쳉실링이 이번 세계여성학대회 한 워크샵에서 발표한 논문입니다. 이 글이 초고임을 밝히고 허락없이 인용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자료를 보내주셔서, 번역한 것을 올립니다. 기관지 '사회운동'에 실을 것을 제안했지만, 쳉실링은 학술지에 글을 실을 예정이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시대, 여성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더욱 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노동유연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여성들 대부분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기조로 하는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1차적인 책임자의 위치에 고정시키며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도록 하고 있다. 복지와 공공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시장화되면서 여성 빈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가사노동과 유사한 보살핌노동이 여성의 일로, 그것도 노동자로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형태로 확산된다. 더구나 장애여성의 독립된 삶이 보장될 만큼 사회적 지원체계가 갖춰지는 것은 더욱 요원해졌다. 초국적 곡물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는 WTO 농업개방과 이에 조응하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으로 농가부채가 급증하고 농가소득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여성농민들은 농사, 가사노동에 더하여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부업까지, 3중의 역할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들의 빈곤이 전반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성매매로 유입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을 문제 삼지 않은 채 법과 제도로 성매매를 근절하려는 시도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도덕적 편견과 더불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폭력 속에 방치했다. 초국적 투기자본이 국경을 마음껏 넘나드는 시대이지만, 노동자들만큼은 ‘인종’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분할되어, 이주노동자는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의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전쟁과 수많은 무력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듯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배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 여성들이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에 나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까지 행진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여성들, 각기 다른 직업, 신체적 특징, 성적 지향을 지닌 여성들이 국경을 넘은 연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여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여성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여성의 힘은 필수적이며, 여성의 요구는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노동자, 동성애자 …. 다양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함께 투쟁하고 한 목소리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다. ▶ 모든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할 권리를 갖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노동에 접근할 수 없어서도 안 되고, 특정한 노동을 강요당해서도 안 된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상관없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경제적 독립은 여성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다. 여성의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계약직 파견직, 하청, 외주용역 등 모든 형태의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하는 노동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최저임금제 하에서 법정최저임금은 대다수 여성들에게 임금의 최대치가 된다. 이러한 현실은 변화되어야 하며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이 주어져야 한다. ▶ 지금껏 여성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이자 최종 책임자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여성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또한 가사노동의 연장선에 있는 보살핌 노동을 여성의 노동으로 고착시켰다. 더 이상 육아, 노인부양,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여러 일을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사회화되어야 하며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말하는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은 여성을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할 뿐이다. ▶ 여성농민은 ‘여성’ 이자 ‘농민’이다. WTO FTA로 인한 농업개방으로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여성농민은 농사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며 가사와 가계소득을 보충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농민의 지위를 ‘무급가족종사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있어 여성농민의 기여는 인정되어야 하고 여성농민은 ‘여성’ 이자 ‘농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 여성의 신체는 여성 자신의 것이다. 출산과 모성은 여성에게 의무가 아닌 권리여야 한다. 여성 스스로가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성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할 권리, 출산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권리를 모두 가져야 한다. 따라서 낙태와 피임은 여성들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윤리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여성들의 권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 여성의 신체는 거듭 여성 자신의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의 신체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 ▶ 여성과 남성의 결합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여성과 남성의 자유로운 관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계보를 유지하는데 소외된 채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결혼을 이유로 여성의 자율성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여성의 빈곤이 심화되면서 결혼은 여성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단으로 장려된다. 여성은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 의지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결혼할 권리가 있다. 또한 독신을 선택할 권리, 언제든 결혼관계에서 돌아올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불이익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 ▶ ‘건강가족기본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복지와 공공서비스의 축소, 상품화는 가족 내에서 여성의 의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가족기본법’은 출산과 양육, 노인부양이 이루어지는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며 이러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 유지하는 것을 강요한다. 동시에 다른 모든 형태의 가족을 국가의 지원으로부터 배제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다. ▶ 자연은 여성의 삶의 터전이다. 여성 농민, 여성 어민은 오랜 세월동안 노동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생태계를 보존하는 지혜를 터득해왔다. 토지와 갯벌, 바다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삶의 터전 유지하고 활용하는 지혜 또한 여성의 것이다. 여성 농민과 여성어민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무분별한 개발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 여성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조직화할 권리가 있다. 또한 스스로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 학교에서, 지역공동체, 세계 곳곳의 모든 곳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 ▶ 신자유주의는 여성들을 포섭과 배제의 전략으로 분할시킴으로써 여성의 계급화를 심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의 요구는 더욱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배재한 여성들의 요구가 보편적인 여성의 요구로 구성되어야 한다. 여성의 새로운 연대는 여기서 출발한다. ▶ 우리는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에 충분한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몸이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의약품에 특허를 매겨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단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여성에게 적합한 의료체계가 개발되어야 하고 이를 모든 여성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주거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의료, 상수도, 전기, 가스 등 필수서비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돈이 있어도 돈이 없어도 누구나 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모든 형태의 전쟁이나 무력분쟁이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전쟁이나 무력 분쟁의 시기에는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다른 형태의 극단적인 폭력이 심화된다. 강간 등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이 적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전술로 채택되는가 하면 여성을 공동체의 ‘소유물’로 간주하거나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의 상징과 적을 동일시함으로써 적을 무력화하는 등 전쟁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 모든 이주자들은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인신매매, 노동착취, 성적 착취, 가정폭력, 빈곤, 인종차별 등 이주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특히 이주자를 범죄인으로 취급하여 단속 추방하는 것은 이주 여성이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외국인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은 이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기 쉬운 존재라는 편견을 낳는다. 이로써 여성들은 이주와 동시에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주로 고용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일한다. 그러므로 이주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편견은 사라져야 하고 이주여성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온전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 장애여성은 인간이자 여성으로 독립된 삶을 꾸려갈 권리가 있다.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안전하게 출산할 권리가 있으며 성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적절한 체계가 사회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 ‘무한한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 ‘보호받아야 할 여동생’, ‘정숙한 여성’,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 등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규정은 여성의 권리를 파괴하고 여성의 삶을 더욱 억압적으로 만든다. 모든 여성은 타인에 의해 규정받지 않고 그 자체로 완전한 인간으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 어느 누구도 여기에 수록된 권리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지속할 목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해체하고 여성의 연대를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권리는 이후에도 무한히 추가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5년 10월 17일 전 세계 릴레이 행진이 마무리되는 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24시간 연대행동에 동참할 것이다. 다른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오에 모여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실현할 것이다. 또한 3월 8일 여성의 날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여성의 연대가 실현되는 날이 될 것이다.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반대투쟁,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등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 진행되는 장소에서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드높일 것이다. 2005년 7월 3일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 참가자 일동
세계여성행진과 함께하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일정 중 하나였던 성노동자운동 토론회 자료집 목차는 ▶ 한국 성노동자 운동과 세계여성행진: 젠더-섹슈얼리티 정의에 입각한 “어너더 월드 이즈 뽀시블”(고정갑희, 『여/성이론』 편집주간) ▶ 세계화 시대, 성매매를 저항의 공간으로 (엄혜진,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 성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자! (김정은,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 ▶ '한국의 성매매 특별법이 성노동자들에게 끼친 영향' (이선희, 전국성노동자준비위원회 한여연)
7.3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에 참가하면서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약칭 전성노련) 부대표 정 희 주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을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에는 고민도 있었습니다마는 '성노동자도 노동자' 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놓고 여러분들처럼 이해하려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생기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6월 29일 전국성노동자연대 출범 행사장에 시민사회단체 친구들이 연대 투쟁차 피켓을 갖고 나오셔서 격려발언까지 해주셨구요, 학계에서도 교수님들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행법과 다소 충돌하기는 해도 노동자가 분명합니다. 단지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할 따름이지요. 우리가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 신분일 때 비로소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노예라고 주장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노동자가 꼭 되어야 합니다. 성매매 특별법 이전까지는 전국의 집창촌 성노동자들은 약 1만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적 성매매를 총 망라하면 가임여성의 10% 정도인 최대 2백만명까지라고 여성단체도 말하고 있으니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의 여성들이 이 분야에 일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다른 일자리를 두고 성노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 여성들이 특별히 많은 돈이 탐난다거나 명품이 필요해서인가요? 아니면 일부에서 말하듯이 감금당했거나 성노예라서 그럴까요? 특히, 작년에 한나라당 김충환의원이 '단기간에 성매를 척결한다면 고교를 졸업한 이후인 18세부터 30세 사이의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국감장에서 발언하는 바람에 성노동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웠습니다. 이런 생각은 성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들은 성노동자인 여성문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단순하게 폄하시킵니다. 성노동자들은 과소비를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노동자들 절대다수는 가족들의 가난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인 여성들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벼랑에 몰린 가족들은 생계와 병마에서 헤어날 길이 없고 결국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로 추락하고 맙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최소 몇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이미 손쓸 정도가 없을 정도가 되어 채권자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빚에 시달려보신 분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그런 극단적인 경제상황에서 성노동자들은 업소에 가서 선불금을 요구하는 것이죠. 이것이 선불금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면 업주들은 사채나 은행대출을 받아 성노동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매매 특별법에서 성매매와 관련한 선불금을 무효화시키면서 선불금을 주는 업주가 무슨 악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는데, 그건 잘못 이해된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돈을 미끼로 강제로 성매매 시킨다면 그런 사람은 당장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돈은 물론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일하는 집창촌에는 업주에게 어느 정도의 선불금을 받은 성노동자들 다수는 선불금 무효화 조항에도 불구하고 그 돈을 떼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도의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성매매 특별법 이후 남아 있는 업주들은 영세한 분들이 많아 어쩌면 빈민들끼리 기대어 사는 게 요즘 집창촌 모습이라고 보셔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편부 편모거나 어린 동생과 병든 가족이 있는데 여러분의 학력은 중졸에서 고졸 사이입니다. 그리고 빚까지 포함해서 한달에 들어가야 할 돈이 약 4백만원입니다. 이 금액은 저희가 조사한 통계입니다. 여성 여러분들은 어떤 일자리를 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답변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성노동자 여성들에게 덧씌우는 오명과 낙인입니다. 성노동자들을 그곳에 가서 일해야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미 절반을 훨씬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노동자들이 짊어진 생의 무게에 비해 마땅한 일자리는 정말 구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매매를 줄이기 바란다면 정책의 중심이 빈부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성노동자들의 자활에 대해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만 성노동자들이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과 경제부분을 감안한다면, 이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보아 자활대책을 생각한다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탈성매매여성을 위해 여성가족부가 지급한다는 1인당 37만원 수준의 긴급생계비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 학원에 가서 기술을 배워 자활시킨다고 하지만, 기술을 배우는 기간동안 어떻게 생존할 것이며 배운 기술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비관적입니다. 성노동자들 자활을 진정 돕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너무 힘든 가정들을 세밀하게 체크해서 돌볼줄 아는 사회복지시스템이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성 성노동자들이 실제 가장으로서 지고 있는 경제적 부담감을 많이 덜어줄 수 있으며,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산재한 재활시설 또한 단지 750여명의 여성들을 수용할 따름이니 당국의 재활정책이 얼마나 부실한지 이해가 가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성노동자들은 사실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알고보니 성매매 금지주의 정책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일이 이미 대만에서도 있었습니다. 8년 전 천수이벤 총통이 정권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시민 중산층의 표를 모으기 위해 공창제를 폐지한 것이 그것입니다. 저희가 여성계 일부 및 현 정권이 개혁정권 이미지를 앞세우기 위해 성매매 특별법을 강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두는 것도 대만 사례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만의 성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합법적인 노동권 쟁취를 위해 힘든 투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만 사회 곳곳에는 공창제 폐지와 무관하게 지금 사창이 범람 중입니다. 지금 한국은 대만의 경우를 열심히 뒤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책이 GNP 3만불을 향한다면 우리가 본받을 나라가 대만이 아니라 유럽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럽은 성산업에 관해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를 채택해 성인 남녀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국가가 일일이 규제하지 않습니다. 현행 성매매 금지주의 하에서는 대한민국의 성인들은 누구나 예비성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 신체의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성노동과 관련하여 성인남녀 모두에게 비범죄주의를 적용해야 합니다. 그럴때만이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또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는 성과 관련한 인신매매(sex trafficking)가 아닌 자발적 성노동(sex working)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반인권 악법인 성매매 특별법 폐지 운동에 앞장설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일자리를 없애려는 이른바 '집창촌 폐쇄법안' 추진에도 강력히 제동을 걸 것입니다. 저희 성노동자들은 단언합니다. 성노동자 운동은 빈민운동이며 사회변혁운동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오명에 시달려온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인간선언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요구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공론화에 나서 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세계여성행진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않게 한국의 모든 노동자들과 더불어 주권자로서 생존권과 노동권 건강권 쟁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7 월 3 일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
7월 3일,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 여성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동시대 페미니즘으로서 여성운동은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가장 많이 변혁해온 사회운동이다.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가치(존엄성)와 권리를 의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세계를 변혁했다. ‥ 1980~90년대 신자유주의와 우파의 전진에 따라 여성운동은 여성이 자신의 저항을 세계화 할 수 있도록 투쟁했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세계여성행진은 배제와 증오 위에서 번영하는 억압의 체계로서 가부장제·인종주의·자본주의가 우리의 생명과 세계를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세계적 행동을 위한 페미니즘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2000년에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행진을 조직했고 또 오는 2005년에도 또다시 행진을 조직할 것이다. (세계여성행진, 2003년 세계사회포럼 평가 中) 1995년, 페미니즘의 국제주의에 있어서의 두 개의 계기 올해로부터 10년 전인 1995년은 페미니즘의 국제적 논의와 실천에 있어 두 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해이다. 하나는 12개 주요 부분의 전략목표와 행동 계획으로 구성된 북경행동강령을 채택하고 성주류화 전략을 공식화한 제 4차 유엔 세계여성대회라는 계기이다. 다른 한편 북경여성대회에 참석한 일부의 여성활동가들은 같은 해 4월 캐나다의 퀘벡에서 10일간 진행된 ‘빵과 장미를 위한 행진’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시킬 것을 결의했는데, 이는 2000년의 행진 이후 바로 지금의 두 번째 릴레이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그 출발에 있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북경여성대회(성주류화 전략)와 세계여성행진은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여성운동이 조직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다른 차원의 계기는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에 있어 명백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는 두 개의 계기가 가지는 기원과 성격의 측면에서 일면 자연스런 귀결이며, 오늘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형성에 있어 각기 다른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하나의 계기, 북경여성대회 세계여성대회는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정한 것에 기원을 두는데, 같은 해 멕시코에서 열린 1차 세계여성대회에서는 ‘UN 여성 10년(1976~1985)’을 선포한다. 이 10년의 계획은 여성을 생산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는데, 많은 발전도상 국가들에서 여성이 발전의 혜택에서 배제되었다는 인식 하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여성을 보다 적극적인 생산의 주체로 재정의 하려는 시도이다. 그 후 1980년의 코펜하겐 여성대회를 거쳐 ‘UN 여성 10년’을 평가하는 자리였던 나이로비에서의 3차 세계여성대회는 지난 10년의 계획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이 평가된다. 여성의 의사결정 능력과 시장에서의 협상능력의 취약함이 주요 원인으로 제기되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성주류화 전략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는 ‘인간중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여성선언문에 근거해 “체계적인 절차와 메커니즘을 향한 도약을 의미하며 젠더이슈를 정부와 공공기관의 모든 의사결정과 정책실행에 고려하여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성주류화 전략이 공식화된다. 이에 따라 12개의 행동강령이 채택되었는데, 빈곤, 여성에 대한 폭력, 경제, 교육 및 훈련, 건강, 무력 분쟁, 경제, 권력 및 의사 결정, 제도적 메커니즘, 인권, 미디어, 환경, 여아(女兒)등의 12개 주요 의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세계여성대회의 기원, 그리고 유엔을 중심으로 세계의 NGO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라는 그 성격 상 성주류화 전략은 일국 차원에서는 각종 정부 기관의 구조와 정책결정, 예산 배분과 같은 쟁점이, 국제적 차원에서는 각종 국제기구들에 대한 압력과 개입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따라서 북경여성대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페미니즘의 국제적 실천과 논의에 있어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략의 주요 방향이 정부와 국제기구들에 여성적 의제와 절차를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에 맞추어 지는 것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서 이러한 의제들에 대한 확장된 토론은 북경대회 이후 사실상 봉쇄되었고, 그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사실상 각 국 정부로 ‘이관’되었다. 그에 따라 참여하는 NGO와 여성운동은 정부의 정책실행에 대한 감시자, 또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또 하나의 계기, 세계여성행진 북경여성대회가 열린 1995년 4월, 캐나다의 10개 연방 중의 하나인 퀘벡주에서는 850여명의 여성들이 퀘벡여성연맹의 주최로 여성들의 빈곤을 제거하기 위한 분명한 조치를 요구하며 10일간의 행진을 진행한다. 이들 중 일부가 북경여성대회 참여하여 퀘벡의 행진을 세계화 할 것을 결의하고, 1998년 몬트리올에 모인 65개국 140명의 대표자들은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를 행진의 두 가지 의제로 채택, 이에 관한 17개 요구목록을 작성하여, 2000년에 전 세계적인 행진을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8일부터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세계여성운동의 네트워크 결성과 함께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까지 까지, 전 세계 여성들이 릴레이 행진을 조직하게 된다. 세계여성행진은 결성 이후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 여성들의 요구와 행동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세계사회포럼에의 적극적 결합 등과 같은 활동을 통해 대안세계화 운동에 페미니즘의 과제를 결합 내기 위한 활동을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의 과정에서 북경행동강령이 채택된 지 10년인 올해 동일한 방식의 두 번째의 세계 릴레이 행진을 기획하였고, 2004년 세계여성행진 총회에서 채택된 평등, 자유, 연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중심 가치로 하는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이 이번 릴레이 행진의 기초가 된다. 퀘백여성연맹의 활동가로서 세계여성행진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브리짓 베르디에르는 세계여성행진을 ‘되돌릴 수 없는 운동’으로 표현하며, 세계여성행진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성공’했던 이유가 행진이 내세우는 ‘빈곤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가지는 보편성을 꼽는다. 이와 같은 보편적인 목표 하에 각 국가별, 대륙별로 제기하고 있는 목표와 의제들은 최저임금 보장, 무상의 안전한 낙태에 대한 권리, 토지개혁, 주거권, 빈곤, 육아지원, FTA 협상 중단,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여성의 성기절단, 살해 반대 등 이들 모두가 동시대 여성운동의 요구라는 것이 매우 놀라울 만큼 다양한 차원이다. 또한 이러한 요구들을 조직하고 실천하는 각 국가, 대륙별로의 여성운동의 역사와 성격 역시도 그러하다. 세계여성행진은 아직 형성 중인 운동인 동시에, 여성들의 보편적 요구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95년 이후 한국의 여성정책 한국정부는 지난 2월 뉴욕에서 북경행동강령 10년의 평가를 목적으로 하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총회에 참석하여 지난 10년 간 북경행동강령이 제시한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밝혔다. 여성발전기본법 제정(1995), 여성부 신설(2001)등 여성의 공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 성폭력특별법(1994), 가정폭력특별법(1997), 성매매방지법(2004)등 여성에 대한 폭력 및 성적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 등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마련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대되어 왔다고 말했다. 북경여성대회의 선언과 행동강령을 적극 수용하여 성주류화 전략을 운동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던 한국의 주류 여성운동들의 평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체적인 실행과 현실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 정도가 그 차이라 할 수 있다. 북경행동강령 실행 10년을 앞두고 작년 6월 태국에서 개최된 '북경+10 여성NGO 포럼'을 전후한 평가에서 여성단체들의 핵심적 평가는 유엔 여성차별위원회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여성정책이 ‘법·제도상의 평등’과 ‘실제상의 평등’ 간의 괴리가 심하다는 점으로 모아진다. 여기서 말하는 법·제도상의 평등은 한국정부가 지난 10년의 성과로 소개한 것들이다. 그리고 실제상의 평등은 여성 비정규직의 확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 직장과 가사의 양립 지원정책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를 의미한다. 성주류화 전략의 방향에 따라 공적영역으로 여성들이 진출하고 정부의 정책결정에 개입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이제까지 주력했다면, 이제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2005년 한국 여성의 현실 성주류화 전략의 기원이 되는 ‘UN 여성 10년’이 1960·70년대의 발전이 지나치게 가혹한 여성의 희생 위에 기반해 있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고, 구조조정에 있어서의 보다 ‘인간적’인 면모의 도입이 성주류화 전략이라면, 한국에서의 빈곤의 여성화가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의 부족에 따른 것이라는 주류 여성단체들의 인식은 매우 정확하다. 이제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으로 인한 여성들의 이중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고, 앞서 마련된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가져다 줄 실제적 평등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눈만 뜨고 살 수 없듯이, 정부와 여성부, 여성단체들이 한목소리로 그 성과를 칭송하는 각종 여성관련 제도들의 한 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또한 직시해야 한다. 여성들의 불안정한 노동에 돌이킬 수 없는 쐐기를 박아 넣을 비정규직 관련 법 개악안 제·개정은 단지 몇 개월 유보되었을 뿐이고, 160원이 인상된 시급 3100원, 월급 70여 만원의 최저임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라는 인간적이기는커녕 피도 눈물도 없는 이 냉혹한 현실을 말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한 책임은 여성들의 ‘의지’ 문제로 전도되고,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개편이 말해주듯 여전히 여성문제에 대한 국가의 접근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여성인력활동이라는 이름 하에 가사와 직장의 양립이 의무처럼 장려되고 있지만,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절대 변경될 수 없다는 경고이자 단속인 셈이다. 또한 이즈음 한국에서의 여성의 현실을 말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 등장하는 이주자들처럼 때로는 투명인간으로, 때로는 하인처럼 또한 언제든지 범죄자라는 낙인에 휘둘리며 그렇게 존재했던 이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단 한순간도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이주여성들과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는 더 이상 부재하는 것인 양 가장할 수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이주 여성들의 유입은 국제결혼, 이주노동, 성산업 등 경로도 날로 다양해지고 그 숫자만도 이미 40 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주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이주노동자 일반이 그러하듯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체 이주여성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치할 만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의 경우 마을 전체의 감사 하에 각종의 가사노동과 농사일, 직장일 등 이중삼중의 노동을 수행하면서 언어차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없이 거의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가 다반사다. 어떤 경우이든 이주여성들의 성산업으로의 유입은 매우 빈번하다. 또한 작년 하반기 성매매방지법의 제정과 시행 이후 성매매여성들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매매방지법으로 대표되는 우리사회의 주류적인 성매매에 대한 접근이 성매매 여성에 대한 도덕적 단죄에 기반해 자신들의 인권과 실제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는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호명하고 자기 조직화를 진행 중에 있다. 역사적 가족형태가 경제적 자립의 한계를 볼모로 여성을 가족 내로 유폐하고 남성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가족 밖에서의 남성의 성욕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아 온 가부장제라는 현실을 삭제하고서는 성매매에 접근할 수 없다. 또한 성산업의 확대를 노골적으로 의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다른 얼굴을 감춘, 금지주의라는 국가의 개입으로 성매매의 폐절은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더 이상 피해자의 지위에만 머무는 존재들 일 수 없다. 7월 3일,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이러한 여성들의 다양한 현실과 요구는 물론 단일한 하나의 이슈로 수렴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상호 이해와 연대를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역사적 가부장주의라는 구조를 드러내고 그를 변화시키기 위한 공동을 노력을 조직할 수 있다.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에 기반해 세계 곳곳의 여성들과 연대하고 공동의 실천을 조직하고 있는 세계여성행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형성해야 할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는 각 국가별, 대륙별로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들이 존재하고, 전통과 종교에 기반한, 또한 전쟁이 야기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고발되고 있다. 또한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의 ‘성노동’이라는 접근을 둘러싼 논쟁처럼 의제와 운동의 전략에 있어서의 차이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보편적 의제를 통해 보다 많은 여성의 연대와 결집을 도모하는 세계여성행진의 전략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으로서 우리는 여성들의 요구와 의제가 정부나 여성기구에 의해 대리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자기조직화와 연대, 즉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해 제기되고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동시에 이는 세계여성대회 및 성주류화 전략을 방향으로 하는 여성운동과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이는 다양한 여성의 요구와 지향을 조정하고 수렴할 수 있는 운동의 운영원리를 계발하고 공동의 지향을 형성할 수 있는 필수적인 토양이다. 또한 대안세계화 운동, 사회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인데, 세계여성행진이 세계사회포럼에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의 현실을 변혁하려면 세계를 변혁해야 함을 알고 있듯이, 여성과 페미니즘 없이는 ‘또 다른 세계’도 불가능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전세계 여성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로를 출발하여 미주와 유럽, 호주와 일본을 거쳐 7월 3일 한국에 도착하는,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 여성들의 투쟁과 연대의 의지를 두 팔 벌려 맞이하자.
어디 심포지엄인지는 모르지만, 연세대학교 김현미 사회학과 교수가 2003년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한글 화일의 밑줄은 제가 친 것입니다.
작년 민노당 릴레이 토론회때, 5번째 주제였습니다.
브리짓 베르디에르(Brigitte Verdi re) | 퀘백여성연맹, 세계여성행진 정보통신팀 * 번역: 진재연| 정책편집부장 <역주> 2005년 3월 8일 브라질에서 출발한 전 세계 여성 릴레이 행진은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페루, 쿠바, 온두라스, 멕시코, 미국 등을 거쳐 5월 1일 캐나다에 도착했다. 릴레이 행진의 상징인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과 '연대 퀼트'가 밴쿠버, 위니펙, 몽크톤 등 캐나다의 주요 도시를 거칠 때 마다, 각 지역의 여성들은 집회를 열고 헌장을 낭독했다. 헌장과 퀼트는 5월 7일 이번 릴레이 행진을 조직한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인 〈세계여성행진〉의 발상지 격인 퀘백에 도착했다. 15,000명의 여성들이 모여 헌장 도착점에서 의회 앞까지 인간띠를 잇고 손에서 손으로 헌장을 전달했다. 퀘백에서는 이 릴레이 행진이 여성운동의 주요한 사업이다. 그곳의 활동가인 브리짓 베르디에르가 세계여성행진의 역사와 체계, 그리고 지난 5월 7일 퀘백 여성들의 행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평가를 담은 이 글을 보내왔다. 지난 호에서 전했듯이, 7월 3일에는 세계여성행진이 한국에 도착한다. 7월 3일 일본에서 넘어와 7월 6일 필리핀으로 전달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한편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동참하고 있는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 행진에 동참하려고 한다. 여러 단체들과 함께 헌장과 퀼트가 한국을 지나는 동한 펼칠 공동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회원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5년 5월 7일, 퀘벡 여성들 15, 0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캐나다 내 영어권 지역(*역주-헌장이 거쳐 온 밴쿠버, 오타와, 몽크톤 등의 도시를 가리킴. 이 지역과는 달리 퀘백은 불어권이다)을 거쳐 퀘벡에 도착한 헌장을 전달받기 위해서였다. 퀘백 여성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번 릴레이 행진은 2004년 12월 10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채택된 헌장을 근간으로 해 전 세계와 지역에서 거대하게 조직되었다. 2005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세계여성행진〉은 이 헌장을 국제적으로 발표했다. 〈세계여성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은 자신이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의 기본 원리를 이 헌장에 담고자 했다. 헌장에는 이러한 세계를 건설하는데 기초가 되는 필수 원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31개의 선언이 담겨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차별, 착취, 억압, 불관용이 없는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며, 이는 정의, 자유, 평화, 연대, 평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장이 처음 발표된 브라질 상파울루에는 브라질 전역과 다른 나라에서 온 약 30,000명의 여성들이 모여 최소한의 적절한 임금, 자유롭고 안전한 무상(無償)낙태, 토지개혁, 주거접근의 권리를 주장하고 성폭력, 인종주의, 군사주의,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후 헌장은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을 진행하면서 여성들은 이웃 나라로 헌장을 전달하고 헌장의 가치를 나타내는 퀼트를 제작한다. 여러 나라에서 제작한 퀼트가 덧붙여져서 거대한 패치워크가 된다. 릴레이 행진은 2005년 10월 17일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부르키나파소가 마무리 장소로 선정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여성들이 특수한 폭력(성기절단, 조혼, 일부다처제 등)아래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여성행진의 역사 1995년 5월~6월 : 850명의 여성들이 10일 동안 빈곤제거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며 퀘백을 행진했는데(*역주-빵과 장미를 위한 행진), 〈퀘백여성연맹〉이 주최한 이 행사는 이후 <세계여성행진>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뒤에 언급될 2000년 행진에서는 남반구 여성들의 상황을 반영하여 <세계여성행진>의 두 가지 퀘백 의제(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를 제안하게 된다. 1998년: 65개국의 140명의 대표자들이 몬트리올에 모여 행진의 두 가지 주제(세계의 빈곤제거, 여성에 대한 폭력제거)를 채택했다. 또한 이에 관한 17개 요구목록을 작성하고, 2000년에 전 세계적인 행진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8일부터 10월 17일(세계 빈곤철폐의 날)까지, 전 세계 여성들은 릴레이행진을 진행하게 된다. 2000년 : 드디어 3월 8일 이 행사가 시작되었다. 참가한 여성들은 행진하면서 요구목록에 대한 지지서명을 받는 캠페인을 벌였다. 2000년 내내, 각 국 세계여성행진 조직담당자들은 그 나라의 요구목록을 작성하고, 전국적인 행동과 행진을 조직했다. 161개국의 6000개 이상의 여성운동조직이 이 행진에 참여했다. 2000년 10월 15일 : <세계여성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각 국 여성운동의 대표단은 미국 여성들이 조직한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워싱턴에 모였다. 집회 다음 날, 대표자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지도자들 앞에서 이 기구들이 여성들에게 가하는 약탈적 정책을 고발하였다. 2000년 10월 17일 : <세계여성행진> 대표단이 유엔 책임자들에게 요구목록을 전달하는 동안 10,000명의 여성들이 뉴욕 거리를 행진했다. 또한 대표단은 전 세계에서 곳곳에서 모은 5백만의 지지 서명을 전달했다. 그 후에도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2001년 10월에 3차 국제 총회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세계여성행진>이 형성해 온 운동을 지속할 필요성을 재차 확인했다. 또한 세계사회포럼에서 <세계여성행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평화가 우선하는 운동의 의제로 지적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을 대표하는 여성들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와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능동적으로 참가했다. 주되게는 세계 사회운동 내부에서 여성적 가치를 옹호하는 활동을 전개했고, 성폭력 및 여성의 삶과 몸의 상품화를 반대하고 낙태의 권리 옹호하는 행동과 분석을 제안했다. 모든 토론에서, <세계여성행진>은 억압, 지배, 배제의 원천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고발하면서 현존하는 세계에 대한 페미니즘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세계여성행진은 "성차별적인 세계화"에 맞서 페미니즘적인 혁명을 위해 싸운다. 2003년 3월 : 뭄바이에서 열린 4차 국제총회에서는 국제위원회를 구성할 위원들을 선출하고 특별팀(국제연대, 정보통신, 평화와 탈군사화)과 주제별 작업팀(페미니즘 대안경제, 여성에 대한 폭력, 레즈비언의 권리)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 회의에서 '가치 선언'과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초안을 채택했다. <세계여성행진> 대표단은 1년 동안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검토, 분석한 끝에 2004년 12월 10일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5차 국제총회에서 이 헌장을 채택했다. 헌장은 <세계여성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이 구성하고자 하는 세계의 상과 옹호할 가치들을 보여주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운동 이제 <세계여성행진>은 되돌릴 수 없는 운동이다. <세계여성행진>은 국제위원회와 연락?조정? 소통을 담당하는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별도로 3개의 주제별 작업팀과 3개의 특별팀을 두고 있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주제별 작업팀으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성매매 팀', '페미니즘 대안경제팀', '레즈비언의 권리팀'이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성매매 팀'은 성매매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며, 여성들이 폭력을 예방하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하는 데에 지역적, 혹은 국제적 연대를 조직한다. 특히 이 문제들에 관한 우리의 행동전략을 도출하기 위한 심층 토론을 전개한다. 필리핀 세계여성행진이 운영을 맡고 있다. '페미니즘 대안경제팀'은 대안적인 경제활동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을 강화하는 한편 <세계여성행진>이 작성한 요구목록의 강령을 밝혀낸다. 또한 유사한 활동을 펼치는 네트워크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행동전략을 제안한다. 페루 세계여성행진이 담당하고 있다. '레즈비언의 권리팀'의 역할은 전 세계 레즈비언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고 각 나라의 사무국에서 이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정당 활동가들과 <세계여성행진>의 유대를 확립하고, 이 주제에 관한 세미나를 조직한다. 네덜란드 세계여성행진이 책임을 맡고 있다. 특별팀으로는 국제연대팀, 정보통신팀, 평화·탈군사팀이 있다. 국제연대팀은 <세계여성행진>이 세계사회포럼 및 지역사회포럼, 그리고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역할을 맡는다. 브라질 세계여성행진이 담당하고 있다. 평화·탈군사팀은 이 문제에 관한 정치적 개입을 시도하고, 분석과 정보를 제공하고, 무력분쟁과 군사화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맡는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을 아우르는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세계여성행진이 이 팀을 책임지고 있다. 퀘벡에서 작성한 헌장 퀘백 여성들은 2000년부터 <세계여성행진>에 참가하였다. 2000년 10월 17일 뉴욕에 모인 수만큼 2000년 10월 14일 몬트리올 행동에 많은 퀘백 여성들이 참가하였다. 2004년 퀘백 내 30여개 여성조직들이 '헌장'의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가했다. 사실 헌장은 오랜 기간 동안 작성되었다. 초안작성위원회는 국제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자유, 평등, 연대, 정의, 평화의 5가지 가치를 결합하여 헌장을 작성할 것을 제안했다. <세계여성행진>을 구성하는 모든 그룹의 구성원들에게는 논의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질의서와 초안이 배포되었다. 초안 검토 논의는 2004년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32개 나라와 지역에서 200여 개의 그룹이 논평을 보내왔다. 대부분의 그룹은 헌장을 더욱 간결하게 쓰자는 데 합의했는데, 긴 글은 힘과 효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많은 열정을 원했고, 더 단결하고 긍정적일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1998년 채택된 17개의 요구목록이 헌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랐다. 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을 고발하는 것과는 별개로, 신자유주의 비판, 국가의 지위, 여성들이 원하는 국가 유형 역시 중심적인 주제였다. 헌장은 퀘백 여성들이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를 강화하고, 자신의 권리를 인식할 수 있는 대중교육 공간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여성들은 헌장 문안을 포스터처럼 자신의 사무실 벽에 붙이자고 제안했다. 행동의 준비 퀘백 여성들은 두 번의 중요한 순간에 한데 모였다. 2005년 3월 8일 의회 앞에서 헌장을 발표했고, 2005년 5월 7일에는 헌장의 가치와 각각 연결되어 있는 5개의 요구목록을 제시하며 연달아 전달되고 있는 헌장을 넘겨받았다. 퀘백 행동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던 <퀘백여성연맹>은 민영화를 추진하고 사회적 예산을 삭감하는 자유주의적 정부가 통치하는 이 지역에서 <세계여성행진>과 같은 운동이 지속적으로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퀘백여성연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빈곤의 야만성이 2000년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이 진행된] 이후에도 퀘백과 전 세계를 계속 파괴하고 있으며, 상황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인내와 연대의 힘에 대한 확고한 신뢰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러한 확신이 <세계여성행진>을 건설한 토대이다. <퀘백여성연맹>이 빈곤, 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 차별(특히 인종주의, 동성애혐오), 그리고 시장 주도의 세계화가 여성의 삶에 부과한 부정적이고 악랄한 효과에 맞선 투쟁을 활동의 주축으로 삼아왔음을 상기하자. <퀘백여성연맹>은 여성지위청과 퀘백 주 정부의 여성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연계된 다른 조직들과 함께 여성운동을 활성화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된 통합재정프로그램의 차단과 원주민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고발했다. 시우닫 후아레스(*역주-미국 텍사스 주와 인접하고 있는 멕시코 접경지역.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 살해가 빈번한 지역이다)의 여성들처럼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여성들과 연대하고 있으며, 퀘백에 이슬람교 재판소를 건립하는 것에 맞선 투쟁을 강화했다. 몇 몇 여성 센터에서는 다음과 같은 6개의 항목을 기준으로 한 퀘백 상황에 대한 분석과 헌장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했다. 1 . 세계여성행진. 1995년, 2000년, 2005년 사이에 기초를 확립하다. 행진은 왜 계속되었나? 2 . 아메리카 대륙과 전 세계의 세계여성행진 상황 3 . 캐나다와 퀘백의 세계여성행진 상황 4 .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작성과 채택과정 5 . 2005년 전 세계 곳곳의 세계여성행진의 활동들 6 . 2005년 퀘백의 세계여성행진 활동들 퀘백 여성들의 요구 <퀘백여성연맹>은 릴레이 여성행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5가지 퀘백 지역의 독자적인 요구목록을 정부에 제출했다. 각각의 목록은 헌장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1) '평등 : 국가의 역할' 우리는 퀘백 정부가 성차별 근절을 위한 개입을 지속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정부는 포괄적인 정책과 여성의 조건에 관한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정부는 여성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고, 적절한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확하고 특수한 임무를 지닌 여성지위청(CSF)와 여성부(SCF)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여성지위에 대한 책임 장관을 임명했다. 2) 자유 : 이주 여성들의 권리 우리는 퀘백 정부가 성매매의 희생자인 이주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할 것, 그녀들을 배제하거나 추방하지 않을 것임을 캐나다 연방 정부와 합의하기를 요구한다. 3) 연대 : 빈곤에 맞서는 투쟁 우리는 개인의 생활에 필요한 만큼 수입이 보장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과 교육비용을 국가가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4) 정의: 노동 우리는 근로기준법이 고용상태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기업에서 같은 일을 하는 여러 노동자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형태로 고용된 사람들 역시 같은 노동조건(임금과 사회적 혜택을 포함하여)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회보장급여를 받고, 근로연계복지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도 법정임금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5) 평화 : 여성에 대한 폭력 우리는 1년에 250만 달러씩 10년 동안, 최소 2500만 달러를 책정하여 이를 미디어를 이용한 대중교육과 여론형성을 위한 캠페인에 지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모든 여성과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폭력적 행동이 범죄적이고 불관용적임을 인식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캠페인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조직과 함께 추진해나갈 것이다. 2005년 5월 7일 : 퀘백에 15000명의 여성들이 모이다 릴레이 행진이 퀘백에 도착하는 5월 7일, 15,000명의 여성들이 헌장을 맞이하기 위해 시의회 소재지인 퀘백의 한 마을에 모였고, 그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시위를 했다. 헌장은 배로 도착했고 비유 뽀르에 모였던 모든 지역의 퀘백 여성들과 원주민여성들은 이 헌장을 환영했다. 여성들은 거대한 인간띠를 만들었고, 헌장을 손에서 손으로 넘겨 비유뽀르에서 의회까지 전달했다. 그 뒤 퀘백 정부에 집단적으로 5개의 요구에 대해 질의했다. 많은 여성들의 연대의 힘은 의회의 철통같은 벽을 넘었고 우리의 요구가 들리도록 했다. 지금, 퀘백 여성들은 2005년 10월 17일 열릴 24시간 전 세계 연대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성공의 원인 <세계여성행진>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성공했던 것은 이 행진이 내세우고 있는 두 가지 목표의 보편성에 기인한다. 빈곤에 맞선 투쟁,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선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에서 여성을 억압, 배제, 주변화 하는 원천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대해 분명하고 강력히 고발함으로써 많은 여성조직들이 이 행동에 동참하도록 했다. 행진의 또 다른 힘은 분석을 행동에 연결시켰다는 점, 특히 '인류를 위한 여성헌장'이라는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대안을 함께 제안했다는 점이다. <세계여성행진>이 모든 차원에서 행동하고, 모든 지방공동체, 지역, 나라, 대륙 안 에서, 세계적으로, 특히 세계사회포럼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이러한 비전과 임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이 거쳐 간 곳곳에, 여성들은 권력기관을 타격하고 자신이 행사할 수 없는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 이 헌장을 이용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점점 더 강해진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