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위기가 평화를 촉진하는가?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은 실제 상황이며 심각하고 많습니다. 쉽게, 짧은 시간에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바마 대통령, 2월 24일 의회연설) 미국 경제위기는 실제 상황이다. 미국 중앙은행(FRB)의 기능은 기준금리 결정과 공개시장조작과 같은 통상적인 수준을 이미 벗어났다. FRB는 새로 도입된 각종 긴급신용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회사와 기업에 직접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FRB는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 영국, 스위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한국,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등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에게도 통화스왑 방식으로 막대한 양의 달러를 공급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정부에 이어 더욱 확대된 부실자산구제계획을 통해 금융회사들의 부실 확산을 막으려 하지만 금융회사들의 부실자산 규모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미국 은행들, 특히 대형은행들조차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미국 정치권과 경제계의 일부 인사들은 이른 시일 안에 은행 국유화를 단행해서 정부가 직접 부실제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법안을 통해 수천억 달러를 퍼부어서라도 경제위기의 진행속도를 늦추려 시도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 경제가 대불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 자산가격 하락, 신용경색과 은행위기, 실업률 급상승이라는 악순환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 그렇다면 파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경제위기는 세계 정치군사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편에서는 미국이 재정난 때문에 안보비용을 감축하기 위해 해외주둔군 축소나 핵무기 상호감축을 포함한 군비축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적대국과 평화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즉 자본주의 위기가 평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는 이러한 낙관적 기대를 항상 저버렸다. 특히 미국의 경제력, 대표적으로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으로 보장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당장 오바마 정부가 미국의 일부 ‘과잉’ 군사력을 감축하거나(전략핵탄두 감축), 동맹국과의 공동지배 전략을 발전시키거나(나토 역할 강화), 부시정부가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국가들 즉 이란,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미국의 압도적 군사적 지배력의 유지, 확장 전략의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미국의 군사지배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냐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문제다. 현재 오바마 정부가 천명하고 있는 안보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와 구체적 변화 양상을 검토하면서 그 함의를 밝혀보자. 오바마 정부 안보정책의 우선순위 오바마 정부의 안보정책은 부시 정부를 계승하여 대테러전쟁,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기조를 확고히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러시아 문제가 안보정책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질 것이다.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수출달러환류 메커니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동아시아(중국)가 우선순위로 고려될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오바마 대통령후보가 제시한 10대 안보공약은 다음과 같다. ① 대테러전쟁 승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중시하고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원하고 아프가니스탄의 강화를 위해 지원과 훈련을 제공한다. ②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정부와 국제적 협력체제에 맡기고 미군을 가급적 16개월 내에 철수시키며,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력 투입방향을 전환하도록 한다. ③ 동맹국, 우방국 정상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나토의 국제적 역할을 증대하며, 동반자 관계를 확대함으로써 스마트 외교를 강화한다. ④ 핵확산, 핵물질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인 제재조치를 강구한다. ⑤ 중국의 부상을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를 주시하고,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며, 중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도록 촉구한다. 특히 중국의 불공정 경제행위에 대해서는 통상제재 등의 조치를 강구한다. ⑥ 러시아군의 그루지야 철수를 압박하고,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완화시키는 한편, 이란의 핵개발을 방지하는 등 주요 이슈에 협력하는 새로운 포괄적 정책을 추구한다. ⑦ 북한, 이란과 조건 없이 직접적인 정상외교를 실시하고, 이 국가들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협력 하에 정치경제적 제재를 가한다. ⑧ 군사혁명에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첨단전력 획득에서 지상군 병력 증원으로 그 방향을 조정한다. ⑨ 미국의 압도적 군사능력과 전 세계적 투사능력을 유지한다. ⑩ 테러, 빈곤, 환경 문제와 같이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리더십을 적극 발휘하며,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한다. 11월 5일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11월 18일 정권인수팀은 대선공약을 국정과제로 재구성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2009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오바마 정부는 대선공약의 실행을 두고 본격적인 재검토에 돌입했다. 이라크 철군과 미국의 이라크 지배전략 미국은 이라크전 개전 이후 매년 전비로 900억 달러 투입한 꼴이었고, 대통령선거 당일 기준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 누적 사망자 수는 4,200명을 넘어섰다. 오바마는 16개월 이내 이라크 완전 철군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부시정부 당시에도 이라크 의회가 통과시킨 주둔군지위협정을 통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계획이 제시되었다. 이라크 영토 내 다국적군 주둔의 법적 근거가 되었던 UN 안보리 결의안 1483호의 시효가 2008년 12월 31일로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라크 의회는 이를 대체하는 미군 주둔의 법적근거로 2008년 11월 27일 주둔군지위협정을 통과시켰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군은 3년 간 점진적, 단계적으로 철군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즉 미군 전투부대는 2009년 6월 말까지 도시 외곽으로 물러나고, 2011년 12월 31일까지 이라크에서 철수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정 체결 당시 이라크 국방장관도 “데드라인 이후에 일부 미군이 필요할 수 있다”며 그 이후의 주둔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미군의 뮬런 합참의장도 “3년은 긴 시간”이라며 “조건이 변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논의를 계속할 것이다”고 밝혔으며, 백악관 대변인도 2011년은 “희망하는 날짜”라고 말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정부와 다른 획기적인 철군안을 제시할지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2009년 2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철군안은 대선공약과도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는 2010년 8월 31일까지, 즉 19개월 안에 전투부대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16개월 안에 이라크에서 완전 철군하겠다는 공약과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전투부대를 철군하더라도, 35,000~50,000명에 이르는 지원부대는 2011년 12월 31까지 남게 된다. (현재 이라크에는 전투부대와 지원부대 등 142,0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에 남는 부대는 여전히 이라크를 점령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실제로 전투부대와 거의 비슷한 임무를 맡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들이 이라크 훈련과 지원, 대테러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이름만 ‘전투부대’가 아닐 뿐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군사적 저항은 지속될 것이며, 이라크인과 미군 사상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나아가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2011년 이라크 철군 이후에도 훈련 지원부대, 대테러부대, 병참시설, 공군부대를 이라크에 유지한다고 결정할 수 있으며, 그 규모는 20,000명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한편 2011년까지 미군을 철수한다는 주둔군지위협정은 이라크 의회에서 비준되었지만, 미국 상원에서는 비준되지 않았다. 또한 이 협정은 2009년 여름 중에 이라크에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이라크인은 주둔군지위협정의 철군 일정조차 너무 길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결국 오바마의 결정은 이라크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며, 미국의 이익에 따라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대테러전쟁 오바마는 당선 직후 발표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신정부의 핵심목표를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 완수로 설정했다. 오바마는 이라크전쟁에 대해서는 9.11 테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역에 대한 일방적이고 비합법적인 공격이라면서 부시정부를 비난했지만, 국제 테러리즘의 핵심지역으로 이라크 대신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지목하며 이 지역에서 테러세력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응징을 천명했다. <오바마-바이든 플랜>의 구체적 안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나토 휘하 국제안보지원군(ISAF) 병력 규모를 현재 67,000명에서 134,000명으로 배가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170억 달러의 경비를 미국이 주도적으로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33,000명 규모의 미군을 60,000명으로 늘리고, 나토 동맹국의 참여 확대를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현지 시찰한 리처드 홀브룩 미국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특사는 2009년 2월 8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라크에서보다 더 힘들 것”이라며 “길고 오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탈레반을 축출하고 내세운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2월 8일 “탈레반과 화해하는 것 외에는 아프가니스탄 안정화에 성공할 길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축출과 미군의 승리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2월 17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전투, 지원부대 17,000명을 증파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이들 중 일부는 4월 20일로 예정된 아프가니스탄 선거 전에 보내고 나머지는 여름에 파병한다는 방침이다. 오바마 정부는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일단 추가 파병을 결정했지만, 총괄적인 아프가니스탄 전략 재검토는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3월 말까지 완료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은 1980년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친소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을 육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탈레반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지역 군벌을 비롯한 잡다한 세력과 동맹을 맺고 있다. 미국의 단기 전략은 아프가니스탄 전체의 장기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침식하고 있다.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략검토를 두고 미국 일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통일국가로 유지하려는 계획을 재검토하자고 주장한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영토분할까지 고려해야한다는 주장이 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이란 핵문제와 대선 데니스 블레어 미 국가정보국 국장은 2월 12일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서 “미 정보기관들은 이란이 지난 2003년 말 핵무기 설계 및 무기화 작업을 중단한 이후 이를 재가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란이 현재 핵무기 생산을 위한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 생산에 착수할 것인지 여부는 이란 내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란 핵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까지도 다소 모호하다. 하지만 최근 이란과 미국의 관계개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언급되기도 한다. 이는 무엇보다 이란 내부의 경제사정의 악화 때문이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가 현재 100달러 이상 떨어져 4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란의 인플레이션은 25%를 넘어섰고 실업률 역시 계속 치솟고 있다. 이란 정부는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로 예산을 감축해야 할 곤경에 처해 있다. 이란의 산유량도 지난 수년간 하루 400만 배럴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일부 석유 전문가들은 이란의 유전 대부분이 상당히 노후했기 때문에 2030년이 되면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이란은 경제제재에 따른 정유시설 부족으로 국내 소비용 휘발유의 60%만을 이란 내에서 조달하고 나머지는 인도, 프랑스 등에서 수입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서 석유와 가스 개발을 위한 투자를 끌어와야 할 시급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출되고 있다. 특히 2009년 6월 이란 대통령 선거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란과 미국 사이에는 어떤 공식적 대화채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보수파는 이란과의 접촉을 이란 대선 이후로 미루고 이란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나토 확대와 러시아의 선택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나토 확대(동진) 전략을 추구했다. 1999년에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했고, 2004년에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가입하여 현재 정식 가입국은 26개국이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등 5개국 가입이 추진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이 계속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한 부시 정부는 이란의 유럽공격에 대비해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방어망(MD) 기지를 추진하였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미사일방어기지 건설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유럽과의 재래식무기감축협상(CFE)을 중단하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지대의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으며, 벨로루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8년 8월에는 그루지야 내 남(南) 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둘러싼 민족갈등이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으로 터져 나왔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가 1991년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2009년 12월 5일 효력 만료된다. START는 전략 핵탄두를 6,000기 이하로 상호 감축하기로 합의한 협정이다. 양국은 START를 대신하는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이 역시도 부시 행정부가 적극 추진하던 동유럽 미사일방어망 구축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유럽을 무대로 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른바 ‘신냉전’)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나토 확대를 기본적인 방침으로 관철시키면서도 러시아를 달래기 위한 몇몇 방안을 찾고 있다. 2월 11일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MD 시스템의 동유럽 배치를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고위관리도 고위관리들이 러시아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데 협조하면 동유럽 미사일방어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러시아에 우회적으로 제안했다. 한편 그 이전부터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는 대신 미국은 MD 계획에서 양보하라고 압박해왔다. 러시아는 동유럽 MD 계획 재검토 가능성이라는 미국 측의 신호해 반응하여 2월 14일 외무장관을 통해 러시아 영토를 경유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비군사 물자를 수송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러시아 역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주가는 지난해 8월 대비 80% 가까이 떨어졌고, 6,000억 달러에 육박했던 외환보유액은 3,800억 달러대로 줄었다. 실업자도 600만 명을 넘어섰다. 러시아에서 서방자본의 철수는 곧 러시아 경제의 붕괴를 뜻한다. 러시아 경제의 취약성은 러시아 대서방정책의 근본적 제약요인이다. 미국의 핵 정책 <오바마-바이든 플랜>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제시했다. 그 핵심은 강력한 핵 반확산 정책을 구사하며, 동시에 러시아와의 핵감축협상을 통해 미국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중대한 결단을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핵정책으로 이미 선언된 것과 가능성이 있는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바마 정부는 NPT 체제를 더욱 강화해서 핵무기 보유국이 더 이상 출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이란과 같은 국가가 NPT 규정을 위반하면 자동적으로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5월 열릴 NPT 검토회의에서 이 목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둘째, 오바마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안보구상(PSI)의 제도화를 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상원의원 재임 당시 범세계적인 핵확산 방지를 위해 PSI 운영 강화를 촉구한 바 있으며,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도 테러범들이 핵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핵물질의 안전을 확보하고 PSI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셋째, 오바마 정부는 미국-러시아 핵무기 상호감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 감축목표가 어떻게 설정될 것이냐가 논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작성한 보고서, <전략적 리더십, 21세기 국가안보 전략을 위한 프레임워크>(2008년 7월 24일)는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전략핵무기를 1,000개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넷째, 오바마 정부가 국제핵연료은행 창설을 제안할 수도 있다. 국제핵연료은행은 각국이 군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우라늄 농축 시설 건설을 막기 위해 IAEA가 특별 시설을 설치, 민간용 핵연료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국제사회가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할 수 있는 핵연료를 공동으로 제공, 핵 개발 명분을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오바마는 상원의원이던 2007년 8월 척 헤이글, 존 케리 등 4명의 상원의원과 함께 국제핵연료은행 창설을 위해 미국이 5,000만 달러를 기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당시 상원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오바마가 발의에 참여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 후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섯째,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1996년 유엔총회에서 어떠한 형태, 규모, 장소에서도 핵실험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채택된 CTBT는 그동안 178개국이 서명했지만 원자로를 보유한 44개국 중 9개국이 이를 비준하지 않아 지금까지 발효되지 않고 있다.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이란, 이스라엘, 북한, 인도네시아, 이집트, 인도, 파키스탄 등이다. 부시 행정부는 CTBT가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상원에 조약 비준을 요청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14일 미 상원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 청문회에 클린턴 상원의원이 제출한 답변서는 CTBT 비준을 추진하고 부시 정부가 반대했던 핵분열물질 생산금지조약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미국은 러시아와 전략핵무기감축협상을 진행하고 CTBT를 비준하여 세계적 핵감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NPT 체제 강화나 PSI의 제도화를 통해 강력한 비확산/반확산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덧붙여 국제핵연료은행 창설을 제안하여 ‘핵의 평화적 이용’을 세계적 차원에서 관리, 통제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2010년 NPT 평가회의는 미국 핵정책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2008년 6월 26일 북한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2007년 10월 3일)에서 명기한 핵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 중국에 제출했다. 또한 2008년 7월 12일 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는 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조치는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조치를 포함하고, 필요시 검증체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관련 검증에 대해 자문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환영하며, 검증의 구체적인 계획과 이행은 전원 합의의 원칙에 따라 한반도비핵화 실무그룹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검증조치 중에서 특히 시료채취 여부를 두고 북한과 나머지 참여국간 이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원자로에서 인출한 사용후 연료봉 시료, 재처리시설에서 방출된 액체 폐기물 시료, 원자로 건물 내외의 환경 시료 등을 채취해 분석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심지어 플루토늄의 품질까지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술수준은 20~30년 전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사용 전 핵 연료봉의 생산 주기 등까지 잡아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시료채취는 다음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며 완강히 거부했고, 미국도 테러지원국 해제를 유보시켰다. 이에 대해 북한은 진행 중이던 핵시설 불능화를 중단하고 나아가 복구에 착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핵 신고서 제출 이후 검증조치에 대한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 힐 차관보가 10월 2일 북한과 구체적 검증조치에 합의하고, 미국 정부는 10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미 국무부는 ‘시료채취와 법의학적 방법을 포함한 과학적 절차’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북한은 미 국무부의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이를 명확히 정리하기 위해 12월 4-5일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동이 진행됐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고, 결국 2008년 12월 11일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개최되었으나 핵 검증의정서 채택에 북한이 반대하여 합의 없이 종료되었다. 다만 북한의 핵 불능화가 지속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지원도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도 북한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이제 6자회담 2단계는 오바마 정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지난 미국 대선 시기에 오바마 선거캠프에서 밝힌 대북정책 로드맵은 2008년 말, 2009년 초에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명문화한 비핵화 2단계가 완료되고, 비핵화 3단계가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2009년 평양에 외교대표부 설치, 6자간 한반도 평화체제논의 → 2010년 북미정상회담과 정전협정 관련국간(3자 혹은 4자) 종전회담 → 2012년 북미수교와 종전선언’이었다. 북미관계의 진전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미국의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하여 전반적인 문제를 협의한 후 대체로 예정대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오바마 역시 철저한 검증을 강조하고 있고, 시료채취 여부와 미신고시설 검증이라는 두 가지 핵심 쟁점이 남아 있기 때문에 6자회담 2단계에서 3단계로의 진전과 이에 따른 북미 외교관계 수립 과정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국력과 위상을 평가하며, ‘글로벌 동맹’으로서 한미동맹의 성격을 규정하여, 미국의 안보관심사에 대한 한국의 참여 수준과 폭을 확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2014년 4월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며, 한미동맹은 한국-미국-일본-호주를 잇는 네트워크 동맹으로 확대 전환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반테러전쟁을 추진하면서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하거나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과 이동, 순환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동맹국의 역할 증대와 경비부담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결국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미국 무기 구매, 아프가니스탄 반테러전쟁 기여, 국제평화유지군 파병, 한국의 PSI 공식가입 문제가 한미동맹 현안으로 계속 부각될 것이다. 미국 안보정책과 한국 평화운동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안보정책의 핵심 목표는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이었고, 9.11 이후에는 대테러전쟁의 승리가 새로운 목표로 강력히 부상했다. 오바마 정부는 기존 안보정책의 핵심목표를 충실히 추진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테러전쟁의 핵심목표를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를 위해 지상군 투입을 확대하며, 국방혁신도 최첨단무기 획득에서 지상군 보강으로 변환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음에 따라 17,000명의 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력으로 ‘테러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 철군 계획은 대선시기 공약과 거리가 멀며,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2011년 이라크 철군 이후에도 훈련지원부대, 대테러부대, 병참시설, 공군부대를 이라크에 유지한다고 결정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을 추구하면서, 특히 NPT체제의 강화(제재수단의 제도화)와 PSI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반확산 정책의 반대급부로 미국-러시아 핵무기 상호감축이나 국제핵연료은행 창설, CTBT 비준 방안이 민주당 주변 싱크탱크 등에서 제안되고 있으나 이는 미국의 압도적 핵 우월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서 중동 각국의 정치 상황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은 불균등하다. 이라크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종파 간 분쟁으로 인해 오히려 친미 세속정당이 약진한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영토분할에 반대하는 보수파가 약진했다. 이란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친미 개혁파의 부상이 오바마의 등장과 맞물려 중동지역의 불안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갈등의 본질적 요소 즉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이 제거되지 않으므로 장기적인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기존의 6자회담 프로세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상회담을 포함해 북미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부시정부 2기에 들어 이미 상당한 수준의 북미 직접대화가 진행되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사실상 준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기존 핵의 폐기보다는 핵확산 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이 미국과 동맹국 또는 협력국이 아닌 북한을 대상으로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오바마 대선캠프의 계획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에 6자회담 2단계가 종료되고 북한으로부터 핵(핵장치, 핵물질) 반출이 이뤄지는 3단계로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북미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이 추진된다. 만약 이러한 프로세스가 실제로 진행된다면 미국이 구상하는 종전협정과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군축을 담는 평화협정 구상 사이의 쟁점이 형성될 수 있다. 한편 오바마 정부는 안보 사안에 대해 동맹국의 ‘공정한 기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위기로 인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중동지역 추가파병, 유엔평화유지군 활동, 방위비분담 증액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의 평화운동은 무엇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하나? 첫째, 미국의 대테러전쟁, 중동지배전략에 맞서는 평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사실상 새로운 형태로 지속될 수 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한국을 포함해 동맹국들을 더욱 헤어 나올 수 없는 전쟁의 늪으로 끌고 갈 것이다.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의 핵심지주의 하나인 이스라엘은 보수파의 득세 속에서 더욱 강경한 팔레스타인 전략으로 중동 전체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 지난 2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에 맞서 국제적인 시위가 전개되었고, 세계사회포럼은 3월 30일 <팔레스타인 인민과 연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 민중운동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글로벌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될 한미동맹의 침략행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명분으로 기존의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정책을 제도화된 군사적 강제력으로 보강하면서 압도적인 핵우위 전략을 유지할 것이다. 세계 반핵운동은 2010년 뉴욕에서 개최될 NPT 검토회의에 즈음해 국제적 공동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민중운동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세계 핵무기 철폐와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위한 운동을 형성해야 한다. 셋째, 오바마 대북정책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미국은 동아시아 군사적 지배전략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할 것이다. 오바마의 북미정상회담과 종전협정은 2기 부시정부의 노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 주한미군 주둔, 동아시아 핵옵션과 같은 기존 군사노선은 유지된다. 따라서 북미대화가 진행될수록 한국 평화운동은 더욱 근본적 도전에 임해야할 것이다.
2009년 세계사회포럼 참가 후기 벨렝(Belem) 세계사회포럼 단상 세계사회포럼은 반(反)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성과로 지난 2001년 처음으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이후, 세계사회운동 세력들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2007년 1월 케냐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은 그 동안 포럼 내부에 잠재해 있던 문제들을 아주 심각한 형태로 드러내면서, 포럼의 정치적 전망과 그것의 의미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착취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할 세계사회포럼에 케냐의 풀뿌리 활동가와 도시 빈민들은 높은 등록비와 조직위원회의 배타적 태도로 참가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였다. 이에 대한 불만은 결국 현장에서 세계사회포럼을 강력히 비판하는 직접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더욱이 거대한 국제시민단체와 북반구의 후원을 받는 현지 NGO들은 막강한 재원을 바탕으로 세계사회포럼의 전체적인 프로그램과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장과 대중운동에 근거한 세계사회포럼의 확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이 과연 아프리카 사회운동을 진전시키고, 세계사회포럼 운동 그 자체에 역동성을 부여했는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나아가 “세계사회포럼이 소통의 ‘공간’(space)이냐 ‘운동으로서의 과정’(process as a movement)이냐”라는 그것의 미래를 둘러싼 전략 토론은 제자리를 맴돌면서, 세계사회포럼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08년 1월 조직된 ‘세계사회포럼 1.26 세계 행동의 날’은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세계사회포럼을 어떻게 다시 활성화시킬 것인가는 2009년 벨렝 세계사회포럼을 앞두고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였다. 벨렝(Belem)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세계사회포럼이 보다 적극적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사실 아마존 지역인 브라질 벨렝이 세계사회포럼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환경’과 ‘원주민 권리’라는 의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계사회포럼을 포르투알레그레 이후 다시 브라질로 유치하기 위한 브라질 단체들의 의도가 개입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벨렝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위기’라는 화두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경제/금융위기, 생태위기,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나아가 ‘문명의 위기’ 등 저마다의 관점에서 위기를 말하고, 그 해법을 찾는데 골몰했다. 특히 각 부문 네트워크들 사이의 공동 토론을 통해, 위기에 대한 세계적 해법을 토론하고 공동 행동 계획을 도출하고자 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세계적 위기가 터지자마자 지배계급들은 G20 정상회담 개최 등 신속한 대응을 모색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뭐했느냐’며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의 느린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긴급한 국제 공동행동, 상호지지/지원 투쟁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특히 3월 28일 G20 정상회담, 12월 UN 기후변화회의 대응 국제공동행동은 대다수 참가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다만,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을 문제의 심각성과 긴급성에 비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벨렝 세계사회포럼은 세계 사회운동들의 공간이자 네트워크로서 자신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한편 2007년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결성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이번 벨렝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조직하여 세계적 위기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대응을 모색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그동안 전통적인 노동조합 운동에서 배제되거나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았던 노동자, 즉 비공식 부문 노동자, 이주노동자, 가내 노동자 등을 조직하고, 세계적 연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 프랑스노동총동맹(CGT), 미국의 ‘세계적 정의를 위한 풀뿌리운동’(Grassroots Global Justice) 등 북반구 조직들과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남아공노총(COSATU), 브라질노총(CUT), 네팔노총(GEFONT), 인도의 새로운노동조합계획(New Trade Union Initiative, NTUI) 등 남반구 조직들이 참가하였다. 동시에 국제금속노련(IMF),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등 국제조직들도 참가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주관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핵심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첫째는 공식/비공식 부문을 망라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벨렝에서 열린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총회에서 제안된 선언은 그 문제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생산 노동뿐만 아니라 재생산 노동까지, 공식부문 뿐만 아니라 비공식부문 노동까지, 종속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노동까지, 노동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갱신하고 확장한다.” 특히 비공식 부문 노동자의 포괄을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단순히 주변화된 빈곤층 혹은 룸펜-프롤레타리아트, 혹은 잘해야 사회복지가 필요한 대상이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희생양으로 간주하기보다, 변화하는 세계적 노동시장에 통합된 일 부문으로 인정하여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조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두 번째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계를 넘어선 수평적이고 평등한 세계적 노동자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남반구뿐만 아니라, 북반구 노동자와 노동시장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남반구와 북반구 노동자들 간의 연대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능한 조건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시켜낼 때 현재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또한 전통적 혹은 공식적 국제노동조합운동이 북반구 노동조합의 강력한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상호간에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 의미의 제3세계주의 혹은 남-남 노동자 연대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세계사회포럼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탄생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그에 맞선 대항의 정치적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탄생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사회포럼의 긍정성을 존중하고, 노동자 운동의 미래는 세계적 정의를 위한 사회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찾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다. 또한 세계사회포럼이 NGO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운동 혹은 대중운동 중심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쟁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의 두 가지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출발하였다. 하나는 공식/비공식 부문을 넘어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건설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남반구/북반구 노동자의 평등하고도 수평적 연대를 존중하는 문제다. 이는 벨렝에서 제안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성명서에 잘 나타나 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공동의 이해, 특히 북반구 노동운동과 신흥 경제권 노동운동간의 공동 이해에 관한 솔직한 토론을 통해 세계적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는데 전념한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또한 공식, 비공식 경제를 망라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 및 그 조직들과의 연대를 건설하는데 전념한다.” 위 두 가지 문제의식 중에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해야 한다는 것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칙적인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전통적 의미의 노동조합운동을 개혁하는 수준에서 위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전통적 노동조합운동의 급진적 전환을 주장하는 것인지는 의견 차이가 있다. 또한 대륙별, 국가별 정치경제적 상황의 차이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기니(Guinee)의 경우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50% 이상이고, 남아프리카의 경우에도 30-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이 북반구 국가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반구 국가들에서는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화’에 맞선 대응이 주요한 의제인데, 이를 넘어서 비공식부문 노동자 조직화까지 확장되기에는 아직 토론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평적이고 평등한 남-북 노동자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점들이 존재했다. 실제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조직한 ‘새로운 투쟁, 새로운 동맹 - 세계적 노동헌장을 위하여’라는 토론회에서, 남아공노총(COSATU)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대응의 예를 들면서, 북반구 노동자들의 ‘민족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남북 노동자연대의 현실적 곤란함을 지적하였다. 북반구 노동조합들이 ‘민족주의적’ 입장을 버리지 않는 한, 남북 노동자연대는 공허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피터 워터만(Peter Waterman)은 세계적 위기 시대에 과연 남반구와 북반구라는 문제 설정과 남반구에 국한된 노동자 연대가 여전히 정치적 유의미성을 지니는지 의문시된다면서, 지금이야 말로 그 경계를 넘어선 세계적 노동자 연대의 실현이 가능하고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참가자와 조직들 사이에 이 쟁점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쟁과 토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속가능한 세계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각국의 투쟁과 실천을 세계적 수준에서 조정해낼 수 있는가, 이미 존재하는 다른 노동자 혹은 사회운동 네트워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지극히 실천적인 쟁점이 남아 있다. 네트워크가 건설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참가자들의 적극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일정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필수적 요소인 ‘공감대’를 넘어선 적극적인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또한 참가 조직들 간의 소통과 공동행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내부를 들여다보면, 적극적 행위자는 이탈리아 사회운동체인 ‘이탈리아를 변혁하자(Transform! Italia)’,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세계적노동전략(Global labor Strategy) 등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 네트워크가 말 그대로 보다 공식/비공식 부문을 포괄하는 세계적 노동자 연대 네트워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위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의 연계 혹은 포섭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위기와 노동자 투쟁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주관한 “세계적 위기 속의 노동자”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유하면서 이를 어떻게 지지/지원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였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역사상 처음으로 8개 노총이 공동으로 1월 29일 공동파업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 투쟁에 약 250십만 명이 참가하였다고 보고했다. 주요한 요구는 임금인상, 노동권 보장, 노동조건 개선, 퇴직노동자 보호,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 확대, 노동자를 위한 저비용 주택 공급 확대 등이었다. 또한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산별교섭 체계를 개악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시도에 맞서 작년 12월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였다. 브라질노총(CUT) 역시 심각한 위기 속에서 임금 삭감 반대, 빈곤층에 대한 지원 확대, 사회보장지출 확대,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G20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고 공유했다. 참가자들은 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스템이 실패했는가를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논리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공유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 자동차 제조업체 등에 대한 구제금융은 ‘실패한 모델’의 지속을 위한 지원에 불과하며,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효과만을 가져올 것이라 비판하였다. 진정한 위기 극복 정책은 ‘자본만을 살리는 구제금융정책’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저임금을 포함하여 임금을 인상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것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경제위기 극복은 환경, 에너지, 식량 등 총체적인 위기에 맞서는 계획과 긴밀히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좋은 일자리 창출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일자리,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일자리 등 환경 친화적 일자리 창출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현 위기의 근원인 국제금융자본 규제 및 국제금융질서 개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Tobin Tax)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급진적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런 점에서 3월 28일로 제안된 G20정상회담에 맞선 국제공동행동 조직화가 다시 한 번 강조되었다. 세계적 위기 국면은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해왔던 요구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며, 보다 급진적인 요구까지도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은행 국유화’에 관한 최근의 논쟁과 흐름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독일 노동운동가가 자국 상황을 두고 “자본은 마르크스를 논하고 있는데, 좌파는 케인즈를 논하고 있다”고 말했듯이, 현재 노동운동이 ‘사회 타협적 노동조합운동’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현 국면이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운동의 대응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경제위기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지 말라!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회주의에 기초한 대안이 긴요하다. 우리, 전 세계 사회운동은 아마존 벨렝에서 열린 8차 사회운동포럼을 계기로 한데 모였다. 포럼이 열린 아마존에서 민중들은 자연, 토지, 문화 강탈 시도에 맞서 오랫동안 저항해왔다. 이곳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운동과 토착민운동은 지난 10여 년 동안 힘을 모아 자본주의 체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급진적인 사회적 투쟁의 결과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던 여러 정부가 물러났고, 경제의 핵심부문의 국유화나 민주적인 헌법 개혁과 같은 여러 긍정적인 개혁을 추진해 온 정부들은 강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은 이 정부들이 채택한 긍정적인 조치를 지지하면서도 이들 정부를 거리를 두고 비판해오며 적절하게 대응해왔다. 이런 경험은 위기의 책임을 피억압 민중에게 전가하는 각국 정부, 기업, 은행의 정책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전 세계 사회운동은 현재 역사적인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국제적인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러 면에서 인류에 재앙적이다. 식량, 금융, 경제, 기후, 에너지, 이주, 그리고 문명 자체가 위기에 빠져 있으며, 국제질서와 정치구조 역시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적 위기는 자본주의 체계의 직접적인 결과다. 따라서 체제 내에서는 해법을 찾을 수가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 취해진 모든 조치는 전략적 경제 부문, 공공 서비스, 자연자원과 에너지자원에 기초를 두면서 생명을 상품화하고 노동과 자연자원을 착취하는 한편 자원을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노동자로부터 자본가에게 이전하는 데 바탕을 둔 현 체계의 유지를 위해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존 체계는 착취, 경쟁, 집단적 이해의 훼손을 무릅쓴 사적 이익의 추구, 소수의 부유한 이들에 의한 막대한 부의 축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유혈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외국인혐오증, 인종주의, 종교근본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사회운동의 범죄화를 강화한다. 현재의 위기를 배경으로 민중의 권리는 체계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야만적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 비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며 민중의 권리에 대한 부정의 상징이다. 이 추악한 범죄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사회운동은 전 세계 민중의 억압에 맞선 모든 행동, 특히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을 열렬하게 지지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제의 근원에 맞서야 하며 가능한 신속하게 자본주의 체계와 가부장적 지배를 철폐할 급진적인 대안의 구축을 향해 진전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정치적 자유에 입각한 민주적 참여를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고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분리 불가능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시민권,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적 협약이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전망 하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러 긴급한 조치의 실행을 촉구하는 가장 대중적인 투쟁이 성사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 은행 부문을 무상으로 국유화하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감시되도록 한다. -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 식량주권과 에너지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 - 전쟁중단, 점령군 철수, 해외군사기지폐쇄 - 민중의 주권과 자율성, 자결권 인정 - 모두에게 토지, 영토, 노동, 교육, 건강에 대한 권리 보장 - 의사소통 수단, 지식에 대한 접근의 민주화 21세기 여성운동, 환경운동, 사회운동이 추진하는 사회적 해방의 과정은 사회를 생산수단, 소통과 서비스 수단의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 사회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는 즉 공적이고 협력적이며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자산과 같이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는 소유형태를 지지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런 대안은 반드시 여성해방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인류의 절반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사회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바탕에 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토착민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기여를 인정하면서, 각자가 스스로, 다른 이들과, 전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한다. 우리 사회운동은 전 세계적 규모의 해방을 위한 제안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대중 투쟁을 통해서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풀뿌리부터 의식을 고양하고 동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회운동은 전 세계적인 운동의 결집을 이루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억압과 착취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운동의 결집을 지지함으로써 투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을 위해 노력한다. ○ 3월 28일~4월 4일: 자본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 공동행동 주간 - 3월 20일 반-G20 공동행동 - 3월 30일 전쟁과 위기에 반대하는 공동행동 - 3월 30일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를 위해 이스라엘 보이콧, 투자철수, 제재를 촉구하는 날 - 4월 4일 나토 60주년 즈음 시위 ○ 1년 내내 다음의 기회를 활용하여 국제적인 행동을 조직한다.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 4월 17일 식량주권의 날 - 5월 1일 세계 노동절 - 10월 12일 원주민의 날 - G8 정상회담(6월,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 기후 정상회의(12월 덴마크 코펜하겐) - 미주정상회의(트리니다드 앤 토바고) 위와 같은 요구와 투쟁 제안을 통해 우리는 급진적이고 해방지향적인 해법으로 위기에 대응할 것이다. 2009년 2월 1일, 브라질 벨렝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노조 상층부에서는 양 노총 재통합이 추진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임기 동안 단일노총을 만들어 상대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내용이 미국전역에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일반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층 조합원들도 이러한 정황이나 함의를 거의 모른다.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지지에 의존해왔다. 사실 노동자의 지지는 모든 연방, 주, 지역 선거에서 대개 당연하게 여겨진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과 미국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대통령 선거출마 지원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4억 5천 여 달러의 기금을 투자하여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켰다. 양 노총과 산하 노조들은 24개 주에 걸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를 위한 캠페인에 25만여 명의 조합원들을 동원하였다. 조합원들은 전화 연락을 통해 1,300만 투표자들을 조직했다. 인수 기간 동안과 취임 이후 버락 오바마 후임 정부는 정치 의제를 구체화하고 정책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 및 세계 경제 위기 문제를 다루기 위한 팀을 꾸렸다. 다시 한 번 닥쳐올지 모르는 대불황에서 미국을 구해낼 계획을 고안하는 것은 금융계 및 산업계 “지도인사”들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자리는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가게나 상가에서 소매업을 하거나, 혹은 서비스업을 하거나, 제조업을 하는 수백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한다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독재를 향해 발언해야 할 것이다. 현재 정치의제를 결정짓고 있는 것은 오직 월스트리트, 은행, 거대 자동차기업과 부동산업체의 목소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고 또 상충되는 이해를 가질 때가 많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 건강보험, 연금, 작업장 안전, 고용 안정과 존엄성을 희생시키는 데는 뜻을 같이 했다.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응 혹은 무대응,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처절한 상황은 최근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1세기 들어서면서 미국의 노동자운동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 성장하던 보수주의 세력은 1981년 공화당의 로날드 레이건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이후 8년 동안 연방정부는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지 몇 개월 후 항공교통관제사노동조합(PATCO)은 파업에 돌입하여 전 세계 항공을 마비시키고 미국 내 항공 운송을 중단시켰다. 파업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낮아지고 다른 노동조합의 연대도 사그러들자 레이건 정부는 PATCO에 치명타를 날렸다. 레이건 정부는 2기에 걸친 임기 동안 노동법과 안전법을 시행하지 않았고 전국 노동관계위원회의 친 기업적 마인드를 포함한 반노동자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원만했던 정부와 노동자의 관계는 깨지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단결의 기운을 높이고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분열하여 내리막길로 치달으면서 민주당에 포섭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노동조합은 수동적인 파트너로서 민주당과 ‘정략결혼’과 같은 관계를 맺었는데 노동조합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민주당은 노동조합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관계였다. 1992년에는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공화당의 보수적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서 여겨졌던 클린턴 정부는 그러나 공화당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클린턴 임기 이후 “자유 무역” 정책이 시행되고 나프타(NAFTA)가 통과되었다. 이로써 미국 기업들은 제3세계로 대대적으로 이동했고 국내에서는 수십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다른 “사회정의운동”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은 점점 자기 잇속만 차리는 거대한 관료집단이 되어갔다. 클린턴 집권 동안 노동조합은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운동 내부적으로 북미규모 노조들과 그에 가맹된 지역지부들은 운동성과 연대의 원칙을 포기하고 미국 특유의 기업적 관행을 재빠르게 수용했다. 노동자 연대는 부패, 경쟁, 횡령으로 대체되었고 노조 관료 내에는 부와 권력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제거되지 못한 채 노조 내의 주된 경향으로 남았다. 노조의 위계 내의 끓어오르는 불화는 2005년 AFL-CIO의 분할을 가져왔다. 갈등의 중심에는 노총 관료들의 안위를 지키려는 태도가 있었다. 그것은 AFL-CIO의 조직율이 민간부문 노동자의 8%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축소되었다는 사실과 북미규모 노조들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우선적 과제로 삼고자 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AFL-CIO가 분할되면서 승리혁신동맹이 창립되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소속 노조들과 함께 힘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승리혁신동맹의 평조합원과 소속 노조들의 좋은 의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별 영향력이 없었다. 이는 기업적이고 관료적인 욕심이 이 계획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노골적인 예는 아마 승리혁신동맹에 가입된 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큰 서비스노조국제연맹(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S.E.I.U.)의 예일 것이다. 앤디 스턴이 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비스노조국제연맹은 내부적으로 가맹 지역노조의 부정부패와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으로 진통을 겪었다. 남캘리포니아의 6434번 지역지부의 위원장인 타이런 프리만은 아내가 운영하는 업체와 60만 달러 규모의 사업계약을 체결했다. 또 지부에서 그의 장모에게 자신의 아이를 포함한 노조간부의 아이들을 보육하는 댓가로 매달 8,000달러를 지불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사퇴하였다. 프리만은 또한 하와이에서의 그의 결혼식을 위해 노조 기금에서 8,000달러를 썼다. 프리만 집행부의 사무총장이었다가 앤디 스턴의 추천으로 SEIU 미시건 지부 보건의료지회장을 맡았던 릭만 잭슨은 또 다른 사례로 들 수 있다. 잭슨은 미시건으로 옮긴 후에도 프리만의 캘리포니아 지역지부에서 추가 임금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퇴출당했다. 또한 잭슨은 노조에서 만든 주택 공급단체에서 매달 2,500달러의 월세를 받았다. 그의 퇴출 이후 앤디 스턴은 잭슨에게 캐나다의 SEIU 관련 단체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러한 부정부패는 SEIU 관료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미국 내 지도력은 노조 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을 희석시켰다. 1월 말 SEIU는 캘리포니아의 유나이티드헬스케어 노조(United Health Care Workers, U.H.W.) 지역지부를 장악했다. UHW는 SEIU내에서 지금까지 가장 빠르게 성장해온 풀뿌리 운동 지부였다. 이 지부는 민주노조의 모범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샐 로셀리 지부장은 65,000명의 간호조무사 조합원들을 강제로 다른 지부로 편재하려는 것에 맞서, 그리고 다른 조직 전략에 맞서 SEIU 지도부에 대항했다. SEIU의 이러한 관행은 미국 내 노동운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인 푸에르토리코에서 SEIU는 3년 이상 고용계약서가 없었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에서 정부의 편에 섰다. 2008년 초 푸에르토리코 교사노조(the Federation de Maestros de Puerto Rico, F.M.P.R.)은 막다른 골목 끝에 파업을 결행했다. SEIU는 그 뒤에서 아세베도 빌라 푸에르토리코 지사와 협상하여 교사노조의 설립인가를 취소하도록 했다. SEIU는 노조기금에서 수백만 달러를 지사와 그의 정당에게 주었다. 그 목적은 몇 년 전 여당에 의해 만들어진 SEIU 산하의 교사 노조를 교사들의 유일한 교섭 기구로 만들고 노동 분쟁을 교사들에게 불리한 협약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푸에르토리코의 법원이 교사노조를 불법화하자 SEIU는 이 노조의 조합원들을 흡수하고자 했다. 이에 2008년 10월 푸에르토리코의 교사들은 SEIU에 의한 교사노조의 장악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한편 부정부패로 기소당했고 현재 재판 중에 있는 아세베도 빌라 지사는 11월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이러한 행태는 SEIU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승리혁신동맹의 묵인에 의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그러한 방식으로 이끌어왔던 앤디 스턴이 오바마 정부에 의해 노동부 장관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노동자 조직의 주된 전략은 오바마가 그의 임기 첫 달에 노동자자유선택법 (Emplolyment Free Choice Act, E.F.C.A)에 서명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고용계약서를 받는 과정이 극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기대만으로 경제위기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현재 노조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작업장 내에서 선거를 실시하기 위해서 30%의 노동자로부터 위임장을 받아야 한다. 기업주가 반(反) 노조 전문가를 고용하여 노동자들을 움직이기도 하는 등 작업장 내에서 유세를 할 수 있는 반면 노조는 작업장 외에서만 선거유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자유선택법이 통과되면 전국노동관계위원회는 사업장 내 고용된 노동자 대부분이 위임장에 서명할 경우 노조를 독자적인 교섭 기구로 승인해준다. (즉, 노조 설립 절차가 간소화된다.) 그리고 사용자가 성실히 교섭에 임하지 않을 경우나 90일 안에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위원회는 중재에 들어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대선 전 상원의원이었을 당시 노동자자유선택법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자유선택법은 선거유세 당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것은 이 법이 노동계 외부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심한 경기침체/불황이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일 때 이 법안이 오바마 정부의 의제로 올라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역사상 최대위기에 처한 노동자운동의 입장에서 노동자자유선택법은 만일 통과되어 시행된다면 이 곤경에 대한 해답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승리혁신동맹은 지금까지 “두고 보자”는 태도로 노동자자유선택법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의회 로비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국면에서 노동자 조직의 태도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는 과거 정치적 행태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조직노동자들보다는 정치인들이 정치의제를 결정하는 관행에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인들은 과거 누렸던 생활수준을 앞으로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 명의 생계부양자가 한 가족을 책임질 수 없다. 가족 내 모든 성원이 고용되어야 가족의 생계를 감당할 수 있다. 2008년에만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뿐 아니라 건강 보험과 퇴직 연금이 손실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노동조합은 지금껏 이렇게 악화되는 상황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미국이 심각한 경기침체/불황에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주문했다. 정책 입안 주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면 누가 배부르고 누가 굶주릴지는 뻔하다. 수십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의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사례로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U.A.W.)를 살펴본다면 경제위기 해결책의 고통을 떠안는 것은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자유선택법을 노동법으로 입안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전전을 조직하고 그것을 노동조합에 기꺼이 미래를 걸겠다는 수천만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자기 조직 내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미국 노동자들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법안에 관한 평조합원 교육사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개발한다면,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합원 뿐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아우르는 미국의 전체 노동자 빈민을 마주하고 있는 이 사안에 대한 정치 담론을 지지한다면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노조가 대중 속에서 그러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조합원들을 결집시키고 미조직 대중들을 조직한다면 정치적 의사 결정상의 권력 관계는 바뀔 것이다. 정부, 금융, 기업계 거물들은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운동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역사 속에서 사례와 시사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들은 1930년 대불황 이후 불평등을 없애고 실질적으로 미국인들의 생활조건을 향상시켰던 노동자운동의 역할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오늘날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노동조합의 대응의 예를 살펴봐야 한다.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들은 미국 노동조합이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주목할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 경기침체/불황기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 현재의 경기침체/불황의 특이성 현재 자본주의는 계속 진행될 마이너스 성장의 초기시점이므로 우리는 현재의 위기를 ‘경기침체/불황’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침체는 여전히 확산되고 있으며 심화되어 2009년 중반부터 죽 불황기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기침체/불황은 불균등한 정도와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미국, 유럽, 일본에서 위기가 인도, 중국보다 더 많이 진행되었다. 현재의 침체/불황을 진지하게 분석하려면 지난 50년에 걸쳐 발생한 자본 구성의 대대적인 변화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자본주의적 순환의 ‘장기파동’에 관해 이론화하는 것이나, 1929-1939년의 침체/불황과 그 이후에 진행된 침체/불황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길이, 기간, 자본주의 붕괴가능성과 새롭게 떠오르는 반자본주의 세력에 관해 이론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제 형태와 그 결과 나타나는 새로운 계급 구성을 인식해야 한다. 현대 ‘새로운 자본주의’의 고유성 현대 세계 자본주의의 침체/불황을 규정하는 고유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현재 세계 전체가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통합되어 있는데, 이 시장은 생산과 유통의 핵심적인 수단을 통제하고 임노동을 고용하는 사적 자본 소유주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국가 소유와 계획을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는 공산주의 경제는 더 이상 없다. 소련, 중국, 그리고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내 소련과 중국의 동맹국 및 전-종속국(client)은 자본주의 시장에 종속된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전체 세계 경제가 현대 사상 처음으로 세계 침체/불황의 효과에 종속되고 있다. 2. ‘민족적’ 자본주의 경제간 통합의 수준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넓으며 경기침체가 한 나라/지역에서 다음 나라/지역으로 이전되는 속도는 증가하고 있다. 3. 자본 및 이와 연동된 부문, 특히 금융 부문의 집적과 집중은 유례없는 수준에 도달했고, 따라서 팽창기에는 신용, 금융권력, 금융자산 등과 페이퍼 경제(증권, 외환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붕괴시에는 모든 경제 부문(제조업, 농업, 공공재정)에서 복합적인 위기를 촉진한다. 4. 오늘날 임금노동자와 사무직노동자의 규모와 그 확장속도는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다양한 노동자계급(고용된 노동자, 실업노동자, 계절노동자, 계약직노동자, 하청노동자, 공식노동자, 비공식노동자)은 자본주의 수입과 소득의 중요한 원천이다(직접적으로 이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자, 세금, 인세, 임대료를 통해). 5. 자본주의의 구성은 이전과 비교할 때 매우 현격한 차이가 나타난다. 특히 금융자본과 생산자본의 관계면에서 그러하다. 미국과 영국에서 금융자본은 자본 집중의 중추다. 모든 경제 중심으로부터 이전된 자본은 전 세계 경제 전역에서 투기적인 경제활동에 투자된다. 금융자본의 집중성은 이에 수반하는 상품 투기 과열과 부동산과 주택거품의 원인이며, 미국경제가 수출-제조업 중심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과 수입-소비 중심의 경제로 전환되었음을 나타낸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정도가 덜하지만 유럽에서의 금융-소비자 자본주의의 부상은 새로운 세계적 분업을 형성한다. 아시아, 특히 중국, 남한, 대만은 전 세계 제조업의 수출 공장이 되고 있으며 남미는 농산물, 광물, 석유 수출국이 되었으며, 중동은 석유금융의 하부 중심이며 아프리카는 아시아의 새로운 제국적 권력과 유럽-아메리카의 오래된 제국적 권력에 의해 자원을 착취당하는 농업-광업 식민지화의 타깃이 되고 있다. 6. 라틴아메리카의 ‘구조조정된’ 자본주의 경제는 1990년대 침체 및 금융위기 시기에 농업-광업 수출을 성장축으로 삼아 출현했다. 2003년~2008년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나라는 중도좌파건 우파건 상관없이 경제의 ‘1차 산업으로의 회귀’를 전략으로 삼았다.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은 농식품 산업과 광업 수출에 중심을 두었다. 이러한 수출 자본주의로 인해 계급구성이 재규정되었고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으며 아시아 내 무역 상대국이 다양화되었다. 7. 라틴아메리카가 1차 산업으로 회귀하면서 신자유주의는 강화되었고 국가 정책은 농업-광업 수출업자들을 우대하고 광범한 종속적 ‘빈곤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빈곤한 부문을 지원하는 것으로 재구성되었다. 사회운동과 노동조합 지도부는 포섭되었다. 잉여노동은 ‘수출’되었고(해외 이민) 막대한 양의 해외송금이 유입되었다. 8. 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은 세계경제를 관통하는 세계적 연계망을 갖춘 미국의 금융시스템이었다. 미국의 금융지배는 1) 제조업에서 자본철수, 2) 부동산 투기의 대대적인 확대, 3) 채권금융 소비자 기반 성장, 4) 아시아 제조업의 성장과 수출 촉진, 5) 라틴아메리카 1차 생산물의 생산과 수출 증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미국 금융자본의 부상, 아시아 수출 산업의 성장, 라틴아메리카 1차 생산물 호황 사이의 연관관계는 2007년까지의 고성장기와 뒤이어 2008년에 시작된 붕괴와 심각한 침체의 원인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불황: 국내적 영향 미국 경제는 급속하게 침체에서 불황으로 악화되었다. 매달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있으며 노동자 다섯 명당 한 명이 실업상태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주택소유자 열 명당 한 명이 주택담보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여 강제압류에 직면해 있다. 2009년 국민총생산은 -2%에서 -5%사이를 기록할 것이다. 도산 비율은 불황기 수준이고 신용은 고갈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수조 원의 정부 구제금융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태다. 실업, 파산, 신용경색, 기업 손실, 부채, 다시 말해 전반적 불황이 미국 국내 경제를 황폐화시켰고, ‘실물 경제’와 주식시장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대량의 정부지출과 보조금은 금융 시스템을 부양하고 생산 부문에 대한 대부를 촉진하고 가계소비를 지원하는데 실패했다. 미국 재무성 채권은 물가상승률에 훨씬 못 미치는 마이너스 금리(1%)를 지불하고 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월스트리트 사기는 은행과 투자자,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신뢰를 파괴했다. 자본주의 체계는 무너졌다. 경제 체계로서 자본주의는 생산, 대부, 고용, 소비, 무역, 주택공급 등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최소수준으로도 수행하지 못한다. 미국의 경기침체/불황은 전 세계 경제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 각국이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탈동조화론’과는 반대로 미국의 침체는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대미수출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미국의 금융 붕괴는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은행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신용은 고갈되었고 투자자와 투기꾼들이 미국 내에서의 손실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을 철수함에 따라 대대적인 자본유출이 발생했다. 미국-유럽-아시아의 침체는 급속도로 불황으로 옮겨갔고 대대적인 도산, 실업, 연금손실, 주택압류, 빈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은 소수의 사적 은행으로의 자본 집중을 동반했다.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통화부양’, 금리인하는 분명히 실패했다. 미국의 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0.25%로 감소되었지만 중앙은행은 이 조치가 하락의 속도를 줄이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고 인정한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은 2009 회계연도에 2조 달러라는 막대한 적자를 메우고 연방, 주, 지방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이 붕괴하는 것이 막기 위해 전례 없이 발권에 의지했다. 사회서비스가 삭감되는 동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해고와 사회서비스 시설의 폐쇄가 급증했다. 경기침체가 점차 심화되는 동안 미국 정치경제에 관해 주목할 것은 주식시장과 실물경제 사이의 실적 차이다. 즉, 민간 경제에 대한 정부지출은 감소했고 군비지출은 증가했으며 민간부문의 고용은 감소했고 전장으로 내보낸 군대는 늘어났다. 다시 말해 경기침체가 심화되어 민간기업들은 파산 직전에 이르고 국내생산은 붕괴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제국을 재건하고 여러 전쟁에 개입하는 데 희소한 자원을 투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 위기의 이러한 특이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가설을 낳는다. 1. 군사 주도 제국 건설은 국내(그리고 심지어 국외의) 생산 경제보다 훨씬 우위를 차지한다. 군대의 예산과 인력은 증가하고 있지만 생산부문에서의 사적 투자자금과 고용은 축소된다. 2. 군사-제국 복합체는 상대적으로 또한 일시적으로 국내 생산 경제로부터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이다. 사실 이는 역의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 군사-제국 복합체는 확장된다. 경기침체가 군사-주도 제국 건설과 전쟁의 토대를 침식하여 미국 정부가 승복하고 철군하거나 전쟁 상대국들과 ‘교섭’을 하거나 다자간 협의에 따른 결정을 승인하도록 강제할 것이라는 견해는 틀린 것으로 판명 났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어 실업과 기아가 대대적으로 발생하면 결국 정부는 군사 제국 건설을 축소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지 않고 관료화된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전체 노동력의 5% 미만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이러한 예측은 불확실하다. 자동차, 철강, 그리고 여타 산업부문의 조직된 노동자들조차도 대량 해고에 직면하여 아무런 시위를 벌이지 않고 있다. 국내 민간경제에 우선하는 군사 제국의 지배를 역전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정치적 압력이 발생할 만한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국내의 경기침체/불황에 맞서기 위한 정치적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 실업/반실업 노동자들이 얼마만큼 발생하면 얼마만큼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할 것인가? 실업/반실업 노동자가 20~30%에 이르면 2~3개의 전쟁이 필요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오바마 임기 내에, 또는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국내 경제에 대한 제국 건설의 우위를 역전시키기 위한 압력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며 국내 경제는 계속해서 쇠퇴할 것이다. 국내 경제의 붕괴와 장기화되어 패배로 치닫고 있는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재정유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군사-제국과 금융부문에 선차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태도가 한두 명의 선출된 관료들로는 바꾸거나 역전시킬 수 없는 심층구조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심층구조는 현재의 맥락에서는 뿌리 뽑을 수 없다. 새로운 ‘경기부양책’은 단기적 사업만을 활성화할 뿐인데, 그 이유는 제국주의 전쟁의 탐욕적 요구와 역기능적인 금융 시스템이 근본적 변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현재 정치 조건 하에서 경기침체의 심화, 지속적인 제국적 군대의 손실과 경제 불황으로의 이행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미국이 정치적(군사적)으로 민족주의, 반시온주의, 인민주의, 사회주의 정부 및 운동과 대결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대결은 필요한 곳에서는 일방적으로 작동할 것이고 가능한 곳에서는 동맹/협력국과 함께 추진될 것이다. 세계적 경기침체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결주의의 효과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세계적 경기침체에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내 모든 나라가 예외 없이 무역, 국내 생산, 투자, 고용, 정부수입 및 소득에서 대대적인 감소를 겪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2009년 GDP 성장률은 2008년 9월 3.6%에서 2008년 12월 1.4%로 감소했다(파이낸셜 타임즈, 2009년 1월 9일자). 라틴아메리카 1인당 GDP 수치는 2% 하락했다. 그 결과 도산이 확산될 것이고 사회서비스에 대한 국가 지출은 감소할 것이다. 대형은행과 대기업에 대한 국가 신용과 보조금은 증가할 것이다. 실업은 확대될 것이고, 특히 농업-광업 및 운수(자동차) 수출 부문이 심각할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감봉을 겪게 될 것이다. 해외 체류 노동자들로부터 송금이 감소함에 따라 현금 유입이 수십억 달러/유로가량 줄어들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과 유럽에서의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철수해갈 것이다. ‘신규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투자가 철수하면서 대규모 ‘합자’를 위한 자금의 주요 원천이 사라지게 된다. 갑작스러운 세계적 수요 감소로 인한 1차 생산물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수출세에 의존하는 정부의 세입을 급감시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외환 보유고는 수출세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정도로 ‘충격 흡수판’의 역할만 할 뿐이다. 경기침체는 라틴아메리카의 ‘성장모델’의 토대인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계급 구성의 장기적이고 대규모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선거 과정을 지배하는 정당의 전반적인 스펙트럼은 농산물/광물 수출 모델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역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1차 생산물 수출 모델 내에서 임금 인상과 개혁, 사회 지출의 확대를 추구해온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은 직접행동을 취하도록 강제받거나 중요성을 잃게 될 것이다. 심화되는 경기침체/불황에 대한 ‘중도-좌파’ 정권의 초기 대응은 다음에 초점을 두었다. 첫째, 은행 부문을 위한 재정지원(룰라). 둘째, 농업-광업 수출 엘리트에 대한 세금 감면(키르츠네르/룰라). 셋째, 자동차 구매를 자극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저리 신용 지급(키르츠네르), 넷째, 폐쇄된 중소규모 광산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한 일시적 실업수당 지급(모랄레스). 2009년 초반까지 라틴아메리카 각국 정부는 자국은 세계적 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따라서 이들은 경기침체가 심각하지 않으며 ‘2009년 하반기’에는 급속히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위기를 축소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현재의 외환보유고가 더욱 심각한 경기하락을 막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IMF에 따르면 2008년 라틴아메리카는 주식시장과 자산 시장의 후퇴와 통화 평가절하로 인해 금융자산(22억 달러)의 40%가 손실되었다. 이러한 손실은 2009년 국내 지출을 5% 감소시킬 것이다. 1차 생산물 가격이 급속히 하락함에 따라 라틴아메리카의 교역조건은 악화될 것이다. 수입품 가격은 높아질 것이고 무역적자는 증가할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즈, 2009년 1월 9일자 7면). 2008년 1월 브라질 제조업의 산출이 6.2% 하락하여 더욱 악화되는 추세임을 볼 때 라틴아메리카가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파이낸셜 타임즈, 2009년 1월 1일 5면).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는 심각한 수준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진입했으며, 그 파괴적인 효과에 대응하기 위한 어떠한 계획이나 프로그램도 없다. 경기침체/불황이 계급구성 변화에 미치는 영향 경기침체는 라틴아메리카 계급구성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층에서 하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의 규모와 영향력에 강한 영향을 준다. 우선 1차 생산물의 가격과 수요 급감은 농산물-광물 수출업자들의 소득, 지불능력, 권력의 급격한 감소를 낳는다. ‘호황기’ 동안 그들이 사업을 확대한 것은 부채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몇몇 경우 달러화나 유로화 위주의 대부에 의존하기도 했다(파이낸셜 타임즈, 2009년 1월 9일자 7면). 큰 채무에 시달리는 ‘수출 엘리트’ 중 다수는 도산에 직면하여 정부에 외채 상환 의무를 경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경기침체/불황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중대 규모의 광산과 농장이 압류되거나 강제 매각됨에 따라 농업-광업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발생할 것이다. 농업-광업 부문의 GDP 및 국가 세입에 대한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면 정부 및 경제적 의사결정에 대한 농산물-광물 수출업자들의 영향력도 축소될 것이다. 경기침체기에 해외 시장이 붕괴하고 부채 상환을 위한 국가보조금과 정부의 시장 개입에 의존하게 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힘을 잃는다. 농업-광업 엘리트들은 경제적인 힘을 잃게 되어 생존, 회복, 자금 보충을 위해 확대되는 국가의 역할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신 국가주의’는 전혀 ‘사회주의’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전혀 ‘진보적’이지도 않다. 1차 산업 부문 엘리트들의 영향력 하의 국가는 경기침체에 대한 부담을 전적으로 노동자, 소농, 중소상공인에게 전가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국가는 다수 민중에게 빚을 져 주력 수출부문 엘리트들의 부채를 보조하고 자본에 무이자 대부를 제공한다. 국가 재정 부족으로 사회서비스(건강보험, 연금, 교육)와 급여의 대대적인 삭감이 발생한다. 국가 역할의 확대는 주로 지배 계급에 대한 부채 보조에서 일어난다. 농업 수출 엘리트는 경제적 영향력의 감소로 인해 정치적으로 취약해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더 이상 ‘성장 동력’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국가주의’라는 조건에서 계급투쟁의 축 중 하나는 누가 국가, 국가예산, 지출, ‘개입’을 통제할 것이냐를 둘러싼 대결로 변화한다. 경기침체/불황 동안 경제에서 국가의 중심적인 역할 때문에 모든 계급관계와 계급투쟁은 국가가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그것을 영유할 것인가를 두고 국가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된다. 금융 부문, 그리고 해외 시장과 금융부문과 연결된 산업 부문은 시장 점유, 자본 동원, 신용의 심각한 악화에 직면한다. 경기침체/불황에 따른 심각한 ‘투자철수’는 북미, 유럽, 중남미에서 심화된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부문은 ‘세계 시장에 가장 많이 통합된’ 부문이다.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은행, 자동차 제조업, 통신 산업의 금융위기는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주로 국내 경제에 국한된 금융ㆍ제조업 분야는 위기의 초기 국면에 쇠퇴를 벗어났다. 라틴아메리카가 이미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1998~2002년) 현재의 경기침체/불황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없다. 라틴아메리카가 경기침체의 첫 번째 물결(2008년)의 폭발을 제때 감지하지 못한다면 2009년에 두 번째 물결이 강타했을 때 다국적 기업이 자회사의 문을 닫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산업이 도산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산업 노동자의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이 동반될 것이다. 도심에 밀집된 산업 노동자들의 사회-정치적 중요성과 산업 부문에 대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의존성 때문에 국가는 생계임금을 지급하는 공공근로로 실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노조가 단체협상 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새로운 형태의 반실업, 실업 노동자들의 대중 조직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2000~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나타난 것처럼 도로, 교통망 봉쇄, 폐쇄된 공장 및 공공기관 건물 점거 등의 직접행동 전술을 사용할 것이다. 수백만 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축소되는 노동시장에서 격렬하게 경쟁하게 됨에 따라 비공식부문이 현저하게 늘어날 것이다. 경기침체/불황과 국경 통제에 직면하여 탈출구로서 해외 이주를 시도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국내 또는 나라간 이주가 상황을 개선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축, 실업수당의 부족, 해외 송금 감소와 ‘정치적 지원’으로 사용되는 공공근로 사업의 취약성이 결합되어 도심과 수도 주변의 슬럼가에서는 ‘정치적 기운’이 고조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인 급진화’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아’의 유령은 좌파 주도의 실업/비공식 노동자조직과 반자본주의적 공장점거 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우익의 인민주의적 선동에 대한 관심, 심지어 도시 갱단의 증가와 지하 경제의 성장 역시 부추기게 될 것이다. 최근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활발한 실업노동자 조직의 사례가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는 단지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기 다른 역사적 맥락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투쟁을 개발하고 이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경기침체의 가파름, 깊이, 정도는 대부분의 선거기관과 의회기관의 중요성을 떨어뜨린다. 실업, 도산, 세수손실의 광범위한 확산은 의회 내에서의 기나긴 협상과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 대신 의회를 초월한 직접행동이 대세가 된다. 경기침체가 좌파에 미치는 영향 자본주의 경기침체/불황이 대중적 불만의 고조에 따른 으뜸가는 수혜자가 좌파가 된다고 보장하지는 않는다. 여러 우연적 요소들이 정치적 성격을 결정하는 데, 경기침체가 전개되면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브라질 등 자칭 ‘중도좌파’가 집권한 곳과, 베네수엘라처럼 민족주의 좌파가 집권한 곳, 그리고 국가가 재정을 투여한 ‘경기부양책’이 경기침체-불황을 막지 못하는 곳에서 정치적 조건은 우파의 부활에 유리하다. 우파는 금융자본의 회복을 위해, 그리고 대중적 시위를 철저하게 억압하기 위해 국가 개입에 의존할 것이다.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등 신자유주의적 우파가 집권한 곳에서 대중운동은 좌파 정치조직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조직된 강력한 혁명 세력이 없다면 경기침체/불황은 그 자체로는 사회변혁을 이끌지는 못할 것이며, 대중투쟁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소한 2009년 위기의 초기국면에는 대부분의 ‘대중적 압력과 투쟁’이 일자리를 보호하고, 대량해고를 막고 ‘방어적’으로 공장/기업을 점거하는 데 방향이 맞춰질 것이다. 더불어 도산 기업에 대한 보조 또는 선택적 국유화를 통한 국가 개입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완전한 종말은 불가피하지만 이것을 대체할 것은 초기에는 ‘국가 자본주의’의 형태를 띨 것이다. 가장 급진적인 대안과 대중적인 요구는 1차 생산물 수출과 세계적 수요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나라와 경기 부진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 가장 많이 통합된 나라에서 형성될 것이다. 이런 나라들로는 멕시코, 중미,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볼리비아가 있다.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등의 수출국과 더 큰 내수 시장을 지닌 나라들 역시 세계적 또는 지역적 경기침체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그렇게 심각하거나 급작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침체의 초기 국면은 막대한 외환 보유고에 의해 완충될 것이다. 2009년 중반까지 경기침체는 자본 유출, 신용, 투자시장, 송금의 손실이 강화됨에 따라 가속화될 것이고 지역 생산자들과 자본 시장은 강력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 초 라틴아메리카는 깊은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다.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공공근로 프로그램이 실패하고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장기화되면 좌익적 급진화가 진행될 것이다. 혁명적 운동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열쇠는 명확한 반-제국주의적, 사회주의적 강령의 안내를 받고 지역적 저항을 전국적 투쟁계획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조직화된 핵심세력과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를 지닌 위기의 사회경제적 중심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달려있다. 현재 조건에서 경기침체/불황은 대중운동의 재출현을 위한 기회의 문을 열 것이며 이는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과 혁신을 위한 능동적 지지자들을 탄생시킬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운동의 혁신은 ‘좌파 실용주의’와 ‘자생주의’, 그리고 공장과 지역 내에 뿌리내리지 못한 한계 등을 반성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계급 구성 전체의 정당성을 침식한다. 경제 붕괴는 공적으로 통제되는 경제의 전주로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의 유령을 부상시킨다.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할 수 없게 된 자본주의, 도산과 약화된 수출전략과 보호주의 증가라는 맥락에서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의 심각한 경색으로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성공이 분명해진다.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혁명적 정치를 위한 전망의 토론은 반자본주의적 사회-정치 세력을 현재 상태, 그리고 그들의 성장 잠재력을 현실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현실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전과 현격히 다르게 유리한 ‘객관적 조건’(세계 자본주의 경기침체/불황의 장기화와 심화)와 ‘주체적 조건’(조직된 반자본주의 대중운동 또는 당)의 취약함과 불균등한 발전 사이의 현격한 대조를 고려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현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자가 취약한 불안정한 시대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느 편이 자신의 세력을 재조직하고 재구성하여 다른 편을 이용하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편이 지닌 ‘강점’(그리고 약점), 자원과 여력의 목록을 작성하고, 세계 경기침체 시기에 벌어질 갈등과 대결의 결과를 예상해야 한다. 경기침체에 연루되는 좌파 넓은 의미에서 ‘좌파’는 차베스 정부, 콜롬비아의 게릴라운동과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분포해 있는 도시와 농촌의 독립적인 계급적 사회적 조직, 소농 및 토착민 운동, 전투적 독립노조, 민족주의적ㆍ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을 포함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좌파는 여러 차례 전술적 패배를 겪었다. 그 동안 좌파는 후퇴했고, 몇몇 조직은 쇠락하거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브라질(1964), 볼리비아(1971), 우루과이(1972), 칠레(1973), 아르헨티나(1976)에서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처럼 대중조직이 파괴되고 핵심 세력과 지도부가 제거되고 기층 조직원들이 산산이 흩어지는 역사적인 전략적 패배를 겪지는 않았다. 좌파는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경험을 축적하고 지지자들을 교육시키고 조직을 재건하고, 최소한 지지자들의 즉각적인 이익을 방어해왔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중추를 이루는 베네수엘라에서 좌파는 1999년 정권을 장악한 후 쿠데타, 미국을 등에 업은 세력의 공격, 자본가들의 공장폐쇄와 사보타주를 극복했다. 차베스 정부는 역동적인 혼합 경제를 실시하기 위해 재정을 투여하고, 복지프로그램을 진척시키고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PSUV)을 창당했다. 좌파운동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서 수많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대규모의 지지층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여 친제국주의적 대통령을 몰아내고, 좌파 및 중도좌파 대통령을 방어하고 거리 시위에 참여하며, 조직되지 않은 대중을 장기 가두투쟁에 조직할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직되지 않은 투쟁으로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 운동(1999~2003년), 브라질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1985~2002년까지 활발하게 일어났다가 2003~2008년 룰라정권 하에서 다소 쇠퇴), 볼리비아 노동자-농민/토착민 도시 반란(2000, 2003, 2005)등이 있다. 그러나 대중 운동의 궤적은 항상 상승세를 그리는 것은 아닌데, 대부분의 성공적인 대중 시위는 2000년~2005년에 발생했고, 세계 경기침체에 앞서 그 뒤 3년간은 상대적인 하락세를 그렸다. 1차 생산물 호황 시 좌파는 약화되었다. 2004년~2008년 (9월까지) 단기간의 강력한 회복기에는 코레아(에콰도르), 모랄레스(볼리비아), 키르츠네르와 페르난데스(아르헨티나), 바스케스(우루과이), 룰라(브라질) 등의 개혁주의 및 중도좌파 정권과 우파정권이 득세했다. 세계 경기침체에 휩쓸리면서 나타날 좌파의 ‘취약점’은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당 사이의 파편화, 분산, 내부 갈등으로 인해 국가 권력과 싸울 능력이 제한되는 것이다. 대중운동과 노동조합은 약화/분할되었고 지도부는 중도좌파 정권에 흡수되었다. 중도좌파 정권은 대중적 동원을 중립화하고 탈정치화하는 데 운동 조직을 활용해왔다. 경기침체가 심화하고 실업이 증가함에 따라 중도좌파의 통제력은 약화된다. 룰라는 브라질노총의 다수파 지도부를 포섭했고(사무총장을 노동부장관으로 임명),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약속을 파기하고, 탄압함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기업 수출 엘리트들에게 수십억 헤알을 쏟아 부어 MST를 약화시켰다. 경기침체로 룰라의 통제력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실업이 증가하고 농업 수출이 감소함에 따라 대중적 불만은 강화될 것이다. 콜롬비아의 우리베 정권, 페루의 가르시아 정권, 칠레의 바첼렛 정권, 그리고 중미 카리브해 지역의 여러 정권 등 우파 및 중도우파 정권 하에서 좌파운동은 사회적, 정치적 공간을 재획득했다. 선거투쟁과 의회를 초월한 투쟁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도전했다. 특히 콜롬비아와 페루의 농촌과 도시에서 지역적인 대중운동이 탄생했다. 이러한 운동은 공공자원의 재분배와 다국적 기업에 의한 지역 거주지와 지역 경제의 파괴를 놓고 중앙 정부에 도전했다. 1차 생산물 가격의 붕괴와 실업 증가는 지역 권력 블록을 바탕으로 한 ‘이중 권력 상태’를 형성할지도 모른다. 경기침체기 직전(2007년~2008년) 시기 대중 동원은 앞선 10년과는 다른 나라와 계급에 의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 페루, 코스타리카에서의 전투적 대중투쟁은 2005년~2008년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서 벌어진 투쟁을 능가했다. 콜롬비아 내에서 게릴라는 자신을 재조직화하면서 전술적 후퇴를 했지만, 토착민, 학생, 노동조합 등이 살인적인 우리베 정권 맞선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사회운동의 가장 큰 취약성은 이들의 지도력이 한 부문에 국한되며 전국적인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이들이 사회전반에 걸친 프로그램을 포괄하더라도 그들의 지도력은 전국적인 핵심 구조를 지탱하기에 필요한 독립적인 재정적 물질적 자원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정치권력-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실천과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이들이 영향력과 대중적 지지력을 획득하더라도 이들은 ‘중도 좌파’ 정치 지도자들과 동맹을 형성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좌파와 협력하고 권력을 장악하면 우파와 협력’해왔다. 무엇을 할 것인가? 1차 생산물 호황이 종결되면 광산노동자, 석유노동자, 농업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실업이 증가할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계급투쟁, 조직, ‘의식’을 지닌 채 균질적인 공동체에 모여 있었다. 고립되고 지역화된 투쟁은 불가피하며 사실 이미 2008년 말에 발생했다. 수출과 국내 소비 시장의 급격한 감소는 산업노동자, 특히 자동차 및 관련 제조업 분야에서 실업을 증가시킬 것이며 이는 직접행동을 위해 실업 노동자들의 조직을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농업-광업 수출세에 의존해온 국가 세입의 감소는 공무원들의 해고 및 신규 채용 동결로 귀결될 것이다. 이는 수만 명의 젊은 대학, 사범대학, 전문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못하여 아무런 미래도, 조직화 가능성도 없는 상태로 방치된다는 뜻이다. 경기침체/불황(일반적 위기)은 국제 이주를 감소시킬 것이며 이주자의 귀국을 야기할 것이다. 해외 거주 노동자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막대한 양의 해외송금도 사라져 고난과 긴장, ‘고향’에서의 투쟁의 필요성이 강화될 것이다. 경기침체의 ‘세계적’ 성격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탈출구’로서 작동해온 이주의 기능을 제거할 것이다. 과거에 이주해 나간 사람들은 고국에 머물러 계급투쟁을 조직해온 이들과 같은 나이와 같은 야망을 가지고 있다. 해외 이주가 가로막히면 이 젊은 노동자들은 실업/반실업 노동자들의 운동을 급진화하고 강화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청년층, 마을 주민들, 주요 거점 내 직업훈련생, ‘비공식 노동자’로 ‘고용’된 노점상들 사이에 뿌리내린 투쟁의 강력한 조직이 없다면 분노와 불만은 탈정치화, 반동화될 가능성이 많다. 범죄 특히 밀수, 마약, 성매매, 강간, 납치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실업자들이나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우익적 준군사조직과 ‘보안업체’에 새로 채용될 가능성도 있다. 천년왕국 신봉자, 협잡꾼, 영성주의자들이 가장 탈정치화된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집안에만 갖혀있는 이들을 신비주의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다. 달리 말하면 경제 불황이라는 동일한 객관적 조건과 동일한 주체적 좌절이 사회적, 정치적 대응을 낳을 수도 있고 탈정치적인 반응을 낳을 수도 있다. 반자본주의적 의식의 출현은 사회주의자 조직이 일상적인 투쟁에 활발히 참여하고 긴밀히 연결되어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조건 2009년 1월 18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일방적 휴전을 선언하였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군사 공격은 중단하되, 병력은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고 언제라도 하마스의 로켓공격에 대해 공습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해 12월 27일 가자지구 초토화 작전이 개시된 이후 22일이 경과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유엔의 휴전 제의를 줄곧 무시해왔다. 이집트의 중재로 열리게 된 하마스와의 휴전협상 테이블에도 전혀 응하지 않았다. 반면 하마스는 이집트가 제안한 휴전협상 초안에 대해 조건부로 수용할 뜻을 밝혔고, 기존 입장을 수정하여 2008년에 맺은 휴전협정을 1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대해 이스라엘은 추호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휴전선언은 교전 상대방의 존재와 요구조건조차 깡그리 무시한 채로 이루어졌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며 독자적로 전황을 결정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일방적 전쟁, 일방적 휴전 이번 침공으로 인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있어 전쟁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보다 분명해 졌다. 지난 해 6월 이스라엘-하마스간의 휴전협정이 맺어진 후, 이스라엘은 11월 내내 가자지구로 공급되는 구호식량과 의약품, 연료를 완전히 차단하고 하나뿐인 발전소 가동조차 중단시켰다. 이에 가자 주민들이 저항하자 이스라엘은 일상적으로 군사적 충돌을 촉발시켰다. 본격적인 군사작전이 개시되기 전에도 가자지구 내외부에 크고 작은 교전이 전개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는 지난해 12월 16일, 휴전이 깨졌음을 선언하였다. 이스라엘은 12월 27일에 돌연 하마스의 선제포격을 명분으로 3단계 군사작전, 이른바 ‘철권’(Iron Fist) 공격을 개시하며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였다. 순전히 이스라엘에 의해 시작되고 끝이 난 이번 전쟁은 일차적으로 하마스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팔레스타인 분쟁을 대내외적으로 활용하려는 이스라엘의 정략의 일환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으로 국제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중동지역에서 미국-이스라엘 동맹을 보다 확고히 다져놓아 미국의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팔레스타인 문제에 두려고 했다. 국내적으로 2월 총선을 앞두고 현재의 집권세력이 승리하기 위해 강경노선의 표본을 보여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목표를 일부 달성했다. 1,2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고 4,000여 개의 민간거주건물을 파괴한 대가로 가자지구로 유입되는 무기밀매를 통제하겠다는 미국의 양해각서를 얻어내었다. 또한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 북부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현 집권세력이 국가 ‘안보’를 확보했다고 공언할 수 있게 되었다. 로켓포 사정거리보다 더 긴 지역을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해서 이스라엘 영토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정치적 구심인 하마스를 협상의 파트너로조차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분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방적 태도를 공공연히 표명하였다. 상식과 정도를 넘어서는 이스라엘의 폭력을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협소해진 입지를 고려할 때 이 분쟁의 현실적 해결이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품게 된다. 이스라엘의 정략적 목적이 관철될 수 있었던 이번 전쟁의 양상을 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끔찍한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시간이 갈수록 불가능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오니즘, 폭력의 진원지 식민지 정착민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국가전략은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영구적인 추방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같은 기괴한 국가전략이 건국 이후 60여 년 동안 아랍지역의 한복판, 그것도 무슬림 핵심 거주 지역에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는 아랍지역에서 관철된 미국과 유럽의 통치전략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유대교, 유대인만의 국가의 창설이라는 이념은 타자에 대한 거부를 본질로 하는데, 유대국가가 자신의 부당한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단지 타민족을 차별, 배제하는 것을 넘어 주변민족들 역시 이스라엘 자신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이스라엘 자신들처럼 배타적인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에 따라 서로 분열하고 대립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러한 이스라엘의 분열 전략은 종교적인 면에서 관용적이었던 아랍민족주의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될 수 있었다. 그런데 1967년 4차 중동전쟁에서의 아랍진영의 패배는 그 이후 이 지역 정치질서를 이스라엘의 전략에 종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각 지역마다 다른 형태로 발전해 온 이슬람 내 분파 간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재발명되어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로 진행된 지역 패권정책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획득한 이후, 경제적 차원을 포함한 온전한 의미의 ‘이스라엘 제국주의’의 실현이 이스라엘의 대아랍전략의 핵심으로 대두되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헤게모니 완성과 미국 주도의 평화협상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의 온전한 일원으로 인정되었다. 물론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당성 문제는 아랍지역의 반미정서와 맞물려 계속적으로 도전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랍정권은 정치적으로 양보하더라도 지역안정을 확보하는 길을 택하였다. ‘살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 2000년 2차 인티파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에 대한 항구적인 절멸전쟁을 실행해온 이스라엘의 강경노선은 국내외적으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확장, 강화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이스라엘이 처해있는 국가 내부적 위기 상황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생존전략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중동지역 대다수 나라가 경험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민족경제 건설에 실패하고 심각한 재정위기와 외채문제에 직면하면서 국제금융기구에 의해 강요된 개혁프로그램을 채택하게 된다. 지속되는 마이너스 성장, 외국자본의 유입 감소, 아랍시장의 상실, 관광산업 붕괴, 군대와 정착촌 비용으로 발생하는 재정적자로 이스라엘의 경제상황이 악화되었다. 이스라엘의 실업률은 11%를 넘고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50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반면 부패와 투기로 극소수의 인구는 부를 불려가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다양한 유대인 이민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에서 경제위기의 폐해는 소수집단, 즉 아랍지역 출신 유대인,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 동구권 이민자들에게 집중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만연해졌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국민적 정체성인 시오니즘이 다양하게 분열하고 각축을 벌이게 되면서 종교적 통합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약화되고, 현 집권세력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위기는 이스라엘의 모든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오직 이슬람을 배척하고 증오를 키워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할 현실적 필요를 느끼게 하였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유대인 정착촌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 속에 유대인들의 생활 근거지를 두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종교, 종족 갈등을 불러일으켜 양 민족 간의 공존이 불가능함을 인식시키려고 했다.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부정하게 하여, 팔레스타인인의 국가창설에 대한 정당성과 가능성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2000년대 이후 이스라엘은 ‘새로운 우파’가 주도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 새로운 우파의 특징은 아랍계의 배제이며 이 방식은 나치 독일에 비견할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스라엘이 탄생시킨 이 새로운 우파는 전통적인 보수 세력이 건설한 민주적 제도와 장치들을 과감하게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 사회 내부와 주변 국가들에 혼돈과 폭력적 상황을 가져왔다. 2002년 12월, 미국 주도로 채택된 “중동평화 이정표”는 팔레스타인 제도와 일상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파괴로 실행되지 못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정식으로 가자지구의 집권세력이 된 하마스에 대해 강력한 경제봉쇄를 취함으로써 바로 오늘과 같은 전면전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2차 인티파다 이후 점령한 지역으로부터의 철수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민족 간 공존의 전망과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소위 “보안장벽”(고립장벽) 건설을 가속화해왔다. 이미 전기 장벽이 1차 인티파다 기간 중 설치된 바가 있는데 이 장벽이 의미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이스라엘 지역을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단절시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모습은 유대인 정착촌에 포위된, 자력방어 능력이 없는, 자체의 경제기반이 없는 국가, 즉 유대인 자신들이 근대 유럽에서 경험했던 게토, 그보다 훨씬 비인간적인 조건의 거대한 수용소인 것이다. 해방운동이 겪는 난관들 이스라엘의 탄압과 절멸 전략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지고 있다. 1987년 본격적으로 전개된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 점령지 외부, 즉 인접 아랍 국가들에 근거지를 두고 전개되어 온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점령지 내부에서 대중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1990년대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고, ‘두 개의 국가’에 대한 상호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조 하에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2000년 2차 인티파다는 미국과 유엔의 비호 하에 팔레스타인을 기만하는 평화협상에 대한 환멸의 표시였고, 또한 평화협상의 산물로 등장한 자치정부체제의 부패와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었다.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은 이스라엘과 국제적 압력이 두려워 인티파다에 대한 강경태도를 취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라파트를 더 이상 자신들의 대변자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동반경이 제한되어 있음이 명백히 드러남에 따라 자치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스라엘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폭력 저항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파타나 하마스와 같은 정치세력의 지도와는 무관하게 확산되었다. 1994년 자치정부가 형성되면서 저항과 탄압의 양상은 급변하였는데 이스라엘의 지배에 반대하는 전사회적인 투쟁(공공기관과 기업가 타격, 불매운동)이라는 기존의 방식은 이스라엘이 자치지구에서 물러가고 팔레스타인 주민들만이 고립된 상황에서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더구나 이스라엘 군의 재진입으로 점령지 내부와 외부가 분리되면서 대중적인 투쟁은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양측의 대결은 군사적 양상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은 자치정부 차원에서의 폭력의 제도화와 독점의 상황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분쟁이 전쟁 양상으로 변화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해 치고 빠지는 일회적인 타격 대신에 인적, 물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타격하는 보다 장기적인 작전을 펼쳤다. 이는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을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본격적으로 실행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하였다. 대테러전쟁이 낳은 파괴적 결과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이라크에서 중동지역 전체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팔레스타인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우리에게 빈 라덴은 아라파트다”라며 대테러 전쟁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관시켜왔다.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대테러전쟁은 기존의 종교적 대립구도를 극대화시켜 다양한 정체성들의 차이를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아랍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미국의 대테러전쟁 확전은 다양한 종족, 종교적 분쟁들을 퇴행적인 극단적 분리주의로 환원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종교적 갈등” 문제로 제한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바로 이러한 대테러전쟁의 논리로 하마스를 ‘악마화’하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정당한 저항을 왜곡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연대를 가로막는 대테러전쟁에 대한 분명한 비판이 필요하다. 또한 종교, 종족적 특성과 세계화의 폭력의 복합적 양상이 오늘날의 전쟁을 규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이라 했을 때, 일국사회나 지역 차원의 본질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정치적 대안과 전망이 절실하다. 유일한 해법 국제적으로 고립된 팔레스타인의 열악한 조건이 대테러전쟁에 의해 한층 더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학살전쟁은 실질적 통제 없이 수행되었다. 팔레스타인이 겪고 있는 이 비극적인 현실은 오늘날 세계질서가 만들어낸 모순의 극단적인 발현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세계경제질서와 결합된 세계화의 폭력을 올곧게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반전평화 운동의 활성화다.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반전평화운동은 이번에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세계적으로 일어난 반전운동은 각 국가에서 시위를 벌이며 △ 이스라엘군이 현재 가자지구로부터 모든 병력을 철수하고 일체의 군사행동을 중단할 것, △ 가자지구 분리장벽을 즉각 철거하여 사람, 식량, 석유, 의약품의 이동을 가로막는 봉쇄를 해제할 것, △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 지역에 설치된 이스라엘 정착촌을 완전히 철거할 것, 그리고 △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의 집권세력인 하마스와 성실히 교섭할 것을 요구했다. 또 △ 미국의 중동패권전략과 대테러전쟁을 규탄하고, △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팔레스타인의 온전한 해방을 요구하는 대중적인 반전평화운동의 열기는 이 모든 사태해결의 가장 유용한 출발점이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재개 될지 모르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막아내고,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반전평화운동을 확장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아래로부터의 반전평화운동이 이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오늘날 대테러전쟁이 불러 온 극단적인 폭력의 악순환을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랍지역의 종족, 종교적 갈등문제에 대한 대안적이며 정치적인 해결책을 반전평화운동이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먼저 종족, 종교적 차이가 경제적 불평등과 세계화의 폭력과 결합되어 극대화된 증오와 보복의 논리들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분명히 갖는 것이며,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자율성의 보장과 공존을 지향하는 평화를 주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국사회는 이번 가자지구 학살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학살동맹의 폭력성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었다. 아랍지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폭력의 도미노 현상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진정으로 연대하기 위해 한국사회에서 사회운동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팔레스타인 민중운동과 연대하는 동시에, 대테러전쟁과 그 동맹을 비판하는 반전평화운동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차원에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