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담이 아니라, 진지한 반성과 각오가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과반대통령, 최초의 여성대통령, 최초의 부녀 대통령 등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양 후보의 정책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게다가 선거 막바지에 이를수록 이른바 3대 의혹(NLL 대화록,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댓글 알바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정 투표율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75.8%를 기록했다. [표1] 역대 대선 투표율 및 후보 지지율 네거티브 공방 역시 과거에 비해서는 그 파급력이 약해 투표 의지를 상실할 정도의 환멸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안철수 현상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 역시 투표율에 일정 반영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선이 양자대결 구도로 압축, 양 진영 간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특히 보수 유권자층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1:1 구도로 치러진 첫 대선이었다.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이인제, 이회창 등을 포괄하는 보수연합을 창출해, 1997년 이인제·김종필, 2002년 정몽준과 같은 이탈을 차단했다. 야권도 심상정 예비후보가 등록을 포기하고 안철수, 이정희 후보가 모두 사퇴함에 따라 민주통합당 주도의 민주연합을 완성했다. 양 진영의 역량을 최고조로 집중시킨 총력전에서 MB 심판론이 패배한 것이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총 26개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세력은 완패했다. 경남도지사,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패배했고, 기초단체장 선거 3곳(인천 중구청장, 광주 동구청장, 경북 경산시장) 중 2곳에서 보수세력이 승리했다. 광역의원 2곳도 모두 새누리당이 승리했고, 기초의원 선거 19곳에서는 새누리당 9곳, 민주당 6곳, 통합진보당 2곳, 무소속 2곳에서 각각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보수세력의 대승이다. MB 심판론의 패배, 참여정부 심판론의 승리 대선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기 확대된 양극화와 권위주의적 정치를 비판했고, 이에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아마추어 정치를 반복해선 안 된다며 대응했다. 가령 문재인이 반값등록금 시행을 미룬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를 비판하면, 박근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에 등록금이 폭등했다고 반박했다. 양 진영 모두 집권 기간 동안 실패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제살 깎아먹기식 책임전가 논쟁이었다. 사실 모든 국민들은 지난 10여 년 간 집권세력이 달라지더라도 민중들의 삶의 조건은 꾸준히 악화되어왔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없고, 양 진영 모두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것만으로는 이번 대선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양 진영은 과거 집권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일정한 단절과 쇄신을 꾀해왔다. 박근혜는 당명개정과 좌클릭을 시도해서 ‘이명박근혜’라는 공격으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고자 했고, 문재인은 안철수와의 새정치 선언과 친노동행보 등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문재인은 안철수와의 단일화 이벤트의 흥행을 이뤄내지 못했고 그 결과 안철수 사퇴 후 늘어난 15-20% 정도의 중도층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또 노동운동의 침체상황에서 친노동행보는 ‘관리’의 차원이었지 효과적인 득표전략은 아니었다. 여전히 문재인은 노무현의 적통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참여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는 박근혜의 공격을 넘어설 수 없었다. 반면, 박근혜는 경제민주화 등 핵심 정책에서 일정한 후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확대, 복지, 정치개혁 등에 있어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과오로부터 거리를 둔 상태에서, ‘준비된 변화냐 무책임한 변화냐’라는 쟁점을 형성했다. 또 아버지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성장 신화를 등에 업고, 경제위기 극복을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냈다. 그 결과 경제위기 상황에서 ‘현직의 위기’를 돌파하는 예외적 성과를 얻었다. 민주세력의 무능의 결과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세대구성의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20-30대는 줄어들고 50-60대는 증가했지만, 연령대별 지지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매 선거 때마다 그렇듯 여전히 높은 지역주의의 벽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보수후보가 수도권에서 대패하지 않는 한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유권자의 10.3%)과 광주전남전북(10.2%) 득표가 상쇄되면, 결국 부산울산경남(15.8%), 충청(10%), 강원(3%), 수도권(49%)에서 승부가 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구성의 변화나 여전히 강고한 지역주의만으로 MB 심판론의 패배, 참여정부 심판론의 승리, 박정희 시절 경제성장 향수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실 박근혜에 62.5%의 지지(출구조사)를 보낸 50대 유권자 층은 10년 전 노무현 지지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충북, 강원, 제주, 경기, 인천에서 모두 패배했고, 그나마 승리한 서울지역에서도 득표율 격차는 3.2%포인트 차로 매우 적었다. 중요하게 평가해야할 점은 민주세력의 무능이다. 이명박 정부는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유연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재벌대기업으로의 부의 집중을 심화시켰고,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고용이 불안해지고, 임금과 노동조건이 악화되면서 대중적 불만은 누적되어왔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야권에 기본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17대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던 친노계 정치인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일거에 정치력을 회복했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힘입어 6.2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등을 놓고 자신들의 집권 경험에 대한 뚜렷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모순적인 입장을 남발했다.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한미동맹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이명박 정부만 비판하려는 이들의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아마추어 정치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즉, 이들은 대안세력으로 부상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실제로 2011년 민주당 지지율은 몇몇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한나라당에 비해 열세였고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등 유력 야권주자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근혜의 지지율보다 낮았다. 이 때문에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만이 대선 승리를 위한 유일한 카드로 사고되었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문재인은 내용없이 ‘정권교체’만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자신의 공약조차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가령,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에 높은 지지율을 보인 50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은퇴 후 자산과 소득에 대한 실리적이고 전망적인 투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양측 모두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정년 연장, 하우스푸어 대책, 주택연금 가입연령 하향 조정 등 이들의 노후불안을 타겟팅한 세부정책에 호소하는 새누리당의 전략이 보다 주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능한 민주세력을 뒤쫓은 민중운동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한 세력은 반MB 야권연대를 내세우며 무능한 민주세력의 뒤를 쫓았다. 이들은 민주세력의 모순적 입장을 사실상 용인하면서 2012 총대선에서 일정한 의석과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주류화의 길에 나섰다. 이를 위해 구 집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동시에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통합진보당은 반MB 야권연대에 헌신하기 위해 민주당보다 더 과격하고 원색적인 MB 비난을 자신의 역할로 상정한 듯 했다. 대선 TV 토론에서 문재인과 이정희의 역할분담은, 지난 시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 내 좌파로서 할당받은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무원칙한 야권연대를 비판하면서 출마한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는 민중운동의 독자적이고 통일적인 대응을 모색하던 여러 세력을 폭넓게 규합하지 못한 채 민중운동 내 하나의 정파로서 개별 대응했다. 양 세력은 민중운동 전반의 우경화와 분열을 극복하는데 기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안적 이념,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김소연 후보는 0.1%(16,687표), 김순자 후보는 0.2%(46,017표)의 표를 얻는데 그쳤다. 민중운동은 야권연대의 자장 안으로 급속히 휩쓸려 들어갔다. 민중운동이 자신의 핵심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을 전개하기 보다는, 야권이 설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한 집회에 대중조직을 동원하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그 결과 총대선을 경과하면서 민주노총 주요 산별조직들은 자기 이해에 따라 실용적으로 야권 후보와의 협약에 매진했고, 민주노총은 이를 사실상 용인하면서 아무런 대선방침도 투쟁계획도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11월 28일 발표한 대선시기 ‘민주노총 조합원 3대 대중운동 지침’은 △반드시 투표하기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투표참여 보장 운동 △좋은 영화보기, 투표참여 SNS 전파 운동이었다. 지난 5년 간 민중운동은 이명박 비판에 성공하였나 지난 시기 민중운동은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을 상실해왔다. 자연스레 지배세력에 대한 정세적이고 근본적인 비판을 하는데도 한계를 보였다. ‘MB 쥐새끼’같은 풍자, 경제민주화에 노동의제를 하나둘 끼워 넣는데 급급한 실용주의가 근본적 비판을 대체해버렸다. 압도적 득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정부’라고 부르면서 자족적 비난에 머물렀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가 박정희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명박 정부와 달리 쇄신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비판할지에 대한 논점은 박근혜를 ‘유신의 딸’, ‘공주’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객관적 현실로부터 거리가 있고 설득력이 부족한 과격 비난과 악마화는 대중운동의 확대보다는 기존 지지층 내부의 자기위안의 의미가 강했고 따라서 대중적 기반을 넓힐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올 대선 이명박 정부가 대중적으로 심판받지 못한 점에 대해 민중운동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민중운동이 독자적 이념에 기반을 두고 비판과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저변을 확대할 수 없고, 나아가 대안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은 요원하다. 기껏해야 민주세력 내 좌파로 자리매김 될 뿐이다. 낙담보다는 반성이 필요한 때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과 향후 전망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 직선제 도입 이래 최초의 과반대통령이라는 점에서 형식적 대표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국회도 여대야소 상황이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는 친노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고 안철수의 신당 창당과 맞물린 이합집산의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인수위는 물론,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운영은 상당히 안정적일 것이다. 외교 정책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이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는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ISD의 경우 해외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대선 뒤로 미뤄뒀던 KTX 민영화, 송도 영리병원 설립 등 민영화 공세도 강행될 것이다. 국방 정책 역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도 박근혜는 ‘신뢰 프로세스’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 등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의 기조가 유지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조를 계승하겠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위기관리 전략이 한층 강화되는 변화도 나타날 것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이 747 공약(연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도약)을 내세웠던 것과 달리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당선되었다. 성장보다는 위기극복과 중산층 복원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임기 내에 고용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재정건전성과 기업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지원,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지원, 복지 확대가 상징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격은 경제위기와 양극화에 따라 대중적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후반부에 내걸 수밖에 없었던 ‘공정사회’론과 총대선 국면에서 여야가 공히 제기한 경제민주화-복지국가론에 대한 일정한 수용에 기초해있다. 즉, ‘저성장시대 위기관리’가 올 대선을 거치며 형성된 지배세력 내 컨센서스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지난 11월 21일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 기조발제문은 세계경제가 “2008년 이전의 활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적어도 3-4년은 걸릴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런 조건에서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를 주장하는 “분열적인 상황을 극복”할 것을 주장한다. 다만, “분출하는 분배와 복지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버거운 저성장시대”이므로 공공부문과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에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 선별적 복지의 확대, 양극화의 완화 및 개선 등이 현실적 과제로 제시된다. 다만, 이러한 정책과제는 금융의 건전성 감독 강화, 적정 자본규제, 고용친화형 경제정책, 부동산가격 안정을 포함한 물가안정, 재정건전성 확보 등 거시안정화 정책에 종속된다.(안국신, 「기로에 선 한국경제, 어떻게 할/볼 것인가?」) 그런데 미국, 유럽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국 성장세도 둔화된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이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례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코스피가 15% 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전체적으로는 6.6% 하락) 세계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위기가 심화할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거시안정화에 종속된 일정한 분배정책은 언제든 다시 역행할 수 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이 가진 모순으로 인해 대중의 불만은 언제든 여러 형태로 다시 분출할 수 있다. 노동자 민중운동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세적이고 근본적인 비판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태세를 갖춰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기 위한 태세를 갖추자 2012년 한 해 동안 진보정당의 우경화, 대중운동의 분할과 무기력이 지속되어온 결과 현재 민중운동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박근혜 당선 직후 안타까운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듯 이 어려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박근혜는 인수위와 정부 초기 일정한 개혁조치를 단행할 것이고, 이는 양극화 완화, 중산층 복원, 정치개혁 등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문재인에 투표한 48% 국민과의 대통합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조직되어있지 않은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 정책이 실질화할 것임을 예고함으로써 새 정부의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중운동,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은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험난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각성이 시급하다. 운동을 재개하고 새 정부에 맞서 투쟁태세를 갖추기 위해서 우선 민주노총을 재정비하고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구성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가 직선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민주노총 내 세력 간 충분한 합의 노력을 바탕으로 차기 지도부를 ‘원칙있는 단결 지도부’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재의 정파 간 세력구도 하에서 어떤 지도부가 들어서더라도 안정적인 사업집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으로서 기본적인 집행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향후 투쟁에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현장과 지역에서의 혁신 노력도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현장, 지역, 산별에서 투쟁전선을 구축하고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현장 활동가들의 새로운 결집이 필요하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세우기 위해, 경제위기 하에서 정부와 자본의 전략을 정확히 분석하고 각 산업 및 사업장, 각 지역별 대응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또한 노조운동의 진전을 위해 각 정파 및 의견그룹들이 기존의 관성화된 노동조합 활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혁신해나가야 한다. 기존 정파별 구도를 넘어 무너진 현장을 복원하고, 민주노조 운동을 강화하는 데 동의하는 활동가들이 지역산업별로 새롭게 결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진당 출범 이후 전통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이 해체되고 노선적 분할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반신자유주의 정치사회운동의 혁신과 공조를 추구해야 한다. 각 정파, 세력 별로 취약한 영향력을 보완하고 각 지역, 부문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기 운동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공동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금융과 노동] 2013년의 노동운동
낙담이 아니라, 진지한 반성과 각오가 필요하다 [%=사진1%]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과반대통령, 최초의 여성대통령, 최초의 부녀 대통령 등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양 후보의 정책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게다가 선거 막바지에 이를수록 이른바 3대 의혹(NLL 대화록,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댓글 알바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정 투표율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75.8%를 기록했다. 대선이 양자대결 구도로 압축, 양 진영 간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특히 보수 유권자층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1:1 구도로 치러진 첫 대선이었다.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이인제, 이회창 등을 포괄하는 보수연합을 창출했고, 야권도 심상정 예비후보가 등록을 포기하고 안철수, 이정희 후보가 모두 사퇴함에 따라 민주통합당 주도의 민주연합을 완성했다. 양 진영의 역량을 최고조로 집중시킨 총력전에서 MB 심판론이 패배한 것이다. MB 심판론의 패배, 참여정부 심판론의 승리 대선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기 확대된 양극화와 권위주의적 정치를 비판했고, 이에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아마추어 정치를 반복해선 안 된다며 대응했다. 가령, 문재인 후보가 반값등록금 시행을 미룬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를 비판하면, 박근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에 등록금이 폭등했다고 반박했다. 양 진영 모두 집권 기간 동안 실패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제살 깎아먹기식 책임전가 논쟁이었다. 사실 모든 국민들은 지난 10여 년 간 집권세력이 달라지더라도 민중들의 삶의 조건은 꾸준히 악화되어왔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없고, 양 진영 모두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것만으로는 이번 대선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양 진영은 과거 집권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일정한 단절과 쇄신을 꾀해왔다. 박근혜는 당명개정과 좌클릭을 시도해서 ‘이명박근혜’라는 공격으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고자 했고, 문재인은 안철수와의 새정치 선언과 친노동행보 등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문재인은 안철수와의 단일화 이벤트의 흥행을 이뤄내지 못했고 그 결과 안철수 사퇴 후 늘어난 15-20% 정도의 중도층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또 노동운동의 침체상황에서 친노동행보는 ‘관리’의 차원이었지 효과적인 득표전략은 아니었다. 여전히 문재인은 노무현의 적통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참여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는 박근혜의 공격을 넘어설 수 없었다. 반면, 박근혜는 경제민주화 등 핵심 정책에서 일정한 후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확대, 복지, 정치개혁 등에 있어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과오로부터 거리를 둔 상태에서, ‘준비된 변화냐 무책임한 변화냐’라는 쟁점을 형성했다. 또 아버지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성장 신화를 등에 업고, 경제위기 극복을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냈다. 그 결과 경제위기 상황에서‘현직의 위기’를 돌파하는 예외적 성과를 얻었다. 민주세력의 무능의 결과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세대구성의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20-30대는 줄어들고 50-60대는 증가했지만, 연령대별 지지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매 선거 때마다 그렇듯 여전히 높은 지역주의의 벽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보수후보가 수도권에서 대패하지 않는 한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구성의 변화나 여전히 강고한 지역주의만으로 MB 심판론의 패배, 참여정부 심판론의 승리, 박정희 시절 경제성장 향수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실 박근혜에 62.5%의 지지(출구조사)를 보낸 50대 유권자 층은 10년 전 노무현 지지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충북, 강원, 제주, 경기, 인천에서 모두 패배했고, 그나마 승리한 서울지역에서도 득표율 격차는 3.2%포인트 차로 매우 적었다. 중요하게 평가해야할 점은 민주세력의 무능이다.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실정으로 인해 이번 선거는 야권에 기본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야권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힘입어 6.2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등을 놓고 자신들의 집권 경험에 대한 뚜렷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모순적인 입장을 남발했다.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한미동맹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이명박 정부만 비판하려는 이들의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아마추어 정치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즉, 이들은 대안세력으로 부상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실제로 2011년 민주당 지지율은 몇몇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한나라당에 비해 열세였고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등 유력 야권주자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근혜의 지지율보다 낮았다. 이 때문에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만이 대선 승리를 위한 유일한 카드로 사고되었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문재인은 내용없이 ‘정권교체’만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자신의 공약조차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가령,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에 높은 지지율을 보인 50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은퇴 후 자산과 소득에 대한 실리적이고 전망적인 투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양측 모두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정년 연장, 하우스푸어 대책, 주택연금 가입연령 하향 조정 등 이들의 노후불안을 타겟팅한 세부정책에 호소하는 새누리당의 전략이 보다 주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능한 민주세력을 뒤쫓은 민중운동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한 세력은 반MB 야권연대를 내세우며 실패한 민주세력의 뒤를 쫓았다. 이들은 민주세력의 모순적 입장을 사실상 용인하면서 2012 총대선에서 일정한 의석과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주류화의 길에 나섰다. 이를 위해 구 집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동시에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통합진보당은 반MB 야권연대에 헌신하기 위해 민주당보다 더 과격하고 원색적인 MB 비난을 자신의 역할로 상정한 듯 했다. 대선 TV 토론에서 문재인과 이정희의 역할분담은, 지난 시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 내 좌파로서 할당받은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무원칙한 야권연대를 비판하면서 출마한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는 민중운동의 독자적이고 통일적인 대응을 모색하던 여러 세력을 폭넓게 규합하지 못한 채 민중운동 내 하나의 정파로서 개별 대응했다. 양 세력은 민중운동 전반의 우경화와 분열을 극복하는데 기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안적 이념,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김소연 후보는 0.1%(16,687표), 김순자 후보는 0.2%(46,017표)의 득표를 얻는데 그쳤다. 민중운동은 야권연대의 자장 안으로 급속히 휩쓸려 들어갔다. 민중운동이 자신의 핵심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을 전개하기 보다는, 야권이 설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한 집회에 대중조직을 동원하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그 결과 총대선을 경과하면서 민주노총 주요 산별조직들은 자기 이해에 따라 실용적으로 야권 후보와의 협약에 매진했고, 민주노총은 이를 사실상 용인하면서 아무런 대선방침도 투쟁계획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5년 간 민중운동은 이명박 비판에 성공하였나 지난 시기 민중운동은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을 상실해왔다. 자연스레 지배세력에 대한 정세적이고 근본적인 비판을 하는데도 한계를 보였다. ‘MB 쥐새끼’같은 풍자, 경제민주화에 노동의제를 하나둘 끼워 넣는데 급급한 실용주의가 근본적 비판을 대체해버렸다. 압도적 득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정부’라고 부르면서 자족적 비난에 머물렀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가 박정희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명박 정부와 달리 쇄신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비판할지에 대한 논점은 박근혜를 ‘유신의 딸’, ‘공주’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객관적 현실로부터 거리가 있고 설득력이 부족한 과격 비난과 악마화는 대중운동의 확대 보다는 기존 지지층 내부의 자기위안의 의미가 강했고 따라서 대중적 기반을 넓힐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올 대선 이명박 정부가 대중적으로 심판받지 못한 점에 대해 민중운동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야할 부분이 많다. 민중운동이 독자적 이념에 기반을 두고 비판과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저변을 확대할 수 없고, 나아가 대안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은 요원하다. 기껏해야 민주세력 내 좌파로 자리매김 될 뿐이다. 낙담보다는 반성이 필요한 때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과 향후 전망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 직선제 도입 이래 최초의 과반대통령이라는 점에서 형식적 대표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국회도 여대야소 상황이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는 친노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고 안철수의 신당 창당과 맞물린 이합집산의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인수위는 물론,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운영은 상당히 안정적일 것이다. 외교 정책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이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는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ISD의 경우 해외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대선 뒤로 미뤄뒀던 KTX 민영화, 송도 영리병원 설립 등 민영화 공세도 강행될 것이다. 국방 정책 역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도 박근혜는 ‘신뢰 프로세스’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 등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의 기조가 유지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조를 계승하겠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위기관리 전략이 한층 강화되는 변화도 나타날 것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747 공약과 달리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당선되었다. 성장보다는 위기극복과 중산층 복원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임기 내에 고용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재정건전성과 기업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지원,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지원, 복지 확대가 상징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격은 경제위기와 양극화에 따라 대중적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후반부에 내걸 수밖에 없었던 ‘공정사회’론과 총대선 국면에서 여야가 공히 제기한 경제민주화-복지국가론에 대한 일정한 수용에 기초해있다. 즉, ‘저성장시대 위기관리’가 올 대선을 거치며 형성된 지배세력 내 컨센서스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유럽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국 성장세도 둔화된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이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례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코스피가 15% 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위기가 심화할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거시안정화에 종속된 일정한 분배정책은 언제든 다시 역행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이 가진 모순으로 인해 대중의 불만은 언제든 여러 형태로 다시 분출할 수 있다. 노동자 민중운동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세적이고 근본적인 비판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태세를 갖춰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기 위한 태세를 갖추자 2012년 한 해 동안 진보정당의 우경화, 대중운동의 분할과 무기력이 지속되어온 결과 현재 민중운동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박근혜 당선 직후 안타까운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듯 이 어려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박근혜는 인수위와 정부 초기 일정한 개혁조치를 단행할 것이고, 이는 양극화 완화, 중산층 복원, 정치개혁 등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문재인에 투표한 48% 국민과의 대통합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조직되어있지 않은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 정책이 실질화할 것임을 예고함으로써 새 정부의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중운동,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은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험난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각성이 시급하다. 운동을 재개하고 새 정부에 맞서 투쟁태세를 갖추기 위해서 우선 민주노총을 재정비하고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구성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가 직선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민주노총 내 세력 간 충분한 합의 노력을 바탕으로 차기 지도부를 ‘원칙있는 단결 지도부’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재의 정파 간 세력구도 하에서 어떤 지도부가 들어서더라도 안정적인 사업집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으로서 기본적인 집행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향후 투쟁에서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현장과 지역에서의 혁신 노력도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기존 정파별 구도를 넘어 무너진 현장을 복원하고, 민주노조 운동을 강화하는 데 동의하는 활동가들이 지역·산업별로 새롭게 결집해야 한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세우기 위해, 경제위기 하에서 정부와 자본의 전략을 정확히 분석하고 각 산업 및 사업장, 각 지역별 대응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또한 노조운동의 진전을 위해 각 정파 및 의견그룹들이 기존의 관성화된 노동조합 활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혁신해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진당 출범 이후 전통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이 해체되고 노선적 분할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반신자유주의 정치·사회운동의 혁신과 공조를 추구해야 한다. 각 정파·세력 별로 취약한 영향력을 보완하고 각 지역, 부문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기 운동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공동실천을 모색해야한다.
누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대선후보 2차 TV토론 쟁점 평가 [%=사진1%] 지난 12월 10일, 경제·노동·복지를 주제로 한 대선후보 2차 토론은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를 토론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토론 이후 마치 스포츠 관전평처럼 ‘누가 잘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분분했으나, 각 토론 쟁점에 대한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벌의 ‘나홀로 성장’에 대비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저임금 일자리 문제에 대한 불만은 높아져가지만, 후보들이 토론에서 제시하는 정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후보들의 정책에 반영되었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대선 이후 민중운동의 과제를 고민해보자. 민생문제, 책임 떠넘기기 식 공방만 오고가 경제 분야 토론은 주로 민생위기의 책임에 대한 공방, 경제민주화 방안의 차이를 둘러싼 논쟁이 중심을 이뤘다. 문재인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민생 실패의 책임을 묻자, 박근혜 후보는 참여정부 때 주택가격, 등록금이 급등한 것을 지적하는 식으로 반박을 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책임 떠넘기기 식의 토론이 오갔다. 현재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경로에 접어든 것은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한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반영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수출-재벌 중심의 성장전략, 금융자유화라는 경제 전략을 일관적으로 유지해왔다. 이는 한국경제의 성장·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국부유출 및 자본도피 경향을 강화했고, 재벌과 국민 경제의 괴리를 확대시켰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는 점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서로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를 최종 비준한 것은 두 정부의 경제 정책이 사실상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박근혜, 문재인은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근본적 평가 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근본적 성찰 없이 경제민주화라는 말 잔치를 벌일 뿐이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 것은 재벌개혁 문제였다. 박근혜 후보는 2007년 자신의 공약이었던 줄푸세가 현재의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 캠프 내에서 경제민주화를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위원장마저 비판한 친 기업적 정책인 감세와 규제완화를 마치 저소득층의 민생을 위한 정책인양 포장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하며 다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돌아간 박근혜의 친재벌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토론이었다. 문재인 후보는 자신과 박근혜 후보가 어떤 정책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했다. 문재인의 재벌개혁 정책도 박근혜의 그것과 미미한 차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할 것이냐, 기존순환출자도 해소할 것이냐의 논쟁이 골목상권을 지키고, 중소기업을 살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핵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문 후보는 “재벌은 응당 개혁돼야 하지만, 재벌이 갖고 있는 경쟁력까지 해쳐선 안 된다”며 “제가 생각하는 재벌개혁의 목표는 재벌이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가 짚지 않은 재벌 문제의 핵심은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를 통해 형성된 수직적 하청계열화 구조다. 재벌은 후려치기라고 불리는 중소기업 간 부등가교환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것은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재벌체제의 변화란 곧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과 이를 지지하는 노동유연화의 전반적 변혁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후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재벌개혁론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재벌개혁, 재벌해체론은 진보적 대안이 아니다 한편, 재벌개혁론은 재벌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를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튼튼한 중소기업, 중견기업을 육성하자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중소기업, 중견기업의 성장이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의 향상과 직결되진 않는다. 현대자동차의 부품사인 SJM,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에서 벌어진 노골적 민주노조 파괴공작은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심해서 벌인 만행이었다.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 안에서 재벌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대차는 2000년대 들어 적시서열 방식의 생산을 확대해왔고, 강한 부품사 노조는 이러한 생산방식에 있어 방해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현대차 입장에서는 생산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하청 기업의 안정적 노무관리가 필수적이었다. 부품사 자본의 이해도 여기에 일치했다. 유성기업은 내부거래 확대 속에 유성기업의 부를 비상장계열사로 더 이전하려는 오너의 계획에 노조가 걸림돌이었고, SJM은 2세 경영권 상속을 위해 공격적으로 기존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내몰았다. 재벌해체론도 이를 간과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라그룹, 대우그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재벌해체 자체가 노동자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룹에서 빠져 초국적기업 혹은 사모펀드, 또는 국내 중견기업에게 인수된 경우에 해당 기업 노동자들은 극도의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역시 심각한 불안 상태에 놓였다. 그런 점에서 재벌개혁론 내부에서 노동자를 위한 선택지를 찾기란 어려워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기만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말잔치가 다시 한 번 드러난 쟁점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하여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서 벤처창업 활성화와 스펙초월 채용시스템 도입, 중장년층에게는 재취업교육과 고용정보제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고용문제의 핵심이 창업기회의 부족이나 교육과 정보의 부족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는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일자리 창출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재벌 대기업의 책임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 삼성·현대차 등 5대 재벌그룹은 2007년 대비 2011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76%, 매출액 79.5%, 당기순이익은 50% 늘었으나 종업원 수는 4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중 현대차그룹은 자산총액이 110.5%, 당기순이익은 202.6% 급증했음에도 고용증가율은 가장 낮은 18.4%에 불과했다. 퇴사를 고려한 순고용은 더욱 심각해, 5대 재벌의 4년간 순고용은 7만6000명으로 연평균 5%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수치만 보더라도 기업이 최소한의 고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잔업, 특근을 늘리면서 고용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2%]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없었다 박근혜 후보는 또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대표시정제도와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시정제도는 근로자 대표나 노조가 당사자를 대신해서 회사에 차별문제를 시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이며,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는 회사가 차별을 반복할 경우에는 손해액 10배를 금전으로 보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과연 이런 대책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정희 후보의 반박대로 한국의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1.9%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바로 용역업체의 계약해지 형태로 해고가 된다. 또한 몇 년 동안 노동조합을 유지해왔던 곳도,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시행 이후 용역회사와 원청의 사주 하에 만들어진 어용노조에 대항해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몇 년 동안 대화해왔던 노동조합도 없애지 못해 안달인 상황에서 대표시정제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도 마찬가지다. 현재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현대차는 2012년에 13억원이 넘는 이행강제금을 물고도 아직까지 단 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현대차의 계산으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보다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2012년에도 SJM, 유성기업 등 많은 회사들이 노조파괴 컨설팅회사나 용역업체에 많은 돈을 치르면서까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행태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전체적인 이익을 계산했을 때 금전으로 보상하는 것이 이익이라면, 회사는 얼마든지 돈을 치르면서도 정규직화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박근혜 후보는 현행 법률 상으로는 파견법에서 다루는 노동자의 근로제공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사내하도급계약에 포함하는 사내하도급법을 언급했다. 이처럼 파견법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을 도급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려는 이유는, 불법파견이라고 판정된 노동형태를 합법도급화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서, 오히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재벌기업을 옹호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 모든 것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노사정협의를 핵심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노사정 협의는 민주노총이 참여하든 불참하든 간에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 노동유연화라는 정부와 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도구였다. 노사정 협의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경제위기 고통을 전가할 명분으로 활용되어 왔다. 지금처럼 노동자운동 내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주류를 형성하고, 민주노총의 정치적·조직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향후 노사정 협의기구는 커다란 유혹이 되기 쉽다. 그러나 노사정 협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위험하다. 노동자운동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밝혀진 노사정 협의기구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계급대립이 격화 될 때 민주통합당의 위선과 기만, 내부 모순이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자 이번 TV토론을 통해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재벌을 옹호하고, 사내하도급법과 같은 노동악법을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문재인은 스스로 표현한 대로 재벌경쟁력을 중요하게 사고하며 이를 전제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를 추구한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금 정권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를 둘러싼 한 판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두 후보의 입장과 정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2013년은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녹록치 않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고 그 대안을 실행할 주체들인 민중 스스로의 힘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새로운 정부에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자.
여성‘대통령’이 아니라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사진1%] 지난 11월 18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대선 슬로건으로 제시하면서,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의 마음 같은 섬세함과 강인함으로 (나라를)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슬로건은 선거전략적인 측면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입장벽에 부딪히고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많은 여성들이 소위 금녀의 영역인 고위직에 여성이 진출하는 것 자체에 긍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이 때문에 이번 슬로건이 특히 수도권 중산층 고학력 여성으로부터의 득표를 목표로 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여성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기존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효과도 가진다. 어쨌든 슬로건 발표 직후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여성층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 박근혜 후보의 일가정 양립 정책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여성정책은 과연 여성에게 긍정적일까? 박근혜 후보의 6대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출산을 장려하고 이를 지원하는 내용이 그 핵심을 차지한다. 1번부터 4번까지 정책은 모두 일가정 양립 및 출산장려·지원 정책이다. 이는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기 추진된 정책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2%]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한 것은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남성 가장이 받을 수 있는 임금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일할 수밖에 없고 또 이로 인한 가정 내 공백을 채울 공적 사회서비스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도 동시에 나타났다. 문제의 원인이 경제위기,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부족한 공공서비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정책은 핵심을 벗어나 있다. 고학력 여성의 정부 요직 진출, 저소득층 가구의 출산 부담 완화 같은 정책들은 여러 계층의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개별적으로 지원하여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둘 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생색내기식 정책인 것이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여성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지원으로 직업훈련과 알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먼저 여성의 경력단절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여성노동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여전히 소수 정규직을 제외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임신을 하면 암묵적으로 퇴사를 종용받는 경우도 많다. 박 후보의 정책에는 그 동안 정부가 방관해온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빠져있다. 경력단절 이후 여성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역시 직업훈련과 알선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IMF 이후 전체 노동자의 고용률이 하락하고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하다. 가령 여성노동자의 59.4%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약4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여성은 일도 하고 가정도 보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단시간 비정규직 여성 일자리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또한 맞벌이가 필수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 가장이 생계를 부양한다는 편견으로 여성의 노동은 보충적인 것,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낮은 임금을 강요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증가한 보육, 간병 등 기혼 여성이 주로 일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들이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였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조건에서는 직업훈련과 알선을 해봤자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다시 고용될 뿐이다. 연령별 여성 고용현황을 살펴보면 40세 이전까지는 정규직이 비정규직 보다 많지만, 40세 이후로는 비정규직이 더 많고 특히 50세 이상부터는 취업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처럼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감내하도록 구조화된 여성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직업훈련과 알선이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그 정책은 일부 고학력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후보의 정책은 여성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낮은 노동조건, 공공서비스의 부족 등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여성에게 값싼 노동력이자 무급의 가사노동력으로서 이중의 부담을 지우면서 경제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어려움이 있어도 어쨌든 가사와 양육은 여성이 모두 책임져야하고 경제성장을 위해 출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효과를 가진다. 박근혜 후보의 아동 성범죄 강경대응 정책 박근혜 후보는 줄곧 아동 및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강경대응을 강조해왔는데, 최근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확정됨에 따라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시사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는 아동 및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사형까지 포함해서 아주 강력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2005년 한나라당 당대표 시절 전자발찌법을 통과시켰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외에도 박근혜 후보는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와 같은 정책들은 사회안전과 관련된 정책들이지만, 동시에 (특히 자녀를 둔) 여성들과의 공감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마련된 여성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범죄를 몇몇 ‘비정상적 개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이들에 대해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성범죄를 예방하는 데 한계적이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개인들 간의 갈등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의 일탈적 행동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은 술을 마시고 행한 실수,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일, 변태와 같이 비정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행 등으로 풀이되곤 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반응에서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를 즐겨봤다거나, 게임에 중독되었다거나, 대인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등 그들의 비정상적인 특징을 범행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이 성폭력과 성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성폭력은 여성을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가 양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성문화 일반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여성의 노출 사진과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섹시함을 강조한 광고를 통해 소비를 부추기는 행태가 일상화 되어있다. 또한 술시중을 드는 서비스부터, 노래방 도우미, 성매매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산업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이처럼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성문화에 익숙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면서 다양한 성폭력이 발생한다. 성범죄는 그러한 성폭력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성범죄에 대한 분노여론을 자신에 대한 지지여론으로 전환시키려는 박근혜 후보의 전략은 성범죄를 실질적으로 예방하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중들이 사회적 문제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나서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할 때 실질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특히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안타까운 여성대통령 논쟁 안타깝게도 박근혜의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계기로 촉발된 논쟁 속에서도 역대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반성, 진정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성찰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 측은 “출산과 보육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은 박근혜 후보에게 여성성은 없다”, “박 후보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일 뿐”이라고 논평했다. 황상민 교수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워보지 않은 박 후보는 생식기만 여성이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여성에 미달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또한 박근혜가 분만대 위에서 박정희를 출산한 그림 <골든타임>은 더 큰 논란을 만들었다. 박근혜 처녀 논란 및 박근혜 출산설에 착안해 딸이 아버지를 낳는 장면을 그려넣은 이 그림은 정치적 풍자라기보다는 여성성에 대한 공격과 조롱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 측에 대해 “미혼여성에 대한 집단모독”이라고 반격했고, 나아가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박후보의 인생을 “국가와 결혼한 삶”이라고 주장하며 기묘한(?) 방법으로 박근혜 후보를 방어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논쟁 구도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에 진정성이 있는지, 그의 정책이 여성의 권리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그의 과거 정치행적과 현 정책을 두고 논쟁하면 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결혼 및 출산 여부가 논란의 중심에 자리 잡은 현실은 여성과 여성정치인을 바라보는 기성 정치권의 시각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선택의 문제이고, 또 결혼, 출산, 보육의 경험 여부 자체가 여성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상식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내세우게 된 데에는 지난 10여 년 간 민주당과 주류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면서, 여성=부드러움, 여성=반부패, 여성의 정치진출=진보라는 등식을 강화해온 것도 일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명숙 의원이 2006년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로 임명되자 여성단체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여성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깨끗한 소통의 새로운 정치를 열 것이라 기대했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통합당 여성 의원들은 이번 박근혜 여성대통령 슬로건과 관련 “박 후보는 여성 대통령의 덕목인 평등, 평화지향성, 반부패, 탈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등식은 현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성의 기존 성역할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택한다는 것, 그 자체가 변화와 쇄신”이고,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민생을 챙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며, 가정주부가 가계부를 쓰듯 “나라살림 가계부”를 공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부당한 등식을 차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여성대통령 슬로건은 민주당과 주류 여성운동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다수 여성노동자의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포괄적 운동전략 보다는 여성의 정치권 진입에 급급했던 여성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한편, 박근혜 후보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특전사 경력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1월 1일 강원 지역을 찾아 “군대도 안 간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이 수두룩한 정당이 어떻게 안보를 말할 수 있나”며 “나는 6.25전쟁 때 북한 체제가 싫어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이고 특전사 군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안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후보가 바로나 문재인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한 바 있다.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싹쓸이한 강원지역 그리고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여성성을 강조하는 박근혜 후보와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재인 후보는 과거 지배 양당 간 논쟁구도를 뒤바꿔놓은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후보의 행보는 기존 지지층으로부터 일정한 반발을 무릅쓰고 진행되는 것이다. 보수주의 세력 내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고, 자유주의 세력 내에는 문재인 후보의 행보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두 후보가 이런 전략을 선택한 것은 양자 구도에서 어차피 자신에게 투표할 고정 지지층의 반발을 일정부분 무릅쓰더라도 상대방의 지지층을 흔들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여성의 삶의 개선과 권리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빠져있다. 여성의 정치권 진입에 급급했던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포괄적인 운동전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가 직접 나서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지역사회를 바꿔나가면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비판 11월 한 달 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11월 6일 후보등록 이전 단일화 합의 후 협상개시, 14일 단일화 협상 중단, 18일 민주통합당 이해찬-박지원 지도부 사퇴 선언과 새정치 공동선언 합의, 19일부터 여론조사 방식을 둘러싼 마라톤 협상과 갈등 등 단일화 과정은 많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23일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갑작스럽게 후보직을 사퇴함에 따라 지난했던 단일화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사진1%] 단일화가 필요했던 이유 애초 민주당이 주도하는 야권연대는 민주당 스스로의 힘만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2011년 민주당 지지율은 몇몇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한나라당에 비해 열세였고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등 유력 야권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근혜의 지지율 보다 낮았다. 그러던 중 2011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통 큰 양보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의 열세는 올해 4.11 총선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총선 전 대부분의 미디어와 여론조사 기관에서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당명을 개정한 새누리당은 복지담론을 일부 수용하면서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이제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참신한 이미지와 폭넓은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인식된다. 안철수 후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염원하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선 명분인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야권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새정치 공동선언에 대한 합의를 줄곧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내 기득권 세력이라 불리는 지도부의 사퇴라는 가시적 성과도 만들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새정치 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이후 후보 단일화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끝내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게 된다. 소통과 협치, 왜 안될까 단일화 이후에도 문재인 후보는 “안 후보와 함께 약속한 새정치 공동선언을 반드시 실천해 나가겠다”며 “민주화 세력과 미래 세력이 힘을 합치고, 나아가 합리적 보수 세력까지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통합의 선거 진용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새정치 공동선언은 이명박-박근혜의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구태정치와 단절하고자 하는 모든 미래 지향적 세력이 연대해야할 근거가 된다. 새정치 공동선언은 △새로운 국정운영,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안들은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뿐더러 정치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첫째, 선언문이 제안하는 새로운 국정운영이란 여야정 국정협의회 상설화, 노사정 협약 등 다양한 사회적 협의 구조 등을 통해 협치의 시대를 열자는 내용이다. 소통과 협의를 위해 애쓰겠다는 상식적인 말이다. 많은 국민들이 서로 헐뜯고 싸움만 하는 국회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에서 협치라는 말은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국회가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 핵심 이유가 대통령과 의원들의 소통의지 부족은 아니다. 여야 모두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큰 틀에서 정책적인 차별성이 사라진 것이 그 원인이다. 여야 공히 민생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비생산적인 폭로전과 꼬투리잡기에만 몰두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핵심 원인은 소통 부족이 아니라 무능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사정 협의 역시 마찬가지다. IMF 이후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데 막대한 정부지원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원하청 구조 속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받아왔다. 또 최근 창조컨설팅 사례에서 드러나듯 노동조합 활동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된다며 공격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 협의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 노사정 협의란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권력, 대통령 둘째, 새정치 공동선언은 국무위원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 등 국무총리의 권한 보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및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국회의원 연금제도 폐지, 비례대표 의석 확대 및 지역구 의원정수 조정 등 정치혁신을 주장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막대한 권력을 분산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국회의원 의원정수 문제였다.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다가, 문재인 후보와의 조율을 거쳐 최종 선언문에는 “의원정수 조정”이라고 표현되었다. 안철수 후보가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반정치 정서를 자신에 대한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살펴본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 및 책임총리제부터 살펴보자. 한국의 대통령은 정부 영역은 물론이고, 공기업, 금융기관, 대기업 인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또 지역주의와 결합해 국책사업 등을 매개로 연고지역에 배타적으로 이익을 집중시켜왔다. 이러한 1인 정점의 권력구조, 승자독식 구조인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나눠갖는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나 책임총리제 등은 말의 성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1998년 대선에서 호남지역 기반의 김대중과 충청지역 기반의 김종필이 연합하여 김대중 정부가 탄생했으나 권력분점은 이루어지진 않았다. 게다가 이처럼 책임총리제 자체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권력안배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치혁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뒷받침하는 검찰과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제어장치들 역시 실질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느 정부든 통치에 권력기관을 이용해왔고 비판세력을 제거해왔다. 검찰, 경찰, 정보기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감사원 등 대표적 권력기관과 방송사 및 언론사에서 기존 사람들을 퇴출하고 자파세력을 배치해 장악했다. 검찰의 권한 축소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문제가 정략적 갈등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한편,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관련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공통된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단임으로 자기 임기 동안 권력을 남용하다가 무책임하게 물러나버리는 현상을 개선하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킴으로써 책임있는 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선거주기를 조정하기 위한 개헌이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개헌 자체가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 정략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원포인트 개헌안이 낳은 정치권 내 분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선거 주기 조정을 위해서 자신의 임기를 축소하자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나설 가능성도 그리 높아보이진 않는다. 정당축소가 정당쇄신인가 셋째, 새정치 선언은 정당혁신을 위해 중앙당 권한과 기구 축소, 당의 분권화 및 정책정당화 추진, 강제적 당론 지양, 현행 국고보조금제 합리적 정비 및 축소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 안철수 후보는 중앙당의 폐지를 주장했었는데 이 역시 문구 상의 조정이 있었다. 어쨌든 선언문에는 기존 정당은 국민과 소통하는데 실패했으므로 정당의 기능과 권한을 대폭 축소하자는 방향이 대폭 반영되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커진 것은 정치와 정치인들이 민생문제 해결에 무능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정치이념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도 없이 지역주의와 외부인사 수혈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온 한국 정당정치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능한 정치인 집단의 규모가 크고 그들에게 많은 세금이 지급된다는 것에 대한 대중적 불만은 지극히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인을 줄이고 지원을 축소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퇴한 안철수 후보는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주장하면서 무능한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대중의 반정치 정서에 힘입어 자신의 지지를 끌어올리는 인민주의적 정치에 의존했다. 이러한 정치는 단기간에는 ‘그래! 변화가 필요해!’라는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대안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금세 실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개혁에 대한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을 반복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안철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정치 전반이 개혁과 위기의 악순환을 만들어왔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크고 지역주의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 유동적 중도층이 늘어나자, 정당들은 이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변모해왔다. 즉, 정당들은 대중의 선호를 빠르게 파악하는 시스템을 당 내에 구축하고, 의원들은 파악된 여론을 바탕으로 미디어 정치를 펼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렇게 되면 당원들의 이념적 지향이 당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스타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의 인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 선언이 주장하는 중앙당 축소 및 그 정책적 기능의 강화, 당론보다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화는 정당정치가 지역적, 이념적 존립기반을 잃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이러한 정당의 변모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된다. 반복되는 단일화 드라마 새정치 공동선언이라는 단일화의 내용도 문제지만, 단일화라는 형식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P 연합이 이루어졌고,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두 차례 대선에서 단일화한 후보가 모두 승리하면서, 당선가능성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가 당연하게 인식되곤 한다. 최근에도 작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박영선 단일화가 이루어진 바 있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정치판에서 당선을 목표로 한 단일화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매 선거 때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는 그만큼 정당정치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치인이 자기 노선에 따라 일관된 활동을 수행하여 성과를 내고 이를 통해 검증받기보다는 오직 당선을 위해 뭉치고 그 내부에서 권력을 배분받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또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권력을 두고 단일화 협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양측 간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지난한 갈등이 지속된다. 이번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 측은 본선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를 주장했고, 이 문항을 50% 반영하기로 합의하기까지 며칠 간 갈등을 빚었다. 협상 막바지에는 나머지 50%에 대해 적합도 조사를 할 것인지, 지지도 조사를 할 것인지를 두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문재인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적합하다고 보십니까’라고 묻는 적합도 조사를 주장한 반면, 안철수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고 묻는 지지도 조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에도 비슷했는데, 노무현 측은 “적합”, 정몽준 측은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난항 끝에 양측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타협했다. 2011년 서울시 재보궐 선거 단일화 과정에서는 여론조사, 배심원단, 국민경선을 각각 몇 % 반영할지 문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동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지난한 갈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있는 단일화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2002년 단일화가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해 그만큼 새롭고 획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화 이벤트가 반복될수록 그 흥행 효과는 반감되고 있다. 이번 안철수 후보의 사퇴 역시 지루한 단일화 드라마를 계속 끌었다가는 지지층이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는 구태정치 대 새정치라는 대결구도를 유지하면서 안철수 지지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동적 중도층을 붙잡고자 한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안철수 측의 지원사격이 필요한데, 안철수 후보의 사퇴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권력배분에 대해 합의한 후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선거 캠프 재구성 및 향후 권력 배분과 관련된 많은 쟁점이 잠복해있다. 단일화 드라마는 싱겁게 끝났지만 또다시 지루한 후속편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