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과 인권의 감수성으로 마련되는 목적별신분등록법이 호주제 폐지의 대안이다. 타 리 |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 * 월간 네트워커 3월호에 기고한 글을 수정, 첨가한 글입니다. 헌재의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호주제 폐지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17대 국회가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의 통과를 이번 임시국회로 미루면서 조건으로 달았던 대체 법안에 대한 논의도 지난 21일 법사위의 공청회를 통해서 이루어져 무난하게 수순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대법원이 내놓은 대체 법안은 반차별과 인권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호주제가 가지고 있었던 차별의 문제와 국민 통제의 성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통해서 새롭게 마련되는 국가신분등록제도는 호주제도가 가진 성차별, 프라이버시권 침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강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차별금지와 소수자 보호, 정보인권 보장 등 인권의 원칙에 맞게 제정되어야 한다.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는 국가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면서 인권침해적인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목적별 편제방안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신분등록제도란? 국가신분등록제도는 개인이 출생, 사망, 국적, 혼인을 국가로부터 증명하는 것으로 국가 안에서 개인의 기본적인 법률 지위를 규정하는 제도이다. 과거 국가신분등록제도가 국민관리를 위해 개인의 정보를 국가에 의해 강제로 수집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한 나라의 국민임과 필요한 신분사항을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인의 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제도"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호주제도가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쓰이면서 불가피하게 개인은 호주와의 관계를 통해서 신분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가(家)개념이 호주와 호주에 입적된 사람으로 구성됨으로써 개인의 가족사항이 곧 신분에 대한 증명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소위 '정상적인'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현실에서 다양한 차별에 노출되었다. 또한 개인과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을 한 곳에 모두 기록함으로써 악용될 소지가 다분했고 프라이버시권은 철저히 침해당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기 위해 개인의 신분을 왜곡하거나 호주제가 지향하는 가치(가부장성, 정상가족 중심성)에 현실의 삶이 끌려가기도 했다. 따라서 새롭게 제정되는 신분등록제도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본래의 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보의 범위와 쓰임새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대법원과 법무부에서 제시한 안에 대한 비판 대법원에서 제시한 '혼합형 1인 1적제'와 법무부에서 제시한 '본인 기준의 가족기록부'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프라이버시권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의 안은 본적, 구 호적, 가족사항 등을 한 곳에 기재함으로써 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고, 목적이 다른 정보들을 한 곳에 집적시키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증명방식을 목적별로 제한함으로써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보의 관리와 접근의 문제 또한 중요한 사항이며 국가라고 해서 프라이버시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전산화된 정보의 검색을 본적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하겠다고 하는데, 폐지되어야 마땅한 본적을 적극적으로 검색의 용도로 쓴다는 것은 호주제 폐지의 취지를 부정하는 한심한 처사로밖에 볼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차별의 소지를 담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것도 정부의 정보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한다. 둘째, 두 가지의 안은 호주제 폐지를 통해서 민법상의 가(家)개념이 폐지될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두 가지의 안은 모두 배우자·부모·자녀, 형제자매,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의 범위로 제시하고 있고, 둘 모두 가족해체에 대한 우려를 하는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 안이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는 이유는 혼인관계와 특정한 관점에서 선택된 혈연관계가 '가족'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분등록제도에 현실의 가족을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가족의 형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신분등록제도는 법적인 관계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혈연관계와 혼인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두는 것이라는 점과 신분등록제도 안에서 가족관계를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반차별과 인권의 감수성으로 마련하는 목적별신분등록법 목적별 편제방안은 개인의 신분에 등록된 사항을 기록하는 신분등록부, 신분변동부가 있고 혼인과 관련된 사항을 기록하는 혼인등록부, 혼인변동부로 구성된다. 신분등록부는 [신분등록번호], [이름], [생년월일], [출생적], [신고일], [부기번호] 항목으로 구성된다. 내용 변동이 있을 때마다, 신분등록부에는 변동된 최신의 내용만 기록되고 이전 사항은 신분변동부로 관리함으로써 신분등록부만으로는 신분변동 사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즉 변동 전 신분등록부는 [신분변동번호]가 매겨지고, 신분변동 "사유" 등이 기록되며, 이러한 신분변동부는 별도로 관리된다. 신분등록제도에는 가족과 관련된 정보를 전혀 담지 않으며 다만, 부기번호에는 부모의 혼인등록번호를 적음으로써 친자확인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형제자매 등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단, 부모를 알 수 없는 자에 대해서는 가혼(假婚)등록번호를 부여한다. 혼인등록부는 [혼인등록번호], [이름], [신분등록번호] [혼인년월일], [신고일] 항목으로 구성된다. 사망, 국적상실, 이혼, 재혼 시 혼인등록부는 혼인변동부로 별도 관리되며, 여기에는 [혼인변동번호]가 매겨지고, 혼인변동 "사유" 등이 기록된다. 혼인은 양 당사자가 하는 것이나, 혼인등록부는 각 개인에게 발급되고 가족과 관련된 정보뿐만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정보도 담지 않는다. 이러한 각각의 공부를 구별하는 '번호'는 당사자의 나이와 성별에 대한 정보를 담지 않음으로써 현재 주민등록번호가 가진 폐해를 방지한다. 또한 각각의 공부는 등록번호, 변동번호를 통해 검색함으로써 동일인 여부, 가족 관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검색번호로 한 사람의 모든 등록부와 변동부를 검색할 수 없게 하고, 연동금지 등의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한다. 목적에 맞게 최소한의 정보를 담는 것은 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정보에 대해 통제권을 갖고, 국가에 의해 일어나는 과도한 정보 수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신분등록제 안에 어떠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냐를 판단하고, 기록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기는 정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신분증명과 관련이 없는 혈연가족 사항의 정보를 '국민정서에 부합한다', '가족해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록하는 것은 호주제 폐지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호주제의 문제점을 끌어안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반대하는 것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부과한 일련번호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가 가진 성차별적, 개인정보침해적 요소들을 거부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함이다. 국가가 행정의 효율을 국민의 편의라는 말로 혼동 시켜 국민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삶이 '비정상'으로 낙인찍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분과 관련된 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국민의 인권보호에 부합할 수 있는 목적별신분등록법을 채택해야 한다. PSSP
노동의 성차별, 두가지 경향 장 귀 연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 '하기 나름'일 수 있는... 솔직히 고백하면, 나의 경우 '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성차별이라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딸이라고 해서 특정한 규범이나 행동양식을 주입하는 일이 절대로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는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었다. 전국의 같은 또래 남학생들과 꼭 같은 시험문제로 경쟁하여 대학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성차별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원서를 낼 때였다. 당시 내 경험에서 보면, 서류전형의 기준은 일단은 학벌 차별이 가장 심했던 것 같다. 그 차별 구도에서 나는 이른바 대학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출신이었으므로 대단히 유리했다. 그럼에도 가끔 몇몇 군데에서 내 원서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같이 원서를 낸 같은 학교, 같은 과 비슷한 학점 대의 남자들은 서류전형 통과 명단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성차별이라는 거구나'하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내 반응은 '에잇, 더러워서 안 간다!(못 간다?)'였다. 최종면접에서도 그러했다. 당연히 대개 여성과 남성이 반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입사에서 여자는 몇 명 뽑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더라'라는 루머가 난무했고, 그에 따르면 훨씬 좁아진 확률 속에서 나는 남자들은 제쳐두고 여자들을 경쟁상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박했던 건 아니다. '여기 입사하지 못하면 딴 데 가지'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호황을 누리고 있던 10여 년 전이다. 일단 취업문을 통과하고 난 후 직장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성별은 별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은, 그래서 더욱 엘리트(?)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나는 소수 여성으로서 주목받았고 그래서 더 우쭐했다. 결국 나의 노동과 사회적 활동에서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이른바 커리어우먼인 내 친구들도 그렇게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할 수 있었다. '여자라는 게 뭐가 문제야,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와 여성노동에 대한 공격 실제로, '그렇다'. 단, '자기가 하기 나름'일 수 있는 경우에는. 의대 여학생 비율이 절반이 넘고, 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도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급상승세를 보이고, 각종 전문직이나 간부직 승진에서 성차별은 금지되었다. 물론 비공식적인 차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결국 몇몇 직장에 합격할 수 있었듯이 '자기가 하기 나름'으로 돌파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고 '성차별 금지'가 확산되는 이면에서, 여성평균임금은 남성평균임금의 60%선에서 정체하거나 떨어지고 있고 반대로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70%에 도달했다. 빈곤의 여성화도 점점 심화되어, 국민기초보장의 여성수급가구 비율이 50%를 넘으면서 상승하고 있고, 여성 가구주 가구의 빈곤율은 남성가구주의 두 배에 달한다. 나는 '여자라는 게 뭐가 문제야,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라고 말했으나, 전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성별 격차는 명백히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 서로 모순된 얘기의 함정은 '자기가 하기 나름'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데 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그러하다. '자기가 하기 나름', 즉 이른바 노력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조차 특권적인 위치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가 노력과 능력을 통해 자본가가 될 수 있는가, 승진할 수 있는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가? 무수한 노동자들은 노력과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도 없고 그럴 필요나 이유도 없다. 자본은 노동을 언제든지 갖다 쓰다가 쓸모없어지면 폐기하고 대체할 부품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노력과 능력이라는 것은 노동 강도 경쟁을 강화하는 허위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교묘함을 더해가는 비정규직 형태들을 이용하면서 자본은 맘 내키는 대로 노동자들을 폐기처분하고 심지어 노동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은폐한다. 노동자 세력이 심각하게 약화되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나는 노력과 능력을 가진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다!"라는 찍 소리 한마디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 분명히 고용과 승진 등에서 성차별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성차별 금지법이 다루는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데, 그것은 직종과 직무의 성별분리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77%가 여성 직종에 집중되어 있고, 바로 이 직종들에서 비정규직화와 저임금화의 추세가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차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많은 여성 직종들의 직무는 감정노동이나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에서 취급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적'(!) 일들은 주변적인 것이므로,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임금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는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남자들과 동등하게 노력과 능력을 보여주는 개별 여성을 성차별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일'은 여전히 '하잘 것 없는 일'인 것이며, 따라서 그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노동자'에 미달하는 것이다. 2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하게 해 달라고 호소한 여성 노동자의 모습. 그녀는 말했다. 대의원도 아니고, 조합원도 아니라고. 노조도 없다고.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은 노동자로서 '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른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에 "아줌마, 뭐야?"라고 대꾸했던 한 노조간부의 말은 '노동자에 미달하는 여성'이라는 자본의 목소리를 반복한다. 참관인석의 아줌마와 아가씨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대의원 석상에도 적지 않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여성 노동자로서 노조 활동가로 활약하는 그들은 존경받을 만하다. 그 뿐 아니라 몇 년 사이 각종 단체에서도 여성 활동가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확연히 눈에 띈다.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성차별은 줄어드는 경향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의 공격 하에 가장 불안정해지는 노동자 집단이 바로 여성 직종이고, 여성의 빈곤화는 더더욱 심화되고 있다. 성차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도 증명할 방법도 없이,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힘겹게 싸워야 한다. 나를 비롯하여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거의 불이익을 겪지 않거나 또는 '자기가 하기 나름'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운이 좋았다. 훨씬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하기 나름'으로 성차별을 극복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성차별은 약화되고 있지만, 여성 노동자 집단에 대한 구조적인 성차별은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 석상에 들어오지 못한, 참관인석의 아줌마와 아가씨들. 적어도 '여성'을 보기 위해서는, 어쩌면 대의원석의 훌륭한 여성 노조 활동가들보다 그들의 얼굴을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여자의 하잘것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여전히 '아줌마'와 '아가씨'로 지칭하는 노동운동의 뒷면에서 음흉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인 것이다.PSSP
성폭력 사건, 네티즌들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 한 아 름 | 학생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들려온 밀양 성폭력 사건 소식은 또 한 차례의-어쩌면 지긋지긋한!-분노를 안겨다주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종잡을 수 없이 이곳저곳으로 뻗쳤다. 가해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대수롭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경찰들.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달려드는 언론들.(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한 인터넷 기사는 내가 알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쓴 것이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할 때의 오묘한 기분이란!) 그네들이 토해내는 선정적인 기사들. 그러한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사람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결국 ‘여성=성상품’이 되고 마는 이 세상...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던 분노는 세상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 놈의 세상이란. 염세주의자가 되어 세상 한참 한탄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렇듯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분노를 모아 행동으로 취하는 대중들의 움직임 덕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는 말- 이 역시 다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을 하고 싶어서다. ‘성폭력’이라고 하면 ‘정신병자 혹은 치한에 의해 어쩌다 재수 없게 발생하는 강간’ 정도로 여겨져 오던 우리 사회에서 중고등학생에 의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경찰과 학부모들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의해 봉합되려 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가져왔다. 이에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의 행동을 넘어 오프라인의 행동을 조직했다. 12월11일 토요일 광화문 앞에는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촛불을 들었다. [디씨 인싸이드]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아이는, 밀양에서 일어난 이번 성폭행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보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일이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알아가도록 하자고 말했다. [엽기혹은진실]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자아이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탁한다고, 이곳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분노한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잊지 말자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하는 등 투박하고 거칠지만 감동적인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소위 ‘인터넷 폐인’, ‘햏자’ 등으로 통칭되어 날밤을 새며 그 닥 쓸데없는 일을 하는 이들로 여겨지던 이들이 오프라인 상의 집단행동을 조직하고 사건해결을 위한 진심을 보이는 모습은 진정 감동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그네들이 보인 폭발적인 반응(가해자들의 미니홈피 테러, 신상정보 인터넷에 유포 등)은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네티즌에 대한 그간의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우려’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naver, daum, 싸이월드, 디씨인사이드등에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촉구와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 네티즌들은 인터넷 선전 및 서명운동과 촛불집회등을 지속하고 있다. 인터넷 선전의 한 예로 ‘나무 키우기’ 운동을 진행하는 모습을 들 수 있겠다. daum 이벤트의 일종인 ‘나무 키우기’는 까페회원들의 단합된 행동으로 순위 안에 들면 지원금을 탈 수 있는 것인데,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daum에 까페를 차린 이들은 활동비 마련과 피해학생들에게 지지금 전달을 목표로 하여 ‘나무 키우기’를 하나의 운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촛불집회를 제안하고 진행했던 이들은 돌아오는 토요일인 신년 첫날 저녁의 집회도 의미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민 중이다. 비록 네티즌들의 반응과 행동을 곧바로 대중들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들의 분노를 정치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은 주목할 만한 것임이 분명하다. 딸가진 부모로서 세상살기 무섭다는 이야기, 딸없는 부모들은 이 사건에 관심을 안두는 세태가 속상하다는 이야기, 가해자들에게 너무나도 경미한 처벌이 가해지는 현행법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 청소년들의 성의식을 바로잡아야하겠다는 이야기, 결국 이 사회에서 성과 관련하여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피해학생들의 상처가 모쪼록 치유되길 바란다는 이야기, 그런데 왜 대학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토록 조용한지 왜 국보법과 호주제 폐지와 관련한 이야기만 있는지 불만이라는 이야기...대중들이 스스로의 입으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올곧은 방향을 마련해나가는 모습들 말이다. 실지로 네이버의 한 까페에서는 ‘서울경기지역/부산대구경상지역/광주전라지역/대전충청지역/강원제주지역’오프라인 모임을 꾸려내어 지역별 촛불집회를 조직하고 있고, 또한 비단 밀양 성폭력 사건 뿐만 아니라 여타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민들을 심화시키고 성범죄/성폭력에 대한 확장된 합의들을 정립해나가는 등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만의 모습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대한 억압의 기원을 인식하고 있는 운동주체라 할지라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이러한 충격을 현실 자체를 변화시켜낼 계기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네티즌들의 역동적인 분노와 행동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통해 대중들은 솔직하게 분노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는데, 과연 운동주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 )"라는 괄호 안에는 과연 어떠한 말이 들어가야 적절하겠는가?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과 사건의 올바른 수사 촉구를 넘어, 분노하는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올곧은 행동양식을 제시하는 것, 정세적으로 창출된 국면을 대중이데올로기 지형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는 운동은 어떻게 사고되어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순결이데올로기등 기존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노에 대한 비판도, 피해자들의 상처치유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분노표출방식에 대한 비판도, 모두 분노한 대중들과 함께 행동을 취해가는 과정에서 제기되어야 유효할 비판들이라는 사실이다. 입장의 올곧음은 행동의 기민함과 만날 때에야 비로소 쓸모 있어지는 법이다. 물론 운동주체들의 기민하지 못함만이 현재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정작’ 운동주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아닐 것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어떠한 운동‘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서로를 견인해 나갈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다면,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기존의 운동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포용함으로써 보다 위력적인 운동을 벌여내는 것 등은 버거운 일일 테다. 한 네티즌이 올린 이야기 -왜 동아리 방에서는 지금 모든 사람이 관심 있는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지 않고 늘 국가보안법 철폐만 이야기 되는가 -가 담고 있는 일말의 진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은 우리에게 현명하고 민첩해 질 것을 촉구할 뿐 아니라 운동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심사숙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의미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어떻게 계속될 것인가. 성(性)의 상품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반대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성(性)적 교통, 여성의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발현의 문제와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그리하여 여남 간의 관계의 전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운동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관계 맺을 것인가. "밀양 성폭력 사건,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의 괄호 안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때를 놓치지 않는 행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에 관련한 네티즌 요구문 이번의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불과 14살 남짓 밖에 안 된 어린 여중생들을 상대로,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무려 41명에 달하는(직접가담의 혐의가 확인된 범인은 현재 12명) 용의자들이 일 년 간에 걸쳐 집단적-조직적으로 행했다는 점에서, 성범죄의 간악한 수법이 청소년에게까지 퍼져있을 정도로 성범죄의 수위가 현재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달해있음을 알려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한 비인권적 수사관행과 허술한 신상보호, 그리고 가해자 측의 죄의식 없는 시대착오적인 남성절대우월주의의 사고방식과 언론의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 등은, 이 사건 자체의 충격과 함께 대한민국 성범죄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심각한 문제까지 모두 보여주는 것이기에,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그저 일례의 사건으로 간과할 수 없는, 이제는 성범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달라져야할 때임을,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때임을 통감하게도 하는 사건입니다.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성범죄 발생률은 세계 선두권이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협박을 받고 경찰에게 폭언을 들어야 하며 미미한 처벌로 인해 동일 범인에 의한 중복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흔한 상황임을 네티즌들은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무너진 인권이 곧 우리 모두의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 상황이란 깨달음과, 또한 누구나 언제고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내 만연하는 성범죄에 대한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발로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첫째, 밀양 집단강간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 밀양사건의 경우 직접 강간에 참여한 가해자 뿐 아니라 사건을 방조하거나 묵인한 간접가담자까지 처벌하라. 또한 범행의 악랄함을 보아 일반 소년범으로 가볍게 처벌해서는 안된다. 또한 가만두지 않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가해자의 가족 등에 대해서도 엄중 처벌할 것.) 둘째, 경찰의 강압적이고 원시적인 수사방식 탈피와 피해자의 인권 존중. (-- 피해자에게 폭언을 한 경관에게 실질적인 중징계를 하고 자체감사로 폭언 뿐 아니라 비공개원칙과 피해자권리 원칙을 어긴 여타의 인권침해 여부를 철저히 가려내 징계, 보도하라. 성폭력 전담 여경기동대를 설치하고 요청 시 부족한 인원을 충당할 수 있도록 태세를 보완.) 셋째, 성폭력 범죄 가해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볍[가칭] 제정과 현행법 개정. (-- 성폭력범의 신상공개 등 미국 메건법에 준하는 재발방지와 중복범행에 대한 예방법을 마련하라. 집단강간, 강도강간, 어린이나 지체부자유 여성에 대한 범행의 경우 범인 신원에 대한 보도 자유와 종신형 이상의 법제 마련. 형량의 상한선이 아닌 형량의 하한선 지정.) 넷째, 언론매체의 정확하고 옳바른 보도. (-- 피해자의 신상을 거론하는 일체의 선정적인 보도를 중단하고 사건관련의 유사범죄나 선진국 처벌관례 등을 추가 보도하는 심층적인 보도를 하라. )
가사노동 들여다보기 일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 가사노동 들여다보기 진 재 연 | 편집부장 가사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면 각 직장마다 지각, 조퇴사태가 속출하고 있어 업무가 마비되었다. 아이들은 울다 지쳐 고열, 몸살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스턴트식품으로 며칠을 버티다 영양실조에 걸렸다. 파출부, 가정부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침마다 머리를 빗겨 달라는 딸의 성화에 화가 나고 요리책으로 요리가 되지 않는 사실에 남편들의 아내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져간다. 모든 게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언론은 가족을 위해 사랑과 헌신으로 봉사해야 할 여성들의 도덕성을 개탄하고, 가정을 버린 비정한 어머니, 파렴치한 아내들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여성들이 빠른 시일 내에 가정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전원 구속방침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쌓여가는 집안일을 바라보며 아내와 며느리에 대한 분노만 키워갈 남편과 가족들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처분을 정부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여느 파업에서 볼 수 있는 가족대책위가 조직될 리 없지만 '엄마 힘 내세요'라는 피켓을 든 아이들과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 "정말 아침마다 전쟁이죠. 눈뜨기가 무섭게 밥 차리고 아이들 옷 입히고 준비물 챙기고 차례로 내보내고 나면 진이 다 빠져요. 돌아서서 방안을 보면 이불도 안 치운 채 가득하고 매미 허물 벗은 듯 잘도 빠져나가버렸네요. 10년을 하루같이 이불이라도 개고 살자고 외쳐대지만 사실 아침에 양말이라도 제짝 찾아 신고 나가면 다행이지요" 가사노동은 단일한 활동이 아니다. 다리미질,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장보기. 다양한 행동과 기술이 필요한 이질적인 작업의 집합체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하지 않으면 금방 표가 나고, 늘 자질구레한 일이 널려 있어서 잠시라도 다른 일에 신경을 집중할 수 가 없다. 매달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도시 가스세 등 각종 공과금을 빠짐없이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장을 담그는 일처럼 엄청난 노동 강도와 숙련기술이 필요한 일도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처럼 정신적 긴장감까지 요구되는 일도 있다. 저녁마다 가족의 입맛에 맞는 저녁을 차려내는 것은 결코 오랜 경험으로 숙련된 노동의 결과이다. 산더미 같은 일속에서도 기침까지 콜록거리며 칭얼대는 애들 요구사항 들어주려면 정말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는데, 사실 애 키우는 일 하나 만으로도 몸과 정신을 다 집중해야 한다. 이유식 준비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하고 유치원에서 데리고 와야 하고, 학교 들어가면 방과 후 숙제도 봐주고 준비물도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엄마는 마땅히 학부모회의 참관, 급식 당번등을 해야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간병을 해야 하는 사람도 여성이다. 여성들은 그 많은 노동을 아무런 대가없이 수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노동으로서가 아니라 엄마, 아내, 며느리의 당연한 역할로 여겨진다. 여성의 노동은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거나 가족에게 종속되어 뒤따르는 그림자일 뿐이다.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피는 것이다? "하루 종일 많은 일들에 치어 살면서도 나의 일을 당당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안해요', '그냥 놀아요'라고 말하고 말았는데, 학교 들어간 아이가 가져온 가정환경조사서의 어머니 직업란을 보니 참 많이 고민이 되더라구요. 처음엔 그냥 빈칸으로 나누거나 '무직'이라고 썼는데, 나중에는 주부라고 고쳐 썼어요. 하지만 사실 주부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 건 직업란을 채울 때 뿐이에요." 사적이고 부차적인 일로 평가절하되는 가사노동은 그 일을 하는 여성들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다. 가족들은 여성의 사랑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가사노동이 조금만 소홀해도 불만을 터뜨리지만, 자신의 일상이 아내와 엄마의 노동위에 서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가사노동은 가족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가족적'인 것이 아니다. 또, 가족에 의해 수행되지도 않는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여성이 수행하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분리하면서, 사적인 영역인 가정에 여성들을 가두고 여성의 노동은 보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자본과 국가는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동원하거나 배제시켰다. 여성의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숭고한 미덕인양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여성의 노동은 생산 활동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동'에 미달한 것으로 여겼다. 또한 가사노동은 가족구성원을 위한 정서적, 인격적 배려를 기반으로 하며, 가족 한사람 한사람의 건강관리도 여성의 책임이다. 아이가 아프면 그 책임은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돌보는 여자 탓이다. 또한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가족들에게 정서적 안전판이 되어주어야 한다. 희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는 감정노동은 가사노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고 그로 인한 상처와 스트레스가 일상에서 쌓여간다. 가사노동의 사적이고 고립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러한 정서적 긴장은 여성개인에게 고스란히 남고 소외감, 우울증, 허무감 등을 느끼게 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자의 행복'을 과장하거나 반대로 현실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해소하면서 살아간다. 가사노동 분담, 그리고 사회화 "결혼전 남편과 저는 여성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특히 가사노동 분담에 관해서는 서로 완벽하게 합의했죠. 아니, 합의했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자신이 가사노동을 철저하게 분담해서 역할을 맡겠다고 거듭 확인했고, 여성에게 그 모든 것을 떠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견해와도 맡지 않는다고 했어요. 둘 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사노동에 관련해서 저는 모든 걸 했고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집안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란 이 닦고 세수하고 신문보는 것 뿐이었죠." 일상에서 여성의 노동을 분담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것만으로 불충분하겠지만 여성의 고된 일상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사노동만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그 작업들이 어떤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살펴야 한다. 가사노동을 둘러싼 관계들을 민주적으로 바꾸어 내고 사회화시켜내는 일은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고, 지금의 가족형태를 뛰어넘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도 요구된다. 가사노동을 눈에 보이게 하고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투쟁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을 새롭게 인식하고, 여성의 노동이 사회를 유지하고 움직여온 힘이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또한 여성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해왔음을 보이고, 여성에게 부당하게 떠맡겨져온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나를 변화시킬 것이고, 가족을 전화시킬 것이고, 사회를 변혁할 것이다. PSSP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11일 뉴욕에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49차 총회가 열렸다. 이 회의는 1995년 북경 4차 유엔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북경여성선언’ 및 ‘북경행동강령’을 채택한 이후, 10년 동안 각 국 정부가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목적으로 열렸다. 여성선언문은 ‘성주류화’를 여성발전의 기본방향으로 본격적으로 제시했으며, 북경행동강령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각 국 정부와 유엔의 행동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회의에 참석하여 그 동안 북경행동강령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장치들을 꾸준히 마련하고 실행했다고 밝혔다. 여성발전기본법 제정(1995)을 시작으로 하여 여성부 신설(2001) 등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여성의 공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성폭력특별법(1994), 가정폭력특별법(1997), 성매매방지법(2004)을 제정하여 여성의 인권을 진전시키고 여성에 대한 폭력 및 성적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신설된 여성부는 가정과 직장에서 성 평등을 이루어내기 위해 호주제를 폐지하고 양육을 지원하는 한편,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고 고용에 있어서의 평등을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다. 그 결과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했다. 정부의 보고에 따르면 이와 같이 새로 도입된 법·제도적 장치들이 공직에 진출한 여성들의 비율을 늘이고 차별적인 요소를 제거했다는 측면에서 여성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성주류화 전략’에 따른 효과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여성 취업자의 수는 점차 늘고 있지만, 전체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이고 노조가입률은 5.2%에 불과하다는 통계수치가 제시해주듯, 오히려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가 제공되었을 뿐이다. 여기에 출산, 양육을 비롯한 재생산 노동에 대한 이전보다 많은 의무까지 더해져서 여성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된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것처럼 선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대다수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여성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똑바로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여성: 구조조정의 충격 흡수판에서 저출산 시대를 극복할 자원으로 북경행동강령이 채택된 후 여성들이 맞닥뜨리게 된 현실은 ‘경제위기의 안전판’으로서 이중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97년 IMF 외환위기로 정리해고가 합법화된 후, 그 1순위는 바로 여성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으로 사회서비스 관련 예산이 삭감되어 가계유지비용이 급증하자 가사노동을 담당하고 가족구성원을 보살피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의무는 더욱 강화되었다. 동시에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에 따른 가계소득의 감소로, 여성들은 부족한 생계비용을 보충하기 위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내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적으로 판매해야만 했다. 가족 내에서 부여받는 재생산 노동에 대한 일차적 책임과 노동시장에서의 부차적인 지위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여성을 이중적 고통의 악순환에 빠뜨렸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재생산노동의 일차적 책임자이자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유연한 노동력으로서 여성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여성들의 이중적 고통을 고착시켰다. “여성인력의 계발과 활용”,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으로 표현되는 여성정책의 기조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도래한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가족형태의 위기,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최근에는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에 여성을 동원해 내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충격 흡수판의 역할을 담당하던 여성들은 이제 ‘저출산-고령화’로 표현되는 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할 ‘인적 자원’으로 호명되고 있다. 2004년 제정된 건강가족기본법은 자녀양육과 노인부양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족 형태를 ‘건강가족’으로 장려하고 이러한 형태의 가족에 한정하여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법은 여성들이 이혼을 선택할 권리보다 가족을 지킬 의무를 더욱 강조하며, 출산·양육에 대한 책임은 강조하는 반면 피임에 대한 지원은 포기한다. 더불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책을 제시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여성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대응을 여성정책의 일차적 목표로 삼는 데에 따른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양성평등의 실현’을 목표로 내세운 ‘여성부’가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고 재생산의 일차적 책임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여성가족부’로 재편될 예정이다. 결국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여성의 발전을 꾀한다던 지난 10년 동안의 여성정책은 노동의 불안정화에 조응한 ‘빈곤의 여성화’를 정당화하거나 관리하려는 시도였으며,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면서 이중적인 의무는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맞서는 여성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성 주류화’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정책이 대두된 지난 10년 동안,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에 맞서는 여성들의 투쟁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정리해고가 합법화 된 이후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었던 현대자동차 식당노동자들은 성차별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현실을 폭로하며,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나섰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학습지 교사 등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특수고용직’의 실상을 드러내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역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임금을 보장한다는 취지와 정반대로 이들을 저임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최저임금제의 허울을 비판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에 가장 앞장섰다. 가족형태의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가족 내에서 소화되지 않는 간병노동을 수행하면서도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간병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살핌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는 중요한 쟁점을 제기했다. 신자유주의 농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농사 이외에도 생계를 보충하기 위한 부업에다 가사노동까지 3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농민들 역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선두에 나서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은 더욱 분명히 확인되고, 성매매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성매매 여성들의 시민권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여성들의 연대,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강화하자! 95년 북경여성대회가 열리던 당시, 이를 계기로 결집한 여성들은 북경행동강령과 별도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것을 여성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이에 관한 17가지의 요구목록을 스스로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5년 후 이 요구목록을 바탕으로 지구를 횡단하는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을 진행하였고, 여기에 결합했던 각 국의 여성운동들은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라는 세계적인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러한 세계여성행진이 결성되는데 단초를 제공했던 북경여성대회 10년이 된 올 해, 이 릴레이 행진이 다시 한번 진행된다. 작년 세계여성행진 총회를 통해 채택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널리 알려내고 전쟁을 동반한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요구를 알려내는 활동이 이 행진을 통해 진행된다. 이 행진은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구를 횡단한 후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 될 예정이다. 세계여성행진은 여성들의 고유한 권리의 문제를 사회변혁과 결합시키며 대안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성주류화’에 따른 정책이 제공하는 기회가 일부 여성들에게만 한정된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이렇듯 여성들 스스로가 행동에 나서고 여성들 간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 여성운동의 주류적 경향이 한정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절대화하며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요구를 집단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