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민중운동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민주노총-진보정당의 ‘묻지마 야권연대’ 선거방침을 비판한다.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 과연 민주노총이 전면적으로 지지해야 하는가?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민주노총(서울본부와 산하 산별노조․연맹)은 지난 10월 3일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적극 참여한 데 이어 17일에는 박원순 후보 지지를 위해 <노동희망특별위원회>를 결성(상임위원장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했다. 현재 노동희망특위는 ‘10만 노동희망 지킴이, 30만 노동가족 조직화운동’과 ‘희망의 씨앗 5억 정치후원금 모금운동’, 투표참여 운동 등을 전개 중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비롯해 공공운수노조․연맹, 보건의료노조 등 각 산별노조․연맹에서 간부를 파견하고 선거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각 산별노조․연맹들은 박원순 후보 측과 <정책협약>을 체결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물론 진보신당을 탈당한 정치인들까지 박원순 후보 지원유세에 열심이다. 그러나 과연 박원순 후보는 민주노총이 전면적으로 지지할만한 노선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결코 아니다. 시민운동가로서 박원순 후보의 핵심적인 활동은 참여연대 활동(대표적으로 소액주주운동과 낙천낙선운동)과 이후 아름다운재단 활동(기업의 기부운동)이다. 우선 박원순 후보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참여연대는 금융(투기)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소액주주운동’을 진보적인 운동으로 포장해서 진행했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그 이름과는 달리 타이거펀드와 템플턴그룹(당시 국내 증시에 30억 달러 정도 투자했던 미국의 기관투자자)이라는 미국의 초국적자본과 전략적 제휴의 힘을 바탕으로 한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이었다. 소액주주운동은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주주행동주의와 선진적이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즉 한국경제를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으로 개조하는 운동이었다. 이는 설사 참여연대가 의도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기업의 경영 효율성 제고와 비용감축을 위한 노동자들에 대한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를 동시에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박원순 후보가 전념했던 ‘기업의 사회적 공헌, 기부’라는 것 또한 하청기업 수탈, 노동착취와 노조탄압, 환경파괴 등 한국사회에서 재벌기업들의 문제를 눈가림하고,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수탈, 투기를 통해 얻은 재산의 극히 일부를 기부하는 기업을 훌륭한 기업으로 포장하는 사회적 효과를 양산한다. 무노조 경영과 불공정 거래로 유명한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선두주자라는 사실이 ‘기업의 사회적 기부’의 기만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재벌기업의 협찬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과연 노동자 시민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운동’이라 불릴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박원순 후보가 포스코의 사외이사직을 맡은 것도 재벌기업과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비영리조직들의 상생관계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례이다. 따라서 박원순 후보가 그 동안 노동자 민중운동이 반대하고 맞서 싸웠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와 재벌․기업 친화적인 운동을 펼쳐온 것은 명확하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자기비판이 없다면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박원순 후보의 정책은 친노동자적 정책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박원순 후보는 10월 20일 TV토론회에서 한미FTA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상대 후보가 다그치자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고 발언했다. 박원순 선본의 대변인은 ‘한미FTA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미FTA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중소․영세 상인들의 삶과 한국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1% 초국적 자본만을 위한 재앙의 협정이다. 한미FTA가 통과된다면 설령 진보적인 인사가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미국기업의 투자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는 공공, 복지정책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 민중운동이 단식을 불사하며 결사반대하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원순 후보는 노동자들의 후보일 수 없다.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하는 이명박-한나라당에 비해 박원순 후보가 개혁적일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신자유주의적인 노선과 입장은 노동자 민중운동의 노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무원칙한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무덤이다! ‘이명박․한나라당에 반대하면 다 같은 편’이라는 무원칙한 반MB야권연대 논리는 지난 해 6.2 지방선거와 올해 4.27재보선에 이어 10.26재보선에서도 어김없이 민주노총-진보정당의 선거방침으로 채택되었다.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노무현 정권에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이나 한미 FTA반대 투쟁을 진압했던 한명숙을 서울시장 후보로 지지했다. 반면에 진보정당 후보로 나선 노회찬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사태도 발생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야권단일화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정작 노동자 민중을 대표한다고 하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고작 2.68%의 초라한 득표에 고쳤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각 산별노조․연맹이 국민참여경선 참여를 적극적으로 조직했음에도 17,891명의 국민참여경선 참여자 중 467명이 지지했을 뿐이다. 진보정당 당원들도, 민주노총 조합원도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강력한 노조탄압에 의해 현장의 투쟁력이 약화되고,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조건이 손쉽게 ‘야권연대’와 같은 상층 간의 정치협상에 매달릴 명분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국민경선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자신의 노선과 투쟁의 원칙, 독자성을 명확히 하지 않고 ‘무원칙한 야권연대’에 집착할수록 현장조합원들과 진보정당의 당원들조차 진보정당을 외면하고 지지하지 않는 현상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원칙한 야권연대’ 흐름이 강화되면서 민주노총의 일부 사업장들이 노조의 실리를 얻기 위해 민주당, 더 나아가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정치 후원이 공공연하게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조는 노조답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10.26 선거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대응에는 노조가 노조답게, 조합원을 조직하고 대중적 행동과 압박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민주노조의 원칙(계급성,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공공운수노조․연맹 등 민주노총 주요 조직들은 박원순 후보와의 정책협약이 발표되기도 전에 선본참여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는 협약 체결조차 하지 않았고 간담회를 통해 구두로 약속했을 뿐이다. 공공운수노조․연맹에서 체결한 정책협약의 내용에도 서울시 산하기관 해고노동자 복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서울시 산하기관 운영에 노동조합 참여 보장, 서울시 예산수립과정에 노동조합 참여 보장 등과 같은 절박한 요구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더구나 합의된 내용 역시 대부분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수많은 노조의 단체교섭 투쟁 과정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구체적인 합의사항조차 번복하는 것이 작금의 권력과 자본가들의 행태임에도 불구하고, 해고자 복직과 같은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명확한 합의도 없이 민주노총이 선본에 참여하는 것은 명확히 잘못된 결정이다. 박원순 후보가 만약 당선된다고 해도 노조 요구에 대한 수용여부는 결국 노동자의 힘에 달려 있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분명히 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선전하면서 조합원과 서울시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요구의 수용 여부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도록 설득하고 박원순 후보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노조로서 민주노총의 활동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선거과정에서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가 아니라 표를 모아 줄 테니 제발 우리 요구를 들어 달라는 식으로 노동자대중들에게 일단 믿고 찍어 보자며 무책임한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십 수 년 간 노동운동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을 해 온 ‘정신적인 민주당원’ 박원순 후보에 대해 전 조직적 지지선언을 하고 정치후원금을 모으고, 조합원들에게 이들의 지지자가 될 것을 강요해야 하는가? 민주노총이 ‘무원칙한 야권연대’ 선거방침으로 현장 조합원들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동원한다면, 세계적 경제위기의 시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 연대에 기초한 노동조합운동’의 투쟁기풍은 더욱 더 축소되고, 좀 더 영향력 있는 보수정당에 대한 로비와 상층 협상에 의존하는 경향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 대중이 아래로부터 스스로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여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러한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배질서를 변혁하여 생산의 주인,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할 때이다. 현장활동가들이 주체가 되어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을 다시 세우자!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자본주의 중심부의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럽의 재정위기의 심화로 세계경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수출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 또한 세계경제위기의 심화에 따라 심각한 위험과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긴축예산 등 노동자 민중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예고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 경제위기 국면에서 예고되는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맞서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세계를 향한 운동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운동에게 사활적인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엄혹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운동진영 일각에서 ‘민주연립정부’를 말하며 2012년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 등과 연합하여 국회 다수의석 확보와 정권교체를 위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조차 뒤흔들며,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있다. 우리는 민주당과의 연합을 통합 집권을 ‘진보적 정권교체’로 볼 수 없다. 설사 그렇게 정권이 교체되어 진보정당 출신이 장관 한 두 자리를 한다고 해도 득보다는 실이 크다. 향후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정세 속에서 집권세력은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집권세력 내부에서 권한은 거의 없고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반노동자적 정책집행의 책임은 함께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위기 하에 체제유지를 위해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민주노총-진보정당의 ‘무원칙한 선거방침’과 ‘민주연립정부’ 방침이 지속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적인 토대조차 붕괴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흐름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현장활동가들이 나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조직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현장으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을 다시 세우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투쟁과 괴리되는 정치, 운동과 괴리되는 선거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2011년 10. 24 【계급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위한 공공운수 현장조직․활동가 연대회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위한 철도노동자회, 발전 현장투쟁위원회, 사회보험 민주노조 재건 투쟁위원회, 사회보험 현장노동자회,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공공운수분회, 사회진보연대, KT 민주동지회,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화물 현장노동자회)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의의와 전망 미국 경제와 정치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채 규모가 GDP 대비 100%에 가까우며 실업률이 9.1%로 여전히 높다. 청년 실업률은 25%로 훨씬 높다. 가계 부채 규모도 GDP의 90%며, 수많은 미국인들이 주택 압류로 집을 잃었다. 8월 연방정부 부채 한도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동안 미국인들은 무능한 정치인들을 불신하게 되었고 생활수준 하락에 낙심하였다. 무엇보다 수조 달러의 세금으로 부도덕한 금융시스템을 부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민생고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사진1%]그 동안 일반 시민의 분노를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티파티였다. 티파티는 민주당, 세금, 사회복지나 소위 ‘큰 정부’의 문제를 꾸준히 규탄하면서 미국 정치지형을 우경화시켰다. 반면 그 동안 진보세력은 혼란을 겪으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진보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변화를 약속한 오바마 후보의 선거운동에 힘을 쏟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과의 합의에 치중하면서 진보적 의제를 방기하자 무기력에 빠졌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청년들의 대중 투쟁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금융자본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말이다. 9월 17일부터 ’월스트리트 점거’(사실 점거가 아니라 월스트리트 인근 주코티 공원에 위치한 농성이다)는 금용기관과 기업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 3주 동안 이 투쟁은 활력이 강화되면서 100개 이상 도시로 확산됐다. 월스트리트 점거가 너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커졌기 때문에 이제 언론이나 정치인, 기존 진보세력 그 누구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진보세력들은 지금까지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대응이 별로 없다가 드디어 누군가가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시작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거의 실제 모습과 이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누가 월스트리트 점거를 주도하고 있나? 많은 언론과 참가자에 따르면, 점거를 주도하는 세력은 없다. 지도부가 없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공식 지도부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점거가 시작되기 두 달 전부터 소규모 집단과 개별 활동가들이 이미 점거를 계획하고 준비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지금도 주코티 공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준비 과정은 7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캐나다에 본부를 둔 국제 활동가 네트워크이자 소비절제주의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단체인 ‘애드버스터’(Adbusters)가 평화로운 월스트리트 점거를 호소하는 광고를 자신이 발간하는 잡지에 실었다. 몇 주 후에 뉴욕에서 활동가들이 모여 세부계획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는 ‘예산 삭감 반대 뉴욕시민’이라는 단체 회원들도 참석하였다. 이 단체는 지난 6월 3주간 진행된 뉴욕시청 앞 긴축 반대 농성을 조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집트, 스페인, 그리스 등의 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참석했다. 월스트리트 점거 활동가의 말에 의하면 이들이 투쟁 형식과 전술에 대해 중요한 조언을 했다고 한다. 회의 결과, 점거 투쟁의 실무 팀들이 만들어졌다. 8월 말에는 해커 활동가 집단인 ‘익명인’(Anonymous)도 결합해 회원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미국 전역에서 조직된 1천 여명의 사람들이 9월 17일 첫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뉴욕으로 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직된 사람이었다. 첫 집회 이후 기존 핵심 활동가들 외에 다양한 세력들이 합류했다. 직접행동 경험이 많은 무정부주의 경향의 동호인 단체 회원, 학생운동 경험이 조금 있거나 아예 없는 학생들, 노동/환경/지역사회 운동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이었다. 실무 팀은 30개 이상으로 확대됐는데, 이들은 각각 식사, 청소, 기획, 집회 및 행동, 그리고 월스트리트 점거의 핵심 의사결정 체계인 오전, 오후 총회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정치적 지향은 무엇인가? 현재 월스트리트 점거를 주도하고 있는 비공식 지도자 중 많은 이들은 무정부주의를 지향한다. 애드버스터, 익명인 외에도 현재 주코티 공원에 천막을 친 동호인 단체들은 모두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중앙집권 형태의 운영체계, 공식 지도부, 구체적인 강령을 반대하는 이들은 주코티 공원 농성장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농성장은 개성과 자발적인 행동을 장려하며 수많은 개별 요구와 기질을 용인하는 축제의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예산 삭감 반대 뉴욕시민’은 무정부주의 조직은 아니지만 총회라는 개방적 운영체계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농성장에 있는 모든 참가자가 정기총회에 참여하여 누구라도 발언할 수 있고, 모든 내용은 합의제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점들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개방적 문화를 상징한다. 참가자 대부분도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다. 학자금 대출과 고용시장 축소로 고통 받고 있는 학생, 최근에 집이나 일자리를 잃어버린 부모 등,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일반 민중들이다. 개인주의를 표방하며 위계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사회변화에 대한 보편적 이론을 부정하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월스트리트 점거의 분권적 문화가 전통적인 활동가 조직보다 편하고 참여하기도 쉽다. 기업에 대한 분노, 문화운동 일반 미국인들은 생활수준 하락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며 금융기관과 기업을 탓한다. 투쟁의 축제 분위기와 더불어 광범위한 낙심과 분노 때문에 월스트리트 점거와 전국적으로 생긴 점거투쟁에 대한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 대오의 유일한 공식적 입장인 ‘월스트리트 점거 선언’은 이 분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인간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들이 현재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모였다. 기업들은 모기지 증서를 보유하지 않지만 우리의 집을 압류하고, 납세자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기업 경영진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주고, 사업장에 피부색, 성, 연령, 젠더정체성(gender identity), 성적 경향(sexual orientation) 등에 기반을 둔 차별을 영속시키고, 농업 독점을 통해서 농업 체계를 파괴하고, 감독 당국의 부주의로 식중독 발생을 방조하고, 동물학대로 이익을 보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노동권을 침해하고, 학비 융자로 학생을 인질로 잡아두고, 노동을 외주화시켜 보건의료와 임금을 삭감한다.” 선언문은 구체적 요구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개인 참가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손으로 쓴 피켓(농성장에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자재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비공식 월스트리트 점거 사이트(공식 사이트는 없다), 블로그, 트위터 등으로 표현한다. 진보적 언론과 지식인은 이러한 모습에 주목하면서 월스트리트 점거 투쟁이 좀 더 진지한 성격을 지니려면 요구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일 많이 나오는 요구는 일반인에 대한 채무 면제다. 금융거래세 도입과 기업의 로비 활동을 제한할 선거법 개정 요구도 자주 등장한다. 참가자 일부는 생활임금과 교섭권 보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 요구는 매우 드물다. 이는 월스트리트 점거 참가자들이 단결된 노동자계급의 입장이 아니라 박탈당한 개인의 입장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비공식 지도자는 구체적 강령이나 공식적 요구를 일부러 피한다. 한 활동가는 요구를 내거는 순간 월스트리트 점거의 핵심 목표에 어긋난다고 설명한다. “공식 요구를 내는 것은 권력을 장악한 개인과 기관에게 무엇을 조금 다르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기관 자체를 근본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점거는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미국 사회와 다른 형태의 공간을 창조하고 확대시킬 것 외에 사회변화를 위한 구체적 목표가 없다. 이 점에서 사회운동보다 문화운동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문화운동이라고 함은 주류 사회의 구체적인 변화를 목표하는 것보다 주류 사회에 상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상징적 문화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1960년대 히피운동과 유사한 흐름이다. 99%란? 월스트리트에서 자주 보이는 또 다른 문구는 ‘우리는 99%다’라는 것이다. 이 슬로건은 미국사회에 대한 참가자들의 공동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1%만 이익을 보며 99%는 부담을 진다는 것이다. 이는 얼마 전까지 중산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 잔고가 바닥나고 (금융기관이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듯이) 구제를 못 받은 사람에게 특히 의미 있는 문장이다. 99%는 월스트리트 점거가 모든 일반 미국인을 대변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주코티 공원에서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사회적 계층이 대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참가자는 무척 동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젊고, 백인이다. 월스트리트 점거가 미국 전역, 심지어 유럽에서도 참가를 이끌었지만 뉴욕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이민자와 유색인의 관심을 대대적으로 끌지는 못했다. 이것은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이 일이나 구직활동에 바빠 시간을 못 내거나 축제(또는 히피) 문화에 반감을 느껴서 그런 듯하다. 월스리트 점거는 분명 대항문화지만 백인 대항문화를 넘지 못한다. 또한 월스트리트 점거의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방식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다수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계급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점거 참가자들이 얼마 전부터 겪게 된 문제들은 대부분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이 훨씬 오래 전부터 경험했던 것들이고, 이들의 삶은 경제위기 하에서 백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부 유색인공동체 활동가는 99%라는 슬로건이 애초부터 미국 자본주의가 인종주의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작동해온 사실과 오늘날 이민자와 유색인이 더 심한 착취와 더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의의와 전망 월스트리트 점거와 이것이 촉발한 운동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는 경제위기 하에서 고통을 느끼는 일반인들이 티파티 외에 대안이 있다고 느끼게 한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든 온건적 진보세력(자유주의)에게 일종의 대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던 대안을 말이다. 또한 티파티가 공화당의 기반이 됐듯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내년 선거 시기에 민주당에 긴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오바마를 다시 당선시키는 것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강화되면 미국 정치문화가 좌선회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랬을 때 일자리 창출이나 일반인에 대한 구제조치가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다 중요하게는 월스트리트 점거가 노동자운동이나 유색인공동체 급진적 단체들로 하여금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도전하도록 하는 장기적인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고무시켰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인 미트 롬니는 주코티 공원 농성을 ‘계급전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 월스트리트 점거는 계급전쟁에 미달한다. 농성 중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정치 경제적 변화에 대한 생각이 없다. 그들의 불만은 부자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다. 금융자유화와 불평등을 극단화하는 자본주의 체계나 인종적, 성적 위계를 통해서 착취를 강화하는 체계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분권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며 자발적인 문화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투쟁형태라는 점도 분명하다. 아랍의 봄, 스페인과 그리스, 한국의 희망버스까지 비슷한 운동문화가 보인다. 월스트리트 점거는 미국의 문화답게 분권화 수준이 극단적이다. 이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 점거가 문화운동에서 정치운동으로 전환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미래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점거 운동의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이와 같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첫째, 월스트리트를 조직한 활동가들은 애초 정치활동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둘째, 강령이나 구체적인 투쟁 목표와 요구를 도입하는 순간 투쟁의 활력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거에 공식 요구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해온 수많은 조직들이 자신의 요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뉴욕과 전국 각지에서 노동조합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권을 사수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주택 압류에 저항하고 긴축정책에 반대하면서 많은 연대체들이 투쟁하고 있고, 공동체조직들은 이주자의 권리와 유색인 대상 경찰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러한 기존 조직들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기존 조직들이 수행해온 활동을 갑자기 포기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월스트리트 점거가 기존 조직들의 요구를 공식 요구로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연대를 표현하고 호소하며 월스트리트 점거의 에너지를 빌려 자신들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노력이 이미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 참가자가 처음으로 대량 연행된 9월 29일 집회는 조지아주에서 사형을 당한 트로이 데이비스(흑인)를 추모하고 인종주의를 영속시키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세력과 공동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10월 6일에 월스트리트 점거 세력과 반전 세력은 아프간전쟁 10주년을 규탄하기 위해서 워싱턴과 수많은 지역에서 힘을 합쳤다. 기존 진보조직과 노조들이 월스트리트 점거와 개방적으로 연대하는 방안을 찾아내고 역동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월스트리트 점거는 단순한 문화운동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당장 미국 사회운동의 급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침체에 빠져있던 미국 사회운동이 다시 활성화되는 하나의 계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펼쳐진 투쟁에서 용기를 얻어 이제 월스트리트 점거와 같은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0월 15일이 국제행동의 날로 지정되었고, 한국에서도 이날 예정되어 있던 ‘빈곤철폐의 날’과 한미FTA 반대 투쟁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무정형의 축제를 문화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넘어 개방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를 비판한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민주당 박영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이 9월 28일 최종 타결되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크고 하나된 힘으로 이명박-오세훈 체제를 심판한다’는 취지다. 이제 세 후보는 10월 1-2일 서울시민 1천명 여론조사 30%, 후보들 간의 TV 토론을 심사하는 2천명 배심원 평가 30%, 3일 국민참여경선 3만 선거인단 투표 40%를 합산하여 단일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또 10월 2일까지 2차 정책합의와 공동지방정부 수립을 위한 세부방안도 마련하게 된다. 이날 ‘야권단일후보 협약식’ 합의문에는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도 함께 서명했다. 특히 국민참여경선 승리를 위해 각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선거인단을 조직적으로 모집하게 되는데, ‘국민의 명령’이나 민주노총도 여기에 적극 참가한다는 방침을 수립한 상황이다. [%=사진1%] 이로써 한나라당을 제외한 제 정당 및 이와 관련된 시민사회·민중운동은 야권 단일후보를 공동으로 선출·지지하고,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진보신당 노회찬 전 서울시장 후보조차 얼마 전 ‘작년에 후보단일화가 필요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한 마디로 그 누구도 범야권 단일화를 부정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범야권 후보단일화 경과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사퇴한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총선·대선의 전초전으로 인식되었다. 오세훈 시장 사퇴에 연이어 곽노현 교육감 불법선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국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쳤다. 이 와중에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언론은 ‘안철수 신드롬’의 원인을 여야 간 이전투구에 대한 불신과 안철수라는 개인이 지닌 매력에서 찾았다. 그런데 얼마 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박원순 이사는 순식간에 여론의 과반 지지율을 확보했다. ‘양보의 미덕’이 더해지며, 박원순 이사는 현 정부·여당에 비판적이면서도 민주당·국참당과 같은 기성 정당에 독립적인 시민사회의 대표주자로 추대되었다. 박원순 이사가 반한나라당 후보로 확고한 입지를 점하자 민주당은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기 후보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내부 경선 끝에 박영선 후보를 선출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야권 단일화를 전제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무소속이라는 한계로 인해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박원순 후보도 야권 단일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당 내외곽에서 범야권 통합을 주창해온 ‘혁신과 통합’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반한나라당 주도권을 상실한 민주당으로서는 단일화를 통해 야권 통합과 총대선 승리의 추동력을 이어나가고, 정당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비민주당·시민사회 진영으로서는 당선을 통해 새로운 교두보를 구축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동안 국민참여당과의 정당통합과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적극 추진해온 민주노동당 역시 최규엽 후보 선출 이후 야권 단일화에 즉각 합의했다. 단일화 타결 직후 최규엽 후보 측은 ‘지난해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들이 정책연대와 범야권 단일후보에 적극 나서도록 견인해왔던 것처럼 경선과정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야권 단일화와 정당의 위기 이번 야권 단일화를 주도한 이들은 ‘후보 등록일 전에 단일화 방안에 합의함에 따라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고 감동을 주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내년 총대선에서도 선거연합을 통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과 같은 기존 정당이 대중의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정당에 대한 광범한 불신과 이반이 퍼진 상황에서,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정되는 것이 장차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야권연대의 기본틀로 정형화된 후보 단일화는 이념·노선·정강을 초월하여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고안된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때로 ‘감동의 정치’로 표현되기도 하는 후보 단일화 기법은 사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에 이뤄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국민적 지지와 정치적 흥행을 목적으로 도입된 개방형 예비경선 방식의 후보 선출제도는 특히 정당체계의 위기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사회 제도의 해체 속에서 정당의 위기도 심화한다. 정당의 위기는 정당 일체감의 감소, 당원 수의 감소, 전통적 지지층의 축소, 정당에 대한 신뢰 추락, 투표율의 하락으로 그 증후가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들은 미디어 캠페인과 인물 중심 선거 또는 단기 이슈 중심의 선거를 펼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당들은 당원 중심적 대중정당, 또는 이념 지향적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현안과 민심을 좇는 선거 중심적 정당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처럼 이념이나 당원을 근간으로 하는 정당 구조가 안착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명망가 중심의 정당이 복수로 존재하고 선거 시기에 명망가들 간 합의로 선거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현대 인민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다. 이들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성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다.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이사의 급부상은 이러한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재와 같은 정당의 위기 속에서 인민주의는 고유한 이념이나 정책 대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선호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박원순 이사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같은 정치선동가적 이미지보다는 NGO 출신 정책전문가 이미지가 더 강한 듯하다. 이처럼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형성되는 선거 카르텔은 결국 ‘전문가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보완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그에 참여하는 정당도 그러한 경향성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그에 편승하는 사회운동의 전략 역시 더욱 궁지에 처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공동정부 노선의 문제점 일반적인 정당의 위기에 조응하여 민주노동당도 최근 수년간 ‘집권 전략’으로 상징되는 탈이념화의 길을 걸어왔다. 민주노동당은 핵심 지지층의 결집과 동원보다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선 변화를 시도했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서는 당의 조직적 토대를 이루는 노동자·농민·빈민 대중운동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정당 역시 현실의 선거정치에 치중하면서 정치공학이나 여론조작에 유연하게 적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도입한 데에 이어 올해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강도 높게 추진하였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선거에서 독자 출마하여 완주 패배하기보다는 야권 단일화로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일정한 지분을 갖고 공동지방정부에 참여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비민주당 개혁세력이 당선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를 민주당의 주도권을 무력화하고 향후 선거연합의 협상력을 제고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 최규엽 후보 개인도 ‘질 높은 야권 단일화’를 언급하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동정부가 잘 될 경우 내년 대선에서 연립정부도 구성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상태다. 이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실현된 민주노동당의 후보 단일화와 공동정부 노선이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야권 단일화로 당선된 경상남도, 인천시, 강원도, 서울·경기 기초단체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수준의 공동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상남도에서 민주노동당은 강병기 후보가 김두관 후보와 단일화한 대가로 정무부지사를 맡고 있고 공동지방정부 성격으로 구성된 민주도정협의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유연한 선거·정책연합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여타 지역의 경우 아직 공동정부 구성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지역이 많고 구성된다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공약 실행이 좌지우지되어 선거용으로 그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정부 참여와 견제를 통해 실리를 획득했다는 식의 평가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후보 단일화와 이를 대가로 한 공동정부 지분 참여 보장을 실용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동지방정부는 연립정부의 예시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일 연립정부 구성이 현실화된다면 민주노동당과 그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야권 단일화를 주도하는 민주당·국참당이나 그 외곽에 포진한 ‘혁신과 통합’, 또는 이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시민단체 등 전 집권세력은 정권 탈환을 위해 민중운동을 포섭하려고 시도해왔다. 이들은 평상시 독자적인 정당 체계로 존재하던 세력들을 선거 시기에 정치협상을 통해 선거 카르텔을 형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안하는 ‘빅 텐트론’이나 ‘혁신과 통합’이 제안하는 ‘백지신당론’은 그 속에서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쥘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을 자신의 좌익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형식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선거 카르텔이 반복된다는 것은 범야권이라는 큰 우산을 공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의 후보 단일화 참여에 우려를 표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빈민·청년·학생 등 각급 대중조직이 개별적으로 야권 후보들과 정책협약을 맺을 경우 의제가 분산되고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하여 일단 최규엽 후보를 지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서울지역본부는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5만 이상의 조직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을 수립한 상황이다. 후보 단일화 정책 합의문 중 ‘서울시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안정적인 노정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며, 서울시 등에 노동복지센터를 설립하여 고용안정과 노동복지를 실현한다’는 조항이 그 근거다. 서울본부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여타 후보들에 대해 노동정책 협약을 관철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서울본부는 박원순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 속에, 그와 마찬가지로 무소속 후보가 도지사로 당선된 경상남도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인천시가 공동정부 구성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하고 유관기관 노동조합 해고자를 복직시킨 사례도 참고한 듯하다.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방침은 진보정당 간 통합이 무산되고 또 민주노동당 이외의 진보정당에서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야권 단일화 과정에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 주어진 경선 틀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노동당의 야권 단일화를 추인하는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이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수립된 민주노총 정치방침, 즉 ‘야권 단일화 후보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한다’는 정치방침이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방침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일순간 개혁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로 둔갑시킨다. 특히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박원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노총은 지방정부에 대한 개입과 의존도를 훨씬 높일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점점 더 당면한 실리적 쟁점에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잠시, 미국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보자. 미국노총(AFL-CIO)과 민주당의 제휴가 야기한 가장 심원한 효과는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한다는 것, 또는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정당 정치인에 대한 로비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합원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조합원의 일차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 스스로가 협소한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게 만든다. 민주당 의존적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조합의 성격 그 자체를 협소한 이해관계 집단으로 변모시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국민참여경선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민주노총의 결정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시와 유관기관 노동조합의 해고자 원직 복직 문제가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본 원칙을 후퇴시키면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수의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무관하게 각자의 개별적 이해에 따라 지지 정당 및 후보를 선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인 선거 대응으로 정치방침을 국한하는 것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령을 다잡으며 현장을 교육하고 조직하려는 장기적 안목을 갖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는 중장기적으로 정당 통합에 준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또 민주노총서울본부의 후보 단일화 경선 참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애초 취지를 대폭 후퇴시키는 선택이 될 것이다. 민중운동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초심과 원칙을 지키며 운동의 전진을 위한 방안을 다 같이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9월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 부쳐 민주노동당이 25일 임시당대회를 개최하여 국민참여당을 포함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안을 심의, 의결한다. 지난 9월 4일 진보신당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조직진로에 대한 최종 승인의 건’이 부결됨에 따라, 대신 5월 31일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에 동의한 국참당을 통합 대상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참당도 민주노동당 당대회가 열리는 25일부터 10월 1일까지 ‘민주노동당과의 신설합당’ 여부를 묻는 당원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와 국참당 당원총투표에서 각 안건들이 의결된다면 양당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11월 노동자대회 이전에 건설될 전망이다. [%=사진1%] 민주노동당의 국참당 끌어들이기 그동안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지난 7월 10일 국참당이 5.31 연석회의 최종합의문과 부속합의서에 동의한다는 결정을 내린 직후 민주노동당은 국참당을 진보대통합의 대상으로 공식 승인하였다. 이때 ‘국참당과의 통합은 진보신당과의 통합 문제가 일단락된 후 최종 결정한다’고 유보하였지만, 민주노동당은 ‘국참당의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참여 문제는 당원 및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한다’는 미명 하에 당내외에서 통합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펼쳤다. 일례로 7월 중순경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선 사업계획> 초초안을 발표했는데, 이 문건은 내년 총선 목표를 ‘원내교섭단체 실현’으로 설정하면서 “정당 지지율 10-15% 가량 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9월 안에 건설할 수 있다면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야권연대’를 강력하게 견인하여 ‘원내교섭단체 구성’ 및 ‘진보적 정권교체’의 강력한 거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즉, 올해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내년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노골적인 선거공학적 발상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는 7월 말 ‘진보대통합 관련 민주노동당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민주노동당 당원의 72%가 국참당과의 통합에 대해 찬성하고 2012년 총대선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 국참당, 진보신당 등이 통합하여 진보대통합 정당이 생길 경우 민주당을 앞지를 수 있다’는 여론기관 설문조사 결과를 통합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금속노조 조합원 여론조사 보고서>에서 ‘국참당 등과의 통합에 대해 57.2%가 찬성한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의도가 순탄하게 관철된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민주노총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는 6월 13일과 8월 17일에 각각 “진보정당의 통합을 앞둔 엄중한 시기에 국참당과 관련된 논란은 부적절한 것임을 확인한다”, “국참당과 관련된 논의는 진보양당의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참가단체 중 하나인 진보교수연구자모임도 국참당 합류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8월 하순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당 협상이 국참당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빈민 3단체도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무엇보다 지난 8월 28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국참당을 포함하여 통합 진보정당 건설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수임기관에 위임’하자는 집행부 원안이 부결되고 대신 ‘진보신당과 합의하였을 시’라는 단서 조항을 둔 수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당내에서도 당권파의 전횡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자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재빨리 국참당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6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수임기관전체회의에서는 진보신당(통합파)과 국민참여당 중 누가 우선적인 통합 고려 대상인가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에 격론이 일었다. 하지만 결국 두 안이 애매하게 절충, ‘9월 중 당대회를 개최하여 국참당이 통합 대상인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결정됐다. 다만 당대회 개최 강행에 대한 반론을 의식하여, 이정희 대표, 장원섭 사무총장,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 안동섭 경기도당위원장, 정성희 최고위원의 대표 발의와 대의원 3분의 1 이상(55.64%)의 동의로 당대회 개최를 공지한 상태다. 이에 따라 9월 25일 개최되는 민주노동당 임시대의원대회는 재석 대의원 2/3 이상의 동의로 본안을 의결하게 된다. 국참당 통합의 진정한 쟁점은 수권정당론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수권정당화를 위해서 국참당과 같은 개혁세력이 진보적으로 노선 전환한 경우 진보세력의 일부로 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얼마 전까지 차기 대선 범야권 후보 중 수위를 달리던 유시민 대표 개인의 명망성을 흡수하는 동시에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총선에서 민주당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규모를 만들어 최대한 의석을 확보한 뒤, 대선에서 득표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 민주당과 제휴, 연립정부를 수립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권파는 유시민 대표 외에는 당조직이 취약한 국참당을 민주노동당이 지닌 조직력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권파는 진보신당과의 양당 통합 형식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국참당 그리고 진보신당 일부가 참여하는 통합정당 건설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비당권파는 어떤 입장인가? 비당권파라고 할 때, 이들은 국참당에 비해 진보신당을 우선적 통합 대상으로 고려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국참당과의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단일한 세력으로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이번 진보신당 당대회 이후 진보신당과의 선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단적으로 그동안 국참당과의 통합에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울산지역 대의원들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주요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김성진 최고위원(전 인천시당위원장)도 ‘진보신당과 국참당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번 당대회를 비판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서 국참당 문제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 세력은 당내 좌파를 제외하면 권영길, 강기갑 의원 등이다. 이들은 국참당이 연대의 대상일지언정 조직통합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당내 여론 분포나 권력 지형을 감안할 때 이번 당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 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국참당과의 통합이나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방침은 특정 정파의 아집이라기보다는 최근 수년간 민주노동당이 추구해온 수권정당 노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주류화와 우경화 2009년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2017년 집권을 위하여 - 집권전략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2008년 분당 이후 당권을 장악한 범 민족해방(NL) 계열의 문제의식을 집약하는 이 문건은, 한편으로 NL 계열이 구래의 ‘자주적 민주정부론’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켜 ‘집권’으로 상징되는 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분당 이전부터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2012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수권정당’으로 설정했다. 2007년 대선 패배가 분당으로 귀결된 것도 실은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파괴적으로 드러난 결과, 다시 말해 수권정당 노선에 내재한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동당의 주류화 전략은 양당 구도에서 질식될 수밖에 없는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참당이나 민주당 등과의 계급연합을 적극 추진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한층 우경화된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은 반신자유주의 세력-반제민족주의 세력-민주평화통일 세력의 진보대연합으로 ‘진보적 발전노선’과 ‘사회복지대혁명’을 통해 ‘민중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10년 초 발표된 <민주노동당 창당 10년 평가와 과제>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여기에서 민주노동당의 당면 과제는 △신자유주의 반대, 민족자주, 6·15정신에 입각한 평화통일 실현을 목표로 하는 통일전선에 봉사하면서 △민중운동·녹색운동·시민운동을 아우르는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고 △적극적 선거연합을 성사시키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노선 전환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강령 개정에서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약진할 수 있었던 배경을 민주당과의 ‘반MB 선거연합’에서 찾았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면서 진보신당과는 선거연합을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진보신당과의 선거연합은 진보대통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전략적으로 무의미하고, 또한 당선가능성이 없다면 전술적으로도 무의미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로부터 민주노동당은 ‘제3당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대안권력으로 성장하려면 진보양당을 포함하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까지 포괄하는 진보대통합당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도출한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단순한 선거연합을 넘어 공동정부 구상을 현실화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어서 2011년에는 강령을 전면 개정하여 당의 이념적 지향을 기존의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하였다. 이것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포석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국참당과 야권통합론의 노림수 그렇다면 반대로, 국참당이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라는 정강정책 전문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국참당은 이념·노선적으로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이다. 국참당은 민주당을 지역독점 및 권위주의 정치행태에 찌든 ‘폐쇄적 엘리트정당’로 규정하고 진성당원제와 전국정당화, 지역주의 극복을 표방한다. 그런데 국참당 정강정책은 ‘사회통합을 위해 정당 및 정치세력 간 연합을 옹호하고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을 위해 정치연합을 선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유시민 대표가 지난 3월 당대표로 선출된 자리에서 “다른 정당과 어울리고 뒤섞이는 일에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이를 ‘통합의 정치’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화두라고 일컫는다. 국참당이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독자적인 이념·노선과 조직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야권 통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참당 당 조직세가 취약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친노의 적통’을 자처하며 창당한 국참당은 사실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규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유시민 대표를 제외하고 대중적 명망성을 갖춘 인사들도 없을 뿐더러 국회의원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민주당을 상대로 하는 야권 단일화에 승부수를 던졌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의 취약한 조직세를 보충하기 위해 ‘진보적 민주주의’로 이념적 지향을 대폭 우경화한 민주노동당과 통합함으로써 범야권 내에서 민주당의 대항마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했다. 이는 수권정당화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이해에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국참당은 경남 김해에서 자신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당선될 경우 원내에 최초로 진출함과 동시에 ‘친노 영남벨트’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들이 민주당과의 정치협상에서 막판까지 ‘100%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를 주장, 관철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참당이 ‘당원중심의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선거전문가 정당’ 또는 ‘명망가 정당’에 가까우며,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통합의 정치’가 실제로는 야권의 합종연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최근 문재인 이사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두관 경남지사,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등 전 집권세력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혁신과 통합’이 민주당 내외곽에서 야권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외곽(‘제3지대’)에서 백지신당을 만든 뒤 여기에 기존 정당 및 정당권 안팎의 정치인이 합류하여 신설합당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정파의 정체성 보장제도(정파등록제)를 통해 진보정당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에 대한 광범위한 민심이반을 흡수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도 야권통합을 통해 정권교체의 새로운 동력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중운동에게 파괴적 효과를 불러올 것 이렇듯 현재 민주당·국참당 및 그 외곽에 산재한 전 집권세력은 다가올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반한나라당 야권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민중운동의 일부를 적극 포섭하려 하고 있다. 이념·노선·정파를 초월하여 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면 민생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행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보수-중도개혁-진보 3정립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주체적 환상에 불과하다. 이는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현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에게 지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선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이 최소한 견지하고 있던 운동정당으로서의 성격을 급격히 약화시킬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참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수권정당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여 일상 활동의 무게중심을 선거와 원내 정치로 대거 이동할 것이다. 특히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 및 연립정부 노선을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로(自勞, lib-lab)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의 다수를 점하는 한 정파는 숫제 ‘집권을 위한 노동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민주노총 중앙위에서 통과된 사업계획은 2012년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를 명시하였고 이는 다가올 노동자대회에서 공식 제안될 예정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민주노동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민주노동당과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정을 감안할 때, 국참당과의 통합은 단순한 득표율 및 원내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실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국참당과의 통합은 민주노동당 자신은 물론 민주노동당으로 표상되는 민중운동 주류의 대대적인 노선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는 또한 자유주의 세력과 이념적·조직적으로 분별 정립하려던 진보정당 및 정치세력화 운동이 쇠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진보정당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악순환은 사실 1990년대 이후 일체의 진보정당 운동이 처했던 공통적 경향이었다. 정당의 대중적 토대의 취약성은 당의 우경화를 낳지만, 그러한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의 패배는 자명한 사실이 된다. 선거 패배는 당 역량의 한계로 환원되어 정당 통합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대중운동의 진출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안은 결코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그 결과 ‘진보정당’은 조직적 혹은 개인적으로 기존 정당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침 속에서 정작 정당의 대중적 기초를 형성하려는 공세적 계획은 체계적으로 누락되곤 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참여당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존재하던 여타 진보정당과 다른 점은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 대중조직의 조직적 결의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은 대중조직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대중운동의 우경화를 동반할 우려가 크다. 전농은 국참당 유시민 대표의 ‘한미 FTA 사과’ 발언 당시 그 해석을 둘러싸고 이미 한 차례 논란을 겪은 바 있다. 8월까지 산별대표자회의 결정을 통해 진보정당 간 통합에 좀 더 무게를 실었던 민주노총도 애매한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9월 8일 열린 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5·31 최종합의문>과 <8·27 새통추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문>이 여전히 유효하며 진보대통합운동은 중단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 대표자가 민주노동당이 국참당 문제를 9월 당대회에 상정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것은 진보신당 당대회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참당 논란 유감’ 입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당초 19일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정치방침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회의를 당대회 불과 이틀 전인 23일로 연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집행부가 배타적 지지 관계를 맺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대회에 앞서 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것도 원안과 배치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 주류 세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역행하는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나 노동법 개정 등 핵심 이슈에서 민주당보다도 더 완강하게 참여정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국참당을 정당 통합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민주노총 중집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입장을 일정 부분 후퇴시키거나 분명한 결정을 유보하고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이 통과될 경우,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가 되어 민주노총에 돌아올 것이다. 산별대표자회의와 같은 공식 체계는 물론 수많은 활동가들이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중집이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향후에 민주노총은 대단히 심각한 내홍을 겪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계급연합을 상징하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민주노총이 수수방관한다면 이는 자신의 정치적·조직적 기초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민주노총 중집은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 통합을 결정한다면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분명한 의사 표명은 향후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방어하고 조직 내 분란을 방지하는 중요한 조치가 될 것이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진보정당 운동에 비판적인 민주노총 활동가들에게도 호소한다. 민주노동당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더라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하자.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국참당과의 통합 이후에는 정치세력화 본연의 문제의식조차 대거 유실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계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노총이 자유주의 정당과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급진성을 상실하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만에 하나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변경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
8월 24일 진행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하고 무효 처리되었다. 대선 불출마 선언, 1인 시위에 이어 시장직 연계라는 벼랑 끝 전술까지 동원한 오세훈 시장의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25.7%에 머물렀다. 곽노현 교육감은 이번 투표무산을 두고 “서울시민이 보편적 복지에 동의했다”고 평가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복지사회로 가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향후 보편적 복지 프레임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예고했다. 반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불안감을 감추며 “사실상 오세훈의 승리”라는 아전인수격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주민투표가 각종 무상복지 논란의 결절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만큼, 향후 정세에 미칠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26일 오세훈 시장이 “즉각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두 달도 채 남지않은 10ㆍ26 재보선이 내년 총대선 승리를 위한 지배 양당 간 치열한 전장으로 떠올랐다. 오세훈이 명운을 걸게 된 이유 무상급식은 6·2 지방선거 때부터 민주당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 온 보편적 복지 프레임의 대표 정책이었고, 야권연대의 정책적 매개이기도 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왔지만, 복지 이외의 의제를 부각시키는 데 실패함에 따라 끊임없이 동요해왔다. 100% 무상보육을 주장한 황우여 원내대표를 비롯 여러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의 복지 공약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 유력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미 무상급식을 수용하고 ‘맞춤형 무한복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제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오세훈은 이명박 정권의 입장이자 한나라당의 당론인 선별적 복지를 원칙적으로 고수해왔다. 오세훈은 이번 주민투표가 “과잉 복지냐 합리적 복지냐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납세부담은 적고 소득재분배 효과는 큰 합리적 대안을 찾자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의 무상급식 조례 거부는 보수세력 내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폭우 피해, 미국 신용평가등급 하락 등으로 인해 주민투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또한 주민투표가 오세훈의 차별화 전략인 한, 한나라당 내 계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힘들었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제기되어왔다. 차별화 전략을 통해 대권 주자를 꿈꾸던 오세훈은 정치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명운을 걸고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오세훈-이명박의 부자감세와 복지공격 오세훈은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한편 선별적 복지를 통해 약자를 지원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대변했다. 즉,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복지를 쟁점으로 제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무상급식 정책을 ‘망국적’이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2010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33.5%로 양호한 편이지만, 향후 △잠재성장률 저하 △저출산ㆍ고령화 △무역ㆍ투자 자유화에 따른 법인세, 관세와 같은 세입감소 등 재정위기 위험요인이 존재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복지지출의 증대 역시 위험요인으로 분류되며, 무상급식이 각종 무상복지 시리즈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을 가지는 정책으로 인식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재정 건전성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나라들에 IMF가 강요하는 정책 패키지 중 하나가 항상 재정 건전성이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금융자산 보호를 위한 물가안정에는 통화량 규제와 재정 건전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및 유럽 재정위기와 맞물려, 재정 건전성은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이명박 역시 최근 8ㆍ15 경축사에서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재정 건전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각종 세금혜택을 줄일 수 없으므로 복지지출의 추가 발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감세 혜택은 늘어나지만,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의 처분권은 고스란히 자본이 가진다. 부자감세와 재정긴축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는 지배세력의 반동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명박 정부의 선별적 복지는 복지 혜택의 대상을 끊임없이 선별해 보장범위를 좁히는 동시에 복지를 노동과 연계시킨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기초생활 수급자를 엄격하게 선별하는 기초법은 선별적 복지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노동연계복지는 직업훈련, 구직과 같은 노동시장 참여 의무를 복지수급 조건과 연계시킴으로써 산업예비군을 광범위하게 조성하여 기업이 저임금ㆍ비정규직 노동자를 활용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세훈 주민투표 무산이 미칠 효과 주민투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내년 총대선을 앞둔 전초전이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민생파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무상 복지’로 흡수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6·2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주민투표 무산은 민주당이 자신의 복지 전략이 가진 유효성을 재확인하고, 총대선까지 3+1복지정책 시리즈(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를 더욱 강도높게 추진하는 근거로 작동할 것이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오세훈식 정치쇼를 통해 민주당의 ‘무상 복지’에 맞불을 놓았으나, 투표함 개봉에 실패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오세훈의 ‘벼랑 끝 전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야권의 ‘무상 복지’ 공세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오세훈식 정치쇼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투표무산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승리’라며 오세훈을 감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투표 무산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부자감세-복지축소’에 대한 일부 교정의 필요성과 ‘무상 복지’ 정책 패키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인하는 의미로 해석됨에 따라, 오세훈 패배 효과로부터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민주당과의 복지정책 경쟁을 본격화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한편, 민중운동 주류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연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에 흡수되어왔다. 민중운동 주류가 이번 주민투표 무산을 보편적 복지 프레임의 승리이자, 야권 연대의 승리로 사고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주민투표 무산이 “야권이 한 명의 후보를 내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투표 무산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공세에 반대하는 민중운동의 목소리가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으로 모조리 흡수되는 효과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전략으로서 민주당식 보편적 복지 하지만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은 선거용 정책으로 설계되었을 뿐, 진정성과 현실성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 단적으로, 수출경쟁력 확보와 투자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한 반성없이 법인세ㆍ소득세 인상과 같은 부자증세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또한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을 기정사실화한 채 부족한 생계비 일부를 보전해주겠다는 맥락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위기를 관리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향후 국회 비준 과정에서 지배 양당 간 중대 쟁점으로 떠오를 한미FTA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부문별 피해에 대한 예방이나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한미FTA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함으로써 자본의 소유권을 전반적으로 강화한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기정사실화한 채 피해부문의 소득감소 일부를 예방하거나 보상해주겠다는 맥락에서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과 관련된 유보조항 문제에 주목한다. 이들은 승자독식에 대한 일부 교정을 주장하지만 자본에 대한 통제방안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고통을 모두 이명박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고, 민주당이 총대선에서 승리해 복지를 확대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은 결코 한나라당의 선별적 복지론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중운동이 지배양당 간 허구적 프레임대결을 넘어서야 이런 조건에서 민중운동이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10ㆍ26 재보선, 내년 총대선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식 복지 프레임을 수용하고 상층 야권연합에 몰두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침식당할 위험이 있다. 민중운동은 진정한 의미의 복지를 실현하고 임금과 고용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히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민생파탄 속에서 민중운동이 정세주도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앞으로 반복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놀음에 대처하는 올바른 길이다.
때 아닌 사회주의 논쟁과 정세적 역설 사회주의가 논란이다. 진보통합 논쟁 과정에서 녹색사회주의와 반자본주의가 복지국가 사민주의 등과 각축을 벌이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추진 중인 계급현장 좌파 진영은 최근 사회주의 강령논쟁으로 조직 분열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논란이 좌파 운동 진영의 활성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작 민중운동의 다수파격인 민주노동당은 올해 정책당대회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이상 계승” 관련 당 강령을 폐기했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이념 노선으로 채택했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운동의 위기를 빌미로 신자유주의 구집권 세력들과의 선거연합과 공동 집권이라는 정치적 망상에 빠졌고, 좌파 진영은 다양한 사회주의들로 분화하는 양상이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 전략이 관심을 얻게 되었고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위기는 심화되었지만, 위기의 효과는 운동의 전반적 우경화와 좌파의 분열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빠졌지만 새로운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정책과 정치세력들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 생존적인 위기에 빠진 계급 대중운동은 위기 심화의 효과로 분할되고 반복된 패배를 경험하며 쇠퇴 일로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대중운동의 쇠퇴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한 운동 전망은 포기되고, 이른바 “운동의 위기를 정치로 돌파하자!”는 식의 선거정치 전략이 힘을 얻게 되었다. 객관적인 계급투쟁의 조건은 악화되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환상이 정치계급화한 민중운동의 상층을 사로잡았다. 노동자민중진영의 운동역량은 아래로부터 급속히 무너져서 지리멸렬한 상태에 처했지만, 2012년을 앞둔 정치적 기획들은 진보적 집권이라는 장미빛 꿈에 부풀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적 역설은 현재와 같은 자본의 구조적 위기의 시기에 왜 사민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은 개량주의적 정치 전략들이 활개를 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사민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론에 대한 당위적인 비판을 넘어서, 실천적 극복을 위한 대안전략 모색을 위한 출발점 역시 이러한 정세적 역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덧붙여 다음의 기본 관점을 확인하며 논의를 시작해보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과 조직이 해체된 현 시대의 과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과 이념을 재건하는 것이지, 이전 시기에 존재했던 사회주의·공산주의 교리를 방어하는데 머무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또 현 시기에 개량주의를 비판하는 목적이 임박한 혁명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운동 재건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사민주의, 개량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가? 나아가 오늘날의 사민주의,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연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현재와 같은 수세기에는 혹시 그들과의 연합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신자유주의 시대 사민주의, 개량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취했던 사민주의, 개량주의 비판의 운동적 함의는 중간파에 대한 타격과 견인을 통해 지배계급을 고립시키고 압도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계급동맹전략에 있었다. 여기서 논쟁점은 누가 타격 견인해야 할 중간파이고, 해당 시기에는 비판 타격이 우선인가 견인이 우선인가였다. 그에 비교해 볼 때 2010년대를 맞이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 개량주의 비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가장 크게 바뀐 조건은 이전까지 타격, 견인해야 할 대상이었던 자유주의 좌파와 사민주의가 이전 어느 시기보다 불안정하고 동요하면서도, 단순한 중간파가 아니라 주도적인 지배분파가 되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본성상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및 사민주의)의 수렴체이고, 이는 기존의 중도좌파격인 구 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사회 자유주의로) 보수화되고 타락한 결과이다. 정치 공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좌우대립전선에서 상대적으로 중도파적인 위치를 점하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의 일반적이고 계급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은 불안정과 불확실성이다. (전위정당이 해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주체와 이념의 형성 없이 기존의 정치전선 지도 위에 지정학적으로 그려지던 일면적인 좌우 세력구분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은 관념적인 정세인식과 엉뚱한 대응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당이 때때로 한나라당보다 왼쪽에 위치하고, 한나라당의 우익적 공세가 거센 국면에서는 (이전의 방식대로 사고한다면) 민주당과의 연합이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그들의 과거행적으로 인한 상식적인 거부감은 차치하더라도, 극도로 불안정한 남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과 불확실한 정세적 특성상, 그들 신자유주의 구 집권세력들에게 신뢰할만한 정책 이념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러한 전환이 유지되리란 생각은 한낱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민주의 비판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강조점을 가진다. 구조적인 장기 불황이라는 경제적 조건은 장기 구조적인 계급타협의 토대를 허물어버린다. 그러나 강력한 우익적 공세와 노동자 대중의 악화된 생존권적 어려움 속에서 이전 시기에 무너진 계급 타협적 모델에 대한 환상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타협적 시도는 실질적인 타협의 성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으면서, 때때로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위계화와 배제에 기반한 허구적인 형태의 사회적 합의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혁명적 전위당의 이념과 지도를 벗어난) 반혁명적 전망, 개량주의적 노선이라는 규정으로 오늘날의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확한 비판은 아니다. 단순한 혁명 대 개량의 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와 계급타협 모델은 근본적인 혁신을 지체시키고 위기를 봉합하여 심화시키는 시대착오적이고 부적합한 운동양식이라는 점에서 실천적으로 극복되어야한다. 또한 사민주의는 일국 수준의 국민경제적 성장모델을 그 경제적 토대로 성립된 체제라는 점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계급타협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일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거대 법인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하고, 여기에는 노동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국적인 법제도적 보호 장치는 물론이려니와, 각종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거대법인기업이 민간차원에서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연구기술 관련 지원들이 추가된다. 그 과정에서 생산은 사회화하는데 반해 소유는 사적인 형태로 묶여있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 성장을 위한 비용은 사회화하지만 이윤은 사적으로 영유되는 모순으로 심화한다. 이것은 국가의 재정지출을 늘리고, 그것은 인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의 형태로 다시금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자본이 급격하게 초민족화 되고 국민경제(민족경제)적인 성장모델은 금융세계화로 수렴, 재편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일국적인 보호 장치 속에서 유지되어온 사민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는 경제적인 토대를 잃고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때 국가는 기존의 타협에 기초한 복지 지출의 일부를 삭감하고 재정균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재정은 더욱 악화되는데, 경제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해서는 파산한 기업과 금융기관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파괴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기 비용-손실이 사회화하고, 초민족화된 금융자본의 이윤은 사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민주의 체제의 내적인 모순이다. 사민주의가 가지는 두 번째 모순이자 취약점이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운동은 계급적 통합력을 높이기보다는 계급 내부 분배에 치우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계급 내 분할과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고유한 문제점을 가진다. 사민주의적 복지정책은 항상 복지의 수혜자와 부담자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는 계급 내부 분할과 갈등에 매우 취약하다. 정규직-비정규직, 실업자-취업 노동자, 노동빈민-상위계층 노동자 사이에서 수혜계층과 부담계층이 분리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가 생산을 변혁하기보다는 국민경제적 분배를 개선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민주의 복지 정책은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적거나, 그러한 체제의 강화를 동반하는 타협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지배체제가 구조적인 경제위기에 빠질 때마다 사민주의는 동시적인 위기에 빠지면서,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분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민주의에 고유한 계급타협은 지배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약속된 타협의 성과물을 분배해주지 못하게 되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노동자 계급내부의 분할을 확대하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그 때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은 그저 계급 내 분할을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본가 내부의 갈등에 손쉽게 동원되어, 노동-자본-국가가 연합하여 다른 노동계급 집단을 공격하는데 이르기도 한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1950년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수출중심의 금속산업 자본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건설노동자들과 수출기업 소속의 저임금 금속노동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 국면은 나중에는 수출기업 자본가 그룹과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자본 연합을 맺고, 전투적인 건설-고임금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요구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부문 남성 노동자들이 민간부분 사용자협회(SAF) 및 사민당정권과 연합하여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발단은 생산성이 낮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금속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웨덴 총연맹인 LO의 금속노조(Metall)가 민간부문 사용자협회(SAF)-사민당 정권과 손을 잡고 공공부문 노조를 민간부문에 기생하는 집단으로 공격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취약성은 사민주의적인 정치가 사회운동을 기술 관료적으로 접근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향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선거득표를 위한 공약이나 상층 국가 관료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정책론을 사회운동으로 착각하는 태도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운동 풍조는 대중을 대상화하고, 운동주체 스스로 운동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회운동은 사람들이 일상적 의식을 스스로 비판·극복하고 스스로를 자율적인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변형시키는 활동이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분배 몫을 산술적으로 최대화한다고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전략이나 권력 장악으로 변혁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변혁은 노동자들의 자기통치와 통제력을 증대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사회운동과 정치를 사회를 어떻게 통치하고, 대중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는 관점은 '사회운동'과 '정치적인 것'을 '정책'으로, 또 다시 심지어는 '경찰의 통제'로 변질시킨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계승한다”는 강령을 삭제하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이념으로 채택했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전인 2002년경에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논란을 벌인바 있다. 당시에 사회주의 강령 삭제를 추진했던 세력들이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막상 진보적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이념인지는 강령 개정안만으로는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정책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에서 발간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책자 정도가 주요한 참고자료다. 새세상연구소는 이 책자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대안이념 전략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그런데 새세상연구소는 설명도 없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좌편향이고, 자유주의는 우편향이라는 식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론의 이념적 정당성을 강변한다. 그런 뒤에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라는 이름으로 정치, 경제, 복지, 평화통일과 사회적 평등과 관련된 강령적 정책들을 나열한다. 아무리 이 책자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도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뚜렷한 내용이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해마다 열리는 민중대회 때 작성되는 민중요구안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재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 한 가지 특징적으로 언급된 내용이 있다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모델을 진보적 민주주의의 주요 사례로 꼽는 대목이다. 하지만 차베스의 개혁모델을 뭐라고 규정하건 그 핵심은 막대한 석유자원과 차베스 자신의 카리스마적 정치지도력을 기본토대로 삼아,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급진적인 분배, 지원정책을 펼치는 데 있다. 이런 개혁모델을 한국 자본주의의 강령적 대안으로 삼기에는 많은 곤란점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차베스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그만두더라도, 차베스 스스로가 내세운 베네주엘라 개혁의 모토는 '21세기 사회주의'다. 그리고 차베스의 개혁이 나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다고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의 국유화나 독점자본에 대한 통제를 도입한 급진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새세상연구소는 오히려 거꾸로 차베스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나 경제 질서의 기본을 부정하지 않는 민주적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진보적 민주의론은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적 소유구조, 경제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진보 민주정권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유일한 내용이다. 사회주의 강령 구절을 삭제하고, 자유주의 개혁분파들과의 선거연합과 공동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념인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민주의적 후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사민주의라고 평가하기에도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크게 미달하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그 명칭 그대로 진보적인 민주주의다. 애매하게 개량적인 민주주의 정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특히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한국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종속된 후진적 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그럼으로써 당면한 반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성격을 종속성과 후진성의 극복을 위한 민주주의적 과제로 규정한다. 즉 반신자유주의를 민족자주의 과제, 반봉건 (자본주의적)선진화의 과제로 뒤바꿔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반신자유주의는 당면한 과제이고, 반자본주의적 과제는 먼 훗날의 과제로 서로 구분된다. 당면한 민족자주와 민주 개혁적 과제를 추월해서 반자본주의적 과제를 앞세우는 것을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신자유주의는 종속성과 후진성을 의미하는 무엇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1, 2, 3세계의 정책적 차별성이 사라지는 세계적인 보편적 수렴점으로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적 단위를 넘어서, 그 틀을 해체시키는 금융·군사세계화로의 세계적인 통합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인 포섭과 배제는 국민국가, 국민경제 단위의 종속과 등급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 내부를 분할하면서 세계적인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세계1류 삼성과 노동시장에서조차 배제된 반실업 비정규직 노동빈곤층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특징지어 지는 것이지, 그 둘이 대립되는 선후관계가 아니고, 하물며 신자유주의를 종속성과 후진성으로 협소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반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주장되던 반제반봉건적 민족자주의 과제를 다시 반복하는데 불과하다. 당시 논쟁과정에서 반제반자본주의(반봉건) 민족해방혁명론(NLR)은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론(PDR)이 반제국주의적 과제를 외면한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바 있다. 이에 대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 즉 NLPDR론을 제기한 PD진영의 NL 비판의 핵심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 없는 단계론적인 부르주아 혁명론이라는 점이었다. 이와 비교해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은 물론 없으려니와, (1980년대 스스로 주장했던) 부르주아 혁명론도 아닌 진보적 (선거연합) 집권론에 불과하다. 우선은 진보적 민주정부를 만들고, 그 이후에 더 진보적인 개혁과 구조적 변화를 도모하자는 단계론적인 운동론은 주관주의의 극치이고, 우경적인 정치 전략의 사후 정당화론이다. 자본가도 보수정권 지지가 아니고 재벌이 아니라면 민중이라는 기괴한 주장이 버젓이 활자화되어 출판되고, 위장된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비독점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세력들과의 무분별한 연합정치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운동과 과학에 대한 ‘정치우선’과 인민주의적 정치의 위험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중소 부르주아 계급과의 연합과 공동 집권을 주장하면서도, 민중적 진보적 주도권이 관철되는 한 진보적 개혁을 심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내용은 자본주의 생산 지배체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적 개혁이면서, 어떻게 민중적 진보적 개혁을 심화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론이 가지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가 집권하면 다르다”는 의지뿐이다. 한편, 진보적 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우선!”이라는 선동적인 구호를 내세우면서 운동정당을 정책정당으로 바꾸고, 복지국가동맹을 새로운 정치노선으로 삼자는 본격적인 사민주의 정치그룹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나 이런 사민주의적 흐름들은 서로 강조하는 바가 약간씩 다르지만, 신자유주의적인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비판보다는 손쉬운 선동적 언사와 주관적인 의지만을 앞세우는 운동방식을 공유한다. 어려워진 사회운동, 노동운동보다는 정치공학적인 선거연합의 기획으로 정치에서 성과를 얻자는 개량주의적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이들의 논리를 생각 없이 듣고 있다 보면, 어떤 투쟁도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집권의 환상적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런 허황된 정치기획은 어찌되었건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세력이 권력을 분점 한다면,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낙관론으로 치장되곤 한다. 물론 친 자본가적인 정치인들이 공직선거에서 많이 당선되고 정권을 잡아서 국가를 자본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 간의 그러한 경험적인 관계의 일부분을 수정한다고 국가와 자본축적의 관계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비자본가 계급출신의 진보적인 국가 관료나 정치지도자들이 설령 집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본과 자본축적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구조적 특성은 바뀌지 않는다. 국가는 친자본가 정치집단이 손에 쥐면 자본주의 국가가 되고, 반자본주의 정치집단이 일시적으로 집권을 하면 비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어느 누구라도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자본축적의 핵심을 컨트롤하는 장치다. 이 국가라는 장치는 한두 번의 선거결과나, 심지어는 집권세력의 일시적인 변화에 의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권세력이 국가장치에 순응해야 한다. 소위 ‘책임 있는 정치세력의 고뇌’로 표현되는 우경화가 필연적으로 강요된다. 근본적인 계급관계,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동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보증이 없는 한 “내가 하면 다를 것”이란 다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질없는 다짐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정치위기를 동반한다. 오늘날의 정치위기는 단순한 정권의 위기, 특정 정치세력의 위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라는 도구에 대한 장악력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구 자체의 모순이 진행 중이라는 게 문제다.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정치자체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은 억압적 국가기구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과 심지어는 피지배계급의 대중운동 및 조직들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가족, 학교, 정당, 노조, 미디어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위기에 빠지면서 대중들은 국가 또는 공동체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노동의 불안정성을 넘어서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창출한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기구의 위기는 대중들 내부에서(국가가 아니라) 폭력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위기를 낳기 때문에 일상적인 물리적·상징적 폭력은 증폭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인식을 결여하거나 거부하는 인민주의적 선동은 그 의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결과적으로는 좌파진영 전체를 보수주의적 공격, 혹은 우파적 인민주의적 공세에 취약하게 몰아넣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그에 맞서는 반체제운동의 동시적인 위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범람하는 인민주의 정치가 보다 극단적인 파시즘적 변종으로 나타났던 역사적 교훈에 대해 진지하게 재평가해보아야 한다. 1930년대 고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의 위기 속에서 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당(나치)의 어느 선동가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국가가 황금의 악마, 세계(개방, 자유)경제, 유물론과 결별하고, 정직한 노동이 정직한 보상을 받는 사회를 재확립하도록 요구합니다. 이 거대한 반자본주의적 열망은 우리가 위대하고 비범한 새 시대의 문턱에 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자유주의가 극복되고 새로운 종류의 경제사상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출현하는 시대 말입니다. 절대 다음과 같이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에 필요한 돈이 있는가?” 오직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질문만이 가능합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돈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서 생산적 신용창조, 즉 적자지출 또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은 완전히 정당한 것입니다. 언뜻 들어보면, 이 연설이 왜 극우 나치당의 연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상황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인 현실이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은 무엇이고, 그 주체는 누구인지였다. 좌파의 대안이 노동자대중이 주체로 서는 자본주의 위기의 혁명적 전환이었다면, 나치의 대안은 세계전쟁이었고, 그 주체는 새로운 민족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재조직화한 국가였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에 관해 사람들이 가장 흔히 오해하는 것은 나치가 민중운동을 탄압하면서 집권했을 거라는 가정이다. 그렇지만 나치가 집권했을 당시에 나치의 집권을 방해할만한 좌파 정치세력이나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은 이미 빈사상태에 처한 지 오래된 뒤였다. 나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평화적인 선거를 통해 조용히 집권했다. 극우테러와 대학살은 그 이후의 일이다. 1919년 독일 혁명부터 1933년 나치 집권 전야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래로부터의 대중주체 형성과 사회변혁에 힘쓰던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하고 평의회 운동을 해체시켰던 장본인은 오히려 바이마르 공화국의 가장 주요한 진보정치세력이었던 집권 사민당이었다. 집권 사민당은 죽어가던 자본주의의 상속자가 되려는 혁명적인 생각을 대중들에게 숨기는데 급급했고, 상속자는커녕 빈사상태의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사노릇에 골몰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치를 우선시했다. 그들의 ‘정치우선’은 사회운동과 과학에 대한 우선이었다. 자기 완결적인 노동 친화적 분배, 복지 헌법체제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통치를 앞세웠던 반면 노동자 평의회의 정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억압했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와 의회가 정치의 모든 것이 되도록 생산현장의 정치, 거리의 정치를 하나하나 제거해버렸다. 그러한 진보적 집권정치, 개혁정치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자본주의를 부활시키지도 못했고 점진적인 사회 개혁의 효과를 보지도 못했다. 진보 공화국의 개혁정치는 계급내부 분할과 경쟁을 심화시킨 결말을 보게 되었다. 대중운동적인 토대를 잃어버린 노동자계급은 경제위기가 닥치자 각 부문별, 계층별로 끊임없이 분열된 것이다. 계급 대중운동과 과학적 이념의 결합이 해체된 이후, 각각의 이익집단화된 계급집단들에게 행정적으로 이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정치를 변질시킨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우선’의 의회정치, 경제위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는 탈이념화된 분배(행정) 정치우선을 추구했다. 대중들은 점점 더 정치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위기는 악순환에 빠졌다. 나치는 이런 정치 경제적 토양위에서 등장한 것이다. '경제위기 비판'이니 '변혁'이니 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제거가 완료된 뒤에야, 이제는 돈이 없으면 전쟁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주겠다는 식의 진짜 ‘정치 우선’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과 그것의 생산체계이자 권력기관인 평의회운동이 철저히 조롱받고 제거된 뒤에야, 사회운동에 대한 확실한 우위에 입각한 강한 정치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나치가 독일제국을 장악한 것이다. 과학적인 경제 분석에 대한 정치 우선, 사회운동에 대한 국가(정당) 정치 우선론이 나치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다만 부족했던 것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고, 국가 관료주의를 대신할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의 지도력이었을 따름이다. 어짜피 이런 투쟁도 저런 투쟁도 어려운 형편이니 별다른 수가 없다면,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완고한 원칙을 조금만 버리면 정치공학적인 편법으로 진보적 정치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둥, 운동의 위기를 정치로 돌파하자는 둥, 어쨌든 진보적 집권은 민중의 삶에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소박한 호소는 자기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선동에 불과하다. 대안 좌파전략의 모색 우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노동자민중운동의 우경화, 쇠퇴가 동시에 진행되는 역설적인 정세를 맞닥뜨리고 있다. 당면한 민중운동 재편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급격한 우경화를 막고 좌파운동의 자기 파괴적인 분열을 제어해야 할 과제가 시급하다. 시대착오적인 사민주의나 진보적 민주주의론과 같은 우경적 이념을 비판하고, 무원칙한 신자유주의 선거연합을 저지해야할 과제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정체성이 달린 일이다. 하지만 변화한 시대적 조건에서 사민주의나 우경적 개량주의는 단순한 혁명 배신이라는 규정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게 변화했다. 지배체제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될수록 별다른 성과가 없는데도 수그러들지 않는 허구적인 코포러티즘, 독자화하는 정치계급의 단기적인 선거 정치공학이 민중운동 재편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 중인 정치의 위기와 인민주의적 위험의 증대 등과 같은 정세적 조건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들을 수행해야한다. 결국 근본적인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 변혁이념과 운동의 해체를 갈음할 이념의 재건과 대안좌파의 형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날 대안좌파가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과 가상의 정치지도 위에 그려진 지정학적인 기준만으로 손쉽게 형성되지는 않는다. 유일한 기준은 전쟁에 대한 발본적 반대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총체적 기각이고, 그 성패는 반전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의 대중적 실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판가름 날 따름이다. 또한 대안좌파의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세우는 일은 곧 금융세계화와 심화하는 세계 경제위기의 특수한 결과인 정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차원의 과제이다. 지배계급의 무능과 통치 불가능성, 초민족적 자본의 정치적 사보타주에 맞서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요구된다. 노동자 대중운동을 재활성화 함으로써 정치를 재건하는 것만이 대안좌파 형성의 기본 토대다. 새로운 노동자 대중운동이 없는 정치는 어떤 진보적인 정책 공약으로 치장을 한다하더라도, 뿌리를 잃고 끊임없이 부르주아 정치로 흡입될 뿐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집단적 실천을 통해 유효한 성과들을 얻어 주체화하는 변혁적인 자기해방의 프로세스를 되살리는 것이 그 첫출발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의 집단적 행동을 다시금 유효하게 만들어, 정치자체를 부활시키는 새로운 비전을 밝힐 수 있다. 셋째, 대중운동이 나날이 우경화하는 조건에서, 좌파는 단순한 분리만으로는 소수파적인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원칙 있는 비판과 독자세력화의 포지셔닝이 강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대중운동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되 현실적으로 우리는 상당기간동안 우경화된 대중운동과 무리하게 분립하여 고립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유지 확대하면서, 좌익적인 활동가들의 교육훈련 구조를 강화하는 방식의 활동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좌익적인 활동가들은 대중운동의 재활성화에 힘쓰는 한편, 노동자 사회운동 재건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질적인 투자(자원 배분의 우선성), (강령적인 개방성을 유지하되) 인민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적 원칙을 조직적으로 고수해야 한다. 넷째,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동맹전략이나 무원칙한 계급타협 전략은 위로부터의 정책개혁을 정치의 모든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현재와 같은 구조적 위기시기에 그러한 개량주의적 장미빛 청사진들은 잘해야 계급내 분배에 골몰하여 계급적 단결을 해치거나, 자본에 의한 계급분할에 편승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경화된 운동 이념 전략에 대한 현 시기 실천적인 비판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반면 우리에게 필요한 최대강령이나 이행강령은 통치정당의 집권정책이 아니다. 사회운동의 목표와 원칙은 대안사회라는 건물의 도면을 그린 청사진 같은 것이 아니다. 만약 사회운동에게 새로운 이행강령이 필요하다면 (혹은 굳이 이행강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변혁적인 이행전략을 지속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면) 그것은 해당시기 사회운동의 근본적 난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념적 대안과 정세적 실천을 결합시키는 핵심 고리를 찾고, 그것에 적합한 실천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시기 좌파의 대안전략은 실업과 취업, 복지와 임금의 분할과 갈등, 취업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통합시키고 새로운 노동계급의 단결을 형성시키는 데 전략적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컨대 연대임금 전략과 같은 실천전략을 중장기적으로 실행해가면서, 계급적 단결의 재형성을 노동자운동의 핵심 목표로 세우고 전략적으로 실천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