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세계 행동의 날 제안서 IMF 위기 10년, 빈곤과 불평등, 전쟁과 폭력의 확대 환율 급등, 주가 폭락, 금융기관 파산, 줄 이은 기업도산…. 10년 전 일입니다. 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외환·금융위기에 대한 지배세력의 해법은 구제금융에 대한 '조건'으로 IMF가 처방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한국사회에 전면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것만이 한국경제가 살 길"이라며 사회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한국사회를 초국적 금융자본의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성하겠다고 나선 노무현 정부는 노동법 개악하고 한·미 FTA를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군사세계화에 동참하여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지배 세력이 내놓은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는 지난 10년 동안 오히려 민중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위기를 심화화고 있습니다. 재벌과 초국적 자본은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착취 강화, 온갖 부정과 비리를 발판으로 주식가치를 부풀리며 막대한 이득을 챙기게 된 반면,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고자 투쟁에 나선 민중들은 '경제 발전의 적'으로 내몰려 극악한 탄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초국적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윤을 확대하는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온갖 착취와 폭력적인 단속추방으로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을 동원해 전 세계 농업을 장악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초국적 농기업에 한국의 농업을 내맡기면서 농민들은 부채에 허덕이고 생존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윤의 논리 앞에 주거, 교육, 식량, 물, 에너지, 의료에 대한 민중의 권리는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한, 바닥 생존을 강요당하는 민중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민중의 삶의 위기에 대한 대안은 민중의 힘으로! 이렇듯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오늘날 민중들이 처한 삶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는 가운데, 이러한 현실에 맞선 민중들의 다양한 운동이 새롭게 분출하고 있습니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일터를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도 투쟁을 지속하고 있듯이, 이제는 전체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항상적인 해고위협과 극심한 착취와 탄압의 현실을 폭로하며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앞장서서 단결하고, 연대하고 있습니다. 저임금노동, 가내노동, 재생산노동, 비공식노동은 여성의 몫이고 노동력 재생산, 양육과 노인부양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성별분업·성차별 이데올로기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 여성 농민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초국적 곡물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 데 혈안이 된 WTO에 맞서는 세계의 민중들과 연대할 때 농민의 생존권, 민중의 식량주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국의 농민들은 칸쿤·홍콩에서 벌어진 시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의 노동자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나서 투쟁하면서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연대를 실현할 때 노동권이 확장될 수 있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의 종식과 파병 한국군의 철군을 위한 투쟁,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맞서 평화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도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전 사회적인 빈곤의 확산과 함께 철거민·노점상으로 대표되던 빈민운동은 기본생활권을 바탕으로 한 반 빈곤운동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일투자협정부터 한·미 FTA/한·EU FTA에 이르기까지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위해 민중의 모든 권리를 파괴하는 시도에 맞서 광범위한 연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더욱 심화한 민중들의 삶의 위기에 대한 대안은 새롭게 분출하고 있는 다양한 운동들 속에서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 다양한 사회운동이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행동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거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강타한 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실업노동자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고, 그 이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국제기구들의 회합을 겨냥한 대규모 국제 시위는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세계화의 위기가 더욱 분명해지는 가운데 새롭게 출현한 대중적 행동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침체된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운동에 힘을 얻어 2001년 탄생한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운동들이 결집하여 서로 경험을 교류하고, 토론하고, 논쟁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형성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사회포럼>은 전 세계 민중이 처한 삶의 위기의 원인을 함께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토론을 촉발시키는 한 편, 2003년 2·15 국제반전공동행동과 칸쿤 WTO 5차 각료회의 반대투쟁을 비롯한 대규모 국제 시위가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되도록 했습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운동들은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에 맞서 국제주의·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인민의 권리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자율성과 연대를 바탕으로 집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는 이러한 과정을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8년에는 다보스포럼 기간에 맞추어 1월 26일을 세계 행동의 날로 정하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인종주의와 가부장제에 맞서는 다양한 행동을 조직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에서 채택된 호소문에 수천의 조직과 개인이 연명했으며, 비아캄페시나, 세계여성행진, 미주사회동맹, 유럽사회포럼 등 다양한 네트워크들 또한 1월 26일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26 세계 행동의 날>을 전 세계 민중들과 함께 만들어갑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맞서 대안을 모색하고 다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이 이곳에서도 진행되고 있음을 전 세계 민중들과 함께 확인합시다. 2007년 대선에서, 지난 10년 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추동해온 '개혁세력'을 심판하겠다며 보수세력이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절망에 빠진 민중들을 '무능한 좌파 정권이 나라를 망쳤다.'는 선동으로 기만하며 재벌과 초국적자본에 친화적인 정책을 더욱 확대하여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합니다. 온갖 부정부패, 비리 의혹을 뒤로하고 민중을 기만하며 등장할 새 정권을 향해, 그리고 다보스 포럼에 모여 초국적 금융자본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전 세계 인민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것,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을 지속하고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인류가 선택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떠들어 댈 세계적인 지배 엘리트들을 향해, 대안은 오로지 민중 스스로가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선언합시다. 1월 26일을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를 거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 농민, 빈민, 이 세상의 모든 억압과 차별을 깨부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연대하는 날로 만들어 냅시다.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 노동자의힘/ 문화연대 / 민주노동자연대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사회진보연대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행진(건)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2007.11.30 현재)
이탈리아 반전평화 활동가 파비오 알베르티 인터뷰 정리: 장 진 범 |편집부장 [%=박스1%] 사회운동: 안녕하세요. 우선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3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국제 반전 집회에 300만이 참여한 것으로 상징되듯, 이탈리아 반전평화운동은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적·언어적 제약 때문에 운동의 구체적 상황을 알고 있진 못합니다. 우선 이탈리아 반전평화운동의 역사에 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파비오 알베르티: 자세히 말하자면 상당히 길어질 것 같아서, 간단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 평화운동이 생겨난 계기는 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유럽 열강들의 전쟁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지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두 종류의 평화운동이 분화했습니다. 하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진영의 대결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소련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냉전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이탈리아 정부에 주로 반대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비폭력' 평화주의로서, 이탈리아의 일방적 군축(unilateral disarmament)을 요구했고, 지정학적 논리에서 벗어난 평화운동을 주창했지요. 2차 세계대전 후 평화운동에서 커다란 계기가 된 것은 물론 베트남전이었습니다. 아주 거대한 운동이 일어났지요. 또 다른 거대한 운동이 1970년대 말에 벌어졌는데, 당시 미국은 이탈리아에 미사일을 설치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맞서 평화운동의 여러 분파들이 단결하여 거대한 운동을 조직했는데, 여기에는 비폭력 평화주의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톨릭까지 가담했습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결되면서, 운동의 위기 또는 분기라고 부를 수 있는 국면이 시작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두 초강대국의 대결 양상을 띠었던 진영 간 대결과 다른 분쟁을 보기 시작합니다. 걸프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이 그것이었지요. 이 때 이탈리아는 나토(NATO)의 일원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참전했는데, 당시 정권에 참여하고 있던 주요 좌파 정당들은 이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들 정당들 안에서 공개적으로 거대한 분리가 일어났을 뿐더러, 평화운동이 점차 정당에서 자율화됩니다. 1990년대 평화운동의 특징은 핵무기 군축, 비폭력, 평화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여러 소그룹 운동들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를 새로운 평화운동이 일종의 '바닥공사'를 한 때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히 따로 갔던 것은 아니고, 2002년, 그러니까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1년 전 정도에는 결집하게 됩니다. 그 결과 2003년에는 아시다시피 300만이 모인,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회를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평화운동의 모든 분파들, 곧 반전, 반제국주의, 비폭력, 여성운동 모두가 한 데 모였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한 이탈리아 군을 철군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탈리아 반전 운동의 세 가지 주요 쟁점은, 군축, 아프가니스탄 이탈리아 군 철군, 비센차를 비롯한 새로운 미군기지 반대입니다. 현재 이탈리아 반전운동이 단일한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고, 수많은 다른 운동과 조직들이 수렴과 분기를 반복하는 상황입니다. 사회운동: 10년 간의 '바닥공사'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흥미로운데요. 그 과정에 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파비오 알베르티: 진영 체계가 무너진 후, 그리고 특히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고 이를 좌파가 지지하면서, 많은 활동가들은 새로운 물결의 조직과 착상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평화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 때 비폭력, 정의, 국제 인권 등의 담론 등이 많이 확산되었습니다. 또 다른 그룹들은 미군 기지가 있는 곳에 공동체를 건설하고, 기지에 반대하는 대중들을 조직하려 했습니다. 잘 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만, 그 결과 현재 이탈리아에는 미군 기지가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이런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개 시기별, 지역별로 산발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식이었지요. 이와 함께 또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에서의 시위 조직뿐만 아니라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각 나라에서 연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많은 그룹들이 유고슬라비아, 중동,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연대 기획을 조직하면서, 그 곳 민중과 접촉하고 그들과 함께 그 곳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들 나라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뿌리에 있는 IMF나 WTO를 감시하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도 벌어졌습니다. 또 지뢰 반대 운동이라든지, 무기 생산을 금지하는 이탈리아 법을 제정하려는 큰 운동 등 여러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여러 운동들이, 제노아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투쟁의 장에서 모두 마주친 것입니다. 이 투쟁은 서로 다른 집단들이 함께 모여서 거대한 전쟁에 맞서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2002년과 2003년에 일어난 거대한 대중들의 결집은 이 같은 긴 작업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운동: 2003년에 일어난 거대한 결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다양한 경향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수렴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파비오 알베르티: 무엇보다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중요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따로 작업하던 운동들이, 이탈리아 현지에서보다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먼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G8에 맞선 제노아 시위를 어떻게 함께 할 지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이 2월 15일 국제공동반전행동의 날을 발의했을 당시, 우리는 이미 그 전 1년 동안 이라크전 반대 운동을 하고 있었고, 이미 준비된 상태였습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도 매우 높았습니다. 70~75%의 국민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으니까요. 따라서 수렴점을 찾고 민중들에게 시위를 호소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1년에서 1년 반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그 뒤 큰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대규모의 시위를 계속하는 데도 정권의 모르쇠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호조건에는 정치적 상황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는 베를루스코니의 우파 정부였고, 따라서 이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 세력이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노조들도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이 같은 노조의 지지는 반전운동을 대중운동으로 조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와 함께 당시 초점이 이라크 전쟁이었고, 이탈리아군의 이라크 참전에 관해서는 모든 좌파가 반대했다는 점도 서로 다른 그룹들이 단결을 용이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이라크 철군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상황이 좀 달라지게 됩니다. 이제 다음 번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이냐에 관해서, 혹자는 아프가니스탄을 말하고, 혹자는 군축을 말하며, 혹자는 중동·팔레스타인 위기를 말하는 등 의견이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평화운동들 사이의 수렴점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대중들의 참여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이와 함께 중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권에 대한 입장 때문에 목소리를 낮추는 그룹들도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탈리아 반전평화운동에서 인상적인 것은 노조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저희 역시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운동이 반전평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운동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반전평화운동에 동참하는지 궁금합니다. 파비오 알베르티: 우리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 시기의 성공의 경험을 돌이켜 보자면 몇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탈리아 노조는 국제 연대를 오랜 전통으로 갖고 있습니다. 과거 운동이 크게 일어날 때는 항상 노조가 있었지요. 이와 함께 2003년 당시가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운동이 위기를 겪던 시기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노조는 우파 정부의 노동악법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시는 동시에 사회운동이 노조 외부에서 성장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지요. 따라서 노조 활동가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좌파라고 할 수 있는 노동총동맹 금속노조(CGIL-FIOM)는, 자신들의 노동권 쟁취 투쟁과 성장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을 결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성장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들과의 동맹 및 그들로부터의 지지가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전시키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즉 한편으로는 노동자운동의 전통,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노조가 사회운동과의 동맹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운동: 오늘날 이탈리아 반전평화운동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파비오 알베르티: 정권이 바뀐 후 반전평화운동의 상황은 더 어려워진 게 사실입니다. 일부 운동들이 중도좌파 정부가 내놓은 이라크에 관한 입장을 지지할 것을 결정하면서 2004년과 2005년을 거치며 운동 안에서 큰 논쟁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또 현재 이탈리아 운동 대부분은 전쟁 반대 테러 반대를 말하고 있는데, 일부 세력은 미국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지 다른 얘기를 하면 초점이 흐려진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테러리즘 및 투쟁의 방식이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이 갈라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모두가 동의하는 운동을 만들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조의 경우도 다소 관망적입니다. 반전운동이 단결되어 있는 상태가 아닐 때 노조가 운동에 결합하고 지지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것이지요. 사회운동: 현재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엇입니까? 파비오 알베르티: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재 지금 최대의 쟁점은 우선 비센차 미군기지입니다. 이는 여전히 모든 운동이 의견을 모으고 있는 지점임과 동시에, 비센차 주민들의 매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가 아프간 파병 문제이지요. 모든 이들이 이탈리아가 철군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혹자는 이를 제1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이를 정부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기 위해 사용하며, 온건파는 철군해야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 혹자는 정부가 중도 좌파이므로 너무 밀어붙이지 말자고 말하는 등 의견이 크게 갈려 있습니다. 세 번째 의제는 군축입니다. 지금 핵무기에 반대하는 새로운 캠페인과 연대가 시작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 핵무기를 없애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아프간 문제에 관한 의견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파비오 알베르티: 이탈리아 정부는, 이탈리아 군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군이 미군에 비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민간인을 살해하지 않는다 누가 알겠습니까만 고 말하지요.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문제는 이탈리아가 인구 전체를 대표할 수 없는, 일종의 군벌들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아프간 정부를 지지한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에 있습니다. 물론 탈레반 운동을 지지할 수도 없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군대가 철군해야 하고, 적어도 미군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현재 이탈리아 군은 미국의 대(對)테러전쟁의 일부로 기능할 뿐입니다. [%=사진1%] 문제는 이탈리아 정부의 다수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좌파는 세가 미약하다는 점입니다. 여론도 그리 유리한 편은 아닙니다. 따라서 철군 운동을 대중적으로 조직해 가는 가운데, 그것이 단기간에 달성되지 않는 현재의 역관계에서는, 군벌과 탈레반 사이의 내부 분쟁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한 쪽 편을 드는 것 자체가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분명히 하면서 최소한 중립적 위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 이탈리아 반전평화운동 대부분은 아프간 시민사회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정부에 있는 전쟁 범죄자들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의 군대는 철군해야 하며, 만일 내전을 방지하는 치안이 문제라면, 철군 이후 지금과 전혀 다른 성격과 지위를 갖는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노선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물론 철군 운동입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단기간에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다른 한편으로 카르자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 아프간 시민사회를 지지할 것, 미군의 지휘에서 벗어날 것, 내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를 지지할 것 등 좀 더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기조의 정책을 정부에 강제해야 합니다. 사회운동: 유럽을 비롯한 초민족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반전평화운동은 없습니까? 파비오 알베르티: 유럽 차원의 반전평화운동은 아직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이탈리아 평화운동이 폭력이나 지정학적 접근 등을 둘러싸고 갈라져 있다고 말했는데, 유럽 차원에서는 훨씬 심합니다. 우리 단체가 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지중해 차원의 운동입니다. 지중해 북쪽과 지중해 남쪽, (남)유럽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와 인권의 관점을 견지하는 사회운동들이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중해 남부 사회운동들 대부분은, 물론 전쟁과 평화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 정부에 맞서 인권과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역시 벌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만남은 정부들의 만남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사회운동: 그러니까, 초민족적 차원의 운동이 있긴 하지만, 유럽이라기보다는 유로-지중해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파비오 알베르티: 초민족화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웃음), 적어도 모임을 조직하고 함께 모여서 논의하며 상호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때 모든 사회운동, 곧 인권과 자유를 위한 운동뿐만 아니라 특히 반신자유주의 운동까지를 결집시키는 게 중요한데, 왜냐하면 지중해 남부 사회가 겪는 문제는 자유의 결여뿐만 아니라 또한 IMF의 구조조정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중해 차원을 말하는 것은 서방 세계 대 아랍 세계 식의 대립 구도를 깨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도에서는 양쪽 민중들이 서로 모든 서방인은 똑같다, 모든 아랍인은 똑같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서로 연대한다거나 각자의 정치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아랍인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이쪽 민중에게, 서방인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저쪽 민중에게 보여주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른 존재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서방도 아랍도 아닌, '유로-지중해'라는 새로운 공간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세계적 분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지탱하는 '테러와의 전쟁' 및 반미 이슬람주의에서 벗어나는 평화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반전평화운동의 전반적 방향에 관해 의견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파비오 알베르티: 마지막으로 저는 다시 한 번 평화가, 지리전략적(geo-strategical)이거나 지정학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레바논의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재 레바논은 정부와 반대파로 나뉘어 있습니다. 정부는 미국의 지지를 받고 반대파는 이란과 시리아의 지지를 받습니다. 레바논 민중의 문제는 미국 편도 시리아 편도 들 수 없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둘 다 나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접근에서 말하는 것처럼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라 또 다른 지배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레바논 좌파는 지정학적 반제국주의를 취하면 민중에 대한 종교적 통제, 여성과 삶에 대한 억압 등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정부를 지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습니다. 지정학적 대립은 좌파와 평화운동의 무덤인 것입니다. 문제는 민중과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의 적과 함께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미국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 지정학적 반제국주의의 한계 역시 넘어서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평화운동이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운동: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시아 연대에 대한 관심 아시아 연대에 대한 한국 사회운동과 시민사회의 관심이 최근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으며, 동시에 많은 한국계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한국 노동운동과 사회운동가들 사이에 국제연대와 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이 일정한 수준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버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원과 연대, 필리핀에서 자행되고 있는 ‘정치적 살해’에 대한 규탄 등도 그 규모와 효과를 떠나서 국내 사회운동과 시민사회단체의 아시아 연대에 대한 일정한 관심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서기 위해서 국제적인 연대와 서로의 투쟁에 대한 상호지지·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나아가 구체적인 국제공동행동과 지원 투쟁도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반전국제공동행동, 칸쿤, 홍콩 등 WTO 각료회의 저지 공동투쟁, 한미/한일 FTA 저지 공동투쟁 등 그동안 국내 사회·노동운동은 다양한 국제행동에 참가해왔으며, 조직해왔다. 아시아 연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이렇듯 아시아 연대에 관한 우리의 관심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전략적인 시각과 구체적인 실천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행동을 좀 더 아시아로 맞출 필요가 있다. ‘왜 아시아인가’에 대해 정치경제적 배경을 따지기 전에, 우리 주변의 현실을 돌아보면 ‘왜 아시아 연대가 긴급한가’를 알 수 있다. 40만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아시아 지역 출신이다.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송출국 노동·사회운동과의 긴밀한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최근 필리핀 자유무역지대인 카바이테 지역에서 벌어진 (주)필스전 사건에서 보듯이, 한국계 기업의 노동기본권 탄압은 대단히 악명 높다. 이러한 문제를 아시아 지역 노동자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 노동·사회운동의 국제연대는 허울 좋은 구호로 전락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원하던 원하지 않던, 지금 시기 우리에게 아시아 연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한편 FTA 등을 매개로 한 신자유주의적 아시아 경제통합 흐름도 강화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ASEAN FTA가 이미 합의되었으며, ASEAN+3(한국, 중국, 일본) 프로세스도 강화되고 있다. 또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비단 중국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한 아시아 지역 민중·사회운동 진영의 공통의 인식과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거시적인 맥락에서 아시아 연대의 필요·필연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시아 연대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몇몇 현실적 곤란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먼저,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 있는 아시아의 지역적 특성에 의해 소지역별, 국가별로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언어적 차이가 상당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왕도는 없다. 상호존중에 기반을 둔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 공통의 관심사에 기반을 둔 공동행동의 강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다음으로 아직까지 아시아 지역 연대의 필요성 및 중요성에 관한 문제의식이 충분히 폭넓게 교감되지는 못하고 있는 현실을 들 수 있다. 물론 지난 2005년 12월 홍콩 각료회의 저지 투쟁 등 몇몇 계기들을 통해 상호간의 소통이 강화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세 번째로 북반구의 거대 NGO와 노총(일본노총-렌고를 포함하여)이 수행하고 있는 재정지원을 축으로 한 아시아 사회·노동운동의 왜곡도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여전히 많은 아시아 지역 NGO와 노동조합이 북반구 노총과 NGO에 의해 자주성이 훼손당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지역 연대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또 다른 요소이다. 네 번째로 자주적 급진적 노동·사회운동의 역량 문제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경우, 많은 국가들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인 민주노조운동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시아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과 더불어 실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공동의 실천 의제를 합의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 문제, 한국계 초국적기업의 인권·노동권 탄압 문제, FTA 문제 등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공동 대응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아시아 지역 노동·사회운동의 역량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교류과정이 조직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주적인 민주노조운동, 급진적인 사회운동 역량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강화시켜나가야 한다. 이 지점에서, 재정적·인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한국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세 번째로,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에 맞선 아시아 사회운동 연결망 구성을 장기적인 목표로 세우고 의식적인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매개로, 서로의 투쟁에 대해 상호 지지·지원하고,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공동행동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아시아 노조활동가 초청 교육·교류 과정 위와 같은 고민의 일환으로 아시아 노동자연대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자주적인 민주노조 운동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인식 하에서, 민주노총은 지난 10월 8일-14일까지 아시아 노조활동가 초청 교육·교류 과정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은 총연맹과 가맹산하조직이 공동으로 준비하고 진행하였으며, 인도네시아, 네팔, 홍콩, 캄보디아 등에서 6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였다. 비록 소수의 활동가만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노동자가 공통으로 직면해 있는 비정규직 조직화, 산별노조, FTA와 WTO 등에 대해 상호간의 솔직한 의견들을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이주노조, 민주노동당 서울시당(마포구 지역위원회) 등을 방문하였고, 국내 이주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이주 노동기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상호 연대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또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의 간담회에서는,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관계, 이랜드·뉴코아 투쟁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를 방문하여,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을 견학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일상 활동과 고민을 듣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이번 교육·교류 과정은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이 아시아 지역의 자주적 민주노조운동 역량 강화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그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도 큰 성과이다. 물론 처음으로 조직하면서 여러 부족한 점이 발생하였지만, 참가자들은 열정적으로 교육 과정과 토론에 임하였고, 이는 아시아 노동자 연대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인식을 가져다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이처럼 더디지만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노동자 연대, 아시아 사회운동 연대를 긴 호흡으로 강화시켜내는 데 있어서 한국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민주노총의 이번 교육·교류 과정은 비록 작은 시도일 수는 있지만 이러한 긴 호흡의 한 발자국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으며, 앞으로 이러한 과정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의 모색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고 허세욱 열사의 분신을 비롯한 민중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협상 타결이 강행된 지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5월 7일, 한․EU FTA 협상이 시작되었다. 한․미 FTA라는 메가톤급 쟁점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사이, 연내타결을 목표로 서울과 브뤼셀을 오가며 진행된 협상은 어느덧 5차 협상을 지나 6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당초 공언하던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한국과 EU 정부 모두 속도를 줄이지 않고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무엇이 한국과 EU를 이렇게 급속한 FTA 추진으로 밀어가고 있는가? 한․EU FTA를 밀어가는 힘 1 -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 2006년 10월 4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글로벌 유럽: 세계에서 경쟁하기>라는 문건을 발표한다. 이 문건은 공격적인 ‘외부 경쟁력’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전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EU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한편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 창출에 노력을 배가해야 하며, 이 때 특히 제3 세계의 규제 환경 전반을 겨냥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 강력한 기업을 세우기 위해서는, EU 내적으로 보다 친기업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우선적 목표로는, ▶EU 수출과 투자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낮출 것, ▶원자재 투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것, ▶제3 세계 에너지 부문에서 무역을 증가시켜 에너지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 ▶EU 기업들의 신흥시장 진출을 한층 강화할 것, ▶정부조달 시장을 개방할 것, ▶제3 세계 국가들의 무역 방어 기제 적용을 제어할 것, ▶지리적 표시를 비롯한 지적 재산권을 강화할 것 등을 들 수 있다.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에 이르러 좀 더 노골화되긴 했지만, EU는 전부터 이런 목표를 갖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은 이를 세계적으로 관철시킬 주요한 제도적 수단으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Doha) 라운드를 상정했었다. 하지만 WTO 회원국들 중 특히 제3 세계 국가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협상이 순조롭지 않았고, 또 이 만족스럽지 않은 협상마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저항 및 여기에 영향을 받은 지배계급 내 분열 때문에 교착 상태에 이르자, 다른 제도적 수단을 활용키로 결정한다. 도하 라운드 출범 이래 중단하였던 양자간 협정(BIT), 그리고 다양한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공격적으로 재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의 대상 국가 또는 지역은 시장 잠재력, EU 수출 이익에 반하는 보호 수준, 다른 국가들과 맺고 있는 양자간 협정의 숫자 등에 기초하여 선정되었다. 이와 함께 협상 시작 전 협상 상대국이 동일한 수준의 야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증 기제를 가동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2006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게 다섯 가지 새로운 국가 및 지역과의 협상 개시를 권고한다. 인도, 남한, 아세안(ASEAN) 국가들(이상 FTA),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와 안데스 공동체(이상 AA(Association Agreements, 연합협정)) 지역들이 그것이다. EU 회원국들과 4개월 동안 토론을 거친 후, 2007년 4월 23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일반 업무 및 대외 관계 이사회(GAERC)에서 만난 각국 장관들은 집행위원회에게 협상을 시작하라는 공식적 지침을 발표한다. 이처럼 공격적인 대외 무역 전략은, 앞서 지적했듯 동시에 공격적인 대내 전략을 이면으로 갖는다. EU 기업들의 해외 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부적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든, EU 기업들의 대외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반대급부를 제공하기 위해서든, 공통된 결론은 유럽을 보다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개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업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철폐하고, 이 같은 규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민중들의 권리를 공격하는 것이 논의된다. 이와 함께 환경, 보건, 사회적 규제 등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다루는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해외 기업의 목소리와 이익을 반영하는 조치들이 제시된다. 이른바 투명성, 사전 정보 공개, 논평할 기회 등의 확대가 제안되는데, 단 그 대상은 자국 민중들이 아니라 해외 기업이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개혁에서 ‘낙오’된 이들을 위한 직업교육과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금 조성 등이 제안된다. 이렇듯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는 대외적으로 신제국주의 전략을 노골화하는 것이면서, 대내적으로 유럽에 대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한 전략을 내세우면 지금까지 EU의 시도를 실패하게 만들었던 대외적․대내적 저항이 더욱 강해지지 않겠느냐고 자문할 수 있다. 그건 사실일 수 있지만, 대외적 전략과 대내적 전략이 결합하면 지금까지의 실패를 돌파할 수 있는 매우 반동적인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대내적 저항을 대외적인 신제국주의 전략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면화되면서 유럽의 지위, 결국 자신들의 처지가 악화되는 게 아니냐는 대중들의 불안을, ‘강한 유럽’이라는 반동적 전망으로 전유하고, 경쟁력을 위해 내부 개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유럽 대중들의 수동적 동의를 조직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럽 대중들과 협상 상대국 대중들의 분열을 얻어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제국주의 전략에 대한 제3 세계 국가들의 대외적 저항을 대내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완화시킬 수 있다. 즉 대내적 개혁을 통해 제3 세계 자본들이 유럽에서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를 제공한다면, 해당 자본이 자신의 국가 안에서,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리’와 ‘국익’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고, 이로써 저항의 목소리를 무력화하거나 최소한 분열시킬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국가/지역 대 국가/지역이라는 분할선을 활용해 양 지역 민중들의 연대를 가로막을 수 있다. 요컨대 양 지역 모두의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기획을 통해 양 지역 자본들 사이의 초민족적 동맹을 만들어내는 한편, 양 지역에서 ‘국익’―여기서는 물론 금융화․세계화된 자본의 이익이 지배적 지위를 점한다―에 종속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조장함으로써 양 지역 민중들의 저항을 억압하고 지역을 넘어선 연대를 파괴함으로써, 그동안 EU의 기획을 가로막았던 저항을 넘어서는 것. 이것이 바로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의 정치학이다. 한․EU FTA를 밀어가는 힘 2 - 한국 정부의 새로운 ‘발전 전략’으로서의 FTA 프로젝트 한국 정부가 한․EU FTA를 비롯한 여러 FTA 추진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글로벌 유럽의 논리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한편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대외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FTA를 통해 미국 시장, 유럽 시장 등 저 거대한 시장에서 남들보다 한발 먼저 유리한 지위를 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 유럽과의 역사적 경험의 차이 때문에 ‘강한 한국’보다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쇄국’은 죽음이라는 식의 공포가 보다 효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진국과의 FTA를 통해 해외 자본을 좀 더 많이 유치해야 하며, 또 FTA를 통해 도입될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다드’ 및 선진 기업들과의 직접적 경쟁이 ‘외부 충격’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세우고 또 경제 전반을 선진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 역시 강력하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겠지만, ‘낙오자’들에게는 ‘사회안전망’ 및 ‘노동연계복지’를 처방하면 되고, 이 시련을 거쳐 세계 일류 기업들이 많아지면 거기서 ‘적하 효과’ 곧 떡고물이 생겨나 국가 경제 전체를 활성화할 것이며, 만일 이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중국을 비롯한 후발 주자들에게 추격당하고 IMF 이후 10년 간 우리를 옥죄던 경제 침체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 역시 잊지 않는다. 즉 개별 국가의 역사적․환경적 차이 때문에 변형을 겪긴 하지만, 유럽이 됐든 한국이 됐든 FTA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논리를 갖는다. 곧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라는, 우리가 그동안 지겹게 듣던 그 주문. 그런데 왜 IMF나 WTO 따위가 아니라, FTA인가? 이들 사이에는 뭔가 차이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FTA의 전면화는 현재 IMF나 WTO 등,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산하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수단들의 위기와 관련된다. IMF의 경우 개별 국가에 대한 구조조정 처방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IMF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잔혹하고 반민중적이어서, 전 세계 민중들의 저항의 핵심 목표가 되고 있다. WTO는 지난 1999년 시애틀 각료회의 반대 투쟁, 2003년 한국의 농민 고 이경해 열사가 목숨을 바쳐 싸운 칸쿤 투쟁, 그리고 2005년 홍콩 각료 회의 저지 투쟁 등 세계 민중들의 비타협적 투쟁 및 여기에 영향을 받은 지배계급 내 분열 때문에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다. 바로 여기서 앞의 제도들이 겪는 어려움을 우회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FTA가 등장하는 것이다. IMF가 일종의 ‘비상 조치’로 여겨지고, WTO가 전 세계 자본 및 지배계급들의 합의가 개별 국가에 강제되는 식으로 여겨지는 데 반해, FTA는 기본적으로 국가 또는 지역 간의 ‘일상적’이고 ‘동등한’ 협정이라는 형태를 띤다. 따라서 FTA는 IMF나 WTO에 비해 ‘참여’와 ‘개입’을 통해 그 기조나 내용을 바꾸기 쉽다는 느낌을 준다. 또 FTA는 통일된 이해관계, 곧 ‘국익’을 지닌 경제 단위들이 손익을 놓고 협상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기에 보다 용이하다. 이 때문에 FTA는 그 참여 여부라는 쟁점을 놓고 대중들을 분할시키는 데 좀 더 유리하다. 그리고 ‘국익’의 이름으로 대내적으로는 민중들의 저항을 일부 ‘피해산업’의 ‘집단이기주의’ 따위로 몰면서 민중들의 목소리를 억압․분열시키고, 대외적으로도 민중들을 국제적으로 분할하여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데 보다 효과적이다. 또 협상이라는 개념에 항상 동반되는 실리주의는, 전반적인 권리 박탈 경향 안에서 나타나는 피해 정도의 불균등한 차이에 따라 민중들 자신을 분할시킨다. 투쟁은 FTA로 인한 ‘직접적 피해 당사자’만의 몫으로 고립되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거나 심지어 일시적인 이익을 얻는 이들은, 이익이라는 관점을 넘어서는 다른 전망을 갖지 않는 한, 저항에서 수동화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개별 FTA마다 어느 정도 ‘피해산업’이 달라질 것이므로, 전민중적 연대가 취약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개별적 저항을 무마하기가 더 쉬워진다. 지배계급은 이 점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한․미 FTA 투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농민이 투쟁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노동자, 특히 제조업 노동자가 투쟁하는 건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런 논리는 한․EU FTA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물론 FTA는 개별적 협정이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수단으로는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최혜국조항’ 등을 활용한다거나, 또 현재 EU나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것처럼 연쇄적으로 진행된다면 상당한 정도까지 해소할 수 있다. 예컨대 한-미 FTA과 한-EU FTA의 경우, 전자는 후자를 진행함에 있어 일차적인 기준으로 작용하며, 후자에 이른바 ‘플러스 알파’가 삽입된다면 전자는 최혜국조항에 따라 자동적으로 갱신된다. 실제로 지난 한․EU FTA EU측 대표 가르시아는 한․EU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국 원정투쟁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만 이미 미국과 체결한 FTA 수준을 우리에게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이렇듯 하나의 FTA는 새로운 FTA들에 기준과 속도를 제공하고, 또 새로운 FTA들은 이전의 FTA에 담긴 자본의 권리 장전을 기정사실로 만들거나 갱신시킨다. 대안세계화 운동의 한 계기로 한․EU FTA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최근 한국사회당 대선 후보 금민 대표는 기존의 FTA 반대 투쟁을 비판하면서, FTA에 맞서기 위해서는 구체적 조항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개별 조항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점에 관해서 반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개별 조항에 관한 폭로만으로 FTA에 맞설 수 있느냐에 있다. 왜냐하면 FTA는 현재 지배계급들이 한국 사회의 미래에 관해 제시하는 하나의 전망이고, 그런 한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그 전반적인 틀과 어긋나는 개별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무력화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를 통해 더 강화되기도 한다. 반유태주의 이데올로기를 예로 들어 보자. 반유태주의가 그리는 음흉한 유태인과 현실의 선량한 유태인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할 때, 반유태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로 그것이 유태인들의 무서움이다. 그들은 일상적인 겉모습의 가면 뒤에 자신들의 진짜 정체를 감추고 있다. 바로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숨기는 이중성이야말로 유태인의 근본적인 습성이며, 우리가 유태인을 반대하는 이유다.” 우리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허황된 이데올로기와 모순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 그렇게 자신 없습니까? 이런 시련을 이겨내지 않으면 우리는 한국 경제를 되살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시련을 극복해 왔고, 그 끝에는 항상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습니까?” FTA는 개별 FTA로 국한되지 않는 전반적인 프로젝트이며, 한국 경제의 미래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전망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개별 FTA로 국한되지 않는 투쟁을 기획해야 하며, 한국 경제의 전망과 미래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이 점에서 한․EU FTA는 지배계급과 민중들 모두에게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지배계급들이 한․EU FTA를 이렇듯 급속하게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미 FTA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데 있고, 또 한․EU FTA가 통과되면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수십 개의 FTA 협상은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즉 한․미 FTA라는 가장 파괴력 있는 FTA와 연쇄적인 FTA 프로젝트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는 것이 바로 한․EU FTA인 셈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EU FTA 반대 투쟁은 그리 광범위하게 조직되고 있지 못하다. 한․미 FTA라는 거대한 사안의 그늘에 가려서이기도 하고, 근래 가장 큰 대중투쟁 중 하나였던 한․미 FTA 반대투쟁에도 불구하고 타결을 막아내지 못한 데서 온 대중운동의 사기저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앞서 지적한 FTA의 정치학이 매우 강력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이 그렇다면, 초점은 한․EU FTA에 반대하는 개별 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아니라, FTA 프로젝트,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한․미 FTA 반대 투쟁에 나섰던 대중들에게 한․EU FTA가 FTA 프로젝트의 연쇄 고리 안에서 갖는 전술적 중요성을 알리고, 이들을 보다 장기적인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재조직해야 한다. 이는 FTA 반대 투쟁이 ‘피해산업’ 중심의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방어투쟁에 그치지 않고, 보다 안정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는 개별적 요구를 내세우지 말자는 것이 전혀 아니며, 다만 그것을 보편적 권리로 가공하고 이를 대중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개별 농가의 피해가 아니라 민중들의 식량주권이, 개별 노동자의 피해가 아니라 민중들의 노동에 대한 권리가, 개별 공무원들의 피해가 아니라 민중들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권리가, 개별 브랜드 산업이 아니라 민중들의 지식에 대한 권리가, 개별 환자가 아니라 민중들의 건강에 대한 권리가 문제가 될 때, 비로소 개별 피해자들이 아니라 전체 민중들이 움직일 수 있고 적어도 민중들의 지지엄호를 받을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대안적 전망을 밝혀가기 위해서도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대안이란 소수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맨다고 나오거나 설사 나온다 해도 그것이 대중들에게 즉각 수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같은 민중들의 보편적 권리를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는 체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 사회의 공적 토론을 규정짓는 압도적인 질문이 될 때 비로소 나올 수 있고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 26 세계 행동의 날을 이 같은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상이 대안세계화의 방향으로 FTA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대내적 태세의 문제라면, 대안세계화 운동의 대외적 태세를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히 한․EU FTA의 경우,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에 연루된 민중들, 곧 유럽 및 협상 대상국 민중들과의 국제적 연대가 관건적일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글로벌 유럽 프로젝트 자체가 기본적으로 연쇄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 중 한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전체 프로젝트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의 논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가능한 수준에서 공동 행동 계획을 세워가야 한다. 이는 대안세계화가 공허한 구호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갖추게 만드는 데서도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안세계화란 결국 고삐 풀린 채 날뛰면서 민중들의 보편적 권리를 파괴하는 세계화된 자본을 통제하는 한편, 이 같은 보편적 권리를 세계 민중들 스스로가/에게 보장하는 초민족적인 물질적․정치적 수단 및 공간을 설립하는 정치적 기획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장구한 과제일 수밖에 없지만, 그 출발점은 민중들 스스로, 지배계급을 매개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공통의 권리와 투쟁, 전략을 토론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EU FTA 투쟁은 이 같은 대안세계화의 전망을 열어가는 데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난리였다. 일본 열도 전체가 일시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각 신문사는 뒤질세라 호외를 긴급 발행하고, 방송국도 온종일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2005년 9월 6일, 일본을 열광시킨 그날은 바로 천황가에 아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자그만치 41년 만의 일이란다. 큰 문화적 이질감 없이 일본사회를 관찰하던 나에게 비로소 ‘이방인’임을 실감케 해준 사건이었다. 천황이 뭐길래? 물음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천황가 아들의 탄생은 하루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저출산 추세로 울상을 짓고 있던 유아, 어린이용품 업계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말 놀랍도록 기민하고 일사분란하게 ‘황손 신드롬’이 일어났다. 경제적 파급 효과는 무려 1,500억엔이라 추정되었다. 출산 다음날, 일본에서 가장 리버럴하다는 아사히신문까지 극존칭을 써가며 축원의 사설을 실었을 때 물음표는 마침내 느낌표로 변했다. 이게 만만한 문제가 아니구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휩쓸려 기어이 천황제 개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당시 자민당의 헌법 조사회는 모계천황을 인정하는 황실전범 개정을 추진중이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의 문제를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서 궁구하던 나의 둔감한 지성에 일격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천황제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해보았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젊은 일본 친구들의 무심함과 심드렁함은 나의 둔감함에 못지않았다. 천황의 존재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었고, 천황제의 그늘은 그들의 일상과 짐짓 무관한 듯 보였다. 한마디로 ‘무해한 천황제’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일종의 오락거리로 보이기까지 했다. 영국인들이 왕실가나 다이애나의 스캔들을 가십처럼 대하듯, 그 친구들 역시 천황가의 소식을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가벼이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라야 데쓰의 『일본인과 천황』은 바로 그들을 독자로 상정하여 씌어진 책이다. 저자 서문에서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젊은이들이 천황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도록’ 의식적으로 글을 구성했음이 엿보인다. 천황이 무엇인지, 근대천황제는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고, 천황제와 군대로부터 일본사회의 인간관계를 유추한 후, 상징천황제의 모순과 쇼와 천황의 전쟁책임도 추궁하고 있다. 나아가 헌법에서 천황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즉 천황제 폐지와 헌법 개정을 요청하는 급진적 주장으로 글을 맺는다. 그가 섭렵한 방대한 참고문헌이 알려주듯 준비는 꼼꼼하고 철저하며, 주장은 뚜렷하고 명쾌하다. 우선 저자의 열정과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읽는 맛이 남다르진 않았다. 특히 만화라는 가장 대중적인 전달 방식을 택하고 있음에도 지루한 감마저 없지 않다. 왜일까? 『맛의 달인』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만화가의 작품이 그다지 재미가 없는 것은... 우선 ‘계몽의 서사’를 들고 싶다. 저자는 국민들을 세뇌하는 천황제와 교육칙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비판의 내용을 전달하는 서술 양식만큼은 교육칙어와 엇비슷해 보인다. 만화의 주요 뼈대가 되고 있는 무지한 축구부 젊은이와 깨어있는 이사장과의 대화를 보자. 이사장의 설명에 젊은이들은 놀라고 당황한다. 그리고 깨우친다. 그렇군요! 그랬단 말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래선 안되겠어요! 어른은 가르치고, 젊은이들은 배운다. 동의하고 계몽된다. 이와 같은 계몽과 동의의 메커니즘이 줄곧 반복되고 있다. 계몽의 서사가 반복됨으로써 만화라는 장르적 장점은 어느새 파묻히고 만다. 생략과 간결을 이용한 표현양식과 시각언어의 재현이 독자의 적극적 호응을 유도하고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만화 고유의 특성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혐한류』이다. 또 『전쟁론』과 『대만론』등의 작품을 통해 일본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작품도 있다. 하나같이 대중의, 특히 일본의 젊은층에 큰 호응을 얻었던 만화들이다. 필자도 은근슬쩍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본 적이 있다. 동의할 수 없고 심지어 불쾌한 내용도 있었지만, 시종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왜?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가장 중요한 장르적 성격이 대중과의 친밀성에 있다면, 이 세 작품은 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들의 신념과 가치관을 전파한다. 계몽과 동의의 구조를 발견할 수 없고, 그래서 젊은 독자들의 반발도 야기하지 않은 채, 자연스레 그리고 집요하게 그들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불편함과 당혹스러움이 있다. 천황제에 기대어 있는 우익들이 대중과 만나고 소통하는 대중매체를 훨씬 능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전후 60년을 기념해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대체로 그러하였다. 그렇다고 천황제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 이 책의 미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일본 사회의 첨예한 논쟁거리였던 「히노마루 기미가요 법안」을 보자. 기미가요가 애당초 모든 사람에게 장수를 축원하며 불렀던 노래였고, 기미가요의 기미를 천황만으로 못 밖은 메이지 시대부터였다는 지적은 새롭다. ‘기미’라는 기호의 독점에서 절대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또 이 법안의 제정이 앞으로의 전쟁과 전쟁 이전의 일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날카로운 안목도 돋보인다. 교육법안 개정을 통해 ‘애국심’을 강조하자는 일본사회의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도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특히 ‘천황이 없었다면 군지도자들의 오만도 없었을 것이며 일본군 병사의 고통도 아시아 인민의 고통도 없었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일본의 모든 문제를 천황제로만 환원시킬 수 있을까? 근대 일본의 일탈이 온전히 천황제라는 전근대성의 온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그래서 일본이 반성하고 성찰해서 일본만 개혁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80년대 유행했던 일본인론 혹은 일본문화론과 같은 또 하나의 ‘일본 예외론’이 아닐까? 천황제를 일본 특유의 전근대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성의 다기한 일면으로 파악하는 입체적 시야가 필요하다. 실제로 근대 일본이 ‘천황’을 내세웠던 것은 19세기의 국제질서의 일원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즉 당시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기 위해서 군주제를 도입한 것이다. 프랑스혁명을 부정하며 등장한 나폴레옹 황제를 필두로 19세기는 세계적으로 군주제의 재구축이 진행되던 시기다. 영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강력한 군주제 국가가 발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천황제는 바로 그러한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며 ‘발명’된 것이다. 전통을 재배치하여 상징조작을 하는 현상도 ‘근대적’이며 ‘보편적’이다. 그로부터 백년 후,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군주제에 또 한번의 변화가 온다. 군주로부터 정치적 권력을 박탈한 이른바 ‘무해한 군주제’로의 전환이 그것인데,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상실하면서 자국의 정치체제를 개편한 것의 반영이다. 그 흐름 속에 일본에서도 ‘상징 천황제’가 도입된 것이다. 즉 천황제를 또 하나의 일본 예외론으로 특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대세계의 변동이라는 보편적인 틀 속에서 이해해야 비로소 해결의 단초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젊은이를 겨냥한 이 책을 읽으며 왜 우리가 뜨끔, 해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이 만화책을 읽는 시종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엄격한 상하관계와 위계질서, 배타적 집단주의와 패거리 문화. 이것이 과연 일본만의 모습인가?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모습이다. 마침 식민지 근대성을 둘러싼 논의도 시끄럽다. 필자가 접한 일본 친구들은 한국이야말로 집단주의와 민족주의의 산증거로 간주했다. 그렇게 똘똘 뭉치는 애국심이 놀랍고 경이롭다는 것이다. 이때의 경이에는 분명 냉소가 깔려 있다.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 읽혀져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천황이라는 고유명사를 기어코 ‘일왕’이라 고쳐 써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의 의식과 일상이 정작 천황제의 잔재를 더 짙게 반영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다. 일본의 천황제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천황제’를 근본에서부터 질문하고 성찰해야 함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추천사를 쓴 김규항의 지적처럼,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은 군사문화의 유산이 아니라, ‘천황제 군사문화의 유산’이었다는 통렬한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은 지금도 여전히 탈식민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했다. 한국의 탈식민 운동은 일본의 탈제국 운동과 긴밀하게 연계된다. 천황제의 온존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일본 우익의 준동은 이제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해 전쟁하는 국가로 일본을 재편하기 위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일본의 진보진영이 ‘평화헌법 지키기’라는 방어적 자세로 일관하며 ‘보수파’로 몰리기까지 한다. 상징천황제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1조부터 폐기하자는 저자 가리야 데쓰의 주장이 신선하고 통쾌한 것은 그래서이다. 폐지되어야 할 것은 1조의 천황제이며, 온존해야 할 것은 9조의 평화조항이다. 적극적 개헌론이라 할 수 있다. 상징천황제와 현행 헌법은 전후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패전국 일본의 구세력이 담합하여 만든 타협적 산물이었다. 우리 안의 ‘풀뿌리 천황제’를 소거하는 한국의 김매기 작업과, 상징천황제를 폐지하는 일본의 탈제국 과업이 양국 간의 연대 운동을 통해 견고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전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천황제의 그늘로부터 벗어날 때, 양국의 민중은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새로운 씨뿌리기 작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고 사뿐히 ‘즈려밝은’ 채, 그 위에 걸터앉아 동아시아에 군림한 미국과의 관계 조정에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즉 천황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우리 사회의 문제이며, 동아시아인 모두의 문제이다. 이러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인과 천황』은 한국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