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반민중적 장벽건설 우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했던 몇 가지 장벽들을 기억하고 있다. 가깝게는 지금 이 순간도 한반도를 가르고 있는 248km의 휴전선 철책, 그리고 멀리는 18년 전 무너졌던 베를린 장벽에 이르기까지. 삶의 터울을 총칼로 가로막고 세워졌던 그 울타리들이, 단지 사람들의 만남을 막아서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나뉘어진 이들의 생각과 마음에까지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2007년의 오늘날, 또 다른 장벽이 바그다드에 세워지고 있다. 4월 22일자 [알 자지라]는 이라크 주둔 미군이 바그다드 동부 아다미야(Adhamiyah) 지역에 시아파와 수니파 주민들의 거주구역을 분리하는 장벽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벽 건설은 바그다드 내의 타 89개 지역에까지 확장될 것이며, 거주민들의 이동과 생활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라크 민중들은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장벽 건설을 반대한다. 최근에는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군은 바그다드에 장벽을 설치하는 이유가 매일 발생하고 있는 자살폭탄 공격을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장벽으로 가로막는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장벽은 갈등과 반목을 더욱 부추길 것이며, 점령군의 폭거 아래 신음하는 이라크의 민중들에게 더욱 큰 억압과 폭력만을 강요할 것이다. 왜냐면 현재의 내전상태와 같은 이라크 내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종족과 종교의 갈등에 있는 것이 아니며, 바로 미군의 제국주의적 점령정책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점령 이후 미군은 이라크 내 각 종파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지분을 할당해 왔다. 이는 종파들을 대립시켜 이라크 민중들의 단결을 저하시키고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분할통치 전략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는 사회와 경제 전 분야에 걸친 미국 자본의 침투이자 점령의 고착화로 나타났다. 미군은 이라크를 분열시켜놓고 그 분열과 갈등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기만적인 술책을 벌여온 것이다. 그래놓고도 미군은 이라크인들의 저항으로 인해 상황을 장악하기는커녕 바그다드 치안조차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미군의 통제력은 소위 ‘그린존’이라 불리는 미군 주둔지와 관공서 일부일 뿐이다. 저항세력,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현재 이라크에서는 거의 매일 차량을 이용한 연쇄 자살폭탄공격이 발생하고 있으며 사상자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바그다드에서만 지난 한 달 간 50여 건의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했고,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3년 개전 이래 지금까지 사망한 미군 병력들의 수는 약 3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월에 들어서만 39명이 숨져 하루 4명 꼴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얼마 전 5월 9일과 13일에는 한국군 파병부대 자이툰 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북부 아르빌에서도 트럭을 이용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50명이 숨지고 115명 이상이 부상하는 사태가 있었다.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은 야만적인 미 점령군과 그 꼭두각시 정부에 대한 저항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저항공격의 75%는 점령군에 대한 것이고, 17%는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것이다. 저항공격은 지난 해에 비해 두 배가 늘어서 하루 평균 185회, 한달 5천 5백회라고 한다. 지난 4월 이라크에서는 수십 만 명이 반미를 외치며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양한 종파와 정당들은 ‘미군 즉각 철수’를 요구했다. 무능한 정부와 미군 최근 이라크 의회가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끌고 있는 내각은 전적으로 미국의 지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러한 움직임은 저지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지난 4월 알 말리키 총리는 미군 주도 다국적군의 철수 일정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거부했으며,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가 이라크에 1~2년 더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의 특강에서 주장했었다. 즉,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현 이라크 내 정치세력의 통합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며,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미국의 지원을 얻어 집권한 현 이라크 지배세력은 안정적 지배를 위해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원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사진2%] 결국 친미 성향의 알 말리키 정부와 미군 당국이 추진하고 있던 ‘바그다드 안정화 작전’은 명백히 실패로 돌아갔다. 미군의 점령이 이라크의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인 한,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갈등은 해소될 수 없으며 저항세력들의 폭탄공격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무고한 민중들의 희생만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장벽을 쌓겠다는 것은 더욱 큰 폭력의 악순환 속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겠다는 것일 뿐이다.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그 어떤 방법도 부재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개입은 무의미함을 지적하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도 고조되고 있다.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의회에서도 부시 행정부에게 철군을 요구하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수렁에 빠져들고 미군의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는 12만 7천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미대사관과 영구 주둔기지를 건설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미군 즉각 철수와 점령 중단만이 사태 해결의 실마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파병 철수가 대안이다 아르빌에서 일어난 폭탄공격은 한국 정부 역시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한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한국군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이라크 현지에 파병된 한국군이 안전하다는 정부의 입장은 근거없는 궤변이다. 더욱이 며칠 전 자이툰 내에서 첫 사망 부대원이 생겼다. 외부의 공격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는 전쟁과 점령, 파병이 낳은 비극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는 12월로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간이 종료될 예정인 가운데, 정부가 6월까지 국회에 임무종결(철군) 계획서를 제출하기로 약속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또 한 차례 파병기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작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즉각적인 철수를 해도 모자랄 판에 다시금 파병을 연장하려는 것은 미군과 한몸이 되겠다는 것일 뿐이다. 민중들의 힘을 모으는 파병철수 운동이 다시금 필요하다. 이라크 민중들의 분열과 죽음만을 부를 장벽 건설을 저지하고, 미군과 한국군을 비롯한 모든 이라크 주둔 점령군을 철수시키기 위하여 다시금 반전운동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 민주노총에서 발간한 보고서입니다. 나프타 다시 보기 북미 노동자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 ? Revisiting NAFTA: Still not working for North America's workers By Robert E. Scott, Carlos Salas, and Bruce Campbell ;- Introduction by Jeff Faux----------------------- [내용] 나프타의 새로운 10년 : 서문 | 제프 포 1부 : 미국 - NAFTA의 유산 | 로버트 E. 스코트 2부 : 멕시코 - 멕시코의 실업과 불안전 | 카를로스 살라스 3부 : 캐나다 - 퇴보 | 브루스 캠벨 미국 노동자를 위한 세계화 | 제프 포
* 지난 5월 10일 대구에서 개최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가 남긴 과제와 지역 이주노동자운동의 전망' 토론회 자료집입니다.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 연대회의 주최로 열렸습니다. 연대회의는 '경북대학생행진(준)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구여성의전화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땅과자유 도시공동체 민주노동당대구시당 민주노총대구본부 민중행동 산업보건연구회 성서공단노동조합 성서노동자쉼터' 등의 단체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내용] -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 연대회의 결성 경과보고 -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항의' 운동과 운동이 남긴 것들 이정원(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대위 정책팀장, 이주노동자노동조합 교육선전차장) - 대구지역 이주노동자 운동의 경과와 전망 박희은(성서공단노조 이주사업부장, 이주연대회의 기획위원) - 금속노조 대구지부 사례 김형계 (금속노조 대구지부 수석부지부장) - 대구참여연대 사회인권센터의 이주노동자와 연대하기 소진섭 (참여연대 사회인권센터 간사) - 이주노동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하여 강신우 (민주노동당대구시당 부위원장) -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들에 대한 단상 박순종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공동대표)
한.미 FTA 반대투쟁, 신자유주의 반대전선 강화로! 한.미 FTA가 한국경제와 노동자민중에게 미칠 효과 [논평] 노동조항이 아니라 FTA 자체가 노동권 파괴의 주범이다
아마 지금쯤 대부분 월간 <사회운동> 5월호를 받으셨지요? 이번 호 [옳다]에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에 관해서 두 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 중 <전쟁과 신자유주의 반대 재미협의회> 임월산 동지의 글은 원래는 영어로 쓰여졌고 민중언론 <참세상>에 번역되어 실린 바 있습니다. <사회운동> 5월호에 실린 글은 이를 약간 다듬은 것인데 저희 실력이 부족한 탓에 원문의 뉘앙스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듯 해 필자인 임월산 동지의 동의를 얻어 본래 영어 원문을 등록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글 주신 임월산 동지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07년 4월 9일 매향제 “대추리 고향을 떠나게 되는 이 날… 뭐라고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정 때 논밭전답을 빼앗기고… 6·25전쟁 때도 쫓겨… 또 다시 이와 같은 처지에 놓였습니다.” 마을 곳곳이 황폐했다. 집 곳곳에서 나부끼던 노란 깃발은 찢겨져 있었고, 집과 집을 구분하던 벽들은 시와 그림들로 엉기정기 얽힌 채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창틀이든 문지방이든 고물로라도 내다 팔 물건들을 지녔던 것들은 이리저리 뜯긴 채 너부러졌다. 대추리·도두리를 지켰던 문무인상도 타서 재가 되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주민들, 기자들, 활동가들,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이리저리 다해서 지킴이들까지… 이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향제가 진행되었다.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향나무 판이 대추초등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묻혔다. 기약할 수 없는 귀향의 꿈, 미련, 그리움, 그리고 미군기지에 대한 원망과 대추리의 부활을 향한 열망이 쓰인 판들이 묻히자, 사람들은 흙을 덮고는 둘레둘레 돌며 주위 흙을 다져나갔다. 그 사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곳곳에서 많은 눈물이 보였다. 이 날 여기 모인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주술행위에는 집터와 고향을 잃은 애절함 이상이 있었다. 지난 3 년 간 한국사회에서 ‘대추리’와 ‘평화’가 사실상 동의어였음을 상기해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세상>의 최은정 기자는 ‘평화’를 묻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묻었다. 민중미술의 부활을 예고할 것 같은 벽화·조각들도 무너지고 문무인상은 타서 재가 되었으며, 어설펐지만 사랑받았던 노래들이 이제 불릴 곳이 없고 숱한 기록을 남겼던 사진·영상도 찍을 대상이 없어졌으니 ‘예술’도 묻은 셈이다. 삶(대추리)도 묻고, 운동(평화)도 묻고, 영혼(예술)도 묻었으니 모두 다 꾹꾹 묻었다. 사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다시 만날’ 것이라는 의미의 매향제는 현실에서는 이별을 뜻한다. 하늘(예술)과 땅(삶)과 사람(평화)의 이별. [%=사진1%] 5월 4일 부서진 대추초등학교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국민 누구나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견의 표출 방식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합니다.” 2006년 5월 4일 경찰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고 난 이후 한명숙 국무총리는 직접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국민의 의견 표출 방식이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것만 강조했지 국가행정기구의 집행방식도 평화적(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철저히 비켜갔다. “모든 당사자들이 한걸음씩 물러나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자”며 중재자인 양 제안했지만, 애초 그녀는 대추초등학교 복원은 커녕 철조망이나 군·경을 철수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국가행정기구(이 점이 중요하다!)의 수장이었고, 이 기구들이 폭력을 조직하고 저지른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민운동 경력은 이 상황에서 매우 유용했다. 그 경력은 평화운동진영 일부에 잠복해 있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미망을 자극하여 적극적인 행동을 자제하게 하였다. 또 그 경력은 국가행정기구가 마치 ‘중재자’인 양 보이도록 하여 국방부가 이제는 자신의 손에 더 피를 묻히지 않고도 대추리·도두리를 강제 수용할 수 있게 하였다. ‘농사만 지으면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방부는 용역과 포크레인을 동원해 물길을 막고 농지를 파헤쳤으며 경찰은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감금했다. 그리고 언론은 불법 점유가 계속되고 있어 큰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논조의 이야기를 계속 흘렸다. 상황이 진전될 기미가 없자 경찰은 자신의 모든 동원 가능한 물리력을 이용해 주민들과 지킴이들을 몰아내었고, 이후 국방부가 평택미군기지 반대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던 대추초등학교를 부술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국방부는 경찰이 시위대의 접근을 차단시킨 사이 철조망을 치고 초소를 세웠다. 군경 15,000여명이 몰려들어 1,000~2,000여명의 시위대들을 상대로 이 일을 해치우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했다. 그 사이 시위대 200여명이 다치고, 600여 명이 연행되었다. 언론은 사태의 폭력적 충돌만을 부각했고, 시위대의 폭력성을 비난하거나 양측의 과잉충돌을 문제삼았을 뿐이다. 사법기관은 연행자들 일부를 구속함으로써 여기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해주었고, 국가기구의 과잉 폭력을 감시한다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상황을 지켜만 보거나 판단을 미룸으로써 여기에 사실상 면죄부를 제공하였다. 이 모든 일들은 (주도면밀 이라기보다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마치 ‘자동기계’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을 겪고도 평화운동진영 일부에서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사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국가행정기구의 폭력성이 거의 절정에 달한 시점인데도 이들은 이런 유연한(?) 전술로 국가의 폭력성을 추가로(?) 폭로할 수 있다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실상은 기회를 잡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놓치던 중이었다.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 요구는 당시 대추리 상황을 당사자 문제로 축소하는 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이 때 드러난 것은 국가의 폭력성이 아니라 평화운동진영 일부의 기회주의성이었다. 국무총리는 태연자약하게 이를 거부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일부 명망가들은 급기야 정부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주민들이 각각 한발씩(!)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평택 대추리·도두리 빈집 철거계획 중단과 정부-주민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각계인사 77인 선언’을 했던 것이다. 평화운동진영이 동요하고 있던 사이 경찰과 국방부는 점점 더 옥쇄를 조여 왔다. 강제토지수용농지이라고 쳐놓은 철조망 안쪽만이 아니라 대추리·도두리 마을의 출입 자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추리·도두리 토지 강제수용 문제가 당사자 문제로 축소된 데다 중립기구인 양 가면을 쓰는데 성공한 국가행정기구들은 이제 대추리·도두리를 죽이는데 더 이상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었다. 출입을 통제하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면 그만이었다. 사법기관은 언제나 그랬듯이 국방부의 강제토지수용을 합법적이라며 손들어 주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에도 판단을 미루다 대추리·도두리가 모두 고사 당한 뒤에야 경찰 검문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며 경고를 했을 뿐이었다. 곳곳에서 평화운동진영이 이 옥쇄를 깨뜨리려고, 걷고 선전하며 시민들에게 호소하였지만 상황은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대추초등학교가 어떻게 부서졌는지를 잊기 시작했다. 맨 몸으로 뭇매를 맞으며 버텨야 했던 지킴이의 그 고통, 대나무 하나 들고 대추초등학교 안으로 내몰린 지킴이의 그 아비규환 소리, 검은 진흙을 뒤집어 쓴 채 찢어진 눈가 사이로 피를 흘리며 끌려가던 지킴이의 그 안타까움, 옷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채 연행 당하던 지킴이의 그 수치심, 사지를 뒤로 묶인 지킴이의 그 처절함, 밤늦도록 쫓기며 연행될까 떨어야 했던 지킴이의 그 두려움, 그저 울면서 부서지는 대추초등학교를 바라만 봐야 했던 지킴이의 그 원통함 들을 잊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3년 평화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운동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5월 18일 평택 대추리 투쟁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그 해 5월 평택 지킴이들은 당시 평택이 처한 상황을 1980년 광주에 빗대었다. 군경의 폭력에 짓밟히고 부서진 평택의 현실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국가 간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을 군사주의로 관리하려 드는 지배세력들의 반동성이, 당시 광주의 현실과 한국경제의 급격한 위기상황으로 인한 민중의 불만을 군부 쿠데타로 다스리려던 지배세력의 반동성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불행히도 우리는 당시와 또 다시 똑같이 유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광주사태’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잊혔는데, 지금 평택 대추리와 ‘대추초등학교’의 그 참혹한 붕괴과정도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1980년 5월 27일 총성과 함께 항쟁지도부가 학살당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잊혔다면, 평택평화투쟁은 2006년 한 해 지루한 공방 속에서 고사 당한 채로 잊혔다는 점이다. 우리가 평택평화투쟁을 광주민중항쟁에 빗댄 것이 당시 선열들의 숭고한 투쟁을 그저 한번 빌려보려 했던 것만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1980년대 민중운동이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재평가 속에서 자신의 역사를 구성해나갔음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평화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구성하는 첫 페이지에 평택 대추리 투쟁을 각인하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을 벌여나가야 한다. 1980년대 민중운동은 ‘1980년 광주’를, 한편으로는 1970년대 운동의 비극적 유산으로 평가하면서 1970년대 운동에 대한 뼈저린 각성과 함께 ‘과학으로 무장’하고 ‘조직(/민주주의)으로 단결’하자는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준거점으로 삼아왔다. 또 다른 한편으로 1980년대 민중운동은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계발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1980년 광주’를 자기 해방의 이념적 분수지로 위치 지워왔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투쟁 의지를 재차 삼차 다짐하여 왔다. 지금까지도 이 운동의 전통은 유효하다. 이 점을 분명히 상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1980년 잊힌 광주'가 찬란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증언을 이렇게 분명하고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평택 대추리 투쟁’은 정의의 편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부활’할 수 있는가? 10년이고 20년이고 지나면 사람들이 평택 대추리 투쟁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부활할 수 있다면 그것은 ‘평택 대추리’여서가 아니라 평택 대추리 투쟁에 이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이념이 현존하는 평화운동의 이념으로 재구성될 때 부활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부터 전개될 평화운동이 평택 대추리 투쟁을 평화운동의 역사에서 어떻게 위치 지울 것인가 ― 평택 대추리 투쟁의 교훈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아내고, 이후 어떻게 평화운동을 전개하는가에 따라 ‘평택 대추리 투쟁’을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존재로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평택 대추리 투쟁의 그 처절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까지 ‘평화운동’에서 우리가 어떤 잘못과 오류를 범했는지를, 평택 대추리 투쟁이 왜 그렇게 가슴 아프게 고사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평화운동’에서 취약한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평화’를 단지 ‘폭력 없는 상황’이라는 하나마나한 말로 정의하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 문제를 기원하는 한 우리는 이런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평화’를 타협으로 구할 수 있고, 그리하여 극단적인 대립을 회피함으로써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마찬가지다. ‘평화’를 몇몇 개인의 저항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현실의 평화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 그것의 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에 의해서 지속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해체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 동시에 운동의 차원에서 평화를 어떻게 영속적으로 구조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천상을 떠도는 ‘평화주의 이념’을 현실의 운동 차원에서 정확히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오늘날 사회운동에게 어떤 과제로 어떤 위상으로서 위치 지워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제까지 ‘평화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평화운동이 좀 더 과학적인 분석과 이데올로기적인 비판 위에서 자리매김 될 때, 그리하여 오늘날 자본주의가 ‘무장한 세계화’라는 반동적인 선택을 통해 세상을 절멸로 몰아가고 있는 국면에서 이에 맞서 이를 비판하고, 평화를 향한 머나먼 길에 자신의 발을 구체적으로 내딛게 될 때, 그리하여 평화를 향한 사회운동의 도전이 좀 더 구조화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명명할 수 있을 때, 바로 그 때 ‘평택 대추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온전히 부활하게 될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지를 놓고 근본적으로 되물음으로써 평화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넘게 했던 평택 대추리 투쟁, 더 많은 대중적인 참여와 더 직접적인 대중의 행동을 호소했던 평택 대추리 투쟁, 죽어버린 예술과 예술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새로운 차원에서 밝혀놓은 평택 대추리 투쟁, 주민·농민들과 지킴이·평화활동가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같은 이념적 지향을 밝히려 했던 평택 대추리 투쟁, 바로 그 이름으로 말이다.
지난 4월 초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1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한․미 FTA 반대투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150만 여 명의 서명운동, 여러 차례의 협상 저지투쟁과 세 차례에 걸친 민중총궐기 등 광범위한 민중들의 저항, 심지어는 허세욱 열사의 몸을 내던진 절규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협상을 타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공식적인 협상이 마무리된 것일 뿐, 양국에서의 검토, 공식 서명, 국회비준 등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미 FTA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여부, 쇠고기 수입 재개 등 협상결과를 둘러싼 양국 간의 논란이 여전하다.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업계에서는 한․미 FTA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자신의 이익이 확실하게 보장되기 전에는 한․미 FTA를 비준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당 역시 새 무역정책(New Trade Policy)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한․미 FTA 내의 ‘노동․환경 조항’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와 각종 주류 언론들은 ‘한․미 FTA 협상 타결을 계기로 삼아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라’는 주문을 쏟아내는 한편, 한․미 FTA 체결에 따른 피해 산업 분야를 지원하는 ‘무역조정지원제도’를 5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한․미 FTA 발효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 중단’ 투쟁은 협상 타결로 일단락되었지만, 한․미 FTA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들며 강행된 한․미 FTA 협상을 무효화하고, 6월 말로 예정된 ‘체결’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새롭게 전개해야 한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는 ‘한․미 FTA 협상 무효’, ‘노무현 정권 퇴진’, ‘신자유주의․미 제국주의 반대’를 투쟁의 기조로 설정했다. 이에 걸맞은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쏟아지는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그 뒤에 놓인 이들의 전략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공격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본격적인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사진1%] 한․미 FTA는 일탈이 아니라 일관된 전략에 따른 것 그동안 한․미 FTA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의 논리로는 협상 절차상의 비민주성과 조급함을 문제 삼는 ‘졸속협상론’,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는 ‘퍼주기 협상론’, 국내 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산업피해론’ 등이 중심적이었다. 사실 이른바 ‘4대 선결과제’를 미리 내주고 시작한 협상은 막판까지 미국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퍼주기 협상’ 논란이 일자 노무현은 “철저하게 장사꾼의 마음으로 이익을 따져 이익이 되면 체결하고, 그렇지 않으면 체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된 직후부터 지배 세력은 “일부 산업에 피해가 불가피하다. 협상 과정에서 애초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를 다 내주더라도 체결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이익이다,” “오히려 한․미 FTA를 기회로 삼아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하고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졸속협상이든, 퍼주기 협상이든, 일부 산업에 피해가 있든 상관없고, 한․미 FTA만 체결하면 국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수출이 늘고, 대외 신인도가 향상되어 해외투자도 늘어날 것이며, 값싼 수입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소비자 후생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지배세력의 이러한 공세 속에서, 타결 직후 한․미 FTA 반대 운동진영이 제출한 ‘한․미 FTA 협상 손익계산서’는 대중적인 호응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사실 한․미 FTA 반대 운동진영의 이러한 대응은 한․미 FTA 추진이 노무현 정권의 정책기조에 비추어 봤을 때 일종의 “일탈”이라는 인식과, 추진과정의 비민주성과 경제적인 실익이 없음을 지적하면 “일탈”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2차 협상 이후부터 광범위하게 퍼진 반대 여론을 수 조원을 쏟아 부어 잠재우고, FTA 반대 목적의 집회 금지와 구속 수배를 비롯한 폭력으로 반대 운동을 짓눌러가며, 협상 시한을 연장해가며 이를 타결했다. 또한 ‘퍼주기 협상’, ‘손해가 뻔한 협상’이라는 분석도 과감하게 눈감으며 협정 체결을 마무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무현 정권 스스로 한․미 FTA 체결은 “일탈”도, “판단 오류”도 아니었음을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는 일탈이나 오류라기보다는 경쟁력을 갖춘 재벌을 중심으로 금융화된 세계경제에 밀착함으로써 만성적인 경기침체의 상황을 극복한다는 남한 자본의 일관된 전략에 따라 추진된 것이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사회에 도입하고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성하기 위한 발판이 바로 한․미 FTA다. 그리고 이는 초민족 자본의 이윤확대를 위해 자본이동에 장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철폐하고 한국사회에 미국식 제도와 법을 이식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한 치도 충돌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퍼주기 협상’이니 ‘피해보는 산업이 있다’느니 하는 식의 저들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한․미 FTA를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한․미 FTA 체결을 추동하고 있는 자본의 전략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 누구에게 이익이고 누가 희생하는가 협상 타결 이후 한․미 FTA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자신을 ‘성장을 주도하는 발전세력’으로 표상하는 한편 반대 세력은 ‘경쟁’과 ‘발전’을 두려워하는 ‘후퇴세력’이라고 낙인을 찍으면서, 한․미 FTA가 한국사회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선전한다. 이들이 말하는 이익의 실체는 무엇인가? 누가 이익을 얻는가? 한․미 FTA의 목표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며 이는 노동자 민중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국내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생존전략일 따름이며, 오히려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 대가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과정이다. ‘개방만이 살 길’이고 개방이 경제 성장을 보장할 것이라는 주장은 김영삼 정권이 OECD, WTO에 가입할 때도, 김대중 정권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할 때도 반복되었던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그 ‘개방’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경험했지만 초민족자본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커졌고, 경제의 불안정성 또한 더욱 켜졌다. 경제를 살린다던 ‘해외투자자’들은 경제위기를 틈타 국내기업의 지분을 헐값에 인수한 후 구조조정으로 주식가치를 키워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겨 나갔다. 뿐만 아니라 농업․농촌 붕괴, 고용불안, 빈곤의 확산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선진화’는 한․미 FTA를 통해 이런 ‘개방’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국내 재벌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금융서비스, 사업서비스를 개방하여 한국사회 법과 제도 전반을 금융자본이 활동하기에 적합하도록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신(新) 성장 동력’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한국경제를 생산이 아닌 금융적 팽창으로 이윤을 확대하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와 수탈에 철저하게 내맡기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항시적인 고용불안, 저임금․불안정노동의 확산, 빈곤의 확대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자본의 고삐를 풀어 아무런 제한 없이 이동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반면, 노동자 민중의 삶과 권리를 뒤흔드는 한미 FTA는 ‘발전’이 아니라 야만이다. 다층적인 FTA에 맞서는 투쟁으로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지배세력들은 2004년 11월 이래로 중단된 한․일 FTA 협상을 재개해야하며, 중국과의 FTA도 하루빨리 시작하자고 다그치고 있다. 게다가 한․EU FTA는 오는 5월 초 1차 협상을 개시할 예정이다. 노무현 정부가 올해 초 제시한 정책목표도 한․미 FTA를 체결한 후 2007년 내로 일본, 멕시코와 중단된 협상을 재개하고, 유럽연합과 공식협상을 개시하고, 중국과 공식협상 전단계인 산․관․학 합동연구를 개시한다는 것이었다. 양자간 FTA가 이렇게 확산되는 데에는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이라는 다자간 틀을 통해 무역자유화를 달성한다는 계획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배경이 있다. 미국의 농업보조금 고수 입장이 문제가 되어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양자간 FTA는 이를 보충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양자간 FTA는 만장일치를 기초로 하는 다자간 협정에는 담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자유화 조치를 관철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 NAFTA 이후 최고 수준의 자유화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는 한․미 FTA는 미국의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에 따라 ‘상품과 자본의 이동의 자유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산하기 위한 지렛대의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태국,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 국과의 FTA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나아가 아시아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APEC 내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박차를 가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이 한․미 FTA 반대투쟁이 한․미 FTA만을 반대하는 투쟁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더 나아가 앞으로 무수하게 진행될 FTA 확산을 통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윤확대 전략을 파탄내기 위한 투쟁의 토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한․미 FTA와 신자유주의를 끝장내는 투쟁을 다시 조직하자 한․미 FTA를 둘러싼 지배세력 내의 균열이 한․미 FTA를 좌초시키지 않는다는 점은 지난 1년간의 투쟁을 통해 충분히 확인되었다. 부당한 무역 협상을 공정한 협상으로 시정하거나, 협상력을 배가하여 더 많은 ‘국익’을 얻어내는 것으로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지배세력이 남한 사회의 발전전략으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완성, 그리고 이것의 발판인 한․미 FTA가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를 더욱 가중하고 권리를 박탈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확산, 식량주권의 파괴, 건강권 파괴에 맞서는 사회운동들이 광범위하게 결집하여 전선을 확대하고 이 모든 것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원인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은 야만을 향해 내달려가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멈추고, 노동자 민중의 필요에 부합하는 교역의 메커니즘을 새롭게 세워내고 민중의 권리를 바탕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3월 말~4월 초 고위급 협상 및 장관급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단식농성, 상경투쟁, 대규모 촛불집회로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협상을 ‘끝장’내고자 했다. 그리고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는 투쟁의 흐름이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한․미 FTA 졸속협상 반대’를 내세우며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국회의원들이 한․미 FTA 반대 운동의 입지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노동자 민중의 삶과 권리를 파괴하는 원인에 맞서는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한․미 FTA가 발효되는 데 필요한 절차를 지연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노동자 민중의 더 많은 권리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강화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미 FTA 반대투쟁의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을 비롯한 각급 대중운동이 이 투쟁의 주체로 분명하게 서는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가 한국 사회에 몰고 올 효과를 직접 검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따져 물어야 할 것은 한․미 FTA 체결에 따른 국가적 손익이 아니다. ‘지배계급이 한국사회 발전을 위한 유일한 전략으로 내세우는 재벌중심의 세계화가 노동자 민중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이다. 이를 둘러싼 논쟁과 토론을 광범위하게 조직해야 한다. 또한 한․미 FTA 협상 결과의 국회 내 검증, 공식 서명, 국회 비준 동의안 심의 등 부르주아들의 정치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흐름을 조직해야 한다. 한․미 FTA의 효과를 노동자 민중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을 다양하게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미 FTA를 막아내고 이에 대한 대안을 형성할 수 있는 대중적인 힘을 기층에서부터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을 6월 말 미국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양국 정부간 공식서명으로 이루어질 한․ 미 FTA 체결 저지 투쟁으로 모아내야 한다.