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 부쳐 민주노동당이 25일 임시당대회를 개최하여 국민참여당을 포함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안을 심의, 의결한다. 지난 9월 4일 진보신당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조직진로에 대한 최종 승인의 건’이 부결됨에 따라, 대신 5월 31일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에 동의한 국참당을 통합 대상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참당도 민주노동당 당대회가 열리는 25일부터 10월 1일까지 ‘민주노동당과의 신설합당’ 여부를 묻는 당원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와 국참당 당원총투표에서 각 안건들이 의결된다면 양당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11월 노동자대회 이전에 건설될 전망이다. [%=사진1%] 민주노동당의 국참당 끌어들이기 그동안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지난 7월 10일 국참당이 5.31 연석회의 최종합의문과 부속합의서에 동의한다는 결정을 내린 직후 민주노동당은 국참당을 진보대통합의 대상으로 공식 승인하였다. 이때 ‘국참당과의 통합은 진보신당과의 통합 문제가 일단락된 후 최종 결정한다’고 유보하였지만, 민주노동당은 ‘국참당의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참여 문제는 당원 및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한다’는 미명 하에 당내외에서 통합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펼쳤다. 일례로 7월 중순경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선 사업계획> 초초안을 발표했는데, 이 문건은 내년 총선 목표를 ‘원내교섭단체 실현’으로 설정하면서 “정당 지지율 10-15% 가량 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9월 안에 건설할 수 있다면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야권연대’를 강력하게 견인하여 ‘원내교섭단체 구성’ 및 ‘진보적 정권교체’의 강력한 거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즉, 올해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내년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노골적인 선거공학적 발상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는 7월 말 ‘진보대통합 관련 민주노동당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민주노동당 당원의 72%가 국참당과의 통합에 대해 찬성하고 2012년 총대선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 국참당, 진보신당 등이 통합하여 진보대통합 정당이 생길 경우 민주당을 앞지를 수 있다’는 여론기관 설문조사 결과를 통합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금속노조 조합원 여론조사 보고서>에서 ‘국참당 등과의 통합에 대해 57.2%가 찬성한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의도가 순탄하게 관철된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민주노총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는 6월 13일과 8월 17일에 각각 “진보정당의 통합을 앞둔 엄중한 시기에 국참당과 관련된 논란은 부적절한 것임을 확인한다”, “국참당과 관련된 논의는 진보양당의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참가단체 중 하나인 진보교수연구자모임도 국참당 합류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8월 하순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당 협상이 국참당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빈민 3단체도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무엇보다 지난 8월 28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국참당을 포함하여 통합 진보정당 건설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수임기관에 위임’하자는 집행부 원안이 부결되고 대신 ‘진보신당과 합의하였을 시’라는 단서 조항을 둔 수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당내에서도 당권파의 전횡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자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재빨리 국참당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6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수임기관전체회의에서는 진보신당(통합파)과 국민참여당 중 누가 우선적인 통합 고려 대상인가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에 격론이 일었다. 하지만 결국 두 안이 애매하게 절충, ‘9월 중 당대회를 개최하여 국참당이 통합 대상인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결정됐다. 다만 당대회 개최 강행에 대한 반론을 의식하여, 이정희 대표, 장원섭 사무총장,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 안동섭 경기도당위원장, 정성희 최고위원의 대표 발의와 대의원 3분의 1 이상(55.64%)의 동의로 당대회 개최를 공지한 상태다. 이에 따라 9월 25일 개최되는 민주노동당 임시대의원대회는 재석 대의원 2/3 이상의 동의로 본안을 의결하게 된다. 국참당 통합의 진정한 쟁점은 수권정당론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수권정당화를 위해서 국참당과 같은 개혁세력이 진보적으로 노선 전환한 경우 진보세력의 일부로 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얼마 전까지 차기 대선 범야권 후보 중 수위를 달리던 유시민 대표 개인의 명망성을 흡수하는 동시에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총선에서 민주당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규모를 만들어 최대한 의석을 확보한 뒤, 대선에서 득표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 민주당과 제휴, 연립정부를 수립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권파는 유시민 대표 외에는 당조직이 취약한 국참당을 민주노동당이 지닌 조직력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권파는 진보신당과의 양당 통합 형식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국참당 그리고 진보신당 일부가 참여하는 통합정당 건설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비당권파는 어떤 입장인가? 비당권파라고 할 때, 이들은 국참당에 비해 진보신당을 우선적 통합 대상으로 고려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국참당과의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단일한 세력으로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이번 진보신당 당대회 이후 진보신당과의 선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단적으로 그동안 국참당과의 통합에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울산지역 대의원들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주요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김성진 최고위원(전 인천시당위원장)도 ‘진보신당과 국참당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번 당대회를 비판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서 국참당 문제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 세력은 당내 좌파를 제외하면 권영길, 강기갑 의원 등이다. 이들은 국참당이 연대의 대상일지언정 조직통합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당내 여론 분포나 권력 지형을 감안할 때 이번 당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 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국참당과의 통합이나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방침은 특정 정파의 아집이라기보다는 최근 수년간 민주노동당이 추구해온 수권정당 노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주류화와 우경화 2009년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2017년 집권을 위하여 - 집권전략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2008년 분당 이후 당권을 장악한 범 민족해방(NL) 계열의 문제의식을 집약하는 이 문건은, 한편으로 NL 계열이 구래의 ‘자주적 민주정부론’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켜 ‘집권’으로 상징되는 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분당 이전부터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2012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수권정당’으로 설정했다. 2007년 대선 패배가 분당으로 귀결된 것도 실은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파괴적으로 드러난 결과, 다시 말해 수권정당 노선에 내재한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동당의 주류화 전략은 양당 구도에서 질식될 수밖에 없는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참당이나 민주당 등과의 계급연합을 적극 추진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한층 우경화된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은 반신자유주의 세력-반제민족주의 세력-민주평화통일 세력의 진보대연합으로 ‘진보적 발전노선’과 ‘사회복지대혁명’을 통해 ‘민중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10년 초 발표된 <민주노동당 창당 10년 평가와 과제>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여기에서 민주노동당의 당면 과제는 △신자유주의 반대, 민족자주, 6·15정신에 입각한 평화통일 실현을 목표로 하는 통일전선에 봉사하면서 △민중운동·녹색운동·시민운동을 아우르는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고 △적극적 선거연합을 성사시키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노선 전환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강령 개정에서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약진할 수 있었던 배경을 민주당과의 ‘반MB 선거연합’에서 찾았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면서 진보신당과는 선거연합을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진보신당과의 선거연합은 진보대통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전략적으로 무의미하고, 또한 당선가능성이 없다면 전술적으로도 무의미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로부터 민주노동당은 ‘제3당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대안권력으로 성장하려면 진보양당을 포함하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까지 포괄하는 진보대통합당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도출한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단순한 선거연합을 넘어 공동정부 구상을 현실화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어서 2011년에는 강령을 전면 개정하여 당의 이념적 지향을 기존의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하였다. 이것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포석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국참당과 야권통합론의 노림수 그렇다면 반대로, 국참당이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라는 정강정책 전문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국참당은 이념·노선적으로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이다. 국참당은 민주당을 지역독점 및 권위주의 정치행태에 찌든 ‘폐쇄적 엘리트정당’로 규정하고 진성당원제와 전국정당화, 지역주의 극복을 표방한다. 그런데 국참당 정강정책은 ‘사회통합을 위해 정당 및 정치세력 간 연합을 옹호하고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을 위해 정치연합을 선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유시민 대표가 지난 3월 당대표로 선출된 자리에서 “다른 정당과 어울리고 뒤섞이는 일에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이를 ‘통합의 정치’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화두라고 일컫는다. 국참당이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독자적인 이념·노선과 조직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야권 통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참당 당 조직세가 취약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친노의 적통’을 자처하며 창당한 국참당은 사실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규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유시민 대표를 제외하고 대중적 명망성을 갖춘 인사들도 없을 뿐더러 국회의원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민주당을 상대로 하는 야권 단일화에 승부수를 던졌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의 취약한 조직세를 보충하기 위해 ‘진보적 민주주의’로 이념적 지향을 대폭 우경화한 민주노동당과 통합함으로써 범야권 내에서 민주당의 대항마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했다. 이는 수권정당화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이해에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국참당은 경남 김해에서 자신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당선될 경우 원내에 최초로 진출함과 동시에 ‘친노 영남벨트’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들이 민주당과의 정치협상에서 막판까지 ‘100%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를 주장, 관철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참당이 ‘당원중심의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선거전문가 정당’ 또는 ‘명망가 정당’에 가까우며,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통합의 정치’가 실제로는 야권의 합종연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최근 문재인 이사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두관 경남지사,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등 전 집권세력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혁신과 통합’이 민주당 내외곽에서 야권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외곽(‘제3지대’)에서 백지신당을 만든 뒤 여기에 기존 정당 및 정당권 안팎의 정치인이 합류하여 신설합당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정파의 정체성 보장제도(정파등록제)를 통해 진보정당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에 대한 광범위한 민심이반을 흡수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도 야권통합을 통해 정권교체의 새로운 동력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중운동에게 파괴적 효과를 불러올 것 이렇듯 현재 민주당·국참당 및 그 외곽에 산재한 전 집권세력은 다가올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반한나라당 야권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민중운동의 일부를 적극 포섭하려 하고 있다. 이념·노선·정파를 초월하여 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면 민생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행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보수-중도개혁-진보 3정립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주체적 환상에 불과하다. 이는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현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에게 지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선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이 최소한 견지하고 있던 운동정당으로서의 성격을 급격히 약화시킬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참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수권정당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여 일상 활동의 무게중심을 선거와 원내 정치로 대거 이동할 것이다. 특히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 및 연립정부 노선을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로(自勞, lib-lab)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의 다수를 점하는 한 정파는 숫제 ‘집권을 위한 노동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민주노총 중앙위에서 통과된 사업계획은 2012년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를 명시하였고 이는 다가올 노동자대회에서 공식 제안될 예정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민주노동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민주노동당과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정을 감안할 때, 국참당과의 통합은 단순한 득표율 및 원내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실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 자신은 물론 민주노동당으로 표상되는 민중운동 주류의 대대적인 노선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는 또한 자유주의 세력과 이념적·조직적으로 분별 정립하려던 진보정당 및 정치세력화 운동이 쇠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진보정당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악순환은 사실 1990년대 이후 일체의 진보정당 운동이 처했던 공통적 경향이었다. 정당의 대중적 토대의 취약성은 당의 우경화를 낳지만, 그러한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의 패배는 자명한 사실이 된다. 선거 패배는 당 역량의 한계로 환원되어 정당 통합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대중운동의 진출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안은 결코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그 결과 ‘진보정당’은 조직적 혹은 개인적으로 기존 정당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침 속에서 정작 정당의 대중적 기초를 형성하려는 공세적 계획은 체계적으로 누락되곤 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참여당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존재하던 여타 진보정당과 다른 점은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 대중조직의 조직적 결의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은 대중조직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대중운동의 우경화를 동반할 우려가 크다. 전농은 국참당 유시민 대표의 ‘한미 FTA 사과’ 발언 당시 그 해석을 둘러싸고 이미 한 차례 논란을 겪은 바 있다. 8월까지 산별대표자회의 결정을 통해 진보정당 간 통합에 좀 더 무게를 실었던 민주노총도 애매한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9월 8일 열린 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5·31 최종합의문>과 <8·27 새통추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문>이 여전히 유효하며 진보대통합운동은 중단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 대표자가 민주노동당이 국참당 문제를 9월 당대회에 상정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것은 진보신당 당대회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참당 논란 유감’ 입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당초 19일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정치방침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회의를 당대회 불과 이틀 전인 23일로 연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집행부가 배타적 지지 관계를 맺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대회에 앞서 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것도 원안과 배치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 주류 세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역행하는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나 노동법 개정 등 핵심 이슈에서 민주당보다도 더 완강하게 참여정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국참당을 정당 통합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민주노총 중집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입장을 일정 부분 후퇴시키거나 분명한 결정을 유보하고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이 통과될 경우,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가 되어 민주노총에 돌아올 것이다. 산별대표자회의와 같은 공식 체계는 물론 수많은 활동가들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중집이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향후에 민주노총은 대단히 심각한 내홍을 겪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계급연합을 상징하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민주노총이 수수방관한다면 이는 자신의 정치적·조직적 기초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민주노총 중집은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 통합을 결정한다면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분명한 의사 표명은 향후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방어하고 조직 내 분란을 방지하는 중요한 조치가 될 것이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진보정당 운동에 비판적인 민주노총 활동가들에게도 호소한다. 민주노동당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더라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하자.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국참당과의 통합 이후에는 정치세력화 본연의 문제의식조차 대거 유실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계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노총이 자유주의 정당과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급진성을 상실하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만에 하나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변경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
8월 24일 진행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하고 무효 처리되었다. 대선 불출마 선언, 1인 시위에 이어 시장직 연계라는 벼랑 끝 전술까지 동원한 오세훈 시장의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25.7%에 머물렀다. 곽노현 교육감은 이번 투표무산을 두고 “서울시민이 보편적 복지에 동의했다”고 평가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복지사회로 가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향후 보편적 복지 프레임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예고했다. 반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불안감을 감추며 “사실상 오세훈의 승리”라는 아전인수격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주민투표가 각종 무상복지 논란의 결절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만큼, 향후 정세에 미칠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26일 오세훈 시장이 “즉각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두 달도 채 남지않은 10ㆍ26 재보선이 내년 총대선 승리를 위한 지배 양당 간 치열한 전장으로 떠올랐다. 오세훈이 명운을 걸게 된 이유 무상급식은 6·2 지방선거 때부터 민주당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 온 보편적 복지 프레임의 대표 정책이었고, 야권연대의 정책적 매개이기도 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왔지만, 복지 이외의 의제를 부각시키는 데 실패함에 따라 끊임없이 동요해왔다. 100% 무상보육을 주장한 황우여 원내대표를 비롯 여러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의 복지 공약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 유력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미 무상급식을 수용하고 ‘맞춤형 무한복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제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오세훈은 이명박 정권의 입장이자 한나라당의 당론인 선별적 복지를 원칙적으로 고수해왔다. 오세훈은 이번 주민투표가 “과잉 복지냐 합리적 복지냐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납세부담은 적고 소득재분배 효과는 큰 합리적 대안을 찾자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의 무상급식 조례 거부는 보수세력 내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폭우 피해, 미국 신용평가등급 하락 등으로 인해 주민투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또한 주민투표가 오세훈의 차별화 전략인 한, 한나라당 내 계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힘들었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제기되어왔다. 차별화 전략을 통해 대권 주자를 꿈꾸던 오세훈은 정치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명운을 걸고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오세훈-이명박의 부자감세와 복지공격 오세훈은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한편 선별적 복지를 통해 약자를 지원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대변했다. 즉,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복지를 쟁점으로 제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무상급식 정책을 ‘망국적’이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2010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33.5%로 양호한 편이지만, 향후 △잠재성장률 저하 △저출산ㆍ고령화 △무역ㆍ투자 자유화에 따른 법인세, 관세와 같은 세입감소 등 재정위기 위험요인이 존재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복지지출의 증대 역시 위험요인으로 분류되며, 무상급식이 각종 무상복지 시리즈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을 가지는 정책으로 인식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재정 건전성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나라들에 IMF가 강요하는 정책 패키지 중 하나가 항상 재정 건전성이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금융자산 보호를 위한 물가안정에는 통화량 규제와 재정 건전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및 유럽 재정위기와 맞물려, 재정 건전성은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이명박 역시 최근 8ㆍ15 경축사에서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재정 건전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각종 세금혜택을 줄일 수 없으므로 복지지출의 추가 발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감세 혜택은 늘어나지만,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의 처분권은 고스란히 자본이 가진다. 부자감세와 재정긴축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는 지배세력의 반동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명박 정부의 선별적 복지는 복지 혜택의 대상을 끊임없이 선별해 보장범위를 좁히는 동시에 복지를 노동과 연계시킨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기초생활 수급자를 엄격하게 선별하는 기초법은 선별적 복지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노동연계복지는 직업훈련, 구직과 같은 노동시장 참여 의무를 복지수급 조건과 연계시킴으로써 산업예비군을 광범위하게 조성하여 기업이 저임금ㆍ비정규직 노동자를 활용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세훈 주민투표 무산이 미칠 효과 주민투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내년 총대선을 앞둔 전초전이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민생파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무상 복지’로 흡수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6·2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주민투표 무산은 민주당이 자신의 복지 전략이 가진 유효성을 재확인하고, 총대선까지 3+1복지정책 시리즈(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를 더욱 강도높게 추진하는 근거로 작동할 것이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오세훈식 정치쇼를 통해 민주당의 ‘무상 복지’에 맞불을 놓았으나, 투표함 개봉에 실패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오세훈의 ‘벼랑 끝 전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야권의 ‘무상 복지’ 공세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오세훈식 정치쇼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투표무산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승리’라며 오세훈을 감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투표 무산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부자감세-복지축소’에 대한 일부 교정의 필요성과 ‘무상 복지’ 정책 패키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인하는 의미로 해석됨에 따라, 오세훈 패배 효과로부터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민주당과의 복지정책 경쟁을 본격화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한편, 민중운동 주류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연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에 흡수되어왔다. 민중운동 주류가 이번 주민투표 무산을 보편적 복지 프레임의 승리이자, 야권 연대의 승리로 사고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주민투표 무산이 “야권이 한 명의 후보를 내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투표 무산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공세에 반대하는 민중운동의 목소리가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으로 모조리 흡수되는 효과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전략으로서 민주당식 보편적 복지 하지만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은 선거용 정책으로 설계되었을 뿐, 진정성과 현실성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 단적으로, 수출경쟁력 확보와 투자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한 반성없이 법인세ㆍ소득세 인상과 같은 부자증세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또한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을 기정사실화한 채 부족한 생계비 일부를 보전해주겠다는 맥락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위기를 관리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향후 국회 비준 과정에서 지배 양당 간 중대 쟁점으로 떠오를 한미FTA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부문별 피해에 대한 예방이나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한미FTA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함으로써 자본의 소유권을 전반적으로 강화한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기정사실화한 채 피해부문의 소득감소 일부를 예방하거나 보상해주겠다는 맥락에서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과 관련된 유보조항 문제에 주목한다. 이들은 승자독식에 대한 일부 교정을 주장하지만 자본에 대한 통제방안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고통을 모두 이명박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고, 민주당이 총대선에서 승리해 복지를 확대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은 결코 한나라당의 선별적 복지론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중운동이 지배양당 간 허구적 프레임대결을 넘어서야 이런 조건에서 민중운동이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10ㆍ26 재보선, 내년 총대선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을 수용하고 상층 야권연합에 몰두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침식당할 위험이 있다. 민중운동은 진정한 의미의 복지를 실현하고 임금과 고용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히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민생파탄 속에서 민중운동이 정세주도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앞으로 반복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놀음에 대처하는 올바른 길이다.
때 아닌 사회주의 논쟁과 정세적 역설 사회주의가 논란이다. 진보통합 논쟁 과정에서 녹색사회주의와 반자본주의가 복지국가 사민주의 등과 각축을 벌이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추진 중인 계급현장 좌파 진영은 최근 사회주의 강령논쟁으로 조직 분열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논란이 좌파 운동 진영의 활성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작 민중운동의 다수파격인 민주노동당은 올해 정책당대회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이상 계승” 관련 당 강령을 폐기했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이념 노선으로 채택했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운동의 위기를 빌미로 신자유주의 구집권 세력들과의 선거연합과 공동 집권이라는 정치적 망상에 빠졌고, 좌파 진영은 다양한 사회주의들로 분화하는 양상이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 전략이 관심을 얻게 되었고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위기는 심화되었지만, 위기의 효과는 운동의 전반적 우경화와 좌파의 분열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빠졌지만 새로운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정책과 정치세력들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 생존적인 위기에 빠진 계급 대중운동은 위기 심화의 효과로 분할되고 반복된 패배를 경험하며 쇠퇴 일로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대중운동의 쇠퇴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한 운동 전망은 포기되고, 이른바 “운동의 위기를 정치로 돌파하자!”는 식의 선거정치 전략이 힘을 얻게 되었다. 객관적인 계급투쟁의 조건은 악화되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환상이 정치계급화한 민중운동의 상층을 사로잡았다. 노동자민중진영의 운동역량은 아래로부터 급속히 무너져서 지리멸렬한 상태에 처했지만, 2012년을 앞둔 정치적 기획들은 진보적 집권이라는 장미빛 꿈에 부풀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적 역설은 현재와 같은 자본의 구조적 위기의 시기에 왜 사민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은 개량주의적 정치 전략들이 활개를 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사민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론에 대한 당위적인 비판을 넘어서, 실천적 극복을 위한 대안전략 모색을 위한 출발점 역시 이러한 정세적 역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덧붙여 다음의 기본 관점을 확인하며 논의를 시작해보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과 조직이 해체된 현 시대의 과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과 이념을 재건하는 것이지, 이전 시기에 존재했던 사회주의·공산주의 교리를 방어하는데 머무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또 현 시기에 개량주의를 비판하는 목적이 임박한 혁명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운동 재건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사민주의, 개량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가? 나아가 오늘날의 사민주의,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연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현재와 같은 수세기에는 혹시 그들과의 연합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신자유주의 시대 사민주의, 개량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취했던 사민주의, 개량주의 비판의 운동적 함의는 중간파에 대한 타격과 견인을 통해 지배계급을 고립시키고 압도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계급동맹전략에 있었다. 여기서 논쟁점은 누가 타격 견인해야 할 중간파이고, 해당 시기에는 비판 타격이 우선인가 견인이 우선인가였다. 그에 비교해 볼 때 2010년대를 맞이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 개량주의 비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가장 크게 바뀐 조건은 이전까지 타격, 견인해야 할 대상이었던 자유주의 좌파와 사민주의가 이전 어느 시기보다 불안정하고 동요하면서도, 단순한 중간파가 아니라 주도적인 지배분파가 되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본성상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및 사민주의)의 수렴체이고, 이는 기존의 중도좌파격인 구 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사회 자유주의로) 보수화되고 타락한 결과이다. 정치 공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좌우대립전선에서 상대적으로 중도파적인 위치를 점하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의 일반적이고 계급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은 불안정과 불확실성이다. (전위정당이 해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주체와 이념의 형성 없이 기존의 정치전선 지도 위에 지정학적으로 그려지던 일면적인 좌우 세력구분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은 관념적인 정세인식과 엉뚱한 대응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당이 때때로 한나라당보다 왼쪽에 위치하고, 한나라당의 우익적 공세가 거센 국면에서는 (이전의 방식대로 사고한다면) 민주당과의 연합이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그들의 과거행적으로 인한 상식적인 거부감은 차치하더라도, 극도로 불안정한 남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과 불확실한 정세적 특성상, 그들 신자유주의 구 집권세력들에게 신뢰할만한 정책 이념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러한 전환이 유지되리란 생각은 한낱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민주의 비판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강조점을 가진다. 구조적인 장기 불황이라는 경제적 조건은 장기 구조적인 계급타협의 토대를 허물어버린다. 그러나 강력한 우익적 공세와 노동자 대중의 악화된 생존권적 어려움 속에서 이전 시기에 무너진 계급 타협적 모델에 대한 환상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타협적 시도는 실질적인 타협의 성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으면서, 때때로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위계화와 배제에 기반한 허구적인 형태의 사회적 합의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혁명적 전위당의 이념과 지도를 벗어난) 반혁명적 전망, 개량주의적 노선이라는 규정으로 오늘날의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확한 비판은 아니다. 단순한 혁명 대 개량의 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와 계급타협 모델은 근본적인 혁신을 지체시키고 위기를 봉합하여 심화시키는 시대착오적이고 부적합한 운동양식이라는 점에서 실천적으로 극복되어야한다. 또한 사민주의는 일국 수준의 국민경제적 성장모델을 그 경제적 토대로 성립된 체제라는 점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계급타협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일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거대 법인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하고, 여기에는 노동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국적인 법제도적 보호 장치는 물론이려니와, 각종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거대법인기업이 민간차원에서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연구기술 관련 지원들이 추가된다. 그 과정에서 생산은 사회화하는데 반해 소유는 사적인 형태로 묶여있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 성장을 위한 비용은 사회화하지만 이윤은 사적으로 영유되는 모순으로 심화한다. 이것은 국가의 재정지출을 늘리고, 그것은 인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의 형태로 다시금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자본이 급격하게 초민족화 되고 국민경제(민족경제)적인 성장모델은 금융세계화로 수렴, 재편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일국적인 보호 장치 속에서 유지되어온 사민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는 경제적인 토대를 잃고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때 국가는 기존의 타협에 기초한 복지 지출의 일부를 삭감하고 재정균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재정은 더욱 악화되는데, 경제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해서는 파산한 기업과 금융기관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파괴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기 비용-손실이 사회화하고, 초민족화된 금융자본의 이윤은 사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민주의 체제의 내적인 모순이다. 사민주의가 가지는 두 번째 모순이자 취약점이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운동은 계급적 통합력을 높이기보다는 계급 내부 분배에 치우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계급 내 분할과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고유한 문제점을 가진다. 사민주의적 복지정책은 항상 복지의 수혜자와 부담자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는 계급 내부 분할과 갈등에 매우 취약하다. 정규직-비정규직, 실업자-취업 노동자, 노동빈민-상위계층 노동자 사이에서 수혜계층과 부담계층이 분리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가 생산을 변혁하기보다는 국민경제적 분배를 개선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민주의 복지 정책은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적거나, 그러한 체제의 강화를 동반하는 타협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지배체제가 구조적인 경제위기에 빠질 때마다 사민주의는 동시적인 위기에 빠지면서,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분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민주의에 고유한 계급타협은 지배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약속된 타협의 성과물을 분배해주지 못하게 되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노동자 계급내부의 분할을 확대하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그 때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은 그저 계급 내 분할을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본가 내부의 갈등에 손쉽게 동원되어, 노동-자본-국가가 연합하여 다른 노동계급 집단을 공격하는데 이르기도 한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1950년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수출중심의 금속산업 자본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건설노동자들과 수출기업 소속의 저임금 금속노동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 국면은 나중에는 수출기업 자본가 그룹과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자본 연합을 맺고, 전투적인 건설-고임금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요구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부문 남성 노동자들이 민간부분 사용자협회(SAF) 및 사민당정권과 연합하여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발단은 생산성이 낮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금속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웨덴 총연맹인 LO의 금속노조(Metall)가 민간부문 사용자협회(SAF)-사민당 정권과 손을 잡고 공공부문 노조를 민간부문에 기생하는 집단으로 공격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취약성은 사민주의적인 정치가 사회운동을 기술 관료적으로 접근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향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선거득표를 위한 공약이나 상층 국가 관료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정책론을 사회운동으로 착각하는 태도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운동 풍조는 대중을 대상화하고, 운동주체 스스로 운동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회운동은 사람들이 일상적 의식을 스스로 비판·극복하고 스스로를 자율적인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변형시키는 활동이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분배 몫을 산술적으로 최대화한다고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전략이나 권력 장악으로 변혁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변혁은 노동자들의 자기통치와 통제력을 증대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사회운동과 정치를 사회를 어떻게 통치하고, 대중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는 관점은 '사회운동'과 '정치적인 것'을 '정책'으로, 또 다시 심지어는 '경찰의 통제'로 변질시킨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계승한다”는 강령을 삭제하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이념으로 채택했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전인 2002년경에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논란을 벌인바 있다. 당시에 사회주의 강령 삭제를 추진했던 세력들이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막상 진보적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이념인지는 강령 개정안만으로는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정책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에서 발간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책자 정도가 주요한 참고자료다. 새세상연구소는 이 책자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대안이념 전략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그런데 새세상연구소는 설명도 없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좌편향이고, 자유주의는 우편향이라는 식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론의 이념적 정당성을 강변한다. 그런 뒤에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라는 이름으로 정치, 경제, 복지, 평화통일과 사회적 평등과 관련된 강령적 정책들을 나열한다. 아무리 이 책자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도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뚜렷한 내용이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해마다 열리는 민중대회 때 작성되는 민중요구안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재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 한 가지 특징적으로 언급된 내용이 있다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모델을 진보적 민주주의의 주요 사례로 꼽는 대목이다. 하지만 차베스의 개혁모델을 뭐라고 규정하건 그 핵심은 막대한 석유자원과 차베스 자신의 카리스마적 정치지도력을 기본토대로 삼아,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급진적인 분배, 지원정책을 펼치는 데 있다. 이런 개혁모델을 한국 자본주의의 강령적 대안으로 삼기에는 많은 곤란점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차베스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그만두더라도, 차베스 스스로가 내세운 베네주엘라 개혁의 모토는 '21세기 사회주의'다. 그리고 차베스의 개혁이 나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다고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의 국유화나 독점자본에 대한 통제를 도입한 급진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새세상연구소는 오히려 거꾸로 차베스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나 경제 질서의 기본을 부정하지 않는 민주적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진보적 민주의론은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적 소유구조, 경제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진보 민주정권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유일한 내용이다. 사회주의 강령 구절을 삭제하고, 자유주의 개혁분파들과의 선거연합과 공동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념인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민주의적 후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사민주의라고 평가하기에도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크게 미달하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그 명칭 그대로 진보적인 민주주의다. 애매하게 개량적인 민주주의 정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특히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한국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종속된 후진적 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그럼으로써 당면한 반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성격을 종속성과 후진성의 극복을 위한 민주주의적 과제로 규정한다. 즉 반신자유주의를 민족자주의 과제, 반봉건 (자본주의적)선진화의 과제로 뒤바꿔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반신자유주의는 당면한 과제이고, 반자본주의적 과제는 먼 훗날의 과제로 서로 구분된다. 당면한 민족자주와 민주 개혁적 과제를 추월해서 반자본주의적 과제를 앞세우는 것을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신자유주의는 종속성과 후진성을 의미하는 무엇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1, 2, 3세계의 정책적 차별성이 사라지는 세계적인 보편적 수렴점으로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적 단위를 넘어서, 그 틀을 해체시키는 금융·군사세계화로의 세계적인 통합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인 포섭과 배제는 국민국가, 국민경제 단위의 종속과 등급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 내부를 분할하면서 세계적인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세계1류 삼성과 노동시장에서조차 배제된 반실업 비정규직 노동빈곤층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특징지어 지는 것이지, 그 둘이 대립되는 선후관계가 아니고, 하물며 신자유주의를 종속성과 후진성으로 협소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반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주장되던 반제반봉건적 민족자주의 과제를 다시 반복하는데 불과하다. 당시 논쟁과정에서 반제반자본주의(반봉건) 민족해방혁명론(NLR)은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론(PDR)이 반제국주의적 과제를 외면한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바 있다. 이에 대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 즉 NLPDR론을 제기한 PD진영의 NL 비판의 핵심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 없는 단계론적인 부르주아 혁명론이라는 점이었다. 이와 비교해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은 물론 없으려니와, (1980년대 스스로 주장했던) 부르주아 혁명론도 아닌 진보적 (선거연합) 집권론에 불과하다. 우선은 진보적 민주정부를 만들고, 그 이후에 더 진보적인 개혁과 구조적 변화를 도모하자는 단계론적인 운동론은 주관주의의 극치이고, 우경적인 정치 전략의 사후 정당화론이다. 자본가도 보수정권 지지가 아니고 재벌이 아니라면 민중이라는 기괴한 주장이 버젓이 활자화되어 출판되고, 위장된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비독점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세력들과의 무분별한 연합정치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운동과 과학에 대한 ‘정치우선’과 인민주의적 정치의 위험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중소 부르주아 계급과의 연합과 공동 집권을 주장하면서도, 민중적 진보적 주도권이 관철되는 한 진보적 개혁을 심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내용은 자본주의 생산 지배체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적 개혁이면서, 어떻게 민중적 진보적 개혁을 심화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이 가지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가 집권하면 다르다”는 의지뿐이다. 한편, 진보적 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우선!”이라는 선동적인 구호를 내세우면서 운동정당을 정책정당으로 바꾸고, 복지국가동맹을 새로운 정치노선으로 삼자는 본격적인 사민주의 정치그룹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나 이런 사민주의적 흐름들은 서로 강조하는 바가 약간씩 다르지만, 신자유주의적인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비판보다는 손쉬운 선동적 언사와 주관적인 의지만을 앞세우는 운동방식을 공유한다. 어려워진 사회운동, 노동운동보다는 정치공학적인 선거연합의 기획으로 정치에서 성과를 얻자는 개량주의적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이들의 논리를 생각 없이 듣고 있다 보면, 어떤 투쟁도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집권의 환상적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런 허황된 정치기획은 어찌되었건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세력이 권력을 분점 한다면,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낙관론으로 치장되곤 한다. 물론 친 자본가적인 정치인들이 공직선거에서 많이 당선되고 정권을 잡아서 국가를 자본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 간의 그러한 경험적인 관계의 일부분을 수정한다고 국가와 자본축적의 관계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비자본가 계급출신의 진보적인 국가 관료나 정치지도자들이 설령 집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본과 자본축적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구조적 특성은 바뀌지 않는다. 국가는 친자본가 정치집단이 손에 쥐면 자본주의 국가가 되고, 반자본주의 정치집단이 일시적으로 집권을 하면 비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어느 누구라도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자본축적의 핵심을 컨트롤하는 장치다. 이 국가라는 장치는 한두 번의 선거결과나, 심지어는 집권세력의 일시적인 변화에 의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권세력이 국가장치에 순응해야 한다. 소위 ‘책임 있는 정치세력의 고뇌’로 표현되는 우경화가 필연적으로 강요된다. 근본적인 계급관계,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동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보증이 없는 한 “내가 하면 다를 것”이란 다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질없는 다짐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정치위기를 동반한다. 오늘날의 정치위기는 단순한 정권의 위기, 특정 정치세력의 위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라는 도구에 대한 장악력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구 자체의 모순이 진행 중이라는 게 문제다.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정치자체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은 억압적 국가기구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과 심지어는 피지배계급의 대중운동 및 조직들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가족, 학교, 정당, 노조, 미디어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위기에 빠지면서 대중들은 국가 또는 공동체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노동의 불안정성을 넘어서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창출한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기구의 위기는 대중들 내부에서(국가가 아니라) 폭력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위기를 낳기 때문에 일상적인 물리적·상징적 폭력은 증폭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인식을 결여하거나 거부하는 인민주의적 선동은 그 의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결과적으로는 좌파진영 전체를 보수주의적 공격, 혹은 우파적 인민주의적 공세에 취약하게 몰아넣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그에 맞서는 반체제운동의 동시적인 위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범람하는 인민주의 정치가 보다 극단적인 파시즘적 변종으로 나타났던 역사적 교훈에 대해 진지하게 재평가해보아야 한다. 1930년대 고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의 위기 속에서 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당(나치)의 어느 선동가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국가가 황금의 악마, 세계(개방, 자유)경제, 유물론과 결별하고, 정직한 노동이 정직한 보상을 받는 사회를 재확립하도록 요구합니다. 이 거대한 반자본주의적 열망은 우리가 위대하고 비범한 새 시대의 문턱에 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자유주의가 극복되고 새로운 종류의 경제사상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출현하는 시대 말입니다. 절대 다음과 같이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에 필요한 돈이 있는가?” 오직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질문만이 가능합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돈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서 생산적 신용창조, 즉 적자지출 또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은 완전히 정당한 것입니다. 언뜻 들어보면, 이 연설이 왜 극우 나치당의 연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상황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인 현실이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은 무엇이고, 그 주체는 누구인지였다. 좌파의 대안이 노동자대중이 주체로 서는 자본주의 위기의 혁명적 전환이었다면, 나치의 대안은 세계전쟁이었고, 그 주체는 새로운 민족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재조직화한 국가였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에 관해 사람들이 가장 흔히 오해하는 것은 나치가 민중운동을 탄압하면서 집권했을 거라는 가정이다. 그렇지만 나치가 집권했을 당시에 나치의 집권을 방해할만한 좌파 정치세력이나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은 이미 빈사상태에 처한 지 오래된 뒤였다. 나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평화적인 선거를 통해 조용히 집권했다. 극우테러와 대학살은 그 이후의 일이다. 1919년 독일 혁명부터 1933년 나치 집권 전야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래로부터의 대중주체 형성과 사회변혁에 힘쓰던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하고 평의회 운동을 해체시켰던 장본인은 오히려 바이마르 공화국의 가장 주요한 진보정치세력이었던 집권 사민당이었다. 집권 사민당은 죽어가던 자본주의의 상속자가 되려는 혁명적인 생각을 대중들에게 숨기는데 급급했고, 상속자는커녕 빈사상태의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사노릇에 골몰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치를 우선시했다. 그들의 ‘정치우선’은 사회운동과 과학에 대한 우선이었다. 자기 완결적인 노동 친화적 분배, 복지 헌법체제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통치를 앞세웠던 반면 노동자 평의회의 정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억압했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와 의회가 정치의 모든 것이 되도록 생산현장의 정치, 거리의 정치를 하나하나 제거해버렸다. 그러한 진보적 집권정치, 개혁정치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자본주의를 부활시키지도 못했고 점진적인 사회 개혁의 효과를 보지도 못했다. 진보 공화국의 개혁정치는 계급내부 분할과 경쟁을 심화시킨 결말을 보게 되었다. 대중운동적인 토대를 잃어버린 노동자계급은 경제위기가 닥치자 각 부문별, 계층별로 끊임없이 분열된 것이다. 계급 대중운동과 과학적 이념의 결합이 해체된 이후, 각각의 이익집단화된 계급집단들에게 행정적으로 이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정치를 변질시킨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우선’의 의회정치, 경제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는 탈이념화된 분배(행정) 정치우선을 추구했다. 대중들은 점점 더 정치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위기는 악순환에 빠졌다. 나치는 이런 정치 경제적 토양위에서 등장한 것이다. '경제위기 비판'이니 '변혁'이니 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제거가 완료된 뒤에야, 이제는 돈이 없으면 전쟁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주겠다는 식의 진짜 ‘정치 우선’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과 그것의 생산체계이자 권력기관인 평의회운동이 철저히 조롱받고 제거된 뒤에야, 사회운동에 대한 확실한 우위에 입각한 강한 정치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나치가 독일제국을 장악한 것이다. 과학적인 경제 분석에 대한 정치 우선, 사회운동에 대한 국가(정당) 정치 우선론이 나치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다만 부족했던 것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고, 국가 관료주의를 대신할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의 지도력이었을 따름이다. 어짜피 이런 투쟁도 저런 투쟁도 어려운 형편이니 별다른 수가 없다면,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완고한 원칙을 조금만 버리면 정치공학적인 편법으로 진보적 정치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둥, 운동의 위기를 정치로 돌파하자는 둥, 어쨌든 진보적 집권은 민중의 삶에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소박한 호소는 자기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선동에 불과하다. 대안 좌파전략의 모색 우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노동자민중운동의 우경화, 쇠퇴가 동시에 진행되는 역설적인 정세를 맞닥뜨리고 있다. 당면한 민중운동 재편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급격한 우경화를 막고 좌파운동의 자기 파괴적인 분열을 제어해야 할 과제가 시급하다. 시대착오적인 사민주의나 진보적 민주주의론과 같은 우경적 이념을 비판하고, 무원칙한 신자유주의 선거연합을 저지해야할 과제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정체성이 달린 일이다. 하지만 변화한 시대적 조건에서 사민주의나 우경적 개량주의는 단순한 혁명 배신이라는 규정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게 변화했다. 지배체제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될수록 별다른 성과가 없는데도 수그러들지 않는 허구적인 코포러티즘, 독자화하는 정치계급의 단기적인 선거 정치공학이 민중운동 재편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 중인 정치의 위기와 인민주의적 위험의 증대 등과 같은 정세적 조건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들을 수행해야한다. 결국 근본적인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 변혁이념과 운동의 해체를 갈음할 이념의 재건과 대안좌파의 형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날 대안좌파가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과 가상의 정치지도 위에 그려진 지정학적인 기준만으로 손쉽게 형성되지는 않는다. 유일한 기준은 전쟁에 대한 발본적 반대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총체적 기각이고, 그 성패는 반전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의 대중적 실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판가름 날 따름이다. 또한 대안좌파의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세우는 일은 곧 금융세계화와 심화하는 세계 경제위기의 특수한 결과인 정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차원의 과제이다. 지배계급의 무능과 통치 불가능성, 초민족적 자본의 정치적 사보타주에 맞서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요구된다. 노동자 대중운동을 재활성화 함으로써 정치를 재건하는 것만이 대안좌파 형성의 기본 토대다. 새로운 노동자 대중운동이 없는 정치는 어떤 진보적인 정책 공약으로 치장을 한다하더라도, 뿌리를 잃고 끊임없이 부르주아 정치로 흡입될 뿐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집단적 실천을 통해 유효한 성과들을 얻어 주체화하는 변혁적인 자기해방의 프로세스를 되살리는 것이 그 첫출발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의 집단적 행동을 다시금 유효하게 만들어, 정치자체를 부활시키는 새로운 비전을 밝힐 수 있다. 셋째, 대중운동이 나날이 우경화하는 조건에서, 좌파는 단순한 분리만으로는 소수파적인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원칙 있는 비판과 독자세력화의 포지셔닝이 강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대중운동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되 현실적으로 우리는 상당기간동안 우경화된 대중운동과 무리하게 분립하여 고립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유지 확대하면서, 좌익적인 활동가들의 교육훈련 구조를 강화하는 방식의 활동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좌익적인 활동가들은 대중운동의 재활성화에 힘쓰는 한편, 노동자 사회운동 재건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질적인 투자(자원 배분의 우선성), (강령적인 개방성을 유지하되) 인민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적 원칙을 조직적으로 고수해야 한다. 넷째,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동맹전략이나 무원칙한 계급타협 전략은 위로부터의 정책개혁을 정치의 모든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현재와 같은 구조적 위기시기에 그러한 개량주의적 장미빛 청사진들은 잘해야 계급내 분배에 골몰하여 계급적 단결을 해치거나, 자본에 의한 계급분할에 편승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경화된 운동 이념 전략에 대한 현 시기 실천적인 비판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반면 우리에게 필요한 최대강령이나 이행강령은 통치정당의 집권정책이 아니다. 사회운동의 목표와 원칙은 대안사회라는 건물의 도면을 그린 청사진 같은 것이 아니다. 만약 사회운동에게 새로운 이행강령이 필요하다면 (혹은 굳이 이행강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변혁적인 이행전략을 지속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면) 그것은 해당시기 사회운동의 근본적 난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념적 대안과 정세적 실천을 결합시키는 핵심 고리를 찾고, 그것에 적합한 실천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시기 좌파의 대안전략은 실업과 취업, 복지와 임금의 분할과 갈등, 취업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통합시키고 새로운 노동계급의 단결을 형성시키는 데 전략적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컨대 연대임금 전략과 같은 실천전략을 중장기적으로 실행해가면서, 계급적 단결의 재형성을 노동자운동의 핵심 목표로 세우고 전략적으로 실천해가는 것이다.
자본에 맞선 노동권 생존권 투쟁을 강화하자 무상급식, 반값등록금과 같은 단일 이슈 중심의 ‘복지’ 담론과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사회모델로서 ‘복지국가’ 담론을 구분지어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 담론을 다룬다. 논자들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들의 공통된 문제인식은 신자유주의가 빈곤층의 확대, 비정규직 양산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다양한 논자들이 제기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에 대해 일정 정도의 컨센서스가 존재하는데 ▲노동과 기업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와 편중 심화를 극복하기 위한 공정한 경제를 실현하고, ▲노동유연화를 지양하고 고용안정과 임금격차의 축소를 도모하며, ▲교육비, 의료비, 주택마련과 관련한 국민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한 공정한 재정 마련 방안이 제기되는데 논자들마다 관점이나 방법은 다르다. 복지국가 담론은 이념적 차원과 야권연대라는 정치적 전략 차원의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복지국가론자들은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정권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야권연대나 민주대연합을 주장한다. 한편,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야권연대를 위한 내용적 매개로 복지국가 담론을 활용한다. 한편, 7월 20일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를 포함한 3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 연석회의’가 결성되었다. 연석회의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7대 기본원칙과 15대 의제(참고 1)를 발표하고 정기국회에서부터 법 제도 개선과 예산확보를 요구, 총·대선에서 쟁점화하기로 했다. 2단계 복지국가 비전(5개년 계획) 수립, 시민문화제 등을 추진하고 10월 말 본부와 지역본부를 결성한 뒤 총·대선에서 복지정책과 관련해 정치세력을 견인·견제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복지국가 담론이 확산되고 있는가. 복지국가 담론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빈곤이 심화되고 민중의 삶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복지국가가 현재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복지국가의 모순 복지국가론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말하며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안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가 있다. 1970년대 말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전환은 완전고용의 포기, 복지혜택의 축소, 민영화 등을 의미했고 이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의미했다. 이로 인해 실업자, 빈곤층이 증가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 와중에 미국-영국의 자유주의 복지국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보수주의 복지국가보다는 스웨덴과 같은 사민주의 복지국가가 불평등지수도 가장 낮고,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지출을 유지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위험에 대한 적응력이 가장 높았다, 따라서 영미식 복지국가의 잔여적 복지보다는 스웨덴과 같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복지국가의 내재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회 또는 완화한다고 해서 복지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거나, 한국의 경우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가 내부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었는데 세계화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실행되었기 때문에 위기가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복지국가에 모순이 내재했고, 이윤율 하락국면에서 그 위기가 폭발하면서 복지국가들이 케인즈주의를 철회하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것이다. 서구 복지자본주의 국가들은 예외 없이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내재하기 때문에 재정위기 가능성이 상시적으로 존재한다. 대규모 법인기업들은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수행하는데 생산성 증가는 기술진보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교통, 통신, 연구개발, 교육, 기타 설비 등의 더욱 많은 사회적 투자를 필요로 한다. 대규모 법인기업의 입장에서는 숙련 노동력과 자본집약적 기술을 결합시키는 것이 합리적인데, 이때 숙련 노동력을 훈련시키는 비용은 조세에 의해 충당된다. 또 대규모법인기업의 성장은 실업과 빈곤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 국가가 사회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재정을 확대하려면 또 다시 생산성이 높은 부문의 산출 증대에 기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높은 부문의 산출 증대는 경제 위기 시에는 더더욱 구조조정, 임금삭감 등 노동자들에 대한 더 많은 착취로 이루어지고, 이는 또 다시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적 지출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반면, 기업의 성장을 위한 비용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부담되지만, 기업의 이윤은 사적으로 전유된다. 따라서 사회적 비용부담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잉여 사이의 괴리는 점점 확대된다. 만약 국가가 독점부문에 기업을 설립하고자 한다면 이윤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잉여를 통해 일반적인 예산지출의 자금조달을 도울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정치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독점자본이 자신의 ‘자연적인 지배영역’에 국가자본이 침투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복지자본주의 국가들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은 전후 성장기에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시도되었다. 둘째, 복지국가론자들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를 철회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의 김기식씨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IMF 이후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 도입은 불가피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를 제도화시켰기 때문에 전 민주당 정권의 성격은 이중적이며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전과 달리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경제정책의 목표에 종속되게 된다.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이자율 조절을 통한 통화정책 우위의 경제정책을 통해 금융자본의 우위를 보장해준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다. 그리고 재정정책이 이러한 통화정책의 기조에 종속됨에 따라 재정정책에 대한 정부의 재량권도 축소된다. 동일한 경제기조 속에서도 사회정책은 그 범위나 방식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 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이로 인한 양극화와 사회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블레어가 제시한 제3의 길은 배제된 실업자를 노동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사회정책은 노동연계복지처럼 강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권한강화(empowerment)라는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또 목표대상도 등록된 실업자에서 빈곤한 독신 부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비용과 지속시간도 다양하다(영국이 그 목표대상이 제한적인 잔여적 복지를 제공한다면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정책들간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통화정책 우위의 경제정책, 자본이동의 자유화, 노동유연화를 수용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복지의 대상을 얼마나 넓게 제시할 것이냐를 두고 서로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와 같은 공통점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지국가론자들은 ‘복지국가는 단지 여러 복지정책들의 조합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운영 원리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보다 근본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사실 상 복지정책의 조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정책의 변화로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혁, 원하청 불공정 거래 철폐 등 공정한 경제를 제시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복지국가의 경제적 토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논자들도 존재하는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원장은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금융거래세를 부과하고 (중략)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금융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케인즈주의적 주장은 위와 같은 복지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모순을 건드리지 않는다. 케인즈주의는 금융억압과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고용과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해방을 역전시키는 금융억압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감독의 강화를 의미한다. 케인즈주의자들은 금융억압의 구체적 수준과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금융억압의 국내 국제적 수단을 입법과 집행의 정치적 의지에서 찾는 데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은 금융의 정치적 압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확립하거나 정치적 세력관계를 변화시키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억압은 단순한 정치적 의지로 실행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초의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던 1930년대 금융억압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이번 금융위기는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발생했으므로 금융을 억압한다고 해서 새로운 경제성장이 출현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케인즈주의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1970년대에 이윤율 하락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융이 해방되고 실물경제적 축적이 금융적 축적으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 금융적 축적을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실행되는 것이다. 금융억압만으로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케인즈주의자는 수요를 자극하여 실물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을 강조한다. 케인즈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공급이 아니라 수요, 즉 생산이 아니라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므로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임금인상과 총고용보장이 경제성장을 위한 대안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적극적 재정지출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며 사회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경제위기 책임 전가에 맞서기 위해 방어해야 할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20세기 초처럼 이윤율을 장기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기술혁신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임금인상과 재정적자에 기초한 수요의 증가는 단기적 효과만 가질 따름이다. 설사 기술혁신의 가능성이 존재할지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 기술혁신은 고정자본을 소비하고 노동을 절약하는 편향을 가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자본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하락이라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서구 복지국가는 전후 경제성장이라는 조건 하에 노동과 자본이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전후 장기적인 완전고용의 결과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증가되었고 이는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형성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대해 임금인상 투쟁을 자제하는 대가로 사회적 임금의 개선을 제시했다. 그러한 사회적 타협은 기본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자본이 노동에 양보할 만한 여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회적 타협으로는 노동자계급이 얻을 것은 없다. 복지국가론자들은 자본과의 타협 없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는 과정이 복지국가의 모순이 심화되는 과정이었고, 세계화로 인해 자본의 힘, 특히 초국적 자본의 힘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유연화를 제어하지 못하고 각국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재량권이 제한되고 있다. 경제위기 시대 노동자계급이 자본에 맞선 투쟁 없이 국가, 자본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양보와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위기 전가에 맞선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강화하고 계급 역관계를 역전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사회임금의 한계 복지국가론자들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언급하는 것은 ‘사회임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 등은 노동자운동이 이제 시장임금만이 아니라 사회임금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국가들의 사회임금이 매우 높음을 주목하며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사회임금 수준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고 한국의 경우 복지를 확대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사회임금을 실제로 누가 부담하는가를 간과한다. 사회임금 비중이 높을수록 그만큼 국가의 역할이 크고 재분배효과도 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계급 내 재분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독일, 스웨덴, 영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는, CEO 등 상층 관리자를 제외한 임금 노동자들이 지불한 세금이 그들에 대한 사회적 지출과 거의 일치하도록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림 2). 1960-1987년 사이 임금노동자들에 대한 전체 사회적 지출과 그들이 지불한 세금의 차이, 즉 순 사회임금은 GDP의 1~2% 수준이었다. 이 차이가 플러스라는 것은 임금노동자들이 자신이 낸 것에 비해 더 많이 받았음을 의미하지만, 복지 혜택을 받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국가경제의 생산량 가운데에서 그들이 배분받는 비중은 생각보다 적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에서 전후 성장기에 순 사회임금은 마이너스였다. 즉 임금노동자들이 자신이 낸 세금에 비해 혜택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스웨덴에서 순 사회임금은 거의 0이었다. 즉, 전후 스웨덴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관대한 복지 지출은 사실상 노동자들이 거의 모두 스스로 부담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순 사회임금은 성장기에 일반적으로 플러스였다(GDP의 4% 수준).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불황기에 진입하면서 사회안전망의 확대로 인해 사회임금의 비중이 상승하게 되는데 특히 스웨덴은 1970년대부터 정부의 이전지출이 급증하여 1980년대에는 순 사회임금 비중이 독일을 추월하게 된다. 스웨덴 모델을 표방하는 복지국가론자들이 스웨덴의 사회임금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스웨덴에서 순 사회임금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스웨덴 모델이 쇠퇴하면서부터였고, 막상 스웨덴 모델의 전성기에는 순 사회임금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그림3). 이 자료들이 보여주는 바는 노동자들의 세금지불과 사회적 급여 혜택 사이의 재정 흐름은 전체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서 임금을 재순환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5개국에서 연구 결과는 사회임금의 실재가 거의 대부분 노동자계급 내 재분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심지어 계급 내 재분배 효과도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계급 간 재분배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에 미달한다. 기업의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인데, 그 이윤은 일반적으로 자본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임금은 노동자가 계속 노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노동력의 재생산가치)인데, 자본주의적 노동은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동강도 강화 등을 통해) 더 많은 산재와 (과잉생산, 노동절약적 기술발전으로 인해) 실업과 같이 노동자에게 ‘예측 불가한 위험’을 야기한다. 재생산을 위해서는 산재를 당했을 때 치료하는 비용, 해고를 당했을 때 다음 일자리를 찾기까지 ‘생존’하는 비용과 같은 것도 포함이 되어야 하지만 직접임금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비용은 포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브뤼노프는 이를 노동력의 ‘재생산가치’와 ‘일상적 가치’의 괴리, 즉 과잉착취의 경향 또는 ‘궁핍화’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게다가 실업인구의 형성으로 인해 노동자 내부에서 취업자과 실업자간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임금 하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잉착취의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지제도가 발전하게 되는데, 그러한 사회보장은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위험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제거하지는 않으며 불확실한 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예방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 사회보장을 통해 제공되는 간접임금(사회임금)과 직접임금의 합은 여전히 노동력의 재생산가치에 미달한다. 한편 복지제도는 실업자와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법과 같은) 공적원조와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4대 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두 체계로 나눠지는데, 이 분할은 실업자와 취업자 사이의 분할을 지속시킨다. 이러한 분할은 지속적으로 노동자 간 경쟁을 유발하고 임금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임금이 계급 내 재분배에 가깝다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에게 닥치는 위험에 대한 비용을 포괄하지 못한 임금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 즉, 곧 노동자들이 실업을 비롯해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 노출되는 고유한 위험에 대한 방어조차 노동자 스스로가 부담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이 노동자에게 위험 부담을 부과함과 동시에 그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한편,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전체 산출 중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던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노동소득분배율 62.6%를 정점으로, 2006년 57.8%로 훨씬 악화되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56.7%, 2008년 56.2%, 2009년 54.8%로 악화되었다. 이는 그만큼 자본이 더 많이 가져가고 있으며, 계급 간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역전시킬 계급 간 재분배 전략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계급 내 재분배는 ‘점점 더 작아지는 파이 나눠먹기’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계급 간 재분배를 위한 전략이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주체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임금인상 투쟁에서와 마찬가지로, 계급 간 재분배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설사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것일 것이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사회임금 재원의 형성을 위해 증세와 사회보험료 인상에 노동자계급이 동의하고 참여함으로써, 무조건 국가와 자본에 요구만 하던 패러다임에서 실제로 이들의 부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임금은 특정기업의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구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해줌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극복하는 연대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통의 이해관계란 같은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쟁취할 때 형성되는 것이지 내부적으로 양보하고 나눠 갖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즉, 공통의 이해관계가 성립하려면 싸우는 대상이 일치해야 한다. 또 노동자계급이 먼저 증세에 동의하고 이를 지렛대로 부자증세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은, 복지국가들의 역사에서 봤듯이, 노동자계급의 증세가 계급 간 재분배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설사 정책적 효과로 계급 간의 재분배 효과가 향상되더라도, 양보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방식으로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급 간 재분배 계급 간 재분배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이 부자증세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복지국가론자들이 지적하듯 정치적 저항을 야기할 것이다. ‘부자’들의 정치적 저항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증세를 집행해도 계급 간 재분배는 제한적인데, 자본에 대한 과세를 높이더라도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거나 피해가기 때문이다. 기업은 개인소득보다는 법인소득에 과세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가격을 통제하여 법인 소득세를 소비자에 전가할 수 있다. (미국에서 세율이 12.5%였던 1920년 당시 대규모 제조업 법인기업의 과세 후 소득은 순장부가치의 12%였다. 세율이 52%였던 1955년에 그 수치는 여전히 13%였다.) 개인소득세는 누진적이지만 부의 대량 집중 현상에는 크게 충격을 줄 수 없는데, 법인소유자와 경영자는 소득의 대부분을 세금이 면제된 자치단체 채권 이자나 비교적 세율이 낮은 실현자본이득의 형태로 얻을 수 있고, 고액소득의 경우 소득을 분할함으로써 큰 편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법인기업은 조세를 차단하고 특례조항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세체계는 사실상 노동자와 소기업계급, 특히 과세대상소득이 비교적 높은 대기업 중산층 노동자의 착취에 바탕을 둔다. 한편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는 임금을 억제하여 노동자에게 전가됨으로써 사실상 모든 부담이 임금에 부과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반적인 경향은 노동자계급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안김으로써 재분배정책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한국은 법인세의 경우 기업들이 각종 비과세, 감면 조치를 받고 있으며 이 혜택은 주로 대기업들이 보고 있다. 재산세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부동산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소득세의 경우 고소득층에서 소득세 탈세 규모가 높고 상위계층의 세금 부담이 소득수준에 비해 매우 작으며 금융자산소득에 대해서도 제대로 과세되지 않고 있다. 배당 소득세는 낮고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비과세되고 있다. 또 사회보장세에서 기업 부담률이 낮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비과세, 감면 혜택의 과감한 축소,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를 조장하는 간이과세 제도의 개혁, 세율 조정과 누진율의 상승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에 반대하는 정치적 저항을 상쇄할 만한 힘이 없다면 결국 여러 방안들 중 간이과세 개혁과 같이 노동자민중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만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즉, 부자 증세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도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필요하고, 자본이 증세 부담을 다시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자본은 순순히 이윤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증세에 응하더라도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임금삭감, 구조조정 등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이 부자증세를 마치 조세개혁 정책들을 입안하고 실행하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노동자운동의 힘이 없다면 부자증세의 집행도, 계급 간 재분배 효과의 달성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부의 편중이 가속화되는 경향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부자증세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계층별 순자산(=부동산 자산+금융자산-부채) 보유의 변화를 한국노동패널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위계층의 자산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세, 이자, 배당금 등이 포함된 재산소득의 증가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나타났는데, 1분위의 재산소득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전인 2007년까지 매년 5.8%씩 감소한 반면 5분위의 재산소득은 매년 3.3%씩 늘어났다. 계급 간 재분배를 요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직접임금 인상 투쟁과 해고 저지 투쟁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 보건의료 등 직접임금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순)사회임금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접임금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복지 영역에 대해서는 단지 “복지확대, 부자증세”를 요구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쟁점을 제기해야 한다. 보건의료나 교육서비스를 공급하는 기관을 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보건의료에서는 병원, 제약, 보험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고, 대학 등록금 문제는 사학 재단에 대한 규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부자증세를 하고 국가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더라도, 세금이 민간의 사적 이윤으로 귀결된다면 계속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보건의료나 교육 서비스에 있어 이윤을 추구하는 공급기관에 대한 통제 요구는 계급 간 재분배 요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를 완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재정위기, 세금폭탄 등을 지적하며 복지 포퓰리즘을 공격할 때, 복지 서비스의 공급 구조를 적극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면 진보의 무조건적 복지 확대 주장은 그러한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민중운동이 복지국가 담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복지국가 담론이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의제들이 실제 노동자·민중의 요구와 부합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복지국가 연석회의의 기본 원칙과 의제는 마치 대선 후보 공약집을 방불케 하는 법·제도적 정책개선 목록이다. 5대 원칙, 15개 의제 하위에 총 70여 개의 과제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법·제도 개선 관련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복지 패키지를 홍보하고 여론화해서 이 패키지를 지지하는 정치인·정당에 대한 투표를 조직한다는 것이 이 운동의 개요다. 이는 구체적 쟁점에 대한 구체적 투쟁 주체의 조직화 없이, 국민들이 ‘복지국가’를 지지하고, ‘복지국가’를 약속하는 정권을 세우면 노동자 민중의 삶이 나아질 것처럼 호도한다. 여기에 당장 민주당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주요 구성 단위들의 성격과 운동 방식을 고려했을 때 민주당과 협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런 운동에 역량을 투여하면서 현장과 지역에서의 운동의 재조직화는 상대화하고 있다. 노동자 투쟁이 존재할 경우 관련 제도나 정책에 대한 사회여론전이 투쟁의 파급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운동이 없거나 구심점이 약한 상태에서 정책 패키지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는 방식의 운동은 도리어 정책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한 동원에 머무르기 쉽다. 이는 역량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이나 복지의 문제가, 다양한 사회정책들의 조합을 고려해야 하는 복지국가 건설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순간 계급대립이라는 축은 희석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투쟁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정책개혁의 지지·협조세력 나아가 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더군다나 스스로 신자유주의자라는 것을 부정하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인 민주당과 연합을 추진하는 전략 속에 노동자운동은 계급성을 잃고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 또 노동자계급 내 분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없이, 무조건 사회임금이 많아지면 좋다는 식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계급 내 재분배에 머물면서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복지국가 담론은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을 탈각시키고, 우경화하는 데 일조할 가능성이 높다. 정권교체를 통해 복지국가로 가자는 주장이 빨리 갈 수 있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투쟁을 지체시킴으로써 실제 노동자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8월 31일 국회 상임위 직권상정 시도에 부쳐 8월 31일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직권상정을 시도했다. 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도중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소속 대표자와 회원들이 전원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9월 국회 외통위 통과, 10월 본회의 통과라는 시나리오를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의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사진1%] 한미 FTA를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 작년 12월 한미 FTA 재협상 타결 이후, 정부·여당은 조속한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추진해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한미 FTA 비준은 하루빨리 이뤄져야한다”며 “FTA는 세계를 향한 핵심 전략”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의회가 한미 FTA 이행법안을 9월 회기 중 발 빠르게 처리할 것으로 전망 된다”며, “우리나라도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본격 심의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9월 초 개회되는 미국 의회에 FTA 이행법안이 공식 제출되면 인준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FTA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초 정부·여당은 미국 의회 상황과 연동해서 국회 비준을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동안 미국 의회가 국가 부채 상한 조정 등으로 난항을 겪다 최근 다시 한미 FTA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가 단체들의 한미 FTA 찬성 발언도 이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한 것에 대해 적극 환영하면서, FTA가 국가경제의 성장과 고용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주요 수출기업들도 하반기 수출둔화 우려를 타개하기 위해 서둘러 한미 FTA를 비준해 발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최근 10개 국책연구기관들은 ‘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보고서를 통해 향후 10년 간 35만 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미 FTA 강행 처리 시도 8월 초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미국이 FTA 이행법안을 9월 중 처리하기로 한 데 대해 “우리도 보다 박차를 가해 양국이 서로 어깨를 겨루듯 비슷한 시기에 처리됨으로써 국민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현재 ‘9월 5일까지 외통위 상정, 17일까지 의결, 10월 본회의 처리’ 일정을 제시한 상태다. 다만 한나라당은 “한미 FTA 비준 처리는 야당과의 협상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한미 FTA 여야정협의체 회의를 열고 있는데, 이는 반대 여론이 높은 한미 FTA를 단독으로 통과시킬 경우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07년 체결된 협정안에 대해서는 ‘선 대책 후 비준’이란 기존 당론을 유지하면서도 작년 이명박 정부가 타결한 재협상안은 ‘굴욕적 퍼주기 협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재재협상을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 두 달간 한미 FTA 여야정협의체 회의가 여섯 차례 열렸으나 정부·여당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김종훈 본부장은 “한미에서 비준 절차가 본격화한 시점에서 민주당의 재재협상 요구는 FTA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재재협상 주장의 비현실성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역시 국내에서 보완해야 할 항목인 ‘2’ 부분은 협상이 가능하지만 미국과의 재재협상이 요구되는 ‘10’ 부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의회, 조만간 한미 FTA 법안 처리 가능성 높아 8월 초 미국 상원의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는 한국 등 3개국과의 FTA 이행법안을 9월 중 처리한다는 방침에 사실상 합의하였다. 미 상원의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가 성명을 통해 의회 휴회가 끝난 직후 무역조정지원제도(TAA) 연장안을 처리한 뒤 3개 FTA 이행법안을 처리하는 추진계획에 합의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노조의 이해를 반영하여 TAA 연장과 한미 FTA 비준의 연계 처리를 주장해왔던 반면 공화당은 재정지출 추가 부담을 이유로 TAA 연장에 반대해왔다.(TAA는 FTA로 인해 발생하는 실직자들을 재교육하는 비용을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로 관련 재정지출 규모는 연간 70-90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백악관이 공화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TAA를 한미 FTA 이행법안의 부분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별개 법안으로 제출하되, 공화당은 백악관의 요청대로 TAA와 한미 FTA의 병행 처리를 보장해줌으로써 양측이 실리와 명분을 각각 취하는 방식으로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민주당과 공화당은 FTA 이행법안 자체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경제위기가 지속, 심화되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FTA가 처리되면 미국 내에 7만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며 이행법안 처리를 거듭 강조한 것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 FTA 물론 현재 미국 의회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할 때 9월 중 처리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9월 의회 회기가 길지 않은데다 이른바 ‘슈퍼위원회’의 재정적자 감축 방안 등 논란이 될 만한 안건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또 FTA 추진계획에 구체적인 처리 일정이나 방식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행정부의 FTA 이행법안 제출과 의회의 TAA 제도 연장안 표결 처리의 선후관계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미 의회가 오는 11월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전인 10월말에나 FTA 이행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의회가 빠른 시일 내에 FTA 이행법안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연말부터 사실상 대선국면이 본격화되어 실제로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미 FTA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동아시아를 자유무역지대로 묶기 위한 경제전략이자 군사안보전략 차원에서 제기되었다는 점, 특히 현재 무역적자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FTA 이행법안 처리 무산은 미국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9일 발표된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는 한미 FTA 이행법안이 미 의회에서 불발되거나 지연되면 양국의 전략적 동맹관계에 심대한 상징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미 FTA가 무산될 경우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이 주로 동북아시아에서 추진해온 ‘경쟁적 자유화’ 전략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콜롬비아, 파나마 등과의 FTA는 물론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등 수많은 통상 관련 현안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 정부로서는 한미 FTA가 향후 무역정책에 길잡이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현재의 논란은 시기와 절차를 조율하는 소소한 문제일 뿐 머잖아 이행법안이 처리될 것은 분명하다. 민중의 힘으로 한미 FTA 막아내자 지난 27일 ‘한미 FTA 저지 결의대회’를 제외하면, 현재 FTA 범국본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계획은 주로 국회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6년 뜨겁게 타올랐던 한미 FTA 반대 투쟁은 2008년 소강상태에 빠진 뒤 아직 그 불씨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초 한EU FTA 국회 처리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피해부문 대책 마련과 재재협상을 요구하는 민주당의 당론은 언제든 찬성 입장으로 뒤바뀔지 모른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한미 FTA 재협상안에 반대하는 것도 실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자신들이 체결한 협정은 별 문제가 없다는 인식에 근거한 정략적 계산일 따름이다. 민중운동이 대대적인 투쟁을 통해 FTA 반대 여론을 확산하고 이를 통해 국회를 압박하고 정부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한미 FTA가 발효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9월 중 한미 FTA 반대 투쟁의 물결을 다시 일으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