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남한과 북한 사이에 벌어진 군사적 충돌 회수는 놀랄 만큼 많다. 혹자는 지극히 불완전한 정전협정 체제에서 남과 북의 전면전이 발발하지 않은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는 올해, 우리는 한반도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남과 북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일까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3월 26일 천안함 침몰과 그 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 놓은 듯하다. 5월 20일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전쟁불사를 외치는 격앙된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북한에 대한 ‘제한적 무력응징’을 원칙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칼럼을 발표했다. 동해와 서해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고 전폭기 수십 대를 상공에 띄워놓은 후 북한의 비파곶 잠수함 기지를 폭파한다는 위협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만약 이러한 위협이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비화하면 오히려 3일 내에 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말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즉각적인 군사적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하지만 남북의 군사적 충돌이 재연될 위험성은 상존한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동북아시아 수석연구원 브루스 크링그너는 북방한계선 이남에서 북한 잠수함이 탐지되면 경고 없이 폭파할 것이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해의 교전 사태는 현재진행형으로 간주해야 할 듯하다. 현재까지 남한 정부와 언론의 태도를 보면 북한은 일방적 가해자고 남한은 수동적 피해자다. 북한은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남한은 북한의 일방적 도발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시각이다. 과연 이러한 시각은 정당한 것인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현재 사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1968년 한반도 안보위기는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 유일한 요인이 북한의 공격적 군사전략이라고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에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1968년 안보위기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침투부대(일명 김신조부대)가 청와대를 공격한 사건과 1월 23일 미국의 첩보선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사건을 통해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위기의 원인이 북한의 공세적 전략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남한은 자신이 그 과정에서 단지 수동적 행위자였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가 어느 순간에 불현듯이 출현한 것도 아니었고 남한이 단지 수동적으로만 대응한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 정부가 베트남 전투병 파병의 대가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 1966년부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하려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1966년에 한국정부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전투병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미국은 남한에 대규모 지원을 약속한 브라운 각서를 제공했다. 또한 1966년 11월에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다. 그는 한국이 더 많은 전투병을 베트남에 파병하도록 요청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했고 1967년부터 개시될 2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방한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인상을 주었고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앞둔 박정희는 미국의 전폭적 지지라는 대단한 정치적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주한미국대사 브라운은 존슨 대통령의 방한 기간 동안 벌어진 비무장지대의 무장충돌 사태에 대해 우려했다. 이 사건으로 그의 방한 마지막 날인 1966년 11월 2일 미군 6명과 한국군 1명이 북한군의 급습에 의해 살해되었다. 다음 날 한국군은 보복공격을 가해 15명의 북한군이 피살되었다. 이는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 중에 벌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였다. 주한미군사령관 본스틸은 사건 조사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미군 정보기관이 내린 결론은 북한의 UN군 공격이 10월 26일 남한의 북한 전초기지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었다. 존슨이 귀국한 후 브라운은 10월 26일에 벌어진 남한의 북한 공격을 문제 삼으며 정일권 총리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 충돌은 1967년에 더욱 극적으로 증가했다. 1967년 10월 본스틸 장군은 북한의 침입 횟수가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국제연합에 보고했다. 실제로 1966년 이후로 남북의 전초전이 급증하여 당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1967년에 비무장지대에서 충돌이 423건 발생했고 북한군 사망자가 423명, UN군 사망자가 122명에 달했다. 1968년 위기는 그 해에 불현듯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1967년 남과 북의 전초전을 통해 점차 고조되어 온 것이었다. 1967년 시점에 UN 사령부는 북한이 더욱 공세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전략이 전면전이나 한반도에서 제2전선을 창출할 정도로 위험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간주했다. 특히 미국은 남한 정부의 공격적 보복과 도발을 더욱 심각하게 우려했다. 미국은 남한의 정전협정 위반이 UN에서 미국과 한국의 입지를 좁힐 수 있고 한반도에서 긴장 고조가 베트남전 수행에 불리한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강경한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주한미국대사와 주한미국사령관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으나 남한은 1966년 10월과 12월 사이에도 11차례의 대북 선제공격을 단행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길 원했나? 표면적 이유는 남한 군대의 사기 진작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다른 요인이 존재했다. 박정희 정부는 안보위기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것을 얻기를 원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침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미국으로부터 군사장비의 현대화와 군대 규모의 확대를 위한 지원을 원했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지원이 확대되어야만 전투병 파병 확대를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한 정부의 강경노선이 미국의 정책과 일치되지 않지만 존슨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시급했기 때문에 박정희의 요구를 수용했다. 결국 1966-67년 안보위기는 한국정부가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1968년 안보위기는 1967년 남한 정부가 취한 공세적 대북공격과 보복 없이 발생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한국의 공격적 전략은 위기가 고조되는 데 원인을 제공했던 한 요인이었다. 이처럼 남과 북의 무장충돌은 보복공격, 예방적 선제공격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고 상호 상승작용을 통해 폭력의 악순환을 형성했다. 어떤 경우에는 군대의 사기 진작이라는 명분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획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북한은 호전적, 공격적 가해자고 남한은 방어적, 수동적 피해자라는 등식이 진실인가? 이미 1990년대 이후로 서해에서 세 차례의 교전사태가 발생했다. 1999년 6월에 벌어진 첫 번째 교전사태(1차 연평해전), 2002년 6월에 벌어진 두 번째 교전사태(2차 연평해전), 2009년 11월 세 번째 교전사태(대청해전)로 남과 북 모두 수십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 서해 교전사태가 반복되는 일차적인 원인은 남과 북이 인정하는 군사분계선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이 육상에 관한 경계는 설정했지만 해상에 관한 경계는 정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남북 간에 서해경계선에 관한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일차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함에도 현재 남한 정부는 서해교전 사태를 북한의 일방적 도발로 규정하고 군사적 대응을 한층 강화했다. 나아가 현재 한미 양국이 채택하고 있는 대북 군사전략과 무기체계도 북한에 심각한 현실적 위협을 가한다. 작전계획 5027은 북한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선제공격을 가하고 전쟁 후 90일 내로 미군 병력 69만 명, 항공모함 5대, 함정 160척, 항공기 2500대를 파견하여 북한을 전면적으로 점령한다는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다. 이에 더하여 최근 한미 양국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를 수립하여 북한을 한층 더 자극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불안과 같은 급변사태가 발생할 때 한미 양국이 공군력을 활용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시설 30곳을 일거에 파괴하고 해병대를 북한에 강습 상륙시킨다는 작전계획 5029의 세부 내용이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이처럼 한미양국이 언제라도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북한을 공격,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언론에 공개하며 서해상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는 것을 호전적, 공격적 행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한미양국은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군사훈련을 더욱 호전적, 공격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남북 군사대결 구도가 더욱 악화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당사자의 한 편임이 분명하다. 또한 남한 정부가 정전협정의 불완전성을 방치하거나 활용하고 그 정치적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한반도 위기는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제기하고자 하는 현 사태에 대한 남한 정부의 책임은 사회운동 일각에서 제기하는 천안함 사건의 은폐, 조작 의혹을 넘어선다. 이번 <사회운동>은 ‘6ㆍ2 지방선거 평가와 향후 과제’를 특집으로 구성했다. 2010년 지방선거는 ‘반이명박연합’이 전면화되어 여러 지역의 진보정당 후보가 민주당, 국민참여당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고, 민주노총 역시 여러 지역에서 지지 후보를 확정하지 못했다. ‘반이명박연합의 승리’라는 인식은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민중운동의 정치전망을 지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특집은 사후적인 평가가 아니라 향후 민중운동의 사활을 건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0년 NPT 평가회의와 세계평화운동의 모색’과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와 보건의료운동’도 기획으로 담았다.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국제회의 보고서 각국 정부 대표는 2010년 5월 3일부터 5월 28일까지 뉴욕 국제연합에서 개최된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에 참가했다. 하지만 이때 정부 대표들만 뉴욕에 집결했던 것이 아니다. 공식 NPT 평가회의가 열리기 직전 주말 동안 핵 폐기 운동가들이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국제회의>(2010년 4월 30일~5월 1일)를 조직했다. 국제회의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렸다. 8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이틀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과 전체토론에 참석했다. 미국의 주최자와 국제기획위원회는 유럽과 아시아의 활동가를 참가시키기 위해 노력했고(국제 참가자를 우선 배려했다), 야심찬 의제를 설정했다. <미국친우봉사회>(AFSC)의 평화안보 프로그램 국장이자 국제회의를 조직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조셉 거슨은 회의 첫째 날 총회에서 이번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윤곽을 제시했다. 1) 핵무기 폐지 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분석을 공유하고 NPT 평가회의 대응책을 조율하고 장기적인 운동 건설 전략을 계획한다. 2) 핵무기 폐지를 위한 운동과 평화, 경제정의, 환경의 지속성을 위한 운동과 통합한다. 3) NPT 평가회의가 <핵무기협약> 협상에 동의하도록 촉구한다. 이 글은 국제 핵 폐기 운동의 강점과 약점, 잠재력을 검토하기 위해서 국제회의에서 제시된 주요 내용을 요약할 것이다. 개막 총회 국제회의는 4월 30일 개막 총회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비니 버로우즈는 킹 목사가 1964년에 오슬로 대학에서 행한 연설을 인용하며 회의 분위기를 띄웠다. “정신적 도덕적 후진성은 현대 인류가 처한 최고의 딜레마다. 이는 더 큰 세 가지 문제로 표현된다. 각각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그것은 인종적 부정의, 빈곤, 전쟁이다.” 그녀의 깊은 목소리는 킹 목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낭독을 마친 후 리버사이드 교회의 아놀드 토마스 목사는 참가자를 환영하면서 킹 목사의 신념이었던 비폭력 원칙을 환기시켰다. 그는 비폭력 문화를 고취하는 것이야말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달성하는 열쇠라고 제시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테루니 타나카는 나가사키 핵폭격의 생존자로서의 경험과 미국 핵폭격의 사후 효과로 죽거나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 시민들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핵무기의 잔학성’을 고발하면서 그가 속한 단체가 <핵무기협약>을 지지한다고 천명했고 NPT 국가들이 2000년 평가회의에서 그 개요가 제시된 ‘13단계 핵군축 실질조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의 집행국장인 존 버로우즈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 보유고를 감축하기 위해 합의한 최근 조치와 NPT 체제에 대한 일반적 비판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가 비(非)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예방적인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했고, 양국의 핵무기 준비태세는 거의 변함이 없으며, 양국이 ‘3원 핵전력’(전략폭격기, 지상발사 미사일, 핵미사일 잠수함)을 현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NPT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 각각에 적용되는 이중기준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으며, 핵보유국이 핵군축을 해야 한다는 임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핵을 보유하지만 NPT 참가국이 아닌 국가를 고려하면 더 큰 모순이 존재한다. 핵물질을 거래하는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예외로 인정되지만, NPT 가입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조사가 가해지고 있다. 버로우즈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가 개발한 <핵무기협약> 모델에는 단 하나의 기준, 즉 핵무기의 비보유라는 기준만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첫 날의 가장 흥미로운 발표는 프린스턴 대학의 <동남아시아 평화안보 프로젝트> 국장인 지아 미안의 발표 ‘핵무기, 자본주의,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맞서다’였다. 미안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핵무기는 세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하다”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이 핵 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연간 50억 달러를 지출하지만 이는 전체 국방예산의 10%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위기 시기에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려면 핵 예산을 삭감해야할 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고 전쟁 체제를 전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과 금융규제는 현상유지를 의미할 뿐이며 경제위기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재분배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불평등에 맞서는 것이다. 핵무기 문제로 돌아와서 미안은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우리의 투쟁은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나 일부 핵탄두의 감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NPT 6조(핵군축)의 이행에 대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군사력, 권력, 폭력에 대한 것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에 대한 것이다.” 미안의 발표는 핵 감축이란 문제를 군사주의나 경제위기와 같은 더 폭넓은 이슈와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하지만 전쟁과 인종주의, 경제적 부정의의 상호관련성을 분석한 미안의 발표보다는 핵무기를 도덕성의 문제로 다루는 (즉 인도주의 대 비인도주의) 타나카의 발표나 킹의 비폭력 원칙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춘 토마스의 발표가 회의의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했다. 워크숍 이튿날 오전과 오후에 여러 워크숍이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 중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참여한 두 개의 워크숍을 소개한다. 핵억지를 폭로하자 이 워크숍은 ‘핵억지’라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하고자 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핵시대평화재단>(미국)의 데이비드 크리거는 핵억지 개념이란 보복 위협이 적국의 공격을 중지시킬 것이라는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억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복 위협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하며, 상대방이 그 위협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위협을 당하는 자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는 결함이 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필요조건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나 특히 테러리스트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는 핵보복 위협에 항상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그는 미국이 핵위협 위계의 최상층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미국이 “위협을 멈추면 다른 어떤 누구도 핵억지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국제연합 핵군축국의 정무관 랜디 라이델은 그가 생각하기에 반핵운동가가 활용할 수 있는 국제연합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국제연합 헌장이 1) 군축, 2) 군비통제, 3) 갈등 조정을 요청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46년 국제연합은 군축을 화학무기, 핵무기, 생물학무기의 제거로 정의했다. 그는 문제가 군축 약속의 결여가 아니라 구체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하부구조의 결핍이라고 말했다. 국가들은 평화 전담 부서를 필요로 하며 NPT는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관리기구를 필요로 한다. 워크숍 전반에 걸쳐 발표자와 사회자는 핵억지 개념이 ‘물신’(맹목적 숭배대상)이라고 칭했다. 핵 물신은 미국과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 핵 프로그램을 합리화하면서 대량파괴의 실질적 가능성을 은폐한다. NPT를 넘어서: 핵 폐기 운동의 건설 전략 이 워크숍에는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온 발표자가 참여했고, 그들은 각 국가의 핵 프로그램 상태와 반핵운동가의 요구에 대해 토론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일본 원수폭금지국민회의(원수금)에서 온 나가히사 와다와 원수폭금지협의회(원수협)에서 온 히로시 타카였다. 와다는 과거 미국의 핵폭격과 현재 일본 전역에서 가동 중인 53개 핵발전소가 건강과 환경에 끼친 지속적 영향을 폭로하며 일본 운동의 요구를 소개했다. 반면 타카는 미국정부가 핵군축을 주도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미국 활동가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며 핵 폐지를 위한 풀뿌리 조직과 정부의 협력을 포함하는 국제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는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을 수용한 것이 일본의 비핵 3원칙(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일본 영토 내로 반입하지 않는다) 정신과 모순된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에 이어 프랑스 <평화운동>의 피에르 비이야르와 영국 <핵군축을 위한 캠페인>의 데이비드 웹은 유럽과 세계에서 진행 중인 핵군축의 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이야르는 오바마 정부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과거 미국 행정부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의미하며 NPT 평가회의 내에서 중동 비핵지대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군축을 지원하고 최근의 긍정적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광범위한 대중교육 프로그램을 주창했다. 데이비드 웹은 영국 정치 내에서 핵무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록 최근에 영국 의회는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폐기하는 대신에 이를 대체하는 신규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지만, 영국과 유럽연합 의회 내에서 새로운 핵무기 체계 창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정 강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평화행동>(미국)의 케빈 마틴은 핵 폐기 운동을 위해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일단은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이 비준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조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요구를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1) 핵무기 복합체에 대한 재정지원의 축소, 2) 일방적 무기 감축을 위한 행정명령, 3) 핵무기 경계태세의 완화, 4) 중동 비핵지대에 대한 미국의 지지. 마틴은 다른 발표자에 비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지만 그의 발언을 대체로 미국 활동가와 연관된 것이었다. 불행히도 워크숍 동안에 지역을 넘어서 연대를 구축하고 공동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참가자가 다양했지만 국제회의 전반에서 이런 취약성이 드러났다. 몇몇 개인이 국제총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 한국의 전쟁 상황이나 핵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검토했지만 그 형식은 심도 깊은 분석이나 국제운동의 건설을 위한 의미 있는 대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폐막 총회 국제회의의 마지막 행사는 폐막 총회였다. 폐막 총회에서는 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 국제평화위원회 의장인 소코로 고메즈, 히로시마 시장 타다토시 아키바를 포함한 몇몇 연사들이 800명의 참석자를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회의 주최자와 여러 참가자가 볼 때 폐막총회와 회의 전체의 하이라이트가 반기문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비핵화를 위한 참석자들의 활동에 찬사를 보내며 발언을 시작했다. “나는 인류의 가장 숭고한 소망, 곧 세계 평화를 말하고 그것을 위해 항의하고 그 기치를 표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늘 밤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이어서 NPT 체제에 찬사를 보냈다. “NPT는 40년 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그 후로 NPT는 비확산 체제와 우리의 핵군축 노력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단지 몇 개 국가만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NPT가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덕이 매우 컸습니다.” 그는 이어서 미국에 찬사를 보냈다. “예를 들면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비핵국가가 NPT를 준수하는 한 핵무기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맹세했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비판한 후 청중에게 “여러분의 훌륭한 활동을 지속하시고 앞으로도 양심의 소리가 되어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연설을 마쳤다. 그의 연설은 모든 청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한국 참가자들만 제외한다면. 소코로 고메즈는 반기문 총장 바로 다음에 연사로 나섰고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다. 핵 폐기를 위한 투쟁은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녀는 NPT의 특징이 “불균형과 불평등”이라고 비판했고, NPT가 군축과 핵에너지 이용의 위험성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NPT 체제가 사실상 핵무기 독점을 동결했고, 핵군축이라는 약속은 단순한 치장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의 한계와 미국이 발표한 글로벌 신속타격 프로그램을 더욱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녀는 이란과 북한이 제국주의적 의도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적인 혐의를 받고 있지만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한 범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메즈의 발표는 반기문의 연설이 보여준 오류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녀는 NPT를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구조로 간주하는 것이나, NPT가 국가들의 재래식 전력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불균형을 함께 다루지 않고 핵무기의 폐기를 모색하는 것이나, 미국의 세계적 군사 지배를 고려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회의 주최자가 반기문의 연설 바로 뒤의 발표자로 고메즈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총회 사회자는 두 연설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고메즈는 기립박수를 받지 않았다. 평가 국제회의는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 NPT 평가회의 개막을 앞두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특히 국제회의가 끝난 후 5월 2일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시위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둘째, 국제회의가 국제기획위원회에 의해 조직되었고 이 회의에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국제 협력에서 드문 사례다.(최소한 미국 운동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마지막으로 국제회의는 활동가들이 핵무기 프로그램과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다만, 두 가지 약점에는 주목해야 한다. 첫째, 큰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와 연구소가 과잉 대표되었고 핵시설이나 핵정책에 대항해 현장 조직화를 수행하는 풀뿌리 집단의 대표성이 부족했다. 이는 운동 행위자가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취해야 할 활동을 국제연합과 NPT 평가회의의 틀 내로 제한시킨다. 풀뿌리 운동의 대표성 부족은 국제회의의 형식 문제와 함께 운동 건설 전략에 관한 구체적인 대화를 어렵게 했다. 둘째, 핵무기에 대한 비판을 군사주의에 대한 더 광범위한 분석에 결합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발표자들 사이에서 불균등했고 전반적으로 불충분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하여 핵무기 보유 국가의 군사적 지배를 통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 누구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의 결핍은 핵 폐기 운동을 더 광범위한 평화운동 또는 현재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위해 벌어지는 투쟁과 연결시키기 위한 논의를 어렵게 했다. 결론 첫 번째 워크숍에서 몇몇 발표자는 ‘핵억지’가 물신이고, 미국과 영국이 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핵무기 개발을 통해 벌어지는 현실적 위협을 은폐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물신숭배 비판은 중요하며, 핵 폐기 운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운동 내에서는 핵무기를 국가 간 이해관계나 군사지배 체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하기보다는 핵무기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로 보는 두드러진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향이 국제회의에서 보편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지배적 흐름이었고, 이틀간에 벌어진 대화의 효과성을 제한했다. 핵무기 숭배를 비판하는 것은 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냐는 문제와 관계없이 대량 살상과 파괴를 위해 고안된 핵무기의 근본적 부도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아 미안이 지적했듯이, “군사력, 권력, 폭력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는 것”이다. 남한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비핵화 요구가 남한의 대북 적대 정책의 종결, 남한 국방예산의 감축,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의 제거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핵우산의 제거 요구는 남한, 미국, 일본의 전략적 군사동맹 비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핵 폐기 운동은 더 광범위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2010년 NPT 평가회의와 향후 과제 지난 5월 3일부터 28일까지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2010년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이하 평가회의)가 열렸다. 평가회의는 NPT 조약 8조 3항의 규정에 따라 5년 마다 조약의 주요 구성 요소인 핵군축과 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상황을 평가하는 조약 당사국 회의로 이번이 8번째 회의다. 평가회의는 핵무기 문제만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과 원자력 기술, 핵물질의 생산과 통제, 안전보장 등 원자력과 관련된 문제 전반을 다룬다. NPT에 가입하고 있는 조약 당사국 정부뿐만 아니라 반핵운동진영, 평화운동진영, 환경운동진영 역시 평가회의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2009년 ‘핵 없는 세계’ 선언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행동은 핵군축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취시켰다. 이번 평가회의에는 189개 당사국 외에 121개 반핵반전평화운동 조직에서 1,0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해 평가회의와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한 높은 기대를 보여주었다. 2010년 평가회의의 주요 특징 이번 평가회의는 전체 토론, 3개의 메인위원회별 회의, 심사위원회, 전체회의, 초안 위원회 등 총 64개 회의와 옵저버들의 다양한 부대 행사들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2010년 평가회의의 주요 특징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핵보유국,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핵군축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들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4월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통해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 핵탄두를 1,500-1,675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평가회의 개막 당일 미국은 현재 보유 중인 핵탄두 비축량 규모를 공개했다. 핵보유국의 핵군축 노력이 별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쌓여왔던 비핵보유국의 불만이 폭발해 파행으로 치달았던 2005년 평가회의 당시 상황에 비추어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보여준 행동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평가에 기반해 이번 평가회의는 15년 만에 ‘최종문서’ 합의에 성공했다. 둘째, 핵무기와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 강조되었다. 이는 이번 평가회의 개최 전부터 충분히 예상되었던 내용이다.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을 ‘핵심 계획’으로 설정한 미국의 2010 핵태세검토보고서나,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험으로 핵 테러리즘을 강조한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와 같은 맥락이다. 북한과 이란 사례는 다른 나라들의 핵개발 의욕을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핵보유국은 이탈세력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대처를 통해 강력한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며 추가적인 이탈 행위를 막으려 하고 있다. 셋째, 강력한 비확산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나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과 같은 추가적 조약/조치들이 강조되었다. 추가적인 핵무기의 개발이나 현존 핵무기를 개량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하, 수중, 외기권에서 진행되는 핵실험을 금지하는 CTBT 비준과 시행이 핵군축과 비확산 체제의 핵심요소로서 강조되었다. 더불어 CTBT가 시행되는 시점까지 핵보유국 개개의 핵실험폭발에 대한 모라토리엄 선언을 촉구하였다. 이와 함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핵분열성 물질을 신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국제적인 검증 시스템의 통제를 적용할 것이 요청되었다. 넷째, NPT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몇몇 비핵보유국 국가/그룹과 반핵평화운동 조직들이 ‘핵무기협약’(Nuclear Weapon Convention)이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조약을 제안했다. 그동안 NPT가 지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핵보유국이 핵무기 숫자를 늘리거나 개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도 가할 수 없으면서, 비핵보유국의 활동만 제약하기 때문이다. NPT를 통해 핵보유국이 증가하는 것은 막을 수 있더라도 핵군축을 이룰 수는 없으며, 결국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패권을 보증하는 체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성을 극복하고 진정 핵군축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의견그룹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신의제연합, 비동맹노선을 비롯하여 비엔나 10그룹, 디-알러팅 그룹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주로 핵보유국-비핵보유국의 대립 구도였던 과거에 비해, 2000년 평가회의 이후 자국의 이해에 따라 다양한 의견그룹들이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평가회의를 통해 드러난 미국의 속내 5월 3일 평가회의 개막 첫 전체토론에서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조약 당사국 회의이긴 해도 각국의 정상이 모이는 정상회의가 아닌 NPT 평가회의에 참가국의 대통령이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의혹과 이에 대한 처리가 이번 평가회의에서 주요한 쟁점인 만큼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대표단은 즉각 퇴장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어떤 나라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핵을 이용하지만, 어떤 나라들은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핵을 이용한다’, ‘수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 대한 압박을 정면으로 비판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대답이 그날 오후 바로 나왔다. 오후 전체회의에서 발언에 나선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몇몇 이탈 세력들이 국제 사회에 도전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규칙은 지켜져야 하고, 위반은 처벌되어야 한다...(중략)...지금 이 회의가 강력한 국제 사회의 응답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표방한 ‘핵 없는 세계’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미국이 응답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핵무기 감축 의무와 비확산 의무는 NPT 체제의 양대 축이다. 그러나 미국이 말하는 ‘국제 사회의 규칙’은 핵무기 감축보다는 비확산 쪽으로 훨씬 더 기울어져 있다. 1995년 NPT의 연장을 결정하기 앞서 미국은 CTBT의 비준을 약속하면서 핵보유국들의 지지부진한 군축에 불만이었던 비핵보유국들을 달랬다. 그러나 막상 NPT의 무기한 연장이 결정되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1999년 미국은 CTBT 국회 비준을 거부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또한 2002년에는 미사일방어망(MD)을 추진하기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협정’(ABMT)도 파기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국제 사회의 규칙’을 내세웠다, 쓰레기통에 내버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주장하는 ‘국제 사회의 규칙’이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쟁점들 New START와 핵군축 이번 평가회의에서 미국-러시아가 맺은 New START를 근거로 핵군축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현재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보유국들이 한 최근의 핵군축 약속이 너무나 미흡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실제 실현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5월 6일에는 러시아 정부 대표단이 주최한 ‘러시아의 NPT 준수 브리핑’이라는 사이드 이벤트가 열렸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의 NPT 이행 상황, 특히 핵군축 관련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New START가 핵군축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러시아 정부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집을 지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집이 정말 좋은 집이라고 언제 대답할 수 있는가? 물은 잘 나오는지, 전기 공급 문제는 없는지,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언제쯤 정말 훌륭하다고 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New START는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 그것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우리로선 알 수 없다.” New START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보유하고 있는 전략 핵탄두를 1,500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했지만 교묘한 탄두 계산 방식으로 감축 효과가 과장되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New START가 ‘전략’무기 감축 협정이란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핵무기는 그 용도와 사거리에 따라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로 구분하지만, 이렇게 구분해보면 보통 300Kt(킬로톤, 1Kt은 TNT 1,000톤의 폭발력)의 파괴력이 그 기준이 되기도 한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리틀보이의 파괴력은 13-18Kt,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은 21Kt 정도로 추정된다. 폭탄 투하 후 4개월 내에 사망한 사람만 히로시마에서 9만-16만 6천 명, 나가사키에서 6만-8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이후 사망자나 후세의 고통은 측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전술핵은 내버려두고 전략핵만 일부 감축하는 것은 핵 없는 세계와 거리가 멀다. 핵무기협약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핵무기협약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는 NPT 체제가 지난 40년간 핵무기의 무차별적 확대를 막는 역할을 했지만 핵보유국의 실질적인 감축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아직까지는 제안 단계이고 정부들의 입장도 다르기 때문에 향후 협약의 실내용이 어떻게 구성될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제안된 내용을 살펴보면 ‘효과적인 국제적 통제 하에 핵무기 폐기를 완수할 법적 구속력이 있는 틀’로 요약할 수 있다. 1996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핵무기의 위협과 사용의 법적 타당성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했다. 권고안은 모든 국가들이 NPT 6조에 명시된 협상(일반적이고 완전한 군축 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결론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2009년 유엔 총회에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안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결의안은 모든 국가들이 NPT 6조의 의무를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의안은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 실험, 배치, 비축, 전달, 위협이나 사용을 금지하고 완전히 폐기하는 핵무기협약을 조속히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개시하는 것을 NPT 6조의 이행수단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번 평가회의 최종문서에는 핵무기협약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못했으며 NPT에 제시된 핵군축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은 5월 5일 국무부 주최의 사이드 이벤트에서, 미국이 세계적인 군축을 추진하겠지만 새로운 핵무기협약의 형태는 아니라고 밝혀 NPT 이외의 조약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핵 없는 세계’ 선언이나 New START 체결 등으로 핵군축 의지를 포장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핵군축을 통해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음이 드러난다. 이란과 중동 앞서 이란과 미국의 갈등을 소개했듯, 이란의 핵프로그램과 함께 중동 문제는 이번 평가회의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란은 평가회의 내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며 자국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정당화했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평가회의 첫날 이란을 강도 높게 비난했던 것에 이어 평가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5월 18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강력한 추가 제재안에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이란에 대한 공세를 가속했다. 그러나 이번 평가회의 최종문서에서 이란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다만 1995년 중동 결의안을 언급하며 중동 지역 문제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강제력이 떨어지는 NPT 평가회의 결의보다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실제로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월 9일 이란에 대한 네 번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밖에 기타 쟁점으로는 1)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 2) 중동 비핵지대 회의, 3) 북한 문제를 들 수 있다. 평가회의 최종문서는 이스라엘이 NPT에 가입하고 모든 핵시설을 IAEA의 통제 하에 둘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핵무기와 여타 모든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중동 지대 건설을 논의하는 회의를 2012년에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인도와 파키스탄을 포함하여) 북한이 비핵보유국 자격으로 NPT에 가입/복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질 수 없음을 명시했다. 진정 ‘핵 없는 세계’를 향해 미국은 핵 테러리즘이 국제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라며 핵물질이 거래되는 암시장을 차단하고 이를 이용하는 비국가 행위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세력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차단하고 처벌해도 암시장은 세계의 뒤편 어디선가 존재하기 때문에 암시장이다. 핵무기와 이에 필요한 물질, 장치들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기 용도의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지 않는 것(FMCT, 핵분열물질금지조약),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CTBT), 그리고 핵보유국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하루 빨리 폐기하는 것이 바로 핵무기와 핵테러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확실한, 그리고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핵보유국의 일부 핵군축 노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NPT는 또다시 그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지만, 획기적인 군축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러시아 대표의 말처럼 “New START가 미국 의회를 통과할지조차 아직 알 수 없”으며, 실제 군축 효과도 미지수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핵무기 감축을 법적으로 강제할 새로운 조약의 출현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의 군사적 패권과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가 유지되는 한 ‘핵 없는 세계’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수차례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는 이란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제재와 위협은 핵 경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 40년 NPT의 역사는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경험한 모든 나라들은 군사력의 차이가 절대적일수록 핵보유국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포기하기 힘들다.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공포가 팽배했던 냉전 시기 서유럽에서 또 한 번의 세계적 비극을 막은 것은 소련의 SS-20 미사일도, 미국의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퍼싱-2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사일 배치를 저지시킨 대중적인 평화운동의 힘이었다. 진정 핵 없는 세계를 향해 평화운동이 올바른 해답을 보여줘야 할 차례다. [%=박스1%]
세계경제 - 토론토 G20 정상회의 참석 결과 - 중국의 지방정부 부채 문제 세계정세 - 중국 노동자 파업 한국정세 - 천안함 의혹 7가지 뉴스 - 공동지방정부 착수 - 백두산 대폭발, 다시 초읽기? - 진보연대 공동대표 등 3명 체포 - 기타
한국전쟁 60주년 맞이 특별 성명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기를 염원한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전쟁위험 고조하는 강경 정책을 중단하라!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올 해, 정전협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줄이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들은 대부분 좌절되었고, 천안함 침몰 사건 직후 봇물처럼 쏟아지는 대북 강경조치들로 국민들의 전쟁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반전평화연대(준)는 전쟁과 학살의 상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염원하며 현 정부의 전쟁책동 조치들을 단호히 규탄한다. 지난 천안함 사건 정부발표와 대통령 특별담화 이후 정부는 천안함 사고원인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짓고 강경조치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정부당국은 6년 동안 중단되었던 대북 심리전 방송재개 방침을 밝힌 데 이어 남북합의로 이뤄지고 있던 상호 해역에서의 선박운항을 금지했다. 대북 확성기에 대한 북한의 직접조준 격파 입장에 국방부가 비례성에 입각한 2배의 대응사격을 천명하면서 최전방에서의 군사적 충돌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제주 해협을 포함한 남측 해역에 대한 북한 선박의 진입을 차단하고 불응시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고 공포하면서 해상에서의 긴장 유발 가능성 또한 높다. 특히 정부가 PSI 역내외 해상차단훈련 참여를 선언하면서 해상에서의 분쟁이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는 9월 호주에서의 역외 해상차단훈련 참가를 앞두고 있으며 10월 부산에서 한국 주관으로 해상차단 및 검색훈련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 훈련에는 구축함, 지원함 등 3~5척의 함정과 해상초계기(P-3C), 헬기, 해군 및 해경의 특공대 등이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11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운영전문가그룹(OEG)에 정식 멤버로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PSI 훈련 참여수준을 넘어 대북봉쇄를 위한 국제적 협의체의 운영과정에 중심적 역할을 자임하는 가운데 남북간 군사적 충돌위험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국방부는 한국과 미국이 6월 말 서해에서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하는 등 천안함 사건을 발판으로 대북 군사적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 성격의 한미연합훈련과 함께 한미연합 대잠수함훈련도 예정되고 있으며, 8월 중순으로 알려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은 2년간의 한국군 주도에서 한미연합사 주도로 재변경되는 등 한미 군사동맹의 밀착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독자적인 제재 가능성마저 시사하면서 현재 한국과 함께 북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천안함 사건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와 새로운 대북 결의안 채택노력에 있어 미국은 한국과의 공고한 동맹을 과시하며 한반도에서의 위기고조를 부추기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정부가 조성하는 끊임없는 긴장과 대결 책동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전쟁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전쟁위협을 고조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여야 한다. 또한 미국도 대북 압박을 즉각 중단하라.
2010년 6월 25일 반전평화연대(준) antiwar.textcube.com
1. 세계경제 헝가리 재정위기의 파급효과와 향후 전망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 결과 및 향후 과제 2. 세계정세 국제분쟁지역 리포트 – 이란 – 키르기스스탄 3. 한국경제 출구전략실행(정책금리인상)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기업이익 많은 느는데 주가는 저평가... 머잖아 외국인 귀환“ 민선 지방자치 5기의 정책과제 4. 한국정세 북 “미국, 동북아 패권 유지하려 천안함 이용” UN 안보리, 북 책임거론 대신 ‘남북 모두 자제’ 검찰 ‘천안함 서한’ 참여연대 수사착수 ‘4대강 저지’ 범국민행동 시작됐다 - 야당 등 각계 대표 150여명 첫 연석회의 박근혜 전대 불출마 선언 - “젊은 정당으로 변모해야” MB 연설에 심기 불편 김상곤, “무상급식 실시 시기 앞당길 수 있다” 5. 노동 총연맹 – 민주노총, 6월 총력투쟁 계획 수립 – 김영훈 위원장, ILO 총회 참석 금속노조 – 금속노조 1차 파업(1주차) 연인원 4만7천여명 참가 – 15일 쟁대위, 18일까지 교섭타결 목표... 18일에 7월 투쟁 가닥 – 기아차지부, 대의원 만장일치 쟁발결의 – 대우조선노조, 86% 파업찬성 – 9일, 대우자판 172명 전원 해고 통보 – 현대차지부, 2010년 임금협상 상견례 공공 – 공공운수노조, 26일 4대강 투쟁 총력결합 – 공항공사노조, 민주노총 탈퇴 대의원 대회 진행 전교조, 공무원 노조 – 공무원노조, 6월 8일 단식농성 해제하고 노조탄압 및 대량해고철회를 위한 본부, 지부별 농성 돌입 기타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조합원 징계 건 6. 여성 여가부, 재정 15년 만에 ‘여성발전기본법’ 전면 개정 여성취업자 증가 78%는 단시간근로 [좌담]3040여성들, 정책 보고 표 던졌다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에 대하여 5월 20일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북한 소형잠수함정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최종 판단을 내렸고 결정적 증거물로 어뢰추진부를 제시했다. 천안암 장병 46명의 사망소식이 국민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준 데 이어 북한의 공격이 그 원인이라는 발표가 우리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은 천안함 침몰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고 한국 정부는 서둘러 국제제재와 군사적 대응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합동조사단 결과 발표 이후에도 진실성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40여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내용, 조사 과정과 방향, 조사 주체 등 모든 측면에서 조사의 과학성과 객관성, 투명성과 공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아직 충분한 조사가 더 필요한데도 조사가 더 필요한 부분은 추측과 예단으로 메운 채 부실한 조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하는 저의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앞으로도 지속해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언제 어디서라도 사회 각계에서 제기하는 의문과 의혹에 대해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 특히 우리는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이후 한국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대응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정부의 대응조치는 국제 제재와 군사적 대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조치가 이번 천안함 침몰과 장병 사망과 같은 비극적 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정부 조치는 오히려 더 큰 무장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요소를 담고 있다. 서해가 남북 무력충돌의 결정적 장소가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서해는 한반도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1999년 6월에 벌어진 첫 번째 교전사태(1차 연평해전), 2002년 6월에 벌어진 두 번째 교전사태(2차 연평해전), 2009년 11월 세 번째 교전사태(대청해전)로 남과 북 모두 수십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 서해 교전사태는 남과 북이 인정하는 군사분계선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발생했다.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이 육상에 관한 경계는 설정했지만 해상에 관한 경계는 정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남북 간에 서해경계선에 관한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서해에서 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평화적으로 관리되기 위해서는 휴전협정의 불완전성이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에라도 남과 북이 다양한 형태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만약 정부 발표대로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면서 발생했던 교전사태와는 그 양상이 크게 다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서해에서 무장충돌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큰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조치는 서해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 수단을 찾는 것이다. 서해가 남북 무력충돌의 결정적 장소가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북한 타격과 점령을 전제로 한 군사작전을 폐기하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서해에서 대규모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군사력 밀집도를 높이는 모든 조치가 서해 경계선 문제를 불씨로 하여 심각한 무장충돌로 이어지는 사태를 깊이 우려한다. 정부는 군사적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올해 하반기에 서해에서 대규모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하기로 미국과 합의했고, 이 훈련에 미국 핵잠수함이 참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처럼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이 계속 실행한다는 계획은 한반도 평화에 실질적 위협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한미 양국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를 수립하여 북한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불안과 같은 급변사태가 발생할 때 한미 양국이 공군력을 활용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시설 30곳을 일거에 파괴하고 해병대를 북한에 강습 상륙시킨다는 작전계획 5029의 세부 내용이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이처럼 한미양국이 언제라도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북한을 공격,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언론에 공개하며 서해상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는 것은 북한을 크게 자극하고 위험천만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보복의 악순환을 막고 민중의 평화 의지를 천명하자 이번 천안함 침몰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천안함 침몰이 안겨준 충격을 호전적 대북군사대결로 몰고 가려는 맹목적 주장을 심각히 경계한다. 한반도에서 어떤 군사적 보복 시도도 동북아 전체의 참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에 강력한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당분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목소리가 한반도 평화에 어떤 긍정적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