격려해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뭉클한 시간이었다. 그러한 인정과 격려는 좀처럼 받아보지 못했기에. "당신들처럼 젊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노동자의 문제,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나간다는 것이 나는 참 좋다"며 선생님 당신은 외도하지 않고 활동가로서의 황혼을 잘 마무리할 테니 우리들은 계속 함께 투쟁해나가라는 말을 몇 번이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광주에 들릴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이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정향자 선생님이 남기신 훈훈함은 뒷풀이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선생님의 따스한 이야기를 곱씹으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많은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역시나 결혼(과 출산, 육아 등)에 대한 것. '한세대는 결혼을 하지 말고 앞뒤 세대 여성활동가들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자했던 당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향자 선생님은 어이하여 결혼을 하시게 된 것일까'라든지ㅡ'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활동가 남성과는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이야기의 진의라든지ㅡ선생님의 친구 분이 나이 마흔에 7살 연하의 후배 남성 활동가를 조직하여 결혼을 했다는 사례가 던지는 시사점이라든지ㅡ우리는 각종 주의주장들을 펼치며 보다 선명해진 고민을 풀어내었다. 나는 한 선배언니 생각이 부쩍 났다. "설희씨, 내가 이러저러한 상황에 처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결정일까요?" 어느 토요일, 답답한 심정을 내게 문득 털어놓던 그 언니의 결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현재적으로 그 문제는 여전히도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노릇임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축복을 빌어주는 수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쨌거나 혼자 판단과 결정을 내렸던 언니의 모습과 그런 언니를 바라보며 쓸쓸해졌던 우리의 모습이 번갈아 아른거리면서, 그 언니 말고 다른 선배언니들도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더 쓸쓸하고 외로워지지 않을까 나의 몇 년 후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술기운과 함께 어지러이 드나들었다. 진정, 여성이 제대로 살고 오래 활동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고립되거나 이탈하지 않고 계속하여 좋은 이들과 함께 변혁을 실천해내는 삶을 일구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한 조건을 위해 우리는 어떤 투쟁을 해나가야 하는 것인가? 물론 강연에서 뒷풀이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길고 긴 발제로 유명한 사회진보연대의 토론시간을 빠뜨릴 수는 없었으니까. 정향자 선생님이 더욱 선명하게 만든 우리의 고민과도 직결되고, 출발할 때부터 내걸고 온 우리의 슬로와 관련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을 위한 '모색'을 진행하였다. 여성이 모인다는 것 그 자체로 새로운 여성운동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여성의 문제를 운동의 보편적 의제로 삼으며 사회구조 전반을 재조직하고 대안적 공동체를 구성해내는 투쟁이 필요할 터인데, 이러한 투쟁에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또한 어떠한 몫을 해낼 것인가? 2003년 준비위 시기를 거쳐 2004년 구성되었고 2005년 현재 끊임없이 활동의 정형과 운영의 원리를 계발해내기 위한 노력을 기하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우리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고민은 의미 있는 실험과 실천 속에서 풍부해지고 예리해질 것이다.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을 위한 여성캠프에서의 모색은, 하반기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을 적극적으로 유의미한 '기회'로 만들어내고 그러한 기회가 남긴 성과들을 이후의 '일상적 실천'으로 이어나가도록 하자는 결의로 일단락되었다. 밤은 짧고, 우리는 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나갈 것이니까.
<일시> 2005년 8월 4일 저녁 7시 30분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사회 : 진재연 |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 토론 : 유나경 |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부장 정지현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정리 : 진재연 |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 진재연(이하 재연) :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회원쟁점토론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회원쟁점토론은 노동조합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현재 노동자운동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는데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페미니즘은 노동자운동이 스스로를 개조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사회진보연대는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오늘 토론은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왜 사고해야 하며 노동조합 내에서의 페미니즘의 수용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으면 합니다. 왜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사고해야 하는가 나경 :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해내는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가장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요구 지현 : 여성의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아래 노동의 분할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보편화된 여성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 유나경(이하 나경) : 사실 노동조합 안에 있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반문하지 않습니다. (웃음)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노조 내 페미니즘의 필요성에 대해 반문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문제는 여성단체나 여성전담부서 혹은 외부사회단체에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에요.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노조 내 단결을 해친다는 일종의 선입견도 있고요. 노조 내에서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해보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서는 여성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게 관건이잖아요. 예를 들면 소위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면서 빈곤탈출과 고용정책의 일환으로서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그 일자리들은 대부분 간병, 보육처럼 보살핌노동이거나 공공근로부문으로 소위 여성에게 일임된 노동이고,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층을 대거 양산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참 많아요. 이런 일자리가 거의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는데다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노동인력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는 여성노동인력을 활용하지 않고는 노동력 부족현상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정부에게 현재 여성인력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인거죠. 얼마 전 신문의 기사를 보니까 여성경제활동인구가 1,000만 명 돌파했다고 하는데 여성의 경제 진출이 늘어났다기 보다는 그만큼 불안정 노동층이 여성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출한 여성인력들이 각종 공간에서 노동을 하면서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요.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해내야 하고, 게다가 사업장내 성차별적 구조와 성별분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런 상황에서 소위 여성독자적인 권리-여성권·노동권-를 주장하는 것이 가장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요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노조 대부분은 임노동 혹은 계급논리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본의 세련된 분할·통제방식에 비해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측면이 있죠. 남성중심·정규직 중심의 노조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노동권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노조내부의 메커니즘을 여성주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지현(이하 지현) : 노동조합에서 처음에 ‘노조란 무엇인가’ ‘노동자란 무엇인가’ 이런 교육을 하잖아요. 그런 교육에서는 노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노동자로서 세상을 본다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순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페미니즘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주변의 사람들은 페미니즘하면 왜곡된 시각으로 많이 보잖아요. 여성들이 이익을 보려는 게 아니라 ‘노동자란 무엇인가’라는 교육에서 세계관을 갖고 인식하는 것처럼, 우리가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것도 여성의 문제에 관한 모순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해요.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한다는 것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신자유주의 하에서 여성을 향한 공격이 보편화되고 있잖아요. 비정규직에서도 여성이 더 많고 빈곤층도 여성이 더 많아요. 많다는 것도 심각하지만,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양상이 모든 사람에게 직면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걸 고민해야 돼요. 요 몇 년 사이 급속화된 비정규직 문제만을 보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그런 노동의 형태에 직면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게 전 노동의 문제로 퍼지고 있잖아요. 물론 그 안에서도 여성은 더욱 고통을 받고 있지만요. 기업에서도 여성들 먼저 비정규직화하고 그 이후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비정규직을 확대하잖아요.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공격은 노동계급내의 다양한 분할선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진행되는데 그 분할을 방관하면 우리 모두의 기본선이 무너지게 되요. 그래서 노동조합 안에서도 여성 문제는 더 이상 방치돼서도 왜곡시켜서도 안 될 시급한 문제인 거죠. 재연 : 노조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또한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토론해보았으면 합니다. 나경: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철도여승무원집회에 갔었는데 남성 간부가 발언하면서 ‘얼굴 되지, 몸매 되지 그런데 뭐가 모자란다고 해고합니까’ 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전부터 남성동지들이 철도여승무원 투쟁을 보고, ‘꽃 같다, 예쁘다’등 성애적 표현이 들어간 발언들을 많이 했었어요. 여성들이 투쟁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남성적 시각 혹은 섹시즘적 시각이 많이 가미된 것이지요. ‘여성이 투쟁하기 때문에 아릅답다’가 아니라 ‘투쟁하는 여성이 아름답다’가 아닐까요. 이러저러한 성애적 표현들은 여성들 또한 전투적으로 투쟁할 수 있다는 상상력조차 막아버리지만, 여성 투쟁주체 스스로를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하거든요. 지현 : 2001년 한통계약직 노조에서 517일 동안 투쟁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을 새로 뽑는데, 초반에는 대부분 남성들이 간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투쟁하는 동안 여성동지들에 대해 ‘여성동지들이 파업 동안 힘들어 남성 동지들이 잘 해주고 이것저것 다 해주니까 그것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할 줄 모른다’고 보는 시선들이 있었어요. 그 얘길 듣고 참 불편했는데, 꼭 그렇게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던 거죠. 그러다가 투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기수 간부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결국 한 여성동지가 간부를 했는데 그 여성동지가 발언도 잘하고 간부로서의 역할도 다 잘 하더라구요. 그러자 그제서야 ‘그렇게 잘 할 줄 몰랐다. 진작에 간부 시키는 건데’ 라고 하더라구요. 눈에 보이는 대로 쉽게 여성들이 손 하나 까닥 안하고 비주체적이라고 이야기 할 게 아니라, 그 여성들에게 기회나 자리를 안 주는 문제인 거 같아요. 여성은 투쟁하면서도 보호해 줘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걸 드러내는 거잖아요. 이런 게 아직도 비일비재한데 노동운동 내에서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나경: 재작년 노동절 주요무대 걸개그림은 남성노동자가 혼자 주먹 쥐고 있는 모습이었죠. 또한 올해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 포스터도 있었고요. 99년에는 파업현장에 머리띠 묶고 나가는 남성노동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를 안고 배웅하는 여성의 모습을 배경으로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민주노총 포스터가 있었죠. 이런 포스터나 걸개그림 등의 상징적 매체를 보면 노조 내 여성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나죠. 그리고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섣불리 덤비면 욕 먹는다’,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라는 분위기가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죠. 이건 남성 동지들도 인정한 사실인데, 자신들이 성인지적 관점이 없다보니까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자유롭게 이야기되면 좋은데 서로 껄끄러워하니까 쉬쉬하게 되는 거고요. 성희롱, 성폭력 해결 과정을 보면 노조 내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의 현주소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결국엔 끊임없이 대화하고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잘못된 부분은 서로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4되더군요. 사실 여러 연구결과에도 나와 있지만 구속, 해고, 수배, 단식, 삭발, 파업투쟁, 노숙농성 등 노조활동의 방식이 강력한 힘이 필요한 가부장적 모델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일부 남성 동지들은 여성 활동가 주체형성을 얘기하면, ‘여성들이 수동적이다’, ‘여성간부도 없는데 여성할당제를 어떻게 채우느냐’고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가사와 육아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활동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노조에서 성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투쟁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투쟁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삭발이나, 단식, 밤샘을 결의하지 못한다면 투쟁의지가 떨어진다고 여겨지거나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구조를 말하는 것이죠. 노조의 현재 활동이 여성에게 억압적이지 않은지 생각해야죠.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가 수동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 동안의 경험이나 참여가 제한적이다 보니까 필연적, 경험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죠. 과감히 깨야 하는 조건입니다. 노조 내 여성의제에 대한 교육시간은 확보되고 있는가 나경 :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지는 교육보다도 여성할당제 간담회, 여성관련 단체협상 조항, 모성보호에 대한 교육에 치중 지현 : 보통은 임단투 시기, 비정규직 사업장의 경우는 임단투가 안 이루어지니까 투쟁 돌입했을 때 투쟁프로그램으로 배치 재연 :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해결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노조 내에서 자체적으로 여성의제에 대한 교육시간을 확보하고 교육과 토론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교육시간이 얼마나 확보되고 있으며 어떻게 이루어지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나경 : 일단 연맹에서 평균 교육시간에 대한 통계는 없어요. 산별 산업 관련된 간담회가 있지만 별도 교육은 없고 중집 회의나 중앙위원회를 할 때 1시간 정도 할애하거나 공공노동자학교도 진행하고, 단위노조에서 요청된 교육을 수행하죠. 연맹 중앙은 여성 관련 교육으로 1년에 한번 정도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는데, 단위노조까지 해당되는 권고사항이라지만 사실 거의 안 지켜지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닌 교육보다도 여성할당제 간담회, 여성 관련 단체협상 조항, 모성보호에 대한 교육에 치중된 편이에요. 그것도 일부 여성간부들만 대상으로 진행되는 수준이죠. 민주노총에서도 여성 관련 교육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지현 : 단위사업장에서는 여성교육이 배치되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대개는 임단투 시기에 교육 배치하고, 비정규직 사업장의 경우는 임단투가 안 이루어지니까 투쟁 돌입했을 때 투쟁프로그램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여성 문제에 대한 교육은 다른 프로그램 진행하다 할 게 없을 때, 아니면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까 교육이 끼워 맞추기식으로 될 수밖에요. 간부수련회에서도 교육이 있긴 한 데 사업장문제에 대해서 교육하지만 여성 관련한 주제로는 잘 못하는 실정이에요. 가끔 의식 있는 지도부가 있으면 교육으로 배치하는 것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죠. 그런데 교육을 하다보면 더 고민이 되는 것은 여성들이 여성의 문제를 인식하는데 힘든 지점이 있어요. 여성들이 여성의 문제를 거부하려거나 인식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가끔 보이는데, 그게 생각이 없어서라기보다 여성으로써 자각하고 인식한다는 게 여성들에게 괴로운 과정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여성문제를 고민하고 알게 되면 더 힘드니까요. 그래서 여성으로 자각하는 것에 대한 표상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경 : 여성문제는 자각하는 사람 스스로도 괴롭습니다. 여성의제를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괴롭고 고통스럽죠. 다시 교육 얘기를 하자면, 여성교육이라는 게 여성이라는 주제를 따로 잡을 게 아니라 임단투나 비정규직 교육할 때 거의 여성문제와 연결해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교육을 하면 된다고 봐요. 그런데 교육을 하는 주체도 여성주의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보니까 기존의 임노동 관계 이야기를 넘어서지 못하죠. 최저임금 사업장도 거의 여성사업장이고, 노동의 불안정화, 세계화 속에서 비정규직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단지 ‘여성’의제에 대한 교육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봐요. 노조 내 여성국, 여성위원회에 대한 평가 나경 : 노조 내 패러다임 전반을 바꾸지 못하고 노조에서는 여성문제의 ‘전담’부서로 사고 지현 : 여성 개별적 복지 혜택이 아니라 모두가 수용해야 하는 방식으로 전반적인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재연 : 최근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국, 여성위원회 등의 가시적인 흐름이 있잖아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죠. 나경: 여성사업의 분리가 여성운동의 분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성주류화 전략이나 개인출세전략에 치중해 있다는 비판을 받긴 하기만 주류 여성운동세력의 제도개선이나 여성의제 이슈화의 여파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노조 내로도 흡수되면서-물론 주류 페미니스트만의 노력은 아니지만 - 노조 안에 모성권, 건강권, 산전산후 휴가, 성차별적 해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성동지들이 받아 안은 것이고, 여성위원회 여성국 등의 전임자를 두게 되는 성과를 낳았죠. 그러나 여성전담부서만의 노력으로는 전체 노동조합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데다 제도화에 머물러 있어요. 여성전담부서는 가끔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그 해결의 전담부서가 되어버립니다. 여성위원회-여성국에서는 노조의 여성주의적 의제화나 패러다임 전변과 관련한 고민을 할 여건이 못 되는 현실이죠. 노조에서 그런 일들을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그냥 전담부서로 떠넘기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위원회-여성국이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지현 : 노조 내에서 여성문제를 사고할 때 모성보호 문제, 산전산후 휴가 같이 여성 개인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전반적인 인식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하더라도, 예를 들어 직장 내 탁아시설 설치 같은 문제도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 설치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여성·남성 모두가 있는 사업장이나 남성만 있는 사업장이라도 설치할 수 있게 해야죠. 그저 개별 여성의 복지를 따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여성국이나 여성위원회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여성국에서는 보편적 쟁점으로 문제를 던지기 보다는 여성이 여성의 문제를 끌어안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봐요. 재생산노동의 사회화의 쟁점을 던지지도 못하고, 심각한 비율로 나타나는 여성 비정규직이나 빈곤의 문제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죠. 그게 여성국이나 여성위 만의 문제는 아니고 노동조합 전반이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지 못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은 안 되더라도 앞으로 여성국이나 여성위가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연 : 노동조합에서 여성의제를 사고하고 실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화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겠죠. 지현 : 같은 얘기인데 일단은 교육일 수도 있고, 개별 인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방식을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도 의무적으로 교육의 시간을 확보 할 수 있어야 하구요, 개별의 복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삶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필요해요. 예를 들어 최저임금투쟁 할 때를 보면, 최저임금의 문제를 더 폭 넓게 고민하지 못하고 단지 최저임금 얼마 올려달라는 방식으로 나타나잖아요. 게다가 최저임금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동원되는 방식이구요. 모든 게 임금으로 풀릴 것이 아니라 재생산 노동의 영역을 사회공공성 쟁취의 문제로도 풀어야 할 거 같아요. 사회 공공성 쟁취의 내용을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방식이 아니라 취약계층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구조를 재편하자는 목적으로 구성하면서 그 안에서 재생산 노동의 문제 역시 담보해 나가야겠죠. 개별 노동자에게 복지가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남녀 노동자 모두가 삶을 구축할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역시 필요해요. 나경 : 여성의제는 노조운동의 의제 중에서 일부분으로 치부되어 자꾸 뒤로 밀리거나 고민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문제는 사회변혁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여성과 관련된 문제가 뒤로 밀리는 경우로 예를 하나 들자면, 임단투 할 때 마지막에 남은 쟁점은 거의 모든 노조가 생리휴가 무급화였어요. 거의 다 무급화 시켰거든요. 주5일제 하니까 노동자의 삶의 질이 신장된 거 같지만 사실상 이미 쟁취한 복지도 맞바꾸기 하는 바람에 후퇴된 측면이 많죠. 생리휴가 무급화 때문에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를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노동자와 갈등관계에 놓였던 예도 있었어요. 어느 노조는 막판 협상에서 생리휴가 무급화만 남았는데 이거 때문에 파업을 할지 말지 이야기하다가 남성조합원 반발 때문에 결국 무급화로 양보하게 됐죠. 남성들의 요구가 기준이 되는 거죠. 의식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의제에 대한 인식은 여성노동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전반의 노동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속의 노동 불안정화속에서 여성의제는 가장 급진적이고 계급적일 수 있다는 거죠. 할당제 평가 나경 : 보편주의적 시각에서 불균등을 해소하자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지현 : 자리만 상징적으로 줄 것이 아니라 실제 권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 재연 : 노조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의제로 여겨지는 할당제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해보죠. 할당제가 여성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현재 노동조건들을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경 : 여성할당제의 의의는 할당제를 통해서 여성의 요구를 의제로 형성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위 여성이 지구의 절반이라고 하는데 왜 노조의 의결기구는 하나의 성(남성)이 독점하고 있냐는 것이죠.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해요. 소수자에 대한 배려 문제가 아니라 보편주의적 시각에서 불균등을 해소하자는 거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할당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사실 할당제는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많아요.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에서만 할당제를 제대로 실시하고 있지, 실질 단위노조까지 제대로 하는 데는 한 군데도 없어요. 총연맹과 연맹의 중앙위원회까지죠. 특히 공공연맹은 중앙집행위원회까지 실시하는데, 상대적으로 굉장히 진보적인 거죠. 단위노조까지 확대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고요. 그야말로 반에 반쪽짜리 할당제에요. 근데 오래 지나지 않는 할당제에 대한 섣부른 평가는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가 소위 양이 계속 늘어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임계질량의 의미에서 30%를 이야기한 건데, 할당제 시행 수준이 아직 그 수준의 평가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할당제를 제기했던 과정을 보면 단순히 한 성이 독점한 의결구조의 권력을 깨기가 힘들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남성들이 같이 요구한 게 하니라 여성들이 요구해서 쟁취한 게 할당제죠. ‘왜 무임승차하려고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많았어요. 사석에서 이야기해보면 ‘나 그거 반대해요’라고 말하는 활동가들도 있어요. 여성들이 들어오는 걸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실력으로, 노조에서 커서 들어오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심하게 말하면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낙후된’ 활동가라고 봐요. 할당제는 중심부로 치고 들어가는 전술이에요. 대부분의 남성들은 권력을 여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을 내놓기 싫어하죠. 할당제는 지금 긍정적인 점을 강조하면서 단위노조까지 시행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주체들을 키워내고 여성들이 노조활동을 할 때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계속 이야기되어야 하지, 이 상태에서는 많이 힘들어요. 2003년 2월 공공연맹 여성위원장님이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자유노련 세계여성대회에서 민주노총의 여성할당제 쟁취에 대해 보고하고 기립박수를 받았었다고 하더군요. 유럽에서 소위 잘 나가는 어떤 노조도 이렇게 하는 데가 없다는 얘기죠. 그만큼 할당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조 내에서 ‘얼마나 여성의제 확산에 도움이 되느냐’ 판단하기 이전에 그 실현 자체도 얼마나 힘든지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할당제 평가의 관점을 여성들의 의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여성할당의원들이 여성의식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독점적 구조를 바꾸는 것, 여성도 같은 의결구조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상황인식 자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죠. 제 사례를 이야기하면 제가 조직실에 있을 때 단위노조 중앙회의에 결합하면 거의 다 남자밖에 없어요. 저 혼자 여자인 경우가 허다하죠. 그것에 대해 명예 남성적으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 일을 하기 싫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나의 노동조건을 제약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활동 초반엔 남자들만 있는 조합에 간다는 것 자체가 제게 스트레스가 되더라구요. 남성들만 있다는 것 자체가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꼈죠. 가기 싫은 장소, 어색한 장소가 아니라 여성들이 많이 그 자리를 채우고, 양성이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 자체도 중요합니다. 지현 : 현재 노조가 지니는 남성 중심적인 구조 안에서 할당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과도기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할당제가 지금 노조의 구조에서는 필요하고 나름대로 선진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여성들을 길들이거나 내가 실력으로 쟁취하여 이 자리를 받은 게 아니라 할당제니까 남성들도 낮게 보고 그냥 올라온 거라 생각하게 되죠. 똑같은 업무를 주지도 않고요. 그런 우려가 있어서 저는 조심스러운 편이에요. 과도기적으로 필요할지 모르지만,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자리만 상징적으로 줄 것이 아니라 실제 권한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과연 할당제로 풀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구요. 여성들의 의결구조가 마련된다면 할당제가 필요 없겠죠. 더 문제는 노조 내 여성 전반의 문제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의 문제로 풀리게 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성주류화 전락의 일환인 거죠. 나경 : 단위노조 상근간부, 지부장들까지 할당제가 되어야 그나마 할당제가 잘 되었는지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총연맹이나 연맹 몇 군데 하는 것 가지고 평가할 수 없고 섣불리 평가하면 할당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은 할당제의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부각시키고 싶어요. 주류 여성단체에서 제도권 내 진입문제를 주로 이야기하고 민주노동당에서 많이 이야기를 하니까 민주노총에도 제도화가 많이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요. 할당제가 총연맹에서부터 연맹에 통과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과정이 오래 걸려서 안착화되었다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단위노조에서는 할당제가 거의 실시되지 않고 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투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투쟁 나경 : 불안정한 노동, 저임금 노동에 여성들만이 종사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지현 :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부차화·위계화 된 여성노동의 문제를 제기해야 재연 : 투쟁과정에서 가족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남녀노동자들 사이에 조금 다를 거 같은데요. 비정규직 노동자투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은 어떻게 다른지, 여러 단위사업장들과 연대투쟁하면서 느꼈던 점을 얘기해 주세요. 지현 :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대부분 투쟁하는 사람이 남성이잖아요. 요 몇 년 사이 달라지긴 했지만. 비정규직 투쟁이 한참이던 초반 ‘비정규직 70%가 여성이라는데, 왜 비정규 투쟁하는 사람은 다 남성이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 말은 비정규직 문제가 곧 여성의 문제인데 노동의 여성화에 대해 잘 얘기되지 못하고 있는 걸 비판한 거죠. 그런 말에 많이 동감해요. 우리가 여성 사업장이라고 할 때는 여성이 많은 사업장을 말하는데, 숫자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업장에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여성문제가 있는 사업장이냐의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어야 해요. ‘여성 사업장’이 단지 수적으로 여성이 많다는 의미만을 뜻한다면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도 투쟁할 때 여성으로서의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하지 못하면서 여성들이 투쟁하는 의미도 살리기 어렵다고 봐요. 예전 현대자동차 식당 아주머니 투쟁에서 여성들의 낮은 지위나 철도 새마을호 여승무원에서 여성 직제가 전부 비정규직으로 되어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여성노동을 어떤 노동의 하위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위계화 된 문제를 봐야 해요.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은 다른 부분이 있죠. 그런데 노동조합 내에서 여성문제라고 하면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성차별, 성폭력 문제로만 바라보죠.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실제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보지 않는 거죠. 여성문제를 전술적 차원에서만 고려하는 것이죠. 요사이 비정규직 여성사업장에서 투쟁을 많이 하는데 여성의 이미지를 희생자화 하면서 선전할 때 눈물로 호소하고 꽃같이 연약한 여성노동자로 부각되죠. 실제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2000년도에 롯데호텔 파업할 때 여성에 대한 성희롱 문제가 부각될 때 회사 측이 교섭과정에서 다른 거 다 받아줄 수 있는데 성희롱만은 못 받아들인다고 농간을 부렸어요. 어떤 지역본부의 간부가 저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더라구요. 당시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이 문제를 결국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된 것이죠. 여성문제는 맞바꿔도 되는 문제, 큰 대의를 위해 버려도 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함정을 파는 겁니다. 그런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성과를 버리는 거예요. 자본이 노동자를 분열시키기 위해 가장 쉬워 보이는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것인데요. 이걸 잘못 판단하면 노동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되요.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한 사고는 기본선을 지키는 것이죠. 나경 : 저는 여성 투쟁 사업장에 가면 오히려 힘을 받고 가능성을 더 많이 보고 와요. 투쟁사업장에서의 여성동지들은 굉장히 자발적인 측면이 있어요. 경찰청 고용직 노조를 보면 애 엄마도 많은데 집에 안가고 붙어 있잖아요. 더 많은 결의와 뼈아픈 투쟁의지가 필요한 거죠. 가사나 육아의 문제로 가족 간의 갈등이 어느 정도 인지 모르겠지만 남성들이 투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을 텐데 극복하는 거죠. 서울대병원 지부나 한국통신 114 투쟁 때 여성 노동자들 악착같이 투쟁하는 것을 보면 놀라워요. 다만 남성적인 노조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투쟁의 의지를 굳이 삭발 같은 의식으로 표현해야 하나 싶은데 결국 주요 임원임에도 삭발투쟁에 참여 못하는 동지가 생기고 그럼, 투쟁의지를 의심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죠. 기존 노조문화의 틀에서 사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나 서울대 병원지부 노조를 보면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들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가사육아문제에서도 생존을 했고 투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으니까요. 투쟁전반에 어려움들이 많았어요.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는 좁은 시설노조에서 먹고 자면서 견뎌냈고, 경찰청에서 연탄불 갈고, 잔심부름하고, 김치나 담배심부름 등 별의별 일을 다 하면서 지금까지 왔으니 생존자죠. 이처럼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재연 :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들은 경찰청에서 일을 보조하는 역할이고요, 기아차판매지부 노동자들도 판매사원들의 사무를 보조하는 일을 하는 것에서 나타나듯 이미 성별 분화된 노동시장에 여성들이 있잖아요. 이러한 구조가 노조 안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지현 : 여성들이 경찰청에서 속옷 빨래까지 했다는데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새마을 여승무원도 그런 직제가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 봐야죠. 예를 들어 여승무원, 경찰청 여성노동자, 캐디, 학습지 같은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노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조업사업장에서는 잘 못 느껴요. 남성들이 많은데다, 그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같은 라인에서 일하고, 다른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받으니까요. 그렇지만 사실 성별 분업이 겉으로 드러나는가 아닌가의 문제일 뿐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이 문제를 단지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여성노동의 문제로서 전반적으로 제기하지 못하는 한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특수고용직 노동은 대부분 서비스업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여성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감내하게 하는 것이 있다고 봐요. 특수고용직 투쟁이 여성노동자들 투쟁이고 여성들이 접하기 쉬운 직업이 대부분 특수고용직에 속하는데 그 여성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특수고용 노동자인 만큼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그만큼 이직률도 높은데 노동이 고되기 때문이죠. 취업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한번쯤은 거쳐 갈 만큼 여성노동자들을 값싸고 쉽게 사용한다는 얘기에요.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실제 특수고용 투쟁에서 눈에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이 남성이니까 안 드러나는 건데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경: 경찰청고용직이나 한원 CC 경기보조원 투쟁 사례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어요. 직종 내 성별분업이 있고 여성들이 부차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여성노동자 대부분은 3차 산업이나 서비스 부문, 비공식 부문 현장에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저임금으로 착취당해 왔는데 노동조합도 전술이나 슬로건을 고민할 때 ‘비정규직 정규직화’만 이야기하죠. 불안정한 노동, 저임금 노동에 여성들만이 종사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정규직이 되어서도 여성들은 그 일을 하게 될 거잖아요?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평가 나경 : 노동의 직종간의 위계,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서열화, 성별분업 등을 제기할 수 있어야 지현 : 오히려 자본에게 역이용되어 여성들에게 성차별적 구조를 고착화하는 결과 불러올 수도 재연 :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주요한 요구로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내걸고 있는데 지금의 조건에서 이 요구가 타당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나경 : “동일노동-동일임금”이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말하는 것인데요. 동일가치라는 말에서 누가 가치를 매기냐가 중요해요. 극단적으로 가치평가를 못 받는 노동이 가사노동이고 거의 모든 여성단체들이나 여성활동가들의 문제제기가 가사노동의 비가시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가치의 서열화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죠. 그런데 현재의 위계서열화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그냥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고만 하면 노동의 직종간의 위계,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서열화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려요. 자본이 만들어놓은 경영학적 순서에 의해 노동가치가 서열화되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결과가 됩니다. 물론 동일가치 동일노동이 무조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동일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직종 안에 남녀가 같이 일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은행에 가면 여성들은 창구 앞에 앉아있고 남성들은 관리직으로 더 빨리 승진하잖아요. 여성들과 남성들이 채용부터 배치까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누누이 얘기했듯이 오늘날 늘어나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채워지는 노동력은 거의 여성인데 이런 상황에서 동일노동에 동일임금 지급하라고 하면 성별분업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더욱 빈곤하게 되는 거죠. 같은 직종에서 남녀가 일을 하는 곳은 제조업 사업장 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실상 지금 여성들이 많이 있는 직종에서는 동일임금-동일노동이라는 요구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 있어요. 또한 비정규직으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인 임금을 받는 경우도 많죠. 이런 부분에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라는 제기를 한 건데요. 비정규직 70%가 여성 노동자로서 서비스 산업, 식품업, 보살핌 노동, 비공식 부문 등 노동조합조차 인정 안 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유효한지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성별 분업 상황에 대해 은폐하는 효과를 낳게 되니 말이죠.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돌봄 노동, 육아의 문제를 직장과 가사를 양립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전가하는 상황에서 여성노동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노동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일가치-동일임금이라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비켜가는 것이 되어 버려요. 지현 : 1980년대 말 여성노동자들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이란 요구를 내걸고 투쟁했던 사례가 있었어요. 당시 경공업 현장의 사례였는데 당시에는 그 요구가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건이 많이 달라지고 있죠. 산업이 공동화되면서 제조업이 많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여성노동자들의 일이 다른 상황에서 1980년대와 똑같이 요구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치가 다르잖아요. 청소를 하더라도 청소관리반장은 남자가 하고 시설 관리는 남성, 여성은 청소를 하죠. 가치가 잘못 매겨지면 여성들에게 성차별적 구조를 고착화하는 결과가 돼버려요. 「가사노동 가치 법안」을 한나라당이 법제화한다는 데 이것은 오히려 여성들을 묶어 놓게 될 거에요.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라는 요구가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임금차별에 반대하면서 의미 있게 출발했지만 현재에는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이용될 소지도 있으니까요. 여성 의제를 떠나서 보았을 때도 노동법이 개악되었을 때 정부 법안에는 차별금지 구제책, 동일노동-동일임금이 포함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실제 정규직은 관리직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얘기하는 이른바 차별구제책은 불필요한, 실효성 없는 법안이었어요. 오히려 정부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는 여성노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경: 굳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들이대지 않아도 비정규직을 채용할 때를 보면 될 것 같아요. 한 산업에서 프로젝트 전체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쓴다던가, 한 직종 자체를 외주·용역으로 전환한다든가, 민간위탁을 하잖아요. 동일노동-동일임금은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에게 동일임금을 지급하라는 고유한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인데 지금 그것이 그렇게 적절한 요구인지 의문이 들긴 하네요. 여성독자노조에 대한 평가 나경 : 독자여성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기존 노조의 문제점이 지금은 해결되었는지를 제대로 평가해야 지현 : 실리적으로 성과를 안겨주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제를 고민해야 하고,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해야 재연 : 이번에는 여성독자노조에 대한 평가를 해봤으면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98-99년 당시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진 여성독자노조들이 생겨났는데요, 벌써 꽤 시간이 흘렀네요. 노조 내 페미니즘을 사고하기 위해 여성독자노조에 대한 평가는 우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현 : 언젠가는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여성들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운동인데, 분리적으로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여성노동자라는 주체가 있고 주체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합체는 있어야 하는 거니까 개별로 하나하나 보면 필요한 거죠. 그런데 5~6년간 여성독자 노조가 보였던 모습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봐요. 여성 문제를 구조적으로 건드리며 나간다기 보다 상층에서 교섭하고 조합원들에게 실리적인 부분을 안겨다 주는 방식이 많아요. 이게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성 독자노조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이 안 이루어집니다. 그냥 우리끼리 우리 조합원에게 잘해주면 된다는 방식이라면 한계가 있는 것이죠. 여성들의 자율적인 집합은 의미가 있으니 현실운동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혼자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면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나경 : 독자노조를 어떤 고민으로 출발했으며, 현재 그 고민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안 된다면 어떻게 해소할 건지에 대해 평가를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만들 때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던 거잖아요. 물론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서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나름의 독자성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제대로 못하면 비판을 많이 받을 상황이죠.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기 이전에 독자노조를 만들었던 배경, 즉, 독자여성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기존노조의 문제점이 지금은 해결되었는지를 평가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냉정히 말해서 별로 해결된 거나 달라진 거 없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해야 해요. 여성의제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있거나 최저임금 투쟁을 할 때 보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발언하거나 여성의제를 부각시키면서 근본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일반 노조하고 투쟁하는 게 똑같아요. 내용, 전술, 슬로건, 정책 거의 비슷해요. 모성보호, 생리휴가에 대한 투쟁도 일반 노조에서 하는 것 이상 안 되는 거 같아요. 평가의 결과가 독자노조에 대해 유지냐 폐지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독자여성노조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요구를 어느 조직에서 잘 반영할 수 있느냐에 대한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이죠. 기존노조가 조금 변하고 잘하는 것 같으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겠죠. 재연 : 여성친화적인 방식으로 조직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면밀히 봐야 할 거 같은데요. 나경 : 여성들이 많으니까 당연히 여성 친화적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여성의제를 가진 요구나 자기 전망이 없다는 게 문제인거 같아요. 지현: 여성 친화적 조직화모델이라거나 단체협상에 적용할 여성모델협약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은 의미가 있죠. 문제는 그런 것을 민주노총 같은 곳에서 현실화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나경 : 여성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대화, 소통을 확대하고 차이의 인정하는 가운데 다(多)중심적 사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인데요, 기존노조에서는 ‘대동단결’을 중시하면서 여성의제가 억압되었던 부분이 존재했죠. 여성문제는 남녀적대를 양산하고 조직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독자노조의 경우, 여성들이 많으니까 여성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를 뛰어넘어 여성의제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는 데 그렇게 보이진 않더라고요. 지현 : 서울여성노조 등 여성 독자노조에서는 여성 친화적 모델로서 여성들이 모여 수다를 떤다거나 여성들이 모이면 담배도 피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맞지 않는 여성들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성적’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노조 안과 밖의 여성 활동가들이 함께 하기 위해 나경 :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지현 : 서로에 대한 개입으로 차이를 좁혀가야 재연 :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조 안에서의 실천 뿐 아니라 외부에서의 개입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안에서는 폐쇄적이지 않아야 할 것이고, 노조 외부의 여성 활동가들도 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긴장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조합 여성 활동가들과 노조 외부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죠. 나경 : 노동조합이 사회 운동적 의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할당제, 복지제도, 모성보호에 아직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요. 노조 내 여성정책이나 여성의제에 대한 고민이 사회단체의 고민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해요. 여성의제가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거죠. 지현: 기반이 다르고 조건이 달라서 힘든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개입으로 차이를 좁혀가야죠. 그래서 끊임없이 의제들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노조 내에서 일회성으로 이슈 파이팅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단체에서도 임단협 요구안을 같이 만들어 본다던가, 같이 교육을 고민해 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나경 : 만날 계기가 있어야 해요. 간병인 노조나 고대 시설관리노조 등 현장에 연대했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노조 내에 정세적인 여성의제가 있다는 것을 주목했으면 해요. 경찰청고용직의 경우도 여성들만 집중되어 있는 직종 자체를 없앤 것이고, 학교 비정규직도 젊은 여성 고용한다고 나이 든 여성들을 해고시킨 사례인데, 현장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한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여성노동권을 제약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현장의 쟁점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하겠죠. 나아가며 나경 :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하나 지현 : 여성노동자들의 의미 있는 투쟁의 역사를 복원해야 재연 : 마지막으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한발 더 나아가고 노조 내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야기해주세요. 지현 : 과거를 잘 복원해야죠. 20-30년부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어왔는데요. 노동운동사 내에서도 그러한 역사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 하는 측면이 있어요. 7-80년대도 노동자투쟁의 많은 부분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었는데,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단지 과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는 의미로서 과거를 잘 복원하고 현재에도 그 문제의식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20-30년대나 7-80년대나 또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여성들은 항상 싸워왔는데, 그게 의미 있게 평가되지 못합니다. 여성의제를 고민하고 그것을 아래로부터 제기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 두 가지가 접목될 때 노조 내에서도 페미니즘 구현이 현실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나경 : 여성의제에 대해 고민하려면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급진적인 문제니까요. 계급관계는 보편적이고, 여성문제는 특수한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여성이라는 주체가 처한 조건, 여성의제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구조 전체를 변화시킬 수 없어요. 가사노동, 불안정노동, 성적억압, 육아 등 모든 면에서 4중 이상의 고통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데 여성주체를 조직하지 않고 대체 누구를 조직하겠다는 말이죠? 우리는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요구만으로는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공격에 대해 대응할 수 없어요. 노조가 여성문제를 사회적 요구로 채택해야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연대세력이에요. 여성들이 노조활동까지 하면 5중고인데, 힘들지만 생존자로서의 길을 과감히 선택할 필요가 있어요. 주체적으로 나서서 남성들을 조직하고, 여성 활동가 스스로 변혁적 전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해요.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하나입니다.
2005 여성캠프를 진행하였습니다. 경기도 가평군에서 "해방을 향한 여성운동 자율성과 연대를 실현하기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여성노동자운동사(정향자 전 전남제사노조 위원장) 강연과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자세한 토론 내용은 이후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자료집을 첨부합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월간 소식지 13호가 발간 되었습니다. 1> 포커스 기나긴 여성들의 행진에 나서는 우리의 자세 김 정 은 |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 2> 여성들은 지금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 동남아 거쳐 중동으로 3> 알립니다 2005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여름캠프 "해방을 향한 여성운동, 자율성과 연대를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9월 정례회의 읽으신 후 많은 의견 주세요! 소식지 보기
7월 18일날 있었던 회원토론회 토론문, 토론을 위한 첨부글, 토론회 속기록을 묶은 것입니다. 게시판에 제기되었던 쟁점을 중심으로 토론문을 작성하였는데, 완안이 아니어서 제출된 토론문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청하시는 분이 많아서 일단 올려놓습니다. 1. 회워토론회 토론문은 3개의 글이 묶어져있습니다. 2. 토론을 위한 첨부글은 1) 인도 성노동자 선언문 2) 성매매에 대한 사회화와 노동 3) 6월호 기관지 글 3. 회원속기록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이 <사회진보연대>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문화연대>,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 모임>,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전국학생연대회의> 등 10개 단체의 제안으로 준비되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갖추고 '2005년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의 한 부분이 되는 한국 행동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이번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은 2003년 1월 3회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제안된 후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준비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행동은 훨씬 늦게 제안되어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준비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몇 차례의 간담회와 준비 회의를 통해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한국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행진을 통해 주되게 제기할 의제를 모아나갔다.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한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라는 보편적인 요구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구체적인 현실을 주되게 발언하기로 했다.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여성정책과 더불어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본의 위기를 극복할 자원으로 동원되며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과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행진의 주요 의제를 구성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주류 여성운동이 '성주류화 전략'을 앞세워 정부의 여성정책에 개입하며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 때, 여성들의 투쟁을 아래로부터 일구어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여성운동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이번 여성행진의 중요한 과제였다.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라는 이름아래 진행된 여러 행동들은 그 토대가 될 것이다. 6월 28일 :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전국순례단과 전북 여성활동가들의 간담회 순례 첫 날 오후 7시,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된 간담회는 <전북평화인권연대>, <익산 노동자의 집>, <군산 노동자의 집> 여성 활동가, 그리고 취재를 겸하여 참가한 <전북 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 기자가 함께 했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막 출현한 성노동자운동이 어떻게 긍정적인 성과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토론했다. 다음으로 이주여성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한 여성 활동가는 성매매로 유입된 이주여성과 공장노동을 하는 이주여성, 그리고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서 살게 된 이주여성의 경우가 각각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자고 했다.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요구를 집단화하는 실천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그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서로 확인하면서 간담회를 마쳤다. 6월 29일: 전북대 앞 거리선전전, 새만금 여성어민 간담회 오후 1시, 전북대 앞 거리선전전 이 날은 전주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전북평화인권연대>와 함께 여성행진 의제들을 담은 선전판을 전시하고, 7월 3일 집회에서 사용할 대형 퀼트를 걸어놓고 함께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저녁 8시, 계화도에서 새만금에서 만난 당당한 이름, 여성 전주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려 부안 계화면으로 들어갔다. 계화도 여성어민과의 만남. 여성행진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보편적인 요구는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여성노동자, 여성농민, 그리고 이 땅 구석구석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고자 했다. 이 날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투쟁을 처음부터 이끌어 왔던 계화도 여성어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갯벌이 파괴된다는 것은 그녀들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남편 혹은 아버지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여성들은 갯벌에 나갔다. 그곳에서 그녀들은 맨손으로 노동하며 자신의 삶의 터전을 꾸려왔다. 갯벌은 그녀들의 일터였고, 살림이었다. 남성들은 어선이라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고 수확량에 따라 보상 기준을 책정할 수 있지만, 갯벌에 나가 생합을 따서 생계를 꾸려왔던 여성들은 공식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보상대상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삶과 노동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그 드넓은 생명의 공간은 그저 쓸모없는, 그래서 빨리 '개발'되어야 하는 땅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허락하는 한, 넉넉하진 않지만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생합을 얻을 수 있었고, 온전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그녀들… 하지만 그 노동과 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개발논리는 그녀들에게 다시 맨손으로 가난해지라고 말한다. 계화면 하리 추귀례 부녀회장님은 2003년 4공구가 막히기 바로 직전, 어린 생합이 이제 막 생명을 움틔우기 시작했었던 그 때, 그리고 기어코 4공구가 막혀 6개월이 지나 바다 색깔이 죽음의 색으로 변해버렸던 그 때, 그 아프고 저렸던 심정을 길게 읊조렸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투쟁을 이토록 끈질기게 이끌고 있는 것은 어떠한 전문 환경운동가의 통계자료가 아니라, 바로 오랜 삶으로부터 배운 여성어민들의 노동과 지혜이다. 때문에 그녀들은 지금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당당한 주체, 여성이다. 계화도에서 투쟁하고 있는 그녀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노동하며 살고 싶다는 다른 모든 여성들의 바람과도 동일한 그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또한 그녀들이 바다로부터 배운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삶의 지혜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한, 새만금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6월 30일 : 전남대학교 선전전, 광주지역 활동가 간담회 오후 3시, 전남대학교 학생회관 앞 선전전 금남로 삼복서점 앞에서 선전전을 하려고 했지만, 강한 비바람 때문에 전남대학교로 장소를 옮겼다. 광주 민중행동, 광주 인권운동센터, 전남대 학생들과 함께 선전전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전남대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의 권리를 적어 붙여 퀼트를 완성해갔다. 오후 7시: 광주지역 활동가들과 간담회 진행 순례단은 한국에서 준비하고 있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의 결성 취지와 주요의제를 광주 동지들에게 전달하였고 전국 순례단 활동을 소개하였다. 이어서 두 가지 과제를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성매매와 성노동자의 노동권에 관한 문제였다. 성매매 여성들의 삶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를 '성노동'이라고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쟁점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과 노동권의 의미, 특히 여성의 노동권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자본에 의해 구획되어 있다는 점, 노동권을 제기하는 것은 이러한 자본의 구획 안에 있는 노동을 재구성하여 처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성노동'이라는 개념은 여성노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방식을 시사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두 번째 토론주제는 기존의 여성운동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여성운동의 전망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주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토론하지 못했지만 광주지역에서 새로운 여성운동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회, "성노동자운동, 가능한가?!" 오후 3시부터 고려대학교에서 위의 제목으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29일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선언하며 인간이자, 여성이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성노동자들이 <전국성노동자연대>라는 조직을 출범시키고 난 직후라 많은 사람들이 이 토론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작년 말 성매매특별법이 재정되고 집창촌 여성들이 이 법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을 말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하면서,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논쟁은 잠시 가라앉았다. 이번 토론회는 현 시점에서 성매매가 어떻게 다루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이론> 편집주간 고정갑희 교수,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엄혜진 활동가, <사회진보연대> 김정은 여성부장, <전국성노동자연대> 정희주 부대표가 발제자로 나섰다. 발제자들은 성매매특별법으로 대두되는 '금지주의'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낳은 여성의 빈곤화와 성의 상품화라는 성매매의 구조적 원인을 가리고,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의 신분에 두어 폭력에 노출되도록 함을 지적했다. 따라서 성매매를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정하고, 스스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성매매를 법으로 다루지 않는 '비범죄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성매매는 그 원인이 되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의 상품화 등 사회구조적인 원인이 제거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사멸될 것이므로, 이 운동은 여성의 육체와 성적이미지를 스스로 통제할 권리, 여성의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7월 1일: 대구지역 여성단체, 부산 한솔 학습지 노조 간담회 오후 3시, 대구지역 여성단체 간담회 대구지역 간담회는 여성해방연대를 비롯한 몇몇 단체와 개인이 함께 참석했다. 대구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단체들이 함께 안정적인 연대의 틀을 구축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권리 찾기 캠페인과 같은 공동연대사업의 경험을 많이 축적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여성행진의 주요 의제인 여성들의 노동권, 성노동,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등을 함께 토론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여성행진의 주요의제에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부분이 빠져있음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6월 29일 출범한 전국성노동자연대를 둘러싸고, 성노동자 운동이 어떠한 전망을 가지고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중요하게 토론되었다. 성매매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의 상품화'의 한 부분이라고 인식한다면 성폭력에 대한 여성운동의 대응방식 역시 전면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아 아쉽게도 토론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성행진이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한 범위의 중요한 쟁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저녁 9시, 부산 한솔 학습지 노조 간담회 한솔 학습지노조는 현재 부산지역 일반노조에 소속되어 있으며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사측의 다양한 방식의 착취와 억압에 투쟁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솔교육 동부지사는 2005년 1월부터 회원들의 회비를 인상하고 교사들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를 이전 수수료로 맞추기 위해 일괄적으로 한글군 5~10% 영어군 9~13% (평균 20만원) 까지 낮추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이에 한솔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2005년 1월 22일 노동조합(203명 중 177명 가입)을 결성했다. 2월부터 총 11차례의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2005년 4월 25일 조정이 결렬되면서 쟁의권을 갖게 되었는데, 2005년 5월 15일 사측은 단체행동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2005년 7월 28일, 이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학습지 교사는 대부분 여성들로 구성되어있다. 학습지 자본은 이직률이 높은 여성들의 조건을 자신의 이해에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불안정한 일자리와 부당한 착취를 정당화하여 왔다. 그러나 법이 규정하는 노동자성 조차도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학습지 노동자들은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한솔 학습지 노조의 투쟁 상황과 여성 특수고용직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영, 유아 교육과정 등 보육과 유사한 노동자체가 여성화되어가는 과정, 이 때문에 학습지 노동자들의 노동은 가치 절하된 여성노동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수고용직의 투쟁의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차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정형화된 생산가치 측정도 불가능한 영, 유아 교육은 단지 가정에서 여성이 해야 하는 역할로 인식되어,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솔노조의 동지들은 이렇듯 자본이 여성의 노동을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여성학습지 교사들이 스스로 여성노동자라는 주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노동을 "다만 한시적이고 부차적인 노동"이라고 안주해버리는 인식을 깨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는 학습지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온전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이 양자가 상호 결합하고 상호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이를 위해 각각의 처한 구체적인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또한 모두 같을 수밖에 없는 여성농민, 새만금 여성어민,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이 빈곤과 폭력에 맞선 투쟁에서 연대를 강화해야 함을 확인했다. 7월 1일, 토론회, "세계여성행진을 통해서 본 세계화반대 국제연대 투쟁의 방향과 전망. 이 날 1시부터 성균관대에서 진행된 토론회에는 세계여성행진 아시아지역 코디네이터인 말레아 무녜스가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1995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빵과 장미를 위한 행진"부터 올해 릴레이 세계 여성행진까지, 세계여성행진의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말레아 무녜스의 강연과 성주류화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운동의 국제연대운동에 대해 평가하고, 여성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 채택된 '성주류화' 전략은 이후 전 세계 여성운동의 주요 목표가 되었는데, 이는 성평등을 '제도화'하고 여성운동의 급진성을 탈각시키는 역할을 했음이 지적되었다. 한국에서도 여성부가 설립되어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기조로 하는 여성정책이 시행된 이후, 소위 '여성 직종'이라 불리는 보살핌 노동 형태의 불안정한 노동이 확산되어 여성의 빈곤화는 가속했다. 뿐만 아니라 출산, 육아 등에 대한 여성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어 여성은 이중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성주류화'를 중심적인 전략으로 삼는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 대다수의 현실에 눈감으며, '호주제 폐지', '성매매특별법 제정' 등의 법·제도적인 성과를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에 조응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운동이 강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세계여성행진이 '아래로부터의 여성 연대'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브라질에서 출발한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헌장'과 '연대 퀼트'가 7월 3일 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날 마로니에 공원에는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한국의 여성들이 함께 모였다. 자신의 요구를 적은 피켓을 손에 든 여성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니 장마 비도 멎었다. 10년 동안 정든 일터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경찰 고용직 공무원 노동자들,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고도 법정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받으며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 인종차별 · 성차별로 인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들, 생존의 벼랑 끝에서 선택한 직업 때문에 사회적 낙인을 얻고 배재당한 성노동자들, 정부의 근로연계복지 정책으로 더욱 가난해져 가는 빈민들…. 모두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요구를 외치며 서로에게 연대를 호소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하고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조직화할 권리'가 여성의 권리임을 선언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며 행진하는 동안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가중하는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고, 스스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의 힘을 모아 갔다. 브라질에서, 남미 전역에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럽 곳곳과 호주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외채와 자유무역협정, 군사주의, 빈곤, 폭력에 맞서 행진을 진행하고 있는 세계의 여성들과 한국의 여성들이 이렇게 만났다. 7·3 여성행진은 시작에 불과하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으로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단초를 제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불안정 노동의 확산, 성 역할의 고착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여성의 부담 강화, 빈곤의 여성화, 폭력의 증가에 대항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투쟁이 만나고 서로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이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시대, 여성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더욱 많은 폭력에 노출된다. 노동유연화 속에서, 여성들 대부분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저출산·고령화’가 낳을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을 쥐어짜는 것이 여성정책의 핵심이 되면서 여성은 자본이 요구하는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노인부양을 책임지도록 동원되고 있다. 여성들의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기조로 하는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1차적인 책임자의 위치에 고정시키며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도록 하고 있다. 가사노동과 유사한 보살핌노동이 여성의 일로, 그것도 노동자로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형태로 확산된다. 복지와 공공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시장화하면서 여성 빈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더구나 장애여성의 독립된 삶이 보장될 만큼 사회적 지원체계가 갖춰지는 것은 더욱 요원해졌다. 초국적 곡물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는 WTO 농업개방과 이에 조응하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으로 농가부채가 급증하고 농가소득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여성농민들은 농사, 가사노동에 더하여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부업까지, 3중의 역할에 시달리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생태계파괴는 농촌과 어촌에서 맨손으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오던 여성들의 노동권과 삶의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여성들의 빈곤이 전반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성매매로 유입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을 문제삼지 않은 채 법과 제도로 성매매를 근절하려는 시도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폭력 속에 방치한다. 초국적 투기자본이 국경을 마음껏 넘나드는 시대이지만, 노동자들만큼은 ‘인종’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분할되어, 이주노동자는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의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전쟁과 수많은 무력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듯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배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 여성들이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에 나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까지 행진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여성들, 각기 다른 직업, 신체적 특징, 성적 지향을 지닌 여성들이 국경을 넘은 연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여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여성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여성의 힘은 필수적이며, 여성의 요구는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노동자, 동성애자 …. 다양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함께 투쟁하고 한 목소리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다. ▶ 모든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할 권리를 갖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노동에 접근할 수 없어서도 안 되고, 특정한 노동을 강요당해서도 안 된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상관없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경제적 독립은 여성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다. 여성의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계약직 파견직, 하청, 외주용역 등 모든 형태의 불안정한 노동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하는 노동이라는 이유로 가치 절하되어 저임금 노동으로 고착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최저임금제 하에서 법정최저임금은 대다수 여성들에게 임금의 최대치가 되면서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한다. 여성노동을 저임금에 가두는 모든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철폐되어야 한다. ▶ 지금껏 여성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이자 최종 책임자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여성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또한 가사노동의 연장선에 있는 보살핌 노동을 여성의 노동으로 고착시켰다. 더 이상 육아, 노인부양,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여러 일을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사회화되어야 하며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말하는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은 여성을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할 뿐이다. ▶ 여성농민은 ‘여성’ 이자 ‘농민’이다. WTO FTA로 인한 농업개방으로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여성농민은 농사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며 가사와 가계소득을 보충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농민의 지위를 ‘무급가족종사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있어 여성농민의 기여는 인정되어야 하고 여성농민은 ‘여성’ 이자 ‘농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 여성의 신체는 여성 자신의 것이다. 출산과 모성은 여성에게 의무가 아닌 권리여야 한다. 여성 스스로가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성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할 권리, 출산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권리를 모두 가져야 한다. 따라서 낙태와 피임은 여성들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윤리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여성들의 권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 여성의 신체는 거듭 여성 자신의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의 신체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 ▶ 여성과 남성의 결합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여성과 남성의 자유로운 관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계보를 유지하는데 소외된 채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결혼을 이유로 여성의 자율성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여성의 빈곤이 심화되면서 결혼은 여성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단으로 장려된다. 여성은 먹고살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 의지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결혼할 권리가 있다. 또한 독신을 선택할 권리, 언제든 결혼관계에서 돌아올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불이익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 ▶ ‘건강가족기본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복지와 공공서비스의 축소, 상품화는 가족 내에서 여성의 의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가족기본법’은 출산과 양육, 노인부양이 이루어지는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며 이러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 유지하는 것을 강요한다. 동시에 다른 모든 형태의 가족을 국가의 지원으로부터 배제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다. ▶ 자연은 여성을 비롯한 인류의 삶의 터전이다. 여성 농민, 여성 어민은 오랜 세월동안 맨손으로 노동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생태계를 보존하는 지혜를 터득해왔다. 토지와 갯벌, 바다와 함께 살아온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삶의 터전으로 유지하고 활용하는 지혜 또한 여성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의 논리를 앞세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던 여성들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며 여성농민과 여성어민의 노동의 권리와 생존의 권리를 파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생태파괴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 여성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조직화할 권리가 있다. 또한 스스로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 학교에서, 지역공동체, 세계 곳곳의 모든 곳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 ▶ 신자유주의는 여성들을 포섭과 배제의 전략으로 분할시킴으로써 여성의 계급화를 심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의 요구는 더욱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배재한 여성들의 요구가 보편적인 여성의 요구로 구성되어야 한다. 여성의 새로운 연대는 여기서 출발한다. ▶ 우리는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에 충분한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몸이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의약품에 특허를 매겨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단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여성에게 적합한 의료체계가 개발되어야 하고 이를 모든 여성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주거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의료, 상수도, 전기, 가스 등 필수서비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돈이 있어도 돈이 없어도 누구나 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모든 형태의 전쟁이나 무력분쟁이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전쟁이나 무력 분쟁의 시기에는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다른 형태의 극단적인 폭력이 심화된다. 강간 등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이 적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전술로 채택되는가 하면 여성을 공동체의 ‘소유물’로 간주하거나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의 상징과 적을 동일시함으로써 적을 무력화하는 등 전쟁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 모든 이주자들은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인신매매, 노동착취, 성적 착취, 가정폭력, 빈곤, 인종차별 등 이주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특히 이주자를 범죄인으로 취급하여 단속 추방하는 것은 이주 여성이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외국인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은 이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기 쉬운 존재라는 편견을 낳는다. 이로써 여성들은 이주와 동시에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주로 고용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일한다. 그러므로 이주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편견은 사라져야 하고 이주여성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온전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 장애여성은 인간이자 여성으로 독립된 삶을 꾸려갈 권리가 있다.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안전하게 출산할 권리가 있으며 성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인이기 이전에 여성이자 인간이다.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에는 장애여성이 여성으로서 살기 위한 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장애여성과 비장애 여성은 여성의 보편적 권리와 장애여성의 특수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연대한다. ▶ ‘무한한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 ‘보호받아야 할 여동생’, ‘정숙한 여성’,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 등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규정은 여성의 권리를 파괴하고 여성의 삶을 더욱 억압적으로 만든다. 모든 여성은 타인에 의해 규정받지 않고 그 자체로 완전한 인간으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 어느 누구도 여기에 수록된 권리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지속할 목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해체하고 여성의 연대를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권리는 이후에도 무한히 추가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5년 10월 17일 전 세계 릴레이 행진이 마무리되는 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24시간 연대행동에 동참할 것이다. 다른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오에 모여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실현할 것이다.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반대투쟁,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등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 진행되는 장소에서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드높일 것이다. 또한 3월 8일 여성의 날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여성의 연대가 실현되는 날이 될 것이다. 2005년 7월 3일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