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의원의 노동개혁 공약에 대한 비판
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윤희숙 의원은 공약1번으로 ‘노동개혁’을 제시했다. "귀족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이다. 물론 한국 노동시장, 노사관계의 현실을 보면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할 다양한 과제 중 노동정책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공약은 윤희숙 의원이 자신의 ‘장기’로 제시했던 경제적 합리성에도 크게 미달한다.
특히 이렇게 설익은 ‘노동개혁’을 첫번째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적 노림수도 문제다. 민주노총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이었다고 간주되는 현 정권과 정치적으로 대결하면서, 자신들의 지지층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정책 비판을 선택헸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비판하던 정부 여당의 포퓰리즘 행태를 보수적인 입장에서 거울 같이 모방하고 있다. 아마 여권 대선주자와 대결구도를 형성하기 위해서일텐데, 정책공약 제시 이후 논쟁하는 행태도 바로 그랬다. 윤 의원 식의 노동정책 제시는 한국 노동정책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쟁점을 부각하여 자신들 ‘진영’을 동원하려는 욕심이 앞서있다. 최근 논란이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120시간 노동 허용’ 발언 논란도 이런 욕심이 빚어낸 해프닝이다.
본질을 빗겨간 윤 의원 식 대안
윤 의원은 노동정책 공약을 네 가지로 제시했다. 물론 앞으로 후속 공약이 제시되겠지만 이들 이슈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먼저 내놓았을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동시간(주52시간) 제한 신축화,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다수노조의 특권 약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공약을 제시한 이유는 기업들이 “강성노조와 고임금 때문에 한국에 투자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공약한 정책으로 강성노조와 고임금을 해소하여 사회양극화를 완화하고 특히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많은 쟁점과 헛점이 있다. 최저임금 결정 제도를 ‘강성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의 고임금 억제를 위해 바꾸어야한다는 주장이지만, 실상 재벌과 공공부문 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최저임금과는 상관이 없다. 노조의 파업 시 대체근로 금지도, 한국만의 제도도 아닐 뿐 아니라 이미 사내 대체인력 활용 등이 상당히 열려있는 상황이다. 주52시간 제한을 탄력적으로 해야한다고 하지만 이미 탄력근로제가 여야합의로 개악되면서, 근로자대표와 합의를 통해 64시간까지도 가능하다. 기업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면, 기업별 노사관계 파괴 이전에, 산업별 노사관계 형성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물론 한국 노동체제의 ‘격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임금, 노동시간 등의 근로기준과 노사관계 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윤 의원의 정책과 같은 방식으로는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업종별 최저임금 도입 등 제도의 약화는 특히 중소영세 사업장과 내수 서비스부문에서 저임금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부문의 낮은 생산성은 지속되고 구조조정도 지연될 것이다. 노동시간 규제를 더욱 신축화할 경우 노조가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임금억제와 장시간 노동이 더욱 만연할 것이다. 본인은 명목 상 부정하지만 노조를 약화시켜 노동3권을 사실상 형해화하는 정책이라는 점도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의 격차 심화는 오히려 최저임금이나 노동3권도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의 확산, 자영업 등 중소영세사업장의 위기로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요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렇다면 설사 윤 의원의 주장과 같은 정책을 무리하게 펼친다고 해도 한국경제의 문제로 본인이 제시한, 계속 낮아지고 있는 기업 투자 경향을 반전할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인이 착실히 쌓은 이미지와는 달리 엉터리 경제학자일 수밖에 없다. 내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주장한 것이면 집권 여당에 맞먹는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전락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라 보아야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특히 제조업의 투자 성향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 이로 인해 성장률이 하락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도 더욱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여러 현상은 오히려 윤 의원의 정책이 근거가 충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성노조’의 사업장 내 파업이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2010년대는 파업손실일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무리하게 쉬운해고와 성과연봉제 정책을 강행한 2016년에 예외적으로 파업이 급증했다. 당시 KDI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옹호하던 윤 의원이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점도 놀랍다. 노조도 배제하며 그러한 정책을 강행할 경우 노사갈등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저투자-저성장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시작된 2018년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진보진영’의 주장도 과장이지만, 지금의 저투자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줄인 것은 수익성 있는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려워진 결과 자본이 금융시장으로 도피하기 때문이다. 수익성 하락과 생산성 정체는 세계시장의 상황만이 아니라, 비효율적 경영의 주범인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모순과 기존 과잉투자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자본투자 저하만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이미 감소하기 시작해 노동투입이 감소하고 있다. 아울러 노년부양비는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을 모방하던 한국기업이 이제 선도 기술을 개뱔하는 영역에 들어서면서 기술혁신도 더뎌지고 있다.
윤 의원의 1번 대선공약은, 경제 상황과 함께 양극화와 청년 일자리 문제도 노동정책의 개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물론 노동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고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해법이 윤 의원의 1번 공약과 같은 방식일까? 대표적으로 기업간 격차를 축소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실현가능성을 떠나 그것이 윤 의원이 주장하는 기업별 노조의 ‘해체’로 가능한가. 그 이전에 산업별 노조, 노사관계를 활성화하여 기업별 노사관계를 ‘대체’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 주장과는 달리 단순히 노동3권 부정에 불과하다. 노동시장 이동을 촉진하러면 ‘쉬운 해고’ 이전에 ‘쉬운 취업’, 산업 수준에서는 사업장을 옮겨도 동일노동에는 동일노동을 받을 수 있는 노사관계가 실현되어야한다.
노동시장의 약 20%를 차지하는 재벌과 공공부문 정규직만의 고임금으로 인해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진단은 일면 수긍할 대목도 있다. 그러나 이들 부문에서 고임금은 ‘강성노조’의 투쟁만이 원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재벌 대기업이 핵심부문의 고임금을 통해 노조를 포섭하고 그 외에는 광범위하게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하청-외주화한 결과다. 원하청 간 생산성 격차는 심화되었다. 이에 호응한 재벌-공공부문 노조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책임은 노사에 균형있게 물어야 대책도 나올 수 있다. 윤 의원의 주장과 달리 ‘강성노조’를 제압한다고 임금격차를 억제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그렇게 한다고해도 성장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상황도 아니다. 하다못해 윤 의원이 목소리를 높여주자고 하는, 아마도 덜 ‘강성’일지 모르는 재벌 대기업 ‘MZ노조’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원하청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낮아진 자본투자만이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기술혁신의 둔화와 같은 요인들도 대기업의 강성노조를 진압하고 최저임금을 억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 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재벌노조가 정당하지 않다는 평가와는 별도로, 윤 의원식 노동개혁으로는 현재 국민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국민경제와 노동시장의 사태가 이렇게 전개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을 재벌체제의 모순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노조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균형있지도 정직하지도 못하다.
민주노총, 자신의 대안을 제시해야
윤 의원의 주장이 문제가 많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도 제기된 쟁점을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노릇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청년 일자리 문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불러온 부작용이라는 객관적 상황에 대한 보수진영의 해법이 윤 의원은 대선공약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노동 측의 진단과 대안이 있어야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아직까지 모든 책임은 자본과 정부에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87년 3저 호황과 90년대 과잉투자, 97~98년 IMF 구제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특정한 결과가 나타난데에는 자본 측의 전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는 민주노총 스스로 자부하듯 투쟁을 통해 무엇인가 승리적으로 ‘쟁취’한 역사다. 특히 재벌-공공부문 노조가 고용과 임금에서 성과를 ‘쟁취’했다. 그렇다면 노조가 ‘쟁취’한 능동적 대응도 우리가 지금 처한 결과를 낳은 원인의 일부였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굳이 윤 의원의 대선공약만이 아니라도, 사회적으로 중소영세 비정규직 특수고용 등 전체노동자와 격차,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노동자운동은 윤 의원과 다른 방향으로, 왜 한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며 위기로 나아가는지, 투자가 줄어들고 좋은 청년 일자리가 축소되며,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는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물론 그것은 노동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조가 무관심해왔던 국민경제와 정치 등 전체 정세를 인식하고 대안을 낼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이미 한국 사회의 중요한 행위자이다. 핵심적인 재벌-공공부문 노조를 포괄한다. 우리가 처한 국민경제와 노동시장의 문제에, 아무 책임, 진지한 분석과 실현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없이 온갖 요구만 늘어놓기만 해도 되는 수동적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부족했지만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한 측면도 있었다. 윤 의원 등 보수진영의 공격은 그 정책의 한계에 비판을 집중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불행히도 민주노총의 실패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재벌-공공부문 20% 노동자만의 고임금으로 인한 임금격차 심화가 노조만의 책임이 아닐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노조도 책임이 있다. 현재 제기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지 못할 때,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역시 한 통 속으로 공격대상이 된다. 윤 의원 공약이 노리는 바도 이런 지점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이런 모든 문제에 노조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만 강변하거나, 또 다시 문재인 정부 시즌2를 지지하는 단순한 결론으로 나아가거나, 진지한 분석없이 최대치로 요구안을 제기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노총이 ‘한국의 실패’의 일부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을 앞으로 더욱 촉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